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노숙인, 외투, 행인"


며칠 전 기사, 보셨으려나요? 얇은 수면바지 차림에 추워서 얼굴 피부도 검붉어진 노숙인에게 한 행인이 외투와 장갑을 벗어주는 장면을 사진 기자가 포착했습니다. 눈발 속의 훈훈한 그 풍경, 뭉클하게 하는 그 풍경. 


꼬마에게 사진을 보여주니, 좋아합니다. 동화속에서 보아온 장면이니까요. 

하지만, 어른의 못된 현실적인 의심이 치솟아 꼬마의 기쁨을 망쳐버렸습니다. 

"근데, 저거 연출일지도 몰라." 


그랬더니 꼬마 표정이 바로 슬퍼지면서, 

"그래도 저 사람 진짜였으면 좋겠다."라고 했어요. 


찌들고 찌든 어른의 렌즈가 무척 부끄러웠습니다. 꼬마에게 미안했고요. 오늘 후속 기사를 찾아 읽었습니다. 사진기자분이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 포착하셨다 하십니다. 

훈훈한 이야기 꼬마에게 다시 보여주어야 겠습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79965.html


이 사진 공유는 문제소지가 있긴 합니다만....혹 문제가 되면 사진 내리겠습니다.






또, 눈이 내립니다. 아파트 단지 내 통행로는 벌써 말끔하게 치워져 시멘트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마도 눈이 내리자마자 관리실, 경비실 분들이 움직이셨을 겁니다. 눈 치우시는 두 분이나 보았습니다. 뭐라 인사라도 드리고 싶었는데, '윙, 윙' 거리는 제설 기계 소리가 하도 커서 어차피 안들리실 테니, 마음으로만 고마워하며 지나갑니다. 



단지 정문 바깥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소위 그 '눈 관리' 주체가 모호합니다. 상가 건물 앞이야 상가에서 처리한다하지만, 아파트 단지 밖 일반 통행로 눈은 누가 치울까요? 아니나 다를까, 게이트 된 아파트 내부와 외부의 눈 사정이 확 다릅니다. 그런데 한 소년이 자기 키보다 큰 싸리비를 들고 눈을 치우고 있습니다. 치운다기 보다는 '빗자루 다루는 기술'이 부족해서, 큰 붓으로 어설프게 물감 칠하는 느낌입니다. 나는 그 소년이 신기해서 조용히 바라보았습니다. 소년의 어머니가, 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이 방향 저 방향에서 사진찍어 기록 남기는 것으로 보아, 아이가 '자발적 선행' 하는 구나 싶었습니다. 조용히 아이 옆에 가서, "봉사하는구나?"라고 물었더니, "네"라고 답합니다. (하긴, 제가 선택한 "봉사"라는 단어도 "쩌든 언어"입니다. '무보수 노동'이라는 개념을 함축하였으니)

"정말 대단하다!"라고 저도 아이에게 칭찬을 보냅니다.



거의 모든 것을 가치화시키려는 자본주의 시스템, 


이제 눈 온 풍경을 즐기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고, 

눈 치우는 것은 의무화하되 게이트 안과 밖이 달라지는 냉정함. 


눈 치우던 소년, 그 친구 커서도 이 폭설 오던 날의 싸리비 생각 오래 날 것 같습니다. 





창 밖으로, 눈 치우시는 어른을 봅니다. 눈을 모아서, 도로에 계속 던지시네요. 더 빨리 녹을거라 생각해서 하는 일이겠지만, 녹은 눈이 많아지면 결국 차에 혹은 행인의 외투에 더러운 눈이 튈텐데, 굳이 도로 쪽으로 눈을 치워야 하는 이유가 뭘까 궁금합니다. 생각이 많으면, 눈이 와도 참 피곤하게 사나봅니다. 생각 그만, 차라리 눈이나 치우러 나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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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1-28 14: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눈 치우러 한번 나가보고 싶음요. 눈이 안와요
와도 싸락눈 잠시 뿌리다가 바로 녹아버림. ㅠㅠ

기억의집 2021-01-29 0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잠시나마 저도 연출 아닐까, 의심한 게 부끄러워지네요. 유투브 사건의뢰에서 이 사진 다뤄서 진행자 두 분이 이 사진에 대해 말하길래 전 좀 의심스러웠거든요.. 자세히 보니 황급히 찍느냐 촛점이 안 맞네요.

저는 눈 치울 자신이 없어 경비원 아버님들께 노고에 감사해 편의점 가서 컵라면 왕창 사 다 드렸어요. 감사하다고 좋아하시더라구요!!

얄라알라 2021-01-29 01:25   좋아요 1 | URL
기억의집, 님께서도 잠시나마 그러셨군요. 감사하다고 생각만 하시는 게 아니라, 바로 마음을 행동으로 전하시니 제가 배워야겠습니다!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 - ‘정상’ 권력을 부수는 글쓰기에 대하여
이라영 지음 / 문예출판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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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까지 이라영의 최신간, 독서 에세이를 읽고 잠들었는데 알라딘 알람이 온다. "이라영의 매니아가 되었습니다"는 메시지. 그 정도로 읽었나? 달랑 4권 읽었을 뿐인데? 하긴 알라딘 TV 생중계로 이라영의 북토크도 강의 듣듯 보았으니 '중간' 매니아쯤은 될 것 같다. 이라영을 왜 읽을까? 독자를 시원하게 해준다. 갈등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는 내가 '치우치지 않음'으로 포장하여 회피하는 이슈들에 이라영은 지적인 돌직구를 날린다. 특히 [정치적인 식탁]이 그랬다. 이라영을 왜 계속 읽는가? 이라영은 글을 너무~~ 잘~~ 쓴다. 문학 전공하는 분들 특유의 문체가 눈을 현란케 하고 편두통도 유발하지만..... 그 만큼, 혼자 있는 시간에 작가로서 학자로서 헌신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 서문에서 이라영은 1930년대 미국 캔터키 주에서 책 배달 프로젝트에 동원되어 책을 유통했던 '북우먼(말 탄 사서)'를 인용한다. "(이라영은) 읽고 보고 쓴다. 몸을 움직여 이야기를 전하러 가는 그 북우먼들처럼(28)". 프랑스와 미국 등 타국에서 오랜 체류했던 이라영은 자신의 독서경험을 장소성과 묶어 배치했다. 백인, 남성, 지식인 서사 밖, 소위 목소리 낮게 들리거나 차단당했던 소수자의 목소리를 발굴한다. 



책 첫 페이지에 미국 지도를 실었는데, 서부 중부 동부 지역의 여성 작가들을 소개하며 페미니스트로서의 이라영의 분노를 버무린다. 그렇다고 해서, 독자의 피부를 할퀴어대는 분노는 아니다. 이라영 스스로 정제되지 않은 분노의 위험성을 알기에. "여성이 가장 적극적으로 억압 당하는 감정(58)"이 분노이지만, "자기 방어나 증오심에 바탕을 둔 분노의 언어는 이 감정으로 다시 세계를 갉아 먹(27)."는다고 말한다. 대신 그녀는 공감과 사랑의 언어를 펼치려 애쓴다. 행간에서 그 노력을 읽었다. 동시에 이상주의자이자 이상 세계(+땅 위)에서의 투사인 그녀의 매력도 느낀다. 이라영은 이미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삶은 견뎌내는 것"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수동적 태도라 발끈했던 바 있다. 그 미학화된 죽음으로 소비되어 왔다는 실비아 플러스의 시 세계와도 일부러 거리를 두었다고 했다. 출판사 측에서 이라영의 그런 투사다움을 드러내는 문구를 참 잘 뽑아냈다.총 395쪽 중, 내가 전체 다 필사한 딱 그 문장을 출판사 측에서도 뽑았다는 것을 책 다 읽고 알았다. 


"100년 전이라면 나도 치료라는 이름으로 감금되거나 전기의자에 앉았을지도 모른다. 내 안에 있는 열 명, 혹은 백 명의 미친 여자들의 안부를 물으며 아직 살아 있음에 감사한다. 죽지 마, 미쳐도 돼, 라고 속삭이면서 (146)."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를 읽으며 했던 메모는, 일단은 노트에만 남겨두기로 한다. 다만, 그녀가 "압제자"라고 통칭한 범주에 대해, 명료한 정의가 있는지 궁금하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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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01-27 15: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달랑 4권이라니요?
마니아 자격이 충분합니다. ^^

얄라알라 2021-01-27 23:23   좋아요 1 | URL
페크님께서 그리 말씀해주신다면 더욱 분발!!!^^

수이 2021-03-19 2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얄라얄라님 4권이나!! 읽으셨네요. 저는 이제 시작합니다!
 
제4의 식탁 - 요리하는 의사의 건강한 식탁
임재양 지음 / 특별한서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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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분 작업하고 이내 산만해져서, 책을 집어 들면 또 1시간이 흐른다. 책이 마약이다. 끊어야 산다. 방금도 [제 4의 식탁]을 집은 참에 1시간 넘게 쉰 셈이다. 

*

학자이자 저술가, 강연가, 게다가 서평가에다 추천사를 참 많이 쓰시는 최재천 교수가 [제4의 식탁]을 추천하며 "나는 대구로 이사하고 싶어졌다. 저자의 병원 근처에 살고 싶다. 그러면서 그냥 그가 하는 대로 다 따라하고 싶다 (5쪽)."라는 문장을 남겼다. 최재천 교수님 문장답지 않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는데, 막상 [제 4의 식탁]을 읽고 나니, 어떤 의미에서 그리 추천하셨는지 알 것 같다. 

이 대오염의 시대에 건강하기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본인이 직접 체험하여 옹호할 수 있는 건강법을 전파하는 의사야 많다. 그런데 의사 임재양의 경우, 실천도 실천이지만 대인배다. 책 한권으로 속단하는 결례를 범할까 조심스럽긴 하지만, 행간에서 느껴지는 것은 자신뿐 아니라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의지와 큰 마음이다. 유방암 검진 전문의로서의 그는 27년 의사생활하며 점점 유방암이 고등학생, 대학생 등 어린 여학생들에게까지 빈발함을 안타까워한다. 당뇨 합병증으로 실명해가고 있는 데도, '달달한 빵'을 포기 못하겠노라고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 단골 환자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아니, 안타깝다. 그래서 임재양은 한옥으로 병원을 짓고, 아예 건물 안에 빵굽고 요리하는 공간을 두어서 병원 찾는 이들에게 빵을 그냥 나눠준다. 설탕이나 버터 친 빵이 아니라, 통밀 저염빵을. 그리고 환자를 잽싸게 진단해서 진료실 밖으로 내보내기보다는 환자와 소통하려 애쓴다. 물론, 개업의로서의 여러 한계가 있기에 환자 일인당 여러 시간 쏟아낼 수는 없지만 대기실에 간호인력 도움을 받아서라도 환자들의 일상을 알려고 한다. 특히 무엇을 먹는지. 그래야 제대로 된 도움을 줄 수 있으니까. 

*

[제 4의 식탁]은 "4"라는 숫자는 제시했지만 특별한 식사혁명을 말하지는 않는다. 대신 상식을 짚어준다. 예를 들어, 거칠어 못난이 취급 받는 채소 과일이 몸에 좋다든지, 육식보다는 채식하라든지. 그 기저에는 단지 나와 내 가족의 건강뿐 아니라, 먹거리를 생산해주는 이 땅의 모든 이들을 향한 고마움과 애틋함이 있다. 임재양 선생님은 "생각하면 바로 실행"하는 타의 추종 불허 실천력이 트레이드마크이던데, 나도 그렇다면 내친김에 대구를 찾아 임재양 선생님 병원을 방문해보고 싶다. 굉장히 궁금해진다. 



*

끝으로,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소챕터 제목이 '대변'이다. 흥미를 넘어, 따라해보고 싶어진다.



Jonathan108,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저자가 10일 일정으로 몽골로 휴가를 갔을 때 일화이다. 그곳엔 좌변기가 아닌 드넓은 초원에 임시로 마련된 푸세식 화장실이 있었나보다. 저자는 "느긋하게 쭈그리고 대변을 보자 엄청난 양이 쏟아졌다. 그 다음날도 그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일이 끝날 때는 다리가 저려 절룩거리며 숙소로 돌아왔다. 배가 편함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쭈그리고 보는 대변, 그건 실로 30년 만의 일이었다 (92)."


저자가 10일간의 몽골 여행 일정을 마치고 다시 한국의 일상으로 돌아오자, 다시 대변 습관이 바뀌었다 한다. 좌변기가 쾌변을 틀어막은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다시 야외에 몽골식 화변기를 설치했다 한다. 실천력 최강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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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1-26 23: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그림 재밌네요. 근데 솔직히 엉덩이를 까야 하는거 아닌가요? ㅎㅎ
세상에는 참 훌륭한 사람이 많아요. 그래서 기사에 나오는 온갖 흉악한 사람들을 보다가도 이런 사람들을 보면 아 그래도 세상이 살만하구나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 아 근데 집에 저 화변기를 설치하면 요즘은 그걸 퍼주는 똥차를 보기 힘들던데 아마 해결할 수 있으니까 만들어겠죠? ^^

얄라알라 2021-01-27 10:10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님^^ 저는 그 생각 못해봤네요^^
실은 학부 때 은사님 중 한 분도 ˝똥˝에 관한 책도 쓰셨을 뿐 아니라, 마당에 손수 시설을 설치(?)하셨다했는데, 그 뒤에 처리는 어찌 되는지 정작 그 부분은 확인해본 적 없네요. 아마 뭐든 방법이 있겠죠?^^

han22598 2021-01-27 07: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변비에는 푸세식이 답인가요? ㅎㅎㅎ 책 매우 궁금해지네요.

얄라알라 2021-01-27 10:09   좋아요 1 | URL
저도 어제 책 읽은 후, 계속 그 생각 중이에요
어쩌면 저자가 대도시, 바쁜 의사 스케줄 소화하며 스트레스 받다가 몽골의 너른 초원에서 규칙적으로 먹고 쉬며 스트레스 프리 상태로 10일 있었기에 쾌, 초초초 쾌변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생각이 들어서요^^

감은빛 2022-04-19 14: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귀농한 선배가 대변을 퇴비로 쓰고 소변을 또 별도로 이용하기 위해 대변과 소변을 분리하는 화장실을 설치했더라구요.
소변을 분리하고, 대변을 본 후에 위에 겨를 뿌려두면 대변이 모인 덩어리에 습기가 차지 않아서 냄새가 안 나더라구요.
사실 그 선배 집에서 며칠 묵어야 했을 때 화장실이 제일 고민이었거든요.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괜찮았어요.
물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도 그렇게 깔끔한 재래식 화장실이 될 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죠.
우리 몸 밖으로 나온 대소변은 모두 다시 땅으로 돌아가 농사에 보탬이 되니 그 또한 좋구요.

얄라알라 2022-04-19 15:53   좋아요 0 | URL
며칠 묵으시면서, 좋은 기억 있으셨겠네요.
저도 농촌 생활 동경하는 마음(만?) 커서, 좀 며칠 일하며 농가에서 묵고 싶어요.

어느 책에서인지 기억 나지 않는데, 예전 우리 조상들은 용변을 참고 집에 와서 해결한 이유가
그게 귀한 농사 비료가 될 거니, 밖에 뿌리고(?) 다니면 아까워서라는 글을 읽었어요.

불과 수십 년 사이, 우리 몸 밖으로 나오는 우리 몸 안의 물질에 대한 생각(이젠 철저히 위생처리 은폐 대상일듯하다고 상상합니다)이 크게 바뀌었음을 대변볼 장소 선정에 대한 그 이야기가 들게 합니다^^
 
매우 혼자인 사람들의 일하기 - 비대면 시대에 우리가 일하는 방법
김개미 외 지음 / 글항아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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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전례 없는 지구적 비대면 시대이기에, 책 제목에 혹 넘어간다. '읽어야 겠어!' 혼자 있어도(있기에) 생산적으로 일 잘하는 분들이 팁을 준다니 읽어야지! 호기심에 빠르게 책장을 넘긴다.

먼저 김겨울 작가는 '성실의 사이클' 가동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역설한다. 즉, 루틴 만들기이다.

김개미 시인의 충고는 나를 얼게 만들었다. 책에 지나치게 빠져들면, 정작 생각을, 일 해야한다는 압박을 강탈당할 수도 있겠다. 있겠다가 아니라, 그렇구나. 발상의 전환.


"혼자 있지만, 진짜로 혼자 있어야 한다...책도 조심해야 한다. 책을 너무 좋아해서 온통 책만 읽는 것도 시간을 잃는 좋은 예다. 그것이 무엇이든 지나치게 빠져들면 도박과 다를 바가 없다. 생각을 강탈당한다 (39쪽, 시인 김개미)."


디자이너 김광혁의 에세이 제목은 '내 안에 사는 다중이들이 물 만난 언택트 세상"이다. 그는 google 스케줄러 공유, 클라이언트와 zoom회의, Brunch, Evernote, Facebook 등의 플랫폼과 앱을 적극 활용하여 코로나 언택트 시대에 말 그대로 열일 소화해낸다. 그가 강추하는 플랫폼은 Notion인데, 실리콘벨리의 프로그래머와 크리에이터들의 절대적 사랑을 받아온 만큼 그 효율성이 놀랍다고 극찬한다.

김기영 광고 크리에이터는 '걸으면서 일한다. 생각을 줍는다.'

연극배우 리우진도 걸으면서 대사를 외우고, 걸으며 사람들을 관찰한다. 연기를 위한 거름 삼으며.그는 농담 삼아 동료배우들과 자주 한다는 말을 소개한다. "젊었을 때는 연기가 문제고, 나이 들어서는 암기가 문제다."

김영글 미술작가도 불광천 산책을 자주한다. 김 작가에게 산책은 '디스크 조각모음' 실행시간이라 한다.



걷기로 대표되는 몸살림과, 잘 먹기는 저자들이 자주 언급하는 언택트 시대 생존전략이다. 이지영 클래식음악 중개자는 2020년, 어쩔 수 없이 홈트를 시작했다고 한다



스페인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웨덴어 등 유럽언어와 언어학을 전공한 신견식 번역가는 솔직하다. 에너지 총량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관심사를 최소한으로 제한함으로써 해야 할 일을 한다고 말한다. 물론, 여기서 해야할 일은 번역이다. 베테랑 번역가로서 그는 아랍어, 커키어, 페르시아어, 힌디어, 태국어, 베트남어, 인도네시아어가 유망하다는 꿀팁도 전해준다.



마찬가지로 20년 경력의 번역가인 김태규는 매일 9시에 잠자리에 들어 새벽 3~4시에 하루를 시작하는 자칭 "기계가 된 번역 노동자"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카페를 많이 이용했다고 한다. 김태규 번역가는 집중력이 보통 20분, 길어야 30분 간다고 솔직히 이야기해주는데 휴우~~. 남의 정신산만에 내가 안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동병상련?



사회학자이자 작가 노명우는 글쓰기 위해 자기 재구성하는 3단계를 소개한다. 그 중에서 "자기복제를 할 생각이라면 책을 더 이상 안 쓰는 게 맞다 (115)."라고 말하는데, 갑자기 어떤 저자가 떠오른다. 과한 자기복제, 책 제목은 다르지만 얼개와 세부 문장까지 끌어다 복제했는데, 내가 리뷰에서 이 지점을 지적하니 친히 활화산 분노와 저주의 댓글을 퍼붓고 지나갔다. 자기 복제를 사과하기는 커녕. 그 분, 박사학위 소지자이다.



허리가 휠 정도로 교정지를 들고 다니는 황치영 출판 교정가는 외래어표기법뿐 아니라 사료의 연도나 한자 이름 등을 대강대강 써서 피곤을 안겨주는 저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현해탄은 '대한해협'의 오기라 한다. [매우 혼자인 사람들의 일하기]에 수록된 에세이 여럿 중에서, 나는 황치영 출판교정가의 글을 가장 오래 기억할 것 같다. 극도로 완벽지향에 사명감에 불타오르는 그는 놀랍게도 칠십 중반의 나이이다. 한결같이 그런 숨막힐 듯한 완벽주의로 일해왔고 계속 일한다는 점이 존경스럽다.



체력관리, 건강관리, 시간관리, 주머니 관리, 업무능력 관리.

사실 이런 팁들은 새로울 것이 없는데도, Covid-19상황에서 현역으로 일하시는 분들이 솔직하게 자기 이야기 들려주니, 새롭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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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6 07: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26 1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27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27 1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28 0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1-01-26 0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으면서 사람을 만나려면, 책 모임을 해야 돼요. ^^

2021-01-26 1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제국적 생활양식을 넘어서 - 전 지구적 자본주의 시대의 인간과 자연에 대한 착취
울리히 브란트.마르쿠스 비센 지음, 이신철 옮김 / 에코리브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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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학'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면서도, 정작 정치니 경제니 따로도 모르는 데 교집합, 얽힌 동심원을 어찌 알까? 그런 이유에서 도전하며 배워가는 분야가 바로 정치철학이다. [Resilient Life]를 읽고 브래드 에반스에 매료당한 지 몇 년 만에, 뉘앙스가 비슷한 책을 만나 반가웠다. 


[제국적 생활양식을 넘어서: 전지구적 자본주의 시대의 인간과 자연에 대한 착취]. 웅장한 제목이다. 원제 [Imperiale Lebensweise: Zur Ausbeutung von Mensch und Natur in Zeiten des globalen Kapitalismus] 로 알 수 있듯 독일학자, 올리히 브란트와 마르쿠스 비센이 썼다. 


"제국적 생활양식"이 무엇이길래, 왜 넘어서야 한다는 걸까? 


책 제목을 담은, 이 질문이 핵심이다. 노트 13쪽이나 메모하며 완독했는데, 정작 한줄 정의가 버겁다. 책에서는 3장에 가서야 "제국적 생활양식의 개념"이라는 챕터를 배치해 개념 안내를 한다. 첫 문장을 인용해본다. 


  • "(제국적 생활양식은) 자본주의 중심부에서의 일상생활이 본질적으로 다른 곳에서의 사회관계와 자연관계의 형성에 의해, 즉 전 지구적 척도에서 노동력과 자연 자원 및 흡수원에 대한 원리적으로 무제한적인 접근에 의해, 따라서 자신이 자기 환경에 방출하는 것보다 더 많은 특정 물질을 받아들이는 생태계에 의해 가능해지는 생활양식(68)"      




아, 사회과학에 친숙한 독자일지라도 위 정의에 한 발 물러설 수 있다. 쉽지 않으니까. 그렇다면 내 수준의 소화액으로 버무려 되새김해보자. 위 정의에서 "중심부"를, 군더 프랑크(Gunder Frank)의 세계체계이론에서의 중심부와 크게 다르지 않게 이해했다. 북반부가 "중심부"에 남반부가 "다른 곳"에 해당할텐데, 남반부 내에서도 변화와 경쟁이 심화되면서 북반부와 남반구 사이 생태적, 제국적 긴장 관계가 고조된다고 한다(저자들은 중국을 여러 번 언급한다).


"제국적 생활양식"의 계보를 추적해보면 500여년 전 식민주의, 그리고 19세기의 제국주의가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뻘이다. 20세기, 21세기에는 "노동력과 자원을 상품화함으로써 확장한" 자본주의기 전지구적으로 확산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생활양식은 (내가 선택한 용어라 좀 자극적이지만) 거머리처럼 흡혈할 "외부"를 지녀야만 유지된다. 예를 들어 "(초국가적) 돌봄 채굴주의"를 통해 GS의 노동력은 GN 중상계급의 재생산에 관여하도록 유출된다.  GS의 돌봄 노동이나 자원 등을 채굴해가면서도 "제국적 생활양식"은 그 기저층에서 자행되는 파괴와 폭력을 드러내지 않는다. 방어하고 현대화시켜 가려둔다. 되레, 그것이 정상normalcy인양 무력감을 내재화시킨다. 기존의 규범적 소비 양식에 무성찰적으로 굴복하고, 체제의 불공정함에 분노하는 대신 자신보다 약한 자들(이민자, 소수자 등)에게 화살을 겨누는 것이 그것이다. 이 부분에서 [Resilient Life]의 브래드 에반스가 겹쳐 생각났다. 




최근 [Clean Meat]를 흥미롭게 읽었고, "Eco"란 녹색 라벨을 달고 온갖 가치들을 상품화하는 시도를 실눈뜨고 의심하는지라 [제국적 생활양식을 넘어서]의 8장이 특히 유용했다. 이 장에서,  "녹색자본주의"라는 위장 환경주의를 맹비난한다. 21세기 인류가 직면한 다중적 위기는 되레 전환점 삼을 기폭제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제국적 생활양식을 방어, 지속하는 전략으로써 경제의 녹색화를 내세우지만 실상은 '갈색화'일지 모른다는 의미로 나는 이해했다. 예를 들어 "재조림산업reforestation"은 마치 자연이 훼손을 보상하여 대체가능하다는 확신을 유포시키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한마디로 녹색경제를 빙자해 자연을 가치화한다는 것이다. 



Burkina Faso, Africa. Photograph credit: Gray Tappan, CC0


당연지사, "넘어서자"는 주장에는 합당한 대안이 따른다. 저자들은 "연대적 생활양식"을 제안한다. 이는 "자신의 생활양식과의 대결, 그리고 제국적 생활양식 저편의 대안적 경험에 대한 허용으로부터 성립 (206)"한다. 물론 각개전투가 아니라 동맹의 확대를 통해 가능해진다. 이를 위해서는 "생각과 행동의 용기, 일정한 낙관주의, 생산적 자기비판, 약자와 배제된 자들의 대한 공감, 협력하려는 의지 (208)"가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제도적 응축"이 된 견고한 제국적 생활양식의 틈을 벌려 해체시키기에는 다소 이상적인 썰로서의 제안이 아닌가, 뒤끝이 개운하지는 않다. 어쩌면 [제국적 생활양식을 넘어서]의 마지막 챕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정치철학책이 내게 무척 요긴함을 재확인한 계기! 읽기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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