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쓰레기 탐색자 - 소비문화와 풍요의 뒷모습, 쓰레기에 관한 인문학적 고찰
제프 페럴 지음, 김영배 옮김 / 시대의창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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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범죄학(cultural criminology)이라! 일찍이 CSI시리즈나 Criminal Mind 시즌 13까지 완파한 범죄물 광팬으로서도 상당히 생소하다.  이 분과의 전문가 역시 당연히 금시초문일 수 밖에. 제프 페럴(Jeff Ferrell)이라는 분은 문화 범죄학, 사회학, 인류학을 넘나드는 학자인 동시에 그래피티 애호가란다. 공식적 이력서 외에 한 줄을 더 추가하라면 "쓰레기 수집 전문가"라고 꼭 써넣어야겠다. 이 분이 쓴 책제목이 바로 『도시의 쓰레기 탐색자 Empire of Scrounge:  Inside the Urban Underground of Dumpster Diving, Trash Picking, and Street Scavenging』이다. 도서관 서가를 어슬렁거리다가 우연히 제목에 끌려 뽑아든 책이 이런 보물일 줄이야.  엄청 빠져 읽었다. 


오해는 마시라. 너무 재밌어서, 인문학이라면 절반은 팔리는 시대에 인문학 '농축서'여서도 아니다. 스릴러로 치면, 마치 이쯤해서 한 방 먹여줄 만 한데 하면서 스릴을 조마조마 기대하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었도라는 뜻이다. 작가가 애리조나 대학의 종신교수직을 박차고 고향인 텍사스 주 포스워스에서 8개월간 쓰레기 더미를 뒤진 이야기라는데 어찌 솔깃하지 않을 수 있으리. 한국 사회 그 누가, 이런 과감한 인생 역전의 지도를 그릴 수 있으리. 남이 신다 버린 고린내 나는 신발을 말려 신고, 커다란 쓰레기 통 안에 일단 방뇨부터 하고 본격 작업(쓰레기 더미 뒤지기와 건질 거리 건지기)을 무려 8개월간 생업 삼을 수 있는 대학교수가 한국에 있겠는가? 

340여쪽에 달하는 이 책의 80퍼센트는 제프 페럴이 쓰레기를 수집하며 기록한 일기를 편집하고 에피소드를 나열한 내용이다. 꽤 많은 논문과 책을 펴낸 학자이기에, 자신의 경험과 수집한 자료에 대한 본격적 분석은 어느 시점에 등장할까, 분석의 요지는 무엇일까. 기대기대하며 책장을 넘긴다. 그래서 스릴러의 '한방'을 기대했다고 표현했다. 
결론을 말하자면, '한방'은 아주 유연한 방식으로 부드럽게 와서 지난 줄도 모르겠더라. 이 책을 다 읽고나서 본격적 사회과학서라기보다 장르를 한정지을 수 없는 에세이라고 분류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내게는 오히려 제프 페럴이 굳이 방법론을 목차 속에 설계해 집어 넣고 설명하거나 분석틀을 딱딱하게 언급하는 아카데미아의 방식을 따르지 않고, 이처럼 그래피티 그리듯 자유롭게 자신의 경험을 옮기고 의미있는 주장을 하는 방식이 성공적이라고 느껴진다.


이쯤해서 저자의 '한방'을 살짝 소개해본다. 실제 대화해본 적은 물론 없지만 제프 페럴이라는 학자는 천상 아나키스트적 자유로운 영혼의 인물같다. '모난 돌 정맞는' 한국 사회에서라면 "괴짜" 딱지를 떼레야 뗄 수 없었을 것 같은. 그마나 크록스 신발에 등산조끼 입고도 대학강단에서 군소리 안듣고 강의할 수 있는 (일부) 미국 사회에서의 교수였으니 인정받았을 듯. 


『경계의 민족지 Ethnography at the Edge』의 저자이기도 한 이 분은, 연구자이자 쓰레기 수집가로서의 이중적 정체성을 고민할 여지도 없이 흠뻑 빠져들어 쓰레기를 수집한다. 만나는 이들과 공식이건 비공식이건 인터뷰를 할 의도도 아예 없다. 그냥 자신의 새로운 삶을 사는 듯 하다. 즉, 오만하게 관찰자의 시선으로 쓰레기 수집가의 삶을 묘사하고 분석하지 않았다. 정치인이나 도시 행정가들이 '해충,' 혹은 '괴물'로 제거하려드는 도시 쓰레기 수집인들의 삶을 긍정하고 그들이 이루는 지하경제의 미학을 예찬하고, 역으로 도시(특히 미국사회)의 속 빈 강정같은 소비문화를 비난한다. 



도시와 거리의 길모퉁이의 쓰레기통, 쓰레기더미, 쓰레기봉투 등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물건들을 보면서 나는 확실한 문제를 발견했다. 바로 끝없이 확산되는 미국 소비문화, 나날이 벌어지는 빈부격차, 문화적 물질주의에 기반한 글로벌 경제의 대량생산과 그 결과로서의 낭비가 그것이다. (278쪽)


“단순한 기생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의 주체적 생산: “물질문화의 가장자리에서, 소비와 도시의 삶 사이에서, 법과 도덕의 복잡한 혼돈 속에서 길거리의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중략)…소비 지향 도시의 집중화된 불평등 한가운데서 도시의 탐색자들은 날마다 남아도는 도시의 부를 재분배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pp.297-301)”


소비자는 어제의 신제품을 오늘 쓰레기통과 길거리로 집어던지기 바쁘고, 거리의 탐색자들은 쓰레기더미를 분류하고 솎아내서 찾아낸 것을 재활용한다. 결국 양자 모두 상품과 쓰레기, 공공과 개인, 소유와 버림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이 틀렸음을 증명해내는 셈이다. 이 과정에는 소위 불법이 끼어들기도 하지만, 비공식적 교환과 재활용을 통해 도시는 쪼개지지 않을 수 있었고, 사회적 계급이나 경제적 특권에 의한 도시의 분리를 막을 수 있었다. (3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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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조장하는 위험들 - 위기에 내몰린 개인의 생존법은 무엇인가?
브래드 에반스.줄리언 리드 지음, 김승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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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믿을 이유를 갖게 되면, 생명세계에서 벌어지는 변형들을 보면서 절망의 구름 위에 아름답고 시적인 것들이 있음을 믿고 긍정하게 되는 방식으로 새로운 윤리적 감수성을 가지고 세상과 계속해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213)



활자중독이 과했던 꼬마 시절, 리더스 다이제스트사의 "세계의 불가사의"로 기억하는 두꺼운 백과사전에서 얻은 정보가 이후 세계관에 영향을 미쳐왔다. 쥘 베른의 "해저 2만리" 등을 예로 들며, 인간의 집합적 상상력은 자기실현적 예언력을 발휘한다는 요지로 기억한다. Sci-Fi 영화를 즐기고나서도 께름칙했던 이유는, 대다수의 영화가 암울한 인간의 미래 혹은 되돌이킬 수 없는 대절멸을 기정사실화하고 전개되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빈곤한 디스토피아적 상상대로 미래가 회색 구름 아래 펼쳐진다면, 날개펼 수 있는 자 누구인가? 보험가입도 허무하다. 사과나무 동산을 일구는 상상도 허무하다. 저출산의 기저에는이런 허무주의도 작용할까?


『국가가 조장하는 위험들 (원제: Resilient Life: the art of living dangerously)』를 읽기 전까지는, 미래에 대한 자포자기적 불안이 나만의 유산, 즉 꼬꼬마때 읽었던 쪼가리 정보 탓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문자 그대로 내게는 "eye opener"가 되어준 이 소중한 정치철학서에서 공저자 브래드 에반스(Brad Evans)와 줄리언 리드(Julian Reid)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출처: Julian Reid 의 Twitter   


질투날 만큼, 쿵짝이 잘맞는 공저자(본문에서는 계속 "We"라는 주어를 쓰지만, 목소리가 갈리지 않아서 마치 한 명의 학자와 이야기하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브래드 에반스와 줄리언 리드에 따르면, 인류세의 종말에 대한 디스토피아적 상상과 이에 대응하는 회복력 담론은 신자유주의의 통치전략이라고 한다.  
 "안전"과 "경계가 확실한 공동체"이라는 자유주의 통치체제 아래의 개념은 이제 "불가피한 재앙"으로 대체되었다. 이제 불안정과 불안정은 되레 정상으로 여겨지고 주체는 그 안에서 "회복력"을 갖출것을 요구받는다. (이 '회복력(resilience)' 담론이 어찌나 급속히 보편 도그마로 작동하는지, 이제 일상의 대화에서조차 "울 아이 회복탄력성을 길러주는 육아를 해야겠다"든지 하는 말을 자주 들을 지경이다)
불가피한 "전지구적 위험" 앞에서 인간은 한낱 죽음 앞에 서서 두려워하는 취약체로 전락한다. 두 저자는 이렇게 신자유주의의 회복력 담론이,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환경 담론, 허무주의와 결합하여 인간이 더 이상 유토피아를 꿈꾸지 못하게 한다고 비판한다.



"회복력" 혹은 "회복탄력성"이라는 말을 사회과학서, 미디어, 심지어는 육아 코칭 수업과 일상에서조차 익숙하게 들으면서도, 그 기저의 불손한 정치적 함의를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국가가 조장하는 위험들』은 소심해진 주체의 몸사림과 탈정치화를 꼬집 각성시킨다다. 회복력 담론은 "어떻게 안전을 확보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위험에 적응할 것인가(51쪽)"을 핵심 문제로 규정하고, 안전을 병리화한다. (다시 생각해보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며 유토피아를 꿈꾸는 개인도 병리화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즉, 인간 본질의 이상을 꿈꾸는 시인은 되려 강제로 거대 시스템에 연결되거나 셀에 감금당한다) 게다가 "실제로 위험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문제를 일으키는 주범으로 여겨지니." (34쪽) 세상의 빈자, 가난한 국가의 사람들은 생명자격시험에서 탈락하여 방치되고 벌거벗은 존재로 전락한다. 



브래드 에반스와 줄리언 리드는  "생태논리와 경제 논리가 맞물려 생명영역뿐 아니라 인간의 정치적 역량마저 훼손하는 데 공모하는 지점"(119)을 드러낸다. "냉전 종식 직후의 자유주의 통치가 '개발 - 안전 결합'의 형태였다면, 21세기의 자유주의 통치는 '지속가능개발(sustainable development) - 회복력 결합'의 형태"(106)임을 밝힌다. 



"회복력은 거대한 비즈니스다. (143)"


『국가가 조장하는 위험들 』 덕분에 나는 익숙하다 못해 당연시 했던 개념들을 불편하게 헤쳐본다. "중년의 위기" "아이의 회복탄력성" 의 대중서적 제목이 암시하듯, 인간의 생애주기는 전 주기에 걸쳐 병리화되고 영속적 위기에 처해있다는 신호를 내보낸다. 신자유주의 통치전략 아래, 사회적 책임은 자연스럽게 개인에게 전가되고 개인은 "자기돌봄"의 기술을 내면화한다. 2018년 대한민국 사회에 유행하는 "각자도생"이나 "자기계발서"의 베스트셀러화도 이런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성공"이 곧 "정상성(nomalcy)'가 되는 사회에서, "시장의 고려사항에 맞는 특정한 종류의 주체, 열망,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교육 프로젝트"(150)에 세뇌된 우리는 과연 어떤 전복을 꿈꿀 수 있을까? 



지적 테러리스트인 두 저자는 그렇다면 21세기를 지배하는 재앙 담론의 함의를 까발리며, 어떤 대안을 제시하는 것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난무하는 지구멸망의 시나리오가 헛되다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런 대종말의 시나리오 앞에서일지라도, 우리가 "인간 존재의 자기실현적 엔드게임을 어떻게 넘어설지 말하는 대안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220)라고 반문한다. 즉, "자신이 처한 상황이 불가피하고 필연적인 상황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을 반드시 극복"(226)하고 "상상과 이미지를 통해 만들어낸 비전이 열어준 길을 따라가고 긍정할 수 있는 주체"(276)가 되어보자고 촉구한다. 흠, 어렵다. 자크 아탈리의 『언제나 당신이 옳다』를 읽고 나서의 헛헛함과 살짝 겹친다. 



그럼에도 나는 브래드 에반스와 줄리언 무어가, "파시즘적 지구를 구성하려 하는 정치적 상상에 맞서서, 우리의 삶을 계속 변혁시켜나가자"는 촉구의 의미를 담아 쏜 화살, 즉 이 책, 『국가가 조장하는 위험들 』 에 탄복한다. 그들이 쓴 다른 책들도 차근 차근 읽어나갈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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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권력의 탄생 - 1%가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권력 사용법
대커 켈트너 지음, 장석훈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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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포토라인과 갑질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이명희(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부인)은 스스로 "권력은 내 손아귀에 있으니, 휘두르건 내지르건 내 맘인걸 몰랐니?"라고 생각했을까? 그와 그 자녀들이 권력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알길은 없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그들 스스로 "권력자"라고 느꼈을지라도 이제 행사할 영향력은 물론 평판을 죄다 잃었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명희는 권력의 속성을 "
재력, 정치력, 기만, 무자비, 전략적 폭력' 등으로 보는 데 동의했을 것이다. 이는 『선한 권력의 탄생(The Power Paradox)』의 저자, 대커 켈트너(Dacher Keltner)가 (21세기에 와서는) 진부하다고 일컫는 마키아벨리식 권력관이다. 20여년간 '권력' 연구에 매진해온 그는 권력을 독재자가 쟁취하고 휘두르는 강압적 힘으로 보기를 거부한다. 대신, 공동체에게 부여받고 타자와 관계맺게 해주는 매개로 파악한다. 한마디로 "권력은 세상에 기여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아크 자탈리의 『당신은 언제나 옳다』가 떠오르는데 켈트너가 말하는 "세상에 기여하는, 타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힘"은 소위 명망 높은 소수자에게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공공선 증진에 기여할 그 누구에게서도 발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켈트너 식으로 해석하자면, 청와대 국민청원을 주도한 당신도, '아프가 점수'를 고안하여 미숙신생아의 목숨을 살린 여성도 이미 권력을 행사한 것이다. 

 

이처럼 권력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주어지는 것이기에, 그 유지에도 공동체의 입김이 작용한다. 대거 켈트너는 평판, 존중, 뒷말, 창피주기 등 다양한 권력 견제의 메커니즘을 소개했는데 무척 흥미롭다. 그 중 17세기 독일에서 행하던 "굴욕 가면 (mask of shame)" 씌우기 예시가 인상 깊은데, 이는 공동체 내 공공선을 저해하는 이의 행위를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이었다. 21세기에도 별 ☆☆☆☆☆평점이라든지 인터넷 댓글 등 뒷말을 공론화할 수 있는 수단이 널려 있다. 

 

 사회심리학자로서의 대거 켈트너의 관심은 "권력이 사람들의 개인적 삶과 사회적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일상생활을 구성하고 있는 사회적 상호작용 속에서 어떻게 권력이 형성되는지 (21)"에 있다.  이러한 그의 학문적 관심을 반영한 용어가 바로 "권력역설(Power Paradox)"이다.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반면, 권력을 남용하여 통제불능의 소시오패스가 될 수도 있다는 역설을 뜻한다. 켈트너에 따르면 권력역설의 문제를 잘 다루면, 개인차원에서는 사적, 공적 삶에서 올바른 지침을 얻고 사회적 차원에서는 건전한 공동체를 이룩할 수 있다고 한다. 

 

켈트너는 권력유지를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 것'으로 정리하면서, 그 구체적 실천 사항으로서 "연민, 나눔, 고마움의 표현 그리고 스토리텔링" 능력을 든다. '타인의 감정을 더 잘 읽고, 더 잘 보듬아주고, 사람들에게 호감 주는 말재주를 가졌으면 당연히 인기 있지. 당연한 이야기 아냐?' 라고 반응할 독자가 있겠지만, 나는 켈트너가 어쩌면 뻔한 이야기를 관련 연구 결과들을 대학자의 통찰로 엮어 뒷받침하며 강렬하게 독자를 설득시키는 방식이 놀랍다. 정치학 서적으로 오해하고 책을 집어들었던 독자는 결국 『선한 권력의 탄생』 이 보다 나은 세상, 불평등을 감소하고 사람이 사람을 존중하는, 움추러들고 무기력의 악순환에 빠지기 쉬운 사회적 약자가 세상을 바꾸는 긍정의 힘을 찾으라는 메시지를 주는 책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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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2 - 근대의 빛과 그림자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2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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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2

근대의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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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월 둘째 주, 공공도서관에서 빌려 놓고 돌려가며 읽는 책 목록. 그 중 예약희망된, 한 마디로 "찜"당한 책이 한 권 있으니 바로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2』지난 달 시리즈의  제3권이 출간되었다던데, 줄 서서 빌려 갈 만큼 인기 많으니 도서관에서 빨리 순환시켜드려야 할 책인가보다. 다른 책 재껴두고 책 읽는 속도를 높인다.

 

*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2』저자(니까 당연히 주경철 교수)는 "인간이 역사를 만들고 역사가 인간을 만든다."는 제목의 프롤로그에서 "유럽인이란 - 더 크게 보아 인간이란 - 사악하기 그지없는 존재라고 느껴졌더가도 인간 내면의 어느 한구석에는 아름답고 숭고한 한 조각의 가능성이 깃들어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 작은 가능성을 크게 키우고자 하는 것이 역사라는 거울을 통해 우리를 비춰보는 이유이다. 인간 사회는 어쨌든 조금씩 밝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리라 믿고 싶." (11쪽)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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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실제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2』를 읽다보면, 연일 'shooting,' 'murder,' 'terror' 단어가 연발되는 끔찍한 뉴스만큼이나 페이지 애프터 페이지마다 암살당하는 사람, 죽이는 사람, 고문당하는 집단과 개인, 전쟁의 폭력과 권력자들의 암투 이야기가 이어진다. 흠, 그래서 주경철 교수가 "아름답고 숭고한 한 조각의 가능성"이라 표현했는지도 모르겠다. 역사 공부하여 인간의 양면적 모습을 잘 성찰하다보면 긍정적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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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1』 에서 서양사학자 주경철 교수(서울대)는 세계사 특히 유럽사를 젊은세대에게 제대로 알리고 싶다는 생각에 네이버팟캐스트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 펴낸다고 했는데, 역사에 무지한 독자를 배려하여 쉽게 썼다. 또한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 말까지의 유럽의 역사를 8명의 인물을 통해 조망하는 전략을 썼다. 그 첫번 째 인물이 "카트린 드 메디시스," 영화 '여왕 마고'에서의 캐릭터처럼 검은 옷을 입고 모략을 일삼는 타락한 정치인이 아니었으리라는 것이 주경철 교수의 해석이다. 교수는 '스티븐 핑거'까지 동원하며 여성정치가가 더 평화지향적일지 모른다는 입장에 무게를 두는 듯 하다. 이어, 네델란드 건국의 초석을 놓은 "빌렘"을 소개하는데 그가 '침묵공'이라는 별칭을 얻게 된 에피소드가 흥미롭다. 3장에서는 후대의 오해와 달리 신앙심이 깊었던 불굴의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과학과 종교의 공존을 모색한 근대인'으로서 소개한다.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2』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챕터는 4장이었는데, "독일의 악마들, 마녀사냥 이야기"를 다룬다. 주경철 교수는

 

 

 

어떤 의미에서 유럽 문명은 마녀를 필요로 했다.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신성성과 마성 등은 함꼐 규정되었다. 최고의 선을 확립하고 지키기 위해 최악의 존재를 만들어야 했다. (137쪽)

고 해석한다. 또한 마녀사냥을 흔히 '중세적 현상'으로 규정하지만 실은 르네상스와 과학혁명, 계몽주의로 이어지는 근대 초에 그 정점을 이뤘음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의 질문이 자연스럽게 제기되는데, 정석의 답내기는 어렵다다. 다만 주경철 교수에 따르면, "다양한 갈등이 폭력적으로 분출할 수 있는 기제로서 마녀 개념이 장기간에 걸쳐 준비되었오, 그것이 특정 지역의 특정 국면에 따라 유연하게 작동"했으니 "마녀사냥은 다양한 갈등이 분출될 수 있는 일종의 범용(汎用)기제"(162)였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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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에서는 태양왕 루이14세의 "절대주의" 체제가 결코 절대적이지 않았으며, 지방의 엘리트들이 자신들의 이해를 챙기고 지키는 와중에 끊임없이 전쟁을 치뤄댔던 루이 14세 때문에 프랑스 국민과 이웃국가 국민들이 얼마나 괴로웠을지를 상기시켜준다.
개인적으로 사람 이름이 많이 나와 읽으며 괴로웠던 6장에서는 합스부르크 가문을 통해 유럽근대사를 보여준다. 7장은 미술사와도 겹칠텐데 천재 예술가였던 베르니니를 통해 유럽사를, 8장에서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존 로가 버블을 일으킨 사건을 조망한다.
*
역사책이라고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손도 안 대어 보다가, 유시민 작가의 글 기반이 어린 시절 역사 공부라는 생각에 반성하며 최근 한 두권씩 찾아다니는 수준이다. 이제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2』를 다음 독자를 위해 반납하고, 설혜심 교수의 『소비의 역사』를 대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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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1-17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사랑님. 제 ‘서재 브리핑’에 같은 내용의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리뷰 11편이 뜹니다. 리뷰 등록 과정에 알라딘 서버에 오류가 생긴 것 같습니다.

얄라알라 2018-01-18 00:21   좋아요 0 | URL
cyrus님, 친히 알려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꿈에도 모르고 있었네요. 낮에 리뷰와 사진 올리려는데 계속 오류가 났는데 그 모든 시도마다 다 등록되었나봅니다. 귀찮으실 일을 이렇게 일부러 시간내 댓글로 알려주시니 다시금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지금+여기 3
오찬호 지음 / 개마고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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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애꿎게도 소위 '생산적이지 못했던 2017' 게으름을 자기에게 돌려, 책 안 읽는 형벌을 내리더니만........ 제 기질은 어쩌지 못한다고 다시 서가를 기웃거린다. <아픈 몸을 살다> 처럼, 책덕후들의 블로그를 놀러다니다가 셀프추천 받은 책 중 하나인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를 이제 막 다 읽었다. 사실 오찬호 박사의 <진격의 대학교>를 먼저 읽었다. 참. 신. 했. 다! 블로그 기사 모음집처럼 속도감을 내는 쉬운 문장에 설득력 넘치는 실제 사례 덕분에 집자 마자 다 읽어버렸다. <괴짜사회학>과 <플로팅 소사이어티>의 수디르 벤카테시 (Sudhir Venkatesh)가, 동료 사회학자들의 따가운 시선을 충분히 의식하며 대중적 글쓰기와 '사회학계' 내 통용될 고전적 글쓰기 사이의 줄타기 과정을 보여주는데 반해, 오찬호는 초연하게 쭉쭉 나아간다. 저자 약력이나 본문 중간중간 등장하는 '대학 시간 강사'로서의 언급이 아니었던들, 신문연재기사나 파워블러거의 리뷰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술술 쉽게 읽힌다. 어쩌면 그것이 오찬호 박사의 전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보다 많은 이들에게 대한민국 20대의 민낯, 진짜 얼굴 보여주고 생각하게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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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진격의 대학교>에서 오찬호 박사의 자료를 버무려내는 솜씨와 말빨(?)에 기대가 컸던지라, 서강대 사회학과 박사논문을 다듬어 낸 <우리는 차별에 반성합니다>에는 살짝 실망도 하였다. '보고 싶은대로 보고, 보인다'의 위험을 어찌 사회과학전문가가 놓쳤으랴나마는, 그가 그리는 대한민국 20대의 몽타주는 오찬호 박사가 보고싶은 부정적 면을 강하게 부각시켰다. 그가 보여주는 20대는 한결같이 사회불평등에 비굴하리만큼 순응적이면서도 '자기계발' 신화를 먹이로 삼는 성공욕 때문에 자기분열을 보인다. 또한 책 제목에서는 "우리"라는 대명사를 썼지만 그 안에서도 서울대를 서열사다리의 '넘사벽'으로 교묘하게 편집해내고 있지 않나 싶다. "서울대 = 이미 사회특권층(에 가까운 가정 출신 등)"이라는 일반화 아래서, 서울대 출신 김난도 교수가 34에 대학 교수가 "되네 마네"하는 고민을 하더니만, 마찬가지로 서울대 출신 제자들이 20대에 "UN에 들어 가네 마네"의 고민을 상담해준다면서, 자기계발서로서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미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올라 있는 소수만을 위한 '아프니까 청춘'이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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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비롯한 여러 자기계발서들이 간과한 사회적 현실이란 게 사실 놀랄 만한 뉴스는 아니다. 살면서 누구나 몇번씩은 들어봤음직한 이야기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기계발서의 이야기에 별다른 의심을 품지 않는다. 이유가 뭘까? 바로 '능력주의'에 대한 신뢰 떄문이다. 쉼 없이 달려온 청춘이 지쳐 쓰러졌는데, '원래 아픈 거다'라는 식의 맥 빠지는 조언에도 폭발적으로 공감하는 건 바로 자기계발담론의 세계관을 떠받치고 있는 능력주의에 적극 동의하기 때문이다. (2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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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서강대 출신으로서 한국 사회 학벌주의가, 그것을 비판하고 그에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해 계속 공고하게 만들어지는 현상을 기술한다. 오찬호 박사가 운영한 사회학 강좌 수강생이 제출한 과제물과 강의실에서의 토론, 그리고 야밤의 술자리로 이어지는 대화를 자료삼아 21세기 대한민국의 20대가 사회적 약자인 동시에, 신자유주의의 경쟁 논리를 온몸으로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만이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수년간 동덕여대, 목원대, 서강대, 세종대, 아주대, 안양대 등에서 강의하면서 face - to -face로 20대를 밀착해 만나온 그만이 가진 자료에 바탕했으니까. 따라서 "그래서 뭐?"하는 식의 깐족거리는 반응은 자중해야겠다. 오찬호 박사만이 가진 자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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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해석에서 흥미로운 점 하나. 그는 시종일관 한국 출판계의 '자기계발서' 열풍을 시니컬한 어조로 비판하면서 '열심히 살려는 20대들이여, 그대들 자기계발서의 논리에 속고 있는 거야!'라고 일깨워주는데 흥미롭게도 '신자유주의'라든지 푸코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일부러 한 선택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왜 였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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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1-04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인사가 쪼금 늦었어요.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 책에 푸코까지 언급되면 책 내용의 난이도가 급 향상되었을 것입니다... ㅎㅎㅎ

AgalmA 2018-01-04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셀프 추천ㅎㅎ 넘 공감되는!
얄라알라북사랑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같이 셀프 추천 책들과 신나는 모험을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