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살다 - 이생진 구순 특별 서문집
이생진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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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나는 유독 시를 홀대했다. 사춘기 때 문학소녀가 아닌 사람이 없고, 문학소년이 아닌 사람이 없다고 그 감수성 예민한 시절에 시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사춘기가 영원하지 않듯 시도 사춘기가 떠날 때 같이 떠나보냈던 것 같다.

 

게다가 알만한 소설가들도 그 시작은 시였다가 소설로 전향했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역시 시는 인생에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인가 보다고 멋대로 생각하기도 했다. 어느 시인이 그런 시구도 읊지 않았던가, 시 한 편이 300원이라고. 하찮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엔 시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다시 생기는 것도 같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시인들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최근 내가 시인에 관한 책을 읽은 것만 해도 몇 권은 된다. 이 책도 어떤 면에선 시인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구순이 넘었는데 평생 시를 써 왔고 그때마다 썼던 서문을 모은 책이다. 얼마나 열심히 시를 썼으면 서문만을 모아 책을 냈을까?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면서 나의 저 시에 대한 하찮다는 생각이 부끄러웠다.

 

시인은 시집만 38, 산문과 편저가 5, 공저를 5권 냈다. 그는 최근에도 시집을 냈다. 시인도 이렇게 자신이 써온 서문만으로 책을 내게 될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인이라 그럴까? 아니면 살아 온 연륜 때문일까? 서문들인데도 아폴리즘 같으면서도 상당히 서정적이다. 글이 너무 좋아선지 아니면 시인의 구순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던 것인지 어느 순간 계속 밑줄을 긋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누구는 워낙에 많은 서문을 써 온 터라 한 권의 자서전을 보는 것 같다고도 했던 것 같은데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그 보단 왠지 시인은 어떻게 시를 쓰는가에 대해 여기저기에 조금씩 흘려 놓은 것도 같다.

 

시인은 먼저 첫 시집 <산토끼> 서문에서, 진정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것은 사람이지 시는 아니라고 했다. 사람 때문에 시를 희생할 수는 있어도 시 때문에 사람을 희생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없고 시만 있는 고독은 시와 함께 그 고독도 싫고, 그 고독도 시도 사람이 있는 고독이고 사람이 있는 시여야만 한다며 철학을 밝힌다. 과연 그렇다 싶다. 그 글이 아무리 명문이라 한들 사람 보다 앞서지 않는다. 읽어 줄 사람 있고 글이 있는 거지 글 있고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한 글이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는 것을 볼 때 저자의 말은 새겨 둘만 하다.

 

<자기>라는 일곱 번째 시집 후기에선 이렇게 썼다. 살수록 허해지는 시간에 나의 시를 쓰며 남의 시를 게을리 하지 않고 읽는 일은 시에게서 버림받지 않으려는 일이다. 시에게서 버림받는 일 그 보다 더 큰 일이 어디 있겠니. 나에게서 시를 빼앗는 일 그 보다 더 큰 재앙이 어디 있겠니.

시야, 너는 참 고맙다. 너는 하늘이 만들어준 내 인생의 날개다. 너는 내 어머니가 만들어준 영원한 양식(37p)이라고 했다. 부지런히 쓰기 위해선 부지런히 읽어야 하는 것은 시도 예외는 아니다.

 

문득 이 구절을 읽는데 마음이 싸해지더라. 나는 내가 시를 버린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시가 나를 버린 거다. 지금이라도 끊임없이 찬미해 주고 사랑해 주면 시도 나를 사랑해 줄까? 하지만 그것이 어디 시만이랴. 자신이 좋아하고 아끼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것에 대하여 내 인생의 날개며, 영원한 양식이라며 찬사를 보내줘야 한다. 그래야 내 인생도 나를 버리지 않는다.

 

시인은 사랑꾼이다.

시인은 평생을 두고 사랑에 열중하며, 시에 있어서 사랑은 너무나도 크고 아름답고 했다(시인의 열한 번째 시집 시인의 사랑서문에서). 그러면서 <일요일에 아름다운 여자> 후기에선, 시인은 편한 길만 갈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싫어하는 길도 다녀 봐야 시에 탄력이 생긴다고 했다. 시는 재사(才思)의 기술로서가 아니라 숙명적으로 떠돌며 얻어지는 마음의 도록(圖錄)이라고 했다.

 

또한 시인은 자연과 하나 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지금 사람이지만

악착같이 시를 써서

곤충이 될 거다

풀밭에서 찌르르 우는

곤충이 될 거다

                                         -‘곤충기에서

...... 나를 확대하다 보면 어디서나 나밖에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이 세상엔 내가 없다는 경지까지 축소해보자. 그때 꿈틀거리는 한 마리의 곤충은 정말 희귀한 생존인 것이다(<개미와 베짱이>후기 61p).

 

유서를 쓰듯 쓴 시. 며칠을 살자고 울다가 떠난 매미처럼 벗어놓은 껍질이 이 시집이다. 그 껍질을 들고 매미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도 이 시집에 포함된 한 편의 시(하늘에 있는 섬 서문)라고 했다. 시란 이렇게 하찮은 것에 마음을 두고, 끊임없이 무위자연해지지 않으면 써 질 수 없다.

 

그렇다면 시인의 마음은 어때야 할까?

도시의 높은 빌딩에서 악수를 하고 나오는 젊은 비즈니스맨도 알고 보면 불청객이고 외딴섬 풀밭에 앉아 땀을 씻는 불청객이다. ......집에서 쫓겨난 사람처럼 낯설다. 그런 낮으로 호박꽃을 본다. “호박꽃도 꽃이냐얼마나 섭섭한 말인가. 그래도 오늘 아침 호박꽃은 명랑하다. 외로운 데서 얻은 아름다움. 나는 그것으로 시를 썼다. 시집<섬마다 그리움이> 후기에 나오는 말이다.

... 남들은 모른다. 시심을 먹고사는 시인의 마음을 모른다. 조금은 가난하게 조금은 외롭게 조금은 춥게 살아야 시심이 생기는 시인의 마음을 모른다(‘거문도후기)고 했다. 이 외로움이 아니면 하찮아 그냥 지나쳐 버릴 것도 다시보고 새롭게 보려고 하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시심에 다가설 수 없을 것이다. 또한 편안함을 추구해서는 시를 쓸 수가 없다.

 

그렇다면 시인에게 시는 어떤 의미인가?

서른여섯 번째 시집 <섬 사람들>에서, 정월 초하루 00, 보신각종이 울리는 순간 어린 학생처럼 일기장을 꺼내 무엇인가 쓰고 싶다. 앞으로 365, 이 많은 시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시를 쓰겠다는 다짐. ...... 시 때문에 내가 살아나는 것이다. 시는 생존의 기록, 나를 만나게 하는 기록, 그것이 시를 쓰는 재미라고 썼다. 그러면서 고맙다고 했다. 삶의 질곡까지 기쁨으로 맞아들이는 시가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시인은 평생 시와 함께 살아보고 이런 말을 남긴다.

나이 90이 되니 알 것 같다

살아서 행복하다는 것과

살아서 고맙다는 것을

그리고 보니 이제 철이 드나보다

이런 결말에 결론 비슷한 말을 할 수 있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왔을까

 

거기엔 조건이 있다

첫째 건강해야 한다는 것과

둘째 90이 되어도 제 밥그릇은 제 손으로 챙겨야 한다는 것과

셋째 밥 먹듯이 시를 써가며 살아야 한다는 것과

그리고 제정신으로 걸어가야 한다는 것

......

그 사람이 시를 쓰며 어떻게 살았는지는 그 길로 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참고가 되리라 믿지만 그렇게 살라는 강요는 아니다 시인은 언제나 부족한 자리에서 만족해왔으니까(‘무연고서문에서)

나는 애초에 이 책을 읽으며 시인은 어떻게 시를 쓰는가를 알고 싶었다. 그런데 과연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이겠구나 싶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외로움과 고독을 발견했고 그것을 천명으로 받아들이며 시를 썼겠구나 싶다. 그리고 저 문장을 만났을 때 뭔가 쓸쓸하지만 꽉 차 있고, 꽉 차 있지만 쓸쓸했다. 과연 뭔가에 뜻을 품은 사람은 저래야겠구나 싶다.

 

스물다섯이 되면 어떻게 사나 싶은 때가 있었다. 그때가 되면 내가 너무 나이 들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던 중 알고 지내던 한 지인이 자신은 빨리 늙고 싶다고 해서 놀란 적이 있다. 그는 나 보다 3살 위였을 뿐이다. 생각해 봤더니 그때 내가 정말 나이 들어서가 아니라 나이든 인생을 살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지금은 스물다섯 그 나이 보다 훨씬 많은 인생을 살고 있다. 아이러니 한 건, 젊었을 때는 중년을 감히 가늠하지 못했다. 젊음이 영원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나이든 나를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덧 중년이 되고 보니 노년이 멀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시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이상적인 노년의 삶을 보는 것도 같다. 노년은 인생의 저주가 아니다. 노년을 감사하게 살면 그건 오히려 선물이다. 시를 사랑해야지, 시인처럼 살아야지 싶다. 고독을 응시하며 순간순간 치밀어 오를지도 모르는 노욕을 지그시 누르며 시인처럼 늙어야지 한다 

 

덧붙이자면, 시인이 처음 시집을 내기 시작한 건 1955년부터다. 그렇게 많은 책을 냈어도 우리가 시인의 책을 접할 수 있는 건 반도 채되지 않는다. 이 기회에 절판된 책들이 다시 나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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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12-14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작의 수를 보니 대단한 분이시군요.

˝나이 90이 되니 알 것 같다
살아서 행복하다는 것과
살아서 고맙다는 것을˝ - 저는 몸 건강하고 돈 걱정 없고 즐길 수 있는 취미가 있다면 행복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저는 90까지는 안 됐지만 연로한 친정어머니를 보며 살아서 그런지 아직 몸 쌩쌩한 게 감사히 생각되더라고요. 산책하면서도 느낍니다. 이렇게 자유롭게 걸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제가 너무 늙은 생각을 하고 사는 것 같습니당~~ㅋ

stella.K 2018-12-15 14:42   좋아요 0 | URL
언니는 늘 긍정 갑이시잖아요.ㅎㅎ
저도 언니와 같은 생각을 해요.
바라는 게 있다면 지금 보다 조금 더 열심히 글을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2018-12-14 2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15 14: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후애(厚愛) 2018-12-15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주말 되시고 감기 조심하세요.^^

stella.K 2018-12-15 14:48   좋아요 0 | URL
아, 고맙습니다.
님도 행복한 주말되시길...^^

청계 2018-12-22 17: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대로입니다. 산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인생이 무엇인지?
 

 이 책이 발매되기 전 티저북을 읽었다. 가끔 출판사에선 홍보용으로 티저북을 만들어 배포하는 것으로 안다. 그것이 그 책의 매출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책을 사 보기 전에 맛보기용으로는 꽤 괜찮은 방법 같다.

 

일단 표지가 마음에 든다. 얼핏 보면 미국이나 영국스럽긴 하다만 앨리스 먼로는  캐나다 작가다. 미국이나 캐나다나 먼나라 이웃나라로선 그게 그것 아닌가?ㅋ

 

단편 모음집이고 표제작이 그러한지라 받은 티저북도 동일한 제목의 작품인 줄 알았더니 수록된 작품중 '자식들은 안 보내'이다.

 

 

나는 이 작품을 두 번 읽었다. 잘쓴 작품이긴 한데 단편이라고 만만히 볼 수 있는 작품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이 작품으로 앨리스 먼로의 작품을 처음 접해 보는 것 같다.(노벨 문학상 작품은 그다지 선호하는 편이 아니라) 그런데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앨리스 먼로는 문체가 좋다기 보단 묘사가 좋은 작가는 아닐까 싶다. 

 

문체가 좋았다면 기억하고 싶고, 밑줄치고 싶은 문장이 있었을텐데 딱히 그런 건 발견하지 못했다. 물론 그렇다고 아주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해를 돕고자 친 문장이 간혹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역시 작가가 대가스럽긴 하다. 단편이라고는 하지만 풍경 묘사나 상황, 심리 묘사가 탁월하다. 단편이라고는 하지만 뭔가 꽉찬 느낌이고, 한 편의 잔잔한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든다.

 

내용도 흔히 겪을 수 있는 결혼한 사람들의 부조리한 면들을 그럴싸하게 다뤘다. 송곳같이 날카롭고 비판적으로 다룰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노작가의 노련한 글 솜씨는 이렇다할 갈등이나 사건없이 어느새 주인공 폴린을 이혼녀로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이 이혼녀라는 것도 상대적 개념 아닌가? 돌싱 또는 독신녀라고 표현해야 적절한 표현은 아닐까 싶다. 

 

그도 그럴 것이, 폴린은 결혼 생활을 하다 다른 사람과 눈이 맞아 잠시 동거를 했지만 맨끝에 보면 그와도 헤어진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혼한 전 남편은 폴린에게 얘들이 아니라 자식들은 안 보낸다고 단호히 말한다. 즉 아이들은 전 아내 폴린에게 보내지 않겠다는 거다. 폴린은 이것에 대해 판자로 세게 얻어 맞은 것 같다고 했다. 자신이 이혼했다는 것을 가장 뼈져리게 느끼는 게 바로 이 지점은 아닐까 싶다.

 

그런 것으로 볼 때 작가가 보수적인 경향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생각보다 서양 사람들이 보수적인 면이 있어서인지, 이거야 말로 조금은 놀라운 표현은 아닌가 싶다. 이혼한 사람이라면 자녀 양육을 누가 맡던지간에 자식을 맡지 않은 전 배우자에게 일정 기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건 당연한 거고, 그것에 쿨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혼이 하도 잦은 사회라 이혼하고도 전 배우자와 친구처럼 잘 지낸다는 말도 들었는데 역시 사람 마음은 동서양이 똑같은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냥 친구처럼 잘 지내려고 할 뿐 한때 같이 산 세월을 무시할 수 없는가 보다.

 

오히려 쿨한 쪽은 폴린의 두 아이다. 옛날 같으면 자신들을 포기한 엄마에 대해 분노를 가질 법도 한데 엄마는 그저 엄마의 인생을 선택했을 뿐이라며 담담하게 받아 들이고 있지 않는가? 물론 거기엔 어떠한 비난도 없지만 대신 사랑이나 끈끈한 유대 관계는 없다. 그게 아쉬운 요소긴 한데 그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어떠한 선택에 결과고 감수해야할 부분이지. 

 

이혼한 가정의 쿨한 풍경은 바로 이런 것일게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아니라, 받아 들일 건 받아들이고, 봉합할 건 봉합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양 일상을 살아가는 것. 그래도 작가가 보수적이건, 서양 사회가 의외로 보수적인데가 있건 간에 이왕 보수적인 관점에서 소설을 썼다면 그래도 이혼만큼은 하지 않는 것으로 쓸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도 없진 않다. 이혼해서 홀로 남겨진 삶도 별로 행복해 보이진 않으니까. 물론 행복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더 이상의 불행을 막기위해 이혼을 선택하는 것이겠지만. 결혼 생활을 하다 잠시 외도할 수 있는 건 이해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 책임이 남자쪽에 있던, 여자쪽에 있던 말이다. 왜 남자는 외도를 해도 되고, 여자는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거기에 딜레마가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받아 들이는 차이 때문에 여자가 외도를 하면 아예 이혼으로 가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무튼 작가의 글은 섬세하다. 그래서 처음 읽었을 땐 다소 지루한 측면이 없지 않아 보이는데 다시 읽게되면 정말 많은 것들은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다. 언제고 작가의 책을 본격적으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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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5 15: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05 15: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인, 조폭 - 시인은 왜 조폭이 되었나?
김율도 지음 / 율도국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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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오랫동안 읽어 온 사람으로서 책을 보는 안목이 나름 높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기준이고,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날이 있다고 항상 적중하는 건 아니다내가 책을 선택하는 기준 중 하나는 책의 장정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독자의 입장에서 이것이 그 책의 선택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쯤 모르는 출판사가 있을까그런데도 이것에 위배되는 조악한 책들이 나온다. 그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렇더라도 가끔은 나의 이런 기준을 빗나가 주는 책이 있기를 은연중 바래왔던 것도 사실이다. 왜 그런지는 나도 알 수가 없다. 나라고 항상 내 생각이 옳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열 중 한 둘은 틀려줘야 겸손할 수도 있고, 또 그런 책이 정말로 있어 준다면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 책의 기를 좀 살려주고, “이 책 보기엔 이래봬도 내용은 정말 좋은 책이라고 대신 외쳐주는 의기를 부려보고 싶었다이 책이 그런 책이길 나는 바라며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인터넷상에서 처음 봤을 때 나는 판단을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저런 책이 실제로 보면 의외로 만듦새가 좋을 수 있고, 설혹 만듦새가 후져도 내용까지 나쁠 거라고 속단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나도 모르게 이 책에 후한 점수부터 주었던 것이다. 그것은 이 책에 대한 소개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어느 시인의 뜨거웠던 삶에 관한 자서전 내지는 고백록 같은 거였기 때문이다.

 

사춘기 이후로 시를 좋아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시인의 자서전 아닌가? 난 본래 그런 책을 좋아했기 때문에 일단은 읽어 보자 했다. 제목도 다소 엉뚱하지만 이 둘을 함께 놓은 저자의 뜻을 알고 싶기도 했고, (난 그런 장르의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우리가 갱스터 무비를 보는 건 갱스터가 갱스터이기만 하면 재미없을 것이다의외의 모습이나 그들의 똥폼 잡는 모습이 멋있어 보이는 거 아니겠는가? 그런 것처럼 조폭이 시인이라면 그것도 멋있어 보이긴 한다. 물론 이 책의 경우 조폭이 먼저가 아니라 시인이 먼저지만

 

저자도 서문에 그렇게 썼지만, 시인과 조폭의 공통점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솔직히 난 이 책에 매료되기도 했는데, 시를 처음 접한 이후 시를 너무 좋아했다는 것이다. 아니 좋아한 정도가 아니라 시를 신앙했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마치 시가 자신과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는 믿음이 확고해 보인다. 그야말로 시 하나를 위해 모든 것을 전폐했다시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어떻게 사는가에 대해 그다지 궁금해 하지 않았던 내가 시인은 정말 이렇게 살까?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가진 의문이기도 했다. 저자는 좋아하는 시가 있으면 모조리 외우고, 뭔가에 빙의되듯 떠오르는 시구를 받아 적는다. , 시인은 정녕 이렇게 해서 되는 걸까? 살짝 부럽기도 했다.  

 

조폭이 됐던 것도 처음부터 원했던 것은 아니다. 지면상 그냥 운명이라고 해 두자. 내가 볼 때 시인과 조폭이 같다기 보단 그는 자신이 선택한 것에 있어서 결코 후회하지 않는 강인한 의지의 소유자인 것 같다자신의 선택이 뭐든 지간에 갈등하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운명이 그러하다면 결코 거부하지 않겠다는 자세가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한 여자를 끝까지 사랑한다. 그런 사람이 아직도 존재한다니? 또한 조폭이긴 하지만 윤락녀에 대한 긍휼한 마음이 있어 성매매 금지법에 관해서도 한껏 목소리를 높인다. 그리고 자신의 애송시를 이자 암송 시 몇 구절을 삽입해 문장의 격을 높였다. 읽고 있노라면 영화를 보는 것도 같고, 누구든 영화로 만들고 싶어 할 것만 같다그만큼 인물 묘사가 강렬하다

 

난 이게 저자의 자전 소설에 가까운 에세이라고 생각하는데(장르가 명확하지 않다), 시를 써 와서일까? 300 페이지도 안 되는 분량에 자신의 일생을 이렇게 명징하게 담아내다니 과연 이야기 솜씨가 일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뒤에 가면 뭐 하나가 딱 걸린다. 그것은 작가가 몸소 겪은 우리나라 현대사의 단면을 얘기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우리나라 차기 대통령 후보 중 저격당한 사건의 내용이었다. ? 그런 일이 있었어의아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은 너무나 사실적으로 묘사해 이건 저자 자신의 이야기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읽었기 때문이다.

 

오죽 의아스러우면 저자에게 묻고 싶을 정도였다. 이거 실화냐고. 무슨 근거를 가지고 이렇게 쓰는 거냐, 독자를 희롱하는 거 아니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그리고 가면 갈수록 내용은 무슨 쌍팔년도 느와르를 연상시킨다. 뭐 그것까지는 뭐라고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통령 후보가 저격을 당했다는 것은 도저히 그냥 넘어가면 안 될 것 같았다. 그거야 말로 허위 사실 유포 아닌가?

 

그러다 문득 서문의 마지막 부분을 다시 읽었다. 이 소설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알아 맞추면서 읽는 것도  재미있을 거라고 했다. 그러니까 저자가 치는 뻥에 나는 넘어간 셈이고, 자신은 그것에 대해 책임이 없다는 뜻으로도 읽혀지는데, 허탈하다기 보단 왜 끝까지 사실과 진실을 견지하지 못했던 걸까 불쾌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서문 첫 문장은 이제 때가 됐다며 30년 동안 묵혀왔던 이야기를 한다는 비장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란 문장에서 저자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의심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더구나 이 책을 한국소설이라고 분류했는데, 이건 소설의 형식을 완전히 갖춘 것도 아니다. 물론 자전 소설이라고 우긴다면 그래 좋다. 그렇게 봐주자. 그렇다면 더더욱 문제 있는 거 아닌가? 저자도 글 깨나 쓰는 사람 같은데 글은 정직해야 한다는 것쯤 배우고 들어갔을 것 아닌가? 어디서 진실과 허구란 말장난으로  독자를 후려칠 생각부터 하는지 지금까지 써 온 글이 아깝지도 않은가 거기에 상상력의 극대화 뭐 이런 말로 자신의 글을 정당화라도 하고 싶은가 싶다. 

 

이왕 말이 나와서 말인데, 최근 우리나라 작가들 글을 쓴답시고, 소설인지 수필인지 모를 글들을 양산하고 있다. 처음엔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나쁘지 않은 시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이 쓰는 글에 번지수도 확실히 정하지 못하면서 무슨 탈장르를 선언하겠다는 건지 모르겠고, 뭐 그것도 작가의 표현의 자유라고 치자. 적어도 자신이 쓰는 글에 진실하고, 책임질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솔직히 이 책 읽은 지 며칠 됐는데 감동 보다는 아직도 뭔가 속았다는 느낌에 불쾌한 느낌이 쉬 떨쳐지지 않는다. 허구를 얘기하고도 마지막 한 문장이 그것을 상쇄시키는 책이 있는가 하면, 내내 진실을 얘기하다가도 한 가지 뻔한 거짓말이 책을 망쳐놓은 경우가 있다. 이 책은 명백히 후자에 속하는 책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앞서 얘기한 독자로서의 의기. 즉 다소 보기엔 이래봬도 내용은 정말 좋은 책이라는 의기를 부려보고 싶은 기회가 없어져 버렸다. 그래서 보기도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이 그냥 있는 말이 아니라며 혀마저 끌끌 차게 만든다. 어떻기에 그렇게까지 말하느냐고? 처음 받아든 순간 쌍팔년도 무슨 중고등 학교 교지를 연상케 한다. (내가 학교를 졸업한지 오래인 관계로 요즘 교지가 어떻게 나오는지 모르겠다.) 내가 독자로서 이런 책을 읽었단 말이다. 소설적 허구란 게 그런 게 아닌데 저자가 과연 이걸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안 그랬다면 다음 판에선 좀 나은 옷을 입고 나오지 않을까? 요즘 인터넷 서점마다 리커버가 유행이던데잘하면 리커버로 나올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말이다. 저자는 어쩌자고 다된 밥에 코를 빠트렸던 걸까? 그래서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하듯, 우리나라 책도 끝까지 읽어봐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거다.

 

또 모르지. 괜찮은 표지로 나왔더라면 나의 이 마음도 다소는 이성을 유지했을지도. 그런 의미에서 난 이 지면을 통해 모든 출판사에 말하고 싶다. 표지에 신경 써라. 책이 되어 나오는 마지막 순간까지 방심하지 마라. 독자에게 욕을 들어도 싼 책은 아예 제작부터 하지 마라. 표지가 후진 책은 누구에게 권하지도 못한다. 독자는 그런 마음이 있다. 내가 읽는 책이 누군가의 눈에 띄었으면. 그래서 지금 읽고 있는 책이 뭔데 라고 질문 받고 싶어 한다

 

작가도 마찬가지다. 마지막까지 진실해질 수 없다면 차라리 안 쓰는 게 낫지 않을까? 이래도 괜찮겠지 하는 호기가 결국 30년 인생 이야기를 스스로 깎아 먹은 건 아닌지안타까운 마음에 쓴 소리 좀 했다. 불쾌했다면 용서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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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6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11-26 18:06   좋아요 1 | URL
에이, 좋은 게 좋은 거려니 하면 안 되죠.
물론 제가 너무 잘 봤다가 실망해서 일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건 장편소설도 아니라니까요.
문제는 문제라고 꼭 집어야 해요.
작품은 독자가 완성한다 잖아요.
안타깝더군요.
 
밥보다 일기 - 서민 교수의 매일 30분, 글 쓰는 힘 밥보다
서민 지음 / 책밥상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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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나왔을 때 반갑기도 했지만 좀 의아스럽기도 했다. 일기에 관해 뭐 할 말이 있을까 싶은 것이다. 특히 학교 때 일기 쓰기 숙제에 학을 떼어 본 사람이라면 뭐 이런 책을...? 하며 손사래를 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이 척 보기에도 나 그렇게 지루한 책 아냐.”라고 말 하는 것 같고, 실제로도 그렇다. 하긴, 일기 쓰기에 대해 철학적이며 인류학적이고, 기록학적 고찰을 해 놓았다면 누가 일기를 쓰고 싶어하겠는가? 더구나 저자는 유쾌하게 강연하기로 소문났다. 그런 그가 이 머리 아픈 주제를 어렵게 쓸리 없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 은근히 아니 대놓고 집요한데가 있다. 물론 저자의 집요함은 이 책에만 나타나 있는 것은 아닌다. 지금까지 저자의 책을 빼놓지 않고 읽은 건 아니지만 저자는 한 가지 주제에 대해 그걸 아기 다루듯 하면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설득하려는 측면을 보여준다. 그것은 또 얼마 전 낸 <서민 독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기도 하는데, 거기엔 저자가 읽어 온 책이 빼곡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는 건 결국 책 읽기에 대한 (강력한)촉구다.

 

이 책도 어찌보면 그 연장 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읽는다면 다음엔 써야한다. 일기 하나를 잘 쓰기 위해 책을 읽으라고 강()조하고 있다. 도대체 일기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기도 하다. 그야말로 돈이 나오나, 쌀이 나오나 싶기도 할 것이다.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일기 한 권은 잘 쓴 에세이 10권 부럽지 않은 경우도 있다. 믿거나 말거나) 하지만 이 별것 아닐 것 같은 일기에 이토록이나 정성스럽게 강조하는 것을 보면 집요함을 넘어 진정성까지 느껴지는 것이다. 요즘 글쓰기에 관한 책도 많이 나오는데 저자도 그냥 글쓰기에 관한 책 한 권 내지 뭐 이렇게까지 하는데는 뭔가의 이유가 있지 않나 싶기도 한 것이다.

 

생각해 보라. 우리가 중학교 이후 누가 일기를 쓰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주위에 있는지. 무엇보다 내가 쓰지 않는다. 내가 쓰지 않는데 감히 누구한테 권할 수 있겠는가? 물론 내가 쓰기 때문에 권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뻔하다. “너나 잘하세요.” 그런데 가끔은 어렸을 때 들었던 그 잔소리가 그리울 때가 있다. 그중 하나가 일기 쓰이기도 하다. 옛날 같으면 참견 같아 듣기 싫을 것 같은데 비록 책이긴 하지만 나는 기분이 좋았다. 뉘라서 그런 말을 해 준단 말인가? 더구나 저자 특유의 솔직함과 유머를 대하니 누구라도 일기를 안 쓰면 안 될 것만 같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 교육이 초등학교 때까지는 일기 쓰기가 거의 의무로 되다시피 하지만 중학교부터는 권장만 하고 관리는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일견 이해한다. 좋은 습관 길러준다는 것과 내가 맡은 아이가 방학 때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보고, 맞춤법 향상을 위해 그 숙제는 꽤 유용해 보인다. 그러나 중학교쯤 되면 사춘기다. 아이들의 자율성을 어느 정도 보장해 줘야한다. 무엇보다 일기는 비밀 유지가 되야하는 하는데 아무리 선생님이라고 해도 누군가가 보는 거라면 일기는 이미 일기가 아닌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선생님들이 바쁜데 일일이 일기 검사까지 할 여력이 없다.

 

하지만 저자가 제안하는 것도 타당성은 있어 보인다. 저자는 일기 검사를 전담하는 빨간펜 선생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것을 네 가지로 말하고 있는데, 첫째는 학생이 솔직하게 자기 이야기를 쓸 수 있어야 하고, 일기 검사는 매일 이루어져야하며, 검사자가 학생의 일기를 읽고 난 뒤 오타나 비문 등을 고쳐주고 보다 매끄러운 문장이 되려면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알려 주며, 검사자가 학생의 일기에 자신의 견해를 달아줘야 한다(60p)고 썼다.

 

물론 안 그래도 예산이 부족한데 무슨 일기 전담 빨간펜 선생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건 정말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교육 선진국일수록 작문을 중요시 한다. 즉 학생의 글로 표현된 생각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좋은 생각은 좋은 글에서 나오며, 좋은 글은 좋은 생각에서 나온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디 그런가? 도무지 생각할 시간을 주질 않는다. 말은 그렇게 아이들의 자율성과 일기의 비밀성을 들어 거부할지 모르겠지만 일기가 아니면 작문 교육을 대체할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그렇지 않아도 비문에 줄임말에 청소년용 육두문자가 남발하는 세상에서 아이들이 자신이 글을 잘 쓰는지 못 쓰는지도 모르고 졸업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일기의 비밀성이 보장되지 못하면 또 어떤가? 나의 글과 나의 생각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주는 선생님이 계시다는 이유만으로 오히려 더 열심히 일기를 쓸 학생도 있지 않을까? 그것이 비밀성이 보장되지 않은 열린 일기가 되어도 말이다. 그러고 보면 일기 쓰기가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는 건 그 자체가 지루하고 의미없는 행동이라기 보단 생각, 사고를 중시하지 않는 시스템 때문은 아닐까? 또한 이 작문이란 것도 무엇에 대해 쓰라고 하면 너무 어렵다. 주제가 주어지지 않은 일기 같은 글부터 쓰게 하는 것이 접근하기에 더 좋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주장이 전혀 설득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 효과도 있고 얼마나 좋은가?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땐 뭐 일기에 대해 할 말이 있을까 했던 것도 사실이다. 독자를 쉽게 봐도 너무 쉽게 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읽을수록 저자의 내공이 느껴지면서 목차를 정하고, 메모를 하고 내용을 채워나가기까지 뮤즈는 끊임없이 저자를 흔들어 놓았겠구나 싶다. 특히 요즘 소확행이 유행인데 일기 쓰기 역시 그 품목에서 제외시킬 수 없다. 읽으면서 얼마나 킥킥대고 웃었던지. 마치 명랑 만화를 보는 것 같았다.

 

저자는 요즘의 SNS가 활성화 되면서 오로지 좋아요에만 목맨 영혼없는 글에 대해 비판도 빼놓지 않았다. 그렇다면 블로그 글쓰기는 어떤가? 난 중학교를 입학하던 해부터 본격적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지만 블로그가 생기면서 일기를 안 썼다. 블로그 활동을 하는데 굳이 일기를 또 써야 하나 싶었고 이건 나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저자도 블로그에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이게 나름 반갑기도 했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니.) 무엇보다 난 이 시기를 일기를 쓰지 않았던 시기로 봐야하는 것인지 아니면 블로그로 대체했으니 여전히 썼다고 봐야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저자는 그것을 가르기 보단 일기와 블로그의 장단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여기서 일기 쓰기란 노트에 쓰는 아날로그적 방법을 말한다. 블로그는 다분히 보여지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솔직함이 어느 정도 희석된다. 그런데 비해 일기는 100% 솔직해질 수 있다. 솔직함이 꼭 좋은 것이냐는 것엔 다소 논란의 여지는 있어 보이지만 그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내가 내 자신에게 솔직해질 필요는 있다. 그렇다면 일기는 필요하다. 솔직해져야 한다고 해서 블로그에 있는 그대로 까발리는 건 위험하다. 하지만 블로그에 글을 쓰면 누군가 볼 거란 전제가 있기 때문에 싫어도 몇 번의 정서를 거쳐야 한다. 낙서 같은 글이건, 각 잡고 쓰는 글이건. 그런 점에서는 블로그가 더 유리하다.

 

솔직히 나는 일기는 좀 함부로 막쓰는 경우가 많다. 블로그는 첫 문장을 무엇으로 할지 고민할 때가 많지만, 일기는 왜 이 문장부터 썼지? 후회하는 경우는 있어도 이미 쓴 문장을 고칠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나만 알아보면 되니까. 이 세상 어디엔가는 마구 망가져도 누가 뭐랄 것 없는 곳 하나는 있어야 한다. 예전에 정서하는 게 너무 귀찮아서 한 번 있는 그대로 글을 블로그에 올렸던 적이 있다. 그러고 그 다음 날 당장 내렸다. 정말 저자의 말마따나 맞춤법이고 뭐고 무시하고 글을 올리면 없어 보이기 딱 좋다. 내가 뭐 그렇게 풍성하게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없어 보일 필요는 없지 않는가? 어쩔 수 없이 그때는 발견되지 않는 오탈자라면 모를까 고쳐 쓸 수 있는데 맞춤법 무시하고 올린 글 보면 인상이 찌푸려지던데 내 글이라고 오죽할까 싶은 것이다. (그래도 맞춤법은 어렵다.ㅠㅠ)

 

특히 항상 글을 잘 써야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사는 사람일수록 일기는 숨어서 쓰기에 좋은 글 같다. 또한 블로그에 글을 써서 좋아요도 많고, 댓글도 많이 받으면 좋긴 하지만 그것에 일일이 답글을 달다가 분위기에 휩쓸려서 정작 써야할 글을 못 쓰거나 의지가 꺾이는 경우도 있다. 그러고 보면 블로그 쓰기는 양날의 검이란 생각이 든다. 저자의 지적대로 일기와 블로그 쓰기는 적당히 활용하면 좋을 것이지 어느 한쪽을 편들 건 아닌 것 같다. 그래도 굳이 둘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난 일기를 더 우위에 두고 싶다.

 

난 올해부터 다시 일기 쓰기를 시작했다.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하고 15년만의 일이다. 물론 여러 가지로 도전이 많이 있었다. 올초 일기에 관한 책 한 권을 읽기도 했고, 알라딘에서 서재의 달인됐다고 다이어리를 보내줬는데 하루에 한 페이지가 아닌 반 페이지씩 쓰도록 되어 있다. 이 정도라면 메모 정도 밖엔 안되 진짜 일기 쓰는 사람에겐 불편하긴 할 것이다. 그것도 하나의 전략 같기도 하다. 다이어리엔 메모 정도만하고 자세한 건 서재에 쓰라는(것 같은). 저자도 그런 얘기를 했지만 사진만 잔뜩있고 메모식의 영혼없는 글은 가급적 쓰지 않는 게 좋은 것 같은데, 이 사회 시스템이 자꾸만 생각하기를 방해하고 편하고 간단한 것만을 추구하도록 만드는 것 같아 마땅치가 않다.

 

책을 보면, 일기 쓰기로 할 수 있는 일은 제법 많아 보인다. 더 정확히는 일기 쓰기가 동력이 돼서 할 수 있는 일이다. 그중 눈에 띄는 건, 자기 소개서다. 스펙이고, 토익 점수 따는 건 한때다. 그러나 나이 들어서도 계속 쓰게 되는 건 자기 소개서란 것이다. 내가 누군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스펙 쌓고, 토익 점수 따고, 시험 점수 올리느라 정작 내가 누군지에 대해 선듯 말할 수 없는 세상에 살게 되어버렸다. 그런 사람에게 진짜 나로 살아갈 수 있는 날이 과연 올까? 그것은 하루 아침에 오지 않는다. 뭔가의 부속품으로만 살아갈 뿐 내가 누군지에 대해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일기 하나 잘 써서 성공했다는 사람도 적잖이 보았다.

 

어렸을 때 아버지는 나에게 자주 꼭꼭 씹어 먹으라고 하곤 했다. 그때 난 너무 어려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꼭꼭 씹어 먹으라니? 먹는대로 먹는 거지 꼭 꼭꼭 씹어 먹어야 하는 것일까? 그런데 그게 나이들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자꾸 고마운 생각이 든다. 그건 내가 밥 먹다 체할까 봐, 또는 생선 얹은 밥에 혹시 가시라도 걸릴까 봐 그렇게 먹으라는 것인데 세상에 밥처럼 밍밍해서 금방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음식이 또 있을까? 그럴수록 꼭꼭 씹어 먹어야 하는 것이다. 하루를 반성하고 되새김질을 하려면 일기를 써야한다. 그것은 하루를 꼭꼭 씹어 보내는 일과 같은 일이다.

 

이 책은 유쾌하게 읽다가 맨 마지막에 잔잔한 감동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는데 그건 일기를 통한 아버지와의 화해다. 내가 앞서 일기는 비밀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누구에겐가 읽혀질 것을 생각하고 쓰는 의도성도 있다. 왜 일기에 의도성을 포함시킬까를 생각해 보면 내가 누군가에게 또는 한 사람에게라도 더 이해 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는 아닐까? 저자가 아버지의 일기를 읽고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됐고 화해할 수 있게 된 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옛 속담에 짐승은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하는데 애석하게도 사람은 그렇게 유명하지 않다. 사람이 죽고 한 세대가 가기도 전에 잊혀질 사람이 기억되는 사람 보다 훨씬 더 많다. 그렇다면 그런 속담은 가능하지가 않다. 그나마 일기를 남기는 것이 확실한 방법은 아닐까? 그게 아니더라도 일기를 씀으로 해서 인생에 성공을 가져왔다는 사람도 많이 받다. 알지 않는가? 사람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퇴보하고 나중엔 짐승처럼 변한다고. 일기는 정말로 써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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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11-18 1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기는 종이 노트에 검정 볼펜에 써야 한다고 봐요. 제가 그렇게 하고 있어서요.ㅋ
매일 쓰지 않고 며칠에 한 번 쓰고 어떤 때는 하루에 아침 저녁으로 두 번 쓸 때가 있지요.
쓰고 나면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기분, 고민이 작아지는 기분, 복잡하게 생각했던 게 간단하게
정리되는 기분, 그런 걸 느낍니다. 순전히 저만을 위한 방법입니다.

마태우스 님의 책, 책 제목을 잘 지은 것 같아요. 그리고 감탄하게 되네요. 어쩌면 그렇게 속도 있게 빨리 책을 여러 권 낼 수가 있는 건가요? 도저히 저로선 이해 불가...
어쨌든 많이 많이 팔리기를 응원하는 바입니다. 저도 사 보겠습니다.
스텔라 님의 리뷰도 좋고요...

stella.K 2018-11-18 19:58   좋아요 1 | URL
ㅎㅎ 고맙습니다.

언니는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누구는 일기를 밤에 쓰지 말고 아침에 쓰라는 말도
있던데 저는 그렇게 안 되더라구요.
알라딘 다이어리는 매일 쓰게 되어 있던데
쓸게 많은 날은 지면이 좀 모자라지만
좋으나 싫으나 매일 쓰게 되어 있으니 습관 들이기엔 좋은 거 같아요.

저는 뭘 쌓아두는 게 싫어서도 일기를 안 썼어요.
그런데 마태님 말마따나 블로그에 쓰는 것도 안전하진 않겠더라구요.
사이트가 없어졌다 새로 생기고 그게 또 없어지고를 반복하면서
소실되기도 하죠. 육필 일기도 잃어버릴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게 제일 안전한 것 같아요.
책 말미는 좀 찡하더군요. 한번 읽어 보세요.^^
 
로맨틱, 파리
데이비드 다우니 지음, 김수진 옮김 / 올댓북스 / 2018년 9월
평점 :
절판


책을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사람들 저마다 자기 좋아하는 독서 분야가 따로 있을 것이다. 또 그런만큼 기피 대상 분야도 있지 않을까? 나도 기피 분야가 있긴 하다. 바로 요리와 여행이다. 아무리 먹방이 대세라고는 하지만 난 요리를 소재로한 그 어떤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방송을 물론이고, 책도 영화도 별로다. 먹어 볼 수도 없는데 그 앞에서 군침을 삼키는 게 좀 바보 같이 느껴지는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여행을 소재로한 어떤 책도 영상물도 좋아하지 않는다. 가 볼 수도 없는데 방에 들어 앉아 괜히 나 자신을 자책는 게 싫은 것이다. 그나마 음식 보다 나은 게 여행이긴 하지만.

 

그런 내가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저자가 미국 출신이지만 프랑스 파리를 좋아해 아예 이주하면서 그곳을 취재한 것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그것도 문학 분야. 저자는 기행 작가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 책은 문학 기행다. 그러니 또 마음이 동한다. 여행기를 읽을 때 어떤 분야에 방점을 두고 읽느냐에 따라 그 읽는 느낌이 다를텐데 문학 기행이라면 나로선 안 읽을 수가 없다.

 

그래서 일까? 책이 참 마음에 든다. 원래 유럽 그 중에서도 프랑스 문학을 좀 좋아하긴 했다. 그런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니 내가 정말 프랑스 문학을 좋아하기나 한 걸까 싶게 아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의 이름이나 몇명 꿸 줄 알지 그들의 문학을 열심히 읽은 것도 아니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내가 프랑스 문학을 좋아한다고 했을까? 또 그런 생각이 들만큼 책은 프랑스 작가들의 삶과 거리와 공간에 대해 꼼꼼하면서도 자유럽게 잘도 써놨다. 그런 저자의 글 재주가 부럽다.        

 

인상적인 건 빅토르 위고와 조르주 상드에 관한 부분이었는데, 위고는 발자크와 함께 프랑스가 가장 사랑하는 국민 작가요 가히 모든 작가들의 아버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위고도 부인과 정부 사이를 오가며 애증의 관계인 것을 볼 때, 또한 상드는 남장을 하리만큼 자신의 성정체에 자유한 삶을 살았던 것을 볼 때 문화적 충격을 넘어 프랑스는 가히 팜므바탈적이란 느낌도 든다. 저자도 위고를 많이 동경했던 걸까 아니면 필연이었을까? 위고에 관한 이야기가 끊어질듯 하면서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그런 것을 볼 때 확실히 위고가 프랑스에 미친 영향은 대단했다. 그가 죽었을 땐 아예 국장으로 치뤘다니 알만하지 않은가.

 

아무튼 나로선 프랑스는 넘사벽이지만 동시에 더 궁금해지고 알고 싶은 욕망을 느끼게 만든다. 이 책을 언제고 다시 또 한 번 천천히 읽어보고 싶다.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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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8-10-04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는 요리와 여행에 관한 책을 아주 좋아한답니다^^; 요리도 여행도 잘 하지 않는 주제에 읽는 것만 좋아해요 호호^^;;; 문학기행이라니, 거기다 stella.K님께서 좋은 책이라 말씀하시니 저도 읽고 싶어욧@_@;;;

stella.K 2018-10-04 15:46   좋아요 0 | URL
ㅎㅎ 저는 문학 기행만 좋아해요.
문학 기행 좋아하시면 감히 추천드립니다.
관심 가져 주셔서 고맙습니다.^^

2018-10-04 16: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10-04 16:2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좋아하는 분야의 책만 읽어도 다 못 읽지요.
사실 이책 완독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못했어요.
협찬 받은 거라 오늘이 마감이거든요.
또 하필 가장 바쁠 때 읽게되서 여유가 없더군요.
정말 이책은 느긋하게 음미하면서 읽어야 하는 건데.ㅠ

파리 여행 꼭 가세요.
정말 님 사진 보고 싶어요. 염장인가요?ㅎㅎ

후애(厚愛) 2018-10-04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이 로맨틱, 파리라고 해서 로맨스 소설인 줄 알았어요.^^;;
여행에세이 책이네요.
아침저녁으로 많이 선선한데 옷 따뜻하게 입으시고, 환절김 감기조심하세요.^^

stella.K 2018-10-04 16:49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처음에 잠깐 착각했어요.

네. 고맙습니다. 후애님도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