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소수민족의 눈물
장샤오쑹 외 지음, 김선자 옮김, 루셴이 외 사진 / 안티쿠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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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요즘 다큐멘터리 분야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MBC의 눈물 시리즈와 비슷해 보인다. 이를테면, '북극의 눈물'이니, '아마존의 눈물'이니 하는 것 말이다.  새삼 매스컴의 위력은 이런데서 발휘되지 않는가 싶다. 이런 방송이 아니면 결코 알리 없는 소수민족의 삶을 이렇게 앉아서 볼 수 있으니 대단하지 않은가? 작년에 짬짬이 보았던 '아마존의 눈물'은 확실히 놀랍고, 신기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책 제목도 그렇고, M 본부의 눈물 시리즈도 그렇고 왜 제목을 그렇게 정했을까? 나는 그다지 이런 제목에 선뜻 동의할 수가 없다. 물론 그들이 우리의 시각에서 보면 약소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들 나름의 문화와 전통을 지키며 잘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괜히 '눈물'이란 제목을 붙여 저들이 마치 침략이라도 당해 운둔이라도 하는 양 동정표를 얻어내려고 하는 것 같아 편치가 않다. 그건 확실히 그들을 모독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예로부터 역사는 늘 강대국만을 기억해 왔다. 강대국은 늘 약소국을 집어 삼킬려고 혈안이 돼 있다. 그런데 내가 이 책에서 본 반에 의하면 별로 그런 정치구도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 상흔이 보이지 않는 이상 '눈물'이란 표현은 좀 과한듯 싶다. 그냥 이대로만 지켜질수만 있다면, 그들도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중국의 7개의 소수부족들에 대해서 다룬 책이다. 우리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는 은둔의 부족인 셈이다. 사랑의 부족이라 할 수 있는 지눠족. 영혼을 조상님 곁으로 갈 수 있도록 해 준다는 다바족. 사냥꾼들의 마을이라는 바사 먀오족. 사람이 죽으면 소를 잡아 조상의 땅으로 돌려보낸다는 쟈치먀오족. 아득한 옛날부터 자신들이 만든 약으로 생육을 조절했다는 잔리족. 다부다처제를 아직도 지키고 있는 나시족. 그리고 여인들의 재주가 뛰어나며 일찍 연애를 시작한다는 장각먀오 사람들까지. 어찌보면 흥미롭고, 어찌보면 으시시하기도 한 부족들이 중국내에 살고 있다. 

그중 아름답기로는 이 책 첫번째 나오는 지눠족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들이 아름다운 건, 사랑을 이뤄서라기 보단 이룰 수 없어서 아름답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들은 통혼을 금지하고 있고, 그렇다고 타마을 사람과도 결혼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확실히 시나 노래는 행복할 때보단, 불행할 때 많이 나오나 보다. 그래서일까? 그들의 전승되어져 온 노래들은 하나 같이 애절하다. 

다바족은 죽은 사람을 조상에게로 보낸다는 자부심으로 이어 온 부족인데, 그것도 공부를 상당히 많이해야 한단다. 최근엔 그 전통이 힘을 잃고 있어 명맥을 잇지 못해 자신이 죽으면 어떻게 조상을 뵐 수가 있냐며 걱정과 신음이 깊어진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마을도 문명의 바람이 들어온 것을 보면 자식들은 어떻게 하면 도시로 나가 돈을 많이 벌고 살까를 궁리중이란다. 아버지와 자식의 바람이 이렇게 다르니 이 전통의 맥이 이어질지 미지수다. 

가장 호탕하고, 호전적이며 나름의 행복을 구가하며 사는 족속은 바사 먀오족은 아닐까? 특별히 이 민족은 남자 아이의 경우 머리카락을 함부로 자르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것은 어찌보면 성경의 삼손의 부족인 나실인과도 흡사해 보였다. 그렇긴 하지만 이들은 변발도 한다. 이들은 결혼 전까지는 자유롭고 거침없이 연애를 한다고 하는데, 어찌보면 건강하고 멋져 보이기도 하다.  

그런데 비해 쟈치 먀오족은 죽은 사람을 위해 소를 잡는 다는 것이 샤머니즘적이면서도 좀 으시시하다. 그래도 좀 재밌는 건, 조상께 바친 소의 입에서 혀를 끄집어내어 날카로운 대나무 꼬챙이로 찌르는데, 그것은 그 소가 조상에게 가서 자신을 죽인 사람을 고자질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란다.(181P) 좀 우습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 소가 무슨 죄일까. 무엇보다 책 표지에 나온 저 배우 안성기를 닮은 저 아저씨가 쟈치 먀오족이란다. 특이한 건, 저 아저씨가 머리에 쓴 것이 전통 모자 같은 건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굴비 같은 말린 생선을 엮어 만든 것이다.  

뭐니 뭐나해도 신기한 건 잔리족은 아닐까 싶다. 생육을 조절하다니. 중국같이 산아제한을 하는 나라에서 뭐든 예외는 있는 법인가 보다. 무엇보다 태속에서 성을 바꾸기도 한다니 신기하지 않은가? 과연 신비스럽다 못해 영험하기까지 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다부다처제를 한다는 나시족은 일전에 보았던 '아마존의 눈물'에서 보았던 '조에족'가 일견 닮아 보이기도 하다. 그들은 혼외정사를 해도 그것이 별로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인다.   

아무튼 이렇게 읽어가다 보면, 그들의 문화란 우리의 기준과 관점에서 볼 때 다분히 미신적이며, 성적 방탕이 섞여 있다. 그래서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래도 지극히 문화적이며, 윤리와 도덕을 존중하는 나라만이 강대국을 이루며 산다는 지극한 상식에 확실히 놀랍고도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무조건 비판의 눈으로 보기 보단, 그들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부터 그들을 알아 나가는 자세도 필요해 보인다.   

인상적인 화보와 편안한 글도 읽을만 하다.  한번쯤 일독을 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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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판타지 - 패션은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나 샤넬에서 유니클로까지
김윤성.류미연 지음 / 레디앙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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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몇년 전, 아는 사람이 가족과 함께 미국 유학 갔다가 잠시 귀국한 적이 있었다. 물론 그 사람은 미국 유학을 가기 전에도 사치라곤 전혀 모르고, 그냥 수수하게 하고 다녔던 사람이다. 그랬던 그를 나는 거진 3년만에 만난 것인데, 미국 물도 마시고 했으니 조금은 세련되지 않았을까?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막연하게 이런 생각을 하고 만났었다.  아, 근데 왠걸, 더 수수해져서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말라. 더 수수한 것을 촌스러움과 동격으로 보는 건 그 분에 대한 모독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그는 자신의 수수함이 조금은 신경 쓰인 건지, 아니면 이것이 '미국 컨트리 스타일'이라고 이해를 해 달라는 것인지, 대다수의 미국 사람들은 수수하게 하고 다닌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럴까? 정말 미국 사람도 이 사람 같이 하고 살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하긴, 미국 사람들은 우리나라와 달라서, 집에서 잘 입고, 밖에선 오히려 수수하게 입고 다닌다지 않는가? 그런데 비해 우리나라는 집에선 후줄근해도, 밖에 나갈 땐 그야말로 '비까번쩍'하게 차려입고 나간다.  그도 그럴 것이, 나만 같아도 집 앞 편의점 조차도 집에서 입던 그대로는 잘 못 나가는 편이다. 하다못해 바지 하나라도 바꿔입고 나간다. 이 말을 꼭 비꼬아 들을 것도 아니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체면치레나 남에게 보여지는 것을 중요시 여겼다. 이왕이면 남에게 좋게 보여서 나쁠 것도 없지 않은가? 

그런데 그렇게 우리나라 보다 잘 사는 미국이 우리와 정반대의 라이프 스타일을 구가하고 산다니 뭔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 이를테면, 그들의 겸손함, 절제미 뭐 이런 것들이 생각난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들의 삶이 그렇다면 그들은 언제 멋을 부리며, 굳이 사치할 필요도 없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그건 개인 프라이드에 관한 것이니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고.   

우리는 과연 럭셔리에 대한 욕망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럭셔리에 대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을 가장 잘 표현한 영화를 꼽으라면 바로 저<티파니에서의 아침을>에서의 오드리 헵번이 블랙 미니 드레스를 입고 햄버거(?)를 들고 쇼윈도의 명품 악세서리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장면은 아닐까? 내 기억엔, 저 때가 아직 사람들이 북적이지 않은 새벽 시간대라고 생각되는데, 보다시피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 물론 멋있으라고 쓴 것일수도 있겠지만, 명품에 대한 인간의 은밀한 욕망을 너무 노골적이지 않게 드러내주는 폼새는 아니었을까? 더구나 지극히 시민적인 음식을 들고 언감생심 명품을 정면으로 노려보겠는가?  

사실, 럭셔리의 정확한 의미는 '사치재'가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나라에 쓰일 땐 '명품'이란 단어로 전도되어서 쓰인다. 그래서 아쉬움이 있다. 솔직히 사치한 물건에 그 단어를 쓰기엔 '명품'이란 단어가 좀 억울하지 않을까? 좀 우아하고, 가치있고, 오래되었으며, 보수적이고, 평판 좋은 물건에 '명품'이란 단어가 어울리지 않을까? 물론 샤넬이나, 아르마니, 꾸찌니 하는 패션 브랜드에열거한 말들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건 아닌데, 문제는 사치스럽고, 있는 사람만의, 즉 자본주의의 전유물 같아 조금은 편치는 않다. 그것은 아마도 사치가 더덕적이지 못하다는 생각과 맞물려 그것에 대한 내밀한 열등감이 합쳐져 그런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지극히 평범한 가정에서 나고 자라 평생 길표 외엔 다른 것들을 써 본적이 없어서 일까? 명품에 대한 갈증 같은 것은 없다. 그런데 그것도 확신할 수 없는 것이, 그것을 향유하고 누릴 수 있는 환경에서도 나는 그것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란 질문에 자신있게 "그렇다"고 대답은 못할 것 같다. 그러므로 명품에 대한 갈증이 없다는 건, 단지 거기에 관심을 두지 않으려 하고, 그것에 대한 욕망을 억누르고 있을 뿐이지 언젠가는 분출될지도 모르는 욕망이라는 쪽에 무게 중심이 실린다. 저 <타피니에서의 아침을>에서의 선글라스 낀 오드리 헵번처럼 말이다.  

우리가 럭셔리를 논하고자 할 때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이름, 샤넬

우리가 패션이나, 명품을 논하고자 할 때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건 '샤넬'이다. 이 책에서는 지나치다 싶으리만치 많이 다루고 있어, 과연 이 책이 정말 명품과 그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다루려고 하는 책인지, 아니면 샤넬을 설명하기 위한 책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다. 하지만 인정해야 할 것은 샤넬은 정말 위대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녀가, 여성 억압의 시대에 의상 하나로 여성해방에 기여한 점은 샤넬 당대에는 '파격'이었을지 모르지만, 역사는 그것을 '위대한 것'으로 승격시켜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녀는 고정관념에 맞섰으며, 남보다 한 발 앞선 안목과 예지가 있었다. 그녀는 무엇보다도 검정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된 이미지와 신발까지 고전적 패션에 과감히 가위질을 해 '검정 미니드레스'란 패션을 선보였다.  그전까지만 해도 검정은 종종 저승사자나 상복에 비유됐다. 하지만 샤넬은, 검은색은 모든 색의 기본이며, 어떤 색을 넣어도 더러워지지 않으며, 다른 색 보다 일정하고, 고르게 염료를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대량생산이 가능하며, 모더니즘 시대에 검정색만큼 편리한 색도 없다.(58p)고 확신했다.  확실히 창의적인 사람에게 금기란 없다. 무엇이든지 내가 가는 그곳이 길이 된다란 말은 맞는 것 같다. 그렇다면 현대에 금기는 뭘까? 나도 뭔가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고 싶다.       

결국 그것에 대한 그녀의 예언은 적중해 보이는 듯하다. 샤넬의 시대 때, 당시 <보그>의 편집장은, '이 옷은 패션의 포드 자동차이며, 이제 대중들이 입는 표준의상이 될 것이다.'(60p)라고 말했다고 한다.  과연 샤넬 자신의 안목과 예지에서 한 수 배워보고 싶어진다. 그것을 사업으로 이끌어낸 그녀의 수완도 놀랍고. (솔직히 난 작년에 샤넬의 전기 영화를 본적이 있었는데, 작품에 대한 아쉬움은 차치하더라도, 내가 너무 그녀에 대한 이해가 없었구나란 생각을, 이 책을 보며 새삼 깨닫기도 했다.)이 말은 경구를 남기기 좋아하는 샤넬이 한 말 중의 하나다. 그녀는, 유행은 원래 영원하지 않고 거리에서 나타나 다시 거리에서 사라지는 것이라고 했다. ...... 사람들의 필요를 만족시킨 '실용적'인 유행은 사라지지 않는다. 살아남은 유행은 변화무쌍한 패션 세계에서 정식으로 시민권을 얻는다.(50p)고 했다. 확실히 새겨볼만 하다. 

                                         '패션은 변하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48p) 

 

모더니즘 또는 샤넬 스타일은 아직도 유효한가? 

원래 럭셔리는 신에게 바치는 재물을 담는 그릇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러니 얼마나 귀하고 비싼 물건이었겠는가. 그런 것이, 왜 그런 물건은 신들만이 써야 하는가? 우리도 한번 써 보자. 그래서 부자들이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르네상스나 인본주의 이념과 그 괘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이 쓰기 좋게 변형되고 발전하면서 지금의 럭셔리가 되었다고, 이 책은 전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모더니즘'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것을 가장 잘 이해했던 사람이 역시 샤넬이었다.  

그녀가 처음 제안한 디자인과 옷 입는 법을 흔히 '샤넬 스타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샤넬에게 있어 '샤넬스타일'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가 곧 스타일'이라며, 스타일이란 말을 만든 사람 자체가 자신이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24p) 그렇다면 럭셔리도 별것 아니겠다는 생각이 든다. 뭐든 인간의 편의와 자신만의 스타일을 창조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럭셔리 곧 '명품'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어느 때 보다 그러한 세대를 살고 있지 않은가? 하루에도 수없이 많이 쏟아져 나오는 인간 편의를 위한 물건들. 실용성과 디자인을 무기로 인간을 유혹하며, 우리의 것으로 당신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라고 유혹을 너머 강요하고 있다. 과연 명품은 진화하는 것이다.  

명품은 왜 비싼가? 

사실, 그렇게 신의 재기로나 쓸 수 있었던 물건들이 인간도 쓸 수 있는 물건이 되었다면 환골탈퇴를 해도 여러 번 했을 것이고, 대량생산이 가능하니 겸손해져도 많이 겸손해진 셈이다. 하지만 명품은 확실히 비싸다. 왜 그런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쓰는 물건은 가격이 오르면 덜 팔리고 가격이 내려가면 더 팔린다. 이것을 '수요의 법칙'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사치하기 위해서 쓰는 물건들은 가격을 올릴수록 오히려 점점 더 잘 팔린다. 들인 비용과 가격과 상관없이 '얼마면 사람들이 사고 싶을까'로 가격이 결정된다고 한다. 그리고 가격을 올리면 올릴수록 사람들은 경쟁적으로 그 물건을 사간다.(268p) 이것을 좀 더 잘 설명한 사람이 경제학자 베블런이다. 그는 <유한계급론>이라는 책에서, "사람들은 유명해지기 위해 돈을 쓰고, 쓸데없는 데 쓸수록 더 유명해진다."고 했다.  결국 명품이 비쌀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대중은 화려한 삶을 욕하면서도 부러워하고 궁금해 한다. 대중심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얼마나 화려한 결혼을 할 수 있는지, 얼마나 좋은 집에서 사는지를 두고 목숨 걸듯 경쟁한다.(270p) 그러니 아까 말한 <티파니에서의 아침을>에서, 선글라스 뒤에 감추어진 오드리 헵번의 눈빛이 어떨지 다시 한 번 자세히 보라. 그리고 나 역시 평범하지만 그 욕망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고 장담하지 못하겠다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과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명품을 쓴다고, 명품 사회가 될까? 

너도 나도 명품을 쓴다면 어떻게 될까? 그건 이미 명품이 아닐 것이고, 베블런이 말했던 대로 유한 계급은 반발이 거셀 것이며, 그들은 더 낳은 차별화된 물건을 사거나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될 것이다. 사실 실재로 그렇게 해서 일반인에게도 흔하게 쓸 수 있는 물건들이 생각해 보면 많다. 또한 그에 못지 않게 짝퉁도 많이 생겼고.  당장 컴퓨터나 핸드폰만해도 그렇다. 불과 한 세대 전만해도 그 물건은 부자들이나 쓸 수 있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쓸 수 있고. 선택의 폭도 다양해졌다. 아직도 이 물건에 대한 정체를 모르거나, 알아도 여건상 흔하게 쓸 수 없는 나라가 있다는 걸 생각해 볼 때 우리나라는 확실히 명품 사회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또 명품하면, 과거 정치인들의 옷로비 사건과 맞물려 그다지 좋은 이미지만도 아니다. 특히나 자본주의의 전위물이고, 중산층이 점점 사라지고 빈부의 격차로 인한 괴리감 때문에 명품은 그다지 환영 받을 물건은 못되지 싶다. 그리고 있는 사람들의 오블리주 노블리제가 중요시 되면서, (이게 좋은 현상인지 나쁜 현상인지는 모르겠는데) 우리나라도 안에서 입는 옷이나 밖에서 입는 옷이나 별 차이를 두지 않게 되었다. 그만큼 삶의 질이 좋아졌다고 말해두자.  그래도, 솔직히 명품을 쓰게 됐다고 명품 사회가 됐다고는 장담하지 못하겠다. 돈이 가치중립적인 것처럼, 명품을 가지고 도덕성을 우논할 수는 없는 것 같고, 그냥 있는 사람끼리의 하나의 문화 현상이고, 유희는 아닐까 싶다. 그러니 그것을 못 쓰게 됐다고 열등감을 느낄 필요도 없고, 그것을 쓰는 사람을 비난할 필요도 없다. 아니할 말로, 그들이 쓰는데 우리가 도와준적이 없지 않은가? 그들은 그들만의 세계가 있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들의 세계가 있는 것이다. 대신 샤넬이 말했던 대로 자기 삶에 있어서 '자기만의 스타일' 을 만든다면, 명품을 쓰는 것도 하나의 스타일이겠지만, 역설적으로 명품을 안 쓰는 것도 자기만의 스타일이란 말도 될 것이다. 요컨대, 중요한 건 스타일에 구애받지 않는 것이 진정한 자기만의 스타일이고, 그것이 곧 명품이란 소리도 된다는 말이다.  '내가 곧 명품 인간'이란 자부심은 어디나 통할 수 있다. 자기 삶에 자부심만 있다면 말이다. 그러므로 명품 사회가 그리도 부럽거든 그것이 있는 사람에 의해서만 가능할 거라는 생각을 버리고, 우리 나름의 스타일. 곧 우리가 명품 문화를 만들면 되는 것이다. 절대 기죽지 않기를!

음...

솔직히 이 책을 읽을 때는 나름 재밌게 읽었다. 하지만 이 책을 덥고나자 새삼, 내가 왜 이 책을 읽었을까? 그 의미를 찾지 못했다. 내가 그렇게 명품에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이 책을 읽었다고 앞으로 명품을 살 것도 아니다.  게다가  다른 다룰만한 명품도 많을텐데 (주로) 패션에(그것도 특히 샤넬에) 치중해서 다소는 산만하게 주제를 풀어나간 점은 좀 아쉽기는 하다. 하지만  작가가 재치있게 공들여 쓴 것은 인정해 줄만하다. 사이 사이 끼어있는 삽화도 볼만하고.   

물론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생각해 볼만한 것은 있었다. 그것은, '명품, 나만의 스타일은 가능한 것인가?' 였고, 결론은 전혀 불가능하지만도 않겠다,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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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옥한흠
옥성호 지음 / 국제제자훈련원(DMI.디엠출판유통)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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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관계는, 부전자전의 관계  

우선, 저자 옥성호 씨를 뭐라고 불러야할까? 그는 이미 '부족한 기독교' 3부작 시리즈를 통해 기독교내에서는 알아주는 저술가 되었다. 나는 아직 그의 책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그의 책은 오늘날의 교회에 가차없는 비판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공식직함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교회평론가'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가 아버지 영정에 바치는 '사부곡'을 썼다.  아버지 옥한흠과 아들 옥성호의 관계는, 작년 9월초 옥한흠 목사님이 작고를 하면서 그를 추모하는 글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났다. 그러면서 저자의 이런 가차없는 성정이 과연 누구에게로부터 왔을까를 생각해 볼 때, 그건 확실히 아버지 옥한흠 목사에게서 그대로 나왔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사실 옥한흠 목사님은 그의 설교를 들어보면 알겠지만 빈틈이 없고, 때론 사람의 마음을 후벼파기도 한다.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 그의 하는 일에 자신의 성정이 스며있는 법이다. 그분은 한마디로 타협을 모르는 꼬장꼬장한 어른이시다. 오늘 날, 부드러움과 유연함, 융통성, 타협, 관용 등이 요구되어지는 세계관에서 그것은 또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 모습인가? 정말 비타협적이고, 융통성없는 인물로 낙인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분은 항상 옳은 것만을 외쳤다. 잘못되었으면 잘못됐다고 직설적으로 말하지, 에둘러 말하는 법이 없다. 이건 또 물에 물탄 듯 술에 술 탄듯한 세상에서 얼마나 청량제 같은 구실을 하였던가? 

하지만 그분의 그런 성정이 가족과의 관계에서는 역시 쉽게 받아드려질만한 건 아닌듯 싶다. 그런 성정을 아드님들이 그대로 이어받았다면 그것은 분명 서로가 서로를 찌르는 고슴도치 같은 것이 되었을 것이다. 비근한 예로, 나는 옥함흠 목사님 타계 직후 모 잡지에 나온 추모글을 읽는 가운데, 그분의 세 아들 중 하나가, 그분의 저서 중 하나인 <예수 믿는 가정 무엇이 다른가?>란 책이 나온 것을 보고, 아버지는 이런 책을 내실 자격이 없다고 반박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늘 사역 가운데 바빠 가정을 돌볼 틈이 없으셨던 분이셨기에 아들 역시 아버지를 닮아 둘러 말할 줄 몰랐나 보다. 그러니 목사님으로선 얼마나 큰 아픔이었을까? 우리네 같으면 그렇게 고생하시는 아버지가 있다면 속은 어떨지 몰라도 인정상 위로를 했을지 모를 일인데 말이다. 그러기에 같은 극끼리는 통하지 못한다고 했는가 보다. 하지만 또 그런 아버지의 성정을 그대로 이어받았기에 세상에 나가선 아버지 같이 그 역할 그대로를 닮아 살게되는 것은 아닐까? 그것을 두고 부전자전이라고 하는 것일게다.  

아버지의 삶을 말한다는 것에 관하여

이 책 초두에 보면, 저자가 이 책을 써야했던 이유에 대해 말하고 있다. 물론 아버지의 소천 이후 주위에서 그런 권유를 받기도 했지만, 단순히 그런 이유로만 글을 썼던 것은 아니다. 저자로 하여금 좀 더 쓰지 않으면 안 될 강력한 이유가 필요했을 것이다. 결국 아버지에 대해 써야겠다고 마음 먹은 건 프랭크 쉐퍼가 쓴 Crazy for God를 읽고 나서였다고 말하고 있다. 프랭크 쉐퍼는 저명한 기독교 철학자 프랜시스 쉐퍼의 아들이다. 프랜시스 쉐퍼가 말년에 림프암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었을 때 아들 프랭크는 아버지를 위해서 뭔가를 할 수 없을까를 생각하다가, 미술에 재능은 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그림을 그만 둔 자신이 아버지를 위해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아버지에 관해 글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고 한다.  그렇게해서  쓴 게  Crazy for God이고,  그것은 어찌보면 저자와 그의 아버지 옥한흠과 비슷해 보인다.  

프랜시스 쉐퍼는 아들의 미술적 재능을 높이 사 늘 그림을 다시 그리길 바랬지만, 자신의 말을 따라주지 않는 아들에 대해 늘 마음 아파했었다고 한다. 옥한흠 목사 역시도 살아생전 아들의 책을 읽으면서 목회의 길을 가게 되길 바랬지만, 그것을 따라주지 않는 것에 늘 아쉬움을 가졌다고 한다. 프랭크가 아버지의 임종을 앞두고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해 아버지의 병실을 하나의 갤러리로 만들었던 것처럼, 저자 역시 옥한흠 목사의 임종을 앞두고 목회의 길을 갈 것과 아버지의 삶에 관해 쓸 것을 다짐한다.  

아들이 아버지의 삶에 대해 말한다는 건 어떤 의밀까? 모르긴 해도 자랑스러운 일이기도 하지만 한편 두려운 일이기도 할 것이다. 평범치 않은 삶을 사시고, 사회의 존망을 받으셨던 분이며 더구나 당신 자신에 대한 일체의 기록(옥한흠 목사님은 자신에 대한 일체의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 그나마 있던 몇 권 되지 않는 일기조차 불태워버렸다고 한다)  조차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아들로서 아버지의 삶을 말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으리라고 본다. 하지만 저자의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고 소박했다. 앞으로 아버지의 평전을 누군가 쓰게 된다면 그것에 도움이 되고자 이 글을 쓴다고.  

인간, 옥한흠             

옛 속담에, '될성 부른 나무 떡닢부터 알아 본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꼭 그 사람의 성공을 점칠 때만 쓰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보다 중요한 건, 어디에 될성 부르냐는 것인데  인간 옥한흠은 확실히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에서의 될성 부른 떡닢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아버지 살아생전 가톨릭에 일정 정도 호의적이기도 했는데, 그것은 마더 데레사 수녀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인도에서 삶을 헌신한 테레사 수녀에 대해 존경을 넘어 일종의 열등감 내지는 경외감을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89p)  그만큼 인간 옥한흠은 자신이 한 가정의 가장이고, 교회와 교단을 대표하는 중책을 맡은 것에 대해 늘 부담스러워 했다는 말도 될 것이다. 마더 데레사처럼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채  헌신적인 삶을 사는 것을 부러워했을 것이다.  이것 말고도 옥한흠 목사의 사후 그의 삶을 증언하는 다른 글을 읽어보면, 그가 얼마나 낮은 마음으로 하나님에 대한 부름과 그에 헌신하는 삶을 살려고 했는지를 알 수가 있다. 

무엇보다 저자는 아버지의 장례 때, 아버지를 가리켜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고백했는데, 그것은 아버지가 나이와 상관없이, 신분의 고하와 상관없이 늘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는 데 조금의 망설임이 없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에 대해서 때로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솔직했던 바로 그 점 그리고 그 점을 채우려고 어린아이와 같이 노력하는 모습  때문이라고 했다.(94p)  

목사, 옥한흠  

옥한흠 목사님은 자주 강단에서 자신의 이름의 뜻을 설명하시곤 했다. 물론 원래 가지고 있는 함자의 뜻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은 누구도 동명이인이 되는 것을 선뜻 허락하지 않을만큼 독특하기도 하다. 그런데 목사님은, 한없이 흠이 많은 사람을  하늘 나라에선 옥에 티 한 점없이, 흠없이 들어 사용하여 주셔서 옥한흠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풀이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분은 항상 하나님이 자신을 분에 넘치도록 사용해 주셨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이것이 믿지 않는 사람에겐 얼마나 못 믿을 말이고, 귀에 거슬리는 말일지 짐작한다. 하지만 자신의 자신됨을 증명해야 살아 남을 수 있는 세상에서 자신을 비워 자신의 자신됨을 증명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확실히 믿지 않는 사람은 결코 이해 할 수 없는 '독특한' 인생관일 것이다.  

옥한흠 목사는 제자훈련으로 유명하고, 평생 그것을 목회철학으로 삶아 목회를 하신 분으로 유명한데, 그것 말고도 그분에겐 평생 짊어지신 십자가 있었다. 그것은 사분오열 갈라진 오늘날의 한국 기독교를 하나되게 만드는 일이었다. 이것은 생각보다 골이 깊고 치유 불가능한 것처럼도 보인다.  이때문에 그분은 오래 전부터 <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자협의회>를 창립에 교회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셨다. 또한  지난 2007년 한국 교회 대부흥 100주년 기념 설교에서, 이미 암에게 자신의 폐가 점령 당하도록 내어준 상태에서 그는 피를 토하는 마음으로 설교했고, 기도했다. (114p~115p)  

그분은 제자훈련을 너무나 열심히 한 나머지 건강에 심각한 손상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사람들이 변절하고 돌아서는 것을 보면서 그에 대한 스트레스로 몸을 해치기도 했다. 또한 그는 무엇보다도 매번 설교에 자신의 모든 진액을 쏟아 붙곤 했는데, 그가 정년보다 일찍 퇴임을 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설교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기 위함이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아들을 목회의 길로 내어 보내려고 하고 있다. 그는 아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성호야, 목회자에게 필요한 건 딱 하나다.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아야 하고, 그 은혜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목사는 딱 두 종류가 있다. 은혜를 아는 목사와 은혜를 모르는 목사다. 은혜를 알아도 은혜를 깊이 라는 목사와 피상적으로 아는 목사로 또 나눌 수 있다. 은혜를 모르는 목사가 설교를 하면 그럴듯하기는 한데, 그 설교는 결코 듣는 사람의 영혼을 때리는 울림이 없다. 성령의 감동이 없다. 너는 그런 설교가 어떤 것인지 가장 잘 알지 않니? 그게 바로 은혜의 차이 때문이다.(82p) 

 
   

  한마디로 은혜를 알고, 은혜를 끼치는 목사가 되라고 조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분은 항상 교회에 사람이 너무 많이 모이고 있는 것에 의문을 가졌고, 걱정을 했다. 원래 제자훈련이란 게 사람이 많아서 좋은 성질의 것이 아닌데, 사람이 이렇게 많아져 버리면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할 수 없다고 걱정을 했던 것이다.  

옥한흠 목사님이 숨을 거두시기 직전, 아들과 나눈 필담에서(인공 호흡기를 찬 상태였기 때문에) 특별히 보고 싶은 사람이 있냐고 묻자, 그분은 힘들게 칠판에 쓰셨다고 한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 즉 그가 평생 사랑하던 교인들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목회자 옥한흠이었던 것이다. 

아버지, 옥한흠    

사실 일개의 교인으로서 나에게 그분의 이미지는'근엄함' 그 보다 더 적절한 단어를 찾아볼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감히 그분 곁에 다가설 수 없고, 그분의 그림자조차도 차마 밟을 수 없는 그런 분으로 인식된다. 그런 목사님이 이 책을 읽으면서 다소나마 편하게 다가올 수 있었던 것은, 그분도 한 가정에서는 천상 아버지였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다소 엄한 아버지. 그도 그럴 것이 아들은 딸 보다 기가 세다. 그런 아들을 슬하에 셋씩이나 두셨으니 보통 엄해 가지고 되겠는가? 더구나 명망있는 집안의 자제들이고 보면 그 이름에 누가 될까봐 엄하게 다스리지 않고서는 안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아버지의 세도에 반기를 드는 자식은 어느 집이나 다 있다. 공교롭게도 옥 목사님에겐 큰아들 ,바로 이 책의 저자였는가 보다. 저자는 스스로에 대해 말하기를, 삼형제중 자신이 가장 공부를 못했으며, 아버지의 속을 가장 많이 썩혀 드렸다고 고백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의 성정을 가장 많이 닮았기에 가장 많이 아버지를 안타깝게 해 드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누구보다도 아버지를 가장 가깝게 또 가장 깊이 이해하는 아들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책 면면을 살펴보면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사안을 가지고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기도 하는 것들을 볼 수가 있는데, 그런 것을 보면 아버지가 아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걱정하는지를 볼 수가 있다.  자식의 기를 살려주겠다고 무조건 잘한다고 박수만 쳐주거나, 바쁘다는 핑계로 아버지를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오늘 날의 아버지들하고는 많이 다르다. 잘할 땐 칭찬도 해 주지만, 그 칭찬 뒤엔 뼈있는 조언, 엄한 훈계도 엿보인다. 무엇보다 저자의 비판적 성향은 분명 아버지에게서 나왔을 터. 그러나 자식을 키우는 입장이고 보면 아들의 이런 자세가 마냥 좋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좀 더 따뜻하고, 긍정적인 시야를 가지라고 조언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가슴에 와 닿는 건, 중학교 시절 저자가 공부에 흥미를 잃고 방황하고 있었을 때 매번 아버지에게 꾸중과 잔소리만 듣던 중 한번은 그런 질문을 하셨다고 한다. "성호야, 이 아빠한테 사랑의 교회가 중요한 것 같니, 아니면 네가 더 중요한 것 같니?" 이에 아들은 교회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단호히 말씀하셨다고 한다. "성호야, 아빠는 너를 위해서라면 사랑의 교회도 포기할 수 있어." (123p~124P) 같은 교회 교인이라면 섭섭할지도 모를 일이다. 저자가 중학교의 나이었다면 목사님의 목회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려놓고 한창 바쁠 시기였을 때 과연 목회를 포기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내가 그분의 아들이었다면, 난 그 말을 믿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분은 결코 허언을 하시지 않으시거니와 난 그분의 아들이다. 아들이 아버지의 말을 믿지 못한다면 어찌 그 아비의 아들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과연 아버지의 마음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말하자면 나는 이 책을 읽을 때야 비로소 옥한흠 목사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날은 바람이 몹시도 세차게 불었다. 

                   

이 사진은 저자가 영정사진으로 고른 사진이라고 한다.  저 사진을 골랐을 때 한 소리 듣기도 했었나 보다. 저자는 독자에게 이 사진을 자세히 보라고 말한다. 이 사진을 보면서, 어떤 사람은 목사님이 웃고 있다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울고 있다고도 말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울고 있다고도 말할 수 없으며, 웃고 있다고도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저자 역시도 이 사진은 울고 있으면서 동시에 웃고 있는 사진이라고 말했다.  평소 사진 찍기를 즐겨하셨던 목사님이셨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상당한 수준급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분은 사진을 그렇게 많이 찍었지만 백 퍼센트 만족한 사진은 없다고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는 자신을 향한 카메라의 렌즈에게 그만 자신의 본질을 그대로 노출하고 말았다고 한다.(171p) 그렇다면 저 사진이 영정 사진이 되야하는 건 마땅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분 한 평생의 삶이 저 표정속에 함축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분이 눈을 감으시던 날 새벽은 바람이 몹시도 세차게 불었던 것을 기억한다. 물론 그날 태풍의 여파로 그런 것이었겠지만, 그날 하나님이 그분을 데려 가시기 위해 그처럼 바람이 세차게 불어댔나 보다고 우리들은 말했었다. 마치 선지자 엘리아처럼.  

 그분이 돌아가시고, 나는 그 다음 날 조문을 위해 저 영상사진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진은 따로있다.  바로 이 사진이다. 내가 지금까지 본 그분의 사진 중 가장 즐겁고 행복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다. 지금쯤 천국에선 저렇게 환하게 웃고 계시겠지.  

지금까지 책을 보다 울어버린 책은 고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란 책과 이 책이다. 앞의 책은 고인의 삶이 너무 안타까워 울었다면, 이 책은 고인이 너무 그리워 울었다. 그리고 공통점은 내가 이 분들이 살아계실 땐 관심없다가 작고하고나니 마음이 가는구나 싶다. 이제 내 인생에 있어 가급적 후회를 남기지 말고 살자 했는데 또 후회를 남기고 만다. 언제쯤 나는 똑똑해지려는지 모르겠다.          

이 책은 200페이지가 조금 넘는 비교적 얇은 책은 책이다. 옥한흠 목사님의 삶으로 보나, 개인적으로 3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을 좋아하는 나로선 이 책은 도무지 성에 안 차는 책이다.   아무리 아들이라하여 겸손하느라 그런다고는 하지만 책도 언제 다 읽었을까 싶게 다 읽어버렸다. 아쉬운 일이다. 이제 저자는 교회를 평론하는 일에서 아버지의 바람대로 목회의 길을 기기위해 신학교에 들어간 모양이다. 이 모습을 아버지가 천국에서 지켜 보고 얼마나 대견해 하셨을까? 당신은 참 좋은 아버지를 두셨다고 저자에게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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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다 미네르바 타벨 - 어떻게 한 명의 저널리스트가 독점재벌 스탠더드 오일을 무너뜨렸나
스티브 와인버그 지음, 신윤주.이호은 옮김 / 생각비행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미국의 최초의 여기자겸 작가인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의 일생을 다룬 평전이다. 하지만 엄밀한(또는 어떤) 의미에서는 과연 이 책이 정말 평전으로서의 완벽한 면모를 갖춘 책인가에 대해선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의문의 여지는 남았다.  

이 책은 크게 네 부분 정도로 나눠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평전이라고 하느니만큼 타벨이 태어난 배경과, 어떤 교육 과정을 거쳤으며 누구와 교우했는가 하는 인생 배경, 또한 그녀의 주요 업적은 무엇이었나?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주요 쟁점인 록펠러와의 관계 등.  

타벨은 그다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지는 못했다. 타벨이 태어난 때는 미국이 막 유전 산업을 시작하기 즈음이었고, 타벨의 부모는 같은 일은 아니지만 유전 사업에 따른 부가적 사업, 그중 기름을 담아두는 통 즉 배럴을 만드는 일을 했다고 한다.  타벨의 아버지가 그 일을 한 것이 작은 불씨가 되어 나중에 록펠러와 어떤 인연이 되는가를 책은 지루하지만 드라마틱하게 보여주고 있다. 가정 분위기는, 타벨이 어린 시절 동생이 갑자기 병에 걸려 죽었는데 고통속에 신음하며 죽었던 기억은 평생토록 그녀를 괴롭혔지만 것을 제외하면 대체로 화목했던 것 같다. 그런데 비해 록펠러는 불행한 가정환경 가운데서 자라 자수성가 했다.    

사실, 타벨이 나고 자랐던 시기는 1800년 중반인데,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시기는 사회가 여성들에게 그다지 관대했던 시기는 아니었다.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가 그렇게 많이 주어졌던 것도 아니고, 사회에 진출해서 일하는 경우도 많지 않았으며, 참정권 역시 주어지지 않았다. 그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타벨의 부모는 딸에게도 교육의 기회는 공평하게 제공해 주었고 그래서 타벨은 비교적 무난하게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녀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만해도 여학생은 본인을 포함해 단 두 명 밖에 없었다고 한다. 또한 그녀는 대학을 들어갈 때부터 기자가 될 꿈을 가졌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졸업해서 고향으로 돌아와 학교에 학생이나 가르치는 교사가 될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고, 우연한 기회에 기자의 꿈을 갖게되고 그로인해 프랑스 유학까지 다녀오게 된다. 이때를 전후로해서 그녀는 결혼을 하지 않기로 마음 먹기도 한다.       

그녀가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는 건 어찌보면 필요불가결한 선택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요즘엔 결혼도 하면서 자기 일에도 성공한 우먼 파워들이 많지만, 당시로선 기자로써 활동하면서 동시에 결혼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면 <초원의 빛> 같은 서부 개척 시대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책 사이 사이에 타벨의 사진이 몇 점 들어가 있는데, 아는대로 그 시대 서양의 여성들이라면 레이스가 달린 브라우스에 머리는 풍성하게 위로 묶어 올리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치렁치렁한 스커트를 입고 살았다. 기자로 활동했을 타벨 역시 그러고 일을했을거라 생각하니 왠지 이색적이란 느낌이 든다. 사실 그녀는 '탐사보도'로 유명하다. 여기서 말하는 '탐사보도'란 사건 이면을 파헤쳐 보도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책상에 앉아서만 되는 것은 아니고, 발로 뛰어 자료를 모으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타벨은 이 일에 있어 타의추종을 불허했다.  하지만 지금이야 책도 많고, 이메일도 있고, 스마트 폰도 있어 자료를 구하는 것이 편하다지만, 당시로선 교통이나 통신이 지금만큼 발달되지도 않았는데 자료를 모으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렇다면 그 '초원의 빛' 패션은 얼마나 거추장스러웠을까,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난 솔직히 타벨이 어떤 식으로 자료를 모았을지가 궁금한데, 그런 것들이 자세히 나오지 않아 아쉬웠다.     

타벨은 그런 탐사 보도로 링컨과 나폴레옹을 재조명했고, 당시 선한 기업가로 알려진 록펠러의 비리를 폭로하기도 했다. 사실 이들은 인간의 상상에 의해 덧씌워진 부분이 없지 않다. 특히 링컨은 신앙의 사람이라는 점에서 기독교 진영에선 거의 신화와 같은 존재로 다뤄지기도 하는데, 타벨에 의해 이 부분이 많이 깎여지면서 좀 더 냉철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나폴레옹과 함께) 상당히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사실, 타벨하면 탐사 보도고, 탐사 보도하면 타벨을 떠올리는 건 이제 일도 아니게 됐다. 하지만 당대 그녀가 있을 수 있기까지 가장 공이 컸던 사람은 매클루어일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잡지를 창간했고, '전속 작가'제를 만들어서 물심양면으로 타벨을 도왔다. 타벨이 그 유명한 링컨과 나폴레옹을 재조명하는 작업도 매클루어가 아니었으면 가능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록펠러의 비리 역시 폭로할 수 있었던 것도. 일을 할 땐 둘이 죽이 잘 맞아 한때는 연인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단다. 하지만, 매클루어는 이미 아내가 있고 또 아내를 사랑하지만 일부일처제를 부담스럽게 여겨 청교도적인 타벨에게 눈총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책은 '의도적'으로 타벨과 록펠러의 같으면서도 다른 점을 부각시킴으로 독서의 효과를 극적으로 높이려 했다.  이 둘의 같은 점은 기독교인이라는 것과 그 계율에 합당하게 살려고 노력했다는 점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투철한 직업관 또는 사명 의식은 둘이 비등해 보인다. 다만 하는 일이 다르다보니 결과 또한 다르게도 보인다.  이쯤해서 내가 제기하고 싶은 건, 이 책이 과연 온전한 평전의 면모를 갖췄느냐는 것이다. 사실 평전도 그것을 쓰는 작가가 어느만치 역사를 보는 안목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부제처럼, '어떻게 한 명의 저널리스트가 독점재벌을 쓰러뜨렸는가?'에 집중하다 보니 지나치게 많은 부분을 타벨과 록펠러의 관계에 지나치게 많은 것을 할애해 버렸다. 그러므로 정말 타벨을 객관적으로 조명하려고 했을까에 일말의 의구심을 갖게 한다. 책을 읽다보면, 록펠러에 대해서 많은 작가들이 평전을 썼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 타벨 역시도 이 한 권 가지고는 그 사람을 온전히 조명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즉 말하자면 저자의 작가적 취향이 많이 반영된 평전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피해갈 수 없는 거겠지만).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한 거인의 실체가 벗겨지는데는 기자 정신만으로 가능할까, 하는 점이다. 인간의 역사는 도전에 대한 응전이라고 했다. 타벨이 록펠러의 실체를 벗기는데 나름 이유가 있기도 했다. 록펠러가 그녀의 아버지가 하는 사업에 타격줬다는 것이다. 그것이 불씨가 되어 록펠러를 폭로하게 되었다는 건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만일 타벨에게 그런 일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진실을 규명하는 데있어 인간은 얼마나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타벨이 자신의 감정을 정제시키고 오직 진실만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을까? 난 그녀가 순도 100%를 자랑할 수 없을 거라고 본다. 그러는 과정 속에서 역사는 또 굴러간다. 확실히 생각해 볼만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게다가 록펠러는 한 여기자에게 자신이 까발려졌는데 그것을 고스란히 당하고만 있을지 그것도 의문이다(또한 그렇게 많은 록펠러 평전에 타벨은 어느 정도 차지하고 있는지? 과연 언급이나 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래서 인물과 역사는 끊임없이 연구되어져야만 하는 것인가 보다.   

그런 것처럼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 명의 저널리스트로 인해 록펠러라는 인물을 새롭게' 보게 되었다는 것에만 끝나선 안된다는 것이다.  사실 그 전까지 록펠러를 하나님이 축복하신 선한 기업인이라고 알아왔던 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명백히 기독교의 잘못이고, 록펠러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결과다. 또한 기독교 가르침의 모순을 여지없이 드러내기도 한다. 성경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했으면서, 하나님을 믿으면 축복을 받는다는 구복신앙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 벌어들인 재물로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기도 하지만, 또 그만큼 돈을 벌기위해 얼마나 많은 착취와 비리를 감당해야 했는가? 바로 록펠러는 타벨로 인해 이 모순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둘은 같은 기독교 신앙을 가졌고, 똑같은 사명을 가졌다. 하나는 돈을 버는 사명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하나는 진실을 규명해야 하는 사명. 둘은 다 자기 사명에 충실했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둘은 그다지 만족한 말년을 보낸 것은 아니다. 타벨이 록펠러의 비리를 밝혔다고 해서 그녀의 말년이 행복했던 건 아니고, 록펠러 역시 행복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불행하거나 비참했던 것은 아니다.  누구는 남의 비리를 밝혀 좋은 게 뭐가 있느냐? 덮고 갈수있는 건 덮고가야 한다는 의견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세상은 복잡하다. 단지 우리가 인정해 줄 수 있는 것은 그들은 그렇게 사는 동안 자기 사명에 충실했다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누구는 이 책을 읽으면서 삼성을 생각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걸 읽으면서 몇년 전에 있었던 이랜드를 생각했다. 물론 삼성이 일으켰던 윤리적 파장이 이랜드의 그것보다 큰 바람에 묻혀진 느낌도 들고, 그 일 이후 이랜드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기독교 기업 윤리란 측면에서 이랜드는 여러 가지 점에서 생각해 보게 만든다.  솔직히 록펠러가 그렇게 선한 이미지 속에 그런 이면을 갖게된 건 어떤건지 모르겠다. 일종의 기업인의 생리 같은 걸까? 아니면 돈 앞에 무력한 개인의 속성인가? 알 수는 없다. 단지 아는 건 인간은 신앙을 가졌다고 해서 그 악한 본성이 하루아침에 변하는 것이 아니며, 인격도야의 길은 평생해야한다는 교훈 정도랄까? 사실 타벨로인해 록펠러가 추악한 일면이 까발려지긴 했지만, 그가 사회에 끼친 영향는 평가절하 되서는 안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것은 록펠러를 옹호하기 위한 것은 아니고, 역사를 보는 눈은 어느 한쪽으로 경도 되어서는 안되며 통시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아주 선하지도 않지만, 아주 악하지도 않다.  

솔직히 기독교인의 직업 윤리로 봤을 때 나는 타벨이 평생 유지했던 그 자세가 더 맞다고 생각한다. 록펠러가 악착같이 돈을 벌어 사회에 환원하고 평생 기독교인으로 살았던 그것 보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여러가지 아쉬움 속에서도 이 책이 시사하는 바는 작지 않다고 본다. 세상에 지금까지 몰랐던,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이란 여인이 살다가 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는 있어 보인다.     

 

   

아이다 미너바 타벨(Ida Minerva Tarbell, 1857년 11월 5일 ~ 1944년 1월 6일)은 미국의 언론인으로 미국의 진보시대에 유력한 지도자였다. 그녀의 1904년 '스탠다드오일회사'라는 책이 가장 유명한데, 이는 뉴욕 타임즈 신문이 선정한 미국 20세기 저널리즘중 가장 중요한 100개의 보도에서 5번째로 뽑혔다. (위키 백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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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2-07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리포핀스님의 서재에 이 책 내용을 본 적이 있어서 좋았는데
타벨이 링컨과 나폴레옹에 대해서도 재조명했군요, 이 책 급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stella.K 2011-02-08 12:17   좋아요 0 | URL
그니까요. 록펠러에 비하면 링컨과 나폴레옹의 할애가
그다지 많지 않아 아쉬웠어요.
그녀가 어떻게 재조명했을지 좀 더 자세한 걸 알고 싶더라구요.
앞으로 타벨의 저작물이 번역되서 나올거라고 하는 것 같은데
이것도 기대해도 될지 모르겠네요.
그런데 이 평전을 밝혔다시피 뭔가 모르게 치우친감이 있어서
아쉬워요. 오타도 생각외로 많은 것 같구요.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라고 묻고 싶어진다능.
별점에 반개도 취급된다면 3개는 박하고 4개는 좀 많고
3개반이 적당할 것 같은 책이어요. 참고하시길.^^

카스피 2011-02-07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록펠러는 경쟁자를 무자비하게 제거하면서 기업을 인수 합병시켜서 대 재벌이 되었지요.석유 독점 재벌인 스탠다드 오일이 무너졌다고 했는데 수십개의 회사로 나뉘어지면서 그 지분 관계가 베일에 휩싸여 지금도 누가 실질적인 지배자인지 모른다고 하더군요.겉으로는 무너져 보이지만 결코 무너진것이 아니라는 거죠.

stella.K 2011-02-08 10:22   좋아요 0 | URL
기업인이 그래서 무서운거로군요.
이쯤되면 필요악이라고 말해야하나? 여튼.ㅋ
 
교실 밖 아이들 책으로 만나다 - 스물여덟 명의 아이들과 함께 쓴 희망교육에세이
고정원 지음 / 리더스가이드 / 2010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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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펼치기 전까지 만해도, 과연 책이 사람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 별반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나야 어렸을 때부터(또는 태어날 때부터) 극단적인 부자이거나 극단적인 불우한 형편은 아니었고, 딱 중간치의 삶을 살아왔던바 중간치의 삶을 살아온 사람이 늘 그렇듯 평범 그 이상도 그 이하의 삶도 아닌 삶을 유지하며 산다. 늘 책을 가까이 하려고 했고, 실제로 내 방 어디든 손만 뻗으면 책이 닿는 구조다. 그런 나의 삶이 모자라지도 부족하지도 않을진대 책이 좋으면 얼마나 좋고, 책이 나를 변화시켰다면 얼마나 변화시켰겠는가? 상처도 받아 본 사람만이 그 치유 방법을 안다고 했다. 물론 상처 안 받고 살아 온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만, 그렇게 책을 읽고 살아 온 나에게 과연 책이 얼마나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엔 주목해 보지 못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다시 기억 나는 건, 인생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본 사람들이 다시 그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과정 중 하나 같이 책을 읽는 것이었다는 한 말이 기억이 났다. 즉 건강을 잃고, 집이 쫄딱 망하고 책을 읽고 재기에 성공했단 말이다. 그만큼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책의 효용성과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것은 아마도 책이 지식과 지혜를 얻게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글쓴이의 공력과 영혼이 녹아져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러니 책을 읽지 않는다는 건 마음의 양식 더 나아가 보약을 싫다고 거부하는 것과 같은 거란 생각이 든다.

 소위 '문제아'라 지칭되는 아이들은 유년기와 청소년들에게서 이르는 말로 이들은 책도 안 읽을 것만 같다. 물론 실제로 그렇긴 하다. 하지만 이렇게 문제아는 책도 안 읽을 것이라고 지레 판단해 버리는 선입견은 아닐지? 생각해 보면, 그들만큼 책을 필요로하는 영혼이 또 있을까? 그런 아이들에게 우린 얼마나 책을 읽을 환경을 만들어주었으며, 한 번이라도 책을 읽어보라고 권한 적이 있던가? 부모와 교사들은 내신 관리와 대입에만 온통 집중이 되어있고, 혹시라도 내 아이가 문제아(들)과 함께 어울려 물들까봐 그들 곁엔 가지도 못하게 만든다. 내집 아이건, 남의 집 아이건 그 아이가 잘못된 길로 가면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어른이 모범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그러니 우리의 '문제아들'은 두 번 버림을 받는 것이다.

이제 책은 마음의 양식이니 영혼의 보약이니 하는 다소 고루하고 보수적인 차원을 뛰어넘어, 치료와 교육의 현장에서 아주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독서 치료'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일 것이다. 이 책은 소위 말하는 '문제아'(솔직히 이 단어가 그다지 써먹기엔 좋은 단어는 아닌성 싶다. 그맘 때 문제아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도 겉으로만 들어나지 않고 선 밖으로 벗어나지만 않았다뿐이지 알고 보면 나도 문제아는 문제아다. 쉽게말해 '경계성 문제아'쯤 되지 않을까?)를 저자가 책과 만나게 해 줬을 때 아이들에게 어떤 변화가 있어났는가를 쓴 일종의 보고서라고 볼 수 있다. 사실 문제아의 유형은 몇 가지로 나눌 수가 있다. 자살 미수, 결손 가정에서 자란 이이, 부모님으로부터의 마음의 상처를 받은 아이, 성적 수치심에 사로잡힌 아이, 학교를 거부하는 아이 등등. 그때마다 저자는 그에 맞는 책들을 선정 해 아이들과 함께 읽으며 토론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노력을 한다. 그 과정들을 읽으면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을까? 감탄이 절로 나지 않을 수가 없고, 정말 머리를 숙여 고맙다고 인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학교를 떠난 아이들에게 섣불리 책을 권하면 반발을 사기 쉽다. 일단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야 한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신뢰감이 생길 때, 책 읽기도 즐거운 만남의 일부라는 것을 서서히 일깨워 줘야 한다. 책을 활용한 여러 가지를 만들어 흥미를 유발하고, 어느 정도 관계가 형성된 후 책으로 본격적으로 들어가는 방법이 좋다.(22p)

책의 구성은, 각 아이들의 문제를 사례별로 나열하고 각 쳅터가 끝나는 마지막장에 사용된(?) 책들의 간단한 소개를 싣고 있다. 읽다보면 과연 저자가 이 책을 다 읽었을까?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하긴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 아이들을 치료하고 그 문제에서 나오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단 말인가? 

마침, 기회가 좋아서 나는 작년 12월에 저자 강연회도 다녀왔었다. 강연회는 상당히 편하고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진행이 됐는데, 주로 저자의 이제까지의 활동 상황을 듣는 방식이었다. 그것을 들으면서 한 가지 주목할만한 것은 저자는 학교에서 지역사회 전문가로 일 하면서 아이들을 어느 한 시기만 잠깐 만나고 만 것이 아니라, 1년에서 2년, 많게는 몇년을 두고(그 아이가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것을 보기까지 계속적으로) 지속적으로 만남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런 것을 볼 때 교육이란 결국 지속적인 관심이고 가슴으로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우리가 아는대로 우리나라 교육은 너무 주입식이며, 획일화 되어 있다. (대학을 제외하고라도) 정규 학교만 9년을 배우지만 인격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지식인 또는 어느 정도 교양을 갖춘 사람으로도 졸업하지 못하고 학교를 나온다. 대학을 졸업해도 자신이 뭘해야 하나 막연해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교육은 원래 그런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한 영혼을 올바로 키워내는 일인데, 그것이 나무 모판 찍어내듯 획일화된 교육을 받게 한다고 해서 될 일인가? 누군가는 말한다. 교육은 콩나물에 물주기와 같은 거라고. 잊어버릴만하면 또 가르쳐주고 또 가르쳐주고 그렇게 해서 키워내는 거라고. 맞는 얘기이긴 하다. 하지만 콩나물은 그렇게 해서 자란다. 하지만 사람은 별로 자라는 것 같지가 않다. 적어도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정말로 학교가 나를 이만큼 키워줬다고 고마워 하며 학교를 떠나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지겨운 학교 졸업하게 됐다고 오히려 쾌재를 부르는 아이가 더 많지 않을까? 

얼마 전, 인문고전을 읽을 필요성을 역설한 한 저자의 강연회를 다녀온 적이 있다. 원래 옛날 유럽식 교육은 가정 교사가 상주해있고 아이가 교과 내용을 이해할 때까지 가르쳤다고 한다. 물론 있는 집 자식들의 경우다. 하지만 그 아이가 이해할 때까지 가르쳤다는 점에선 상당히 고급한 형태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맞는 교육의 형태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원래 사람의 영혼이란 고귀하고 섬세한 것이 아니던가? 그것을 무조건 획일화된 학교 교육의 틀에 맞춰 두부모판에 찍어나온 두부마냥 가르칠려고하니 적응 못하는 사람은 '문제아'라고 치부될 수 밖엔 없다. 그들의 외침은 오히려 당연해 보이기도 하다. 결국 그들은, 나 좀 봐달라고, 나를 도와 달라고, 더 나아가 나에게 맞는 교육 좀 받게 해 달라고 온몸을 다해 외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저자의 강연회 때 나는 아주 우문 같은 질문을 했다. 내가 아는 어떤 교사는, 드물게는 매를 들어야 하는 아이들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방법이 아닌 정말 저자 같은 방법으로도 아이들은 변활 수 있다고 보는가? 그때 저자는 아주 조심스럽게(어찌보면 겸손하게) 그렇다고 보는 거라고 대답했다. 하긴, 물론 저자의 방법이 교육의 모든 것도 치료의 모든 것도 대변해 준다고는 할 수 없다지만, 어느 일정 부분 아이들이 제 길로 돌아서는 것을 보고 있지 않은가? 교육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인데 매로 아이들을 다스려보겠다는 것은 또 어찌보면 단기간내에 승부수를 보거나 그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교사를 대변해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실제로 저자는 학교에서 일하면서 교사가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그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지 안타깝게 생각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렇게 아이들이 변화되는 것을 보면 놀랍잖은가? 그렇지 않아도 저자는 정말 자신이 즐거워서 그 일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뉘라서 남의 집 아이를 그렇게 돌 볼 수 있을까 싶다. 

확실히 아이들을 학교 공부만 가지고는 안되는 부분들이 있다. 이렇게 저자 같이 지역사회전문가가 학교 곳곳에 배치가 되어서 아이들을 좀 더 세심하게 배려해 주는 뭔가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에 비해 이런 저자 같은 사람이 받는 대우는 터무니 없이 미약한 것이 또한 교육현실이기도 하다.

아울러 말하고 싶은 건, 책에 소개된 여러 사례의 아이들의 유형이 지금도 어디선가 외롭게 소외되어 있을 것이다. 그들을 혼자 두거나 그들끼리만의 집단을 형성해서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들도 어느 때가 되면 다른 건강하고 평범한 아이들과 섞여서 건강한 사회인으로 자라갔으면 좋겠다. 

저자에게 진정으로 가슴으로 울어난 박수를 쳐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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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1-21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제가 찜해놓고 있는 책이라서 리뷰도 관심있게 읽었습니다.
과연 교육이 지향해야할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근본적인 물음이 생깁니다. 변변한 지식없이 이런 근본적인 물음이 생기기 시작하면 참 대책없습니다만.

stella.K 2011-01-21 13:12   좋아요 0 | URL
작년에 몇 분의 작가 강연회를 다니면서 그분들 하나 같이
책은 별 것 아닌 것처럼 말하는데 좀 실망스럽더라구요.
심지어 작가 김훈 선생까지도.
뭐 나름 겸손하시느라 그러셨을지 모르겠지만 책도 사람의
목소리와 영혼이 묻어나는 건데 그게 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겠어요?
그러고 보면 자신들이 이 책을 세상에 내놓음으로서 져야할 어떠한 책이도
지고 싶지 않다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교육을 담당해야 하는 사람들은 할 수만 있다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재료로 하려고 하잖아요. 하물며 책이야...! 정말 책 만드는 사람들
잘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글치 않아도 h님은 관심 있어하실 줄 알았어요.^^

책가방 2011-01-21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대 초반에 <10대들의 쪽지>로 상담편지를 보내오는 아이들에게 답장을 보내는 봉사를 한 적이 있었답니다. 그때 갓 10대를 넘긴 제가 그들의 고민을, 그들의 문제를 읽고 상담해 줬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 그지 없네요.ㅋ
유일하게 해 줄 수 있는 게 책 추천을 해주거나 책의 내용을 인용해서 들려주었는 것 이었던 것 같네요.
그 아이들이 지금은 30대초중반을 살고 있을텐데... 과연 그때 나의 편지들이 도움이 되었을까 싶은 궁금증이 생긴답니다.
물론 지금은 같이 나이들어 가는 처지이긴 합니다만..ㅎㅎ

stella.K 2011-01-22 10:33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예전에 주일학교 교사를 한적이 있는데
지금은 걔네들이 아줌마, 아저씨들이 됐더라구요.
처음 만났을 땐 정말 앳됐는데 사람이 나이들면 다 비슷해지는 것
같더라구요.^^

cyrus 2011-01-21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육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을 가지지 않지만 문제아를 위한 독서치료,
참 좋은 방법인거 같아요. 그리고 학생들에게 세밀하면서 따뜻한 관심. 역시
중요한거 같습니다.

stella.K 2011-01-22 10:36   좋아요 0 | URL
이 책 읽으면서 내가 참 교사들에 대해 잘 몰랐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런 선생님도 있구나 싶은게 다시 보게 되더라구요.
저자는 정말 좋아서 그 일을 하는 것 같더라구요.
저도 사춘기 아이들과 함께 있어 봤지만 솔직히 걔네들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거든요. 물론 선입견이었지만.^^

양철나무꾼 2011-01-23 0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년,2년 아니면 몇년 정도 되면 삶의 한부분을 같이 사는 거라고 할 수 있죠~
아직까지도 이런 분들이 계셔서 참 다행이예요~^^

stella.K 2011-01-23 19:30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