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그래픽 노블)>를 리뷰해주세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공보경 옮김, 케빈 코넬 그림, 눈지오 드필리피스.크리스티나 / 노블마인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어찌 어찌 하다보니 피츠제럴드의 이 작품을 소설로 영화로 그리고 만화로 보는 호사를 누렸다.  

원작을 두고 영화로 만화로 보는 이 작품은 조금씩 달랐고 과연 누가 어떻게 각색하느냐에 따라 내용이 이토록 달라질 수 있구나 새삼 인간의 창조력에 경의를 보낸다고나 할까? 그렇다고 하면 앞으로 5년 뒤 또는 10년 뒤에 이 작품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기대가 된다. 

소설로 한 번 읽었을 땐 그냥 이런 특이한 이야기도 있구나 싶었다. 그러나 영화로 보고 만화로 보면서 역시 울림이 있는 좋은 작품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작품의 성공요인은 무엇보다 인생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우화적으로 풀어냈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나 개인적으로 느끼기엔 영화가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워낙에 시나리오도 좋았지만 배우의 탁월한 연기 또한 볼만했고 무엇보다 가슴 저미는 사랑이 전반에 깔려 있기 때문에 가장 오래도록 기억에 남지 않나 싶다.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면 이런 특이한 소설이 있었구나 정도에서 끝나버렸을지도 모른다. 영화든 소설이든 장단점은 있게 마련이다. 소설은 원작의 맛과 함께 상상력을 배가 시키지만 영화는 실사에 충실해 한 번 보고나면 더 이상의 상상을 불허하게 만든다. 그러기 때문에 좋다, 나쁘다로 얘기할 수 있을 뿐 중간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만화는 어찌보면 소설과 영화 사이의 장단점을 중화시켜주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래도 만화로 보는 <벤자민 버튼...>은 영화 보단 원작에 제법 충실해 보인다. 특히 러브 라인을 그다지 크게 부각시키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러브 라인은 영화를 풍성하게 만들지만 또 다른 관점에선 작품전체를 너무 도드라지게도 만들 수 있다. 원작이 뜻하는 바는 인생이지 사랑은 아니지 않는가?

또한 주인공 벤자민 버튼을 처음으로 등장시킬 때 영화와 만화가 다른 점이 있다면, 영화는 어린 아이 몸에 얼굴은 우굴쭈굴한 노인의 얼굴이었던데 반해 만화는 노인 그대로를 등장 시켰다는 것인데 이건 사실적이지도 않거니와 억지스러워 영화가 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내가 만화로 보면서 느끼는 것은, 처음부터 노인인 벤자민 버튼이 그 정신 연령 또한 노인에 맞게 그렸다는 것인데 나는 오히려 몸은 노인이지만 정신 연령은 어린 아이의 그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왜냐하면 뇌가 받아들이는 지식과 생각의 깊이는 몸의 변화가 있다고 해서 같이 변화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특별히 뇌를 다치거니 치매에 걸리지 않는 이상엔 말이다. 그러므로 몸은 점점 어린 아이가 되가 돼 정신은 노인의 감각을 유지해야 더 실감이 나지않을까를 생각했다. 하지만 마지막에 그는 지난 날의 모든 것을 잊고 갓난 아이의 평화로움인 상태로 죽음을 맞는다고 했을 때 공감하면서 이런 설정도 나쁘진 않겠구나 비로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우리 인간의 죽음도 때론 이래야 하지 않을까? 인생의 이루지 못한 꿈과 상처 받은 과거 때문에 전전긍긍하다 죽음을 맞이하였다고 하면 너무 안타깝지 않을까?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한 인물의 특이 인생 역정의 상상력의 극치를 보여주고자 함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끝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묻고 성찰하게 만드는데 그 의의가 있지 않을까 한다.  

게다가 벤자민 버튼은 자신의 특이한 삶을 비관하지 않았다. 그런 사람은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비록 평범하지 않지만 그 주어진 조건에 굴하지 않고 주어진 삶을 개척하는 사람들. 우린 또 그들 때문에 다시한 번 용기를 내며 살지 않는가? 그렇게 보자면 이 작품은 비록 우화이긴 해도 독자들에게 많은 용기와 생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범상치 않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만화로 각색되었다는 점에서 작품을 보는 새로운 맛을 선사했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여전히 딱히 떠오르는 작품이 없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책으로 읽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어린아이가 된 벤자민의 꿈에 괴로운 기억은 머물지 않았다.  

용감한 대학시절과 수많은 소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할 만큼 매력 넘치던 시절의 추억도 떠오르지 않았다. 

...... 

잠자리에 들기 직전 나나가 창밖을 가리키며 "해"라고 부르던 커다란 오랜지색 공이 있을 뿐. 해가 사라지면 눈이 스스르 감겼다...... 

어지러운 꿈 같은 건 꾸지 않았다.(11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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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어디 가?>를 리뷰해주세요.
아빠 어디 가?
장 루이 푸르니에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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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장애인 아들을 둔 아버지의 이야기다.   

세상에 어느 부모가 장애인 자녀를 낳고 싶어할까? 하지만 부부가 장애아를 낳을 확률을 로또 맞을 확률에 비유하며 그들을 키우는 애환을 시종 유머러스하게 풀려고 하고 있다.  

나 역시 처음엔 상당히 공감하며 읽어갔다. '아,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구나!' 하며 저자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져서 좋았다. 하지만 점점 읽어가면서 느끼는 건 역시 우울한 얘기일 수 밖에 없고 결국 저자도 쓰다가 자기 연민과 신세한탄으로 빠지지 않았나 싶어 편치않은 마음으로 책을 덮을 수 밖에 없었다. 

저자는 책 어디에선가 동정 같은 건 받고 싶지 않다고 썼던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쓰고 있는데 어찌 동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 톤 역시 조절을 했다고 하는데 글쎄, 내가 볼 땐 그 톤 조절에도 실패했다고 보여진다. 마치 자기 연민이 지나쳐(장애 아이가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된다. 아내도 힘들다고 자기를 떠났다. 어찌 자기 연민이 생기지 않을 수 있을까?) 자조하듯 중절거리는 것 같다. 물론 그 과정에서 유머도 섞일 수가 있겠지. 이렇게 해서라도 자신의 처지를 스스로 위로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글쓰기엔 자기 치유의 목적도 있으니까. 하지만 과유불급은 아닐까?  그것을 하도 하다보니 자신의 장애 아이의 입장은 별로 고려하지 않는 성 싶기도 하다. 만일 그의 장애 아들이 아버지가 이렇게 뇌까리듯한 이 글을 읽었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자기를 조롱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래서 "아빠, 이제 그만 하세요. 저도 이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 아니라구요!"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적어도 나라면 그랬을 것 같다. 

물론 부모도 한 인간이다. 힘들게 낳은 내 아이가 정상아에 한참 뒤진다면  저자 같이 한숨을 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장애아를 가진 부모가 다 이렇게 말하지는 않는다. 아이의 장애가 자신의 탓은 아니지 않는가? 그것은 특별한 신의 섭리일 것이다. 다른 사람은 조롱할지라도 그를 낳은 부모는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뇌까리다가 아이를 조롱하는 것 만큼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언제까지 신세한탄만 할 것인가? 아이를 좀 더 강한 아이로 만들고(물론 강해진다고 그 아이가 정상아는 될 수 없을 것이다)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여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약간의 의문이 드는 건 이런 지극히 소박한 장애아를 가진 아버지의 글에 페미나 상을 주었다는 것이다. 과연 어떤 의도에서 그런 상을 줬을까? 물론 나름 기준은 있었겠지. 이런 글에 열광해서 상을 주리만큼 프랑스도 장애자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밝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이 책임을 누구에게 돌려야 하나? 내 아이에 대한 인식과 권리를 주장하지 못한 장애아 부모에게 돌려야 하는 걸까? 아니면 스스로 인식을 바꾸지 못하고 안으로 숨어든 장애자 스스로에게 돌려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정책을 입안하는 복지 담당 책임자에게 돌려야 하는 것일까? 

가끔 보면 비장애인은 장애자들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것은 그럴 수 밖에 없다. 장애자가 (아직)되 본적이 없는데 장애자에 대해 어찌 알겠는가? 그렇다면 그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장애인 당사자와 그의 부모들일 것이다. 처음부터 너무 큰 걸 가지고 떠들지 말라. 지극히 작고 디테일한 것 가지고 말해 보라. 그러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고개를 끄덕일 비장애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인식은 작은 것에서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들이 몰라서 변화될 의지가 없고 생각이 없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자기가 사는 근처에 장애인 복지관을 짓고 학교를 짓는다면 가만히 지켜볼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이렇게 말은 하지만 나도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에 대해 너무 무지하고 잔인하다는 생각을 한다. 무지하면 잔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건 역지사지로 풀어 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씌여진 파급 효과를 생각할 때 어느 일정 부분 장애아와 그 부모를 이해하는데 공헌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상도 부여해 주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한다면 이런 류의 책은 좀 더 나와야한다고 생각한다. 울지 않는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 어미새는 없다고 여기 저기서 장애아인 내 새끼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고 떠들어 대야 사람들은 겨우 그들의 소리를 들을 것 같다.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내 아이가 세상에 불의한 대접을 받고 산다. 그들의 부모는 언젠가 세상을 떠나겠지만 누가 그들의 아이를 돌봐 줄 것인가? 

그렇다고 한다면 이 책은 자기 얘기를 했다는 면에서 의도는 좋았지만 그 행간을 너무 숨기고 너무 감정에만 호소했다는 생각이 든다. 소박한 것이 미덕인가? 좀 더 아이를 관찰하고 이해하고 그 이해한 바들을 공유하려고 애쓰지 않았다는 점에서 난 그다지 높은 점수를 줄 수가 없었다. 어찌보면 심하게 말해서 페미나 상도 정말 글을 잘 써서 줬다기 보단 동정이 반 이상이 섞인 상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장애자 부모의 애환을 그렸다는 점에서 그들에 대한 인식을 넓혔다는 점.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에이프릴 풀스데이> 아버지로서 (장애자라기 보단) 환자인 아들을 돌보며 느꼈던 점들을 썼다는 점에서 일맥상통 한다는 생각을 했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이땅에 많은 특별한 자녀를 돌보고 있는 부모들에게.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장애아의 아빠는 항상 우울한 표정이어야 한다. 십자가를 지고, 고통의 마스크를 써야 한다. 농담을 하거나 장난을 쳐서도 아니된다. 장애아의 아빠는 웃을 자격도 없다. 웃는다는 것은 최고로 눈치 없는 행동일 테니까 말이다. 장애아를 둘이나 가진 아빠는 곱빼기로 슬픈 모습을 보여야 한다. (4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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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표류기>를 리뷰해주세요.
대한민국 표류기
허지웅 지음 / 수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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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언제부턴가 에세이류가 좋아지기 사작했다. 이 말은 예전엔 에세이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단 말도 될 것이다. 그냥 잡기라고 생각했고 개인의 사적인 생각을 주저리 주저리 털어 놓는 것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그쪽 방면의 책들이 수준이 낮아서가 아니라 내가 그쪽 방면의 책들을 폄하하는 눈을 버리지 못해서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에 굳이 변명을 하자면 내가 젊다고 생각했을 땐 남의 생각이 그다지 귀에 들려오지 않았고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젊다고 생각했을 땐 세상에 적당히 눈과 귀를 열어놓고 또 적당히 눈과 귀를 닫아놓고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원하던 원치 않던 나도 기성 세대라고 말하는 그 세대에 진입하게 되고 보니 예전보다 더 세상 일에 문외한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난 작년부터 신문을 구독을 그나마 작년부터 구독을 철폐한 뒤로 세상에 더 문외한이되었다.) 물론 기성 세대가 되면 다 세상 일에 문외한이 되는 건 아니다. 아니, 여기서 말을 고쳐야겠다. 문외한이 아니라 무뎌지는 거겠지. 그게 그건가?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처럼 세상 일에 밤 놔라 대추 놔라 시시콜콜 말이 많을까? 특히 정치 얘기! 신물이 난다. 다른 나라 안 가봐서 모르겠지만 정치에 우리나라만큼 관심이 없다고 한다. 알아서 잘 하겠지하는 믿음인 건지? 당신은 그 일 하쇼. 난 내 일이나 하겠소. 하는 무관심을 가장한 똘레랑스인 건지 그건 잘 모르겠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 사람은 두 사람 이상만 모이면 정치 얘기를 한다. 저렇게 똑부러지게 잘 할 것 같으면 여의도 가지 왜 햇볕을 등에 쬐고 저 입질들일까? 시끄러운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 귀를 닫아 버린 것이다.  

그런데 나도 그런 게, 그렇게 살다보니 한편 남의 생각이 궁금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남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러다 보니 그런 에세이류가 읽혀지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책은 에세이라고 하기엔 부드럽지는 않아 보인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에세이는 문학중에도 고급 장르로서 굉장히 정갈하고 작가의 생각을 정제해서 보여주는 것이 에세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러기엔 이 책은 거친 구석이 많아 보인다는 것이다. 문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은이의 필치를 말하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 초두에는 정말 낙서 같이 써 놓은 글들이어서 킥킥대고 웃으면서, 이거 정말 낙서집인가? 의심도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거칠긴 해도 읽으면 읽을수록 젊은이다운 패기가 느껴져서 읽는 맛이 남 달랐다.     

특히 지은이가 기자 경력도 있는만큼 최민수 폭행치사 사건 이면을 다룬 글들이나 연예인들을 인터뷰하고 나서의 느낌 등을 써 놓은 글들을 보면 날카로우면서도 기자다운 기지가 느껴져 오히려 멋지다는 생각마저 들게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지은이의 나이가 올해로 만 서른이다. 본인은 그 나이가 어떻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아직도 충분히 젊은 나이다. 그래서 그럴까? 책은 젊은이다운 비판적 글들로 가득차 있는 듯 하다. 그것이 또한 젊은이의 특권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이만한 비판 의식도 없이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문득 책을 읽다보니 내가 꼭 지은이 만한 나이 때 꼭 지은이 같이 비판 의식으로만 가득찬 내 옛 주일학교 제자 녀석이 생각났다. 나름 나와 통한다싶어 꽤 많은 것들을 얘기하고 공유했던 제자였다. 하지만 그때 난 녀석이 너무 심하다싶은 생각을 한켠 했더랬다. 저렇게 떠든다고 해서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데 그냥 자기 일이나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녀석은 이 책의 지은이 보다 4살 정도가 많은데, 그 녀석은 작년 촛불집회나 쇠고기 정국을 어떻게 볼까 궁금했고 지금은 만날 수 없음이 아쉽게 느껴졌다. 모르긴 해도 어디선가 지은이처럼 떠들고 있겠지?  

사실  이 책은 끊임없이 자지말고 깨어있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특히 2장에  속하는 '큰 사람들의 나라'에선) 그러기가 쉽지 않을텐데 그것도 당차게. 

어딘가 불편하면 누군가는 말해야 한다. 그래서 세상이 좋아지던 좋아지지 않던 그것은 둘째의 문제다. 불편한데 말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자기가 정말 잘하는 줄 안다. 그러나 문제는 너도 나도 서로 잘못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으니 정말 무엇이 문제고 무엇이 정말로 불편한 건지 모르겠다. 

단지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안타까운 건 이 책 역시 문제를 조목조목 짚어내고 현상에 대해서 말은 하고 있지만 대안은 없어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목을 '대한민국 표류기'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현상만 집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하긴 표류하는 무엇에 무슨 대답을 얻을 수가 있겠는가?   

특히 지은이의 개신교 유감에 관한 글은 나 또한 교회 다니는 한 사람으로 유감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분명 기독교가 문제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래서 기독교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높은 것도 사실이다. 물론 지은이가 보지 않은 것을 썼을리는 없다. 하지만 그것이 오늘 날의 기독교 전부를 대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정말 지은이가 보는 것이 전부라면 그런 기독교는 나라도 안 믿는다. 또한 뒤에 예수님이라면을 썼을 정도라면 지은이는 예전에 신자였거나 적어도 기독교에 대해 아주 적대적이지마는 않은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무슨 문제가 이슈화 되면 거기에 따르는 선의의 피해자가 있는 것처럼 그 글은 좀 더 신중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물론 난 그 부분에 대해 시비나 논쟁을 하겠다는 뜻으로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그랬다면 이렇게 서평 리뷰를 빌어 쓰지도 않았겠지. 서평은 서평일 뿐이다. 그런 것처럼 지은이가 써야하는 글에 예외 조항을 두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었다면 나는 독자로서 그냥 한번 읽고 말 일이다.     

물론 '표류기'였던만큼 대안은 이 젊은이한테 물어선 안될 것이다. 그저 허지웅이란 젊은이가 이런 글을 썼다는 것이 누가 읽기엔 '뉘집 자식인지 제법 똑똑하게 잘 썼네!' 정도가 될 것이다.    

내가 그에 대해 한 가지 부러운 것이 있다면 그는 요즘 젊은이 같지 않다는 것이다. 먹고 살기위해 치열하게 일해야 했고 거기서 부딪히고 체험했던 것을 고스란히 글로 쓰고 있다는 것(지금도 그의 블로그에 가면 계속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쓰고 있다.)이 부러울 뿐이다. 부딪히지 않으면, 비판하지 않으면 그리고 쓰지 않으면 나는 없다는 마음으로 썼던 것 같다. 그 살아있는 의식이 부럽다. 몇 살을 먹어도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살고 있는 한 늙지 않을 것이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우리나라에 이런 생각을 하는 젊은이가 있다니!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통과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뭔가 남다른 생각에 자극 받고 싶을 때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세상을 조정하는 건 악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단정 짓기는 너무 쉽고 무책임하다. 정작 걱정해야할 건 차리리 우리 안의 악마다. 무관심이라는 악마다. 지금도 무엇인가를 외치고 행동하는, 관심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눈에 보이는 부조리에 비관과 자조로 일관하기를 거듭하다 우리는 결국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은, 진짜 지옥을 만나게 될 것이다. 진짜 악마를 보게 될 것이다. (29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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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글쟁이들 - 대한민국 대표 작가 18인의 ‘나만의 집필 세계’
구본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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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기자라면 흔히 방송이나 신문 기자를 떠올리곤 하는데 기끔 이런 기자들의 이런 책을 보면 반가운 마음이 든다. 물론 이것도 어찌보면 철저한 기획에 의한 소산일텐데 이 책의 저자겸 기자는 고맙게도 (아직도) 우리나라 미디어에 오르내릴 법한 소위 말하는 '스타 먹물들'을 취재했다는 점에서 나의 기대감을 충족시켰다.   

솔직히 난 작가들을 포함해서 우리나라의 저술가들이 궁금했다. 어떻게 글을 쓰고 있는가는 물론이고, 그들의 생활,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가 늘 궁금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나의 이런 궁금중을 어느 정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우리나라 유명 저술가들이 어떤 식으로 글을 쓰고 있는가는 그 사람의 책 자체 보다 흥미롭다. 이 책에 나오는 작가들 그들의 (자기 전공에 대한) 자료 분류법. 글 쓸 때의 습관들, 평소의 생각들, 글에 대한 소신들이 담백하게 담겨있다. 그래서 이 책은 작가와 독자를 좀 더 가깝게 느끼게 하는 역할을 하게 한다. 특히 나는 국문학자 정민 편이나, 우리에겐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만화가 김세영 편과 공익에 이바지하고 있는 구본형 편이 흥미롭게 읽혔는데, 정민 교수의 문체에 대한 고민과 연구는 그의 성실한 자료 보관 습관만큼이나 신뢰가 느껴져 그의 책들은 나중에라도 전작에 도전하고 싶게 만들었다.  

또한 김세영 만화가는 그의 대표작이 '타짜'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사람일텐데 작품만큼 알려져 있지 않아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놀라운 건 그는 만화가이면서 만화는 보지 않는단다. 그는 오히려 영화를 많이 본다고 한다.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고 장면과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는데 그런 그의 독특한 방법이 나의 관심을 끌었다. 특히 같은 만화가이면서 스승인 허영만 씨와의 애증관계는 정말 듣고만 있어도 이들은 정말 만화를 사랑하고 우리나라 만화 발전의 선구자 구나 싶었다.  

또한 구본형 씨 같은 경우는 경영에 관한 분야를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쓴다는 것과 자신의 그런 글쓰기 노하우를 전수하는 일을 한다는 점에서 참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귀가 아프도록 떠드는 '인재 육성'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 같이 신뢰가 갔다.(이쪽 분야엔 그다지 관심이 없어 개인적으로 그의 책은 이제까지 읽어 본적이 없는데 한번 읽어봐야겠단 생각도 든다.)

이 책을 읽다보면 사람들의 비슷한 공통점을 발견할 수가 있다. 그것은 하나 같이 자신의 일을 일로써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블루오션을 개척했다는 것이고,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는 것이다. 즉 쓸데없이 낭비하는 시간이 없으며 사람을 만나는 것이나 모임에 참여하는 것을 극히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자기 시간에 철저한데 이것은 정말 본 받을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들이 말은 그렇게 하지만 세간에 오르내리는 저술가가 되기까지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게 이 책이 말하는 숨은 진실일 것이다. 그들은 전문 지식을 가졌고 자기 좋아하는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또한 모험을 한다. 우리나라가 아직 온전한 전업 저술가로만 살아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것은 선진국에 비하면 반도 못 쫒아갈 형편없는 대우를 받으면서도 말이다. 그래서 교수이면서 책을 내거나 온전한 저술에만 의존할 수 없기에 강연으로 충당하기도 한다.  저들이 일급이라 그나마 버티겠지만 일급이 아닌 다음에야 나머지 사람들은 어떨까? 감히 가늠해 보게된다. 우리나라는 언제나 그렇게도 부르짖어 맞이하는 초일류 국가가 될런지 모르겠다. 

저자의 애쓴 공력이 느껴져 좋기는 하다. 하지만 편집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 사람 한 사람 인터뷰를 한 후 후기처럼 쓴 글을 박스처리했는데 글자 색은 검정색이면서 회색 바탕을 사용하고 있어 눈이 좀 피곤했다. 다르게도 편집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요따위로 했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에 이 사람네들 말고도 더 많은 먹물들이 있을 텐데 다음에도 저자의 농익은 글을 대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단 어설픈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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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9-03-24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이 책 리뷰하려고, 메모 몇줄을 분명히 어딘가에 기록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어요. 의욕상실이죠. 무지 재미나게 봤는데 ㅎㅎ

stella.K 2009-03-24 12:42   좋아요 0 | URL
ㅎㅎ 바로 쓰지 않아서일거예요.
리뷰는 바로 바로 써야지 안 쓰면 의욕상실에 무기력까지 느낀다능...ㅋ

young 2009-11-12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뒤늦게 독서의 매력에 푹 빠지는 행운을 잡은 사람입니다. 스웨덴에 살고 있는데 한국갈때마다 수많은 책앞에 어떤 책을 살까 고민이 많았는데 stella님의 리뷰를 만나게 되어 큰 도움을 받습니다. 감사드려요. 앞으로도 계속 좋은 리뷰 기대합니다.

stella.K 2009-11-13 18:31   좋아요 0 | URL
에고, 과찬의 말씀입니다.
열심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왜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가 - 우리가 아직 몰랐던 사랑의 심리
헬렌 피셔 지음, 정명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봄날은 간다>란 영환가 보다. 거기서 보면 유지태가 자신을 떠나려는 이영애에게 "사랑이 어떻게 변화니?"라며 어떻게든 사랑하는 연인을 붙들고 싶어하는 안타까운 장면이 생각이 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사랑은 변한다. 변하지 말래도 변한다. 그래서 사랑은 맞이할 땐 가슴이 터져나가도록 뿌듯한 것인 동시에 떠날 땐 차갑고 아프며 싸늘한 것이다.  

이 책은 사랑의 시작부터 어떠한 과정을 거치며 어떻게 식어져 가는가를 추적하는 한 문화인류학자의 보고서이다. 또한 사랑이 어떻게 진화해 왔고 앞으로 어떻게 진화해 갈 것인가의 전망 또한 담겨있다.  

언젠가 나는 사랑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후배들 중엔(꼭 내가 그맘 때) 연애 같은 것 필요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하지만 알고보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일수록 사랑에 얼마나 잘 빠지는가? 요는 따지고 보면 나나 그들은 결혼할 생각이 없는거지 사랑할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사랑없이도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작년 가을, 한 남자 후배는 "사랑도 하도 안하니까 어떻게 하는지를 모르겠더라구요."라고 해서 내심 놀란 적이 있었다. 그렇다. 육체도 어느 한 부분 사용을 안하면 퇴화 되듯이 사랑도 오래도록 안하면 그렇게 되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사랑 그것이 얼마나 덧없고 꿈 같은 것인지 아는 사람은 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사랑의 감정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그것은 신들의 장난이다.(책에서는 '신들의 정신착란'이라고 했다.) 어떻게 인간으로 하여금 사랑하지 않으면 안되는 존재로 만들었단 말인가? 그리고 그것을 즐기고 있지 않은가?

결국 우리 인간은 그 사랑을 얼마나 성숙하게 잘 가꿔나갈 것이냐가 관건이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그 남자 후배가 그렇게 말하는 건 사실 틀린 말이고 바람직 하지도 않다. 그렇게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사랑의 감각'을 쓰지 않다가 어느 날 준비도 되어있지 않는데 갑자기 사랑을 맞이하면 어쩌려고? 또한 그렇게 사랑을 갑자기 시작했다가 떠나 보낼 땐 어떻게 떠나 보낼려고? 

혹자는 그렇게도 말한다. 사랑은 하고 싶은데 사랑할만한 대상이 없다고. 하지만 뭐든 찾지 않은 사람에게 사랑이 올리 없을 것이다. 사랑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반드시 그만한 댓가를 치르고 얻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약한 존재여서 사랑할 때 이별할 것을 걱정하고, 사랑을 고백할 때 거절당할까봐 걱정한다. 하지만 아직 있지도 않은 현실에 집착하지 말아야할 것이며, 거절 당하더라도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일 줄 알아야 사랑은 큰다. 그런데 이 책은 그렇게 사랑이 거절 당했을 때의 사람의 심리적 반응과 복수하겠다는 마음이 스토커가 되는 과정을 흥미롭게 써놓고 있기도 한다.       

사실 나 역시도 사랑에 그다지 익숙한 사람은 못된다. 어느 순간 좋은 감정을 갖다가도 재빠르게 상대가 나에게 관심이 없구나를 알면 얼른 꼬리를 내려버리곤 한다. 또한 과연 내가 이 사람에게 이토록 마음이 가 있는 것이 맞는 것인가 헷갈릴 때도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애써 사랑에 담담한 척 해 온 것도 사실이다. 왜 사랑 앞에 당당하지 못하고 진실하지 못하는 것일까? 나이는 적지 않으면서 사랑은 여전히 아이 수준을 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 관심이 이 책을 읽게 만들었다. 동시에 세상에 많은 남자와 여자들이 사랑을 하지만 사랑에 미숙한 관계로 해어질 땐 애초부터 서로 몰랐던 사람 보다 더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하는 것을 보고 그 간극을 좁혀 볼 수는 없을까 하는 마음이 또한 이 책을 읽게 만들었다.(사실 이책은 오래전 선물로 받고 이제야 읽은 책이다.) 

사랑도 공부해야 한다는 것에 쉽게 인정을 안 하거나, 머리로는 알겠는데 가슴으론 쉬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왠지 사랑은 몸으로 부딪혀 알아야할 것만 같고, 그렇게 책 보며 이론적으로 바싹해지면 진짜 사랑을 맞을 땐 그 감동이 반감되면 어쩌나 하는 우려. 하지만 이 세상 어느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은 나의 앞으로의 생에 작게든 크게든 영향을 주게 마련이다. 하물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인데 그 사람이 앞으로의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지 생각을 하면 그렇게 무방비하게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것인가? 

이 책 말미에 보면 사랑이 점점 늦어지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 지적한 부분이 있다. 그렇게 늦어지는 것은 출산과도 연결이 되는데, 사랑해서 아기를 낳으면 그 아기가 자랄 때까지 어마 어마한 비용을 충당해야 할 것이 부담스러 그것을 피해 가려다 보니 늦어지는 거라고.(이쯤되면 사랑도 나라에서 관리해줬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하지만 통제된 사회에서의 사랑이란 얼마나 비현실적인가?) 알만한 이야기 같긴하다. 이렇게 알고보면 사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순수하고 숭고하지만도 않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오히려 사랑은 약은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사랑을 알지 않으면 사랑이 우리를 전복시켜 버릴지도 모른다. 사랑, 빠지기 전에 공부부터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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