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 미트 - 인간과 동물 모두를 구할 대담한 식량 혁명
폴 샤피로 지음, 이진구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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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플 때와 아프지 않을 때, 집에서 배출하는 음식물 쓰레기 양에 현격히 차이가 난다. 흠! 씁쓸하지만 인정해야겠군. 나는야 전기 없어도 작동되는, 인간 음식물 처리기라네! 귀한 먹거리를 쓰레기 처분하는 꼴을 참기가 어려워서, 수행자의 마음으로 삼킨다네! 내키지 않지만, 아주 가끔 이런 이유로 고기를 먹기도 한다. 하지만 대개 나는 고기와 가깝지 않다. 




[Clean Meat]는 '고기'에 대한 책이다. 인간의 '고기 욕망'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채식주의자인 유발 하라리가 서문을 써서 힘을 실어주는 이 책에서 저자 폴 샤피로는 인간의 고기 욕망이 초래할 암울한 미래를 경고한다. 소위 선진국에서 채식주의 열풍으로 육류 수요를 감소시킨들, 인도와 중국 등에서 휘몰아 올라오는 육식 열풍 때문에 여전히 둑은 펑펑 터질 것이라고 예견한다. '녹색혁명' 노벨수상자인 노만 블로그Norman Borlaug가 식량증산으로 인류에게 시간을 수십 년 벌어주었을 뿐, 여전히 '인구괴물'의 위협이 21세기 지구를 노린다고 한다. 



뻔히 예측되는 결말로 추락하지 않기 위해 행동이 필요한데, 대표적인 것이 '고기 덜 먹기'이다. 보다 정확히 말한다면, 방목이건 공장식 축사에서건 인간의 혀를 즐겁게 하기 위해 키워진 고기를 덜(안) 먹기이다. 대신 세포농업 cellular agriculture으로 배양된 "청정고기"를 한 대안 삼을 수 있다는 것이 [Clean Meat]의 핵심 주장이다. 실험실에서 배양된 고기는 에너지 효율성과 친환경성, 위생성, 낮은 판데믹 리스크, 동물권 보호 등 여러 차원에서 유익할 것이라는 근거를 끌어온다. 




다만, 2021년 현 시점에서는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니 상용화 전망은 아직 불투명하다. 무려 33만 달러짜리 소고기 패티로 만든 햄버거가 시식장에서 한 입 베어 물린 채로 덩그러니 놓였다는 기사 많이 트윗되지 않았는가? 실험실에서 제조된 단백질 덩어리가 신기해 보여도 덥석 물어 육질의 풍미를 느껴 보려는 이들이 많지 않을 것 같다. GMO를 '프랑켄 푸드'라 했듯, 어쩌면 Clean Meat에도 대중이 회의적일지 모른다 (그런 이유로, 제품 개발 관련 이익집단들은 cultured meat, cultivated meat, cell-based meat 등의 용어 대신, 일부러 'clean'이란 형용사를 택했다) 즉, 클린 미트가 상용화되기까지는 기술 향상은 물론이거니와 대중의 인식, 정부 규제, 생산가능 규모와 생산비용 등 산적한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포경산업으로 씨가 말릴 뻔한 고래들의 고통에, 노예선slaveship, KKK단, 죽은 남편 따라 살아 있는 아내를 화장시키는 인도 사티 Sati관행에 격분하다. '인간으로서 할 짓이 아니다'라며 선조들의 비윤리적, 비인간적 행위에 격분한다. [Clean Meat]에서는 마찬가지로 불과 20년만 지나도 우리 후손들이, 20세기 혹은 21세기 초 인류가 순전히 스테이크, 우유와 가죽을 위해 가축을 도살한 데 경악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만큼, 클린 미트 상용화의 전망이 어둡지 않으며 그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뉘앙스를 담고 있다. 



Grand Ball Given by Whales (Vanity Fair, 1861)



[클린 미트 Clean Meat] 가  흥미로웠던 이유는 새롭게 부상하는 (녹색)사업으로서의 '클린 미트,' 이면의 정치경제적 관계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 대다수는 '그저 소비자'이기 때문에, 어떤 이들이 이 사업에 뛰어들었고 어떤 이해당사자가 이 사업에 투자하고 어떤 논리로 클린 미트를 옹호하는지 알기 어려운 마당에 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 'clean meat'라는 명칭을 협의하기까지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 'clean meat'를 환경논리로 포장했을지라도 돈 냄새를 맡고 실리콘 밸리가 어떻게 들썩이는지 등을 생생하게 현장 리포트 한다. 'clean, 청정'이라는 용어가 기저의 치열한 전략전을 놓치게 할 수 있지만, [클린 미트]는 노련한 리포터처럼 적당히 더하고 빼가며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Clean Meat] 개발자들의 "다수"가 채식주의자 혹은 채식 지향이 강하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개발자의 개인적 가치관, 특히 먹기 문제 관련한 실천이 이 분야 산업의 향후 방향지음에 얼마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 나는 궁금하다. 






[전쟁과 음식]


[클린 미트]가 전쟁 등 특수 상황에서 식량 정책과 수급을 주로 다루는 책은 아니지만 중간 중간 에피소드에서 그에 대한 관심을 읽을 수 있다. 특히 WW1과 WW2 관련해서 유럽과 북미에서의 식량 공급에 대한 짧은 언급들이 있는데 굉장히 흥미롭다. 이 주제를 특화해서 다룬 책을 찾아봐야 겠다 


* 예를 들어, 독일군은 비행선 Zeppelin 을 전쟁용도로 많이 공급하기 위해, 독일뿐 아니라 동맹국들에게도 소시지 생산을 중단시켰었다 한다. 일차세계대전 기간 동안에. 왜냐하면 사진속 비행선 1대 제작하는데 무려 25만 마리 송아지의 내장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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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공부하러 간다는 말은 거짓말. 적어도 지키지 못할 말. 

지나치려던 서가마다 발목을 붙잡길래, 결국은 쌓아놓고 책만 읽다가 Going Home!


오늘은 어쩌자고, 정기간행물 서가를 천천히 지났던가! Newton, 1월호 특집호 기사 제목이 확 들어온다. "코로나 시대의 심리학" 


이 특집 기사에서는 '코로나 피로 covid fatigue syndrome, 코로나 블루' 등이 키워드일거라 짐작했는데, 의외로 일본의 사회적 상황을 주로 다루고, 일본 사회심리학자들을 많이 인용한다. 여기서 키워드는 "자숙경찰 self-restraint police"인데, 코로나 19 유행으로 일본에 생겨난 신조어라고 한다. 일반인이 경찰처럼 타인의 행동, 주로 Covid-19 관련한 행동을 규제하거나 비난하는 것을 말한다. 일본어 까막눈이라 아쉽지만 검색해보니 "야쿠자보다 더 무서원 자숙경찰" 뉘앙스의 제목 기사가 여럿이다. 이 소위 자경경찰 행위에는 다른 지역 번호의 차량에 '야유나 비난,' 스티커 부착하거나 운전자 위협, 혹은 투석. 헬스클럽이나 공연장 등 영업점에 경고 스티커 부착하거나 기물파괴, 마스크 미착용자에 대한 과잉 비판 등이 포함된다. 




기사에서는 이런 '자숙경찰'의 등장과 용인(?)을 일본 사회의 특수성과 연결지으려 한다. 일본 사회 심리학자 기노시타 도시코나 야마기시 도시오를 인용하며, "집단 응집성 높은 집단에서 동조 행동 일어나기 쉬우"며, 일본 사회가 상호감시 상호규제를 많이 하는 구조라고 지적한다. 즉, 동조 현상의 기저에는 거칠게 말하면 이지매, 우아하게 말하자면 집단 성원에게 미운 털 박히지 않으려는 마음이 작동한다는 것. 


코로나 장기화로 인한 우울감과 피로감 호소가 보편적인 수준에서 발견된다할지라도, 사회마다 특유의 역동으로 인해 시민들이 대응하는 양상이 다르게 드러나는 부분. 과학잡지 Newton에서 이처럼 재미있게 다뤄주다니 정기구독하고 싶어지는 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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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1-22 20: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잡지는 도서관에서 보는게 제일 좋음 ㅋㅋ ‘자숙경찰‘이란 일드?만화도 있었던걸로 기억하는데 ,,,,

han22598 2021-01-23 07: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점이네요 ^^ 미국에는 방목시민은 둘째치고 방목경찰이 난무. 적어도 코비드 문제에 대해선 말이죠.

얄라알라 2021-01-23 13:34   좋아요 2 | URL
네, han님^^ 저도 바로 대비되는 국가로 미국이 떠올랐어요. 이 기사를 더 깊이 이해하려면 정치체계 정치의식 뭐 복잡한 걸 더 많이 끌어와야할텐데 평소 이 쪽 관심이 빈약하다보니 기사를 액면 그대로만 이해하게 되더라고요^^

고양이라디오 2021-01-23 10: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재밌네요ㅎ 신기하네요ㅎ

페크pek0501 2021-01-23 13: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코로나 블루, 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해요. 저도 만약 글쓰기와 독서가 없었다면 이 긴 시간들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2021-01-23 14: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험
울프 스타르크 지음, 키티 크라우더 그림, 이유진 옮김 / 살림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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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야쿠프]의 저자 유작이라는 이유만으로 읽은 동화. ˝월귤 잼˝이라는 물질이 무형의 기억, 감정, 생의지를 북돋우고 연결해주는 장치로써 처음부터 책 끝까지 고개를 내민다. 원하는 걸 알아 차리고, 하게 해주는 것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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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01-23 13: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흔히 사랑하면 그 상대를 소유하려고 하잖아요. 그래서 질투심 때문에 다투기도 하고, 헤어지자는 연인에게 보복을 하기도 하죠.
진정한 사랑은 상대를 웃게 만드는 것, 이라고 생각해요. 늘 마음 상하지 않게 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겠죠.
사랑이란 어려운 것, 이란 생각이 듭니다. 올바르게 사랑하려면 인간성, 인품, 성격 등도 중요한 변수 같습니다.
 
나는 왜 이 고전을
고미숙.48인의 대중지성 지음, 고미숙 기획 / 북드라망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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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 고전을]의 서문은 예상 그대로 총 기획자인 고미숙 박사가 썼다. "왜 책 읽고 글을 써야하는가?"에 대한 썰을 서문에 풀었다. "(21세기는) 대중이 곧 지성인이 되는 시대다. 대학이 이마 지성의 전당임을 포기한 지 오래(6)"이기 때문에 지성을 창조하기 위해 "반드시 써야 한다(7)"고 총기획자는 역설한다. 이 프로젝트에 동참한 48명은 고미숙이 운영하는 <감이당 & 남산강학원> 학인 48인으로서 대부분 책을 써 본 적 없는 이들이라 한다. 고미숙은 이들을 대중지성이라고 명한다. 


48인 각자가 A4 1~2쪽 분량으로 쓴 에세이를 모아 낸 책이 [나는 왜 이 고전을]이다. 글쓴 이가 48인이라 해서 48권의 고전이 등장하지 않는다. 감이당에서 같은 책을 읽고 세미나를 했기 때문에, 중복되는 책들이 계속 이어진다. 예를 들어, [안티 오이디푸스]는 총 9회, [천개의 고원]은 2회, [도덕의 계보학] 총 3회, [동의보감]과 [장자] 각 3회 등등. 짐작하겠지만, 그 유명한 벽돌책 [천개의 고원] 리뷰를 A4 1장에 욱여 넣기는 쉽지 않다. [나는 왜 이 고전을]은 48인의 글쓴이가 왜 책읽고 글 쓰는 데 공을 들이게 되었고, 책 읽으며 삶이 어떻게 변화하는 중인지를 솔직하고 편안하게 풀어낸 모음집이다. 48인의 직업, 연령이 다양한데 단서들로 추정하면, 중년 이상 여성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것 같다(물론 48인의 성별과 연령은 더 다양한 구성이지만). 왜 그러한지에 대한 고양이의 호기심이 인다. 


48인의 저자들고 총 기획자 고미숙 박사가, 이 책 출간 후 온라인상 맥주파티일지언정 출간 기념식을 거하게 치렀으리라고 확신한다! 뿌듯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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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1-19 22: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고미숙 샘이 기획한 책인가요? 읽고 싶은 책 저장~😁

2021-01-19 2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19 2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ott 2021-01-19 22: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48인에 총기획자 라니 대단! 아마 온라인 라이브 강의 시작하시지 않을까요.^.^

han22598 2021-01-20 00: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대중이 지성인이다˝의 실현이 이곳 알라딘 서재에서 이루어지고 있지요 ^^
 
오 마이 갓 오 마이 로드 - 바이러스 · 종교 · 진화
방영미 지음 / 파람북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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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존경해온 종교학자의 성씨가 '방'이다. 그 분의 글을 읽자면, 문장이 연결되는 행간에서 그 분의 지성, 품격, 무엇보다 종교학자로의 겸허한 태도를 느낄 수 밖에 없다. 나는 그 분의 글을 읽으며 한 없이 작아진다. 


[오 마이 갓, 오 마이 로드]의  저자도 공교롭게도 '방'씨 성을 가졌고, 그것을 책날개 소개란에서 꽤 어필한다.  방영미 작가는 "자기격리의 달인, 자달 방 박사"로 소개된다. 자달 방영미도 종교학 박사이며 현재 "종교모두까기"라는 팟방 운영자라고 소개된다. 


어찌 궁금하지 않을 수가! 혹시 팔로우업 할 종교학자 리스트에 '방 박사'가 한 분 더 추가될지도 모를 일 아닌가? 그래서 [오 마이 갓, 오 마이 로드]를 풍선처럼 부푼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혹스럽게도 이 분의 언어는 내게 친숙한 종교학자들의 호흡이나 조심성(?)을 담고 있지 않다. "코로나19 이전이나 이후나 한결같이 제도화된 종교를 모두 까고 있다"는 출판사측의 소개글처럼 "까대고" 또 "까대고" "조롱하고" "전복하고" "뱉어내고" "구태를 뒤흔들고 폐부를 드러내고" "독설하고" "싸잡아 까대고 또 까대고"


요즘엔 이렇게 시원 사이다의 까대는 글들이 독자들에게 더 어필하나보다. 하지만 종교학자 특유의 치우치지 않으려 균형잡는 언어에 익숙한 나로서는 생경하고 거친 언어가 버거웠다. 


작가 방영미 박사가 "까대는" 것은 종교이다. 그런데 여기서 '종교'는 종교학에서 이야기하는 넓은 범주의 의미가 아니라 '제도화된 종교'를 말한다. 인용한 아래 문장들에서 방영미 박사의 종교 개념을 유추할 수 있다. 



  • "나는 종교는 버려도 신앙은 버리지 못하겠다" "우리 안의 종교성이 살아 있는 종교는 계속 사람들을 미혹할 뻔하므로(6)."
  • "종교와 종교계가 다르고 종교와 신앙이 다른데 종교계는 마치 종교계가 종교고 종교가 신앙인 양 호도한다(45)" 

자달 방영미 박사는 "모든 종교 까대기"에 주력해왔다는데, 그 중에서 내가 보기엔 기독교 까대기에 가장 공을 들이는 듯 하다. 전광훈 목사, 이만희 등 실명이 수차례 등장하며 그 "까대는" 수위도 상당하다. 다시 인용해 본다.


  • "한국교회의 초고속성장 배경에서 부흥사들의 역할을 빼놓을 없다...(중략)...교회가 이를 묵인하고 심지어 이용하기까지 했다. 그로 인해 이제 한국교회는 가뜩이나 추락중이었는데, 전광훈이라는 망가진 날개로 수직 낙하 가속도가 붙었다(21)."
  •  "이단 신천지의 교주면서 어쩜 그렇게나 카리스마라곤 1그램도 없이 나타났을까?...(중략)....90세(1931년) 촌부의 날것을 그대로 드러냈을까? 그 아흔의 노인네(이만희)는 귀도 잘 안들리는지 눈앞의 기자들 질문을 직접 받지 못해.....(이하 생략) (22)."
  • "누구나 (교회가)  때문에 현장 예배를 고집한다는 사실을 안다 (27)"
  • "불교 천주교가 특별히 해서가 아니다, 그냥 아무것도 해서 칭찬받는 것이다. 개신교가 워낙 사고를 크게 쳐주니 번번히 상대적으로 교양 있어 보인다(28)"


어쩌면 독자로서 나의 불편감은 "점잖은 척"의 이중성을 드러내는지도 모르겠다. 실은 [오 마이 갓 오 마이 로드] 읽으며 전체적인 기조에서는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으니까. 다만, 그것을 드러내는 언어가 자극적이고 공격적이며 종교학을 연마해온 전문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거친 분노에 지배당하는 인상을 받아서 힘들었다. 자달 방박사가 이 책을 펴낸 이유는 다음의 문장에서 직접 드러난다. 

  • "인간에게 대체 종교가 뭐길래 이토록 종교에 인간이 휘둘리는가(4)" "(종교학) 공부하면서 알게 나누면 좋겠다 싶어서(5)" 책을 쓰게 됐다.
  • "신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앞서 걸어간 사람들의 고뇌와 지식을 공유함으로써 자유로운 신앙을 갖기 위해서다. 그리고 내가 얻은 자유를 타인들과 함께 나눔으로써 해방의 연대를 이루기 위해서다 (90)." 



방영미 박사는 종교학을 깊이 공부한 사람으로서 그 학문연마 과정에서 얻은 것을 대중과 나누고 싶다는 호의를 드러냈다. 동시에 제도권 종교뿐 아니라 기존 종교학의 프레임과 관점 자체에도 강한 의문을 제기하던데, 예를 들면 '상대주의'라는 태도에 대한 호된 비판이 그것이다. 방영미 박사는 아래와 같은 이유를 들어, 상대주의 개념 폐기를 주장하는 듯 하다. 언행일치라고, [오 마이 갓, 오 마이 로드]에서 판단중지, 상대주의의 호흡정지를 잘 느끼지 못했다. 





  •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개념 상대주의나는 대체 누가  개념을 이해할  있을까 싶다...기준 없는 상대주의란 애초 성립하지 않으며기준을 정하는 순간 저울질이 되므로 상대주의가 아니다정말 이용당하기 쉬운 개념이 아닌가? (44)"


흥미로운 점은 '상대주의' 개념이 도달할 수 없는 이상적 태도일 뿐이기에 사람들을 호도하기 쉽다 매도하면서도 코즈모폴리티즘 개념을 적극 옹호한다. 게다가 그 옹호의 근거를 차근차근 읽어보면, 결국 상대주의의 태도와 뿌리를 같이 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로서 나는 멍해진다. "내 안의 완고함이 다양성과 상이성을 열등한 것으로 보고 있지는 않는지(129)"를 성찰하는 태도야 말로 상대주의적 태도가 아니고 무엇이던가? 방영미 박사님께 강의를 들으며 이런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다. 



  • "코즈모폴리터즘 개념이 다소 이상적이고 상당히 관념적이지만, 실상은 절망스러운 현실 인식을 토대로 발생한 절박한 외침이다. 따라서 이를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하는 일은 그다지 건설적이지 않다. 개념이 하는 역할은 구체적인 상황에 처했을 나아갈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지 일상의 세세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29)"
  • " 안의 완고함이 다양성과 상이성을 열등한 것으로 보고 있지는 않는지, 그리고 안의 무지함이 독선과 아집을 정당화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순간 성찰할 일이다.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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