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심장을 쳐라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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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을 거의 매주 들렸던, 그러나 코로나 이후 한 번도 찾지 않았던 까페에 일부러 왔다. 2층 네트워크가 불안정 한 건 여전하고, 블루리본 명성을 배반하지 않는 커피 맛도 여전한 데, 1잔 구매마다 스탬프 한 번씩 찍어주던 쿠폰 제도는 사라졌다. 이 공간에서 노트북 자판 많이 두드렸는데, 쌓인 글은 없고 공간만 여전하니, 배가 싸르르 아파온다. 




아멜리 노통브 (번역된) 작품이라면, 거의 다 읽어왔다. 어느 작품에서도 되바라진, 조숙한 꼬마의 냉소미가 느껴졌는데, 그래서 열광했던 걸까? 간혹 밋밋한 작품도 있었지만, 독특한 냉소미를 통해 어린 시절 노통브를 상상해보곤 했다. [너의 심장을 쳐라] (2017)는 이제는 50대 중년이 된 그녀의 작품이지만, 아주 오래 전 노통브의 [적의 화장법]이나 [살인자의 건강법]에서 받았던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내 정신세계를 해부당한 기분이라, 이 책을 내가 아는 누군가는 행여라도 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이 책을 당장 선물하고 싶은 마음 사이를 오가며 읽었다. 


옮긴이 이상해 역시 지적했지만, "잠시 등장하는 의사를 제외하고 남자들(아빠와 아들)은 여자들의 마음을 잘 읽지 못한다. 그래서 무기력하고 존재감이 없다(192).


엄마와 딸, 자매들, 친구관계의 여성들 

그토록 냉담한 심장으로 누군가의 삶의 수로를 틀어놓고, 늙어가면서 망각하고 스스로 죄를 사하는 캐릭터. 

퍼내도 퍼내도 넘쳐나는 "경멸"을 우아한 학자적 언어로 위장하여, 타인을 자신의 장기판에 '말' 삼는 캐릭터.

그 복잡미묘한 정서를 겪어보지 않고 어찌 이입할 수 있으리! 


그렇다고 아멜리 노통브는 여성"들"의 관계를 시니컬하게만 보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차원에서 화해 가능성을 보여준다. 상처를 스스로 핥으며 커온 주인공이, 또다른 상처 입은 이에게 문을 열어 줄 때, 그것은 '인간애'라는 낭만적인 표현보다는 신경증과 신경증의 만남이 아닐까. 비록 그럴지라도, 그 만남, 그 보듬어안는 마음,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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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1-09-09 12:5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와~ 아멜리 노통브 한때 좋아하면서 너덧권 봤었는데 그후로는 통 못 읽었네요. 복잡미묘한 정서, 궁금해집니다!

레삭매냐 2021-09-09 16: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노통브의 책들을 읽고서
참신하고 대단하구나 싶었는데...

글다가 언제부터인가 멀리 하게
되었네요.

푸른 수염인가 부터 다시 읽어야
하나요.

얄라알라 2021-09-10 03:50   좋아요 0 | URL
레삭매냐님 사실 저도 마찬가지예요. 초창기 작품의 그 강렬함 이후, (지극히 주관적인 평이지만) 좀 맥빠지는 작품들이 연달아서. 푸른 수염도 기대만큼 강렬하지는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너의 심장을 쳐라]는 공감 얻기 더 좋은 작품일 것 같아요. 거의 모든 사람에게 가족관계가 있고, 그 관계가 평탄한 것만은 아닐 것이기에..


그러고보니 본격적 부자(아빠아들관계)의 미묘함을 드러낸 작품이 뭐 있을지 고수님들께 여쭤보고 싶네요^^

2021-09-09 16: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9-10 0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딩 2021-09-09 17: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적의 화장법은 내용은 기억이 안 나는데 ㅜㅜ 안 나네여
그냥 오 참신하다 제목 강렬하다 이랬어요 ㅎㅎ

얄라알라 2021-09-10 03:54   좋아요 0 | URL
초딩님. 저도 줄거리가 살인자의 건강법과 막 섞이려고 합니다. 갑자기 서글퍼지네요.. 책 읽었어도 기억에 남지 않는데 오늘도 나는 이 새벽에 책 쌓아놓고 앉아 있구나....^^;;;;;;

그레이스 2021-09-09 17: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살인자의 건강법 읽었어요
이 해에 무엇때문인지 살인자의 기억법, 살인의 해석을 연달아 읽었어요^^

아!
적의 화장법도 읽은것 같네요

얄라알라 2021-09-10 03:54   좋아요 0 | URL
살인의 해석은 또 무슨책인지 잠시 검색 들어갔다 오겠습니다^^ 그레이스님

얄라알라 2021-09-10 03:56   좋아요 0 | URL
오호! 프로파일러 표창원의 추천도서네요. 그레이스님께서 올해 요 책들을 연달아 읽으신 건 우연이겠지만^^ 스릴러 좋아하시나봐요?^^

그레이스 2021-09-10 11:00   좋아요 1 | URL
저는 스릴러 안좋아하는데,,,
아마도 범죄심리때문에 읽게 된것 같아요.
올해는 아니고 시간이 조금 됐습니다^^

존그리샴은 거의 전작읽기를 했습니다.

붕붕툐툐 2021-09-09 1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노통브 책 막 찾아 읽었었는데, 신간 소개에서 만나고 반가웠어요. 북사랑님이 읽고 리뷰 써주시니 더욱 반갑! 이거 읽으면 북사랑님 속마음까지 알 수 있는 거예용? 헤헷~

2021-09-10 0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21-09-09 20: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요즘 살인자의 건강법 읽고 있어요 ㅎㅎㅎㅎ 😆

얄라알라 2021-09-10 03:58   좋아요 0 | URL
syo님의 종횡무진 독서야....익히 알고 있지요. 곧 리뷰를 읽을 수 있겠네요.

행복한책읽기 2021-09-10 0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당장 찜. 저도 한때 노통브 쭈르르 읽었어요. 저는 오후 네시 를 젤 좋아했음요. 노통브가 50대가 되었다니 더 친숙해졌음요^^

얄라알라 2021-09-10 04:01   좋아요 0 | URL
작가 프로필 사진은 백자도자기 피부에 새빨간 립스틱에 목을 감는 깃털 의상,
50대, 40대를 떠나서 도도미 그 자체네요^^

행복한 책읽기 님께서도 늦게 깨어 계셨네요^^
까페에서 decaf라 판매한 커피가 실은 카페인 어마어마 담고 있었나봐요...., 디카프 마시고 4시까지 잠을 못 잘리는 없고.. 항의하고 싶음^^:;;; 새벽 4시에 행복한 책읽기님께 댓글^^;;;;

서니데이 2021-09-11 2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코로나19 좋아지면 주말이나 저녁에 카페에 가서 맛있는커피랑 간식 먹으면서 책읽고 싶어요.
얄라알라북사랑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얄라알라 2021-09-11 22:49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까페 방문도 자제하실만큼 조심하시나봅니다. 서니데이님처럼 열심히 지켜주시는 분들께 죄송해지네요. 저도 한 1년은 참다가, 요즘은 다시 까페 순례 다니네요.^^;;;

서니데이님께서도 남은 토욜 밤, 그리고 일요일 즐겁게 보내시기를

서니데이 2021-09-11 23:01   좋아요 1 | URL
저도 참다가 너무 생각나면 가끔 커피전문점에서 포장해올 때가 있어요.
네, 좋은 밤 되세요.^^

고양이라디오 2021-09-13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멜리 노통브 읽어봤어요ㅎ [적의 화장법], [살인자의 건강법] 읽은 기억이 나네요ㅎ <너의 심장을 쳐라>도 재밌을 거 같네요^^

페크pek0501 2021-09-16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의 다 읽으셨다면 광팬이시네요. ^^

coolcat329 2021-09-25 0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사랑님 노통브 책 거의 다 읽으셨다니 팬이신가보네요. 저는 <적의 화장법> 딱 하나 읽어봤는데 ‘신선한 충격‘ 저도 받았습니다.
얇은 책이니 조만간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비룡소" 편집실에 사과 말씀부터. "비룡소=어린이출판사" 등식으로 기억해 둔 터라, [헤이, 나 좀 봐]를 그냥 지나칠 뻔 했어. "중2 격동기"를 그린 책인가 봐 하면서. 아니지. 사실, 좋은 책은 독자를 나이, 성별, 국적으로 차별하지 않잖아? 그냥 좋은 책이지. 


격하게 울었다고. 대낮에.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읽고 펑펑 울었던 때도 대낮이었는데. [헤이, 나 좀 봐] 가 이런 만화책인지 상상도 못하고 집었던 거야. 어머니와 아버지의 "부재 아닌 부재(스포일러 되지 않기 위해 이 정도로만)" 속에서, 조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잘 자란 재럿 크로소치카. 그의 TED 강연 조회수가 어마어마하다지만, 아직 작가에 대한 이 뜨거운 감동(+환상)을 깨기 싫어서 나중에 찾아보려 해. 


인품이 좋은 작가. 재럿. 

완벽주의 성향이 상당하고. 

[헤이, 나 좀 봐]의 주조색이 톤 다운된 주황색인데, 의도된 선택이야. 게다가 자서전적 이야기 중간 중간 등장하는 편지, 사진, 그림 등은 실제 작가가 차곡차곡 수집한 자료들을 활용한 거지. 자신의 재능이 엄마에게서 왔다고 감사하는 문장에서, '엄마의 재능까지 독자가 어떻게 확인해?'하는 의심도 들었는데, 다시 책 뒤지다가 찾았어. 꼬마 재닛이 받은 엄마의 편지 속에 엄마가 그린 그림이 있었지. (촌스럽다 싶은) 파인애플 디자인이 왜 여러 번 이 책에 등장하는지도, 당신이 책 읽고 직접 확인해본다면 나처럼 울지도 모르지. 재럿 크로소치카에게는 다 계획이 있었다니까. 의도된 선택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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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09-02 00:44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부모와 함께 살지 않아 부모 사랑을 바라기도 하겠지만, 할머니 할아버지가 거의 부모 같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도 찾고 그걸 해서 다행이네요


희선

얄라알라 2021-09-02 00:55   좋아요 6 | URL
희선님, 제가 스포일 안하겠다며 스포일러 했나봐요^^:;; 책 내용 핵심을 딱 언급해주셔서^^

조부모께서, 작가의 만화 수업에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부분, 작가 재럿이 꿈을 소중히 가꾸고 현재형으로 그 꿈을 끌고가는 점에서 감동이 컸답니다. 희선님 말씀처럼 ˝좋아하는 것도 찾고, 그걸 해서˝ 참 다행이라고 저도 느꼈어요.

붕붕툐툐 2021-09-02 08:0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엄훠~ 너무 끌리네용~ 읽고 싶은 책장에 쏘옥~~~😍

얄라알라 2021-09-02 08:19   좋아요 5 | URL
툐툐님께서도, 툐툐님께서 애정하시는 제자들도 요 책 좋아할 것 같아요. 책 후기에 만화를 그린 자세한 방법도 얘기해주는데, 뭔가 전문적인 내용이어서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인생작품, 정성을 다 쏟아부었다˝를 느끼겠더라고요^^ 힘들었던 어린시절이지만 이렇게 소중하게 추억하고 그림으로 되살려낸다는 게 작가가 삶에 얼마나 감사하는지 느끼게 해줘요^^

행복한책읽기 2021-09-02 10: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지두 쏘옥쏘옥~~~~딸한테 강력추천해야겠어요.^^

얄라알라 2021-09-02 10:58   좋아요 3 | URL
^^ 그럼 행복한책읽기님 따님과 저는 얼굴 한 번 안 보고 작은 공통 조각 하나 생기는 셈이네요^^ 감사드려요

행복한책읽기 2021-09-02 11:47   좋아요 4 | URL
바로 상호대차 신청했어요~~^^

얄라알라 2021-09-02 13:30   좋아요 2 | URL
^^ 상호대차 시스템 넘나 좋아요^^ 행복한책읽기님 댁으로 이 책이 간다니 기쁩니다!

독서괭 2021-09-02 13: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오 나의라임오렌지나무를 읽고 아침에 펑펑 운 사람 여기요✋
이 책도 그렇게 좋으셨더니 봐야겠네요!

얄라알라 2021-09-02 13:31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 어렸을 때는 도리어 안 울고 읽었던 것 같은데 어른 되어 읽고 펑펑펑^^ 독서괭님도 우셨군요^^

페크pek0501 2021-09-04 18: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동화책 하나 사 놓고 빨리 읽고 글 한 편 써야지, 하고 있어요. ^^
펑펑 울 수 있는 책도 좋습니다.

파이버 2021-09-08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룡소 제목]보다 북사랑님 리뷰가 더 끌리네요 자전적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내는 사람들은 그 아픔을 견디어낸 것 같아 정말 강해보여요…
 
나는 너의 비밀을 알고 있어 마음이 자라는 나무 38
지아다 파베시 지음, 이현경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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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주 가끔 '내가 동화를 쓴다면, 주인공은 10대?'라고 상상해봤다. 그러나 [나는 너의 비밀을 알고 있어] 을 읽으며, 그 꿈 매우 허황되다는 걸 알겠다. 중3 농구 선수이자 주인공은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요새 누가 페이스북을 해요? 이건(사진은) 인스타에 올릴 거예요." '아니! 이건 무슨 말인고! 요즘 10대에게 페북은 한 물 갔단 말인가? 나만 몰랐나?' 하며, 검색창을 뒤져보지만 모양새가 참 아니올시다! BTS 팬덤과 Army의 글로벌 결집력이 궁금하다고 검색 키워드를 바꿔본들 보라색 결정체는 결코 찾을 수 없을 텐데? 10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어플, 농담, 제스처, 등등을 모르면서 무슨 10대 이야기를 상상해본다는 것인지? 게다가 향수만 스쳐도 반응 올라오는 10대의 호르몬, 만병통치 은어 PP(피자파티), 텃세와 왕따 은따 전략 등등을 모르고서는 도무지 이야기에 재미난 양념을 칠 수가 없는데?



https://www.bookonatree.com/en/giada-pavesi



아니나 다를까, [나는 너의 비밀을 알고 있어] 의 저자는 젊다. 벌써 2권의 책을 내었고, 이탈리아에서 젊은 작가 발굴 프로젝트에서 수상했지만 앳된 외모는 그가 10대 주인공 캐릭터 함께 농구하거나 PP하기에 충분히 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탈리아 태생인 지아다 파베시Giada Pavesi는 현재 밀라노에서 외국 문학을 공부 중인 학생이다. 한국이나 이탈리아 10대 관심사의 공통분모가 크게 다르지 않은지, [나는 너의 비밀을 알고 있어]의 3대 키워드를 꼽아보라면 '(설레는) 사랑의 조짐,' '(완벽하지 않아 반쯤 숨기고 싶은) 우리 가족,' '학교생활에의 적응'일 것 같다. 다만, 책 표지 일러스트레이션에 무려 3대의 스마트폰이 등장하며 암시하듯, 이 책의 가장 중심 모티브는 바로 10대 사이에 유행하는 APP이다. 계속 강조하지만, 10대와 외모뿐 아니라 정서적 거리가 가까운 작가는 10대들의 온라인 소통방식과 그로 인한 문제들을 실감나게 그렸다(스포일러가 되지 않도록 여기까지!). 



 [나는 너의 비밀을 알고 있어]는 10대뿐 아니라, 10대의 세계가 궁금한 어른에게 유용한 작품임을 인정함. 단, 아직도 왜 "요새 누가 페이스북 해요?"라는 대사를 잘 이해하지 못하겠음. ㄹㄸㄲㄷ 소리 들을 날 머지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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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8-15 19: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림체가 왠지 인스타에서
많이 보던 거네요 :>

얄라알라 2021-08-15 21:42   좋아요 1 | URL
^^ 이탈리아판 표지는 이 책이랑 사뭇 달라요. 레삭매냐님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급 호기심 발동이네요^^

행복한책읽기 2021-08-16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딸이 좋아하겠어요. 찜!! 페북은 노땅들의 놀이터라죠. 애들은 인스타!! ㅋ

페크pek0501 2021-08-16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화 쓰는 사람, 멋지죠.
저는 페북 안하는데... 시대를 못 쫓아가는 1인입니당~~
 
















목영릉 님께, 

첫 출산 2019년 4월. 태어난 아기의 생일이 돌아오기 전인 2020년 2월, 그 경험을 책으로 펴냈으니, 얼마나 치열하게 "낮엔 육아, 낮밤 수유, 짬짬이 글쓰기"를 하였을까요? [굴욕 없는 출산] 본문에서 두어 차례 소명의식을 언급했죠? '아름다운,' '숭고한' 등의 형용사로 치장한 홍보성 이미지가 아닌, 임신과 출산을 직접 경험한 당사자의 목소리를 드러내리라는 소명감이 없었던들, 산후 우울증을 이겨내며 책을 내기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저는 [굴욕 없는 출산]을 지난 한달 간 세 번 읽었습니다.  [굴욕 없는 출산] 어느 페이지를 펴도, 제 등을 콕콕 찍어 떠미는 문장들이 있었어요. 제 평소 생각과 손뼉 치기 좋은 문장들도 마찬가지로 많았고요. 목영릉 님은 출산이 ", , 에로스, 가족, 결혼 근대, 젠더, 계급, 자원 등을 모두 건드리는 복합적 이슈" (158)이기에 "사회정찰대" 삼아야 한다는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재생산 연구자들의 한결 같은 생각이지요. 다만, 차별점이 있다면 목영릉 님은 본인의 출산 경험을 책 제목 그대로 "굴욕"을 키워드 삼아 편집 없이 기록합니다. 



목영릉님은 주류 출산 담론이 과정이 아닌 이벤트로서 "출산 행위"에 집중되거나 '사회적 재앙'으로서의 "저"출산에 포커스를 두거나 출산을 낭만화한다고 봅니다. 문제는 정작 주체인 여성의 목소리를 삭제시켜와서(최근 읽은 조선시대 출산 문화에 대한 책에서도 그 부분의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하더군요. 워낙 터부시해온 화두였죠), 정작 21세기 출산을 앞둔 여성들은 레퍼런스 삼을 목소리를 찾지 못한다고 목영릉 님은 울분을 쏟아 냅니다. 부제처럼 "우리는 출산을 모르"는데 마치 안다는 양 세뇌 당해왔다는 것이죠. 혹은 여성의 출산은 자연의 순리라는 전근대적 사고에서 나아가지 못한 채 출산에 프레임 걸어 생각해왔다고 당신은 비판합니다. 이런 주장에 이르기까지 목영릉 님은 어찌 그렇게 많은 책, 드라마,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섭렵할 수 있었는지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갓난 아기를 돌보면서 "짬짬이 글쓰기" 덕분에 [굴욕 없는 출산]은 다양한 영역-페미니즘이라는 우산 아래 아우를 수 있는-의 주제들을 건드리고 있지요. 화끈한 문장으로요. 제가 "어느 페이지를 펴도, 등을 떠밀리는" 느낌이 들었던 이유입니다. 생각을 담고만 있는 이도 많은데, 목영릉님처럼 가시적으로 드러날 수 있도록 화두의 공을 높이 띄워주는 이에게 감사해야죠.


 책 읽으며 내내 저자를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대화할 기회가 생긴다면, 당신에게 여전히 출산경험의 키워드가 "굴욕"인지, 만약 그렇다면 그 '굴욕감"의 근원을 어떤 방향으로 파들어가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실례지만, 제가 "굴욕" 키워드 주변의 단어들을 채집해두었습니다. 출산의 의료화 과정에서, 여성 몸의 도구화 대상화에 대해 분노했던 당신의 절규가 다양한 형용사로 변주됩니다. 




  • "분노, 오기 회환, 사명감" (6)
  •  "괴리감, 어리둥절함, 찝찝함, 수치스러운 기억" (40)
  • "임신 과정은 대부분 우울과 고통을 인내하는 시간" (47)
  • "수치심과 모욕감 사이" (64)
  •  "'굴욕의자' 앉아 있는 심정은 그야말로 처연했는데, 아프고 부끄럽고 당황해서 어쩔 몰라하는" (64)
  • "임신 과정은  인생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순간이었다나는 분명 모욕을 느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어떠한 책이나 매체에도 '수치' 던어는 언급되지 않았다모두 행복과 기쁨을 말했다." (67)
  • "나는 임신과 출산 과정  느꼈던 불안걱정초조우울모멸감슬픔막막함…" (68)
  • "굴욕을 느낀 개인은 있는데 굴욕을  주체는 뚜렷하지 않아 모욕감이 어디서 발생하는 것인지 명확히 알기가 어렵다" (68)
  • "즐거워서 어쩔  모르며 치킨을 먹는 남편과 시댁식구를 보니  없는 울화가 치밀었다. "뭐가 그렇게 좋아요?"라고 나도 모르게 내뱉었다덕분에 찬물을 끼얹은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95)
  • " 여성이 엄마가 되는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타자에 의한 슬픔, 우울함, 당혹스러움"(102)      



목영릉 님의 인터뷰 기사를 찾아보니, 앞으로도 임신과 출산에 대한 글을 계속 쓰실 건가봐요. 다음에 책을 내셔도 세 번씩 곱씹어 읽는 열렬 응원자가 될 것을 약속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아이가 있나요?]는 그 질문이 불편한 사람, 차일드프리, 차일드리스. 논맘non-mom, 널리파라 등으로 불리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마찬가지로 non-mom이며 노년기를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는 케이트 카우프먼이 썼습니다. 많은 여성을 실제 만나 인터뷰하면서 "엄마나 할머니가 아닌, 나로서만 사는 여성'의 삶과 고민을 그대로 드러내려 애썼습니다. 주류 담론이 늘 '엄마,' '모성' '좋은 엄마'에 치우쳐 있다면서 '엄마가 아닌 사람들'을 관심과 배려로 살피자는 주장입니다.  


목소리의 빈 자리, 당사자성의 전면진격이 [굴욕 없는 출산]이나 [당신은 아이가 있나요?] 모두의 집필 동기입니다. 그런데 출산 논의를 따라가다보면, 목소리의 삭제나 편집이 문제라하면서도 여전히 아빠(들) 혹은 아빠 아닌 이들의 목소리가 소거되어있음을 알게 됩니다. 


https://www.katekaufman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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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08-13 0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궁금하네요. 여성의 목소리가 빠진 여성의 몸에 관한 서사. 이제는 우리가 많이 보고 듣고 알아서 이야기 해야할 것 같아요. ^^

scott 2021-08-13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사랑님 븍플계에서 독보적인 장르 발굴!
사회적 약자 비주류, 환경 건강, 청소년, 아이들,굴욕 없는 출산 까지
이런 책이 있다는 것 조차 몰랐는데 이렇게 소개 해주셔서 감사 합니다.

진정 저의 독서MD 이쉼 ^ㅅ^

얄라알라 2021-08-13 16:00   좋아요 1 | URL
북플계의 양분 담은 흙, 다양한 장르 나무를 키워내시는 scott님께서 이렇게 말씀해주시면 저 부끄럽습니다^^;;;

항상 몸의 문제에 관심 두다 보니 저는 이런 가지를 키우고 있는데, 관심 가져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읽을거리 목록"에 올렸던 두 권 중, 오늘에서야 [조선의 결혼과 출산 문화]를 정리했다. 한국국학진흥원 연구 사업팀의 기획으로 경북대 박희진 교수가 썼다. [한국 역사인구학연구의 가능성](2016), [고문서로 읽는 영남의 미시세계] (2009) 등 기존 저서를 통해 추정할 수 있듯, 역사인구학의 관점에서 조선의 결혼과 출산 문화 파악을 시도한 책이다. 호적, 족보, 혼서, 행장류 등 평소 간접적으로만 접했던 고문헌의 조각보들이 박희진 교수의 바느질 덕분에 '조선의 출산문화'를 보여주는 지도로 재탄생하였다. 양적 지표로 뼈대 세우고, 정성적 자료로 살 붙이는 어려운 작업을 했고, 이제 시작이라는 뉘앙스의 서문에서 후속 작업도 기대한다. 

    • "양적 지표로 나타나는 인구 현상은 인간의 삶과 문화라는 질적인 문제와 관련된다. 조선 시대 사람들의 인간에 대한 인식, 조상 자식에 대한 태도 등이 혼인, 출산, 사망이라는 양적지표에 묻어나기 때문이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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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08-12 1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을 듯합니다. 역사도 배우고 선조들의 지혜도 배울 수 있는...

얄라알라 2021-08-12 15:10   좋아요 1 | URL
예, 페크님, 아주 얇고 한자도 별로 없어서(^^:;;) 제 수준에 딱 좋더라고요.

박희진 교수 역시 많은 조사를 하고 집필하셨지만, 이 분야 축적된 연구가 많지 않아 미완 느낌이라도 시발점 되고자 하신다고 서문에 쓰셨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