• “불안, 우울, 그로테스크”
  • 민족문학연구소, ‘소설 이천년대’ 펴내
  • 박해현기자 
    • “2000년대 한국 소설은 불안하고, 우울하고, 그로테스크하다.”

      젊은 비평가 모임인 ‘민족문학연구소’가 2000년대 한국 소설을 대표하는 젊은 작가 선집 ‘소설 이천년대’(생각의나무)를 최근 펴내 2000년대 소설에 대한 중간 평가를 시도했다. 2003년 동인문학상 수상작가 김연수씨를 비롯 박민규 천운영 김재영 김애란 김중혁 김윤영 전성태 이명랑 편혜영 배수아 정지아 윤성희씨의 대표 단편들을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2000년대는 계속 진행 중이다. 정의내릴 수도 없고 평가하기도 이른 수많은 문학적 실험들이 분분하다. IMF 이후 더 가속화된 자본주의 한중간에서 때로 외로워하고 때로 연대하는 이웃들의 모습, 전망없는 청춘들이 쏘아올린 상상력의 폭죽은 우리 시대의 문학을 다채롭게 물들이고 있다”고 선정 기준을 제시한 ‘민족문학연구소’는 “문학이 위기라는 소문은 흉흉하지만 그럴수록 좋은 소설이 주는 행복을 독자와 함께 누리고 싶기도 했다”며 선집 출간 이유를 밝혔다.

    • ▲왼쪽부터 소설가 박민규씨, 소설가 김애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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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 세대 소설과 확연하게 구별되는 2000년대 소설의 새로움이라면 ‘카스테라’의 작가 박민규, ‘달려아, 아비’의 김애란, ‘아오이가든’의 편혜영, ‘펭귄뉴스’의 김중혁씨를 먼저 꼽을 수 있다. “이 작가들의 모든 소설들이 가족의 위기 혹은 불완전한 가족을 다루고 있다”고 평론가 오창은씨는 분석했다. 어머니는 쓰러지고, 아버지는 가출하고, 아이들은 버림받거나, 부모가 모두 세상을 뜬 아이들이 등장한다는 것. 그래서 불안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우주적 상상력의 불꽃놀이가 벌어진다. “이들 작가들은 ‘화성/금성’을 넘나드는가 하면(박민규), 우주로 방사되는 불꽃에 대해 이야기하고(김애란), 원초적 자연의 공포(편혜영)나 에스키모의 지혜(김중혁)를 말하는 것도 특징”이라는 얘기다.

      2000년대 작가들에 대해 탈현실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악몽이 넘쳐난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다른 편에는 ‘현실에 대한 지독한 환멸을 보여주지만, 결코 현실을 외면하거나 초월하려고 하지 않는’ 작가들도 있다. 천운영 윤성희 김윤영 소설이 대표적이다. “지금 현실이 고독한 일상을 사는 인간들의 우울한 욕망으로 가득 차 있음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고 평론가 하상일씨는 평가했다.

      또 정지아 이명랑 김재영 소설은 ‘변한 듯이 보이나 변하지 않은 근대의 실루엣을 부여잡고 치열한 고투를 벌인다’(평론가 고인환)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김연수 배수아 전성태 소설은 ‘공동체의 규칙을 위반하는 일이 어떻게 다시 공동체를 구성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경계 넘기’를 시도하고 있다(평론가 박수연)는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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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물상] ‘안나 카레니나’
  • 강인선 논설위원 insun@chosun.com
     

    • “행복한 가정은 살아가는 모습이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다른 이유로 괴로워하는 법이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이렇게 시작된다. 남편이 프랑스 가정교사와 바람난 것을 안 아내 안나는 한집에 살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집안은 뒤죽박죽이 된다. 안나는 청년 귀족과 연애를 시작하지만 결국 비극으로 끝나고 만다.

      ▶톨스토이는 7년 집필 끝에 1869년 ‘전쟁과 평화’를 탈고한 뒤 정신적 탈진에 빠졌다. 창작의 기쁨도 느끼지 못했고 결혼생활도 이전처럼 행복하지 않았다. 신경은 곤두섰고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다. 그리스어 공부에만 매달려 아내의 잔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 4년 방황 끝에 쓰기 시작한 작품이 ‘안나 카레니나’다. 그래서인지 그의 펜은 무거웠다. 그는 한 편지에 “이 소설은 지루하고 저속하다”고 썼다. “안나가 너무 지겹다. 마치 떫은 무를 계속 먹는 것 같다”고 했다. 작업은 5년이나 계속됐다.

      ▶‘안나 카레니나’는 그러나 당시 러시아 사회상을 다각도로 비춘 최고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불륜 드라마를 넘어 1861년 러시아 농노해방 이후 결혼과 가족 문제를 포함한 당대 새로운 사회상과 풍속을 150명이 넘는 등장인물을 통해 생생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로맹 롤랑은 “구성이 ‘전쟁과 평화’보다 완벽하다”고 했고, 토마스 만은 “세계 문학에서 가장 위대한 사회소설”이라고 했다.

      ▶130년이 흘러 미국의 한 출판사가 스티븐 킹, 톰 울프 같은 미국·영국·호주 유명 작가 125명에게 “최고라고 생각하는 문학작품 10권씩을 선정해달라”고 했다. 여기서도 ‘안나 카레니나’는 최고였다. ‘전쟁과 평화’도 2위 ‘보바리 부인’(플로베르)에 이어 3위에 올라 톨스토이는 영어권 작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됐다. 최근 미국에 고전 읽기 열풍을 일으킨 토크쇼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도 ‘안나 카레니나’를 “최고의 러브 스토리”로 꼽았다.

      ▶스탕달은 “소설이란 거리로 들고 다니는 거울”이라고 했다. 소설의 존재 이유가 인간과 인생의 재현임을 말하는 명언이다. 톨스토이에 대한 고리키의 찬사 역시 모든 것을 생생히 되살려내는 그의 능력을 말하고 있다. “톨스토이는 세계 전체다. 그는 한 세기에 걸쳐 체험한 것들을 놀라운 진실성과 힘과 아름다움으로 표현했다.” ‘안나 카레니나’가 시대와 언어권을 초월해 찬사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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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팽이 2007-02-27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싶었는데요.
    또 님의 글로서 욕망이 이는 것을 봅니다.

    stella.K 2007-02-28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저도 마음에만 담고 있는 책입니다. 이 글 읽고 하루종일 아른거려서 혼났습니다.^^
     

  • 책밖으로 나온 문학과지성사
  • 전시·세미나등 복합 문화공간 ‘사이’개원
  • 김태훈기자 scoop87@chosun.com
     
    • 문학과지성사(대표 채호기)가 출판 외길을 벗어나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다.

      지난 30여 년간 문학과 인문학 분야의 담론을 생성하며 한국 지성사의 한 축을 담당해 온 ‘문지’는 1일부터 문학 강좌와 인문학 워크숍, 미술 전시회, 세미나 등 다양한 문화활동을 할 수 있는 복합 문화공간인 ‘사이’를 개원한다.

      문지는 ‘사이’를 개원하면서 출판업이 아닌 서비스업으로 사업자 등록을 했고, 등록 주체도 문학과지성사가 아니라 ‘문지문화원’(공동대표 이인성·채호기)이라는 별도의 법인을 만들었다. ‘사이’는 서울 홍익대 앞의 한 건물 1개 층(80평)을 임차해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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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대표를 맡은 채호기 시인은 “30년 전 문지의 설립 목적은 출판만이 아니라 문화의 기획과 실천이었다”며 “그동안 출판이 그 중심에 있었지만, 2000년 이후 문화는 각 분야간 혼성교배를 요구하고 있다”고 설립배경을 설명했다. 소설가 이인성씨도 “문지의 실험은 책이 아닌 다양한 방식의 문화채널로 대중과 만나겠다는 선언”이라고 말했다.

      1일 5시 ‘사이’에서 열리는 개원식은 이른바 ‘문지 2세대’가 1세대의 그늘과 아성을 벗어나 ‘21세기 문지’의 새출발을 선언하는 장이 될 전망이다. 문학평론가 김현, 김치수, 김주연과 함께 문지 1세대를 대표하다 2000년 현역에서 물러난 김병익 전 대표(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가 이날 개원식에 참석해 ‘사이’의 성공을 기원하는 축사를 한다.

      문지문화원 ‘사이’는 3월12일 아카데미 봄 학기 개강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갈 예정. ‘문학마당’, ‘고전 깊이 읽기’, ‘인문사회학교실’, ‘예술교실’ 등 고급수준의 강좌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대중교양 강좌인 ‘사이 문화카페’를 운영한다. 또 세미나실 대여, 미술전시회 개최, 토요 정기 문화기획 등의 다양한 메뉴를 준비하고 있다. ‘고전 깊이 읽기’ 강좌에서 플라톤의 ‘국가’를 깊이 읽는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사이 문화카페’에서는 ‘재즈의 매혹적인 풍경들’, ‘영화와 미술’ 등 보다 대중적인 강의를 즐길 수 있다. 전문가들을 위한 워크숍도 수시로 마련된다. 3월 9일에는 ‘경계/사이 그리고 창조성’이란 주제로 개원기념 심포지엄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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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늘빵 2007-02-01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신문서 보고 냅다 가입했습니다.

    stella.K 2007-02-02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잘 하셨습니다.^^
     

    우아, 독서가시군요.^ ^ 무턱대고 50권 시작은 무리. 차근차근 테마나 작가 기준 세우셔서 멋지게 실행해보세요. 기대되네요~

    어떤 작가의 작품을 읽고프세요?

    어떤 시리즈가 읽고프세요?

    어떤 작가의 작품을 읽고프세요?

    대한민국의 외국어 교육의 문제점을 역설하곤 하는 그대, 올해는 그 문제점 타파를 위해 나 먼저 힘껏 영어를 정복해보는 건 어떨까요? 지루하게 단어만 암기하던 영어책 시대는 끝났습니다. 새로운 영어책들을 만나보세요! 기본 문법은 [grammar in use]로 가뿐히 해결하시고, 토익 토플책을 넘어선 즐거운 영어 공부 시작하셔요.

    배낭여행의 로망 유럽. 거리상 문제로 인해 쉽게 갈 수 없는 만큼 충분한 사전조사는 필수! [스페인 너는 자유다][파리의 이런곳 와 보셨나요][이탈리아 여행 1][생활의 발견 파리]등은 읽는 내내 그곳으로 날아가고픈 마음 가득.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1][유럽음악축제 순례기][스위스 디자인 여행][예술을 품고 유럽을 누비다(80일간의 유럽 예술기행)]은 남다른 예술 여행을 꿈꾸게 해줘요. 진짜 여행책이 필요하시다구요? [유럽 100배 즐기기][유럽(2005-2006)(론리 플래닛)][이지 유럽(2006-2007 최신개정판)] 꼼꼼히 체크해서 떠나보세요.

    어떤 비법을 알고 계세요?

    익히 듣고 있는 가요에 대한 문장은 쉽게 만나기 힘듭니다. 귀로 듣는 음악, 눈으로 읽을 필요 - 잘 못느끼는 게 아마도 당연하겠지요. 그러나 이제는 조금 가요가 지루하다싶으시다면 혹은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그 가요를 만나고 싶으시다면. [대한인디만세(한국 인디 음악 10년사)(CD 2장 포함)][90년대를 빛낸 명반 50]등이 당신을 도와드립니다.

    공중그네 속 이라부. 그는 항상 무심한 듯 우리에게 다가와 옆구리를 푹 찌르듯 놀래키며 어느 덧 간지럼을 태웁니다. 깔깔깔. 어느 새 웃고 있는 우리들. [인더풀]로 다시 돌아왔던 이라부는 [남쪽으로 튀어]에서는 국민연금을 못내겠다고 우겨대는 어느 혁명투사의 모습에 투영되있구요, 어느 새 여자가 되어[걸]을 외쳐대기도 합니다. 방전되어 터벅터벅 걷고 계신 당신께 새로운 에너지를 안겨주는 소설.

    고전이란 이름은 그 이름만으로 너무 딱딱한 분위기가 납니다. 그러나 요즘은 달라요.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처럼 다산 정약용선생에게 경영법을 배우기도 하고,[한국사 천자문]처럼 이름만은 익숙한 천자문을 통해 우리나라를 살펴보기도 합니다.그 뿐인가요? [옛글에 빗대어 세상을 말하다][나의 고전 읽기]등 쉽게 고전을 맛볼 수 있는 책들도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책에 익숙해지면 진짜 고전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겠죠. ^ ^

    문자로 표현된 당신의 감성도 좋지만 때로는 사진 한장으로 더한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근래에 발간되고 있는 수많은 사진 에세이는 우리에게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 걸까요? [소망 그 아름다운 힘][그때 그곳에서][고맙습니다]는 잊고 있던 그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여행보다 오래 남는 사진찍기][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2][좌린과 비니의 사진가게]의 사진을 넘기다보면 어느 새 우리는 여행길에 오른 듯한 착각이 들어버려요.

    처음 그의 그림은 그저 거친 ?脚羔「?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점차 그의 심정이 느껴졌습니다. 우연히 읽은 [달과 6펜스]는 알수없는 애정을 불러일으켰으며, 이제는 하나의 효과가 되어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반 고흐]는 반갑습니다. 그저 눈에 익은 그림이 새롭게 다가서는 과정. [반 고흐 영혼의 편지][빈센트 반 고흐(춤추는 별을 그린 화가)][반 고흐 VS 폴 고갱][반 고흐 효과]등을 통해 당신도 한번 느껴보세요~

    [교보문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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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자기 시대의 수도사

    중견작가 김영현씨가 신작소설을 냈다. <낯선 사람들>(실천문학사, 2006). 소설집이 아니라 전작 장편소설이다. 300쪽 남짓이니까 분량이 두툼한 건 아니지만. 특이한 건 노골적으로 러시아작가들, 특히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베끼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작가들은 구원론적인 주제를 탐구하려면 도스토예프스키적인 걸 다뤄야 한다는 강박증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몇 년전에 읽은 것으로 역시나 도스토예프스키적인 주제를 다룬 정찬의 <그림자 영혼>(세계사, 2000)도 아주 실망스러웠다).

    아래 인터뷰기사를 보면, 작가 자신이 '문학의 제2기'에 들어선 것 같다고 고백하는데, "당분간은 종교적 탐구를 계속해 보고 싶"다는 그의 마지막 멘트가 기대보다는 우려를 낳게 한다. 사실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야말로 광신도적인 신앙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구원에 대한 회의를 끝까지 밀고간 작가가 아니었나(왜 우리 주변엔 인도로 가거나 수도원으로 가는 작가들만 있는 것인지? '당대적 현실'은 어디로 간 것인지?). 

    한국일보(07. 01. 15) '낯선 사람들' 낸 소설가 김영현

    소설가 김영현(52)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은 이렇다. 리얼리즘, 낭만, 서정, 민중문학, 민중운동, 학생시위, 긴급조치 위반, 구속, 고문…. 실천문학사 대표라는 현재 직함이나, 낭만적 색채 짙은 그의 리얼리즘이 민중문학의 발전이냐 퇴보냐를 놓고 뜨겁게 벌어졌던 1990년대 초의 ‘김영현 논쟁’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겠다.

    그가 4년 만에 새 장편소설 <낯선 사람들>(실천문학사)을 펴냈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저 열거된 단어들의 어떤 기색도 찾아보기 어렵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표나게 원용한 그의 이 신작은 욕망과 원죄, 악령과 신성이라는 종교적이고 존재론적인 주제를 탐구한, 말 그대로 도스토예프스키적인 작품이다.

    “이제야 비로소 김영현 문학의 제2기에 들어선 것 같습니다. 이제 겨우 패배감의 터널에서 빠져 나와 문학적으로 자유로워진 것 같아요.” 그는 말했다. 운동을 할 때는 그래도 내 삶이 가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떤 고통도 감내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편안한 것 자체도 감수하기 힘겹다고. “우리처럼 오랫동안 운동권에 있었고, 아직도 몸 속에 그 많은 상처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2000년대로부터 조롱당하는 것 같은 참담함과 좌절감을 느껴왔죠. 지금의 세계는 좋게 말하자면 다원화한 노마디즘의 세계지만, 다른 면에선 일종의 무정부 상태예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 채 내던져진 존재가 돼버린 거죠. 오지 여행도 많이 하고, 러시아 문학도 다시 읽고 하면서 이제야 내가 어떤 문학을 해야 할지 알게 됐습니다.”

    피살된 아버지와 그의 아들들의 비밀을 추리소설 기법으로 파헤친 <낯선 사람들>은 이런 회의와 고통의 소산이다. 소설은 파렴치한 수전노 아버지와 그의 걸신들린 욕망이 낳은 배 다른 아들들의 갈등을 축으로 하는데, 이 소설에서 수도원 신학생인 차남 성연이 아버지의 진짜 범인을 추적해가는 과정에서 부딪치는 윤리적, 존재론적 갈등은 오롯이 작가 자신의 것과 겹친다.

    “성연이 수도원을 떠나 첫 사랑 안나를 찾아나서는 결말을 통해 이 세상에서 사랑하고 부대끼고 하는 것이 우리들에게 주어진 숙명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저도 수도사처럼 침묵 속에서 생을 완성해가고 싶다는 욕망에 시달릴 때가 많아요. 하지만 얄궂은 운명 속에서 관계를 맺었다 해도 이 누추한 삶을 껴안고 살 수밖에 없지 않느냐, 그게 의미 있는 삶 아니냐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인간과 함께 피의 역사가 시작됐지만 사랑의 역사도 시작됐고, 그게 우릴 구원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김영현의 작품을 김영현적이라 하지 않고 도스토예프스키적이라고 말하는 게 미안하지만, 작가는 <낯선 사람들>이 도스토예프스키를 비롯해 체홉, 투르게네프 등 러시아 작가들의 방법론을 활용해보려는 거대한 구상의 첫 작품이라고 말한다. “소설을 쓰지 않는 동안 고전으로 다시 돌아가봐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침체된 우리 문학을 위해 고전적 주제와 품격, 구도를 가진 문학을 다시 재건해내야겠고 생각했어요. 박완서 이문열 같은 1세대 작가들과 유행에 휩쓸리는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 텅 빈 중간세대로서 제가 할 일은 이거다 싶었습니다.”

    이제 무엇이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소화력 강한 위장이 생긴 것 같다는 그는 “저도 제 자신에게 기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에는 한 달에 1주일은 집필실에 들어가있겠다고 선포까지 했다. “작가는 평생 삶의 화두를 찾아 떠도는 자기 시대의 수도사입니다. 저는 삶의 의미라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 막막한 우주에 영혼이라는 이토록 정교한 장치들이 존재한다는 게 바로 그 증거일 겁니다. 그걸 기독교가 말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당분간은 종교적 탐구를 계속해 보고 싶네요.”(박선영 기자) 

    07. 01. 15.

    P.S. 미완의 소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주인공 알료샤는 수도원을 나와 (창작 메모에 따르면) 나중에 테러리스트가 된다(구원은 그 다음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시대의 수도사'가 아니라 '자기 시대의 테러리스트'가 아닐까? 세상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얻기 전까지는 결코 삶의 의미 따위를 구걸하지 않겠다는 다부진 결의로 무장한. 러시아 작가들의 방법론의 '한국화'에 대해서 우려를 갖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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