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되려면 부자에게 점심을 사라 - 상속받지 않고 보통 사람이 부자 되는 10가지 비결
혼다 켄 지음, 홍찬선 옮김 / 더난출판사 / 2004년 3월
평점 :
절판


한 소년이 있었다. 그는 유독히 어렸을 때부터 부자의 성공비결을 듣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그는 20대가 되어서도 '백만장자는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떻게 하면 백만장자가 될 수 있나?',  '백만장자는 사회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등 그들의 인생관이 드러날 수 있는 질문지을 만들어 백만장자에게 보내기도 하고, 전화를 걸어 그들을 직접 인터뷰하곤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훗날  일본에서 꽤 알려진 '돈 전문가'가 되고, 독립적인 경영 어드바이스로 많은 사람들을 벤처비지니스에서 성공으로 이끄는 사람이 되었다. 그가 바로 이 책의 저자 혼다 켄이다. 그의 이력이 독특하다. 그는 딸이 태어난 이후로는 현업에서 물러나 '준은퇴 생활'을 시작하며 '돈과 행복'에 관한 강연과 카운슬링, 세미나를 하며 산다고 한다.

결국 어렸을 때부터 한가지 관심사항을 성인이 된 이후에도 끊임없이 경주에 자기 일에서 성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성공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키워나가고 그것이 종국엔 사람을 유익되게 만드는 것 말이다.

 그는 이 한권의 책을 완성하기 위해 2002년에 일본 내에 1만 2천명에 달하는 고객 납세자를 대상으로 질문지를 돌렸다고 한다. 그리고 예상외로 질문지를 받은 사람들은 흔쾌히 질문에 응했으며 그것도 신속히 이루어졌다고 한다.

나 역시 부자에 관심이 많다. 그들은 누구이며, 어떤 삶을 살까?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주로 어떤 사업에 종사할까? 우리나라에선 30~40% 이상이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데, 그건 생각일뿐 실제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뿐 진짜 부자는 상위 몇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들은 어떤 의식을 갖고 사는 것일까 매우 궁금하기도 하다.

솔직히 우리나라는 부자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좋지 않다. 이제까지 매스컴에서 보여준 그들의 이미지라는 게 정경유착에, 탈세, 재벌 2세들의 병역비리, 학벌비리, 국적비리 등등. 안 좋은 쪽에서는 전적이 화려하지 않은가?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은 그런 부자들에 대한 상대적인 박탈감 내지는 빈부격차 때문에 그들의 인식은 좀체로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도 부자를 마다할 사람은 도인이 아닌 이상엔 거의 없다고 봐야할 것이다. 이 부자들에 대한 이중잣대 내지는 이중심리는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부자들이 어떻게 사는지? 어떻게 해서 지금의 부를 이루었는지에 대해선 그다지 아는 바가 없다.

이 책에서 말하는 백만장자가 갖추어야 할 열가지 요소들을 보면, 좋아하는 것, 잘 하는 것, 남을 기쁘게 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다. 성실. 행운. 위기를 극복하는 힘. 다른 사람의 지지를 받는 것. 인생의 스승을 두는 것. 배우자와의 좋은 관계. 독특한 자녀 교육. 장기적인 안목 그리고 멋진 결단 등을 꼽는다고 한다.

특히 내가 이 책에서 주목하여 본 것은 부자들의 위기관리 능력이다. 곤란한 상황에 빠지면 보통사람들은 당황하고 불안해하거나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다소는 안일한 생각을 갖는단다. 그에 비해 백만장자들은 다르다고 한다. 그들은 우선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그런 공포를 느낀 뒤 각오를 새롭게 하면서 전력을 다해 대응 방법을 찾는다고 한다.(107p) 그들은 또한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목록으로 만든 뒤 그 우선 순위를 매긴다고 한다. 목록의 우선 순위를 따라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대체로 그 일들을 모두 실행하기 전에 역경은 해결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꼭 해야할 일을 목록으로 정리하는 것이다. 역경에 빠졌을 때 가장 경계해야할 것은 그러한 상황에 압도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공포심이다. 목록에 대응 방법이 적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안심할 수 있다(108p) 고 한다. 결국 위기는 위기 자체보다 위기라고 느끼는 공포심 즉 마음이 문제라는 것일 것이다.

또한 내가 흥미롭게 느낀 부분은 백만장자들이 도움을 청하는데 귀재들이라는 것이다. 실패와 역경을 맞으면 대체로 자신의 힘만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다고 느끼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얼마나 신속히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가가 가장 중요한 대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108p) 

많은 사람들은 백만장자들은 재력면에서나 업무수행 능력면에서 뛰어나고 리더십을 발휘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또는 그들의 자존심 때문에 웬만해서 도움을 요청할 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었던 것 같다.

사실 도움을 요청할 줄 모르는 건 나인 것 같다. 남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왠지 미안하고, 상대가 귀찮아 할까봐 부담스럽고, 그들은 음흉해서 웬만해서 자신의 속내나 돈 버는 방법은 공개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사실이라면 아니면 사실 확인을 위해 한번 실험을 해 볼 일이다. 잘 될지 모르는 일이지만.

이 책은 오래 전부터 한번은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었다. 제목이 근사하지 않은가? 읽다보니 사실 별스럽지는 않아 보였다.  부자가 되기 위한 뭔가 모를 비법이 숨어있는 것도 아니다. 흔한 경영이나 자기계발서 중의 하나다. 그리고 읽다보면 저자가 혹시 부자들을 별스러운 존재로보고 그들을 대변하기 위해 쓴 건 아닌가 하는 의혹도 가져봤다. 사실 그렇지 않은 이를테면 꼴통에, 플레이 보이, 호사가들도 많은데 마치 부자는 똑똑하고, 바르고, 처세에 뛰어난 인물인 양 말하고 있어 안 그래도 그들만 보면 은근히 배리가 꼴리는 마당에 이렇게 써 놨으니 그런 의혹을 갖지 말라는 법이 아딨겠는가?

더구나 보통 사람들과의 비교 구절이 간간이 눈에 많이 띄는데 내가 보통의 사람으로 사는 것에 대한 은근한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좀 더 뒤로하고 저자가 이 책을 왜 썼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사실 우리나라에선 부자들이 연구된 바가 그다지 많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부자는 연구되어져야 한다. 그리고 부자의 범위는 넓어져야 한다. 이 책에서 거듭 강조하는 것이 있다면, 부자는 돈만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면 오히려 자신이 잘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 또는 남을 이롭게 하는 일에 포커스가 맞혀져 있는 것을 보면 부자의 가치 창출은 다양해져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한다면 저자는 부자냐 아니냐 보다는 사람들의 의식의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 이 책을 썼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결국 내가 잘 살지 못한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부자들은 하는데 나는 하지 않는 뭔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일 깨우기 위해 이 책이 씌여졌을 거라는 것이다.

자, 그렇다고 한다면 내가 부자를 만났다고 했을 때 나는 어떤 점심을 그들에게 사야할까? 그리고 그들에게 뭐라고 첫마디를 시작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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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라겐 2005-05-20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점심을 사려고 해도 제 주변엔 부자가 없어요...ㅎㅎㅎ ??? 아 꿈꿀랍니다..
언젠가 가만히 있어도 서로 점심을 사겠다고 연락오는 날까지...아웅~

stella.K 2005-05-20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라겐님 고마워요. 서재가 서재인만큼 다른 다른 페이퍼 보다 리뷰에 신경을 더 쓰는 편인데 허접한 페이퍼 보다 댓글이 없고 추천도 없으면 민망하더라구요.
그 부자 같이 꿈꿉시다.^^
 
선현경의 가족관찰기
선현경 지음 / 뜨인돌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책에 관해서는 나름대로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별것 아니구나 싶을 때가 참 많다. 특히 만화책은 거의 전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재 활동을 하면서 나는 이 만화책에 대한 도전을 맞이 받는다. 특히 로드무비님께로부터. 우리가 처음 인연을 맺었을 때도 그분은 나에게 만화책을 선물하셨고, 그래서 리뷰를 올린 바도 있다.

그 밖에도 몇권이 더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이 가족관찰기다. 이 책은 만화책이라고 보기엔 책장의 질감이나 내용이 그것을 훨씬 뛰어 넘는다. 이를테면 글도 있고, 그림도 있고, 사진도 있고, 만화도 있다. 그렇다면 이걸 퓨전이라고 해야할까? 그래도 될 것 같기도 하다.

선현경은 이우일 씨의 아내란다. 이우일은 많이 들어봤는데. 전혀 결혼할 것 같지 않고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만나서 결혼을 하고, 아이 하나 낳고 사는 이야기를 소박하고 짭쪼름하게 쓰고 그리고 만들었다.

가족 관찰기라고 해서 무거운 내용도 아니고 그냥 일상에 사소한 것들 속에 숨어있는 이면이나 통찰을 작가는 끄집어내 만화와 함께 잘 버무려낸다. 그리고 솜씨가 탁월하다.

그녀에게 아이가 있느니만큼 이야기의 거진 대부분은 아이와 남편에 관한 이야기다. 물론 아닌것도 있지만. 그것은 어찌보면 당연해 보인다.

만약에 내가 가족 관찰기를 썼다면 어떻게 썼을까? 당연히 결혼을 안 했으니 우리 엄마나 같이 살고 있는 식구들에 대해 썼겠지. 그런 시각에서 가족을 보는 거랑 결혼해서 가족을 생각하는 거랑은 많이 다를 것이다. 지금의 나는 그냥 가족 구성원 중의 하나(어찌보면 그냥 묻어가는) 일뿐이지 가정을 건사하기 위해 책임이 있고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위치는 좀 아니다. 그러니 이만큼 재밌게 쓸 자신이 없다. 안 그러면 한국판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썼겠지.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선현경 씨와 이우일 씨가 결혼을 잘 했다고 본다. 내가 그들을 잘 알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객관적으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했다는 것이 잘했다는 것이다.

결혼은 확실히 안 할 것 같은데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결혼하려고 아둥바둥 거리는 것도 좀 꼴불견이고 또 결혼하려고 이것 맞추고 저것 맞추며 신중의 신중을 기하다 파탄나 버리는 것도 옳게만 보여지지 않는다.

그냥 순수하게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고 사랑하는 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아이 낳고 사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게 좋은 것 같다.  

그런데도 난 이 책에 별을 세 개만 주었다. 세 개라면 적지도 많지도 않은 중간이라고 본다. 난 이것이 내가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별로 실감을 하지 못하고 읽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도 어느 땐가 결혼해서 아기 낳고 살다 우연히 이 책을 다시 뽑아 들면, 오, 그래 맞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 현재로선 세 개 밖에 줄 수 없는 이유도 분명 있다.

하지만 이야기는 내가 처음에 밝혔던대로 너무 딸 은서에 집중되어있다. 물론 내 친구를 보더라도 결혼한 친구들 보면 남편 얘기하는 것 보다 아이 얘기하는 게 더 많다. 어찌보면 그건 당연한 일이다.

선현경 씨도 자기 딸래미 얘기를 더 많이하고 싶어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선 육아 일기를 보는 것 같다. 그것을 일반적으로 육아 일기라 하지 않고 굳이 가족 관찰기라고 명령한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작가가 그렇게 정한 것일테니 내가 굳이 뭐라고 얘기할 바는 못된다.

또한 내가 별 세개를 준 것은, 다른 사람의 리뷰를 대충 훑어봤더니 별 네 개 이상 다섯 개 까지도 줬다. 하지만 이 책은 분명 재미있고 생각할 꺼리도 있고 탁월한 면도 있지만 그렇다고 작가가 별 네 개 이상 주리만큼의 별스러운 삶을 사는 것도 아니다. 소박하고 재미있게 산다.

그렇다면 우리라고 그만큼 못 사는가? 사실 작가만큼 또는 작가 이상으로 재밌게 살 것이다. 단지 작가는 이것을 책으로 냈다는 것이고, 우리는 못 내고 있거나 아직 안 내고 있을 뿐이다.

또 내가 이 책에 별 세 개를 줬던 건, 더 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만화 그림이 대체적으로 작고 따라서 글씨도 작고, 색감도 그리 밝은 톤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두운 바탕에 까만 글씨이고 보면 나 같은 귀차니스트 주리 책을 볼 때 누워보는 보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 같은 편하게 볼 수 마는 없었다.

그림도 크고, 글씨도 컸더라면 우리 엄마 같은 노인분들에게 권할만도 할텐데 그것이 그리 용이하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도 세 개다.

리뷰를 쓰랬더니 책 품평으로 마무리를 짓는 것 같아 좀 그렇긴 하다. 그리도 선현경 씨 남편 이우일 씨는 대머린가 보다. 그림마다 빡빡이로 그리고 있으니. 은서도 재미있는 아이인 것 같다.

나 또한 작가의 가정이 언제나 행복하고 웃음 꽃이 만발했으면 한다. 그리고 이 책을 선물해 주신 로드무비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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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5-05-03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이 가는 리뷰입니다. 그러니까 결혼을 안하셨기 때문에 저자의 글에 완전히 동화되지 못했다는 거죠?
오자 하나. 브리짓 좀스--> 브리짓 존스 호호.

stella.K 2005-05-04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오랫만에 마태님 댓글 남겨주셨군요. 감사해요. 오자 고쳤어요. 쓸 땐 재대로 썼다고 생각하는데 쓰고나면 왜 이리 오자가 많은 것인지...지적해 주신 것말고도 또 있더라구요. 고쳤지만.^^

2005-05-15 0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상역사 21세기
마이클 화이트.젠트리 리 지음, 이순호 옮김 / 책과함께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나는 공상과학 영화를 좋아한다. 그게 언제부터인지 알 수는 없다. 그냥 TV에서 SF 영화를 하면 거의 빼놓지 않고 봤던 것 같다. 왜 공상과학을 좋아하게 되었던 것일까? 나는 그다지 과학엔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는데도 이것마는 예외였던 것 같다.

SF의 비주얼한 영상이 좋아서일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체험하지 못한 가상의 세계는 확실히 미지의 세계고 관심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가상역사 21세계 세기>는 2018년에서 2045년등, 정말 그때가 되면 내가 존재할 확률은 거의 희박한 상태에서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또 누가 알겠는가? 2005년 오늘 이 시간 나의 이 허접한 리뷰를 읽고 있는 사람들 중에 그때도 버젓이 살고 있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 글을 쓰고 있노라니 아직도 20세기를 살고 있던 그 시절이 생각이 난다. 그때 난 사춘기였고 분명 세기 말을 살고 있었지만 감히 21세기를 맞이하게될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고, 언젠가는 맞아할거라고 해도 너무 막연했었다. 하지만 나는 살고있고 드디어 감격의 21세기를 맞이했고 오늘 2005년을 살고 있다.

내가 사춘기를 보냈을 그 시절에도 오늘을 예견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므로 21세기는 그다지 새롭지 않다. 과학의 눈부신 진보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턴가 예측이 가능했고 범주화가 가능했다. 그것은 인간의 앞선 예측 가능한 과학적 업적이 그것을 가능케했고 그에 따른 많은 인간 삶의의 문제와 부작용을 야기시킬 것도 지적해냈다. 그런데 이 <가상역사 21세기>가 무엇이 새롭단 말인가?

아무리 2005년을 훨씬 지난 싯점에서 썼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익히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는 것 그리고 대두될 것을 픽션이란 당의정을 입혀 정리해 놓은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나 할까? 전망은 있으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그러할진데 거기에 굳이 거창하게 '역사'라는 수식어를 붙일 필요가 있었을까? 아무리 그 앞에 '가상'이란 단어도 넣긴 했어도 말이다. 또 그러기엔 무책임하게도 보인다.

역사란 무엇인가? 과거만을 얘기하는 것은 역사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과거를 통해 인류의 삶을 좀 더 심도있게 조망해 보는 것이 또한 역사가 아닐까? 그런데도 '가상역사' 라는 말을 서슴없이 썼다. 이 제목이 살아있으려면 좀 더 깊이있게 이야기를 다루던가 아니면 제목을 달리했어야 책의 가치가 살아나지 않았을까? 좀 더 심플한 거라면 먹히지 않았을까 한다. 책은 묵직하되 그 내용은 보여지는 것에 비해 비교적 그리 묵직하지 않다. 그래서 나 같이 '과학'이라고 하면 고개부터 갸웃거리고 보는 사람에겐 그럭저럭 먹힐만 하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과학을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에겐 다소 실망하지 않을까? 물론 이것도 어디까지나 취향의 문제겠지만.

또 다른 아쉬움이나 의문은 앞으로의 세기를 이 책에선 너무 어둡게만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 책에서처음 논의된 것은 아니겠지만, 앞으로의 세기가 정말 어둡기만 할 것인가에 나는 의문을 단다. 물론 그럴 확률은 반반일 것이다. 물론 인간이 이기주의를 버리지 않는 이상 미래는 어두울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 어디에선가는 이기주의를 질타하고 반전주의자들과 환경주의자들은 존재한다. 물론 그들도 세상의 어두운 면을 알기에 그렇게 하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그런 사람들의 노력으로 세상을 다시 평화를 되찾고 밝아졌다는 얘기를 하면 안될까?

이 책은 시종 '미국적'이란 느낌이 참 많이 들었다. 공저자 중, 마이클 화이트는 영국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나머지 한 사람은 미국 사람이다. 요즘 책을 쓰는 경향이 영화화될 것을 생각하고 글을  쓴다고 한다. 그래서 그럴까? 미국의 메이저급 영화사 드림웍스가 판권을 사들여 다큐멘터리로 제작중이란다. 그래서 그럴까? 읽는 내내 영화적 상상이 어느 만치는 가능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아마 모르긴 해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다큐멘터리는 아니리라. 픽션이 섞인 다큐멘터리겠지.

그래도 내가 이 책에 별 세 개를 주는 건 저자에 비해 번역자의 번역이 마음에 들어서다. 역자에 대해선 나는 그다지 아는 바가 없지만 모르긴 해도 번역 잘 하기로 이름난 사람 중 한 사람인 것 같고(바람구두님의 리뷰에서) 매끄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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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5-04-05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스텔라님도 별로셨군요.
이 책 재밌게 읽은 건, 이 마을에 저 하나인거 같아요. ^^; 뭐,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제가 '뽐뿌마공'이 좀 높은 편이라...쫌 그렇네요.

stella.K 2005-04-05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다 취향의 문제죠. 전 좀 제목이 내용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왜 그런 제목을 정했는지 지금도 좀 의아스럽다는...^^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김산해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고백하건데, 나는 신화를 재대로 읽어 본적이 없다. 저 유명하다던 <그리스 로마 신화>도 에니메이션으로 본적은 있어도 책으로는 어느 한 권도 완독을 해내지 못했다. 그것은 신화가 갖는 중요성에 비해 너무 전문적으로 씌였던가, 너무 어린 아이 취향으로 씌여 그 중간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아보였고, 신화에서 용어 자체가 일상 용어는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이제까지 신화 읽기를 미뤄왔던 것 같다. 거기에 나의 게으름도 만만치 않은 요인으로 작용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내가 교회를 다니고 몇 번의 성경완독을 하면서도 구약의 <창세기>를 그냥 믿음의 대상으로 읽지 '신화'의 관점에서 보려고 하지 않았다. 물론 신화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연구하는 시도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면서도 말이다.  사실 난 그 분야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너무 나 자신을 비하 하지는 말자.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그래도 토막적이긴 해도 거기에 대해 아주 문외한은 아니니...

이 책을 읽고나니 인간에 대한 폭이 넓어진 느낌이다. 사실 인간의 역사는 '최초'를 말하는 역사고 동시에 배반의 역사다. 이 두 가지의 동력이 인간의 역사를 또한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최초'를 말하지 않으면 신화를 말할 수 없고, 기존의 질서를 전복하는 '배반'이 없다면 역사는 씌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는 신화없이 만들어지지 않고 후대에 전해지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늘 신의 영역을 보길 원했고, 뛰어넘길 원했으며, 필요하면 도전하고 맞서기도 했다. 물론 그렇게 해서 승리를 쟁취하든 깨지든 지간에 그렇게 인간은 모험의 속성을 가지고 있고 도전과 전복의 심리를 배태하고 있는 것이다.

길가메쉬. 그는 완벽한 인간이지 않는가? 물론 내가 말하는 이 '완벽'이란 단어가 일반적인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는 완벽한 외모를 갖췄고, 신의 아들이었으며, 용맹스러웠고, 그에겐 함께 싸워줄 친구(엔키두)와 언제든지 육체적 욕망을 채워줄 권한을 부여 받았다(초야권). 그리고 그가 서 있는 그 땅의 끝에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신화와 역사를 세웠다. 그러나 그 역시 죽었다. 그래서 그는 완벽한 인간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그가 죽지 않았다면 그리고 최초의 언어라고 하는 악카드어로 씌여지지 않았다면 이 '최초의 신화'라고 하는 수식어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수많은 변형을 걸쳐 때론 베레쉬트로 그리스 로마 신화로 발전과 전승을 거듭해 올 수 있었겠는가?

저자도 지적했다시피 언어가 참 무섭다. 이 언어를 통해 신과 소통할 수 있으며 또한 이것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키워갈 수 있었으며 바로 이것 때문에 신에게 무참히 보복 당하고마니 말이다. 그래도 인간은 여전히 신의 질서에 도전한다. 그것은 오늘 날까지도 계속해서 수 많은 논쟁 속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 인간은 '최초'가 되길 원하고 '최고'가 되길 바란다. 어찌보면 길가메쉬의 원형은 오늘 날에도 살아있지 않은가.

나는 이 책 후반부의 <길가메쉬 서사시>에 대한 저자의 해석 부분이 참으로 많이 흥미로웠다. 초야권에 대한 해석이랄지 죽음에 대한 해석. 여자에 대한 해석을 읽을 땐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후계자에 대한 해석(386P)은 참 흥미롭다. 특히 신의 노동을 대신하기 위해 인간을 지었다는 점은 많은 상상력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기 때문에 아담은 에덴 동산에서 쫓겨 났으며(인간이 노동을 정당화 하기 위해?) 인간은 결코 지배하려고 하지 지배 당할려고 하지 않는다는 건 인간이 신의 창조물이기 때문은 아닐까란 내 맘대로의 상상의 나래를 펴보는 것이다. 후후.

끝으로 나 역시도 별 다섯 개를 주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것은 저자인 김산해 선생이 무려 20년 동안이나 연구해서 우리가 그처럼 많은 도판과 함께 쉽게 볼 수 있게 해 주신 것에 감사 드리기 때문이다. 나는 선생님이 부디 오래 건강하셔서 앞으로 더 많은 후학들을 위해 애써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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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2-26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도 읽으셨군요.
전 살까말까 망설이다 포기한 책입니다.
리뷰도 참 재밌게 쓰셨네요. 추천하고 갑니다.^^

니르바나 2005-02-26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쓰기에 만만치 않은 분량의 책인데 먼저 일독하신 일 축하드립니다. 스텔라님

stella.K 2005-02-26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고마워요.^^
니르바나님, 사실 일독이 쉽지 않은 건 사실이어요. 내용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닌데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타입은 아니거든요. 그래도 보람은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마냐 2005-02-27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러다간...알라딘에는 길가메쉬 서사시를 읽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렇게 두 부류가 남을 거 같슴다. 암튼, 여자에 대한 해석, 초야권에 대한 해석이 어떻게 스텔라님을 미소짓게 했는지 궁금하네요. ^^

stella.K 2005-02-27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초야권이 아니라 여자에 대한 해석인데요 뭐 여자인 우리는 다 아는데 남자들은 모른다고하니 그냥 웃음이 났던 거예요. 마냐님 추천 고마워요.^^
 
 전출처 : 마냐 > 예수는 이야기꾼...
예수 하버드에 오다 - 1세기 랍비의 지혜가 21세기 우리에게 무엇을 뜻하는가
하비 콕스 지음, 오강남 옮김 / 문예출판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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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랍비였다. 랍비 예수는 전 역사를 통해 가장 위대한 이야기꾼이었다."

생뚱맞을 수 있겠다. 예수의 신성을 모독한다며 펄쩍 뛰거나, 이게 뭔 소리냐며 귀를 쫑긋할 수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먼저 랍비들의 전통을 이해해보자.
 
랍비들은 이야기로 상상력을 일깨웠다. 예수도 이를테면 `케이스 스터디'같은 방법으로 사람들 스스로 생각하도록 했다. 일률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그런 대답은 주지 않았다. ‘이럴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상상력. 랍비 전통의 통찰과 윤리적 상상력이 결합되는 순간이다. 게다가 예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것을 실천하게 하는 일로 짧은 생애를 보냈다. 심지어 그가 도발적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한 것이라든지 고문에 의해 죽음을 당한 것도 그의 삶에 대한 설화의 일부가 되었다. 이런 설화, 이야기에서 나오는 상상력은 우리가 `윤리적 딜레마'에 빠졌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 해답을 찾고, 또 실천하는 용기를 갖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저자는 독특한 기독교 해석과 `세속도시'라는 명저로 유명한 미국 하버드대 신학 교수다. 책은 1980년대 초부터 20여년간 그가 강의한 `예수와 윤리적 삶'을 정리한 총괄편이다. 믿지 않는 이에게 예수 연구가 뭐 그리 재미있었겠나 싶지만, 책을 보니 생각이 바뀐다.
 
예수를 `친구'처럼 여긴다는 저자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편견을 하나씩 꼬집는다. 일단 성경, 복음서는 본질적으로 이야기란다. 예컨대 히브리 성경은 여리고 성벽이 무너졌다 했지만 고대 여리고에는 성벽이 아예 없었다는 점이 밝혀졌다. 예수의 ‘동정녀 탄생’ 이야기도 심하게 오해되는 경우가 허다하단다. 성모 마리아를 `영원한 처녀'라 하는 것은 결혼에서 성적 친밀감을 평가절하하는 일이라나. 예수에게 적어도 야고보라는 형제 하나는 있었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저자는 상상력으로 재창조한 이야기가 성경에 담겨있다고 해서 그 영적 효용성을 불신할 이유는 없다고 강조한다.
 
성경은 지루하다는 오해도 버리자. 예수의 족보에 등장하는 다말의 경우, 남편이 죽은뒤 창녀로 변장해 시아버지와 동침, 쌍둥이를 낳는 파란만장한 삶을 보여준다. 저자는 "`거룩한 책'에 이런 스캔들도 있는데, 누가 따로 돈주고 로맨스 잡지를 사느냐"며 "이런 이야기야말로 허심탄회하게 윤리적 문제를 토론할 길을 터준다"고 말한다.
 
오히려 위험한 것은 성경의 오독. 예컨대 적그리스도가 등장, 최후의 심판과 휴거가 있을 거라는 종말론 시나리오는 성경 구절들을 문맥과 상관없이 짜집기한 결과다. 특히 누가 적그리스도라는 악역을 맡을 것이냐가 문제. 냉전 시기에는 히브리어 `로쉬'를 `러시아'로 번역하는 ‘창의성’이 발휘됐다. 물론 요즘 새롭게 떠오른 `적그리스도'는 이슬람이다. 저자는 "종말론 신봉자들은 예수의 삶과 가르침은 설교하지 않은채 인간의 윤리적 선택을 무력화시킨다"며 "이런 황당하고 정신나간 신학에 매료되는 사람이 많은 것은 고통과 맞붙어 싸우기 싫어하는 이들에게 편리한 도피구가 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배타적이지 않은 저자의 유연함은 가장 인상적인 미덕이다. 마하트마 간디야말로 예수의 핵심적 통찰을 파악하고 사회운동으로 이끈 인물이라고 평하는 그는 다양한 신앙에서 공통적 윤리적 접근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불교와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사이에는 중첩되는 가치가 너무 많기 때문에 진정한 `지구 윤리'의 초석 마련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하기야, 예수만큼 유연한 인물이 있던가. (예수를 잘 모르는 나로서는, 이렇게 유연하고 개방적인 예수를 따르는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그리 배타적이 될 수 있었을가 의아하다. 아무리 종교가 정치적으로 이용된지 2000년이라지만.)
 
로마의 백부장에 대해 “내가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했노라(마태복음 8:10)고 하거나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 등. 예수는 다른 전통의 사람들이 서로 어울린다고 해서 윤리적 혼동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믿은 것 같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는 윤리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다양한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아주 중요한 통찰이다. 예수는 교차 문화의 만남을 장애가 아니라 오히려 기회로 본다. 로마의 백부장이든, 욕심많은 세금징수원이든.
 
생명복제까지 이야기하는 시대, 구시대의 유물이 될 것 같았던 종교가 다시 뜨고 있다. 기아와 테러 등이 눈부신 과학발전과 더불어 오히려 사람들을 혼란으로 몰아간 탓이다. 하지만 종교의 부흥은 여러 종교 문명 사이의 갈등도 부추긴다. 과연 1세기 랍비가 21세기의 우리를 이끌어줄 것인가.

`랍비 예수'의 가르침에도 새삼 관심을 갖게 되지만 쉽지 않은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는 책을 읽다보니 저자의 강의를 `교양과목'으로 들었다는 하버드대생들이 무척 부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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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내키지 않는 책이었다. 종교, 신학 이런데 관심도 없고, 머리도 아플게 뻔하지 않겠나. 그런데 책이 의외로 재미있었다. 처음엔 좀 지루해서 계속 졸았는데, 상당히 흥미로운 대목이 많은 책이다. 암튼 삐질삐질 리뷰 정리하는데 옆자리 L이 엄청나게 큰 소리로 외친다.
 
 "아니, 하비 콕스 책이잖아? 엉? 정선배 하비 콕스 몰라요? (이 대목에서 정말 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 모를 수가 있나...아니 정말 인문과학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모를 수 없는데. 아하, 정말 좀 무식하다는 얘기잖아.(목소리 좀 낮추지 L옵바..ㅠ.ㅜ)"
 
 박학다식한데다 신학과 출신인 L은 하비 콕스가 엄청엄청 유명한 신학자이며, 흑인으로서 최초로 하버드 신학대에 자리잡은 사람이며, 그의 명저 '세속도시'는 정말 필독서라고 했다. (그래서 저자 소개에 저 한마디를 집어넣었다. -,.-) 그가 썼으면 재미있을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글 잘 쓰는 신학자라는게다.

 암튼, 잘나간다는 신학자가 이렇게 유연하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엄숙주의나 권위 따위도 없고, 유일신을 섬겨야 하니, 배타성은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변명하지도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생명체의 생명을 중요시하는 불교의 가르침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고, 불교인들은 사회정의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관심 일부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며...유대인들과 이슬람교인들은 하나님의 법이 삶의 모든 분야에 미쳐야만 한다는 통찰을 공유하고 있다고 설명하는 그는 종교간 화합에 대해 낙관적이다. 그의 말대로 모든 종교가 힘을 합쳐 `지구 윤리'라도 만든다면 근사하지 않겠나. 나와 다른 종교인을 악마로 규정하는 것보다는 훨씬 그럴듯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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