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놀이터 옆 작업실 - 홍대 앞 예술벼룩시장의 즐거운 작가들
조윤석.김중혁 지음, 박우진 사진 / 월간미술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원래는 이 책을 빨리 읽을 마음이 없었다. 기한이 좀 있으니 그 때 임박해서 읽고 후다닥 리뷰를 올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냥 훑어보다가 아예 작심하고 붙들고 읽게된 그런 책이다. 그만큼 재밌고 빨려들어게 만든 책이다.
사실 이 책은 홍대를 중심으로한 비주류 예술가들의 생활과 그들의 예술에 대한 담론을. 그리고 그것이 홍대를 중심으로 해서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가를 소개한 책이다. 스무 명에 가까운 목소리를 담으려니 어찌보면 단편적이고 다소 가벼운 듯한 느낌도 있다.
하지만 늘 길을 가도 같은 길로만 가고, 버스를 타도 늘 타던 버스만 타며, 놀아도 같은 장소에서만 놀기 좋아하는 내가, 책을 보아도 비슷한 류의 책만을 보는 경향이 있는 나에게 어느 날 이 책이 손에 들어와 붙들게 됐다는 건 왠지 신선한 산소를 마시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난 이 책 읽기를 미룰 수가 없었다.
새삼 놀라운 일은 한 나라의 문화를 논할 때 그 지역의 특색이 저마다 다르다는 것이 또한 놀랍다. 한 지역의 문화가 형성되기까지 어떠한 필요와 이제까지의 삶에 반(反)하는 저항과 몸짓이 있었던 것일까?
분명 세상은 어떤 패턴과 유형을 정해 놓고 이렇게 살라고 한다. 그것이 정형화되면 그것이 마치 정석인양 살면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애써 그 부류에 속할려고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정석인지 누가 알겠는가? 그냥 많은 사람이 그렇게들 살고 있으니까 소외 당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그렇게 사는 척 하는 것이라는 걸 우리들 자신은 알고 있을텐데.
거기에 굳이 소외 당할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 어찌보면 그것을 역이용해서 오히려 주류의 삶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난 그들이 좋다. 이 책에 나오는 어느 홍대통의 말을 들어보자.
전 어떻게 하면 반항을 잘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어떻게 하면 지루한 세상을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가 재미있게 살 수 있을까? 말하자면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오랫동안 하다가 바위치기의 전략가가 된 셈이다.(59p)
결국 이것이 언더그라운드의 삶이고 힘이고 그런 사람들끼리 모여서 홍대를 중심으로 독특한 문화를 형성해 낸 건 아닐까? 그러면서 또 다른 홍대통은 홍대 문화를 이렇게 말한다.
"홍대 주변 하면 반항이란 단어가 떠오르죠? 아니면 언더그라운드? 인디?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이 동네의 키워드는 관용이에요. 다른 데서는 옷을 홀딱 벗고 길거리로 뛰어나오면 사람들이 바로 신고하죠. 하지만 홍대 주변에서는 조금 봐줘요. 그만큼 상대방을 지켜볼 수 있는 여유가 있기 때문이예요. 마음의 여유, 시선의 여유, 그런 게 있기 때문에 이 동네가 좋죠."(65p)
솔직히 난 관용 보다는 정이 있는 곳이 더 좋다. 하지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그것은 요즘 같이 집단이기주의가 팽배한 세상에서 필요한 덕목이 아닌가?
나는 주류의 삶 보단 비주류의 삶을 사는 사람에게 애정이 더 간다. 그것은 난 아무래도 주류적 삶을 살 것 같지가 않아서 이기도 하겠지만 누군가는 주류적 삶이 그르지는 않을지라도 꼭 옳은 것도 아니라는 걸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서이다. 솔직히 주류적 삶이라는 건 힘있는 자들이 쳐놓은 네트워크가 아니던가?
이 책을 읽다가 세계 100대 기업 안에 속하는 우리나라 굴지의 모 기업에 다니는 나의 후배 녀석이 생각이 났다. 녀석은 거길 다니는 바람에 커리어는 좋다고 할지 모르지만 거의 살인적으로 일에 혹사 당하고 있어 항상 후줄근하게 하고 다딘다.
나는 그에게 안쓰러워서, "야, 사람나고 일 났지, 일나고 사람 났냐? 사람이 우선 살고 봐야하는 거 아니냐?"했더니, 그러지 않아도 다들 그런 말을 한단다. 녀석을 보면 그 기업이 괜히 세계 100 기업이 아니겠구나 이해는 간다. 하지만 내 견지에선 왠지 석연치 않다.
예전엔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했다. 하지만 요즘 세대를 예전에 비하면 안된다. 노는 것이 일하는 것이고, 일하는 것이 노는 것인, 거기서 가치창출이 되고 돈도 번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나로 하여금 안도감을 느끼게 한다.
21세기는 자고로 잘 노는 사람이 대우 받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해마다 대입학력 고사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도 없어야 하고, 직업을 못 구해 미쳐 돌아가는 사람도 없어야 한다.
여기 연극계에 종사하는 또 다른 홍대통의 말을 가슴 깊이 새겨보며 이 글을 맺을까 한다.
내가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여주면 관객도 즐거워질 것이고, 그러면 세상이 즐거워진다.(67p)
세상 모든 사람이 즐겁게 사는 그날까지 홍대 옆 놀아터여 영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