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갈아 타길 잘했다 

지난 9기 알라딘 평가단에선 예술/대중문화 분야를 했었는데, 이번 10기에는 에세이 분야를 선택했다.  그래서 지난 번 첫 번째로 선정된 책이 박균호의 <오래되 새책>과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 읽는 방법>이었다. <소설 읽는 방법>은 지난 번 읽고 싶은 책 소개하기 미션엔 포함시키지 않았지만 나름 한번쯤 읽어보고 싶은 책이라 반가웠다. 책을 워낙 늦게 읽는 관계로 아직 읽지는 못하고 있고,  박균호의 <오래된 새책>은 방금 읽기를 마쳤는데, 상당히 재밌고 유익한 독서였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이 분야는 꽤 오래도록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예감이 든다.ㅋ  이런 가운데 나는 또 새로운 책을 추천해야 한다.      

* 김중혁의 <뭐라도 되겠지>(마음산책) 

 김중혁은 독특하면서도 재밌다.
언젠가 <악기들의 도서관>란 그의 단편 모음집을 읽은 적이 있는데 나름 독특하고 인상적이었다. 그의 소설도 소설이지만, 나는 또 언젠가 친구인 김연수 작가와 함께 영화에 대해 쓴 대담집 <대책 없이 해피엔딩>에서 그의 발군의 입담을 확인한 적이 있었다. 누구는 이 책을 읽고 고춘자, 장소팔의 만담을 연상케 한다고 했는데, 정말 그말이 딱 맞다 싶을 정도로 재미있다. 물론 이럴 경우 누가 고춘자고 누가 장소팔일지 모르겠지만.ㅋ  

이 책은 그의 첫 산문집이라고 한다.
책소개를 보니 상당히 재미있을 것 같다. 산문집이 재미있다는 것이 그렇게 어울릴 것 같진 않지만,  순수문학 특유의 엄숙함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하는데, 확실히 그는 그의 문학 세계에서는 단연 제왕일 것이다. 그는 지난 번 김연수와 만담을 펼쳤는데, 이 책에선 원맨쇼 내지는 스텐딩개그를 선보이지 않을까? 기대된다. 

 * 성석제 외 <소울푸드>(청어람미디어)       

원래 '소울푸드'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전통 음식에서 유래한 것으로 노예 생활의 고단함과 슬픔이 배어 있는 음식을 뜻하지만, 지금은 '내 영혼의 음식' 쯤으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살아갈 힘을 북돋워주고, 상처 난 마음을 다독여주는 음식.
이미 성석제 씨는 <칼과 황홀>이란 음식 에세이를 쓴 바 있지만, 이 책은 성석제 씨를 포함해 우리나라 각계 명사들이 쓴 음식 에세이라고 한다. 음식이란 게 원래 맛으로 봐야 하는 건데,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이 있고, 그 좋아하게된 이유가 있는 것을 보면 혀끝으로만 얘기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나에게 소울푸드란 어떤 게 있을까? 지금 당장 답할 수는 없고, 이 책을 읽으면 나도 술술 나오지 않을까? 만약 이 책이 알라딘 평가단에 선정이 되면 나도 탄력을 받아 음식 에세이 한편 써 볼테다.ㅋ 

* 이광호의 <사랑의 미래>(문학과 지성사) 

  
이 가을은 사랑을 기억하기 좋은 계절이다. 하지만 그것은 즐겁고 기쁘기 보단, 아프고 우울하다. 그런데, 제목이 참 심상치 않다. 사랑을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사랑은 시작하고 싶다.
이 책은 사랑시 한 편에 에세이를 썼다고 한다. 왠지 읽어보고 싶어졌다. 더구나 저자가 문학평론가 이광호 씨라고 하니 더 끌린다. 어떻게 썼을까? 

 

 

 

 

* 최성일의 <한 권의 책>(연암서가) 

그의 타계로 더 유명해진 최성일.  
그가 얼마나 유명한 독서가인지 난 알지 못했다. 
그는 어떤 책이라도 결코 허투루 대하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이 가볍게 보아 넘기는 자잘한 사항들까지도 늘 꼼꼼하게 확인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 그를 일컬어 '책과 연애하는 사람'이라고 한단다 .

이 책은 그가 생전에 여러 매체에 발표했던 서평들이 풍성하고도 다채롭게 담겨 있다고 한다. 
이번에 박균호의 책을 읽어서도 그렇지만, 책을 좋아한다면 책에 대한 책이나, 이런 유명한 인문주의자의 서평집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아이러니한 것은 오랜 세월 책에 관심을 두고 보면 볼수록 어떤 책이 좋은 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책이 워낙에 많으니 그런 것 같다. 그럴 때 이런 책이 일종의 참고서요, 가이드가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읽어보면 좋겠다. 

* 박찬일의 <어쨌든, 잇태리>(난다) 

재작년에 운이 좋아 그가 차려주는 이태리 정식을 먹어 보고 그와 대화해 본적이 있다. 그때 얼마나 황홀했던지! 그런데 부끄럽게도 그의 책은 정작 읽어 본 적이 없다.
이태리를 좋아한다. 이 책은 이태리를 주제로 했고 셰프인만큼 음식이야기뿐만 아니라 이태리 생활전반에 관해서도 썼다니 그도 어지간한 이탈리안인가 보다.
어쨌든 난 그의 음식을 먹어봤으니 이번엔 책을 읽어줘야하지 않을까? 
이번에 평가단에 선정되는 기염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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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1-11-07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눈독들이던 책이네요

stella.K 2011-11-07 16:20   좋아요 0 | URL
오, 정말요? 그럼 추천 좀 해 주세요.ㅋㅋ

hnine 2011-11-07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은 제가~ ^^
저 중의 한 권은 꼭 될 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stella.K 2011-11-07 18:08   좋아요 0 | URL
ㅎㅎ 정말요? 그러면 다 hnine님 덕분일 거예요.^^

아이리시스 2011-11-08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에세이가 더 만만하고 요즘은 관심도서가 늘었어요.ㅋㅋㅋ 저는 일부러는 에세이 잘 안 읽는 편이었는데 최근엔 에세이들도 문학적 완성도가 높아졌어요. 여전히 만원을 훌쩍 넘는 돈을 지불하고 가지기에는 좀 망설여지지만.

stella.K 2011-11-08 13:05   좋아요 0 | URL
그래도 어떤 건 돈이 아깝지 않게다 싶은 것도
많이 있어요. 특히 최성일 씨 책 같은 경우.
저는 갠적으로 이번 달에 박찬일 책하고 최성일 씨 책이
됐으면 좋겠는데, 이런 꿈 같은 일은 정말 꿈에서나 가능하겠죠?흐흐

자하(紫霞) 2011-11-08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찬일씨가 차려주는 이태리정식을 드셨다고요! 아 부러워라~ 저도 요즘엔 에세이에 눈이 가더라구요. 대개는 빌려서 보긴 하지만 말이에요 ㅋ 그럼 추천 한 방!!

stella.K 2011-11-08 13:07   좋아요 0 | URL
ㅎㅎ 그후에 한번 더 기회가 있을 뻔했는데
주최측에서 너무 늦게 연락을 주는 바람에 고사했어요.
그런데 그런 일 내 일생에 한번이나 있지 두번 있겠어요.
정말 좋은 추억이었어요.
추천 고맙슴!^^

cyrus 2011-11-08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누님이 이번 신간평가단 에세이 분야에 활동한다고 축하 인사 했는지 모르겠네요,
거의 한 달동안 서재 관리를 뜸하다보니,,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어쨌든 이번 기수에도
활동하셔서 축하드리고요.. 에세이니깐 다른 분야보다 쉽겠죠..? ㅎㅎ

stella.K 2011-11-08 17:53   좋아요 0 | URL
아니.ㅎㅎ
평가단이야 인문 분야하고 예술 분야가 젤 어렵지.
아, 경제 분야도 어려우려나?
암튼 아직까지는 만족이야.
고마워. 열심히 할께.^^

부리 2011-11-08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네21에 쓴 글 때문에 김중혁의 글이 무지 웃기다는 걸 알게 됐어요. 김연수랑 번갈아 쓴 건데, 그게 대책없이 해피엔딩으로 묶여 나왔을 거예요. 저 책도 재밌을 거 같네요. 글구 최성일 씨는 그전 책을 재밌게 읽었는데, 타계한 게 참 안타깝습니다. 좋은 정보 주셔서 감사드려요

stella.K 2011-11-09 13:03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그걸 책으로 묶은 게 <대책없이 해피엔딩>이죠.
참 재밌게 읽었어요. 부리님도 알고 계시는군요.
저는 최성일 씨 책은 한번도 안 읽어 봤는데
그리 되셨다니 정말 안타깝더군요.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알라딘신간평가단 2011-11-09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크완료했습니다 :) 감사합니다!
 
[활동마감] 9기 신간평가단 마지막 도서를 발송했습니다.

나는 오래 전 얼떨결에 2기 활동을 했었다.  그때는 이만큼이나 세분화 돼 있지 못했다. 4개 분야던가?
그때 나는 소설 분야를 지원했는데, 받은 책을 미처 다 완독을 하기도 전에 새로운 책을 받으니 감당이 안 됐다. 책 받는 거야 좋지만, 책을 워낙 늦게 읽는데다가 리뷰도 그만큼 빨리 쓸수가 없으니 굉장한 부담으로 와 닿았다. 그 이후 어영부영 세월을 보내고 이번에 9기 평가단이 되는 행운을 얻었다. 그리고 이렇게 해 보니 그때만큼의 부담이 없고, 한달에 두권을 받으니 적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지금은 훨씬 많은 분야로 세분화가 되어있긴 하지만, 아직도 책을 분류함에 있어 애매함을 보이는 책이 있는 것 같다. 예를들면, 이책은 예술 분야 책일 것 같은 책이 인문분야에 선정되기도 하고, 에세이에 있기도 한다. 하긴, 책이 워낙에 분류가 까다로운 것이라 어렵긴 할 것이다. 더구나 요즘엔 통섭이 화두인만큼 그 분류가 더 어려워진 것 같다. 그러니 알라딘 평가단에서 책을 선정하는 것이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그래도 어쨌든 9기를 마무리하고 10기가 출범했으니, 나름 잘 정착되어 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책에 대한 취향도 제 각각이라 선정할 때 어려움이 많을 것 같긴 하다. 어떤 책이 선정이 되면 어떤 사람은 웃고, 어떤 사람은 울기도 한다. 나는 선정된 책의 만족도 50% 정도면 충분히 만족할만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총 12권의 책중에 6,7권 정도가 마음에 들었다면 알라딘으로선 최선을 다해 책을 선정하고 보내주는 것이라고 봐야할 것 같다. 물론 나도 초기에 보내 준 책 몇권은 너무 마음에 안들어 성토도 해 봤지만, 어차피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입장이나 견해는 같을 수가 없는 것 같다.   

각설하고,  9기의 마지막 미션을 수행하도록 하겠다. 

- 신간평가단 활동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과 그 이유   

<차이콥스키, 그 삶과 음악>-제레미 시프먼

가장 좋았던 책은 이책이 아니었나 싶다.  
표지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그건 아마도 표지 색깔 때문인 것 같은데 책에 핑크색을 사용하는 건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그런 것만 아니라면 보내 준 책 중 가장 만족스러운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차이콥스키에 대한 평전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책은 그의 평전을 처음 대하는 사람에게 유용하리라고 본다. 평전이라면 대체로 두꺼운 책이 많다. 그만큼 담을 내용도 많고, 다룰 내용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책은 차이콥스키에 대해 정말 알아야 할 것만 요점만 간단히 전하고 있는 듯하다. 더구나 두 장의 CD와 각각의 곡에 대한 설명이 들어있어 정말 유익하다.  

   - 신간평가단 도서 중 내맘대로 좋은 책 베스트 5 

<우리 기억 속의 색>-미셸 파스투로(안그라픽스)


 이책의 리뷰를 썼을 때 나는 그 제목을, 이책에 경의를 표한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색을 가지고 에세이 썼다는 것이 놀라울지경이다. 더구나 이책은 한 권위있는 문학상 에세이 부분을 수상했다. 그러니 경의를 표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공히 얘기하지만,  재밌다고는 말할 수 없다. 재밌다고 경의를 표하게 되는 것은 아니니까. ㅋ 

 

<지혜로 지은 집, 한국 건축>-김도경(현암사)  

솔직히 이책은 어렵다. 하지만 워낙에 도판이 좋고 묵직해서 이런 책 한권쯤 서가에 놓여있으면 폼나지 않을까 한다. 뭐 꼭 그런 실용적인 이유가 아니어도 우리나라 한옥은 보면 볼수록 신기하고 알고 싶어진다. 그것에 백과사전식으로 저자가 공력을 쏟았다는 느낌이 확연히 든다.  

  

<안도 다다오의 도시의 방황>-안도 다다오(오픈 하우스)

건축가란 직업이 멋있지 않은가. 더구나 건축을 독학으로 공부했다는 것도 묘한 아우라를 풍긴다. 그런 저자가 무엇이 좋은 건축인가에 대한 고민 하나를 가지고 세계 곳곳을 여행한 것을 글로 썼다. 그런 용기와 부지런함이 부럽다.  

   

 

 <옛 그림 보면, 옛 생각이 난다>-손철주(현암사) 

 

이책은 한국의 사계를 우리 그림으로 풀어낸 책이다. 그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새삼 보면 볼수록 우리 그림이 좋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우리 고전과 어우러져 그 운치가 더한다. 그저 좋다!고 밖엔... 

 

<무명화가들의 반란, 민화>-정병모(다할미디어) 

우리 민화를 보고 있노라면, 새삼 우리가 얼마나 해학과 풍자가 많은 나라인가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눈이 호사를 하는 느낌이다.  

  

 

그동안 성실히 책을 보내 준 알라딘 평가단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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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1-11-04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에 대한 소개, 잘 읽었어요. 여러 서재를 다녀서 가장 좋은 점이 바로 책 정보인 것 같아요. 직접 발품을 팔지 않고도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요. 책을 읽지 않아도 간략한 책 정보만으로도 마음이 풍성해지는 느낌이랄까요...^^

stella.K 2011-11-05 11:19   좋아요 0 | URL
요즘에 '오래된 새책'이란 책을 읽고 있어요.
알라딘 평가단 에세이 부문에서 받은 건데
정말 좋아요. 책에 대한 정보를 정말 저자의 찰진 언어로
쓰고 있죠. 단 아쉬운 것이 있다면 주로 절판된 책을 다루고
있다는 겁니다. 내가 모르는 사이 좋은 책이 사라져 가고 있구나
생각하면 마음이 쓰리긴 하지만 이 책 정말 좋습니다. 꼭 한번 읽어보세요.^^
 
<에세이>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대망의 제 10기 알라딘 평가단이 시작이 됐다. 물론 본격적인 시작은 다음 달부터겠지만 그전에 각 분야별 신간을 소개해야 하는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나는 지난 9기 때 예술/대중문화 분야를 했지만, 10기는 에세이 분야를 한다. 배를 바꿔 탄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저 나이가 드니 이유없이 에세이가 좋아지기 시작했고, 항상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내가 예술/대중문화 분야를 선택해 보니 다른 분야의 책이 더 좋아 보이는 것이다. 그러니 할 수 없다. 예술/대중문화 분야가 커 보이게 하려면 배를 바꿔 타는 수 밖에.   
하지만 이런 이유, 저런 이유를 다 갖다 붙여도 결국 결론은 하난 것 같다. 책이 좋다는 것뿐.  

내가 한창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에세이는 유안진씨나, 안병욱, 김형석 교수의 책이 대세였다.  그들은 하나 같이 삶의 뒤안길을 돌아보는 글들을 썼다. 그리고 일부지만 에세이를 낫게 보는 시각도 없지 않았다. 그로부터 2,30년이 흐른 지금 에세이는 정말 그 소재나 주제가 다양해졌고, 그것을 쓰는 작가도 많아졌다. 비근한 예로 이번 9기 평가단 예술 분야 선정도서로 미셸 파스투로의 <우리 기억 속의 색>이란 책은 조금씩 읽고 있는데, 처음엔 그림은 없고(내가 언제부터 그림 많은 책을 좋아하게 됐는지 모르겠다.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도 그렇지만 원래 예술 분야의 책은 도판이 많기도 하다. 이 분야를 선택해 하다보니 가랑비에 옷젖은 꼴이 되고 말았다) 깨알 같은 글만 있어서 또 읽으려면 죽었다! 했다. 하지만 이건 에세이였고(참고로 2010년 메디치 상 에세이 부분 수상작이란다), 독특하게도 '색'을 주제로 썼다. 과연 그 발상이 독특하다 싶다. 그리고 생각만큼 어려운 책은 아니었다(물론 쉬운 책도 아니지만). 
아무튼 이렇게 에세이의 비약적인 발전이 있다는 걸 최근에야 깨닫게 됐고 이 분야에 대한 기대가 한껏 부풀어 올랐다. 모쪼록 좋은 책이 선정이 돼서 나의 기대가 어긋나지 않았음을 기대해 본다. 

보통이나까! 

  가장 많이 기대가 가는 책은 알랑 드 보통의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다. 내놓는 책마다 주목을 받아왔던 보통.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자신만의 특유의 사유를 쏟아 놓은 그가 이번엔 종교를 가지고 우리 곁에 왔다. 보통 무신론자면 아예 종교에 대해 냉담하거나, 유신론에 대해 비판하는 태도를 취하게 마련인이다. 그런데 그는 특이하게도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종교의 필요성에 대해서 말하려 한다.
이것이 기존에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그것도 보수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나 또한 신앙인의 한 사람으로서 궁금하긴 하다. 과연 무리없이 읽힐지, 아니면 약간의 아쉬움이나 비판의 여지가 있을지. 하지만 책소개에서 세속 사회의 빈곤과 공동체의 삶에 대한 장점 때문에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신의 유무와 신앙의 우월성을 따지지 않더라도, 이 두 가지는 보통이 너무나 잘 꿰뚫고 있다는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아도 그가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해서 종교는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말했다는데, 비판의 여지가 없지는 않겠지만 과연 그다운 발언인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것 같다. 종교에 대해 뭐라고 얘기를 해 놨는지 궁금하다. 

오드리니까! 

 오드리 헵번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책을 보는 순간 정말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다시 보고 싶어졌다. 이 영화가 나올무렵까지만 해도 결혼을 하지 않은 여자들에 대해서 안 좋은 시각들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영화 이후 결혼하지 않은 여자들에 대해서 '베드걸'에서 '굿걸'이다 못해 '워너비'로까지 그 이미지가 달라졌다니 확실히 영화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가히 지대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내가 생각할 때 그런 생각도 30대까지만 가능한 것 같다. 40대가 되면 누군가의 여인이 돼 있는 것이 좋지 않을까?  영화도 보라. 오드리 헵번이 저 영화를 찍을 당시 작품에서의 나이를 얼마로 정했는지 모르겠지만 못해도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은 아니었을까? 저 시대에 여자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큰일 날 일이긴 하다.
하긴 얼마 전, 가수 김완선이 자기는 아직도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나이 50대가 되면 결혼을 하겠다고 했는데, 그런 그녀의 당당함도 보기는 좋다. 그러고 보면 연예나 매스컴이 사람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나이를 자꾸 늦추는 것 같다.
아무튼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최초의 모던 싱글걸 캐릭터를 발굴했다는 점에 착안하여  2년여에 걸쳐 당시 영화 관계자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영화자료실을 뒤져 찾아낸 자료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스토리로 재구성’하였다고 하니 궁금하다. 더구나 마치 독자들이 1950년대 말 「티파니에서 아침을」촬영 현장에 온 것처럼, 긴박한 하루하루를 세밀하게 묘사했다고 하니 더더욱 읽고 싶어졌다. 참고로, 알라딘에선 출판을 기념해서 영화의 리마스터링 상영회(25일)를 갖는다고 하는데 보고 싶긴한데 상영회 장소가 너무 멀고 시간도 너무 늦게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왕 여자 이야기 하는 김에 

이왕 여자 이야기 하는 김에 이책도 한번 슬쩍 끼워넣고 싶어졌다. 
제목이 너무 여자를 의식했다는 생각이 들긴하다. 약간은 완곡하고 우회적인 제목을 선택해도 좋았을 것을. 웬지 모르게 제목이 식상한 느낌이 들긴 하다.  아무튼 버지니아 울프가 들어가면 여성을 위한 책이란 건 단박에 알 것이다.
에세이는 여자를 위한 것이냐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아도 알라딘 평가단 에세이 부문을 지원한 사람들 거의 대부분 여자가 아닐까? 그래서도 나는 이책을 서슴없이 골라 보았다. 무엇보다 삶을 치열하게 산 여성 작가들, 학자들의 이야기이다. 나는 이렇게 그런 사람들의 삶을 재조명한 책들을 좋아한다.
여자들은 사노라면 순간 순간 위로와 용기가 필요한 때가 많다. 그럴 때 이런 책이 또 위로가 돼 주지 않을까? 저자 이화경씨는 젊은 날 힘든 방황을 하기도 하고, 글 한 줄 쓸 수 없을 때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았던 이들의 인생과 작품을 보며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고단한 글쓰기와 일상에 지칠 때면 "글을 쓸 때 나는 단지 감각이 된다"던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장을 훔쳐보며 버티고, 생의 모든 불편을 다 참으며 작품을 써냈던 제인 오스틴의 오기를 빌어서 자신을 다졌다고 한다. 나에게도 위로와 격려가 될 책이었으면 한다. 

책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책 제목 중에 '오래된 미래'란 책이 있는 것으로 안다. 아무래도 그책 제목을 패러디한 것 같다. 뭐 그렇든 아니던지간에 책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이책은 저자의 책수집에 관한 여정을 그랬다고 한다. 저자도 그런 얘기를 했지만, 출판 10위안에 드는 강국이면서 절판율 역시 그에 못지 않게 높다는 건 확실히 생각해 볼만한 일 같다. 물론 그래서 이렇게 절판된 책만을 찾아 돌아다니는 사람이 심심할 새가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런 말로 위로하고 격려해야 하는 것도 좀 그렇긴 하다. 
난 뭐 그럴 정도로 책을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책에 관한 뒷 이야기는 항상 나의 사정권안에 있다. 읽어보고 싶어진다. 

 

  

가을엔 편지를 쓰겠다더니 

가을이면 편지가 기다려지는 것은 왜 일까? 노래 때문일까?
하지만 우리는 또 어느 새 편지를 기다리지 않는다. 편지 쓰는 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다렸다 실망하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책에서 위로를 받고, 관음증의 욕구를 대리만족하는지도 모른다.
평생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친구 하나쯤 가져보는 게 소원인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건가? 두 시인이 홈페이지란 오픈된 공간안에서 주고 받았던 편지 서른통을 책으로 엮었다고 한다.  
책이 얉은 게 흠이긴 하지만(170여쪽 밖에 되지 않는다) 뭔가 두 시인의 편지에서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줄 것만 같다. 
  
 

 

원래 이 페이퍼는 어제가 마감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주말을 끼고 마감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요즘 가을을 앓는지 컨디션이 자주 바닥을 치고 있고, 어제는 우리집 인터넷 연결상태가 뭐한 년 널뛰듯 해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오늘은 비교적 상태가 좋은 편이다. 역시 부지런한 게 최곤데 나는 왜 꼭 닥쳐서 이러는지 모르겠다. 설마 알라딘이 휴일에도 일하진 않겠지? 양해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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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1-10-09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강관리를 잘 하셔야 되겠네요.
저 역시 좀 약골인지라, 충분한 휴식을 강조하며 산답니다.
나는 좀 쉬어야 돼, 좀 자야돼, 이러면서도 사실은 어제도 새벽까지 책 읽다가 잤으니
좀 문제가 있긴 하지만요.

에세이, 읽을 게 많이 생겨서 행복하실 것 같네요. 저도 만약 평가단 일을 한다면 에세이를 선택할 것 같아요.

보통의 책이 가장 탐나는데요. 이번에 방한해서 가진 신문 인터뷰 기사를 봤는데, 보통은 자신을 "일상 뒤에 숨은 기쁨과 고통에 대한 분석가"라고 말하더군요. 정말 멋진 분석을 뽑아내곤 해서 제가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첫 번째로 추천하고 갑니다. ^^^

stella.K 2011-10-10 14:23   좋아요 0 | URL
아, 저는 그렇게 책이 좋아서 밤을 새우는 사람 보면 부러워요.
저는 이불속에서 책 보면 금방 졸음이 와서 못 보거든요.
일어나 불 끄는 것도 귀찮고해서 저의 마지막 일과는 늘 불 다 끄고
TV를 보다 잠이 드는 것입니다. 그땐 리모컨 하나로 해결이 되니까.ㅋ
보통이 지난 9기때 선정이 될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다행이어요.
물론 이번에 선정이 될지는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많은 평가단 분들이 보통의 책을 추천해서 기대가 되요.
보통 참 편하게 글 잘 쓰죠?
저도 좋아해요.^^

감은빛 2011-10-10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신간평가단 하고 계셨군요.
소개해 주신 책들이 다 흥미롭네요.
특히 세번째 책에 관심이 갑니다.

stella.K 2011-10-10 14:25   좋아요 0 | URL
세번째 책은 여성을 겨냥해서 쓴 것 같았는데
감은빛님도 관심을 갖고 계시는군요.
하긴 책을 고르는데 남녀 구분이 뭐가 필요하겠습니까?ㅎ

알라딘신간평가단 2011-10-11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크 완료했습니다! 첫 미션 수행 고생 많으셨습니다~

stella.K 2011-10-11 19:53   좋아요 0 | URL
9기 때 하셨던 분이 계속 하시는 건가요?
10기 때는 이렇게 일일이 찾아 다니며 체크 하시나 봅니다.
에그, 수고 많으십니다.^^

아이리시스 2011-10-12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스텔라님 에세이로 가셨구나. 보통도 화이팅, <오래된 새책>도 화이팅! 저 얼마전에 <오래된 미래> 라다크.. 읽다 던져놨는데 그거나 마저 읽어야겠어요, 하하.

stella.K 2011-10-13 10:40   좋아요 0 | URL
네. 사실은 예술 파트가 저한텐 좀 맘에 안들었어요.
에세이 분야는 많이 기대가 돼요.
저는 갠적으로 보통과 오드리가 됐으면 좋겠는데
뚜껑은 열어봐야 알겠죠?
이 파트 괜찮으면 오래도록 파볼까 생각중입니다.ㅋㅋ
그런데 아이리시스님은 이제 평가단 안하시나 봐요.ㅜ
 

 이달의 독서 토론 선정도서

주난 줄말, 모처에서 하는 문학토론회에 나간지도 벌써 3회째가 되었다. 한 달에 한번씩 모임을 갖고 있었고, 주최측으로서는 4회째를 맞았다. 이달의 독서토론 책은 티티아나 드 로즈네의 <사라의 열쇠>다.  

그렇지 않아도 이 책을 읽을까 말까 고민을 하고 있었다. 사실 처음에는 읽을 생각이 없었다. 언뜻 봐선 요즘 나오는 미국 문학이라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 나는 <헬프>를 읽고 적잖이 실망을 했던터라 이책을 읽고 또 실망하게 되지는 않을까 싶어 선택을 미뤘던 책이다. 참고로 내가 이렇게만 말하면 잘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겠는데, 사람 저마다 자기 궁합에 맞는 나라의 문학이 따로 있는 것 같다. 나는 미국 문학이 대체로 맞지 않는 편에 속한다. 그 알량한 독서 실력으로 어느 나라 문학이 맞고 안 맞고를 논한다는 게 낮간지럽긴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미국 문학을 선택해서 완독에 성공한 책이 별로 없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이 책은 미국 문학이 아니고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 문학이고, 무엇보다 홀로코스트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그렇듯 사람은 아무리 좋아도 동기가 뚜렷하지 않으면 내것으로 취하는 것엔 다소 꿈뜨기 마련이다. 이책도 그 모처에서 토론회를 하지 않는다면 당장에 읽을 책은 아니었다.  그런데 아다시피 나는 컨디션의 난조로 벌써 며칠 째 이책을 붙들고 있었고 결국 다 읽지 못하고 토론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이책에 대해

그렇다고  이 책이 며칠씩 붙잡고 읽으리만치 어려웠던 책도 아니었다. 토론회에 참석한 모님은 새벽 1시에 이책을 붙들기 시작해서 4시 반쯤에 읽기를 마쳤다고 했다. 그만큼 가독성이 좋아서 독서를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몇 시간 또는 하루 이틀만에도 마칠 수 있는 책이었다. 그런 걸 나는 붙든지 4,5일이 지나가는데도 완독을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것이 꼭 컨디션의 난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책만큼 편견이 심한 대상이 또 있을까? 어떤 책은 완독을 하지 못하고 그런 토론회에 참석한다면 되게 미안했을 것이다. 그런 책은 분명 내가 좋아하는 또는 중요시 여기는 책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완독을 못하고 가도 아무런 죄책감(?) 같은 것이 없는 것을 보면 뭔가 내가 이책을 가볍게 여기고 있는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이책에 대해 조금만 소개를 한다면,  이 책은 기자인 줄리아의 현재의 싯점과 과거 히틀러 치하에서사라의 싯점이 교차하는 방식이다.

어느 날 갑자기 아우슈비츠로 끌려가야 하는 사라와 사라의 부모. 사라는 동생을 벽장에 감춰둔채 그 벽장의 열쇠를 가지고 간다. 사라는 금방 집으로 다시 돌아와 동생을 그 벽장에서 꺼내어줄 줄 알았다. 하지만 그 계획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멀어지게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부모님하고도 떨어지게 되었다. 두려웠지만 더 이상 동생을 벽장에서 꺼내주는 것을 미룰수가 없다고 판단한 사라는 거기서 알게된 친구와 함께 탈출을 감행한다.  말하자면 바로 사라와 줄리아의 시댁이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밝혀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현재와 과거를 교차한다는 점에서 익숙한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이 작품의 문제점         

예전에 나는  <나의 아름다운 비밀> 영화를 보고 간단하게 쓴 감상문에 홀로코스트에 관한 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썼던 것을 기억한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잔인한 장면이 많이 나오고 보고 있기가 불편해서다. 하지만 말은 이렇게 해놓고 나는 적잖이 작품을 많이 봐왔던 것도 사실이다. <쉰들러 리스트>는 물론이고, <인생은 아름다워>, <소피의 선택>, <제이콥의 거짓말>까지 내가 알고 있고, 볼 수 있는 한에서는 다 보았던 것 같다. 어디 그뿐인가? 홀로코스트의 영원한 고전  빅터 프랑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나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을 보지 않았다면 홀로코스트에 대해선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작품을 보게 만드는 것일까? 정말 홀로코스트는 소재일 뿐 주제는 아니다. 그것을 소재로 했을 때 거기서 빚어내는 인간의 다양한 군상을 보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일련의 작품을 봐 온터라 <사라의 열쇠>는 유감스럽게도 홀로코스트를 다룬 작품중에서는 가장 낮은 수준의 작품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 싶다. 물론 모르겠다. <자기 앞의 생>이나 <죽음의 수용소>는 워낙 오래 전에 읽었던 작품이라 다시 읽는다면 처음에 읽었던 그 감동이 살아 있을런지는. 그러나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사라의 열쇠>를 쓴 작가가 작가로서의 직무를 유기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문체의 문제 

요즘 현대의 작가들은 다 그렇게 쓰는 걸까?  현대의 작가들에게서 흔히 보는 문체는 시나리오적 소설쓰기다. 쉽게 말하면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독자가 보더라도 '이 책은 훗날 영화화될 것을 예상하고 쓴 것 같다'는 말을 하곤 했는데, 이젠 그런 말이 무색할 정도도 요즘 작가들 사이에선 흔히 쓰는 문체로 통하는 것 같다. 그리고 또 실제로 심심찮게 영화화된 작품도 많다.  

실제로 나의 은사 중 한 분은 소설을 쓰다 시나리오로 전향을 하셨는데, 현대 소설을 씀에 있어서 시나리오 작법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도 한때는 소설을 써 볼 요량으로 시나리오를 공부했던 적도 있다. 그런데 과연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을 이 작품을 보는 순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떤 소설이 영화화된다라고 하면 영화의 메카 허리우드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니 내가 애초에 <사라의 열쇠>를 미국 작품으로 오해한 것도 무리는 아닌 성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작품은 프랑스 작가가 썼다고는 하나 상당히 미국적이다. 주인공을 아예 미국 사람으로 설정을 하고 나오고 있긴 하지만  자국의 작풍도 있을 텐데 굳이 미국적 색채가 짙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 영화 감독에 의해서 영화화 됐으니 작가는 본인이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난 유감스럽게도 바로 이점이 몹시도 불쾌했다.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이 전부 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남없이 현대의 작가들은 왜 그리도 문체에 목을매는 것일까? 나는 프랑스 문학을 공부해 본적은 없는데, 프랑스 문학이 갖고 있는 문체의 독특함, 아기자기함, 우아함은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그런 면들이 거의 나타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리만치 작가는 자신이 갖게될 명성이 그리웠을까?  

더구나 45세라는 중년의 나이에 남편에 의에 임신중절을 반강요 받았던 줄리아가 남편의 의사와 상관없이 둘째 아이를 낳고 그 아이의 이름을 '사라'로 했다는 점에서 그날 토론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만장일치로 이건 오버고, 너무 도식적이라고 했다. 난 아직 그 부분까지는 안 읽어 모르겠지만 확실히 그 부분을 읽은다면 나도 썩소를 금치 못했을 것이다. 과연 그것으로 줄리아의 시댁이 그 옛날 사라에게 지었던 죄를 상쇄시킬 수 있을까? 웃기는 일이다. 결국 작가는 진정한 작가라기 보단 하나의 이야기꾼 또는 그렇고 그런 스토리텔러는 아니었을까?  

내가 이 작품을 들어 지금까지 내가 보아 온 홀로코스트 중에 가장 하급이라고 얘기했던 건, 이야기가  심층을 뚫지 못하고 자꾸 지엽적인 것만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을 완독하지 못하였음에도 이 말을 거침없이 하는 것은, 어떤 이야기든 작가가 그 이야기의 전체 분량중 3분의 2를 지나는 지점까지도 독자를 말하려고 하는 심층으로 데려다 놓지 않하면 그건 끝까지 읽어도 별로 남는 것이 없는 작품이라고 보면 되기 때문이다.  

과연 소설 창작에 시나리오 작법이 필요한 것인가 

고백하건데, 나 역시 문학을 영화화한 작품을 좋아한다. 예전에 시나리오를 공부했을 때 같이 공부했던 어느 수강생과 이것을 가지고 싸울 뻔한 적도 있었다. 나는 문학 작품을 영화화했을 때 완성도가 높다고 주장했고, 상대는 그런 작품이 어딨냐며 맞섰다. 거기엔 현상 자체의 문제 보단 사람의 성분(?)의 문제가 더 컸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때 나는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공부했던 것이 아니라 소설을 위해 공부를 했었고, 녀석은 순수하게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공부를 했으니 나를 얼마나 같지 않게 보았겠는가. 더구나 그렇게 소설이 영화화된다면 시나리오 작가는 설 자리가 그만큼 줄어든다는 말도 될 것이다.  녀석으로는 고까웠을 것이고, 그런 식으로의 편가르기가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것은 별로 옳은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것은 영화쪽에서 생각했을 때나 가능한 것이지, 나는 시나리오를 쓸 사람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건 문학쪽에서 생각해 볼 때 또 달리 생각해 봐야할 문제였다. 과연 나의 은사님 말씀대로 소설 창작에 시나리오 작법이 필요한 것인가?  

나는 감히 얘기하겠는데 소설의 그런 작법이 소설의 후퇴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혹자는 문학과 시나리오를 나눌 필요가 있냐? 요즘 통섭도 많이하고, 문학과 영화가 같은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한다면 좋은 일 아니냐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학과 영화가 동반 상승하면 다행이지만 오히려 작가의 태만과 문학의 질적 하락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그날의 문학 토론회에 나왔던 사람들 중에 몇몇은, 이 작품에 대해 그냥 오래 생각 안하고 영화를 보듯 휙휙 잘 넘어가서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뭐 꼭 문학이 엄숙해야 하고, 진지해야 하느냐고 반론을 제기할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물론 어떤 사람에겐 가볍게 읽는 책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홀로고스트의 희생자들을 생각하면 과연 그렇게 쉽게 써서 쉽게 읽히길 바란다는 게 좀 미안하지 않은가? 겉으로는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함이라지만, 이것조차도 상업적인 이용 가치의 대상이되진 않았을까 의혹이 남는다. 그렇게 휙휙 넘겨버리고 말 책이고 어차피 영화로 만들 생각이었다면 편하게 영화를 보지 뭐 때문에 책을 보겠는가? 아무리 한 작품을 소설로 보는 것과 영화로 보는 것이 그맛이 다르다고 하지만 그것도 옛말이 됐다. 지금은 책의 내용을 그대로 영상으로 옮기는 일군의 영화 감독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지금은 문자 보다는 영상을 더 선호하는 세대가 되어버렸다. 문자로 먹고 사는 작가는 자기 작품이 영화화 됐다고 무조건 조아라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 작가는 인간 이해를 하려고 하지 않는가?       

그렇게 작가가 영화적 소설 쓰기에 몰두할 때 작가가 잊고 있는 중요한 사실은 인간에 대한 이해다. 왜 작가는 인간을 이해를 하려고 하지 않는가?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어떻게하면 영화적으로 보일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인간의 오욕칠정 중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건드려주지 못하는 작품이 부지기수가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영화적으로 잘 쓴 소설이 정말 영화화될 수 있는 걸까? 당분간은 그럴 수 있런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앞으로는 영화적으로 잘 쓴 작품이 영화화 되는 일은 없을 수도 있다. 기왕 문학과 영화가 통섭을 할 것 같으면 문학적으로 잘 쓴 작품이 영화화 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런데 걱정되는 건, 이런 현대의 작가들이 뿌려놓은 씨앗 때문에 이제 막 소설을 읽기 시작한 사람들이 이런 소설이 소설의 전부인 양 알게 될까봐 걱정이라는 것이다. 말하지만, 현대의 작가들은 인간의 오욕칠정을 영화적 소설 쓰기와 교묘하게 바꾼 것이다. 이것은 문학의 세속화이며, 작가의 직무유기다.  

인간의 오욕칠정을 내게 가르쳐 줬던 사람이 두 분 계신데, 하나는 시나리오를 공부할 당시 (나는 두 분의 은사님을 거쳤는데 앞서 말했던 선생님과 후에 공부했던) 영화 감독인 P 감독님과 또 한 분은 박범신 작가다.  P 감독님은 공부하던 5개월 내내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하고 또 강조하셨다. 영화에선 그것이 나타나야 한다고. 

박범신 작가는 작년에 작품 <은교>를 마치고 가졌던 독자와의 만남의 자리에서, 작품에서 오욕칠정을 건드리고 독자로 하여금 거기 빠뜨리고 싶다고 말했다.  왜 그랬을까? 왜 그것이 그토록 중요한 걸까? 그는 우리나라의 지난 자본주의 50년을 비판하면서, 자기 정체성을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고 그러므로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어 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이 부분에서 문학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인간의 오욕칠정을 제대로 다뤄주지 못하고 영화적 글쓰기에만 몰두해서 울거먹으려고 하는 작가의 작품을 만나게 되면 화가나는 것이다.  그런 작품에 온갖 마케팅을 위한 미사여구는 또 어떤가? 그것으로 독자에게 책을 사게 만들고, 동시에 눈을 가리게 만든다.  더구나 그런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 하다니, 오 마이 갓! 이다. 그렇지 않아도 영화도 좀 아쉽다는 얘기가 들린다.

 소설가에게 성직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앞서 나는 미국적인 것 또는 허리우드적인 것을 말했는데, 그렇다면 나는 반미주의자인가? 스스로에게 물어 보았다.  물론 내가 허리우드적인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는 것을 굳이 숨기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 정도 가지고 반미주의자라고까지는 말하고 싶지 않다. 내가 정말 거부해마지 않는 건 그런 것이 아니라, 이를테면 상업주의와 승자독식의 사회를 비판하는 것일 뿐이다. 그것의 대표적인 사례가 허리우드적인 것이기 때문이고. 앞서도 이 작품을 두고 말하지 않았는가? 프랑스 문학의 독특함과 우아함을 팔아 먹었다고. 영화 역시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엔 샹송이 있는 것처럼 프랑스다운 영화가 있었다. 하지만 요즘 프랑스 영화감독들은 자국의 영화적 분위기를 살리려 하지 않는다. 뭔가 허리우드적인 것이 섞여 있다. 그래야 돈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것은 꼭 프랑스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어느 나라든지 상업주의 영화엔 허리우드 작법이 따라 붙는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반드시 허리우드만이 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에서 영화를 만들지만 허리우도 같지 않게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도 있으니까. 

물론 소설가는 성직자가 아니다. 소설가는 직업인이고 생활인일뿐이라고 말하는 작가도 있다. 요즘엔 목사의 목회도 비즈니스처럼 하는 목사도 있다. 목회를 비즈니스로 한다는 말은 목사의 직업에 대해 신성과 거룩함으로 보지 않고 세속적으로 본다는 말이 될 것이다. 목사에게서 거룩함을 볼 수 없는데 소설가에게 그런 말이 타당하기나 한 말인가? 우리가 잘 아는대로 발자크나 도스토옙스키는 평생 자신의 빚을 갚기 위해 소설을 썼던 사람들이다. 그러니 생활인이 맞는 말이긴 하다.  그나마 그건 나은 것이다. 소설 쓰는 것만으로는 생활이 안 돼 투잡을 갖거나 소설 쓰기를 포기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내가 얘기하려고 하는 것은 모든 직업엔 인간의 존엄함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저리 장황한 제목과 서툰 글로 도배를 하려했는지도 모른다.  어디 그것이 목사와 소설가에게만 해당되는 말인가, 정치가에게도 의사에게도 세상의 모든 직업에 해당되는 말 될 것이다. 모르는 사람은 뭐 이런 도덕을 얘기하나 싶기도 할 것이다. 난 단지 인간이 갖는 직업에 이것을 걷어내면 남는 것은 상업주의의 가벼움 밖엔 남지않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그날 사회자는 이 작품을 선택한 여러 많은 이유 중 하나를 해외작가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내 작가였다면 말하기 불편한 점도 있겠지만 해외 작가는 우리가 무슨 얘기를 해도 못 알아 들을 것이기 때문에 마음껏 떠들어도 상관없지 않냐고 해서 웃었다.  그래. 나도 그 말에 힘입어 마음껏 떠들어 본다. 작가가 알아나 듣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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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9-26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모임 참석해보니 즐거우시죠? 저도 모임날 몇 주전까지는 안 읽다가
모임 전날이나 당일에 읽는 경우가 많았어요. ^^;;
아직 <사라의 열쇠>는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독서모임 때 언급된 내용과
누님의 생각이 잘 정리하셨어요. 저도 예전에 독서모임 때 당일 내용들을
정리하려고 했는데 모임이 끝나고 뒷풀이하다보면 금방 까먹게 되더라고요 ^^;;

stella.K 2011-09-26 15:39   좋아요 0 | URL
사람들의 다양한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무엇보다 뒷풀이가 있어서 좋긴한데
이제부터는 꼬박꼬박 참석하지 않으려고 해.
솔직히 이 책 첨부터 기대없었거든.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한 책이야.
그런데 묘한 건 이런 책이 나를 자극한다는 거지.
썼지만, 소설에서의 영화적 글쓰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았고, 문학은 작가의 안일함으로 후퇴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더군.
상업주의 영향도 너무 많이 타고.
내가 문학과 관련있는 사람이었다면 매일 술 마셨을지도 몰라.
문학이 죽었다고 개탄하면서.옛날의 문학이 아니라고.
무엇보다 화가 나는 건 이런 허섭쓰레기 같은 작품에 너무 좋다고
마케팅하는 거 보면 더 화가난다는 거야.
좋긴 뭐가 좋아? 개뿔.
물론 그런 작품이 아니어도 세상에 읽을 책들은 많아. 특히 고전들.
그거 하나가 위안이야. ㅠㅠ

하늘바람 2011-09-26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하고 애 키우니 뒤풀이는 꿈만 같아요
사라의 열쇠라 읽고 다시 이야기 나누고 싶네요

stella.K 2011-09-27 14:15   좋아요 0 | URL
이해해요, 하늘바람님.^^

blanca 2011-09-27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제가 영화화를 염두해 둔 소설쓰기에 대해 잠깐 생각했던 적이 있어 이 페이퍼가 정말 반갑네요. 저도 요즘 소설들이 지나치게 서사위주로 마치 무언가를 염두해 둔 것 같아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혹자들은 우리나라 소설들이 서사가 빈곤하다며 더 많은 스토리텔러들이 나와야 한다고 하기도 하던데 저도 스텔라님과 비슷한 의견입니다. 보고 느끼고 만질 수 있는 것들만 이야기한다면 그냥 시나리오를 쓰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stella.K 2011-09-27 19:58   좋아요 0 | URL
이게 문학의 상업주의를 부추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이것도 몇몇의 운 좋은 작가나 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나 정말 문학을 사랑하는 작가라면 그런 거에 연연하지 말고
얼마나 인간성을 회복하는 글을 쓸 것인가 그런 것들을 생각해야
한다고 봐요.
전 정말 작가들의 안일함을 개탄하고 싶어져요.ㅜ
제 생각이 블랑카님 생각과 많이 부합된다고 하니 기뻐요.
짧지않은 글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2011-09-27 1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7 14: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리시스 2011-09-27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가는 오로지 혼자만의 영역이고, 영화는 공동의 창작품이라는 점에서 분명히 다른 지점이 있어야 하고, 달라야 하는데, 소설가가 그걸 포기해버리는 건 아쉬워요! 소설도 쓰고 시나리오도 쓰고 감독도 하고 뭐 그러면 좋겠지만 그런 천재는 보지도 못했고, 볼 수도 없을 것 같아요.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줄 몰랐을 때 <사라의 열쇠>는 관심작이었는데 알고나니 그보다 좋은 작품들은 얼마든지 있겠다 싶었죠. 조목조목 따질 수 없는 그 마음이 스텔라님 마음과도 같을 것 같아요. 그래도 읽지 않고 실망했다 말하는 건 하면 안되는 짓인데....ㅠㅠ

stella.K 2011-09-28 11:11   좋아요 0 | URL
소설가가 그걸 포기하는 순간 자국의 문학은 후퇴한다는 걸
알아야 해요. 포기는 나 한 사람만의 포기가 아니거든요.
문학은 너무 만만하고 안일하게 보는 요즘 작가들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것 같으면 땅 파 먹고 사는 사람들이 훨씬
가치있게 사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땅은 거짓말 안하잖아요.
그것에 순응하고 길들여 살아야 할 쪽은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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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국의 주택, 그 유행과 변천사-임창복(돌베게)

오래 전부터 집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남의 집이 우리집과 다르다고 느낌 때부터. 그러니 얼마나 오래된 관심이겠는가? 물론 이건 남의 부모가 나의 부모와 다르다는 것 만큼이나 당연한 것인데도 이게 나로선 신기할 정도였다. 그래서 언젠가는 내가 기억하는 것을 기록하고 그중 하나의 쳅터로 내가 기억하는 모든 집들에 대해 쓰고 싶었다. 기록은 중요한 것이고, 시시콜콜할수록 좋다고 생각하는데, 문제는 내가 너무 게으르다는 것과, 블로그에 뭘 쓴다는 건 뭔가 모르게  압박을 주는 것이 있어 계속 쓴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앞으로 내가 그 작업을 하게될지 안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결론은, 지금의 집들이 과연 집다운가에 대한 의문은 계속 남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저 잠을 자고 쉬기위한 공간이면 족한가?  

그런 중에 <한국의 주택, 그 유형과 변천사>란 책이 눈에 띈다. 다소 학술서적 같이 딱딱한 느낌을 배제할 수 없지만 이런 나의 막연한 생각을 구체화시켜 줄 수도 있을 것 같아 올려본다.  

2. 명작을 읽을 권리-한윤정 지음 (어바웃어북)

책 제목으로 봐선 꼭 문학쪽일 것 같은데 예술쪽에 분류되어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가 문학과 영화쪽을 두루 섭렵하고 쓴 책 같다. 

책소개에서, '나의 명작독법'에 관한 책이라고 한다. 작품, 작가, 사회(배경), 독자라는 네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작품이 담고 있는 이야기의 함의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다. 또 작품 속에 배어 있는 역사, 이념, 가치관, 작가의 삶 등을 살펴보고, 이를 다시 독자의 삶에 투영해 보도록 돕는다고. 

문학이든 영화든, 감상을 위한 것에 굳이 이런 책을 읽어 줄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무엇보다 좋아서 보고, 자유롭게 보고, 나답게 보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꼭 이런 생각에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궁금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내 생각이 맞나 슬쩍 의심도 가져보고. 무엇보다 이런 책은 리뷰 쓰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실용적인 기대도 가져보게 된다. 명작을 읽을 권리라. 만일알라딘 평가단에서 이 책을 선정한다면, 이건 권리이기 전에 의무가 될 것이다. 이런 즐거운 의무 괜찮은 거 아닌가? 

3. 무명화가들의 반란- 정병모 지음 (다할미디어)  

그렇지. 역사도 정사 보단 야사나 민중사가 더 매력적인 것처럼, 미술사도 그러할 것이다. 주류 보단 비주류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정병모 교수의 민화읽기 시리즈 1권이란다. 무명화가들은 전통의 틀을 깨뜨리고, 자연의 느낌을 질박하게 드러내며, 우리 자연의 따뜻한 빛깔과 서민의 친근한 정감을 화폭에 담았다. 그들은 천진난만한 그림을 통해 정통화가들과 다른 자유로운 예술세계를 보였다. 민화는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 낸 위대한 예술인 것이다.(알라딘 책 소개에서)

한마디로 확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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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9-05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색해보니 최소한 저 맨 위의 책은 거의 전공 책이군요 ㅠㅠ

stella.K 2011-09-05 18:14   좋아요 0 | URL
헉, 정말요?!
와우, 갑자기 hnine님이...와락!ㅋㅋ

hnine 2011-09-05 19:03   좋아요 0 | URL
에궁...저의 전공이라는 얘기가 아니라 거의 대학교재 수준의 책이라는 말씀이었는데 ^^

stella.K 2011-09-06 13:40   좋아요 0 | URL
ㅎㅎ 그렇군요. 제가 잘못봤네요.
요즘 제가 이래요.ㅠ
그래도 뭐 돌베게니까...^^

아이리시스 2011-09-05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번 제 스타일. 명작,고전,책읽기 뭐 이런 키워드라면 대뜸 클릭부터 하고 봐요, 저는.ㅋㅋ 또 추천페이퍼 날릴 시간이군요. 아이참, 시간이 너무 빨라요.ㅠㅠ

stella.K 2011-09-06 13:38   좋아요 0 | URL
추천페이퍼 좀 귀찮긴하죠?
그래도 뭐 공짜책(이런 말 쓰는 게 전 별로 안 좋아하지만)받으면서
이 정도는 또 해야줘야죠.^^

cyrus 2011-09-06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번도 제 스타일이지만 3번 민화 관련 책도 좋아요. 작년에 민화 관련 책을
읽어봤는데 민화 속에 그려진 동식물들에도 다양한 상징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더군요. ^^

stella.K 2011-09-06 13:36   좋아요 0 | URL
그니까요. 이번에 이 책 꼭 평가단 선정도서 됐음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