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장을 향해 쏴라
마이클 길모어 지음, 이빈 옮김 / 박하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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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나는 이 책을 잘 알지 못했다. 15년 전에 이미 절판이 되고도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원했다는 것도 몰랐고, 이제 번역은 하지 않겠다던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의 철칙을 깨고 번역을 했다는 것도 이번에 새롭게 복간이 되고서야 알았다. 이만하면 누구라도 이 책에 관심을 가질만 하다. 그렇다고 이 책이 요즘 유행하는 재밌고, 즐겁고, 행복과 위로를 주는 그렇고 그런 책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 선상에 있다.

 

정말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고, 불편했다. 한 가족의 불행한 역사를 어쩌면 그리도 유려하고도 냉철하고, 깊이 있게 다룰 수 있을까? 그러기에 독자로서 느껴야 하는 그 같은 감정은 더욱 선명하고 또렷해 더욱 아프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전혀 새롭거나 이해 못할 부분이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몰몬교에 대해선 모르는 사람은 새로울 수도 있겠다. 

 

나는 이렇게 불행하게 몰락해버린 가정이라면 특별한 이유나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흔히 있을 수 있는 가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행복하고, 따뜻한 이상적인 가정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그런 가정은 TV 드라마에나 나올 법하고, 설혹 있다고 해도 많지는 않을 거라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이러한 가정은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 것이란 낙관적인 전망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저자 마이클 길모어가 살고 자랐던 가정은 우리가 이제까지 흔히 보아 온 불행한 가정의 전형처럼 보인다. 그의 아버지는 과격하고 폭력과 폭언을 일삼고, 어머니 역시 집이 싫어 도피하듯 결혼을 했지만 자신이 더 안 좋은 선택을 했다는 걸 알았을 땐 이미 모든 것을 돌이킬 수가 없었고, 그저 나약하고 불행한 여인이었을 뿐이다.

 

폭력은 되물림 된다는 것을 길모어 가의 형제들도 어김없이 보여 준다. 그나마 그 4형제 중 첫째와 막내면서 이 책의 저자인 마이클 길모어만 다소 피해간 느낌이고, 가장 큰 피해자는 둘째와 세째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저자는 형 프랭크의 남다른 기억력에 의존하여 이 책을 완성할 수가 있었다.

 

가정마다 가족의 역사와 그에 따른 가풍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물론 그것이 바람직하고 개개인을 건강하게 할만한 것이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그렇게 한 가족의 역사를 복기할 때마다 떠올려야했던 아픔과 상처는 얼마만한 것일지 우리는 이렇게 700페이지 가까운 책을 대하지만 다 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이건 길모어 가만의 이야기는 아니며, 현재에도 너무나 많은 가정이 이와 같거나 이미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파괴되어 가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랬을 때 파생될 수 있는 문제는 인간 파과와 범죄의 증가다. 물론 불행한 가정이라고 해서 꼭 범죄를 양산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피해가지 못하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하지만 또 이것을 가정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이젠 적극적으로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 물론 사람은 따뜻한 가정에서 자라고 생활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고 해서 불행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차라리 가정을 떠나 있는 것이 오히려 안전하고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갈 수도 있다. 그런 의식의 전환과 사회안전망의 확충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책이 의미하는 것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 책은 그동안 첨예한 문제를 낳았던 사형제도를 수면 위로 다시 한 번 떠오르게 했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저자의 형 게리 길모어가 일면식도 없는 두 사람을 무참하게 살해하고 그때까지 잠잠했던 사형제도를 부활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건 어디까지나 게리의 선택이며 그것만이 자신의 의지를 승리로 이끌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남은 가족에게 아픔과 상처로 고스란히 남았고, 사형 반대자들을 자극하게 만들었다.

 

물론 책은 어떠한 결론을 유도하기 위해 쓰여진 것 같지는 않다. 단지 사형을 받아야 한다면 그 사람이 어떤 삶의 역사와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역추적해 볼 때 과연 사형이 존치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를 묻는 것에서 끝나는 것처럼 보인다. 

 

분명 첨예한 문제임엔 틀림없다. 아무리 극한 죄를 졌다고 해도 어떻게 인간이 인간을 죽일 수 있겠느냐는 인도주의적 견해가 아니더라도, 사형이 아니라면 피해갈 수 있는 죽음 즉 법정이 오판해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갈수도 있는 것을 막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죄는 그 한 사람이 졌지 가족이 지은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그 가족까지 고통을 떠 안아야 하는 것을 생각하면 그런 점에서는 사형은 없어져야 할 제도이긴 하다.

 

하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내 가족이 또는 이웃이 무참히 희생을 당하고, 사회에 피해를 입힌 사람이 사형 당해야 마땅한데 버젓이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을 것이다. 무기수 내지는 살아선 절대로 교도소 밖을 나올 수 없는 무거운 형기를 받은 사람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사회에 있을 때 무슨 죄를 져도 사형은 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역이용해서 범죄는 더 악랄해질 수 있고, 교도소 안에서 무슨 짓을 버릴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사람이 사람을 죽일 수 없다는 인도주의가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 저자의 글을 통해 게리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최후를 맞이했을까를 생각해 본다. 그는 자신의 의지의 승리를 위해 사형을 받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그렇게까지 자신을 극단으로 몰아갈 권리는 그 자신에게 없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자기 자신을 모두 다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오직 세상과 자신의 가족 특히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원망으로 감히 그런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건 어떻게 생각해도 옳은 선택이 아니며 이해할 수도, 이해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마음이 먹먹하고 아프다. 이 쉽지 않은 글 그래서 자칫 중간에 포기할 수도 있는 글을 끝까지 밀고 나갔던 저자에게 늦게나마 심심한 위로와 경의를 표하고 싶다. 바라기는 제발 이 세상에 더 이상 가정 때문에 상처 받고 괴로워 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아니 아주 없을 수는 없을 테니 조금이나마 줄어들고, 그 고통속에서 벗어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가정이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기능을 할 수 없다고 판단된다면 그것에 너무 연연해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 울타리를 과감히 박차고 나오는 것도 자신이 살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다. 그것이 가정의 중요성이 개인의 구원 보다 앞설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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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8 0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18 1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6-03-18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뉴스에서 나오는 아동학대 사건들도 그 가정을 나와 버렸으면 목숨만은 살 수 있는 거였지요. 그래서 님이 쓴 마지막 문장에 저도 무게를 두게 되네요.

가정 폭력 문제는 덮어 둘 문제가 아니라 자꾸 노출시켜서 그 심각성을 세상에 알릴 필요가 있어요.

stella.K 2016-03-18 13:00   좋아요 0 | URL
그래서 문장을 바꿨는데 생각해 보니 언니 말이 맞더라구요.
이놈의 오탈자, 문장 맞춤법은 좀비 같더라구요. 고쳐도 고쳐도
볼 때마다 나타나요.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가정이 개인을 보호해 줄 수 없다면
도망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신 갈수있는 곳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게 참...
 
사건 치미교 1960
문병욱 지음 / 리오북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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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나라에 실제로 존재했던 사이비 종교 백백교를 모티프로 해서 썼다고 한다. 

실제로 읽어보면 재미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뭔가 모르게 아쉬움이 남는다. 차라리 아예 백백교의 실상을 까발리는 작품이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웬 있지도 않은 치미교란 가상의 종교를 만들어 놓고, 과거를 다루고 있는지 현재를 말하고 있는 건지 시점이 헷갈린다. 

 

이를테면 등장인물은 해방 직후를 살았던 사람인 것 같은데, 지명이나 동네 이름은 현대다. 그 옛날 서초구가 어딨으며, 노원구가 어디 있었겠는가? 그런데 그 시절에도 있었다고 치고 보라는 건지, 아니면 과거의 사람을 현대에 끌어 와 서초구나 노원구 같은 활동 거점을 얘기함인지 잘 모르겠고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이건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생각 보다 치명적이라고 생각한다. 사실감은 확 반감시키면서 독자로 하여금 작품을 신뢰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다 보니 실제 백백교의 교주가 곽해용인지 아니면 작품을 위한 가상의 이름인지는 모르겠으나, 곽해용의 행적이나 만행에 대한 묘사는 실제 백백교의 교주가 그대로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사실 그래서도 차라리 백백교의 실상을 파헤치는 소설이길 바랐던 것이다.

 

곽해용의 면면을 보면 그는 상당히 똑똑한 인물이면서 상상력과 조직력이 탁월한 인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자신의 장점을 이용해 종교를 끌어 왔고 그것으로 대중을 사로잡는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이것은 또 이제까지 사이비 종교의 교주들이 보여준 면모이기도 하다. 그랬을 때 그들의 보여준 대범함이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사람에게 끌리는 대중이다. 왜 끌릴까? 보통 사람들에겐 없는 대범함, 카리스마가 그에게 있기 때문인 걸까? 나에게 없는 그러나 있게 되길 바라는 것을 상대가 가지고 있으면 사람은 끌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더 생각을 해 보면, 사람은 영원을 사랑하고 동경하는 마음이 있다. 세상은 살기가 너무 힘들고, 부조리한 것들이 많다. 사람들은 누구나 차별없는 공동체를 원한다. 교주들은 바로 이점을 노리고 파고 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재산을 다 정리하고 자신들이 제공하는 안식처에서 이상적인 공동체를 이루며 살자고 꼬드기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 이면에 무엇이 존재하고 있는지는 철저하게 숨긴다. 그래서 종교는 아편이라고 하는 것 아니겠는가.

 

책은 그런 인간의 내면을 건드려 주긴 하지만 너무 사건의 전개에만 몰두해 특별한 무엇을 새롭게 보여주지는 못하고 범작에 머문 느낌이다. 이 작품이 실제 영화화될 건지는 모르겠다. 영화화를 위해 치밀하게 썼다고 하는데 어느 만큼의 구색은 갖춘 느낌은 들지만 치밀한 건 잘 모르겠다. 치밀한 것 보다 더 중요한 건 작가의 세계관이나 철학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적어도 소설이라면 말이다. 소설이 그렇게 만만한 세계가 아닌데.

 

그런 의미에서도 난 이런 소설이 독자를 기만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마치 소설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이런 영화화를 위한 치밀한 스토리 전개방식이 전부인 양 하고 있으니 말이다. 차라리 시나리오를 써라. 여전히 소설로 밥 벌어 먹고 살겠다면서 소설은 영화적이어야 한다고 우기면 그건 좀 변종 아닌가? 영화화를 생각한다면 차라리 시나리오를 써라. 괜히 소설에 기생해 영화 안되면 소설이란 안전한 것만 추구하지 말고. 이래가지고 서야 한국 소설에 미래는 있는가?

(써 놓고 보니 괜히 화가 난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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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2-27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시나리오를 써본 경험이 있는 작가가 소설을 쓰게 되면 영화적 기법들이 이야기 속에 스며드는 것 같아요. 영화로 나온 공포소설 《무녀굴》 도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stella.K 2016-02-27 18:26   좋아요 0 | URL
그건 잘 모르겠는데, 나는 소설가가 소설을 이렇게 쓰는 게 화가 나더라구.
소설 쓰는 걸 제대로 알고 영화적 기법을 쓰면 또 그것도 이해하겠어.
마치 이것이 다인 양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쓰고 있다는 게 화가 나.
사유는 없고 사건의 나열만 있잖아.
이건 소설이 아니야. 그냥 스토리텔링이지.
그럴 바엔 차라리 시나리오를 쓰란 말이지.
그리고 독자도 시나리오를 소설 읽는 것만큼 친근하게
읽어줬으면 좋겠어. 시나리오는 일반 독자는 안 읽잖아.
그러니까 이런 현상이 나오는 거라고.
만만한 게 소설이라고 소설을 호구로 알 잖아.ㅉ

yamoo 2016-02-27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랄한 리뷰네요. 흠...이런 거 아주 좋아요! 리뷰만 봐도 읽고 싶은 마음이 샥 가십니다. 이런 게 진정한 리뷰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시나리오나 써라~ ㅋㅋㅋㅋ 직격탄 인데요..ㅎ

stella.K 2016-02-28 18:10   좋아요 0 | URL
ㅎㅎㅎ 너무했나요?
꼭 심한 말은 아닌데...
이젠 독자들도 소설만큼이나 시나리오나 희곡을
재밌게 읽을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출판계나 매스컴은 이런 쪽에
너무 무관심하잖아요.
작가가 시나리오로 이글을 풀었다면 차라리 인정을 하겠어요.
개나 소나 소설 쓰겠다고 하는 게 짜증나더라구요.
물론 전 한 권도 못 쓰면서. 나야 뭐 독자니까.ㅋㅋㅋ

전 단지 백백교를 알고 싶은 마음에 읽으려고 했는데
읽을수록 뭔가 미진하고 찜찜하더라구요.ㅠ
 
이젠 책쓰기가 답이다
김태광 지음 / 위닝북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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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자기계발서들이 그런 것처럼 동기를 부여하는 것으로선 좋은 것 같긴하다. 특히 이런 책의 저자들은 자기 확신을 갖고 쓰지 않으면 안 되는데, 이 책의 저자 역시 빠지지 않는 자기 확신가다. 확신이란 어떤 경험이 밑바침이 되야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자기 책을 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고, 책 쓰기 하나로 이룩해 놓은 것이 많으니 반박하기도 어렵다. 

 

나도 이 책에서 은혜 받은 것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이 책 어딘가에 왜 책을 못 내는가 뭐 그런 체크 리스트 항목을 보면 늘 마음에만 있으면서 정작 쓰지 않는 거. 뭐 이런 건 확실히 찔림을 받으면서, 난 너무 오랫동안 내 꿈을 방치했구나. 내 꿈에 회개와 용서를 구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은 주요 타깃이 직장인들에게 맞추어져 있어 나와는 좀 안 맞는 면이 있긴 하다. 단지 동기를 부여하는 거라든지, 책을 처음 쓰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가 일목요연하게 나와 있어서 그런 점에선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그런데 저자가 너무 확신을 가지고 말을 하고 있으니 오히려 부담스럽다. 마치 모든 직장인들이 사표를 내던지고 책을 내기 위해 글을 써야만 할 것 같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모든 것은 책 쓰기로 통할 것처럼 말한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가히 톱이고 교주란 생각이 든다. 마치 책을 내면 하루아침에 대박인생이 되는 것처럼. 실제로 책을 써서 인생이 달라진 사람의 예를 줄줄 읊는다. 특히 자신은 책 쓰기 기네스 기록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이야기가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고 자랑도 한다. 그렇게 유명인사가 되었으니 사회에 공헌하는 것도 많겠지.

 

그런데 나는 두 가지 점에서 이 책을 좋아할 수가 없다. 뭐 자기 사랑하는 거야 그렇다고 치자. 저자는 성공에 대한 개념이 매우 한정적이란 느낌이 들었다. 아직 젊은 사람이라 그런지(마흔도 채 되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대박인생'에만 촛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 분명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성공 요인인 것마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라고는 말할 수 없다. 물론 돈을 많이 벌게되면 사회적으로 인정도 받고, 기회도 많으며, 좋은 환경과 조건이 주어질 확률이 높아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 인생으로 몰아가고 위화감을 조장하고 있다는 생각은 해 봤을까?

 

게다가 책 쓰기에 대한 확신이 너무 강한 나머지 책을 못 쓰는 사람은 열등한 것처럼 암묵적으로라도 표현한 대목들이 너무 많다. 이거 원 책 못 쓰는 사람 서러워 살겠나? 억울하면 출세하랬다고 정말 저자가 운영하는 글 쓰기 코칭 어쩌고 하는 곳에 당장 등록해야 할 것만 같다.        

 

그런데 또 그 조건이 약간은 살벌하다. 지금까지는 온갖 감언이설로 책 쓰기의 좋은 점을 마구 선전해 놓고, 자신이 운영하는 곳엘 들어 오려면 몇 가지 약속을 이행하겠다는 서약을 받아야 한다. 예를들면 그런 거다. 새벽에 출근 건 두 시간씩 글을 쓸 수 있겠는가? 친구 안 만나고, 술 안 마시고, 오로지 책 쓰기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들이다. 하긴 뭐 책을 쓰고 싶으면 그 정도는 기본으로 깔아 줘야하는 건 사실이긴 하다. 그리고 술 마시는 시간에 글을 쓴다면 얼마나 건전한가? 그런데 뭔가 계속 석연치가 않다.

 

그게 또 생각해 보면 꼭 저자 잘못만도 아닌 것 같다. 그렇게 누군가가 이것이 좋다고 말하면 정말 그것이 좋은가? 귀 얇은 국민성의 탓은 아닐까? 그런데 그것도 근본적인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더 근본적인 건 사회 안전망은 아닐까? 이게 너무 약한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갈대처럼 흔들리는 것이다.   

 

책 좀 안 쓰면 어떠냐? 돈 좀 못 벌면 어떠냐? 그런 것으로 성공의 잣대를 삼아야 한다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래. 글도 자꾸 써 보니까 알겠더라. 다듬어지고, 더 잘 쓰고 싶고, 인정 받고 싶고. 그런데 사람마다 재능이 다 다르지 않는가? 자신이 일하고 싶은 곳에서 아무 걱정없이 일하는 행복이 더 먼저 아닌가? 왜 그것을 인정하고 더 잘하라고 하지 않고, 직장은 언제 짤릴지 모르니 글 써서 돈 벌라고, 성공하라고 하면 그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일까? 

 

그래. 또 그렇게 잠을 줄여가며 새벽에 두 시간씩 써서 책을 냈다고 치자. 회사에서 그거 알아 주는가? 그건 책이 나와서 대박 베스트셀러를 내면 모를까 잠 줄여가며 책 쓰다 근무시간에 졸면 당장 눈 밖에 난다. 잠이 보약이라고 했다. 잠 못 자고 몸 혹사해서 암에라도 걸리면 누가 책임질 건가? 우리나라는 현재도 충분히 노력하고, 잘하고, 피곤한데 더 잘하고, 더 노력하고 그것도 모자라 뭔가를 더 해야하는 강박이 있다. 이제 그런 나를 놔 줄 때도 되지 않았나?

 

책 쓰는 것 하나를 나무라고 싶어서 이러는 거 아니다. 이게 좋으면 이거 따라하고, 저게 좋으면 저것 따라해야만 할 것 같은 이 사회가 싫어하는 말이다. 또한 책은 많이 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권을 내더라도 독자와 작가가 다같이 행복할 수 있는 책을 내야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책을 많이 써 본 사람이 좋은 책을 낼 확률이 높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또 꼭 맞는 말도 아니다. 책을 많이 내도 그 밥에 그 나물 소리 듣는 작가가 있다. 독자는 똑똑하다. 이름만 듣고 무조건 지갑을 여는 독자는 이제 없다고 봐야한다.

 

글쎄, 나는 책에 대해 보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인지는 모르겠는데, 책은 그 작가의 쌓아온 지식과 사고의 보고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책을 쓰기 위한 스킬만을 전수하고 철학이 없는 책은 참고서 이상의 가치는 없다고 본다. 그냥 참고해서는 볼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 안 써도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런 나라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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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6 1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7 1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2-16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하면 된다˝고 확신하는 어조가 많은 자기계발서를 좋아하지 않아요.

stella.K 2016-02-17 13:01   좋아요 0 | URL
이런 분야의 저술가들 열심히 사는 건 뭐라 할 수 없겠지만
뭔가로 몰아가는 건 좀 그래. 적어도 내 성격과는 맞지 않아.
뭔가를 해야 한다면 안 할 수도 있거든.
물론 너무 안 하면 도태되겠지.ㅠ

오거서 2016-02-16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책인 것 같군요. 불안을 유발시켜 주장을 강하게 어필 하려 한다면 참 불편하죠~ ^^

stella.K 2016-02-17 13:04   좋아요 0 | URL
자기계발서 중에도 좀 묵직한 것도 더러는 있던데
이 책은 진짜 좀 그렇더군요.
제가 글 쓰기에 관심이 없다면 결코 선택 안했을 텐데 말입니다.ㅠ

2016-02-16 2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6-02-17 13:27   좋아요 0 | URL
그러니 그런 책을 읽은 저는 어떻겠습니까?ㅋㅋㅋㅋㅋ

페크pek0501 2016-02-17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개인적으로 독서는 모두가 해야 할 일이지만(안 하는 것보단 좋다고 생각함.)
글쓰기는 모두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모두가 글을 잘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모두가 글을 잘 써서 책을 내는 일에만 몰두한다면 큰일이지요.
정치는 누가 하나요? 기업은 누가 키우나요? 국가 대표선수는 누가 하나요? 가수는 누가 하나요?
노래 잘 부르는 가수가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기술이 뛰어난 운동선수나 발레리나가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는 점, 각기 다른 재능을 타고난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되지요.

책을 내는 사람만 많고 그것에 비해 읽어 주는 사람은 적고 그렇게 되길 저자가 바라는 건 아닐테지요?

글쓰기가 유익한 일임엔 틀림없지만 모든 국민이 글을 잘 쓸 필요가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다 잘 쓰면 다른 능력을 키우려고 하지 않고 글만 쓰려고 할까 봐 걱정임.)ㅋㅋ
과장해서 써 봤습니다.


stella.K 2016-02-18 12:17   좋아요 0 | URL
예전에 개그맨 박영진이 자기 코너 말미에 항상 외치잖아요.
소는 누가 키우냐고.
전 박영진이 꽤 똑똑한 개그맨이라고 생각합니다.ㅋ
 
존 프리먼의 소설가를 읽는 방법
존 프리먼 지음, 최민우.김사과 옮김 / 자음과모음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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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책을 읽으면 문학 그것도 소설만 국한해서 보더라도우리가 아직도 미처 다 알지 못하는 작가들이 참으로 많구나 하는 것이다. 지난 2, 30년 동안 우리나라 출판은 비약적인 발전을 해서 출판의 춘추전국 시대를 이루고, 그덕에 우리가 모르는(또는 모를 뻔한) 작가들의 작품을 알게 됐지만 출판도 자본주의의 그것을 피해갈 수 없으니 그들만의 리그가 될 공산이 크다. 그러니까 아주 작품성이 뛰어난 작가들의 작품이 아니면 번역되기가 아직도 어렵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는 얘기다.

 

놀라운 건, 우리가 그리도 동경해마지 않는 미국 작가라도 (물론 앞으로 번역될 확률이 가장 높긴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작가가 있더라는 것이다. 그에 대표적인 예가, 데이비드 포스터 윌리스다. 들어는 보셨는가? 적어도 난 처음 듣는 이름이다. 그런데 그가 <인피니트 제스트>란 소설을 무려 천 페이지에 걸쳐 썼는데, 그 소설은 그 이름도 유명한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를 미국의 테니스 학교 캠퍼스를 배경으로 썼다는 것이다. 그냥 작가와 작품명만 들으면 그런가 보다 할 텐데, 이런 설명이 붙으면 엇, 이런 책이 있어서 하며 당장이라도 사고 싶겠지만 번역된 것이 없다. 이렇게 아직도 우리나라에 알려지지 않은 미국 작가의 작품도 많은데 제 3 세계의 알려지지 않는 작가와 작품은 얼마나 많겠는가? 우리가 번역되어 알고 있는 제 3세계의 작품은 정말 세발의 피다.

 

그래도 우리가 이 책을 읽는 목적은 그런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는 어떻게 글을 쓰나'에 있지 않는가? 얼핏 이 책은 작가들의 인터뷰를 모아 논 <작가란 무엇인가?>와 비견된다고 할 수 있다. 솔직히 <작가란 무엇인가?> 이전에 이런 책이 있었나 생각해 보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책의 인기는 놀라울 정도였다. 나도 읽어 본 적이 있는데, 물론 장단점은 있겠지만 이 책 보단 <작가란 무엇인가?>가 조금 더 나아 보이긴 했다. 무엇보다 인터뷰어의 사전 조사와 꼼꼼한 질문에 작가들의 답이 상당히 사실적이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아는만큼'의 법칙은 여기서도 통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비해 이책은 작가의 인터뷰에 대한 정리 보고 형식이 더 많아 내용의 꼼꼼함을 선호한다면 앞의 책을, 그런 꼼꼼함 보다 정리된 형식을 원한다면 이책이 유용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단 이책의 단점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는 작가도 다수 포함하고 있어 그런 작가는 아무래도 가독성이 좀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왜 이런 책을 선호하는가를 생각해 본다. 물론 그건 작가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가를 알고 싶어하는 호기심 때문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난 작가들이 어디서 영감을 얻으며, 그들은 왜 쓰고 싶어하는지를 알고 싶다. 뭐 아무리 글은 엉덩이로 쓰는 거라고 그러고, 무조건 쓰라고 글 쓰기를 가르치는 선생들은 하나 같이 말하지만 사실 그건 좀 한계가 있는 것이고, 작가가 꿈이라면 선배 작가들은 어떤 글을 써 왔으며, 어떻게 쓰는지를 알고 싶어하는 건 당연하고 오히려 그게 글을 쓰는 사람들에겐 더 유익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거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글을 쓰는 건 얼마나 지난한 과정인가를 또 한 번 확인하는 것이다. 이것에 유명한 일화를 남긴 무라카미 하루키는 워낙 많이 다루었으니 여기선 좀 제외하고, 오르한 파묵의 경우를 보자. "...... 아침에 일어나서 일곱시에 책상에 앉아 다섯 시간 동안 글을 써서 소설의 한 페이지를 보탭니다. 두 페이지 반을 쓸 때도 있죠. ...... 제게도 소설을 쓰려면 일상이 평온해야 한다는 말이 옳을 것입니다. 많은 소설가에게 그러하듯 말이죠. 하지만 저는 힘든 시간에 소설을 쓰는 버릇을 들여왔습니다. 사실 글을 쓰는 것이 삶에서 맞닥뜨리는 고난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지요. ......그리고 글을 쓰는 것이 항상 저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합니다. ..."(490p) 또는 마크Z. 다니엘레프스키란 우리에겐 별로 알려지지 않는 작가는 한 쳅터를 완성하는데 무려 9개월이 걸린다고 고백한다.  

 

그렇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도 매일 다섯 시간을 씨름해 한 장. 많으면 두 장 반을 쓰고, 한 쳅터를 완성시키는데 무려 9개월이 걸린다고 하면. 나는 글 쓰는데 재주가 없다며 구겨버린 원고를 다시 펼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글 쓰기의 대가도 그럴진대 못 쓰겠다고 팽개쳐 버리는 원고의 시간은 상당히 짧을 것이다. 그리고 우린 이런 일화에서도 위로와 용기를 내어야만 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난 작가에 관한 모든 것이라면 그런 책은 환영이다. 그래놓고 별점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인데 그건 이 책의 저자가 모르는 작가를 너무 많이 다뤘기 때문이거나, 우리나라 출판 시장이 아직도 넓지 못하다는 것을 반증한 탓일 것이다. 그러니 날 너무 원망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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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의 곁 - 가까이 두고 오래 사랑할 도쿄 여행법
고현정 지음 / 꿈의지도 / 2015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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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정은 내가 좋아하는 배우다.
적어도 내가 보는 이 배우는 열심히 연기하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왜 그런 사람 있지 않은가? 카메라 발 허세 잡는 배우. 그래서 무조건 그 앞에서 예쁘게만 나오거나, 멋있게만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배우. 난 그런 배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고현정에겐 그게 없어 보인다. 배역이 주어지면 거기에 자기를 온전히 던질 줄 안다. 그래서 좋아한다.

얼마 전 이 책과 관련해서 그녀가 TV에 나온 걸 봤다. 순전히 배우에 대한 관심 하나로 보긴 했는데 그다지 많이 감동스러운 건 아니었다. 하긴, 예능 프로를 감동하려고 보나? 그냥 이 책이 나오기까지의 과정, 북 콘서트 현장을 스케치한 프론데 그냥 나쁘지 않은 정도.

솔직히 말하면 난 이 책에 대한 기대가 그다지 높지 않았다. 단지 내가 요즘 나오는 여행에 관한 책을 거의 읽은 적이 없는데, 마침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일본 도쿄에 관한 책을 냈다니 관심이 간 것뿐이다. 그래서일까 책은 대체로 만족스럽다.

처음엔 역시 내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에세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고, 그냥 여성 월간지('레이디 00'니 '여성 00'하는 잡지 말이다) 같은 데서 보면 라이프 스타일 섹션이 있는데 그런 콘셉트의 책이란 느낌이 들었다. 정말 글은 조금이고, 사진만 많다. 

그게 이 책의 콘셉트이라면 콘셉트일 것이다. 이 책은 일본 도쿄를 고현정이란 배우의 시선으로 소개한다. 결혼하고 2년 반을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어떤 의미로든 이곳을 한번 찍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서 선택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도쿄의 이곳저곳을 짚었고, 거기서 보거나 산 물건들을 소개하고 그 물건을 만든 사람들과 짧은 인터뷰를 한다. 그렇게 해서 꾸민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그런데 그 짧은 글도 어떤 면에선 딱히 눈에 들어와 박히지 않는 경우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수준이 낮다는 것이 아니다. 그냥 바람에 모래가 흩날리는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훅하고 모래바람날리고 나면 그제야 아, 이 배우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겨우 알아차릴 수 있을 것 같다. 그제야 겨우 곁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열심히 소개하는 도쿄 속에 자신의 이야기를 숨겨 놓은 것 같다. 그건 아무래도 자신의 얘기를 너무 많이 하면 늘어질 것 같아서는 아닐까 싶기도 하고, 아니면 자신을 쉽게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그녀의 성향 때문일까? 사진도 누군지 모르지만 꽤 잘 찍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웃을 때 적당히 웃는 경우를 못 본 것 같다. 웃으면 거의 함박웃음을 짓곤 했던 것 같은데 난 그런 그녀를 좋아한다. 요즘엔 TV에서 잘 못 보는 것 같은데 책도 좋지만 자주 나와 행복에 찬 그녀 특유의 함박웃음을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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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6-01-19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고현정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냥 싫은 배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아하지도 않는 배우랄까요. 전 이미연을 좋아합니다..ㅎㅎ 젊었을 땐 별루 였는데, 이미연이 나미 먹으면서 점점 좋아지더라구요...

요즘 스텔라 님의 티브이 리뷰가 별로 없는 거 같아 좀 아쉽네요^^

stella.K 2016-01-20 11:28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게요. 사람이 다 좋은 게 아니더라구요.
고현정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이미연 싫어하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야무님처럼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데 말이죠.
전 이미연이 좋지도 싫지도 않더라구요.
그래도 좀 열심히 연기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아할 것 같은데
그러질 않네요. 응팔에서도 사이드로만 나오고.

아, 근데 저의 TV 리뷰를 기다리시다니 황공하네요.
제가 좀 소심한 편이라 어떤 땐 뭐 이런 걸 시시콜콜 쓰나
그런 생각도 했었거든요.
앞으로 기회있는대로 써 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페크pek0501 2016-01-19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누굴 좋아하나 생각해 보니 딱히 생각나질 않고
김희애가 생각나네요. 젊었을 땐 평범해 보이더니 나이 들면서 오히려 멋있어진 것 같더라고요.
나이 들어서도 미모를 잃지 않다니 놀랍고요.

그런데 말이죠. 고현정도 그렇고 김희애도 그렇고 드라마 속에선 멋있어 보이는데
여행하면서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 주는 티브이를 보면 멋있단 생각이 안 들어서 그게 이상했어요.
말할 때에 분위기가 없다고 해야 하나... 왜 드라마에선 말할 때도 분위기 있게 말하잖아요.
그렇다면 드라마 속에서만 멋있는 사람들이라고 해야 하나요?

stella.K 2016-01-20 11:34   좋아요 0 | URL
전 이상하게 김희애가 적응이 안 되더라구요.
좀 힘을 뺐으면 좋겠는데 항상 힘이 들어가 있어요.
그러다 드라마 <밀회>보고 아, 이제 됐다 싶었는데
거 뭐죠? 미세스 캅이었나?
나름 연기 폭을 넓혀보려고 시도를 했던 모양인데
새삼 이 여자가 입이 큰 여자라는 걸 알았죠.ㅋㅋ
보다가 말았어요.ㅠ

하긴, 예능 프로 보일락말락에서 고현정이 살이 쪄서
달덩이가 되서 나왔더라구요.ㅎㅎ
그런데 그런 것도 하나의 컨셉이잖아요. 인간적이고 친근한 거.
그냥 그려려니 해요.ㅋ

2016-01-19 2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0 17:5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