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인의 책마을 - 책세이와 책수다로 만난 439권의 책
김용찬.김보일 외 지음 / 리더스가이드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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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쓰는 글이 서평이 맞는가? 

이 책의 맨끝에 나오는 보론 부분을 맡은 변정수님은 '서평'과 '독후감'을 구분해 줄 것을 독자들에게 주문한다. 서평은 말 그대로 그 책을 평하는 것이고, 독후감은 그 책을 읽고난 느낌이나 생각 등을 자유롭게 정리해서 쓰는 것이라고 했다. 기실 그의 말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부턴가 독후감이란 말대신 '서평'이란 말을 일상어로 사용하고 있다. 이것이 또 서평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에겐 얼마나 고깝게 보이겠는가? 하지만 또 '서평'을 쓰는 일반독자의 입장에선 '독후감'은 왠지 지난 세기의 구식어처럼 느껴져 어색하게 느껴진다. 지금이 무슨 유신세대도 아니고.  

나에게 있어 '서평'이란 단어가 뇌리에 강하게 박힌 건, 비슷한 시기에 각 인터넷 서점들이 독자들로 하여금 블로그 활동을 적극 독려하면서 사로잡기 시작한 단어는 아닐까 싶다. 어찌보면 일반독자의 그 책에 관한 이야기가 자기네들 매출과도 직결되는 문제고, 독자 또는 고객의 그 책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을 높이 사 '서평'을 좀 더 일반화 시킨 것은 아닌지? 사실 일반독자들 가운데 전문 서평꾼 못지 않은 글솜씨를 가진 사람들이 적지않은 바에야 감히 '독후감'이란 단어를 붙이기도 어색한 일일 것이다.  

인터넷과 블로그가 생기면서 커뮤니케이션이 더욱 활발해졌다. 그전엔 책 한 권을 사려면 신문의 한쪽 귀퉁이를 장식한 신간 안내란이나, 서점에 직접 발품을 팔아 이 책이 나에게 유익한 책인지 아닌지를 취사선택해야만 했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에 대한 주례사가 참고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활발해진 인터넷에서의 커뮤니케션 덕분에 우린 앉아서 그 책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그 정보가 출판사의 요란한 선전문구가 아닌 일반독자의 손끝과 혀끝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이제 그들은 책 선택의 절대권력은 아닐까?  

나 역시도 얼마 전, 누가 뭐라던 끝까지 도도하게 버텨보리라던 하루키의 <1Q84>의 아성에 무릎꿇게 만들었던 건 출판사의 마케팅 전략이 아니었다. 어느 날 문득 보게된 어느 독자의 '서평' 때문이었다. 그것도 그 사람은 하루키 예찬론자라면, 나는 비판은 하지 않더라도 냉담했던 사람이었다. 그만큼 일반독자의 입김이 세 진 것이다. 돌아앉던 부처님도 다시 바로 앉게도 만드는 게 일반독자라면 말 다하지 않았는가? 그에 비해 진짜 서평꾼들의 서평을 눈여겨 보는 예는 일반독자들로선 거의 드문일일 것이다. 그 수준이 거의 문학평론 수준이라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고 특별한 목적이 있어야 참고 삼아 읽게되는 것이다. 아, 물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마이클 더다나 고 장영희 같은 분들은 그 유려하고도 위트 넘치는 문체에 반해 '이 사람이 말하는 책이라면' 하며 혹해서 책을 사고 싶게도 만드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게 쓰는 사람은 또 얼마나 있겠는가? 

독자들이 읽지 않는 글.  즉 소통할 수 없는 글은 그 글쓴이가 아무리 유명하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쓰는 서평이 서평이 아닐리 없고, 일반독자들 중 본인의 글을 서평이라고 하기에 부담스럽다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간극은 어떻게 좁혀 볼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쓰는 책에 관한 글은 책세이일 것이다.         

 사실 '서평'이란 단어도 마음에 썩 드는 단어는 아니다. 변정수님의 말도 있고, 너무 딱딱하고 권위적이기도 하다. 아무나 취해선 안 될 것만 같은. (그러나 취해 보고 싶기도한) 그래도 '독후감' 보단 낫긴 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책세이'란 말이 돌기 시작했다.  그건 이름하여 책+에세이의 합성어이고 <100인의 책마을>을 기획한 리더스 가이드에서 유포하기 시작한 단어인 것 같다. 적어도 난 그렇게 알고 잇다. 거기서부터 듣기 시작했으니까. 누가 유포했건 확실히  '서평'이란 단어 보단 훨씬 편안하고 격식을 갖춘 느낌이다.  

물론 책세이라고 해도 '과연 내가 책에 관해 에세이를 쓸만 한가?' 반문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게 싫으면 '책잡담', '책수다'도 좋을 것이다. 책을 읽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을 적는 것이다. 그게 자신의 신변잡기일 수도 있고, 평소 생각했던 어떤 소신이나 비판일 수도 있다. 자신만의 프리즘으로 내가 느끼고 생각한 것을 자연스럽게 풀어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독자들, 블로거들에겐 더 먹힌다는 것이다. 입소문 마케팅이란 게 그런 것이 아닌가?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그래서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라간 책들이 꽤 있다. 그런 책들은 처음엔 주목을 끌지 못했다. 아무리 출판사에서 "이 책 너무 좋습니다" 해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읽어 본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이런 적도 있다. 입소문 마케팅의 중요성을 알고,  출판사에서 일반독자를 상대로 책을 나눠주고 서평을 부탁하기 시작했다. 그때 적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꽁짜로 책을 받고 험한 말을 할 수가 있냐고 착한 마음을 품은 독자들도 많았다. 나 역시도 그랬고. 하지만 반드시 현금이 안 들어간다고 그것이 공짜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시간도 돈이다. 아니 때론 그 보다 더한 가치를 지녔다. 읽는 시간. 서평 쓰는 시간. 그 시간을 뺀다면 분명 다른 책을 읽었거나 다른 활동을 했을 거다. 내 시간이 중요하면 남의 시간도 중요하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갖는 건 나약하고 무책임한 소리다. 중요한 건 책을 무조건 좋게 말하는 것에 있지 않고, 내가 느끼는 진실을 말하는 것뿐이다. 독자의 말한마디가 출판의 미래를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좋은 것에도 나쁜 것이 있으며, 나쁜 것에도 좋은 것은 섞여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별 다섯 개를 줄 수 있는 훌륭한 영화에도 옥에 티는 있는 법이다. 팝콘을 먹으면서 영화를 보고, 과자를 먹으면서 그 영화에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얘기하면서, 왜 책은 그러면 안되는 것인가? 책이 어떻게 하면 대중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을까?를 생각하여 책의 디자인 혁명은 가히 눈물 겹고 놀랍까지 하다. 악평 보다 더 나쁜 건 무관심이라 하지 않는가? 그 책이 사람들 기억속에 잊혀지지 않기 위해 들어가는 땀방울을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어느 책에선가, 한 사람이 열보를 가기 보다, 열 사람이 한보를 가는 것이 더 낫다고, 했다.유려한 한 편의 전문 서평 보다, 일반독자 10명이 책을 가지고 한마디 잡담을 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그래서 책세이 또는 책잡담이 더 중요해졌다.  

책에서 사람이 보인다.            

이번에 펴낸 <100인의 책마을>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책에서 책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책에서 사람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 사람의 말고 글이 그 사람을 증명한다고 했다. 하지만 여기에 더 추가할 것은 그 사람이 읽고 있는 책이다. 이것은 전문 서평가도 해 보지 못한 일이다. 그들은 오로지 책에 관한 이야기만 할 수가 있다. 자신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못한다. 해도 아주 단편적으로 할 뿐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보니 책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보였다.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이. 특이하게도(?) 나는 책에 소개된 저자들 중 몇몇은 오프에서 만난 적이 있다. 책이 좋아 만나기 시작했는데, 유감스럽게도 책에 대한 얘기 보단 딴 얘기로 흘러간 적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정확히 이 분들이 지금까지 뭐에 관심이 있으며, 무슨 책을 읽어왔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었을 때야 비로소 아, 이 분들이 이런데 관심이 있었구나 새삼 그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람을 새롭게 아는 것. 또 그 사람을 통해 내가 평소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분야에 대해 흥미를 갖게 되는 것. 이것처럼 즐겁고 기쁜 일이 또 어딨겠는가? 이 책은 확실히 그런 부분을 충족시켜 줬고, 평소 관심 분야나 인생관을 책으로 말하고 있어 좋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사회나 교육에 관심이 많은 김이준수님이나 전재훈님의 글이 와 닿았고, 특히 김이준수님의 약간은 까칠하면서도 개성 넘치는 글이 참 인상적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생태 환경에 관심이 많은 김원국님이나 소일님의 글도 새롭게 와닿았고, 이 분들이 '이 책 읽어 볼만해요'라고 내미는 책들이, 평소 인터넷 서점을 서핑하다 이미 알고 있는 책들이지만 이 분들의 입담을 거치니 더 읽고 싶어졌고 새로웠다. 개중에 어떤 책은 평소 그다지 마음을 두지 않았던 책인데 '그래?'하며 나의 촉수를 건드리는 책들도 많았다.  

또한, 강한 영적 체험을 지성의 칼날로 다듬고 계신 권성권님이나, 교회의 사회적 책임에 관심이 많은 짙은 잿빛구름님, 무엇보다 인생을 다른 패러다임으로 살고자 원했던 은이후니님은 한번쯤 만나 그들의 솔직한 세계관이나 인생관을 듣고 싶어졌다. 또한, 과학은 늘 나의 열등분야고 취약분얀데 그리 어렵게만 볼 것은 아니겠구나라며 생각을 바꾸게 만들어준 김보일님의 문장은 가히 명문이다 싶다. 그 밖에 지면상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저자들의 글들은 마치 나에게, "책에 대한 관심을 포기하지 마세요.  시야를 넓혀 보세요."하고 응원해 주는 것 같다. 사실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책을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시야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이 책의 사용법에 관하여(또는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책 중에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여름언덕)이란 책이 있다. 유감스럽게도 난 아직 이 책을 읽어보지 못해 이 책에 관해서 뭐라고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골자는 뭐 대충 그런 거다. 책에 대해서 말할 때 꼭 읽고 얘기해야 하는 것인가? 읽지 않고도 말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몇가지 방법을 제시해 놓고 있다. 사실 나는 책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 앞에서 책을 많이 읽은 사람처럼 오해를 받고 살아왔다. 결코 많이 읽은 것이 아니라고 솔직히 말해도 믿지 않는다.  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나도 공동저자로 참여했지만 개중 한 두권은 내가 아직 실제로 읽지 않은 책임을 이 지면을 빌어 고백한다. 이것이 나중에, 몇년 전 사회 유명인들의 학력 위조 파문에 버금갈 사태를 불러 올런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나는 또 어디선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읽은 양 떠들고 앉아 있을 확률에 매우 높다. 그것은 내가 이 책 <100인의 책마을>을 읽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무려 439권의 책을 다루고 있는데, 내가 그 중 몇권은 읽은 양 떠들고 앉아 있지 앉을 거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으랴? 나는 그렇게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으며 어쩌면 난 이 순간 이 책을 공범자로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로 이 책은 그런 책이다. 읽지 않아도 읽은 양 할 수 있는 책. 책에 대한 편견을 깨트려 주는 책. 그래서 유식한 척 할 수 있는 책. 그런다고 누가 흉보고 비난할 수 없는 책. 왜냐구? 부제처럼, 책잡담이고, 책수다고, 책에세이니까.  음하하하~   

오랜만에 사람 만나는 것도 좋지만 만나면 나누는 얘기 안 봐도 비디오다. 결혼한 사람은 자식 얘기, 남편, 시댁시구들 얘기. 남자들은  시국 얘기 아니면 주식 얘기, 건강 얘기다. 소모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꿀 먹은 벙어리인 양 할 수 없으니 떠들어 댄다. 그러지 말고 책 얘기하면서 인생을 논하고, 사회를 걱정하고 이러면 멋있지 않나? 그냥 이상이라고만 말하지 말고 실천해 봤으면 좋겠다.    

여기서 돌발퀴즈!  이 책에 공동저자들 중 다수가 가장 많이 권한 책은 어떤 책인가?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은 잠시 뒤 이 글 말미에서 확인해 보시길.

나의 글에 대한 변명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쓴 글은 도저히 읽어 줄 수가 없어 뛰어 넘어갔다. 내 글이 인쇄되어 책으로 나오면 좋을 줄 알았다. 그래도 명세기 사람으로 태어나서 작가가 되어보고 싶은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확실히 알았다. 내가 쓴 글을 인쇄되어 나와도 못 읽는다는 걸. 그건 내가 세상을 다시 태어나 문단을 쥐락 펴락하는 인기 작가가 되어도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내가 가장 못 보는 것 중의 하나가 내가 박힌 사진 보는 건데 꼭 그 느낌이다. 물론 그러면서도 은근히 때론 호들갑스럽게 자랑했다.  아마 이 책의 공동저자들 중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을 줄로 안다. 하지만  뭐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것 아니다.  기회가 오면 또 도전하고 싶다. 대신 더 잘 써야지.

무엇보다 초야에 묻힌 서평의 고수들(나는 좀 그렇지만) 그들을 이름하여 '재야의 고수'라고도 하는데 이들을 기어이 끌어내어 빛을 보게 해 준 리더스 가이드 제작진 여러분께 이 지면을 빌어 심심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아직도 재야의 고수들은 많다. 그들도 발굴해내 빛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책잡담을 더 재밌고 유익하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유감스럽게도 100인이라고 해 놓고 23인 밖에는 안 나오지 않았는가.  

돌발퀴즈 정답: 다수의 공동 저자들이 권한 책은, 데이빗 소로의 <월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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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09-12 0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서평'이라는 말이 썩 맘에 들지 않았었는데 말이죠~^^

2010-09-12 06: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0-09-12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서 사람이 보인다는 말.... 참 좋네요.
그런거 같아요. 책은 하나의 방어막 같으면서도, 정말 많은 것을 보여주잖아요.

스텔라 언니.. 언니의 글을 못 읽으시겠어여? 어쩐지...
그맘 이해가 갈거 같아요. 하지만, 멋진 글이던걸요~

lo초우ve 2010-09-13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후감이든 서평이든 ... ㅡ,.ㅡ;;
아무거나 좋은거지만...... 독후감이라는 말은 왠지 정감이 가는듯해요 ^^
그리고 본인의 글을 못읽겠다는 말... 왜 일까요? 부끄러운걸까????? 거거참..ㅡ,.ㅡ;;


노란장미 2010-09-15 0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왠지 독후감 이라고 하면...그 책의 줄거리를 꼭. 필히. 써야할꺼 같은 압박감이 느껴져요..;; 아무래도 어렸을때 학교에 제출했던 그 독후감의 영향인듯..;;
거기엔 내용이 80%. 감상이 20% 정도 였으니까요.ㅋ
그래서 전 서평이란 말이 더 자유로운것 같아요.
굳이 내용은 안써도 될꺼 같은 기분?
아마도 제가 쓰는건 독후감도 서평도 아닌...........감상문? 정도인듯..ㅋㅋ

Monitor 2010-09-15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1Q84 퀴즈대회 - 발표언제하나요?

감은빛 2010-09-17 0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뭔가 굉장히 공을 들인 서평인 듯한 느낌이 드는데요.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이런 책도 있었군요. 저는 이거 잘 못하겠던데.
저는 서평 쓰기 위해 거의 2번씩은 읽고 쓰는 편이거든요.
아내는 그런 저를 보고 안 읽고도 읽은 것처럼 쓰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던데.
저런 책이 있었다니 한번 보고 싶네요.

저, 돌발퀴즈 맞췄어요! ^^

stella.K 2010-09-17 10:43   좋아요 0 | URL
ㅎㅎ 오랜만에 나타나서는 댓글만 다시면 어쩝니까? 추천도 하셨어야죠!>.<;;
감은빛님 같이 공들여 읽고 써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제가 오히려 부끄럽죠.

돌발퀴즈, 참 잘했어요! 도장 셋!ㅋㅋ

글샘 2010-11-05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가 쓴 책에 대해서 리뷰를 쓴 걸 <우수 리뷰>라고 준 건 무효라고 봄. ㅋㅋ
잘 읽고 갑니다.
저 변정수 처럼 깔끔떠는 사람 저는 싫습니다. 그럼 리뷰는 쓰는 사람 <자격증> 주자는 건가요? 쳇, 대통령도 자격증 없는 판국에...

stella.K 2010-11-06 12:21   좋아요 0 | URL
ㅎㅎ 이게 언젯적 글인데...칫!
변정수씨가 그런 말을 했단 말입니까? 거 몹쓸 사람이네요.ㅎㅎ
 
울기엔 좀 애매한 사계절 만화가 열전 1
최규석 글.그림 / 사계절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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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만화책 치고는 좀 비싸지 않나 했다. 그런데 받고 보니 그럴만도 하겠다 싶었다. 이건 내가 아는 기존의 만화책과는 판형도 다르고, 디자인도 다르다. 한마디로 고급스럽단 생각이 든다. 하긴 만화책이라고 고급스럽지 말라는 법 없다.  그림의 질감도 기존의 그것과 달라서 수채화톤이다.  또한, 그래서도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렇지 않아도 작가는 이런 작업을 하는데 있어 약간의 부담감을 작업노트에서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나 개인으론 이런 책은 함부로 대하기가 어렵다.  

옛날의 만화책은 어떠한가? 누런 갱지에 그려 나왔던 것 같다. 지금은 그 보단 사정이 조금 나아져 종이의 질이 좋아진 것 같긴 하지만,  아직도 왠지 함부로 굴려도 별로 아쉬울 것이 없는 것처럼 취급해도 될 것만 같다.  물론 나의 이런 말도 어느 만화 매니아가 들으면 발끈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만화를 두고 제 9의 예술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그 대우는 그에 훨씬 못 미치는 것 같아 나도 아쉬운 마음에 괜히 한마디 해 본 것 뿐이다. 

이 작품은 수채화톤이라고는 하나 그렇다면 밝은 느낌을 연상할 수도 있겠지만, 스토리가 아무래도 밝지마는 않아서일까? 아니면 작가의 작풍이 원래 그래서인가? 약간 후줄근한 느낌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후줄근함에 매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가지고 있는 나름의 매력과 장점을 잘 살린 듯도 하다.  

하지만 스토리상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작가는 작업 노트에서, 원래 생각했던 것 보다 작품의 길이가 길어졌다고 했다. 작가는 아무래도 쳅터를 나누면서 쳅터 하나 하나에 나름의 완결미를 주고 싶어했던 것 같다. 내용은 짧지만 간결한 인상을 주는 그 무엇으로. 물론 그것에 다가가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말하기엔 또 웬지 해결되지 않은 아쉬움이 남아있다.  

무엇보다 아쉬운 건 원빈의 캐릭터가 좋긴 하지만, 그 존재감은 작품속에 그리 살아있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아직 다 피지 못한 꽃봉오리인 양 다음을 기약해야 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 것 같아 아쉽다. 이것은 아마도 작가가 그림과 스토리를 함께 한 것에 대한 취약함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적절한 예가 될런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영화에 있어서 각본 감독을 따로두지 않고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모르는 사람은 그만한 실력이 되니까 그러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부분은 각본과 감독을 따로 둘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이 둘을 겸해서 하는 경우가 많다고 봐야한다. 물론 요즘 실력있는 감독들은 각본도 하면서 그 밑에 어시스트를 두고 있기도 하는가 본데, (그래서 크레딧이 함께 이름이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만화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그림 따로, 이야기 담당 따로. 이 둘을 함께 하려고 하다보니 조금은 애매하고 버거운 작업이 된듯도 하다. 

하지만, 난 솔직히 이 강원빈의 역할이 알려진 것에 비하면 크지 않아서 그렇지 결코 적지않은 매력을 가진 인물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작가의 의도이기도 하겠지만, 왜 우린 예쁘고, 멋있는 인물에만 촛점을 맞추려 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그래야 그 작품의 주가가 올라가는 것도 사실이다. 말하자면 철저한 자본주의 논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엔 잘나고 예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물론 옛날에 비하면 많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대다수는 평범하거나 그 아래인 경우가 훨씬 많다. (그것의 기준은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쩝!) 그렇다면 이 평범함에서 인물을 만들어내면 안되는 것인가? 나는 항상 영화를 봐도, 드라마를 봐도 그게 늘 불만이었다. 물론 이것이 현실화 되면 나 같이 반가워할 사람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반기를 들 것이다. 예쁜 사람 씨 말랐냐? 평범은 질린다. 예쁜 사람 복귀시켜라! 각 방송국과 영화 제작사에 피켓들고 난리칠 것이다. 그건 또 얼마나 국가적 낭비랴? 그러니 못 생긴 사람은 이래 저래 주목 받지 못한다. 그래도 가끔은 그런 인물에 애정을 가지고 생명력을 불어 넣는 작가들이 있다. 얼마나 다행인가? 나는 그런 작가 정신에 박수를 쳐 주고 싶다.

그처럼 작품은 작가가 말했던대로 찌질한 인생, 불가촉 루저들의 인생을 다루고 있다.  무엇보다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든 것 같다. 그래서 안정감이 느껴지고, 내가 모르는 미술학원의 이야기를 알게돼서 좋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작가는 상당한 비판정신의 소유자인 듯도 하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나라 교육현실을 비판하려고 했다. 특히 등장인물을 통해, 우리나라 입시제도가 교육정책이 아니라 고용정책이라고 썩소를 날리는 만화 한 컷은, 정말 통쾌하면서도 우리나라 교육정책을 신랄하게 반영하는 좋은 장면 같다. 언제 한 번 우리나라 대학교육이 정말 교육을 위한 기관인 적이 있었나? 어떻게 하면 좀 더 많은 사람을 취직하게 만들가를 위한 기관 아니닌가? 나는 대학교는 고용을 위한 곳인 줄 알았지, 학문의 전당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것에 대해 감히 비판할 생각도 못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니. 나 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미술학원은 원생끼리 묘한 유대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난 이 책을 보고 처음 알았다. 그것은 서로 좋고, 서로 잘 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누구 하나 손해보지 않고 누구 한 사람만 잘되기를 바라지 않는 묘한 이기주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좀 더 많은 대학입학생을 내야하는 학원으로선 가능성이 있는 한 사람을 위해 나머지를 희생시켜야 하는 부조리에 저항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오늘 날 청소년의 문제가 기성세대와 잘못된 사회 시스템의 문제라고 어떻게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학원을 계속 다니고 생활을 위해 꽃다운 청소년들이 시급 7천원을 받기 위해 술집을 나가야 한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도 있다고 , 한창 공부해야 할 아이들이 그런 곳에 가는 것은 그들을 원하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천박한 자본주의가 어디 있는가? 모든 것을 돈이 아니면 그 어떠한 잣대로도 잴 수 없게 만드는 이 천민자본주의가 있는한 우리의 아이들은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이 찌질하다고는 하지만 이들도 다른 잣대로 재면 얼마든지 주목받고 행복한 인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꼭 돈이어야 하고 자본주의의 잣대로만 세상을 봐야하는가? 그러니 그들을 향하여 '찌질한'과 '불가촉 루저'란 딱지를 그 어디가서도 뗄 수가 없다.  

이 작품은 페이소스가 짙은 작품이다. 작품 곳곳에 베어있는 개그적 대사가 정말 웃기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쓸쓸하고 우울하다. 그래서 하나 같이 다가가 안아주고 싶고, 등을 토닥거리며 용기를 잃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들도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지만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고, 그들에게도 살다 보면 그런 날이 꼭 있었으면 좋겠다. 언제까지 잘난 사람은 계속 잘되고, 못난 사람은 끝까지 안 되야하는 것인가? 이 운명에 춤추지 말고, 탓하지도 말고 각자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도 울기가 애매하거든 차라리 웃어라. 세상을 향해 썩소든, 미소든 한방 날려주고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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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9-04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정이 충만한 멋진 리뷰네요~~~~~
고용정책이라는 한마디, 수능 답지에 표시하는 기계들~ 충분히 공감되지요.ㅜㅜ

stella.K 2010-09-04 18:25   좋아요 0 | URL
언니, 저 이번에 저자와의 대화 떨어졌어요. 슬퍼요.
분명 그날 못 가는 사람 있어서 징징대면 가게 해 줄 것도 같은데
그냥 포기할래요. 사실 그날 저녁에 강의 듣는 게 있걸랑요.
거기 가라는 뜻으로 알고 마음 접었답니다.ㅜㅜ

순오기 2010-09-04 20:12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발표 보니까 없더라고요.ㅜㅜ
그런데 떨어졌어도 무조건 찾아가면 입장시켜 준대요.^^
하지만 강의 듣는 거 있으면 결석하지 말아야지요.
최규석 만남은 언제 기회가 또 오겠죠~ 분명히!!

다이조부 2010-09-04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도 보고싶어요~

작년에 우연히 시청에서 최규석씨를 본 적이 있어요~

옆에 친구분인 영화기자 허지웅씨랑 같이 있더군요~

그 분들은 저를 모르지만, 제가 팬이라서 아는 척을 하니까

최규석씨가 씩 웃으면서 아이처럼 난 유명인 하면서 함박웃음 짓던게 생각나요 ㅎㅎ

stella.K 2010-09-04 18:27   좋아요 0 | URL
아, 허지웅이랑 친구였군요.
허지웅 책 읽어봤는데 재밌던데.
이 책 참 잘 만들었어요. 함 꼭 보세요.^^

순오기 2010-09-04 20:21   좋아요 0 | URL
허지웅이랑 최규석이랑 색깔이 좀 비슷하지 않나요?
허지웅 대한민국 표류기를 보니까 그렇게 느껴지던데...^^

stella.K 2010-09-05 11:19   좋아요 0 | URL
허지웅이 독특하긴 하죠.
최규석의 산문은 아직 읽어 본적이 없는지라...
그런데 뭐랄까? 최규석은 나름의 섬세한 감성이 느껴져
저 개인적으론 더 좋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너의 시베리아 - 시베리아 아이를 만나러 가는 특별한 여행
리처드 와이릭 지음, 이수영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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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가 3년에 걸쳐 우크라이나와 시베리아를 방문하고 그곳 현지인 여자아이를 입양하게 되면서 보고, 겪었던 일들을 짧막한 100편의 산문으로 엮은 책이다. 

시베리아. 우리는 그곳이 얼마나 척박한지는 정확히는 몰라도 귀동냥으로 들어서 알고 있다. 그런데, 미국의 한 변호사가 자국의 아이가 아닌 그런 통토의 땅의 아이를 입양했다는 건 확실히 존경 받을만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괜히 더 마음이 숙연해지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핏줄 사상이 강하고, 고아 수출국이란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미국은 벌써 우리보다 몇 세대 앞서 남의 나라 아이도 입양해서 키우고 있다. 그래도 세상이 좋아져서 그나마 예전에 비해 입양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지긴 했다. 하지만 역시 미국을 따라 가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 개인적으론 반미주의자는 아니지만, 간혹 간혹 내가 미국을 안 좋아하는 것에 나 자신 스스로도 놀라곤 한다. 하지만 이런 입양을 스스럼 없이 하는 것을 보면 난 솔직히 미국을 헐뜯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도 된다. 솔직히 우리나라는 전후에 얼마나 많은 전쟁 고아들이 속출했는가? 그 이후에도 먹고 살기가 어려워서 우리의 아이들을 남의 나라로 입양 보내야 하는 쓰라린 전적을 가지고 있다. 우리도 그렇게 어려울 때 남의 나라의 원조도 받으며 살았는데, 우리도 이젠 좀 달라져야 하지 않는가? 말로만 OECD 가입국이라고 자랑하면서 남의 나라 아이는 고사하고 우리나라 아이도 건사를 못하고 있는 실정이니, 그 자랑이 유명무색해 진다. 

그런데, 이 책을 읽었을 때 난 좀 당황스러웠다. 산문이라고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짧고, 문체가 상당히 건조하다.  저자 개인의 감정이나 생각하는 바를 절제한 체 그냥 보고, 들었을 법한 내용을 간단 요약식으로 쓴 것 같은 느낌이다. 마치 기자의 취재글처럼 말이다. 과연 이것을 산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산문은 그 사람의 느낌이나 생각들이 들어가 줘야 한다. 난 저자가 왜 이 책을 쓸 생각을 했을까? 잠시 잊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그래, 시베리아에서 입양한 만큼 그 아이가 이 다음에 컸을 때 자기네 나라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뭔가의 기록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럴 생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면 그건 훌륭한 일이다. 그리고 미국 사람은 그런 것 하나만큼을 철저한 것 같다. 해외에서 입양해 왔다는 사실과 그 아이가 자기네 나라를 잊지 않고 언젠가는 돌아갈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 주는 것이 말이다.  하지만 아쉬운 건, 그 나라를 좀 더 이해하는 관점에서 기술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물론 가감없이 그 나라를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글쓰기 자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잘못 읽고,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난 도무지 이 책에서 어느 한곳도 시베리아를 객관적으로 기술한 것을 볼 수가 없었다. 그냥 자신의 관점을 포기하지 않은 채, 그 나라가 얼마나 척박하고 미개한 나라인가만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아 더 읽기가 거북스러워졌다. 과연 이런 책을 저자의 입양한 딸이 언문을 깨우쳐 읽을 때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그래. 난 그런 못 사는 나라에서 구원 받은 행운아야!' 또는 '그래. 내 나라는 그렇게 못 사는 나라야. 훌륭하게 자라서 어느 때가 되면 시베리아로 돌아가 내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충성하며 살겠어.' 이럴까? 물론 생각은 그 아이 자유다.  하지만 또 그 아이가 자랄 때까지 받을 차별에 관해서도 생각해 본적이 있을까? 아이를 입양하면서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하는 건 그 아이의 정체성과 인권이다.  

분명 시베리아가 열악한 상황이란 건 알겠다. 그 나라도 몇 천년 또는 몇 백년을 이어 온 그나라 고유의 문화가 있고, 아비규환의 땅이더라도 따뜻한 인간미는 어디선가 자라고 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을 추적해 나갔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그냥 일차적으로 보이는 것만, 발견한 것만 급하게 썼다는 느낌만 들어 상당히 개인적 글쓰기란 생각이 들었다. 또 모르지,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이 책을 3분의 2만을 읽고 이 글을 쓰고 있는데, 나머지 3분의 1이 나의 이런 바람을 채워주고 있는데 그것을 놓치고 있는지? 그렇다면 그것 역시 독자 탓마는 아닐 것이다. 언제나 독자는 냉정하다. 처음 책을 읽기 3분의 1이 지나가는 지점까지도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뭔가가 안 나와주면 그 다음부턴 소크라테스식 회의에 빠지는 족속들이 아닌가?  개인적으로 난 이 책이 내내 회의하게 만들었던 책이었다. 의도는 좋은데 아쉬움이 많이 남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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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08-23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베리야는 지금도 사람이 살기에 열악한 환경이지만 제정 러시아 시대에는 정치범들이 유배를 가던 최악의 지역이었다고 하는군요.아시는 분이 블라디보스톡에서 모스크바까지 기차로 가는데 대략 일주일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시베리아를 거치는동안 광활한 벌판과 눈때문에 며칠간 무척 지루했다고 하니 얼마나 넓은 땅덩어리인지 상상히 갑니다^^

stella.K 2010-08-23 10:40   좋아요 0 | URL
그렇겠죠. 근데 암튼 상당히 개인적인 글 같아 전 별로였어요.
남의 나라 문화에 대해서 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왜 이렇게 썼나
모르겠습니다. 나만 이런가요??ㅜ

루체오페르 2010-08-23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안봐서 다른건 모르겠는데 눈길 갔던 이유가...러시아 관련 작품에 자주 보이시는
감수:이현우 로쟈님 이시더라구요.ㅎㅎ

stella.K 2010-08-23 13:06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니까요. 민망해 죽겠슴다.ㅜ
또 저만 이래요. 다른 분은 좋게 보신 것 같은데...^^
 
나를 만나는 스무살 철학 - 혼돈과 불안의 길목을 지나는 20대를 위한 철학 카운슬링
김보일 지음 / 예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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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느끼는 것은, 오늘날의 20대는 나의 20대와는 정말 많이 다르구나 하는 것이었다.  

나의 20대는, 요즘의 20대 보다 훨씬 단순했던 것 같다. 그땐 기계가 요즘에 비해 많이 발달이 되지 않았고, 소위 말하는 아날로그 시대였다. 아직도 손편지를 썼던 세대였고, 지금은 인터넷 라디오가 있어 실시간으로 듣고 싶은 곡을 신청할 수 있지만, 그때는 라디오에 신청곡을 보내려면 일주일이나 열흘의 시간을 둬야했고 사서함으로 보내야 했던 시대였다. 지금은 구세대에 속하는 10대를 일컫는 'X세대'란 말도, 나 10대 땐 없던 말로 10대를 벗어난 사람들이 비로소 10대를 객관적으로 보고 말했던, 대중적 학술 용어는 아닐까 싶다.  

하지만 요즘의 20대는 어떤가? 디지탈 시대에 맞게 10대와 더불어 얼리어댑터족의 주종을 이루는 세대고, 공부면 공부, 연애면 연애, 운동이면 운동 뭐 하나 빠지는 것없이 없다. 말하자면 결핍을 모르는 세대라고나 할까?  

작가면서 대학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는 박범신 선생은, 요즘의 대학생이 신기하다고, 그의 산문집에 밝히기도 했는데 그것은, 요즘 대학생들은 '연애'를 해도 성적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신기한 것은 하나가 더 있는데, 모범생들은 모든 교과목에서 균일하게 상위권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그게 뭐가 이상한가 할 수도 있겠지만, 박밤신 선생이 가르치 분야는 문예창작이다. 그런데 같은 문예창작이라고 해도, 이 분야는 기복이 심해서 자기가 잘하는 분야는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를테면 시, 소설, 희곡 등 모든 분야에서 편차가 없다는 말이다. 이쯤되면 나도, 그들이 사람인가? 싶기도 하다. 어떻게 모든 분야에서 고르게 잘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크게 뭉뚱그려 문학이라고는 해도 그중에서 또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는 또 갈라지는 법인데 어떻게 모든 분야에서 다 잘할 수 있단 말인가? 

하긴, 이것은 비단 박범신 선생이 말하는 문학 분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인 바이올린니스트 장한나를 보라. 그녀는 음악만 잘하지 않는다. 그녀는 여전히 첼로를 연주하면서 대학에선 철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지휘자이기도 하다. 그뿐인가? 피겨스케이터 김연아를 비롯해 20대 운동선수들 보면 박범신 선생이 말한 문학도들과 별반 달라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20대에 뭔가의 위업을 달성했고 별로 흔들림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박범신 선생은 말한다. 분명 그들이 부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돌아앉아 그들의 뒤꼭지에 대고 이따금 묻는다고, '그런데 쟤네들, 연애를 진짜로 하기는 하는가? 문학은 진짜로 하기는 하는가?'라고. (박범신 산문집, '산다는 것은.'에서)

오늘날의 20대는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자라난 세대다. 지원만 있는가? 지도편달까지 받는다. 그런데 우리네 부모들은 아이들이 잘하는 것에 무작정 지원하지는 않는다. 너무도 안전지향적으로만 키우기 때문에 연애도, 공부도 그들이 할 수 있는 여러 많은 것들 중의 하나일 뿐 사실은 그 어느 것에도 나 자신을 올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의 20대는 그렇지 않았다. 사랑하나면 학업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죽기를 각오한 사람이 있었다. 공부도 그것 밖엔 달리 길이 없어서 그것에 목숨을 건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은 뒷받침이 안 되니까 포기하거나 먼 미래의 것으로 알고 가슴에 묻어 두기도 했다. 그런 한쪽의 결핍을 다른 한쪽이 채우는 이런 불안한 세대를 살았던 것이다. 또 그들 세대가 지금은 부모 세대가 되어서 그렇게 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더라 해서 아이들을 무엇하나 빠지는 것 없이 키우다 그런 안정지향주의형 20대를 양산해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모든 것이 무엇하나 빠지는 것 없는 20대를 산다고, 정말 고민없이 살까? 나의 20대와 그들의 20대는 분명 질적으로 다른 고민을 할 것이다. 배부른 돼지 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고, 나 역시 매사에 부족함이 없이 해 맑게 웃는 젊은이 보다, 고민하는 찌질이에게 더 애정이 간다.  그들이 고민을 한다면 보다 디테일하게 고민을 할 것 같다. 예전에 우리는 '사느냐, 죽느냐' 그런 단순한 고민을 했다면, 요즘의 젊은이들은 살긴 사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지를 고민한다면 그것이 좀 더 근사하고 잘 나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애정이 가고, 그들은 우리 보다 더 가능성이 있다. 

부모 잘만 난 덕에 부족함이 없이 응석받이로 자란 20대는 나도 싫다. 그게 어디 20대뿐이겠는가? 부족함을 모르는 4,50대 기성인들도 난 싫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이것을 수시로 묻는 사춘기 아이들과, 20대들, 4,50대 기성인들이 나는 좋다. 

철학의 기본은 살아가는 방법 보다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에 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책이다. 철학은 자기만의 상아탑에 갇혀서 일반인에겐 좀처럼 자리를 내주지 않다가 철학의 대중화를 꾀하고자 그 포문을 열었던 것이 '철학에세이'가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난 그 젊은 시절 그 책이 너무 어려워 읽기를 포기했었다. 그로부터 2,30년이 흐르는 동안 눈높이 철학은 끊임없이 시도되었다.  

이 책은 정말 편하게 읽힌다. '너 부모 잘 만나 부족함이 없이 잘 살아 온 거 아는데 그래도 이러 이러한 거 좀 생각해 보고 살아야 하지 않겠니?'라고 말하는 것 같다. 물질적인 풍요가 세상의 전부는 아니니까.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젊은 날 읽었던 '철학에세이'와는 사뭇 다르다. 하긴, 세월이 얼만데... 

나에겐 20대를 살기 시작한 조카 녀석이 둘이나 있다. 나는 그들에게 그다지 좋은 이모가 되지 못한다. 그렇게 책을 많이(?) 읽었으면 멘토는 못되어도 머리 큰 녀석들과 인생에 대해 논할 줄도 알아야 하지 않는가? 나도 10대 때, 20대 때 뭔가 이런 부분에서 대화가 통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기를 바랐었다. 하지만 만나지 못했던 것 같다. 만났다고 해도 오래 곁에 두고 만나지도 못했고. 

너무 편하게 읽혀 마치 내가 20대로 돌아간다면 저자 같은 삼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물큰 들었다. 그것도 작은 아버지나 숙부로 불릴 수도 있는 친삼촌 말고 외삼촌. 원래 친척은 친가쪽 보다 외가쪽이 정신적으로 가까운 법이니까. 그래서 그 삼촌이 "너 이 생각은 해 봤니? 그렇담 그 생각 중에서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또 저렇게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렇게 생각의 "꺼리"를 조근조근 하게 말씀해 주시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삼촌이 있는 20대가 있다면 그 젊은이의 10년 20년 후는 정말 멋질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삼촌이 없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생이 멋없으란 법도 없다. 이 책이 대신해 줄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꼭 20대를 사는 젊은이들만 읽으란 법도 없다. 어쨌든 20대도 60대도 같은 2010년을 살고 있지 않은가? 20대는 신세대고 60대는 늙은 세대라고 치부하는 건 옳지 못하다. 생각의 공유는 세대 구분이 없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기성인들도 이런 책 한번쯤은 읽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 책은 예문이 풍부하다. 과연 저자가 예로든 책들을 다 읽고 발췌해서 썼을까? 싶은 정도로 그동안 저자가 읽었던 책들이 짤막짤막하게 소개되고 있어 좋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남의 집에 가면 그집 책장을 구경하게 되는데, 저 사람 책장엔 무슨 책들이 꽂혀 있나 궁금한 것을 알아내는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저자는 책에서만 발췌하지 않는다. 저자가 본 영화에서도 장면이나 줄거리를 따 오기도 한다. 영화 얘기라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이기도 하다. 과연 부지런한 저자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오랜 세월 학생들을 가르쳐 온 교사답게 어떻게 하면 젊은이들과 대화할 수 있을까를 아는 분 같았다. 그러니 저런 삼촌 한 분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들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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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8-07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믓진 삼촌이네요!!!

stella.K 2010-08-07 20:06   좋아요 0 | URL
아니, 이 시간에 댓글을 달아주시다니...?
후애님 만나러 안 나가셨나요? 믓진 마기님?^^

비로그인 2010-08-08 00:16   좋아요 0 | URL
너무 나가고 싶었는데, 울신랑이가 약속을...ㅠ

후애(厚愛) 2010-08-08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에 또 만남 이벤트하면 꼭! 나오셔야 합니다.^^
더위 조심하세요~

stella.K 2010-08-09 10:42   좋아요 0 | URL
아, 후애님, 친히 댓글 달아주시고.
감사하네요. 고국에서의 일정이 얼마나 남으셨는지 모르겠지만
모쪼록 남은 시간도 좋은 시간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Tomek 2010-08-09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의 역할, 멋진 삼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꼰대들이 너무 많아요. 철학을 배우는 많은 사람들이 멋진 삼촌들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D

stella.K 2010-08-09 10:43   좋아요 0 | URL
ㅎㅎ 꼰대들! 그런가요? 어떤 꼰대들을 말씀하시는지
알려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암튼 삼촌에 동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2010-08-10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10 1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0-08-10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쩜 좋을까.. 저는 스텔라님이 20대 후반에서 기껏해야 30대 초반이라 생각했어요. 처음 느낌이 그랬나봐여, 활기차고 밝고 소녀같구.. 그런데 이후 글을 읽으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는거여염. 20대에서 이런 깊이 있는 글이 나올수 있나? 하고... ^^

혹시라도 제가 주제넘은 댓글 단게 있다면, 잊어주셔염.. 아하하.

stella.K 2010-08-10 21:21   좋아요 0 | URL
저 칭찬하신 거 맞죠?ㅎㅎ
그럴리가요. 마고님과 댓글 주고 받으면 젊어지는 느낌이어서 저는 좋습니다.^^
 
박범신이 읽는 젊은 작가들
박범신 엮음 / 문학동네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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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박범신이란 작가가 나를 사로잡고 있다.  <은교>로부터 시작된 그의 책과의 인연은 이제 3권째를 읽고 있다. 물론 생각 같아서는 그의 일련의 작품집을 독파해 보고 싶긴한데, 가늘게 오래 갈수는 있어도, 짧고 굵게는 못하는 성격적 단점을 가졌기에 아무래도 그의 책은 틈나는대로 오래도록 읽게 될 것 같다.   

사실 이 책은 박범신 작가가 썼다고 볼 수는 없다. 그저 2007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한 '금요일의 문학이야기'에서 박범신 작가는 사회를 맡고, 9주 동안 우리나라의 젊은 작가 12명과 독자와의 대담을 엮은 책이다.   

내가 이 책을 뒤늦게 나마 읽을 생각을 했던, 박범신이라는 '브랜드 네임(?)' 때문이기도 하지만, 얼마 전, 모출판사에서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을 읽는데 실패한 탓에도 있다. 어쩌면 그리도 안 읽혀지던지...! 그런데 그것을 예전엔 작가 탓으로 돌리거나, 나와는 안 맞는 책이라고 덮어버리면 그만이었지만, 지금은 웬지모를 위기의식 같은 게 느껴진 것이다. 이를테면 아, 나도 이제 정말 기성세대에 편입되는 걸까? 하는, 더 이상 젊지 않다는 자괴감 같은 것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그나마 조금 위로가 됐던 건, 그 상의 심사를 맡았던 누구라면 알만한 대작가께서도 요즘 젊은 작가의 작품을 읽어내기가 힘들었다는 말씀을 남기셨단다. 그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내가 오히려 위로 받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비슷한 말을 하신 분이 또 있으니 그분은 바로, 박범신 작가다. 박범신 작가 역시 앞서 말한 그분과 같은 세대를 사시는 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나로선 두 번 위로를 받는 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러면서 이 책을 읽으면 요즘 작가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읽었다. 

읽고나서의 느낌을 얘기하자면, 초대된 12명의 작가들의 하나 같은 공통점은, 1명을 제외하고 모두 70년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그나마 가장 마지막에 소개된 박성원이란 작가는 69년 생으로 70년대 생에 가깝다고나 할까?)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우선, 새마을 세대고 그래서일까? 소위 말하는 크게 '있는 집 자식'들은 아니어도 생활 하는데 크게 불편함이 없는 가정에서 나고 자랐다는 것이다. 그러니 '절대 가난'을 체험해 보지 않았고, 책도 원하느만큼 읽을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다는 것이다.  문학을 하게된 동기는 저마다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하나 같이 안정된 분위기에서 글을 쓰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자족'하는 분위기에서 글을 쓴다고나 할까?  

사실 우리나라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 그러나 이 책의 어느 작가의 말처럼 다소의 불편을 감수하며 글 쓰는데만 집중하면 크게 불편할 것도 없다고 한다.  그러니 나는 왜 작가가 됐을까? 앞으로 글 써서 밥 벌어먹고 살 수 있을까? 하는 정체감에서 오는 갈등 같은 것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게 과연 어떤 의밀까?  물론 안정적이고, 한번 정한 길을 흔들림 없이 갈 수 있다는 것도 되겠지만, 결핍을 모르고, 갈등하지 않으며, 자신이 생각하고 판단하는 세계가 전부인 양 살아 간다는 것도 되지 않는가? 또 그런 생각 속에 사는 건 금방 권태로워지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내가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거의 읽어낼 수 없었던 건, 내가 아는 작가들은 자기 체험이나 현실사회와 나를 연결시켜 글을 썼지만(대표적으로 참여문학), 젊은 작가들은  다분히 관념적이고 자기 상상에 매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관념과 상상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코드가 다르다고 말하는 것이다. 기존의 기성 작가는 피 같은 글을 썼지만, 상상력이 부재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한때 나는 우리나라 작가들이 왜 이리도 상상력이 없냐고 불평한 적도 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상상력이 풍부한 작가들이 나오기 시작하자 나는 그들의 코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기성 작가들은 나는 이런 삶을 살았다고 독자들에게 펼쳐 보이고 설득하려고 한다면, 요즘의 작가들은 새로움을 끊임없이 추구하며, 독자더러 "따라 올 테면 따라와 봐." 하며 다소 거만하면서도 유혹의 손짓을 한다. 물론 그것에 동조하고 기꺼이 따라가 주는 독자도 있겠지만, 나는 도무지 그들의 불친절함이 마뜩치 않다. 

아쉽게도 난, 이 책에 등장하는 작가의 책중 유일하게 읽은 작가는 심윤경의 <달의 제단>이었다. 다른 작가와 그들의 작품은 읽어보지 못했고, 읽을 시간도 없으며, 앞으로도 읽을 것 같지는 않다. 사실 심윤경의 <달의 제단>은 나 역시도 약간은 아쉽기도 했지만, 소재주의라고 비판을 받았다는 건 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우리 문학은 한동안 사회를 비판하느라 주제는 있으나 소재는 거의 전무하지 않았나? 그래서 문학의 사대주의에 빠졌던 것도 사실이다. 모르긴 해도 몇몇 작가들을 빼놓고 자기 문학에서 사회를 비판하는 주제의 소설을 쓰는 작가는 이제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소재주의로 가야하지 않을까? 일본이나 미국 같은 나라는 얼마나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소설을 쓰는 작가들이 많은가? 하긴, 그맘도 이 책은 4년 전의 책이다. 이젠 소재주의를 비판할 사람도 없을 것 같다. 소재주의 비판한다면 그건 게으름을 은폐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만큼 세월이 흘렀으니 이 책에 등장하는 작가들은 이제 30대 후반에서 40을 갓넘을 작가들이 되었다. 그들은 또 요즘 젊은 작가들을 뭐라고 얘기할까?         

이들 중엔 실제로 모출판사나, 신문사에서 주는 일명 '젊은 작가상'을 수상한 작가들도 다수 있었던 것으로 안다. 갑자기 그들이 부러워졌다. 그것은 그야말로 젊은 작가에게만 수여하는 상이다. 우리나라에 기라성 같은 영화상에서 '신인상'은 아무나 받을 수 없는 상처럼 그 상도 그런 것이다. 그러니 늦게 데뷔한 작가가 있다면 그런 상을 받아 보기야 하겠는가? 하기야, 엊그제 '무릎팍도사'에 나왔던 배우 김남길은 데뷔 7년차에 백상 예술상 '신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나이의 많고 적음, 활동의 연수와 상관없이 영화의 '신인상'에 해당하는 '젊은 작가상'도 소위 말하는 '유망주'에게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으니 또 하나 드는 생각은, 고백하건데 내가 20대 때, 나는 박완서 작가의 작품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은 노년을 다루지만 당시는 중년을 다룬 작품이 많았다. 그런데 그의 작품이 이제야 이해가 가고, 정말 좋은 작품이란 생각을 새록새록 하는 것이다. 하긴, 20대 때 중년을 어찌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지금 나에게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읽는 건 꼭 그런 느낌이다. 분명 나도 젊은 날을 살아왔는데도 말이다. 문학은 그렇게 인간의 삶과 함께 발효의 과정을 거치며, 10년 20년 후에도 말할 수 있는 가치있는 작품이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과연 이들의 작품도 그럴 수 있을지는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이 책은 앞서도 언급했지만 해당 작가의 작품을 읽지 않으면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는 단점을 가졌다. 그러나 또 달리 말하면 그래서도 다이제스트로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을 가졌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거기엔 사회를 맡은 박범신 작가의 유려한 말솜씨가 한몫했다고 할 수 있는데, 어느 대담 프로그램이고 사회자는 딱 물어볼 것만을 물어봐야 한다는 고정관념 같은 것이 있는데, 선생은 그런 것을 깨고 특별히 사회 본다는 느낌없이 자연스럽게 그 시간을 이끌어 갔다. 아마 모르긴 해도 초대 작가들은 편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언젠가 박범신 작가는 그런 얘기를 했다. 자기 안에는 늙지 않은 짐승이 살고 있다고. 상당히 인상적인 말이라 한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바라기는 여기 등장한 12명의 작가도 자기안에 그런 짐승 한마리씩 키웠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여러 분야에서 총체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문학계만큼은 늙지 않고, 마르지 않는 샘으로 남아줬으면 좋겠다.  

또한 정말 바라기는, 이들이 문학의 중흥의 주역이 되기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좀 해줬으면 좋겠다. 작가는 언제까지 가난한 직업이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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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0-07-26 0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놀러 왔어요~ ㅋㅋㅋ
<캡쳐 이벤트> 끝까지 참여해 주세요~
행복한 한주 되시길 바랍니다.^^

stella.K 2010-07-26 10:45   좋아요 0 | URL
제가 그다지 빠르지가 못해서 될 것 같지는 않겠지만
수시로 가보긴 하겠슴다.^^

gimssim 2010-07-26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 소설을 참 많이 읽었어요.
그랬는데 언제부턴가 소설을 읽지 않게 되었는데 저도 stella09님이 말씀하신 그런 이유인 것 같아요.
박범신은 한겨레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데 재미있게 읽혀요.
옛날에는 여성취향의 연애소설을 많이 쓰셨는데 나이가 들면서 더 성공한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stella.K 2010-07-26 10:42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나이 먹어서 성공하는 작가가 참 보기 좋더라구요.^^

hnine 2010-07-26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의 목차를 살펴보니 과연 요즘 소위 우리 나라의 잘 나가는 젊은 작가들이네요.
어느 분야에서 웬만큼 탄탄한 기반을 이루었다는 것이 그 분야 새로운 경향에 대해 무감해지게 하는 원인이 되지 않으려면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한 본인의 노력도 필요하고 겸허한 마음 자세도 필요하고 그럴 것 같아요.

stella.K 2010-07-26 10:44   좋아요 0 | URL
이들은 나름 치열하게 노력할 거예요.
똑똑한 사람들이니까. 단지 저와 이들의 갭이 갈수록 날거라는 것이
왠지 모르게 서글퍼져요. 어쩔 수 없겠지만요.ㅠ

Tomek 2010-07-26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의미 없는 존재는 없듯이, 다들 의미 있는 작가들일 것입니다. 다만, 그 글을 읽는 내가 그의 예술을 지지하느냐, 지지하지 않느냐로 갈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
요즘 고민하는 것과 stella09 님의 글에 대한 생각이 섞이니 댓글이 걷잡을 수 없어지네요... ㅠㅠ

stella.K 2010-07-26 12:09   좋아요 0 | URL
그럴 땐 조용히 추천만 하는 거예요.ㅋㅋ

순오기 2010-07-26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범신 책을 읽지 않아서 조용히 추천만 하고 가요.
혹시 '메롱'에 삐지신 거 아니죠?^^

stella.K 2010-07-26 13:49   좋아요 0 | URL
설마요. 귀여우셨는 걸요.ㅎㅎ
추천 감사합니다. 순오기님.^^

마녀고양이 2010-07-26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세여.. 그런데 저 역시 국내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아서
이 책은 무리가 있겠어요.. ㅠㅠ

stella.K 2010-07-26 16:14   좋아요 0 | URL
저 역시 그랬어요. 하지만 밝혔다시피 저는 박범신 작가가 좋아서
읽은 거랍니다.흐흐

2010-07-26 18: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26 18: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10-07-26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공감합니다. 요새 재기발랄한 통통 튀는 작가. 김애란 정도를 읽어 봤나 봐요. 저는 크게 와닿지 않더라구요. 그리고 박완서 작가도 너도 최근에 완전 몰입했었거든요. 정말 늙어 간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가난한 작가. 저도 제발 부자 작가들좀 많은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저번에 윤대녕이 인터뷰한 거 보고 깜짝 놀랐어요. 몇 년을 소설을 위해 수입없이 살다 사만 부 정도 팔아 사천 만원 번다고 했던 것 같은데...요새는 사만 부도 많이 팔리는 거라고 하고...가슴이 아프더라구요. 너무 척박한 것 같아요.

stella.K 2010-07-27 10:21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왜 작가들 중엔 럭셔리한 사람이 나오면 안 되느거냐구요.
그런 사람 혹 있으면 안 좋게 보잖아요. 구라같다고.
작가는 좀비 같은데가 있어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암튼 우리나라 문예정책이 좀 달라졌으면 좋겠어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