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라임오렌지나무
J.M. 바스콘셀로스 원작, 이희재 만화 / 양철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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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 천천히 마시면서, 읽을 생각으로 집어 들었다가 두통 선물을 받았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의 "제제"에게서. 혼자 있었기에 망정이지, 눈물과 콧물 협주, 두통까지 얻었다. 제제야, 나의 2020년 매끈했던 두통일지에 한줄 기록을 남기게 하는구나! 너를 절대로 공공 장소에서 만서서는 안 되겠다. 적어도 나는....






9살? 11살? 초등학교 때 읽어서 그랬을까? 나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책 덮을 때, 기분이 아주 안 좋았던" 책으로 기억한다. 내용을 이해도 못하면서, 나름 이 책에서 하이라이트 문장을 뽑아서 짝사랑 앓던 시절 무던히 자주 써먹었다. "사랑하기를 그만두면 그 사람은 죽은 거와 다름 없다."뭐 이런.... (원문을 찾아보니, You kill in the heart. You quit liking somebody and one day he dies.)

정작 나는 줄거리는 홀랑 잊고 있었던 것이다. 2020년 12월 3일 제제를 다시 만나며 확인했다. 




작가 바스콘셀로스Jose Mauro de Vasconcelos 20년간 품고 있던 자신의 이야기를 단 12일 풀어냈다 한다. 1968년에 처음 나온 이 책이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남반부, 북반부 사람 가리지 않고 파고들고 있다는 걸 작가는 알 수 없겠지만. 역시나 인간의 무기이자 연장(extension)은 글이다. 


브라질의 빈부격차 문제를 요새도 미디어에서 다룬다. 2020년 리오데자네이로에는 또 다른 '제제'가 살고 있을 것이다. 저항하기 힘든 가난 앞에서 불안감의 출로를 찾는 어른 가족들에게 축구공 취급받는 어린이. 이가 부러지고, 피부에 지워지지 않는 흉터를 얻은, 마음의 흉터는 봉합할 길도 깊이를 가늠할 길도 없어 언어화하지 못하는 제제들. 아이들을 상상하다가 두통이 생겼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초록은 자기치유력을 투사할 수 있는 생명이다. 제제에게 키 작은 라임 오렌지 나무가 그러했듯. 사랑하는 이를 잃고 너무 어린 나이에 커버릴 수 밖에 없었던 제제는 라임 오렌지 나무와는 헤어졌지만, 그 자신이 또 다른 제제에게 나무가 되어 준다. 작가 바스콘셀로스는 계속 라임 오렌지 나무가 되어 준다. 우리를 나무되라 이끌어준다. 



어린시절, 나는 왜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기분 안 좋아지는 책" 으로 기억했을까...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니, 폴리아나형 꼬마에게 "시소의 반대편"이 있다는 게 안보였던 것 같다. 누구라도 시소를 타면 오를 뿐 더러 내려갈 수도 있다는 게 안 보였을 것이다. 내가 행복하니 어린이라면 다 행복한지 알았던 것이다. 폴리아나형 단순함 때문에 불편해했던 이들 있었겠구나를 이제서야 그 단순함을 미안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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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12-04 0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이 2,3편 있는 거도 모르다가 뒤늦게 사놓고 아직 읽지는 않았어요 ㅎㅎㅎ저는 아이유의 제제라는 노래도 되게 잘 썼다고 생각했는데 뭇매맞는 거 보고 어리둥절...유년기는 결코 때묻지 않은 순수함도 보호받는 시기도 아니고 마냥 서글픈 걸 매맞고 뽀르뚜까 죽어 울고 나무 베어버리는 제제 보며 너무 빨리 알아버린 거 같아요. ㅎㅎㅎ

얄라알라 2020-12-04 09:07   좋아요 1 | URL
2,3편이요? 와! 그렇군요. 작가를 찾아보니, 배우도 하시고 다채로운 삶 사셨더라고요. 쓰신 책 리스트가 길던데, 포루투갈어인가 눈에 안 들어와 관심 안 가졌는데 2,3편이 있었겠네요.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지음 / 김영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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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산 게이의 [헝거]가 온라인 서점 메인화면에서 계속 유혹했어도 고집스레 버텼다. 광고로 내세우기 좋은 소재뒤에 감춰진 격한 감정의 굴곡까지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읽단 [헝거]를 읽고 난 후,  내 100대(?) 소원 중 하나는 작가 록산 게이를 만나 보는 것. [죽은자의 집 청소]역시 비슷한 이유에서 안 읽고 버텼다. 하지만, 추천사마다 절절하다. 첫 문단을 읽는데, '헛!' 허를 찔린 반응. 문장이 예사롭지 않다. 다시 책날개로 돌아가니, '청소부''인 동시에 '시인' 이었구나. 김완 작가는 오랜 세월 대필 작가(ghost writer)로 글을 써왔다 했다. 


책 읽는 내내 폭포 아래서 물줄기로 두들겨 맞는 얼얼함에 머릿 속은 빠르게 회전했다. "죽은 자"가 제목의 키워드이지만 작가는 산 사람이 죽은 자를 대하는 방식,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넘어서는 공감과 연민(작가가 애묘인인지라 고양이가 많이 등장한다), 거창하게는 불평등, 소외, 탐욕, 죽음조차도 돈으로 처리되는 이 시스템 등...흉내도 못낼 시적인 문장으로 쿡쿡 다 쑤신다. 이 정도 독자 오장육부 다 뒤집을 정도로 전율시키고 뇌까지 각성시키는 글 쓰려면 자기를 갈아 넣어야 하는데, 희한하게도 작가님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자신을 그다지 드러내지 않으면서 이처럼 내밀한 글을 쓸 수 있다니, 신묘한 능력일세 하며 읽는데 마지막 즈음....작가의 이야기가 나온다. 


죽은 자들의 공간을 들락이며 살았던 시간, 생 마감한 이후의 시간의 경계조차 뭉개듯 상상의 교감을 누적해서 그런가, 내 눈에는 작가가 30대가 아니라 300살 넘은 사람처럼 보인다. 김완 작가님, 참 많이 배웠습다. 감동이 너무 커서, 차마 초라한 문장으로 리뷰도 못 올릴 지경으로.





책 전체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의외로 일본 행정 관료들이 "고독사"를 "고립사"라고 언어유희하듯 명칭 변경한 이면의 함의였다! 그렇다. 솜털만큼도 그 고독은 감춰지지도 덜해지지 않는다.


"고독사 선진국 일본. 그 나라의 행정가들은 '고독'이라는 감정 판단이 들어간 어휘인 '고독獨사' 대신 '고립立사'라는표현을 공식 용어로 쓴다. 죽은 이가 처한 '고립'이라는 사회적 상황에 더 주목한 것이다. 고독사를 고립사로 바꿔 부른다고 해서 죽은 이의 고독이 솜털만큼이라도 덜해지진 않는다 (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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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11-15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네요. 고독사는 고립사네요. 고립사가 더 와닿을 수 있겠어요.
 



















처음 읽은 책은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이는 오랜 기간, 전국구 시간강사로 광폭 행보(?)를 해온 경험 덕분에 더 힘이 실릴 수 밖에 없는 글입니다. 직접 대학생들과 강의실에서 토론으로 맞장 뜨고, 그들의 레포트를 읽으며 20대의 생각을 가까이에서 모을 수 있었기에, 힘이 실릴 수 밖에 없는 글입니다. 


두번 째 읽은 [진격의 대학교] 역시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사회학적 통계보다도 시간강사로서의 오찬호 선생님이 만나온 지방대 대학생들의 증언을 자료 삼는 글입니다. 여전히 대학 서열로 성골, 진골을 나누고 차별하는 우리 사회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세번 째,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를 읽을 즈음, 오찬호 박사님은 대학교에서 평생직장을 찾을 생각을 딱히 하진 않는가  감을 받았습니다. (정교수로 안착한 선배 사회학자나 윗 세대 교수 중 일부의 "갑질"능력을 폭로하시더군요! 세상에, 특강을 의뢰해 불러놓고는 강사료 대신 학생 레포트를 주시다니요! 세상에, 오찬호 선생님이 쓰는 대중적 책이 가볍다고 면전에서 비꼬 다니요!) 여하튼, 오찬호 선생님은 대중적 저술과 강연이라는 채널이 그 비판적 목소리를 알리는 데 더 효과적이고, 본인 스스로 그 채널에서 리드할 재능이 상당함을 간파하신 듯 합니다. 


오찬호 선생님은 사회학자로 드물게(죄송합니다. 제가 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학계 바깥에서 일반인 독자 팬덤을 형성하고 있어서, 그분의 책 광고와 저자와의 만남 댓글은 대개 뜨겁습니다.  고등학생, 대학생, 성인 남녀 두루두루 팬층으로 확보하고 계신가봅니다. 이 분의 책을  손꼽아 기다리는 독자들 실망시키지 않고, 참 책도 빨리 쓰시고 글도 시원시원해서 잘 읽힙니다.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 [지금 여기, 무탈하세요?]까지 내리 읽다보니, (독자로서) 오찬호 선생님과 친해진 느낌입니다. 비판적 세상 읽기, 사회학적 상상력으로 세상의 틈새 보기가 체화된 학자라는 존경심도 들고요. 


[지금 여기, 무탈한가요?]는 중고등학생 논술 교재에 연재하던 선생님의 글을 다듬어 최근 펴내신 책이더라고요. 

제가 이미 알고 있다 생각한 화두들도, 선생님의 풍부한 예화와 직설화법으로 다시 소개되면 처음 만나는 화두인양 눈길을 끕니다. 


다만, [지금 여기 무탈한가요?]를 읽으며 궁금한 점이 들었습니다. 선생님의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이고요. 21세기 한국 사회의 (고질적) 병폐, 적폐, 불평등의 현실을 묘사하고 고발하시는 데 꾸준히 기여해주시니 감사하지만, 이런 한국의 현상을 글로벌한 스케일에서 어떻게 위치지을 수 있는지, 그냥 "다 나쁜 건가?" 이 질문이 생기더라고요. "무탈하지 않고," "하나도 괜찮지 않은" 그 마음, 그런 세상보기의 시각이 물론 중요하지만, 한국의 현상이 그렇게 암울한 것인가? 다른 사회들과 비교급 혹은 글로벌한 스케일에서 문제 공유하고 해결할 의지는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궁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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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0-11-10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관심이 많은 분야인데...이분 책 한번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얄라알라 2020-11-10 10:04   좋아요 0 | URL
글을 어쩌면 이렇게 술술, 재밌게 쓰시는지....부러운 작가분입니다

2020-11-10 05: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까이 다가오지 마 마음이 자라는 나무 25
에릭 월터스 지음, 김선영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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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20년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네요. 활동량, 적어도 물리적인 걸음 수가 작년의 십 분의 일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카톡 울림도 덜해지고, 거울 속 저 눈동자는 사람을 응시하는 법을 잊은 것 같습니다. 장자의 나비를 떠올리며 스크린이나 활자 속을 거닙니다. 코로나 19가 조용히 바꾸어놓은 삶의 풍경입니다. 이런 시기, 어쩌면 지극한 "일상"을 기록하는 것이 훗날 큰 힘이 될까요?




소설 [가까이 다가오지 마]를 읽으며 한 생각입니다. 이 소설, 코로나 19 팬데믹 시대인 2020년에 바로 그 전염병을 소재 삼았습니다. "일상"이 정지, 혹은 온택과 언택으로 대체되는 풍경을 여러 에피소드로 담아냈습니다. 의료진을 둔 가족은 감염을 최소화하기 위해 생활공간을 분리하고, 휴교해서 친구들과 못 만나니 학교 운동장은 텅 비고, 온라인 수업을 듣고..... 


솔직히, 읽다 보면 [가까이 다가오지 마]는 소설인지 나의 이야기인지, 코로나 시대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사연인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2020년 우리 현실을 지극히 충실히 그렸습니다. 인물들의 반응도  예측 가능했고, 이벤트나 반전 역시 상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그려집니다. 마스크를 쓴 채, 광장에 모여 파티하며 잠시 콜로나 블루를 잊으며 공동체성을 확인하는 이벤트 말입니다. 


[가까이 다가오지 마]에 대한 첫 느낌이었습니다. 그. 런. 데. 

이런 치밀한 기록이야말로, 훗날 어쩌면 그 어떤 SF소설보다 참신한 내용은 아닐까 상상해봅니다. 2020년 우리야, 팬더믹의 한 가운데에서 이제 어떻게 이 전염병과 함께 살지로 전략 수정을 하고 있기에 소설의 내용이 일상입니다. 하지만, 불과 오 년 후라도 이 팬더믹이 잠잠해지면 [가까이 다가오지 마]가 꽤 이색적 스토리가 되지 않을까요?


삶의 구체적 현장을 색 적게 섞어 기록하는  것이야말로 팬데믹 시대 중요한 작업인 것 같습니다. [가까이 다가오지 마] 덕분에, 팬더믹 일기를 쓰고 싶어집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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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운동을 한다는데 - 운동 못하는 스포츠기자가 만난 운동하는 여자들
이은경 지음 / 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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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여자. 특히 운동 못하던 여자의 운동이 요새 출판계 대세 키워드인가? 근래 읽은 책만해도, [근육이 튼튼한 여자가 되고 싶어], [마녀 체력] [살 빼려고 운동하는 거 아닌데요] 여러권이다. 이 책들의 공통 분모는 주로 글 쓰는 전문직 여성들의 운동 입문기, 혹은 운동의 재발견과 예찬, 나아가 운동을 축 삼아 페미니스트적 세상 읽기. 


[여자가 운동을 한다는데]는 제목에서 이미 젠더 논의 포석을 깔고 있다. 저자가 이 분야에서 20여년간 일해온 전문인이다. 일간 스포츠에서 14년, 스포츠 잡지 및 온라인 스포츠 매체까지 두루 거쳤다. 저자는 운동 좋아하지 않는다. 한결같이 싫어하고 한결같이 못한다고 이야기한다. 학창시절 저자는 "1000미터 오래달리기 시험 때는 우리 반 꼴지인 나를 뒷반 1등이 따라잡았다. 착각한 선생님이 내 등수를 뒷반 2등으로 적기도 했다(10)."며 한 번 들으면 잊기도 어려운 충격 에피소드를 공개한다. 


[여자가 운동을 한다는데]는 저자의 에세이 모음집인 1부와, 인터뷰 모음집인 2부로 구성된다. 저자의 넓은 인맥 덕분에 2부가 다채로운 인터뷰로 채워져 독자로서 감사하지만, 나는 1부가 훨씬 재미있다. 기자 생활만 얼추 20년.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의 재미란 게 있다. 요샌 워낙 스포츠 브랜드 마케팅에서 여성이 적극적 주체로 그려지기에 잊을 뻔 했는데, 불과 3-40년전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스포츠의 구경꾼일 뿐이었나 보다. 저자가 인용한 1985년 국민생활체육참여실태조사 결과에서 '지난 1년간 운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여성 응답자가 89.4%라고 한다. 설령 운동을 했다할지라도 '걷기운동' 일색. 그래서 저자는 아예 소제목을 "한국 여자의 일생엔 운동은 없었다"고 달았다. 학교 체육 시간에도, 혹 결혼과 출산이라도 하게 되면 돌봄 노동에 치여서 등등 여러 이유 때문에 운동에서 밀려났다는 것이다. 가장 충격적인 내용은,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 쿠베르탱의 말씀(?)이다. "여성의 스포츠는 추하다" 했다는데? 쿠베르탱을 인용해가며 썼던 독후감으로 상 받았던 기억이 흔들린다. 대놓고 차별해도 차별이라는 걸 인지하지도 못했던 시절이 불과 백여년 전. [여자가 운동을 한다는데]를 완결형 문장으로 만든다면 이젠 어떤 문장이 뒤에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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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0-10-27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의 일생엔 운동은 없었다!˝ 너무 충격적인데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중,고등학교 (여중,여고)다니면서 이럴다할 운동을 배워본적이 없어요 ㅠㅠ
달리기 조차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막 뛰라고 했을 지경이었으니까요.

2020-10-27 0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27 0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27 0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