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와 살고 있습니까? - 가족의 틀을 깬 놀라운 신상 가족 밀착 취재기
tvN 〈판타스틱 패밀리〉제작팀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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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누구와 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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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1999), <바람난 가족> (2003) 등의 영화뿐 아니라 <마요네즈> (1997) 등 소설에서 "가족의 해체" 내지는 새로운 유형의 가족 등장을 뜨겁게 이야기하던 시절이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이상적 엄마상과 아빠상, 이상적 가족상에의 환상이 펑펑 터져 나가고 "가족 = 사랑 = wild world로부터의 안식처"라는 안전한 공식이 깨지자 독자와 관객들이 당황한 듯 보였다. 없던 사실을 허구로서의 소설과 영화가 만들어내서가 아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모두 알지만 차마 말하기 어려웠던 이야기를 하는 데 당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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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 "자식은 노후 보증수표, 보험"이라며 전통적 효 孝 가치를 들이미는 어른도 드물겠거니와 역으로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은 엄마아빠"라는 모법담안을 이야기하는 아이들도 많지 않다. 심리서, 육아서에서 가족이야말로 지워질 수 없는 상처의 원인일 수 있다고 역설한다. 가족과 함께 부대끼며 살기보다는 혼자서 더 행복한 사람들이 입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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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다큐멘터리 <판타스틱 패밀리>가 바로 "신 新 가족주의"의  날 것 그대로를 담아 냈다.  창사 10주년 특별 프로그램으로 기획 1년에 취재 1년을 더해 공을 들인 데다가  가족 및 시민을 무려 600여 명이나 인터뷰하여 화제가 된 다큐멘터리이다. <당신은 누구와 살고 있습니까?>는 4부 구성의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엮어낸 결과물이다. 제작진은 "가족은 핏줄"이라는 전통적 가족관이 흔들리다 못해 "가족의 변화가 어쩌면 '이 지경'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비참한(?) 쪽으로 흘러가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문과 가설에 대해 고민 (5)"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반려 로봇을 위해 천도재를 지내는 사람들''이 결정적 제작 계기였다고 한다. 함께 지내던 로봇 강아지의 부품이 수명을 다하자 천도재를 지내고 나머지 부품들을 인간이 장기기증하듯 다른 로봇에게 기증한 사람들이 있다.  실제 제작진이 찾은 가족은 로봇과 유사가족(그들의 내부적 관점에서는 정통가족일) 으로서 깊은 애착심을 보이며, "로봇의 수명이 다하더라고 곁에 늘 두겠다"고까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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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4부 다큐멘터리를 활자화한 <당신은 누구와 살고 있습니까?>의 2부는 LAT (Living Apart Together) 가족을 다룬다. 이 생소한 용어는 서로의 가치관과 취향을 존중해 따로 살지만 부부생활을 유지하는 가족을 말한다. 맥시코의 국민 화가 부부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가 그랬듯이.

그 외 2부에서는 "가족은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라는 생각을 비웃듯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소개한다. 대표적 예로  반려동물에게 사람과 똑같은 의미를 부여하여 가족원으로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팸팻족"이나, 자발적 비혼족, 사제 師弟가족 등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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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에서는 프랑스, 영국, 한국, 일본 등 세계의 다양한 가족을 밀착 취재한다. 고령화가 진행 중인 유럽과 일본 한국에서 특히 심각하게 사회문제화되는 'Tanguy족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캥거루족 혹은 패러사이트 싱글)'을 주로 다루었다. 자식 다 키워놨는데, 자립 못한 자식이 부모 품에서 떠나지 못하며 부모에게 양가적 감정을 안겨주는 사례가 남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청년 실업, 고용 불안정 문제가 날로 심각해질 한국 사회에서 앞으로 더 크게 다뤄질 이슈이기에.
4부에서는 좀 생소하게도 "부모 자식관의 상처가 대물림되는 가족"을 집중 케이스로 낱낱히 해부했다. 다른 가족에 비해, 제작진이 가장 깊이 들어가 가족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말로 표현되는 이면의 보이지 않는 갈등과 심리적 고통까지 해석해낸 장이라고나 할까. 완벽을 추구하는 부모 밑에서 열등감과 억눌림에 시달렸던 일본 남성이 한국 여성과 국제결혼 한 후, 자기 자식에게 똑같이 억압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제작진의 의도가 무엇이었을까? 4부를 읽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가족 = 사랑, 부모 = 영원한 안식처"라는 생각에 대놓고 도전하는 챕터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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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도 고백하듯, 한정된 제작비와 제작 기간 안에 양질의 컨텐츠를 만들어내기란 참 어려운 작업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많은 가족들을 밀착 취재하고 또 그 내용을 사회문화적 변화 양상 속에서 해석해낸 제작진의 대단한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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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지도 -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리처드 니스벳 지음, 최인철 옮김 / 김영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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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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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한국에서 초판 번역본이 나온 이래, 무려 54쇄까지 찍어낸 필독교양서 <생각의 지도 (원제The Geography of Thought:The Asians andWesterners Think Differently and Why> 를 이제서야읽어 본다.  중국에서 유학온 중국인대학원생의 다소 도발적인 지적, 중국인은 순환적 사고를 하는데 교수님은 (서양인 특유의) 직선적 사로를 하신다, 에 자극받기도 했거니와 여러 사회과학 문헌들을 섭렵하다 보니, 인간인지과정 보편론자로서의 생각에 변화가 왔다고 한다. 이후, 저자 리처드 리스벳 교수가 몸담고 있는 미시간 대학뿐 아니라 베이징 대학, 교토대학, 서울대학에서 교차 실험 연구를 하면서 동양인과 서양인 사고과정의 차이, 그기원을 밝히는 시도를 하고 있다.


본격적 논의에 앞서 저자는 독자의 오해를 사지 않도록 용어에대한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인다. '동양' 이라 할 때, '동양'으로 지칭되는 문화의 다양성을 무시하려는 의도가 아니라고밝힌다. '동양' '서양'이라는범주어도 단순한 이분법의 발로가 아니라, '평균적' 차이를고려하여 편의상 썼다고 한다.

"왜 동양인과 서양인의 사고과정이 다른가? 기원을 어디서찾을 것인가?"의 문제의식에 대한 답으로 저자는 고대 그리스와 고대 중국 철학의 풍경을 독자에게펼쳐 보인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은 개인의 자율성에 대한 강한 신념으로 자유와 개성, 사물의 본질을 중시하는 특징을 지닌다. 그 증거로 저자는 영어 어휘에서추상 형용사를 '-ness' 접미사를 통해 명사화시키는데 반해 중국어에서는 추상 명사접사가 없음을 지적한다. 고대 중국에서는 개인의 자율성보다는 집단의 자율성과 조화로운 인간관계를 중시했다고 한다. 그 예로, 음양 이론, 침술, 풍수를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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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동양의더불어 사는 삶, 서양의 홀로 사는 삶'에서는 미국과 중국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사례를 끌어와 동서양의 자기 개념(self-concept)을 비교한다. "당신에 대해 말해 보시오."라 하면 여러분은 어떤 서술을 할지? 북미인들이 성격형용사나 행위 위주의 서술을 한다면, 한중일 3국 사람들은 타인을 언급하거나 타인과의 관계지향성을 드러내는 서술을 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자아, 내집단, 외집단간의 관계성'을 보여주는 사회심리학 실험을 예로 더하고 있는데, 미국인과 한국인에게 볼펜을 마음대로 골라 가지라 했더니 한국인들은 가장 무난한 색을 대부분 골랐다고 한다. 그렇다면 미국인은? 가장 희귀하고 튀는 색의 볼펜을 골랐다. 멀리 이 실험까지 가지 않고, 우리나라 고속도로를 생각해보자. 무채색 계열의 무난한 차량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렇다면 캘리포니아의 프리웨이 위를 달리는 차량의 색은? 저자는 이런 일상의 예가 독립성(independence)을 강조하는 서양과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e)을 강조하는 동양의 사고과정 차이를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흥미로운 연구 사례도 2장에서 소개되었는데, 경영학자 제프리 산체스 버크스가 이끈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경영자의 속마음을 읽어내는 데에 피실험자였던 미국인보다 한국인이 더 뛰어났다고 한다. 저자는 타인의 감정을 신경쓰며 자라온 데서 그 이유를 찾는다.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아이들이 밥을 남길 ˖, "농부 아저씨가 너가 밥 남기면 얼마나 속상하시겠니?"라고 타인의 감정을 언급하지 않는가?


동양인은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상호의존적 단서들을 통해 끊임없이 상호의존적인 사람이 되도록 유도(점화)되어 있고, 서양인들은 독립적 단서들을 통해 독립적인 사람이 되도록늘 점화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71)

보다 상호의존적 사회에서 살고 있는가, 아니면 보다 독립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는가 하는 사회적존재 방식이 세상을 보는 방법을 결정하는가? 만일 그렇다면 오늘을 살고 있는 동양인들은 개인의 힘보다는외부의 힘을 중시하는 집합주의적이고 상호의존적인 사회에 살기 때문에 외부환경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일 것이다. 반면에 서양인들은 개인주의적이고독립적인 사회에서 살기 때문에 보다 분석적인 눈으로 세상을 보고 환경보다는 사물자체에 많은 주의를 기울일 것이다. “(82)

상호의존성과 독립성이라는 단어는 3장에서도 대조군처럼 계속 등장한다. 동양인은 배경, 즉 맥락을 고려하며 전체를 보는 성향이 강한 방면 서양인은 사물 그 자체를 독립적으로 분석한다는 주장은 반복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심리학 사례가 다양하고 참신하다.

4장, "동양의 상황론과 서양의 본성론"에서는 1991년 실제 발생했던 총기난사 사건을 사례로 같은 사건에 대해 미국인과 중국인이 어떻게 다른 해석을 내리는지 소개한다. 미국인은 총기 사건의 주범의 성격적 결함에 주로 주목하지만 중국인은 가해자의 상황적인 요인을 더 고려한다는 연구 결과를 보인다. 마찬가지로 스포츠 게임에 대한 가쉽에서도 미국인은 주로 개별 선수의 능력으로 경기 결과를 파악하는 반면, 동양인은 팀워크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한다.

리처드 리스벳은 5장에서 "문화적 차이가 언어적 차이에 기인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책 전반에 걸쳐 기술하는 동양인과 서양인의 인지적 차이와 언어적 차이 사이에는 놀라울 정도의 유사성이 있다는 말과 아울러. 가까운 예로 우리 국어 교육을 생각해보자. 초등 고학년이 되어서도 일기장에 '나는' 이라는 주어를 쓰면 '꽤나 유치한' 어린이 취급 받으며 우리는 좋은 문장에서 주어 '나는'을 생략하기를 권고받는다. 반면 행위의 주체를 자신으로 두고 사고하는 영어권에서는 언어에서 주어에 집착한다. 비가 온다를 영어로 it's raining이라 하지 않는가?

<생각의 지도>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장을 꼽으라면, 6논리를중시하는 서양과 경험을 중시하는 동양”을 들고 싶다.  저자 리스벳 교수의 제자이자 번역자인 최인철 교수는 문화적 차이를 증명하기 위해 한국인과 미국인 참가자를 대상으로 모순관계에 있는 진술들을 제시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1. 많이 알면 알수록, 더 믿게 된다. 2 많이 알면 알수록, 덜 믿게 된다.의 두 가지 진술에 대해 한국인 참가자들은 놀랍게도 1에 동의했더라도 2진술에 동의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한다. 비약하자면 동양인들은 서양인에 비해 모순에 보다 호의적이며 변증법적 사고를 한다고 볼 수 있다. 간단히 표현하자면 서양인이 either/or로 사고할 때, 동양인들은 both/and로 사고하는 경향이있다는 것이다. 사고법의 차이에 대한 이런 가설이 '동양인은 서양인보다 더 점 보는 걸 좋아한다'는 진술에 대한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서양인이 일관되게 긍정 혹은 일관되게 부정인 진술을 신뢰한다면, 동양인은 모순 관계에 있는 진술에 더 융통성 있기 때문에 점장이의 점괘에 호의적이라는 것이다.

7장과 8장에서는 "서양과 동양 사고 방식의 차이, 그 기원은?"과 "누가 옳은가?"의 질문은 던진다.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까지 언급하는 7장에서는 사고의 차이를 생태환경의 차이 수준에서부터 검토한다. 쌀 농사가 중심이 되는 농경 사회인 고대 중국에서 협력이 중요했던 반면, 고대 그리스에서는 무역이 성행했기에 집단주의가 상대적으로 약했고, 이렇게 다른 사회구조가 사고방식에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다. 물론 사고의 차이를 낳는 것은 생태환경 외에도 경제적 이유나 종교적인 이유도 있다는 설명도 잊지 않는다. 8장에서는 언어, 몸에 대한 접근, 법률, 경영, 계약에 대한 태도, 종교 등의 면에서 동양과 서양인의 인식 차이가 어떻게 벌어지는지를 보인다. 8장에서 던진 "누가 옳은가?"에 대한 질문은 에필로그에서 답하는데. 리스벳 교수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과 서로 존중하며 중간쯤에서 수렴될 것이라는 견해에 동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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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가 들려준 이야기 - 인류학 박사 진주현의
진주현 지음 / 푸른숲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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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가 들려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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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하게 산 글로벌 인재의 삶을 엿보는 것은 행복이다. <뼈가 들려준 이야기>를 읽으며 몇 번이나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물론 책 내용이 너무나 흥미로웠던 이유도 있지만, 저자 진주현 박사의 진솔한 성품과 열정에 감복해서였다. 일반인을 주 대상으로 집필하긴 했어도 꽤 전문적인 내용인데, '저자의 삶'에 감동받았다고 하면 진주현 박사가 어떤 표정을 지을까? 하지만 진심, 그녀의 삶이 아름답다. 90년대에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닌 그녀는, 자신의 뼈와 맺은 인연을 사적인 에피소드들로 소개한다. 고등학교 신입생이었던 청소년 진주현은 강남역 노래방을 갔다가 교통 사고를 당해 팔골절을 겪는다. 이후로도 2번 더 뼈가 부러지고 다시 붙는 과정을 경험했다는 개인의 이야기를 뼈에 대한 기본적 상식에 녹여 소개하니 문외한 독자의 귀에도 쏙쏙 와 박힌다. 서울대학교 고고학과에 입학한 그녀는 전공과목 숙제로 <최초의 인간 루시>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생각을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뜨거운 그녀는, 아프리카 올두바이 계곡으로 필드를 떠난다. 학부생으로서 말이다. 이미 1, 2학년 때는 온두라스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필드 스쿨을 다녀온 그녀인지라 먼 대륙, 이국 땅에서도 잘 적응하며 뼈를 찾아다녔다고 한다. 이처럼 당차고 똑똑한 그녀에게 한국고등과학재단은 해외유학을 지원했고 그녀는 인류학 박사 학위를 따고 현재 하와이 미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기관(DPAA)에서 근무하고 있다.

 

 

 

 

 

 


  2차대전 당시 실종 미군 유해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주는 본업 외에, 그녀는 뼈와 관련된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그 전문적 식견을 제공한다. 타고난 학자이자 에너자이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인류의 진화를 공부하며 받았던 억울한(?) 비난에 대한 해명에, 비타민 D결핍증에 대한 현대한국인들이 새겨들을 만한 피부색 관련 이야기. 고고학 발굴 이야기, 공룡뼈 밀수 사건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한 보따리 풀어 놓는다. 동시에, 해외 여러 기관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들면서 한국에서 뼈 연구에 투자는 커녕 그 가치조차 몰라준다고 학자로서 쓴소리와 충고를 해준다. <뼈가 들려준 이야기> 단연코, 우리 인간 종에 대해 알고 싶은 독자라면 놓치면 아까운 수작이다! 너무 재밌어서 지하철 왕복 5시간이 지루한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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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수록 정치적인 음식들 - 음식으로 들여다본 글로벌 정치경제
킴벌리 A. 위어 지음, 문직섭 옮김 / 레디셋고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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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수록 정치적인 음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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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제목 잘 뽑았다는 생각이 든다. <알수록 정치적인 음식들>이라 하니, 왠지 알야야만할 것 같고, 음식 문화의 정치경제적 접근에 익숙한 독자일지라도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다는 의욕을 자극하니 말이다. 더군다나 <알수록 정치적인 음식들>의 원제인 <From Jicama to Jackfruit: The Global Political Economy of Food>에 등장하는 히카마(Jicama)니 잭푸르트(Jackfruit)란 과일은 한국인 독자에게 낯설기에 직역한 제목으로는 저자의 의도를 심상화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저자 킴벌리 A. 위어(Kimberly A. Weir) 교수는 노던 켄터키 대학 정치학과에서 '음식의 정치학 (the Politics of Food)'이란 이름으로 개설하여 수년 간 진행해온 국제관계론강좌를 <From Jicama to Jackfruit: The Global Political Economy of Food>으로 펴내면서 음식을 정치경제적 측면에서 파악하고자 했다. 위어 박사 스스로도 이 강좌를 꾸려오면서 강의가 책으로 나오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해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유익하고 매력적인 자료를 대학 강의실에서만 소비하기란 아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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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속 과일이 바로 원제에 등장하는 Jicama와 Jackfru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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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특정 식재료나 음식의 계보를 추적하는 역사적 접근도, 조리법이나 영양학 강의도 아니다. 제목 그대로 현대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소비되는 음식재료를 실타래 삼아, 음식의 생산· 유통 · 소비 과정 이면의 세계정치경제의 흐름, 즉 경제정책과 자본주의, 식민지정책,상호의존성, 개발문제를 풀어나가는 시도이다. 식량 생산에 동원되는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아동노동 문제, 기아와 비만 등 건강 불평등 문제,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협하는 식량 생산의 문제 등은 자칫 추상적이고 거창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한 마디로, '당장 나 먹고사는 데 아무 지장을 주지 않는데 왜 그런 문제의식을 가져야 해?'라며 반박할 예비독자가 많을 것이다. 이에 저자 위어 박사가 취한 영리한 전략은, 대중에게 친숙하게 알려진 식재료인 향신료, 콩, 토마토 그리고 참치 등을 키워드로 성공적인 정치경제학적 분석을 쏟아낸다. 물론 우리 일상과 닿아 있는 먹거리 소재로 이야기하니 귀가 솔깃해지고 읽기에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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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시작해보자. 최근 비만은 '글로베시티(Globesity)'라고 불릴 정도로 지구적 이슈로 떠오르른데 이는,  비만이 비단 북반구(GN) 아니라 남반구(GS)에서도 사회적 재앙으로 대두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저자는 비만인구의 증가가 단순히 의지력 결여, 단맛의 탐닉이라는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음식공급시스템이라는 상호연관된 커다란 돔 아래서 이해할 구조적인 문제로 해석한다. 즉, 비만의 세계화는 거대 식품회사가 이윤을 확대하기 위해, 식재료를 가공하는 과정에서 칼로리는 높으나 영양가는 없는 음식들이 대량 생산되고, 사람들이 이를 편리함이나 주머니 사정을 이유로 대량 소비하면서 가속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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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당초 음식공급사슬은 '불공평함'과 '위험요소'를 함축한 체계이다. GN과 GS로의 경제적 세계 분할은 비단 21세기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과거 식민주의, 제국주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니 말이다. 대탐험의 시대 시나몬, 후추 열매, 정향 등의 향신료야말로 세계 경제 질서를 새롭게 개편시킨 촉매제 역할을 했고, 이런 불균형의 흐름은 현재까지 이어진다. "카카오를 재배하는 농민은 대부분 자신이 경작한 작물로 만든 초콜릿을 맛본 적이 없다. (131쪽)"라는 본문의 한 구절이 불평등함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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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세계 4대 곡물 중 하나라는 콩과, '채소냐 과일이냐'의 논쟁을 일으켰던 적이 있던 토마토를 예로 들어, GM 음식과 유기농 농법에 대한 솔직한 견해를 밝힌다. 놀랍게도 저자는 '무조건 유기농'의 사고가 오히려 단기적으로는 생태계에 유해할 수 있다고 본다. 유기농법을 고수하려면 더 많은 물, 토지, 그리고 노동력이 필요하며 그렇게 생산한 유기농 식품으로는 전 세계 기아인구를 모두 구제할 수 없다는 논리이다. 

<알수록 정치적인 음식들>의 마지막 장에서는 '참치'를 소재로 '공유지의 비극,' 즉 자칫 재앙으로 치달을 세계환경문제를 이야기한다. 참치처럼 장거리를 이동하는 어류는 공공재로서 세계적으로 협력하지 않는 이상 멸종에 이를만큼 남획하게 된다. 어획량할당제도(Total Allowable Catch)나 참치 양식 등 국제사회의 다양한 노력이 있지만, 대중의 인식 변화와 실천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가까운 미래에 참치는 식탁에서 사라질 것이다. 단지 참치의 문제만이 아니라, 참치를 천적으로 삼는 해파리의 습격이 더 심해질 것이고, 해양 식량 자원은 엉망이 될 것이다. 결국 상호의존, 상호연결된 세계에서 음식을 둘러싼 각종 문제는 너의 문제가 될 수 없고, 국경을 넘어 공영의 문제가 된다.

*

이 외에도 <알수록 정치적인 음식들>는 저자 위어 교수가 대학 강의하며 수강생 에세이 과제로 내주었을 연습문제와 단원 정리 문제, 생소한 식재료를 소개하는 책 속의 책 페이지가 있어 제대로 활용할 여지가 많기에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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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 양생과 치유의 인문의학 고찬찬(고전 찬찬히 읽기) 시리즈 6
안도균 지음 / 작은길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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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생과 치유의 인문의학동의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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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고 잘 사는 법에 대한 동아시아 의학의 찬란한 비전"이라는 출판사측의 홍보문구를 단 <동의보감>,  2015년 하반기에 읽은 숱한 책 중에 단연코 가장 재미있었다. 아직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으나, 저자 '도담' 안도균에게  '문하생으로 받아주십사' 하는 팬래터를 보낼까 생각 중일만큼 감명깊었다. 사실 도담 선생을 만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지는 않다. 그는 현재 과천의 '관문학당' (http://cafe.naver.com/gmhakdang)' 과  서인학당에서 대중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한다. 솔직히 '2016 관문 아카데미' 커리큘럼을 보니, 니체 강독에 스티븐 제이 굴드의 저서에 만만해보이지 않는다. 최소한 독해력 청해력을 갖추고 신청해야 겠다는 생각에 움츠러들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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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담 선생은 수의학, 즉 서양 생의학을 전공했으나 늘 한의학에 흥미가 가서 독학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만난 것이 옛 수유너머 연구실의 동의보감 세미나. 그렇게 껍질을 깨며 다시 살을 붙여나가는 과정을 통해서 그는 인문학적 통찰로 <동의보감>을 풀어냈다. 그의 성실하고 치열한 글쓰기 덕분에 나같은 문외한 독자가 <동의보감>의 곁가지라도 잡아볼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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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 10장으로 이뤄진 <양생과 치유의 인문의학 동의보감>을 읽고 나면, 몸과 건강, 나아가 삶에 대한 생각에 분면 변화가 생길 것이다. 도담 선생은 서구 생의학의 몸관념과 질병, 치유 개념에 매몰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숨통 트이는 또다른 사유를 보여준다. 본인 스스로가 수십, 수백 번 새겨 다시 소화해낸 이야기기에 가능했겠지만, 대중에게 최대한 쉽게 풀어서 설명해준다. 여간해서 책에 밑줄 긋지 않는데, 이 책만큼은 예외 처음엔 그냥 읽었고 두 번째는 밑 줄 긋고 노트 필기 해가며 읽었다. 읽는 자체 만으로 생각의 틈새가 열려서 생각에도 새살이 붙는 듯 뿌듯해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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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이 쓴 <동의보감>은 1956년 헌조가 기획했다. 지천에 널린 향약(약초)들을 잘 활용하게 하고, 약이나 침 치료보다 '양생 養生 '을 치유의 근본으로 삼자는 핵심 주장은 결국, 소수가 아닌 다수 백성을 아끼는 마음과 닿아 있다. 누구나 일상을 갈고닦는 수양으로써 질병을 예방하고 치유할 수 있다니, 의원 나으리께, 의사에게 돈 갖다 바치기 어려운 가난한 이들에게 얼마나 고마운 이야기겠는가.
10장 중 가장 몰입해서 읽은 장이 2장이고, 도담 안도균 선생도 왠지 가장 공들여 퇴고했을 듯한 장이 바로 2장 '신형'편이다. 정신과 육체를 아우르는 개념인 신형(身形)은 '내경편의 핵심사상이 집약된 만큼, <동의보감>에서 가장 중요한 장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단다. 2장부터 10장까지 읽다보면, <동의보감>이면의 몸 관념에 찬탄, 감탄하며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끼리라.
몇 구절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내가 자연 그 자체인데 죽음이라는 생물학적 단절이 그렇게 크게 두렵겠는가.......(중략)...... 잘 쓰고 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삶에 대한 애정'과 '죽음에 대한 수용' 모두를 담고 있다." (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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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스스로 순환하듯, 몸 역시 억지로 다스리지 않아도 자생력에 의해 순환하게 하는 것, 이것이 몸에 대한 무위의 통치이다. (59쪽).....양생(養生)은 몸이 자생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기초적인 자기 관리 혹은 조절 장치를 말한다 (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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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황에 마주치건 음양의 교대가 자연스런 흐름이라는 이치를 떠올릴 수 있다면 상황을 새롭게 볼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삶이 달라진다. 그때야말로 시련이 복으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양생과 치유의 인문의학 동의보감>을 읽고나니 (앞으로도 최소한 서너 차례 더 읽어야 이해 되겠지만), 마치 명상이라도 한 듯 마음이 편해지고 그 만큼 든든해진다. 내 몸 내가 지키되, 내 몸과 생각과 욕망은 현재의 나만의 것이 아님을 자각하게 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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