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기술 - 최고의 승부사 트럼프의 이기는 전략
스콧 애덤스 지음, 고유라 옮김 / 더퀘스트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내가 트럼프를 알게된 건 80년대 초반으로 기억한다. 언제나 그렇듯 기업인의 성공 스토리는 변함없는 독자들의 관심 대상이다. 하지만 또 언제나 그렇듯 그런 것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다른 사람으로 옮겨가기 마련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성공한 사람이 그만은 아닐테니.

 

그리고 한참 세월이 흐른 후에 그가 다시 매스컴에 등장했다. 이번엔 부동산 재벌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다. 처음 그가 모습을 드러냈을 땐 조각같은 날렵한 외모였는데 그도 세월의 흔적을 비껴갈 수 없었는지 덩치 좋은 노인의 모습이다. 그때 사람들은 하나 같이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기업인이 무슨 정치냐고. 사실 따지고 보면 이 둘은 자웅동체 같은 것이긴 할 텐데도 소위 말하는 장삿꾼이 정치를 한다는 건 별로 어울린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게 꼭 아니더라도 트럼프는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과는 좀 다르다. 우리나라는 그런 적이 없어서인지는, 또 아니면 남의 떡이 더 커보이는 건지는 몰라도 역대 미국의 대통령은 뭔가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뭔가 모르게 기품이 있어 보이고, 뭘 하더라도 점잖고 우아하다. 당장 트럼프의 대통령 후보 시절 적수였던 힐러리 클린턴을 보라. 그녀가 얼마나 고상하고 멋져 보이는지. 무엇보다 그 싯점에서 미국도 이제 여자 대통령이 나올 법하다고 입을 모으기도 했다. 영국도, 독일도, 미얀마도 하다못해 탄핵을 당하긴 했지만 우리나라도 여성 대통령 또는 총리를 내는 판국이었다. 더구나 투표 직전까지만 해도 힐러리는 트럼프 보다 앞서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을 깨는 법이 거의 없는 대통령 선거에 힐러리는 고배의 잔을 마셨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것을 마냥 반가워했던 것도 아니다. 반가워 했던 사람은 트럼프 자신과 가족, 공화당 지지자들 정도랄까? 그의 대통령 당선에 화를 냈던 건 미국 국민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미국 국민들은 자신이 트럼프를 찍은 것을 쉬쉬하고 부끄러워 했던 것일까? 이를 두고 샤이 트럼프라고 했다. 사실 지금까지의 대통령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대통령이 됐지만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게 됐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트럼프처럼 그야말로 기상천외였다.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은 내가 봐도 미스터리고, 악재로 작용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북한의 김정은과 좀 대립했어야 말이지. 둘이 막말을 쏟아 붓는데 북미 그 사이에 낀 우리 남한은 그야말로 일촉즉발이었다. 과연 이래도 되는 것일까? 

 

그랬던 그들이 지난 북미정상회담 이후 평화 무드다. 좀 얼떨떨하기도 하고, 만화같기도 하다. 물론 언제까지 서로 으르렁거리는 것 보다야 낫지만 순식간에 이러고 나오는 것도 좀 그렇지 않은가? 언젠가 TV를 보는데,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이후 보여준 이미지가 좋다보니 사람들은 하나 같이 그가 사실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사람은 역시 권력을 가진 이가 그전에 뭘 했던지간에 조금만 다르게 행동해도 좋게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구나 싶다. 동시에 트럼프에 대한 이미지도 좀 달라졌다. 이제까지의 생각은 어디로 가고 그는 어쩌면 산타클로스 같은 존재 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한동안 빨간 넥타이를 하고 나오지 않았던가?완전 산타 복장은 좀 그럴테니 약식으로 그러고 나와 자기를 그렇게 봐달라는 의미처럼도 해석이 되는 것이다. 

 

어쨌든 그는 역대 어느 대통령도 하지 못한 것을 해냈다. 그리고 난 또 생각한다. 미국의 역대 어느 대통령도 하지 못한 것을 트럼프는 했는데 왜 그들은 하지 못했던 걸까? 사실은 할 수 있었는데 안했던 건 아닐까? 자신은 미합중국의 대통령으로서 대통령의 고귀한 지위를 지켜야 한다며 너무 사렸던 것은 아닐까? 트럼프는 아들 같은 사람한테 온갖 들을 욕, 못 들을 욕을 다 먹어 가면서도 결국엔 김정은에게 먼저 악수를 청했다. 그렇다면 역대 대통령들은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못했던 건 아닐까? 별 오만가지 잡생각이 다 떠올랐다.      

 

그리고 우리는 그동안 트럼프를 알게 모르게 연구하기 시작했다. 어떨 때 어땐 액션을 취하는지 TV는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자세히 알려주기도 했다. 하다못해 북미회담을 앞두고 판을 깨려고 했을 때도 우린 그의 수를 읽으려고 했다. 사실 그건 그도 일부러 보여준 액션이긴 하다.

 

그가 후보 때나 취임 때 했던 말이 생각난다.그는 미국이 이득을 얻는 길이면 그것이 무엇이 됐던지간에 해 낼 거라고. 그 말은 미국이 이득을 얻는데 방해되는 건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말로도 들린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새로운 국수주의자 나셨네 빈정거리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트럼프가 왜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하루아침에 김정은의 손을 잡았는지를. 대통령이 되는데 자존심은 사실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그것도 대중의 관심을 끌려는 포석으로도 읽힌다. 그리고 약간 부럽기도 했다.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 중 그런 대통령이 있었나? 적어도 자존심을 버리면 무엇을 얻는지 생각해 본적은 있을까?

 

그는 절대로 지는 게임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매스컴에서 사라진 이후에 크고 작은 협상과 거래에서 어떻게 자신의 패를 잃지 않으며 상대를 자신 앞에 굴복시키는지를 연구하고 또 연구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길 수 있었던 거 아닌가? 사실 우리는 트럼프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동시에 너무 얕봤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에게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내게 친절하고 정감있게 대해주는 사람이 좋긴 할 것이다. 하지만 뭔가 호기심을 자극하고, 알고 싶어지는 사람을 이길 수 있을까? 솔직히 난 처세술이나 자기계발류의 책을 거의 안 읽고 있다. 그런데 트럼프 때문에 평생이 가도 거의 읽지 않을 것 같은 책을 읽었다.저자가 유명한 건,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나서 자신을 인터뷰하라고 친히 지목한 게 자신이란다. 왜 그랬는지는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읽으면서 언뜻언뜻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우선 그게 트럼프 방식이었을 것이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여기저기서 인터뷰 요청을 받겠지만 그런 건 트럼프 스타일이 아니다. 그리고 웬지 트럼프 특유의 호기로움 같은 게 저자에게서도 느껴진다. 그러니까 트럼프는 그런 점이 자신과 대등하다고 느꼈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저자는 트럼프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이런 중립적 인물이 트럼프를 인터뷰하는 게 좋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잘못 알고 있었던 걸까? 난 트럼프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인터뷰를 하고나서 인물 분석을 한 일종의 보고서 형식이다. 뭐 트럼프를 이해하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됐던 건 아니지만 내가 이 책에 대한 기대를 너무 많이 했을까?  뭔가 산만한 것이 나와는 좀 안 맞았다. 나중에 트럼프는 어떤 평가를 받을까? 역대 어느 대통령 보다 가장 많이 기대되고 흥미롭다. 아, 내가 이렇게 변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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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8-01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럼프가 부동산 재벌로 활동하고 있었을 때, 프로레슬링 단체 WWE에 출현한 적이 있어요. 그때 트럼프는 선역 재벌 캐릭터로 나왔는데, 이 사람이 미국 대통령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ㅎㅎㅎ

stella.K 2018-08-01 19:45   좋아요 0 | URL
헉, 그건 몰랐던 사실이네.
경력이 다양하구만. 뭐는 못하겠어?ㅋ

2018-08-01 1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8-08-01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이 작용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김정은이 마음을 열고 나설 타임에 마침 트럼프가 대통령이었다고 볼 수 있어요.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우리 삶에 운이 작용한다는 생각을 요즘 합니다.


stella.K 2018-08-01 19:50   좋아요 1 | URL
그런데 그 운이라는 것도 자신이 만든다잖아요.
그러고 보면 트럼프는 기가 아주 센 사람 같아요.
허센지 아니면 진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모든 걸 다스리고 주관하는 것처럼
행세하잖아요.
그게 믿음을 줄지 아니면 미움을 살지 그걸 모르겠어요.ㅋ

레삭매냐 2018-08-01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와 미국 행정부 사이의 괴리가
항상 문제였죠.

민주당 정권-보수정부, 공화당 정권-
진보정부 이런 식의 대립구조가 이번에도
반복되는가 싶었지만 트황상이 파격적으
로 북미정상회담을 성공시켰으니 그것 참.

아마 힐러리가 대통령이 되었다면, 준비
만으로 1년이 걸렸을 거란 의견에 수긍이
갔습니다.

어쨌든 자기 나름 대로 미국의 국익을
위해 전 세계와 맞짱을 뜨겠다는게 반대할
미국 사람이 있을까 싶네요.

stella.K 2018-08-01 20:00   좋아요 0 | URL
그렇죠. 세계와 맞짱!
미국이 그런 걸 또 좋아하긴 하죠.
어찌보면 가장 미국스런 사람인지도 모르겠어요.
샤이 트럼프엔 은근 국민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대통령이길 바라는 마음도 있지 않을까요?
트럼프 어깨 장난 아니잖아요.ㅎㅎ

서니데이 2018-08-03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은 시절의 트럼프 대통령 사진을 본 적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이미지가 금방 떠오르지는 않네요. 많이 보아서 익숙한 이미지라는 것이 있으니까요.
시간이 많이 지났고, 그리고 사업가와 정치인이라는 다른 일을 하고 있으니까, 이 책이 처음 출간되었을 그 때와 지금 시기의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보는 것도 달라질 수 있을거예요.
stealla.K님, 더운 밤입니다. 시원하고 좋은 금요일 보내세요.^^

stella.K 2018-08-04 18:36   좋아요 1 | URL
ㅎㅎ 젊었을 때 아주 잘 생겼어요.
지금도 인터넷 어디엔가 찾아 보면 있을 것도 같은데...
배우 같이 잘 생겼죠.
그런데 늙어서는 진짜...
원래 젊었을 때 잘 생긴 사람이 늙어서도 잘 생기긴 힘들죠.
반대로 젊어서 인물이 그러면 나이들어 나아보이는 경우도 있구요.ㅋ

오늘은 어제보다 다소 좀 덜 더운 것 같아요.
그래도 여전히 더운 거긴하지만 그동안 쩔쩔 끊은 것에 비하면...
서니님도 좋은 주말 보내십쇼.^^

2018-08-11 07: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11 14: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11 15: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8-11 16:02   좋아요 0 | URL
선물번호를 어디서 찾니?
잘 모르겠네...
이거 하도 안 해 봐서 기억이 나질 않아.ㅠ

cyrus 2018-08-11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님 이메일 계정에 북 기프티콘 메일 안 왔어요? 제가 누님한테 북 기프티콘을 보내면 누님 이메일 계정에 제가 보냈다는 사실을 알리는 메일이 와요. 아마도 그 메일에 선물번호가 있을 거예요.

stella.K 2018-08-11 16:38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야. 이메일로 오는 거지?
그게 안 왔다는 거 아니니...
이 문제 때문에 유레카님 때도 내가 알라딘에 전화해서
뭐라고 했는데 자기네들도 그걸 잘 모르겠다는 거야.
그러면서 어떻게 어떻게 해서 받긴 했는데...
하다못해 이달의 당선됐다는 메일도 꼬박꼬박 오잖아.
그런데 기프티콘은 항상 걸려.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선물번호 너도 잘 모르겠지?
천상 월욜날 전화로 알아보는 수 밖에.ㅠ

cyrus 2018-08-11 16:53   좋아요 0 | URL
제가 기프티콘을 받았을 때 메일로 왔고요, 그 메일에 선물번호가 있었어요. 자주 받지 않아서 정확히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제 기억으로는 선물번호가 메일에 있었어요.

기프티콘 취소하고 집으로 보낼까요? 그게 더 편하겠어요. ^^

2018-08-11 1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8-11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등록대기‘ 상태인데 취소가 안 되네요.. ^^;;

cyrus 2018-08-11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핸드폰 번호로 다시 전송할께요.

stella.K 2018-08-11 19:22   좋아요 0 | URL
아, 지금 왔어. 등록할게. 고마워.^^

cyrus 2018-08-11 19:23   좋아요 0 | URL
다음부터는 핸드폰 번호나 이메일 주소로 보내야겠어요.. ^^;;

cyrus 2018-08-11 19:29   좋아요 0 | URL
등록완료 확인했어요. 이쯤되면 나한테도 등록완료 메일이 와야하는데 아직 안 왔어요. 메일 수신이 좀 늦네요..

stella.K 2018-08-11 19:29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럼 다음에도 또 선물해 줄 거야?
내가 동생 하나는 잘 둔 것 같아.ㅋㅋㅋㅋ

선물 받으면 연락할게.
좋은 주말 보내라.^^
 
나를 사랑하느냐
옥한흠 지음 / 국제제자훈련원(DMI.디엠출판유통)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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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돌이켜 보면, 한때나마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수 있었다는 건 축복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목사님의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건, 그분이 암 투병 때문에 잠시 강단을 떠나 있다가 다시 복귀한지 얼마 안 되는 때였다.

 

먼저 다니던 교회도 있었지만 웬지 교회를 옮기고 싶었다. 교회를 옮길 요량이라면 교회를 어디로 하면 좋을까 한동안 투어를 다녀보는 것도 좋을 텐데 여기 저기 쑤시고 돌아다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목사님의 교회를 다니기로 했다. 왜 그랬는지는 그때도 모르고, 지금도 모른다. 취향이라고 하기엔 이 새로운 교회가 나와 맞느냐면 꼭 그렇지도 않는 것 같았다. 내가 이 교회를 다니면서 당했던 설움과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생각하면 교회는 함부로 옮기는 게 아닌가 하는 회의도 들었다. 물론 그러기엔 내가 교회라는 속성을 너무 몰랐던 거겠지만. 아마도 내가 이 교회를 오래도록 다닐 수 있는 요인 중 하나는 목사님의 설교 때문이란 걸 부인하지 못하겠다. 목사님의 설교의 깊이는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하지만 그만큼 쉽게 들리는 설교도 아니다. 정말 쉼호흡을 크게 한번하고, 각잡고 들어야 들릴 수 있는 설교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내가 목사님의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때는 20대 중반무렵이었다. 그 나이에도 깊이를 추구하는 사람이 없으란 법은 없겠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20대는 20대다. 가끔은 목사님의 설교가 버거울 때가 있었다. 그때는 내가 주일학교 교사를 하던 때이기도 했는데, 교사란 이유만으로 주일학교 예배에 참석해야 했던 나는 가끔은 피곤하다는 핑계로 목사님이 주관하시는 예배를 따로 참석하지 않는 때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목사님은 강단으로 복귀를 했다고는 하지만 주일 날 하루 네 번있는 예배를 다 주제하시는 건 아니었다. 거진 대부분은, 정말 가물에 콩나기를 제외하고 목사님은 1부 예배만 주제를 하셨고 나머지는 녹화 설교로 대치했다. 그런데도 그 녹화 설교를 들으러 원근각처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걸 보면 목사님은 정말 난 분이란 생각이 들긴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목사님의 설교를 거부한 나 같은 신자가 있었다는 건 확실히 목사님의 불행인지도 모르고, 나는 문제적 신자임에 틀림없다.

 

목사님의 설교는 그야말로 지성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목사님 이전에 또 목사님 이후에도 명설교가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목사님은 자칫 크리스찬 지성을 대표하는 C.S 루이스나 20세기 초 명설교가였던 로이드 존스 목사에 비견되기도 했다. 그분이 그만큼 탁월한 설교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디에 있었을까?

 

목사님은 살아생전에 남의 교회나 여타 집회에 강사로 나선 적이 거의 없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것을 사람들은 당신이 지병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서문을 대신한 지난 2006년도에 월간 <디사이플>과의 인터뷰를 보면, 목사가 유명해지면 여기저기서 설교 청탁을 많이 받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목자로서 내 교회 교인들을 챙기는 건 자연 소홀하게 된다. 목사님은 양심상 그것을 감당할 수 없으셨다. 그러니 당신의 병 때문에 외부 청탁설교를 응하지 못했다는 건 그분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목사님은 또 그런 말씀도 하셨다. 좋은 설교란 회중이 의무적으로 들어주는 설교가 아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들리는 설교라고. 아뿔사! 나는 앞서 그분의 설교는 마음을 정제해야 비로소 들리는 설교라고 했다. 이거 원, 목사와 성도간에 이렇게 생각이 달라서야... 그런데 그 다음 말씀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지난 날을 돌이켜보면, 입맛이 까다로운 아이를 위해 그 어미가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들 듯, 저 역시 만족할 수 없으나 비슷한 몸부림을 친 것 같습니다. 그러한 까닥인지 저는 설교를 즐거운 소명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무거운 십자가로 생각하는 체질이 되었습니다. 행복한 설교자의 자격을 잃었다고나 할까요?

 

그러니까 난 어미가 자식을 위해 좋은 음식을 만들어주면 한사코 안 먹겠다고 떼쓰는 어린아이와 같았다는 말도 될 것이다. 목사님의 설교가 그렇게 어려운 거라면 난 몇번 듣다가 말았어야 한다. 하지만 목사님의 설교는 기꺼이 나의 무릎을 꺽고, 들어 청종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늘 몸이 안 좋으셔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어느 때고 목사님의 설교를 만족하게 들었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던 것 같다. 늘 아쉽고, 감질나고, 너무 귀해 주일 날 목사님이 설교를 들을 수 있는지 아닌지가 늘 초미의 관심사였다.  

 

목사님은 남들보다 일찍 은퇴를 하셨는데, 보통 다른 교회 같으면 원로 목사를 위해 1부 예배 정도는 원로 목사가 설교를 하거나 어쨌든 교인들이 그 존재를 잊지 않도록 배려를 하는데 목사님은 은퇴하고부턴 정말 사정의 사정을 거듭해야 겨우 한 번 응낙을 할 정도였다. 이를테면 송구영신 예배나 부활절 연합 예배 같은 아주 특별한 때 말이다. 어찌보면 그분의 말년은 은둔자의 설교자였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 목사님의 설교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때가 왔다. 오랫동안 암과 투병하신 것을 생각하면 역시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렸다는 말이 맞는 것도 같지만, 인간의 평균 기대 수명이 80을 넘는 상황에서 그분의 부고 소식은 정말 안타까웠다. 무엇보다 이젠 가물에 콩나기로도 그분의 설교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것이 제일 아쉬웠다.

 

그날을 확실히 기억한다. 목사님이 돌아가시던 날을 말이다. 늦은 밤부터 유독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태풍이었을까? 그건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그전부터 오늘, 내일하신 상황이긴 했지만 성경의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지 않은가? 목사님도 그런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바람이 홀연히 목사님을 천국으로 인도했을 것만 같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이른 아침 바람이 겨우 잦아들자 교회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돌아가셨다고. 당연히 나는 목사님의 교회 교인으로 목사님 영전에 꽃을 헌화하고, 그 돌아오는 주일은 눈물의 예배를 드렸다. 

 

그로부터 1년 후 추모의 의미를 담아 이 책이 나왔다. 78년도에 개척하시고 은퇴하실 때까지 몇 번의 설교를 하셨을까? 그중 10편의 설교를 묶었으니 옥중의 옥에 해당하는 설교일 것이다. 몇 편은 나도 기억이 어럼풋한데, 목사님이 언제 이런 설교도 하셨나 싶은 설교가 다수다. 그런 걸 보면 그 옛날 주일학교 교사를 하고 하필 땡땡이 쳤을 때 하신 설교인지도 모르고, 또 어쩌면 내가 목사님의 교회를 다니기 전에 하신 설교인지도 모른다.

 

난 이 설교집을 발간 당시 샀고, 최근에서야 읽었다. 감회가 새롭다. 마치 타임 캡슐을 꺼내 보는 느낌 같기도 하고, 멀리 시간의 바다를 돌아 도착한 병속의 편지를 꺼내 보는 느낌이다. 목사님이 천국에서 나에게 편지를 보내주신 것만 같다.

 

나도 내가 이렇게 오래 신앙생활을 하게될 줄은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젊었을 때 지어 볼 수 있는 죄는 다 지어보고, 할 수 있는 방탕은 다 해 보고 이 나이쯤 해서 신앙생활을 할 걸 그랬다고 농담으로 말하곤 하는데, 그건 정말 농담이다. 내가 그 어린 날 신앙을 갖지 않고, 젊은 날 교회생활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만큼이라도 사람 구실을 했겠나 싶다. 추억도 교회에서 쌓은 게 90% 이상이다. 하지만  신앙 생활을 오래하면 어쩔 수 없이 타성이 붙는다. 그럴 때 목사님 생각하며 이 책을 읽었다. 설교의 여러 가지 구성 요소들이 있겠지만 성도들의 신앙을 독려하는 것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니 목사님의 육성을 듣는 것만 같고, 다시 옛날로 돌아간 것만 같다.

 

목사님의 설교는 지성주의 설교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목사님으로선 그럴수 밖에 없었던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그때 한국 기독교는 너무 은사주의로 흐르고,  무당이 신내림을 받듯 강력한 성령 체험과 능력을 받아야 한다는 식의 신앙이 팽배했다. 그것을 당신은 굉장히 경계하셨다. 목사님은 하나님의 은혜는 늘 삶속에서 지속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세월이 흐르고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분명 기독교의 질적인 변화를 가져왔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너무 그러다보니 성령의 역사하심을 제한하거나 축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점은 좀 아쉽긴 하지만 목사님이 한국 교회에 미친 영향력은 결코 가볍지 않다. 

 

책을 덥고나니 목사님 설교는 일생에 한 번이겠구나 싶다. 천국에 가도 목사님의 설교는 못 듣겠구나 싶다. 평생 지고가야 할 십자가로 여기셨고, 살아생전에도 설교를 한사코 거절하셨었다. 천국은 십자가가 풀어지는 곳이다. 비로소 안식하는 곳이다. 그런 목사님이 천국에서 설교를 하실 리 없다. 목사의 설교가 필요한 건 지상에서지 천국이 아닌 것이다. 그러니 그런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살았던 적이 있었다는 것이 어찌 축복이 아니겠는가? 지금은, 너도 곧 천국에 이를테니 그때까지 신앙생활 잘하고 있으라고, 신앙생활은 항상 전진이지 퇴보란 있을 수 없다고 그 특유의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마음속으로 존경하는 사람 한 사람쯤 품어 보는 것도 괜찮은 인생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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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18-07-27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신교 신자가 아니고 앞으로도 될 생각이 없지만 스텔라님의 이 글을 읽고 나니 그 분의 설교를 듣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더운데 건강 조심하시길..

stella.K 2018-07-27 19:42   좋아요 0 | URL
이거 영광인데요?ㅎㅎ
그리 말씀하시니 제가 오히려 감사합니다.
언제고 기회되시면 꼭 한번 들어보세요.
설교집 읽어보셔도 좋구요. 고맙습니다.^^

2018-07-27 17: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27 19: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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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7 19: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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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7 19: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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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0 18: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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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듣는 김광한의 팝스다이얼
김광한 지음 / 북레시피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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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라디오 키드 시절이 있을 것이다.

나는 한때 클래식 마니아가 될 뻔했다. 초등학교 6학년 시절 내가 속한 반이 합주 반이었는데 요한 슈트라우스의 라데츠키 행진곡을 연주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서울 시내 초등학교 합주 경연 대회가 있는데 학교 대표로 이 곡이 우리의 출전 곡이었던 것이다. 난 좀 억울했다. 내가 속한 반이 어쩌다 그런 막중한 사명을 떠안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빨갱이 공산당도 아니고 모든 반 아이들이 합주에 참여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때 나는 멜로디혼을 연주했는데, 다른 반 아이들이 수업이 끝나서 집으로 돌아갈 때 우리 반은 꼼짝없이 남아서 거의 두 시간 가까이를 합주 연습을 해야 했다. 나도 빨리 돌아가서 쉬고 싶고, TV에서 하는 만화 영화도 보고, 숙제도 해야 하는데 허구헌날 이게 뭐란 말인가? 그 울분을 참느라 10년은 늙어버릴 것만 같았다그때까지 거의 듣보잡이었던 클래식. 그것도 요한 슈트라우스의 곡이라니!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3등의 성적표를 받고 대회는 끝이 났는데 거참 묘하다. 할 때는 멀미가 날 지경이었는데 끝나고 나니 그때가 그립고, 그 그리움을 달래느라 그때부터 내가 클래식을 듣기 시작했던 거다. 그것이 아마도 나에게 추억의 생성이었나 보다. 그때부터 난 밤낮으로 라디오를 끼고 살았다. 클래식이 이렇게 좋은 것인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아니, 그것이 나의 라디오 키드 입문이 될 줄은 나도 미처 알지 못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갈대와 같아서 그렇게 좋아 보이던 것도 질릴 때가 있고, 더 좋은 게 보이면 당연 그쪽으로 옮겨가기 마련이다. 클래식은 들으면 들을수록 어렵고, 고전이란 틀에서 벗어날 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런데 비해 그 시절 팝송은 그 인기가 기하급수 팽창 일로에 있었다. 그것은 자고 일어나면 새롭게 변신의 변신을 거듭했다. 또한 팝송 가수들은 어쩌면 그리도 세련되고 멋있던지. 이것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시절 우리나라에선 70년대 중반 무렵부터 대학가요제를 중심으로 가요계의 판도가 바뀌기 시작했지만 팝송을 따라가기엔 아직은 역부족이었다. 난 그때 대중음악은 딱 두 가지만 있는 줄 알았다. 팝송과 대학가요. 어떤 장르의 음악이든 굳이 들으려하지 않는데 어느 순간 귓가에 들리고, 애인처럼 다시 듣고 싶어지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요한 슈트라우스 할배는 나의 선택을 받지 못한 비운의 애인쯤으로 해 두는 것이 좋을 듯 했다.

 

굳이 들으려하지 않는데 어느 순간 귓가에 들리고 애인처럼 다시 듣고 싶은 것이 가능했던 건, TBC가 언론 통폐합으로 KBS로 넘어가기 전 황인용의 밤을 잊은 그대에게라는 음악 프로를 들으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건, TBCKBS로 이전한다고 예고가 있었고, 실제로 그날이 왔을 때 나는 잠을 자지 않고 TBC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걸 지켜보리라 다짐했었다. 그때 황 아저씨의 그 프로가 10시에서 12시까지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버지가 사 주신 시계겸 라디오를 여느 때처럼 켜놓고 있었다. 그런데 웬일인가? 난 그저 눈을 잠깐 감았다 떳을 뿐인데 12시가 지나있었다. 역시 학교를 다녀야 하는 학생으로서 12시 넘어서까지 두 눈을 뜨고 있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좀 아쉽긴 했지만 그렇다고 나 자신을 원망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일을 내일의 태양이 뜬다고, 황 아저씨의 밤을 잊은 그에게는 그 다음에도 여전히 건재해 TBC가 사라진 사실이 실감이 안 났다. 방송국은 그렇게 사라질지 몰라도 음악은 영원한 것이다. 난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안도할 수 있었고, 위로받는다고 생각했다.

 

내가 KBS 2 FM김광한의 팝스다이얼을 듣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책을 보니 그 프로는 82년도에 시작해서 무려 11년 동안 진행했었다고 한다. 김기덕의 두 시의 데이트가 먼저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원래 라이벌 경쟁 구도가 사람의 이목을 끌기가 가장 좋은 법. 그때까지 TBCMBC와 좋은 경쟁 상대라고 생각했다. 그때 KBS는 국영과 공영의 의미가 강했던 만큼 어린 나도 감히 경쟁에 끼워줄 마음이 별로 없었다. 그런 TBC가 사라졌으니 김기덕의 두 시의 데이트를 능가할만한 대항마가 있을까 했다. 그때 나타난 것이 그의 이름을 딴 팝스다이얼이 나온 것. 그것도 똑같은 두 시에. 그 시절 두 방송을 동시에 접수하느라 주파수 맞춤의 달인이 될 지경이었다. 물론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지만. 밤은 밤대로 행복했다. 이종환과 황 아저씨가 밝혀줬으니.

 

아마도 이 두 쌍의 쌍두마차에 의해 그때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DJ와 팝칼럼니스트란 직업이 각광을 받지 않았을까? 물론 그 이전에도 음악 프로그램과 그것을 이끌었던 DJ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김광한과 김기덕 또 그들 때문에 덩달아 주목을 받았던 팝컬럼니스트의 위상이란 건 가히 하늘을 찌를만 했다고 생각한다.

 

그에 따라 경쟁적으로 누가 팝송 가수와 노래 제목, 레코드판을 더 많이 알고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을 보는 눈빛이 달라지는 시대이기도 했다. 나 역시 이 두 방송을 오고 가면서 누가 부른 무슨 노래가 인기가 많은지, 새로 나온 곡은 뭔지 수첩에 적어놓고 다닐 정도였다. 또 그 곡이 좋으면 레코드판을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샀다. 광한 아저씨는 DJ가 되기 위해 되고난 후에도 엄청난 공부를 했다고 하지만 난 그저 얻어 들을 뿐 덩달아 공부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학교 공부만이 공부지 그것 말고 다른 공부도 있단 말인가?

 

지금도 기억이 나는 건, 그때 80년대는 DJ가 직접 틀어주는 음악다방이라는 게 유행이었다. 그때 살던 동네에도 음악다방이 있었는데(지금도 어느 특정 지역을 가면 있는 것 같긴 하다만), 대학을 갓 들어가서 친구 두 명과 함께 그곳에 갔다. 난 그저 친구들을 그곳에서 만날 것만을 생각했지 음악까지 신청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내 친구들은 그걸 꽤 하고 싶었나 보다. 친구들은 뭐 할까, 뭐 할까 끙끙거리기만 할뿐 나만큼 팝송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그래서 나서서 그때 한창 인기 있었던 록그룹 퀸을 비롯해 생각나는 대로 서너 곡을 더 추가해 DJ 박스에 밀어 넣었다. 그런데 얼마 후, 우리가 아니 내가 신청한 음악 중 한 곡이 선곡이 됐다. 그러면서 DJ가 그런 칭찬도 한다. 음악을 꽤 들을 줄 아는 분 같다고. 그러니까 그때까지 나 같은 신청자는 없었던 말이 될 것이다. 어깨 뽕이 남산만 하게 높아지는 순간이었다. 그게 알고 보면 다 김광한과 김기덕 키드로 자란 덕분일 것이다. 정말 그때는 그들의 음악을 하루라도 듣지 않으면 목에 가시가 돋을 것만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질풍노도의 시간을 보내고, 고독한 청춘을 맞이한 때 아닌가?

 

나 개인적으론 김기덕 보단 김광한을 조금 더 좋아했다. 라디오는 보이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목소리에서 판가름 날 때가 많다. 짙은 중저음의 남성미 느껴지는 것으로야 김기덕이 좀 더 우위인 것 같긴 하다. 전달력도 좋고. 하지만 다소 가벼움이 느껴진다. 즉 중저음의 장점을 극대화시키지 못하고 있다고나 할까긴 안목으로 봤을 때 깊이와 여유, 질리지 않는 건 김광한이 조금 더 앞서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우리의 광한 아저씨는 그것도 알고 보면 다듬고 노력한 결과라고 책에서 밝히고 있다. 자신은 원래 허스키 했었다고 한다. 그가 얼마나 뼈를 깎는 노력 끝에 그 자리에서 김기덕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그의 연보를 보면, 그는 11년 동안 팝스다이얼을 진행했다. 이후 다른 타 방송국에서도 음악 프로를 진행했지만 진정한 전성기는 팝스다이얼이라고 고백한다. 또 그런 만큼 이 시기 TV 프로에도 출연하기도 했는데, 특히 기억에 남든 건 그 시절 당대 유명했던 개그(우먼)맨들과 함께 진행했던 <쇼 비디오자키>는 대단히 유명했다. 그때 어깨를 들썽거리며 진행했던 그를 처음 봤을 때 예상은 했지만 솔직히 목소리에 비하면 좀 많이 뒤처지는 외모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생김은 그 사람의 됨됨이를 결정하는데 크게 기여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사람의 태도, 인격, 입담, 이미지 등이 결정할 때가 많다. 그는 그 모든 것에서 우위를 차지하기에 충분했고, 그의 타고난 성격도 한몫했다. 또한 그 특유의 성실함으로 그는 국내 최초 비디오자키 1호란 칭호를 얻기도 한다.

 

내가 알기론, 김기덕이 아나운서로 시작해 DJ로 자리를 굳힌 걸로 알고 있다. 그도 김광한만큼이나 열심히 방송 출연도 했더라면 그에 못지않은 아성을 쌓았을 것이다. 그런데 뭐 때문인지 시작은 김기덕이 먼저였을 모르지만 역시 김광한이 대중에 더 많은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여한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갑작스런 죽음은 어쩌면 박수칠 때 떠나라의 전형은 아니었을까?

 

책이 상당히 재미있다. 그가 본격 자서전이나 회고록을 썼더라면 더 좋았을 뻔했다. 그런데 지나친 겸손이었을까? 자전에세이에 머물렀다. 그래도 그의 인생 스토리를 읽으면서 사람은 평소 삶을 대하는 자세와 비전이 결국 그 사람을 결정하는구나 싶다. 그의 삶은 음악에 바쳐진 삶이었다. 그는 한마디로 고진감래와 와신상담으로 이루어진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가 팝스다이얼을 맡은 첫날 첫 번째로 튼 곡이 존 마일즈의 ‘Music’이란 곡이었다고 한다. ‘Music was my first love, and last love...’ 즉 음악은 내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라고 고백하는. 또한 마지막 방송 마지막 곡도 그 곡이었다고. 그의 아내 꽃님 씨가 알면 섭섭해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얼마나 음악을 사랑했는지 알 것 같다. 청취자로서 나는 그런 그의 마지막 방송을 끝까지 함께하지 못했다는 게 못내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는 자유인이었다. 그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슬퍼할 수는 있어도 좌절하지 않았다. 매번 어려운 순간을 걱정하고 주저하기보다 호기심과 탐구심으로 돌파했다. 주변에 늘 많은 친구와 이성을 몰고 다녔다. 읽으면서 얼핏 조르바가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마냥 자유만을 추구하진 않았다. 그는 그가 좋아하는 음악을 위해 자신을 벼릴 줄 아는 지조와 청렴을 지니기도 했다. 음악을 좋아하니 자유라는 이름하에 일탈을 꿈꿔 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잘 있으란 인사도 없이. 70을 앞에 두고. 조금 더 살아도 좋았을 나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됐다. 그의 연보를 보니 새삼 상복도 지지리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한줄 무슨 상을 받았다고 나와 있지 않다. 하나 못해 공로상도 없다. 우리나라 DJ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사람에게 이렇게 박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개척기와 황금기를 동시에 이끌던 이종환 씨도 세상을 떠났다. 이 시기 DJ와 팝칼럼니스트들이 어마어마하게 모았을 자료들이 어딘가에 잘 보관되어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이것도 알고 보면 우리나라 대중문화사에 중요한 자료가 될 텐데 말이다.

 

누구라도 이 두 사람에 대한 평전도 써 줬으면 한다. 이 책은 재밌다고 한 번 읽고마는 책이 아니었으면 한다. 알고 보면 나름의 김광한 자신의 대중문화에 대한 증언이 들어있고, 소중한 우리의 추억이 배어 있기도 하다. 너무 사랑스럽고 소중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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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7-19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김팝으로 쇼 비디오 자키로
뮤직 비디오 잠시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진짜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아쉽네요.

이젠 팝송 인기가 예전만 못하고 들을 만한
노래도 없어서 점점 잘 안 듣게 되더라구요.

stella.K 2018-07-19 18:49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저도 오래 전에 팝송이 시들해졌어요.
그게 제 개인적 성향만은 아니었군요.
듣는다면 올드팝으로 들었겠죠.
그렇게 우리가 팝송을 좋아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게
새삼 고맙더라구요.
그때 우리가 팝송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말할 수나 있었겠어요?
그저 추억은 아름다워입니다.ㅋ

2018-07-19 15: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7-19 18:54   좋아요 0 | URL
아, 제가 리뷰에 다 쓰지 못했는데,
우리 부모님 세대는 클리프 리차드였잖아요.
우리 땐 레이프 가렛이었지요.
그 인기가 엄청났어요.
이런 표현이 좀 그렇지만 그 이름만 들어도
오줌을 질질 싼다고 했죠.
그가 내한 공연을 가졌을 때가 광주 민주화 운동이 터지가
바로 며칠 전이라더군요. 공연 못할 뻔 했는데 말입니다.
그걸 이책에서 읽는데 아찔하더군요.
광한 아저씨는 광주 민주화 운동을 저렇게 기억하는구나.
그 시절 우리는 뭐했을까 싶어요.ㅠ

hnine 2018-07-19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디오 DJ로 전파를 탄것은 김광한보다 김기덕이 훨씬 먼저이긴 했지요.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으로써 저도 대부분 기억이 나는 사람들, 프로그램, 노래들인데, 저는 그저 조각조각의 기억으로 가지고 있는 것들을 이렇게 한 줄에 꿰어 쓰시는 것이 바로 stella 님의 내공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stella.K 2018-07-19 18:59   좋아요 0 | URL
제 리뷰를 다시 읽어보니까 좀 들쑥날쑥 하네요.ㅋ
그런 실험이 있다잖아요. 지금 7,80 어르신을 20대를 재현한
공간으로 그 시절 옷을 입고 이동하면
뇌가 그때를 인지하고 세포가 젊어진다는 얘기 말이어요.
저는 이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그때를 추억할 뿐만 아니라
젊어지는 느낌이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h님도 꼭 읽어보시기 바래요.
정말 좋았어요.^^
 
작가를 위한 집필 안내서 - 궁금하지만 물어볼 수 없었던 작가와 출판에 대한 이야기
정혜윤 지음 / SISO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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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운이 좋아서 책을 냈다. 책을 내려면 여기저기 출판사의 문을 두드려야 하는데 난 그런 과정 없이 출판사로부터 먼저 제안을 받았으니 얼마나 좋은가? 물론 난 아직 인생작을 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진정한 작가가 됐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책을 한번쯤 내봤고, 원고료를 받아 본 적이 있다는 점에서 작가라고 생각한다.

 

책을 내봤더니 나는 어떤 과정으로 내 글을 세상에 알리고 작가로 인정받기를 바라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적어도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 작가들 그들도 처음은 있을진대 어떤 과정을 통해 작가가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저 막연하게 글을 끼적이고 있다가 우연한 기회에 어떤 출판업자나 편집자의 눈에 띄어 작가가 되지 않았을까? 마치 어느 연예인이 길거리 캐스팅 당해 연예의 길로 들어섰다는 고백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 같이 책을 내기위해 무수히 많은 출판사로부터 거절을 당했다는 고백을 들었다. 앞서 말한 경우는 정말 드문 경우고, 난 그 드문 경우로 그 꿈을 이루긴 했지만 언제까지 꿈만 꿀 수는 없었다.

 

꿈은 빨리 깰수록 좋다. 뭐든지 첫 번이 어렵고, 시작이 반이라지만 내가 첫 번째 책을 수월하게 냈다고 요즘의 출판 시장 상황을 볼 때 두 번째, 세 번째 책도 수월하게 낼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나의 책을 내준 출판사에서 또 내 책을 내준다는 보장도 못한다. 그렇다고 성격이 좋아 아무 출판사나 턱턱 문을 두들겨보는 배포도 타고나지도 못했다. 그래서 읽기 시작한 책이 이 책이다. 담력 키우기용이라고나 할까?

 

물론 난 자계서를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다. 가끔 그런 책들이 있긴 하다. 글쓰기를 자기계발로 연결시키는 책. 그래서 마치 자기 이름으로 된 책을 내면 인생이 달라질 것처럼 말하는 책 말이다. 물론 그런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다. 하지만 난 그런 책들 믿지 않는다. 구라치는 게 환히 보이니까. 하루에도 몇 십 종의 신간들이 나왔다가 사라진다. 물론 책은 안 내는 것보다 내는 것이 좋긴 하지만, 이제 겨우 책 한 권 낸 걸 가지고 누가 알아봐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책 낸 기분을 한 달 넘게 유지했던 나는 (물론 그럴 만 했겠지만)어찌 보면 철딱서니가 없었다. 그래도 그런 나를 용서한다. 첫 책 아닌가, 첫 책.

 

작가는 글을 잘 쓰고 못 쓰고, 역작을 내고 안 내고 보다는 인지도와의 싸움인 것 같다. 꾸준히 성실하게 책을 낼 수 있는 힘 말이다. 그런 말을 들었다. 한 두 권의 책 가지고 알아봐 주길 기대하지 말라고. 적어도 다섯 권 이상은 내야 비로소 독자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하고, 그러는 중에 처녀작이나 초기작도 재조명 받는다고. 맞는 얘기 같다. 그러니 내가 이 책을 읽고 리뷰 한다는 명분이 있어 그렇지 이젠 어디가 첫 책 나왔다고 자랑도 못한다.

 

이 책에서도 그런 말을 하고 있는데, 책을 내려거든 반드시 기획안을 제출한다.

그건 당연하면서도 상당히 중요한 말 같다. 첫 책을 내기 전, 나는 막연히 글만 잘 쓰면 작가가 되는 줄 알았다. 그런 만큼 처음 출간 제안에 동의했을 때 난 제안서를 쓰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이게 꼭 필요하겠다는 걸 거의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건 또 오래 전, 시나리오를 공부할 때 과정 중에 피팅 실습이라는 게 있었다. 즉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어느 영화사를 찾아가 관계자들 앞에서 설명하고 세일즈 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한가한 사람들이 아니다. 짧고, 간결하며, 임팩트 있는 것을 좋아한다. 출판사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해 주었더니 꽤 흡족해 하는 눈치였다. 이걸 모르면 하나부터 상대 쪽에서 열까지 말해야 하고, 가르쳐 줘야한다. 꽤 성가신 일이 될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해서 배우는 것이긴 하지만.

 

작가가 실제로 책을 낸다고 하면 별로 내키지 않은 일을 할 때도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이를테면 개인주의적이고, 내성적이어서 자신을 드러내는 걸 잘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자계서 전문작가들이나 강의전문 작가는 안 그렇겠지만, 문학을 하는 작가들 중에 그런 은둔형 작가들이 있다. 내가 좀 그런 스타일이긴 하다. 내는 과정에서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내키지 않거나 긴장하게 만드는 순간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독자와의 만남이나 방송 출연이다. 예전 아날로그 시절엔 작가가 독자를 만나는 일이 그렇게 흔하진 않았던 것 같다. 작가는 오로지 글로 승부한다는 뭐 그런 가오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 그런 것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디지털 시대를 맞고, SNS가 활성화되면서 이젠 작가가 마케팅 전면에 나서는 시대가 됐다. 천성적으로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면 상관이 없겠는데, 일일이 쫓아다니고, 만나주고,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 것도 일이겠구나 싶다. 그것이 안 맞는 사람은 얼마나 쑥스럽고 버거운 일인가? 그러나 그것이 인지도를 쌓고, 매출에도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면 안 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내 책을 내준 출판사에 대한 예의는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도 시대에 따라 달라져야 하는 건 맞는 것 같다. 때로 나를 마케팅하고, 세일즈 할 줄 알아야 작가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그런 지적이 있지만, 책을 내려면 필히 편집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예전에 그런 말을 듣긴 했다. 편집을 하려고 하면 전투적으로 쌍심지 켜는 작가가 있다고. 요즘도 그런 작가가 있는가 보다. 사실 이 말은 양쪽 말을 들어봐야 하는 것 같은데, 내가 아는 작가는 편집자들 중엔 더러 까칠한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런 걸 볼 때 작가와 편집자 사이에 묘한 이상 기류가 존재한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작가가 언제까지나 그럴 수는 없다. 그렇게 자존심만 앞세우고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으면 어떤 출판사도 책을 내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책을 인쇄만 해서 소장만하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독자와 함께 공유하고 소통을 해야 할 텐데 말이다.

 

난 첫 책이라 뭘 몰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편집자의 편집권을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상대도 내 글의 성향을 잘 알고 있는 만큼 최대한 그것을 살리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내 책은 오타나 어색한 문장 외에는 크게 고친 것이 없었다. 책이라는 것도 협업이고, 인간이하는 일인 만큼 불필요한 기싸움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내 책이 누군가에 의해 조금이라도 더 좋아져 독자들이 편하게 볼 수만 있다면 좋은 거 아닌가? 물론 이것만큼은 작가로서 포기할 수 없는 게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건 최대한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자세가 돼야할 것이다. 사람들과 두루 잘 사귀어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한다. 일단 원고는 작가의 품을 떠나면 더 이상 작가의 것이 아니라고 한다. 또 모르겠다. 더 나이 들어 책을 낼 기회가 있으면 노욕이 들어 못된 마귀 할멈 역을 자처할지. 그러기 전에 미리 미리 수양이 필요할 것 같다.

 

사실 거절에 익숙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내가 가장 두려운 것도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이 책은 편안한 답을 준다. 그럴 경우 자신의 원고가 무엇이 문제인지 겸손히 조언을 구하고, 문제점을 보완해 후에 또 두드려 보라는 것이다. 그런데 작가들 중엔 지나치게 소심하거나 그 반대로 자나치게 자존심이 세서 그렇게 해 볼 엄두를 못 내기도 하는데 그래봐야 자기 손해다. 또한 출판사마다 전문 분야가 있는데 자신의 원고가 어떤지에 따라 서점에 가서 50개 정도의 출판사 이메일 리스트를 만들어서 그렇게 출간 기획서와 함께 원고의 일부를 보내보라고 한다. 상당히 실제적인 조언이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라는 말은 맞는 말 같다.

 

앞서도 말했지만 요즘은 작가도 어느 정도 마케팅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출판사에선 그런 것도 본단다. 그 작가가 SNS 활동을 하고 있는지, 팔로워들과 어느 정도 소통을 하고 있는지 등등. 작가의 입장에선 좀 뜨악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출판사도 작가에 대해 모든 것을 다 해 주지 않겠다는 심산으로도 읽히고, 손해 보지 않겠다는 뜻으로도 읽히기도 한다.

 

돌이켜 보면, 나는 내 책이 출판된 이후 얼마나 애지중지 돌봤는가를 생각하면 할 말이 없다. 보통 작가가 책을 쓰는 과정을 애를 낳는 과정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출판사는 산부인과 병원이고, 편집자는 조산사쯤 될 것이다. 그들은 어느 일정 부분만 도와줄 수 있다. 그것을 돌봐야 하는 사람은 결국 작간데, 작가 역시 낳기만 하고 나 몰라라 하면 내 책은 버림받은 아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게다가 보통은 자식 자랑하면 팔불출이라고, 자기가 자기 책 자랑하면 꽤 쑥스러워 한다. 그게 유교적 사고방식이 있어서인지는 모르겠다. 별로 바람직 한 것 같지는 않다.

 

나 역시도 블로그 활동 중에 출간 제의를 받았고, 책을 냈다. 사실 유명 작가일수록 또 그것에 가까울수록 블로그 활동을 등한시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것 역시 바람직한 것 같지는 않다. 어떤 블로거는 자기 글은 올리면서 댓글 창을 막아놓기도 하는데 SNS는 소통이다. 그런 블로거를 이해 못하는 건 아니고, 실제로 블로그 활동을 하다보면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보단 유익한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그런 폐쇄적인 블로그를 보면 나 또한 마음이 가지 않아 아무리 좋은 글을 봐도 지나치거나 좋아요 누르기가 싫어진다. 나도 이럴 진데 출판사야 얼마나 꼼꼼히 따지겠는가?

 

출판 시장은 내가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이래 단 한 번도 호황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세계 10위안에 드는 출판 대국이라고 한다. 이 책도 출판 시장에 대해 우려하는 말을 하긴 한다. 그렇게 출판 대국이어서 읽을 게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풍성해졌는데도 책은 여전히 읽는 사람만 읽는다고. 하지만 저자는 이런 형상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다 하기 나름이란 뜻이겠지.

 

사실 이제까지 작가는 출판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든 신선처럼 뒷짐 지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집필의 기술이 아니라 집필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쓴 책이다. 그래서일까? 이제까지의 작가의 자세 대해 반성을 촉구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 같은 출판인의 마음이 되어보라고 하는 것 같다.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참고해서 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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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7-06 2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인이 책을 내기 위해 준비한 적이 있어요. 그 분은 페이스북에 글을 남겼는데, 잘 썼어요. 그 분이 출판하려는 책이 자서전 형식의 에세이였어요. 그 분이랑 연락 안 하고 지낸 지 오래됐어요. 책이 나왔는지 모르겠어요.. ^^;;

아무리 글을 잘 쓰더라도 댓글 기능을 막은 블로거, 자신의 글 내용에 대한 이견에 반응하지 않는 블로거의 글은 보고 싶지 않아요. 《리뷰 쓰는 법》에 이런 내용이 있어요. 이견이나 비판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으면서 글을 쓰고 싶다면 공개하지 말라고요. 그렇지만 비판을 피하는 사람들은 자기 글을 공개하려고 해요. 상대방이 비판을 하든 말든 자기가 쓰고 싶은 글을 쓰겠다는 태도예요. 그러면 저는 ‘친구‘ 해제하고, 그 사람이 쓴 글 안 봐요.

stella.K 2018-07-08 14:38   좋아요 0 | URL
그렇구나. 책 내기가 쉽지가 않아.
사람들이 워낙 글을 읽지 않으니.
작가의 글이 아무리 좋아도 출판사가 안는 리스크가
없다고 볼 수 없지.
나야 출판사 사장하고 그전부터 친분이 있고
내 글을 좋게 봐줘서 그저 감사할 뿐이고...ㅠ

책에도 출판을 어떻게 할 거냐가 나와 있어.
출판사가 전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고,
자비출판도 있고. 이 둘을 절충하는 방법도 있더군.
우리나란 아직 자비출판에 대한 인식이 별로 좋은 것 같지는 않아.
그저 친지끼리 나눠 볼 마음이라면 모를까
오죽하면 자비 출판이냐란 생각이 있는 것 같아.
그렇다면 첫번째나 세번째가 유력하겠지.

그런 사람이 좀 안타깝긴 한데 그 사람은 또 어딘가에선
소통하고 살겠지 그래.
보통 하나 이상 블로깅하잖아.
난 주로 여기서 활동하지만 몇군데 더 있긴 하거든.ㅋ

2018-07-07 08: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7-08 14:44   좋아요 0 | URL
아, 맞아요. 저도 알라디너들의 덕을 많이 봤죠.
지금도 생각하면 늘 고마운 마음이 있어요.

그런데 전 생각하시는 게 있으시면 계속 책을 내셨으면 좋겠어요.
앞으론 사진책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뀔거라고 봐요.
그렇지 않아도 그렇게 하시잖아요.
책 사진책 기대됩니다. 꼭 내주세요.^^

syo 2018-07-07 1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미 작가‘님이 이런 책을 읽으시면 그건 일종의 반칙인가요, 반칙이 아닌가요.....

stella.K 2018-07-08 14:47   좋아요 0 | URL
스요님도 책 한 권 내시죠.
자질이 충분한데!ㅋㅋ

공부는 잘 하고 계시죠?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겠어요. 횟팅입니다!^^

syo 2018-07-08 20:58   좋아요 1 | URL
아이쿠 별 말씀을요 ㅎㅎㅎㅎ
공부는 한다고 하고 있으나 해도해도 불안하네요 ㅎ 스텔라님 응원 기운 받아서 열심히 해볼게요

2018-07-08 1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08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ckrain 2019-09-21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님답게 글을 참 잘 쓰신 것 같아요.
사소한 건데, ‘출판사로부터 먼저 제안을 받았으니 얼마나 좋은가‘라는 부분은 말이죠. ‘출판사에게 먼저 제안을 받았으니~~‘로 쓰시는 게 맞습니다.

stella.K 2019-09-26 15:52   좋아요 0 | URL
아유, 뭘요. 벌써 오래된 이야기인 걸요.ㅠ
고맙습니다.^^
 
버자이너
나오미 울프 지음, 최가영 옮김 / 사일런스북 / 2018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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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모르는 사람은 이젠 페미니즘이 하다 하다 버자이너 가지고 울거 먹느냐고 할지 모르겠다. 외설스럽다고, 창피하지도 않냐고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건 정말 멋모르고 하는 말이다. 여성 문제의 근원적인 문제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거 아닌가?

 

저자는 먼저 자신의 문제에서부터 이 문제를 접근하기 시작했다. 전엔 잠자리에서 오르가슴을 느끼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언제부턴가 뭔가 모를 이상 증세를 느끼기 시작했고, 자신의 주치의를 찾아가 이 문제를 상담하고 그 방면의 권위 있는 의사를 소개 받아 치유를 받으면서 전에 알지 못했던 버자이너가 뇌와 서로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해냈다. 그리고 그것은 창의력, 자신감 심지어 성격까지 형성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나아가 저자는 버자이너를 말초적 감각이 아니라 제2의 중추라고까지 주장한다. 또한 버자이너를 우린 간단하게 구멍으로까지 부르기도 하는데 그보단 여신의 형상을 한 구멍이라고 불러 달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린 이 여신의 형상을 한 구멍을 어떻게 대해 왔을까? 굳이 이 책을 리뷰한답시고 여기에 구구하게 설명하는 것도 새삼스럽다. 그런데 한 가지 집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건 역시 강간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것은 이 여신의 형상을 한 구멍에 직접 위해를 가하는 것이기도 하니까. 과연 강간과 버자이너를 따로 떼어놓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린 보통 강간이라고 하면 단순히 어느 사이코가 겁탈하는 정도로 알고 있는데, 책은 거기서 더 나아가 끔찍하고 잔인한 표현을 하고 있다. 그 부분을 읽고 있노라면 짐승 수컷이 자신의 오줌 가지고 여기 저기 묻히며 영역 표시를 하다더니, 강간범은 여자의 몸 그것도 버자이너를 난자하므로 자신의 존재를 문신처럼 남기는 걸까? 그런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다.

 

더 놀라운 건, 그렇게 강간을 당한 여성들은 불구의 몸이 된다는 것이다. 길을 걷다가 넘어지는 일이 많으며, 멈추는 일을 잘하지 못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누가 비로소 멈추라고 해야 멈춘다는 것이다. 나는 이 새로운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 부분을 읽자 오래 전 본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어느 건달 세 명에 술집 여자를 기어이 쫓아가 어느 후미진 곳에서 차례로 윤간하는 장면이었다. 당연히 그 영화의 감독은 남성이었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에피소드의 한 장면이긴 했지만 보기에 불편했던 것도 사실이다. 감독이 어떤 의도로 그 장면이 필요했다고 판단했는지 모르겠지만, 전후 문맥을 따져 볼 때 건달은 이렇게 개 같이 논다? 뭐 그런 리얼리티, 표현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삽입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건 여자의 대사다. 여자는 쫓겨봐야 별 수 없으니 결국 결심한 듯 돌아서서, “좋아. 한 사람씩...”하며 체념해 버린다.

 

영화의 한 장면이라고는 하지만 강간에 윤간이 없을 리 없고, 아무리 천한 여자고 자신을 체념했다고는 하지만 그녀 역시 강간의 흔적이 없을 거라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내 기억으론 이민용 감독의 <개 같은 날의 오후>이었던 것도 같은데 정확하진 않다.) 물론 이건 영화의 한 장면이고, 지금의 페미니즘과 미투 운동이 들끓기 전에 나온 오래된 영화라 관대할 필요가 있다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문제적 장면은 그 영화만이 아니다. 난 과연 이것을 언제까지 표현의 자유로만 볼 것인지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한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어쨌든 이런 걸 볼 때 저자는 중요한 문제를 지적한 건 사실이지만 때문에 그것이 오히려 편견을 갖게 하는 건 아닌지 걱정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내 주위에도 드물게 유난히 길가다 잘 넘어지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다면 그도 강간 피해자로 의심해야 하는 것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이 같은 지적은 중요하게 생각해 볼만 하다.무엇보다 강간을 당한 여성은 아무리 치료를 해도 강간 이전의 상태로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저자는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사실 버자이너는 한때 신성시 여겨졌던 때도 있긴 하지만 많은 부분 상처 받고 속박당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에 대한 대표적 예가 우리가 잘 아는 중세 십자군 원정 때 여자들의 정조대일 것이다. 여자들은 원정 떠난 남자들이 돌아올 때까지 정조대에 꼼짝없이 매어 있어야 했다. 마음대로 풀 수도 없고, 청결을 유지할 수 없으니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나마 남자들이 돌아오면 행운이다. 거기서 죽은 사람의 아내들은 그 정조대를 평생 풀지 못하는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그밖에도 상처받고 수난 당한 예는 수 없이 많다.

 

무엇보다 오늘 날은 여성들이 상처받은 버자이너에서 항문열상으로 옮겨가고 있는 추세다. 항문열상이란 새로운 정조관념, 즉 기독교를 중심으로 결혼할 때까지 순결을 지키겠다는 서약과 처녀성을 지키고 싶다는 열망과 맞물려 항문성교를 한다는 것이다. 또 그렇지 항문성교는 대부분의 남성들 선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여성의 항문이 찢어지기도 하는데 그것을 항문열상이라고 한다.

 

앞서도 영화 얘기를 했지만, 포르노의 폐해는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양산되고 있는 포르노 산업과 그로인한 폐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난감하다. 책은 흥미롭게도 빅토리아 시대에 문학에 나타난 에로티시즘에 관해 다루도 하는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채털리 부인의 연인>으로 유명한 D.H 로렌스를 얼른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소설을 사춘기 시절 읽었는데 물론 그 특유의 찌릿한 감흥도 있긴 하지만, 다 읽고 나면 참 아름답더란 생각을 하게도 된다.

 

그렇다면 에로스와 포르노의 차이는 뭘까? 안타깝게도, 알 것 같지만 실상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여자는 전희를 해야 비로소 버자이너 즉 여신의 형상을 한 구멍이 열린다. 그러나 많은 경우 성교는 여성 보단 남성이 유리하도록 맞춰졌다. 그래서 여성은 이런 전희를 과정 없이 바로 이루어진다. 남자들이 이런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지해야 하는데 오랜 세월 남자 산부인과 의사들이 여성의 버자이너에 끊임없이 오해하도록 조장되어져 왔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기도 하다.

 

이 책은 동양의 도가사상과 특별히 인도의 탄트라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서양은 이미 포르노에 점령당해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 그러나 저자는 이 삐뚤어지고 잘못된 성의식에 이 두 가지가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말하기도 하다. 이것의 유익이 얼마만한 것인지 여러 페이지에 걸쳐 할애하고 있다. 또한 버자이너의 진정한 해방을 위한 12가지 원리를 책의 마지막 부분에 싣기도 했는데 참고해 볼만하다.

 

이 책은 무려 500 페이지 정도 되는 두꺼운 책인데 저자는 버자이너에 대해 이만한 책 두 권을 합쳐도 못 다 할 이야기가 많다고 했다. 이는 이것에 대해 할 말이 많은 것이기도 하겠지만, 바꿔 말하면 그만큼 이 부분은 꾹꾹 감춰져 있고 억압되어 있었다는 말도 될 것이다.

 

엊그제도 우리나라 문화예술에 종사하는 여성의 상당수가 남성의 성범죄에 피해를 당해 본적이 있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그중 또 적지 않은 수가 말을 하지 않거나 그냥 넘어갔다고 한다. 어찌 보면 여성은 피해를 보면서 그 죄를 방조한 셈이기도 한데, 그것에 관해서는 더 이상 뭐라고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남자들은 기본적으로 여자 보다 힘이 세고, 세상의 모든 프레임은 남성에 유리하도록 태곳적부터 맞춰져 있다. 거기서 여성이 해 볼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여성조차도 그것이 잘못된 것이란 인식 없이 살아 온 세월이 얼마인가? 거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버자이너임을 저자는 당당히 고발하고 있다.

 

조금 아쉬운 것이 있다면 저자가 도교와 탄트라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그것의 관해서는 한없는 관심을 보이면서, 남성들의 잘못된 성의식의 변화를 촉구하고, 왜 상대와의 조화가 중요한지에 관해서는 다소 설명이 미약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뭐 그런 거야 다른 책에서 보충할 수도 있고, 이 책이 의미하는 바와 성과는 결코 작지 않다고 보인다. 여성 보다는 남성이 더 많이 읽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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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6-21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성에게 변화를 촉구하는 건 옛날 방식이에요. 20세기 초 온건 페미니스트들이 이런 방식으로 여성 운동을 했어요. 이게 안 먹히니까 거리에 나가고, 목소리 높이는 페미니스트들이 활동하기 시작했어요. ^^

stella.K 2018-06-22 09:43   좋아요 0 | URL
그랬겠지. 그런 점에서 페미니즘은 더 시끄럽게
떠들 필요가 있어.
사람의 인식이 쉽게 바뀌는 것 같아도 그렇지 않거든.
물론 그만큼 반페미니즘도 들끊겠지.
그럴지라도...ㅋ

페크pek0501 2018-06-23 1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단이, 지적이 좋네요.
꼭 읽어야 할 사람이 사실은 읽지 않고 있는 게 안타까워요.
미투 운동도 그렇고 세상을 바꾸는 사건들은 일어나는데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게 문제예요. 인간을 변화시키는 속도는 느린지라... 그래서 공부가 필요하지요.

참, 언제부터 말하고 싶었는데요,
서재 이미지가 보기 좋네요. 파란색이 시원해 보이고 예쁩니다. 바다인가요?

stella.K 2018-06-23 19:00   좋아요 0 | URL
ㅎㅎ 저 이미지 예전에 한 번 썼어요.
그런데 다시 봐도 좋긴하죠?
여름 한철 계속 써야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