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생각하는 페미니즘 철학은 이래요. 타자인 여성이 철학 개념과 이론에 명시적이고 또 암시적으로 배어 있는 여성 평가절하의 논리를 추적하고 비판하는 건데, 여기에 철학의 도구를이용한다는 거죠. 기존의 철학을 겹쳐 쓰고 같이 쓰면서, 뿌리 깊은 기성 철학의 입장에서 벗어나 어디서든지 살아낼 수 있는 다양한 사유들의 목초들, 풀들을 자라나게 하는 일인 거예요. 지워버리고 없애버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계속 겹쳐 쓰다보면 새로운모양이 될 수 있잖아요. 다 지우고 새로운 흰 종이에서 다시 시작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방식 안에서새로운 운동을 발명하면서 살아가는 것들, 이게 저는 페미니즘철학인 것 같아요 - P53

앙시앵레짐ancien regime인 봉건신분제의 왕정국가를 철폐했던 프랑스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 이념을 지탱하는논리도 인간의 이성능력이 평등하고 보편적이라는 데서 출발합니다. 이로부터 인간이라면 모두 이성적이고, 평등하다는 사고가도출됩니다. 이에 따르면, 여성과 남성 모두 이성적이죠. 그런데문제는 뭐예요? 남성만 이성적인 존재인 것처럼 권리와 의무를 주고 여성들에게는 주지 않았죠 - P59

페미니즘은 오랫동안 ‘웨이브wave‘, 즉 물결이나 파도로 은유되어왔죠. 많은대중운동이 고양되고, 가장 큰 파도를 일으킨 시기는 서프러제트>(2015) 같은 영화를 통해서 볼 수 있는 20세기 참정권 운동의시기인데, 이 시기를 페미니즘 운동에서 제1물결의 시기라 칭하고요. 인간으로서 투표할 권리와 자유롭게 존재할 권리를 쟁취하는 운동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자유주의 페미니즘 시기라고도 보통 이야기합니다.  - P59

남성에게는 남성의 성적 특징을 부과하지않는데, 여성에게만 여성의 성적인 특징들, 여성의 외모적 특징들을 여성성이나, 여성이라면 지녀야 할 굉장한 덕성인 것처럼이야기하는 게 틀렸다는 거예요. 남자들에게는 인간적인 특성을두고 말하는데 여자들에게는 인간적인 특징이 아니라 여성의 성적 특징을 부과하는 것들이 부당하다는 거고, 여성도 똑같이 인간으로 대하라는 거죠. 그러니까 스테레오타입으로 대우하지 말라는 거예요.
- P64

울스턴크래프트는 이런 걸 거부하는 게 중요하다고 해요.왜냐하면 스테레오타입으로 누군가를 취급하면, 인간으로서 그누군가가 자기 개성을 만들 수가 없다는 거예요.  - P65

울스턴크래프트는 세상은 진보한다는 강한 확신을 했던 사람이에요. 그 누구보다 계몽주의자였고 이성주의자였죠. 그래서 계몽의 빛을 남성만 독점하지 말고 여성에게도 나누라는 거고, 그때 제일 중요한 건 교육이니까 교육의 권리를 쟁취하는 게 중요하다는 거죠. 《여권의 옹호》에 선거권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아요. 여자도 사람인데 왜 교육의 권리를 주지 않느냐는 게 기본적인 주장입니다.
- P66

여남이 동등한 인간이라는 울스턴크래프트의 주장은 몇백 년 전에 제기되었지만 여전히 진행 중인 주장입니다. 성별 임금격차, 고위직 공무원, 선출직, 행정직의 불균형한 성비들을 보면 그렇죠. 그리고 대부분 여성의 직무 지위가 낮잖아요. 교수 사회만 봐도 그렇지 않나요? 종교 집단도 그렇죠. 목사나 사제 중에여성이 있어요? 기독교 같은 경우에는 몇몇 종단에는 있지만, 여성 목사나 사제가 없는 걸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잖아요.  - P67

한국 사회는 제1물결의 목표도 지금 쟁취가 안 됐죠. 그러니까 페미니즘을 학교 교육에 넣자고 하면 질색하잖아요. 그런데저는 그렇게 질색할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우리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글을 보면서 그럴 문제가 아니라는 걸 충분히 이해할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울스턴크래프트는 이성주의자, 계몽주의자예요. 이성주의자, 계몽주의자로서 봤을 때 남녀가 불평등하고, 이 불평등이 바뀌지 않는다면 페미니즘 이론으로 인간의 평등성을 쟁취해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성과가 있다고생각해요. 그리고 이걸 바탕으로, 우리가 민주주의를 옹호한다면당연히 페미니즘을 옹호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시켜야 한다고 봐요. 그런 점에서 페미니즘이 휴머니즘이라고 할 수 있겠죠.  - P69

제가 예전에 힐러리클린턴 Hillary Clinton 자서전을 읽는데 힐러리 클린턴이 자기 개인의 신용카드를 발급을 못 받았다는 내용이 나와요. 둘이 똑같이공부하고 로스쿨 나와서 변호사 개업을 했는데, 남편인 빌 클린턴Bill Clinton의 보증이 있어야만 힐리리 클린턴의 신용이 발생하는거죠. 경제적 능력의 유무 문제가 아닌 거예요. 너무 이상하잖아요.  - P71

울스턴크래프트가 《여권의 옹호》를 쓰게 된 이유는 1789년 프랑스대혁명 후 프랑스 의회에 제출된 탈레랑 교육 법안에대해 반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교육 법안의 주요 내용이 공화국의 모든 소년에게만 국민교육을 시행한다는 것이었고요, 울스턴크래프트가 바로 그 점에 분개해서 6주 만에 반론을 쓴 거예요.
이 사람 자체가 민주주의자였어요. 페미니즘 교육이 민주주의랑접목되어야 하는 이유를 아시겠죠? 지금의 사회가 남녀 간에 어떤 성차별을 야기하는 사회라면 그걸 교정하는 게 교육 안에 들어가야 되고 그게 민주주의 교육의 실행이라는 생각을 했던 거잖아요. 그가 봤을 때는 아예 교육의 권리가 여성에게 없으니까, 거기에 굉장히 반발하면서 이 책을 쓴 거죠.  - P80

울스턴크래프트는 마치 비꼬듯 영혼에는 성별이 없다고도 말하죠. 신이 구원을 하실 때, ‘너는 남자이니 천국에 가고 너는 여자이니 지옥에 가라‘ 이런 게 아니라는 거죠. ‘인간은 모두이성을 갖고 있고 평등하다. 지금 보면 굉장히 소박한 신념이에요. 뭐라고 하느냐면 남녀가 서로 다른 미덕을 추구해야 한다는건 신에 대한 모욕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똑같이 인간에게 불멸의 영혼을 줬으니까요. 그러니까 여자들도 남자들이 하는 거똑같이 하게 해달라고 하는 거죠. 이렇게 강하게 이야기를 해요.
- P81

이 책에는 이후의 페미니스트들한테 많은 영감을 준 이야기가 많아요. 가정의 절대적 지배자로 구는 남편을 비판할 뿐 아니라, 아내와 자녀 위에 군림하는 당시의 중산층의 결혼생활은합법화된 매춘이라고도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여자가 결혼을하는 건 일종의 성매매다, 즉 법적으로 공인된 성매매라는 거죠.
이런 이야기들은 《성의 정치학》을 쓴 케이트 밀렛Kate Millett의 논의와 일맥상통하기도 해요. 부부가 동등한 위치일 수 없는 가정안에서 여자들은 번식을 위한 동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거죠.
- P81

요새 SNS에서 여성들이 이런 말을 하죠. "우리는 꽃이 아니고 불꽃이다." 울스턴크래프트도 아마 크게 동의했으리라 생각합니다.  - P84

울스턴크래프트는 루소만이 아니라 많은 남성 계몽 사상가들이 쓴 글을 조목조목 비판합니다. 이들은 여성을 나약하고사회에 무익한 존재로 그려내요. 특히 《실락원》을 쓴 존 밀턴JohnMilton을 언급하고 있는데요. 밀턴이 최초의 어머니라 불리는 이브를 부드러움과 매력적 우아함을 지닌 존재, 즉 남성의 시선과 감각에 즐거움을 주는 존재로 그려냈다는 거예요. 밀턴의 이야기에따르면,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관능적인 즐거움, 섹슈얼한 즐거움을 주는 존재, 그래서 매력적인 우아함과 유순하고 맹목적인 순종만을 타고난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 P90

여러분 어린이날 아시죠? 그런데 어린이날이 있다는 건 뭘 의미하는 걸까요? 왜 어른의 날은 없고 어린이날은 있을까요? 왜냐면 나머지364일이 다 어른의 날이기 때문이죠.  - P91

실존철학의 기본 개념은 자유예요. ‘인간이 어떤 식으로자유로워질 수 있는가. 이게 실존철학이 던지는 질문이에요. 아주 간단히 이야기하면, 자신이 타자의 위치에 놓여 있을 때는 자유롭지 못하고, 주체의 입장에 섰을 때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게정말로 보부아르가 이야기하고 싶어 했던 자유의 개념입니다. 그자유란 주어진 게 아니라 실존을 통해 참여를 해서 쟁취하는 거라고 했죠. 그리고 이 자유의 문제를 직접적인 사회적 문제, 특히여성이라는 문제에서 시작했어요.  - P103

시몬 드 보부아르는 철학이 굉장히 구체적인우리의 경험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서술을 하고 있는 거예요. ‘실존‘이라는 말 자체가 우리가 가진 시간과 공간이라는 맥락안에서 벌어지는 현상에 대한 탐구이고, 이러한 현상으로부터 철학적 성찰을 시작합니다. 보부아르는 그걸 직접 이 책을 통해 생생하게 저술했다고 볼 수 있는 거죠.
- P106

만약에 남자 교사가 단란주점으로 2차, 3차를 간 다음에 사라졌다고 해봐요. 어디를 갔을지는 미스테리지만 우리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그걸 보고 문란하다‘고 하지 않잖아요. ‘부적절했다‘고 하지 ‘문란하다‘고 하지 않아요. 그리고 어떤 사람은 그런 걸 두고 사회생활이라고 하죠 - P110

요샛말로 ‘인싸 (인사이더)‘, ‘아싸(아웃사이더)‘ 같은 이야기로 알 수 있어요. 누군가를 타자로 딱 배척하는 거죠. 우리는 누군가를 적으로 만들면 하나가 되잖아요. 바로 보부아르가 그렇게 이야기를 해요. 어떤 집단이 하나가 되려면 나와대척점에 있는 타자, 나와 다른 존재를 세워놓으면 된다는 거예요. 실은 동일성이란 우리가 가진 본질 때문이 아니라, 외부의 타자를 배척함으로써 획득되어왔다는 거죠. 그게 되게 중요하다는거예요 - P111

어떤 의미에서 남성은 성적인 존재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거예요. 이런 걸 특권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남자들은 자기가 남자라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죠. ‘있잖아, 나는 남잔데…..‘ 이러지 않잖아요. 뭔가를 의식한다는 건 주로 이런 거죠.
예를 들면 면접을 보러 갈 때 자기 면접관을 의식하잖아요. 면접관을 의식한다는 건 그들한테 내가 잘 보일지 외부의 눈을 의식한다는 거죠. 그건 나를 언제나 판단의 대상이라는 위치에 놓는거예요. 그러니까 그들이 언제나 주체이고 나는 그들이 판단해야될 일종의 대상이에요. 뭔가를 의식한다는 건 나를 대상으로서의식하는 거예요. 내가 옳은 것인지 틀린 것인지 나 스스로 결정이 안 된다는 거죠. 외부에서 결정해준다는 거잖아요. 면접이라는 게 딱 그렇듯이.
- P112

남성은 자신의 남성성이 열등한 것이라는 방식으로 자기를 의식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뭐냐면, 남성은 자기 자신을 섹슈얼한, 성적인 존재 혹은 젠‘
더화된 존재로 자기를 이해해본 적이 거의 없다는 거예요. 

남자라는 존재는 언제나 인간이었을 뿐, 자기를 성을 가진 존재로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거죠. ‘인간‘이라고 하면 그건 언제나 남성이었잖아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인체비례도> 같은 거 생각해보면 인간이 누구죠? 남자잖아요. 

시몬 드 보부아르는 여성은 언제나 이러한 인간인 남성, 자기 자신을 성적인 존재로 사유할 필요도 없는 제1의 성에 속해 있는 존재가 아니라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인 타자이자 제2의 성의 자리에 있다고 설명해요. 

제2의 성인여성 타자는 제1의 성을 언제나 동일한 인간으로 확인하게 하는역할을 담당해온 거죠

⭐⭐⭐ - P113

여성성이라고 하는 건 없는데 사회에서 만들었다는 거예요. 왜? 남성이 자기 힘을 더 유지하기 위해서.  - P116

우리가 양성평등‘을 다룰 때, 여성과 남성을 대칭적인 상태로 보면서 ‘양성평등‘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큰 문제가 있다고생각해요. 그건 페미니즘의 기초가 안 된 상태예요. 양성평등이라는 말은 두 성이 평등하다라는 전제를 내포한 말이죠. 하지만지금껏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제2의 성인 여성은 제1의 성인 남성과 결코 평등하지 않아요. 남성은 인간인 반면 여성은 남성의 반대항인 비인간일 뿐이니까요.  - P122

실존철학에서 타자의 위치에 놓여 있다는 건 자유의 성취를 이룰 수 없다는 걸 의미해요. 그런데 실존주의에서 인간에게중요한 건 자유거든요.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자유. 그런데 여성이 언제나 타자의 위치에 있고 자유를 성취할 수 없다면 부당한거잖아요. 

보부아르는 여성의 위치가 타자의 입장에 있다고 하면서 자신의 철학적 입장을 끌어오는 거죠. 실존주의에서 타자성은인간을 억압하고 자유를 억압하고 인간이 가져야 될 고귀한 어떤것들을 갖지 못하게 만드는 것인데, 지금 여성이 타자의 위치, 비자유의 위치에 있다면 이것을 내버려둬야 되느냐는 거예요.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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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 thought. "I want to go there. I want to go to Vienna,
to Paris, to Rome, to Athens.‘ Her green eyes were boredand angry. Through the window she watched the littlevillages and hills of England.
- P5

I like to go south in the winter. Life is easier in the sun,
and northern Europe can get very cold in the winter. Lastyear, 1989 it was, I was in Venice for October. I did somework in a hotel for three weeks, then I began slowly tomove south. I always go by train when I can. I like trains.
You can walk about on a train, and you meet a lot ofpeople.
- P14

He put his book down and closed his eyes. But he couldnot sleep because the two young people didn‘t stop talking.
The young woman sat down and said in a quieter voice:Carl, you‘re my brother and I love you, but please listento me. You can‘t take my diamond necklace. Give it backto me now. Please!‘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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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미러링 mirroring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미러 mirror가 거울이죠. 미러링은 거울처럼 되비추겠다는 거잖아요. 어떤게 문제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못 알아들으니까 ‘내가 이렇게 문제가 있다고 하는 행동이 어떤 건지 너도 한번 당해봐. 이 입장에처해봐 그런 거죠. 모방하는 거죠. 미러링의 핵심은 모방이고, 모방을 통해서 효과를 발생시키는 거잖아요. 그러면 어떤 일들이벌어지죠? 소통이 되잖아요. 소통이 된다는 건 알아듣는다는 거잖아요. 미러링이 다 옳다는 게 아니라, 알아듣게 된다는 거죠. 우리가 여성들에게 좋은 어떤 언어체계와 사유체계를 만드는 건 좋은데, 그걸 만들어내기 위해서라도 ‘오염된 말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우리가 살고 있는 언어체계, 전통과 문화세계가 필요한 거죠. 그걸 다 벗어던질 수도 없는 거예요.
- P43

 ‘맞다‘ 라고 생각하는 걸 의심해보는 일에서 철학이라는 작업이 시작되는데, 이런 걸 아포리아eporia 라고 하거든요? 그런데 바로 페미니즘 철학이 같은 일을 해요. 그 철학들이 기존의 남성 철학자들, 가부장제 철학에 문제가있으니까 아무것도 보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는 거죠. 스스로를억압해온 것일 수 있는 언어들과 사상들에서 출발해 그것들을 의심해보고 길을 잃으면서 간다는 거예요. 또 그 안에서 반대만 하는 게 아니라 여성들의 언어, 여성주의 사상을 전염시켜요. 기존의 사고와 가치를 다시 철학이라는 개념으로 부수고 다시 새로운개념으로 창조하는 것들이 페미니즘 철학의 중요한 입지라는 겁니다.
- P45

페미니즘 철학은 기존 가부장제 철학에 반대하는 반反철학이거나 여자가 하는 철학이 아니고, 또 여성만을 위한 철학도 아니라는 거예요. 저는 페미니즘 철학이라는 게 여성주의적 가치에대해 질문하고 탐구해보는 철학이면서 페미니즘의 내용들과 개념들을 철학적인 개념으로 만들어보는 철학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작업의 효과는 기존 철학의 주제들, 그러니까 인식론,
존재론, 윤리학 같은 것들을 다시 검토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러한 페미니즘 철학의 활동은 근대성에 대한 문제 제기와 그 대안을 마련하려는 현대 철학과 조우하죠 - P47

현대에 들어서 포스트모던이라는 조류가 대문자 주체의죽음을 선언했죠. 더 이상 대문자 주체의 서사로는 안 되고 우리가 서 있는 이 위치에서 철학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건데, 이것과페미니즘 철학의 질문 방식과 문제의식이 서로 맞아떨어져요. 서로 연결될 수 있는 측면이 있어요. 포스트모던 철학과 여성주의철학이 공유하는 문제의식의 핵심은 바로 이분법에 대한 문제 제기예요. 이분법은 A와 not A로 가르는 것, 그리고 A에만 가치를주는 거죠. 대문자 주체에 문제를 제기한다는 건 이런 이분법적방식으로만 세계를 이해하려고 하는 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기도 하거든요. 여성주의 철학과 상통하는 지점인 거죠. 그런 점에서 페미니즘 철학이라는 건 반철학이거나 여자들이 하는 철학이거나 여성만을 위한 철학이 아니라, 철학이 나아가는 새로운 길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 P47

그래서 페미니즘 자체도 가령 가부장제에 반대한다는 입장에서만 끝나면 안 되는 거예요. ‘남자들이 여자들을 억압한다.
그 억압에서만 벗어나면 된다‘로 그칠 수 없다는 것이죠. 페미니즘에 대한 흔한 오해 중 하나가 남자들을 미워한다는 거죠. 물론남자들을 미워하기도 하지만 개별 남자들을 다 미워하는 게 페미니즘 목표는 아니잖아요. 남성에 대한 증오와 미움이 페미니즘의근본 언어는 아니잖아요. 거기에 그쳐버린다면 페미니즘은 그저가부장제의 반反담론으로만 존재할 뿐이죠. 하지만 페미니스트들은 기존의 언어나 사유로는 파악할 수 없었던 가부장제라는 구조를 발견하고 그것을 철학적 사유로 제기했어요.
- P48

페미니즘은 자기 정의를 업데이팅하고 갱신하는 구성 활동이에요. 예전에는 철학을 인식의 활동으로만 생각했어요. 지금은 철학을 활동, 수행이라는 입장에서도 이야기해요. 의미와 실천이 함께 작동하는 어떤 과정이라는 거죠, 페미니즘이 철학적입지를 분명히 할 수 있는 건, 탈맥락적 보편이라는 말의 허구성을 비판하는 현대 철학의 관심이 바로 페미니즘의 관심과 맞닿아있기 때문이에요. 탈맥락적인 것이 아닌, 맥락을 갖는 차별들과문제들에서 시작하는 게 페미니즘이니까요.
- P50

이제는 철학 안에서도, 우리는 이 세계에서 우리의 위치에서 말하고 사고하고 행위하고 있다고 해요. 철학적 사유는 그냥이야기하면 안 돼요. 내가 말하고 있는 시간과 공간을 표시해야한다는 거죠.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같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해요.
"나는 달력도 지도도 없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페미니즘 철학도 마찬가지예요. 페미니즘 철학은 자기의 지도, 자기의시간이 있어요. 그리고 지금의 철학적 사유들은 계속 새로운 개념들을 만들어내고, 기존의 철학이 틀린지 옳은지를 다시 검증해보죠. 이게 틀린 것인지 옳은 것인지. 그리고 검증을 통해 폐기해야 할 것은 폐기하고요. 그런 과정들이 계속 있습니다.  - P51

현대의 포스트모던 철학자들은 철학이 오랫동안 사유가보편적이라고 해왔지만 사실 사유 안에는 권력이 숨어 있다고들하죠. 미셸 푸코는 권력의 ‘장치‘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사유가 순수하게 시공간과 맥락을 떠난 인간 영혼의 활동, 정신의 활동인것처럼 말하지만 사유와 지식이야말로 권력과 매우 큰 관계를 맺고 있고, 이데올로기면 이데올로기, 지식이면 지식이 기존의 질서에 따라서 작동하도록 만든다고 하잖아요. 페미니즘 역시 그렇죠. 여성들의 많은 생각과 지식, 가령 ‘여성이란 어떤 존재다‘라는지식, 참되다는 지식이 가부장제 권력을 통과해서 자기의 지식이 됐다는 거예요
🍭🍭🍭 - P51

들뢰즈Gilles Deleuze 같은 사람은 철학은 생성하는 사유고 어리석음으로부터 벗어나는 배움의 운동이라고 해요. 그래서 철학은 동일자를 확인하는, 즉 A는 A다‘라는 걸 확인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고 새로운 사유의 방법을 증가시키는 작업이라는 거죠. 이제 철학은 새로운 방식의 사유를 모색하는 것을뜻합니다. 
🍭🍭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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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많으면 소심해진다. 아니 소심해서 생각이 많은 건지도 모르겠다.  - P9

기사는 공원 입구에차를 세우고 3만 원을 불렀다. 이미 기가 꺾인 나는 뭐라 항변은 못하고 불편한 표정으로 그에게 카드를 건넸다. 그가 내 표정을 읽었는지여기 들어오면 남는 게 없다며 다시 한 번 지역사회를 강조했다.
돌아갈 길을 생각해 그에게 미터기를 켜고 기다려달라 하려던 마음은 이미 달아난 지 오래였다. 소심하지만 뒤끝은 있는 나는 3만 원이 결제되고 돌아온 카드를 받고는 있는 힘껏 택시 문을 닫았다.
앙갚음이라도 하듯 먼지를 일으키며 택시는 사라졌다.
- P14

일주일 뒤 회사 앞 카페에서 그녀와만났다.
화사한 꽃무늬 남방에 청바지를 입은, 작은 얼굴에 보조개를 파며인사하는 그녀의 첫인상은 충분히 의외였다. 스모키 화장에 고스 롤리 복장을 즐기는 소설 속 여주인공을 떠올려왔기에, 저자의 완전히다른 스타일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 P22

애써 호감을 감추긴 했지만 문제는 그녀가 가고 나서였다. 다음 주에 그녀를 만날 날이 벌써부터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단정한 이목구비와 꾸민 듯 꾸미지 않은 옷차림, 그리고 그런 외모와는 상반되게 거침없는 호흡과 도발적인 상상력을 보이는 그녀의 작품도 좋았다. 그부조화가 신선했고 과연 그녀의 어디에서 그런 이야기가 튀어나왔는지도 궁금해졌다.
- P23

그녀는 잔을 비우고 반찬으로 나온 생오이를 손으로 집어 먹었다.그 모습이 도토리를 먹는 다람쥐처럼 예뻐 보였다
- P24

"다 내 잘못이죠. 내가 잘못해서 재연이가 이렇게 된 거라고요. 다나 때문이라고요."
놈이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과속방지턱을 지나며 차가 덜컹댔다.
덩달아 내 감정도 들썩이는 게 느껴졌다.
"진짜 내가 신경을 썼으면 이럴 일 없었는데……. 진짜 내가 상병신이지 뭡니까. 다 내 잘못입니다."
"제 잘못도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자책에도 경쟁심이 있나 보다.
"아닙니다. 당신보다 내가 더 문제였어요. 내가 더 재연일 힘들게했어요."
- P30

민망한 미소와 함께 혀를 쏙 내밀며 그녀가 말했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이대로 그녀를 보내기가 싫어졌다.
뭐 하나 제대로 결정 못하는 나였지만 그때는 결정하고 자시고도 할거 없이, 방언 터지듯 말이 튀어나왔다.
"좋은 날이니까 우리 한잔 더 할까요? 제가 살게요."
"아뇨."
그녀가 브레이크를 밟았다. 심장이 덜컹 멎었다.
"택시비 내실 거잖아요. 술은 제가 살게요."
못 들은 척 우리의 대화를 듣던 택시기사가 허허, 하고 웃음을 흘렸다.
- P39

"예. 그때 제 유일한 위안은 남자친구를 만나 개 자취방에서 요리해먹고 〈무한도전〉 같이 보며 지내는 거였어요. 둘 다 넉넉지 못해도 음식 사서 해 먹으면 싸거든요. 그리고 한강 같은 데 산책하며 데이트하면 돈도 안 들고….….. 아무튼 그 친구가 취업만 되면 부모님에게 인사를 드리게 하려고 했어요. 번듯한 남자친구가 있으면 더 이상 선을 보라고도 하지 않겠지, 라고 생각했죠.  - P41

"마음을 독하게 먹고 집에 들어갔어요. 아무것도 부모님께 묻지도따지지도 않았어요. 그러곤 독립을 준비했어요. 스스로 사는 법, 혼자살 공간, 나만의 일, 그런 걸 위해 부모님 말에 복종하며 살았어요. 월급을 모으고, 선보라고 하면 옷을 사 입는다는 핑계로 돈을 받아 모으고, 선은 보지만 계속 거절을 하면서 시간을 벌었어요. 부모님과 함께저녁을 먹기 싫어 일부러 야근을 하고, 아니면 극장에서 시간을 때우다 들어갔어요. 그거 알아요? 비교적 싸게 시간을 때울 수 있는 곳이야구장과 극장이라는 거? 
(도서관도 있는데ㅋ) - P42

영화를 보며 늦게야 깨달았어요. 말하자면 영화가 제 스승이었던 거죠."
"그중에서 특히 좋았던 영화는 뭐가 있어요?"
"미스 리틀 선샤인>? 그거 알아요?"
"잘 모르겠는데요."
"거기에 엉망진창 가족이 나와요. 근데 그들은 서로 구제불능이란걸 알기에 한편이 돼요. 우리 집과는 정반대죠. 누군가 못나게 굴면 우리 집에선 추방될 거예요."
- P43

먼저 식사를 마친 놈이 카운터로 향했다. 밥값을 계산하려는 건가?
보쌈을 추가로 시킨 건 녀석이니 녀석이 내려는가 보다. 나로서는 생큐다. 근데 아니다. 놈은 카운터에 놓인 녹말이쑤시개를 집어 들고 문옆 커피 자판기로 향했다. 그럼 그렇지. 덩치만 큰 좀생이 녀석 같으니라고. - P53

내가 신발을 신으며 시간을 끌자 놈이 계산을 했다. 쌤통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놈이 가게에서 나오며 길 건너 모텔의 네온사인을 향해 턱짓을 했다.
"밥은 내가 샀으니 모델비는 형씨가 내쇼."
내가 어처구니없어 하자 놈이 덧붙였다.
"상행선인지 하행선인지 결판이 안 나는데 어딜 가. 가서 끝장날 때까지 따져보자고."
- P55

노래를 따라 부르던 녀석이 휴게소 표지판을 보고 기성을 지른다.
마치 밥그릇을 맞이하는 개처럼 좋아한다. 짐승 같은 놈, 어차피 오늘이 지나면 놈을 더 볼 이유도 없다. 조금만 참자. 하지만 그러려면 목줄 정도는 채워야 하겠다.
- P65

재연과 함께 떠난 첫 여행지가 남해였다.
그녀는 바다와 산이 겸비된 곳을 사랑했다. 설악산에 오르고 미시령을 넘어 속초에 내려가 1박을 하고, 강화도에 갔다가 마니산에 오르고, 그렇게 산과 바다를 한꺼번에 섭렵할 수 있는 곳을 좋아한다고내게 말했었다. 그것이 힌트가 되어서 나는 그녀에게 남해를 여행지로 제안했다.
- P72

"아따. 이모, 여전하요?"
"나가 바빠 와볼 새가 없었구먼요. 내려오면 볼쎄 들러부렀지."
"거시기, 잘 있지요잉?"
앤디의 사투리가 짙어지고 있었다. 나는 몰리는 관심과 그에 따른앤디의 오지랖이 심히 부담스러운 나머지 1미터 정도 그에게서 떨어져 걸어가야 했다.
- P101

"여그 누가 왔는지 나와봐라."
그러자 식당 안쪽에 앉아서 스마트폰을 보던 30대 후반의 여자가앤디를 보고는 놀라서 일어났다. 여자는 집 나간 개라도 본 듯 급히슬리퍼를 신고 앤디에게 다가왔다.
"도련님, 갑자기 뭔 일이다요!"
(집 나간 개ㅋ) - P102

놈의 등판을 보고 달리며 방금 전 상황을 복기했다. 아까의 사내는앤디의 친형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앤디는 집에 민폐를 끼친 동생인것이고…. 근데 강병균이라고? 앤디가 왜 영어 이름을 쓰는지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 P105

"아따. 인나라, 제주 안 갈 거나?"
숙취에 골골대는 나를 앤디가 깨웠다. 아침 일곱시였다. 비행기 놓친다며 녀석이 반말로 재촉해댔다. 지난밤 말을 트기로 한 게 떠올랐다. 반말로 전라도 사투리를 들으니 좀 함부로 대해진다는 기분이 들었다. 녀석이 고향을 뜨는 대로 사투리를 자제해주길 바랄 뿐이었다.
- P122

나도 울고 있었다. 휴지로 눈물을 닦아도 곧 또 젖어들었다. 코도나와 풀어야 했다. 반면 그녀는 오래 준비된 변론을 마친 변호사처럼침착하게 자리를 정리했다. 카페 구석에 앉은 우리 둘은 이별을 나누며 감정이 폭발한 연인의 클리셰였다.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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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monster의 라틴어어원인 ‘monstrare 의 뜻이 ‘보여주다‘ 예요. 괴물이란 말 자체가보여주다‘라는 거죠. 실은 언제나 보여주는 상태로 등장하는 거예요. 동일률로 포착되지 않아서 그렇지, 언제나 등장하는 형태로 있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괴물이라는 존재는 신화는 성서든,
많은 텍스트 안에서 지혜를 획득해야 할 존재가 거쳐야 할 관문으로 등장했어요. 그런 점에서 타자와 괴물은 굉장히 긴밀하죠.
- P35

이 이야기 속에서 처음으로 인간이라는 존재를 해명한 사람은 오이디푸스지만, 그 질문은 스핑크스라는 괴물이 던진 거예요. 괴물이라는 존재는 실은이토록 많은 지식과 경험의 원천인 거죠.
- P36

‘철학은 보편자에 대한 것이 아닌 게 아닐까?‘ 철학이 보편자의 학문만이 아닐수 있다는 가능성이 이야기되기 시작하고, 철학에서 보편자라고했던 것들이 비판되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보편자가 아니었던 존재들, 혹은 철학에서 타자라고 이야기했던 영역들이 철학의 새로운 입지를 마련하는 데 중요한 위치에 서게 돼요. 

철학을 더 이상보편적이라고 하기 어려워졌고, 보편학문으로서 철학이라는 말이 무용해지기 시작했으니까요. 예전에는 철학이 모든 걸 다 했어요. 만학의 학문이었던 거죠. 철학이 과학, 수학, 심리학……… 온갖 걸 다 했어요!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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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2-02 01: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주문하고 아직 배송은 못받아서 계속 설렘만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읽으시는 미미님의 리뷰 많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

미미 2022-02-02 10:16   좋아요 1 | URL
다른 책이랑 번갈아 보느라 조금씩 읽고 있어서요^^; 난티나무님도 쟝쟝님도 좋다고 하셔서 구입하고 이제 시작했는데 잘샀다는 생각이 들어요!

공쟝쟝 2022-02-02 2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미미 2022-02-02 23:27   좋아요 0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