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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대중문화 표류기
김봉석 지음 / 북극곰 / 2015년 4월
평점 :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 뭔가모를 기대감이 있었다. 무엇보다 재미있을 것 같다는. 작가야 처음 듣는 이름이고(그래도 이 사람 나름 글 꽤나 쓴다는 부류에선 알아주는 고수긴 한가 보다) 난 바로 이 '대중문화'란 글자에 꽂혀 기런 기대감을 모락모락 피워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대중문화는 결코 어렵지 않다. 그것은 그냥 자연스럽게 흡수되는 것이고, 즐겨야 하는 것이지 고찰되어지고 연구되어지는 거라면 골치 아파 내동댕이 처질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세상엔 되는 일 보다 안 되는 일이 더 많은데 이 '대중문화' 조차 까탈스럽고 어려운 거라면 우리는 어디가서 위로를 받는단 말인가? 모르긴 해도 범죄율의 증가와 깨우치지 못한 중생들이 거리를 방황하며 정신 병원에 사람들이 넘쳐날지도 모를 일이다.
저자는 특별히 '표류기'란 말을 쓰고 있다. 왜 그런지는 책을 읽으면서 이해가 갔다. 저자는 한마디로 자신을 루저 또는 조금 고상한 언어로 아웃사이더 뭐 그런 것으로 분류하고 있다. 어렸을 적 갑자기 말을 더듬게 된 이후로 그는 세상과 조우하지 못했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상을 향유해 나갔다. 그것이 학교와는 담을 쌓은 채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그런 것들을 탐닉했고, 그런 것들에 표류했던 것이다. 얼마나 다행인가? 자신이 원해서 태어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태어난 이상 살아남아야 하는데 경쟁해서 살아남긴 싫고 그나마 이런 것들에 위로를 받으며 살아갈 수 있으니. 그리고 그것은 훗날 이렇게 훌륭한 당대 문화 체험기겸 인생 고백록이 되었다. 뭐라도 하나 붙들고 있으면 그것이 삶의 자산이되고 힘이 된다는 걸 이 책을 보면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아둥바둥하며 경쟁에서 살아남으려고 하지 말아라. 사람은 다 자기 밥숟깔은 자기가 물고 나오는 법이다.
문화 체험기란 말을 썼는데 우린 보통 그런 건 외국에 나가 살면서 그 나라의 문화를 체험하고 글로 옮기는 것을 연상하곤 한다. 하지만 그것만이 문화 체험기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삶이 문화와는 동떨어져 얘기할 수 없으니 당대에 체험한 문화를 기록하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고 자신만의 자서전을 쓰는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 책에 단번에 끌렸던 건 작가가 루저였다는 것이다. 만일 이런 책을 해외 유학파며 명망있는 어떤 문화 평론가가 썼다면 읽으면서도 과대평가하거나 잘난 척한다 했을 것이다.
유년시절에 도무지 세상이 날 원하는 것 같지가 않다고 느끼면 가장 건전하고 빠르게 빠져드는 것이 책을 읽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왜 하필 그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을까가 나 자신도 의문이었다. 그 보다 이를 수도 있고 늦을 수도 있을텐데 말이다. 물론 계기는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1학기를 마칠무렵 나는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입원 기간을 한 달 남짓이었지만 몸은 피폐해져 오랫동안 학교에 갈수가 없게 되었다. 때마침 집도 이사를 하는 바람에 2학기를 공백기로 보내고 4학년에 편입했다. 그리고 첫 번째로 본 시험에서 거의 낙제에 가까운 점수를 맞았다. 그전까지는 공부를 제법한다고 생각했는데. 몸이 안 좋아져서 그런지 학교 생활도 생각보다 재미도 없었고 힘들기만 했다. 그때 나의 유일한 위로는 책을 읽는 것이었다. 빨리 많이 읽었던 것은 아니지만 현실을 도피하기에 이만한 것도 없었다. 중학교 들어가서는 더했다. 첫번째 시험에서 다른 과목은 그만그만 했는데 수학과 과학이 턱없이 떨어지다 보니 나의 석차는 앞에서 세는 것보다 뒤에서 세는 것이 빨랐다. 그렇게 되고보니 난 학교(사회)가 원하는 사람은 못되겠구나 일찌감치 학교 공부는 작파하고 책으로 빠져 들었다. 그 시절 책이 아니었으면 나는 이렇게 화창한 봄날 이 책의 리뷰를 쓰겠다고 책상에 앉아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이책을 매력적으로 느낀 또 하나의 이유는, 저자가 나와 동시대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가 느꼈던 문화를 나 역시 같이 향유하고 누렸다는 것이 새삼 반가움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특히 당대 미국의 전설적인 락의 여왕 펫 베나타를 알고 있다니! 반가웠다. 솔직히 7,80년 대 전설적인 가수를 꼽으라고 한다면 보통은 레드 제플린이니 롤링 스톤즈니, 제퍼슨 스타쉽이니 뭐 그런 걸 나열하던데 저자는 의외로 펫 베나타를 지목한다. 그녀의 키가 155센티인지 그랬다는데 그 작은 체구에서 뿜어내는 락의 열기는 나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 시절 나는 김광한의 팝스 다이얼과 김기덕의 두시의 데이트를 번갈아 듣곤 했다. 거기서 펫 베나타의 곡이 나오면 로션병을 집어 들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왜 그런지는 그렇게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하긴, 로션병을 들게 만든 팝 가수가 펫 베나타 한 사람이었겠는가? 어쨌든 로션병 하나 집어들면 세상이 온통 내것 같았고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가수를 꿈꿔 본 적은 한번도 없다.(그런데 지금 생각해도 웃긴 건, 펫 베나타를 그렇게 좋아했으면서도 정작 그녀의 레코드판을 산적이 없었다는 것)
저자는 그 시절 우리 가요를 많이 들었다고 하는데, 난 팝송 아니면 그 어떠한 소리도 듣는 것을 거부했다. 자꾸 듣다 보니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질 않았다. 그렇다고 그 시절 좋아하는 팝 가수의 라이브 공연을 지금처럽 쉽게 볼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나마 나의 이런 타는 듯한 목마름을 달래줬던 건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 AFKN이란 미국 방송이 있었다. 거기서 매주 '솔리드 골드'란 프로가 있었다. 그걸 보면 인기 팝 가수들의 공연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그것을 보는 것이 나의 유일한 낙이었다. 그리고 그 시절 확실히 난 미국을 동경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 무렵 미국으로 이민 간 나의 작은 아버지 일가를 얼마나 부러워 했는지 모를 것이다.
또 그만큼 그 시절 '메이드 인 코리아'는 모든 게 다 시시하고 시큰둥했다. 그건 내가 받았던 학교 교육에 기인했던 것 같기도 하다. 만날 빈 머리에 우겨 쳐넣기나 하려고 하고 선생들은 막대기 들고 아이들 잡겠다고 쌍심지를 치켜 세우는데 내가 우리나라의 것을 좋아할리 만무하다. 난 그래서 드라마도 보지 않았고, 책도 외국 작가의 것만을 선호했으며, 음악 역시 가요 같은 건 거의 듣지도 않았다. 학교 교육이 좀 더 인간적이 었다면 난 그 모든 것들을 조금이라도 좋아하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난생 처음 과외 선생님의 손을 잡고 극장에 가서 본 영화가 <챔프>란 영화였을 것이다. 아빠를 잃고 나 보다 조그만 남자 아이의 우는 모습이 얼마나 슬프던지 나 역시 울었다. 아니 그땐 그냥 울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뭔가를 제대로 봤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저자는 내 인생의 영화로 <대부>를 꼽고 있는데, 나는 딱히 생각나는 영화가 없다. 그래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건 오래된 영화는 아닐까? 오드리 헵번이나 잉그리트 버그만 또는 제임스 딘이 나왔던 일련의 영화들 말이다. 이들이 나왔던 영화들은 시간이 흘러도 변함이 없다. 특히 제임스 딘의 영화는. 원조 청춘의 아이콘 아닌가.
저자는 또 이장호 영화에서 한국영화를 봤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저자가 쓴 소위 '이장호론'(140p~)은 가히 명문이라고 해도 좋을만치 잘 썼다. 나도 이장호의 영화를 몇편 본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 의외로 영화를 잘 만든다고 감탄했었다. 하지만 내가 감히 한국영화를 봤다고 하는 건 임권택의 일련의 영화들이 아니었을까? 우리나라의 것이라면 무조건 냉소하고 보는 내가 알게 모르게 그의 영화를 참 많이 봤던 것 같다. 만다라는 물론이고, 씨받이, 서편제, 노는 계집 창, 취화선, 춘향뎐, 달빛 길어올리기 그리고 최근 화장까지. 크게 감동할 정도는 아니지만 임권택 감독만큼 한국적 소재를 잘 담아 내는 감독도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임권택론을 쓸 수가 없다.
저자는 민주화 항쟁을 보며 대학을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고,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 보일드 원더랜드>를 보며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쓰고 있다. 모르긴 해도 저자는 그때까지 세상엔 도무지 관심이 없다가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가 아는 것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알을 깨고 나와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확실히 민주화 항쟁과 하루키는 세대를 가르는 뭔가의 상징임엔 틀림없다. 나 역시도 그랬으니까. 사실 나는 좀 뒷북을 쳐대는 스타일이라 민주화 정점에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잘 몰랐다가 교회에서 연극 대본을 쓰다 소위 말해 조직의 쓴 맛을 보고 어느 창작 학원에 발을 내딛었을 때야 감을 잠았다. 그땐 민주화 항쟁의 후일담이나 논하던 시절이었는데 말이다. 그 무렵에 보았던 이정현이 나왔던 <꽃잎>이란 영화는 충격적이긴 했다. 실상은 영화 보다 더 충격적이라고 하던데 그러고 보면 난 아웃사이더는 물론이고 루저도 못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영화 <꽃잎>은 확실히 영화는 영화다. 그후에 이정현이 매스컴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를 보면 말이다. 그녀는 더도 덜도 아닌 딱 연예인일 뿐이었으니까.
하루키는 확실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루키 이전과 이후로. 그의 문학계의 출현은 확실히 센세이션 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분명 세대별로 그 세대를 가름하는 인물이 있을 것이다. 90년대는 하루키의 세대로 불리울만 하다. 특히 그의 <상실의 세대>를 읽지 않고 문학을 논할 수 있을까? 저자는 그의 책을 읽고나서야 비로소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지만, 나는 어찌어찌 굴러먹다 교회에서 연극 대본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때야 비로소 우리의 것을 보기 시작했다. 우리 드라마를, 개그 프로를, 영화를. 연극 대본을 잘 쓰겠다고 대학로 바닥을 먼지를 휘날리며 다니지 않았다. 솔직히 난 글을 쓰긴 써도 희곡을 계속 쓸 생각은 아니었으니까. 조금 쓰다 다른 분야로 전향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당장 나에게 떨어진 미션은 대본을 잘 쓰는 것이니 지금의 언어와 코드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내가 대본을 쓰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지금도 알 수는 없다. 그냥 무의식적으로라도 도움이 되었을 거라고 믿고 싶을 뿐이다. 솔직히 열심히 쓰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글 쓰는데)도움이 되라고 주문을 넣으며 어느 해에 본 영화만 해도 120편 가까이 본적도 있다. 물론 진짜 본다는 영화광들에 비하면 쪽수도 안 되겠지만 지금은 그때처럼 열심히 보진 않는다. 비록 루저라도 좋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연결시킬 수만 있다면 복 받은 인생 아닌가?
솔직히 처음에 저자를 루저라며 나와 동일시하며 반가워 하긴 했지만 확실히 저자는 나와는 다르고 배아픈 구석이 있긴 하다.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 좋은 대학 들어가고, 좋은 스펙 쌓고, 대우 받고 그러면 또 그런가 보다 하겠다. 한데 팽팽히 놀다 반짝 노력해서 대학 가고(그것도 좋은!), 또 자기 좋을 대로 살다 뭔가를 하고, 또 놀다가 뭔가를 이루고 그러다 이렇게 책까지 냈다. 이런 사람은 같은 루저라도 급수가 다르다. 무엇이 그 다름을 결정했던 것일까? 생각해 봤더니 저자는 자기 좋아하는 분야는 확실히 들이 팠던 사람이었다. 때론 넓게 동시에 깊게. 나는 앞에서 책을 좋아했다고 떠들어 댔지만 들이 파지는 않았다. 그저 내가 읽을 수 있는 만큼의 독서를 했을 뿐이다. 세상이 원하는 출발 선상에서 경쟁을 할 생각이 없다면 자기 좋아하는 분야를 미치도록 좋아해야 한다. 그래야 이런 책도 낼 수 있는 것이다. 책은 어느 한 분야에 대한 기록이요, 집약된 보고서이며, 동시에 저자 자신의 자서전이기도 하다.
저자는 나이 오십이 넘으면 과거를 되짚어 보는 에세이를 한 번 써 보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자신에 대해 정리해 보고 싶었다고 고백한다(264p). 왜 그런 마음이 생겼는지 알 것도 같다. 나이 50이면 하프 타임 아닌가? 나머지 반을 위해 정리를 해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생 50년을 살았다면 할 말이 좀 많겠는가? 50년을 사는 동안 참으로 많은 것들이 자신을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모든 것이 그대로 있을 줄 알았는데 과거의 산물로 남아 있거니 흐르는 시간속에 사장되고 말았다. 한때 가요계를 주름잡았던 정훈희도 가고, 김추자도 갔다. 카페에 가면 뮤직 박스가 있어 DJ에 음악을 신청하면 틀어주기도 했다. 나는 그 때 퀸의 '위아 더 챔피언'을 틀어 달라고 해서 누군지 모르지만 음악을 아시는 분 같다며 칭찬을 들었던 적도 있다. 그게 영원히 계속될 줄만 알았는데 어느샌가 없어지고 말았다. 대중 문화는 그런 것이다. 그게 없어진다고 해서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는다. 문화는 새로 태어나는 것이며, 이미 있었던 것이라도 새롭게 변형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또 모를 일이다. 그런 카페의 DJ가 요즘 우리나라 문화의 메카에 여전히 살아 있을지. 다른 옷으로 갈아 입은 채 말이다. 그 속에 내가 있다. 이런 문화의 흐름을 향유하고 지켜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아니 우린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던. 대중 문화는 인간을 가장 즐겁고, 위안을 주기 위해 고안해낸 인간이 만든 가장 고도화된 산물일 것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흠은 너무 일찍 나타났다 사라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중 문화는 결코 만만히 볼 것이 아니며 사라질 뿐이지 죽지는 않는다. 빨리 뭔가에 담아 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 책 아주 괜찮다. 읽으면 자신만의 표류기 하나 쓰고 싶다고 생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