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낮이고, 갑자기 다시 일요일이 되었고, 그것은 뜻밖의 분출이었다. 일요일은 메아리들의 날이다 ㅡ더위, 건조함, 사방에서 들려오는 꿀벌들과 말벌들의 웅웅거림, 새들의 울음소리, 일정한 속도로 내리치는 망치질 사이의 간격 ㅡ일요일의 메아리들은 어디서 오는가? 나, 일요일의 공허를 혐오하는 나로부터. 나,가장 원초적인 것을 원하는 나로부터. 왜냐하면 가장 원초적인 것이 그 시대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나, 샘의 원천에서 물을 마시기를 갈망하는 자ㅡ 이 모든 자인 나는 오직 내 메아리들만을 알고 맛볼 수 있다는 비극적인 숙명과 마주해야 한다. 나 자신이라는 것을 포착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망연함과 떨림, 경이감을 안겨 주는 기대에 찬 채 세상에 등을 돌리고 있으며, 어딘가에서는 죄 없는 다람쥐가 도망치고 있다. -아구아 비바.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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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이다. 다시 말해, '세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이다. 다양한 시선이 경합하지 않고 하나의 시선이 지배할 때 우리의 인식은 축소되어 편협함을 벗어나기 어렵다. -6



어떤 친구에게 여성학을 공부하라고 거의 3년을 독려했다. 개인적으로 여성학을 공부하며 막막하던 세상에 대한 이해가 확장되었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붙잡고 '도를 아십니까'를 묻듯 권하지는 않았다. 각자가 짊어진 무게가 있고 자기만의 방식이 있으니까.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 나부터도 질색이다. 그래도 이 친구는 '해결책'을 갈구하는 듯 보였고 그가 쏟아내는 많은 고민이 다 젠더와 얽혀 있었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공부해 보라고 했다. 내가 어리석었다.  처음에는 조금 하는 시늉을 하더니ㅡ'다 내 이야기다. 내 삶이 여성학이다.'하다가 ㅡ 놔버렸다. 또 문제가 터졌다. 한 시간을 때로 두 세 시간을 귀기울였다. 역시 또 젠더 문제였다. 공부하라고 했다. 본인도 그래야 되겠다고 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결국 하지 않았다. 다시 그의 상황은 나아졌다. 할 이유가 아예 없어졌다. 그렇게 반복...반복...와 내가 이걸 3년 가까이 하니 이제 좀 지친다. 그간의 과정을 생각하면 내가 인내심이 대단하구나 하고 느낀다. 또 어떤 면에서 미련하기도 하고. (사실 혼자서 더 쎈 말들을 내게 던진다) 오늘에서야 내가 왜 그랬을까 이해했다. 나는 젠더를 떠나서는 이 세계의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걸 뼈져리게 느낀거였다. 그러니 기승전 여성학이었던거지...여성학을 공부하려면 남성 역사도 공부하게 된다. 문제를 알아야 하니까. 공부를 하지 않으면 자기 경험 안에서만 판단할 수밖에 없다. 다양한 시선이 경합하는 현실을 보지 못한다. 사회문제도 남의 일인것만 같고 몰라도 사는데 지장 없는 것 같아진다. 기존 질서에 따라가면서도 알지 못한다. 




그냥 그 시간에 내 공부 할껄. 책 한권이라도 더 볼껄. 이제는 그런 후회가 있다. 편협함에서 스스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벗어나면 벗어날 수록 내가 편협하구나 느끼는 게 앎이고 자기확장이다. 그건 때로 쾌락 비슷한 기분을 주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누구를 위해 대신 공부해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성장하길 원하는 동시에 성장하지 않길 원하고, 성적 쾌락을 갈구하는 동시에 두려워하며, 우리 자신의 공격성 ㅡ 분노, 잔혹성, 타인을 모욕하려는 욕구 ㅡ을 혐오스러워하면서도 그 원천이 되는 울분은 좀처럼 해소하려 들지 않는다. 고통 그 자체는 아픔의 원천인 동시에 안도감의 원천이다. 프로이트가 환자들을 대하며 가장 치유하기 어렵다고 여긴 것도 치유되길 거부하는 마음이었다. ㅡ비비언 고닉



이제 이 미친 짓을 그만하기로 한다. 우정은 그냥 우정대로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두 세시간 들어주지도 말자. 생각해보니 그에게도 좋을 게 없다. 되려 의도치 않게 배설 같은 피신처를 만들어 준 꼴이다. 그러고 보면 공부도 행동이다. 공부의 다소 정적인 모양새 때문에 그 에너지가 과소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 그 결과만 중시 한다. 공부도 칼로리가 소모된다. 이 행동은 또 다른 행동을 부른다. 최소한 지속하게 하는 힘을 준다. 



나는 아래 성폭력에 젠더를 넣어도 맥락이 이어진다고 본다. 


성폭력을 개인적인 경험이 아니라 사회 문제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모른다. 성폭력 연구는 기존의 학문 체계, 인문,사회, 자연과학의 모든 전제에 도전한다는 의미에서 인류의 지식을 다시 쓰는 분야다. 가장 중요하게는 연구 방법이 그러하고, 두 번째는 모든 개념에 도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12




  




'상관이 접대 강요' 여경 실명 공개 "회유와 보복 당했습니다." <ㅡ


저 경관을 '여성'으로만 보는 이 파출 소장은 절대 젠더를 읽지 못할 거다. 아마 죽을 때까지. 그러니 보복을 하려고 한 거겠지. 자기 입장에서는 황당 할테니. 





비는 요란하게 내리고 내 미친 짓은 오늘로 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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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어떻게 질문할것인가‘이다. 다시 말해, ‘세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이다. 다양한 시선이 경합하지 않고 하나의 시선이 지배할 때 우리의 인식은 축소되어 편협함을 벗어나기 어렵다. - P6

이 작품들에서 여성이 규정된 방식을 보자. 여성들은 악녀, 속물, 거짓말쟁이, 정신질환자 등으로 나타난다. 여성은 남성의 정신세계를이해하지 못하는 육체적 존재이며, 오직 사랑밖에 모르는 단순한동물, 남성의 ‘위대한 일‘을 방해하는 악마다. 간혹 좋은 평가를받는 여성 인물이 있다면 돌봄과 재생산 노동을 헌신적으로 수행하면서도 침묵하는 경우다. - P8

끝내 개츠비를 죽게 만든 데이지는 ‘쌍년‘이지만, 17 년간 함께 한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성을 죽게 했으며,
또 다른 여성의 헌신에 기대 살았던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는 천재다. 《안녕 내 사랑>에서 벨마의 신분 세탁은 위협, 경멸받지만 개츠비의 신분 상승 욕구는 위대한 삶으로 승화된다.  - P9

권력을 분석하지 않고 자유를 말하는 것, 타자를 주체로서 존중하지 않고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은 예술적 사기다. 자유와 아름다움이 타자를모욕하며 형성되어야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구속이며 추함이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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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진실이어서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어서 진실인 것이다.
- P7

제노사이드는 본디 성별화되어 남성은 죽이고 여성은 강간한다. 여성을강간, 강제 임신시킴으로써 여성과 아이 모두를 국가의 확장으로 여긴다. 남성 문화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은 자랑스럽고 - P11

성폭력을 개인적인 경험이 아니라 사회 문제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모른다. 성폭력 연구는기존의 학문 체계, 인문, 사회, 자연과학의 모든 전제에 도전한다는 의미에서 인류의 지식을 다시 쓰는 분야다. 가장 중요하게는 연구 방법이 그러하고, 두 번째는 모든 개념에 도전할 수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 P12

근대 정치학의 두 축인, 한국의 분과 학문에서 가르치는일반적인 ‘경제학‘이든 정치 경제학이든 그 전제에는 젠더가제외되어 있다. 여성의 몸이 자원화되는 성 산업은 그들의 연구 분야가 아니다. 경제활동에서도 성 역할과 여성의 감정 노동(혹은 여성화된 노동으로서 감정 노동)은 노동의 개념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경제는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보이지않는 마음 heart‘ 으로 움직인다. 여성 노동의 성애화, 섹슈얼리티상품화 없이 인간의 노동은 설명할 수 없다.  - P12

이 책은 바로 성폭력은 젠더에 기반하지만, 젠더는 독자적으로 독립할 수 없음을 논쟁한다. 젠더 환원주의는 현실이아니다. 물론 마찬가지로 다른 사회적 모순들(인종·계급·종교·지역나이 등)도 젠더 없이는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때문에 한사회에서 젠더의 인식론적 지위는 매우 중요하다. 성폭력이남성 문화의 바람대로 정교하게 의미화되어야 ‘억울한 가해자‘도 발생하지 않고, 남성이든 여성이든 피해자의 지위와 무관하게 성폭력 개념이 엄밀하게 적용될 수 있다. 젠더를 모르는 상황에서 성폭력을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성폭력과 관련한 제반 상황(피해자 보호, 예방, 처벌, 지식 생산 등)이 어렵다는의미다. - P14

우리에게 익숙한 지식들은 대부분 자유주의 기능주의 실증주의에 입각한 연구 결과들이다. 이러한 방법론은 문서가없는 이들의 역사, 말할 수 없는 경험, 드러나지 않는 사건을연구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문제는 인간사의 대부분이 비가시화된 영역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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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을 쓰면서 나를 잃는다. 나는 산문으로 꿈을 꿀 수 있기 때문이다." 참혹하고도 가열찬 불안과 상념이 범람할 때, 그리하여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인 듯한 상태가 될 때, 그 무게로부터 완전히 달아날 수 없다면, 달아나는 일과 가장 닮은 행위는 그것에 대하여 무방비하게 감각하고 그걸 기록하는 일일 것이다.-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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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2023-06-24 1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는 글을 쓰면서 나를 잃는다‘ 는 말 멋진 말이네요. 그만큼 몰입한다는 뜻이기도 하겠죠.
글쓰기를 지극히 사랑하는 분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편안하고 시원한 주말 보내세요. 미미님.^^

청아 2023-06-24 18:47   좋아요 2 | URL
페소아는 물론이고 김소연 시인의 글도 더 읽고 싶어졌어요. 모나리자님도 좋은 주말 보내세요^^*

새파랑 2023-06-24 2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는 동안은 복잡한 현실을 잊을수 있는 거랑 비슷한 걸까요? ㅋ

청아 2023-06-24 21:57   좋아요 2 | URL
네! 앞쪽에서 페소아가 잠을 찬양한 것도 그런 맥락인데
글쓰기도 그렇고 독서도 마찬가지 효능이 있네요ㅋㅋㅋ

2023-06-27 17: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6-27 18:1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