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지 않는 것을 적이 있는가?"


[환각] 한국어판 부제이자 독자에게 던져진 질문이다. 나의 대답은 "수도 없이." 보았을 아니라 듣고, 맡고, 피부로 느꼈다. 어마한 기세로 달려오는 말의 발굽소리, 하늘 높이 솟은 나무들이 타오르며 내는 소리와 열기, 무협지 지붕 격투씬에서 보았을 지붕 위 눈의 차가운 감촉,  해변의 모래 위에서 춤추며 느끼는 뜨겁게 달궈진 모래알의 감촉, 우주 저 멀리의 어두움과 아득함...... 하지만, 이 모두는 모두 꿈에서 이뤄졌다. 올리버 색스가 다루는 "환각 Hallucinations"과는 결이 다르다.  어떤 이들은 '몽환'과 '환각'을 연속체에서 이해하려하지만, 올리버 색스는 "환각은 꿈과 매우 다른, 인간 의식과 정신 활동에서 고유하고 특별한 범주(9)"를 이룬다고 본다. 또한 올리버 색스는 현대 서구 문화권에서 환각을 광기와 연결지어 부정적으로 보는 것과 달리, 환각은 긍정적 현상이라고 파악한다. 올리버 색스의 글을 읽을 때마다 느끼지만, 나는 그의 이런 유연한 열린 태도가 참 존경스럽다.




올리버 색스는 "환각"이 인간에게 문화적(예술, 종교 등의 영역에서 특히)으로 중요할 뿐더러 인간의 뇌를 들여다보게 해줄 중요한 창이라고 본다. 이런 환각의 힘은 대리자의 언어가 아닌 1인칭 시점의 진술을 통해 힘을 갖게 될 터이다. 따라서, 올리버 색스는 [환각]을 집필하며 자신의 환자는 물론, 다양한 옛 문헌뿐 아니라 친구들의 경험, 무엇보다도 자신의 경험을 1인칭 시점으로 녹여내고자 애썼다. [환각]은 의학적 범주 혹은 감각 양식에 따른 환각의 다양한 경험을 총 15장 구성으로 배치하였다. 

* * 

샤를보네증후군, 감각박탈, 텍스트환각, 수면마비, 시각적 편두통, 기면증, 도플갱어 등등, 환각의 다양한 양태에 대해서는 요약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어설픈 문장으로는, 올리버 색스가 애써 그러모아 놓은 '1인칭 시점'의 묘사가 흩어질 터이기에. 대신 나는 "환각"을 다루는 올리버 색스의 태도에 대해 쓰고 싶다. 



*   *  *

어느 책에서 읽었는지 기억이 가물하지만, 올리버 색스는 초진 환자 진료에 5시간을 쏟기도 했다. 런던 미들섹스병원의 인턴 시절, 그는 신부전으로 죽어가며 섬망 상태에서 횡설수설 하는 제럴드. P라는 환자 곁에서 때론 하루 두 세시간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올리버 색스의 담당 교수가 '헛소리 지껄인다'며 무시한 환자였다. 올리버 색스는 상형문자 풀 패키지인 그 횡설수설 이면의 그의 생애를 이해하려 노력했고 심지어 제럴드 P의 횡설수설에 응수하기도 했다. 6장 "변성상태(altered state??)"의 1인칭 화자는 주로 저자 올리버 색스이다. 왜 그가 향정신성물질에 손대었으며 서서히 중독되었고 힘겹게 벗어나는 과정에서 무엇을 얻고 잃었는지 보여준다. 올리버 색스의 다른 책들, [온더무브] [모든 것은 그 자리에] [고맙습니다] 을 통해서 그가 기네스북 수준의 호기심꾸러기인지 알지 못했다면, 믿지 않았을 것 같다. 그가 순수히 지적인 호기심에서 마약에 손대기 시작했다는 것을. 비록 마약중독이라는 비싼 대가를 치렀지만 올리버 색스는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환각제라는 것이 무엇인지 절대 알 수 없다는 느낌"(141)을 얻었다. 

*   *  *  * 

6장 외에도 올리버 색스는 다양한 환각 경험의 1인칭 화자로 등장한다. 3-4살 때 처음 경험했던 편두통 전조 증상(7장),  60년 전 기억과 함께 코셔와인 냄새를 맡은 후각 환상(3장), 등반 사고로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경험한 환청(4장),  아마존 여행 전 말라리아 예방약을 먹고 섬망에 시달린 경험 (10장),  환상사지? 신체상 왜곡 경험(15장). 

자신을 이해의 도구 삼는 이런 진지한 태도가 올리버 색스가 소위 '환자'를 '환자'이전 존엄한 인간으로 대하는 태도와 연결되지 않나 싶다. 




1]  환각에 대한 생물 문화적 접근 

  * 샤를보네증후군의 경우_ "시각 환각을 신경학적으로 결정하는 범주가 있는가 하면, 개인적이고 문화적으로 결정하는 요인이 있을 것이다" (40) 예를 들어, 영어를 모국어 삼는 환각경험자의 환청은 주로 영어! 


2]  환각 경험(자)에 대한 문화적 태도

  * 많은 문화권에서 환각은 명상, 종교적 의례, 식물(약물) 등을 통해 도달 추구하는 긍정의 현상이자 예술의 영감이자 영적 고양의 경험. 그러나 서구 문화권에서는 병적인 현상으로 낙인찍는 경우가 많다. (1973년 실험, 8명의 가짜 환자들이 환청 증세를 호소하자 모두 정신과 입원처리 된 실험이 그 예) 올리버 색스에게 쏟아진 숱한 편지들도, 그 동안 낙인찍힐까봐 누구에게도 말 못하던 경험을 나누고자 함이 아닌가? 환각을 병적 증후로만 몰아가는 문화적 태도로 인해 잃은 것은 무엇일까?


3] 환각 연구 이면의 정치경제학

* 올리버 색스는 이 책에서 그 부분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고, 나 역시 이 분야에 아무 지식이 없으나 감각박탈이나 환상사지치료에 쓰이는 기술 등은 얼마든지 군사적 용도(고문이나 전투력 증강 등)로 (악)용될 수 있지 않나, 현재도 그런 방향으로 연구가 이뤄지지는 않는가? 



거칠지만 'ㅊ* ㄱ"님 "ㄱㅇㅇ**ㅇ"님과 함께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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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2-01-16 18: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부지런하세요!!! ㅋㅋ 지난 주 진도가 잘 안나갔어요. 잠만 많이 자고요 ㅋㅋ

얄라알라 2022-01-17 21:04   좋아요 3 | URL
건강을 위한 숙면 우선! 숙면 뒤 좋은 글이 나오잖아요^^ 초란공님과 함께 읽는 기회 생겨서 좋습니다!!

초란공 2022-01-18 14:22   좋아요 2 | URL
저도 함께 읽기 기대됩니다!! 제가 빨리 읽기는 안되어 저도 다 읽고 북사랑님 리뷰 읽기로!!^^;; 아 그리고 올리버 옹에 관한 DVD가 나온 모양입니다. http://aladin.kr/p/bfrqO 재미있을 것 같아요!

고양이라디오 2022-01-17 11: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빠르시네요!!! 책 읽고 리뷰 읽어볼래요ㅎㅎ 이번 주 열독해야겠네요ㅎ

페크pek0501 2022-01-18 12: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올리버 색스의 책을 저도 읽은 게 있는데 제목은 생각이 안 난다는...ㅋ
환자이면서 동시에 의사였던 것 같아요. 제 기억이 맞나요?
호기심이 무척 많아서 늘 탐색하려던 자세를 가졌던 것 같고요.
실제로 괴상한 증상을 가진 환자를 다룬 이야기를 읽고 흥미로웠던 기억이 있어요.그걸 다 기록해 놨더라고요.

그레이스 2022-01-18 14:20   좋아요 4 | URL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 라는 제목의 책일거예요.
아마!
오토바이 사고로 입원해서 환자로서 겪은 이야기인것으로...
의식의 전환을 맞은 계기.

온더 무브도 좋았어요

얄라알라 2022-01-19 20:31   좋아요 3 | URL
그레이스님 페크님 모두 올리버 색스를 애정하시는군요.
저도 <온 더 무브>
라이더 시절의 젊은 색스의 모습, 다 너무 좋았어요. ^^
<내 다리를.....> 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차차 봐야겠습니다!

고양이라디오 2022-02-04 11: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얄라님! 리뷰 너무 잘 읽었습니다. 책과 저자에 대해서 너무 잘 설명해주셨네요!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 제가 놓친 이야기를 이렇게 얄라님 리뷰로 만나니 너무 좋습니다^^b

2월 책은 어떤 책으로 할까요ㅎ??


초란공 2022-02-04 12:21   좋아요 2 | URL
오늘이 입춘이래요. 그래서 봄비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마음의 눈‘이 어떨지 제안해봅니다^^

얄라알라 2022-02-05 11:36   좋아요 0 | URL
[마음의 눈] 어제 초란공님 댓글 보고 바로 검색했을 때는 못찾았는데
지금 다시 찾아보니 [마음의 눈 - 빗소리가 어떻게 풍경을 보여주는가] 마찬가지로 올리버 색스의 작품이네요^^

1. 올리버 색스 저작을 계속 이어달리기한다.
2. 강제력 없이는 혼자 읽기 어려우나 언젠가는 완독 희망하는 책을 새로 탐색한다.

저는 1, 2 다 좋습니다. 2의 책으로는 [환각]과도 연결지점 찾아볼 수 있을 [광기의 역사] 조심스레 추천리스트 올려봅니다. 두껍기는 엄청 두껍네요. ^^:; 사 놓고 안 읽은 책....


얄라알라 2022-02-05 11:36   좋아요 0 | URL
입춘 지났는데 이렇게 춥다니!!!! 어제 오늘 너무 추워요^^:;;;

초란공 2022-02-04 12: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1인칭 시점의 진술‘을 쓱 지나치듯 읽은 것 같은데 이 부분을 북사랑님 글을 보고 공감이 가네요~! 이렇게 읽으니 좋은걸요!!
 



저널리스트나 학자가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는 지향을 뚜렷하게 드러낸다면, 이는 그 개인의 사적 삶과 연관되지 않는가 하는 궁금증을 오래전부터 품어왔다.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을 집필한 전혜원은 기자로서 "우리 시대 '파블로프의 ' 비슷한 존재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다는 소신을 밝힌다. 작가 본인이 2010 일본 교토의 닭꼬치 가게에서 4개월 동안 '파블로프의 '가 되어 일했던 경험을 프롤로그에 배치하면서. 

*   *

노동을 "낯설게" 보기 시작한 기자에게, "기자가 꽂힌 분야를 팔 수 있도록 장려하는 회사"(시사IN)는 연재탐사 기사를 허용했다. 전혜원은 2018년부터 <시사IN> 소속으로 취재한 사건 기사 23편을 9개 주제로 엮어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를 펴냈다. 제목에서 "말하지 않는"의 주어가 빠져 있는데, 프롤로그를 통해서 그 주어를 특히 언론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전혜원은 노동문제를 다룰 때 진보 언론과 보수언론이 "선량한 피해자로서 노동자 vs. 노조 혐오"식 이분법에서 접근하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한다. 기자는 "선악의 이분법을 벗어난 노동 기사를 쓰려고 노력했"고, 이에 대해 소설가 김훈은 "전혜원 기자는 선악의 구분을 넘어서려고 했다지만, 결국 그도 가치판단을 완전히 내려놓지는 못한다. 인간이, 사회적 관계를 설정하는 일은 윤리적 범주를 저버릴 수 없다는 것을 전혜원 기자는 알고 있다(7)"는 (적어도 내게는) 알쏭달쏭한 추천사를 남겼다.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을 새벽까지 읽는 동안, 현관 앞에 대형 박스 4개가 배송되었다. 주말 동안 할인 쿠폰 써서 구매한 제품들이 민망스럽게도 1박스 1상품 형식으로 들어 있다. "고용 없는 노동" 챕터를 비롯, 전혜원 기자의 발품취재 기자정신 덕분에 평소 인식하지도 못하던 문제가 눈에 들어온다. 전혜원 기자가 말하는 "우리 시대 '파블로프의 ' 비슷한 존재들"은 어디까지 포괄하는걸까 질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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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1-03 09:2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선악의 이분법을 벗어난다는 것이 윤리적 범주를 저버린다는 것과 등치되는 개념은 아닌 것 같은데 김훈의 추천사는 진짜 알쏭달쏭하네요. 덕분에 좋은 책을 또 한권 알게되어서 냉큼 보관함에 집어넣었습니다. ^^

얄라알라 2022-01-03 10:53   좋아요 2 | URL
바람돌이님의 관심이 닿아있는 책이라서 제가 기쁩니다^^ 추천사를 두 번 읽었습니다. 후반부에 물론 전혜원 기자가 김훈 작가님의 글도 인용하고, 두 분이 긴밀히 소통하셨던 듯 합니다.

미미 2022-01-03 11:0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노동자들에 대한 이분법이 와닿습니다. 여성들에게도 마찬가지라고 배워서 역시나 싶고요. 결국에는 정치적인 말을 할 권리를 가진 소수에 의해서 조종당하는 느낌입니다.

블랙겟타 2022-01-03 12: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 저도 어제부터 읽기 시작했는데요 😁

얄라알라 2022-01-03 12: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시사IN] 기사들을 모아서 요렇게 얇은 책들로 펴내주시니, 구독하지 않는 관심자로서 크게 감사드립니다! [20대 남자]나 [20대 여자]보다 저는 이 책이 좋았습니다! 블랙겟타님께서도 읽는 중이시라니 앗싸!

블랙겟타 2022-01-03 22:35   좋아요 2 | URL
좋은 책이셨다니 📚저도 기대가 되네요!!

레삭매냐 2022-01-05 0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에 한전 하청업체에서
일하시던 분이 감전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하더라구요.

이런 후진국 같은 사건이
끊이지 않는지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얄라알라 2022-01-05 17:19   좋아요 0 | URL
저는 그 뉴스 스크립부터 우연히 읽었는데, 스크립 읽다가 이미 괴로워서 동영상 누르지도 못했네요.
김훈 작가님께서 자주, 기고문을 써주셨지만 사건은 똑같이 반복되니 외치는 목소리만 말라가네요...
 


어렸을 때 궁금했던 적이 있긴 하다. 어른들은 "세계"랑 "세상"을 다르게 쓰는지. 그 차이를 아는 건 중요했다. 적어도 온라인 공간에서 책을 함께 읽을 때는! 고양이라디오님은 [~~~세계]를 염두했고, 나는 [~~~~세상]을 얘기했으니, 동상이몽(될 뻔!). 


2년차, 앞으로 3년차 혹은 10년차가 될지 모를 펜데믹 터널 안에 있으면서도 사람들은 어지간히 터널 밖이 궁금했다 보나. 'POST' 코비드_19을 예측, 분석한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오죽하면 "세계"와 "세상" 한끝 차이만 두는 책 제목들을 뽑았겠나. 실수로 두 권 구비한 김에, 함께 읽었다. 




[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2020년 팬데믹 발발 이후, "뭉크 디베이트 Monk Debate" 출연진의 대담을 정리한 책이다. 말콤 글레드웰, 파라드 자카리아, 니얼 퍼거슨 외 6인 총 9인 등장한다. 이들의 트위터 팔로워를 (중복일 수 있겠지만) 모두 합하면 490만명이라 하니 '글로벌 인플루언서'라는 출판사의 홍보문구가 과장은 아니다. 2022년을 5일 앞둔 시점에서 읽기에는 다소 설익은 전망이 등장하는데 [코로나 이후의 세상]을 제목으로 택하기까지 편집진의 설왕설래가 있었겠다. 특히 제1화자로 등장하는 말콤 글레드웰의 경우, WHO가 팬데믹 선포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2020년 4월에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2021년 12월 시점에서 보면, 당황스러운데 2020년 4월의 대담은 팬데믹 이후에 초점을 두고 있다. 말콤 글래드웰은 COVID-19가 사회의 약한 고리weak link를 드러내며, 사회는 이 약한 고리 때문에 붕괴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되리라 전망한다. 이 점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다만 파라드 자카리아 등 다른 대담자들도 지적했듯, 팬데믹은 지구적 차원의 시련인데 불구하고, 세계가 이에 대응하는 방식은 여전히 자국중심적이거나 편협하고 글로벌 약자를 배제하기도 한다. 

그 외 7인의 대담에서 '한국'이 모범 방역 사례로 자주 등장하는 점이 흥미롭다. 대담자들은 다양한 자료를 인용하며 "왜 한국이?"에 대한 해석을 내놓는다. 예를 들어, 니얼 퍼거슨은 한국이나 이스라엘은 심각한 안보 위협을 경험해본 적 있어 위기 상황에서 현실에 대응하기 보다 발빠른 대응이 가능하다고 해석한다. 갤펀드 교수의 tight/loose culture를 인용하며 한국 국민이 질서 순응도가 높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등장하고. 


[코로나 이후의 세상]이 저널리즘, 문화, 정치, 경제, 안보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의 글로벌한 식견을 드러낸다면 [코로나 이후의 세계]은 제이슨 솅커를 단일 저자로 한다. 맥킨지에서 일했었고 Prestige Economics와 Futurist Institute CEO이며, 블룸버그 선정한 미래학자라 한다. 총 21권의 책을 썼다는데, [코로나 이후의 세계] 본문 중간중간 솅커 본인의 책을 자주 언급했기 때문에 짐작은 했다. 책날개 약력 말고, 저자의 세계관을 간접적으로 드러내주는 글을 일부 인용해본다. 



2001년 경기 불황에 휩싸인 후 나는 경제학자가 되었다. 과거에 나는 경제학자가 아니었다. 경제를 잘 몰랐기 때문에 지난날 입지가 좋지 못했다....(대학원 진학하면) 난 석사 학위가 있을 테고 그러면 난 돈을 더 벌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이게 내 인생의 첫 번째로 멍청한 생각이었다. 난 경제학자처럼 생각하지 못했다. (179-180)"

본문을 직접 읽기 전, 위 인용문 행간을 살피면 제이슨 솅커가 어떤 관점에서 세상 흐름을 읽고, 개입하고 싶어하며, 스스로 경제 전문가이자 미래학자라고 자부하는지 추측할 수 있다. 독자로서 나는, 경제학자로 자신의 정체성을 몇 번이고 강조한 제이슨 솅커가 왜 POST Covid-19논의에서 '교육, 에너지, 금융, 일자리, 농업, 안보, 먹거리 공급망, 미디어, 국제관계, 리더쉽, 여행과 레저, 스타트업, 지속가능성.....'등 온갖 키워드를 끌어와 겉만 두드리고 가는 방식으로 글을 썼는지 의아하다. 게다가, '블룸버그 선정 세계 제 1의 미래학자'가 아닌 대중도 뻔히 알 수 있는 이야기들을 전문가 진단인양 제시한다. 예를 들어, Covid19로 식량의 안정적 공급이 어려워지면 농업이 중요해진다거나, 팬데믹이 지속되면 의료인력이 부족하니 이 분야 일자리를 노려보라는 식이다.


 이 분은 현상의 명과 암 중, "명"을 부각시키는 방식에 익숙한지, 온라인 교육의 확산으로 교육격차, 일자리 격차가 해소될 것이라고 낙관한다. 재택근무를 하니 자동차 타고 이동이 적어져서 환경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거나, 재택근무 덕분에 회사 공간이 다른 용도로 전환되는 등 부동산 시장이 안정될 것이라고 (단순전망) 한다. 한 마디로, 재택근무가 post Covid19시대에는 더 돈이 되니까, 재택근무 하는 게 유리하다는 "전망"은 하지만, 재택근무 직종에 속하지 못한 채 "필수 인력"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바이러스에 노출되는 상황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들은 고려하지 않는다. 이 분이 쓴 21권의 책 중 다른 책을 더 읽어볼 생각이 없어졌다. 





[딴 소리] 미니멀리스트 공간 꾸리기에 골몰하는 나로서는, 두꺼운 양장본 보다는 얇고 부피 작은 페이퍼백이 좋다. 양장본 3권 꽂을 자리에, 잘 편집한 페이퍼백 6권은 들어갈 걸?

[코로나 이후의 세계]와 [코로나 이후의 세상] 두 권, 모두 적어도 "몸집 줄이기" 항목에서는 ★★☆☆ 이하 평점. 

예를 들어, 아래 본문 사진을 보시면, 총 195쪽, 19장 구성의 [코로나 이후의 세계] 중 15장은 고작 2쪽 분량이다. 페이지를 1장만 넘기면 바로 16장이 시작된다. 편집이 헐렁헐렁하다. 눈은 편하지만, 150쪽 아래로 모양 갖췄으면 좋았을 텐데.



[코로나 이후의 세상]도 마찬가지. 대담 형식인만큼, 들여쓰기 편집을 통해 Q&A를 차별화했다. 문제는 과하게 들여 썼고, 여백도 과하다는 점.알뜰한 편집을 했더라면 최종판의 2/3로 몸집 줄여서 나올 수 있었겠는데...... 종이도 아끼고, 책값도 낮아지고, 서가 공간 차지하는 부담도 덜어주고.....


콘텐츠가 아닌, 모양새를 두고 잔소리 딴소리만 늘어놓다니. 책 만들어주시는 분들께 미안해지니,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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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12-27 13: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이러니 하게도 코로나에 대해 언급한 책들은 죄다 편집이 저렇더라고요. 여백 텅텅에 쓸데없이 행간 넓고 저자 사진 양쪽에 다 박아놓고... 환경을 생각하자고 부르짖는 책들인데 정작 그 책이 환경보호에서 가장 멀리 있지 뭡니까. 저도 두 권인가, 코로나에 대해 말하는 책 읽고 화나서 리뷰 썼던 기억이 나네요.

얄라알라 2021-12-27 15:58   좋아요 1 | URL
아, 그렇군요! 저도 넉넉한 편집, 트렌드인가 이해하고 싶어도, 담은 내용은 많지 않은데 책 무게가 늘어 있으니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다락방님 말씀처럼 ˝아이러니˝ 맞다고 생각해요.

챕터 챕터 계속 환경, 기후위기 이야기를 하는 책이면서, 정작....

고양이라디오 2021-12-27 1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벌써 리뷰 올리셨군요! <코로나 이후의 세계>의 저자 제이슨 생커는 블룸버그 선정 세계 1위 미래학자라고 하는데... 전 앞으로 블룸버그 선정은 안 믿기로 했다는ㅎ

저도 다음 주까지 읽고 리뷰 올릴께요~

얄라알라 2021-12-27 15:59   좋아요 1 | URL
저는 고양이라디오님의 말씀을 아주 자~~알 알아 들었습니다^^

앞으로는 블룸버그 말고 ˝La& La˝ 선정으로!
 



Elizabeth Moon. 크리스마스. Going Solo. Moon. 강추위. 카페에서 외투 껴입기. 혼커피 혼독. The Speed of Dark. 2021 Top3 소설. 



2021년의 크리스마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크리스마스 특수를 누렸을 카페, 손님이 적어 공간이 휑하다. 오래 한자리 차지하기 미안해서, 3번이나 주문한다. 라떼에서 시작해서 아메리카노, 다시 카모마일을 마시도록 [어둠의 속도]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집중했는데도  500여 페이지를 읽는데, 꼬박 5시간이 걸렸다. 5시간 중 5 minutes은, 작가 엘리자베스 문(Elizabeth Moon 1945~)에게 마음 속 찬사를 보낸 시간이었을 것이다. 


[잔류 인구 Remnant Population]는 2주 전, 표지에 혹해서 집었다가 가슴 벅찬 채 마지막 장을 덮었던 소설이다. [어둠의 속도]는 내가 어떤 작가를 좋아하는지,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확실히 깨닫게 해 준 작품이다. "엘리자베스 문"을 좋아한다. 앞으로 더 많이 좋아할 것이다.  엘리자베스 문. 



Szymon Sokół/ CC BY_SA 3.0 



엘리자베스 문의 대표작, [어둠의 속도](2002)는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에 버금가게 내 마음에 큰 진동을 일으켰다. 내가 읽고, 경청하고, 공부하는 근원의 이유는 다른 사람들의 세상 보는 시선을 알기 위함이다. 노력해왔지만, 벽이 있다. 그 벽에 올라서는 경험을 나는 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작가로서 엘리자베스 문의 공명 능력은 마법적이다. 그녀는 [어둠의 속도]에서 주인공의 정신 세계로 들어가 이야기한다. 이 소설은 "비정상," "자폐증," "질병" 등의 라벨로 정체성을 덕지덕지 도배당한 청년 '루'를 주인공 삼아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 '루'는 자신을 '비정상'에 가둬두는 사회적 시선과 제도를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척'할 수 있고, 자기 안의 변화를 예민하게 감지하는 인물이다. 게다가 후각, 청각 등 지각능력뿐 아니라 인지력까지 천재적이다.



하지만 그를 고용한 회사는 '루'를 비롯한 소위 자폐증 직원들을 채굴할 자원으로 보기 때문에 이들의 뇌를 개조하는 실험을 제안한다. 독자는 루가 "나는 나 자신이기를 좋아합니다. 자폐증은 나 자신의 한 부분입니다. 전부가 아닙니다."라며 "장애"를 한 인격을 판단하는 단일기준 삼는 세상의 시선을 반격할 때, 루가 그 수술을 받지 않기를 기대한다. 독자는 루가 감각하는 세상의 다채로움과 열린 가능성에 부러움마저 느낀다. 질병의 증세로 폄하하기 이전에, 그건 소중한 자질이니까. 하지만 끊임없이 '넌 달라'의  '경계' 밖으로 내몰려 온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까? 루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



엘리자베스 문의 경이로운 공감, 공명 능력에 감탄했던 나는 소설의 부록으로 실린 '인터뷰'를 읽고 나서야 이해한다. 아기를 입양해서 18년 키워온 어머니로서, 작가는 (소설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자폐인) 자신의 아이를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다.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앎/알지 못함/안다는 것을 알지 못함" "어둠/빛" 등의 짝패 아닌 짝패도 사실 작가가 아이와 실제 나눴던 일상 대화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또한 Moon은, (내가 그토록 존경하는) 올리버 색스의 저작을 탐독하며 [어둠의 속도]를 준비했다. '인터뷰'를 읽고 나니, 내가 왜 [어둠의 속도]에 열광하는지가 더 분명해졌다. 나 아닌 사람(들)의 집에 조심스레 노크하되, 발자국 남기지 않으려는 절제된 존중심. 상대를 바꾸(고 싶을지라도)려기 보다는 먼저 알려는 노력. 



책은 사람들이 생각해 낸 질문에 답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답하지 않았던 질문을 생각했다. 나는 늘, 아무도 한 적이 없으니 내 질문은 잘못된 질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어쩌면 다른 누구도 생각해 낸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둠이 먼저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무지의 심해에 처음으로 닿은 빛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 질문이 중요할지도 모른다. (332)



*본문 203쪽 세번째 줄, '싶죠'를 '시죠'로 잘못 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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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2-26 16: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커피를 3번이나 주문할 정도로 재미있게 읽으셨나보네요 ㅋ 역시 책은 카페에서 읽어야 잘읽히더라구요 ^^ 리뷰를 보니 완전 궁금해집니다~!!

얄라알라 2021-12-27 22:11   좋아요 1 | URL
동감합니다, 새파랑님!!! 카페에서 읽으면 냉장고 문도 덜 열고, 카톡 확인도 덜 하고~.
다른 분들 대화는 백색 소음 삼기 딱 좋고...

고양이라디오 2021-12-27 15: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밌을 거 같아요^^ 흥미로운 책이네요ㅎ

얄라알라 2021-12-27 22:12   좋아요 1 | URL
저는 어쩌면 작가가 이렇게 자폐인 주인공 1인칭 시점으로 잘 이끌어갈 수 있나....책 읽는 내내 계속 경탄했거든요. 다 읽고 인터뷰를 읽고 나니, 그제서야 조금 의문이 풀렸습니다. 엘리자베스 문, 시간 여유 나실 때 접해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멋진 작품이예요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사이토 고헤이, 2021)에 폭 빠져서 사이토 고헤이의 세상 읽는 방식을 흉내내보고 싶다. 그는 자본주의가 내부의 모순을 외재화하는 방식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기술적 전가, 공간적 전가, 그리고 시간적 전가


이 중, 시간적 전가는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자면 "대홍수여, 내가 죽은 뒤에 와라!"의 태도이다. 사이토 코헤이는  "현재가 번영하기 위해 미래를 희생시키는" (47) 시간적 전가로 인해 "미래 세대는 자신들이 배출하지도 않은 이산화탄소 때문에 고통을 겪게 될(47)" 것이라 한다. 








나 역시 환경 이슈를 책, 기사, 영상물로 매일 접하지만 "나중에 밀려올 해일"로 미뤄두기 때문에 태연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다가 오늘 우연히 [공포의 먼지 폭풍]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부끄럽지만 고백하자면, 내게 '먼지폭풍'이라면 영화 [Interstellar]에서 스크린을 휘덮던 스펙테클적 재앙일 뿐이었다. 실제 1934년 5월, 미 남부 평원을 괴롭히던 먼지폭풍이 동부해안 지역까지 날아왔을 때, <뉴욕타임즈>에선 "주부들을 바쁘게 만들었다" 수준으로 논평했다 한다. 



하지만, 이 폭풍의 파괴력과 후폭풍은 어마어마해서 작물과 가축뿐 아니라, 사람들까지 아프거나 죽어나갔다. 먼지폭풍을 피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Okies라며 따돌림 당했다고 한다. 삶의 터전과 재산을 잃은 것만도 서러운데, 기후 난민은 이등 시민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저자 돈 브라운이 시종일관 전하려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먼지폭풍"을 자연재해라 하지만, 인간이 초래한 재앙이다. WW1의 시작과 함께 급증한 밀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땅을 갈아 엎어 밀밭을 만들고 가축들을 방목하면서 대초원의 풀들이 사라졌던 것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사람들의 몫이다. 1930년대 문제일 뿐이라고? 2020년대 농업이 소진하는 대수층의 물은 머잖아 고갈될 것이라 한다. 불길하다. 또 다른 '먼지폭풍'이 등장 준비 중일지도 모르니.....






 [공포의 먼지 폭풍]처럼 어린이 대상의 환경 교육에서 환경 문제를 미래형 시제가 아닌 현재형 혹은 과거 시제로 전달하는 방식이 효과적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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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티나무 2021-12-24 04: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 무서워요….ㅠㅠ

얄라알라 2021-12-24 11:47   좋아요 0 | URL
이 글 쓰면서 이런 저런 자료를 찾아봤는데, 공포감이!!
그런데 동부 해안지역에서는 ‘주부들 (먼지 터는 일) 귀찮게 일으키는‘ 수준으로 경험했기에 같은 재앙에 대해서도 온도 차이가 있나봐요.

중국의 황사도 폭풍은 아니어도 규모가 엄청나겠죠? 찾아볼수록 걱정만 차곡차곡. 모래가 차곡차곡...

얄라알라 2021-12-24 11:48   좋아요 0 | URL
난티나무님^^ 해피 크리스마스, 따뜻하게 보내세요. 저는 혼까페 혼커피^^
난티나무님께서는 가족분들과 해피해피~^^

han22598 2021-12-24 06: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살고 있는 곳은 실제로..dust storm 이 일어나는 곳이 있습니다....ㅠㅠ

얄라알라 2021-12-24 11:45   좋아요 0 | URL
han님, 제가 제 글 다시 들어와서 보니 dust ball이라고 적었네요.
실존적인 공포를 느껴보지 못한 방관자적 태도가 저에게 있나봐요. storm은 무시무시한 거대일텐데, ball이라고 적은 제 무의식은 무엇인지..


han님, 거대한 모래폭풍 겪으실 때, 온갖 생각 다 드셨겠어요..
저는 왜 1930년대 모래 폭풍 피해 CA로 이주한 사람들을 같은 미국인끼리 그리 차별했는지 이유를 모르겠더라고요. 국경 밖에서 온 이민자도 아니고...

페크pek0501 2021-12-24 1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 심각한 문제를 다들 알지만 미루고 산다는 느낌 들어요.
환경 문제를 다룬 녹색평론 읽고 멍했어요.

고양이라디오 2021-12-24 1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얄라님 메리스크리스마스입니다^^

정말 환경문제는 심각한 거 같아요. 그런데 쉽게 체감이 안되서ㅠㅠ

얄라알라 2021-12-26 13:24   좋아요 0 | URL
메리 크리스마스 고양이라디오님!

저는 어제 <코로나 이후의 세상 + 세계> 두 권 들고 까페 나갔다가 <어둠의 속도>만 읽고 왔네요^^

좋은 일요일 보내시길.

2021-12-25 1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2-26 1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