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험가의 눈 - 위대한 탐험가가 남긴 경이와 장엄의 기록
퍼거스 플레밍.애너벨 메룰로 엮음, 정영목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펼쳐보면 몇 가지 놀라운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첫째는 역사상 이렇게나 많은 탐험가들이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무려 56명이나 된다. 이 책은 퍼거스 플레밍과 애너벨 메를로라는 두 사람이 엮었는데, 모르긴 해도 세상의 탐험가들은 이 보다 더 많을 것이다. 단지 이 두 사람이 엮고 다듬으려니 56명만 추려서 썼겠지.
또 하나 놀라운 점은, 그림이 많다는 것인데 그 그림들(사진을 포함하여)은 이 책의 격조를 한층 높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한, 아니 각 탐험가들에 대한 관심을 더 증폭시킨다. 뭐 책의 장정도 그만하면 훌륭한 것 같고, 무엇보다 정영목 씨가 번역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신뢰도를 높인다.  

하지만 이 책의 단점도 그에 못지 않아 보인다. 글쎄, 단점이라고 말해 이 책의 가치를 떨어 트릴 생각은 없지만 굳이 말하자면, 이 책은 각 탐험가의 소개와 그에 대한 일화를 짤막하게 정리하여 쓰고 있다는 점이다. 한 사람의 탐험가가 자신의 경험을 써도 책 한권은 족이 넘을진데 그것을 압축해서 여러 사람을 다루고 있으니, 요즘 같이 요약판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좋을 법도 하다. 하지만 환경이나 상황만 조금씩 다르다는 것 뿐이지, 죽을 고생을 하며 탐험했고 마침내 신천지를 발견했다는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고 있어, 어느 정도의 단조로움도 감안을 해야할 것도 같다.
더구나, 이 탐험가들이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전달하는 도구는 글과 조악한 또는 비교적 섬세한 그림 그리고 구두로 전하는 것이 전부였을 것이다. 교통 수단도 그다지 발전도 안 되었으니 탐험을 하지 못하는 일반인들에게야 얼마나 호기심과 상상력을 요하는 것이랴? 내가 사는 저편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풍경과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흥미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워낙 교통과 통신 수단이 발달하고 보니 탐험가들의 그런 번거로운 절차와 입담이 필요가 없어져 버렸다. 옛날에 탐험가라 불리울만한 사람들이 요즘엔 각 방송국 PD들이 카메라를 들고 그 자리를 점령해 버렸다. 그리고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고화질로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옛날에 탐험가라고 불렸던 사람들의 위상을 어디서 발견할 수 있을까? 오지를 탐험한다는 점에서 고생은 옛날 사람이나 지금의 사람이나 똑같이 하겠지만, 옛날 탐험가들이 더 많이 하였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은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 있다는 것이다. 그 욕망이 사람을 탐험하게 만들었다. 암스트롱이 달나라에 발자국을 찍듯, 누구도 아닌 내가 먼저 발견했다는 자부심이 그들을 미지의 세계로 불러내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하얀 눈이 내린 땅에 처음으로 내 발자국을 찍어도 발바닥이 저릿저릿한데, 그들은 발자국 뿐인가 직접 보고 목도하는 것은 정말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과 같은 것이리라. 

얼마 전, 산악인 박영석 씨의 실종 사망과 연이어 히말라야를 오르던 다른 두 산악인이 사망했다. 나중에 뉴스 보도를 들으니, 그들은 하나 같이 안전한 루트를 따라가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등반하려다가 죽은 것이라고 한다. 그 다른 방법이란 게 그럴 수 밖에 없어서가 아니라, 남이 잘 도전하지 않는 방법을 시도하려다가 좌초한 것이란다. 그 뉴스를 접하고, 사람들은 이만큼이나 새로운 것에 목말라하는구나 했다. 이제 카메라는 세계 구석구석 안 보여주는데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 미지의 세계를 말하는 건 크게 의미가 없어졌다. 결국 그 탐험하는 방식이나 과정에 목을 매는구나 싶었다.
이 책도 결국 그런 방식으로 읽힐 것도 같다. 누가 어디를 탐험했다는 것이 아니라, 누가 그 죽음의 순간을 이기며 탐험을 했는지, 탐험하다 죽어도 여한은 없는 자신의 죽음의 방식을 선택한 그들의 정신은 어떠한 것인지 하는 그런 것으로 읽어야 할 것도 같다.
현대 사회는 안전 지향을 추구하는 경향이 많아졌다. 그래서 모험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그러면서 탐욕이 많아졌고 권태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런 우리에게 이 책의 탐험가들은 도전하고 있는 것 같다.  한 번 읽어 볼만하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1-11-18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이 책에 어니스트 새클턴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는 건가요?
새클턴 이 사람도 위대한 탐험가를 꼽을 때 거론되는 인물이거든요.
남극 탐험 중에 난파로 인해 수십명의 탐험대원가 함께 고립되었는데
몇 년 뒤에 구조되었는데 탐험대원 전원이 생존했던 걸로 기억해요.
그래서 새클턴의 리더십에 관한 책도 나오기도 했고요. ^^

stella.K 2011-11-18 18:25   좋아요 0 | URL
당근 나오지.
그런데 난 솔직히 읽다가 포기했어.
너무 단조로운 느낌이라서 말이지.
하지만 탐나는 책 같기도 해.
워낙에 장정이나 도판이 좋아서 말이지.
나중에 다시 한 번 읽어 볼까해.
물론 그 나중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ㅋ

이진 2011-11-18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는 탐험을 떠나는 사람에게 미쳤냐고 하는 세상이 도래했지요.
가만히 앉아서도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라는 멋진 프로그램이 있는데 쓸데없는 돈낭비라면서 말입니다 ㅋㅋ

stella.K 2011-11-19 11:16   좋아요 0 | URL
결과를 보자면 낭빈데,
과정을 보자면 이런 사람도 있는 거죠.
전 지금도 산악인들 이해 못하겠던데
그렇게 생각하니까 조금은 이해가 되더라구요.ㅎ

아이리시스 2011-11-19 0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이거 저도 보고 싶.. 제가 예전에 리뷰를 많이 미뤄가지고.. 카페 오랜만에 갔더니 새로운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스텔라님. 저는 깊은슬픔인데 아무도 저를 몰라가지고 그러니까 제가 아이리시스예요, 할 수도 없고 그래서.. 그냥 나오고, 이번달 도선생님인데, 그거 읽고 계세요?ㅋㅋㅋ 저 잠오나 봐요. 댓글이 두서가 없어요. 주절주절.

주말 잘 보내세요, 스텔라님.

2011-11-19 1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21 16: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21 18: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19 1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20 14: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1-11-21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요한 것은, 사람들은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 있다는 것이다." - 이 갈망이 삶을 도전적으로 살게 하겠지요. 도전정신은 좋은 것이지만, 위험을 무릅쓴 산악인의 도전정신을 보면 존경해야 할지 어떨지 아직 잘 모르겠더라고요.

stella.K 2011-11-21 12:05   좋아요 0 | URL
저도 아직 존경은 안 생겨요.
그것을 인명구조나 다른 것에 쓴다면
존경이 생길지도 모르겠지만.ㅋ
 
[소설 읽는 방법]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소설 읽는 방법 - 히라노 게이치로의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솔직히 읽다가 포기해 버렸다.   
아무래도 이 책은 일반독자를 위해 썼다기 보단, 작정하고 소설을 공부하겠다는 사람을 위해 쓴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만큼  
책은 저자의 의욕이 너무 앞선 책은 아닐까 싶다.  
저자는 소설 읽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무려 9편의 소설을 분석했다.  
내가 '가르치기 위함'이라고 한 것은 정말 그런 느낌이 든다.   
그런데 소설은 분석하기 위함이 아니고, 감상하기 위한이 아닐까? 
소설을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면 누가 분석적으로 읽겠는가? 
책 소개에서 얼핏, 리뷰를 쓰고자 하는 사람의 도움이 되고자 이 책이 쓰여졌다고 말하고 있는 것도 같은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리뷰라는 것도 감상을 위주로 쓰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렇게 분석적으로는 잘 쓰지 않는다.  

어찌보면 정말 저자는 저자 개인의 리뷰 쓰기를 위해 이 글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저자는 이렇게 분석적으로 쓰고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꼭 좋고, 권할만한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을 읽어내려면 9편의 소설을 숙지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그 소설들도 지극히 저자 주관적이다. 말하자면 저자가 말하고 있는 작품이 물론 검증 받은 그야말로 명작의 반열에 올려도 손색이 없는 작품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책도 있어 보인다. 그런데 이 책을 읽기 위해 그 작품까지 읽어야 할 것인가? 그것은 아닐 것이라고 본다. 그나마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는지만 잘 알려진 작품을 이 책을 계기로 한번 읽어볼까도 싶었는데, 오히려 그 의욕은 반감이 됐다.  

물론 이 책을 다른 기준, 다른 관점에서 읽는다면 또 다르게 의미가 부여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나의 수준이 낮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대안은 없어 보인다.  지금으로선 저자가 쓰느라 애를 많이 썼겠구나 인정해 주는 정도 밖엔 좀...   

    


댓글(15)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호인 2011-11-16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가단에 선정되셨군요.
축하축하^^
주옥같은 리뷰 기대할께욤

stella.K 2011-11-16 22:07   좋아요 0 | URL
ㅎㅎ 고맙습니다.
근데 저는 주옥 같은 리뷰는 못 쓰구요,
얼마 전, <오래된 새책> 리뷰 썼는데
그건 좀 자타가 공인하게 잘 쓴 것 같아요.ㅋ
혹시 안 읽으셨으면 읽으시고 괜찮으시면 추천 좀 해 주세요.ㅎ

아이리시스 2011-11-16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그 [달]이랑 [일식] 쓴 천재작가죠? 하루키 비롯 그 작가들을 너무 어릴 때 멋모르고 다 읽어버려서 아쉬워요. 다시 읽기는 싫고 그렇죠.ㅋㅋㅋ (뭔 소리래..) 그러면 소설 가지고 분석하는 거예요? 어떤 식으로요? 이 책 궁금했어요.

stella.K 2011-11-16 22:10   좋아요 0 | URL
아이님께는 맞으시려나?
좀 아니올시단데...암튼 되게 잼없게 썼어요.ㅜ
혹시 원하시면 보내 드릴깝쇼?

아이리시스 2011-11-17 17:45   좋아요 0 | URL
거기 나오는 소설들 알아야 재밌을 것 같긴 해요. 네! 그래도 저 주세요! 주세요! 감사합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tella.K 2011-11-17 22:02   좋아요 0 | URL
딱걸렸다!ㅎㅎ
그럼 주소도 알려 주셔야죠.
저에겐 맞지 않지만 아이님껜 맞을 수도 있어요.
다음 주중으로 보내드릴게요.^^


2011-11-17 2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18 1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19 0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진 2011-11-16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저두 같은 생각이랍니다.. 첫장을 펼쳤을 때부터 집중이 안됬어요 ㅠㅠ

stella.K 2011-11-16 22:11   좋아요 0 | URL
그렇죠? 집중 안 되죠? 나만 그러는 거 아니구나.
괜히 반가움.ㅋㅋ

yamoo 2011-11-17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을 분석적으로 읽는 사람들 의외로 아주 많아요~!
<달>의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 그 사람이라면 책이 어렵겠네요. 소설도 어려우니~ㅎ

근데, 정말 보기 드물게 짧게 쓰셨네요..ㅎㅎ 확실히 책이 별루이셨나봐요~^^

stella.K 2011-11-17 22:04   좋아요 0 | URL
ㅎㅎ 저 항상 길게 쓰는 거 아니랍니다. 왜 이러십니까? 피~
하긴 별로인 책 길게 쓸 재간 저는 없습니다.ㅋㅋ

cyrus 2011-11-18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꼭 굳이 소설 읽는데도 '방법' 이 있어야하나요? ^^;;
게이치로 이 사람은 전에 독서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우리나라에 책이 소개된 걸로
알고 있는데 자신만의 방법으로 책을 읽어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저도 가끔 소설을 읽으면 분석할 때도 있어요.
물론 감상도 하게 되지만요 ^^;;

stella.K 2011-11-18 18:28   좋아요 0 | URL
내 말이.
개인적으론 그럴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남에게 어필할 땐 감상을 전하게 되잖아.
작가가 천재라고 하는데 트인 사람 같지는 않아보여.
그냥 자기 좋아 자기 세상에 사는 그런 사람은 아닐지?
천재들 중엔 그런 사람들이 많잖아.ㅋ
 
[오래된 새 책]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오래된 새 책 - 절판된 책에 바치는 헌사
박균호 지음 / 바이북스 / 201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왕년에 책 좀 읽고 산다고 자부했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시쳇말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시절이고, 뭣도 모르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러다 블로그 활동을 하게 되면서 나는 이 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독서 고수들이 어쩌면 그리도 많은지. 그에 비하면 나의 독서량은 터무니 없이 초라한 수준이라 어디가 말도 못한다. 그들은 오늘도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한 리뷰는 쓰고, 내가 모르는 책이나, 알고는 있었는데 좋은지 어떤지 잘 모르겠는 책에 대해 거침없이 소개를 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흔히 매스컴이 알아주는 명사도 아니다(물론 개중엔 명사들도 없지는 않다). 그냥 아마추어고, 일반인이다.
그런 사람 중에, 
나는 오늘 여기 또 한 사람의 독서 고수를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이 책의 저자이다. 그는 모 고등학교에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다.  

책에 대한 책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관심있고, 한 권 이상은 다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 책도 그런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은 기존의 익숙한 책에 대한 책과는 조금은 달라 보인다. '오래된 새책'이라...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절판된 책에 관한 책이다. 그야말로 저자가 헌책방에서 길어 올린 책에 관한 이야기를 오롯이 담았고, 한마디로 어디서 그런 정보를 얻었을까, 혀를 내두를 정도다.   

절판된 책에 애도를...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속이 쓰리다는 것이다.  
이 책의 부제가
, '절판된 책에 바치는 헌사'라고 나와있다. 그래서일까? 읽는 내내 "어머, 이 책이 벌써 절판이 됐어?" 하며 깜짝깜짝 놀란다. 그 책들은 거의 대부분 언젠가는 읽으려고 리스트에 담아놨던 책들이다. 그런데 또 그런 책은 헌책방을 뒤지면 살 수도 있겠지만, 그러리만치 내가 부지런하다든가, 책에 대한 열의가 있는가 하면 그것도 자신있게 얘기할 것이 못된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 건 구입이 쉽고 편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다. 요컨대 헌책방을 뒤질만큼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니 또 드는 생각은, 나는 정말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도 절판된 책을 몇권 가지고 있기는 하다. 마케팅 중 불친절 마케팅이 가지고 있는 카리스마는 대단한 것이어서 평소엔 언젠간 사야지 하는 책을, 절판됐다 하면 사 보고 싶은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10위 안에 드는 출판 강국이라고는 하지만, 책이 인기 생활필수품이 아니다 보니 절판율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그나마 절판된 책이라도 헌책방에서 살 수만 있다면 그도 양반이다. 언젠가 난 최윤필 기자의 <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란 책을 보고 '절판된 책의 운명(http://blog.aladin.co.kr/stella09/3624207) 이란 글을 썼지만, 헌책방에서 조차 구할 수 없는 책은 또 얼마나 많은 것인지 안타까운 생각이 절로난다. 그런 책은 머리 숙여 참배라도 해야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용서하십시오. 우리나라 출판 현실이나 환경 탓마는 아닙니다. 좋은 책을 알아보지 못한 독자가 게으른 탓입니다."
저자(번역자)가 쓰느라고 들인 공력이 얼마인가? 그것을 인쇄와 출판의 발달로 싸고 편하게 사 볼 수가 있는데 그것을 사 보지 않아 사장이 된다는 건 얼마나 안타깝고 어리석은 일인가. 그러니 오늘도 수 없이 사장되어버리는 책에 대해 마음 속으로나마 애도를 해야할 것이다. 

우리가 헌책을 산다는 것은...

모름지기 정말 책을 좋아한다면 깨끗한 새책만을 좋아해서는 안될 일이다.
우리가 헌책방을 간다는 건 두 가지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렇게 절판된 책을 손에 넣기 위한 것과 그렇지 않더라도 시중책 보다 싸게 살 수 있다는 것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한 가지를 더한다면, 저자가 말했던 것처럼 누군가 그 책에 써놨을 낙서들. 밑줄을 발견하는 맛 때문일 것이다.
아주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나도 간혹 남의 책을 빌려 있는다든지, 양도 받는 경우 원래 책주인이 거놓고, 써 놨을 밑줄이나 낙서를 언제쯤 발견하게 될까? 은근 기다리고 기대하게 만든다. 
아주 오래 전,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했을까 말까 하던 시절, 우연히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로미오와 줄리엣' 소설판을 집에서 발견했다. 이게 언제부터 우리집에 있게 된 건지 알 수가 없다. 그것도 낡고 세로줄로 된 책이다. 추측해 보건데, 당시 외삼촌이 읽고 있던 책을 언니가 외갓댁에 놀러 갔다가 빌려 달라고 해서 가져 온 책은 아닐까 싶다. 그때 책 첫 페이지를 넘기자 연필로 선명히 쓴 약간은 삐뚤어진 세로 줄 글. "영*, 난 네가 좋다......"는 말로 시작된 그 글. 그것을 발견하고 순간 어찌나 얼굴이 화끈거리던지. 물론 그 글귀는 그렇게 사랑의 고백만을 담고 있지는 않다. 예나 지금이나 생일 카드나 크리스마스 카드에나 쓸 법한 상대의 행복을 비는 인사를 책선물을 하면 제일 첫장에 쓰는 김에 그렇게 썼을 것이다. 영모라는 여자 친구가 너무 좋아 벅찬 마음에 급하게.    
하지만 그 글을 책의 주인인 외삼촌이 그렇게 썼을까? 아니면 외삼촌의 친구가 썼던 그 책을 외삼촌이 돌려주지 않고, 마침 조카가 빌려 달라는 말에 스스럼 없이 내어줬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헌책을 읽는다는 것은 가끔 이런 스릴과 상상을 가능케 한다. 그리고 꼭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밑줄 거 놓은 것만 봐도 '이 사람은 여기다 밑줄을 거 놨군' 하며 왜, 무슨 생각으로 여기다 글을 써 놨을까? 그 사람의 생각을 알고 싶고, 따라가고 싶다.    
지금은 그런 낭만이 많이 없어졌다. 누가 촌스럽게 그런 식으로 사랑을 고백한단 말인가? 지금도 헌책방을 가면 이런 광경을 목도할 수 있을까? 있으면 좋겠지만, 왠지 모르게 기대가 되지는 않는다.
요즘엔 인터넷에서도 쉽게 헌책을 구할 수 있게 되었는데, 싸게 살 수 있어서 좋기는 한데, 때가 얼마나 탓느냐, 밑줄 유무 정도를 따져서 깨끗한 책만을 선호하게 되니 솔직히 매력이 없어졌다. 헌책이라면 적어도 이런 사람의 손때가 묻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깨끗한 새책을 살 수가 있는데 일부러 더러운 책을 산다는 건 팔푼이나 하는 짓 같아 싫다. 그러다 보니  매번 책에 줄을 쳐가며 읽는 나는 감히 팔 생각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줄친 책을 거져라면 모를까 돈을 주고 살까. 그러다 보니 손때 묻고 낙서가 되어 있는 책은 거들떠도 보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또 생각해 보라. 어떤 사람은 아예 팔 것을 생각해서 새책처럼 보는 사람이 있는데, 단지 팔 때 높은 가격을 받기 위해 고이고이 본다면 얼마나 불편하고 신경 쓰이는 일인가. 
이렇게 헌책을 산다는 건 그것을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에게 그다지 편하고 좋은 일만은 아니게 되었다.   
책은 어차피 사람의 손을 타기 시작하면 그 순간 헌책이 되는 것이다. 오프라인 서점 매대에 위용을 자랑하는 잘난 새책도 비닐로 싸지 않는 이상, 하루종일 누군가의 손에 만지작거림을 당했을 테니 엄밀히 말하면 새책은 아니다. 그러니 너무 깨끗한 책만 좋아하고, 너무 깨끗하게만 다루려 하지는 말자. 인간적이라는 것은 깨끗함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낙낙하고, 넉넉함에 있는 것이 아닌가. 
누구가에겐 헌책방에서(또는 빌려 있는) 책에서 그런 인간적인 낙서를 발견하는 하는 기쁨 정도는 남겨 줘도 괜찮지 않을까? 혹시라도 세상을 허무하게 여기는 사람이 헌책방에서 누군가의 책에 써놓은 낙서를 읽고 삶의 이유를 발견한다면 그것도 좋은 일은 아닌가.    

누가 저자 자필 사인본을 헌책방에 팔까? 

책을 읽으니 저자가, 저자 자필 사인본에 대해 다룬 내용이 나온다.
그렇다. 헌책에서 원래 책주인의 낙서나 밑줄의 인간적인 흔적을 발견하는 것도 좋지만, 마침 손에 넣은 헌책이 저자의 친필 사인이 들어가 있다면 그건 완전대박일 것이다(물론 난 아직 그 대박의 대열에 참여해 본적이 없다). 요즘엔 옛날과 같지 않아서, 저자들이 자신의 책을 홍보하기 위해 적극 강연회나 사인회에 나서는 추세라 사인 받기가 많이 수월해졌다. 저자 사인본이라면 나도 몇 권 가지고 있는데, 작가 김훈이나 황석영 씨의 사인은 물론이고, 은희경 씨, 성석제 씨, 김중혁 씨 등의 사인본을 가지고 있고, 이은조 작가의 사인본도 가지고 있다. 물론 찾아보면 더 있을 것 같다.  그
가장 인상적인 사인은 김중혁 작가의 사인이다. <악기들의 도서관>이란 자신의 소설집에 한 사인인데, 무슨 그림 같기도하고 도형 같기도 한 사인이라 기억에 남는다. 이렇게 말하자니 사인을 받을 뻔 하다가 포기한 작가도 몇있다. 그때 나는 왜  받지 않았을까? 받을걸...  

하지만 중요한 순간을 놓치지 않은 사인도 있다. 이미 몇 번 자랑한 적도 있지만,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르 클레지오가 <혁명>이란 작품을 썼을 때 받은 사인이다. 이건 그가 노벨 문학상을 받기 전에 받은 사인으로, 그후 그의 수상 소식을 듣고 쾌재를 부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 내겐 좀 특별한 사인본이 있다. <매튜 본과 그의 날개AMP>라는 책의 역자로 부터 받은 사인이다. 사실 이 책을 번역한 사람이 예전에 내가 모처에서 연극 대본을 썼을 때, 연출을 했던 친구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사인이 아니다. 그가 친필로 쓴 인삿말이다. 
꼭 그러리라는 법은 없을 텐데, 역자인 경우 자신의 책이 아니라고 생각하는지 사인 보다는 인삿말을 주로 많이 쓰는 것 같다. 예전에 번역가 박은영 씨도 자신이 번역한 첫책을 내게 선물했을 때 간단한 인삿말로 서명을 대신했다. 아무튼 그와 나는 꼭 일년 동안 작가와 연출가로 함께 활동을 했는데, 후에 우연히 교회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땐 공교롭게도 이책이 나온지 얼마되지 않아서 였다. 그냥 인사만하고 지나칠 수 있었던 것을 굳이 자기 차가 있는 곳으로 나를 불러 이 책을 선물해 주는 것이었다. 어찌나 고맙고, 미안했던지. 나 같이 자격없는 사람에게 이런...! 순간, 함께 있었을 때 견원지간으로 엄청 싸웠던 일이 그 순간 주마등 같이 지나갔다. 그는 그 인삿말 끝에, 이 책을 읽고 독후감 제출해 달라는 너스레를 직접 글로 남기기도 했는데, 그후 그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 정말 독후감을 썼다면 다시 만날 수 있었을까?  
이렇게 모인 저자 친필 사인본은 아직까지 한번도 팔거나 누구에게 양도한 적이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팔 생각도 없고. 하지만 이사 한 번 하면 이 책들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정신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저자 친필 사인본은 우리 나라에선 동일한 가격에 팔려 나간다고 한다. 그런데 비해 외국 헌책방에선 따로 분류에 높은 가격에 흥정도 할 수 있고, 아예 저자가 자신의 사인본을 직접 팔기도 한단다. 물론 아주 소량으로. 우리도 이런 유통 차별화가 있으면 좋지 않을까? 물론 대박이 달리 대박이겠는가. 기왕이면 다홍치마의 행운이면 좋은 일이겠지. 이럴 경우 헌책의 개념이 파는 사람이 먼저인가, 사는 사람 위주여야 하는가,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나는 정말 책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래도 이 책의 미덕은 책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도록 시야를 넓혀준 것이 있지 않나 싶다.  솔직히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책에 관심을 가지고 지금까지 읽어 왔다면 나도 얕지만은 않은 감식안을 가졌다고 자부심을 가질 법도 하겠다. 나의 감식안이란 서너 가지로 분류되기도 하는데, 책이라고 다 피가되고 살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책은 벌써 때깔부터도 좋지 않아 킬링 타임용 목록에도 들어가지 못한다. 이건 감식안을 내세우고 말고도 없다. 그건 차치하고라도, 가장 흔하게 감식안을 발휘하는 건, 이 책이 내가 읽을만한가 아닌가를 빨리 캐치해 내는 것일 것이다. 그것을 아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좀 과장해서 빛의 속도랄까.ㅋ 이 작가라면 무조건 산다로 부터 시작해서, 표지에서도 발견할 수도 있고, 어떤 책으로 분류되고 있느냐에 따라서도 그것을 알 수가 있다. 다음으론, 좋은 책이긴한데 기억했다가 나중에 조금씩 읽을 책. 이 책은 절대로 내가 못 읽을 책. 이 책은 읽어도 그만이고, 안 읽어도 상관없는 책. 등등. 
때론 이런 감식안을 일부러 흐리게 하는 경우도 있다. 말하자면 가끔은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분야의 책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것은 주로 내 돈이 들어가지 않는 각 출판사에서 보내주는 서평단 책들이다(이건 또 얼마나 좋은가, 아무리 책을 좋아해도 내가 쉬 읽지 못할 책에 현금을 쓰는 경우는 쉽지 않다). 그렇게 해서 읽게될 경우 나의 기대 이상을 충족시키는 경우는 그리 많지가 않은데, 그중 반수 정도는 책이 정말 별로여서일 수도 있지만, 미쳐야 미친다고 내가 먼저 이건 별로일 거라고 미리 마음 먹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나의 감식안 끝에 남는 생각은, 나는 의외로 책을 넓게 고루 읽어내지 못하며, 갈수록 편견쟁이가 되가는 확인 뿐이다. 그러면서 책을 닥치는대로 읽는다는 사람보면 존경스럽기도 하지만, 한편 그게 가능할까 의문스럽기도 하다.  

당신의 서가에 이 책을...       

이 책의 미덕은 책에 대한 가치를 재평가하고 그것을 알리는 것에 있지 않나 싶다. 이를테면, 당신네들이 깨끗한 신간들에게만 눈을 돌릴 때, 이 좋은 책들은 당신들에게서 멀어져갔고 사장되려고 하고 있다고 다시금 일깨우는 것 같다. 구관이 명관이랬다고 명불허전은 역시 오래된 책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좋은 건 오래 간다는 말을 유일하게 비껴가는 것도 책이라고 생각한다. 아, 이 모순을 어찌하랴.ㅜ 
그래도 요즘엔 절판된 책이더라도 드물게는 다시 복간되는 경우도 있으니 다행이다. 하지만 책은 꼭 절판된 책에 관해서만 다루지 않았다. 아직 절판되지 않는 책에 대해서도 소개를 해놓고 있는데, 이것은 뒤집어 보면 당신들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언제 절판될지 모른다는 경고를 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 한가지 미덕이 있다면, 이 책은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그 방법론도 더불어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중, 앞에서 나는 감식안이 어쩌구 떠들었는데, 나의 감식안을 흐리게 만드는 것 중 치명적인 건, 독서력을 키우지 않고 수집력을 키워 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빠지기 쉬운 일종의 크레바스요 동시에 허영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에 대해 저자는 처음엔 책은 한꺼번에 사지 말고, 한번에 한 두 권의 책을 사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책을 덮을 때쯤 가서는, 당장 읽지 않을 책을 미리 사 두라고도 말한다. 좋은 책은 가까이 두면 언젠가는 반드시 읽게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257p). 그렇다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까? 나 같은 경우도 언젠가 읽을 생각을 하고 좋은 책을 사들인 적이 있는데, 아직까지 그 좋은 책을 언젠가는 읽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앞으로도 사정이 허락되는대로 사는 게 옳을까? 하긴, 그도 절판되면 못 보고, 그 책에 가치는 높아지는 것이니, 저자의 말은 새겨둘만 하다. 그리고 인간이 부릴 수 있는 허영 중에, 책을 모으는 허영은 다른 허영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렇지 않나?ㅋ           

저자는 고수답게 책에 대한 좋은 카페나 블로그도 소개를 해놓고 있다. 그가 고수가 맞는 게 알라딘의 로쟈님의 서재 소개도 빼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ㅋ 
저자의 찰진 언어가 정말 읽기가 좋다. 강추다!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1-11-12 1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12 2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잘잘라 2011-11-12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제목이 맘에 들어요. '오래된 새책'
저는 새책을 좋아하는데 오래된 책도 좋거든요.

음~ 요즘은 성공, 실패. 판도가 너무 빨리 결정나는 느낌이예요.
아는 분이 이번에 수능 시험감독 들어갔다가 한 학생이 시험 5분 남겨놓고 답안지 작성을 다 못했다고 울면서 시간을 더 달라고 사정하는데 규정상 그럴 수가 없으니까 억지로 답안지를 걷어가지고 와서 마음이 너무 안좋다고 술 한잔 해야겠다는 말을 하더라구요.

이 책은 그러니까 지금은 절판되서 볼 수 없는 책에 대한 얘기인가요?
아니면 절판됐다가 다시 나온 책에 대한 얘기인가요?
섞여있나요?

stella.K 2011-11-12 20:44   좋아요 0 | URL
크~ 정말 안타깝네요. 그 아이의 일생이 달린 문젠데
단 5분도 더 줄 수가 없었단 말인가요?ㅠ

네. 섞여 있어요. 이책 정말 괜찮아요. 꼭 한 번 보세요.^^

아이리시스 2011-11-13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분 더.. 그건 안타까움과는 별개로 큰일 날 일이에요.ㅋㅋㅋ 절판되는 건 안팔려서 새로 안찍는 건데 우리가 그리워하는 책이면 왜 새로 안 찍지..ㅜㅜ 모르는 책, 혼자서 찾지 못할 책을 알려주는 책은 언제나 좋아요.^^

stella.K 2011-11-13 13:3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사람이 5분 뒤, 아니 1분 뒤를 가늠할 수 없는 건데
어쨌든 사연 들으니 그 학생이나 선생님이나 안타까워서리...ㅜ
복간이 되는 책도 있어 좋긴한데 그 확률도 매우 낫겠죠?
그러니까 읽고 싶은 책은 돈 있을 때 얼른얼른 사 놔야돼요.
그런데 저자는 이런 말도 해요. 책 수집벽이 있는 사람은
사면을 책으로 도배해 놓고, 어느 날 이걸 싹 팔아버린데요.
갑자기 등꼴이 오싹해지더군요. 마치 정신병 같아서.
그런데 내가 그럴 활률이 좀 있는 것 같아요.ㅋㅋ
물론 아직까지는 사이판 친구에게 보내주고 있어
건강한 정신생활을 유지한다고 자부하지만.ㅎㅎ

숲노래 2011-11-13 0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 친필 사인본이
같은 값에 다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책이 그닥 대수롭지 않다면
저자 친필 사인이 있든 없든
헌책방에서는 똑같은 책일 뿐이에요.

책이 값어치 있을 때에
저자 친필 사인이 있으면
더 값나갑니다.

이를테면, <백범일지>는 '백범 친필 사인'이 들지 않은 책이
훨씬 적기 때문에, 백범 사인이 없는 <백범일지> 첫판이
훨씬 값어치가 있습니다.

헌책방에서는 날마다 다루는 책이 무척 많으니까
애써 저자 친필 사인까지 훑지 않아요.
그리고, 아직까지도 '친필 사인' 깃든 책을
'낙서'로 여기며 안 좋아하는 독자가 있어서
이 친필 사인을 북 찢기도 합니다.

stella.K 2011-11-13 13:24   좋아요 0 | URL
그래요. 된장님께서 하신 말씀 저자도 말하고 있죠.
그렇다면 님도 이 책을 읽으셨나요?
아님 다른 곳에서 듣는 곳이 있으신가요?
더 아시는 것이 있으시면 한 수 들려주시죠.^^

cyrus 2011-11-13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 대한 책 이야기', 저 역시 독서를 좋아해서 그런지 이런 책들을 좋아해요,
읽어보면 제 독서습관이랑 일치하는 부분이 있으면
괜히 반갑고 기분 좋아지게 되고요ㅎㅎ
헌책방 이야기도 좋고요. '윗분'이 쓰셨던 헌책방에 대한 책을 읽은 덕분에
헌책방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

stella.K 2011-11-13 13:22   좋아요 0 | URL
책에 대한 책은 몇권째 읽는지 모른다.
그건 아마 퍼도 퍼도 다 못 풀 것 같아. 그지?
참, 너 헌책방 좋아하지?
너한테 딱 잘 어울리는 책이 될 것 같아. 읽어 봐.^^

페크pek0501 2011-11-13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보고 읽어 보라고 하신 책의 리뷰를 드디어 쓰셨군요. 이렇게 길 수가... 그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요.(긴 글이 많던데요...) 이렇게 긴 리뷰의 좋은 점은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죠.

저는 (부끄럽습니만) 새 책만을 좋아해요, 아직까지. 새 책의 빳빳한 종이의 질감을 광적으로 좋아해요. 그리고 책의 외모에 반하기도 하죠. 잘 생긴 것 같아서. 헌 책에 관심을 안 갖는 걸 보면 진정한 독서광은 아닌 듯해요. 하하

stella.K 2011-11-13 13:20   좋아요 0 | URL
참, 페크님께 소개해 드린 책이 이거였죠. 정신두...ㅋ
이거 며칠에 나눠 쓴 거예요.
꼭 그렇게 쓸려고 해서 그런 건 아닌데
그렇게 나눠 쓰니까 문맥이 훨씬 정갈해지더군요.
저도 앉은 자리에서 다 써야 편하게 느끼는데
이 책은 너무 좋아서 그런지 생각나는 게 많더군요.
새 책의 빳빳한 질감 무시 못하죠.
사실 헌책은 인간적여서 좋긴한데 질감은 새 책이 더 좋아요.^^

이진 2011-11-13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왕 벌써 리뷰를 쓰셨군요 ㅠㅠ 저도 분발해야겠습니다! 이렇게 리뷰를 잘 쓰시다니요.. 제가 꿀리지 않습니까 ㅋㅋ

stella.K 2011-11-13 13:15   좋아요 0 | URL
ㅎㅎ 그렇지 않아도 소이진님 서재에 잠깐 들렸다 오는 길인데...
항상 이렇게 잘 쓰는 거 아녜요.
생각난김에 이렇게 쓴 거고, 얼렁뚱땅 쓰는 리뷰도 많죠.
16일까지니까 조금 시간이 있네요.
분발해서 쓰세용.^^

2011-12-12 1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12 1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올 댓 드라마티스트 - 대한민국을 열광시킨 16인의 드라마 작가 올댓시리즈 2
스토리텔링콘텐츠연구소 지음 / 이야기공작소 / 201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제부턴가, 작가의 삶 또는 작가가 어떻게 글을 쓰는가에 관한 책을 즐겨 읽게 됐다. 아무래도 글쓰는 것에 관심을 갖다보니 그런 것에 관심을 갖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  그 중에도 소설가에 집중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디 작가가 소설가만있겠는가? 시인도 있고, 시나리오 작가도 있으며, 드라마 작가도 있다.  그래도 작가를 다룸에 있어 소설가들이 단연 많이 다루어지고 있음도 사실이다. 그런 와중에 이 책은 우리나라의 대표 드라마 작가 16인을 다루고 있고,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은근히 재밌다. 그리고 이책은 대표 작가 16인의 개인적 고백을 담은 것이 아니라, 글쓴이가 따로 있어서 이들을 취재하고 인터뷰한 것을 정리한 책이다.

닥치고 드라마...이 책은 꼭 그러려고 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비교적 원로급들을 앞에 배치해 놓았다.  원로이면서 현역에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는 드라마 작가로는 김수현 작가를 따라갈 사람이 없을 것이다. 지난 70년 대부터 지금까지 아무리 드라마를 즐겨 보지 않는 사람이라도 그녀의 작품 한 두 작품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사랑과 진실>, <사랑과 야망> 두 드라마는 너무나 유명해서 드라마가 방영되는 시간대면 수돗물 사용량이 현격히 줄어든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였다.  내가 그녀의 작품에 매료되기 시작한 작품이 있다면, TBC가 문을 닫기 전 방송했던 <아롱이 다롱이>가 아니었나 싶다. 어찌나 드라마가 재밌고 웃기던지,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본 기억이 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는 그녀의 작품을 보지 않게 됐다. 그것은 그녀의 드라마가 싫어서라기 보단 사춘기의 여파여서인지 모든 것에 시니컬해졌다. 그래서 TV드라마도 시큰둥해진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오랜만에 그녀의 드라마를 봤는데, 배우들의 대사가 엄청 많아졌고 속사포처럼 쏘아대는데 그만 질려버렸다.  그게 어찌나 거슬리던지, 가득이나 드라마를 보지 않았던 내가 역시 나는 드라마를 보지 말았어야 했어. 하며 여전히 다른 모든 드라마도 보지 않았다. 모름지기 드라마는 배우들의 연기가 자연스러워야 하는데, 김수현의 드라마는 과연 일상에서도 저런 대사를 쓸까 의문이 들 정도로 대사가 많고 경직돼 있다는 생각을 했다.  마치 대사가 적어 한풀이라도 하듯, 지문조차도 구어체로 살려 배우들로 하여금 읊조리게 만들어 놨으니 얼마나 거북한가.
지금도 그런 선입견은 여전하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우리나라에서 드라마를 말할 때 김수현을 빼놓고 말하기는 어렵다. 원래 소설이나 드라마나 상황을  극단으로 몰고 갈 수 있는데까지 몰고 가야한다. 그러나 비슷한 상황을 다루더라도 어떤 작가는 그걸 막장으로 몰고 가지만, 김수현 드라마는 '명품'이란 이름을 달고 나온다.
특히 몇년 전에 방송됐던 <내 남자의 여자>를 보고 두 손, 두 발 다 들었던 적이 있다. 그건, 친구의 남편을 사랑하는 어찌보면 막장 드라마적 요소들이 많다. 장면도 간혹 파격적이기도 하고. 하지만 어느 새 작가의 트레이드마크인 속사포적 대사는 마치 연극에서 보암직한 대사로 바뀌어 있었고, 고도로 등장인물에 집중하다 보니 막장적 요소들을 거둬내고 보는 내내 정말 괜찮은 연극 한편을 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과연 '김수현이다!' 탄성을 지르게 만들었다.  모르긴 해도 그녀는 훗날 한국 드라마사(史)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질 작가중의 한 사람이고, 한 술 더 뜨자면 '현대의 (한국의)셰익스피어'쯤으로도 추앙 받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믿거나 말거나).   
하지만 그렇게 그 작품을 통해 김수현 작가에 대한 재발견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작품을 보는 것은 늘 나를 망설이게 만든다. 그래서 그 이후 몇 개의 작품이 더 나왔지만 건너 뛰었다. 그리고 마침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새로운 드라마가 시작이 되었다.  정말이지 몇 년만에 다시 보게 되는 것이다. 물론 거기엔 작가가 김수현이라서라기 보다는, 수애라는 여배우가 일등공신의 역할을 했지만. 

책에 보면 그녀는 굉장히 쉽게 글을 쓴다고 나와 있다. 작가라면 머리를 쮜어 뜯어가며 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그녀의 머리속에선 어떻게 써야할지를 다 그려놓고 쓰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것은 또 오래 전에 읽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업과 비슷하다. 그는 이미 머리속에 자신이 만들 작품을 그려놓고 나머지 쓸데없는 부분을 깍아내는 것처럼 작업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기까지 김수현 작가가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 공부해 놓은 분량은 실로 엄청나다고 한다. 이렇게 볼 때 배우들이 쏟아 놓는 대사과잉이 이해가 갈 것도 같다. 그녀는 또한 쪽대본을 쓰지 않기로 유명한데, 작가들의 쪽대본이 드라마의 질을 얼마나 저해하는지를 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녀의 드라마는 명품 드라마의 조건을 충분히 갖췄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의 드라마를 볼 것 같으면 입 닥치고 볼 일이다.   

취재력... 소설을 쓰는 작가든 드라마를 쓰는 작가든 취재력은 거의 제1의 조건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를 빼놓고라면 말이다. 책은 비교적 초두에 김운경 작가 편을 실었다. 김운경 작가의 대표작이라면 <서울 뚝배기>나 <서울의 달>이 있고, 이것 역시 누구든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의 드라마가 평가를 받는다면 그건 놀라운 현장감이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다 그의 발빠른 취재와 꼼꼼한 관찰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  재밌는 건, 그가 드라마 <형>을 집필할 때 그는 실제로 거지 소굴에 들어가 봤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거기서 실제로 걸신(乞神)의 실체를 보았다고 한다. 말하자면 거지는 그냥 가난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실제로 귀신이 들려야 하는데 그게 걸리면 잘 차려진 깔끔한 (얻어 먹는) 음식 보다,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려진 더러운 음식을 더 좋아한다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건, 그런 더러운 음식을 먹어도 건강에 아무런 이상이 없이 잘 산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걸신도 한번 그 육체를 떠나면 더 이상 더러운 음식을 먹을 수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한 번 병에 걸리면 세상을 뜬다고 한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캬~!"하고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가 김운경 작가가 아니면 이 사실을 어떻게 알겠는가.
그는 이렇게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리 고급 취향이 아니다.
그의 관심은 항상 거리와 시장에 있다. 노숙자의 이야기를 하려면 서울역으로 가서 노숙자들과 보름은 같이 뒹굴어해 한다고 말한다. 과연 작가는 그냥 작가가 되는 것이 아니구나 싶었다.

이렇게 김운경 작가가 서민적이거나 밑바닥의 삶에서 취재를 한다면 보다 전문적인 영역에서 발군의 취재력을 자랑하는 작가가 있다면 <종합병원>을 쓴 최완규 작가를 빼놓을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는 그 작품을 쓸 때 아예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다고 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어느 의사는 취재에 몰두한 저를 '짐승처럼 산다'고까지 표현했으니까. 뭔가 인생의 변화를 꿈꾸다면 어느 순간은 미친 듯이 살아야 가능하지 않을까요? 지금도 제 노하우는, 아니 저뿐만 아니라 좋은 작품을 쓰는 작가들의 노하우는 '취재'라고 말하고 싶어요. 많은 사람들이 그 중요성을 말하지만, 더 많은 작가들이 자기 감각만 믿고 쓰지요."(124p)

그건 정말 맞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누군지 그를 두고 '취재 짐승'이라 했을 정도라니 알만도 하다. 하지만 나중에 그도 고백하지만, 때론 지나치게 많은 취재가 작품을 쓰는데 방해가 될 때도 있다. 그래서 작품에서의 취재는 빙산의 일각으로 표현하란 말이 있다. 좀 억울할 법도 할 것이다. 취재는 잔뜩인데 드러나는 건 아주 적으니 말이다. 하지만 문학적, 문화적 소양이 부족한 작가들이 결국 전체 드라마의 질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많으니(130p) 그것은 작가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고 여겨야 할 것이다. 

김도우 작가는 여성 작가였다...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안 것은, 우리가 그렇게도 재밌게 봤던 <내 이름은 김삼순>의 작가가 여자였다는 것이다. 난 이름이 그래서 남성 작가라는 것에 추호의 의심이 없었다.  그리고 남자면서 이렇게 지극히(!) 여성적인 작품을 쓰다니. 나름 한 번 지켜봐야할 작가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여성 작가라니. 깜빡 속은 느낌이다. 이렇게 우리나라 방송엔 여성 작가들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요즘엔 매체의 발달로 인해 그 드라마에 누가 나오느냐도 중요하지만, 누가 썼느냐도 중요해졌다. 이건 묘하게도 영화는 감독이 누구냐가 (배우 보다 더)중요하지만 드라마에선 연출 보다 작가가 더 우위를 점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리고 그 정점에 여성 작가들이 포진해 있다.  왜 그런가를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드라마의 절대 다수가 여성 시청자들이라는 점과, 여성의 감성, 여성의 어휘력 등이 주 강점으로 떠오르기 때문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드라마의 구성이 주로 사랑 아니면 가족에 촛점이 맞춰져 있는데 그 모든 것들은 역시 남자 보단 여자가 더 강하다. 그러니 여성 작가가 중요해질 수 밖에. 
그래서 그럴까, 난 그다지 드라마를 즐겨 보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이 작가의 작품이 시작한다고 하면 그냥 넘어가지 않는 작가가 있다. 그것은 노희경과 흔히 홍자매라고 일컬어지는 홍진아, 홍자람의 작품이다.
노희경은 초기에 우리나라 하루의 방송이 마쳐지면 애국가가 나오는데 그것의 시청률 보다 못한 시청률을 가지고 있다는 오명이 있다. 사실 나도 노희경을 처음부터 좋아하지 않았고, 그런 작가가 있는 줄도 몰랐다. 지금도 그녀는 넓은 시청자층을 확보하지 못하는 작가다. 소위 말하는 매니아들만 좋아하는 작가란 말이다. 하지만 최근 그 매니아층이 점점 두꺼워지고 다소 넓어지기도 했다. 잘된 일이다. 그녀의 작품은 상당히 감성적이고, 시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면을 바라본다는 것에서 어떤 점에선 김수현을 닮아 있기도 하다. 하지만 배종옥과 서로 목을 졸라가며 싸우고, 표민수 감독과 친하게 지낸다고 하니 정말 놀랍기도 하고, 기이하기도 하다. 원래 감독과 작가는 견원지간이라 할만큼 사이가 안 좋다고도 하는데, 하긴 사람이 좋고 싫은 것에 무슨 법칙이 있는 것도 아니니 꼭 나쁘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와 배우가 서로 목을 졸라가며 싸우는 것이 지금도 방송가에서 회자되고 있다니 기가막힐 노릇이다. 그때 노희경이 한치의 양보도 없이 소리를 질렀단다. "연기를 제대로 하란 말이야!" 이것이 배종옥이 <거짓말>을 했을 때라고 한다. 역시 요즘 작가는 배포도 있어야 하는가 보다. 옛날엔 어둠속의 좀비같기도 하고, 대인기피증에 걸린 고독한 한마리의 늑대 같지 않았던가? 오래 전, 작가 김수현이 연출에도 관여를 한다고 해서 놀란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배우와 싸우는 작가도 있고, 방송가는 정말 요지경속인가 보다.
그렇지 않아도 노희경이 표민수 작가에게 한 말이 있었다고 한다. 세상에 적응 안 되는 게 세 가지가 있는데 사랑과 뱀, 배종옥이라고(166p). 그 부분 읽고 그저 웃는 수 밖에. 크크. 원래 여자는 싸우면 싸울수록 멀어진다고 하는데, 확실히 작가의 유전자와 배우의 유전자는 좀 특이한데가 있는지 배종옥과 노희경은 같은 여자인데도 지금 잘 지낸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노희경 작품에 배종옥이 거의 빠지지 않고 출연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드라마의 미래... 내가 홍자매의 작품을 좋아하게 된 것은 얼마되지 않는다. 그것은 <베토벤 바이러스>를 보고 나서인데 그것이 눈에 들어왔을 때 좀 지난 작품이긴 하지만 <태능선수촌> 늦게나마 챙겨 보았다. 그것은 다른 작가들이 사랑 타령, 불륜, 막장 드라마를 쓰고 있을 때, 그녀들은 소재의 독특함으로 승부수를 내고 있었다는 것이다.
드라마의 소재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요즘 우리나라 드라마는 그야말로 비약적인 발전을 하고 있다. 그렇게 소재의 다양성은 있어서 좋은데 아직도 그 주제면에선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항상 사랑과 배신 아니면 주인공의 탄생 비화. 뭐 이런 것들이 주다. 그래도 이것에 변화를 주시하게 만들었던 것이 이기원 작가의 <하얀거탑>이라고 생각한다. 메디컬 드라마를 우리가 못 봤나? 그래도 항상 거기엔 청춘의 낭만과 고민, 사랑만이 있어왔을 뿐이다. 하다못해 취재 짐승이라던 최완규의 <종합병원>도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으니까. 소재는 다양해졌어도 주제가 그렇고 그러니 그 밥에 그나물이란 말이 나온다. 참, 내가 드라마를 안 보게된 결정적인 계기도 내가 꼭 시니컬해서만도 아니다. 그래. 그 밥의 그 나물이어서 안 본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기원 작가는 흔히 다룰 법한 이야기를 벗어나고 있었다. 인간이 갖는 욕망, 인간의 생명의 유한성 등을 가장 극적으로 잘 보여줬다. 물론 이 작품은 원작에 힘입은 바 크지만 작가가 어떻게 각색을 하느냐에 따라 보여지는 건 달라질 수가 있다. 그때 그걸 보고 얼마나 열광했던지.  
물론 난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드라마의 미래가 어떠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그것은 그 일을 하는 사람의 몫일 것이다. 하지만 바라기는 그렇게 취재 짐승이란 말을 듣고, 고생 고생해서 만들었는데 적어도 그 밥에 그 나물이란 말은 듣지 말아야 하지 않은가. 좀 더 그 부분에서 노력을 해 주었으면 한다. 

                                                               *           *           *  

사실 소설이나 드라마나 스토리를 다룬다는 점에서 같기 때문에 드라마 작가들이 고민은 소설가들의 고민과 별반 다르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조언하는 건 소설가나 드라마 작가나 비슷하다.  하지만 워낙 이 방면의 책을 좋아해서 그런지 읽을 때마다 새롭고 재미있다. 더구나 소설가는 혼자하는 작업이지만, 드라마 작가는 직접 부딪혀 가면서 해야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그들의 고민은 조금 더 치열해 보인다. 그것은 최순식 작가의 말처럼, 드라마 작가는 그냥 스토리텔링이 아니라 비주얼 스토리텔링을 다루어야 하는 작가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래서 그럴까, 나는 몇년 전, 겉멋이 들어 시나리오를 잠시 공부한 적이 있었다. 그때 얼떨결에 시나리오 한편을 쓰고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고 다시는 시나리오 작가를 함부로 욕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 것처럼, 같은 비주얼 스토리를 다룬다는 점에서 드라마 작가 역시 함부로 뭐라고 일이 아니다.  
작가들 사이엔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궁즉변窮卽變, 변즉통變卽通, 통즉구通卽久란 말이 있다고 한다. 즉 '궁하면 변해야 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 좋은 작품을 쓰고 싶은 열망은 시청자 보다 작가들이 더할 것이다. 그러니 가능성 있는 작가라면 좀 더 인내를 가지고 묵묵히 지켜봐 줄 일이다. 한국의 셰익스피어라 불릴만한 김수현도 매번 성공적인 작품만 써왔던 것은 아니다.  그렇잖아도 한류 바람을 타고 우리나라 드라마의 위상은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 드라마는 더 많이 발전할 것이다. 그러니 시청자로서 너무 쉽게, 너무 빨리 뭐라고 하는 건 우리 드라마를 대하는 태도는 아니다. 어차피 어설프게 만든 드라마는 도태되기 마련이니까.   

나는 이 책이 다룬 작가들에 비해 비교적 분량이 작다고 생각했다. 고작 271p 정도를 쓰고 있으니. 하지만 글쓴이들이 군더더기없이 자기가 다룬 작가에 대해 잘 썼다고 봐진다. 작가지망생은 물론이고 작가들의 이면을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잘 읽혀지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강추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11-11-06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수현 작의 <내 남자의 여자>를 보고 좀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그 작가는 주인공 여자가 잘못을 저지른 남자를 상대로 복수하는 장면을 즐겨 쓴 것 같았고, 승자와 패자의 구분이 확실했어요. 선악의 구도도 확실하고... 마치 남자들을 못마땅해하듯... 그런데 이 드라마에선 승자가 없는 것, 그러니까 배종옥도 그의 남편의 사랑을 차지한 김희애도 승자가 되지 않고 패자가 되어버리죠. 남편도 미워할 수만은 없는 존재가 되고...작가가 김희애마저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 게 느껴져요. 다시 말해 악을 저지른 자도 연민의 대상으로 볼 줄 아는 넓은 아량이 김수현 작가에게 생겼다고 할까요? 그건 작가가 나이 들어서가 아닐까 싶었어요.

우린 남의 남편을 빼앗은 사람은 늘 행복하고 승자의 위치에 있는 걸로 알기 쉽지만, 사실은 완전히 빼앗는 건 불가능해서 더 고독하고 더 비참하다는 것을 김희애의 모습에서 알게 되죠. 알고 보면 그녀도 불쌍한 존재라는 것... 사랑의 노예일 뿐이라는 것...

이 책, 재미있겠는데요. 저도 한때 노희경 작가를 좋아했어요. 대사가 외우고 싶을 정도로 끝내줘서요.

잘 읽고 갑니다. 제가 첫 추천일 것 같은데요. ㅋㅋ

stella.K 2011-11-06 20:05   좋아요 0 | URL
오, 고맙습니다.
저는 쓰기는 열심히 쓰는데 추천은 많이 못 받아요.
왜 그럴까요? 어떤 땐 과외 받고 싶더라니까요.ㅋㅋ

맞아요. 그 드라마는 그랬죠.
무조건 김희애를 옹호하지도 않고.
결국 인간은 고독한 존재라는 건 말하기 위함이었을까요?
아무튼 그 드라마 정말 세 사람만 나오는 고도의 심리극을 보는 것
같아서 정말 인상 깊게 봤어요.
지금하는 '천일의 약속'은 그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맛은
그닥없는 것 같지만, 수애가 연기를 정말 잘하더군요.
그에 비해 김래원은 쫌...ㅋ

아이리시스 2011-11-07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일의 약속]은 첫 회가 정말 좋았어요. 이 책은 16인의 드라마 작가에 대해 하나하나 해부하는 거예요? 저는 드라마를 좋아하니까 재밌을 것 같아요.^^

stella.K 2011-11-07 18:20   좋아요 0 | URL
첫회가 어땠죠? 돌아서면 잊어버리니 원...ㅠ
그런데 이 드라마 지켜보고 싶어요.
수애 때문에라도.ㅋ
전 재밌게 읽었어요.
아이리시스님도 좋아하실 것 같아요.^^

아이리시스 2011-11-08 00:09   좋아요 0 | URL
음, 첫장면부터 "서연아, 나는 어떻게 하면 덜 나쁜 놈이 되면서 널 안을 수 있을까. 그 생각뿐이야."

"어쩔 땐 내가 그 욕심만으로 다인 것 같아."
등등.

그리구요, 베드씬 뒤에 나오는 만나서 싸우다가 키스하고 약혼날짜 잡혔다는 얘기 듣는 그 씬 전부요. 그러니까 헤어지기 전까지. 뒤로가야 할 구성이 앞에 오고 회상씬이 진행되어서 신선한 구성이라고 생각됐어요. 하지만 지금도 좋아요. 스토리는 확실히 [내 남자의 여자] 때보다는 허전한 느낌이에요. 저한테만 그런가.ㅜㅜ

stella.K 2011-11-08 13:01   좋아요 0 | URL
햐아~그걸 기억하고 있다닛!
대단해요. 그러고 보니까 생각나네요. 맞아요!
그 첫회 정말 독특했어요.
공을 많이 들인 티가 나요.
그런데 아이리시스님 말씀이 맞아요.
내 남자의 여자는 정말 빈틈이 없고, 찰진 맛이 나는데
이건 수애가 나오는 장면이나 대사가 아니면 어딘가 빈틈이 느껴져요.
특히 김래원은 영 적응이 안되더만요.
어제 기사 보니까 수애를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다며
이 드라마에 대해 힘들다고 징징대더만, 영 좀 보기가...ㅋㅋ

 
[무명 화가들의 반란, 민화]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무명화가들의 반란, 민화 정병모 교수의 민화읽기 1
정병모 지음 / 다할미디어 / 201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는 이책 글머리에 이런 말을 했다. "현대는 대중문화의 시대다. 팝 아티스트가 팝 아티스트가 세계를 이끌고 있고, 대중가수가 되기 위해 젊은이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고 있다. 고급문화가 대중문화로부터 역차별 받는 시대가 온 것이다." 라고.   하지만 이런 때는 이 시대에 처음 있어 왔던 건 아니다. 이미 19세기 무렵부터 있어 왔다. 저자는 그것의 답을 민화에서 찾고 있다.
민화는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근대사와 맥락을 같이 한다고 한다. 그 민화를 그리는 사람을 서민화가라고 하는데, 짐작하듯 서민화가는 어떤 권위에 구애 받지 않고 어떤 규범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오랜 세월 전통으로 굳어진 관습을 넘나들며, 그 형식을 재구성해 왔다고 한다. 고로 민화는 자유고, 흥취며, 풍자며 해학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익살스런 김홍도의 <서당> 그림도 민화다.  그밖에  신윤복을 비롯한 풍속화가들의 작품이 민화에 속한다.  

이책은 민화에 대한 책인만큼 그림을 많이 수록해 놓고 있는데, 민화라고 해도 작가들마다 그 필치가 참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고급스럽진 않고, 약간은 조악한듯도 하다. 그래서 어찌보면 뭔가를 베끼고 있다는 느낌도 들고, 주류에서 비껴 나갔다는 느낌도 든다. 하지만 그래서 친근감 있기도 하고, 어찌보면 고급문화를 조롱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하지만 모든 서민화가들이 그런 필치의 그림을 그랬던 것은 아니다. 어떤 건 나름 정교하면서도 강렬하다는 느낌도 든다. 특히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1층의 붉은색 바탕에 하얀호랑이의 그림이 그것인데(209~210p),  이름하여 <사람은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고귀한 사람으로 되어 가는 것이다>란 작품이다. 이것은 현존하고 있는 민화를 그리는 서공임의 작품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현대 작가고 그 맥을 잇고 있다는 점에서 표현이 풍부하다는 느낌이 든다. 또한 제목이 그래서 그런가? 무언가를 강하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아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 볼 지경이었다.
하지만 소개해 놓은 작품들은 대체로 익살스럽다. 호랑이를 주제로한 그림들을 보면서, 세상에 호랑이를 이만큼 익살스럽게 그릴 수 있는 민족도 드물거란 생각이 든다. 용을 좋아했던 우리나라 옛 사람들의 심성이 고스란히 작품속에 베어나오기도 한다. 질펀하고 에로틱한 작품도 작품도 있다. 이것 역시 우리나라를 따라 올 작가들이 있을까 싶다. 또한 시대를 거스를 수 없어서일까? 불교적 농도도 때로 짙어 보인다.   

민화라고 하여 반드시 일상생활과 밀접했던 것마는 아니다. 반상의 구별없이 학문을 숭상했던 우리나라는 민화에도 그것들이 나타나 다양한 책거리 그림이 나타나고 있었다. 책거리는 일종의 책과 관련된 정물을 그린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책이 가지런히 꽂힌 서가를 병풍으로 만들어 방의 분위기를 더하니 나름 근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한창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뿌리 깊은 나무>의 드라마에 세종(한석규 분)이 사람들과 만나고 업무를 보는 방에 놓인 병풍이 바로 그것이다. 이건 여타의 조선을 배경으로한 드라마엔 나오지 않았던 소품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걸 보면서 이 드라마 새삼 제대로 만드는구나 싶어 반가웠다. 또한 이 책거리에도 에로틱한 분위기를 연출한 후기작품도 있으니, 하여간 우리나라는 알아줘야겠다는 생각에 속으로 킥킥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이런 좋은 구경 뒤에도 나름 아쉬움은 남는다. 이렇게 우리나라 민화와 작품에 대한 비교적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가 있어서 좋긴하지만, 이런 건 작품 중심이 아닌 그 그림을 그린 화가를 중심으로 꾸며졌다면 좀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어차피 우리는 조선 시대를 살지 않았으니 오래된 것은 다 귀한 것이 아니겠는가. 주류의 것이든 비주류의 것이든 말이다. 당시의 주류를 이루었던 화단은 무엇이며 그 가운데 민화가 어떻게 다른지를 안다면 좋지 않았을까? 작품마다 작가가 누군지, 이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고, 작품이 무엇인지를 알았더라면 좀 더 좋지 않았을까? 하긴, 저자도 한계였는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몇몇의 조선시대 화가를 제외해 놓고는 나머지 작품엔 누구의 작품이라고 밝혀 놓지도 못했다. 그만큼 당시의 무명화가들은 그야말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저 좋을대로 작품활동을 했을 것이다. 그저 쌀 한 됫박, 막걸리 한 병 값에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까? 주류 그림을 그렸던 사람들은 잡스럽다고 폄훼도 했겠지. 그러나 당시에 귀한 대접을 받았 건, 천한 대접을 받았 건 세월 지나면 잡스러운 것도 귀한 대접을 받을 때가 온다. 내가 오늘 본 그림이 세월지나 어떤 대접을 받을지 좀 더 깊은 안목으로 봐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선 그림 보는 안목도 끊임없이 키워나가야 한다.
지금까지 미술에 관련된 책을 그리 많이 봐온 건 아니지만, 봐온 것들고 차별성이 없어 조금은 아쉽다. 어디선가 본듯한 구성이 아쉬운 것이다. 그렇더라도 우리 그림을 보는 건 언제나 친근하고 반갑다. 한번쯤 봐 줄만 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2012-01-06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가도 같은 그림은
그림 그리던 '급/신분 낮은 사람'들이
양반 앞에서
양반이 시키는 대로 그려야 해서
나온 그림들이 아닐까 싶어요.

그림 그리던 사람이라면
굳이 책가도 같은 그림을
그리려 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해요.

오늘날보다 훨씬 아름다웠을
자연에서 '나와 같은 급/신분인 농사꾼과 고기잡이'들
살아가는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요.

민화와 얽힌 글은
아직까지 '조자용'이라는 분이 쓴 글을
넘어서지 못하는구나 싶어요.

나중에 한 번 헌책방에서
조자용 님 옛 글을 찾아서 읽어 보셔요~

stella.K 2012-01-06 13:00   좋아요 0 | URL
조자용이라...그렇군요. 기회되면 한번 찾아보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