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외출 준비를 하면서 짬짬히 K1 TV에서 하는 <TV 책을 보다>에 강신주 씨가 그 이름도 유명한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보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TV, 책을 보다>는 K TV가 지난 주 가을 개편을 하면서 새롭게 선보인 프론데, 이제 2주차라 뭐라고 평할 수는 없지만 나름 나쁘지 않은 프로 같다(하긴 나쁠 리가 뭐 있나). 단지 좀 아쉬운 것이 있다면 40분 정도 밖엔 하지 않는데 좀 짧지 않나 싶다.

이 프로는, 어떤 명사가 어떤 책을 자기 생의 책으로 소개하고 있나가 관심 포인트 같은데, 난 그저 강신주란 그 이름이 좋아 봤을 뿐인데 역시 그는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그런데 지난 주와 달리 이 짧은 프로를 온전히 앉아 볼 수 없는 없었다. 왜냐하면 화장실을 다녀와야 했고, 음소거를 하고 오늘 같이 만나기로 한 지인과 전화 통화도 해야했으니까. 그렇게 짬짬히 보긴 했어도 강신주는 이 책에 대한 나의 관심을 이끌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그는 이 책을 액면 그대로 시간으로만 보지 말고 '사랑'을 대입시켜 보라고 한다. 그러면 이 책을 훨씬 다르게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랑을 뒤돌아 보게 되는데, 이제까지의 책들이 사랑에 대해 말은 하지만 이렇게 사랑을 뒤돌아 보는 글을 쓰는데는 실패했다나? 

특히 이 책은 어려운 책으로 유명한데,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소설은 몇 번의 위기를 거쳤다고 했다. 영화만 나오면 소설은 보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실제로 많은 사람이 소설 보다 영화를 많이 보긴 했다. 하지만 영화는 표피적이지만 소설은 끊임없이 상상력을 자극하며 다층적으로 보여준다. 그처럼 프루스트의 이 책은 영화와 다른 소설이 아니면 보여줄 수 없는 오만함(이건 내 표현이긴 하다)을 지녔다는 것이다.

이 책이 어렵긴 하지만, 어느만큼 인내하고 읽다보면 이 책이 지니고 있는 리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며, 이 책을 쉽게 읽을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없다고 강신주는 단언한다. 대신 책을 필사를 해 보란다. 다하진 말고(할 수도 없겠지만) 다섯 장 정도 필사를 해 보면 이 책이 어떤 책인지 알 수 있다고 한다. 

과연 그런 방법이 있었다니 나도 당장 해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현재 나는 이 책을 가지고 있지 않다. 도전이 두려워 아예 사지 않은 것이다. 무엇보다 강신주는 이 책을 알게되면 다른 소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거라고 했다. 

어쨌거나 역시 책 읽는 것은 즐겁지마는 않다. 어느만큼의 수고로움이 있어야 한다.   

같이 나온 어느 패널은 프루스트를 일컬어 천재성을 지닌 오타쿠 같다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9살 때 얻은 천식으로 말을 하면 기침으로 힘들어 했을 테니 그럴 것이라나? 과연 그럴 듯한 해석이다.

 

이런 책이 나온 줄도 몰랐다. 지금으로부터 딱 100년 전 유럽의 문화사를 관통하고 있다. 알았으면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2013년을 두 달 남여놓고 과연 이 해가 가기 전에 읽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보관함에 담아 놓았다. 언제고 읽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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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기침 2014-06-28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모르는 사이 출판사가 민음사로 바뀌었군요. 아니면 다른 분의 번역인지도..
예전 국일미디어에서 나온 11권짜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의 장정이 더 제 스타일이라 민음사판 장정이 조금 거시기해 보입니다. 프랑스 문학 엔솔러지 2권의 표지가 프루스트였건걸로 기억합니다. 프랑스에선 무진장 존경하는 작가구요.
훌러덩 훌러덩 시간 여행중입니다. 어디선가 마들렌 내음이...

그나저나 열화당에서 발간하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만화는 완간이 되었는지 궁금하네요..

stella.K 2014-06-28 16:33   좋아요 0 | URL
잃어버린 시간은 자신이 없어 아직 못 읽고 있습니다.
근데 저 책표지도 맘에 들긴 하더라구요.
마들렌을 지난 봄에 먹어 봤어요. 맛있더군요.
그건 홍차랑 먹어야 한다는데 홍차는 못 마셨구요.ㅋㅋ
 

 말하자면 나에겐 이 책이 그런 책이다.

이 책은 소생의학에 관한 책이다. 

어차피 의학이란 게  사람의 병을 치료하고,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오래 살까를 연구하며, 더불어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에 그 의미를 두고 있는만큼 소생의학은 나름 중요한 의학의 한 분야인 것만큼은 사실일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소생술이라면 심폐소생술 이 대표적인 정도가 아닐까?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사람을 살리는 기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많이 발달되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재밌는 건, 지금까지 죽음을 정의할 때 심장이 멎으면 사망 선언을 하곤 하는데, 사실은 심장이 멎고도 사람은 얼마간을 더 산다고 한다(솔직히 난 이 부분에서 조금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렇게 빨리 내려진 사망선언 때문에 혹시 육체로 돌아오고 싶은 영혼이 못 돌아오고 결국 정말 구천을 떠도는 것은 아닐까? 또한 그렇다면 사망선언을 한 의사는 본의 아니게 간접 살인을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상상을 해 보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런 일은 아직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머지않아 실제로 사망한 지 여러 시간이 지난 뒤에도 죽음의 마수에서 구해낼 때가 올지도 모른다고 농담 반, 진담 반(적어도 나에겐 그렇게 받아들여 진다)하는 말을 한다. 그러면 정말 영화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난 얼마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난 오빠를 생각하면서, 그를 화장했던 것이 잘못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그런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오빠는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아니 그의 육체가 화장할 때까지도 세상으로 돌아오고 싶어하지는 않았을까? 그런 걸 단순히 의학적으로 사망했다는 이유만으로 사후처리를 너무 빨리 해 다시 삶으로 귀환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만든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물론 이 생각은 오빠가 돌아간 지 얼마 되지 않고, 아직도 그 삶의 흔적이 기시감처럼 남아 있어 그런 상상도 해 보게 되는 것일테지만, 저자의 저 말은 이제 곧 나의 이런 생각이 전혀 근거없는 생각마는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줄 것만 같다. 그렇다면 정말 오빠에게 미안해 해야하는 때가 오는 줄도 모르겠다.     

 

사실 고백하는 것은, 적지않은 세월 책을 읽었으니, 그 책이 객관적으로 좋고 나쁘고를 떠나, 적어도 내가 읽을만한 책인가 아닌가를 하늠하는데 나름 선수가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읽으면서, 이 책은 나의 기대를 조금은 빗나갔던 책란 걸 알았다. 

나는 이 책이 말 그대도 '죽음' 즉 임사체험(저자는 이 용어도 그렇게 적절한 용어는 아니라고 하지만)에 관한 책인 줄 알았다(그리고 이 책에서 실제로 이 부분을 다루기는 했다. 하지만 극히 일부고 그것도 내가 알고 있는 임사체험에 관한 이야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히는 내가 갑자기 죽음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요즘 하도 웰빙, 웰빙 하길래 웰빙 보다  중요한 건 '웰다잉'이라 생각해 이 책이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대를 잇는 뭐 그런 책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왜 사람들은 생명은 그렇게 중요하거나 또는 그 반대로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면서, '죽음'에 대해선 어쩌면 그리도 무지하거나, 무조건 두려워 하는 것인지? 난 이것에 대한 정의가 어느 때 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조건 남의 죽음에 대해 연민하며, 나의 죽음에 대해선 두려워 하는 그런 태도를 벗어나 좀 더 성숙하게 죽음을 생각하고 맞는 것 이것이 결국 진정한 삶이요, 죽음은 아닐까?

 저자도 '죽음의 마수'란 표현을 썼지만 흔히 죽음을 일컬어 '마수'란 표현도 '임사체험'만큼이나 적절한 표현일까? 우리는 언제까지 죽음을 그런 식으로 이해하고, 방치할 것인가? 그렇다면 누구도 죽음을 피해가는 사람은 없고, 나도 언젠가 죽을 텐데 너무 무지하고 무책임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이 책이 그런 나의 생각에 좀 더 도전을 주는 그런 책인 줄만 알았다.     

 

그렇다면 누가 잘못했을까? 멋 모르고 제목에서 '죽음'이란 단어 하나를보고 읽기를 선택한 나의 성급함이 문제였을까? 제목에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으니 다소 생소하고 또 어찌보면 고루하더라도 '소생의학의 현주소를 가다' 뭐 그런 제목이었다면 헷갈리지 않았을까(하긴, 그렇게 전문적인 제목을 달았다면 대중의 외면을 받았을 것이다. 아, 제목 짓는 것은 역시 어렵다.ㅠ)?

아, 물론 그렇다고 이 책이 전혀 가치 없는 책이라는 말은 아니다. 소생의학이란 다소 생소한 분야를 나름 평이한 문체를 써서 일반인도 이해하기 쉽게 쓴 공로는 높이 인정할만 하다.

그런데 소생에 대해 과연 일반인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물론 생각하기에 따라선 흥미로운 주제고, 분야인 것만큼은 사실이다. 하지만, 누가 걱정한다고 한 키나 크게 할 수 없다는 성경 말씀처럼, 나는 소생의학이 발달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생명이 더 연장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주어진 날 수를 사는 것뿐이라는 다소 운명론자적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저 현대의 소생술에 의해 살아났다면 그건 그가 그것이 발달되지 않은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뿐이다.

진시황이 죽지 않으려고 불로초를 구했지만 결국 그는 생각 보다 그리 오래 살지도 못하지 않는가? 그건 김일성도 그랬고, 김정일도 그랬다. 

소생술이 발달이 됐다고 어떤 사람은 좋아라 하지만, 한쪽에서는 일부러 존엄하게 죽을 것을 생각해서 일부러 치료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사실 이 책은 소생의학이라고 해서 꼭 의학에 관한 분야만을 소개하려고 하지 않았다. 철학적이고, 윤리적인 접근까지도 포함하고 있어 (난 좀 버겁긴 했지만) 나름 생명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인상적여 보인다. 한번쯤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아, 그나저나 어떻게 하면 책 선택에 대한 실패율을 줄여보나?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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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문학과지성사에서 <오에 겐자부로, 작가 자신을 말하다> 출간 이벤트를 했었다(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detail_book.aspx?pn=120403_oe)

 

사실 오에 겐자부로는 좀 어려워서 선호하는 작가는 아닌데, 개인적으론 '작가'라는 직업에 관심이 많은 관계로 이책을 언젠가 한번은 사야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마침 출간 이벤트를 하고 당첨되면 책을 보내준다는 말에 혹해 응모를 했다. 그런데 간만에 행운을 잡게 되어 이책을 받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응모를 하게 된 것도 이벤트 미션이 흥미로워서다. 이책은 대담집인데 대담에 다섯 가지 질문이 나오고 이에 대해 작가가 대답한 것을 응모자에게 똑같이 묻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한번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이를테면,

질문1,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질문2, 다시 태어난다면 남성과 여성, 어느 쪽이 좋으신지요? 이유도 한마디.

 

질문3, 무인도에 한 권의 책만 가지고 간다면 무엇을 고르시겠습니까?

 

질문4, 잘 모르는 곳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질문5, 지금 가장 바라는 것은?    

 

이에 대한 나의 대답은,

1. 저녁에서 늦은 밤 사이. 오늘 하루로 무사히 보냈구나 하는 안도감. 그리고 TV를 틀어놓고 좋아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 잠이 드는 것.

 

2. 다시 안 태어났으면. 만일 그래도 태어난다면...글쎄 꼭 인간으로 태어나 여자 아니면 남자로 살아야 하나? 그냥 뭔가의 생명으로 태어나야 한다면 새로 태어나 하늘을 마음껏 날아보고 싶다.
3. 전자책을 가져가고 싶다. 이거 하나면 심심하지 않을 것이다.
4. 길치라 늘상 격는 일이다. 처음엔 다소 막막하긴 하지만 당황할 정도는 아니고 모르는 곳에서 내가 갈 길을 찾아가는 그 경험도 나쁘지는 않다. 요즘엔 이정표도 잘 되있는 것 같고, 친절한 사람도 새삼 많다는 걸 알게될 때 세상이 아주 삭막하지마는 않구나 하는 걸 느끼게된다.
5. 작가가 되서 돈도 벌고 여러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

 

 여러분도 답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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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2-05-04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당첨되신거 축하드려요. 누님이 하신 이벤트, 저도 기억이 나요.
다섯가지 질문, 저도 한 번 곰곰히 생각해봐야겠어요. 잠깐 질문에 대한 답변을
생각해봤는데 쉽지 않네요. 한 두가지가 아니라서요 ^^;;

stella.K 2012-05-04 22:10   좋아요 0 | URL
요즘 기분 꿀꿀한데 잘 됐지?
알라딘에 글 쓰는 게 편치마는 않은데 그래도 생까고 계속 쓰려구.ㅋㅋ
뭐 질문이 어려운가?
답은 꼭 여기다 해줘.ㅎ

cyrus 2012-05-04 22:37   좋아요 0 | URL
네, 먼댓글로 달아놓을께요 ^^
 

이달에 평가단에서 보내 준 책 저만치 밀어두고 오늘부터 이 책을 펼쳤다. 솔직히 평가단 이번 책은 나로선 머리에서 쥐가 난다. 좋아하는 분야가 아니라서 대략난감 중이다. 이럴 땐 안 읽히는 책 억지로 읽으려고 하지말고 마음 가는 책 읽어주는 것이 효율적인 것 같다. 안 읽히는 책은 그후 더 읽을 건지 말건지를 생각하면 되고.

 

이책의 저자는 책을 가장 쉬우면서도 흥미롭게 쓰는 작가중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책 처음 부분 읽다 괜찮은 글이 있어 통째로 옮겨 본다.

제목은 '하이데거의 닦달하기, 그리고 양계장'

 

 

 

하이데거의 기술문명 비판의 핵심은 '게슈텔Gestell'이라는 개념이다. 역자는 이 단어를 '닦달하기'라고 번역했다. 아주 그럴듯한 번역이다. 현대 기술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쥐어짜고 윽밖지른다. 

 

양계산업이나 목축산업은 닦달하기의 정수를 보여준다. 소들이 있는 외양간에 톱밥을 깔아주면 푹신푹신한 바닥을 마치 풀밭처럼 생각해 열심히 돌아다닌다. 그 결과 운동량이 많아져서 몸에는 지방이 줄어들고 맛은 떨어진다. 목축업자는 소의 복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 소 좋아하는 꼴을 두 눈 뜨고 볼 수 없는 그들은 외양간 바닥을 콘크리트로 깐다. 안 그래도 뼈는 부실하고 살은 피둥피둥하게 찐 소들은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에서는 운동을 하지 않는다. 딱딱한 바닥에서 걷자니 관절이 아프고 삭신이 아리기 때문이다. 당연히 운동량이 줄어든 소의 몸에는 지방이 붙고 고기의 맛이 좋아진다. 소가 산보하는 재미를 앗은 대가로 인간은 쫀득쫀득한 고기를 얻는다.

닭은 일 년에 60개 낳던 계란을 300~360개나 낳는다. 젖소는 야생에서 하루 2~3킬로그램 생산하던 우유를 30~50킬로그램 생산한다. 닭은 최대 15년까지 살 수 있지만 육계(식용으로 기르는 닭) 는 6주만에 2킬로그램 정도 쌀을 찌워 출하한다. 삼계탕에 쓰이는 닭은 1.2~1.6 킬로그램 정도가 되면 출하한다. 6주도 지나지 않아 죽임을 당하는 꼴이다. 수명이 10~15년 정도인 돼지도 6개월 정도를 살다가 110킬로그램 되면 도축장으로 간다.

 

가진 것을 다 내놓으란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는 것까지 만들어서 내놓으라는 협박이고, 어린아이의 자궁에 아이의 씨를 넣는 격이다. 산 것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는 불살계(不殺戒)는 산업 논리 앞에서는 무력하기 짝이 없는 계율이 되어 버렸다.

                                                                                 (034~035p)    

인간이 지은 죄가 참 많다. 고기를 아예 먹지 말라는 말은 차미 못하겠다. 그래도 우리는 필히 육류 소비량을 줄일 필요가 있다. 한 사람이 자기 먹는 양의 단 1그램만 줄여도 우리의 돼지와 소와 닭은 그렇게까지 비참한 삶을 살다가 죽지 않을 것이다. 

 

저자도 그 말을 인용했지만, <토지>의 작가 고 박경리 선생은 인간은 자연의 이자로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벌써 또 주말이다. 오늘 저녁 좋은 사람과 약속이 있다면 그 사람과 꼭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생각은 좀 자제해 주시라. 고기 먹지 않고도 좋은 만남은 얼마든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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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2-03-23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족과의 식생활은 어떻게 해 볼 수 있지만, 사회 생활을 하면서의 육식의 자제는 ... ; 역시 어렵지요. 어렵지 않더라도 쉽지는 않지요. (나는 패배주의자인가 봐요.)

stella.K 2012-03-23 14:44   좋아요 0 | URL
혼자서는 쉽지 않죠.
이것도 뭔가 연합하고 운동이 필요한 것 같아요.
이거 보면서 정말 마음이 아프고 찌릿찌릿해 지더군요.ㅠ

페크pek0501 2012-03-23 18:32   좋아요 0 | URL
아, 마립간님의 장족의 발전이 느껴지는군요. 댓글을 달러 여기까지 오시다니...ㅋㅋ

stella.K 2012-03-23 18:37   좋아요 0 | URL
저도 사실은 그렇게 생각했어요.ㅎㅎ

페크pek0501 2012-03-23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즘 고기를 이주일에 한 번 먹는 것 같아요. 건강을 생각해서 육류 위주의 식단을 경계해요. 대신 생선과 야채를 많이 먹으려고 해요.
회식 자리도 삼겹살 대신 버섯야채 전골에 소주를 마시면 안 될까요? 저는 국물이 좋던데...
안주로 파전이나 도토리묵무침도 좋던데...
인간이 참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뭐든 인간 중심의 사고가 문제인 듯해요.
인간을 관찰하는 관찰자로서 볼 필요가 있을 듯해요.

stella.K 2012-03-23 18:40   좋아요 0 | URL
저희는 가면 갈수록 고기가 줄어드는 것 같아요.
한 달에 한번도 안 먹는 것 같다는.
그리 말씀하시니 오늘 같은 날 비도 오고 삼삼한데
진짜 파전, 도토리묵에 소주 한 잔 걸치고 싶군요.ㅋㅋ

페크pek0501 2012-03-23 18:44   좋아요 0 | URL
아, 저도 저도요.ㅋㅋ 파전, 도토리묵에 소주 한 잔 그리고 빗소리, 환상적이에요.ㅋ

stella.K 2012-03-23 18:47   좋아요 0 | URL
낭만을 아시는군요.^^

cyrus 2012-03-23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페이퍼 내용만 볼 땐 철학 관련 책일줄 알았는데 책을 클릭해서
정보를 봤는데 과학 책이네요. 책 제목에 왜 '다윈'이 들어가 있었는지
이제야 알았어요. ^^ 가끔은 전혀 몰랐던 새로운 분야의 글을 접해보는 것도
좋아요 ㅎㅎ


stella.K 2012-03-24 12:55   좋아요 0 | URL
이책 엄청 좋다. 재밌어.
아주 간략하고 그러면서도 정곡을 찌르고.
기회되면 함 읽어봐.
무거운 책만 읽었다면 이런 책으로 머리 식혀주는 것도
유익할거야.^^

saint236 2012-03-24 0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책인지 궁금합니다. 오랫만에 알라딘 서평단 서재에 들어가봐야 할 듯 하네요.

stella.K 2012-03-24 12:58   좋아요 0 | URL
<아주 오래된 북극>이랑 <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요.
뭐 객관적으로야 흠잡을 때 없는 좋은 책 같기는 한데
저는 이런 책이 익숙치가 않더라구요.
특히 빌 브라이슨은 너무 말이 많아서 좀 질려요.
지금은 그냥 패쓰할까 생각중이어요. 전 언제나 빌 브라이슨의 진가를 알게
될까요? 좌절입니다.ㅠㅠ

이진 2012-03-24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모, 오랜만이어요!
이진이 감기 좀 물리고 오랜만에 알라딘 방문했습니다...
저는 오지 않은 동안 <화차>를 다 읽어버렸습니다.
무려 사흘만에 독파를 해버렸어요. 어찌나 재밌던지.
이게 바로 미야베 미유키구나! 하면서 마음속으로 감동이란 감동을 다 받으며 탄탄한 스토리 전개에 놀랐답니다. 이모가 읽으신 책은 500페이지나 추가되었다고 하니, 아마 그 부분에서 지루함을 느끼시지 않았으려나 생각해보아요. 2006초판은 진짜 재밌던데...

저는 이번 평가단 도서 첫 페이지 딱 펼쳐보고서는 기겁을 하며 멀리 밀어놓았답니다.
도저히 시턴의 책은 못 읽겠어요... 도저히

stella.K 2012-03-24 18:13   좋아요 0 | URL
오, 이진이! 그렇지 않아도 왜 안 보이나 궁금했어.
그래 감기는 좀 났니?
그랬구나. 화차가 그랬단 말이지. 괜히 소외감 느끼는데...ㅠ

그지? 못 읽겠지? 평가단 내내 보내준 책 괜찮다 생각했는데
여기도 복병이 숨어 있었어.
전에 예술 부문 도대체 책을 왜 이런 걸 보내줬냐고 볼멘 소리 했었는데
아무래도 난 이제 평가단과 굿바이 해야할 것 같다.
이번에 선정된 책은 좀 나은 것 같아.ㅋ

기억의집 2012-03-27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고기 잘 안 먹었는데, 심지어 김치찌개나 미역국에도 고기 안 넣어 먹을 정도로, 나이가 들면서 고기 좀 먹어요. 일주일에 한 두번. 고기 대신 두부를 열심히 먹긴 하는데, 두부 갖도는 좀처럼 힘쓰지 못하겠더라구요.

환경과 육식을 비판하는 책인가요?

stella.K 2012-03-27 18:22   좋아요 0 | URL
맞아요. 고기를 아주 안 먹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건 아니고 진화 생물학?
뭐 그쪽 계통인데 읽는 재미가 꽤 쏠쏠해요.^^

숲노래 2012-04-01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기인가 아닌가,
달걀인가 아닌가...
보다는,

내 몸을 사랑하면서 먹는
좋은 밥인가를
생각할 수 있다면
무언가 달라지리라 믿어요

stella.K 2012-04-01 12:15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ㅠ
 
과유불급의 두 가지 예

 

왜 제목을 <화차>라고 했을 지 알 것도 같다. 어쩌면 '사채업자'의 은유 같기도 하고, 돈에 영혼을 팔아버린 사람이 마지막에 저승 갈 때 타게될 불수레란 의미 같기도 하다.  

 

책 VS 드라마

 

그런데, 솔직히 나는 미미 여사와 아직 친하지 않아서 그런지, 아니면 장르 소설에 익숙치 않아서 그런지, 장황한 활자의 나열에 질려버리고 말았다. 나중엔 현깃증이 날 정도였고, 내가 이해한 게 맞는 건지 확신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마침 일드의 '화차'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보았다. (물론 이 싯점에선 한창 절찬리에 상영중인 우리 영화 <화차>를 봐주는 것이 좋을 것 같기는 한데 그것은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고) 그것을 보고나니 내가 책에서 보고 이해했던 것들이 틀린 것마는 아니구나 안심을 했다(그렇더라도 난 앞으로 장르 소설을 좋아할 수 있을는지 더 확신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것은 아무래도 나이가 주는 한계 때문인 것 같다. 책도 나이에 맞게 좋아하는 분야나 장르가 따로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이런 추리소설은 젊은이 취향은 아닌가 싶다). 

드라마로 보니 책에서 보는 많은 활자들이 하나의 영상으로 눈에 착 들어와 여간 편안해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보면 될 것을 왜 그리도 책은 주절대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전에도 그런 비슷한 얘기를 했지만, 이제 작가들은 자기 작품이 영화화될 것을 계산하고 글을 아예 그렇게 쓰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주는 장단점이 있을 수 있는 것 같다. 물론 좋게는 문학과 영화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 될 수도 있겠지만, 너무 그것을 추구하다 보면 문학은 좀 더 자극적이 될 것이며 문학이 본래 가지고 있는 고유한 것을 스스로 해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닌지 싶어 그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면 알아 들을 작가들이 과연 있을까 싶다. 그들도 작가이기 이전에 생활인이니 당장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면 당장 돈되는 쪽으로 자신의 글을 써야하고 당연 대중이 선호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문학의 미래를 생각하면 이건 정말 위험하고 경계해야 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감히 외치고 싶다. 문학 본연으로 돌아가자! 고.

 

과거의 문학은 이러지 않았다. 문학적 사유와 향기가 있었다. 난 아마도 예전 순수 문학의 향기를 조금은 알고 그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어 이러는지도 모르겠다. 앞으로의 세대는 과연 순수 문학의 정취가 무엇인지 알까? 순수 문학의 가치를 알지도 못한 채 문학은 원래 영상으로도 호환 가능한 것이라고 그렇게 알면 어떻게 하지? 강한 것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남는 자가 강한 것이랬다고, 문학 역시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 변종 수퍼 바이러스 뭐 이런 것으로 인식될 날도 머지 않아 보인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화차>라는 작품이 잘못됐다는 것을 말하려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작품은 나름 의미가 있는 좋은 작품이다. 하지만 이렇게 드라마로 손색이 없게 만들면 드라마로 보지 누가 책으로 읽겠느냐는 것이다. 더구나 활자 세대는 갔다고 하는 마당에 말이다. 이런 예는 물론 이 작품이 처음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영화나 TV 드라마로 보면 책은 잘 안 보게 된다. 결국 작가는 팔리는 작품을 쓰려다가 제 살을 깍아 먹는 꼴로 되는 것은 아니냐 하는 우려다. 

 

작가 VS 감독        

 

어쨌든 나는 이것을 드라마로 봤을 때야 비로소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를 알 것 같았다. 물론 미미 여사가 이룬 문학적 성취(?)가 결코 작지 않음을 나도 잘 알고 있다. 적어도 그녀는 사회파 추리 소설을 쓰는 작가다. 자신만의 무기를 가지고 현대성을 꼬집고 비판해 왔다는 점에서 문학적 성과는 작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의 문체는 건조해 보인다. 딱 영화화하면 좋을 듯한 문체. 문학쪽에서 보면 별로 사유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견디지 못했던 건 바로 이런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왜 작가는 문체를 그처럼 생각하지 않았던 것일까. 문체는 작가의 고유한 사유를 담는 그릇 같은 것이다. 그것을 외면한다면 글쎄다, 이런 말하면 너무 한다 할지 모르지만 이류는 될지언정 일류는 되지 못할 것이다. 물론 미미 여사는 이미 그 명성만으로도 아쉬울 것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대중에게만 어필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그건 큰 안목으로 봤을 때 문학적 사생아를 낳는 꼴 밖에는 되지 않아 보인다. 지금도 그를 추종하는 제2, 제 3의 미미 여사는 얼마나 많을 것이며, 작가 지망생들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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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드는 원작에 충실해 보였다. 그점에 있어서는 감독에게 고마워할지경이다. 단지 그래도 좀 감독의 시각을 담고 싶었는지, 내가 읽기론 사토루가 애지중지하던 보케가 원작에선 죽은 것으로 나와 있는데 드라마에선 죽지 않고 재회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 엔딩에서 혼마 형사가 마침내 실종녀를 만났을 때 자신의 이야기를 해 보라고 했을 때 뭔가 조금이나마 시청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게 되길 바랬었던 것도 같다. 그 누구도 아닌 자신으로 살라고 주문하는 것도 같았다.

그런데 우리 영화 <화차>는 원작과는 좀 많이 다르다고 한다. 그런 것으로 봐 감독의 시각 또는 재해석이 많이 들어가 보이는 듯도 하다. 그리고 그 영화는 호불호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선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요컨대, 전에 나는 여타의 문학 작품이 영화화 된다고 이제 소설가의 위상이 높아질 거라고 좋아했었다. 그리고 그것은 시나리오를 쓰는 어떤 녀석으로부터 다분히 질투어린 비아냥을 받기도 했다. 적어도 나는 글을 쓴다면 시나리오 안 쓰고 소설을 쓸거니까 당연 녀석은 나를 경계했겠지. 하지만 생각해 보니 정말 작가가 자기 작품 영화화된다고 마냥 좋아할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건 정말 토사구팽 당하는 일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작가 보다 위상이나 지명도가 높은 직업이 감독 또는 연출가일 수 있으니까. 그들이 판권을 사서 자기식의 작품으로 새로이 재탄생시키겠다는데 뭐가 잘못이란 말인가. 그것이 서로 상생하고 윈윈하는 것이라는데 그게 정말일까? 뭐 생산자끼리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문제는 그것을 소비하는 대중이다. 대중이 영상만을 쫓고 활자의 수사와 사유를 점점 멀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대중은 복잡하고, 힘들고, 피곤한 것은 딱 질색이다. 그들에겐 읽는 것 보다 보는 것이 더 쉽고 좋다. 그래놓고 신선놀음만 하겠다는 건가? 작가의 변질은 이렇게 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이 작품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해서일까? 난 오히려 이런 우려 밖엔 할 수가 없었다.

 

우린 지금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가?

 

나의 이런 우려를 차치하고라도, 이 작품은 우리에게, '우린 지금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가?'를 묻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그저 행복하고자 했을 뿐인데."라고 말했던 실종녀의 말이 참 허허롭고, 자칫 발 하나 잘못 들여서 늪에 빠진 모습을 쉽게 연상할 수 있게 만든다. 이런 자본주의화 된 세상에서 이 여자에겐 행복이 뭐 길래 이런 말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저 남이 크레디트 카드를 남발하며 사치와 호화로운 물품을 사 들일 때 남들이라고 하는데 나라고 못할까 하는 집단 심리 그것 아닌가. 물론 실종녀는 그다지 크게 사치한 것은 없다고 하더라도 소소한 건 소소한 것대로 위험성은 있다. 아무튼 그게 행복이었나? 그녀가 그렇게 말하기엔 행복이 너무 보잘 것 없다는 생각은 안 드나? 그런데 그것만이 행복이라고 말하는 세상이 이 자본주의화된 세상에 그녀는 속고 있었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었고. 무엇보다 속는 것은 실종된 그 여자만이 아니다(난 그녀를 어떻게 불러줘야 할지 모르겠다. 원래의 이름으로 불러줘야 할지, 아니면 신분을 위조한 이름으로 불러야할지. 둘 다 완벽하지가 않다). 우리도 속고 있지 않냐고 작가는 묻고 있는 것 같다. 적어도 그런 것만이 행복은 아니라는 것을 이 여자가 알았다면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 행복은 쉽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은 애써 찾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비해 여자가 말했던 '행복'이란 건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한 즉물적인 것이다. 물론 그게 있으면 나쁘지는 않겠지만 그게 행복의 전부는 아니지 않는가.

 

나는 언젠가 돈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그것의 실체를 생각해 본적이 있다. 책의 내용에도 그런 말이 나오지만, 돈은 그야말로 종이조각이나 코인에 지나지 않는다. 얼마나 하찮은 것이랴. 그러나 그것의 가치를 생각하면 정말 하찮다. 그런데 그것으로 우리는 필요한 물건을 사며, 그 거품에 온몸을 담그며, 필요하면 사람을 죽이거나 파산까지 한다. 어떤 사람은 이것의 있고 없음 때문에 결혼을 못하기도 하고, 이혼도 한다. 사람의 운명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실로 괴력을 가진 물건이다. 그래서 우린 그것에 그토록 많이 흔들린다. 작품을 보면 우울하고 화도 난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 실종녀처럼 피해자가 되는 동시에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행복을 말하기 전에 자유를 말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치하지 않을 자유. 돈에 메이지 않을 자유. 돈만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 돈만이 전부라고 믿게 만드는 이 세상에 그렇지 않음을 보여줄 자유. 그것은 행복 보다 더 강력해 보인다. 동시에 자유는 선택이고 보다 능동적인 것인 것이다. 돈만 지불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그것보다 훨씬 값진 것이다.

 

답은 어디에...

 

물론 작품은 그것까지를 말하고 있지 않다. 문학이 그렇듯 좋게 말하면 열린 결말이고, 문제재기 정도에서 끝나버린다. 이 작품도 그렇다. 그냥 문제재기만 할 뿐이다. 답은 각자의 몫이다. 엊그제 모처럼 괜찮은 영화를 봤다. 좀 오래된 영환데 <고잉 온 스타일>이란 미국 영화다. 노인 셋이 은행을 털고 그중 노인 둘은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그 일을 주동했던 노인 하나만이 남아 결국 경찰에 의해 검거되고 교도소에 간다는 지극히 간단한 영화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의외로 생각할 것이 많은 영화였다. 이 노인들은 정해진 규칙을 준수하며 살아왔다.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절제하며 앞만 보고 살아왔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죽기전에 일탈을 꿈꿔보는 것도 이들에겐 나쁘지 않아 보였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니 없던 젊음의 기백이 살아나는 것 같다. 그 일을 공모하고 주동한 노인은 교도소로 가면서도 끝까지 돈이 어디에 있는지를 밝히지 않고 형량을 고스란히 살기로 한다. 그는 말한다. 교도소 밖이나 안이나 나는 어차피 수감자의 삶을 사는 것은 똑같다. 그러니 교도소안에서 살겠다고 그를 면회 온 조카에게 말하고 다시 뚜벅뚜벅 당당하게 면회실을 나간다. 하긴, 노인에겐 교도소 밖에서 혼자 사느니 교도소안에서 수감자와 함께 사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그게 참 인상적이다. 노인이 되면 그게 좋겠다 싶다. 어떻게 살아도 별로 아쉬울 것이 없는 삶.

물론 그렇다고 이 영화가 노인의 범죄를 부추기는 영화로 보면 안 된다. (일탈이 그런 식으로 표현이 돼 약간은 아쉬운 면이 없지 않지만)이 영화는 오히려 세상에 대해 자기식의 복수를 그렸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늘 정해진 대로만 살라고 하는 세상. 그래서 진정한 자유란 게 뭔지도 모르고 선량하게만 살라고 하는 세상에 대한 마지막 몸부림 같은 것으로도 보여진다(그런데 그게 나름 귀엽다ㅋ). 그런 것처럼 우리가 정말 돈이면 다 된다는 세상에 끌려 다니지 말고, 그게 전부라고 믿게 만드는 세상에 복수하는 마음, 선택하는 삶. 좀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이 작품에 나오는 실종녀와 같이 살지 않으려면 당장 드는 생각은 화폐 없는 세상에서 살아 보는 삶을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면 연합하고, 상부상조 해야할 것 같다. 개인주의와 자본주의는 자웅동체 같은 면이 있기도 하니까. 함께 사는 건 확실히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개인주의가 확산이 되고 그 허전함과 외로움을 매꿔주는 것이 자본주의의 모든 것으로 대변되는 산업화가 아닌가. 거꾸로의 삶, 역류하는 삶은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안 그러면 세상은 숨이 막혀 살 수가 없다. 우리는 인류의 허파로 살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좀 갖다 붙이는 경향도 없지 않지만, 읽는 것이 보는 것 보다 불편하다고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요는 영화만 보지 말고 책도 좀 읽으라는 말이다. 문학의 기능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지금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가? 우리는 지금 몇시에 살고 있는가? 그것을 자각하도록 만드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미미 여사는 그것을 아주 충실히 잘 감당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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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3-18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스텔라님의 글을 읽으니 책장속에 가만히 잠들어있던 <화차>를 얼른 꺼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모방범>형제들을 조용히 꺼내들어야겠지요. 제발 좀 한 권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stella.K 2012-03-18 19:34   좋아요 0 | URL
읽어줘서 고맙다. 소이진. 근데 못 읽었다고 자책은 하지마.
못 읽겠으면 일드로 봐.ㅋ

이진 2012-03-19 06:29   좋아요 0 | URL
조금 읽어봤는데, 꽤 괜찮은 걸요?
미미여사의 글은 초반이 잘 읽힌다는 장점이 있어요.
대개 일본 추리소설들을 보면 초반에는 지형 설명에, 인물을 설명한답시고 처음 들어보는 기괴한 단어들을 막 뱉어놓는데 저는 그게 읽기 싫어서 요새 추리를 안 읽고 있어요. 요코미조 세이시도 엄청난 작가라는데 초반에 지형설명 부분이 이해가 안가서 손을 뗀 상태구요. 오늘부터 하여튼 <화차>읽어야겠습니다

stella.K 2012-03-19 11:39   좋아요 0 | URL
중요한 건 그 작품이 의미하는 바인데
그 점에 있어서는 뭐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아.
하지만 역시 미미 여사는 내 꽈는 아닌 것 같아.
간혹 나 같은 족속이 있더라.
하긴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할 필요는 없잖아.
잘 읽어보라구.^^

차트랑 2012-03-18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사실 작품의 질을 고집하다가 돈을 덜 버느니
차라리 질을 떨어뜨리는 한이 잇더라도 많이 팔리는 선택을 한 것은
아닐까????
그런 선택은 아닐까???
화차를 읽지 않은 입장인지라...

어쨋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stella.K 2012-03-19 11:41   좋아요 0 | URL
요즘 작가나 출판계가 다 그렇잖아요.
중국은 작가들한테 월급도 준다는데
그렇게 해서라도 작가 육성을 하면 좋을 것도 같은데
원래 또 작가라는 족속이 배곪기 전에는 뭘 안하는 게으른 족속이기도 한지라
뭐가 문학계의 발전을 위한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ㅎ

페크pek0501 2012-03-19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라마로 보니 책에서 보는 많은 활자들이 하나의 영상으로 눈에 착 들어와 여간 편안해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 - 이렇다고 해도 저처럼 책을 고집하는 사람이 있을 듯해요.

1. 드라마는 아무래도 영상으로 전달되니까 상상력이 발동될 수 없지만 책은 무한한 상상력을 발동시켜서 더 재밌을 수 있어요. 어릴 적 라디오로 연속극을 들었을 때처럼요.
2. 만약 주인공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상대방의 뺨을 때렸다면 그 이유가 뭔지 드라마는 정확히 알 수 없는 반면, 책으론 그의 독백을 통해서 정확히 알 수 있는 맛이 있어요. 그때의 기분까지 알 수 있죠. 그러니까 더 정확히 전달되는 맛이 있어요.
3. 드라마나 영화가 줄거리 중심으로 보게 된다면, 책을 통해선 줄거리 말고도 다른 것을 관찰하는 재미가 있어요. 작가가 그걸 어떻게 문장으로 표현했는가, 하는 것의 재미죠. 이것이 문학의 중요한 재미라는 생각... 밑줄 긋는 맛도 있죠.
4. 또 책은 들고 다닐 수 있고 언제든 자유롭게 책장을 넘길 수 있으나, 드라마나 영화는 보려고 작정하고 몇 시간을 비워 두고 봐야 한다는 게 부담이 돼요.

스텔라님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에요. 저도 책이 많이 팔렸으면 좋겠고, 순수한 문학으로서의 자리를 지키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잘 읽고 갑니다.ㅋ

stella.K 2012-03-19 18:46   좋아요 0 | URL
언니 말이 맞아요. 근데 소이진이 얘기한 것처럼
지형 설명이 장황하죠. 그걸 쫓아가다 보면 앞의 내용이 뭔지
뒤죽박죽이고 내가 안 것에 대한 확신을 할 수가 없어요.
문장도 꽤 건조하구요. 요즘 작가들이 그렇게 쓴다는 거죠.
그건 또 모르겠어요. 하드보일드 하다고 해야할지.
헤밍웨이의 문장은 하드보일드 하지만 되게 낭만적이고
뭔가의 깊이가 느껴지거든요. 아무튼 책은 책 읽는 맛을 내야한다고 봐요.
근데 문학이 뭔가 영상적으로 그려주려고 한다는 건
전엔 몰랐는데 문제가 있어 보인다는 생각을 이책을 보면서 깨달았다는
거예요.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ㅠ

아이리시스 2012-03-19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은 책,드라마,영화 삼박이 잘 맞아 떨어져서 엄청 빨리 텍스트이용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것저것 비교하는 재미랄까, 저는 그런 건 없고 어느 쪽이든 하나면 되는 것 같아요. 딱 하나, <백야행>은 일드를 보고 원작소설을 읽었어요. 한국에서 만든 영화는 안봤구요. <화차>도 일드가 있네요! 요즘 일드는 <스트로베리 나이트>만 유일하게 보고 있어요^^

저도 문학은 문학으로 소비하는 게 가장 옳다고 느껴요.

stella.K 2012-03-19 18:48   좋아요 0 | URL
그럼 추천을 눌러주셔야죠.
아이님의 추천이 문학을 살릴 수 있는 힘이 될지 누가 알겠어요.ㅋㅋㅋ
<스트로베라 나이트>라...기억할게요.
전 아직 <심야식당>도 안 봤어요.ㅠㅠ

2012-03-21 16: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21 16:0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