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 박동 소리 2 노희경 드라마 대본집 (르네상스) 2
노희경 지음 / 르네상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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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대 책

 

무슨 욕심인지 모르겠는데 난 항상 잘된 드라마를 보면 DVD를 갖고 싶다기 보단 대본집을 갖고 싶었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작품 보다는 그 작품을 쓴 작가에 관심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실제로는 가져 본 적은 없다. 그런데 최근 그 소원을 이뤘다. 바로 이 책이다. 요즘처럼 드라마 대본집이 잘 나올까. 책이 제법 잘 빠졌다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노희경 아닌가. 하긴 대본집이 나와 있는 건 김수현이나 노희경이 전부일 듯 하다. 그러니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종편 TV가 개국을 하면서 모 방송국에서 하는 드라마를 조금씩 보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이제까지 본 작가의 작품들과는 좀 거리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작가의 주특기인 가족과 개인의 트라우마를 다룬 건 여전하다. 그리고 다른 작가들이 외적으로 근사한 캐릭터와 그에 걸맞는 화려한 치장을 보여주려고 할 때 노희경 작가는 항상 밑바닥 인생 아니면 남루한 삶을 보여주려 했다. 그것 역시 변함이 없는데, 형사물에 판타지의 결합은 확실히 새로운 시도고 모험은 아니었을까 한다. 그래서 나 자신 초반 이것을 끝까지 볼 수 있을까? 시청자로서 의문을 가졌더랬다. 그러는 와중에 이 책을 손에 넣게 된 것이다. 

 

내가 이책에서 보고 싶어했던 건 작가의 주옥같은 대사도 대사지만 상황 묘사를 어떻게 해놨을까 하는 거였다. 그건 마치 내가 늘 이면의 것들에 관심이 많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 예를들면 한편의 잘 만든 연극 그 뒤에는 늘 사람의 열정과 땀방울, 갈등과 바쁘게 움직이는 스텝들의 발소리가 있다는 것이다. 난 바로 그것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노희경 작가는 어떻게 쓸까? 그것을 알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보니 아, 이렇게 쓰는구나란 감탄 보단 실망이 더 앞선다.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영상 용어들을 대하고 있으면 나는 나대로 지난 날 잊고 있던 트라우마가 건드려지는 느낌이다. 싸지도 않은 돈 들여 공부 한답시고 적지않은 나이에 나의 꼰대에 의해 동료 수강생들 앞에서 그 굴욕을 당했었다. 그 기억이 스멀대고 올라오는 것이다. 하긴, 시간이 약이라더니 그것도 이맘 정도 지나고나니 웃을 마음도 난다. 꼭 시나리오를 쓰겠다는 것도 아니었는데 이게 아니면 뭘 할 수 있을까? 절망스러웠다. 포기하면 그만일 텐데 나는 여전히 그 꿈 주변을 서성이고 있다. 인생 별거 있어, 한 방이란 말 믿고 싶어진다. 한 번 사는 인생 아닌가. 살만큼 살면서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면서 사리면서 살아왔다. 이젠 맞설수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을 이 나이쯤 되니까 느끼는 것이다. 그래도 무슨 관성이 남아 있는지 선택의 순간에선 늘 주춤거리고 피하게 된다. 나란 인간은 늘상 이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쓰는대신 노희경의 <빠담빠담>을 읽고 있었나 보다.  

 

사실 말했던대로 책으로 본다면 실망을 더 많이 할 것 같다. 좋은 작품은 책 보다는 차라리 DVD로 간직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 같다고 말하고 싶다. 거기엔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 인상 깊은 대사들, 영상들, 음악들이 다 들어가 있다. 책을 보면 그야말로 살 다 발라 먹고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생선을 보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그러니 드라마 작가는 이 상태로는 보여줄 것이 없다고 손사래를 칠 것도 같다. 같은 이야기를 다루는 작가라도 소설가는 작품 좀 보자고 하면 원고나 이미 출판된 자신의 책을 보여주면 되지만, 드라마 작가는 제작자가 아니면 나중에 TV에서 보라고 말해야 하는 사람이다. 더구나 그런 말이 있다. 영화는 감독을 위한 예술이고, 드라마는 배우를 위한 예술이라고. 그러니 드라마나 시나리오 작가는 어디에도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드라마 작가의 위상이 많이 높아졌다. 지금은 그 작품에 누가 나오느냐도 중요하지만 누가 썼느냐를 더 많이 본다. 그것은 아마도 김수현 작가를 비롯한 여타의 작가군들이 이룬 업적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작가들이 쓴 대본집은 또 다른 의미로 와닿는다. 방금 난 대본집이 살 다 발라 먹은 뼈 드러난 생선이란 다소 거친 표현을 썼는데, 아무리 좋은 연출자, 좋은 배우가 있어도 그 선두에 작가의 작품이 없으면 그들의 존재는 아직 드러낼 수 없다. 이 자부심이 없다면 못할 것이 드라마 작가다. 그렇다면 바로 그 작품이 만들어지는 최초의 창조자의 책을 그냥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사실 난 이 작품을 드라마와 책을 번갈아 가며 보고 읽었다. 집에 텔레비젼이 없으면 모를까 그것을 두고도 책으로만 본다는 건 그 작품을 즐기는 너무 소극적인 방법이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던 노희경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던 노희경은 이번에도 역시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것도 살인자란 누명을 쓴 사람과 그 누명을 씌운 사람의 딸과의 사랑. 얼핏 보면 만나서는 절대 안되는 사이처럼 보인다. 하지만 드라마 작가들은 이렇게 말도 안되는 인물에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사랑의 방정식은 정공법으로 풀어낸다. 이 작품 거의 말미에 이르면 우리가 하는 사랑은 다 가짜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사랑은 고사하고 아무리 누명이라 해도 교도소에서 16년을 복역하고 나왔다면 그것을 풀 생각이나 날까? 처음엔 억울해 미치겠지만 포긴지 달관인지 모를 그 마음으로 살게되지 않을까? 그래. 난 뭘 해도 안 돼. 그냥 이대로 살다 죽지. 세상 모두가 나를 살인자라고 할 때 그것을 안 믿어주는 몇몇만 있어도 된 거 아냐? 하게되지 않을까? 하지만 주인공 양강칠은 끝까지 자신이 무죄임을 증명해 냈다. 드라마니까 가능하다고 할지 모르겠다. 돈 없고 빽 없으면 죄없는 사람도 죄인이 되는 세상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이 세상을 작가는 위로하고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유유상종이라고, 선녀와 나뭇꾼 또는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의 사랑이 과연 가당키나 한가? 하지만 초록은 동색이라고 비슷한 사람끼리와의 연애와 결혼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래서 그들의 사랑은 오래 못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또한 대부분이기도 하다. 자기네의 사랑도 오래 갈지 모르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의 사랑이든, 저런 사람의 사랑이든 우린 조금의 상처와 오해가 있으면 크게 확대 해석하고 더 이상 상처 받지 않으려고 빨리 끝내려고만 한다. 물은 건너봐야 깊이를 알듯이, 사랑은 시련을 겪어봐야 단단해질 수가 있다.

이렇게 작가는 양강칠과 정지나의 사랑을 더 어렵게 만들면서 동시에 단단해질 것을 주문하고 있다. 확실히 오늘 날의 세대를 거스르는 작가 자신만의 감수성을 유감없이 펼쳐 보인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건, 양강칠에 정지나에게 프로포즈할 때 나무 반지를 선물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사람들은 사랑이 견고하고 영원하길 바래서 다이아몬드 반지를 주고 받지만, 사실은 사랑은 깨지기 쉬운 거라 소중히 다루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사람들은 모른다는 대사를 주고 받는 대목이 나온다. 그건 정말 맞는 얘기다. 그러고 보면 노희경만큼 실감나게 연애 이야기를 잘 풀어쓰는 작가도 흔치 않다.

 

드라마의 욕망 대 시청자 욕망 

         

모든 이야기는 사랑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랑해서 더 사랑하고, 사랑이 뜻대로 안 되서 더 미워하고 갈등하고, 사랑에 대한 환상 때문에 더 깊이좌절하고. 또 그것 때문에 나락에서 구원 받고. 모든 이야기는 그런 것이다. 그런데 노희경은 거기에 깊이를 더 해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드라마는 인간에 대한 연민이 베어 있다. 그런데 그것은 잘나고 잘 나가는 사람에게선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고 천성적으로 어울리지도 않는다. 인간에 대한 연민은 상처 받고, 고통 당하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세상에 대한 연민과 꿈을 포기하지 않는 자에게서 드러나진다. 보라, 그의 작품중에 그러지 않는 작품이 하나라도 있는 지. 특히 이 작품에서는 오히려 그런 성향이 어찌보면 좀 더 진보적으로 나타나 있는 것도 같다. 

그래서 그의 드라마는 착하다. 희망적이고, 해피엔딩이다. 우리나라 드라마가 대체적으로 그렇긴 하다. 물론 최근엔 그렇지 않은 드라마도 속속 나오고 있고 그것을 '막장'이라고까지 표현을 하는데 진짜 그런 드라마 쓰는 사람은 좀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드라마를 너무 도덕적이어야 하고 선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탈피하라고 말하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드라마는 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해피엔딩을 말할 수 있고 시청자들의 마음을 드라마에서라도 위로를 받을 수 있을 테니까. 물론 드라마의 기능 중 대리 만족의 기능도 있을 것이다. 현실에서는 어찌 할 수 없는 없는 것을 드라마에선 만족해 주는 것. 그래서 통쾌하고, 후련하고 뭐 그런 것 말이다. 그래서 막장 드라마를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라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그게 꼭 그래서만 통쾌하고 후련해 하는 것마는 아니다. 막장 드라마가 욕을 하면서 보게되는 건 인간의 위선과 가십 때문일 것이다. 그 수면 밑에 있는 것을 작가들이 당당하게 끌어올려 준 것이다. 뭐 그래서 보게 만드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지만 막장 드라마는 남는 것은 없다. 하긴 TV가 시청률 괴물 아니던가. 거기에서 인간의 진실을 말하고 연민을 말하는 노희경의 드라마는 정말 장사 안되는 드라마일 것이다. 오죽했으면 책머리에 작가의 말에서, 남는 장사가 아닌 이 드라마에 매번 출현해 주는 탤런트 나문희 씨에게 고맙다고 했을까. 그의 드라마는 나쁘게 말하면 궁상 맞아서 해외에서 판권을 사려는 사람이 있을까 모르겠다. 그래도 좋은 드라마를 만들고자 한다면 나는 감히 노희경의 작품은 필히 섭렵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인간에 대한 연민 없이, 성찰 없이 무슨 드라마를 쓰고 만들겠다고 하겠는가. 돈만 쳐 바르고 어깨에 힘만 들어간 드라마는 오래 남지 못한다. 소박해도 다시 보고 싶은 인간의 참된 가치를 전하는 드라마가 진짜 웰메이드라고 생각한다.

 

나는 특히 작가가 이번 작품에서 시청자의 욕망을 제대로 건드려줬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뒤엎어줬다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돈을 가진 사람만이 판을 치는 세상은 여전하겠지만 드라마에서 조차 그것을 말한다면 그건 좀 잔인한 것이다. 위로 받을 만한 것이 별로 없는 세상에서 그래도 드라마에서만큼은 위로 받을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 이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면 시청자는 정말 불쌍한 사람들이다. 그 마음을 작가는 잊지 않은 것 같다.

또한 천사를 등장시킨 판타지가 눈에 띄는데, 노희경의 천사는 확실히 그 캐릭터가 다르다. 천사가 된 인간을 표현해줬던 것이 아니라 인간이 된 천사다. 그래서 때로 식은땀도 흘리고, 배고픔을 못 견뎌하며, 울고, 화내고, 비속어도 마구 남발한다. 한마디로 친근하고 귀엽다. 그리고 그 인물은 이름도 친근한 국수고, 양강칠과 환상의 커플이기도 하다. 솔직히 양강칠이란 인물은 정지나 보단 국수와 더 잘 어울리지 않았나 싶다. 

 

작가는 그러면 된 거 아닌가?     

        

그런데 작가에게 미안하다. 내 마음은 작가에게 끝까지 박수와 찬사를 보내고 싶은데 결국 드라마는 배우의 것이기에 결국 마지막에 박수는 양강칠을 위한 것이 되고 말았다. 작가는 캐릭터를 만들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완벽한 캐릭터가 아닐 수 있다. 나머지는 배우가 완성해 가는 것이다. 나는 정우성이 본래 자신이 갖고 있는 이미지를 벗고 어촌의 가방끈 짧은 하지만 순박하고 뚝심있는 사람의 캐릭터를 훌륭히 소화해 준 것에 무안히 감사와 박수를 보내주고 싶었다. 정말 그는 캐릭터 연구를 많이 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그가 맡은 캐릭터 중에 가장 많이 망가지고 동시에 가장 위대한 역을 해낸 것이 아닌가 한다. 더불어 국수 역의 김범은 정말 제대로 꽂혔다는 생각을 했다. 이들이 있었기에 나는 보는 내내 행복했고 뿌듯했다.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고, 양강칠이 실제로 어딘가에 실존해 있다면 잘 살라고, 행복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런데 작가는 그러면 된 거 아닌가? 소설을 쓰는 작가면 모를까 드라마는 공동작업이기 때문에 작가 혼자만이 영광을 다 가질 수 없다(아니 오히려 그 존재조차 미미할 때가 많다). 그래서 그 작품이 끝났을 때 배우에게나 시청자들에게나 주인공이 오래 기억이 남아야지 작가가 기억에 남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말했다시피 요즘엔 작가의 위상이 높아져서 영광을 웬만치는 누린다. 그러나 그 작품이 망쳤을 때 돌아오는 비난은 누구보다도 작가가 먼저다. 이게 드라마 작가의 위치가 아닌가 싶다. 

 

사실 노희경뿐 아니라 드라마 작가들의 대본집 출간이 앞으로 출판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런지 모르겠다. 내가 볼 땐 아직 낙관하긴 이를 것 같다. 무엇보다 작가의 주옥 같은 대사가 아니면 지극히 건조한 이 책을 온전히 읽어낼 독자가 얼마나 될까 의문스럽기도 하다. 그럴 땐 독자가 좀 더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지문을 소설처럼 풀어 써 줘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그것을 드라마 작가의 자존심이 허락될지 의문이기도 하고. 아무튼 뭔가 새로운 문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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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03-25 0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본집을 읽고 드라마를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정말 좋은 작품이라면 가능할 것 같아요. 이 드라마 다시 보고 싶어지네요. 책 보니까^^

stella.K 2012-03-25 11:30   좋아요 0 | URL
솔직히 지난 번에도 말했지만 책을 좋아하고 작가를 좋아한다면
갖고 있을만 해요. 대사빨도 좋고.
근데 그게 아니라면 크게 욕심 안 내도 좋다고 말하고 싶어요.
저 같은 경우는 소설을 좋아해서 가끔 괜찮은 드라마
공부 삼아서 소설로 써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요.
그것도 어디까지나 생각뿐이랍니다. 난 게을러서 아무 것도 못해요.
버나드 쇼가 비석에 글 하나는 잘 박아 넣었지요.
"갈팡질팡하다 이럴 줄 알았지!"ㅋㅋ

차트랑 2012-03-26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다보니 어느 영화의 대사가 생각나는 군요
유전무죄, 무전유죄~
작가가 말하고 싶은 그 뜻은 가상하나
한편의 영화 대사보다 현실감이 떨어지는 듯합나다요 ㅠ.ㅠ

stella.K 2012-03-26 12:15   좋아요 0 | URL
하지만 위로는 받죠. 너무 현실만 생각하면 삭막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작가는 충분히 시청자를 위로한다고 봐요.
드라마의 기능이 그런 것도 있잖아요. 잘못하면 우롱도 될 수 있고.
선택은 늘 시청자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차트랑 2012-03-31 00:29   좋아요 0 | URL
위로를 주는 일은 좋은 일입니다~

기억의집 2012-03-27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사가 용감하네요. 사실 드라마대본집은 그렇게 많이 팔리지 않는 분야일텐데.
드라마를 그렇게 많이 보는 편이 아니라, 저는 드라마 제대로 본 것은 하나도 없어요, 욕심은 안 나지만 각본공부 하시는 분들은 참고할 만한 책인 것 같아요. 이 드라마 최근에 한 작품 맞지요?

stella.K 2012-03-27 18:20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저도 드라마 많이 보는 축은 아닙니다만, 노희경은 팬이라서 끝까지
보게 되더군요.
정말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면 잘 안 볼 것 같아요.
좀 안타깝죠. 지문을 소설처럼 살짝만 바꿔도 좋을텐데.
애매해요. 근데 요즘 종편 TV가 개국을 해서 드라마 볼게
굉장히 많아진 느낌입니다.^^

아이리시스 2012-03-28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저 <화차> 잘 받았어요. 안전하게 잘 왔어요. 고맙습니다. 재밌게 잘 읽을게요. 감기에 걸렸더니 당장은 말못할 (실수일 수도 있고 기회일 수도 있고요) 대형사고도 하나 벌써 치고, 왜 그랬지, 절망하면서 아침에 머리 몇 번 박고, 아.. 아직도 대체 이해가 안돼요. 정신줄을 놓고 살았어요. 알고보면 그건 감기 걸려서 그런 것도 아니고 그 이전에 친 일.. 머리가 자주 작동을 멈춰서 좀 쉬고 집중하다가 나중에 읽으려고요.

채널 A에서 하는 <불후의 명작>이 요즘은 재밌을 것 같고요. 근데 저는 <옥탑방 왕세자>가 너무 웃겨서 활력소예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tella.K 2012-03-29 10:25   좋아요 0 | URL
ㅋㅋ 아니 무슨 사고를 쳤는데요? 어제 올린 아이님 페이퍼에
있나요? 요즘 대본 쓰느라 잘 못 보고 지나치는 페이퍼가 많아요.
저도 <불후의 명작> 1회 봤는데 괜찮은 것 같더라구요.
정말 <옥탑방 왕세자> 웃기죠? 어제 보고 저도 많이 웃었어요.
한동안 좀 지켜볼 드라마 같고, <패션왕>도 좋더라구요.
요즘 '넝쿨째 굴러 온 당신'인가? 뭔가가 시청률 40%를 넘본다고 해서
보기 시작했어요. 거기 윤여정과 장용이 연기를 잘한다고 해서.
정말 아이 잃은 부모의 마음이 이런 거겠구나 실감나요.
괜찮을 것 같은데 50부작쯤 되는 거라 끝까지 볼 수 있을런지 모르겠어요.
암튼 요즘 드라마만 볼게 많아도 넘 많은 것 같아요.
예전에 쿡tv선전 때 채림이 나와서 한숨쉬며 했던 말 실감해요.ㅋㅋㅋ
책 잘 도착했다니 좋네요.
재밌게 읽으시구요, 혹시 또 다른 기회에 더 좋은 책이 아이님께
갈수있게 되길 바래볼게요.^^

페크pek0501 2012-03-30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소설 강의, 드라마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드라마보단 소설에 더 끌렸어요. 그 이유는 소설은 나의 능력을 전부 발휘한 그 자체일 수 있지만, 드라마는 연출가도 연기자도 뛰어나야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가 제 작품이라고 볼 수 없단 생각에서였어요.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 없지만...

요즘 <빛과 그림자>란 드라마를 보면서(제가 유일하게 보는 드라마임) 참 대본 잘 썼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각 인물마다 그 캐릭터에 맞게 대사를 주는지 감탄하곤 해요. 멋진 능력이에요.

스텔라님도 한번 드라마 작가에 도전해 보라고 말하고 싶네요. (저는 숙제로 써 봤는데, 그 능력은 없더라고요.)ㅋㅋ 소설가보다 드라마 작가가 돈도 더 잘 벌던데... 키득.


stella.K 2012-03-30 16:39   좋아요 0 | URL
ㅎㅎ 요즘엔 소설가 보다 드라마 작가가 더 잘 벌죠.
그런데 재주가 메주라 저도 자신이 없어요.
그런 점에서 소설이 여러모로 좋긴하죠.
전 오히려 소설을 드라마 같이 쓸 수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언닌 <빛과 그림자> 보시는군요. 작가가 글 잘 쓰기로 유명하긴 한데
저는 최완규 작가의 작품을 끝까지 본게 없는 것 같아요.ㅜ
대신 전 얼마 전부터 <넝쿨째 굴러 온 당신> 보고 있는데
재있어요. 언니도 기회되시면 한번 보세요.^^

2012-03-30 2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30 2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꿈꾸는 자 잡혀간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꿈꾸는 자 잡혀간다 실천과 사람들 3
송경동 지음 / 실천문학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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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송경동은 글을 잘 쓴다.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가슴이 아리다.

하지만 나는 노동 문제에 대해 잘 몰라서일까?  솔직히 이런 글이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지를 잘 모르겠다. 분명 내가 몰랐거나 단편적으로만 알았던 것에 대해 알게는 됐지만 그것 이상으로 내가 뭘 해 줄 수 있는 지 잘 모르겠다.   

그의 낮은 목소리엔 잃어버린 자의 설움이 베어 있기는 하나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한은 없는 듯하다. 그래서 인간적이긴 하다. 하지만 그의 글을 읽고 우리나라 노동 현실을 무조건 동정을 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나도 함께 노동 현실을 직시하고 같이 편들어 줘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이럴 땐 적당히 동정하고 마음 아파해 주고 그래야 인간다운 사람으로 인정 받지는 못해도 적어도 몰인정한 인간이 되지 않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한 건가? 그러기엔 좀 위선스럽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가? 괜히 쭈볏거리게 만든다.

 

너무 솔직했다 뭇매를 맞는 건 아닌지 모르겠는데 그래도 할 수 없다. 난 솔직히 이책은 읽고 싶지 않았다. 당연 인간의 불편함을 드러냈으니 읽는 사람 역시 불편하달 밖에. 그런데 적어도 새마을 운동 이전까지는 몰라도 새마을 운동 이후의 노동 문학은 한번도 행복을 말한 적이 없다. 당연하다. 그 이전에 노동 문학이 있을 턱이 없고, 가난하고 못 사는 것이 흉이 아니었다. 그것도 삶의 일부려니 하고 끌어 안고 살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이 확연히 들어나면서 그것을 객관화해서 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노동 문학 또한 생겨나지 않았을까? 하지만 노동 문학은 한번도 행복을 말하지 않았다. 원래 노동 자체가 불행하게 태어나서인 것인지 어쨌든 행복을 말하지 않는다. 하긴, 우리나라가 역사적으로 노동 또는 노동하는 사람을 좌시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분명 그들의 고혈을 빼 오늘 날 그처럼 화려한 도시를 이룩했음에도 노동은 하찮 것, 무시해도 되는 것처럼 취급되어 왔다. 이렇게라도 말하는 것은 불과 반세기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분명 문학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 작품이긴 하지만 그 작품 조차 행복을 말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노동 문학은 아직도 그 길이 멀어 보인다. 언제까지 노동은 송경동처럼 아픔만을 얘기하고, 우린 언제까지 그들의 낮은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정부를 믿지 말았으면 좋겠다. 대기업을 믿지 말았으면 좋겠다. 자꾸 그들에 대한 기대가 있으니 이런 낮은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항상 믿었다 당하는 쪽은 노동쪽이었다. 그냥 그저 힘을 키우라고 말하고 싶다. 자신의 자리를 찾고 그 자리를 확장시켜 나가라고 말하고 싶다. 그들의 정당을 세우고, 그들의 정책을 실행하며 그들의 행복과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법을 찾아 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들의 문화를 만들고 우리에게도 나눠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송경동의 문학도 지금 보단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지금까지 노동계라고 하는 곳은 데모하고, 사람을 선동하는 그런 것으로 인식되어져 왔다. 가득이나 역사적으로 노동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있는데 엎친데 덥친격이란 느낌이다. 데모하고 선동하는 것만이 사람의 인식을 바꿀 수 있는 것인가? 80년대는 그것이 먹혔을 것이다. 사측은 언제나 점잖을 떨어왔다. 교묘한데가 있다. 돈이면 뭐든지 다할 수 있다고 믿는 족속들 아닌가. 그러나 애석하게도 노는 그것이 전부 다가 아님을 증명하고 인간적이 되기를 말하기 보다 사측이 누려야할 평안과 복락을 누리지 못해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자들로 보였다(그것을 완전히 부인하지는 못하리라. 자고로 인간이라면 정에도 끌리지만 돈에도 끌리는 법이니까)  오히려 사측이 화를 북돋으면 그에 따라 과격해 지는 건 노측이었다. 그리고 그 불을 끄는 건 사측이고. 심정적으로 사람은 평화적이고 점잖은 쪽을 선호하지 선동하는 것은 안 좋아한다. 즉 내 말은 이제 노동운동. 노동문학도 달라져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보다 문화적인 것으로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노동현장에 있는 사람일테고 그들 스스로가 변화를 주도해 가야만 한다. 그래서 이 책은 맨뒤에 'CT 85호와 희망버스'를 배치해 놓은 것 같기도 하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다른 말로 하면 '노동자는 살 수 없는 나라'라는 말이다.(241p) 이말이 참 나의 가슴을 찌른다. 어쩌다 우리나라는 이런 자평의 말을 들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세계화를 쫓는 것만이 이 나라가 살 길인가? 세계 강대국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만이 가치있고 진정 이 나라가 살 길인가? 묻고 싶다. 강대국이 어디로 가든 우리나라는 내실을 다지고 서민과 노동자를 먼저 살려내면 안 되는 것인가. 10년 전, 20년 전만해도 우리가 그렇게도 닮고 싶어하는 나라는 미국이었다. 하지만 지금 미국은 어떠한가? 저 고고한 유럽이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평가절하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경쟁하고 닮고 싶어하는 나라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우리가 더 이상 비교를 거부하리만치 잘난 것이냐면 그렇지도 않다. 도대체 우리는 누구와 경쟁하며 힘을 키워가야 하는 것이냐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안으로는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데 외부적으로 누구와 경쟁하여 이기면 뭐하겠는가.   

 

노동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문학이 그것을 증명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문학 특유의 해학이 있었으면 좋겠고, 노동하는 사람들 그들이 불행한 것마는 아니라고 말했으면 좋겠다. 그들의 웃음 소리를 들어보고 싶다. 이런 우울한 것 말고. 그런 점에서 난 이책에 대한 별점을(이건 꼭 매겨야 하는 것이냐?) 세 개 이상 줄 수 없다. 그것은 작가의 문학이 이것이 전부가 아닐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노동문학은 앞으로 변화 무쌍할 것이다. 그에 따라 작가의 글도 달라질 것이다. 그것을 기대하고 싶은 것이다.

 

황유미 씨의 죽음은 나 역시 가슴이 아프다. 앞으로 제 2, 제 3의 황유미 씨 같은 죽음이 없었으면 좋겠다. 다시 한 번 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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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3-11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차'에 이어서 소신있고 솔직한 리뷰입니다.
이 문제는, 이렇게라도 아니면 저처럼 안일하게 개인적인 고민만 하고 사는 사람에게는 아마 전혀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저는 어쩔 수 없이 저자나 김진숙씨 같은 분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에효~ 저는 요즘 노동 운동, 노동자의 인권, 이런 것을 넘어서서 더 큰 제도에 대해 아예 회의가 들기 시작했습니다.

stella.K 2012-03-11 18:48   좋아요 0 | URL
ㅎㅎ 아직 화차는 리뷰 안 썼습니다.
반전이 나와주면 좋겠는데 어떨지 모르겠어요.ㅋ
이책은 저도 나인님 생각과 다르지 않아요.
근데 우리가 뭘 해 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작가의 글발은 좋은데 좀 괴롭고 궁상스럽고 따라서 리뷰도
좀 우울하게 쓰게 됐네요.ㅠ

숲노래 2012-03-11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책이든,
즐겁게 읽은 다음,
내 삶을 내 나름대로
사랑스레 돌보면,
좋은 책 읽은 느낌을
잘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stella.K 2012-03-11 18:50   좋아요 0 | URL
ㅎㅎ 맞는 말씀이긴 한데, 싫은 책을 즐겁게 읽기는 전 좀 깜냥이
안되더라구요.
며칠 전 김연수 작가를 만난 적이 있었어요.
그가 그러더군요. 읽기 싫은 책 읽을려고 애쓰지 말라고.
안 그래도 세상엔 내가 좋아하는 책은 널려있다고.
그 말을 하는데 얼마나 속이 후련하던지.
저도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일도 좋아하는 일만 하래요.
괜히 맞지 않는 일해서 고민하고 고생하지 말고.
그게 정답이죠. 세상엔 나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아도 다 못 살거든요.
낙천적여서 좋더군요.^^

이진 2012-03-11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글에서 '미친 전경'이라는 단어를 접하고, 인터넷에서는 '대한민국의 아들 전경'이라는 단어를 접했습니다. 혼란스러웠어요. 책을 읽으면서 무자비하고 잔인한 경찰들에게 엄청나게 욕지거리를 뱉었지만 과연 그들이 진정으로 나쁜사람인가, 하는데에 대한 회의감도 들었구요. 그에따라 책의 내용 전체에 대한 회의감까지 들었구요.
하여튼... 여러모로 참 힘든 책이었습니다.

stella.K 2012-03-13 11:37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입장이 있고 그걸 들어보면
틀리지 않아. 전경도 글을 쓰자면 이만큼 쓸 수 있을 것 같아.
나도 꽤 혼란스럽더라. 고 노무현 대통령이 그런 말을 했다고
안 좋은 쪽으로 몰아서 얘기하는 거. 그분이 어떤 맥락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 우리가 다 아는 거 아니잖아.
노동계 편들어 주지 않는 사람은 그렇게 나쁜 사람으로 매도 되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

그런데 이책 평점이 꽤 높아. 그리고 이런 글엔 손을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진짜 들어주고 싶어서 들어주는 건지 썼지만
그래야 내가 좀 몰인정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들어주는 건지 그걸 모르겠어.
적어도 송경동은 노동과 인권에 정의를 알고 있을지 몰라도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거든.
그들이 사회적 약자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을 무조건 옹호하는 건
문제있다고 봐. 어쨌든 깊이 들어가면 복잡해 지니까
적당한 선에서 화이팅을 외쳐주고, 힘내라고 격려해주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 정도뿐인 것 같아.ㅠ

차트랑 2012-03-12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꿈을 안꿀려고하는데
자꾸만 개꿈을 꾸게되지 멉니까요.
개꿈은 꾸어도 안잡혀가는거 맞나요? ㅠ.ㅠ

stella.K 2012-03-12 11:16   좋아요 0 | URL
ㅎㅎㅎ썰렁하심다. 아, 추워.ㅠㅋㅋ

차트랑 2012-03-12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라...막 계시는 중이시나보네요^^

아, 근데 말입죠~
스텔라님의 글이 이달의 거시기에 뽑히셨습니다 그려^^
고것참 축하드릴 일이구만요^^
글발로 저를 늘 주눅들게 하시더니만
뽑히시는 좋은 일이 생겼습니다~ 축하드려요~~!!!

추천을 깜박 할 뻔 했네 ㅠ.ㅠ

stella.K 2012-03-12 11:23   좋아요 0 | URL
헉, 정말요? 고맙습니다. 알려주셔서.
근데 발표 일찍하네요. 보통은 오후에 하던데 오전이라니.ㅋ

stella.K 2012-03-12 11:56   좋아요 0 | URL
헉, 근데 전 거시기 하나 밖에 안 됐네요.
손양원 목사 페이퍼 될 줄 알았는데.ㅠ
물론 꼭 계산하고 쓴 건 아니지만 추천이 만만치 않아서...
하여간 알라딘은 되면 되는대로 기분 안 좋고
안 되면 안 돼서 기분 나쁘고 마음에 안 들어요.
옛날의 당선작 제도가 기분 좋았는데.
바뀌고 나서 저를 기쁘게 한 적이 별로 없어요.ㅉ

차트님은 이번에 월척하셨습니다.ㅋ 축하합니다.^^

차트랑 2012-03-12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론...^^
손양원 목사관련 페이퍼는 정말 대단히 감동적이었고
저는 스텔라님의 페이퍼 덕분에 손양원이라는 훌륭한 분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나저나 거시기가 2개이면??
그거 참 곤란한 일인데...ㅠ.ㅠ
Aloha~^^

참고: '알로하~'라는 말은 그 뜻의 가지수를 헤아릴 수 없다고 합니다.
고마워요, 반가워요, 재밌네요, 대박요, 감동적이네요, 말로는 다 할 수 없네요, 옳으신 말씀, 놀랍습니다요 등등
뿐만 아니라. 별로구먼요, 싫어요, 재미없다니깐요, 썰렁하구먼요, 추워요~, 미쵸요~
그거 듁음인걸, 맘에 안드러, 일짝 발표했네요, 헉, 정말요? 오전에 하던데 오전이라니....등등의 표현으로도 쓰인다고 합니다요^^
그렇담 저의 알로하는 무슨 뜻일까요?? 쿠더덩~

(정답 확인하러 늦게 다시 들르겠습니다, 알로하~! ㅠ.ㅠ)

stella.K 2012-03-12 14:39   좋아요 0 | URL
왜 곤란한가요?
차트님의 알로하야 저도 잘 알죠.^^

2012-03-12 2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13 1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int236 2012-03-12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실이 답답한 것인지, 아니면 이런 생각에 매몰되어 있는 것이 답답한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둘 다인지...책을 읽는 내내 저도 답답함을 털어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stella.K 2012-03-13 11:4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현장에 안 가 본 사람으로서
왜 이렇게 글을 쓰냐고 그러는 것도 예의는 아니겠지요?
그래도 우울한 건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아요.ㅠ

페크pek0501 2012-03-13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면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 저도 그런 경험 많은데, 그런 생각 들어요.
그 불편함을 외면하는 게 좋은 세상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것을 외면하는 건 이 세상에서 아주 중요한 걸 놓치는 일이라는 것.

조세희의 난쏘공을 몇 번이나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가슴 아팠어요. 명작이에요.

잘 읽고 갑니다.ㅋ

stella.K 2012-03-13 11:43   좋아요 0 | URL
그래요. 마지막에 페크님의 말을 쓰지 못했네요. 맞는 말씀이어요.
난쏘공. 저는 오래 전 딱 한번 읽었어요.ㅠ

수수꽃다리 2012-03-14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숨을 걸되, 돈은 되지 않는 육체노동이 과연 행복해질 수가 있을까요? 문학의 한 특징이 해학이기는 하지만 문학이 노동의 행복을 증명하는 것이 과연 문학의 기능일까요?

감은빛 2012-03-19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밀히 말하면 이 책은 경동선배의 잡문집으로 노동자 문학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스텔라님께서 잘 모르셔서 그렇지만,
노동자 문학은 의외로 굉장히 범위가 넓고 작품들도 많습니다.
당연히 그 중에는 희망을 얘기하는 작품들도 있구요.

여러 현장에서 함께 고생했던 동지로서 경동선배는 진솔한 사람입니다.
그에게 여러 장점과 단점이 있겠지만, 그런 진솔한 태도가 지금의 송경동을 만들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경동선배는 이름없는 노동자 시인이었지만,
지금 그는 무척 유명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유명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앞으로도 꾸준히 현장을 지켜갈 사람입니다.
그래서 송경동이란 이름이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stella.K 2012-03-19 12:58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 같은 벽안의 독자는 잘 몰라서요.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혹시 괜찮으시면 말씀하신 희망을 얘기하는 노동문학이 뭐가 있는지 좀 알려주시죠.^^
 
[16인의 반란자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16인의 반란자들 - 노벨문학상 작가들과의 대화
사비 아옌 지음, 정창 옮김, 킴 만레사 사진 / 스테이지팩토리(테이스트팩토리)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이책은 요즘 시쳇말로 '좀 대박'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언제 한번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의 인터뷰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었는가. 그것도 그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함께 말이다. 특히 작가들의 사는 이야기나 글 쓰는 이야기를 거의 환장하리만치 좋아하는 나는 이책을 읽을 수 있다는 건 그야말로 행운이란 생각을 했다. 

 

그런데 처음 이책을 받아들고 왜 제목을 그렇게 지었을까 의문을 가졌더랬다. 부제가 '노벨문학상 작가들과의 대화'라고 되어있는데, '16인의 반란자들'은 원제 그대로 맞는지 모르겠다. 아마 맞으리라 믿는다. 그런데 왜 하필 그들을 가리켜 '반란자들'이라고 했을까? 그것이 궁금했던 것이다. 하지만 곧 읽어나가면서 그 의문이 풀렸다.

 

이책은 무엇보다도 작가의 다양한 모습과 포즈를 사진에 담아냈다는 점에서 한몫을 차지하고 있는데, 인터뷰도 인터뷰지만 오히려 사진으로 더 말해지는 책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사진들은 하나같이 늙고 쇄락한 모습이지만 그 모습속에서 인생의 연륜이 느껴져 묵직하고도 조용한 감탄을 하게 된다. 

 

책을 덮고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오르한 파묵의 사진

 

특히 책을 덮고도 오래도록 기억나는 사진은 오르한 파묵의 사진이다. 뭐가 그리도 우스워 저토록 파안대소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안락의자에 앉아 웃고있는 모습이 금방이라도 전염이 될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저리 유쾌하게 웃으리만치 행복했고 즐거웠던 것마는 아니었다. 그는 터키의 정체성을 모독한 죄로 기소됐고 그때부터 삶의 고행의 길로 변했다. 그가 바라는 것은 그저 '방구석에 쳐박혀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뿐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꿈을 한참 굽이쳐 돌아나오게 만들었나 보다. 이를테면 그의 반란은 그런 것이다. 터키군에 의해 자행된 아르메니아인과 쿠르드인 대학살에 대해 잠잠치 않는 것. 얼핏 그의 모습 속엔 청년의 모습이 남아있는 듯하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작가 다리오 포

 

그래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모습을 하고 있는 작가는 다리오 포는 아닐까 싶다. 애석하게도(?) 노벨문학상 수장자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쉽지 않은 인생을 사는 양 근엄하거나 뭔가 세상 세파에 찌들려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그가 수장자로 결정됐을 때 보았던 한 컷의 사진은 얼마나 장난기 가득하고 천진한 모습이던지 그야말로 셈이 날 지경이었다. 저렇게 행복한 모습인데 노벨상의 영애도 안다니. 뭔가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무엇보다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 그것은 연극이다. 연극 대본을 직접 쓰기도 하며, 연출을 하기도 한다. 그는 그것을 통해 풍자를 말하고 그것은 권력에 대항하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라고 말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리오 포처럼 자신의 일을 통해 행복을 얻고 힘을 얻을 수 있다면 좋겠다.  

 

가장 마음에 드는 작가 도리스 레싱  

 

이책이 소개한 16인의 반란자 중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작가는 단연 도리스 레싱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그저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질러진 그녀의 서재와 책장을 볼 수가 있는데 이게 또 내 방 모습과 오버랩이 돼 오히려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동병상련이랄까?ㅋ 삼단으로 찍힌 그녀의 각기다른 세 표정이 인상적이다. 젊었을 땐 늙은 사람에게 무슨 미(美)가 있을까 싶은데 깊이 패인 주름에서도 그 나름의 아름다움은 있겠구나 싶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이란 확실히 젊은 날의 고뇌와 상처들이 빚어낸 것일테니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아름다움과는 확실히 차원이 다른 것일테다.

 

난 아직 이 작가의 작품을 읽은 적은 없는데(내 생애 어느 시기에 읽게될런지는 나 자신도 모르겠다), 2007년 낸 <틈>이란 작품의 설명이 흥미롭다. 많은 사람이 여자만이 사는 세상, 또는 남성을 정복해버린 세상에 대해 예견을 하거나 그런 세상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그것을 한층 더 뛰어넘어 보인다. 아예 남자를 모르는 세상에서 사내녀석을 찾기 위해 원정대를 꾸리기까지 하다니. 그녀는 이 작품을 통해 여가와 일, 성별 간의 책임들에 대한 상이한 개념을 테마로 잡았다고 한다.

 

더구나 그녀는 <다시 사랑을>(1996년)이란 작품을 쓰면서 나이 많은 상대와 사랑에 빠지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사회는 그것을 이해 못한다고 하며 이 작품은 그녀 자신을 말한다고 한다. 글쎄. 그녀는 이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사람을 이해하는데 더 넓은 시야를 가져주기를 바랬었나 보다. 나는 왠지 그녀의 생각에 동조해 주고 싶어졌다.    

 

꿈을 쓰는 작가 나기브 마푸즈  

 

가장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작가는 1988년 수상한 이집트의 작가 나기브 마푸즈였다.  그는 1994년 어느 종교 통합주의자의 습격을 받고 병원으로 옮겨졌는데 다행히 목숨은 구했지만 치명상을 입고 고통속에 살아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왕년에 노벨상 수상자가 어린애처럼 펜을 잡는 일부터 다시 배워야 하다니. 후에 재활치료를 받긴 했지만 하루에 반시간 정도만 펜을 잡을 수 있단다. 그렇다면 글을 얼마나 함축적으로 쓸까? 그렇지 않아도 누구는 그의 글을 일본의 하이쿠에 비교하기도 한단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글과 하이쿠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못 밖는다. 이를테면, 일본의 하이쿠는 좋아하는 형태로 자유롭게 뽑아내지만 자신의 글은 필연성이 그렇게 만들었다고(221p).

 

나를 좀 놀라게 했던 건, 그는 꿈을 자신의 소설의 재료로(?) 쓴다는 것이다. 물론 30년간 자신이 꾼 꿈을 기록한 사람도 있다는 건 알았는데, 이것을 적극적으로 소설에 반영할 생각을 한 소설가가 있다니 놀랍다. 나도 가끔은 내가 꾼 꿈이 소설이 될 수 있을까를 의문을 갖곤 했다. 하긴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소설이 되지 못할 건 없다. 소설도 창작이니. 상식에 나를 가두지 말고 모든 것에 열린 사고가 필요하다.  

 

그 밖에...

 

마르케스는 참 낙천적으로 사는 사람 같다. 항상 그랬지만 그의 풍채에서 남미 특유의 낙천적 기질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그는 2010년 수상작가인 페루의 바르가스 요사와 우정을 나누다 1976년 한 공개석상에서 요사가 그에게 펀치를 날리므로 단절이 됐다고 하는데 그게 묘하게 나를 위로한다. 얼마 전 요사가 날린 펀치 못지 않은 일을 당하면서 나는 잠깐 마르케스가 돼 봤다.'저런 거장도 주먹을 날리는데 나라고 별 수 있어? 까짓 거.' 하긴. 76년도에 요사나 마르케스나 거장이 될 거라고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선물 받고 아직도 못 읽은 그의 자서전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나 속편하게 읽어 봐야겠다.

 

읽으면서 숙연해지는 작가도 있다. 그는 바로 귄터그라스다. 그는 자신이 나치 친위대였음을 스스로 고백하다가 뭇매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을 고백한 사실 후회하지 않는다. 물론 그것은 그에게 트라우마로 남았지만 그것은 자국의 역사를 거스를 수 없기에 당하는 고통이라 생각한다. 파이프 담배를 문 그의 얼굴이 참 인상적이다. 작가는 모름지기 고백하는 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봤다. 

 

(속된 의미에서)쾌감을 느끼게 해 줬던 인터뷰도 있었다. 그는 다름아닌 V.S 네이폴 이다. 그는 우리가 고전의 반열에 놓은 작품을 기꺼이 비판을 했다. 그는 말하기를,제인 오스틴은 '단지 그 시대의 특정한 양식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한테만 매력을 줄 뿐'이고, 헨리 제임스는 '세상에서 가장 나쁜 작가로, 모험을 감행한 적도 진지한 적도 없으며, 마차의 상석에 앉아 젠틀맨 같은 폼을 잡은 채 세상을 내려다보고, 헤밍웨이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해 알지 못했으며, 전쟁 중에 파리에 있었지만 독자들한테 준 것은 그가 어떤 칵테일을 마셨는가, 하는 것 뿐이다.(243P)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로인해 이런 일련의 작가들에 주눅들지 않고 좀 편하게 대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들도 완벽한 작가는 아니었다고. 그러니까 너무 쫄지 말자고 근거없는 자신감을 가질 법도 하다.

하지만 난 얼마 전 헤밍웨이의 소설을 읽었는데 새삼 매력적인 작가란 생각을 했다. 어떻게 이런 작품을 쓸 생각을 했을까? 감탄까지는 아니어도 내 안에 조용한 탄성을 자아내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니 저런 작가들의 흠은 네이폴이나 되니까 잡아낼 수 있는 거지 일반인은 그렇게 하려고 해도 못할 것이다. 그러니 고전은 잔말 말고 읽어야 한다. 일단 읽어보고 네이폴처럼 흠을 잡던지 감탄을 하던지 해야할 것이다.       

 

아무튼 이책은 상당히 매력적인 책이다. 단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그냥 3년 여에 걸쳐 인터뷰를 했다고 하는데, 몇년부터 몇년까지 3년을 했다는 건지, 언제 인터뷰 했는지 정확한 년도가 밝혀있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웠다. 특히 마푸즈 같은 경우 95세로 기입을 했는데 지금 현재의 나이가 그런 건지, 인터뷰 당시의 나이가 그런 건지 알 수가 없다. 했을 당시의 나이가 그렇다면 지금도 이 사람이 생존해 있는 건지 애매해진다. 이런 건 역자라도 주를 달아주면 좋지 않았을까?      

 

솔직히 노벨문학상이 어떤 상인가? 세계 최고 권위의 상이 아니던가. 그런데 궁금했다. 해마다 수상자를 발표하면서 수상자들은 상을 받은 이후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야말로 '받은 자는 말이 없'다. 하지만 이책을 읽음으로 비로소 그 의문이 (다소는)풀렸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아도 되리만치 노벨문학상은 부와 명예를 가져다 줬지만 당연 그들은 그렇다고 해서 글 쓰기를 멈추지 않았고, 또 몇몇 작가는 오히려 그 때문에 글을 못 쓰고 다른 부가적인 일에 시간을 빼앗긴다고 볼멘 소리를 한다. 그게 참 친근하다. 여기 소개된 16인의 작가들은 나름의 상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상처는 글을 남긴다. 즉 그들은 자신의 상처를 문학으로 승화시킨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과연 문학상을 받을만 했(겠)구나.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그리고 그들은 나름 필요한 일을 감당하고 있었다. 그들이 하는 일을 보면 왜 '반란자'란 이름을 붙였는지 알 것 같다. 둘 다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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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3-01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을 읽으며 '반란'이라는 말에 눈길이 가더군요.
수용이 아닌 반란. 수용하는 것은 누구든지 하지만, 반란은 일단 남이 쉽게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자기만의 사유를 거쳐 이렇게 창작물로 탄생시키기까지,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겠지요.
도리스 레싱 할머니는 어딘가 미스테리해요. 말씀하신대로 이렇게도 보이고 저렇게도 보이고, 아주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 않나요? 그녀의 작품을 읽어봐도 그렇더군요.

stella.K 2012-03-01 14:51   좋아요 0 | URL
와우, 레싱의 책을 읽으셨군요.
전 수상작들 솔직히 읽을 자신이 없더라구요.
이번에 읽으면서 한번 도전해 볼까 그런 생각이 들긴하더군요.^^

cyrus 2012-03-01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전에 한사람님 리뷰를 본 적이 있어서 며칠 전부터 이 책 읽고 있었어요.
정말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의 이야기를 모은 책답게 재미있었어요,
저도 이 책 읽고 수상자들의 소설들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고요 ^^

stella.K 2012-03-02 14:14   좋아요 0 | URL
이건 정말 대박이야. 그지?
맞아. 읽고 싶은 생각이 조금 들기도 했어.
하지만 읽다가 좌절할 거 생각하면...ㅠ
곧 너의 리뷰도 볼 수 있겠군. 긴장되는데.ㅎㅎ

blanca 2012-03-01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사진도 참 좋죠! 저도 오르한 파묵 참 인상 깊었어요. 인상도 좋더라고요. 기억이 안 나는데 인터뷰로 돈을 요구했다는 그 수상자는 참 쪼잔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주제 사라마구는 이미 이 세상에 없구나, 하니까 흑백사진과 아내와 사랑을 나누는 모습 등이 더 뭉클했어요.

stella.K 2012-03-02 14:15   좋아요 0 | URL
헉, 그런 말이 있었나요? 나 뭐 읽었지...?OTL
그렇군요. 주제 마라사구가 정말 죽었어요.ㅠ
사진 정말 잘 찍었어요. 특히 손 사진은...!
작정하고 찍은 사진도 있지만 순간포착하듯 찍은 사진이
정말 예술이더군요. ^^

차트랑 2012-03-01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리스 레싱의 어질러진 모습이 마음에 든다고 하시니
공감합니다.

대학 때 친구들이 제 집의 방에 들어와서는....
이거 만져봐도 돼? 라고 말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거의 결벽에 가까이 정돈된 모습에 그만
그렇게 물어보게 되었다고...

이제는 전혀 그렇지 않지만
비조직에서 창의력이 싹틀 수 있다는 생각에는 적극 동감입니다.
저는 창조와는 거리감이 완전 꽝~ ㅠ.ㅠ

그나저나 노벨 문학상하고도 거리가 참 멀리있다는 생각을
다시한 번 더 하게됩니다
소설과의 거리감이 너무 멀기만하다는...ㅠ.ㅠ

stella.K 2012-03-02 12:11   좋아요 0 | URL
진짜 너무 깔끔하면 부담스럽더라구요.
적당히 어질러야 여유가 있어 보이지요.ㅋㅋ
전 소설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작년에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소설을 안 읽었어요.
올해는 소설을 좀 많이 읽어볼까 하는데 뜻대로 될런지...ㅠ

이진 2012-03-02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에, 나는요 이 책을 자기전에 한 챕터씩 보면 딱 좋겠다 하고서는 머리맡에 두었는데
주제 사라마구의 글을 읽고나니 팍 자신감이 죽어버렸어요. 결국 지금까지 이렇게 방치해두고 있는 상황. 저는 도저히 그 분들의 사고세계를 이해할 수가 없겠더라지 말이어요...
송경동 시인의 책은 괜찮았는데 그래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이라니!
저는 헤르타 뮐러를 좋아하는데 최근이라 그런지 없어서 안타깝기도 해요.

stella.K 2012-03-02 14:16   좋아요 0 | URL
이진이 평가단 날짜 못 맞추네.
나도 이번엔 못 맞춰.
티끌모아 로맨스라고, 나는 티끌모아 리뷰 쓴다.
이것도 그동안 조금조금씩 썼다 어제 작정하고 마친 거야.
근데 난 송경동의 책은 또 좀 그닥이야.
헤르타 뮐러를 좋아하다닛! 대단해. 난 읽다 포기하고
누가 달라기에 덥썩 내줬는데.ㅎㅎ

아, 오늘 입학인가? 아님 내일...?
암튼 축하한다. 지옥입대를.ㅋㅋ

기억의집 2012-03-02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뷰한 작가가 더 대박이었을 것 같아요. 얼마나 좋았을까요.흐흥~
3년간 16명의 작가들을 만나려고 준비하는 과정이 이 작가에게는 인생의 황금기가 아니였을까 싶어요. 완죤 부럽다는~
마르케스와 요사는 아직도 화해하지 않았나요? 어디선가 화해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은데. 이건 확실한 정보는 아니여요. 요사가 노벨상 탈 때 전 별로였어요. 노벨상의 기준이 뭔지 모르겠어요. 2009년작이니깐 2006년부터 시작하지 않았을까요?

근데 마르케스와 같았다는 이야기는 뭔가요? 아웅 궁금해~

2012-03-02 1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02 2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03 1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02 2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03 1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리시스 2012-03-03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 책이었어요? 지난달 에세이 분야 도서가요?
늘 살까말까 하다가 저는 이것보다는 역시 문학에 더 관심이..( '')
저는 작가는 작품 뒤에 가려야 한다고 생각해서 작가 자체의 이야기들을 읽는 것에는 흥미가 없는 게 아닌가 했는데 역시 흥미로워요^^

stella.K 2012-03-04 12:31   좋아요 0 | URL
왜요, 에세이도 문학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에세이가 섭섭해 합니다.
저는 작가들의 이야기 워낙 좋아해서 이 책 모르긴 해도
내맘대로 좋은 올해의 책 탑5에는 들어갈 것 같습니다.ㅋㅋ

페크pek0501 2012-03-03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 대박 예감 드는데요.ㅋㅋ

"여기 소개된 16인의 작가들은 나름의 상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상처는 글을 남긴다." - 제 생각엔 상처 없이는 좋은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아요. 평범한 사람들이 글을 못 쓰는 이유도 그래서인 것 같아요. 흔히 어떤 한이 있어야 소설을 잘 쓴다고 해요. 마치 한이 없는 사람이 창을 잘 할 수 없듯이요. 아마 한이 있다면 생각도 자연 깊어질 것이고, 세상에 대해 할 말이 많을 거예요. 할 말 많은 사람이 글을 잘 쓸 수밖에 없어요.
상대적으로 할 말 없이 살 수 있는 행복한 사람은 빼어난 글을 못 쓸 거예요.
그래서 저는 소설가는 하늘이 내린 사람, 운명적으로 타고난 사람만이 될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추천~~.

stella.K 2012-03-04 12:34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페크님이 깔끔하게 정리를 잘 해 주셨네요.
그래서 저도 소설에 도전해 보고 싶어지는데 쓰다보면 어느새
궁상떨거나 남 험담하는 것 같아서 엎어버린적이 많아요.
문맥 맞추기도 힘들고.ㅠㅠ
아무튼 추천은 고맙습니다.^^

2012-03-04 0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04 1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04 2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05 1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영, 아빠는 유학 중
옥성호 지음 / 국제제자훈련원(DMI.디엠출판유통)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저자는 효자다. 저자의 아버지가 병원에서 마지막 삶의 불꽃을 태우고 있을 때 아버지를 조금이나마 위로해 드리려고 이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으니 말이다. 그 아버지는 다름아닌 고 옥한흠 목사님이고 저자는 바로 그분의 장남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책이 미처 탈고되기 전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책을 보여드릴 수 없었다고 밝혀 마음이 짠했다. 

하긴 목사님이 살아계셔서어도 그분의 성정에 아들이 이런 책을 냈다고 어디 내색하실 정도로 반기셨을까? 그건 또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저자에게 이책이 갖는 의미가 남다르긴 하다. 이책은 옥한흠 목사님이 젊은 시절 가족들을 두고 미국 유학길에 오르고, 그 유학 3년 동안 아들인 저자가 어떻게 지냈는지 아버지는 모르실테니 바로 그것을 알려드리기 위해 글을 썼다고 했다. 그러니 어찌보면 아들로서는 부친의 전생애를 볼 때 유학하느라 몰랐을 가족사의 마지막 퍼즐 한조각을 맞혀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썼을 것이다. 

 

사실 저자의 책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나는 옥한흠 목사님 타계 직후 그가 쓴 <아버지, 옥한흠>이란 책을 읽었는데, 그 책은 저자의 아버지이기도 하지만 나의 영적인 아버지(난 그분의 교회를 오랫동안 다닌 관계로 그렇게 부르고 싶다)인 관계로 그책을 읽는 감회가 남달랐다. 바로 그책을 읽음으로 해서 사랑의 교회가 어떻게 세워지고 영적인 계보가 어떻게 뿌리를 내릴 수 있었는지 아는 단초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이책은 솔직히 전작만한 감흥은 없었다. 의미가 있다면 옥한흠 목사님 가문의 역사의 한 단면을 보는 것 정도랄까? 물론 저자가 그것을 거창하게 바라봐주길 바라면서 썼을리는 없을리는 없을 것이다. 단지 이왕 돌아가신 아버님에 대해 알려질 것 같으면(사람은 살아생전 보다 사후에 알려지는 것이 더 많을 것임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부터) 알려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아들과 아버지. 이처럼 가까운 사이가 또 어디 있겠는가. 물론 이책은 저자 자신의 자전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도 어린 시절을 중심으로 한. 그래도 아버지를 의식해 썼고, 아버지에 대해 (전작을 포함해)이만큼 쓸 수 있는 거라면 옥한흠 목사님은 상당히 존경 받을만한 분 같다는 생각이 든다. 

           

폐일언하고 이책은 상당히 재밌다. 작가는 자신의 유전자가 모계를 닮지 않고 부계를 닮았다고 했는데, 작가의 어린 시절을 복원해 내는데 그 글솜씨가 상당히 유려하다.

저자는 그렇게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진영읍에 있는 외가에서 살아야했던 3년 간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어쩌면 매 에피소드마다 어린 아이의 심경을 그리도 잘 포착해 내는지 읽으면서 내내 즐거웠고 웃음짓게 만들었다. 특히 키우던 개를 그런 의도는 없었는데 딱총으로 눈을 맞히고 무척 미안했음에도 어느 날 솥안에 있는 것을 보고 별로 미안해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 특히 동생이 그것을 먹으면서 사라진 개를 안타까워 하면서도 맛있다고 말하는 그게 참 많이 웃음이 났다. 또한 무엇이든지 만지기만 하면 고장을 잘내는 저자가 동생을 100원에 매수하여 전기밥솥이 고장난 책임을 지도록 만들고, 어머니에게 혼이 나면서도 당당한 동생의 모습속에서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대비시키는 것도 재밌었다. 또한 그토록 보기원하는 만화 영화를 자는 척하며 잠꼬대를 읊어 막상 원하는 것을 이루게 되지만 곧바로 허무함을 경험하게 됐다는 이야야 등. 정말 우리도 돌이켜 보면 이런 추억하나쯤은 있지 않나, 그야말로 추억은 방울방울이다.  

 

무엇보다도 어린아이의 마음은 단순하다. 보이지 않는 것 보다 보는 것에 더 목이 마르고 그것으로 사람을 가늠하고 세상을 판단하기 좋아한다. 공부 잘하면 인정 받을 줄 알았는데 그것 위에 주먹 센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된 소년이 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보내 온 사진속 링컨 컨티낸탈을 탄 아버지를 보면서 무조건 아버지가 미국에서 출세한 줄 알고 친구들에게 들떠 자랑하는 소년도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그 차의 출처를 알게되고 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아주 작은 진실의 한 조각임을 저자는 감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외가에 대한 저자의 애정은 남달라서 정말 어린 아이에게 외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복인가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든다. 나 역시 어렸을 때 친할머니 댁에 가는 것 보다 외할머니 댁에 가는 것을 더 좋아했다. 분명 친할머니의 집이 외할머니의 집 보다 좀 더 나았는데도 난 굳이 불편한 외할머니 댁을 더 좋아했다. 음식도 입에 맞기는 친할머니가 해 주시는 음식이 더 맞았는데도, 조미료를 쓸 줄 모르고 짜기만 했던 외할머니 음식을 좋아서 온 이상 입에 맞지 않는다고 투정할 수가 없었다. 그럴만큼 외가가 더 좋았던 것이다. 그것이 생각이나서 책을 읽으면서 정말 동감이 되었다.

더구나 아버지가 귀국하고 너른 마당이 있는 외가를 떠나 서울의 좁은 셋방에 살아야 했을 때 소년은 얼마나 외가가 그리웠을까? 그뿐인가? 외가가 있는 진영의 교회는 번듯했는데 아버지가 개척한 교회는 그야말로 상가내 교회였다. 말이 되는가? 모름지기 교회라면 교회다운 외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어야지 상가내 교회라니.

 

그건 정말 나의 경험이기도 하다. 친구 따라 나온 교회가 상가내 교회라 나는 다시는 교회 안 나가고 성당 다닌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시작은 그렇게 했을지 몰라도 진짜 신앙을 키운 건 기독교로 옮기고 나서부터였다. 그러니 보이는 건 보이지 않는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아닌 것이다. 나중에 소년의 아버지는 정말 아기자기하고 멋진 교회를 짓지 않았는가. 내가 사랑의 교회를 처음 나가던 날 정말 미국의 어느 교회가 이렇지 않을까? 너무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훗날 아버지가 그런 교회를 세울 줄 소년은 전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정말 이책을 읽으면서 남자들 처가집 말뚝만 봐도 절을 해야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그렇게 당신의 자재들을 사랑으로 감싸주시는 장모가 안 계셨더라면 옥한흠 목사님이 어떻게 그렇게 유학을 다녀오실 수 있겠으며, 오늘 날 우리나라 기독교사에 길이 남을 목회를 하실 수 있었겠는가.

 

그런데 이책을 읽으면서 저자에게 바램이 하나 생겼다. 언제고 이 글을 저자가 볼런지 모르겠는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옥한흠 목사님의 유학 3년 동안의 일기와 사모님과 주고 받았던 편지를 꼭 책으로 내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이 진영에서의 3년 퍼즐이 맞을 것 같다.

또한 나는 이책을 읽으면서 문득 브래드 피트가 나왔던 <흐르는 강물처럼>이 생각이 났다. 물론 본지 오래되서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그것도 한 목사의 가정에서 2대에 걸친 유장한 가족사를 그린 작품으로 기억한다. 이제 고 옥한흠 목사님 이야기에서 빠진 건 그분의 세 아들이 어떻게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렸는가인데 그것까지 볼 수만 있다면 신앙의 모범을 사셨던 목사님 가정의 한편의 수채화를 볼 것 같다. 감히 저자에게 부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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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2-25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시절의 얘기가 무척 재밌네요. 누구나, 아무리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우리의 일상 속엔 보석 같은 숨은 이야기들이 많지요. 그 보석이 빛을 내기 위해선 그것을 발견하는 눈이 있어야 할 듯해요. 잘 읽고 갑니다. ㅋ

stella.K 2012-02-26 13:15   좋아요 0 | URL
이책 정말 재밌어요.
교회 안 다니는 사람도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어요.
정말 아련한 어린 시절 추억에 빠질 수 있는 그런 책이죠.
기회되시면 한번 읽어 보세요.^^

이진 2012-02-26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옥한흠 목사님의 교회를 다니셨군요. 부럽습니다.
어쨌든 스텔라님은 요새 이런 책에 푹 빠지셨군요. ㅠㅠ
저는 요새 책에는 손을 도저히 대질 못하고 있습니다.
인강이 이제 이틀 남았는데 강의가 수두룩하게 밀려버렸어요 ㅠㅠ
그걸 듣느라... 하 그래도 꾸준히 자기전에 송경동 시인의 작품은 읽고는 있는데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는거 있죠.
이제서야, 아니 전부터 느껴왔지만 에세이 신간평가단 초반에 알라디너 분들의 염려섞인 한 마디들을 이해하겠습니다. 저의 수준이 낮은 걸까요 ㅠㅠ 오늘은 한진중공업에 관련된 모든 실태를 알아야겠습니다. 그래야 책이 좀 더 재미있게 읽힐 것 같아요...

stella.K 2012-02-26 20:05   좋아요 0 | URL
뭐야? 스텔라님? 이모라고 부르랬더니.>.<;;
그래서 요즘 잘 안 보였구나.
입학도 하기 전에 이렇게 공부할게 많아 어쩌누.
입학하면 너 보기 더 어려워지겠지?ㅠㅠ

글쎄, 너한텐 에세이 분야가 어렵나?
난 비교적 어느 분야 보다 만족도가 높은데.
물론 나 역시 평가단의 책이 다 좋은 건 아니야.
하지만 전에 지원했던 예술 분야쪽 보단 좀 좋은 것 같아.
인문분야는 아예 처다보지도 않고.
아무래도 네가 공부에 바빠 마음의 여유가 없는가 보다.
근데 왜 또 평가단 책 선정 및 발송을 안하는 걸까?
또 3월이 되야하려나 보다. 이번 담당자 누군지 모르지만
쫌 마음에 안 들을려고 해.ㅠ

옥한흠 목사님 설교는 인터넷 들어가면 들을 수 있어.
아직도 그분 생각하면 코끝이 찡해.ㅠ

이진 2012-02-26 20:25   좋아요 0 | URL
아이고, 이모.
공부하느라 정신이 없어요 ㅋㅋㅋ
뭐, 솔직히 말하자면 딱히 공부랄것도 없지만 후후

제가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렇게 느껴지는 걸까요?
하지만 칼과 황홀도 그렇고, 술술 읽히지는 않네요.
특히 미셸 투르니에였나, 그 분의 에세이는 특히 다가가기 어려웠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은 손을 못대겠어요.
지루하다고 해야할까?
이미 2월에서야 배송된 몸. 이제는 한달씩 늦추려나 봅니다.
저야 이번이 처음이니 싫고 말고 할 것도 없고, 늦춰지니 좋지요.. 하아,
 
나는 꽃이 아니다 - 세계사 속 여인들의 당당한 외침
신금자 지음 / 멘토프레스 / 2012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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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은 언젠가 읽은 것도 같다. 요즘 같이 페미니즘이 왕성히 발달된 시대에 여자로서 이런 책 한권쯤 안 읽었다면 거짓말 아닌가? 뭐 꼭 그렇지 않더라도 단편적으로나마 알고 있을 것이다. 특히 클레오파트라나 엘리자베스 여왕, 마리앙트와네트 등의 이야기야 소설로 영화로 많이 만들어져 알고 있는 이야기 아닌가.

 

그래서일까 책의 초두 부분은 마치 역사를 다시 훑는 느낌이다. 그것도 여성사적인 관점에서. 하지만 피로 목욕을 했다던 바토리 백작부인(194p~)의 이야기는 확실히 엽기적이고 섬뜩하기까지 하다.

 

뒤로 갈수록 현대에 가까운 여성이 나와 재미있게 읽혀진다. 솔직히 이름 정도만 알고 풍문으로만 아는 여성사의 인물에 관해 '아, 이랬었구나.' 새삼 깨닫는 것도 있어 흥미로웠다. 특히 독일의 여자 첩보원이었다는 마타하리는 이번에 확실히 알고 실소했다. 그녀를 몰랐을 땐 나름 똑똑하고 첩보원으로서의 역할을 잘한 줄 알았더니 좀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뭐 자신이 죽는지도 모르게 미소를 띄며 죽었다니 나름 행복한 죽음 아닌가?

 

그래도 내가 가장 흥미있게 읽은 건, 조르주 상드와 루 살로메, 보부아르와 오노 요코랄까? 특히 조르주 상드와 루 살로메는 그동안 비슷한 공통점이 있어 무의식 중에 거의 구분없이 동일인물처럼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이들의 공통점은 당대 남성 지식인들이 기꺼이 사랑해 마지않았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었을까? 약간은 부러웠다. 

그런데 여기서 볼 수 있는 건, 봉건의 시대에 여자는 똑똑하면 안 된다는 건 남자들이 만들어 놓은 가치관이기도 한데 그것을 깨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남성 지식인은 그에 걸맞는 여성 지식인을 원했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 아닌가. 그러므로 여자도 공부하길 원한다면 누구 핑계대지 말고 공부해야 한다. 남자들이 말하는 똑똑한 여자와 여자들이 생각하는 똑똑한 여자 좀 다른 것 같다. 전자의 여자는 부정적인 것으로 오만에 가득찬 여자를 두려워 해서 일테고, 후자는 남자와 동등한 역할과 지성을 원했을 것이다. 그것이 남성에 의해 봉쇄되었다고 생각하는 건 확실히 잘못된 생각 같다. 어차피 세상과 운명은 지배하는 사람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어떤 면에선) 가장 현명하고 이상적인 삶을 구가했던 건 커플은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는 아니었을까 싶다. 보부아르는 하다못해 요리하는 시간 조차도 할애하지 않았다고 하지 않는가.

 

솔직히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요리를 만드는 것도 행복이긴 하겠지만 합리적며 동반자적인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이 행위는 솔직히 예외로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누구도 요리를 해야한다는 강박을, 또 그 요리를 먹어줘야 한다는 이 강박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남녀평등이 이루어지는 거라고 말하면 너무 지나친 생각일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것 때문에 스스로 부과한 잘못된 사고와 족쇄들이 얼마나 많은가? 한 세기 전 여성만 하더라도 여성들이 경제활동의 주체가 될 수 없었기 때문에 이건 거의 계약적이면서도 숙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날의 세기는 역전이 추세이기도 해 남자들에게 음식을 해서 먹이는 걸 부담스러워 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사르트르는 한 세기 전의 사람으로써 미리 간파했을까? 또 모를일이지. 보부아르는 워낙에 똑똑했으니 잽이 안될 거라고 생각하고 그보단 덜 똑똑한 여인을 가까이두고 이 문제를 해결했을지. 

아무튼 앞으로의 삶의 방식은 보부아르가 이미 구가했던 삶의 방식을 답습하거나 그것을 넘어설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모르긴 해도 다음 세기는 명절이 여성에 의해 없어질지도 모른다. 그냥 단오같이 24절기의 하나쯤으로 치부될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그런데 오노 요코는 확실히 같은 여자가 봐도 그다지 좋다는 인상을 갖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동양 여자라고 곱지 않은 시선이었다고 하는데 왜 비틀즈가 해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 안 먹어도 될 욕까지 더 먹었는가 말이다. 그것도 입 한 번 잘못 놀려서 말이다. 물론 그녀가 아니어도 비틀즈는 해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마치 여자 하나가 물을 흐려놓은 것처럼 되어버렸으니, 모르긴 해도 이 여자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한 짓이 뭔지 모를 것이다. 안다고 해도 인정하지도 않을 거고. 

 

이 책은 나름 가독성은 있어 보인다. 현대적인 편집 감각도 있어 보이고, 더 관심을 가지라고 그 인물에 대한 역사적 배경 설명도 나름 꼼꼼했다. 이렇게 여성사의 개괄적 흐름을 대중적인 글쓰기로 시도했다는 점은 높이 살만하지만, 내용면에선 새롭다거나 그다지 깊이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더구나 우리나라 사람이 썼으면서 어떻게 우리나라 여성 인물 한 명도 할애할 생각을 안했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동양 여자로 측천무후와 서태후를 배치했는데 그것도 그냥 모양 좋으라고 끼워넣은 느낌이라 오히려 안 넣는니만 못한 것은 아닐까 아쉽다.

 

하지만 무엇보다 앞으로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이 책을 읽어야할 필요성을 있을까? 의문스럽다. 그냥 역사적 인물중의 하나로 보겠지. 그들이 왜 그런 삶을 살고, 당대 추앙 내지는 질시를 받았는지 후대는 잘 이해 못할 것 같다. 아마 그래서도 여성학을 공부하는 많은 사람들이 없어져야 할 학문이라고 규정하고 그토록 열심히 공부하며 여성의 권리신장에 몸바쳤나 보다. 아무튼 이렇게 평가는 후대의 몫일텐데 바로 이 평가가 이 책에서는 약하거나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어서 아쉽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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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12-02-21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르주상드와 루 살로메라니...
흥미로운 주제와 인물들을 다루고 있는 책이로군요.
우리나라 인물 중에는 허난설헌과 같은 상당히 매력적인 인물이
분명히 있는데 아쉬움이 남겠습니다.

stella.K 2012-02-21 16:58   좋아요 0 | URL
뭐 허난설헌 뿐이겠습니까?
근데 안 다룬 거 보면 이미 사극으로 우려먹은지라 그럴 필요를 못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근데 이 책 좀 애매하더라구요. 그럭저럭 읽을만은 한데 딱히 추천은 못하겠더라구요.ㅠ

숲노래 2012-02-21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모두 '책'에 실린 자료를 그러모아서
엮을 수밖에 없는 책이니까,
한국사람을 다루면
한국사람은 '책' 아닌 다른 만남과 자료를
여느 사람들이 훨씬 더 꿸 테니까
쉽게 건드리지 못할 수 있겠지요...

현대에 있는 오노 요코 같은 사람은
편견으로 사로잡힌 자료가 많기에
섣불리 다루어서는 안 되리라 느껴요..

stella.K 2012-02-21 18:14   좋아요 0 | URL
이 책도 오노 요코에 대해서는 아는만큼만 다룬 거겠죠.
그 사람이 대중에 많이 알려진 것은 아니고.
비틀즈와의 관계는 이미 잘 알려진 것이긴 한데 저도 다 믿고 싶지는 않아요.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더라도 오해 받게끔 한 요인도 있으니 피해 가지는 못했을 겁니다. 자기가 입을 열기 전에는 모르는 거죠.

cyrus 2012-02-21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드, 보부아르, 요노 요코 같으면 자기주도적인 삶을 산 여성들의 삶을 다룬
책들에 많이 등장하는 인물일텐데요. 몰랐던 새로운 정보를 얻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책에 등장하는 인물 이름만 봐도 다른 책에 본 내용이랑 겹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우리나라 여성의 삶을 다룬 책이라면 여러 권 있을텐데(물론 책에 소개하는 인물도
그 나물에 그 밥일 수도 있겠지만요 ^^;;) 제가 기억하고 있는 책
이덕일의 <여인열전>이에요. 시간이 되신다면 이 책도 읽어보시면 좋을듯해요 ^^

stella.K 2012-02-22 12:46   좋아요 0 | URL
그렇지. 그래도 이름만 알고 그녀의 행적은 잘 몰랐던 걸
알아서 나쁘진 않았어. 차라리 자기계발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면
좀 더 나을뻔한 책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여인열전. 그래. 시간나면 함읽어 볼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