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가끔, 당시엔 깨닫지 못했던 일들을 나중에 한참 후에야 깨닫는 때가 있다. 3년 전, 갑자기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맘도 공부를 손에서 놓은지가 10년을 훨씬 넘은터라 우연한 개기에 옛 선생님을 TV에서 보고, 그 선생님 계신 학원을 등록하고, 10개월간 열심히 다녔다. 그것도 웬 뜬금없는 영화 시나리오. 그 길을 가야겠다고 해서 간 것은 아니었다. 그냥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이제 정말 적지 않은 나이이고 보면, 더 나이들면 못할 것만 같아서(나는 엊그제 한 작가의 독자와의 만남을 다녀왔는데, 내가 이런데를 앞으로 얼마를 더 다닐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  그즈음 나에게도 신조가 생겼는데, 뭐든지 할 때는 앞뒤 제보지 말고 하자. 눈 감고, 덮어놓고 하자.가 그것이었다. (서글프긴 하지만) 그래야 뭐든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본래 내가 그렇게 성실한 사람이 못되는데, 뭐든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거나,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하면 성실해지는 것 같다. 나는 그 10개월 간은 결석 한 번, 지각 한 번 하지 않고 다녔으니 말이다. 

처음 시작하면서, 또 어떤 만남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나름 기대반, 설레임반이었다. 어딘가를 잘 돌아 다니는 성미도 못되는데, 그 시기만큼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원없이 돌아다니고, 사람들과 얘기도 많이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특히 나는 거기서 한 남자 아이(이런 말 쓰기가 어색하긴 하다. 그도 알고보면 객관적으로 적지않은 나인데. 암튼 나 보다는 어리니까)를 알게 되었다. 그는 당시 영화쪽에 몸 담고 있었지만, 극단쪽에도 인맥을 가지고 있어 그를 통해 싸게 연극을 보러 다니기도 했다.  

어느 날, 우리는 연극을 보고 근처 가까운 곳에서 저녁을 함께 하게 되었다. 밥을 먹다 어떤 무슨 말끝에 사귀는 사람에 대해서 얘기가 나왔다. 공교롭게도 모인 모두가 아직은 서로 조심하느라고 그랬는지, 현재 사귀는 애인이 없거나, 김빠진 맥주 같이 시덥지않은 연애를 하고 있거나 뭐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그는 다소 결의에 찬 어조로, 자신은 지금은 헤어진지가 얼마되지 않아 누군가를 다시 새롭게 사귈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말을 듣는 순간 나는 좀 마음이 짠했지만 함부로 동정하고 나오는 것도 그렇고 해서 농담 삼아 "니가 찼냐? 아니면 채였냐?" 고 대범하게 물었(던 것 같)다. 물론 조심스럽지 않은 건 아닌데,  오빠뻘이었으면 어땠을지 몰라도 동생뻘이고, 왕누나 같은 느낌으로 묻는 건데 뭐 어떠랴 싶었다. 그럴 땐 오히려 시크하게 물어 봐 주는 것이 나을 때가 있다.  

다행히도 내 질문이 좀 우스웠는지, 사람들은 깔깔대고 웃었다. 그러자 그애도 그 웃음 뒤에, "아이, 제가 어떻게 차요? 그냥 채여 줬죠."했다. 마치 그것이 정석인 양. 나는 순간 머리가 복잡했다. 그런 건가? 연애하다 헤어지면 남자는 이미 마음은 떠났지만 여자가 자기를 차 줄 때까지 기다려 주는 건가? 남자들도 많이 차지 않나? 그것도 남자의 에티켓이라면 에티켓이라는 건가? 그럼 뭐야, 남자한테 차인 여자들은? 하지만 난 더 이상 물어보지 못했다. 마침 내 맞은 편에 앉은 여자 아이가 나름 그 애와 비슷한 처지라 한숨을 쉬고 있길래 나는 "너도 차일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거냐?" 해서 또 한바탕 웃었다. 그녀 역시 웃음을 참지 못하며 나에게, "어머, 언니 저는 여자예요. 제가 왜 기다려요?" "아, 너 여자였지. 기다리는 것 같아서..." 그렇게 우린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남녀관계의 복잡성을 어떻게 다 말로 표현하랴? 하지만 여자를 찰 수가 없어서 차일 때까지 기다려줬다는 그 아이는 그후 꽤 오랫동안 나에게서 잊혀지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나는 이은조 작가의 <나를 생각해>란 작품을 읽으면서 그를 또 한 번 떠올리게 됐다.  

이 작품은, 현대 여성의 내면과 현대성을 작가 특유의 꼼꼼한 문체에 녹여낸 꽤 잘 쓴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책에 보면, 주인공 유안과 승원이 오랜 연인관계로 나온다. 연애도 오래했으니 승원은 유안과의 결혼을 생각하지만, 유안은  결혼할 생각이 없다. 적어도 지금으로선. 그 둘의팽팽한 밀고 당김이 어느 만치 유지가 되다가, 어느 순간 관계를 놔버리는 쪽은 유안이 아니라 승원이다. 말하자면 승원이 그만 만나자고 이별을 선언하는 것이다. 팽팽히 유지됐다 무너지는 유안의 내면이 행간에서 읽혀진다.  그것은 또한 그 때 그 남자 아이가 나에게 은연중 각인시켜 놓은 뭔가의 사고체계를 무너 뜨리는 것이기도 했다.  

'뭐야? 남자도 이별을 선언하잖아? 그런데 걔는 왜 그렇게 말했지...?' 그리고 한참 뒤에 따라 온 생각은, '그렇구나. 누군지 모르지만 그 얘는 아직도 상대를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을 그렇게 얘기했던 거구나.'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가끔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을 나중에 어느 책을 읽다가 우연히 깨닫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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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4 18: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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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4 18: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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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4 19: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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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5 1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나. 사투리 쓰는 테스 

이책을 읽은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 책은 독특하게도 번역하는 과정에서 테스를 비롯한 가족들, 동향인들이 하는 대사가 사투리로 표현되어 있다. 사실 이 비슷한 시도가 과거에 없지 않았던 것 같다. 예를들면, 아주 오래 전 나는 <크래머 대 크래머>를 소설로 읽은 적이 있는데, 주인공 집에서 일을 해 주는 가정부가 사투리를 썼던 것으로 안다. 그것을 옮기는 과정에서 한국적 사투리로 번안된 것을 기억한다. 그때서야 나는 퍼뜩, '아, 미국도 사투리가 있겠지' 했다.    

그런 것에 비하면 이 작품은 거의 전면적이다 싶다.  번역도 제2의 창작이라고 하는데 , 이 작품이야 말로 번역의 토착화를 이루어낸 작품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이것에 대해 비평이 엇갈리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사람은 좋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어색하다고도 한다. 솔직히 나는 후자쪽에 가까운데, 이 작품은 과거 영화로 나온 것이기도 하다. 애석하게도 난 영화는 보지 못했는데, 나스타샤 킨스킨이 분한 테스를 대사를 칠 때 충청도 사투리를 쓴다는 게 영 상상이 가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또 생각해 보면, 아직 원작을 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원작자인 토마스 하디도 테스를 시골처녀로 묘사하기 위해 그녀의 대사를 영국식 사투리로 썼을 것도 같다.  모르긴 해도 번역자도 토머스 하디의 그런 의도를 최대한 적극적으로 살리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것을 어색하다고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둘. 표준어, 그것도 알고 보면 패권주의의 결과물은 아닐지? 

그렇게 생각하자, 나는 표준어에 대한 의혹이 생겼다. 우린 보통 서울말을 표준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정말 확실할까?  

약간 황당한 영화 같기는 하지만 <황산벌>을 보면 옛날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백제와 신라가 싸우는데 충청도와 경상도 방언이 오고 가는데 서로 말을 못 알아 먹겠다고 난리를 치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 그 시대에 그랬을지 아닐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겠지만, 영화적 장치로는 충분히 이용할만한 가치가 있는 사안이긴 하다. 하지만 실제로 서로의 말을 알아 듣지 못한다면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조그만 나라에서 삼등분으로 갈라져 잘 들으면 알아 들을 수 있는 말을 서로 못 알아 듣겠다고 하는 건 그냥 자존심 대결 같은 거 아닌가?  

어쨌든, 신라의 입장에선 자기네들이 표준어를 사용한다고 우길 것이고, 백제는 백제대로 자기네 말이 표준어라고 생각했을 법도 하다. 하지만 오늘 날 한국의 표준어는 서울말을 잘 구사하는 것에 있다. 예전에 수도를 옮긴다 어쩐다는 말이 있었는데 그게 대전이 됐다면 충청도 사투리가 득세하는 거 아닌가? 아무튼 그것도 패권주의의 결과물일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어쩌다 서울말이 표준어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셋. 애정관에 관하여     

이 책을 읽다보면, 확실히 18세기의 사랑과 오늘 날 21세기의 사랑은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새삼해 보게 된다. 특히 클레어가 테스를 알게되고 그저 눈만 마주치고, 잠시 포옹만 했을 뿐인데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결혼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지 않은가? 바로 그것이 오늘 날 21세기에 다소 진부하게도 느껴질 법도 하다. 솔직히 20세기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이건 그다지 어색한 것이 아니었다. 당연한 것처럼 보여지기도 했다. 물론 그것에 다소의 재고의 여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오늘 날 같이 인스턴트 사랑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누가 그만한 제스추어에 결혼까지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다. 서로 알 거 다 알고, 따질 것 다 따져서 최중적으로 결혼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생각하며, 결혼은 영악해졌다. 사실 너무 재고 따지고 하는 것도 결혼에 악영향일 수도 있다. 연애를 오래하고 결혼을 하는 사람들 보면 기특도 하지만, 저들은 뭐 때문에 이제 결혼하는 걸까? 약간의 권태로운 측은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어쨌든 이렇게 사랑 하나만을 가지고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때는 지나간 듯도 하다. 그래서일까? 클레어의 결혼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나는 오히려 진부하다기 보단 진지해서 좋아 보인다. 물론 이룰 수 없는 사랑이 되지만. 

넷. 책으로 하여금 잠들지 못하게 하라!

초두에 사투리 쓰는 테스 대해서 언급을 했지만, 나는 문득 이것을 가지고 낭독회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더 정확히는 '낭독 극장'을 열어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테스와 같은 고향 사람들이 대사하는 부분을 눈으로가 아닌 소리로 들어보고 싶었다. 그랬을 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여기엔 다소 연극 작업과 비슷한데, 배역을 각자 정하고 그 배역에 준하는 목소리 연기를 실제로 해 보는 것이다. 마치 성우가 목소리 연기를 하듯, 라디오 극장처럼 말이다. BGM을 비롯한 효과란 효과는 다 바탕에 깔고. 그럼 대박일 텐데. ㅋ.  

우리는 독서는 혼자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가장 최선의 방법이며, 동시에 가장 소극적인 방법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사실 나는 이 '낭독 극장'을 생각하면서 우린 왜 책을 이렇게 소극적으로 향유해 왔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책이 해 볼 수 있는 일, 책 가지고 해 볼 수 있는 다양한 실험을 해 보면 안 되는 걸까? 기껏 우리가 하는 일이란 작가와의 만남이나, 도서전시회 또는 서점에서 책을 둘러보는 게 전부다. 그것을 향유하는 독자들이 책을 가지고 해 볼 수 있는 실험실이 없다는 것었다는 것이다.  

언젠가 아는 이의 블로그에 갔다, 모처의 북카페가 문을 닫았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적이 있다. 재정난이 결국 이유가 됐겠지만, 그건 한편 이해가 가면서도 그렇게 밖엔 할 수 없었을까? 의문스럽기도 했다. 왜 프로그램을 개발하지 않는 걸까? 뭔가의 프로그램을 개발했더라면 안타깝게 문을 닫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사실 책을 좋아한다는 사람들 거의 대부분은 움직이기 싫어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책은 머리에 집어넣은 것이지, 즐기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즉 머리에 집어 넣은 일이 즐기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다못해 그 카페 주인이 비록 낭낭한 목소리는 아니었어도 낭독회라도 매일했더라면  문을 닫는 사태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옛날의 카페는 DJ가 있었다. 그래서 끊임없이 찾아오는 손님과 소통을 하려고 했다. 그와 비슷한 형식이다. 다시 말하면 복고의 부활?ㅋ   

또 예를들면, 출판된지 좀 되긴 했는데, 조경란의 <혀>는 문학에 요리를 접목시킨 아주 훌륭한 소설이다. 나는 그 소설이 차려주는 갖가지 요리의 성찬에 거짓말 조금 보태서 혀를 내둘렀다. 지금도 궁금한 건, 작품에 나오는 송로버섯이 들어간 그 요리가 어떤 요린지 대단히 궁금하다. 그것이 나왔을 당시 바로 이런 궁금증을 채워 줄 뭔가를 어디선가 했다면 쫓아 갔을지 모를 일이다. 또 그것은 책 매출에 영향을 미쳤겠지. 

<하정우, 느낌있다>도 보면, 그의 미술을 직접 감상하고, 그의 영화도 어느 카페에서 감상하고, 그가 즐겨 듣는다는 음악도 실제로 같이 공유는 뭔가의 프로그램을 개발했더라면 좀 더 좋지 않았을까?  그거 하는데 돈이 수억 드나? 난 잘 모르겠다.  

셰익스피어는 지금도 잘 들 줄 모른다고 한다. 이 지구상 어디에서가는 끊임없이 그의 연극이 쉼없이 올려진다고 한다. 좋으니까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사실 그렇더라도 셰익스피어는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책은 누구든 옆에 끼고 다닐만큼 좋아한다. 셰익스피어가 오늘날에도 그 인기 때문에 잠들 수 없는 것처럼, 책도 잠들 수 없게 해야한다. 어디 선가는 끊임없이 책 때문에 몸살이나고, 책을 가지고 끊임없이 실험을 해 볼 수 있는 장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책 매니아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책을 생산하는 자나 수요자나 말이다. 우린 어쩌면 진정으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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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 속의 영화]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우선 결론적으로 말하면, 난 이 책을 끝까지 읽지 못했다. 아니, 읽다가 도저히 못 읽겠어서 손들고 말았다. 사실 평가단 주최측에선 그달의 책이 전성되기 전, 평가단에게 주목 받을만한 책목록을 받는다. 솔직히 나는 이 책을 목록에 넣지 않았을 뿐 아니라, 끝까지 선정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물론 어떤 사람은 자신이 추천한 책이 선정되서 좋았을런지 모르겠지만, 이 책은 평가단이 읽기엔 다소 적절치 않은 요소들을 가지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마시길. 이책이 선정되길 바라셨던 분들을 한꺼번에 싸잡아 비판하자는 것은 아니다.   

책은 좋은 것이다. 모든 사람이 좋다고 해서 다 좋은 것이 아니듯, 모든 사람이 나쁘다고 해서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어떤 책이든 그책을 읽고 좋아할 사람이 있다면 그책은 그것으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가 언제 읽느냐에 따라 책의 가치는 또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대하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말하자면 그 이야기로 이 책의 리뷰를 대신할까 한다.  

우선, 전에 어느 님이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한다. 서평단과 평가단은 구분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그때 나는 그분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이름은 평가단이라면서, 선정된 도서에 대해선 리뷰를 해 달라고 한다. 나는 이게 좀 엇갈려 보인다는 생각이 든다. 평가단이면 끝까지 그책을 평가해야지, 리뷰, 즉 서평을 해야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물론 평가에 서평을 포함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 느낌이나 생각을 자유롭게 쓰게 되지 않는가? 그런데 무엇이 평가고, 무엇이 서평인가에 대한 뜻은 짚고 넘어갈 필요는 있어 보인다. 그전에 평가단이라면 평가 기준에 있어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있어 왔었던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하도 오랜만에 하는 것이라. 원래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게 그렇잖은가? 자신에게 중요한 일은 기억하려고 애쓰지만, 중요치 않은 일은 금세 잊어 먹는다. 그것이 아무리 근사하고, 멋져 보이더라도.

폐일언하고, 좀 주제 넘어 보일지 몰라도, 내가 생각하는 평가단이 일반 독자와 다른 건, 그 책을 남보다 빨리 읽고 이책이 다른 사람에게도 읽힐만한가 아닌가를 판단해주는, 말하지면 얼리어댑터의 기능도 가지고 있다고 보아진다. 아니 사실은 이 기능이 그 무엇보다 앞서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지 않아도 개인 서평을 쓸 때도 그 책을 강추할 것이냐 아니냐를 끝에 화룡점정처럼 남기기도 하는데, 평가단이야 더 말해 무엇할 것인가? 그랬을 때 내가 본 <사유 속의 영화>를 강추할 것이냐 말 것이냐엔 재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난 당연히 강추하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생각보다 많다.  

무엇보다 책이 너무 어렵다. 이 책이 내가 필요해서 봐야되는 책이라고 한다면, 게다가 마침 영화를 이론적으로 공부하는 후배나 친구가 있다면 권할만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일반 독자에게 권한다면 돌아 오는 반응이 어떨지 설명할 필요가 없다.  

더구나 이 책은 프랑스(그 나라가 영화가 발달된 나라이긴 하지) 저명 철학자나 미학자들이 쓴 논문들이다. 근데 간과할 수 없는 건, 그들이 쓰긴 썼지만 그게 또 유감스럽게도 지금으로부터 2,30년전에 발표한 글들이다. 만일 이 책이 비슷한 시기에 번역 출간됐더라면 혹 읽혔을런지 모르겠다. 연대도 비슷하지만, 무엇보다 그땐 학문이 상아탑 안에 갇혀 그 권위를 뽐냈을 시절이다. 그 시절 대학이나 대학원 다녔을 때 어려운 전공책이나 칸트 같은 어려운 철학책 끼고 다녔으면 꽤 폼이 날만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책으로는 먹히지 않는다. 지금은 얼마나 어려운 학문을 얼마나 쉬운 언어로 풀어낼 수 있고, 그런 책을 잘 찾아내는 것도 능력이다 싶을만한 시대에 살고 있다.  

물론 독자가 어느 세 그런 것에 길들여져서 너무 말랑말랑하고, 달달한 것만을 좋아하는 것도 문제는 있어 보인다. 그러나 어쨌든 내가 평가단인 이상 이 책을 일반 독자에게 읽으라고 할 수는 없다.  

사실 난 지난 번 <101명의 화가>에 대해 거의 혹평에 가까운 평가를 했었다. 그런데 내가 초두에 밝혔지만, 누가 어떤 책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시각을 달라진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위의 책이 책의 권위로 보나, 판형으로 보다 더 값 나가는 책이라는 것엔 이의가 없다. 하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평가단의 이름으로 했을 때는 이 책이 할 말은 더 많아 보인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그리고 이즈음 난 평가단 주최측에 한 가지 의혹이 생기는데, 결국 많은 사람이 주목할만한 책을 띄운다고 하지만, 결국 칼자루는 주최측이 가지고 있다. 주최측이 최종적으로 선정된 두 권의 책에 대해서 평가단은 평가를 할 수가 있다. 좋으나, 싫으나. 그런데 이즈음 주최측은 무슨 근거를 가지고 최종 선정된 책을 보내주는지 모르겠다. 내 짐작이 틀리지 않다면, 주최측도 평가단들이 올린 주목할만한 신간 의견들을 취합해 그중 협찬을 해 줄 출판사를 섭외하고, 섭외된 해당 출판사의 책을 최종 선정에 보내주는 것은 아닐까? 물론 출판사 섭외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협찬해 주겠다는 출판사의 책을 최종 선정도서로 하기 보단,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읽을만한 책이 무엇인가를 좀 더 생각한 후에 선정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선정은 아닐까? 솔직히 이번의 책은 몇몇 평가단이 선정됐으면 하는 바람만 가졌을 뿐, 꼭 되야한다는 당위성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선정에서 제외해도 되는 책은 아니었냐 하는 것이다. 우리가 영화 전문가나 전공자는 아니지 않는가?  이런 책 평가하기는 되게 어렵다. 이미 말했지만 책 자체가 어려워서이기도 하지만, 잘못하면 읽지 말아야할 책으로 취급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겠다. 더 말했다가 나의 의도가 왜곡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다음엔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할만한 좋은 책들이 배달되어 오기를 바라며, 이번 달 평가를 마무리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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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1-06-15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하게 과거처럼 열심히 노력해서 협찬받아서 책을 주는 것이 더 낫지 않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그래도 좋은 책들을 꽤 많이 건졌거든요.^^ 읽고 싶지 않은 책이 걸릴 때 정말 의무감으로 읽고 서평을 쓰는 것은 못할 짓입니다.

알라딘신간평가단 2011-06-15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쿠. 깜짝이야. 화제의 서재글을 보다가 깜짝 놀라 댓글을 드립니다.

먼저 스텔라님께,

일단 주최측에 대한 의혹부터..... --> 일단 한 번도 '협찬해줄 만한 출판사'로 먼저 연락을 한 적은 없고요. 신간 평가단 진행을 잘 안한다는 출판사도, 한 번도 연락한 적이 없었던 출판사도, 일단 순위대로 다 연락해서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책 순서로 컨택을 합니다. 이건 약속이었으니까요. 거절을 당할 것 같아도, 일단 거절을 거칩니다. ㅎㅎ

다만 책을 골라야 하는 경우는 동점이 발생했거나, 한 출판사 책이 한 분야에 두 권 들어왔을 때, 입니다. 혹은 모든 책이 5표 이하를 받아서 중구난방일 때, 제 의견과 담당 분야 MD의 도움을 받아 선정을 합니다. 위와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땐 많은 사람이 읽고 공감할 만한 책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도 하긴 하지만, 그건 모든 책들이 5표 이하로 좀 고르게 선정됐을 경우에 주로 하고요, 이렇게 9명의 신간평가단 분들의 선택에 제 식견이 개입한다는 건 초기 취지에 어긋난다는 생각이 들어요. 현재까지의 룰에서는요. 다만, 이를 위해 룰 변경을 고민해볼 수는 있겠지만, 9기 신간평가단 분들은 현재의 룰에 동의하고 들어오신 분들이기 때문에 진행 중에 제가 마음대로 변경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나는 가수다, 도 막 생각나네요...ㅎ) 게다가 제 시각도 완벽하지 않고요. 사유속의 영화와 같은 경우는 20명 중 9명이 추천해주셨고, 따라서 1순위로 컨택되었던 도서입니다. 9명이 추천한 책을 '어려워 보인다'는 이유로 제가 만류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일단 신간평가단 담당자, 라는 필터는 신간평가단 분들의 추천을 취합해 출판사와 연결해 진행을 중간에서 조율하는 역할 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신간평가단 분들이, 자신이 평가할 수 있는 책인지를 스스로 판단해 주시길, 그리고 출판사에서 이 책이 신간평가단 분들이 평가하시기에 적절한 책인지 결정해 주시길 바라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 중간자의 입장에서 16권의 책을 모두 읽어보지는 못해서, 판단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설령 읽는다 한들, 저 역시 '취향'을 가진 한 사람이기 때문에 (한사람님 아니고요, ㅎ) 제 기준으로 추천드릴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예술 분야 신간평가단을 만들 때 바라기는, 에세이 분야와는 좀 차별화된, 전문적인 시각과 식견을 가지고 해당 도서에 대해 평을 해주실 수 있는 분들이 모여 대중서와 더불어 조금 어려운 전문서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이었는데, 예술이라는 분야가 아무래도 방대하다보니, 모든 분야에 모든 분들이 전문적일 수가 없다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스텔라님 말씀을 읽으니 다음 번에는 해당 분야를 유지하는 방안에 대해서 좀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예술 분야라고 해놓고, 가벼운 에세이류의 대중 예술서만 읽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암튼 말씀 고맙습니다. 말씀 주신 부분에 대해서는 더 고민해보겠습니다.

한사람 님께 //

1번은, 제가 답변드릴 부분이 아닌 것 같고요.

2번은 일단 최선, 이라기보다는 한단계 진화, 정도로만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여러 명에게 동일한 책을 읽게 하는 시스템이다 보니 출판사에서 저희 쪽에 먼저 컨택을 하고 그 책을 신간 평가단 분들에게 주 1회 1~2권씩 발송하던 시스템을 보완한 체계입니다. 너무 많은 책을 드리다 보니 평가하시는 분들도 지치시고 하다보니 그 시스템을 보완한 것이 현재의 방법입니다. 책의 수를 줄이고, 원하는 책을 보내주자, 는 취지로 기획된 룰입니다. 독자분들을 책 마케팅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책을 고르고, 직접 평가하는 분들로 정의하고 싶다, 라는 욕심도 좀 작용했고요. 완벽한 시스템 아니고요, 실은 출판사에 제안할 때도 좀 죄송한 점이 있는 시스템입니다. (이를테면 비싼 책을 10분만 진행하고 싶은 분들도 계시고, 월초 출간 도서는, 신간평가단 진행시에는 이미 마케팅을 접는 사례도 발생하고요... 그럼에도, 신간평가단 분들이 워낙 책을 보는 안목이 탁월하시고, 리뷰를 잘 써주셔서 다들 진행에 호의적이시긴 합니다만...)

분야별로 리스트를 제시하는 방법은 리스트의 기준이라는 게 참 모호해서, 다소 어려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선정된 후 근거를 제시하는 방법은 어떤 방식을 말씀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이해력이 부족해 죄송합니다 ㅜㅜ

3번은 일단 보시면 아시겠지만, 신간평가단 분들이 글을 쓰는 스타일이 워낙 제각각이어서, 각자의 개성을 굳이 제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유아/실용의 경우는 또 포토리뷰도 많이 올라오고 있고요.. 저는 오히려 다양한 스타일의 글을 보는 것이 좋은데요. 정형화가 필요하다고 느끼셨다면 어떤 이유에서인지 궁금합니다~ (진심으로 여쭙는 거에요!)

그리고, 인지자본주의는 저도 걱정을 많이 했는데, 그 책도 무려 7분이나 신청을... 하지만 인문 분야 신간평가단 분들을 한 분 한 분 뽑은 담당자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써주실 수 있으리라 생각을 하고, 대신 기한을 좀 늘렸는데요... 아무래도 좀 어렵지요... ㅜㅜ 하지만 조명되는 것이 의미가 있는 분야라서, 신간평가단 분들에 대한 무한 신뢰로 보내드렸....ㅜㅜ


모든 책의 깊이와 난이도가 다르고, 또 그 책을 받아들이는 분들의 전문분야, 지식, 취향, 선호도가 모두 다르니, 운영해 나가는 일이 쉽지 않네요. (아, 두 분을 폄하하는 발언이 아닌 것 아시죠? 오해는 부디 마시고요. 저는 두 분의 리뷰를 오래전부터 봐 왔는걸요!) 소설의 경우도 국내소설을 좋아하는 분들이 계시고, 외국 소설을 좋아하는 분들이 계시고, 실용서도 요리책이 좋은 분이 계시고, 여행서가 좋은 분이 계시고...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진행하다보니, 제 역할은 모든 사람에게 완벽한 시스템을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곳에 선을 긋는 것일 수밖에 없네요. 하지만 그 선에 대해 계속 다시 고민해보고, 다시 그어보고, 하는 시도는 계속 해볼게요!

두 분 모두 말씀 고맙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stella.K 2011-06-15 19:18   좋아요 0 | URL
알라딘신간평가단도 고민이 많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런 글을 올리는 것도
앞으로 주최측이 좀 더 좋은 책을 선정하시는데 도움이 되시라고,
드리는 말씀이니 너무 섭섭해 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원래 일이라는 게, 이쪽을 맞혀주면 저쪽이 울고, 저쪽을 맞히면 이쪽이 울고
중간을 맞추기가 어려운 법이죠.
간과할 수 없는 건, 우리 알라디너들이 책을 보는 수준이 꽤 높으시네요.
하지만 모르긴 해도, <사유 속의 영화>을 선택하셨던 분들 중 적지 않은 분들이 후회하지는 않으셨을지요. 거기에 그것을 선택하지 않은 평가단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그책을 읽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나마 선정된 두 권의 책중 한 권은 좀 쉽고, 한 권은 어렵고 또는 서로 성격이 다른 책들이 선정됐다면 아쉬움이 덜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예를들어, 잔뜩 기대하고 받았던 서평단의 첫 책은 둘 다 만화였습니다. 이미 밝히기도 했지만 저는 만화를 별로 즐기지 않습니다. 물론 신간 평가를 저의 취향에 맞출 필요는 없지요. 하지만 두 권 다 만화를 할 필요는 없다고 보여 집니다. 한권 정도는 다른 것으로 해서 적어도 주최측이 꽤 공정하려고 애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셔야 했던 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보내 주신 책도 어렵기는 그책과 함께 선정된 <지혜로지은 한국 건축>인가 하는 책도 못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에세이류 같은 달달한 책만을 선정할 수 없지 않느냐고 했는데, 그런 책 받아나 봤으면 좋겠습니다.

stella.K 2011-06-15 18:56   좋아요 0 | URL
한사람님, 뭐 어떻습니까?
우리 이참에 그냥 끝장토론 냅시다.ㅋㅋ

알라딘신간평가단 2011-06-15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메모장에 쓸 땐 몰랐는데, 달고나니 너무 기네요~ ㅜㅜ

stella.K 2011-06-15 18:48   좋아요 0 | URL
괜찮습니다. 저는 더 기니.ㅋ 어쨌든 이어쓰자면, 제가 저쯤에서 평가를 마친 것도 한 사람님의 말씀처럼 결국 내가 원하는 책이 선정 안됐다고 투정으로 보여질까봐 더 이상의 언급을 회피했습니다. 저 역시 어려운 책이 이 정도의 반응을 보일 생각은 없습니다. 어려움도 감수하고 읽어야할 책은 읽습니다.
사실, <사유속의 영화>는 쓰면서 번역하신 분에게 결례를 범하는 것은 아닌지 심히 저어 되더군요. 그게 아니더라도 출판사측이야 좋은 의도에서 알라딘에 보내줬겠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보니 그게 아니다 싶을 때 어떤 느낌이겠습니까? 책을 좋아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어려운 책을 다 소화를 잘 하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그래서도 더더욱 주최측의 필터링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냐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제라도 고민을 해 봐주신다니 그것만으로도 저는 기쁩니다.
사실 이렇게 이 분야가 어려울 줄 알았으면, 저도 에세이나 소설쪽으로 선택을 할 걸 그랬다 싶기도 해요. 사실 저 자신 저의 수준을 너무 과대평가한 건 아닐까? 이즈음 후회하고 있었으니까요.
아무튼 평가단의 선전을 기대해 봅니다.
수고하십시오.^^

2011-06-16 0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16 1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 본격적으로 책을 읽은 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다.
그때부터 책을 모으기 시작했고,
책이 빽빽히 쌓여있거나, 꽂혀 있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런 걸 중학교 들어가면서, 그동안 모아온 계림문고 어린이 책을 과감하게 버리고 ,
어른들이 봄직한 묵직한 세로 줄 책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 무렵, 어찌어찌 해서 장식장을 내 방에 들여놓게 됐는데,
이게 거실에 있었으면 폼잡느라고 갖가지 술병에, 장식품들이 들어갔을 것이다.
더구나 옛날 장식장들은 요즘 나오는 그런 것이 아니어서,
제법 크기도 크거니와 수납공간이 넓어 책장을 겸하기도 했다.

그런 책장에 나는 참 부지런히도 책을 사서 꽂았다.
돈이 많았더라면 전집류로 채우면 됐을 것이다.
하지만 난 돈도 없거니와, 그딴 과시용은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비록 책을 읽다 포기하는 일이 있어도, 일일이 내 손떼가 묻고, 나의 체취가 묻은(묻어봤자 얼마나 묻었겠냐만) 그런 책으로 빽빽히 세울 수 있기를 바랐다.

처음엔 이걸 언제 다 채우나 싶었는데,
곧 책을 빈 공간 하나 없이 빽빽히 채우고,
그것도 모자라 책장 위에도 책을 얹져서, 보고만 있어도 배가 그득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가끔 심심하면, 어디 내가 그동안 몇 권의 책을 모았나 세어보기도 했는데 400권 넘어가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책을 세지 않았다.
그게 벌써 꽤 오래 전 일이다. 물론 중간에 남을 주기도 했으니 많아야 그 선을 넘어갈 것 같지는 않다.

지금도 난 몇 권의 책이 있는지 잘 모른다.
이사 때 안타깝게도 그 책장을 버리고 왔을 뿐만 아니라,
이사 와서도 지금까지 풀지 못한 책 박스가 몇 개가 되고,
그 위에 책을 차곡차곡 싸놓았다.
또 그것도 부족해 안 읽은 책이 산더미다. 
아무튼 내가 생각해도 엄청나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모르는 사람은 내가 책을 여러 방면에서 굉장히 많이 읽는 줄 것이다.
하지만, 나 역시 편식이 심하며, 편견, 편애가 심하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생각해 봤다. 나는 무슨 책을 안 읽는지를.

우선 난, 추리 또는 미스터리류를 읽지 않는다.
그걸 읽으면 좀 머리가 빠릿빠릿 해 질 텐데, 이야기의 얼개를 파악하는데 꽤 시간이 걸리므로
그 머리 쓰는 게 싫어 안 읽는다.

또, 작가 김훈은, 소설 같은 건 읽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자신이 읽는 책은, 법전이나, 소방 수칙, 칼 만드는 법. 뭐 이런 책을 읽는다고 했다.
내가 그런 책을 읽을 턱이 있겠는가? 

그림 많고, 글씨 드문드문 박힌 책 역시 제외된다.
그런 책 보면 괜히 책을 속아서 사는 느낌이 들어 선택하지 않게된다. 
이것에 대해서는 어제 읽은, 조너선 샤프란 포어 말에 귀 기울여 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문학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다들 완고해요. 활자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나 봐요.
비주얼이 들어간 소설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놀라워하죠."
"비주얼의 중요성이 높아지는 건 확실해요. 세상을 둘러보면 온통 멀티미디어잖아요."
출판업계의 작가들은 누구보다 미디어 빅뱅을 체감할 수 없다. 

                                                                                   -엘르 2011,6월호에서-

멀티미디어적 세상에서 굳이 책까지 그래야 하는 것인가란 다소의 의문의 여지는 남지만,
이 자체만으로도 생각해 볼 가치는 있어 보인다. 
그래도 난 책은 역시 활자의 향연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사방팔방을 돌아봐도 다 멀티미디어도, 이미지인데 책까지 그래야할 필요가 있는가?
그건 또 나의 어린 시절하고도 무관하지 않아 보이는데,
난 어렸을 때 그림책을 그다지 많이 볼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나지 못했다.
유치원 거치지 않고 바로 초등학교로 직행했던 것처럼, 
나는 한글을 깨치고 나서 바로 책을 읽기 시작한거나 다름없다. 

또한 나는, 가제본을 읽지 않는다.
그런 것으로 봐 나는 분명 활자중독자는 아닌 것도 같다.
활자중독자는 뭐든 읽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이라 가제본도 읽을 것이다.
나도 한 때는 가제본 몇 권 읽긴했다. 근데 읽다보면 넘기는 맛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의 정본은 두 페이지가 왼쪽, 오른쪽 한 면이지만,
어떤 가제본은 4 페이지가 한 면이다. 속도감이 없고, 왠지 모르게 벅차다는 느낌이 든다.
뭐 그런 건 차치하고라도, 가제본 읽으면 나중에 정본 보내주는데,
이게 또 사람은 묘하게 만든다.
남 주자니 아깝고, 갖고 있자니 별로 필요가 없다.
출판사에서 아예 안 만들면 좋겠는데...

가제본은 확실히 종이낭비란 생각이 든다.
가득이나 요즘 종이컵 안 쓰기, 산림 보호 이런 거 하고 있는데,
출판사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꽤 의식있는 사람들인 줄 착각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제본은 가제본대로 만들어 종이 낭비하면서, 
여타의 자연보호에 관한 그런 책내면 좋은 책 출판하는 건가?

또한 난 학교 때 수학이나 과학은 젬병이었던 관계로
그런 책은 아예 쳐다도 보지 않는다.
막 내 상처가 건드려지는 것 같아 읽기가 싫어진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알지못하는 전인미답의 책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다못해 나는 거의 태어나면서 개를 길러왔고, 지금도 여전히 개를 기르고 있으면서도
개에 관한 책은 읽어보지도 못했다. 

또 그뿐인가? 예전엔 책이 그렇게 많이 다양하게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출판 환경이 좋아져서 시쳇말로 개나 소나 다 책을 내겠다고 한다.
더구나 책을 팔기위한 마케팅이나 선전문구는 또 얼마나 요란한가?
그런 가운데 옥석을 가리는 일이 중요해졌다. 그런데 이것이 또 쉽지가 않다.
그 과정에서 나의 편견, 나의 취향이 섞여들어가기 마련이다.

그저 내가 오로지 관심있어 하는 건, 문학과 관련된 책들이 고작인데,
이것 또한 얼마나 편견이 많은가? 이 작가는 고리타분해서 싫고, 저 작가는 청승떨어 싫고,
그 작가는 멍청함을 들어내는 것 같아 웃기고, 등등...
요는, 아는 것이 병이랬다고,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편견은 더욱 심해져 간다는 생각이 든다.

내 방엔 아직도 나의 눈도장과 손때가 묻혀지길 바라는 책들이 그득그득 쌓여 있다.
언젠간 읽어야지 하면서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다.
알고보면 이것도 나의 편견의 산물이다. 내 취향에 맞을 것 같아 사 놓고, 내 취향에서 아직 선택되지 못한 책들.
때론 책에 대한 편견을 깨고, 지평을 넓혀 보겠다고 각종 리뷰 대회나 이벤트에 올인하는 나.
이 모습이 현재 내가 책을 읽는 자화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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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6-05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딴 과시용' ㅋㅋ
저도 책 편식이 심해서 제 남편은 소설 읽는 저보고 감히 '그런 것'만 읽지 말고 골고루 읽으라고 합니다. 문학, 소설 분야만 해도 얼마나 광범위한데...전 그것이라도 골고루 읽으면 좋겠어요.
눈도장과 손때라는 말이 오늘 따라 참 정겹게 들리네요.

stella.K 2011-06-05 19:0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소설도 얼마나 방대한데요.
책은 그렇게 편애만해서 읽어도 다 못 읽어요.ㅜ

제가 손때를 손떼로 잘못 썼죠? 헷갈려요.ㅋ

꼬마요정 2011-06-06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건 베스트셀러라서 안 읽고, 이건 내가 안 좋아하는 작가라서 안 읽고, 요건 너무 어려워서 안 읽고... 하지만 세상 사람 중에서 대부분의 분야를 섭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한 분야, 한 작가만 파도 엄청난 걸요..라고 생각하며 아직 읽지 않은 책들 보면서 한숨 짓는 저입니다.^^

stella.K 2011-06-06 12:41   좋아요 0 | URL
ㅎㅎ 저랑 똑같으시군요.
맞아요. 한 분야, 한 작가도 엄청난데,
또 다른 쪽에선 그렇게 편식하지 말라고 하죠.
책은 너무 방대해요.ㅠ

oren 2011-06-06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tella님의 글을 읽어보니 저는 어른이 되고 난 이후엔 문학을 너무 멀리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초등학교 시절 읍내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 읽을 땐 온통 '문학전집류' 밖에 안 읽었었는데, 최근 들어서는 '문학 특히 소설'과는 완전히 담 쌓고 지내는 것 같아요.

고교시절만 하더라도 한국근대문학전집이나 세계문학전집류들을 곧잘 재미있게 읽었었고, 군대 다닐 때만 하더라도 노벨문학상 수상작품들을 열심히 골라 읽었던 것 같은데, 나이 들면서부터 어느새 딱딱하고 어려운 책들만 골라 읽는 이상한 독서습관으로 바뀐 저 자신을 보면서, 자꾸만 더 문학쪽으로 되돌아가서 말랑말랑한 재미들을 느끼고 싶은 욕구를 느낄 때가 한두번이 아닌데, 그게 참 쉽지가 않네요.

stella.K 2011-06-06 16:23   좋아요 0 | URL
뭘 그렇게까지...
그렇지 않아도 매번 오렌님 독서에 놀라고 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만 파도 인생이 너무 짧다고 생각합니다.
말랑말랑 재미는 저에게 맞기시고, 오렌님 좋아하시는 책
읽으세요.^^
 
예술/대중문화 분야의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5월에 도착한 평가단 책을 채 펼쳐 보기도 전에, 6월에 주목 받을 만한 책을 숙제처럼 하고 있다. 5월에 받은 책 중 한 권은 내가 원하던 책이 선정이어서 이의는 없다만, 도착한 영화 관련 책은 논문집이어서 그다지 마음이 안 간다. 영화야 재밌게 즐기며 보면 되는 거지, 이렇게 어려운 책 옆게 끼고 볼 일 있을까? 좀 겁도나고, 한숨도 나온다. 정말 누구 말마따나 평가단 책이 이렇게 어려워서야 평가단 해 보겠다고 쉽게 덤빌 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라고 써놓고 보니 좀 미안하기도 하다. 그래도 불평은 나의 힘이다. TV의 수준은 딱 중학교 2학년 수준이라고 오래 전 들은 적이 있다. 지금도 그 말이 유효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쉬워야 하고, 누구나 공유가 가능한 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책도 좀 그래야 하지 않을까? 특히 평가단 책은 더더욱. 논문집이야 전공자들 보라고 그러고. 그래도 책은 교양물이니 중학교 수준이 좀 그러면, 고등학교 2학년 생들이 보면 좋을만한 수준으로 뽑아 줬으면 좋겠다.   

이번 달에도 좋은 책들이 선정되길 바라며... 

그림이 참 재밌고, 독특하다. 꽃분홍색 팝콘을 담아 놓은 것도 같고, 밥 색깔이 저럴 리 없겠지만 그래도 밥을 수북히 담아 놓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정확히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언뜻 보면 무슨 잡지 표지 같기도 하다. 그냥 미술 입문자들을 위해 편히 볼 수 있는 책 같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내용을 보면 우리 그림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다.  그렇지! 역시 우리 것은 좋은 것이랬다고, 나도 언제부턴가 우리 그림에 더 눈길과 마음이 간다.  

독특한 건, 4개의 소제목과 그에 따른 우리 그림이 소개되어져 있는데, 또 그 소제목들이 삶을 되돌아 보게하는 주제들이다. 이런 시도가 전에도 있어 왔는지 모르겠지만, 나름 신선해 보여서 마음이 간다. 확실히 무엇을 보느냐가 사람의 생각을 지배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책 보면 나도 좋은 생각이 절로 나올까? 궁금하다.   

 언뜻 위의 책과도 매치가 잘 되 보이지 않나 싶기도 한데, 무엇보다 저자가 마음을 끈다. 손철주! 미술계에선 알아주는 재담가 아닌가? 책 소개에도,  스스로 ‘잘 노는 사람’이라 말하는 그의 사람됨의 멋은 직접 보고 말을 섞어보면 글과 진배없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후회없는 선택이 될 것 같다.  

 

 

 

 

사실 요즘 영화가 가벼워진 것 같긴하다. 아무래도 영화의 경제적 효과를 생각하면 심각하고 괴로운 영화는 잘 안 보게되는 건 사실이다. 그건 좀 안타까운 현실인데, 영화에 관한 책을 봐야한다면 난 이런 책을 보고 싶다.  어렵지 않으면서 뭔가의 생각할 거리를 주면서, 영화 보는 수준을 높여주는 그런 책.  

저자의 경력도 무시 못할 화려한 경력이지만, 나는 무엇보다 출판사가 마음에 든다. 선택을 망설이지 않게 한다.         

 

 

  

                                        그의 삶과 죽음은, 그가 이 세상에 왔다 간지 몇 백년이 흘렀는데도 아직도 회자가 되고 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난 아직도 베토벤에 관한 변변한 전기조차 읽어보질 못했다. 

그런데 저자가 또 불쑥 베토벤에 관한 책을 들이 밀고 있다. 저자가 왜 이 책을 독자들에게 들이 밀었는지 그 진의가 알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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