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 - 절망의 섬에 새긴 유배객들의 삶과 예술
이종묵.안대회 지음, 이한구 사진 / 북스코프(아카넷)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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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리안치. 조선시대 죄인에게 내리는 형벌 가운데 하나로, 유배를 보내 죄인이 살던 집을 가시엉겅퀴로 둘러치고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는 것을 형벌이라고 한다. 그의 집엔 조그만 개구멍이 있어 그 구멍으로 먹을 것을 넣어준다고 한다. 지금도 교도소에선 가끔 문제를 일으킨 죄수들을 독방에서 지내도록 한다는데 그것과 비슷해 보인다.  

인위적으로 사람과의 접촉을 막는다. 말이 쉽지 그것이 얼마나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아도 궁금하긴 했다. 지금은 없어진 형벌이긴 하지만, 죄인이 유배되고나면 어떤 삶을 살았던걸까 궁금했다. 특히 조선시대 걸출한 정치가, 세도가들이 당쟁의 소용돌이속에 유배를 떠났다. 얼마나 억울하고 분했을까? 사극을 보면 그렇게도 깔끔하고 준엄한 자세를 흩트리지 않았던 사람이 머리를 산발을 하고 백의를 입고 소가 끄는 목창에 갇혀 유배를 떠나는 것을 보면 그의 앞으로의 삶이 어떨지 알 것도 같다.  

하지만 책은 그들의 삶을 그렇게 불행하만 다루지 않고 있다. 비록 그들이 유배되기 이전엔 나름 안락한 삶을 누렸겠지만, 유배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형편없는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다. 물론 옹색하긴 했겠지. 하지만 역시 사람은 어디든 적응하기 마련이란 걸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래 전 읽은 빅터 프랑클의 <죽음의 소용소>에서를 떠올렸다. 우리가 알다시피 그책은 사람은 어떤 상황이나 환경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위대하게 묘파해 낸 책이다. 그리고 이책에 소개된 우리 선조들은 이것을 아주 오래 전에 가볍게 증명해 낸 것은 아닐까 싶었다.  

특히 이 책을 꾸민 두 명의 저자들은 우리 나라 대표적인 섬들을 조명하고 있다. 제주도는 물론이고, 위도와 흑산도, 진도나 백령도 등. 물론 그 섬들은 오늘날 천혜의 자연경관으로 꼽혀 관광자원으로 그 몫을 톡톡히 하고 있지만, 그 옛날은 말그대로 절해고도 였다. 과연 우리나라 한양의 양반님네들 그런 곳에 사람이 살았을까를 한번쯤 생각하고 살았을까? 아마도 공무가 바빠 그렇게 많이 생각해 보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세상은 좁고 또 좁게 보이기 마련이다. 누구도 모함을 받고 나락으로 떨어지고 유배(혹은 좌천)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묘하게도 사람은 나락으로 떨어진 바로 그곳에서 더 넓은 세상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비근한 예로, 조선중기 을사사화와 양재역 벽서 사건으로 진도에 유배되었던 노수신은 귀양을 와서도 침울하게 지내지 않고 계획적으로 일과를 짜서 공부하고 산책도 하며 즐겁게 지냈다고 한다. 그는 그렇게 살면서 <귀양지의 네 가지 맛>이라는 시를 썼는데 그 내용은, '맑은 새벽에 머리를 빗는 맛, 늦게 아침을 먹고 천천히 산보하는 맛, 환한 창가에 앉아 햇볕을 쪼이는 맛, 등불을 밝히고 책을 읽는 맛'이 귀양지의 네 가지 맛이라며 유배지의 한가로움을 노래하기도 했다(154p)고 한다.  

더구나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은 우리나라의 천혜의 자연 경관은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그것은 상처 받았던 심신을 치료하는데 더 없는 선물이었을 것이다. 이것을 유배 당하지 않고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비록 책에 언급되어있지는 않지만 그들은 유배된 죄인의 신분이니 그곳에 사는 사람의 업신여김을 어느만큼은 감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고 보면 그런 보이지 않은 선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없어지지 않았을까?  

물론 유배를 떠난 사람이 하나 같이 성공적으로 유배의 기간을 보내고 복귀해 한층 성숙한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닐 것이다. 저자는 유배란 특별한 기간을 보내고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을 선별해 내 책을 꾸몄을 것이다. 교동도에서 유배의 기간을 보냈던 연산이나 광해군의 삶은 불행했다. 예술은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라고 한다. 그래서 도스토옙스키는 <죄와 벌>이란 역작을 낼 수 있었고, 김만중은 유배기간 중 <사시남정기>,<구운몽>, <서포만필>을 탄생시킬 수가 있었다.  

그러고 보면 고통의 기간을 감내하지 않은 인간은 없으며, 그것을 통과하지 않고는 성숙할 수 없다는 건 만고불변의 법칙 같다. 지금 내가 고통중에 있는가? 누군가의 모함을 받아 억울하게 좌천을 당했다고 생각하는가? 작으나마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런 책도 있는데 요즘 소설이나 영화는 억울한 일을 당하면 복수하라고 부추기고 있으니 안타깝기도 하다. 더구나 고통을 인내하지 못하고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이 주위에 얼마나 많은가? 이 책이 조금이나마 그런 우리의 삶에 대한 시선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매번 승자의 역사만을 전해주고자 하는 우리나라 역사 저술 속에 이 책은 유난히 돋보인다.  중간중간 펼쳐지는 풍경 사진도 좋고, 장을 마칠 때마다 우리나라의 역사적 유배지에 대한 소개와 거기에 얽혀진 역사적 인물에 대한 소개로 정리해 놓은 것도 나름 좋아보인다.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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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1 18: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12 1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 이태석 신부 이야기
우광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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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태석 신부의 다큐멘터리 필름 <울지마, 톤즈>가 극장에 걸렸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뒤늦게 KBS 스페셜에 소개된 내용을 찾아 보았다. 어찌보면, 평소 TV를 아주 즐겨보는 편이 아니라 내가 이런 프로를 못 보고 지나치는 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프로를 보고 난 직후 나는 참 많이 울면서 반성을 했다. 한국의 슈바이처라는 이태석 신부를 내가 여태 모르고 있었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어두움이 빛을 가리울 수 없듯이 이런 분은 훗날에라도 드러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태석 신부의 평전이 나왔다고 했을 때 나는 또 자석에 이끌리듯 이 책을 구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드는 생각은, 과연 이런 이타적인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따로 있는 걸까? 이런 분은 또 있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세상은 너무 세속화 되어있다. 누구든지 공부해서 남 주는 것이 아니라며 입신양명의 길을 쫓고 있다. 그 생각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비난하는 사람도 없다. 당연한 것이고, 무엇보다 사람 사는데 호구지책은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도 공부해서 남을 주지 않는다. 인간 이태석이라면 그도 충분히 그러지 않았을까? 아무나 못하는 의학을 공부했다.10남매를 먹이고 가르치느라 허리가 휘어지도록 고생하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어서 빨리 졸업해서 의원이라도 열어 어머니를 편히 모시고 싶다. 그것만으로도 효자 소리는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 입원비 없으면 경각에 달린 목숨도 입원할 수 없으며, 수술도 받을 수 없다. 그런 환자를 보고도 의사는 다른 일로 바쁘다. 사람은 할 수만 있으면 높은 지위에 오르려 한다. 그래야 나의 안위를 보장 받을 수 있으고, 대우도 받는다. 그것이 세상인 것이다.           

이렇게 세속화 된 세상에서 과연 이태석 신부 같은 사람이 가능한 것일까? 굉장히 존경스럽지만, 동시에 의아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그것은 우리가 그토록 좋아하는 콜라를, 이태석 신부의 임지였던 톤즈의 아이들은 맨손으로 받아들지 못하며, 힘들 게 호호거리며 마신다는 그것만큼이나 이상한 일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책에서 보면 이태석 신부는 어떤면에선 신부가 되기엔 적합한 성격은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그가 리더십도 강하며 호탕한 성격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부가 되려면 많고도 엄격한 규율들을 지켜야 하는데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성격 보다 앞서는 건 역시 순명이고 사랑이라는 것을 이태석 신부는 몸소 보여준다.  

그는 의대를 졸업 후 비교적 늦은 나이에 신학교에 들어갔지만 이태리 유학길까지 갔다. 그러던 중 아프리카 케냐의 나이로비를 여행할 기회를 얻었고, 유럽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이미 도시화되고 잘 사는 그곳에 오히려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그 부분을 읽는데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슬쩍 비집고 올라왔다. 아마도 나라면 당연히 그곳에 눌러 앉았을지도 모른다. 아프리카라고 다 피폐하고 어려운 곳이 아니다. 유럽의 식민지였던만큼 십중팔구 그곳의 정취에 매료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뜻이 있는 사람은 풍경이 주는 정취에 매료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소리에 민감하다. 이태석 신부가 찾는 것은 '아프리카의 아픔과 상처'(106p)였다.  

그러던 중 남수단에서 30여 년 동안 활동해 온 제임스 신부의 요청으로 그곳에 가게되고, 오랜 내전으로 폐허가 되다시피한 그 나라 사람들을 발견하게 된다. 나라 전체가 폐허가 되다시피 한데 그런 와중에도 최빈민 도시는 따로 있다. 톤즈가 바로 그렇다. 우리로선 상상하기 어렵다. 특별히 그곳 사람들이 많이 걸려있는 병은 한센병이라고 한다. 이태석 신부는 그들을 볼 때 오히려 불쌍한 것이 아니라 심장이 뛰었을 것이다. 그는 말한다. 

"한센병 환자들의 삶이 처참하기 이를 때 없고 가장 버림 받은 삶이 분명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들을 위로하며 함께하시는 예수님의 존재를, 완전한 사랑과 감사를 느낄 수 있었다."(109p)  

그것이 그를 두번 생각하지 않고 톤즈로 이끈다. 그러니까 단순히 불쌍하다는 그것만 가지고 버림 받은 땅 톤즈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곳에 함께 하셨던 예수님을 발견하였기에 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문명화된 나라에 살았던 사람이 과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아무리 예수님의 존재와 사랑에 감사를 느꼈다고는 하나, 그는 톤즈를 처음 시찰했을 때 말라리아로 거의 죽다 살아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은 그가 톤즈에 간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톤즈로 갈 것에 대해 추호도 흔들림이 없었다. 오죽했으면 사람들이 한국에도 어려운 곳이 많은데 왜 꼭 아프리카로 가야만 하느냐고 했을 때 그는 "그곳에는 아무도 가려는 사람이 없기에 저라도 가야 합니다."(111p)라고 말했다고 한다. 

여기까지 읽을 때만해도 나는 그가 대단한 용기를 가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후 나는 그의 톤즈에서의 활약상을 읽으면서 의외로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곳의 처참함은 형언할 수 없고, 그야말로 형편무인지경이지만 사람들의 병이 낫는 것을 보고, 달라지는 것을 볼 때 그의 가슴은 뛰었을 것이다. 사실 그들의 병은 이렇게 문명화된 나라에선 대수롭지 않은 병이다. 하지만 약을 구할 수 없어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약간의 도움만으로도 건강을 회복하는 것을 볼 때 어떻게 가슴이 뛰지 않을 수 있을까? 더구나 어린 아이들의 육체적, 정신적 상처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그런 아이들에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음악을 가르칠 때 치료 받는 것을 보고  정말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천국이 회복되는 것을 지켜 보았을 것이다.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렇게 이 책은 어느새 나의 가슴을 채우고 있었다.동시에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천만다행으로, 그런 나라 그런 도시에 태어나지도 살아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난 이 사실에 얼마나 감사하며 살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뿐 아니라 누구도 불행한 나라에서 태어나길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얼마나 행복을 느끼며 사는가? 이태석 신부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을 보고, 문득 오래 전 주일학교 교사를 했던 시절이 생각이 났다. 고백컨대 나는 그때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게 물론 나의 한계이기도 했지만, 주일학교 아이들은 특별히 나의 사랑을 필요로 할만큼 가난한 아이들도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부족함이 없는 환경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인데 뭐 그리 선생님의 사랑을 필요로 했을까? 그저 나 보기에 좋은 아이들은 부모님이 잘 키웠군하며 흐뭇해 하는 정도였다. 그렇게 사랑을 하찮은 것으로 알고 안일하게 주일학교 교사를 했었다. 아무래도 풍족한 환경이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고 깨닫게 하기엔 방해되는 것 같다.  

어디 그뿐인가, 현대인의 모든 질병이 알고보면 너무 풍족해서 생기는 것이라지 않는가. 우울증, 자살, 스트레스, 비만, 편집증 등은 자기집착이 너무 강해서 생긴 병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루 하루를 근근이 살아가는 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질병들이다. 며칠전에도 모 운동선수가 자살을 했다고 한다. 그를 비난하는 것은 아니지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에게 가서 봉사하고 산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이 허무하게 세상을 마감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인생을 절반쯤 살고 돌아보게 되는 건 과연 내가 인생을 잘 살아왔냐는 질문을 피할 수 없었다. 하다못해 우리는 가난한 나라를 돕는다고 하고도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때가 너무 많다. 그런 세상속에 이태석 신부의 희생과 사랑은 너무나 커 보인다.  

그가 위대해 보이는 것은 그만이 할 수 있는 것을 해냈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이태석 신부만큼은 아니어도 우리도 남을 돕고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읽는 내내 내가 뭘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남을 돕는 것도 내가 힘이 있어야 도울 수 있다. 내가 할 줄 아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안타깝고 부끄러웠다.  

사람이 가슴으로 하는 모든 일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법인가 보다. 나는 오래 전 그 말을 잊지 않고 있다. 사람은 영이 있어서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를 안다는 말. 이태석 신부는 톤즈의 아이들을 바라만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녹아 내리는 것을 볼 수가 있다고 했다. 얼마나 사랑을 받지 못했으면 그랬을까?  

그는 대장암 때문에 죽었는데, 그의 마지막 생명을 담당했던 주치의는 잘만 먹어도 그병을 생기지 않을거라고 했다. 그만큼 톤즈의 열악한 환경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래도 톤즈를 사랑했다. 사랑에 눈이 멀었다. 

지금도 그를 다뤘던 방송(KBS스페셜)분에서 이태석 신부가 우리나라 말로 톤즈의 아이들에게 가르쳐 줬던 노래가 생각이 난다.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당신이 내곁을
떠나간 뒤에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오
......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노래를 누가 부르느냐에 따라 그 느낌이 정말 다르다. 이 노래를 가르쳐 주고 톤즈를 떠나왔던 이태석 신부. 다시 돌아가야 할 그곳을 돌아가지 못했을 때 그 노래는 톤즈의 아이들에겐 망자를 그리워하는 노래가 되었다. 그는 그런 중병을 얻고도 톤즈에 다시 돌아가게 될 거라고 믿었단다. 하지만 그의 영혼만이 톤즈 사람들 가슴 속에 별이 되어 남아있게 되었다.   

이제 톤즈는 이태석 신부 하나로 인해 회복의 땅이 될 것이다. 과연 한 일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나라 사람이 그곳에 위대한 도움을 줬다는 것이 왠지 뿌듯하게 한다. 그의 사랑을 받은 젊은이와 아이들이 나라를 구할 것이고 먼 훗날 수단도 언젠간 남의 나라를 돕는 나라가 되겠지.  

이태석 신부가 좋아하는 노래는 '열애'라고 한다. 노래에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란 가사가 나온다. 정말 그 노래는 왠지 그가 부르면 찬송가가 될 것 같고, 어찌보면 그 자신을 노래하는 것도 같다. 그는 오래도록 우리 가슴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사실 이 책은 평전이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해 보인다. 그냥 이태석 신부의 일대기를 소개하는 정도의 책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고인의 좀 더 깊이있게 다른 진지한 평전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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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9-14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도 가지 않기 때문에 '나'라도 가야 한다는 생각이 진정한 소명이겠지요.
담양 카톨릭묘지에 안장돼 있다니까 가까운 시일에 가보려고요.

2011-09-14 1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1-09-14 20:29   좋아요 0 | URL
담양에 계시군요.
전 거기 한번도 못가 봤어요.
저도 한번 가 보고 싶네요.
어제 모기 한마리가 윙윙거리길래 롬매트 키고 잤어요.
신부님 살아생전 고생한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데
잠은 잘 자고 일어났지만 혼자 약간 민망해지더군요.ㅠ

고쳤어요.히히
 
생각의 일요일들
은희경 지음 / 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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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한 작가 은희경 

나에겐, 내가 나이 보다 젊게 산다고 부러워하는 친구가 하나 있다.  글쎄, 그렇게 보는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는데, 문화적인 측면을 많이 알거나 누리고 그것이 나름 세련되다고 느끼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난 그럴 때마다 어깨를 들썩이며 묘한 표정을 짓곤한다.  나 정도에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친구가 은희경 작가에게 매료 당할 확률은 높다.  이 작가는 한마디로 '모던하다'란 말이 딱 잘 어울리는 사람이니까. 그녀의 나이를 안다면 더더욱.  안 그래도 작가가 낸 책들의 제목을 보라.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마이너리그>, <비밀과 거짓말> 등등. 내놓은 작품마다 작가만의 모던함이 느껴진다.  

모던함은 또한 매력적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까지 운이 좋아 작가를 두 번 만난 적이 있는데, 그녀의 인상은 정말 나이를 쉽게 가늠할 수 없을만큼 젊고 발랄하다.  무엇보다 스타일에서 과감성이 돋보이기도 하는데, 그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 멋지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작가의 매력은 환한 미소가 아닌가 싶다. 게다가 때로는 호쾌하기까지 하다. 술을 좋아하고 그것도 독주를 좋아한다니 말이다(마실 땐 그래도 알고 보면 독주가 깨어날 땐 숙취없이 깨끗하게 깨어난다고 한다고 해서 좀 의외였다) . 아무튼 그녀의 환한 미소와 발랄함을 보면, 이 상큼, 발랄이란 말이 꼭 젊은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아니 적어도 중년은 또 중년 나름의 상큼, 발랄함이 있다는 것을 은희경 작가를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이 들었다고 원숙함, 점잖음만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색다른 에세이, 생각의 일요일들

문단 데뷔 이래 줄곧 소설만을 써왔던 작가가 첫 에세이를 썼다고 해서 좀 놀랐다. 지금까지 언젠가 한번은 에세이를 쓰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이제야 첫 에세이를 쓰다니. 그렇게 사람을 유쾌하게 만드는 제주가 있는 작가가. 그리고 그렇게 가감없이 솔직하게 자기를 드러내 보여 줄 줄 아는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말한다는 것이 자신이 없어 지금까지 에세이를 쓰지 않았다니 좀 의외다.  

그런데 이 에세이 참 특이하긴 하다. 우리가 기존에 익숙하게 읽어 온 에세이가 아니다. 무엇보다 특이한 건 모든 장이 다 자신의 생각을 풀어 쓴 문어체가 아니라, 사람과 대화하듯 구어체로 썼다는 것이다. 구어체로 썼다는 건 대상이 있어서 그렇게 썼다는 말도 되겠지만, 또 때론 누가 있거나 말거나, 들어주거나 말거나 혼자 중얼거리듯 쓴 글도 꽤 있다. 왠지 그 마음을 알 것도 같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이 있다는 건 좋은 것이긴 하지만, 그런 또 그만큼 상대의 동의와 이해를 구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사람이 혼자서도 말할 수 있다는 건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꼭 누가 없어도 자신만으로도 충만한 상태. 혼자 잘 지내는 사람이 남하고도 잘 지낸다고 하지 않은가? 그리고 또 하나는, 그냥 고독함을 혼자서 이겨 보고자 할 때이다. 가끔은 벽 보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해소가 될 때도 있다잖은가. 이를테면 작가는 주로 이런 상태에서 글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은희경 작가, 이렇게 호기롭게 첫 에세이를 냈다고는 하지만, 왠지 난 작가가 여전히 에세이를 내는 것을 쑥스러워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에둘러 이렇게 어떤 글은 간단 명료하게, 어떤 글은 낙서 같이(낙서를 폄훼해서 하는 말은 결코 아니다. 이것을 통해 그 사람을 아는 단서가 얼마나 많은가?), 단상을 전하듯 토막글로 에세이를 대신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비록 우리가 익숙하고, 기대하는 형식의 글은 아니지만 나름 그녀만의 형식으로 글을 썼던 것 같다.  소위 말하는 '내 맘대로 좋은 글'은 아니었을지. 그리고 이런 글에 대한 호불호가 있을 것을 어느 정도 감안했을 것도 같다.  원래 모던은 개인주의가 아닌가? 어찌보면 가장 작가다운 글을 썼다고 생각한다.                    

난, 그런 사람이 좋더라     

나는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 이를테면 자기 일에 대해 끊임없이 재잘거리며 말하는 사람. 상대가 알아 듣던 못 알아 듣던 그 일에 대해 이렇게도 말하고, 저렇게도 말하는 사람. 난 이런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내 입장에선 그 사람의 일을 통해 얻게 되는 정보도 만만치 않지만, 무엇보다 그 사람은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지 않고는 결딜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런 것처럼 처음부터 내가 하는 일은 말해도 못 알아 들을거라고 생각해서 미리부터 입을 다무는 사람. 난 그런 사람 별로 매력으로 느끼지 못한다. 사람은 사람뿐만 아니라 일에 대해서도 사랑에 빠져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에세이라면서 의외로 작가가 소설을 쓰면서 느끼고 생각하는 바들로 매 페이지를 채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위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에세이들은 작가의 여러 가지 다양한 관심사들을 담지 않는가. 그런데 이 책은 오로지 소설 쓰는 것에 대한 느낌에 대해서만 집중했다. 작가들이 얼마나 힘들 게 글을 쓰는지, 쓰면서 무슨 일이 있는지 미주알 고주알 얘기하지는 안하지 않는가. 그렇지 않아도 난 언제부턴가 작가의 작품보다 작가 그 자체에 대해서 쓴 책들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작가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왜 그 작품을 썼는지, 그 가려진 이면을 알아가는 것에 더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이 책도 그런 책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자신이 꾸미지 않고 툭툭 던지듯 하고 있어 좋다.  

가끔 화장하지 않으면 사람을 못 만나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게되는데, 은희경 작가는 화장을 안해도 언제나 편하게 만나 줄 사람처럼 느껴졌다. 화장을 해야 만나는 사람은 본인은 좋을지 모르지만 때로 상대는 불편하게 느낄수도 있다.  그처럼 소설은 얼마나 많은 제단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작업인가? 나는 책을 읽다가 그녀가 소설을 쓰는 과정을 읽고 좀 놀랐다. 그러니 소설은 얼마나 복잡한 공정 과정을 거쳐야하는 것인가. 이런 구절은  작가의 소설 어디에도 읽을 수 없고, 오직 이런 지면이 아니면 읽을 수 없다. 이런 독특한 에세이는, 항상 화장을 하고 있는 사람은 잘 때도 화장을 하고 자는 줄 안다. 그러다 맨 얼굴이면 놀라게 되는 것처럼,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 게 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즉 낮선 느낌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은 싫다고 하는 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럴수도 있겠지만, 나 개인적으론 작가 특유의 모던한 문체가 그 어느 작품 보다 농축되어 있는 것 같아 소설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끼게 한다.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 나는 반드시 새 노트를 산답니다.  

거기에다 전체 테마, 인물, 플롯, 분위기, 장소, 상징, 톤, 디테일, 대화...... 이런 것들의 틀을 일단 세워놓고요. 

연습장에는 그때그때 떠오르는 아이디어와 해결해야할 문제들을 적어가면서 소설과 병행하는 거죠. 

<소년을 위로해줘>를 쓰면서 벌써 연습장을 세 권이나 썼군요. 

-'시골은 정말 시끄럽답니다, 살아 있는 것들의 살아가는 소리로요' 중에서(208~209p)

읽는내내 작가가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작가는 글을 쓰기 위해 여기 저기를 옮겨 다니며 쓰는가 본데, 집이 아니면 글을 쓸 마땅한 장소가 없는 나로선 그 대담함이 부러웠다. 여기 저기 해외 여행도 하고 그 단상을 적기도 하는 것도 부럽고. 만일 작가가 된다면 롤모델로 삼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문득문득 했다. 

그래도 일요일엔 쉬셔야죠          

책의 말미에 가면 작가가 <소설을 위로해줘>를 쓰면서 달라진 점과 달라지지 않는 점에 대해 밝혀놓은 장이 있다. 소위 말하는 손익계산서 같은 것일 게다.  

작가가 소설 쓰는 작업의 이런 지난한 작업 과정이먼저 1월과 7월 비교!

달라진 점(1월)
1. 비타민 한 일 챙겨먹지 않던 사람이 매일 홍삼을 먹는다.
2. 재미있는 책과 영화 및 개콘과 하이킥을 멀리한다.
3. ......늘 1시 넘어 자던 사람이 초저녁에 전화기를 끄고 잔다

그 후 결과(7월)
1. 역시 비타민을 챙겨 먹지 않는다.
2. 여전히 책과 영화와 텔리비젼을 멀리하는 중.
3. 주 5회 밤샘을 한다.

......(중략)

그리하여 현재 달라진 점은,
1. 매일 쓴 118개의 답글! 산문 쓰는 게 쉬워졌다.
2. 밤새워 할 수 있는 일이 두 가지로 늘어났다.
3. 긴 손톱으로도 자판을 칠 수 있다.
(이하 생략)  
                                          -'그리하여 지금, 무엇이 달라졌냐면' 중에서(316~317p)-

작가의 이면에 이런 자기 관리가 있었구나. 새삼 찡한 느낌이 든다. 특히 주 5회는 밤을 샌다닛! 밤과 친하지 않으면 못하는 게 작가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작가는 사냥꾼이다. 어떤 얘기가 소설감이 될 수 있을까, 늘 안테나를 곤두세워야 하고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작가는 어릴 때부터 별것도 다 생각한다고 핀잔을 듣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니 일주일 중 어느 한 날이라도 재대로 쉬는 날이 있을까? 제목이 그러니 웬지 작가는 일요일에도 편히 쉴 것 같지가 않다. 이 세상을 지으신 분은 우선 잘 쉬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주일을 제일 앞에 두셨다는데 말이다. 

그렇지. 어쩌면 작가는 자신의 글 쓰는 작업을 위해 생각하고 정리하는 일요일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모던함 뒤에 이런 수고의 이면이 있음을 조금만이라도 인정해 주자. 그럼 이 독특하게 쓴 에세이도 기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의 이말을 음미해 보자. 

       생각하는 쪽으로 삶은 스며든다. 
    마치 소설가의 현재 삶이 소설을 결정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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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31 2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01 16: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리시스 2011-08-31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주요. 제주에서 글쓰는 거 저도 부러웠어요. 어딘가 기고할 매체가 있는 것도 부럽고. 소설가나 작가가 꿈은 아니지만 무언가를 쓰고 싶을 때 쓰고, 써지지 않을 때 고민하고 그런 과정들은 이상하게 부러웠어요.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일이 안 될 때 여행도 떠날 수 있으면 좋을텐데요! 우리나라 직장인들은 모조리 그게 불가능...........ㅠㅠ 가려면 때려치고 가야는데 밥벌이의 소중함을 아는 우리가 어디 그러기 쉽나요........

stella.K 2011-09-01 11:37   좋아요 0 | URL
제주가 맞나요? 만날 헷갈려요.
저것도 제주로 할까 하다가 그렇게 쓴 건데...ㅜ

은희경 작가를 비롯해 몇몇 작가는 정말 꿈의 작가죠.
정말 그러면 얼마나 좋아요?
여행 다니면서 취재하고 글 써서 인터넷으로 송고하고.
김영하 작가가 그러고 사는가 본데 엄청 부럽죠.
그래서 어느 작가는 밥벌이의 지겨움을 설파했잖아요.
내가 볼 땐 엄청 부럽게 사는 거구만.
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하는 거죠.ㅜ
 
[차이콥스키, 그 삶과 음악]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차이콥스키, 그 삶과 음악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가 시리즈 7
제러미 시프먼 지음, 김형수 옮김 / 포노(PHONO)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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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전 치고는 그다지 두껍지 않은 분량의 책이다.  300 페이지가 채 안되니 말이다.  처음엔 이렇게 두껍지도 않은 책을 신뢰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참 알차게 잘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차이콥스키의 생애를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 놓았다.  

그뿐인가? 사실 클래식에 웬만큼 조예가 깊지 않으면 차이콥스키의 대표곡 '호두까기 인형' 정도 밖엔 잘 모를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차이콥스키의 곡 CD가 두 장이고, 총 24곡을 들을 수가 있다. 이 곡들을 들으면서, 매 쳅터가 끝날 때마다 수록된 CD에 대한 설명장을 따로 읽을 수가 있어서 좋다. 그 음악들을 듣고, 설명장을 읽으면 차이콥스키가 그 유명한 발레곡만 쓰지 않았다는 걸 알 수가 있을 것이다. 그는 피아노 곡도 썼고, 극음악도 썼으며, 관현악, 실내악도 썼다. 또한 가곡도 썼다.  언제 또 이런 것을 썼을까, 새삼 놀랍기도 하고 나의 클래식에 대한 얄팍함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중간중간 사진도 곁들여져 보기에도 좋다.  

무엇보다 우리가 평전을 읽은 건 그 사람의 삶을 알고자 하는 욕구가 커서일 것이다. 이 책 역시 읽으면서 몰랐던 차이콥스키의 인간적 내면을 읽을 수가 있어서 좋기도했고, 동시에 다소 충격적이기도 했다. 하긴, 그런 건 예술하는 사람의 독특한 일면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사실 차이콥스키는 명성에 비해 그리 행복한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다. 성격이나 정서상태도 그다지 원만하고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어쩌면 예술가이기에 져야하는 십자가 같은 것은 아니었을런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바로 이것 때문에 그처럼 훌륭한 음악을 탄생시키기도 했을 테니까.

그렇게 말하자면 베토벤도 얼마나 지난한 삶을 살았던가? 베토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차이콥스키는 베토벤을 비롯해 몇몇 음악가들을 평가절하 하기도 했다. 우리로선 감히 쳐다 볼 수 없는 음악가들을 평가절하했다니 역시 차이콥스키 그만이 할 수 있는 예술에 대한 도도한 태도는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그의 음악은 우리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존 윌리엄스나 제임스 호너, 하워드 쇼 같은 현대 음악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고 하니 과연 차이콥스키 포에버다.  

이 책의 또 하나의 미덕은, 등장하는 당대 유명한 인물들에 대한 설명과 음악용어를 수록했고, CD의 수록곡에 대한 해설을 따로 해설해 놓았다. 더구나 연표도 나와 있는데, 차이콥스키에 대한 연표만 나와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 예술사와 서양사도 함께 나와 있어서 비교하며 볼 수가 있어 더욱 흥미롭다.  

이 책은 역사상 한때를 풍미했던 음악가의 삶을 파노라마처럼 볼 수가 있어 차이콥스키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아주 유용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작가와 번역자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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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8-21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알기로는 차이코프스키가 동성애자였고 죽음에 대해서 자살 했다는 설도 있던데,,
예술가들의 삶은 평범하지가 않군요. 음악가의 음악을 감상하면서 그에 관한
책을 읽었다니,, 아주 특별한 독서였을거 같아요 ^^

stella.K 2011-08-21 20:05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이 책에도 그런 내용을 다루고 있죠.
음악을 함께 들을 수 있게 해서 너무 좋구요.
구성이 탁월한 책인데,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저는 표지가 좀 마음에 안 들어요. 뭐 그래도 용서가 되더만요.히히

yamoo 2011-08-24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씨디까지 들어있는 평전이라니!! 저두 얼른 구입해야 겠습니다..ㅎ

그나저나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베토벤 평전은 보셨나요? 그게 음악가를 다룬 평전 중에서 최고라는데~ 그 책두 차이콥스키 평전처럼 씨디를 넣어 줬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바람을 해봅니다~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stella.K 2011-08-24 13:54   좋아요 0 | URL
이게 음악가들 시리즈로 나오고 있어요.
문예출판사건 잘 모르겠고,
이곳 출판사에서 베토벤의 삶과 음악을 다루면서 CD도 함께 수록되어
있더군요. 구입해 보시면 좋을 것 같기도 해요.^^

 
[안도다다오의 도시방황]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안도 다다오의 도시방황
안도 다다오 지음, 이기웅 옮김 / 오픈하우스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모처럼 눈이 밝아지는 느낌의 책을 읽었다. 여행에 관한 책이 그렇긴 하다. 그곳에 직접 가 보는 것만큼  확실한 체험은 없을테지만, 누군가의 안내를 받듯 이런 책을 읽는 것도 과히 나쁘지 않다. 특별히 이 책은  저자가 건축을 위한다는 목적이 있는 여행이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고 발길 닿는데로, 눈길 머무는대로 가서 보고 기록하고 정리하는 것이 아니다. 

안도 다다오. 알고 봤더니 나름 대단한 사람이다. 그 어렵다는 건축을 어느 대학이나 전문학교를 나왔다는 이력없이 독학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려 온 사람이다. 건축가에 대해 내가 그닥 아는 바는 없지만, 과연 건축가가 천성적으로 여행을 많이해야 하는 직업인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정말 열의 있는 건축가라면 어디에 유명한 건축물이 있다면 한번쯤 가보고 싶기는 할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과연 이 사람은 돈이 많은 사람이었을까? 이렇게 부지런히 여행을 다녔을 정도라면 모르긴 해도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 보는 것이다.   

사실 나도 오래전부터 막연하게나마 건축은 공부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또 왠지 건축하면 거부감도 없지는 않다. 저자의 나라 일본은 어떨지 몰라도(물론 저자는 책에서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일본의 건축을 그다지 좋게 평하지는 않았다), 우리나라는 부동산이나 투자의 관점에서만 건축을 보기 때문에 나의 이런 시각이 무리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자연까지 훼손하면서 건물을 짓지 않는가?  어디를 가나 건물을 짓는다고 맨땅이 사라지는 것을 보면 난 솔직히 마음이 쓰리고 아프다. 물론 내가 골수 자연보호론자는 아니지만, 인간이란 종(種)의 몸 하나 두겠다고 저걸 저리 짓는 걸까 한숨이 나올 때가 너무 많았다. 그렇게 많은 건물을 짓고도, 내 한 몸 누일 집이 없다고 징징거리는 것이 또한 인간이다.

생각해 보면 인간만이 건물을 필요로 한다. 언제 땅을 기어 다니는 짐승이, 하늘을 나는 새가 건물을 필요로 한다는 말을 들어 본적이 있는가? 그들이 어디서 어떤 집을 짓고 사는지 정확히 아는 바는 없지만, 인간이 살기 위하며 그처럼 복잡하고 시간이 걸리는 집을 짐승은 짓고 살지는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몸에 맞는 집을 지을뿐 인간과 같은 건물을 짓지 않으며, 그것을 길이 물려 줄 재산의 용도로도 보지 않는다. 물론 지구상에 모든 인간이 건물을 재산의 용도로 삼는 것은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그저 건물과 인간은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해 자연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활용해 건축을 하는 종족도 있다. 물론 원시의 때 묻지 않는 삶을 사는 지구상 1%도 안되는 종족들이겠지만.        

그런데 인간은 언제부터 이렇게 건물에 욕심을 낸 것일까? 모르긴 해도 태곳적, 그러니까 인간이 바벨탑을 쌓을 그 무렵부터는 아니었을까? 이렇게 인간의 탐욕과 상상력을 가지고 지은 건축물들을 저자는 여행하면서 무엇을 느꼈을까? 이 책은 말하자면 세계를 여행하면서 지금까지 보아왔던 건축물에 대한 저자의 생각과 통찰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무엇보다 현대의 건축은 갈수록 화려하고 도회적으로만 되어가려고 하고 있다. 그것에 대해 저자는 단호히 말한다. ...인간이 진정으로 인간답게 살고자 할 때, 이런 인간의 냄새를 지우면 인간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와 직결이 된다. 우리가 멋대로 후진국이라고 부르는 아시아 각국에는 이러한 인간의 냄새가 아직 선명히 남아 있다. 방콕, 싱가포르, 홍콩......,그리고 베트남의 고도 후에에서 나는 강렬한 인간의 냄새를 맡았다. 그 냄새는 충격적일 정도로 강렬하다.(14~15p)  싱가포르나 홍콩을 후진국으로 본다는 건 지금으로선 어패가 없진 않지만, 저자의 책이 1965년을 거슬러 올라간다면 그렇게 쓰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저자는 도회적 건축물에 대해 이런 경계를 나타냈다. 후진국이라고 해서 반드시 건물도 후졌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보라. 옛 건축물의 탁월함은 현대의 그것을 따라 올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한옥의 재발견은 더 말할 필요도 없고. 그것의 하나 같은 공통점은 자연을 해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자연과 어우러지게 지었다는 것일게다. 어찌보면 건축가는 온고지신의 정신을 갖지 않으면 온전한 건축가는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이 책을 보면서 문득 해 보았다.  

그렇다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건축은 무엇일까? 나도 언젠가 TV에서 본, 르 코르뷔지에의 라 투레트 수도원을 보면서 저자는 빛을 생각했고, 본래 건축이란 경제성과 기술력과 합리성, 또는 건축주의 요구라는 속박 안에서 이성으로 정리하는 과정(32p)이라고 했다. 굉장히 명쾌하지만 그것을 실천하기엔 역시 너무 어려운 과정을 넘어야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였을까?  저자는 건축이란 투쟁속에서 완성해 가는 과정이라고도 말했다. 한마디로 건축은 투쟁의 예술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128p).  그러니 건축가가 멋있는 직업이라고만 할 수 있겠는가? 물론 멋있긴 멋있다. 하지만 그 멋있음이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저자는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하지만 건축가가 그냥 만들어지겠는가? 우린 무엇이든지 한 길을 묵묵히 걸어온 사람에게 '장인'이란 말을 붙이길 좋아한다. 안도 다다오가 생각하는 건축에서의 장인이란 무엇인가? 그는 원래 호사가의 성향이 깃들기 마련이지만 취향이라는 측면이 너무 과도해지면 건축으로서의 힘은 상실되고 만다. 문장으로 치자면 단단하고 묵직한 문장에 비해 미사여구를 늘어놓은 미문이 결코 사람을 감동시키지 못하는 것처럼, 그저 표층의 미에 대한 집착만 보일 뿐이지 보는이의 심층까지 울려야 한다.(165p) 며 그의 나라 도쿄를 여행하면서 말하고 있다. 이것은 나날이 화려하고 치장에만 관심을 쏟는 오늘 날의 건축에 심각하게 생각해 볼만한 대목은 아닐까 싶다.  

올해 같이 심한 물난리에 집이고, 빌딩이고 수마의 흔적이 없는 곳이 없었다. 그것이 인위적으로 산을 깎고, 물길을 막고, 거기에 나태와 방종이 더해진 인간 스스로가 부른 재앙이라고 어떻게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인간이 지은 콘크리트 옹벽은 튼튼할 줄 알았겠지. 비도 막고 절대로 안 넘어 갈 줄 알았지. 이제 건축을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자연을 이길 것인가의 건축을 짓지 말고, 어떻게 하면 자연과 더불어 건축을 할 것인가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은 저자의 이런 통찰적 구절과 오늘 날의 사안과 맞아 떨어져 많은 것들을 생각해 보게 만든다. 또한 저자의 미술에 대한 교양과 안목도 나름 대단해 보인다. 하긴, 건축을 공부하면서 미술은 또 얼마나 통섭할 분야였을까.  하지만 이 책이 갖는 나름의 이해의 한계는 없지 않아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건축에 대한 교양이 풍부했다면 약간의 지루함도 없지 않았을까? 그것에 대해 저자가 인용한 말을 나도 인용해 보겠다. 

"내게는 친구가 많다. 플라톤도, 네로 황제도 모두 친구다. 어떤 역사적 인물일지라도 대화를 자꾸 하다보면 친구가 된다."  

여행의 성패는 이런 가공의 대화가 얼마나 가능하냐에 달려 있다.  

결코 말하지 않는 존재와의 커뮤니케이션은 현실의 대화는 또다른 깊이가 있다. 그것은 결코 자기 자신과의 대화이기도 하기 때문이다.(124p ) 

즉 여행도 그렇지만 대화해 보지 않은 분야에 대해선 끊임없이 말을 걸어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 이 책도 마찬가지인듯 싶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 정말 책도 엔터테인먼트에지는구나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 책을 처음에 받고 약간은 당황했다. 그것은 표지를 거꾸로 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띠지 역시 따로 떼어낼 수 없게 표지 혼용일체형이고.  한마디로 건축을 공부하면 기하학을 공부해야 하는 것처럼 이 책 역시 기하학적으로 만들었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책에 저자가 직접 찍었는지 아니면 편집 때 따로 넣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진이 많은 거야 당연하다곤 해도, 이 책은 어딘가 모르게 과유불급인 요소가 있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종이가 고급스럽게도 코팅이 되어있고, 백색과 흑색의 조화를 이뤄 고급스러움을 더하고자 했지만, 회색 바탕에 검은 글씨. 또는 회색 바탕에 흰글씨 몇 페이지가 군대군대 나온다. 이건 보기엔 좋아보일지 몰라도 눈의 피로감을 가중시켰다. 저자도 이미 말한 것처럼, 이는 표층에만 매어 있고 심층을 고려하지 않은 결과란 생각이 든다. 앞으로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좀 더 인체공학적 특성을 살려 어떻게 하면 독자가 편안한 독서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좀 더 고민해 줬으면 좋겠다.  안 그러면 원리에 충실한 책을 만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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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08-20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건축학도 친구 하나 있는데.. 원하는 소양을 길러 원하는 건축도면을 그리고 집을 지을 수 있는 그 아이 미래를 언제나 빌어주어요.ㅎ

이 책 살까말까 몇 번 했는데 가격이 좀 나가서 망설여졌어요. 제가 건축학도도 아니구요. 서평단 도서였죠? 건축을 잘 모르는데 너무 전문적인 책이라도 부담스럽기 땜에 실물을 안보고는 어떨지 짐작을 못했거든요. 리뷰보니 짐작 정도는 되는 것 같아요. 스텔라님 기준으로 별이 네 개니까.. 꽤 괜찮았던 편인 거죠?^^

stella.K 2011-08-21 15:23   좋아요 0 | URL
지금까지 평가단에서 보내준 책 중 이번에 보내 준 책들이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아실지 모르지만 제가 초기 때 막 뭐라고 그랬거든요.
그랬더니 정신을 좀 차렸는지 꽤 괜찮은 책을 보내줬더라구요.
그러게요. 가격이 좀 쎄죠?ㅠ

자하(紫霞) 2011-08-20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사고 싶어서 찜해놓고만 있었는데 신간평가단에서 골랐군요.
작년에 교토에 안도 다다오가 지은 건물이 있었는데 난간 옆에 강이 흐르고 있었어요.
건물이 주변 환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더라구요.

stella.K 2011-08-21 15:24   좋아요 0 | URL
와우, 보고 싶은데요?ㅎ
말 그대로군요. 안도 다다오. 괜찮은 사람 같아요.^^

yamoo 2011-08-24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도 다다오...이 책 말고, 안도 다다오 특집으로 작년 가을에 미술 모임에서 세미나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ㅎ
스승인 르코르뷔지에를 넘어서서 자기 만의 색깔을 갖고 있는 세계적인 건축가죠^^
이 사람 책은 다~~괜찮은 거 같습니다.

stella.K 2011-08-25 13:41   좋아요 0 | URL
헉, 미술 모임에도 참석하시나요?
어딥니까? 저도 좀 소개시켜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