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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푸드 - 삶의 허기를 채우는 영혼의 레시피 소울 시리즈 Soul Series 1
성석제 외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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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소울푸드란 무엇인가?

 

소울뮤직도 있고, 소울메이트도 있으니 소울푸드라고 왜 없겠는가.

그래도 소울푸드. 그리 낮설지 않은 단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는 못한 것 같다. 이책을 손에 들고서야 과연 그렇겠군. 고개를 끄덕였으니까.

소울푸드란 말하자면 유난히 집착하게 되는 음식. 그것이 불량식품이든, 양영식품이든 나에게 힘을 주는 음식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책은 나름 읽을만하다. 21인의 각계 명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과 그에 얽힌 사연을 소개하고 있다. 그냥 편하게 잠자기 전, 서너편씩 읽다가 자기에 좋은 책이다.

그런데 솔직히 다소 삐딱한 성격인 나는, 누구만 입인가? 이런 책을 굳이 명사들만 소개하고 있게. 뭐 그런 상대적인 불만 같은 것이 없지 않았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더니 이 말을 생각하기에 딱이다. 

그런데 또 이런 생각은 뭘 잘못 먹어서 드는 생각인지 모르겠다. 성격이 그래서라기 보다 먹는 음식에 살짝 돌리고 싶어진다. 왜 좀 마음이 그득하고 넉넉해서 모든 것을 예쁘게, 너그럽게 봐줄 수는 없는 걸까? 뭔가 기가 약한 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한다. 영혼과 육체는 밀접해서 기는 마음이나 생각을 다스린다고 해서 생겨지는 것은 아니고, 음식을 통해서도 그것을 보호하고 보충해 줘야만 할 때도 있다. 그러니 살기위해 먹는가, 먹기 위해 사는가 하는 질문은 그 자체가 필요가 없는 질문일 것이다. 

 

책소개에서도 잠시 언급을 했지만, TV 드라마 같은데서도 종종 클리셰처럼 차용하는, 동대문에서 뺨 맞고 남대문에서 화풀이 하는 것이 아니라, 집에 와서 양푼에 밥 두 공기쯤 넣고 있는 반찬, 없는 반찬 다 넣고 고추장에 비벼 우걱우걱 씹어 먹는 비빔밥은 그 먹는 모습만 봐도 뭔가 풍만한 마음을 갖게 한다. 왜 그렇게 동대문에서 뺨 맞으면 꼭 집에 들어와 비빔밥을 먹을까? 이건 아무래도 우리나라에만 있는 장면일듯 싶기도 하다. 다른 미드나 일드를 보라. 누구가 뺨 맞았다고 집에 와 비빔밥을 먹나. 비벼 먹는 것 자체도 없거니와 설혹 있다고 해도 우리나라 나물류가 없으니 뭘 넣고 비빌텐가? 스테이크에 감자, 옥수수, 스프 등을 양푼에 넣고 비빌 것인가? 그럼 개밥 되겠지. 그런 의미에서 나물 넣고 비비는 비빔밥은 역시 우리나라 최고의 음식임에 틀림없고, 그것 다 먹고 트림 한 번 하고, 커피로 입가심하면 속상한 건 잠시라도 잊을 수 있다. 그러니 이 또한 소울푸드로 손색이 없다.

 

밥성애란...?

 

하지만 난 밥성애가 나의 소울푸드라고 말하고 싶다.

밥성애가 뭐냐구? 밥과 모성애를 합친 말하자면 (리뷰를 쓰느라 급조한) 내가 만들어낸 신조어다. 

 

살면서 위기의 순간이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오래된 이야기지만, 역병과 같은 IMF를 우리집이라고 피해가지 않았다. 그 무렵 무슨 정신이었을까? 오빠가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융자를 받아 사업을 늘렸다 쫄딱 망해 먹었다. 그것을 가장 늦게 안 건 나였다. 무슨 얘긴가가 오빠와 엄마, 동생하고만 오고 갈뿐 나를 따돌리는 분위기였다. 그러다 뭔가 덜미가 잡혔고 그제서야 내막을 알게 되었다. 속이 상해 죽을 것만 같았다. 그때까지 시간을 엄수하는 나의 배꼽시계는 울리지 않았고, 밥이고 뭐고 먹을 생각이 도무지 나지 않았다. 이대로 굶어죽어도 모양새는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는데, 마침 집엔 아무도 없었다. 엄마도 속이 상하니 이모네를 가셨던 것 같고, 그렇게 혼자 얼마를 울었을까? 울고나니 기운이 빠졌고, 조금 더 있자니 허기가 몰려왔다. 나는 할 수 없이 주방으로 나와 밥을 차려 먹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때 먹은 음식이 먹다 남은 음식 쓸어넣은 비빔밥은 아니었다. 그냥 늘상 먹던 밥상 그대로다.

엄마는 필시 내가 어느만치 울고나면 밥을 차려 먹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전날까지 보지 못했던 반찬 한 두 가지가 더 추가가 되어 있었다. 그나마 밥을 먹고났더니 속이 한결 편해졌다. 배가 든든해지니 마음도 편해졌다. 이대로 굶어 죽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는 아플 때도 먹고 앓는 체질이라, 흔히 속상할 때 곡기를 끊는 사람을 보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그들도 굶어 죽기까지는 하지 않겠지. 그저 밥을 안 먹고 있는 시간이 나는 짧은데 비해 어떤 사람은 긴 사람이 있다는 차이 정도겠지.

물론 그때 밥을 먹고 속이 든든해졌다고 해서 당장 오빠나 엄마를 용서할 마음이 생겼다는 것은 아니다(그렇게 된데는 엄마의 책임도 일부 있었다. 자식이 많으면 어느 한 자식만을 위해 줄 수 없는 것이 부모된 마음의 고충일 것이다). 속이 든든해졌다고 해서 선한 마음만 갖게되는 것도 아니고, 미워하는 것도 기운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음식은 착한 마음도 갖게하지만, 미워하는 마음에 유용한 땔감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 같다. 그래도 나의 육신을 낳고, 평생 때 굶지 않게 해 준 엄마는 차마 미워할 수 없더라. 가끔 짜증은 낼 지언정.  

 

밥이란 참 묘한 구석이 있다. 

매일 먹으니 질린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가끔은 지루하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하루 세 번 먹는 때거리 중 점심은 밥을 먹지 않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하루 삼식을 다 밥으로 채우면 웬지 모르게 부담스러워 점심 정도는 다른 것을 먹게 된다. 이를테면 빵이나 떡, 고구마, 국수나 라면 같은 포만감을 줄 수 있는 간식으로. 

어쩌다 생각지도 않게 점심을 그런 간식거리로 채우고 저녁을 바깥에서 먹게 됐는데 그것이 공교롭게도 밥이 아니고 다른 먹거리였다면, 그 다음 날 아침 밥상을 받았을 때 밥의 목넘김은 마치 추울 때 따뜻한 이불을 덮는 것만큼이나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이다. 그제야 밥이 이렇게 좋은 거구나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다 체해서 내내 밥을 못 먹고 있다 막힌 것이 뚫려 식욕이 동할 때 먹는 밥도 같은 것이다. 

 

밥은 또한 나의 엄마다.

맛을 깨닫는 것은 내가 미맹임을 깨닫는데서 부터 시작이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때까지 늘상 엄마가 해 주는 밥과 반찬만을 먹었던 어린 나는, 아랫방에 세들어 사는 아줌마의 반찬이 정말 맛있다는 걸 알았다. 어느 날은 아주머니가 앞서 말했던대로 양푼에 밥을 비벼 먹는데 나도 모르게 그 앞게 가 앉아 언제쯤 한 숟깔 퍼서 나의 입에 넣어줄까 침이 나올 정도로 기다렸다. 그 아주머니가 푼 밥숟깔은 탐스럽기도 하거니와 윤기가 자르르 한 것이 과연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했다. 그렇게 보고 있는 내가 불쌍했던지 드디어 아줌마는 한숟깔 잔뜩 퍼서 나의 입에 넣어 주었다. 그때 느끼던 맛은 천국을 다녀 온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미처 채 느껴볼 새도 없이 엄마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당장 안방으로 건너 오라는 것이다. 그리고 혼이 났다. 엄마가 해 주는 밥도 있는데 거지 같이 그 방에 가서 턱쳐들고 있다고. 난 그저 본능이 시켜서 했을 뿐인데 거지라니. 엄마는 평소 거지를 3대 악인 중 한 사람으로 취급할 정도로 쇄뇌 교육을 시켜왔다. 오죽했으면 문지방에도 못 서게 했을라고. 거지된다고. 

그런 말을 들은 내가 또 아랫방을 갔을리 만무했지만, 그건 지금 생각해도 잔인한 처사인 것 같긴 하다. 같은 음식이라도 집집마다 하는 방법이 다르고 맛이 다른데 자꾸 이집 저집 먹어봐야 미맹을 깨치고 우리집 음식이 좋으면 얼마나 좋은지, 남의 집 음식이 다르면 얼마나 다른지 알 것이 아니겠는가. 당시 엄마는 문중에 음식 솜씨 좋기로 정평이 나 있긴 했지만, 의인이 자기 고향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엄마의 음식 솜씨는 우리집에선 그다지 환영을 받지 못하는 편이었다. 남들이 손가락을 쪽쪽 빨며 먹는 엄마표 음식은 우린 그저 덤덤하게 먹을 뿐이니까. 그러다 어쩌다 남의 음식을 맛볼 기회가 있으면 그때야 비로소 겨우 인정해 줄 정도였다.

 

다른 집도 마찬가지겠지만, 밥은 엄마와 뗄레야 뗄 수 없가 없다.

학교 다니는 자녀가 있는 경우 지금은 급식들을 하겠지만 나 때는 그것이 흔한 것이 아니었다. 엄마는 해도 뜨기 전에 일어나 밥을 해서 네 사람 분의 도시락을 싸야만 했다. 그것만도 황송할진데 엄마는 도시락 반찬에 꽤 공을 들여야 했다. 어쩌다 남들은 없어서 못 먹을 김치가 도시락 반찬의 전부면 차라리 밥을 굶었으면 굶었지 가져가지를 않았으니까. 우리가 없는 집 아이라면 그도 이해하고 가져가겠지만, 없는 집도 아닌데 창피하게 그걸 어떻게 가져가냐는 것이 우리의 한결 같은 주장이었다. 그땐 그게 엄마를 얼마나 힘들게 만드는 것인지를 알지 못했다. 어떤 땐 엄마도 짜증이 나는지, 다른 집 자식들은 도시락 반찬으로 김치만 싸 가져가도 공부만 잘 하더라. 늬들은 뭐냐? 푸념을 할 때가 있다. 그러면 우리는 그것에 대해 누구도 해당사항에서 예외인 사람은 없었으니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엄마를 힘들게 만들고 장성했으면 남들만치 번듯하게 사는 모습도 보여 드려야 하는 건데, 가끔 이렇게 살 줄 알았으면 그때 싸주는대로 가져 갈 일이지 무슨 앙탈을 그렇게도 부렸을까 후회가 되기도 한다.

 

그래도 우린 엄마 덕에 잔병치레도 없이 건강하게 잘 자란 편이다.

거기엔 철마다 제철에 맞는 음식을 먹도록 해 주셨기 때문은 아닌가 싶다. 그중 벌써 20년 가까이 해마다 겨울이면 먹는 음식이 호박죽이다. 호박죽엔 호박이 주원료가 되겠지만 이것 역시 밥이 되는 쌀이 들어가 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도 정확히는 쌀가루다. 그리고 세알은 짭쌀가루로 만들고. 동지에 먹는 팥죽 보다 우린 이것을 더 좋아한다. 한때는 이것이 너무 맛있어 겨울 한철을 나는 동안 큰솥으로 두 번을 해 먹은 적도 있다. 그러면 사나흘을 밥도 먹지 않고 그것으로 배를 채우는 것이다. 그것도 지금은 한 해에 한번 밖에는 먹지 않는데 아무튼 우린 그것을 먹어야 겨울을 낫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 호박죽을 좋아한다.  

이렇게 소울푸드는 허기를 달래줄뿐만 아니라 영혼을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 한 해 크게 아프지 말고 잘 넘기라는 엄마의 간절한 바람도 함께.

 

나의 고민

 

책 간간이 보여주는 아우일의 그림이 좋다. 

그의 그림은 익살스러운 것도 있지만 약간 도회적이면서도 쓸쓸함이 베어있어 묘한 매력을 풍긴다.

무엇보다 한 쳅터가 끝나면 글쓴이의 소개가 나오는데 평범하게 쓴 것도 있지만, 어떤 이의 소개는 정말 재밌다. 예를 들면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쓴 이화정 씨 같은 경우, 오늘 놓친 나의 한끼는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라는 모토로 언제나 즐거운 식사가 삶의 에너지가 된다고 주장하는 맛의 원더우먼......(56p)는 정말 재밌다. 이런 식의 자기 소개를 재밌게 한 필자가 몇은 더 있다. 그렇게 쓸 수 있는 사람 보면 글쓰기 고수일 텐데 정말 부럽기도 하거니와, 난 아직 그 경지는 아닌 것인지 도무지 나 자신을 소개하는 일은 젬병이다. 왜 비싼 밥 먹고 그런 것도 못하는 것일까? 밥을 얼마나 더 먹으면 이렇게 재밌게 쓸 수 있을까? 안타깝기도 하고, 질투도 난다. 지금부터라도 고민을 해 봐야 할 것 같다.

 

또한 아직도 배를 곪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소울푸드냐고 역정 같은 역설로 풀어낸 한창훈 씨의 유려한 글솜씨도 해산물의 신선함 만큼이나 알싸하다. 강추할 것 까지는 못되지만 혹시라도 읽을 기회가 온다면 그냥 흘려 보내지 말고 붙들어 보라고는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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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1-12-17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저는 아직 어려서 그런가 깊은 감명을 받지는 않았어요..

그나저나 밥성애가 뭔가 생각했었는데
밥과 모성애를 믹스한 것이로군요 ㅎㅎㅎ


하도 스텔라님과 다른 분들이 그림이 좋다고 칭찬하셔서
기대감을 가지고 본 탓인지 그닥 제 맘에는 들지 않았어요 ㅋㅋ
그런데 싸인은 멋있더라구요~

stella.K 2011-12-17 20:06   좋아요 0 | URL
ㅎㅎㅎ 저도 소이진님 정도였으면 뭐가 좋다는 건가...?
했을지도 몰라요. 나이가 들면 예전에 미처 깨닫지 못한 것들이
새롭게 와 닿는 경우가 있어요. 심미안이라고나 할까? 음하하하~
암튼 그래요. 밥도 좋은 줄 모르겠죠?
하지만 더 나이들어 봐요. 밥이 좋아지고, 밥심으로 산다는 게
뭔지 알게될 거예요.ㅋㅋ

이진 2011-12-17 21:39   좋아요 0 | URL
ㅋㅋㅋ 저희집은 밥은 넘쳐나는데 반찬이 없어서 밥이 영 별로라지요~
근데 지금 이 비대한 덩치로는 역시 저도 밥심 ㅋㅋ
밥을 안먹으면 영 속도 더부룩하고...

stella.K 2011-12-18 21:34   좋아요 0 | URL
헛, 소이진님 뚱뚱해요?
전 꼭 소이진님이 손홍민처럼 생겼을 거라고 착각하고 있는데.
거위는 알에서 깨어나는 첫 상대를 자기 어미로 아는 것처럼
서재 이미지를 어떤 것으로 하느냐에 따라 서재인과 동일시하게 되죠.
나는 초기에 오드리 헵번이란 미국 여배우를 썼는데
모든 사람이 나를 그런 줄 알아요. 사실은 아닌데...ㅋㅋ

비로그인 2011-12-18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제가 읽어봐야 하는 책이로군요. 요즘에 뭘 먹어야하나..식욕이 막 생기는데..ㅎㅎ 잘 봤습니다.

stella.K 2011-12-19 13:56   좋아요 0 | URL
식용이 당길 때 이 책 보면 더 당기지 않을까요?ㅎㅎ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번역어의 성립 - 서구어가 일본 근대를 만나 새로운 언어가 되기까지
야나부 아키라 지음, 김옥희 옮김 / 마음산책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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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솔직히 이책은 읽기가 수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번역에 대해 여러 가지의 것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이책에서 특히나 많이 보여지는 건, 원본엔 있는 단어를 자국어인 일본어로 번역할 때 아직 그 개념이 생성되지 않은 바탕에서 그 단어가 어떻게 받아 들여지고 이해될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예를들어, 사회란 단어가 일본에서 사용되기 전 원본을 번역해서 내놓으려면 이 사회라는 단어를 사람들에게 이해시켜야 한다. 또한 '그'나 '그녀'는 오늘 날 언어가 발달된 나라에서는 쉽게 이해되는 단어지만 이것이 처음 불리워지던 시절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어는 아니었다고 한다.

그 나라의 언어가 그 나라의 문화와 국력을 말해준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남의 나라의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것을 받아들일 때 얼마나 많은 고충이 따를 것인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또한 문화의 차이를 극복해야 하는 것으로도 확대가 된다. 

 

사담이긴 하지만, 어제 한 토크쇼에 원더걸스가 나왔다. 그들의 미국 진출기를 듣는데, 한 멤버가 자기깐엔 그 부분에서 이러한 감정을 넣어 부르는데 미국인 프로듀서가 자꾸 그 부분에서 아니라고 지적을 받았다고 한다. 같은 감정이라도 표현의 방법이 다른 것이다. 감정을 표현함에 있어서의 문화의 차이. 단지 표정으로 전달하려는 것뿐인데도 이토록 서로 달라 그것을 맞추기가 이렇게 어려운데 하물며 언어는 어떻겠는가. 새삼 번역가들의 노고가 만만치 않겠구나 싶었다. 물론 그것을 이제야 처음으로 깨달은 것은 아니지만. 그런데도 우리는 알게 모르게 번역가들에 대해 은연중에 저술가 보다 못한 대접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할 때도 있다. 번역에 불만과 비판을 서슴치 않으면서 말이다.

번역은 반역이란 말도 있다. 같은 말을 해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데, 아무리 뛰어난 번역가라도 원저자의 뜻과 뉘앙스를 알아서 그대로 전달하기란 아예 불가능하다고 봐야한다.

단어 하나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뜻이 살아나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데, 하필 그 나라에 아직 생성되지 않은 언어라면 얼마나 난감하겠는가. 또 그런 의미에서도 번역이 그 나라의 언어 발달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겠는지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바다.

 

이 책은 상당히 오래 전에 씌여진 책이다. 더구나 일본 저자의 책을 우리말로 '번역'했다.

번역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는지 모르겠다.

뭐 나름 책이 좋긴한데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우리나라 번역의 역사에 대해 알면 더 흥미롭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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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1-12-12 0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 `그녀`라는 낱말은 "언어가 발달된 나라"에서 쓰는 말이 아니에요.
그저 그런 말을 쓰는 사람들 삶(문화)일 뿐입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다가는 `싸락눈`으로 `살랑살랑` 흩뿌린다고
말할 수 있는 나라에서 쓰는 말이라 해서 더 훌륭한 말이 아니듯.

stella.K 2011-12-12 13:06   좋아요 0 | URL
오, 그런 건가요? 처음 알았습니다.
전 이게 나중에 언어가 훨씬 더 발달되고 나온 말인 줄 알았어요.
우리나라는 김동인인가? 처음 썼다고 나와서리.
암튼 고맙습니다.^^

마녀고양이 2011-12-12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번역이란거, 통역이란거 정말 어렵다 생각이 들더라구요.
요네하라 마리의 책을 읽으면서 더욱 그런 생각을 했고, 때론
제가 언어 능력이 뛰어나서 영어나 일어 정도는 원서로 읽고 싶다고 느낀답니다.

언어가 삶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정말 흥미롭네요...

stella.K 2011-12-12 16:33   좋아요 0 | URL
정말 한국어 외에 한 개 국어 이상은 잘하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저는 언어엔 잼병이니 어쩜 좋아요.ㅠ
번역어가 자국어 언어 발달에 참 많은 기여를 했겠구나란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이 책은 쉽게 읽혀지진 않더군요.ㅋ

페크pek0501 2011-12-13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 의하면, ~에 따르면 도 번역투의 말이니 쓰지 말자는 글을 신문에서 읽은 적 있어요. 한 연구에 따르면, 이라고 하지 말고, 그냥 한 연구는 ~~ ,이렇게 써야 좋다는 것이죠. 그래서 요즘 고쳐서 쓰고 있어요. 그런데 어떤 경우엔 그냥 쓰는 게 좋을 때도 있더라고요. 이미 습관이 되어 자연스럽게 느껴져 그런가봐요.

좋은 생각거리입니다. ㅋ

stella.K 2011-12-13 16:49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크게 잘못되지 않으면 편하게 쓰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야말로 왜놈의 말을 쓰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까탈스럽게 그러는지 원.
얼마 전에 다시 복원된 말있잖아요.
대표적인게, 자장면에서 짜장면으로 바뀐 거.
효과도 된발음 그대로 내는 것이 좋다고 모 전직 아나운서가 말했던
기억도 납니다. 우리말 진짜 어려운 것 같아요.ㅋ

아이리시스 2011-12-13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일본어의 폐해를 느껴요. -랄까. 이런 거 한국어투 아닌 거 알면서도 자꾸 써요. 일본드라마에 빠졌을 때 그게 재밌어서 맨날 따라하다보니ㅋㅋㅋ

stella.K 2011-12-14 11:11   좋아요 0 | URL
저도 번역투에 일본어의 폐해가 없지 않을 거란 생각은 하는데
우리 나라 번역사에 관한 책이 나오면 이 문제가 다소는 해결이
될거라고 보여져요. 그런데 좀 몰라서 그런지 너무 민감한 건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ㅋ

가넷 2012-01-09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제로 들어온게 아니라면야 그대로 쓰어도 상관은 없지 않을까 싶네요.

뭐... 그렇게 치면 일본어투는 다 순화의 대상이 되는 걸까요?;;;

stella.K 2012-01-10 11:16   좋아요 0 | URL
저도 가넷님과 같은 생각이어요.^^
 
나의 서양음악 순례
서경식 지음, 한승동 옮김 / 창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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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스러웠다.

이책을 읽기는 벌써 며칠 전에 다 읽었는데, 과연 이책을 어떻게 알려야할지 막막한 느낌이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나는 엉뚱하게도 어느 CF 광고에서 건강식품회사 사장님이 나와 자사의 제품을 알리기 위해, "좋은데, 참 좋은데 도무지 알리 방법이 없네."하며 탄식했던 그 장면이 생각이 났다. 딱 그 느낌이 내 느낌 같아 어떤 말로 표현을 해야할지 머리만 복잡하고 간지러웠다.

과연 이만큼 음악에 대해 탁월하고도 유려한 문체를 구사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다.

그렇다고 그가 아예 음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또 그런가 보다 하겠다. 대학에서 법학을 가르치면서 호사가적 취미랄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사유가 깊다.

 

사실 클래식이 그렇듯 쉽게 그 속살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그는 고백하기를, 클래식 음악에 대해 반감이 많았다고 했다. 그것은 중산계급의 표식이요, 일본인의 표지며, 손에 넣을 수 없는 사치스러운 장난감 같은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의 이 말에 백번 공감한다. 내가 클래식을 알게된 건, 초등학교 6학년 때다. 사춘기가 일찍 찾아 온 관계로 모든 것이 시큰둥 했다. 그런데 내가 다니던 반이 서울 시내 초등학교 합주대회 출전 지정반이었다. 우리반은 이를 위해 수업이 끝나도 집에 가지도 못하고 늦게까지 남아 연습을 해야했고, 대회를 앞두고는 일요일 날에도 나와 연습을 해야했다. 우리가 연습한 건 요한 스트라우스의 '라데츠키 행진곡'이었는데, 나 같은 귀차니스트가 그것을 견딘다는 게 좀 지겹긴 했지만, 음악의 멜로디가 이상하게도 내 뼈에 켜켜이 쌓이는 느낌이었다. 과연 클래식이 이런 것인가? 뭐라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뭔가의 부딪힘이 있었다. 그것을 저자는 또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바이올린 케이스를 들고 걸어가는 유복해 보이는 여자아이를 보면 돌이라도 던져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 케이스 속의 아름다운 악기를 잠시라도 만져보고 싶다, 무슨 소리가 날지 내 손으로 켜보고 싶다,......그런 애타는 동경을 주체할 수 없었다. 마치 신분이 다른 연인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오페라의 주인공처럼."(43~44p) 

 

저자는 바이올린이었겠지만, 그때 나는 엉뚱하게도 아코디온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합주인만큼 여러 파트가 나눠 완벽한 연주를 이루어내야 하는 것인데, 아코디온 파트는 그야말로 있는 집 아이들이나 할 수 있는 악기였다. 그게 그냥 볼 땐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 꽤 신기하고 나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할 수도 없거니와, 있다손치더라도 구두쇠 아버지가 그렇게 비싼 악기를 사 줄리 만무했다. 내가 맡은 파트는 멜로디혼이었는데, 그것도 처음엔 아무 것도 안 맡고 견학만하고 있다가 그것은 독특하게도 한 손으로만 연주 할 수 있는 악기라 그 정도라면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어 나중에야 합류하게 되었다. 반 아이들 저마다 한 가지씩 악기를 맡아 연습에 참여하고 있는데 유독히 나만 아무 것도 안하고 멀뚱히 있자니 아이들도 나름 안타까웠나 보다. 담임 선생님도 딱히 나에게 권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뭐라도 하게되길 바랬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합류를 하고나니 선생님도, 아이들도 나름 만족하고 응원하는 눈치였다. 

사실 나는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피아노를 잠깐 치고 그후 음악과는 인연이 없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그 어렸을 적 음악을 알면 얼마나 알았겠는가? 그냥 시켜주니까 하는 것뿐. 그리고 부모님은 이 어린 것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게 했다고 어깨에 잔뜩 힘을 넣고 있었고, 나는 놀러 온 친척이나 친지들 앞에서 죽기보다 싫은 피아노를 쳐야만 했다. 그처럼 부모님이 독재자처럼 보인 적도 없었다. 내가 원했던 것도 아닌데, 너는 남이 그렇게 원해도 할 수 없는 피아노를 치게 해 줬으니 그 정도는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무언의 압력이 은근히 나를 눌렀다.평소에도 피아노를 사이에 두고 부모님과 나 사이의 신경전은 말도 못했다. 그리고 나는 꼭 의식했던 건 아니지만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사이에서 적지 않은 갈등을 겪어야만 했다. 나중에 피아노를 안 치게되고, 못하게 되어버렸을 때 나는 차라리 자유로웠다(나는 어렸을 때 3년쯤 피아노를 쳤었고, 그후 오른손을 쓰지 못하게 되어 더 이상 피아노에 미련을 두지 않아도 되어버렸다).

그런데 그렇게 반 아이들과 합주를 하다보니 음악이란 게 이런 것이었어?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깨침이 있었다. 그 합주엔 당연히 클래식 피아노도 전체를 받히고 있었는데, 그 피아노를 맡은 아이는 듣도 보도 못한 피아노 곡을 유창하게 연주하기도 했고, 우리나라 음악 교육의 메카라 불리우는 모음악 중학교를 입학하려고 시험을 준비중에도 있었다. 
난 너무나 우물안의 개구리처럼 살았던 것이다. 그후 난 점점 더 알 수 없는 심연속으로 빠져들어 가끔 학교도 빠지고 하루종일 클래식 음악을 듣거나, 그때 왜 나는 좀 더 열심히 피아노를 치려고 하지 않았을까, 혼자 자책을 하곤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 자책이 오래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앓을만큼은 앓았던 것 같다. 그렇게 그 시절 내가 음악에 가까이 간 경험은 행운이면서도 강렬한 경험이었다. 

 

이렇게 사람들 저마다 음악에 대한 경험은 다르겠지만, 저자의 말에 누구든 동의할 것이다.

"음악이란 정말 무서운 것이다. 한없는 청순과 고귀함, 그리고 바닥 모를 질투와 욕망을 동시에 지닌 존재, 이쪽의 이해를 거부하면서 끌어당기고는 다시 뿌리치고 농락해 마지않는 존재, "어디가 그렇게 좋다는 거지?" 하고 누가 물어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존재, 한마디로 불가해한 여성과 같은 존재, 그것이 음악이다."(20p)란 말에.  

변명일지는 모르겠지만, 저자의 말에 나는 역으로 동의한다. 그렇다. 음악은 또 안 듣기 시작하면 안 들을 수 있다. 내가 음악으로부터 뿌리침을 당하고 농락 당하고 싶지 않아 사춘기 이후 나는 음악을 거의 듣지 않거나 들어도 아주 짧은 시간만 들었다. 나는 뭔가에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할까봐 겁이나고 싫었다. 바로 음악이 내겐 그랬다. 음악. 그것이 주는 평안함, 안온함도 만만치 않지만 어쩐지 그것이 나를 점령해버릴까봐 경계하게 된다.   

 

그런데 저자는 확실히 남자는 남자 맞는가 보다.

입고 갈 옷이 없어서 잘츠부르크음악제에 가기를 주저하는 아내에게, 여성이란 정말 엉뚱한 일에 신경 쓰는 존재라며 어이없어 하니 말이다. 저자의 말대로 그것이 카라얀시대의 음악제 이미지가 각인됐기 때문인지 어떤지는 몰라도, 저자는 그저 어떠한 장소에 가는 것이 더 중요하겠지만 여자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은 뭔가에 대해 예를 갖추길 바라는 것을 옷에서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고, 천성적으로 잘 차려 입어야 어딘가를 가도 갈 수 있는 사람일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여자를 모르면서 또 둘이 잘 사는 것을 보면 확실히 결혼이란 것이 음악보다 더 불가해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더구나 저자의 아내는 가수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직업상 얼마나 외모에 신경을 쓸지 짐작이 간다. 그것을 엉뚱한 일에 신경을 쓰는 존재라고 조소해 버리다니. 피식하고 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이렇게 외모에 관심이 없는 남자라면 나는 당장 고려해야할 존재란 생각이 든다. 뭐 나 역시 외모에 그다지 많이 신경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쨌든 어쩌다가 하는 나의 어떤 변화에도 신경을 써 주지 않는다면 그런 남자에 평생을 바치고 싶지는 않다.

 

이책은 또 몇 개의 쳅터에 거쳐 음악의 도시라 불리는 빈을 취재하기도 하고 음악제를 소개도 한다. 또한 몇 명의 음악가를 집중 조명하기도 하는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아무래도 작곡가 윤이상과 자신을 겹쳐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싶다. 무엇보다 둘 다 디아스포라고, 생의 여러 가지 아픔을 겪었다. 그러니 오죽이나 이심전심이었을까. 무엇보다 윤이상이 우리나라 정부의 무관심속에 고국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독일에서 외롭게 죽음 맞이한 것은 정말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오래 전에 봤던 영화 '아마데우스'는 알고 보면 감독이 꽤 사실에 근접하여 만든 것임을 이책을 보며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모짜르트의 사후 그의 시신이 거의 버려지다시피 여러 시신과 함께 묻혀진 것에 관해 나는 선듯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책을 읽으면서 그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고, 비록 수세기 전의 사람이긴 하지만 역시 안타까운 죽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뿐만 아니라 말러에 관해 쓴 것도 꽤 흥미롭다.

 

교수님 이시니 얼마나 바쁠까. 그런 중에도 알뜰살뜰하게 쓴 저자의 글에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다. 그리고 그의 다른 책도 읽고 싶어졌다.

이 책은 만만치 않은 내공을 자랑하지만 동시에 아날로그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어 읽기가 편안하고 좋다. 강추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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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1-12-11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엔 음악에 관한 책이군요. 저는 음악의 잔인성을 알고 있어요. 톨스토이의 소설인데, 그 주인공은 음악만 들으면 흥분하고 광적인 사람이 되어 살인도 하고 싶어져요. 톨스토이는 그것을, 음악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라고 정리해요. 가끔 저도 음악 들으면 어떤 감흥이 일어나는데, 확실히 음악엔 그런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하는 작은음악회에 가 본 적이 있는데, 초등 6학년 학생이 능숙하게 치는 피아노 소리에 큰 감동을 받고 온 적이 있어요. 역시 음악은 위대하다, 라는 걸 느꼈죠.

드라마에서도 만약 음악을 깔지 않고 두 연인의 어떤 모습을 보여 줬다면 덜 감미로울 듯...

아니, 그런데 왜 아무도 추천을 안 눌러 주는 겁니까. ㅋㅋ 누른다고 해서 팔이 아픈 것도 아닌데... 제가 두 번 누르고 갈게요. 헤헤...

stella.K 2011-12-11 14:25   좋아요 0 | URL
ㅎㅎ고맙습니다.
저는 추천에 저주를 받았나 봅니다.
유독 제 서재에 와 보신 분들 (주로 익명들이겠지만)
추천에 인색들 하시더만요.
어떤 분은 별 글 안 썼는데도 추천이 폭풍처럼 많더만.
누가 이 저주에서 저 좀 깨어나게 해 줬으면 좋겠어요.
잠 자는 숲속의 공주는 키스 한 방으로 깨어나더만.
저는 키스 가지고도 안 될 것 같아요. 흐흑~ㅋㅋ

그루미 선데이란 영화 있잖아요.
여자가 노래만 불렀다하면 사람들이 자살하는 거.
이 책에서도 신화에 나오는 싸이렌에 대해 언급을 하고 있죠.
미술은 모르겠는데, 확실히 음악은 좀 빠져들게 만드는데가 있어요.

blanca 2011-12-11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아노에 대한 경험이 스텔라님과 저 너무 비슷해요^^ 지금에 와서야 왜 좀더 즐기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어쨌든 악기는 꼭 본인이 원해서 즐기며 해야하는 것 같아요. 얼마전에 문화홀에서 무료로 해주는 한 자매의 피아노와 바이올린 공연을 봤는데 그 즐기면서 행복해하면서 연주하는 모습이 참 부럽더라고요. 그 사람들을 보니 역시 나는 너무나 평범했구나, 싶어 쓸데없는 자괴감도 들고 그랬어요. 스텔라님 글에 추천을 미처 못해도 마음으로는 공감하고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거예요. 물론 저는 추천하고 갑니다.^^

stella.K 2011-12-12 13:55   좋아요 0 | URL
그러시군요.
맞아요. 확실히 뭐든 즐겁게 할 수 있어야 해요.
사실 제가 자라던 때는 피아노를 흔하게 칠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죠. 막 흔하게 칠 수 있는 환경이 서서히 되었거나.
암튼 피아노가 우리 집에 들어오는데 그게 나한텐 하나도
기쁜 일이 아니었습니다. 일종의 족쇄가 되겠구나 싶었죠.
그땐 이 단어도 몰랐으니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무거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또 어렸을 땐 제가 인물이 쫌 됐거든요.ㅋ
나중엔 이 잘 생겼다는 사실이 짐스러웠어요.
평범했으면 결코 배우지 않았을 피아노였는데 말입니다.ㅎㅎ
이 리뷰 쓰면서 그때 경험 가지고 소설 한번 써 볼까?
그런 생각도 했었다능.ㅋㅋ

추천은 좀 아쉬운 것도 없진 않지만 보는 사람들이 그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그러겠지 싶기도 해요.
그점 늘 브랑카님께 고맙게 생각해요.^^

아이리시스 2011-12-13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양음악순례는 역시 짐작처럼 클래식만 있나요? 전에 음악이나 오페라 책 관심있어 한 번씩 보면 결국 영 어렵다, 전공스럽다에서 끝나더라고요. 미술만큼이나 음악도 교양 아이템으로 보여주기식이 될 수밖에 없는 여지가 있나 봐요. 저는 피아노를 꽤 오래 배워서 어릴 적부터 철들 때까지 배운 게 그거 밖에 기억이 안 나요. 그래서 지금까지 음악,미술,문학 같은 것들에 애정을 못 버리는 듯도 해서 뭐든 즐겁게 다가가서 어렵지 않게 접하도록 하는 일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책 재밌었어요? 우왕, 별 다섯 개.^-^

stella.K 2011-12-14 11:13   좋아요 0 | URL
쫌 어렵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그래도 전 재밌게 읽었어요.
명사를 독특하게 옛날 방식으로 썼더라구요.
예를 들면, 도쿄라고 쓸 말도 도오꾜오. 뭐 이런 식이죠.
옛날 박목월이나 박인환이 생각났어요.ㅋㅋ
그런데 웬만하면 추천 좀 해 주시지 안쿠.ㅋㅋ
 
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 - 행복을 일구는 사람들 이야기 박원순의 희망 찾기 1
박원순 지음 / 검둥소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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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서울시장님은 참 부지런도 하시다. 언제 또 마을 곳곳을 다니며 이런 글을 쓰셨을까, 새삼 그런 생각을하며 이책을 읽었다.
내가 나고 자란 곳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았다.  그래서 사람 사는 모습이 다 거기서 거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남에게 폐안 끼치고 간섭 안 받고 그렇게 살면 미덕인 줄만 알고 살았다.  그렇게 사는 것도 삶의 한 형태라면 형태일 수도 있겠지만 얼마나 삭막한가.
내 옆집에 사는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고 살다 며칠만에 발견됐다는 건 이제 이슈거리도 아니다. 차라리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만 같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니 새삼 반성도 하게된다.  
한때 잘 나가던 광산이어서 지나가던 개도 돈을 물고 다닌다는 말이있을 정도 부촌이 세월의 흐름따라 폐광이 되고 퇴락한 마을이 됐다. 그런 마을을 어떻게 살려볼까를 머리를 맞대고 궁리하고 마침내는 다시 생기 넘치는 마을이 되는 것을 볼 때, 사람은 역시 그냥 죽어야 하는 존재는 아니구나를 생각했다.
한지로 세계를 제폐하고, 다랭이를 양식하며, 두부 공장을 세우는 등, 말하자면 이 책은 마을을 특화시킨 사례를 소개한 책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읽다보면 시골이라고 해서 예전의 시골 촌동네를 생각하면 안 될 것 같다. 아직도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면, 예전에 서울 사람들이 시골뜨기라고 놀리기도 했는데 이젠 오히려 우리가 서울뜨기라고 놀림을 당할 것 같다. 

그곳은 예전에 황무지였을지도 모른다. 원래 그렇게 만들려고 해서 만들었던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어떻게 살아볼까를 고민하다 그렇게 된 것 같다. 그런데 산다는 것은 혼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함께 더불어 사는 공동체 의식이 있어야 내가 살 수 있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은 도시 보다는 농촌이 더 가능성 있어 보인다. 

읽다보면 도시만 점점 소외되며 사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함께 더불어 잘 사는 것을 고민하다보면 소외될 수도 없고, 외롭다고 자살할 수도 없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서로가 서로를 돌보며 살 수 있는데 왜 이러고 사나 싶기도 하다.
도시 사람이 경제적으로는 풍요롭게 살지는 몰라도 이웃과 소통하며 사는 것은 낮아 오히려 정신적인 강인함을 없어 보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름 흐뭇했다. 아, 이러고 사는 곳이 있었구나. 새삼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이었다. 박원순 시장이 책에서 보여준 것은 다소 한계가 있어 보인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나도 여건만되면 사람들이 어떻게 사나 직접 보고 이야기도 나누고 하면 좋을텐데 그럴 수 없어 아쉬울 뿐이다. 인생 2막을 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겐 참고가 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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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사막
김영희 지음 / 알마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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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십시오. "
김영희 PD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여행을 떠난 때는 <나는 가수다>을 손에서 내려놓고 떠난 것이니 그럴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것을 잘 키워나가야 할 텐데, 그것을 남의 손에 맡기고 떠나야 하는 심정은 착잡했을 것이다.  

김영희 PD하면 <나는 가수다>고, 책에도 잠시 언급을 하기도 했지만, 나 역시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것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처음에 그 프로가 신설될 것이라고 했을 때 나는, 이젠 예능이 하다하다 별 희안한 것도 한다고 냉소했더랬다. 더구나 사람을 경쟁 체제로 서바이벌 형식이었다. 갑자기 나의 학창시절이 생각났다. 내가 그리도 혐오해마지않는, 1등부터 꼴찌까지 줄을 세워 두겠다거다. 그리고 내가 가수라면 난 이런 유치한 경쟁엔  결코 나오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원래 예술가적 기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존심이 강해서 누구와 비교되는 것을 안 좋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첫 방송이 나가고 한 준가 두 주 후에 인터넷 카페의 한 지인으로부터 이 프로에 대해 칭찬 글을 보았다.  난 그 분이 원래 쇼 프로를 좋아서 그런 글을 썼는가 보다고 생각해서 나름대로 내가 생각하는 편견 가득찬 반박 댓글을 달았었다. 그런데 그 분은 자신도 원래는 쇼 프로를 그다지 안 좋아하는데 이 프로는 뭔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번 보라고까지 권유까지 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었고,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나는 가수다>를 거의 빼놓지 않고 본다.     

<나가수>가 이루어 놓은 업적은 많다. 무엇보다도 세월에 묻혀 잊혀진 또는 잊혀질뻔한 가수들을 다시 방송 무대에 세웠고, 그동안 가수들이 출연하는 쇼 프로는 그 프로그램을 위한 부속물로 취급 해왔지만, <나가수>는 온전히 그 가수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점이 달랐다. 그러므로서 시청자들은 그 가수의 역량을 새삼 확인할 수 있고, 뿐만 아니라 편곡 실력, 퍼포먼스까지 그야말로 종합선물세트를 매주 받는 느낌을 선사해 줬다. 세상에 이런 호사가 어디 있겠는가? 무엇보다 그동안 TV에 별 관심없는 사람도 그 앞에 끌어다 놓았으니 대단하지 않은가. 

게다가 그 시절엔 좋은지 몰랐던 곡을 새삼 음미할 수 있는 건 덤으로 얻는 축복이다.
요즘 K-팝의 세계적인 인기몰이가 거센데, 난 그것이 반가우면서도 한편 어느 날 갑자기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된다. 그것은 요즘 아이돌 가수들이 성량도 좋고, 생기기도 잘 생기고, 음에 대한 감각도 어느 정도 갖춘 것 같긴 하지만 문제는 내용없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것에있다. 그랬을 때 <나가수>는 그들의 선배들이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 보고 배웠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그들은 하나의 부대를 이루어 노래를 부르기 때문에 자기 노래에 대한 책임 의식이 솔로 보다 희박하다. 하지만 그들의 젊음은 언제나 계속될 것이 아닌데 케이팝은 언제나 젊은 가수들의 화려한 몸짓만을 원하게 된다면 그들의 도태는 건 거의 시간 문제다. 그들은 뭔가를 새롭게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아무튼, 이렇게 우리 가요에 대한 재인식을 가능하게 해 준 <나가수>가 나는 볼 때마다 고맙고, 새로웠다.  

이런 <나가수>를 탄생시킨 장본인이었기에 김영희PD가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시작했을 이 프로를 아직 꽃도 피워보기도 전에 그만둔다는 건 나로선 좀 이해가 가지않는 부분이었다. 그것도 자신의 개인적 사정이 아닌 경질이었고, 그 경질의 이유가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한 달여의 프로그램 정지 뭐 이런 건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프로그램은 그럴 수 있어도 그 프로를 만든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 방송사측의 선택이었나 보다. 좀 가혹하다는 생각도 해 봤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부정과 부패가 만연해 있는데 이만한 일로 경질을 당한단 말인가. 더구나 의도했던 것이 아닌 순간적인 판단오류 내지는 실수 같은 것이었다. 그만큼 한 방송국 PD를 일벌백계로 세상은 얼마나 정직을 원하는지를 보여주겠다. 뭐 그런 것이었단 말인가?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래도 그에게 희망이 있어 보이는 건, 나는 잘못이 없다고 말하는 어느 정치인이나 유명 재벌들과 달리 결과에 승복할 줄 알고 손을 털 때 탁탁 털어버릴 줄 안다는 그 면이 좋았다. 그도사측을 상대로 대응을 하려면 할 수도 있었을 테고, 설득을 하려면 설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프로야 누군가가 잘 키워 줄 사람만 있다면 그에게 물려주고 새로운 일을 개척하는 것도 보기 좋은 일일 것이다. 물론 때로 사람의 일이란 게 그 사람이 아니면 안되는 일도 있지만, 나 아니어도 잘 돌아가고, 더 잘해낼 수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과감하게 손을 터는 것도 좋은 모습일 것이다. 일에 대한 긍지를 갖는 건 좋은데, 나 아니면 안 된다는 강박은 위험할 수도 있다. 나는 그가 그것을 잘 판단했을 거라고 본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그는 또한 대인배다. 

좋은 방송은 또 할 수 있다. 방송에 품은 열정과 애정만 있다면. 그것을 위해 김영희PD는 여행을 떠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방송 현장이 좀 피 터지는 전장인가. 급할수록 돌아가랬다고 그의 남미로의 여행은 잘한 일이었을 것이다.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할 일은 또 얼마나 많은지를 그는 또 한번 깨닫고 왔을 거라고 믿는다.   

모름지기 책이라면 글이 좀 많아야 한다는 쪽인데, 글은 적고 사진만 많은 이런 책은 나로선 그다지 익숙하지는 않다. 처음 책을 봤을 때 그가 방송을 접고 떠났을 마음이 어땠을지를 조금이라도 가늠해 보고 싶은, 이를테면 동정어린 마음이 더 컸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어줍잖은 나의 마음이었을지 모른다. 중간중간 그런 그의 마음을 읽을 수도 있었지만, 그 보단 그가 얼마나 순수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싶어했는지가 그의 사진에서, 짧은 글에서 느껴졌다. 그리고 그 글은 낙서 같기도 하고, 시 같기도 하다. 이성이 아닌 감성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정말 이런 마음이 아니면 그런 프로를 만들 수 없었으리란 생각이 곳곳에 묻어난다.
맨 마지막 장은 알래스카인지도 모를 빙하 앞에서 환하게 웃는 모습의 마치 그의 건재함을 보여주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 이제 여행도 다녀왔으니 또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새로운 프로를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그는 천상 PD다. 기대한다. 그의 방송 복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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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1 18: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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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1 18: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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