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한국에 처음 번역된 게 1983년이라고 한다. 나에게 닿기까지 40년이 걸린 셈 이다. 초등학교 때는 그렇다 쳐도 중.고등학교, 심지어 대학 때까지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이란 이름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친구가 알라딘 서재라는 공간을 추천해주지 않았다면 영영 모르고 살았을지 모른다. 왜 신사임당, 유관순, 박경리,박완서, 나이팅게일은 교과서에 실리고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나혜석, 시몬드 보부아르, 토니 모리슨, 버지니아 울프, 도리스 레싱, 수전 손택, 필리스 체슬러는 존재한 적 없는 것처럼 전달되지 않았을까? 이 논쟁적이고 통쾌한 글을 이제서야 읽게 되다니. 그에 비해 남성 문학은 얼마나 과잉 대표되고 있는가. 억울할 지경이다. 과해도 너무 과해서 그들의 자의식은 하늘을 찔러 미투가 한국에서 한창일 때 그 피바람은 놀랍게도 문학계, 예술계에서 불어왔다. 당시에는 왜?라는 의문이 들었으나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런저런 현상들이 거의 다 납득이 된다. 한쪽은 스스로 감당도 안 될 만큼 비대해지고 다른 한쪽은 존재마저 부정하려는 듯 희미해지고 굶주리고 있는 이유를. 이 굶주림은 단지 심리적인 것만이 아니다. 44사이즈는 요즘 젊은 여성들의 이상적인 몸매가 되어 정신적인 삶은 추구할 시간조차 없다. 시간도 없고 필요도 없는데(그렇게 믿는 게 바람직해지고 편해지는) 이 굴욕과 억압을 언제,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지식인 남성이 아내에게 경제적, 심리적으로 의존하는 상태가 자신을 피해자라고 정의하는 근거가 된다. 나아가 그는 피억압자로서 탈출을 꿈꾼다. 착취자가 피해자고 그래서 해방을 꿈꾼다? 성별을 바꾸어 생각해보자. 남편이 여자 손님을 상대로 집에서 성을 파는 '호스트'고, 아내는 그런 남편에게 돈과 식사를 요구한다. 그런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아내가 남편에게 심리적 적개심을 가지고 자신이 피해자라 운운한다면, 스릴러가 될 것이다. 성매매처럼 성별화된 문명은 없다. 우리는 아무도 '인류 최고最古의 직업이 남창'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성별을 바꾼 '날개'의 서사는 상상할 수 없다. p.204 정희진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









사방에서 다이어트나 미용 강좌, 옷과 화장, 그리고 엉터리 왕자가 꿈꾸는 소녀가 되기 위해서라면 억지로 훼손시켜서라도 몸을 유리구두에 꽉꽉 눌러 넣으려고 달려든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만일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받게 되는 벌은 엄청나다. 그들의 사회적 정당성이 위기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여성들은 점점 더 닮아 보이게 된다. 동시에 육체적 외형을 통해 개성을 표현하는 것이 기대된다. (...)이러한 갈등 그 자체가 중요한 정치적 기능을 하고 있다. 여성이 점점 더 닮아 보이기 시작하고 가공의 이상과 다른 정도에 의해서만 구별될 때, 더 쉽게 계급으로서 정형화될 수 있다. p.221 성의 변증법





여권이 신장되었다고 한다. 오히려 남성들이 역차별 당하고 있다고도 하고. 과연 그럴까? 이제 미의 기준은 너무나 절대적이고 공고하여 백인 바비와 유사한 점이 없어도 너무 없는 흑인 인어공주가 등장하자 소셜에서 꽤나 비난받았다. 차별은 더 교묘해지고 치밀해졌을 뿐이다. 투표권이 생기고 법적 권리가 과거에 비해 늘어났지만 과거에 비해 늘어났을 뿐이지 절반인 남성에 비해 여전히 부정의에 시달린다. 오히려 유혹은 더 많아졌다.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더 다양한 소비문화의 집중포화를 감당해 내야 한다. 제대로 인식하고 사유하려면 이겨내야 할 것들이 여성들에게는 너무나 많다. 남자는 알을 깨고 나오면 되지만 여성은 알을 깨야 할 필요성을 느낄 새도 없다. 대한민국 어디엔가  제2의 파이어스톤이, 보부아르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여성주의를 공부하고 있을 가능성보다 스스로의 잠재된 재능을 깨닫지 못한 채 화장이나 성형에 관심을 두고 취집을 꿈꿀 가능성이 아직은 조금 더 높아 보인다. 비혼주의 여성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여성들이 알을 깨는데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여성주의 공부가 더 널리 퍼져나가야 한다. 여성들은 더 읽어야 한다. 




가장 창조적인 시기의 주요 에너지가 '괜찮은 남자를 낚기 위해'쓰여지고 일생의 대부분은 낚은 것을 '유지하기'위해 쓰여진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남성에게 직업과 마찬가지로 여성에게는 전일근무 직업이 될 수 있다). 이 경주에서 낙오를 선택하는 여성은 사랑 없는 삶을 선택하는 것으로, 그것은 우리가 보아온 대로 대부분의 남성이 그렇게 할 용기를 가지지 못한 것과 같은 것이다. (...) 여성은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여자 이상이어야 하며, 자신이 열등하다는 정의에서 벗어나기 위한 출구를 끊임없이 찾아야만 한다. 남성만이 그녀에게 은총을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여성은 더 큰(남성)사회에서의 활동을 통한 자아실현이 거의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ㅡ그리고 그런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마땅히 받아야 할 인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ㅡ많은 남성보다는 한 남성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쉬운 것이다. 사실상 바로 이것이 대부분의 여성이 하는 선택이다. 그러므로 그 자체로는 좋은 사랑의 현상이 계급적 맥락 때문에 왜곡된다. 여성은 건전한 이유 때문만이 아니라 실제로 자신들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서 사랑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p.201. 성의 변증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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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07-20 0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잉대표˝
그런 경향성에 문제의식 전혀 없던 사람까지 뜨끔하게 만드는 말씀이십니다.
저도 어슐러 르 귄의 인터뷰집을 읽기 전까지는, 예를 들어 SF 문학계에서 남성의 과잉대표 문제에 대해 한 번도 궁금해 하지도 생각해본적도 없었거든요.
미미님 말씀처럼 교과서 수록 선별 인물들에 대해서도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겠네요.....관성적인 위인이 아니라.
생각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미미님.

미미 2023-07-20 09:34   좋아요 1 | URL
<성의 변증법>과<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을 함께 읽었는데
문학계의 문제를 실감했습니다. SF 문학계도 마찬가지군요? 어슐러 르 귄 읽다만 저.. ㅠ.ㅠ
자연과학 쪽에 대부분 남성인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합니다.
학교 교육이 성차별을 내면화 시키는 요충지인 만큼
이런 식으로 치우친 교육은 계속해서 더 많은 문제를 낳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락방 2023-07-20 07: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휴 너무 좋네요.
저는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를 하면서, 다른 분들이 여성주의 책들을 읽고 이렇듯 본인의 생각과 감상을 적어주시는 일이 너무 좋고 뿌듯합니다. 같은 책을 읽고 같은 부분에 밑줄을 그어도, 다른 부분에서 인상을 남겨도 너무 짜릿해요! 그래서 오래 해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오늘 출근길에 사랑에 대한 부분 읽었는데, 와 파이어스톤 님 너무나 대천재 이십니다. 저 스물다섯에 뭘했을까요 ㅠㅠ

잠자냥 2023-07-20 08:38   좋아요 3 | URL
스물다섯에 다락방은



많이 먹었다.

다락방 2023-07-20 09:31   좋아요 3 | URL
마시기도 오지게 마셨고요, 나쁜 연애도 시작했습니다. 하- 치욕스러운 과거를 만들었어요. ㅠㅠ

미미 2023-07-20 09:45   좋아요 3 | URL
이 책을 읽으면서- 되돌릴 수 없는 일이지만- 20대에 여성학을 지금만큼 공부했더라면 연애에 시간 낭비를 안 했을 거란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파이어스톤은 보부아르 보다 급진적으로 한 발 더 내디뎠다는 느낌이었고요.

아.. 사랑 포함한 4,5,6,7,8 장이 너무 좋았습니다. 재독 삼독해야만 하는 책ㅜ.ㅜ

건수하 2023-07-20 10:56   좋아요 1 | URL
미미님/ 극공감이요! 그때 연애 (연애, 소개팅, 다른 이들의 연애 상담 등등) 에 시간 안 쓰고 하고 싶은 거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요.

책읽는나무 2023-07-20 11:33   좋아요 1 | URL
나도 20대 때 모했나?
더듬어 봅니다.ㅋㅋㅋ
연애만 했네요. 아..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아! 넘 바빴네요.ㅜㅜ
그래서 책 읽을 시간이 없었...그래서 이런 세상이 있는 줄도 몰랐...ㅜㅜ

여자는 알을 깨야 할 필요성을 느낄 새도 없다!!! 저였군요!! 저!!! ㅋㅋㅋ

미미 2023-07-20 11:40   좋아요 2 | URL
나무님/ 여성들에게는 여성으로서의 책무가 많아도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ㅜ.ㅜ
자각할 때 즈음에는 이미 나이 들고 지쳐버리는...
그래도 모르고 사는 것보다 저는 앞으로도 아는 것을 선택하겠어요. 쭈욱ㅋㅋㅋㅋ

건수하 2023-07-20 1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자는 알을 깨고 나오면 되지만 여성은 알을 깨야 할 필요성을 느낄 새도 없다.

사랑에 빠지는 것이 전일근무 직업이 될 수 있다.. 정말 뼈때리는 말이었어요.
결혼하니까 더 이상 연애를 하지 않아도 되어서, 연애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어서 오히려 편했어요.
기혼 여성이 페미니즘에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이유일지도..

미미 2023-07-20 11:30   좋아요 2 | URL
저도 20대에 넘치는 에너지를,시간을 연애에 거의 다 쏟아부었어요.
여성에게 주어진 현실을 알게 해주는 이런 책들을 교과서 대신 읽었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요? 적어도 젊은 여성들에게 선택의 길이 더 열리겠죠. 알게 되면 많은 것이
달라지리라 믿습니다. 이 책 뼈 때리는 말들 가득하죠!ㅎㅎㅎ

함께 읽으며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늘 너무 좋네요^^
 
성의 변증법 - 페미니스트 혁명을 위하여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지음, 김민예숙.유숙열 옮김 / 꾸리에 / 2016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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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자아도취에 빠진 남성 문학과 예술이 만연한지, 그런 자아도취가 왜 ‘여성‘ 없이는 발기하지 못하는지, 그 악영향(사랑의 불가능성 등)이 사회에 어떤 파장을 일으켜왔는지를 지금2023년까지도.안타깝지만 이후에도 얼마간 이해하게 해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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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7-18 16: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꺅 >.< 👍🏻👍🏻👍🏻👍🏻👍🏻

미미 2023-07-18 16:28   좋아요 1 | URL
아 너무 좋았어요>.<

햇살과함께 2023-07-19 0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미미님 1등 아닌가요!!!
전 아직 4장에 멈춰있는...
오늘부터 부지런히 읽어야겠어요~
완독 수고하셨어요!

미미 2023-07-19 09:57   좋아요 0 | URL
저 1등 아니에요ㅎㅎ
혼자선 읽기 힘들었는데 함께 읽으니 완독이 되네요.
햇살님의 완독을 응원합니다^^
 

  




지금은 낮이고, 갑자기 다시 일요일이 되었고, 그것은 뜻밖의 분출이었다. 일요일은 메아리들의 날이다 ㅡ더위, 건조함, 사방에서 들려오는 꿀벌들과 말벌들의 웅웅거림, 새들의 울음소리, 일정한 속도로 내리치는 망치질 사이의 간격 ㅡ일요일의 메아리들은 어디서 오는가? 나, 일요일의 공허를 혐오하는 나로부터. 나,가장 원초적인 것을 원하는 나로부터. 왜냐하면 가장 원초적인 것이 그 시대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나, 샘의 원천에서 물을 마시기를 갈망하는 자ㅡ 이 모든 자인 나는 오직 내 메아리들만을 알고 맛볼 수 있다는 비극적인 숙명과 마주해야 한다. 나 자신이라는 것을 포착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망연함과 떨림, 경이감을 안겨 주는 기대에 찬 채 세상에 등을 돌리고 있으며, 어딘가에서는 죄 없는 다람쥐가 도망치고 있다. -아구아 비바.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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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가(요즘 친구들을 글감으로...) 오랜 경력단절 끝에 다시 직장에 다니다가 문제가 생겨 아쉽게도 몇 달 만에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대충 입고 다니다가 일 다니는 동안은 잘 차려입으니 동네 소문이 다 났었는데 일을 그만두게 되니 만나는 사람마다 "이 시간에 웬일이냐. 일은 안 간 거냐?"묻더란다. 물론 상대방은 선의로, 인사치레로 물었겠지만 이쪽에선 매번 웃으면서 대충 얼버무리고 지나치곤 했는데 안 그래도 즐겁게 다니던 일을 그만두게 되어 속상한데 보는 사람마다 물어보니 더 마음이 안 좋았다고. 억지로 웃고 대답해야 하는게,,, 그 기분을 뭐라 설명하긴 힘든데 불편했다고. 나는 '정희진의 공부'6월호였나 희진 언니가 무례한 질문이나 대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 등에 엉뚱한 답을 해보라는 조언이 생각났다. 그래서 "정말 궁금해요?"라고 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하며 '정희진의 공부'에서 들은 이야기를 간략하게 전달했다. 그리고 이건 내가 떠올린 거니까 꼭 이렇게 말할 필요는 없고 너가 너의 목소리로 적합한 말을 떠올려보라고. 스스로 답을 찾아보란 식으로 말하며 일단 웃지 않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는데 자신 없어했다. 그래서 우린 시험 삼아 전화로 연습도 했다. 그랬는데 오늘 친구가 전화로 하는 말이 실제로 그렇게 해봤다는 거다. 무려 두 번씩이나.ㅋㅋㅋㅋㅋㅋㅋ 해보니 별거 아니더라고. 그리고 그렇게 되물으니 더 이상 꼬치꼬치 캐묻지 않더라는. 보통 "네 사정이 생겨 그만뒀어요 헤헤"하고 친절하게 대답하면 거기서 끝나지 않고 정말 궁금해서든 역시 인사치레든 왜냐고 또 묻고 질문은 계속 더 길어졌었다고. 



그랬는데 오늘 '성의 변증법'을 읽는데 이런 대목이 나왔다. 


표면적으로는 친절한 말의 진정한 본질은 종종 아이나 여성이 웃어야 마땅한데 웃지 않을 때 드러난다. p.131



그리고 이어서 이런 글이 나왔다. 


웃는다는 것은 아동과 여성에게는 발을 질질 끌며 걷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또한 희생자가 그의 억압을 묵인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내 경우 모든 10대 소녀에게 있어서의 상습적인 신경경련과 같은 가짜 웃음에서 벗어나도록 나를 훈련시켜야 했다. 훈련은 실제로 진짜 웃을 일에만 드물게 웃고, 따라서 웃을 일이 적어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여성해방운동을 위해 내가 '꿈꾸는'행동은 미소 거부이다. 그것을 선언하면 모든 여성들은 곧 '남을 즐겁게 하기 위한' 미소를 버릴 것이고 그 후론 오직 무언가 그들을 즐겁게 할 때만 웃을 것이다. p. 132


내가 얼마나 놀랐겠는가. 슐라미스 파이어스톤도 나랑 내 친구와 같은 고민을 했었다니! 그리고 이렇게 훌륭한 선언을 함. 그리고 책으로 남겼어. 험한 세상에 등불을 밝히듯이! 여기까지 읽고 너무 예민한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남자들은 대부분 이런 고민 따위 해 본적 없을 것 같은데 그 이유는 이런 감정노동이 여성, 아이들에게 부과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사소한 것에서부터 (인지하든 못하든) 캣콜링 같은 성희롱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은 미소와 침묵을 강요받고 불편함을 겪는다. 이런 불편함은 결코 당연하지도 단순하지도 않다. 왜냐하면 '권력'관계에 의해 이런 태도를 수용하도록 , 자연스러워지도록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어제 해외뉴스에 이런 기사가 있었다.


" 10초 이상 만져야 성추행 " 황당 판결에 분노한 이탈리아 <<링크


https://www.mbn.co.kr/news/world/4946100


로마의 한 학교에서 60대 학교 관리인이 여학생의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를 만졌는데 법원에서 10초 정도 그런 짓을 했을 뿐이라고 하며 무죄를 선고해 논란이 되고 있다고 한다. 분노한 시민들이 자기 몸을 만지는 이 '10초 퍼포먼스'를 sns에 올리는 등 온라인 시위를 하고 있다. (근데 또 내 생각엔 여성들이 이런 영상 올리는 거 그 60대 관리인과 해당 판사는 즐길 것 같다. 남자들만 영상을 올려주었으면ㅋㅋㅋㅋ 그래서 난 남자 사진만 올림 )암튼 이것도 역시 미소와 마찬가지로 여성이 마땅히 받아들이길 바라는 의식의 산물이다. 






앞쪽은 솔직히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이 많아서 페이퍼를 남기지 못했는데 4장 '아동기를 없애자' 부터 너무 재밌다. 





 

  





남성의 자율성은 인간이 조건이지만, 여성의 자율성은 불가능하거나 이기성으로 간주된다. 이성애 제도와 가족제도가 결합된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과의 평생토록 치열하고 소진되는 협상을 통해서만 생존할 수 있고, 이것이 인간의 인생이다. 민족주의부터 마르크스주의까지 다양한 남성 연대는 이를 주조하는 틀이다. -수치. 조애나 버트



  

  

   




"차 험하게 모시네요." 나는 항의했다. "좀 조심하든가 아니면 아예 몰지 마세요."

"조심하고 있어요." 

"당신이? 아닌데요."

"나 말고요. 다른 사람들." 그녀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죠?"

"다른 사람들이 비킬 거라는 거죠." 그녀가 우겼다. " 사고가 나려면 최소한 둘이 있어야 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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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7-16 0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바지 벗기고 엉덩이요? 늙은 남자가 미성년자를? 와 진짜 제가 눈앞에서 두드려 패고 싶네요. 아 증말 ㅠㅠ
저도 파이어스톤 열심히 읽고 따라갈게요. 수치 도 준비해 두었는데 미미님은 벌써 읽으셨군요!!
저 스무살 때 성추행 당하고도 웃었던 생각이 나 괴롭습니다. 전 아직도 그 일로 절 자책해요.

미미 2023-07-16 10:06   좋아요 0 | URL
이탈리아 사법부 수준이 참...ㅠㅠ 10초가 생각보다 길다는 걸 SNS시위가 보여주고 있다네요.
수치는 정희진 쌤 해제만 읽어봤어요. 좋은 책들이 쏟아지는 것 같아서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요즘입니다. 다락방님 저는 초등학교 때 눈앞에서 일어난 폭력에 아무것도 못하고 얼어버렸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죄책감과 함께 남아있습니다. 자책하지 않으셨음 좋겠어요.저도 그러려고 애씁니다.

페넬로페 2023-07-16 1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은 참 남의 일에 관심이 많죠.
시간이 많은가봐요 ㅎㅎ

10초!
도대체 그렇게 생각한 판사, 정말 기가 찹니다 ㅠㅠ

미미 2023-07-16 20:35   좋아요 1 | URL
이 친구가 발이 넓은 탓도 있긴한데
모른척해주는 미덕도 필요하다고 느꼈어요ㅎㅎ

한번씩 우리나라가 범죄자에 관대하다지만
저런 판결...한국에선 앞으로도 없겠죠? ^^

책읽는나무 2023-07-16 20: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0초!!!
판사가 거꾸로 당해본다면 10초 이상 견딜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군요?
자 10초 지났다. 신고해야지!!!!
그럴려나요??

미미 2023-07-16 20:40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 처음 지상파 뉴스에서 보고 믿기지 않아
뉴스 기사를 다시 찾아봤어요.
이탈리아에 이런 보수적인 정서가 있었나? 싶고.
시민들이 침묵하지 않고 저렇게 대응하는 건 다행인데
피해자는 얼마나 황당할지... 이건 판사가 2차가해 하는 거죠.


독서괭 2023-07-20 1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0초 그 건 대박이죠.. 황당무계. 이탈리아도 참 어디로 가는건지..
미미님 친구분 힘드셨을텐데, 좋은 방법을 찾아내셨네요! 웃지 않는 건 어려우니 ㅋㅋ ˝정말 궁금해요?˝라고 묻는 건 생각 못했는데, 괜찮네요. 예전에 김영민 교수의 <추석이란 무엇인가> 그 글도 떠오릅니다. 직장이란 무엇인가? 출근이란 무엇인가?^^

미미 2023-07-20 19:20   좋아요 1 | URL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캣 콜링이 가장 심한 나라라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납니다.
저런 상황에서 웃지 않는 거 정말 어렵죠. 형식적인 것들, 겉치레,...이런 것들이 의외로 많네요.

저 그 대목 읽었어요! 제목은 무겁지만 내용은 의외로 재밌던걸요.^^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이다. 다시 말해, '세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이다. 다양한 시선이 경합하지 않고 하나의 시선이 지배할 때 우리의 인식은 축소되어 편협함을 벗어나기 어렵다. -6



어떤 친구에게 여성학을 공부하라고 거의 3년을 독려했다. 개인적으로 여성학을 공부하며 막막하던 세상에 대한 이해가 확장되었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붙잡고 '도를 아십니까'를 묻듯 권하지는 않았다. 각자가 짊어진 무게가 있고 자기만의 방식이 있으니까.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 나부터도 질색이다. 그래도 이 친구는 '해결책'을 갈구하는 듯 보였고 그가 쏟아내는 많은 고민이 다 젠더와 얽혀 있었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공부해 보라고 했다. 내가 어리석었다.  처음에는 조금 하는 시늉을 하더니ㅡ'다 내 이야기다. 내 삶이 여성학이다.'하다가 ㅡ 놔버렸다. 또 문제가 터졌다. 한 시간을 때로 두 세 시간을 귀기울였다. 역시 또 젠더 문제였다. 공부하라고 했다. 본인도 그래야 되겠다고 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결국 하지 않았다. 다시 그의 상황은 나아졌다. 할 이유가 아예 없어졌다. 그렇게 반복...반복...와 내가 이걸 3년 가까이 하니 이제 좀 지친다. 그간의 과정을 생각하면 내가 인내심이 대단하구나 하고 느낀다. 또 어떤 면에서 미련하기도 하고. (사실 혼자서 더 쎈 말들을 내게 던진다) 오늘에서야 내가 왜 그랬을까 이해했다. 나는 젠더를 떠나서는 이 세계의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걸 뼈져리게 느낀거였다. 그러니 기승전 여성학이었던거지...여성학을 공부하려면 남성 역사도 공부하게 된다. 문제를 알아야 하니까. 공부를 하지 않으면 자기 경험 안에서만 판단할 수밖에 없다. 다양한 시선이 경합하는 현실을 보지 못한다. 사회문제도 남의 일인것만 같고 몰라도 사는데 지장 없는 것 같아진다. 기존 질서에 따라가면서도 알지 못한다. 




그냥 그 시간에 내 공부 할껄. 책 한권이라도 더 볼껄. 이제는 그런 후회가 있다. 편협함에서 스스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벗어나면 벗어날 수록 내가 편협하구나 느끼는 게 앎이고 자기확장이다. 그건 때로 쾌락 비슷한 기분을 주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누구를 위해 대신 공부해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성장하길 원하는 동시에 성장하지 않길 원하고, 성적 쾌락을 갈구하는 동시에 두려워하며, 우리 자신의 공격성 ㅡ 분노, 잔혹성, 타인을 모욕하려는 욕구 ㅡ을 혐오스러워하면서도 그 원천이 되는 울분은 좀처럼 해소하려 들지 않는다. 고통 그 자체는 아픔의 원천인 동시에 안도감의 원천이다. 프로이트가 환자들을 대하며 가장 치유하기 어렵다고 여긴 것도 치유되길 거부하는 마음이었다. ㅡ비비언 고닉



이제 이 미친 짓을 그만하기로 한다. 우정은 그냥 우정대로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두 세시간 들어주지도 말자. 생각해보니 그에게도 좋을 게 없다. 되려 의도치 않게 배설 같은 피신처를 만들어 준 꼴이다. 그러고 보면 공부도 행동이다. 공부의 다소 정적인 모양새 때문에 그 에너지가 과소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 그 결과만 중시 한다. 공부도 칼로리가 소모된다. 이 행동은 또 다른 행동을 부른다. 최소한 지속하게 하는 힘을 준다. 



나는 아래 성폭력에 젠더를 넣어도 맥락이 이어진다고 본다. 


성폭력을 개인적인 경험이 아니라 사회 문제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모른다. 성폭력 연구는 기존의 학문 체계, 인문,사회, 자연과학의 모든 전제에 도전한다는 의미에서 인류의 지식을 다시 쓰는 분야다. 가장 중요하게는 연구 방법이 그러하고, 두 번째는 모든 개념에 도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12




  




'상관이 접대 강요' 여경 실명 공개 "회유와 보복 당했습니다." <ㅡ


저 경관을 '여성'으로만 보는 이 파출 소장은 절대 젠더를 읽지 못할 거다. 아마 죽을 때까지. 그러니 보복을 하려고 한 거겠지. 자기 입장에서는 황당 할테니. 





비는 요란하게 내리고 내 미친 짓은 오늘로 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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