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을 2020년 어느 달보다 느긋하게 지냅니다. 책 읽으며 쉽니다. 성스러운 종교적 공간에서 마음을 닦는 분도 있겠지만, 발이 게으른 저로서는 햇살을 등에 지고 책 읽어도 수행입니다. 본인이 건강해야 사랑하는 이들을 돌볼 수 있다고, 돌봄의 선배들은 이야기하시죠. 내 마음에 옹졸과 후회의 앙금을 비워 내야 다른 사람도 담을 자리가 생기겠죠. 책을 읽으며, "나"라는 허구의 경계를 넘어 사람들을 만나고 배웁니다. 읽다 보면, 교만한 생각이겠지만, 다른 이들도 함께 살리는 삶을 꿈꾸게 됩니다. 

12월 내내 과하게 읽어댔으니 자제해야겠지만, 벌써 오늘만 해도 두 권을 읽었습니다. 할 일도 미룬 채. 

최재붕 교수의 <포노 사피엔스 코드 Change 9>를 먼저 읽고, 화타 김영길의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3>을 바로 집었습니다. 의도한 선택은 아니었는데, 두 책에서 제시하는 인생관 세계관이 대척점에 놓고 대비시키기에 딱인지라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전자는 세계를 빠르고 (거스를 수 없는) 거센 흐름으로 인식하고, 개체들도 전략적 기능적으로 빠름을 자원화하라고 촉구합니다. 후자는 정중동의 수묵담채화처럼 세상을 인식하고, 매끈하게 윤활유 친 기계적 세계관을 멀리합니다.

 최재붕 교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포노 사피엔스"로서의 생존전략을 각인시키면서 독자에게 자신을 "이야기꾼"으로 자리매김합니다. 널려 있는 정보들을 꿰어서 맥락에 위치시켜주는 작업은 지적으로나 경험적으로 자원이 풍부한 이들에게 가능하죠. 그런 의미에서 최재붕 교수는 Change9을 대중에게 각성시키는 선구적 이야기꾼일 듯합니다. 아날로그 선호의 저 같은 독자조차 "포노 사피엔스"의 대세를 거스르기 어렵다는 자각을 시켜줄 정도로요.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의 김영길 선생님은 굉장히 겸손하십니다. 그래서 가장 최근 발행된 시리즈의 5권을 읽고 역순으로 이전 저작을 찾게 되었습니다. 2009년에 쓰셨군요. 걸어서 국토를 한 바퀴 도는 여행(?)을 하신 후에. 겸손하고 투명하시군요. 그런 코드에 주파수가 맞춰져 있는 독자로서, 귀한 여행기와 인생관을 글자를 통해서나마 얻어 듣게 되어 참으로 감사합니다. 


특히, 사람의 병을 고치는 직업을 가진 이로서 본인이 귀가 갑자기 안 들렸을 때의 당혹감과 무력감(당장 환자 진료하는 데, 듣는 과정이 중요한 데 귀가 안 들리다니...), 비제도권 한의사이지만 이비인후과를 찾아 귓속 귀지를 파내고 귀가 들렸을 때의 청량감 등을 묘사한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천하의 명의를 딴 "화타"라는 선생님의 호가 실은 조금 불편했는데, 그런 불편감을 상쇄시켜주는 인간적 솔직함과 투명함이었습니다. 


오늘도 햇볕과 책과 사람의 온기로 하루를 채웁니다. 이렇게 채우면서 풀어낼, 좋게 풀어낼 날이 꼭 왔으면 싶습니다. 이 부분은 최재붕 교수도 어려운 학술 용어로(읽은지 반 나절 만에 잊었네요), 화타 김영길도 이야기했습니다. 마음에 그리고 추구하는 상像을 실현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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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다 보면,  만나고 싶어지는 작가들이 있다. 내 경우, 올리버 색스, 이윤기(그리스로마 신화 번역과 집필하신) 작가. 안타깝게도 두 분 다 소천하셨다. 영국의 정치철학자 브래드 에반스Brad Evans나, 록산 게이Roxane Gay에게 매료 당했지만, 꿈에서라도 만날들 모국어 아닌 언어로 얼마나 대화를 이어가겠는가? 


그리고 이라영이 있다. [정치적인 식탁]을 읽는데, 이런 신선(+신랄)한 작가, 만나고 싶었다. 소심한 내 기준으로는 "쎈" 언어로 검술을 펼치는 이라영은, 현란한 전문용어로 철갑 두른 여느 지식인들과 사뭇 다르게 쓴다. 생각은 해봤어도 남 눈치 보느라 차마 꺼내지 않았던 이슈들을 이라영은 퍽퍽 직구로 날려준다. 급 호기심이 발동해서, 이라영을 검색해보니, 오호! 대단한 다작가였다. 활동 분야도 다양(예를 들어, 최근엔 [비거닝]의 필진으로, 이전엔 생협에서 낸 출판물에)하고 관심사도 문어발인 작가. 


실제 작가는 그 질문, "책을 참 빨리 쓰시나봐요?"를 많이 받아 봤다 한다. 아니라고 했다. 출간을 염두하고 쓴 것도 아니고, 계약하고 마감일 잡힌 후 쓴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 동안 꾸준히 계속 써온 글들을 손봐서 방출(?) 하고 있는 것이라 한다. 이라영 작가가 말하길,"들어오는 건 많은데, 내 마이크는 작고, 내 말 듣겠다는 사람도 없고, 혼자 (글 쓰며) 쏟아내온 시간이 길었다"고 한다. 이제 차곡차곡 폴더(글 곳간)을 열어, 방출 중이라 한다. 


이런 귀한 이야기는 12월 21일, 오늘 "알라디너 TV" 실시간 북토크를 통해 들었다. 이라영 작가님도 대단하지만, 진행한 이다혜 기자도 "크러쉬" 받을만 한 분이다. 유쾌한 두 분의 대화를 듣느라 70분이 훌쩍 지났다. 



이라영 작가, 이다혜 기자 모두 소형 산타 클로스 모자를 쓰고 연실 "맞아요. 맞아요." 맞장구 치고, 웃고, 테이블을 (살짝 내려) 치고, 부지런히 책을 뒤적이며 대화하는 모습, 보기만 해도 흥분되었다. 시소의 박자 타듯, 대화의 쿵짝 리듬이 참 잘 맞는다. 


이라영 작가는 오랜 타국 생활 덕분일까? 아니면 알라디너 TV 실시간 토크가 얼굴의 반 이상을 가리는 마스크(+산타 모자)를 쓰고 이뤄짐으로써 연기하는 분위기가 났던 탓일까? 눈치 따윈 없어! 하는 식으로 껄껄 깔깔 시원스럽게 웃어 제끼고 성격 마구 드러내며 대화하는 이라영에게서, 문체에 솟은 날카로움을 상쇄시키는 부드러운 매력을 느꼈다. 


대방출 할 글 목록, 글 곳간을 차곡 차곡 채워온 이라영 작가, 앞으로 더 기대한다. 그리고 나는 내 곳간을 채울 키워드부터 찾아야겠다는 자극 받는다. 그 동안 채우기야 많이 채웠지, 방향 안 잡고 키워드를 못 세웠던 게 문제다. 



알라딘 TV 생방 중에 (강원도 출신인) 이라영 작가가, "강원도 출신 여자, 이런 자리에서 처음 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어떤 맥락의 대화였을까?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뱉어낸 말이겠지? '이런 자리'는 무얼 뜻할까? 이 말을 뱉은 이는 어떤 사람일까? 본인이라면 "이런 자리"에 마땅 속해 있어야 하는 일인이고, 특정 지역(서울 외 지방?)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이런 자리"에 어색하다고 여겼다면 왜 일까?


■ 미셸 푸코 책 번역도 하고, 강의도 하는 허경 박사가 강의 중 지나가며 전했던 말이 생각난다. 왜 명절 때, "강원도 언제 내려가냐? 서울 언제 올라오냐?"고 말하냐며 서울 중심주의(?)를 비난했다. 위도로 따지자면 강원도가 더 높기 때문에 "올라가고 내려가고"의 표현이 맞지 않다며, 왜 서울을 중심으로 생각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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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12-22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게 있었군요. 봤으면 좋았을텐데. 아까비.

2020-12-24 15: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24 15: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24 16: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문의 주인공 마음이 자라는 나무 22
미나 뤼스타 지음, 손화수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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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죽 로맨스류(소설 영화 만화 일체)에 관심이 없었으면, 한 번은 장안의 화제라는 순정만화를 떠밀려 읽다가 맨 마지막 장에서야 거꾸로 읽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이름이 그 이름 같고, 그 캐릭터나 저 캐릭터나 눈동자에는 다이아몬드 박혀 초롱초롱한 까닭에 이해할 의지도 없었나 보다.


그러나, [소문의 주인공]을 읽고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나는 로맨스류를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첫사랑 이야기라면 더욱. 청소년 소설 [소문의 주인공]을 어찌나 재미나게 읽었는지, '아! 중학생 시절로 다시 한번' 의 라떼 멘트가 나오려는 걸 자기 검열했을 만큼. [소문의 주인공]의 작가 미나 뤼스타는 첫사랑만으로 모자란 지 아예 삼각관계 상황을 설정했다. 신문사 칼럼니스트이자 기자인 마리에, 마리에의 취재원이자 모델 외모의 타리예이 선배, 마리에가 어려서부터 연정을 품었던 오랜 친구 예스펜. 이들은 중학교 2, 3학년들이다. 어린 친구들 가슴 콩닥거려하는 이야기에 설렐 수 있다니, '아, 내 마음이 맑은 것일까? 아니면 미나 뤼스타가 글을 너무 잘 쓰는 것일까?


[소문의 주인공]이 단지 연애 초기의 밀당 에피소드로만 채워졌더라면, 미나 뤼스타에게 별 넷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전작 <#좋아요의 맛>에서도 SNS의 허와실을 지적하더니 이번 [소문의 주인공]에서도 가짜뉴스, 황색 저널리즘의 폐해를 보여준다. 바로 주인공을 둘러싼 소문 에피소드를 통해서. 또한 단순히 소문을 만들고 퍼뜨리는 가해자, 피해자의 이분 구도를 넘어 "가짜"의 최종 책임은 분산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그런 가짜 뉴스를 소비하고, 침묵으로 동조하는 이들을 포함해서. [소문의 주인공]을 읽으니, 노르웨이 청소년을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 미나 뤼스타의 소설 두 편을 읽었지만, 학원 다니고 시험 보느라 어깨 처진 초등, 중등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조회수 올리려는 가짜 저널리즘에 맞서는 신념 있는 기자나, 현상에서 더 깊은 이야기를 끌어내려고 꿰뚫으며 글을 쓰는 대견한 예비작가가 등장한다. 참신했다! 



[해당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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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연애와 같아서 - 번역을 하고 가르치고 공부하며 사는 날들
이상원 지음 / 황소자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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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출판번역을 시작으로 러시아어와 영어 출판물 번역을 줄곧 해온 이상원 번역가. 대학에서 번역과 인문학 글쓰기 강의도 진행한다. 이런 이력을 쌓으며 고민해온 번역이라는 현상을 [번역은 연애와 같아서: 번역을 하고 가르치고 공부하며 사는 날들]이라는 에세이로 엮어냈다. 



에피소드 중에, 개강 첫 주에 고등학교 때 하던 영어해석이 번역과 뭐가 다르냐고 질문한 대학 신입생이 등장하는 데 흠칫했다. 내가 이상원 교수 강의를 수강했다면 오리엔테이션 때 물어봤을 질문이기 때문이다. 노련하고 지혜로운 스승은 즉답하지 않는다. 대신 그 1학년 학생을 포함 제자와 독자들에게 다양한 번역 연습을 시키고 스스로 질문하게 한다. '옮긴다'는 것이 뭔지, 누구를 위해 왜 옮기는 것인지, 무엇이 좋은 번역인지. 이상원 교수 스스로 자신의 교수법을 질문은 많되,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 것으로 특징 짓던데, 이 책을 읽으며 동감했다. 수십 년 번역과 연애해온 전문가로서 집적해온 아젠다를 독자와 나누려고 (번역학에?) 초대하려는 의도를. 덕분에 나도 [번역은 연애와 같아서]를 읽기 "전/후"로 번역에 대한 마음가짐, 번역가의 처우(?)에 대한 실상 파악의 정도가 달라졌다. 저자 스스로 "골 빠지게 힘든" 번역이라 하면서도 번역에 소명의식에 충만한 이유를 생각해본다. 번역은 생각의 회로를 뜯어내 재배치하는, 그 경로를 보여줌으로써 소통하는 작업이기 때문일까?



"번역 수업의 목적은 정답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정답이 가능하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다 (92쪽)"


"내 한국어가 안녕하다는 안이한 생각을 떨쳐내고 한국어를 계속 닦아 나가는 노력, 이는 번역 수업의 중요한 한 부분을 이룬다 (120쪽)." 


"원문 존중이냐, 독자 고려나 하는 논쟁은 사실 번역과 번역학 역사를 꿰뚫고 있다. 기원전 1세기의 키케로와 기원후 4세기 말의 성 제롬도 그리스어를 라틴어로 번역하면서 이런 고민을 했고 독자 고려를 중시한 자기 번역을 옹호하는 글을 남겼을 정도이다 (162쪽)."


"번역을 하면서, 또 번역을 가르치면서 계속 고민하게 만드는 단어가 하나 있다. '그녀'이다. 나는 '그녀'라는 대명사를 가능한 한 사용하지 않으려 애쓰는 편이다...우선 '그녀'라는 단어가 우리말에 언제 등장했는지 살펴보자. 국어학자들은 대체로 '그녀'가 20세기 초에 서구의 3인칭 여성 대명사 영향을 받아 생겨났다고 보고 있다 (1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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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0-12-21 0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글을 쓸 때 ‘~것이다’로 끝나는 문장을 안 쓰려고 해요. 번역과 작문의 기본자세는 고치고, 또 고쳐 쓰는 과정이에요. ‘독자 고려를 중시한 번역’이라는 표현에 눈길이 가요. 원문이나 단어의 의미와 다른 번역문이라도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의역을 한 것이라면 저는 이런 시도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역자의 과감한 시도로 볼 수 있어요. ^^

scott 2020-12-21 2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구를 위해 왜 옮기는 것인지, 무엇이 좋은 번역인지]
읽는 독자들, 읽혀지는 살아있는 문장을 위한것이네요.
결국엔 번역은 영혼을 갈아넣는 기술인가봐요 ㅋㅋㅋ

레삭매냐 2020-12-24 2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디선사 만난 번역인가 반역인가
란 문장이 생각나네요.

완벽한 번역이 존재하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2020-12-24 2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알라딘 서재를 기웃거리다가 [모비딕] 피규어까지 사진 올린 리뷰를 보았다. '얼마나 대단한 작품이었으면....' 좋다! 다시 읽어보자! 


청소년기에 읽고, '엥?' 했던 싸늘한 마음, 이젠 다를 거야.


BUT 


표지에 혹해서 그래픽 노블로 읽은 게 실수 였나?  원전의 묵직한 알맹이를 체가 큰 거름망에 다 거른 셈인가? 어째. 전율해오는 감동이 찾아와야할 타이밍에도, 허,헛, 허무하도다! 


왜 에이헤브에게 "고귀한 선장이시어"라고 예를 갖추는 걸까? 자멸의 블랙홀 에너지가 공멸을 재촉하는 데, 왜 '고귀한 선장'이라 할까? 바다에서의 40년, 말리고 소금에 절인 음식을 먹으며 작살을 준비한 40년, 이 억울함은 뭐지? '한 배' 탔다는 이유로 운명의 닻에 꿰인 뱃사람들은 뭐지?  희생된 사람 수, 이렇게 계산해가며 읽는 책이 아닐 텐데, 2021년에는 원전으로 다시 읽어야겠다. 아직까지 한 번도 읽지 못했던 소설로 다시 비워두고. 고래 콧등만 핥고 '엥?'한 셈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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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0-12-19 07: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내년에 한번 읽어보려고, 독서 목록에 적어두었어요 ^^

scott 2020-12-19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픽 노블은 사랑입니다.^*^

페크pek0501 2020-12-19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성이 자자한 모비딕. 아직도 갖고 있지 않은 1인입니다. 두껍지 않아 좋군요.
새해에 도전!할까 생각하게 되네요.

레삭매냐 2020-12-24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픽 노블 <모비 딕>은 고대로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