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하는 능력 - 진심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힘
로먼 크르즈나릭 지음, 김병화 옮김 / 더퀘스트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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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퀘스트] 공감하는 능력(EMPATHY: A Handbook for Revolution)

 

 

 

 2018년, 『82년생 김지영』 만큼이나 기대 이상의 대중의 사랑을 받고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책 목록에 『이상한 정상가족』(김희경)도 올릴 수 있을 터이다. 페이지마다의 문장은 기억에서 증발하였어도, 여전히 흥미롭게 기억하는 점은 김희경 작가가 한국사회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를 타파하는 데에 '공감'을 만능열쇠 삼으려는 태도가 나이브하기에 경계해야한다고 경종을 올린 대목이다. 뜨끔했다. '공감(Empathy)'를 제대로 정의하지도, 공감의 힘을 강렬히 경험해보거나 전파하지도 못했으며, 21세기 인간사회의 초연결성, 인간의 초사회성과 더불어 떠오른 '공감'의 개념을 제대로 탐색해본 적도 없이 나 역시 '공감'을 '막연히 좋은 것'으로 생각하고 지지해왔으니까. 어쩌면 그래서 더 의무감을 가지고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공감하는 능력(EMPATHY: A Handbook for Revolution)』을. 이 책의 저자 로먼 크르즈나릭 Roman Krznaric는 세계최초로 '공감박물관'을 세우려고 활동하는 공감전문가이자 옥스팜과 유엔의 자문위원이라고 한다.

 

 

 로먼 크르즈나릭은 인간을 '이기적 유전자'의 숙주로 보지 않고 '호모 엠파티쿠스(Homo Empaticus)로 파악한다. 소위 소시오패스라 하는 인구 극소수의 인간형을 제외하고는 누구나 "천성적으로 공감하고 사회적 연대를 맺을 수 있"(22쪽)다는 것이다. 그런데 21세기의 우리는 이러한 천성을 거스르며 심각한 공감 결핍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저자는 이 결핍을 극복하기 위해 자기몰입적 개인주의의 올가미에 스스로 가둬두지 말고 '내성(introspection)'을 '외성(outrospection): 자기 자신 밖으로 나가 타인의 시각으로 그들의 삶을 탐구함으로써 나는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알아내는 (32쪽)'과 균형잡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떻게(How)로 귀결될텐데, 저자는  『공감하는 능력』을 통해, 공감력 증진하는 6가지 습관을 호소력있게 소개한다.

 

첫 번째 습관: 두뇌의 공감회로를 작동시킨다

두 번째 습관: ‘상상력을 발휘해 도약’한다

세 번째 습관: 새로운 체험에 뛰어든다

네 번째 습관: 대화의 기교를 연마한다

다섯 번째 습관: ‘안락의자 여행자’가 되어본다

여섯 번째 습관: 주변에 변화의 기운을 불어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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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줄다리기 - 언어 속 숨은 이데올로기 톺아보기
신지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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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줄다리기: 언어 속 숨은 이데올로기 톺아보기

 

 

사회적 아젠다를 던져주고 논의의 급물살을 일으키는 주체로는 주류 언론뿐 아니라 출판계 기획자의 마이더스손을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2018년은 바야흐로 "언어"를 화두 삼은 책들이 베스트셀러 등극하는 호황을 일으켰죠언어의 온도를 필두로 최근에는 이화여대 장한업 교수의 차별의 언어가 핫한가 하더니, 이 분야 돋보기 전문 식견을 가진 신지영 교수의 언어의 줄다리기: 언어 속 숨은 이데올로기 톺아보기가 최근 출간되었습니다. 출판계 덕분에 대한민국의 '언어 성찰' 아젠다가 2019년도에도 뜨거운 감자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언어의 줄다리기: 언어 속 숨은 이데올로기 톺아보기』는 국문학과 언어학을 전공하고 자신을 스스로 '언어 탐험가'로 자리매김하는 학자, 신지영 교수가 2014년 의뢰받아 일회성으로 진행했던 워크숍의 호응에 힘입어 4년간의 자료수집과 질필과정을 겪어 최근 세상에 나온 책입니다. 저자는 "글을 써가는 과정은 너무나 재미있었다. 혼자 맛보는 이 즐거움이 미안할 정도 (7쪽)"였다고 탈고 후의 소회를 밝히는데, 과연 『언어의 줄다리기』를 읽다 보면 신지영 교수가 어떤 문제의식하에 어떤 과정을 거쳐 자료를 모으며 문제의식을 구체화했는지 훤히 보이며 덩달아 신명남을 독자도 느끼게 됩니다.

 

작가는 언어표현을 둘러싼 논의를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가 충돌하며 벌이는 심각한 이념의 줄다리기(15쪽)"로 보고, 자신은 그 이데올로기 사이의 대결에서 "관전 포인트를 짚어주는 해설자(19쪽)"으로 자리매김합니다. 2018년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뜨거운 언어표현 논의를 총 9개의 대격돌로 나눈 신지영 교수는 신문자료, SNS를 떠도는 가쉽성 댓글, 본인이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 촬영한 사진 등 다양한 자료를 동원하여 현실감 넘치게 논의를 전개합니다. 예를 들어, '대통령 각하' 호칭을 비민주적 표현이라 주장하며 국가 기록원과 옛 신문자료에서 다양한 자료를 동원하지요. 마찬가지로 '비혼/미혼' 논의에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댓글을 자료 삼아 제시했고요.

 

'성숙한 소통'이라는 '미션 임파서블''미션 파서블'로 만들고 싶다는 저자가 제안하는 방법은 "언어 감수성이라는 근육의 힘" 키우기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성찰적 말하기''배려의 듣기'가 필요한데,  언어의 줄다리기를 읽으면 적어도 '성찰적 말하기'를 위해 내가 무심코 쓰는 언어 이면의 이데올로기를 톺아보는 태도를 배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9개의 '언어 이데올로기 충돌의 장'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장은 "짜장면을 짜장면이라 부르지 못했던(244)" 규범의 이면에는 언어의 주인인 언중의 생활언어를 무시한 '관 주도' 언어정책의 폭력이 있었다고 지적하는 장이었습니다. '자장'이나 '짜장'이냐 발음에 따라 세련됨을 표현하는 거로 생각해왔는데, "짜장" 발음의 해금 사건을 '/'의 주도권 경기장이라는 틀로 해석하는 점이 참신했습니다. 또한 초등학교 교육의 여성화는 사회 문제로 지적하면서, 그런 논리의 틀이라면 남교사가 많은 고등 교육과정의 남성화도 진작에 문제로 제기되어야 하는데 잠잠했던 것은 젠더 이데올로기가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에도 수긍할 독자가 많겠더라고요.  

 

언어 표현을 둘러싼 논쟁 이면의 이데올로기간 줄다리기를 이처럼 삶과 밀착되는 사례로 흥미롭게 풀어낸 신지영 교수 덕분에 한국의 많은 독자들의 언어감수성 근육이 키워질 듯 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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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육아의 사회학 - 스스로 ‘정상, 평균, 보통’이라 여기는 대한민국 부모에게 던지는 불편한 메시지
오찬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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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육아의 사회학


오늘이 그날이다. 계속 기다렸던 강연일. 도서관에 가면 청소년 서가에서도, 유아동서가에서도 성인들 서가에서도 '대출중'이기에 찾아보기 어려운 화제작들(『대통령을 꿈꾸던 아이들은 어디 갔을까?』,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진격의 대학교』 등 다수)의 저자. 오찬호 박사의 강연이 10월 29일 오늘 마포에서 열린다. 정작 나는 사정이 생겨 참석하지 못하고 아쉬운 마음에 리뷰만 끄적이고 있다. 




어느 순간 박사님, 교수님 보다는 '작가'로 더 많이 불리는 것 같더니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에서도 '오작가'라는 명칭이 등장하고, 네이버 인물 검색을 해보면 오찬호는 사회학자가 아닌 '작가'로 소개된다. 대한민국 많은 지식인들이 (비밀리에라도) 동경하는 그 이름 '유작가'의 위상에는 아직 닿기, 멀고 멀더라도 '오작가'라 불릴만하다. 참으로 부지런한 분이다. 12년차(?) 강사로서 전국구로 직접 뛰는 발 움직임으로도 부지런하고, 가사분담을 하면서도 집필을 위해 오롯한 자기 시간을 확보하는 시간 활용면에서도 부지런하고, 사회 비판의 날을 늘 시퍼렇게 유지하는 지적인 노력에도 부지런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감탄하면서도 여전히 궁금해진다. '사회학자'가 아닌 '오작가'로 naver인물사전에 등록되고, 또 그 호칭으로 불리는 것이 사회학자로서의 그에게 어떤 자유를 허여할지 혹은 역으로 족쇄가 될지?

*

한 블로거가 오찬호를 '믿고 보는 작가'라며 강한 신뢰를 보내던데, 사회학 전공 유무는 물론이거니와 사회문제 관심과 참여도의 정도와 상관 없이 오찬호의 책들이 잘 팔리고 많이 읽히는 이유는 '사이다의 시원함' 때문이 아닐까 싶더라. '다 뻔히 알고 있었지만, 뭐 굳이 이야기해....'싶은 걸 뻥뻥 터뜨리는데, 대게의 경우 힘없고 눌린자들의 입장에서 비꼬는 목소리로 얘기한다. '저런 걸 시시콜콜 이야기 해도 괜찮은거야?'싶게 솔직하게도 얘기한다. 예를 들어, 전작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에서는 자신의 특강 강의료를 떼어간 대학교수를 아슬아슬하게 고발하더니 이번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에서는 학생부 업그레이드를 위해 '학교에서 밀어주는 엘리트 학생'의 부모와 교사가 짜고치는 특강 퍼포먼스를 세세히 묘사한다. 



그렇다면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에서는 오찬호표 사이다가 어느 지점에서 펑펑 기포를 터뜨렸을까? 아직 사회학 전도사로서의 오찬호의 전작을 접하지 못한 독자가 오찬호를 첫 소개팅하는 것이라면 다소 당황할 수 있다. 그는 성공적인 결혼과 육아비법을 설파하려는 것도, 2018년 한국사회 결혼과 육아를 통계자료 곁들여 권위있게 해독해내려는 것도 아니니까. 그보다는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은 까대기. 보다 고상한 말로는 비판하기가 주 목적인 책이니까. 오찬호는 아빠로서, 생계형 노동에서 자유롭지 못한 도시 거주민으로서 자신의 삶과 주변 지인의 삶, 무엇보다 그가 전국구 강의하며 만나온 다양한 유형과 연령의 사람들에게 수집한 결혼, 비혼, 출산, 육아의 스케치를 시도한다. 한마디로 자본주의에 대한 체념과 순응이 만들어낸 결혼출산-육아의 일그러진 자화상”(12쪽) 그리기를 목표로 설정한 것이다. 그의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다. ž 대부분의 사람들이 2018년 한국 사회에서 저출산과 육아를 둘러싼 문제를 사회문제로서 인식은 하되, 일상의 개인적 실천 차원에서는 여전히 수동적으로 자본주의에 최적화된성공 가능한 아이 키우기’에 올인하게 된다. 그 결과 아보니 어쩔 수 없다면서 일상적 민주주의를 포기한 대가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몫이다경쟁을 정당화할수록 차별과 혐오는 면죄부를 얻고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은 여전히 부유한다. (9)”
책장을 넘길수록, 오찬호표 비딱하게 보기, 신자유주의 시대 개인을 자기계발 혹은 자기생존에 목매다는 지상과제를 게임의 맥락도 모르게 눈가리개하고 수행하는 다수를 측은하게 보면서도 그 게임판위에서 챙길 것 다 챙겨가는 얌체 소수에 대한 욱함이 느껴진다. 오늘 7시 마포에 가야만하는데....아쉽다. 그의 육성으로 들어보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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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계급론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4
소스타인 베블런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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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한계급론(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

 

1899년에 발표된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은 10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자주 인용되고, 많이 논의된다. 저자 스스로도 "추상적인 학술 자료들이 아니라...(중략)...일상생활의 사례들을 예시한"(9쪽) 글쓰기 전략을 택했으며 "출처와 전거를 일일이 제시해야 하는 학술적 관례를 따르지 따르지 않았"(9쪽)다고 밝히는 만큼, 경제학 문외한이라도 난독증 염려 없이 읽을 수 있다. 이제 그가 제시한 용어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은 학술용어라기보다는 일반 교양어로 쓰인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단 학계에서뿐 아니라 일반교양서로서도 고전이기에 한국에서도 여러 출판사에서 번역출간해오고 있는데 최근에는 현대지성에서 무척 반가운 13,800원이라는 정가에 그 번역서를 출간해주었다. 동인출판사의 1995년 번역서 한국어 제목은 『한가한 무리들』인데 반해 보다 원문에 충실하도록 『유한계급론』으로 번역했다.

번역자 이종인은  『유한계급론』을 두고 "말이 경제학 책이지 이 책은 사회 비판의 성격이 강한 인문서"(384쪽)이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실제 이 책은 독자의 렌즈에 따라 인간 심리에 대란 통찰, 소비의 메커니즘에 대한 문화분석 혹은  『1984년』의 학술적 버전 등 다양하게 읽힐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베블렌이 여느 학자들처럼 경제학 수식이나 전문용어를 써서 일반인이 넘기 어려운 높은 권위의 장벽을 세우는  방식을 택하는 대신 도리어 쉬운 언어와 수긍가능한 일상의 사례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는 자신감이 놀라웠다. 어찌보면 머릿속 그림을 스케치로 풀어내듯 풀어쓴 에세이식 문체인데도 그 주장을 곱씹게 되는 이유는 베블렌이 단순히 경제학의 측면에서뿐 아니라 역사, 법학, 심리학, 종교학, 인류학 등 광범위한 학문 분야를 아우르며 인간을 심도 깊게 탐색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인상적이게도 (무려 대한민국의 1970년) 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베블렌의 이론을 처음 접했다는 역자 이종인은  『유한계급론』에 대한 개인적 애정과 역자로서의 사명감으로 본문 구석구석 역주를 자주 달아준다. 읽으며 도움을 많이 받았다. 예를 들어, 베블렌은 소비의 수준에 이르지 못하면 사회로부터 추방당하거나 체면이 손상될 것을 두려워해서 가시적 소비는 선호하되, 상대적으로 보이지 않는 분야의 소비는 감추려하는 사람들의 이중성을 인구억제책으로 역이용할 것은 제안한다. 이를 두고 역자 이종인은 "소스타인 베블렌은 차라리 과시적 소비가 더 훌륭한 인구억제책이 되는 것이 아니냐고 앞에서 주장한다"(118쪽)고 친절하게 주를 달아주었다.

 

27세에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35세의 나이에 그 위세 높은 시카고 대학의 교수가 된 베블렌, 분명 타고난 총명함에 학벌이라는 후천습득 훈장까지 찬 그는 주류 학자일듯 하나, 실제로는 아니었을까? 역자 이종인의 표현대로 '외로운 늑대 lone wolf'였을까?  『유한계급론』을 읽다보면, 노동권에서 면제되고 과시적 소비와 대행적 소비, 대행적 한가로움 등을 통해 경쟁에서 자신의 승리를 가시화하고 싶어하는 '한가한 무리들'을 비꼬듯 학자들을 베베 비꼬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베블렌은 콕 집어 그렇게 표현하진 않았지만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다 보니 애 낳을 여유가 없는 대표적 집단으로 학자들을 꼽는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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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10-28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가한 녀석들’이라고 정했으면 정말 출판 역사에 남을 번역본 제목이 되었을 거예요.. ㅎㅎㅎ
 
차별의 언어
장한업 지음 / 아날로그(글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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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의 언어 



 "다문화-상호문화협동과정," 2014년부터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새롭게 운용하는 프로그램이라 한다. 그 중추에 장한업 교수가 있다. 그는 한국사회가 20세기 말 이후 본격 다문화시대에 접어들었음에도 여전히 민족중심주의와 차별의 언어가 성찰 없이 통용됨을 안타까워 하며 『차별의 언어』를 썼다. 문제의식은 명료하고 분석은 냉철하지만, 독자는 마치 대중강연의 앞자리에서 저자 직강을 듣는 기분이 들 정도로 편안한 문체를 구사하였다. 그래서인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헉, 내 이야기구나'하는 뜨끔뜨끔한 반성과 함께 저자의 주장에 자연스럽게 설득되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다르다"와 "틀리다"  
장한업 교수는 여기서 시작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다르다"를 "틀리다"고 말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고. 그 익숙한 어법이 누군가에는 차별의 칼날이 되는데 인식하지 못할 뿐. 사실 내가 속한 집단에는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지만 바깥 집단이라고 여겨지는 대상에는 부정적 인식을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기에, 이런 차별적 인식은 비단 한국 사회만의 문제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장한업 교수가 지적하듯 한국 사회에서는 '단일민족신화'라는 특수한 색채가 더해진다. 유독 '우리'라는 말을 자주 쓰는 만큼이나, '우리'라는 울타리에 쉽게 누구(들)을 집어 넣지 못한다. 울타리 밖 대상에는 가혹하리만큼 차별적이라는 것이 장한업 교수의 관찰이다. 

*  *

저자는 이화여자대학교 강단에서뿐 아니라, 교사, 학부모 그리고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많은 대중강연을 통해 수집한 이야기와 일상에서의 면밀한 관찰로 충분한 사례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거의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쓰는 '쌀국수'란 명칭도 실은 차별적 시선을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베트남 현지에서 쓰는 'pho'대신 한국인에게 친숙한 용어로 부르는 이 논리를 그대로 적용한다면, 스파게티는 '이태리 밀국수'라고 불러야겠지 않느냐는 반문에 뜨끔하지 않을 한국인들 얼마나 있을까? 그 외에도 한국 사회에서 유독 많이 쓰이는 '국민' 혹은 '가족'에의 비유어가 실은 민족중심주의를 반영함을 저자는 지적한다. 단순히 저자 독단의 해석이 아니다. 실로 한국의 민족중심주의는 자칫 제노포비아나 국수주의로 비춰질 수 있을 지경인지 2007년 UN 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서는 '한국인은 단일민족'이라는 고정관념을 수정하기를 요구했다고 한다. 

장한업 교수는 이런 차별의 언어가 언젠가는 한국인을 겨냥한 칼이 되어 돌아올지 모르기에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자  『차별의 언어』를 썼다고 한다. "세 살 버릇 여든" 갈만큼 고치기 어려운 습관, 하물며 개인이 아닌 사회 집단에 굳은 살처럼 박혀 있는 언어 습관인데 하루 아침에 고칠 수 있으랴. 그래도 장한업 교수의 말을 그대로 빌어오자면, "우리의 편협한 인식을 개선하고 그를 바탕으로 상호문화적 대화를 지속해 나가야(233쪽)"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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