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장영희 교수의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읽다가 발견한 책이다.  

물론 이 책의 직접적은 없다. 단지 우리가 잘 아는대로 펄벅은 <대지>의 작가며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우리나라에도 관심이 많았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그가 우리나라 역사를 배경으로 소설을 썼다는 건 이번에 새롭게 알게되었다.  

그것도 좀 우습긴(?) 한데, 솔직히 난 펄벅 보다는 장영희 교수의 아버지인 장왕록 박사에 관심이 생겨 이 분의 책이 뭐가 있을까를 찾던 중에 발견한 것이다. 그런고로 이 장왕록 박사가 이 책을 번역한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더불어 펄벅이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소설을 썼다는 걸 알게된 것. 

그런데 이 책의 발행 년도를 보니 2005년도다. 왜 그걸 이때까지 나는 모르고 있었던 걸까? 

갑자기 급 관심이 갔다. 지금 다시 <대지>를 읽으라면 조금 주춤거리기는 한데(뭐 이를테면 핑계를 대는거지. 서양인이 본 중국이 얼마나 정확하겠어. 아무리 노벨상을 받았다고는 하나 인간은 편견의 존재 아니냐? 등등) 같은 저자가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글을 썼다니 관심이 가는 건 또 뭐냐? 

그런데 좀 불안해졌다. 혹시 이 책 곧 절판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 말이다. 

찾는 사람 없으면 몇 부가 팔렸던지간에 또는 자회사 어느 구석에 쳐밖힐 망정 서점엔 절판으로 나온다. 우리나라가 출판 10위안에 드는 출판대국이라고 하면서 절판률을 좀 줄여나가야 하는 거 아닌가?  

암튼 이 책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게 좀 아쉽다. 주목받는 책만 주목받고 우리나라 영문학계의 태동을 이끌었던 저명한 분의 이런 책은 여전히 음지에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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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 발간된 <책 읽는 뇌> 의 저자는, 인류는 책을 읽도록 태어나지 않았으며, 독서는 뇌가 새로운 것을 배워 스스로를 재편성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인류의 기적적인 발명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아직 이 책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이 말에 공감한다.  

초등학교를 막 진학해서 첫 방학을 맞았을 때 나는 '생활통지표'라는 걸 처음 받아봤다. 그때 나의 체육이란 과목에 '가'를 맞은 걸 보고 충격을 먹었다. 최하점수를 맞은 것도 맞은거지만 이제부터 나의 학교생활이 이런 식으로 점수가 매겨지는구나라는 사실이 좀 더 충격적이었다고나 할까?

그때 담임 선생님은 나의 학교생활 전반을 기록하는란에 책 읽기를 싫어하는 아이로 기록했고 나는 그것으로인해 언니로부터 조롱을 받았다.  

뭐 체육이야 워낙에 운동신경이 없으니 가를 받아도 할 말은 없다고 쳐도 도대체 담임 선생님은 나의 무엇을 보고 그렇게 쓰셨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의 본격적인 독서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였다.    

그때 내가 얼마나 열심히 책을 읽었느냐면, 쉬는 시간 10분 동안에도 화장실 갈 일 없으면 그 막간을 이용해 읽기도 했고, 점심 시간에도 책을 읽었다. 중학교 올라와서는 보통 4교시 끝나고 먹는 점심을 3교시 끝나고 후딱 먹어치운 후 점심 시간을 온통 책 읽는 시간에 투자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내가 책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책을 너무 늦게 읽었기 때문에 나는 그 시간이 온전히 필요했던 것이다. 어쨌거나 내가 그토록 열심히 책을 읽는 아인줄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아셨더라면 그 셍활통지표에 결코 그렇게 쓰시진 못했을 것이다. 물론 대신 책을 늦게 읽는 아이라고 쓰셨다면 말이되지만. 그래도 나의 언니는 여전히 킥킥대고 웃었을까? 하지만 책을 늦게 읽는다고 학습 부진아는 아니지 않는가? 그 정도 가지고 조롱의 대상이 된다면 이 세상은 너무 가혹할 것이다.  

그 시절 내가 즐겨봤던 책은 계림문고라는 아동용 세계문학 전집이었다. 이 책은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았는데 아버지께 그 도톰하고 묵직한 문학전집을 사 달라는 말을 차마 못해 낱권으로 이 책들을 사 모았다. 한 권당 350원인가 했는데 3권을 한꺼번에 사면 그 문방구 주인 부부가 천원에 살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기억나는 건 초등학교 6학년 시절, 난 내 앞에 앉은 남자 아이를 좀 좋아했는데, 마침 그때 당시 아이들 사이에서 추리소설 읽기가 유행이었다. 그때 어떤 출판산지 모르겠는데 어린이 문고용으로 홈즈나 루팡 시리즈를 150페이지 정도의 분량으로 얇게 만들어 나온 책이 유행이었다. 난 호기심에 그 책을 몇 권 사서 읽긴 했는데 추리물은 그다지 나에겐 좋아하는 분야는 아니었다. 그래도 그 남자 아이의 관심을 끌어 보겠다고 책을 책상 바닥에 놓고 읽지 않고 일부러 코높이 가까이 들고 읽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얼마만에 그 아이는 나의 이마를 검지 손가락으로 살짝 치더니 그 책을 빌려줄 수 있겠느냐고 하는 것이다. 속으로는 '아싸!'하며 기회가 온 것을 내심 기뻐했지만 나는 짐짓 무관심한 척, "그래? 알았어. 다 읽으면 빌려줄게."했다. 일단 관심을 끄는데 성공을 한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이 녀석 마음이 나한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아이한테 있었음이 들어나 단칼에 내 마음에서 녀석을 도려내버리고 말았다. '난 너 같은 바랑둥이는 싫어!'하며 말이다. 그후 나는 다시는 책으로 사람의 마음을 후리는 그런 짓은 하지 않았다.   

그 무렵 스티븐 킹의 <캐리>란 동명 영화가 나왔고 연이어 책도 출간이 되었다.  

요즘엔 마케팅을 잘해선지 영화나 드라마가 뜨면 덩달아 그 작품의 원작 소설도 뜨지만, 당시는 그런 것들의 기반이 워낙에 약해 영화는 나름 성공했던 것 같은데 책은 그다지 재미를 못 봤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런 경우는 비단 <캐리>의 경우는 아닌 것 같다.  

영화가 뜨면 책이 재미가 없다거나, 책이 재미있으면 영화는 재미가 없다는 속설이 공공연히 나돌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격세지감이요 감히 상상도 할 수가 없는 일이다. 어떻게 영화로 뜬 작품이 책으로는 안 뜰 수가 있단 말인가?  

좀 웃긴 건, 나는 <캐리>란 영화는 보지 않았으면서 책은 몰래 가방 속에 넣고 다녔다. 당시 나는 어려서 그 책이 명목상 금서 목록이긴 했지만, 그 책을 그렇게 들고 다니면 아이들 사이에서 나름 주목을 받기도 했다. 물론 공포물이어서 이기도 하지만 이유는 따로있었다. 즉 거기서 보면 주인공 캐리가 동급생 여자 아이들 보다 초경을 늦게 시작해 당황해 하는 모습을 묘사한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이 같은 반 남자 아이들의 묘한 호기심을 발동시켰고, 동시에여자 아이들은 불편했던 까닭이다. 여자 아이들은 그런 책을 태연하게 보고 있는 나에게 눈짓을 보내는 것이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감추긴 했지만 요즘 시쳇말로 그까이 꺼 가지고 뭘 그러나 아이들이 좀 유치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난 곧 그 책을 결국 다 읽지 못하고 엎어버리고 말았다. 왜냐구? 당연 재미없었으니까다.  

번역이 잘 안된 건지 아니면 내가 그때만해도 아직 그런 걸 소화해낼 그릇이 못되었는지 암튼 완독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도 영화의 한장면에서 따옴직한 돼지피를 뒤집어 쓴 캐리의 모습을 앞표지에 실은 그 책은 그렇게 아이들에겐 나름 신비한 끌림을 줬던 것만은 틀림없었던 것 같다. 그후 나는 여전히 다른 책을 수시로 바꿔가면서 들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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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아마 저 오른쪽의 컷을 책표지로 썼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저주 받을 세로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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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시절 읽었던 책이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나 라즈니쉬의 <자기로부터의 혁명>같은 어려운 책에 도전해 보기도했는데 그것은 지금 생각해도확실히 지적 허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절 나는 동네 단골 주인 아저씨한테 그때까지 듣도 보도 못한 저술가의 이름을 들먹이며 그 사람이 쓴 책이 있냐고 물어 아저씨를 당황하게도 했고, 아저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모르겠다고 하면 속으로 왜 이런 책도 번역되지 않았냐며 우리나라 출판의 낙후성을 비난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우습다는 생각 밖엔 들지 않는다.   

사실 그런 책들은 지금 읽는다고 해도 아찔하게 어려운 책들이다. 오죽했으면 니체의 책 가지고 농짓거리가 다 생겼을까? "자라! 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고. 이 책은 정말 그 말이 딱 어울리는 책이 아니던가? 

그래도 그 시절 난 까만 건 글자요 하얀건 종이인 이 두 권의 책을 과감하게 첫 페이지 첫 글자로부터 마지막 페이지 마지막 글자까지 꾸역꾸역 읽어냈다. 왜 덮을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 재밌다던 스티븐 킹의 '캐리'도 덮은 내가 그때는 책 읽기의 괴로움을 몸소 감내하며 꾸역꾸역 읽었던 것이다. 

또 이런 경우도 있다. 책을 샀을 당시엔 울적해서 샀는데 집에와 막상 읽으려고하니 도저히 못 읽겠는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우연한 기회에 그책을 다시 손에 들었는데 그때야 비로소 그 책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이 공교롭게도 쿠센버그란 독일작가의 <바보는 웃지 않는다2>였다. 그야말로 정말 좋은 책을 알아보지 못했으니 바보일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웃을 수도 없었다. 그 후 나는 참회하는 마음(?)으로 그 책을 샀던 서점으로 갔지만 이미 너무 많은 세월이 흘러 그 책은 절판이되고 그책을 출판했던 출판사조차 없어지고난 후였다.     

그러고 보니 과연 지금까지의 나의 독서 이력을 볼 때 내가 정말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물론 정말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 비하면 새발의 피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까지 책을 좋아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이라고 자부해왔다. 하지만 알고보면 이 책은 이래서 못 읽고, 저 책은 저래서 못 읽었다. 또한 책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안 읽고 못 읽는 책 역시 많아진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시기를 놓쳐서 못 읽게 되는 경우도 읽다. 그러니 나는 정말로 책 읽기를 좋아하는가? 고려해 봐야할 일이다.  

또 책 중엔 남들은 좋다는데 나는 맞지 않는 책도 있다. 사람도 자기에게 맞는 사람이 따로 있듯이 책도 사람이 쓰는 것만큼 궁합이 맞는 책이 따로 있게 마련인 것 같다. 그럴 때 갖는 마음은 여러 갈래다. 어떤 경우 어떻게 이렇게 말도 안되는 책을 좋다고할 수 있단 말인가? 분개할 때도 있고, 어떤 땐 남들은 능히 읽는 책을 왜 나는 못 읽을까 자책을 하게되는 책도 있다.  

결국 그러다 보니 좀 어렵거나 나한테 맞지 않는다 싶은 책들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 배짱이 생겼다. 그런 책은 읽어봐야 기억에도 남지 않을뿐만 아니라 시간도 낭비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읽을 책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맞지도 이해도 못할 책 가지고 씨름을 한단 말인가? 그래서 결국 편독하는 버릇이 생기고 말았다.   

어디 그뿐인가? 사람은 어느 하나에 길이 들면 그것에 대한 동물적인 감각이 생기게 마련이다. 물론 내가 못 읽고 안 읽는 책도 있지만 출판된 책들을 보다보면 이건 좀 아니다 싶은 책도 종종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어떤 책은 이건 좀 아닌데 싶은데도 속아서 읽게 되는 책도 있다. 그러면 좀 억울한 생각도 하지만 인간관계에서도 보면 알면서 속아주는 관계도 있지 않은가? 그런 것에 비하면 책에 속아 주는 것쯤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게도 된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책에 대한 집중도 떨어졌으며 그렇게 10분 15분의 막간을 이용해 책을 읽는 열정도 없어졌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보면, 책이 예전에 비하면 훨씬 많아져서일까? 홍수 중 가뭄이랬다고 그렇게 많은 책들 중 만족된 독서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예를들어 5권을 읽었다면 그중 만족된 독서를 했다고 생각되는 책은 한 권 정도나 될까?  

이렇게 책을 읽는 일은 나에게 있어서 여전히 즐거운 일인 동시에 괴로운 일이 되어버렸다. 다른 이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모두 시지프의 후예들일 거라는 것이다. 나는 방금 책 한 권을 다 읽었다. 그리고 몇 시간 내지 하루가 지나서 금방 또 다른 책을 펼쳐들거란 점에서.  

그 똑같이 되풀이되는 행위속에 무엇이 남을런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책을 좀 더 사랑하자. 나를 좀 더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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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라딘이 나를 버렸다.
    from stella09님의 서재 2009-09-05 13:29 
    http://blog.aladdin.co.kr/trackback/stella09/3063747  알라딘이 나를 버렸다. 이 페이퍼 정말 열심히 썼는데 어떻게 외면할 수가 있단 말인가?ㅠ.ㅠ   
 
 
hnine 2009-08-31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글 중에 나오는 책들이 저도 대부분 아는 책이어서 반가왔어요.
연노란 색 표지의 계림문고, 낱권으로 팔던 책이었지요. 저도 기억해요.
그 추리소설 시리즈를 내던 출판사 이름은 저도 가물가물하네요. 저도 무척 좋아했는데.
혹시 그것도 계림 출판사 아니었던가요? 까만 색 표지의.

stella.K 2009-08-31 11:1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저도 그 추리소설 계림출판사에서 나온 것 같긴한데
확실할까 싶어 밝히지 못했답니다.
나이가 들으니 옛날 생각 참 많이나요. 그죠?^^

헌책방IC 2009-08-30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술을 많이 마시면 그 다음날 많이 괴롭기도 합니다.
그래서 마시지 않으려니, 또 마시고 싶은 게 술이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또 마시면 그 다음날 또 괴롭고. 그래도 또 마시고. 왜. 좋으니까.ㅎㅎ
글 곳곳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서... 실례 좀 했습니다.^^

stella.K 2009-08-31 11:15   좋아요 0 | URL
ㅎㅎ 앞으론 술 드지 마시고 책 읽으세요.^^

하늘바람 2009-08-31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면서 많이 공감이 가 웃으면서 읽었어요. 왜 나이들면 집중도가 떨어질까요 제가 요즘 그러네요

stella.K 2009-08-31 11:25   좋아요 0 | URL
앞으로 가면 갈수록 더 심할걸요?ㅎ 그래도 그것을 조금이라도 지연시켜 주는게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읽으세요.^^
 

무엇을 어떻게 읽든지 어느 누구도 침해 할 수 없는 독자의 권리 10
-<소설처럼>(다니엘 페나크, 문학과 지성사)

1. 책을 읽지 않을 권리
2. 건네뛰며 읽을 권리
3.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4. 책을 다시 읽을 권리
5. 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
6. 보바리슴을 누릴 권리
(*보바리슴-자기를 현싱의 자기가 아닌, 분수 이상의 존재로 인식하는 정신작용)
7. 아무데서나 읽을 권리
8. 군데군데 골라 읽을 권리
9. 소리 내어 읽을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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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8-09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독자의 권리 10인데 9까지 밖에 없네요.얼능 10도 올려주세요^^

stella.K 2009-08-10 10:15   좋아요 0 | URL
헉, 그러네요. 직접 읽지는 않고 누가 써 논걸 퍼온지라 생각을 못했네요.
저는 3번의 권리가 마음에 듭니다. 카스피님은 어떤 게 마음에 드시는지...?ㅎ

카스피 2009-08-10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무책이나 읽을 권리죠.야한 책이든 진보서적인든 어떤 이유로든 금서가 된 책들을 읽고 싶어용^^

stella.K 2009-08-10 13:08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금서에 대한 욕망!

진달래 2009-08-10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권리네요. ^^*
저 책, 읽다 지루해서 던졌는데..
다시 읽어봐야겠네요.
좋다는 분들이 의외로 많아서 제가 뭘 놓쳤는지... ㅋㅋ

stella.K 2009-08-10 13:07   좋아요 0 | URL
책을 읽지 않을 권리도 있으니 넘 신경 쓰지 마세요.^^
 
2기 서평단 활동 종료 설문 안내

지난 3개월 간은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빨리 빨리 읽어내지 못해서 그렇지 나 역시 책 욕심 많은 사람중의 한 사람으로써 일주일에 한번씩(어떤 땐 두 번도 오더만) 서평단이라고 해서 알라딘에서 보내주는 책이 무척 많이 기대가 되고 설레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어떤 책은 내 취향에 맞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대체로 알라딘에서는 엄선한 신간 서적을 보내줬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했던 책은 잭 런던의 <강철군화>(궁리)였는데 이건 정말 알라딘 서평단이 아니었으면 결코 누릴 수 없었던 호사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비해 좋은 책을 서평단 책으로 선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안 좋은 방법으로 알린 책은 양철북의 <지로이야기1>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베스트인 동시에 워스트였다고나 할까?  

이 책은 알다시피 3권으로 되어있다. 한 권의 책의 두께가 웬만한 책 두 권을 합쳐놓은 분량이어서 읽기가 버거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왕 서평단 책으로 선정할 양이라면 전권을 다 보내주던가 그것이 어려웠다면 아예 선정을 포기했어야 했다고 본다. 뭐란 말인가? 하는 것도 아니고 안하는 것도 아닌 어정쩡함은...? 물론 이 책은 정말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가장 안 좋은 것이 하나가 더 있는데 그것은 창비의 <위저드 베이커리>다.  

이것은 가제본 형태로 왔는데, 왔을 때는 아직 출판이 안 된 상태였던 것으로 안다. 다른 여타의 출판사에선 가제본을 보내준 경우 나중에 정식 출판본을 보내줬던 것으로 아는데 창비는 그러지 않았다. 

사실 이 책은 창비 주체의 무슨 문학상을 받아 호기심에 가제본으로나마 읽긴 했지만 책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출판사의 성의 없음에 읽고 나서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생각해 보라. 세상에 읽어야 할 책도 많고, 읽고 싶은 책도 많다. 아무리 호기심이라고는 하지만 도대체 무엇이 아쉬워 가제본 형태의 책을 읽는단 말인가? 

서평단이 무슨 꽁자 책이나 좋아하고 시간이 남아 돌아서 하는 것도 아니다. 없는 시간 쪼개 읽고 서평을 올린다. 어찌보면 서평단도 고객인데 이런 가제본이나 읽자고 서평단을 하겠는가? 너무 성의없어 보인다.    

물론 선택의 문제고 나도 처음엔 가제본으로 읽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가제본 형태의 책은 가급적 읽지 않으려고 한다. 나중에 출판본을 보내주지 않는 이상.  

이왕 싫은 소리하는 김에 더 해야겠다. 


지금까지 서평단으로 보내준 책들 중 일부를 찍은 것이다. 

초기엔 저런 책도장이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저렇게 찍어서 보내준다.  

보내주는 쪽이야 어떨지 모르겠지만 받는 서평단의 입장에선 그다지 썩 유쾌하지는 않다. 너무 서평단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는 것 같다.   

서평단이 무슨 책을 꽁자로 못 받아 걸신든 족속도 아니고 이걸 꼭 찍어서 보내줘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 무척 신경이 씌였다. 알라딘은 내가 만약 서평단이라면 저런 책을 받고 싶은가 한번쯤 생각해 봐 줬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아도 책 뒷면에 비매품 서평단 책이란 바코드가 있는데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 것인가?  

만약 꼭 저렇게 할 필요가 있다면 조그맣게 하던가 또는 예쁘게 할 수는 없는가? 

알라딘은 서평단으로 하여금 명예롭게 해 줬으면 좋겠다.  

물론 안 그래도 서평단 들겠다는 알라디너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다.  

앞으로 3기, 4기 계속 이어질텐데 그들이 서평단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가질 수 있도록 해줘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서평단이 된 것을 정말 명예롭게 생각하고 새롭게 서평단이 된 사람들을 마음으로나마 축하해 주고 격려해 주는 좀 그런 훈훈한 일들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물론 나 한 번 이렇게 서평단 되고 끝내면 그만이다. 이런 덥기 시작하는 날 이런 말을 구구하게 늘어 놓는다는 게 지금까지 성실하게 책을 보내준 알라딘에게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알라딘은 이미 나의 오랜 단골 서점이 되었다. 난 알라딘이 앞으로도 계속 좋은 서점으로 남아 줬으면 한다. 그래서 그 애정에 한 말씀 올린 것으로 여기고 앞으로 알라딘 서평단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다. 

참으로 미안한 것은 보내준 책에 비하면 몇 편 안되는 서평을 올렸다. 이런 사람이 과연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것인지 나 자신 반성중이다. 보내 준 책중 나중에라도 완독을 하게되면 서평을 올리겠다. 

그동안 좋은 책을 보내준 알라딘에 다시한번 심심한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덧붙여, 설문은 이 글을 대신한다. 설문 내용이 너무 성의가 없어 뵈 그다지 설문에 응할 필요를 못 느끼겠다. 양해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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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참았던 숨을 푸후, 넘치게 몰아쉬었다. 아이고 노곤해. 클라이브 파커의 <피의 책>은 몇 번을 되풀이해 읽어도 그 정체가 온전히 드러나지 않는 책이다. 처음 읽을 때는 흥미로 두 번째부터는 관성으로 읽힌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살덩이가 너덜하게 묻어나는 문장들이 파도처럼 덮쳐온다는 기분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이후로 피바다 쓰나미에 먹히느냐 먹히지 않느냐 문장과 나 사이 신경전이다. 먹히면 죽는다. 먹히면 죽어. 그럼에도 책을 덮을 수 없는 건 흡사 마술인가. 나는 변태인가. 살과 뼈가 분리되는 아주 지독한 묘사와 수사인데 그게 또 되게 달콤하고 각별하다. 어쨌단 요번 판본은 표지가 아주 엉망이야. 오른발로 슬쩍 밀어 저쪽에 밀쳐두었다. (181p) 

  




‘영국 판타지 문학상’과 ‘세계 판타지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집. 총 여섯 편의 단편은 공포와 유머, 사랑과 죽음을 기발한 상상력과 사실적인 묘사로 절묘하게 버무린다. 작가는 전통적인 주제에서 벗어난 변주된 공포를 선사하고 있다. 책은 2008년 영화화가 결정된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 피의 책, 피그 블러드 블루스, 드레드와 국내 독자들이 접할 기회가 적었던 작품 위주로 선별했다.

‘피의 책’은 한 편의 완결된 단편이자 작품집 전체의 서문에 해당한다. 영매를 사칭한 남자로 인해 죽은 자들이 분노하고 응징에 나서는 이야기다. 죽은 자들은 못다 한 이야기를 남자의 육체에 글로 새기는데 이 작품집에 수록된 단편들이 바로 그 이야기들이다.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은 뉴욕이라는 도시에 염증을 느끼던 카우프만이 주인공이다.

연이어 발생하는 지하철 살인사건에 카우프만은 피상적인 관심만 갖는다. 사건의 주인공 마호가니는 스스로를 선택받은 인간이라 여기며 매일 밤 벌이는 살인에 신성한 의무감마저 느낀다. 그리고 이 운명의 두 인물이 어느 날 한밤의 식육 열차 속에서 만난다. 숨 막히도록 잔혹한 살인 현장을 목격하고 이성이 마비된 카우프만은 도살자의 눈을 피해 도망자 신세를 탈피해야 한다.

‘피그 블러드 블루스’는 원시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로 새로운 공포를 선보인다. 퀴퀴한 땀 냄새와 음침한 공기가 진동하는 청소년 갱생원에 파견되어 온 레드먼. 경찰 출신답게 냉정하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이곳 아이들을 바라보는데, 그런 그의 시선에 어느 날 레이시라는 아이가 색다른 느낌으로 들어온다. 틈만 나면 알 수 없는 소리만 늘어놓는 레이시는 지금까지 쌓아온 레드먼의 관념을 농락하는데... 



클라이브 바커 (Clive Barker) - 1952년 영국 리버풀에서 태어나, 리버풀대학 철학과를 졸업했다. 1984년 출간한 <피의 책>으로 영국판타지문학상과 세계판타지문학상을 받았다. <헬레이저>와 <캔디맨> 등 열 편이 넘는 영화작업에 참여했고, 연극연출가와 화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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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9-03-24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의 책, 그야말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느낌의 작품이지요.

stella.K 2009-03-24 14:3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오싹할 것 같은데 그 묘사가 어떨지 궁금해지기도 한다는...^^

진달래 2009-03-24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리미널 마인드>에 필 꽂힌 1인으로서 관심 갑니다. ㅋㅋ

stella.K 2009-03-25 11:21   좋아요 0 | URL
진달래님이 호러에 관심있으신 줄은 몰랐어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