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이면 이보다는 젊어있었지.

모처에서 연극 대본을 쓰고 있었다. 물론 극단처럼 전문적으로 했던 건 아니지만 나름 필요했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했다. 형식적이긴 했지만 원고료도 받았다. 작가냐 아니냐를 가늠하는 건 무슨무슨 문학상을 받았냐 아니냐도 필요하겠지만, 그 잣대는 내가 원고를 쓰고 원고료라는 것을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가에 있는 것은 아닌가 한다. 자본주의 사회니까. 그렇다면 작가고, 그냥 썼다면 그건 작가지망생에 불과할 것이다. 나는 그때 그런 생각이라도 가지고 있었어야 했다. 그래야 버틸 수 있었을 테니까.

작가. 나름 얼마나 동경하고 바래왔던 일이던가. 처음 짧은 대본, 아마도 A4 용지 3매 정도를 쓰고 받았던 나의 원고료는 5만원이었던가 했을 것이다. 그맘도 17,8년 전 일이다. 그 대본은 굳이 말하자면, 고등학생 학습을 위한 대본이라고 해두자. 이로써 나는 작가가 된 거야. 나름 뿌듯했다. 그러다 성인들과 함께하는 본격 연극 대본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 썼던 건 크리스마스용 뮤지컬 대본이었다. 그것은 새로운 장을 여는 시발이었다. 나름 시작이 좋았으니 정말 내가 뭐라도 된 듯했다.

하지만 뭐든 어려운 시기가 온다. 글을 쓰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인간관계가 가장 많이 어렵고, 나의 발목을 잡는 일이다. 사람이 싫으면 싫어서 어렵고, 좋으면 좋아서 어려웠던 것 같다.

그 일은 새로운 밀레니엄과 함께 시작이 되어서 2006년 초 공식 해단에 이르렀는데, 우리의 공식 활동은 2005년 말까지였다. 그러니까 무려 6년을 꽉 채웠다. 해단을 하고 보니 당장은 섭섭한 마음 보단 시원하단 생각 밖엔 들지 않았다. 그만큼  마음 고생이 심했다.

 

그런 조사도 있단다. 스트레스로 인해 단명하는 직업군에 언론인, 작가 등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 알만하다. 역사적으로도 문명을 떨쳤던 작가들은 거의 단명하지 않았나. 물론 그렇지 않는 문인도 많이 있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 사실이었던 건, 그 6년의 기간 어느 한 해는 일종의 신경쇠약으로 병원에 잠시 입원했던 적도 있다. 물론 지금도 모를 일이다. 병원에 입원할 운명이어서 그렇게 된 것인지, 정말 글쓰는 스트레스가 심해 병원에 입원했는지는. 그때 내 작품을 연출한 연출가가 엄청 나를 쪼아댔으니까.

그런데 지금 세월이 지나 생각해 보면, 작품으로 인해 스트레스 받는 것은 견딜 수 있는 스트레스란 생각이 든다. 난 오히려 그 외의 부수적인 일에 괜히 핏대를 세우고, 필요 이상의 과도한 오해를 하고 그래서 관계를 더 안 좋게 만들고, 나 자신에게 상처내는 일을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그게 아니더라도 오래 해왔으니 지칠 때도 됐다. 해단에 미련 같은 건 없었다. 만일 내가 글을 다시 쓴다면 연극 대본 같은 건 안 쓰고 혼자서도 잘할 수 있는 소설이나 써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없다는 말이 이렇게도 적용될 수 있을까?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사람들과 부딪혔던 기억 보단, 웃고 떠들고 서로의 꿈과 비전을 나눴던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일에 대한 그리고 나의 태도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에 대한 시야가 확보가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때를 돌이키면서, 그때가 그토록 어렵고 힘들었다면, 나는  야마모토 겐이치의 <리큐에게 물어라>는 책을 뽑아 들었을 것이다. 재미도 재미지만 묵직한 울림이 좋았다. 그리고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구성이 놀라울 정도다. 그것을 통해 인생을 관조하는 주인공의 시선이 마치 무사가 한점 흩트러짐 없이 난을 치던 그 자세가 연상이 되면서 깔끔하고, 정갈하다.  

물론 리큐는 나중에 활복자살을 하는 것으로 끝마치지만(아무래도 그것은 그 시대 그 나라만이 갖는 독특한 문화라면 문화 같다) 유독히 갈팡질팡 갈피를 잡지 못했던 나에게 정말로 필요한 책은 아니었나 생각한다.   

사실 인생에 코치나 멘토가 있으면 좋을 것이다. 당시도 상의할 상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특별히 멘토해도 좋을만치 의지할 상대는 아니었기에 그 시절 나의 삶은 더 미숙했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이 책이 멘토링이 될만한 책은 아니다. 그런 것을 원한다면 자기계발서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난 그저 리큐의 영혼.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 뿐이다. 

 

사실 10년 전 그 시절 나를 힘들게 만들었던 게 한 가지 더 있었다면 앞서 말한 연출가를 좋아했던 이유도 있었다. 마음으로는 좋아했지만 작가와 연출가란 역할이 있었기 때문에 그와 했던 첫번째 작품을 빼놓고 거의 매번 의견의 차이 때문에 싸웠다. 그리고 급기야는 결별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얼마 후에는 아예 팀을 떠났는데, 그나마 다행인 건 그가 떠나는 결정적인 이유가 나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것 정도. 그래도 그는 나 때문에도 힘들어 했었던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내가 그 시절 그와 악바리 같이 싸웠던 건 꼭 내가 작가고 그는 연출가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우린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다. 사랑 아니 적어도 좋아하는 마음은 계산되어지는 것이 아니라지만, 나이도 나 보다 어렸고, 나는 그저 평범한 중산층이지만 그는 상류층이다. 무엇보다 자기 세계가 확고해서 남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그런 그를 내가 좋아하는 건 의미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도 안 좋은 사이가 되어버렸는데, 내 마음 깊숙한 곳에선 진짜 좋아해 보기도 전에 지레 겁먹고 거절 당하는 것이 두려워 싸워서라도 나의 마음을 경계하려는 것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은교>의 박범신 작가는 그런 인간의 감춰진 심리를 묘파하는데 탁월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늙은 육체에 자신의 영혼을 가둬두고 나중엔 육체를 태우고 한줌의 재로 남는 이적요 노인이 나와 같아서일까? 난 마지막 장을 읽고 이내 울어버렸다. 

사랑은 원래 양쪽 눈을 뜨고 있는 적이 별로 없다. 하지만 육체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노쇄해 진다. 이것이 또한 인간의 딜레마다. 나이가 먹으면 시야는 깊어질지 모르지만 활동 반경이 좁아진다. 스스로를 제한 시키지 말고 도전하고 후회를 될 수 있으면 적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거절당할 것이 두려워 사랑을 못하는 것 보다 실연 당할 때 당하더라도 사랑하는 영혼이 더 아름답다. 

 

내가 작가가 되길 소망해왔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서 그것은 반쯤은 이루었지만 당시엔 사람들은 나를 괴롭힌다고만 생각해서 반쯤 이룬 것 보단 반쯤 안 이룬 것에 더 많이 침잠해 들어갔을지 모를 일이다. 그래도 사람이 뭔가에 뜻을 품었으면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그것에 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습관적으로 작가들의 글쓰기에 관한 책에 집착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글쓰기 비법을 알기 위한 것이 아니다. 작가는 어때야 하는가에 대한 실제적인 조언 내지는 작가적 태도를 알고 싶어 집착하게 되는 것 같다. 

작가의 꿈만 꿨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작가가 되겠는가도 중요하다.

 

올여름의 끝자락에서 김영하의 <검은 꽃>을 읽게 되었다.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작가는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사람이겠구나 하는 통찰이었다. 작품에 보면 박광수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그는 원래는 신부가 되려다 신내림을 받고 박수가 된다. 우린 무당하면 무조건 안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데 무당에 대한 작가의 새로운 해석에 고개를 끄덕였고, 그가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 한다는 점에선 작가도 이래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의 확대까지 가능해 졌다. 그때 나는 너무 안일했다.

 

사실 해단이 이루어졌을 때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나에게 있어서 한 시대가 갔다는 것이다. 한 시대가 가면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한 시절을 자꾸 그리워하고 추억한다는 것은 그 시절을 두고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도망치듯. 그렇다. 그것에 미련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도망친 것에 불과했음을 시간이 흘러 깨달았다. 내가 김훈의 <내 젊은 날의 숲>을 읽고 리뷰에 결핍이란 단어를 썼다. 무슨 맥락에서 썼냐면, 미완성에서 완성으로 가는 맥락에서 그렇게 썼다. 나는 한 시대를 충분히 누렸다고 자부할만큼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 늘 뭔가에 목말랐지만 그것이 꽉 채워져야 글을 쓰게 될 줄 알았다. 충만해서 글을 쓰길 바랬던 것이다. 뭐든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죄짜내는 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즈음 생각해 보면 충만은 절대 이루어지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근육이든 생각이든 자꾸 쓰는데서 발달이 되는 것처럼 모자라고, 부족한 가운데 쓰는 것이 또한 글 같다. 

그런데 난 그동안 뭔가를 끄적여왔던 것 같긴 하지만 자신감은 10년 전보다 훨씬 더 없어져 심지어는 내가 뭘 해왔는지 조차 까먹고 있었다. 그래서 모 작가가 나에게 작가 포스가 느껴져요 했을 때도 나는 한사코 부인만 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러지 않으리라. 다짐해 본다.

 

이책을 읽었을 때, 난 자기가 하는 일에 끊임없이 재잘거리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쓴적이 있다. 은희경 작가가 그랬다. 이책은 거의 자신의 일과 관련해서 느끼는 바들을 솔직하고 간결하게 재잘거리듯 쓴 책이다.

나는 스스로를 작가라고 생각하면서도 이것을 밝히기가 은근 쑥스러웠다. 더구나 최근엔 글써서 원고료라는 것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 밝힐 입장이 못 된다. 예전에 글 좀 썼어요. 하는 것이 뭐 그리 대수겠는가.

그런데 좀 우스운 건 다시는 연극 대본은 쓰지 않겠다는 내가 얼마 전부터 다시 붙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오랜 잠을 자다 기지개를 켜며 일어난 느낌이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그전보다는 훨씬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왜 일까? 아마도 밝힌 이 다섯 권의 책을 읽었기 때문은 아닐까.ㅋ

아무튼 나의 새로운 출발에 축복해 주시라.^^ 

             


댓글(7)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1-12-18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복해드리고 싶군요. 건필하시길..^^

stella.K 2011-12-19 13:54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킹피셔님.
영화 <피셔킹>이 생각납니다.
그 영화 정말 재밌게 봤는데.ㅎ

조선인 2011-12-19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다시 시작하는 모습이 참 부럽습니다. 건강한 연말연시 되시길.

stella.K 2011-12-19 13:55   좋아요 0 | URL
에고 뭘요. 할 줄 아는 게 그것뿐인데 이것도
주변머리가 없어 열심히도 못한답니다.
암튼 고마워요.
조선인님도 좋은 연말연시 되시길.^^

blanca 2011-12-21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를 읽으니 스텔라님...저는 감동받았어요. 스텔라님이 희곡을 쓰고 또 어떤 남자는 연출을 하고. 스텔라님의 그 시대가 눈 앞에 떠오르기도 하면서. 스텔라님 작가 맞아요.

stella.K 2011-12-22 14:38   좋아요 0 | URL
아, 브랑카님. 님은 항상 저에게 조용히 응원을 해 주시는 분이군요.
솔직히 말씀 드리면 이거 약간의 목적이 있는 페이퍼에요.
모처에서 입상하면 돈 준다기에.ㅎㅎ
이것 밖에는 글을 쓸게 없더라구요. 써놓고도 좀 강한 거 아닌가?
그런 생각도 했는데 까짓 거 지난 얘긴데 뭐 어떠랴 싶더군요.
근데 저 거기서 가장 낮은 등수의 입상도 못했더라구요. 얼마나 화끈거리던지. 기운도 빠지고. 아, 글쓰기가 왜 이리 어려운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조용히 와서 응원해 주시는 브랑카님 같으신 분 계셔서 고마워요.
작가는 누가 불러줘서 작가가 되는 것이 아니고, 나 스스로 그 정체성을 만들어 가야 하는 것 같더라구요.
누가 너 작가 아냐. 해도 저는 작가라고 우기며 살랍니다.
내가 원고료로 단 돈 10원을 받아도.ㅋㅋ

문지원 2011-12-22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와 넘 해박하셔서 근접이 어려울듯----

도움이 필요합니다 재닛말콤 저널리스트와 살인자 란 책이 너무 읽고 싶은데 도무지 검색이 안되는군요...혹시 제가 구입할 수 있게 길잡이가 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느 날...

 

한 달여 전(어쩌면 그 보다 오래됐는지도 모르겠다) 바다출판사 편집자님으로부터 한통의 메일을 받았었다. 물만두님 1주기 즈음에 맞혀 책이 나올 예정인데, 그에 앞서 고인이 살아생전 알라딘에서 가까이 지내셨던 지인들로부터 추모사를 받고 있는데 써 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가까이 지냈던 건 사실이지만 다른 많은 분들과도 교분을 나눴던 것으로 아는데 나가 과연 그럴 자격이 있나 반갑기도 했지만 얼떨떨했다.

무엇보다 고인이 마지막 생의 몇 주 또는 몇달여를 지내면서 내심 알라딘에서 볼 수 없어서 걱정하면서도 현재의 상태를 알 수가 없으니 다소는 무심하게 지냈던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나는 물만두님이 돌아가시던 날 문상을 하지 못했다. 주최측에서 가급적 조용히 지내고 싶으니 문상을 사양한다고 했던 말을 핑계 삼아 가지 않았던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기도 했던 것이다. 

그분이 저 세상에서나마 나를 기억해 준다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살아생전 좀 더 애틋한 정을 나누지 못함이 아쉬울 뿐이었다.

 

추도사에서도 썼지만, 그분은 흘러가는 시간을 무척 아쉬워 하셨다. 아마도 그건 좀 더 많은 책을 읽어내지 못한 안타까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기억이 난다. "내가 죽기 전 다섯 수레 가득 책을 다 읽고 죽을지 모르겠어요." 그 말은 지금도 나의 뇌리에 메이리처럼 앙금져 남았다. 죽음이란 단어도 단어지만, 나는 물만두님 보다 턱없이 부족한 독서량으로 나도 언젠간 죽을 텐데, 아니 언젠가는 노안으로 책을 보지 못할 수도 있는데 저 물만두님의 반이라도 다부진 꿈을 가질 수 없을까? 언젠가 나의 서재 페이퍼에 쓰신 댓글에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 때를 추억 삼아 추도사를 썼다. 더 길게 쓰고 싶었지만 정해진 분량에 맞추느라 더 쓰지도 못했다.

 

그렇지 않아도...

 

기다렸었다. 너무 많이 오랫동안.

어떤 땐 약간의 화도 났었다. 책이 나온다는데 도대체 언제 나온다는 거야? 하지만 누구에게 화를 내야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 알라딘은 아닐테고, 어느 출판사가 담당했다는데 그 출판사가 어딘지 미처 알지 못했다.

그렇지 않아도 물만두님이 위독하다는 사실도 모르고, 어느 날 습관대로 내 서재에 들어왔더니 한 서재 지인으로부터 장문의 댓글이 달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내용인즉, 물만두님 본인이 원하든 원치않든 뜻있는 사람끼리 모아서 책을 내보는 것이 어떤지  중지를 모으던 중 나에게도 같은 의견을 물어온 것이다. 나야 반대할 이유가 없지만 무엇보다 본인의 의사가 더 중요한 건데 과연 그것을 물만두님이 선뜻 받아들이실런지 그것이 의문이었다. 

그런데 그 장문의 댓글을 받은지 얼마지나지 않아 그런 비보를 접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분의 리뷰집이 나올거라는 말을 듣고, 일은 또 이렇게 이루어지는구나, 한시름 놓은 느낌이었다.    

 

책 한 권이 나오기까지 얼마가 걸리는지 독자는 알지 못한다. 

뭐든지 빨리 빨리 하는 세상에서 그저 물만두님 책이 얼른 나오지 않는다고 내내 툴툴거렸다. 추모사를 써서 출판사에 보내고도 얼마를 더 기다렸더란 말인가. 책을 더 잘 만들기 위한 출판사의 노력도 노력이지만, 아마도 물만두님 1주기를 맞추기 위한 출판사의 계산도 어느 정도는 포함이 된듯도 싶었다. 

그래. 그런 뜻도 나름 나쁘지 않으리라. 그리고 조금 지나자 어느샌가 모르게 알라디너 여러분들이 책의 이미지와 함께 하나 둘씩 물만두님을 추억하는 글들을 올리고 있었다. 

 

집을 나서다...

 

출판사 편집자님으로 부터 또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이달 14일 물만두님 1주기겸 출판 기념회에 와 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 메일이 어찌니 친절하던지 울컥했다. 마치 친구를 잃어 울적해진 마음을 그제야 위로를 받는 기분이었다.

가야지. 가야하고 말고.  장례 때도 못 갔는데 추모식에서 조차 가지 못한다면 평생 물만두님을 잊지 않겠다는 그 약속을 공수표로 날리게 될 것만 같아 기꺼이 집을 나섰다. 

나름 일찍 집을 나섰지만 추모식이 열리는 카페가 있는 합정동은 익숙한 동네가 아니라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다행히도 요즘엔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기계에 익숙한 젊은 사람 누구라도 붙잡고 물으면, 그 사람이 그곳을 알고 있지 않아도 가르쳐 줄 수가 있다.

'아, 이런 친절한 아가씨가 다 있을까?'

그 아가씨는 예쁘게 생기기도 했지만 마음씨도 좋아 마침 같은 방향이니 가는데 까지 가서 다시 한 번 가르쳐 주고 가겠노라고 했다. 감탄했다.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 악한 사람도 많지만 그에 못지 않게 친절하고 착하게 사는 사람도 많다는 생각을 했다.

또 어찌보면 그곳에 다 와서 헤메지 말라고 물만두님이 길을 인도하는 천사를 잠시 보내주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시 만난 알라딘 사람들...

 

제일 먼저는 카페 입구에서 나에게 이메일을 보내 주신 편집자님 만났다. 

물만두님 때문에 나를 울렸던 분. 물만두님 조차도 나를 울리지 못한 것을 이 분이 나를 울리셨구나. 고맙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그렇다. 이제야 고백하지만 물만두님이 세상을 떠나시던 날 가슴을 쓸어내린 건 사실이지만 왠지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그 고통스러운 육체는 벗지 않으셨나. 그분이 건강하게 가족과 우리 곁에 함께 계시면 그것처럼 좋은 일은 없겠지만, 고통스러운 육체를 감내하면서 까지 오래도록 우리 곁에 살아계셔 달라고 바라는 건 옳은 일은 아닐 것이다. 나는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위로했을 뿐이었다. 나는 오래 전 나의 아버지를 떠나 보내드릴 때 그런 생각을 하며 보내드렸으니까. 무엇보다 가족들이 언젠가 그 의미를 깨달을 때가 오기를 바랐다. 

하지만 또 부인할 수 없는 건, 역시 인터넷이란 무한 공간의 한계는 여기까지인가? 그토록 거의 매일 댓글을 달고 소통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물만두님을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눈물 한방울 나오지 않을 수 있을까? 애꿎은 나의 눈만 나무랐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역시 물만두님과 나. 우리는 친구 맞다. 

이렇게 허전한 것을 보면. 이렇게 그리운 것을 보면. 그리고 편집자님으로 인해 나의 눈물샘이 자극을 받는 것을 보면 말이다.

무엇보다 물만두님으로 인해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알라디너들을 만나게 되었으니 이것 또한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물만두님, 알라딘에 오랫동안 둥지틀고 있다보니 제가 이런 호사도 누려보는군요. 다 당신과 나의 홍복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물만두님께 말을 건네 본다.

 

거기서 수니나라님도 진우맘님도 만났고, 수암님도 뵈었으며, 따우님도 봤다. 그리고 처음으로  파란여우님도, 수선님과 바람돌이님, 인터라겐님도 먼발치에서 눈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하이드님도. 다 한때는 서재활동을 열심히 했다는 이유만으로 서로 인사하고 댓글을 달았던 분들이다. 하지만 언제나 인간관계가 그렇듯 밀물처럼 한때 가깝게 지냈다가 또 썰물처럼 멀어진다. 만나고 헤어짐도 일종의 순환은 아니겠는가.  

나는 한때 오프 모임에 간간히 얼굴을 비쳤던 사람이란 사실을 감추고 그냥 서재활동이나 하고 책이나 사면서 이럭저럭 지낼 사람이었다. 하지만 사람은 또 어느 때 어떻게 다시 만나질지 모르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물만두님 때문에 이분들을 다시 만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정작 당신은 만날 수 없으면서 당신의 이름으로 이렇게 모이다니. 과연 한 사람의 열정은 이렇게도 발현이되는 거로구나. 새삼 물만두님이 커 보였다. 그리고 인연은 소중한거로구나 했다.

 

안네의 일기처럼...        

 

그 님인들 이렇게 될 줄 알았겠는가.

물만두님의 사진이 담긴 영상을 보고 있는데 여기 저기서 훌쩍거리는 흐느낌이 들려왔다.

참석한 알라디너를 대표해 파란여우님과 조선인님의 간단한 추념사가 있었는데, 이분들도 목이 매어 첫번에 맡겨진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사회자한테 자꾸 다음을 넘기다가 겨우 그 일을 해냈다. 

정말 나라도 그러했을 것이다. 

나는 수니나라님 옆에 앉았는데, 수니나라님은 시간 내내 내 손을 간간히 잡아주시곤 했다. 그런데 그분의 손이 유독 따뜻했다. 나는 또 한 번 상념에 젖었다. 만일 물만두님이 여기 계셨더라면 이렇게 따뜻하게 나의 손을 잡아주셨을까?  

 

그리고 예정된 시간 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만두님의 두 동생 만순님과 만돌님을 멀리서 볼 수 있었다. 누가 봐도 동생들이시구나 딱 알아볼만했다. 얼굴에 슬픔이 가시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전날은 물만두님의 1주기였고, 그날은 자랑스럽지만 그분의 모든 것을 기억하게 만드는 출판을 기념하는 자리가 아닌가. 지나간 모든 시간이 슬픔으로 아로새겨졌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잊기까지 드는 시간은 얼마만한 것일까. 아마도 저분들께는 올 한 해가 참 느리게도 지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더 그런 시간이 보내야 할지 모를 일이다. 아마도 그 시간은 언제나 지속될 것만 같으리라.

'그러지 말아요. 언니는,  누나는 거기서 잘 있을 거예요.'

그분들을 향한 나의 텔레파시가 좀 터져줬으면 좋겠다. 

 

시간이 진행이 되면서 참석한 출판 관계자 어느 분이 물만두님의 리뷰와 페이퍼를 대하는 순간, 안네의 일기를 생각했다고 했다. 안네도 자신의 일기가 세상에 공개될 줄 알고 일기를 써왔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냥 하루 하루 일기를 썼고 자신의 꿈을 써 내려갔을 것이다. 그런 것처럼 물만두님도 그냥 추리소설이 좋고, 글 쓰는 것이 좋아 알라딘 자신의 서재에 글을 썼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순수했으며, 솔직했으며, 따뜻했다.

 

그렇지 않아도 나는 카페에 들어서면서 물만두님의 책부터 찾았는데, 에세이집은 차치하고라도 그분의 리뷰집 <물만두의 추리책방>은 제법 묵직했다. 무려 200권의 책에 대한 리뷰가 실려있으니 그럴만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물만두님이 평생 써 오신 리뷰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작은 숫자에 불과하다. 무려 1800여편 중 추리고 추려서 200편을 실은 것에 불과하니까. 그러니 편집 과정의 고충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갈 것도 같다.

 

편집 과정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물만두님은 평소 리스트를 잘 만드셨다. 그 리스트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피가 튀지 않는 추리소설 모음. 임산부, 노약자들도 볼 수 있는 추리소설 등. 아주 소소하고, 인간적인 리스트다. 그것은 본인으로선 재미삼아 만든 것이겠지만 그것이 추리소설계로 봤을 때는 하나의 로드맵을 그린 결과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물만두님은 언젠가 추리소설 볼 줄 모르는 나를 위해 나만의 리스트를 만들어 주신 적도 있다. 그것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정말 대단하시다란 생각을 새삼 다시했다.

 

참석한 어느 분은 물만두님 리뷰집은 일본어로 번역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전달했다.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추리소설은 발달이 됐지만 이런 전문 리뷰집은 거의 전무할테니, 그것은 확실히 생각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우린 겨울을 사는 것 같아도...

 

시간은 한 시간 반 정도 진행이 되었다. 

앞에 저녁도 못 먹고 달려왔을 사람들을 위해 간단한 식사 시간을 배치해 둔 것을 감안할 때 실제 시간은 한 시간 정도에 불과했다. 조금 더 길었으면 좋았을 것을. 아쉬웠다.

끝에 만순님과 만두님이 나와서 인사하는 시간이 잠시 있었다.

만순님은 목이 메어 한 말씀도 하지 못셨고, 대신 만돌님이 인사를 했다. 인사 끝에, 누나의 책을 몇 주 전 받았지만 감히 읽어 볼 용기가 나지 않아 아직도 못 보고 있다고 했다. 그 마음 충분히 알 것 같다. 하지만 우린 지금 겨울을 사는 것 같아도 봄을 향해 가고 있다. 그처럼 지금 그분들의 마음이 사무치도록 시리겠지만 어느 땐가 그 마음에도 봄이 깃들지 않을까? 그때가 되면 조금은 편하게 누나의 책을 펼쳐 볼 날도 있지 않을까? 비록 또 울게 될지라도 말이다. 

그분들께 그런 날이 오길 바라면서 아쉽지만 일별을 고하고 그 자리를 나왔다. 나오면서 두 동생분의 손을 따뜻히 잡아주지도 못하고, 변변히 고개숙여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나왔다. 이놈의 주변머리는 물만두님의 장례 때도 붙잡더니 끝끝내 동생분들 앞에서도 제 기능을 발휘해 주지 못했다. 죄송한 일이다.

 

대회를 넘어 축제가 되기를... 

 

물만두님은 처음부터 추리소설 전문 리뷰어가 아니다. 

좋아하는 것 하나만으로 일가를 이루었고, 지도를 만드셨다.

참석한 어느 분도 그런 말을 했지만, 책을 읽고 리뷰를 쓴다는 것은 나름 적지 않은 노동을 요구한다. 건강한 사람도 그럴진데, 물만두님이나 그에 못지 않은 불편한 몸을 가지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들은 얼마만한 고된 노동을 필요로 할까 가늠하기가 어렵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다. 그저 나 좋아서 하는 일일뿐이다. 하지만 그 일이 훗날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지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오늘 쓰는 나의 한편의 리뷰는 나만을 위한 일이 될 수가 없다. 좀 더 공들여 열심히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세상은 전문가의 주례사에 치중한 그런 리뷰는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 물만두님 같은 숨은 리뷰어의 솔직 담백한 리뷰를 더 가치있게 보는 시대가 왔다. 그것은 나 같은 잡스러운 리뷰를 쓰는 사람에게 얼마나 도전이 되는 일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누구라면 알만한 알라디너 한분이 독자적으로 물만두님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독자적으로 이벤트를 진행중이다. 반갑고 감사한 일이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알라딘에서는 제2회 물만두 리뷰대회를 한다고 한다. 갑자기 몇년 전,  더블린에서는 해마다 제임스 조이스 문학 축제를 연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있다. 그 기사를 본 것만 해도 몇 백년을 이어오는 전통있는 모임이라고 한다. 그것이 처음에 어떻게 어떤 모양으로 시작이 됐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제임스 조이스를 좋아하는 어느 독자(들)로부터 시작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어느 특정 작가나 장르의 문학이 좋아서 자발적인 축제를 열 수 있는 그 나라 국민의 저력이 새삼 부러웠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선 그와 비슷하게 물만두님이 그 초석을 다져놓고 가신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바라기는 알라딘이 하는 일에 구경만 하지말고 물만두님을 사랑하는 분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도움을 줘서 대회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축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모임을 갖다와서 <별 다섯 인생>이란 책을 조금 읽었다. 거기에 보니 생전의 물만두님이 서재에, 자신은 가장 오래남는 별이 되겠다고 했던가? 암튼 그런 말을 써놓으셨었나 보다. 이제 그 예언은 성취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만두님은 저 세상에서도 분명 기뻐하실 것이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립간 2011-12-16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tella09님이 마음이 잘 담겨있는 글입니다.

stella.K 2011-12-16 16:48   좋아요 0 | URL
아, 고맙습니다. 마립간님.^^

이진 2011-12-16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주기 추모행사 가셨군요, 스텔라님
저야 한 번도 물만두님을 온라인 상으로도 뵌적이 없으니,
리뷰와 페이퍼만으로 접해야하니...

오랜만에 글에 푹 빠져 읽었습니다 ㅎ

stella.K 2011-12-17 14:52   좋아요 0 | URL
뜻깊은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2011-12-16 1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17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우맘 2011-12-17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년 전 뵈었던 모습하고 고대로...깜짝 놀랐어요.^^ 앞으로 종종, 서재에서라도, 뵐게요.

stella.K 2011-12-17 14:58   좋아요 0 | URL
그대도 예전 모습 그대로던데요 뭐.
그래요. 종종 만나요.^^

2011-12-17 2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18 16: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세이>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이번 달엔 알라딘 평가단 에세이 부문에서 성석제의 <칼과 황홀>과 문화계 인사들이 자신의 삶에 힘을 줬던 음식들을 소개하는 <소울푸드>가 선정이 돼서 독서 대기중이다. 공교롭게도 음식에 관한 책이 두 권씩이나 선정이 돼서 약간의 쏠림 현상을 맛봐야 할 것 같은데, 이것은 지난 번에도 비슷하게 경험이 되어서 아무래도 이런 식으로 선정이될 모양인가 보다. 이를테면 비슷한 류의 책이 선정되는 것. 약간 아쉽긴 하지만 불만은 없다.  

요즘엔 연말이어서 그런지 딱히 바쁘다고도 말은 못하겠는데, 괜히 마음이 부산스러워 뭐 하나를 진득하게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럴까? 가뜩이나 늘 읽어야할 책을 산더미 같이 쌓아놓고도 읽지 못하고 있는데 그래도 짬짬히 평가단에서 보내 준 책에 손이 간다. 그것도 <소울 푸드>가. 뭐 유명한 사람만 입이냐, 그런 생각도 없지 않지만 이런 불만을 잠재우는 건 책 간간이 보여주는 이우일의 그림이다. 이우일의 작품을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뭐랄까, 도회적이면서도 쓸쓸하고 그러면서도 그 특유의 익살스러움이 가미가 되어 있다.  그게 확실히 읽는 맛을 더하게 한다.
빨리 본격적으로 책을 붙들어야 할 텐데, 현재 읽고 있는 책이 나를 여간해서 놔주질 않는다.  

평가단에서 새책을 받으면 뿌듯하고 기분이 좋은데 받으면 곧바로 주목하는 신간을 올려 달라는 공지를 받아 확실히 모든 것엔 공짜는 없구나를 실감하게 된다.
아무튼 오늘도 평가단의 임무를 수행하는 수 밖에.  

김탁환의 <원고지>

지금 내가 가장 읽고 싶은 책은 '김탁환의 원고지'다.
이런 나를 보면 누구는 글쓰기 책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작가들의 글쓰기에 관한 책은 나의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내가 이 분야의 책을 얼마나 많이 읽고, 지금도 대기하고 있는 책이 얼마나 많은지 모를 것이다.
어찌보면 이런 책은 작가들이 글쓰기 비법에 관해 천기라도 누설해 주는 것 같은 착각이 되기도 하는데, 이런 책은 많이 읽는다고 해서 글이 절로 잘 써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책 10권 읽는 것 보다 매일 세 시간씩 책상 앞에 앉아 꾸역꾸역 쓰는 것이 훨씬 낫다.  

하지만 이런 작가들의 글쓰기에 관한 책은 천기까지는 누설해주지는 않더라도 묘한 마법 같은 것이 있어서 이상하게 읽고 있으면 뭔가의 기를 받는 것 같고, 글을 쓸 용기가 생긴다. 
이 책은 얼핏 까뮈의 <작가수첩>을 연상케도 하는데 꼭 이번 달 서평도서로 선정되길 간절히 빌어본다.  

강민석의 <바람이 속삭이는 너의 이름을>

      
 내가 거의 유일하게 자주 듣는 라디오 프로가 있다면 그건 '정은아의 세상에 모든 음악'이다. 이 프로는 아주 오래 전 탈렌트 김미숙 씨가 할 때부터 들어왔는데, 진행자가 바뀔 때마다 뭐 하나의 코너가 새롭게 신설이 되곤해 귀를 한층 더 예민하게 자극한다.
얼마 전, 치매에 걸리지 않으려면 잘 안 들어 본 음악을 들어보라고 하는데, 또 그러려면 수요일 날 세상의 음악에서 7시쯤 진행하는 강민석의 '세상의 골목에서 음악을 듣다(맞는지 모르겠다)' 코너를 들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시간을 들으면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세계 음악을 들을 수가 있다. 
그런데 강민석 씨의 목소리가 참 묘한 매력이 있다. 
처음엔 남자 목소리치고 힘이 없는 목소리라 그닥 끌리지는 않는다. 그런데 가랑비에 옷젖는다고 듣고 있으면 묘하게 빠져드는데가 있다. 듣고 있으면 왠지 차분하고 인간적인 것이 어떻게 생긴 사람일까, 꽤 궁금하게 만든다. 물론 라디오라는 매체가 원래 호기심 천국 아닌가. TV에도 나오는 사람은 그닥 궁금하지 않은데, 이렇게 목소리만 들려주는 사람은 좀 궁금하다. 약간 신비주의 내지는 은둔형의 사람 같기도 하고. 책엔 그의 사진이 나와 있으려나? 그럴수도 있겠지. 아무튼
그의 목소리는 정말 바람과 함께 들으면 속삭이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다. 그래서 책 제목을 그렇게 붙였을까? 그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준다면 정말 깜빡 넘어갈 것도 같다.
이 사람은 가수 출신이기도 하단다. 노찾사의 멤버라나 뭐라나. 그 시간 그가 조근조근 쏟아 놓는 얘기가 거의 평론가 수준을 방불케 한다. 아니 어쩌면 진짜 평론가인지도 모르겠다. 글은 또 어떻게 쓸까? 그가 풀어놓는 음악 얘기를 들어보고 싶다. 쓰느라 애 좀 먹었다고 엄살도 부리더만. 정말 부릴만도 했는지 직접 확인해 보고 싶다.  

김태원의 <우연에서 기적으로> 

 뭐 이왕 알라딘 평가단이 비슷한 류의 책을 선정할 것 같으면 그것에 부응하기 위하여, 위의 책과 함께 비슷한류의 책 한 권을 더 얹어 보는 것은 어떨까? 위의 책이 음악 자체에 대한 책이라면, 이번엔 음악하는 사람 이야기다. 그것도 우리가 잘 아는 국민할매라는 김태원 씨의 이야기.
가끔 멋있는 사람이 멋있게 폼잡고, 멋있는 이야기만하면 그도 나쁘지 않지만 가끔은 그도 과유불급이어서 오히려 거부감을 일으킬 때도 있다. 멋있는 사람은 약간의 언벨런스적인 것이 있어야 멋있다. 그래야 인간적이란 말을 듣는다. 그런데 인간적인 사람은 꼭 멋있을 필요는 없다. 그냥 그 자체만으로도 좋은 인상을 주니까.
그동안 김태원의 이야기는 TV에서 간간히 소개되긴 했다. 그의 이야기는 드라마로도 나왔을 정도니까. 무릎팍 도사에도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이제 책으로 나왔으니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걸까? 그때 드라마로 나왔을 때는 스타일이 좀 떨어져 보다가 말았다. 책으로 그의 음악과 인생을 읽어보고 싶기도 하다.    

그 밖에... 

미셸 투르니에는 가장 지적이면서도 즐겁게 글을 쓰는 몇 안되는 작가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가 상상력에 관한 글을 썼다면 그건 믿을만할 것이다. 아주 오래 전 어떤 문예지에 소개된 그의 단편이 얼마나 인상 깊었던지 정말 감탄할 정도였다. 그만큼의 상상력이 있지 않으면 그런 글을 쓸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더랬다. 읽어보고 싶다. 미셸 투루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 

손철주는 말할 것도 없다. 특히 <다, 그림이다>는  서양 미술사학자 이은주 씨와 함께 썼다는데, 손철주 씨는 한국화에 탁월한 혜안을 가진 분으로 알려져 있다. 이 서로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어떻게 글을 썼을지 심히 궁금하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진 2011-12-06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간평가단 정말 힘듭니다...
그동안 너무너무 이 높은 고지에 오르고 싶었는데
막상 오르고보니 정말 힘들어요.
역시 모든일에 공짜는 없지요 ㅎㅎ

이번에는 왠지 무라카미하루키의 잡문집이랑
김탁환의 원고지가 선정될 것 같아요.
에쿠니 가오리 정말 읽고싶은데
선정안되면 제가 사야지요.
지금도 사고싶은데,
신간평가단 중복될까봐 걱정되서 손을 못대고 있지요 ㅋㅋ

stella.K 2011-12-06 19:27   좋아요 0 | URL
하루키의 잡문집이 선정되면 안되는데.
저 그거 선물 받아 가지고 있단 말예요.잉잉~
그런데 되기는 또 좀 어려울지 싶어요.
하루키는 나오기만 하면 베스트셀러라 그걸 평가 도서로
선정되는 게 밑지는 장사 같잖아요.
저라면 괜찮은 책인데 왠지 인기가 없을 것 같은 책 선정할 것 같아요.
그 기준도 애매하긴 하지만.
아, 맞다. 하루키와 김탁환의 책 비슷한 꽈잖아요. 될 수도 있겠다.
평가단 비슷한 색깔로 묶는 꼼수가 있어서리.흑~
여튼 난 김탁환과 강민석, 손철주 중 둘이되길 바랄뿐입니다.

이진 2011-12-06 20:23   좋아요 0 | URL
아하, 그런수가 있군요.
하루키는 평가가 필요없는 베스트셀러작가니..
출판사에서 안 해줄수도 있겠네요 :)

에쿠니가오리요! 하아,

blanca 2011-12-06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간평가단이 리뷰만 쓰는 게 아니군요. 정말 쉽지 않아 보입니다. <세상의 모든 음악> 저도 꼬옥 듣는 음악프로그램이에요. 김미숙씨 할 때부터 들었고요. 강민석 씨 목소리에 대한 감상 완전 공감해요 ㅋㅋ 처음에는 졸립다고 생각했는데 배경으로 깔아도 될 정도로 무언가 거슬리지 않고 안정감을 주는 독특한 매력이 있더라고요. 미셀 투르니에 단편이 궁금해지네요. 스텔라님 페이퍼 읽다 보면 마치 스텔라님이 얘기해 주시는 것 같아요. 어떤 목소리일까, 궁금합니다.^^

stella.K 2011-12-07 11:35   좋아요 0 | URL
오, 정말요?ㅋㅋ
목소리는 멋있다고는 하는데 아주 여성스럽지만은 않죠.
사실 저도 블랑카님 어떤 분이실지 궁금해요.
언젠가 블랑카님 신문에 난적 있으시죠?
그때 사진 보고 정말 미인이시구나 생각했죠.
얼핏 이영애가 연상되는...!
미셸 투르니에 단편 제목이 생각이 안나요.
어딘가 쑤시고 찾아보면 있을 것도 같은데.
보면 알려드리죠.^^

아이리시스 2011-12-08 01:54   좋아요 0 | URL
저도 블랑카님 봤어요. 닉넴이 같아서 이후 알라딘에 와서 같은 분일까 궁금했는데 맞나 봐요. 이영애가 연상..^^

hnine 2011-12-07 0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탁환의 <원고지>는 제가 지난 달에 읽고 싶은 에세이로 올렸었는데 선정이 안되었어요 ㅠㅠ
세상의 모든 음악은 예전에 저도 잘 들었었는데 이젠 어느 시간대에 라디오를 들을 상황이 되느냐에 따라서 듣는 프로그램이 정해지는 것 같아요. 그 시간대에 보통 주부들은 라디오 듣기가 어렵거든요. 강민석이란 분은 어떤 분일까요? '노찾가'라고 하셨는데 '노찾사'아닌가요 혹시?

stella.K 2011-12-07 11:37   좋아요 0 | URL
그렇지 않아도 지난 달 올리신 것 봤어요.
그런데 10월 발행된 책중에서 올려야 하는데
그것만 한달 앞서 가셨더라구요.
이번엔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또 오타가 났네요. 저는 바담풍해도 h님은 바람풍하시는 센스!
좋습니다.ㅋㅋ


2011-12-07 2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08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1-12-09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셸 투르니에 책이 탐나는군요. 제목도 좋은데요,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이라...

신간평가단, 너무 어려워 보여요. 시간에 쫓기며 하는 일, 저 같은 사람은 엄두도 못 내요. 게을러서요. 그리고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부지런 떨고 싶지가 않아져요.
님 덕분에 책 소개를 잘 읽고 ... ㅋ 책 구경 잘 하고 가염.

stella.K 2011-12-10 10:48   좋아요 0 | URL
저는 좀 부지런하게 살 필요가 있는 것 같아서
평가단이 됐는데 그러다 보니 사 놓은 책을 안 읽게되는
부작용을 격고 있습니다.
다음 번에도 평가단을 계속 해야되나 말아야 하나 고민 중입니다.
소설 분야는 제가 편식이 심해 보내주는 책은 아주 좋아만 할 수는
없을 것 같고, 인문이나 예술 분야 역시 편차가 심한 것 같고,
만만하기는 에세이나 자기계발 분야 같은데 이 분야에 대한 유혹이
만만치 않은 것 같아요.
이번에 나온 미셸의 책 좀 심하게 탐나긴 해요.^^
 

무슨 칼럼집이 뭐 이리 어려운가? 웬만한 대학 교수 강의집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긴, 내가 칼럼집을 거의 읽지 않으니 칼럼집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 요즘엔 웬만한 잡글 가지고도 '칼럼'이라고 이름 붙이길 서슴치 않으니, 도대체 뭘 가지고 칼럼이라고 해야 하는건지, 그 정의가 모호해진 느낌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글이라면 과연 칼럼은 칼럼이겠다 싶다.  무엇보다 심층적이고, 일정 정도의 격을 갖추고 있으며, 생각할 거리를 준다.  하지만 일반인에게 쉽게 다가가는데는 조금은 실패하고 있지 않나 싶다. 
그래서 그동안 <한겨례21>의 '만리재에서'란 타이틀을 가지고 써왔던 저자의 글은 어느 정도의 지식층, 교양인들이라 자부하는 사람들에게만 통용됐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요즘 세상이 하수상하여 일부러 뉴스와 신문을 보지 않는다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것이 결코 옳은 태도는 아니겠지만, 이해 못할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렇게 뉴스도 신문도 보지 않겠다는 사람이 많은데 하물며 칼럼이라고 읽을까?  물론 뉴스나 신문은 보지 않아도, 칼럼은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서민이 친근감있게 읽을 수 있는 칼럼을 쓸 수는 없을까? 물론 이런 글도 읽기 나름이고, 이해하기 나름인 것 같다. 어떤 이는 이 책이 너무 좋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렇다면 내가 칼럼을 보는 눈을 키워야 했는지도 모르지. 
폐일언 하고, 책을 읽다 다른 것은 다 좋다.하고 넘어 갈 수도 있어도, 왠지 이것만은 좀 아니다 싶은 것이 있어 글을 써 본다. 어차피 글이란 게 소통을 위한 것이니만큼, 모두 다 좋다는 건 있을 수 없으며, 모두 다 아닌 것도 없다.  모든 것이 좋고, 모든 것이 나쁘다고 말하면 그건 진정한 의미에서의 소통은 아닐지도 모른다. 어차피 소통은 아닌 것과 그런 것의 혼재속에서 길을 찾아야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이니 이해하시라. 

내가 먼저 제기하고 싶은 건, 저자가 사형에 대해 썼던, <머나먼 인권 선진국>이란 제목에 '헌재여, 자백하시라'라는 소제목과 관련하여(242p), 난 좀 아닌데 싶어 글을 써 본다.    

본 칼럼이 진보주의적여서 그런가, 그 글은 사형제도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폐지를 촉구하는 글이었다. 때론 진보가 보수보다 멋져 보이긴 하다. 하지만 난 지난 시기 두 편의 영화를 보고 이것만큼은 신중해야 한다는 쪽에 서게 되었다. 그것은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란 영화와, <집행자>란 영화였다. 물론 이 두 편의 영화를 보기 이전에 내가 사형을 폐지하는 입장이었는지, 그것조차 확실하지 않을 정도로 난 이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보자면, 엄밀한 의미에서 누구도 사람의 생명을 심판해서 인위적으로 죽게 만들 수는 없다. 그렇게 보자면 사형은 폐지되어야 마땅하다. 그리고 이 두 영화는 바로 그 선상에서 관객들에게 묻는 영화하고 볼 수가 있다.
하지만 난 바로 이 점 때문에 오히려 폐지를 반대하거나 적어도 신중해야 한다는 쪽에 서게 되었다. 만일 그 두 편의 영화가 오히려 흉악범의 피해자와 그의 가족들의 문제도 다루었다면(그건 스토리상 현실적으로 불가능 했으리라) 폐지쪽에 더 많은 설득력을 지녔을지도 모를 일이다.
두 영화 중 하나는(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피해자의 가족이 가해자를 용서한다는 쪽으로, 좀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 않았고, 특히 가해자를 사슴같은 모습으로 설정해 관객들로부터 더 많은 측은지심을 유도했다. 하지만 가해자가 다 그런 모습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또, 영화 <집행자>인 경우 사형집행자가 얼마나 고통속에 사형을 집행하는지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애를 썼다. 물론 그들의 고충이 어떠한지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 때문에 사형을 폐지해야 하는가에 무게를 싣는다면 그것 역시 고려해 봐야할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두 영화의 경우, 제작자측에선 그냥 사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문제제기를 한 것뿐이지, 정말 폐지하지는 것은 아니라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서는 입장을 취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두 영화가 이 문제에 포문을 연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으리라.
그런데 이 책 역시 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나는 몰랐던일인데, 지난 1996년, 사형이 위법이냐 합번이냐를 두고 법률심판이 있었는가 보다. 저자는 바로 그 글에서('머나먼 인권 선진국'이란 글) 이상갑 변호사의 말을 인용했다.       

"한 나라의 문화가 고도로 발전하고 인지가 발달하여 평화롭고 안정된 사회가 실현되는 등 시대 상황이 바뀌어 생명을 빼앗는 사형이 가진 위하(위협)에 의한 범죄 예방의 필요성이 거의 없게 된다거나 국민의 법감정이 그렇다고 인식하는 시기에 이르게 되면 사형은 곧 폐지되어야 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벌로서 사형이 그대로 남아 있다면 당연히 헌법에도 위반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이다." 

요컨대, 저자는 이 변호사가 이런 말을 한지 14년이 지났는데도 이 말은 여전히 유효한 채 우리나라의 사형제도는 바뀔 줄 모른다는 것을 지적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외국의 꽤 많은 나라의 예들 들어 그 나라들은 이미 사형이 폐지 되었음을 알리고 있다(243~235p). 물론 저자가 지적한 나라 중 몇몇 나라는 우리나라 보다 잘 사는 나라도 있지만, 또 적지 않는 수가 우리나라만 하거나 그 보다 못한 수준의 나라들도 언급하고 있다. 말하자면 우리나라 보다 못한 나라도 문명화 하는 과정에서 사형을 폐지하고 있는데, 왜 우리나라는 그 보다 잘 살면서 이 문제를 아직도 매듭짓지 못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정확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내가 듣기론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5년인가 하는 세월 동안 단 한 건의 사형도 시행한 적이 없었다고 들었다. 그럴 경우 세계 인권 협약에 따라 자동적으로 사형 폐지국가가 된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지도 몇년 전의 일이니 또 모를 일이다. 그 안에 사형이 집행된 적이 있는지는. 아무튼 그것이 정확한 것인지 아닌지는 차치하고라도, 내가 말하려 하는 것은, 무엇이 인도주의고 인권인지, 또한 저자는 사형 폐지국에 대해서만 나열하고 있을 뿐 논리적 설득은 없어 보였다.  

물론 엄밀한 의미에서 사람이 사람을 죽일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므로 죄를 물어 사형을 집행한다는 건 옳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먼저 위반한 쪽은 가해자, 흉악범들이다. 또 그들 때문에 무고한 생명이 피해를 입고, 말할 수 없는 고통속에 살아가는 사람은 피해자의 가족들이다. 그런데 그들의 희생, 고통은 외면한 채, 무조건 사형수의 편을 들어 사형 폐지를 주장하는 것이 과연 인도주의일까? 용서에는 조건이 따르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상갑 변호사가 했던 말은 확실히 음미해 볼 필요는 있다. 문화가 고도로 발전하고 인지가 발달하여 평화롭고 안정된 사회가 실현된다면, 범죄 예방의 필요성이 거의 없게 된다거나 국민의 법감정이 그렇다고 인식하는 시기에 이르게 되면, 사형은 정말 없어져야 할 제도임에는 분명하다. 아니 적어도 우리나라에 교도 정책이 바로 실현이 되어서 흉악범의 재범이 확실히 없는 것이 확인되기만 해도 이건 고려해 봄직도 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상갑 변호사의 말에 우리는 긍정할 수 있을까? 알다시피, 범죄는 줄어들지 않고 갈수록 고도로 지능적이 돼 가고, 흉악해져 가고 있다. 형을 치른 죄수가 교도소에서 나와 다시 피해자를 찾아가 이전 보다 더 흉악한 방법으로 범행을 저지르고 있다.
적어도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정신적 충격과 상처는 치료가 되야하는 것이 아닌가? 사형 폐지국에 대해서만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이상갑 변호사가 제시한 조건이 얼마나 충족되고 있는가에 대한 자료 정도는 확보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사형수의 인권만 인권인가? 피해자도 인권이 지켜져야 한다. 자기 자신도 못 믿는다는 세상에서 사형만 폐지하면 과연 이 나라의 범죄율은 떨어지게 되는 것일까?  
사형 폐지를 주장하려면 반대로, 사형을 존속하는 나라도 있을 것인데 그 나라가 왜 아직도 존속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도 없이 사형폐지를 말한다는 건 어패가 있어 보인다.  
이렇게 쓰는 나는 사형을 존속시키거나 적어도 신중해야 한다는 쪽인데, 그 중 한 가지 이유를 더 들자면, 사형이 없어져도 범죄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렇지 않아도 많은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확률이 높다. 사형이 없어지면 종신형이라는 말인데, 그렇지 않아도 묻지마 살인도 많은데 사람들에게 마구 칼을 휘둘러도  종국적으로 받는 형은 고작 종신형인데, 될대로 되라는 식의 인생을 버린 사람들에게 교도소에서 평생을 산다는 건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리고 그런 흉악범은 넘쳐날 것이다. 그렇다면, 내 생명이 중하면, 남의 생면도 중한 법이라는 걸 무엇으로 깨닫게 할 것인가.
또 그와 반대로, 설혹 자신의 죄를 깨닫고 죄책감 때문에 죽고 싶은데 죽을 수 없다면 수 없다면 자그것도 부조리 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요즘 존엄사도 이슈가 되고 있는데, 깨끗하게 죽을 권리가 사형수에게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무조건 살리는 것만이 인권인가도 따져 보아야 하는 것이다. 

사실 어찌보면, 저자가 이상갑이라는 변호사의 말을 들먹였던 것은, 대조를 이루기 위해 인용한 것 같지는 않고, 이런 말만 남겨놓았을 뿐 이후 가타부타 별 말이 없더라며, 헌법재판소의 우유부단함을 꼬집었다. 물론 헌재의 그런 태도가 못마땅한 것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헌재는 이 문제에 적극적이지 않으면서 사형이 형식적으로나마 존재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까. 저자 는 또 2009년도 크리스마스이브 그러니까 12월 24일은 헌재가 사형제의 위헌 여부를 가리는 날이었다고 한다. 당시 59명의 사형수의 생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인권 수준을 다시 한 번 세계에 공표하는 날이라고 했는데, 과연 그걸 그렇게까지 과대해서 말할 필요가 있는 것인가 오히려 의문스럽다. 저자가 밝힌 나라가 사형을 폐지했다고 우리나라도 폐지해야 한다는 건 그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고 문명화 되지 못했다고 하는 건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런지.  

사실 앞서 영화 <집행자>의 말을 하다가 말았는데, 사실 사형집행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조선 시대 이후 없어진 백정이란 직업이 현대의 교도관이란 직업에 덧씌워지는 걸 원치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는 이유만으로 아직 사형이 폐지되지 않은 이 나라에서 법을 집행하지 않는 건 법을 유기하는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법이여, 인권이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다.  

저자는 인권을 다룬 쳅터에서 이 문제를 칼럼으로 다룬 것인데, 저자도 생각을 가진 인간으로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는 있지만,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다른 건 몰라도 이 문제는 좀 더 중도적 입장에서 글을 쓸 수는 없었을까,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사형이 존재 하므로 인해서 죽지 않아도 될 생명이 죽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난 앞서 말했지만 폐지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이리시스 2011-11-14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도는 살려놓고 집행은 신중하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최선이에요, 그쵸? 다른 해결책 찾기가 힘든 것 같아요. 끔찍한 범행들이 많아지고 있으니까요. [집행자]는 일부러 봤는데 생각보다 재미가 없어서 아쉬웠어요.ㅋㅋㅋ 이런 초딩 영화감상법. 푸하하.

주말 잘 보내셨어요, 스텔라님?

stella.K 2011-11-14 16:48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런데 사형제도 철폐하자는 사람들
정당하고 논리적이지도 못하면서 왜 무작정 철폐만 하자는 건지
모르겠어요. 철폐하면 안 되는 이유가 더 많은데...
집행자도 그렇고, 우행시도 그렇고 내러티브도 약하고,
사람의 감정에만 호소하고 있어 솔직히 저도 보고나서 찝찝했어요.

전 주말 그럭저럭 보냈어요. 아이리시스님도 잘 보내셨죠?^^

이진 2011-11-14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주위에는 사형제도를 나쁘게만 보는 사람들이 천지입니다 ㅜ 그래서 제가 아무리 "사형 제도는 꼭 필요하지!" 라며 말을 늘어놓아도 무시당하기 일쑤지요. 법은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라는 말을 많이 듣는데, 아무리 미워하지 않고자 해도 미워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 없지요. 스텔라님의 말처럼 사형제도가 없어진다면 범죄수가 급증하지 않을까요... 두렵습니다.
어젯밤에 갑자기 든 생각이지요.. 싸이코패스는 집에 쳐들어와서 내가 옷장이 숨으면 나올때까지 밖에서 기다린다는... 그런 상황말이지요.. 소름돋습니다 ㅠㅠ

stella.K 2011-11-15 13:45   좋아요 0 | URL
또 이런 생각도 해 봐요. 사형이 없어지면 피해자도 가해자로 돌변할 수도
있죠. 그럼 더 많은 범죄가 생길거라고 봅니다.
제가 어느 정도 정리해 드린 셈이니 다음 번에 또 친구들과 토론할
기회가 있거든 이렇게 토론해 보세요.

페크pek0501 2011-11-14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길수가...ㅋ 힘드셨겠어요. 워드작업만으로도 시간이 꽤 걸렸을 글이네요. ^^

사형제도,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저도 공지영의 우행시를 책으로 읽었는데 그래도 판단을 못 하겠더라고요. 정말 신중해야 할 듯...

stella.K 2011-11-15 13:46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게요. 갈수록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ㅋ
그래도 뭐 알만한 내용이니 읽는데는 어렵지 않으셨으리라고 봐요.
그리고 긴 글 읽어 주셔서 고맙구요.^^

마태우스 2011-11-14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면밀한 분석이 돋보이는 글입니다. 저 역시 사형제 폐지엔 반대입니다. 글구 집행자라는 영화 님도 보셨군요 그거 몇 명 안본 줄 알았는데...윤계상이 거기 나오죠 아마. 그 영화를 보면서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참 징한 일이구나" 싶었답니다. 근데그 영화가 사형을 반대하는 취지였는지는 모르겠네요. 사형집행에 대해서 어떤 외국의사 분도 글을 쓰셨는데요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건 모든 이가 부담스러워한다는 걸 깨달았답니다.

stella.K 2011-11-15 13:54   좋아요 0 | URL
에이, 분석은요...
평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냥 삘 받아 정리하듯 쓴 것뿐이어요.
그렇죠. 참 징한 일이죠. 하지만 그런 일에 영적인 의미를 부여해
주면 어떨까 싶기도 해요.
카톨릭에선 신부가 사람의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잖아요.
그런 것처럼 사형을 집행하는 것도 같은 선상에서 본다면 조금은
마음을 다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가끔 사극에서 백정이 죄인의 목을 치기 전에 한바탕 춤을 추잖아요.
일종의 제의 같은 거란 생각을 해봐요.
백정을 알고 보면 거룩한 직업일 수도 있겠다란 생각을 해 보죠.
사람을 이승에서 저승으로 보내는 사자의 일 같은.
하긴 뭐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도 말씀하셨던데로 여러모로
부담스럽고 괴로운 일일 거예요.
저는 '집행자' 그런 취지로 봤는데...아닐 수도 있었을까요?ㅋ

마태우스 2011-11-15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아닐 수도 있고, 그럴 수도 있는데, 반대하는 면이 더 많았겠지요.
참고로 이 영화의 주연을 맡은 윤계상은 자기보고 아이돌 운운하는 기자에게 짜증을 내면서
"연기한지가 언제부턴데 아직까지 그 소리를 하느냐"고 했지요.
집행자에서의 연기는 그 말이 부끄럽지 않게 괜찮았구요, 그 뒤 풍산개와 하이킥에서 연기하는 걸 즐거운 마음으로 보고 있습니다. 윤계상 화이팅

stella.K 2011-11-16 11:59   좋아요 0 | URL
윤계상 전 눈에 잘 안 들어왔는데
지난 봄에 했던 <최고의 사랑>인가?
거기서 연기 좀 잘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확실히 아이돌 티를 벗으니까 연기를 잘 하는 것 같아요.
이 영화에서도 연기를 곧 잘했죠.
지켜보고 싶은 배우예요.^^

노이에자이트 2011-11-16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형제 폐지론과 존치론을 자세히 정리해보려고 하는 중입니다.그런데 위의 댓글 중 '사형제를 폐지하면 피해자도 가해자로 돌변할 수도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인지요?

stella.K 2011-11-16 17:53   좋아요 0 | URL
피해 당사자나 그 가족 중 피해를 입은 것에 대해
복수하고 싶은 마음에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는 거죠.
결국 범죄는 돌고도는 형태로 나타날수도 있는.

노이에자이트 2011-11-16 20:49   좋아요 0 | URL
알겠습니다.
 

오늘이 2011년 11월 11일. 밀레니엄 빼빼로 데이란다.
그리고 11시 11분에 빼빼로를 먹으면 살이 안 찐다는 괴담도 공공연히 돌고 있고. 
뭐 그런 괴담은 귀엽다.
엊그제 뉴스를 보니, 출산이 임박한 임산부들 아이에게 111111의 주민등록 번호를 선물하기 위해 일부러 제왕절개를 해서 아이를 낳을 것이라니, 오늘은 그야말로 산부인과 의사들 초비상 사태의 날일 것 같다.
물론 운명은 개척하라고 있는 것이라고는 하나, 그것은 본인의 몫일 뿐 부모가 해 줄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111111이 무슨 길일도 아니고. 
오히려 엄마 뱃속에서 일주일이나 열흘쯤 더 있어야 할 신생아가 이날에 맞혀 나와 오히려 면역력이 약한 아이가 되면 어쩔 것인가? 태아나 갓난 아기의 하루는 성인의 한 달 또는 일 년에 맞먹는 것이라는데, 그렇게 하는 게 과연 부모나 아이에게 의미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몇년 전 자기 아이 영어를 잘 하기 위해 입을 찢는 성형을 시켜주는 부모가 있다는 말을 듣고 기겁한 적이 있다. 하여간 우리나라 부모들 극성이다.  

그런데 어제 내가 자주 가는 한 인터넷 카페에 가보니 어느 회원이 오늘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생일이라고 알려 준다. 아, 이런 신선한 사실이 있었다니. 해마다 11월 11일이면 상술에 멍드는 날에(아마도 오늘이 그 최악의 날은 아닐까?) 이런 날이 있다는 게 정말 신선하게 다가왔다. 

사실 도봐좌의 책은  여간해서 읽기가 쉽지 않다. 나도 몇년 전 큰맘 먹고 열린 책에서 나온 <좌와벌>을 읽고 아직 다른 책엔 도전도 못했으니까.
영국에선 제임스 조이스의 날을 제정해서 도서 축제를 벌인다던데. 오늘 태어난 우리나라 문인은 없을까? 우리도 그런 문인의 날을 기념해서 역 빼빼로 데이를 펼쳐보게.  

아무튼 도스토옙스키의 생일을 축하한다. 기뻐하시길.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이리시스 2011-11-11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오늘이 생일 아니 생신이군요. 제가 작품을 딱히 못 읽어봐서 뭐라 할 말이.. 이상하게 [죄와 벌]을 읽으려고만 하면 나가 놀 일이 생겨가지고, 대학때부터.ㅋㅋㅋ

무식한 저는 몰랐는데 알려줘서 고마워요, 스텔라님.

stella.K 2011-11-11 15:44   좋아요 0 | URL
나가 놀 일.ㅋㅋㅋ
그것도 대학 때부터.ㅎㅎ

아참, 저 핸폰 카메라 작동법 알아냈어요.
핸폰 옆구리에 셔터가 있는데 그걸 모르고
얼마나 헤맸던지. 그거 생각하면 머리가 다 아플지경.
몇년 전부터 나온 터치폰을 이제야 써 봐요.
내돈 들여 산 것 아니고 회사에서 무상으로 바꿔줘서.ㅎㅎ


이진 2011-11-11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오늘이 도본좌님의 생신이셨군요. 상술에 멍드는 날에 다같이 도본좌의 생신을 축하하며 멍을 풀었으면 좋겠어요!

안타깝게도.. 저도 아직 카라마조프 집안의 형제들까지도 못읽었답니다.. 언젠간 읽어야지 대기하고 있어요 ㅋㅋ

stella.K 2011-11-12 13:46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몇년 전에 사 놓고 아직도 못 읽고 있어요.ㅠ
근데 소이진님 서재 이미지 누군가요?
가끔 다른 분 서재에서 소이진님 뵈면서 궁금했어요.
그리고 그 닉넴이 웬지 낮설지 않다는 느낌이 드는데
우리 혹시 전에 알았던 사이 아니었나요?
아, 미안합니다. 이걸 이제야 물어 보다니.ㅠ
마침 저의 서재를 방문하셨길래 용기내어 물어보는 거랍니다.
이해하시길...^^

이진 2011-11-12 12:53   좋아요 0 | URL
하하... 서재 이미지는 축구선수 '손흥민'입니다!!!

알던 사이는 아닌 것 같구, 제 닉네임 자체에서 풍기는 뉘앙스가 낯이 익으셔서 그런걸 거에요! 대부분 사람들이 다 이런 반응을 보이시더라구요 ㅎㅎ

yamoo 2011-11-12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빼빼로데이가 도본좌의 탄생일 이었군요! 몰랐습니다~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