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 팻, 비만과 집착의 문화인류학
돈 쿨릭.앤 메넬리 엮음, 김명희 옮김 / 소동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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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읽고 있으려니, 옛일이 생각이 났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교복을 맞추기 위해 종로 어디쯤에 위치한 M 교복점을 부모님과 함께 간적이 있다. 그 교복점이 좀 유명한 곳이라 언니에 이어 나도 그 교복점에서 만든 교복을 입게 되었다는데 은근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당시엔 있는 집 자식들이나 교복을 맞춰 입기도 했는데, 자수성가 하신 우리 아버지 나를 교복점에 데리고 가는 동안 마음이 바뀌어서 그냥 기성복으로 사자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셨다. 난 순간 마음이 좀 섭섭했지만, 물주는 아버지였던만큼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그런데 아뿔사! 막상 그 교복점을 갔더니 나에게 맞는 교복 완제품은 없었다. 주인인지, 종업원인지는 알 수 없지만 꼭 식당 주인처럼 생긴 아줌마가 줄자로 내 몸 여기저기를 재더니, "아유, 이 학생이 너무 뚱뚱해서 맞는 교복이 없어. 천상 맞춰야겠는 걸." 아, 그때 정말 어찌나 창피하던지. 그런데 더 싫었던 건, 그 말을 들어보라는 식으로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게 뭐 자랑거리라고 큰 소리로 떠든단 말인가? 오히려 손님의 치수에 맞는 교복을 구비해 놓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해 해야하는 거 아닌가?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내 몸이 날씬한 것마는 아니라는 건 인정하겠다. 그래도 비정상적이리만치 뚱뚱했던 것도 아닌데, 무슨 돼지 비계를 대하는 양 내몸을 아래 위로 훑는데 어찌나 기분이 나쁘건지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었다. 그럴 땐 우리 부모님이라도 나서서 나를 좀 옹호해 주고, 보호해 줘야할텐데 부모라고 인생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긴, 우리 부모님 그 상황에서 나를 변호해줘 봤자, 가재는 게 편, 고슴도치 부모란 소리 밖에 더 듣겠는가? 이렇게 뚱뚱하면 부모도 구재를 못해 준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그 아주머니의 장사수완이란 생각도 든다. 기성 보다 맞춤이 언제나 비쌌으니까 일정 치수 이상은 기성으로 만들지 않는 거지.  

폐일언하고, 그렇다면 심하게 뚱뚱하지도 않은 나를 뚱뚱녀로 만들었다면 뚱뚱한 것과 뚱뚱하지 않는 것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내 친구는 결혼 후 살이 엄청나게 많이 쪘다. 본래 결혼 전 나 보다 날씬했던 친군데, 살이 쪘으면 우울하거나 고민스러워 할 법도 한데 성격이 워낙 낙천적이어서 그런지 그다지 고민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친구의 딸이었다.  누가 자기 엄마더러 살쪘다고하면 그렇게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 엄마 살 안 쪘다며 오히려 마구 화를 내더라는 것이다. 거기엔 미묘한 심리 기제가 깔려 있다. 뚱뚱한 건 자기도 싫은데 그렇다고 뚱뚱한 자기 엄마를 나무랄 수도 없고. 그러니 차라리 부정해 버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매스컴, 의학계에서는 비만인 사람을 너무도 쉽게 단죄한다. 그리고 비만이 될 수 밖에 없는 여러 가지 요소들을 잘도 찾아내 굉장히 그럴듯하게 설명한다. 물론 그들의 말이 틀리지마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그것을 확대 재생산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전세계적으로 다이어트 산업만 해도 족히 조 단위의 가치를 육박한다. 그래도 길거리엔 살찐 사람으로 넘쳐난다. 거기엔 뭔가의 커넥션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한번쯤 의심해 볼만도 하다. 

그런데 다이어트만 성공하면 만사 다 좋을 것 같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나는 다이어트에서 꼭 짚고 넘어가게 되는 요요현상만을 부작용으로 얘기하고 싶지 않다. 문제는 그것의 반대급부인 거식증이나 뼈만 앙상하게 남은 말라깽이를 말하고 싶다. 다이어트가 주로 강조하는 것이 건강과 날씬한 몸매일진데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고, 이것이 낳은 현상은 극단적인 비만 아니면 과도한 다이어트 또는 거식증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또한 다이어트에 성공했다고 해서 다 좋아진 것은 아닐 텐데도 매스컴은 성공에만 지나치게 집착해서 보여주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그럴수록, 살, 지방, 비만이란 단어는 점점 더 혐오해야 할 대상으로 취급된다. 

본서는 바로 이 '비만'을 우리가 언제까지 혐오만 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라고 할 수 있을 같다. 책을보면, 내가 앞에서 제기한 '비만'의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 또한 모든 나라, 모든 사람이 다 비만을 혐오하거나 적대시하는 것만은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문화적 차이이기도 한데, 인식이 우리와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이 아닌 것처럼, 다른 것을 인정하면 그것을 보는 잣대가 새로워진다. 비만 역시 이 지구상 어디에서는 오히려 좋은 것으로 인정하는 곳이 있다. 그러고 보면 비만은 더 이상 혐오의 대상이 아니다.   

특히 이 책은 내가 정말 비만을 좁은 시각에서만 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우치쳐 주기도 했는데, 그것은 아무래도 5장에서 다룬 '뚱보 포르노'와 13장에서 다룬 '살찐 게이 애호가'를 보면서 이기도 하다.  좀 충격적인 것도 사실이지만, 사실 '살찐'이라든지, '포르노'나 '게이'란 말이 그다지 긍정적인 이미지로 와 닿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만이 과연 심미안의 대상으로 다루어질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책에서는 나의 인식이 깨진 것이다.  또한, 11장에선 '지방이영양증'이란 희귀병에 걸린 사람에 대한 예를 보여주는데, 그토록 혐오하는 지방이 없거나 이상이 생겼을 때 어떤 증상이 일어나는가를 보여줌으로 해서 지방이 우리 몸에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하는지를 보여 주기도 한다. 그러니 지방을 너무 구박할 일도 아니다. 세상에 필요없이 존재하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문제는 너무 부족하거나 과도한 것이 문제지. 

이책은 비만을 정의하기 위해 씌여진 책 같지는 않아 보인다. 오히려 비교의 대상으로 비만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서술해 나간 것으로 보인다. 사실 '비만'에 대한 우리의 편견은 상상을 초월한다. 뚱뚱한 사람은 미련하고, 답답하며, 매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사실이다. 심하면 '돼지(비계)'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도 인격이 있고, 인권이 있다. 실제로 그런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단체가 생기기도 했다. 일명 비만인권선언을 하고 '매우 뚱뚱하고 짜증난'이란 단체가 그것이다. 물론 우리나라가 아니고 미국이다. 우리나라에도 찾아보면 이와 비슷한 단체가 있지 않을까? 

고백컨대 나 자신 그다지 날씬한 것도 아니면서 비만에 대해 그다지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본 것도 사실이다(나의 이런 생각에도 다분히 이중성은 있어 보인다). 이 책에서 보여진 것들이 사실이라면 더 이상 억울하게 비만에게 덧 씌워진 부정적인 인상을 거둬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물론 이책 한 권이 비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꿀 수 있을지 의문이긴 하다.  솔직히 난 이책을 보면서 나 자신 자유로워졌다거나 상쾌해진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이책이 당장에 긍정적인 시각을 요구하기 보다 이런 시각도 있다고 완곡하면서도 객관적인 시도를 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이책은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여진다. 

이책을 읽을 때 전제가 되는 말이 있다. 비록 미국의 예이기는 하지만 서문에 이런 말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방 소비와 함께 라이트' 또는 '저지방'식품의 소비가 증가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사람들은 지방을 더 많이 섭취하면서 한편으로는 기름진 음식을 먹는데 대한 죄책감을 줄이려고 저지방 식품을 사 먹는다.(12p)'  이다. 이책은 무수히도 많이 쏟아져 나오는 무엇이 건강하게 먹는 것이냐, 무엇이 건강한 삶이냐를 말하고 있지 않다. 이책을 읽고나면 건강한 삶에 대한 정답은 없어 보인다. 그냥 나에게 맡는 가치관과 라이프 스타일만 존재해 보인다. 그래도 이책을 보면, 이제까지의 내 생각이 반드시 옳은 것마는 아니라는 걸 증명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런 점에서 수 십년 전 나에게 교복을 맞추게 만들었던 그 교복점 아줌마에게 할 수만 있으면 지금이라도 반성을 촉구하고 싶다. 교복점 아줌마는 반성하라, 반성하라, 반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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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1-07-01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요! 교복점 아줌마는 반성하라,반성하라,반성하라!

키스 앤 크라이를 보면서 박정금이 스케이트를 정말 멋지게 지치는걸 엄마랑 같이 봤습니다~
잘한다 멋지다~~ 칭찬해주셔놓고도 결국엔 한말씀 하시더군요~ 날씬해도 다 소용없어, 노처녀잖어! 넌 뚱뚱한 노처녀잖어!!! 이러면서 째려보시더군요-.ㅡ; 전 대충 기냥 살만한데..뚱뚱해도요~노처녀도요~ ^^;

stella.K 2011-07-02 12:54   좋아요 0 | URL
ㅎㅎ 아마 모르긴 해도 그 교복점 없어졌을 거예요.
그때 그 아줌마도 지금은 할머니되서 은퇴했을지 모르구요.
그러게 말입니다. 뚱뚱해도 급수가 있는데 지나치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ㅜ
이책 나름 재밌게 읽어서 성의있게 리뷰 쓸려고 했는데
추천이 저조하군요. 하긴, 제가 요즘 컨디션이 안 좋아 써놓고도
만족스럽진 않네요. 전 리뷰를 그렇게 써도 어떻게 쓰면 추천이
많이 붙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요.ㅠ
 
사춘기 국어 교과서 - 생각을 키워 주는 10대들의 국어책
김보일.고흥준 지음, 마정원 그림 / 작은숲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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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우리나라 말이 많이 가벼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털까? 적어도 내가 그걸 인식한 때는 블로그를 하면서 였던 것 같다. 갖가지 이모티콘을 비록해서, 이상한 종결 어미, 뭔지도 모를 은어들이 난무하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도 처음엔 어색하고, 이런 걸 꼭 써야하는 걸까, 회의도 들었다. 물론 싫으면 안 쓰면 그만이겠지만 그럼 괜히 나이든 거 티네는 것 같기도 하고, 결국 뭐하면서 닮는다고, 나도 어느 새 조금씩 그것들에 물들기 시작했다.  

또한 그것이 꼭 아니더라도 옛날엔 듣도 보도 못한 말들이 마구 쏟아지고 있다. 그것을 무엇으로 막겠는가. 그것이 표준어인지, 외래어인지, 외국어인지 분별하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확실히 언어도 진화하는구나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우리는 언어를 때에 맞고 뜻에 맞게 잘 알고 있는 것일까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어떤 주제건 그것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 쓰기로 유명한 김보일 선생님이 고흥준 선생과 공저로 또 한 권의 책을 냈다. 두 분이 다 교사이시고, 책을 내셔도 일관되게 청소년을 위한 책을 내오신 것을 보면, 이분들 청소년을 사랑하셔도 보통 사랑하시는 분이 아니신 것 같다. 이번에 낸 책도 거기서 조금도 비껴 나가질 않는다. 부제가 '생각을 키워 주는 10대들의 국어책'이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꼭 10대 아이들만 읽어야 하는 책이냐면 그렇지도 않다. 때로는 나 같은 성인이 읽기에도 편하다.  너무 평이하게 써져서 자칫 약간은 지루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어떤 부분은 이미 알고 있는 걸 나는 글로 정리만 안 했을 뿐, 두 분들은 잘 풀이하고, 잘 정리했다는 점에서 그냥 넘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도 한다.  

하지만 초두에도 이미 밝혔다시피, 우리는 지금 난립하는 언어의 홍수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런 속에서 우리 언어 습관에 대해 다시 한 번 재정립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내가 꼭 청소년이 아니어도, 혹은 집안에 청소년이 없어도 이런 책 한 번쯤 읽어주는 것도 좋은 것 같다. 물론 성인을 위한 국어책이 찾어보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청소년이든, 성인이든 그런 책 한 번 읽기가 쉽지는 않아 보인다. 예전엔, 국어 사랑, 나라 사랑이란 표어가 있을 정도로 국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지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워낙에 밀려드는 갖가지 언어의 홍수속에 과거에 그런 표어가 있었는지도 기억에 희미하다. 요즘엔 예쁜 우리 말 놔두고 오히려 이상한 은어를 구사하면 대접 받는 그런 사회속에 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속에서 살고 있는 듯도 하다. 어른들은 어른대로 그런 말 잘 쓰면 젊어지는 느낌이고.  

하지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언어를 똑바로 구사할 수 없는데, 그 사람의 생각인들 올바를 수 있을까? 때와 장소에 맞는 언어를 사용하라고 하는데, 맨 은어 같은 용어만 사용하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가면 때와 장소에 맞는 언어를 사용할 수 있을까? 언어는 사고를 담는 그릇이며 그 사람이 쓰는 언어의 수준이 그 사람을 결정한다고 했다.  그렇게 자신의 언어 습관을 점검하지 않고 오히려 올바른 언어를 쓰는 사람을 구태의연하다고 매도한다면 그 사람의 언어 체계가 얼마나 잘못되어 있을까, 의심해 보야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난 일반적으로, 이렇게 언어에 대해 아무 생각없이 쓰는 사람에 대해 이렇게 비판적으로 쓰며 이 책을 읽어 보라고 말하겠지만, 이 책의 두 저자는 그렇지 않다. 그런 사람들에 대해 비판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어 보인다. 그런 사회, 그런 풍조 때문에 쓴 것 같긴 하지만, 무조건 비판만하며 그에 대한 대안으로 이 책을 보라고 하기보다, 사람으로 하여금 왜 그럴까? 이런 말은 왜 생겨 났을까? 특히 언어와 인식의 문제를 상당히 꼼꼼하면서도 쉽게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언어가 얼마나 우리가 알게 모르게 정치나 사회 전반에 흘러 들어가 사람의 인식을 교란시키며, 변화시켜 놓는지를 흥미롭게 풀어 놓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꼭 사춘기 청소년만 읽어야할 책은 아니다. 물론 언어 사춘기 이전에 체계를 잡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알게 모르게 새로 생성된 언어와 오염 정도를 생각해 볼 때, 우리나라 말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우리말을 잘 사용하게 되길 바라는 사람이라면 읽어 볼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내내 잘 사용했던 말도 내가 잘 사용하고 있는 거야, 의심할 때도 많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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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6-28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른들도 이 책 읽어야한다고 생각되요. 대한민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말을 제대로 아는 사림이 잘 없으니까요,, ^^;;

stella.K 2011-06-28 09:56   좋아요 0 | URL
맞아요. 봐야되요.
우리말 너무 많이 오염되어 있어요.^^

숲노래 2012-01-06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른들은 좋은 책을
잘 안 읽는 듯해요
^^;;;;;
 
[지혜로 지은 집 한국 건축]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지혜로 지은 집, 한국 건축 - 우리 건축의 구조와 과학을 읽다
김도경 지음 / 현암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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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느끼는 거지만, 우리나라의 옛 건축물들은 웅장하거나 화려하지는 않다. 항상 단아하고 조용한느낌이어서, 한번 척 봐서 좋다, 나쁘다를 말할 수 없다. 그저 오래도록 천천히 관찰하고 느껴봐야 그것이 얼마나 기품있고, 멋있으며, 과학적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알테면 알아 봐. 나 여기 있어. 라고 말하는 게 우리나라의 건축은 아닌가 싶다.   

또 그것이 어찌보면 우리나라 사람의 정서하고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원래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놓고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지는 않지 않던가? 그저 남이 알아주면 좋은 거고, 몰라줘도 원망할 줄 모르는 사람이 우리나라 사람이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사람이 소위 말하는 끝발이 없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은근한 카리스마가 있는 민족이 아닌가? 그런 민족의 정서는 곳곳에 베어있어 우리나라 건축물도 예외는 아닌 성 싶다.  솔직히 광화문이나 경복궁을 보라. 그것이 단숨에 사람을 사로잡을만한 위용이 있는지?  하긴, 그도 모를 일이긴 하다. 옛날엔 그 건물을 크게 봤을지 누가 아는가? 하지만 그 건축물이 지어졌을 당시로 돌아가도 사람들은 그 건물을 크다지 크게 봤을 것 같지는 않다. 정말 애써 돋보기를 대고 보듯 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현대식 건물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그런데 여기 그것을 알 수 있을만한 꼼꼼한 안내서가 나왔다. 총 7개의 쳅터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쳅터마다 3개내지 4개의 소제목으로 분류에 도판과 함께 꼼꼼한 설명을 더했다. 읽다보면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많아 생소한 느낌을 가질수도 있다. 아니, 차라리 좌절감을 맛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사극을 그렇게 많이 봐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극에 나온 배우에 대해 떠들줄만 알았지 도무지 그 나머지에 대해선 관심을 가질 줄 몰랐다는 자책을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너무 자책하진 말기를. 어차피 자기 전문 분야만이라도 잘 하는 것도 애국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거야 이렇게 책으로 읽고 교양을 쌓을수도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 건물이 그저 사람의 몸이 거하기 위해서만 있지 않고, 거기에 우주 삼라만상의 원리를 담아 짓고, 거기에 인간이 거할 것을 생각했다는 점에서 확실히 오늘 날의 건축 정신과는 차이가 많이 난다는 것을 알게된 것만으로 나는 이 책이 충분히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의 백과사전적 글에 경의는 표하지만, 너무 건조한 느낌이 들어 끝까지 읽기엔 다소 버거운 감이 들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쉬운 문체로 풀어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남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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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 - 종교를 보는 새로운 시각, 심층종교에 대한 두 종교학자의 대담
오강남.성해영 지음 / 북성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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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읽으며서 밑줄을 긋지 않는 페이지가 거의 없을 정도로 그렇게 읽었다. 그만큼 공감도 하고, 마음은 후련하며, 정신은 점점 맑아자는 느낌이었다.   

요즘 부쩍 많이 느끼는 거지만, 무지 자체가 문제가 되는 건 아니겠다 싶다. 무지야 깨치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조금 알게된 것이 더 큰 문제다. 조금 알면 더 이상의 넓이와 깊이로 나가지 않으며, 그 조금 알게된 것 가지고 아는 척을 한다. 그래서 문제다. 그래서 또한 인간은 편견의 존재다. 요즘 나는, 내가 얼마나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존잰지 깨달을 때마다, 내가 나한테 속고 있다는 걸 절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역시 그런 나와 자주 자주 마주치곤 했다.  

솔직히 이 책은 나에게 있어서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오강남. 그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다.  그가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라는 건 알겠는데, 예전부터 그가 펴낸 책들의 제목이 꽤나 도발적이고 수상한 느낌이었다.  난 그렇게 처음부터 깨끗한 느낌을 갖지 못하는 책들은 아예 마음을 두지 않았다. 괜히 복잡하고 흔들릴 것 같아 싫었던 것이다. 교회 어느 목사가 그의 책을 언급했다면 사 볼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도 아니고. 이게 아니어도 난 관심을 가져야할 분야도 많고, 읽을 책도 많은데 뭐 이런에 까지 마음을 두나 생각을 덮어갔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읽고난 지금, 진작에 알지 못했던 것이 아쉬울 정도다.  

책은 오강남, 성해영이란 두 종교학자가 간의 대담집이다. 무엇보다 성해영 씨는 오강남 교수의 제자였다고 한다. 잘 키운 제자 하나 열 제자 부럽지 않다고, 오강남 교수 시종 대담에 임하면서 흐뭇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언뜻 스치기도 했다.  

그들은 먼저 표층종교가 무엇이고, 심층종교가 무엇인지를 밝히고 들어간다. 나중에 책을  보면 알겠지만, 한마디로 표층종교는 이제까지 우리가 종교를 갖는 표면적인 이유들, 이를테면 병고침 받고, 잘 살고, 마음에 평안을 얻는 등의 기복적인 류의 것을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그러나 심층종교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좀 더 깊이있게, 신의 뜻을 알고, 나와 우주삼라만상의 깊은 뜻을 알게되고 그래서 깨달음을 얻는 그런 것이라고 하면 맞는 얘기일 것이다.  

그런데 읽다보니, 우리나라 타종교는 몰라도 기독교는 이 두 사람이 말하는 표층종교 그것에서 어쩌면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을까? 놀라울 지경이었다. 더구나 내가 다녔던 학교는  정통 보수 신학을 가르쳤던 학교로서, 그맘도 20 몇년 전을 헤아린다. 나는 그때 배우기를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은 이단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어쨌든 보수 신학 계열에서는 환영 받지 못하는 분야였다. 또한 여성신학은 태동기였거나, 아직 태동하기도 전이었다. 그러니 신학이란 학문을 넓은 시야에서 바라보기는 쉽지 않았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 또는 여성신학이 생길 수 밖에 없는 배경을 알게 되었을 때, 어쩌면 내가 배웠던 신학은 서양의 백인 신학은 아니었을까, 의심스럽기도 했다. 지금은 이런 분야의 신학을 어떻게 강의하고 있을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학문도 시대마다 그 조류를 달리하는 것처럼, 신학도 그렇지 않을까? 지금은 이들 분야을 조금이라도 우호적으로 가르치고, 배우지 않을까?  

아무튼 왜 한국의 기독교는 표층종교, 그 이상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까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현재 다니고 있는 교회도 보수적인 교회이고 보면,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은 공부할 필요가 없는, 아니 하면 안 되는 분야로 치부되었고, 타종교에 대해서도 배타적인 태도를 취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기독교는 유일신을 섬기는 종교다. 그러다 보니 열혈 신도는 그 도를 넘어서 오히려 타종교를 핍박하는 것이 자기의 신앙에 대한 열정을 보이는 것처럼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믿는 종교가 받는 것은 핍박이고, 내가 타종교를 핍박하면 그건 충성인 줄 착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기독교만 있어 온 것은 아니다. 조금씩 차이와 양상은 달라도 종교는 이러면서 그 명맥을 이어오고, 공존해 오지 않았을까? 

무엇보다 교회가 이럴수밖에 없는 건 꼭 유일신을 섬기는 그 정통 때문마는 아닐 것이다. 교회 역시도 보면, 형태는 조금씩 변해갔을지 몰라도 그 근본은 발전시키지 못했다. 난 그것이 신도들의 관리와 커뮤니케이션의 한도를 정하는 문제 때문은 아니었을까란 생각도 해 본다. 이것은 옳고, 저것은 틀렸다는 것은 미리 정하므로 신도의 누수를 막고, 교회는 그야말로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오는만큼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누릴 수 있는 포괄적인 은혜가 무엇인가를 상정하다 보니 기복, 즉 표층의 수준에서 머물렀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다 보니 성직자들의 타성과 나타함 역시 이에 한몫을 했을 것이다. 이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건, 선교와 불우이웃 돕기 정도가 전부다. 그것도 좋은 눈으로 보면 좋은 것이긴 하지만, 그것만이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는 아니다. 

교회에서 젊은이들이 떠나가고 있다. 신성한 절대권력 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교회가 부동산 매매에 들어간다. 교회가 더 이상 사람의 삶에 어떠한 선한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한창 배고픈 시절에 교회를 알았던 사람만이 교회의 그루터기로 남아 있다. 이 공동화 현상을 무엇으로 메울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맴돌았던 생각들이다. 

이제 교회가, 아니 종교가 사람의 생애 전반을 한층 성숙시키는 쪽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간의 전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인간 전쟁의 거의 대부분은 종교 전쟁이라고 한다. 엄밀히 말하면 종교우월주의와 아직도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들의 믿는 신의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성해영 씨는 말한다. 만약 종교가 갈등과 반목을 조장해 우리 삶을 망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더 힘있게 삶을 꾸릴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라면 인간의 행복에 꼭 필요한 것(174p) 이라고.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 수 없고, 여전히 전쟁 같은 위협으로 사람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게 무슨 종교라 말할 수 있겠는가?  자기네들이 믿는 종교가 그토록이나 귀하고, 선한 것이라고 믿는다면, 이젠 그것의 깊이와 넓이를 가르치고 인간 삶의 지평을 넓혀 가도록 해 주어야 하지 않는가?   

'한 가지만 아는 것은  아무 것도 모르는 것과 같다'고 말했던 사람은 독일의 시성 괴테가 한 말이다. 내가 이 책을 읽는 것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과 같은 거라고 말했던 건, 바로 이런 의미다. 나의 뿌리는 여전히 기독교인채, 특정한 종교적 교리에 얽매이지 않고 인간의 내재되어 있는 가능성을 찾아가는 과정(214p), 이것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람이 바로 이 책에 나오는 두 대담자 때문에 하는 말이었다. 그것은 아직 교회가 해 줄 수 없는 부분이기에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을 말할 때 종교없이 말할 수 없고, 종교를 말할 때 역시 인간을 따로 떼어놓고 말할 수 없다. 21세기를 전망할 때 그 어느 때보다 종교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오늘날과 같은 물질만능주의에 종교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느냐고 말하지 말자. 오히려 물질과 과학만능주의의 시대 일수록,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그때 종교가 대안이 될수없다면 그 종교는 반드시 도태될 것이다.    

이 책은 정말 책상 책꽂이에 꽂아두고 수시로 보고 싶은 책이다. 그리고 내가 당장 종교학을 정식으로 공부하지 않더라도, 이 책 뒤에 나와있는 부록의 읽을 거리를 참조하면서, 표층종교인에서 심층종교로의 이행을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강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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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1-06-08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세상엔 읽어야할 책도 읽고 싶은 책도 너무 많아요.
그래서 허둥대거나 게을러지거나 그렇게 된다고 했던가요, 김현 선생이요.
오늘저녁 라디오에서 정은아씨의 멘트였어요.

종교가 갈등과 반목이 씨앗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더 힘있게 살게 해주는 의미로
작용한다면 정말 더할 나위 없겠어요. 저도 기독교 세례는 받았지만 불충한 신자랍니다.

stella.K 2011-06-09 11:00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전 요즘 버나드 쇼의 말이 너무 실감나요.
갈팡질팡하다 이럴 줄 알았다고, 이러다 아무 것도 못하고 천국 가지 않을까
생각해요.ㅋㅋ
오강남의 책들은 지금이라도 정말 읽어보고 싶더군요.
근데 잘 지내고 있는 거죠?^^

꼬마요정 2011-06-09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종교는 있으면 좋다고 생각한답니다. 마음이 너무 어지럽고 힘든 시절에 도움도 많이 받았구요.. 살면서 반성하게 만들고, 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노력하게 해 주니까요~^^

stella.K 2011-06-09 11:0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이제 종교는 인생 전반, 죽음까지도 포용하고
이해하는 쪽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책 꼭 읽어 보세요.^^
 
하정우, 느낌 있다
하정우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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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가끔 물건에 비유하는 경우가 있다. 뭔가 하나에 반짝이는 재주를 보이면 "핫, 요것 물건인데...!" 한다. 그렇게 말하는 건, 그만큼 가능성 있어 보인다는 뜻이고, 느낌이 좋다는 말도 될 것이다.   

하정우의 나이를 보거나, 영화 경력으로 보거나, 그를 두고 이렇게 말하는 건 이제 그에 대한 예의는 아닌 성 싶다. 그는 이미 <추격자>를 비롯해 몇몇 작품에서 확실한 그의 존재감을 각인시켜 주고 있다. 솔직히 <추격자>를 유쾌한 마음으로 봐 주기란 힘이 든다. 배우가 왕자 같은 역만 맡으려 해서도 안되겠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가 지영민 같은 역을 맡는다는 건 솔직히 보는 입장에선 내키지는 않는다. 영화 '추격자'를 볼 즈음, 나는 하정우에 대해 뭔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멋진 하루>나 <국가대표>에서의 그를 보는 건 얼마나 즐겁고, 유쾌했던? 그런데 <추격자>에서 걸렸다. 왜 하필 이런 역을...? 희대의 살인마라는 점에서 나쁘기도 하지만, 힘들기도 했을 것이다.  

지금은 전혀 관심도, 흥미도 없어졌지만 한때 시나리오를 (잠깐) 공부하고, 아직도 그 망령을 떨쳐버리지 못했나 보다. 유명 연예인이 책을 썼다고 해서 무조건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데, 하정우가 책을 썼다고 하니 관심이 갔다. 이 사람이라면 뭔가 할 얘기가 있을 것 같고, 곱씹어 들을만한 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한마디로 이런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하정우에 대해 알려면 꼭 그의 그림을 알아야 한다.  그의 미술에 대한 관심은 선배인 고현정에 의해 시작이 되었고,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추격자>를 찍을 때부터였다고 한다. 하루 종일 연쇄살인범 지영민을 연기하다 보면 마음이 맑아지지 않았고, 쉽게 쉴 수가 없었다고 한다. 쉬기 위해 억지로 잠을 청하는 대신 그림을 그리자고 했고, 그것은 의외로 효과가 좋아 그때부터 쉬는 때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럴까? 이 책엔 그가 그림 그림 60점이 소개되어 있으며, 그가 좋아하는 화가에 대한 해설이 들어있다. 나 개인적으론 그의 화풍을 딱히 좋다고는 말할 수는 없는데, 보면 상당히 공들여서 열심히 그린 흔적을 느낄 수가 있고,  그 실력이 웬만한 화가 못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김흥수 화백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놀라운 건 이 모든 것이  독학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그는 직업란에도 당당히 화가라고 쓴다고 한다(물론 직업란에 화가라고 쓰게 된 배경이 좀 특이하긴 하지만).  

하정우의 문체는 소탈하고, 진솔하고,  조근조근하다. 그리고 그것은 의외로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다. 그리고 때론 뭔가의 카리스마가 느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척'하지 않고, 긍정적인 그의 인생관이 매력적이다. 집안이 기울지만 않았어도, 그는 미국 연수를 무사히 마쳤을 것이고, 좀 더 기량이 뛰어난 배우가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갔던 길을 다시 돌아와야 했을 때, 그는 언젠가 다시 가게될 거라고 열심히 꿈을 꿨고, 마침내 그꿈을 이뤘다. 그리고 지금의 여려움이 자신의 연기 인생에 자양분이 될 거라고 믿었다고 했다. 그런 긍정적인 인생관이 있었기에 그는 오늘도 찬찬히 벽돌을 쌓아가듯 자신의 인생의 집을 짓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연기관이나 연애관도 참 확고하고 남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보면 그의 시나리오를 볼 수가 있는데, 웬만한 수험생 참고서를 방불케 한다. 어쩌면 그리도 밑줄이 많이 거져있으며, 메모가 빽빽히 들어 차 있는 것인지. 그의 연기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란 걸 알 수가 있다. 그러면서 배우가 무슨 무당이냐고 반문한다. 빙의가 되고, 필을 받게......(AN ACTOR 01에 나온 말이다)라고 반문한다.  그의 연기는 오로지 공부-연습-조율을 거쳐 철저히 계산된 연기고, 철학이라고 한다. 그러니 그 말이 얼마나 똥폼 잡고 하는 거짓말인지 알 것 같기도 하다.    

특히, 사랑을 용기가 없어 하지 못하거나, 너무 계산된 만남만 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AN ACTOR 08(206P~ )을 읽어봐 주면 좋겠다. "사랑해."라고 조근거리며 하는 말 속에, 얼마나 많은 거짓이 숨어 있는지, 그 말속엔 얼마나 많은 모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인지, 그렇게 오가닉 라이프를 부르짖으면서 왜 사랑은 오가닉하지 못한 것인지, 무릎을 칠만큼 구구절절 옳은 말을 하고 있다. "내 손가락이 저 사람의 손가락에 살짝 닿았으면 좋겠다."라고 한 그의 말이 좋다.  

또 때론, 그가 친구에 대해, 우정에 대해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가 느껴진다. 친하게 지냈던 친구나 지인도 어느 때가 되면 멀어진다. 내가 그들을 멀리하는 건지, 그들이 나를 멀리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럴 때 변함없이 부를 수 있고, 추억을 서슴없이 떠올릴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건 얼마나 복된 일인가? 그래서 하정우가 부럽기도 하다. 

그밖에도 그가 좋아하는 음악, 좋아하는 배우, 거듭해서 보게 만드는 영화, 그의 하루가 마치 라디오 DJ가 조근대며 말하는 것처럼 씌여져 있다. 확실히 내가 기존에 봐왔던 에세이와는 좀 다른 느낌이다. 뭐랄까? 모던하고, 심풀한 느낌이다.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편집도 마음에 든다.  

나는 가끔 연기를 잘하는 배우를 보면, 그를 지켜볼 수 있는 관객이나 시청자에게는 굉장한 선물이라는 생각을 이즈음 해 보게 된다. 사람만큼 탁월한 예술품은 없다고 했는데, 자신을 고도로 훈련시킨 예술품을 보는 건데 어찌 최고의 선물이라 말하지 않겠는가.  

나는, 이 배우가 참 믿음직스럽다. 그의 행보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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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1-05-30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원래 그림을 그렸던 사람이 아니란 거지요? 우와 추격자 찍을 때부터 그림을 그린 것이라니 정말 대단나네요

stella.K 2011-05-30 11:52   좋아요 0 | URL
참 열심히 사는 사람 같아서 보기가 좋아요.
하늘바람님도 기회되시면 읽어 보세요.
후회 안하실 거예요.^^

cyrus 2011-05-30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남자,, 같은 남자로써 잘 멋지다고 생각하면서 은근히 질투심을 유발하는,, ㅎㅎ;;

stella.K 2011-05-30 11:53   좋아요 0 | URL
ㅎㅎ 그래도 하정우 최근에 수염을 길러서
지저분하고, 영감같아졌어요.
그게 아니면 진짜 훈남인데...ㅋㅋ
시루스님도 훈남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