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에서 영성으로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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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가끔 간증집을 읽게되는 경우가 있다. 뭐 그런 책이 어떤 건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이를테면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가를 밝혀 놓은 책이 그것이다. 물론 그런 책을 읽으면 나름 은혜가 되고 감동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간증집이 워낙에 많이 나오고, 교회를 다니게 되면 직간접으로 듣게 되는 것들이 또한 간증이라 굳이 그런 책을 일부러 사 보게 되지는 않는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은 출간 때부터 나의 관심을 끌었던 책이다. 저자가 남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전 문화부장관이면서 교수인 이어령 교수가 기독교에 귀의하고 그 느낌, 체험, 사색, 간증을 쓴 책이니 어찌 관심을 안 가질 수 있을까?       

책을 좀 읽는 사람이라면 이어령 교수가 쓴 책 한권쯤은 독파를 했으리라. 나 역시도 한때는 이분의 책이 좋아 몇권 사 모았다. 사실 다른 사람도 그렇겠지만, 이분의 책이나 강연을 들으면 이분이 쏟아내는 지식의 양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을 금방 느낄 수가 있다. 그의 지식의 스펙은 국문과 교수라고는 하지만 국문학 한가지에만 국한 하지는 않는다. 물론 이분이 세상에 알려지기는 한국과 일본의 문화를 비교한 일련의 작업들로 더 유명하긴 하지만 실제론 기호학이나 문학평론, 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런 분이 신앙 간증집을 냈으니 그 향취는 어떠할까? 자못 궁금해졌다. 

이런 분을 두고 이런 말하기는 뭐하지만,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자기 전공분야 안에서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 나는 같은 간증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간증을 좋아한다. 자기의 삶 전체를 아우르는 간증. 이를테면 자기 삶 따로, 신앙 따로의 간증은 때로 역겨울 때가 있는 것이다. 마치 하나님이 자기만 사랑하는 양. 또는 간증을 못해 안달 난 암고양이 마냥 빤히 들어나 보이는 간증은 금방 그 바닥을 들어내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읽어 본 간증집 중에 나름 좋아하는 책이 있다면 오래 전에 읽은 카피라이터 이만재씨가 쓴 <막쪄낸 찐빵>이다. 이책은, 누가 글쟁이 아니랄까봐 신앙에 문외한인 사람이더라도 읽으면 킥킥대고 웃음이 나올만큼 재미도 있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정말 자기 전공분야 밑바닥에서 우러나는 좋은 간증집이다. 사실 그에 비하면 이책은 다소 묵직하고 어려운 책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왜 그런지에 대해선 굳이 말하지 않겠다. 

이어령 교수는 한때 무신론자로서 기독교와 배치된 글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듯이, 인간의 허다한 많은 지식이 하나님께 눈을 뜨기는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그는 흡사 바울을 많이 닮은 듯도 하다. 하지만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했지 못 들어간다고 하지는 않았다. 마찬가지로 지식인 역시 천국에 못 들어 가는 것은 아니다. 들어가는 사람도 있다. 부자나 지식인이나 안 믿던 사람이 신앙에 귀의해서 180도 달라진 삶을 산다면 그건 또 얼마나 강력한 것일까?  

내가 이책을 읽으면서 감탄했던 건 저자의 지식으로 하나님을 증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지식이 때로 하나님을 부정하는데 쓰일수도 있는데 그 지식이 오히려 하나님을 증거하는데 쓰이는 것이다. 그것을 이름하여 이어령 교수는 '지성에서 영성으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굳이 안 믿는 사람의 편에서 얘기한다면(어차피 간증이라는 것도 안 믿는 사람을 믿게끔 만드는 것이기도 한만큼) 모든 지성 중의 최고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만큼 그것이 바로 영성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어령 교수는 재대로된 수순을 밟고 결국 영성에로의 방점을 멋있게 찍은 분은 아닐까 한다. 그래서 리더십에서도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고, 기호학으로도, 문화에서도 하나님의 원리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읽다보면 하나님을 학문적으로 증거한 학문이라는 변증학의 대가 겸 20세기 최고의 지성 중의 한 사람이라던 C.S 루이스가 생각이 난다. 말하자면 이어령 교수는 한국의 C.S 루이스라는 생각을 하게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학자로서만 하나님을 말하고 있다면 나름 권위만 지녔다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의 삶이 하나님을 다 증거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의 글에선 부성애가 느껴진다. 그는 특히 따님인 민아 씨의 전도로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데, 사실 이어령 교수 그 자체로는 그다지 신앙에 귀의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당대 우리나라를 대표할만한 최고의 지성인이요, 문화부장관이란 명예까지 누린 사람이 무엇이 아쉬워 예수님을 믿었겠는가? 그러나 그의 따님인 민아씨의 고통스러운 삶을 보면서 그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만다. 즉 민아씨의 많은 어려움 중 정점을 찍었던 건 그녀의 망막파열로 실명이 될거라고 했을 때 아버지로써 결국 하나님께 무릎꿇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찌보면 이땅의 부모들은 자식들 앞에 가장 강한 척하는 약한 자인지도 모른다. 그때야 비로소 그는 딸의 병을 고쳐주시면 예수님을 위해 평생 헌신하는 삶을 살기로 서원을 했다고 한다.   

결국 그것은 그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을 터. 이책에 수록된 글들은 딸을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께 헌신하며 산 그의 발자취를 기록해 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한마디로 지성이 무엇이고 영성이 무엇인지를 그 특유의 화법으로 잘 전달해 주고 있다. 그래서 그럴까? 그는 자주 자주 딸 민아씨의 얘기를 하곤 한다. 그리고 한 평생 책만보고 연구만 하느라 아버지 노릇은 잘 하지 못했다는 자책도 하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그의 부성이 곳곳에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은 마치 작고한 수필가 피천득 선생이 딸에 대한 부성을 그의 수필집에 기록한 것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세상의 어느 아버지가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책은 저자에겐 참회록이라할지 모르지만 나 같은 독자에겐 인문학적 향취가 가득한 저자의 영성에 대한 기록같아 읽는 내내 즐거웠고 뿌듯했다. 믿는 사람 뿐만아니라 안 믿는 사람에게도 읽으면 좋을 책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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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a,moderna 2010-07-01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책일까 궁금했는데.
그런 책이군요.
얼마전부터 알라딘 서재에 가입하고 서재글을 보고 있었고, 님의 서재를 즐겨찾는 서재에 등록하고 읽고 있었는데(순전히 운명이다 때문에요), 님이 여자라는 것은 오늘에야 알게 되었네요.
오늘 읽은 싸움의 기술은 좀 무서웠습니다.^^

stella.K 2010-07-01 11:42   좋아요 0 | URL
정말요? 뭘 그 정도 가지고...ㅋ
암튼 반갑습니다.^^
 
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 - 스물여섯의 사람, 사물 그리고 풍경에 대한 인터뷰
최윤필 지음 / 글항아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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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제, 지난 2008년도에 방송한 가수 비(정지훈)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봤다. 말하자면, 그가 오늘 날 월드 스타가 되기까지의 그 이면을 보여줬던 프로그램이었다. 그걸 보면서 월드 스타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를 새삼 느꼈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의 자랑스러운 김연아 선수는 어떤가? 한번의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키기 까지 천번도 만번도 더 엉덩방아를 쪘을 그녀의 지난한 과정을 보면서 우린 김연아에 대해 무한한 사랑과 찬탄을 보내지 않는가? 그들은 모두 1등이고, 세계 제일이다. 뭐 그래서 나쁠 것은 없다. 아무리,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이라고 외쳐도 그들은 1등을 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것도 알려지는 과정에서 아무래도 자본주의 논리 또는 적자생존의 원리를 비껴가지는 못한다. 그러니 비나 김연아 같은 주목 받는 사람의 이야기는 이책의 제목대로 따지자면, '어느 날 나는 안으로 나갔다'쯤이 되는 것은 아닐까? 사실 그들이 1등이 되기까지는 수 많은 2등과 3등이 있기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는데, 우린 1등만 기억하는 세상에 살기에 2등과 3등이 어떻게 2등과 3등이 될 수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책 제목이 아이러니 하면서도 묘하게 끌린다. 저자는 어떻게 이런 제목을 달 생각을 했을까? 저자의 약간의 비딱한 시선이 느껴진다. 모르긴 해도 저자는 기자로서 이 세상에 가리워지고, 숨겨진 것 들 그러면서도 홀로 아름다운 것들을 찾아 길을 나설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기자 정신에도 부합되는 태도처럼도 보인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1등은 1등이어서 좋다고 해도 그 1등 때문에 아름다운 것들이 가리워져서는 안되지 않는가? 1등이어서 아름다울 수 있지만, 꼭 1등이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등식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것이고, 1등은 1등인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박태환의 훈련 파트너라고 알려진 배준모 선수도 아름다운 것이고, 군무 벨레리나 안지원도 아름답다. 그들이라고 부모님의 사랑을 덜 받았겠나? 그들이라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싶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보다는 자신을 찾아 나가는 것. 자신의 위치에 서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니 그것이 저자와의 인터뷰 과정이 없이 나 같은 벽안의 독자가 어찌 알겠는가? 어디 그뿐인가? 아름다운 넘버3로 남은 산악계의 휴머니스트 한왕용씨 는 또 어떠한가? 그 사람이라고 1인자가 되고 싶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는 가족을 위해 그 길을 과감하게 포기했다. 고독한 1인자로 남기 보다 여러 사람의 곁에 넘버3로 남았다.고 누가 그를 비난할 수 있을까? 그라고 남자로서의 자존심이 없었을까? 명예롭고 싶지 않았을까? 그러나 무엇이 남자의 길이고 명예를 위한 길인가에 대한 답은 특별히 정해져 있지는 않다. 그것은 그야말로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로 답이 나올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또한 저자는 바깥으로의 길을 찾는 것을 꼭 사람에게만 국한하지 않았다. 동물이나 사물에로도 눈을 돌렸다. 퇴역마 다이와 아라지의 이야기는 묘한 감동을 선사한다. 다소는 도도하고 자존심 강한 말과 사람과의 교감. 그리고 퇴역을 위한 마지막 경주. 과연 다이와 아라지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그리고 녀석은 퇴역을 한 지금도 잘 지내고 있을까? 동물을 좀 좋아하는 나는 곁에 있었다면 한번쯤 쓰다듬어 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무엇보다 가슴 찡한 건 절판된 책의 운명을 다룬 잘 가게, 40원어치 폐지로 남은 인연들이란 쳅터다. 책에도 사람의 혼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 책 한 권을 쓰기 위한 저자의 노력과 글자 한 자 한 자 찍어내기 위한 노력을 생각하면 우린 책을 너무 싸게 사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곤 한다. 물론 인쇄술의 발달로 우린 이렇게 이런 호사를 누리지만. 그런데 그것도 부족해서 독자들이 찾지 않은 책으로 끝내 전락해버리면 몇 개의 단계를 거쳐 결국 40원어치 폐지 밖엔 안 된다는 것이다. 한때는 그렇게 화려한 장정으로 위용을 자랑하던 그책이 휴지 보다도 못한 폐지로 남아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나름 책을 좋아한다는 나도 이 부분을 읽고나면, 나는 그저 책에 아주 조금 관심이 있다는 것뿐 정말로 아낄 줄은 모르는구나 싶기도 하다. 내가 읽을 수 있는 책은 한정되어 있고, 그 사이 죽어 가는 책은 셀 수도 없이 많으니 감히 어디 가서 책 좋아한다는 말을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또한 우리나라의 비무장지대 DMZ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도 참 뭐라 쉽게 말할 수 없는 착잡함을 안겨 주기도 한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마이너리티적인 것에만 관심이 있는 줄 알았더니, 아날로그에 대한 추억에도 관심이 많아 보였다. 하긴, 그 또한 386세대인 것을 보면 잊혀져 가는 것에 대한 남다른 아쉬움과 애정이 각별할 것 같다. 그래서 우표도 취재를 했고, 70년대 통기타 가수 대열에 섰던 '이사 가던 날'을 불렀던 가수 주정이씨도 취재를 했을 것이다. 읽는 나도 새삼 감회가 새롭다.  

글쓰는 사람으로서 크게 비전향장기수나 외국인 노동자를 다루는 것은 이제 이채롭다고 말하지 않는다. 사람의 이념의 문제나 인권의 문제는 변하지 않는다.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얀마 난민 조모아씨老프롤레타리아 이일재씨 를 직업혁명가로 취재한 것은 참으로 적절한 취재란 생각이 든다.  

지면상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저자는 이렇게 26 분야의 사람들과 풍경과 사물을 만나 취채하고 그것을 꼼꼼히 기록해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읽다보면 나름 다 특별해 보이면서도 사람 냄새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1등은 못해도 1등에게 박수를 쳐 줄 수는 있다. 그러나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이 알아주건 말건 묵묵히 일하는 사람 보면 가서 손이라도 잡아주고 싶지 않은가? 알고보면 당신네들이 있어 우리가 웃고 사는 거라고 하면서 말이다. 왜 세상은 1등이 되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며 사는 사람도 가치 있는 인생인 것을.  

책을 다 읽고 나서 이런 전달의 가치를 높여준 저자가에게 새삼 고마운 마음이 생겼다. 책 사이 사이에 보여지는 흑백으로 찍은 사진도 저자의 마이너리티하면서도 아날로그한 취향를 더욱 높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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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쟁이, 루쉰
왕시룽 엮음, 김태성 옮김 / 일빛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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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나름 익살맞게 하려고 그렇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식 표기법이라면 '환쟁이'이가 맞는 표현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그림쟁이라면 천시하는 경향이 있어서 아마도 조심스럽게 하다보니 그렇게 붙여진 제목인지도 모르겠다.  

문학가겸 사상가로 잘 알려진 루쉰이 그림도 그렸다고 하니 그가 달리 보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의학을 공부하다 문학으로 진로를 바꿨고, 그는 평생 문학을 연구하고 글을 쓰는데 바쳤다. 그 사이 언제 또 그림까지 익혔을까, 놀랍기도 하다. 물론 평생 그림을 그리며 산 사람에 비하면 그 숫자는 얼마 되지 않을지 모른다. 그래도 그가 남긴 그림만해도 100여점이라고 하니 비전문가로선 결코 적지 않은 작품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끔 사람이 한 가지만 잘하지 않고 여러 방면에서 두루 잘 하거나 어쨌든 한 가지 이상을 잘할 때 나는 약간의 심통이 난다. 난 한 가지도 재대로 못 하는데 저 사람은 왜 이렇게 잘 할까 하는 질투쯤? 루쉰이 글만 잘 썼던 게 아니라(그를 단순히 이렇게 표현하는 건 어패가 있긴 하다.) 그림도 잘 그렸다니 이건 질투라기 보다 신을 원망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가 남긴 그림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산수화 같은 것을 생각하면 크게 오산이다. 그가 남긴 그림은 주로 낙관이나 전각, 책의 표지 그림 또는 학교 교휘 그런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보기에 따라선 다소 생소하고 지루하고 그래서 기대했던 것만큼은 아니라 여겨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적어도 난 그랬다. 저자가 무슨 뜻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설명이 그다지 풍부하지도 않다. 지극히 건조하달까?  

그래도 새삼 이책을 보면서 놀라운 건, 그가 다른 서양의 문학을 번역하는데도 힘을 썼다는 것이다. 그가 그렇게 한 것엔 단순히 돈벌이 수단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서양의 문학을 당시의 중국에 소개함으로써 중국을 개도하려는 의지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건 확실히 루쉰다운 태도다.  

그래도 루쉰이 그림엔 확실히 재주가 있었던 건 사실이었던 것 같다. 의대시절 그는 해부도를 그렸는데 그것을 본 선생이 해부도는 미술이 아니라며 보기 좋게 그리기 보다 정확하게 그리라고 충고를 했더란다. 하지만 루쉰은 입으로는 그렇겠다고 했지만 속으론, '역시 제가 그린 그림이 낫군요. 물론 실제 형태는 머릿속에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49p)라고 했다니, 그의 의학 공부를 얼마나 지루해 했는지 그리고 미술에 대한 애정이 얼마만한 건지 나름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닐까 한다. 

아무튼, 미술은 문학책이 아니어설까? 좀 건조한 책이긴 하지만 루쉰을 동경하고 그에 대해 알고 싶다면 한번쯤 봐도 좋을 듯하다. 참고로 난 루쉰을 동경하고 그에 대해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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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04-15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쉰에 대한 이런 책도 있군요. 중국의 루쉰, 일본의 소세키, 한국의 이광수는 동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들로 알고 있어요. 소세키만 재주꾼인줄 알았더니 루쉰도 만만찮군요. 저도 루쉰에 관심있는데 스텔라님을 따라가며 배워야겠어요.

stella.K 2010-04-14 19:33   좋아요 0 | URL
아이고, 아닙니다.
전 그저 루쉰 그 이름이 좋을뿐이지 그다지 많이 아는 것도 없답니다.
제가 오히려 반딧불이님께 배워야죠. 고맙습니다.^^

순오기 2010-04-14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루쉰이 아큐정전의 루쉰이겠죠?
가끔 눈팅만 하고 다녔는데, 님이 남긴 댓글보고 용기를 내서 댓글 남겨요.
원고청탁서는 궁금할 거 같아 잠깐 올렸다 내렸어요.^^

stella.K 2010-04-15 12:47   좋아요 0 | URL
앗, 이런...민망하네요.
저에게 댓글 남기시길 뭐 그리 어려우시다고...ㅜ
제가 무심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모쪼록 순오기님 좋은 원고 쓰시기 바랍니다.^^

Tomek 2010-04-15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은 불공평해요. 한 사람에게 이렇게 재능을 집중시키면 나머지 사람들은 어쩌라고...
ㅠㅠ

stella.K 2010-04-15 12:47   좋아요 0 | URL
제 말이요. 흐흑~
 
쉘 위 토크 Shall We Talk - 대립과 갈등에 빠진 한국사회를 향한 고언
인터뷰 지승호& 김미화.김어준.김영희.김혜남.우석훈.장하준.조한혜정.진중권 지음 / 시대의창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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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어로 유명한 지승호 씨가 또 하나의 책을 냈다. 아마도 그가 낸 책중 가장 최근의 책은 아닐까 싶다. 참 부지런도 하다. 이번엔 특별히 '대립과 갈등에 빠진 한국사회를 향한 고언'이란 부제를 달고, 김미화, 김어준, 김혜남, 김영희, 우성훈, 진중권, 조한혜정, 장하준 등 8명의 각계 각층을 대변하는 사람들을 인터뷰 해 실었다.  

내가 이 책을 잘못 보긴 잘못 보았다. 난 이렇게 쟁쟁한 인터뷰이들이 한꺼번에 등장해서 그들의 삶을 얘기할 줄 알았는데, 하나 같이 나라 걱정하는 소리들을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나라 걱정하는 거야, 어제 오늘의 이야기도 아니고, 내용도 좀 뻔해 솔직히 읽으면서 지루한 면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저 '대립과 갈등에 빠진 한국사회를 향한 고언'이란 부제를 조금 일찍 발견했더라면 나의 책읽기가 조금은 즐겁지 않았을까? 어쩌 자고 난 이걸 나중에 발견해서 '책읽기의 괴로움'을 가중 시켰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전혀 유익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몇몇 인터뷰이들의 인터뷰는 상당히 유익했다고 본다. 특히 김미화씨나 김영희씨 또는 김어준씨의 인터뷰는 확실히 나의 관심을 사로잡았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한국의 오프라 윈프리'라고 해도 좋을 만한 김미화씨. 난 그녀가 점점 보면 볼수록 좋아진다. 그렇지 않았도 자신의 특징 중 하나를 뽑는데, 사람들이 자기를 안 좋아하면 못 견디는 성격을 가졌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럴까? 확실히 그녀를 보면 사람 좋은 냄새가 난다. 그녀가 자신의 성격을 그렇게 말했을 땐 그만큼 본인은 사람을 좋아한다는 소리도 될 것이다. 사실 사람 좋아하는 성격을 가지기란 요즘 같은 세상에 흔한 성격은 아닌 성 싶기도 하다. 그래서 그럴까? 그녀의 소탈한 성격이 인터뷰 중에도 그래도 베어 있어 흐뭇하다. 그녀는 확실히 매력적이다.

또한 김영희 씨도 남 다르단 생각을 해 본다. 그에 관해서는 이미 '무릎팍 도사'를 통해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 그의 방송에 대한 소신이나 방송의 미래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서 반가운 마음이 든다. 한편, 나름 즐거운 마음으로 읽은 대목은 아무래도 김어준 씨가 아닌가 싶다. 특별히 저자와는 막역한 사이라서 그런지, 격이 없이 대화하는 게 인상적이다. 말하는 것도 독설에 가깝고. 그러면서도 어느 부분에선 정말 맞는 이야기를 한다. 특히 그의 '사랑론'(?)이나 '상담'에 관한 철학은 가히 새겨들을만도 한다. 또한 조한혜정씨의 말도 새겨볼만 하고. 나머지 우석훈이나, 장하준, 진중권이야 더 말해 뭐하겠는가? 그 이름만으로도 아우라가 느껴지는 사람들 아닌가? (그런데 솔직히 난 이 세 사람은 건너 뛰었다. 그것은 내가 그다지 경제에 관심없는 탓일 것이다.ㅜ) 

그런데 내가 이 책을 통털어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할 만한 부분이 있다면 그건 김혜남씨의 인터뷰 부분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지금은 거의 멀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이지만, 확실히 이 분야에 관해 이야기 하는 사람의 말은 솔깃하다. 인터뷰 중, 그녀가 앞으로 연구하고 싶은 분야가 '불안'과 '공포'라고 했는데 갑자기 급관심이 생겼다. 특히 정치가 대중들을 공포로 몰아가는 것에 대해 그녀는 경계하고 있는데 이건 확실히 새겨볼만 한다.   

   
  실은 다음에 준비하는 책이 공포에 관한 것이거든요.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주된 정서가 공포기 때문이에요. 정치도 공포를 통해서 사람들을 통치하고, 사실은 경제도 불안을 자극해서 물건을 팔고, 교육도 공포를 통해서 아이들을 공부시키고, 전반적으로 지배당하고 통제당하고, 감시당하면서 뒤떨어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정서 같습니다. 불안해지면 사람들은 죽자 살자 노력하거든요. 행복이라든지 인간적이라든지 이런 것에 눈을 돌릴 수도 없고, 오직 자기밖에 안 보이거든요. 욕망은 승화시킬 수도 있고, 퍼져나갈 수도 있고요. 욕망이 날들 보기에 좋지 않으면 다른 멋진 욕망으로 바꿀 수도 있고, 척이라도 할 수 있는데, 불안은 옆에 있는 사람을 못 봐요. 자기밖에 못 보고, 오로지 그 세계에서 살아남는 것, 서바이벌이 문제가 되는 거거든요. 성공이 문제가 아니고 생존이 문제가 되는 거죠. 그래서 더 절박한 거고요. (178p)  
   

 정말 그렇지 않은가? 더 정확히는 정치가 그렇다기 보다 공포가 사람을 다스리는 통제 수단이 된 것이다. 이건 확실히 위험한 것인데, 그가 언제 이것에 관한 저작물을 낼지 궁금하고 기다려진다.  

조한혜정씨의 인터뷰도 주목하여 볼만 하다.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은 남은 임기를 사교육과의 전쟁(?)을 선포했던 것으로 안다. 아무리 권세가 하늘을 찔러도 역대 어느 대통령도 이것에서 이긴적이 과연 이 말이 현실성 있는 말인가? 그냥 구호성에 지나지 않는다면 안 하느니만 못하한 건데 아무튼 믿음이 가지 않는다. 

사실 변명 하나를 하자면, 내가 우석훈이나 장하준이나, 진중권에 관한 부분을 주마간산씩으로 대충 훑고만 것은 그들이 좌파 지식인의 선봉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이명박 정부가 욕을 먹고 있는 것과 관련이 없지 않다. 솔직히 너무 많은 욕을 먹으니 내가 다 민망할 정도다. 마치 내가 욕을 먹는 것 같다(그렇게 따지자면 난 김어준씨의 인터뷰도 읽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양반은 워낙에 대중적으로 관심을 받는 존재라 나라도 그 궁금증을 피해갈 수가 없다). 욕을 먹는 쪽이 있으면 욕을 하는 쪽이 있기 때문인데, 하도 욕을 먹으니 욕을 하는 쪽도 왜 욕을 하나 듣지 않게 되었다. 솔직히 오늘 날의 한국의 현주소를 읽으려면 좌파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들처럼 논리적이고, 정확한 진단을 하는 사람들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비해, 우파는 과대망상에 메시아 컴플렉스까지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우리나라의 앞으로를 볼 때 일정 부분 우파를 의지해 갈 수 밖에 없는 구조와 요소들이 있다. 그런데 비해 좌파는 상당히 현실적이다. 그러나 좌파나 우파나 둘 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은 나름의 진단과 전망을 내놓기는 하지만 좌파든 우파든 이렇다할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설혹 제시한다고 할지라도 국민들의 관심을 이끌기엔 강력하지도 못하다. 그러다 보니 좌우가 갈라져서 서로 너 잘 났니, 나 잘났니 하며 싸움만 한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는데. 그런 의미에서도 난 김혜남씨가 어떤 저작물을 내놓을 것인지 궁금할 다름이다.  

우리나라처럼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도 없다고 한다. 다른 나라 국민은 이만큼 관심이 없다는데 왜 우리나라는 이토록이나 관심이 많은 것일까? 그만큼 정치가 불안해서일까? 그것은 아닌 것 같다. 그건 집단성을 강조하는 우리나라 특유의 민족성 때문은 아닐까 싶다. 난 솔직히 그들만큼 정치에 관심이 없다. 그런데 나 같은 사람이 좀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 국민이 정치에 굳이 관심을 가지지 않더라도 위에 계시는 분들이 좌우간 알아 잘 해서 말이다.(이렇게 말하면 너무 속 보이는 일일까?) 아무튼 우린 (아직) 그렇게 되기엔 너무 음흉한 구석도 많고, 투명하지가 못하다. 그래서 이렇게 말들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이젠 좀 들었으면 좋겠다. '고언'을 한다고 하지 않은가? 서로 말하려고만 하고 듣지는 않으려고 하니 읽으면서도 안타까운 마음만 더해 갔다. 언제쯤이면 말하는 시대에서 듣는 시대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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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0-03-28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요즘 지승호 인터뷰집 <희망을 심다>를 낭독하고 있어요.
박원순과의 인터뷰에요. 책속에 내용이 중첩되는 것이 흠이더군요.
님의 글 마지막 문장이 와닿네요. 잘 듣는 것! 많은 걸 포함하는 말이에요.
아무튼 별은 셋이네요.^^

stella.K 2010-03-29 11:28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게 말입니다.
아마도 객관적으론 못해도 별 네개겠지만
이건 순전히 주관적인 별점이어요. 전 솔직히 시사쪽엔 별 관심이 없걸랑요.
그건 시사 자체라기 보단 말들이 너무 많아 질린 탓이겠죠.
그래도 뭐 별 세 개면 나쁘지 않다는 뜻이니 나름 참고가 되겠죠.^^

Tomek 2010-03-31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싶은데 너무 많은 책이 밀려있어서 조금 미뤄야할 것 같아요. 지승호 씨 인터뷰 굉장히 좋아하는데. 전 영화감독들 인터뷰와 신해철 씨 인터뷰가 좋더군요. ^.^;

stella.K 2010-03-31 12:46   좋아요 0 | URL
맞아요. 영화 감독 김지운 인터뷰집 생각나요.
좀 오래 전의 일인데 그거 리뷰 써서 적립금 받고 지승호 씨께
책 선물했었어요. 우리 알라디너이시긴도 한데
요즘엔 활동을 안하시네요.ㅜ
 
찬란 문학과지성 시인선 373
이병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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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시를 잘 읽지도 않으면서, 또한 아주 오랜만에 시를 읽었다. 

'찬란'이라...뭔가 찬란하단 말인가? 왠지 그 앞에 '유치'란 말을 조어로 넣어줘야만 할 것 같다. 난 그렇게 해서 그 단어를 받아들이곤 했으니까. 그만큼 나의 삶은 이 '찬란'이란 단어를 한번도 찬란하게 받아 들이지 못할만큼 유치하고 허접했는지도 모른다.    

시인의 시는 대체로 어려웠다. 시인의 마음을 알 수가 없으니 어려울 밖에.

'찬란'은 무엇일까. 시인은 말한다. "살고자 하는 일이 찬란이었"다고. 빛이 번쩍거리거나 수많은 불빛이 빛나는 상태, 또는 그 빛이 매우 밝고 강렬하여 매우 화려하고 아름다운 상태.  

그러나 내가 읽어 본 시인의 작품들은 그런 것을 노래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오히려 너와나, 그것과 이것, 현재와 과거가 만나지지 못한 '찰라'의 아쉬움을 노래하고 있다고나 할까? 그런 느낌이다. 표제작을 볼까? 

햇빛의 가랑이 사이로 북회귀선과 남회귀선이 만나
는 것도
무시무시한 찬란이다

찬란이 아니면 다 그만이다
죽음 앞에서 모든 목숨은
찬란의 끝에서 걸쇠를 건져 올려 마음에 걸 것이니

지금껏으로도 많이 살았다 싶은 것은 찬란을 배웠
기 때문
그러고도 겨우 일 년을 조금 넘게 살았다는 기분이
드는 것도
다 찬란이다
                -'찬란' 중에서- 

북회귀선과 남회귀선이 만나고, 지금껏 많이 살았다 싶은 것과 겨우 일 년을 조금 넘게 살았다는 기분이 드는 것도 찬란이란다. 시인이 말한 이 두 가지는 사실 해와 달이 포개어지는 개기일직처럼도 느껴지지만 이건 그저 인간의 의식에서나 가능할 뿐 실제에서는 결코 만나지지 않을 것이다. 

그뿐인가? 시인은 '생활에게'란 시에선 이렇게 말한다. 

일하러 나가면서 절반의 나를 집에 놔두고 간다
집에 있으면 해악이 없으며
민첩하지 않아도 되니
그것은 다행한 일
(중략)
반죽만큼 절반을 뚝 떼어내 살다 보면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곳에도 없으며
(중략)
그중에서도 살아갈 힘을 구하는 것은
당신도 아니고 누구도 아니며
바람도 아니고 불안도 아닌
그저 애를 쓰는 것뿐이어서
단지 그뿐이어서 무릎 삭는 줄도 모르는 건 아닌가
  

개인적으로 난 이 시가 그 난해한 시들중 그나마 제일 마음에 와닿았다. 그것은 나의 학창시절을 떠올리기에 충분히 자극적이다. 그 시절 나는 학교 다니는 것이 너무 싫어 학교에 있으면서 집에 있는 나를 상상하며 학교에 있는 시간을 버티곤 했다. 글쎄, 그 의식은 꽤 오랫동안 나를 지배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지금까지 종종 여기에 있으면 저기 있는 나를 상상하고, 저기에 있으면 여기에 있는 나를 상상하며 내가 어딘가에 있음을 견뎠던 것 같다. 하지만 결국 남는 건 시인이 말했던 것처럼 어느 곳에도 나는 없었던 것 같다. 온전한 실존주의자로 살아 간다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가? 나는. 그래서 무엇을 갈구하고, 누구를 갈망하기에도 나는 온전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나는 이렇게 나이 먹어간다. 시인의 말마따나 무릎이 삯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작품의 분위기는 대체로 허무와 이루지 못한 아쉬움과 더불어 전생과 회귀를 표현하려고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를테면, 위의 시들과 더불어 <절연>이란 시는 또 후자의 것을 내포하기도 한다. 

어딘가를 향하는 내 눈을 믿지 마오
흘기는 눈이더라도 마음 아파 마오
나는 앞을 보지 못하므로 뒤를 볼 수도 없으니
(중략)
묶지 않은 채로 꿰멘 것이 마음이려니
잘못 알어 밉게 녹는 것이 마음이리니

눈 감아도 보이고 눈을 감지 않아도 보이는 것은
한 번 보았기 때문
심장에 담았기 때문
(중략)
지독히 전생을 사랑한 이들이
다음 생에 앞을 못 본다 믿으니
그렇더라도 눈을 씻어야 다음 생은 괜찮아진다 믿
나니

많이 오해함으로써 아름다우니
(이하 생략)    

이 시는 어느 시각장애자를 모델로 쓴 시 같기도 하다. 어찌보면 헬렌 켈러를 연상케도 하고. 하지만 이렇게 전생과 회귀를 미망하는 마음이 나타나 있기도 하다. '많이 오해함으로써 아름다우니'이 말이 참 희망적여 보인다. 그래도 시각장애자의 오해와 비시각장애자의 오해는 다를 것이다. 전자는 실상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무조건 좋고, 아름답지 않을까를 생각하겠지만, 후자는 두 눈을 다 가지고도 온갖 추문의 상상을 하는 존재들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시각장애자 보다 나을 것이 뭐가 있는가? 빛을 보기 원하는 그들과 매일 빛을 보고 빛속에 살아 가면서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지 못한다면 말이다. 이것을 깨닫는 빛이 번쩍거리는 순간 어디쯤에 시인이 말하는 '찬란'이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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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0-03-07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병률의 최근 시집이군요.
제가 얼마전부터 자꾸 '찬란한'이라는 낱말이 맴돌았는데 말에요.

stella.K 2010-03-08 10:44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사실 시를 읽은지가 하도 오래돼나서 모처럼 읽었는데 어렵더군요. 이 허접한 리뷰를 읽어주시다니 그저 감읍할 다름이옵니다. 흐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