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들 - 영화 같은 삶, 삶 같은 영화, 그 진짜이야기
한창호 지음 / 어바웃어북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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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감독의 <여배우들>이란 영화는 모 패션잡지에 실릴 사진을 찍기위해 우리나라 간판급 여배우 여섯이 모여 그 하루를 보여주는 일종의 관찰 카메라다. 그것이 어찌나 자연스럽던지 관객들의 관음증을 100% 만족시켜준다. 하지만 그 영화는 사전 모의가 있었던 것으로 100% 리얼은 아니다. 이 책을 발견했을 때 그 영화를 떠올렸음은 당연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새삼 여배우들이 스크린에 등장한 역사가 정확히 얼마가 될까를 가늠해 보고 싶어졌다. 영화의 역사를 꿰지 못한 나로선 그들의 정확한 연도는 알 길이 없고, 저자는 1940년 대 '악녀의 탄생'으로부터 여배우의 역사를 연대기 순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여배우들이 각 연대기마다 영화에서 어떤 역할과 이미지로 변화해 갔는가를 그들의 삶과 필모그래피를 통해 조명하는 책이라고 볼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언제나 역사가 남성 중심의 시각에서 읽히는 것도 사실인데 이 책은 여배우들을 통해 본 영화의 역사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거창하게 다룬 것은 아니다. 대중서인만큼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평이하게 읽히는데, 꽤 만족스럽다. 그렇지 않아도 이 책은 저자가 2013년 4월부터 2년 간 씨네21에 격주로 썼던 글을 이번에 묶어 낸 책이라고 한다.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여배우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를 묻고 싶어졌다. 흔히 영화 배우를 '스크린의 꽃'이라는 표현을 쓰길 좋아하는데 이 표현은 누구를 위한 표현일까? 

 

솔직히 영화는 처음부터 여성이 할만한 작업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거의 철저하게 남성을 위한, 남성에 의한, 남성의 영화다. 거기에 여배우들은 필요적절하게 쓰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여배우들이 카메라 앞에서 마냥 고고하고 예쁘게 보이길 원하는 건 실은 남자들을 만족시켜 주기위한 수단으로 보여질 때가 많다. 어차피 자본은 남성의 바지춤에서 나오는 거니까. 관음이나 관능도 여자를 위한 단어는 아닐 것이다. 

 

예를 들면, 이 책의 첫번째로 등장하는 바버라 스탠윅은 계몽주의 시대에 스크린에서 나쁜 여자로 나오는데, 이것은 또 프랭크 카프라의 발명품이기도 하다. 계몽주의 드라마가 늘 그렇듯 못됐지만 마음에는 누구보다 맑은 양심이 숨어 있다. 그런데 이런 이미지는 남성을 위한 것이었다. 그래야 남자들이 마음이 편하니까(18p~ )    

 

책의 거의 말미에도 보면, 저자는 이런 말을 한다. 여배우는 전통적인 위치, 곧 영화감독이자 평론가인 로라 멀비의 용어를 빌리면 '남성 시선의 대상'에 머물 때 훨씬 사랑받는다. 곧 남성들이 원하는 위치에 서 있을 때, 여성은 더욱 아름답게 보이고, 그래서 청순한 이미지가 대중의 사랑을 받는 데 유리한 것이다(잉그리드 버그만의 허리우드 시절이 그렇다). (258p~ )   

 

이런 의식이 오늘 날 좀 변했을까? 난 그렇게 보지 않는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만 하더라고 영화를 보는 관객이 남성 보다 여성이 더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에 따라 여성 영화도 많이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들 영화를 움직이는 건 남성이란 걸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요즘 영화가 여성 관객이 많아졌다고 해서 여성을 배려하기 시작했을까? 이 또한 회의적이다. 요즘 브로맨스란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남자 콤비를 내세운 영화가 대세를 이루었다. 이것이 남자 관객 보단 여자 관객을 타킷으로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어쨌든 그렇게 되므로해서 영화에서 여배우들이 설자리는 줄어들기도 했다. 

 

그만큼 영화판의 역사는 남성의 정글의 역사이고, 거기서 여배우들이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책은 그렇게 남자들의 작업에 뛰어든 여배우들이 어떻게 영욕의 세월속에 자신의 역할(영화 안에서나 바깥에서)을 관철시키고, 변형시키며 진화해 갔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소개된 여배우들은 스크린 안에 함몰되어 꼭두각시처럼 움직이지만은 않았다. 물론 어떤 여배우는 영화에선 화려했지만 삶에서는 실패자가 되기도 하고, 어떤 배우는 영화만큼이나 성공적이고 당당한 삶을 산 배우도 있다. 특히 나 개인적으론 제인 폰다가 눈에 들어 왔는데, 그녀는 아버지 헨리 폰다의 후광을 덧입고 섹시 이미지로 스크린에 성공적으로 데뷔 하지만 정치적으론 진보 성향을 띈다. 그에 따라 베트남전 반대를 외치다 미국으로부터 여론의 뭇매를 맞고, 하다못해 그녀가 그려진 변기가 나올 정도로 모욕을 당하기도 했다는데 그런 가운데서도 배우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았던 것을 보면서, 이 사람이야말로 모든 여배우의 이상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다시말해 여배우는 스크린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크린 밖에서도 배우로서의 정체감을 확립시켜 나가야 하는데 그것을 가장 성공적으로 한 배우가 제인 폰다는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여배우의 역사와 함께 앞으로 어떤 여배우가 나와야 하는지도 생각해 보게 만드는 책이기도 하다. 그것은 여배우가 제대로 살아남으려면 무조건 카메라 앞에서 예쁘고 섹시하게만 보이려 하지 말고 성격과 역할을 연구하고 그것을 넓혀 나가야 한다는 소리로도 들린다. 흥미롭다. 추천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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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1-12 17: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배우 분들이 이책 많이 읽었으면 하네요^^..

stella.K 2016-01-12 17:45   좋아요 1 | URL
이 책 재밌어요. 영화 관심있으시면 유레카님도
함 읽어 보세요.^^

cyrus 2016-01-12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신인 여배우는 노출을 하면 뜬다고 생각해요. 데뷔작부터 과감한 노출로 유명세를 얻고 반짝 뜨는 여배우들이 있어요. 결국 자신의 진짜 연기력을 펼치지 못하고 잊혀져요. 박찬욱 감독이 <아가씨>에 출연할 신인 여배우를 찾는다던데 조건이 영화에서 노출을 해야한다더군요. 

stella.K 2016-01-13 11:45   좋아요 0 | URL
ㅎㅎ 난리 나겠구만.
그런데 웃기는 건 그렇게 벗고나오면 마치 연기력있는 배우처럼
둔갑한다는 거지.
뭐 그것도 하나의 용기라면 용기일 수도 있는데 좀 씁쓸하다.;;

2016-01-18 1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18 2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18 2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19 1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식은 아름답다
데이비드 맥캔들리스 지음, 방영호 옮김 / 생각과느낌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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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좀 놀랍다. 이 책은 한마디로 백과사전의 지식을 시각화한 인포그래픽(정보를 뜻하는 인포메이션(Information)과 그림을 뜻하는 그래픽(Graphic)의 합성어)을 보여주는 책이다. 말이 좋아 인포그래픽이지 어떻게 이렇게 방대한 지식을 시각화 할 생각을 했을까? 저자에게 존경을 표하고 싶어질 정도다.

이 인포그래픽이란 분야가 언제부터 생겨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린 보통 백과사전의 지식을 문자로만 섭렵할 생각을 했지 이렇게 하나의 정형화된 그림으로 볼 생각은 별로하지 못했을 것이다.(나만 그런가?) 그런데 이렇게 그림으로 보여주니 복잡한 지식체계가 한 눈에 들어온다.

특별히 지식은 정보를 기반으로 하느니만큼 잡학적이기도 한데, 책은 크게 삶, 지성, 문화, 세상으로 나누고 그것을 또 각각 4개의 분야로 세분화 했다. 그리고 그 세분화된 4개의 분야는 한 개의 분야당 또 5개로 세분화 했다. 그래서 목차만 봐도 대충의 지식을 파악할 수 있게 해고, 내가 지금 어느 분야의 지식을 알고 싶어하는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도 이 책은 굳이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부담이 없다. 언제든 아무데다 펼쳐 읽으면 그것이 내 지식이 될 수가 있다.    

글자 보다 뇌리에 오래 남는 것이 그림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 의미에서도 이 책은 유용하다.

한 번 습득한 지식을 오래 남도록 하기 위해 머릿속에서 정리하는 습관을 가지라고  하는데 모르긴 해도 이 책은 저자의 그런 오랜 습관에서 나온 결정판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내가 가장 못하는 일이 정리하고 체계화시키는 일인데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더 부럽고 존경스럽다.

한 가지 흠이라면 그림에 치중하느라 글자가 너무 작다. 최소한의 설명만을 쓰긴 했지만 눈이 나쁜 사람이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조금은 의문스럽다. 요즘 큰 글자 책도 간혹 나오고 있는 모양이긴 한데 원가가 싼 책은 아닌가 본데 큰 글자로 따로 만들기는 아무래도 모험이긴 할 것 같다. 그런 것만 아니라면 충분히 추천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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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1-07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만 봐도 그림이 많을 것 같아요. 이 책 재미있겠어요.  ^^

stella.K 2016-01-08 18:37   좋아요 0 | URL
네가 보면 좋아할만 할거야.
그런데 이 책 엄청 비싸.ㅠ

페크pek0501 2016-01-10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글씨가 작은 것, 저에겐 큰 흠이에요.
저도 지난 번 네 권을 샀는데 그중 두 권이 글씨가 작아서 어찌나 실망했던지요.
알라딘에서 이런 정보를 줄 수는 없는 걸까요? 반품하려다가 귀찮아서 그만뒀어요.
꼼꼼히 살펴보고 사야겠어요.

stella.K 2016-01-10 23:11   좋아요 0 | URL
반품하실 정도면 정말 작은 글씨였나 봐요.
진짜 시력 좋았던 옛날이 그립더라구요.
전 눈이 나빠진다는 게 어떤 의민지 예전엔 몰랐는데
요즘엔 정말 실감해요. 위로삼아 루테인을 먹고 있긴 한데
좋아졌다기 보다 더 나빠지는 것을 늦추겠지에 방점을 두고 있습니다.ㅠㅠ
 
기록이 상처를 위로한다 - 호모아키비스트, 기록하는 사람들
안정희 지음 / 이야기나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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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교회 청년부 홈커밍데이에 다녀왔다. 청년부를 떠나 온지 벌써 20년도 넘었다. 그런데 그 시절 사람들이 모여 홈커밍데이를 한단다. 학교로 치자면 동문회 같은 거겠지. 벌써 7회째인데 나는 그 모임이 처음이었다. 연락을 받기는 약 한 달 전이었다. 그 연락을 받는 순간(나에게 연락해 준 사람 또한 그 세월쯤 될 것이다. 그동안 뭐하느라 한 번도 못 만난 것인지...) 나가고 싶은 마음이 반이었고, 나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반이었다. 

나가고 싶은 마음은, 당시 청년부는 생년이 같은 사람끼리 모임을 갖도록 하는 시스템이었는데 그것은 사는 지역이 같은 사람끼리 모이는 것 보다 훨씬 응집력이 좋았다. 아무래도 같은 또래라는 것이 친화력을 높이는 중요 요소였던 것 같다. 나 역시 그 시절 또래 모임을 좋아했다. 그런 또래들을 오랜만에 보는 것이니 왜 안 나가고 싶겠는가? 하지만 또 홈커밍데이란 이유로 여태까지 안 만났던 옛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어쩐지 어색하고 불편할 것도 같았다. 물론 결국 옛 추억이 어색함과 불편함을 이겨 그 모임엘 다녀오긴 했지만.

막상 모임 장소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옛 추억들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시절 청년부에 오래 몸 담을 생각이 없어 공식 모임은 1년 정도였고, 또래 모임은 그 보다는 좀 더 오래 했다. 결론은 청년부 모임을 그다지 오래하지 못했다는 얘긴데 그래서 무슨 추억이 있으랴 싶기도 하겠지만 의외로 잊고 있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던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난 언제부턴가 어떤 한 시절 또는 내 생애 있었던 이야기를 글로써 남겨보고 싶다는 생각을 점점 더 강하게 한다. 그래서 난 그날(청년부 홈커밍데이)를 계기로 나의 청년부 시절을 글로 써 보고 싶었다. 사람은 왜 자서전 또는 자전적 이야기를 써 보고 싶어지는 것일까?

동물과 인간이 다른 점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로 이야기 되기도 하지만 그 중 또 하나를 들자면 바로 이것일 것이다. 인간만이 기억하고 추억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기록한다는 것. 이런 사람을 두고 이 책의 저자 안정희는 '호모아키비스트'라고 했다. 이는 기록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로 '아카이브(archive)'에서 추출한 말이기도 하다. 아카이브는 원래 '정부의 기록' 또는 '공문서'를 의미하는데 지금은 '기록'이나 '기록물을 보관하는 장소'로 쓰인다고 한다.

그렇게 말을 하자면 공적인 기록인만큼 공인이 써야하므로 사견이나 주관을 배재한 기록이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개인의 기록물을 더 중히 여겨 '민간 아카이브'를 지향한다. 그러니까 누구라도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민간 아카이브의  수 많은 예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아카이브는 왜 생긴 것일까? 저자는 말한다. '개별적인 인간은 소멸하되 기록하는 인류는 미래를 꿈꾼다'고. 그도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인간 역시 유한한 존재이기에 이 점은 동물과 같은 것이지만, 내가 이 지상에 살다 갔다는 불멸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아카이브는 발전해 오지 않았을까 한다. 그래서 문자가 없었던 시절엔 동굴 같은 데 그림으로 남겼던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은 또 낙서에서도 발견이 된다. 지금도 그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행와서 그곳 카페나 유명한 장소에 내가 이곳에 왔다 갔다고 뭔가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가? 그러고 보면 기록하는 습성은 인간의 본능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아무 것이나 다 기록할 수는 없고, 기록에도 반드시 형식은 존재한다. 저자는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왜, 어떻게' 했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것은 스토리텔링의 기본 요소와 다르지 않으며 단지 아카이브는 기억저장소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공공성 또는 공유적이어야 한다는 기본 전제 조건이 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아카이브가 될 수 있을까? 어렵게 생각할 것은 하나도 없다. 인간의 삶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기록의 대상이요, 아카이브다. 가장 흔하게 떠올릴 수 있는 게 역사일 것이다. 그것도 정치사나 사회사 같은 거시적인 것도 있을 수 있겠지만, 미시사나 일상사 같은 것이 오히려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여행을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여행한 곳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 요즘 흔히 하는 방식이다. 먹방의 세대라고 요리도 그 대상이 될 수가 있고, 카페나 레스토랑 기행도 아카이브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독특하게도 단추 모으기나 버스 승차담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하는데 그런 흔치 않은 분야에 기록을 남기는 것도 좋은 일이 될 것이다. 말하자면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기록하라는 것이다. 물론  사람 저마다 알게 모르게 한 가지 이상은 다 있을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초등학교 때부터 늘 책에 관한 관심이 있어왔고, 인터넷 블로그가 생기고부터는 서평을 줄 곧 써 오곤 했는데 이것도 아카이브일 것이다.  

내가 이 책에서 주목해서 보게 된 건 로렐 대처 울리히가 쓴 <산파일기>(57~p~)란 것이다. 사실 이건 울리히가 직접 쓴 책은 아니다. 마서 밸러드란 17세기에 살았던 산파가 무려 27년 동안 자신이 산파 일을 하면서 쓴 일기를 발견해 번역하고 그로인해 퓰리처상을 받고 하버드 교수까지된 사례를 기술해 놓았다. 그게 뭐 그리 대단할까? 그 내용도 별 것 아니라고 한다. 그냥 언제 누구의 아기를 받았다는 내용만 단조롭게 써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발견했을 뿐인데 그게 한 사람의 생을 그렇게까지 바꿔놓은 것이다.

하지만 그 일기엔 굉장한 의미가 숨어 있었다. 즉 그 일기를 통해 17세기 미국 여성들의 사라진 삶을 밝혀낸 것이다. 그 별 것 아닐 것 같은 일기가 미국 건국의 역사의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을 보여 준 것이다. 읽다보면 인간의 일상적인 행위 하나가 훗날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일기를 다시 써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앞에서 청년부 홈커밍데이에 참석한 이야기를 하면서 내친김에 그 시절에 있었던 일을 글로 써 보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기록에는 공공성 내지는 공유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막상 공공성을 얘기하자니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내가 이것을 글로 쓴다면 위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22세기나 23세기쯤 누군가에 의해 별견되어 우리나라 역사의 어느 시기의 근간이 되고, 한 사람을 영예롭게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고 해서 아카이브로서의 의미를 지닐 수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어진 예를 보면 소소한 것에서부터 대의를 불태우는 내용까지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 이를테면 이러 이러한 것들이 아카이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단점이라면 단점은, 저자가 읽은 책들을 위주로 썼다는 점에서 마치 또 한 권의 서평을 보는 듯도 하다. 특히 저자는 거의 모든 분야를 아카이브의 관점에서 보고 있는데 하다못해 소설도 그렇게 보고 있었다. 뭐 소설도 기록이라면 기록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역사 소설이라고 해도 소설은 픽션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그 속에서 역사적 사실을 추론해 볼 수는 있어도 엄밀한 의미에서 아카이브라고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물론 그 소설을 쓴 작가에겐 하나의 기록물로 남을 수는 있겠지만, 이 부분은 저자가 아무래도 의욕이 과한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오늘 날은 공유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공유가 흔하다 못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거기엔 역시 디지털 기술과 SNS의 발달이 압도적인 기여를 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렇게 공유는 자유로워도 아카이브는 아날로그적으로 하라고 저자는 말한다. 왜냐하면 그게 진정한 아카이브의 정신이니까. 또 그만큼 이 기록이라는 건 하루아침에 뚝딱 완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생각보다 훨씬 더 지난한 작업이어서 중간에 포기할 수도 있다. 하다가 중단하면 아니한만 못하다는 옛말이 있긴 하지만, 그 말에 일침을 가하는 말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이고,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말하고 싶다. 거기다 시작이 반이란 말도 덧붙이고 싶다.

뭔가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것이 있는가? 그렇다면 마음에만 간직하지 말고 오늘부터 시작하라. 또 누가 아는가? 자신의 아직 있지도 않은 손자나 증손자가 보게될지. 나아가서 1세기나 2세기 후엔 나라를 구하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인간만이 기록을 남기고, 기록이 인간을 구원할 것이다. 믿는 자에게 복이 있을 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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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8 17: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18 18: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19 0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19 14: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랑을 인터뷰하다 - 평화와 용기를 위한 79가지 사랑의 메시지
곽승룡 지음 / 하양인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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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은 시대에 사랑을 논한다는 게 새삼스럽단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것은 아마도 TV의 영향이기도 할 것이고, 요즘 같은 자본주의 시대에 별로 가능할 것 같지 않다는 양 극단의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TV는 사랑을 너무나 쉽게 하는 것처럼 묘사가 된다(또한 그것은 남녀간의 사랑으로 지극히 한정되기도 한다). 그러나 TV 밖은 사랑 보단 물질로 계산되어지는 게 너무 많다. 그래서 사랑을 논한다는 게 새삼스러워지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지금까지 여러 가지 형태와 논리로 논의되어져 왔다. 사랑은 철학으로 또는 심리학으로도 논의되어져 왔다. 이 책은 사랑을 신학으로 논의했다. 그래서 신학으로서 사랑을 이해하려면 성령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한다. 글쎄, 성령을 뭐라고 풀이하면 좋을까? 그냥 위로부터 내려지는 하나님의 영이라고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해가 될까? 본래 신학에서는 성령론을 따로 공부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성령은 심오한 영임에는 틀림없다. 저자는 성령을 이렇게도 말하기도 한다. 

인간의 속마음과 영은 매우 닮았다. 그래서 성령은 만남의 원리라는 속성을 지녔다. 성령에서 나오는 은총은 마음에 뿌려진 씨앗과 같다(117p).     

그런 것을 보면 저자는 인간에겐 선천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긴 하지만 성령을 받아야 가능한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도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은 죄로인해 오염되어 있기 때문에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사랑을 온전히 이룰 수 없다는 것이 신학의 전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 전체를 감싸는 전제는 성령으로부터 내려지는 사랑이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분명 인간이 사랑을 할 수 있는 건 신비한 능력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오늘 날의 사랑은 너무 표피적이고, 이기적이며 심지어 기형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면서도 사랑을 배울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명백히 그럴 필요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오늘 날 하루가 멀다하고 데이트 폭력에 존속살인까지 신문 기사를 장식하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 우리는 분명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그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를 살고 있음이 확실해 보인다. 또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오늘 날은 얼마나 많은 갈등속에 나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대를 살고 있는가? 그것의 주장이 틀리진 않겠지만 그속에 사랑이 설 자리가 있는 것이 모르겠다. 그 자리를 대신 하는 게 자기계발류는 아닌가?

 

사랑도 배워야 한다. 흔히들 사랑은 가슴으로 하고 육체로 해야한다고 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먼저 머리로 깨우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사랑에 대해 할 수만 있으면 많이 묵상하고 깨닫는 것이 필요하리라고 본다. 그리고 실천하는 것이다.   

책은 다소 지루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느긋한 마음으로 곱씹을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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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세상을 바꾸다 - 저항의 시, 저항의 노래
유종순 지음 / 목선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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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시절 좋아하는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 2, 3개는 있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언제부턴가 모르게 라디오와 멀어졌다. 멀어지려고 해서 멀어진 건지 아니면 멀어질만한 이유가 있어서 멀어진 것인지 그걸 잘 모르겠다. 그러면서 난 노래를 듣지 않고, 부르지 않게 된 것 같다. 

 

모르긴 해도 정권이 바뀌고 소위 문민 정부가 들어서면서 음악의 판도가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그전까지는 팝송을 듣던 가요를 듣던 가사가 영롱하고 좋은 게 많았는데 그걸 '변질'이라고 해야할지 '다양성'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대중 음악은 대체로 경쾌와 경박을 왔다갔다 했던 것 같고 나는 그것에 적응하지 못한 채 도태되어 갔던 것 같다. 

 

가사도 이성에 호소하기 보단 감정에 충실한 게 대부분이다. 김건모가 가요계의 판도를 확 바꿔놓은 건 사실이지만 가사를 들어보면 순정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삼각관계나 권태에 관한 것으로 채워 놓았다. 그나마 김건모는 좀 낫다. 요즘 노래는 더 들어줄 수가 없다. 

 

이대로 노래와 멀어지라면 멀어지라지. 별 관심도 없었다. 시대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내가 무슨 수로 시대를 거스를 수 있겠는가. 그러다 문득 이 책을 접하게 됐다. 좀 성급한 결론인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으니 그래도 내가 음악을 좋아했던 시절 주요한 음악은 거의 다 듣고 자랐구나 싶다. 물론 저항의 시, 저항의 노래가 저자가 다룬 35곡뿐이랴마는 서너 곡은 직접 들어봐야 알 것도 같고, 아무튼 거의 대부분은 사춘기 시절 라디오만 틀면 이틀의 한 번 꼴로 들을 수 있는 노래들이다.

 

그 시절 중고등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팝송을 들으며 영어 공부에도 열을 올렸을 텐데 나는 뭐 그때나 지금이나 공부와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지라 노래 하나 하나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왜 이런 노래가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밖에 없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그 시절 멋모르고 흥얼거렸던 팝송이 이떤 의미가 있으며 이떤 사회적 배경에서 탄생된 것인지 알게되니 흥미로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팝송만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제 3 세계 음악까지 비교적 넓게 다루고 있다. 하지만 미국 팝의 역사는 곧 저항의 역사이기도 하니 제1부에서 <미국을 바꾼 노래>라는 쳅터를 따로 할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 전반은 역시 미국의 팝의 그늘을 벗어나지 않고 있는 듯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음악이 세계적으로 알려지려면 미국을 통과해야만 가능했으니 그럴 수 밖에.

 

조금 아쉬운 것이 있다면 저자가 우리나라의 저항 가요로 유일하게 양희은의 <아침 이슬> 한 곡만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그것 말고도 우리나라에 저항 가요가 제법 있는데 그냥 대표적으로 이런 곡이 있다는 정도로만 다루고 지나간 듯 하다.   

 

사실 이 책은 제목만큼 과연 억압에 대한 저항의 노래가 사회를 어떻게 얼마나 바꾸어 놓았는지 잘 가늠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그 노래에 대한 간략한 소개나 탄생 배경만 다룰 뿐이다. 요즘 흔히 하는 말로 얕은 꿀팁 정도라고나 할까? 하지만 언제나 어떤 모양으로든 저항의 노래는 있어 왔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는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대중음악은 독창성과 시대를 앞서가는 것도 나쁜 건 아니겠지만 이렇게 시대를 반영하고 억압에 저항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에 대한 권태와 짜증만 부르는 노래에 대해서도 저항할 줄도 알아야 한다. 즉 말하자면  케이팝도 좋다지만 좀 의미심장한 노래도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이 책은 포괄적으로 세계적인 저항 시와 노래를 다루었지만 우리나라에도 그런 노래는 꽤 많을 거라고 보는데 이걸 알리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여담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저항 가요의 대표곡은 그렇게 <아침 이슬>를 떠올려도 무방하기는 하겠으나 알고 보면 우리나라 저항 가요는 그 역사가 생각 보다 꽤 깊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일제시대 전후는 되지 않을까? 그에 대한 대표곡이 <빈대떡 신사>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직 이 노래를 고찰해 보지는 않았지만 작사가는 모르긴 해도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신사 노릇하는 일본을 건달에 비유해 그러한 자는 매를 맞아야 한다며 빈대떡 먹으러 들어 온 신사에 비유한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든다. 또한 그 노래는 얼마나 해학적이기까지 한가?  

 

어쨌든 이 책은 우리가 알고있는 음악에 대해 꿀팁을 전해준다. 가끔 음악에 대해 아는 척 하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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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12-03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항 노래를 단 한 곡 뽑다니... 제목과는 상반되네요.. ㅎㅎ

stella.K 2015-12-03 16:06   좋아요 0 | URL
아뇨, 우리나라 곡이 하나라는 거죠. 그점이 좀 아쉬워요.

yureka01 2015-12-03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 말리라는 자메이카 가수가 있어요..
이 분이 실제 노래로 내전을 막은 적이 있죠.^^..

one love~

stella.K 2015-12-03 17:48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밥 말리도 이 책에서 다뤘더라구요.
그러고 보니 위아 더 월드 같은 노래도 기아에서 많이 구했죠.
노래의 기능은 이런 것이어야 하는데
요즘 노래는 영...ㅠ

니르바나 2015-12-03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안녕하세요.^^

잘 쓰셨어요.
제목도 잘 뽑으시고요.
이 달의 리뷰 후보로 선정되기를 기대해봅니다.

stella.K 2015-12-03 17:52   좋아요 0 | URL
ㅎㅎ 제가 이달의 리뷰로 뽑히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이렇게 쓴 거 가지고는 어림도 없을 걸요?
설혹 된다고 하더라도 저 돌 맞을 거예요.
그래도 저의 글을 좋아라 하시는 니르바나님 계시니까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기억의집 2015-12-03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한동안 안 듣다가 요즘 들어요 애들이 들으니깐 같이 듣게 되더라구요. 저도 랩이나 힙합에 부정적인 시각이 있었는데, 애들하고 들으면서 싹 사라졌어요. 음...근데 빈대떡 신사는 좀 아닌 것 같은데....(말끝 흐림).....

stella.K 2015-12-04 13:38   좋아요 0 | URL
ㅎㅎ 왜요, 양복입은 신사는 일본 사람을 가리키잖아요.
빈대떡 집은 들어갈 땐 폼을 내고 들어가지만 나올 땐 돈이 없어
쩔쩔매다 동망치다 붙잡혀서 매를 맞는다잖아요.
그게 언젠가 일본X들 망할 거라는 걸 은유적으로 표현한 거라고 보는뎅...
아님 말구요.ㅋ

제가 지금도 유일하게 듣는 음악 프로가 <세상의 모든 음악>이죠.
주로 제3세계 음악이잖아요.
거기서 자주 소개된 음악을 이책에서 다루고 있기도 한데
그게 알고 보면 저항 음악이었구나. 역시 음악은 저항의 속성을 띄고
있어야 하는구나 싶어요.^^

cyrus 2015-12-03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희은의 <아침 이슬>이 많이 사랑받은 저항가요라는 평가를 인정할 수 있는데, 저항 스피릿이 철철 넘치는 노래를 부른 가수로는 한대수가 캡이죠. 한대수 거르고 양희은이라니. 저자가 대중음악 평론을 했다던데 그의 안목이 아쉽군요.

stella.K 2015-12-04 13:41   좋아요 0 | URL
네 말을 들으니 그도 맞겠다 싶네.
하지만 한대수 음악은 나도 그다지 많이 접하지 못했어.
아마도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35곡만을 추리다보니 누락되지 않았나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