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군화 잭 런던 걸작선 3
잭 런던 지음, 곽영미 옮김 / 궁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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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0년 동안 세상은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발전해 왔다. 특히, 기술의 발전은 현대인의 생활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100년 전 사람들 중 어느 누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친척과 얼굴을 맞대며 이야기하고, 대륙을 몇 시간 만에 건너가는 것을 상상했겠는가? 이러한 기술의 발전이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해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해서 우리가 놓친 것이 있다. 바로 과거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다. 물질문명에 둘러싸여 있는 우리가 애써 무시하려고 하는 질문, “10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악습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희생시켜 이러한 발전을 이루었는가?”, 이것은 이전까지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는 질문이다. 대답하기를 거부하면 예전과 같은 삶을 살 것이고, 대답하면 혁명가가 될 것이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어니스트가 나의 삶에 뛰어들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는 강인한 몸만큼 굳건한 영혼을 가진 남자였다. 그 자는 나에게 허공 위에서 내려와 땅을 밟으라고 말했다. 나는 그 동안 세상을 몰랐다. 『강철군화』를 그저 사회주의 소설로만 여기고, 100년 전에 이미 가치를 잃은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잭 런던이 어니스트의 입을 통해 보여준 세상의 모습은 놀랍게도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의 모습이었다. 그가 나를 땅으로 인도한 순간, 앞이 보였다. 나는 더 이상 눈먼 자가 아니었다.

 

 나는 내 옷을 보았다. 내 옷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어니스트에게 이 피의 정체가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나를 위해 돈과 시간을 바친 이들의 피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 피를 씻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에게 은혜를 갚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나는 나 때문에 부모님이 울고 있는 소리를 들었다. 또 이 옷을 만들기 위해 저임금으로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의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내 발목에 묶여있는 족쇄를 보았다. 내가 묻기도 전에 어니스트는 내가 기계의 족쇄에 매여있다고 말했다. 그 기계란 텔레비전, 컴퓨터, 휴대전화를 뜻했다. 그는 기계 사용을 멈추지 않으면 결코 자유인이 될 수 없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나는 자유의 대가를 치르기에는 너무 어렸고, 또 나약했다. 나는 기계의 노예임을 인정했다. 어니스트는 한숨을 쉬었다. 그는 나를 재벌과 정치인들의 모임으로 데리고 갔다. 어니스트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권력, 노동자 계급인 우리가 설교하는 것도 바로 그것입니다. 도덕, 정의, 박애를 호소해봤자 당신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쓰디쓴 경험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들의 심장은 가난한 이들의 얼굴을 밟고 지나가는 그 구두 뒤축만큼 딱딱하니까요. () 역사가 시작된 이래 노동이 흙 속에 묻혀 있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당신과 당신의 계급과 그 후손들이 권력을 쥐고 있는 한, 노동이 흙 속에 묻혀 있으리라는 것도 사실입니다. 당신이 한 모든 말에 동의합니다. 언제나 그래왔듯, 권력이 심판자가 될 것입니다. 권력은 곧 계급투쟁입니다.”

 

 왜 그는 나를 모임에 데려갔을까? 정말 이 사람은 나의 삶을 변화시키려는 걸까? 어니스트 에버하드는 나를 교회로 데리고 갔다. 나는 내가 다니는 교회가 세상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았길 바랬다. 하지만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한국 기독교의 현실 앞에 나는 교회의 변질과 타락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교회는 자본가와 노동자에게 자행하는 만행과 횡포를 묵인하고 그것을 신의 뜻이라고 정당화했다. 목사들은 돈에 무릎을 꿇고 자본가와 손을 잡았다. 그는 나에게 모어하우스 주교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분은 존경받는 성인이었지만 교회의 현실에 무지했다. 그는 어니스트에 의해 계몽된 이후, 교회의 현실 참여와 본질의 회복을 부르짖었지만 그 때문에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 그는 거기서 탈출한 이후, 자신의 재산을 모두 처분하고 빈민가에 거주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먹여 살렸다. 자신의 재산으로 어린 양을 먹이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한 것이었다. 하지만 사회는 그 자기가 가진 모든 걸 가난한 사람들에게 내놓는 부자를 미친 사람으로 취급하고 정신병원에 수감시켰다. 이야기를 마치고, 어니스트가 나에게 물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나는 가슴이 아파 대답할 수 없었다.

 

 마침내 나는 어니스트의 아내이자 위대한 혁명가인 에이비스 에버하드를 만났다. 그녀가 가장 먼저 들려준 이야기는 언론 이야기였다. 이른바 강철군화라 불리는, 과두지배계층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언론은 그들의 꼭두각시로 전락했다. 어니스트도 한술 떠서, 언론은 자본가 계급에 기대어 살을 찌우는 기생충이라고 직언했다. 언론은 팔이 잘렸다는 이유로 공장에서 쫓겨난 잭슨의 기사나 모어하우스의 설교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고, 강철군화의 업적만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우리나라의 언론을 떠올렸다. 진실을 감추고, 왜곡된 기사만 보도하는 뉴스, 과두지배계층을 찬미하고 혁명가들을 은근히 비웃는 신문 기사, 그리고 억압 받는 예술가들. 100년 전에 일제가 실시한 신문지법은 이미 폐지되었고, 출판과 표현의 자유가 헌법에 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언론은 그 기능을 잃은 채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 조지 오웰이 1984』에서 예견한 감시와 조작은 오늘날 발달된 기술을 바탕으로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에이비스는 그녀의 아버지의 책을 예로 들었다. 그의 책은 출판되자마자 평단의 혹평을 들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의 책은 세상에서 사라졌다. 서점에도 없고, 출판사도 출판을 중지했다. 과연 이 일이 100년 전 미국에서만 일어나고 있을까? 그녀가 물었다.

 

 나는 어니스트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강철군화를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금 우리 사회에 나타나는 모든 악습과 모순을 해결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요? 그는 나를 중산계층의 모임에 데리고 갔다. 그들은 대기업의 독점을 막기 위해 기계를 파괴하고 원시 상태로 돌아가자고 주장했다. 경제에 문외한인 내가 봐도 유치하기 그지없는 주장이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이 이기적인 존재임을 인정하지 않고 피해자인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어니스트는 지적했다. 이미 문턱은 사라졌습니다. 여러분은 자본가 계급에 빌붙을지, 아니면 프롤레타이아의 편에 서서 싸울지 선택해야 합니다. 법은 여러분의 편이 아닙니다. 법은 지배계층의 이익을 위해 악용되고 있습니다. ,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이윽고 그는 진화의 물결에 따라 자본주의가 몰락하고 사회주의가 올 것임을 예언했다.

 

 그 때, 내가 말했다. 사회주의는 실패했습니다. 역사가 증명했어요. 어니스트는 내 말을 듣고 이렇게 대답했다. 역사가 무엇을 증명할지 봐. 이건 모두의 역사가 될 거야. 최저임금으로 묶여 사는 노예들이 생길 거야. 자본가의 이익을 위한 전쟁이 일어날 거야. 물론 그 군인은 각국의 노동자들이겠지. 또한, 노동자들 내에서 노동귀족이라는 특권층이 생길 거야. 그들은 지위를 세습하며 자신들의 부를 유지하고, 다른 노동자들을 짓밟을 거야. 나는 그 예언이 이미 성취되었음을 알고 있었다. 나는 이 혁명가들의 운명을 알고 있었다. 어느 시대에나 투쟁은 있다. 단지 목적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나는 혁명가 부부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무엇을 위해 싸웁니까?

 

 에이비스 에버하드는 먼저 남편을 언급했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을 나의 독수리라고 불렀다. 그녀는 그가 없었다면 자신이 거짓과 가식으로 둘러싸인 가짜 세상에서 살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어니스트를 통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이후, 그의 아내가 되어 그의 위로와 힘이 되어주었다. 한 마디로, 어니스트는 에이비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것이다. 그녀는 나에게 자신과 같은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 혹시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인생이 전환되고 있다고 대답했다. 당신이 어니스트를 처음부터 좋아하지 않았듯이, 내 인생의 전환점은 죽음처럼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영화, , 음악, 사색으로부터 시작된 어떤 작은 생각이 나의 삶의 방향을 정하고, 행동 양식을 바꾼다. 그리고 그 과정은 아주 천천히 이루어져서 내가 변하는 것도 느끼지 못한다. 마치 사랑처럼, 사람은 변한다.

 

 나의 대답을 들은 두 사람은 자신이 목숨을 바치며 강철군화에 맞서는 까닭이 정의라고 말했다. 어니스트는 정의가 인류 역사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주장했다. 역사의 모든 지배체제의 힘은 자신들이 정의로운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에서 나왔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반동 세력 역시 같은 목표, 즉 정의를 향해 싸우고 있었다.

 

 “그 문제에 있어서는, 혁명의 힘 역시 이 무시무시한 20년 내내 다름 아닌 정의감에서 나왔다. 그것 말고는 우리의 희생

과 순교를 설명할 수 없다. 바로 그 이유로 루돌프 맨델홀이 사회주의를 위해 영혼을 불태우다 생의 마지막 밤을 자신의 멋진 백조 노래와 함께 마감했다. 바로 그 이유로 헐버트가 마지막까지 동지들을 배신하기를 거부하다 고문에 못 이겨 죽어갔다. 바로 그 이유로 안나 로일스턴이 모성의 축복을 거부했다. 바로 그 이유로 존 칼슨이 글렌엘런 은신처에서 무보수로 충직하게 일했다. 남녀노소, 지위고하, 천재 바보 막론하고 어떤 인간을 혁명 동지들 속으로 밀어넣는 원동력은 정의를 향한 위대하고 지조 있는 갈망에서 나온다.”

 

 어니스트는 나에게 내가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선택권은 많았다. 평등, 자유, 행복, 사랑 같은 다른 대답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의를 택했다. 왜냐하면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야말로 강철군화의 시대이며 정의가 필요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언제부터 한국의 역사에서 정의의 혼이 끊겼는지 알 수가 없다. 분명 지금, 정의는 죽었다. 정의를 찾지도 않고, 불의에 저항하지 않는 나의 모습이 바로 그 증거이다. 그리고 나는 혁명가가 아니다. 고등학생인 내가 공부를 하는 이유는 좋은 대학에 나와, 좋은 직장을 다니며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지, 저 거대하고 차가운 벽에 투쟁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렇다고 좀비처럼 학살당하는 밑바닥 사람들도 아니다. 나는 소시민이고, 나약한 지식인이다. 지금처럼 삶이 지속되기를, 일상이 파괴되지 않기를, 바라지 않으면서도 바라는 모순 덩어리이다. 나는 이렇게 고백하며 어니스트를 비판했다. 왜 당신은 혁명가의 길을 강요하느냐. 왜 노동자의 힘을 찬양하면서 노동자의 죽음을 내버려두는가. 왜 노동자라는 이름의, 모든 억눌린 자들의 목소리를 못 들은 척 하는가?

 

 어니스트는 기뻐했다. 내가 드디어 땅에 내려왔다고 축하했다. 그는 내가 드디어 현실을 보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하며 시험에 통과했다고 말했다. 이로써 나의 삶은 변화되었다. 어느 나라를 가도 모든 역사의 주인공은 이름 없는 자들이었다. 혁명의 주체는 어니스트와 같은 사회주의자가 아니라, 레미제라블이다. 역사를 바꾸는 자는 과두지배의 통치자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난쟁이이다. 나는 『강철군화』를 통해 이 진실을 알게 되었으며, 앞으로 내가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나를 비롯한, 나를 위해 피를 흘린 사람들, 꿈을 가졌지만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다. 내가 만약 그들 중 한 명의 삶이라도, 에이비스가 어니스트를 만난 듯, 변화시킬 수 있다면 나는 이미 혁명가로서의 임무를 완수한 것이며, 정의의 사람들의 일원이다.

 

 모든 만남이 끝나고 작별인사를 하기 전에, 에이비스 에버하드는 나의 인생에 닥칠 시련을 이야기해주며, 앞을 가로막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알려주었다.

 “진실을, 모든 진실을, 그리고 진실만을 말해야 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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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동안의 고독 -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문학사상 세계문학 6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안정효 옮김, 김욱동 해설 / 문학사상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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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사회는 유전 사회다. 부모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자식의 인생도 변한다. 즉, 부모의 위치에 따라 가난이 유전되거나 , 부와 명예가 유전되거나, 지식이 유전되거나, 무지와 부도덕이 유전된다. 어떤 집안의 사람은 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라는 이유로 해방 70년이 지난 지금도 차별과 가난 속에서 살고 있고, 또 다른 집안의 사람은 아버지가 회사 사장, 정치가라는 이유로 오만과 편견에 빠진 채 살고 있다. 분명 이것은 불공평한 처사이며, 시급한 개선이 필요하다. 그러나 나는 해답을 내지 않겠다. 그저 이것을 하나의 예언이라 받아들일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는 타락이 대물림되고, 무너져 가는 집안을 책임지려 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작년 타계한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대표작, 『백년 동안의 고독』의 줄거리와 다를 바 없다. 이 환상적 소설은 우리에게 주어진 경고다.

 

 마콘도, 그러니까 대한민국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이곳은 문명의 손이 닿지 않는 순수한 개척지였다. 그런데 맬키아데스를 비롯한 집시들이 마을을 세운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에게 문명의 힘을 전파하자, 그 순간부터 문명이 그를 고독과 무기력으로 사로잡기 시작했다. 그 때만 해도 나처럼 순진한 독자나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몰랐을 것이다. 그의 맹목적인 문명 추구가 집안에 대물림되어, 부엔디아 집안이 멸망할 때까지 지속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행동이었는지, 죽는 순간에야 알았다(죽을 때까지 모른 이들도 있었다!).

 

 또한, 문명은 마콘도 마을 사람에게 고독을 안겨주었다. 본격적으로 마콘도 마을이 붕괴되기 시작한 것은 기차가 들어온 이후였다. 기차는 집시들이 가져온 진기한 물건 대신 바나나를 싣고 왔으며, 호기심에 찬 사람들 대신 무자비하게 학살된 3000명의 노동자들을 싣고 갔다. 전쟁은 빈번하게 발생하고, 그 때마다 마을 사람들을 고독과 고통에 빠뜨렸다. 한 부엔디아의 고독이 집안 전체의 고독으로 이어지고, 이는 곧 마콘도 마을, 나아가 콜롬비아, 마침내 전 인류를 고독하게 만든다. 여기서 고독이란, 죽음 이상의 고통으로, 서로의 소통이 단절된 상태를 말한다. 장님처럼 서로를 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것이다. 아니, 장님보다 못하다. 우르슬라는 장님이 되서도 자신이 장님인 것을 드러내지 않고, 계속 집안을 유지했으니까.

 

 한 세대씩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죽지만, 우르슬라는 부엔디아 집안의 주축이 되어 5세대까지 살아남는다. 마치 성서의 '창세기'를 보는 듯, 세대를 거칠수록 집안 사람의 수명은 줄어든다. 1세대는 115세(남편은 유령)였는데, 마지막 세대는 신생아(개미에게 잡아먹힌다)다. 돼지꼬리 달린 아이, 그것은 마지막 징조다. 그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이미 부엔디아 집안은 끝났다. 돼지꼬리 달린 아이는 근친상간의 상징이니까. 타락의 끝에서 부엔디아 집안, 마콘도는 그렇게 최후를 맞는다.

 

 끝으로, 오랜만에 나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한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에 큰 찬사를 보낸다. 이토록 현실과 비현실을 적절하게 버무려놓은 작가는 앞으로도 없으리라. '마술적 리얼리즘'이 뭔지 확실히 알았다. 주제 사라마구를 통해 알았고, 마르케스를 통해 완성했다. 이 소설의 재미와 의미는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직접 느껴보라는 말밖에 없다. 유전되는 고독을 느껴보라. 벗어나려고 해도 지독하게 발목을 잡는 이 저주를 풀어보라. 과연 당신은 벗어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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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와 블라디보스토크 - 19세기 한반도의 파행적 세계화 과정 서강학술총서 5
김용구 지음 / 서강대학교출판부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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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은식은 흥선대원군이 수렴청정을 한 1863년부터 조선이 일제에 합병되는 1910년까지의 역사를 "한국통사"라고 일컬었다. 말 그대로, 이 시기는 고난의 역사이다. 쇄국 정책을 펼치며 세상의 흐름에 저항하려 하지만, 외세의 강력한 힘 앞에 무릎을 꿇고, 서서히 열강에 잠식되어가다 마침내 국권을 박탈당하는, 읽으면 읽을수록 화가 나는 역사. 그리고 그 역사의 중심에는 바로 '거문도 사건'이 있었다. 강화도 조약으로 강제로 항구를 열고, 개화 정책을 받아들인지 10년도 되지 않아 임오군란, 갑신정변과 같은 내부의 충돌이 발생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청과 일본의 국정 개입이었다. 조선 정부는 이 답답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또 다시 '러시아'라는 외부 세력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결국 당시 국제적 상황과 얽혀, 총 7개국이 관여한 전무후무한 '거문도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다. 필자는 지금까지 잊혀져 왔던 아픔의 역사를 여기에 써내려가고자 한다.

 

  1. 거문도에 관하여

 

  거문도 사건의 공간적 배경이 되었던 '거문도'는 어떤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가? 다시 말해, 왜 영국은 다른 많은 섬을 두고 하필 그 작은 섬을 불법 점령한 것일까? 거문도는 전라남도 여수에 위치한 섬으로, 총 3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로부터 거문도는 한일 양국의 해상 통로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태평양 진출의 요충지로 평가 받았다. 특히, 미국과 영국은 거문도의 지리적, 군사적 이점을 사건 10년 전부터 파악하고 있었다.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한 하순 슈펠트는 거문도를 지중해 입구의 지브롤터(이베리아 반도의 남쪽에 있는 영국 땅)로 비유하면서 훌륭한 해군기지이며 해군의 요양소로 적격이라고 평가했다. 영국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영국 공사 파크스와 사령관 라이더 제독은 1875년에 거문도의 군사적 중요성을 강조하며 그곳을 점령해야 한다고 외무성에 문서를 보내지만, 거절당한다. 비록 시도는 무산되었지만 영국은 이때부터 거문도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한 마디로, 거문도 사건은 이미 예견된 비극이었다.

 

 거문도 사건의 배경이 된 거문도는 고도, 서도, 동도로 이루어져 있다. 영국군은 고도

를 점령한 후, 당시 영국 해군성 부상인 해밀턴의 이름을 따 해밀턴 항이라고 불렀다.

 

 2. 거문도 사건의 발생

 

 거문도 사건이 일어난 까닭을 "갑신정변 이후 열강을 둘러싼 대립"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일반적이다. 사건의 경과는 매우 복잡하다. 시계는 1860년 베이징 조약으로 돌아간다. 당시 러시아는 베이징 조약에서 연해주를 획득함으로써 조선과 국경을 접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러시아는 조선에 남하 정책을 펼쳐 1884년에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하였다. 청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알선을 거부했지만, 러시아는 독자적으로 베베르를 파견하여 조약을 맺었고, 조선은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이후 심화된 청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러시아와의 조약을 체결하였다. 문제는 조선과 러시아가 맺은 밀약에서 비롯되었다. 이 '경흥조약'의 내용은 육로통상장정과 영흥만을 조차하는 대가로 조선에 군사 교관을 파견하여 군사 훈련을 담당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조약은 청의 방해로 실패하였다.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이에 긴장한 영국은 거문도를 점령하였다.

 

 한편, 거문도를 점령한 영국의 입장은 어떨까? 영국은 1885년 3월에 아프가니스탄 지역의 분쟁으로 러시아와 전쟁을 결정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었다. 당시 영국은 전장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가장 최적의 장소를 거문도로 정했다. 영국은 자신들이 이 섬을 먼저 점령하지 않으면 러시아가 반드시 이곳을 침공할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거문도를 불법 점령하였다. 여기에는 영국의 조선 경시 정책과 러시아의 현상 유지 정책이 한몫한다.

 

 근본적으로 따지면, 이 사건은 제국주의가 낳은 비극적 산물이다. 19세기는 약육강식의 시대였다.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먹히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시대였고, 강한 자들도 서로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속이고 속였다. 이 책에서도 미국의 영국 추종 정책이나 일본의 이중 외교, 청의 중재, 영국식 상업 외교 등이 그려지고 있는데, 이것 모두 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낳은 지독한 이기주의의 결과이다. 미국, 독일, 영국, 러시아, 중국, 일본의 외교 전쟁에 조선은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 꼴이 된 것이다. 제국주의가 없었다면 영국이 중앙아시아 지역을 얻기 위해 러시아와 갈등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조선의 작은 섬을 점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국 거문도 사건은 '제국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필연적으로, 그리고 자연스럽게 일어날 사건이었다.

 

 저자 김용구는 이것을 "파우스트 정신(슈펭글러가 차용한 용어)"이라고 일컫는다. 그는 19세기를 폭력과 파우스트 정신의 역사적 기간이라고 정의한다.

  폭력은 물리적인 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사고방식과 이익을 최고의 가치로 간주하고 다른 사람을 이에 종속시키려는 의지를 의미한다. 파우스트 정신은 먼 거리를 정복하기 위한 욕망, 탐험에 대한 집착, 보다 더 많은 생산을 위한 발전, 그리고 신속한 여행을 위한 기계 발명의 욕구를 뜻한다.

 폭력과 파우스트의 유럽 문명권은 그들 이외의 다른 문명권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들 지역은 팽창과 섬멸의 대상일 뿐이다. (…) 물로 한반도도 예외는 아니었다. 1885년 4월 영국의 거문도 점령이 이런 현실을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김용구, 『거문도와 블라디보스토크』p,18~19) 

 

 3. 거문도 사건의 경과

 

 아이러니하게도, 거문도 사건은 조선의 노력보다는 청의 중재로 해결되었다. 처음에 중국은 영국의 거문도 점령을 찬성했으나 태도가 돌변하여 거문도 점령을 극구 반대했다. 그 까닭은 영국의 거문도를 점령하면 러시아와 일본도 조선의 다른 지역을 점령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영국은 자신의 거문도 불법 점령을 '잠정 점령'이라고 변명하였다. 한편, 러시아는 조선에 협박이 실패하자 현상 유지 정책을 시행하여 거문도에 대한 관심을 버렸다. 특히, 아프가니스탄 영토 관련 분쟁이 해결되고, 영국과 러시아간의 관계가 우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군의 거문도 주둔은 청과 조선의 많은 항의를 불러일으켰다. 거문도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제 더 이상 정치적 명분이 사라졌으니, 어떻게 하면 이익을 챙겨갈까, 라는 영국식 상업외교의 시작이었다.

 

 거문도 사건의 최대 수혜자인 일본의 입장은 어떠했을까? 일본 역시 영국의 거문도 점령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일본은 청과 톈진 조약을 체결한 후에도, 거문도 사건과 관련된 만남을 가졌다. 결론은 청과 일본이 합심하여 조선을 타국이 점거하는 사태를 예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조선을 지켜주는 척 하며 야욕을 감추는 일본의 이중 외교는 이 때부터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진실을 알고 나니, 일본에 대해 정말 화가 난다.

 

 심지어 이 사건과 전혀 무관해 보이는 독일과 미국까지 숟가락을 얹었다. 독일 영사 젬브쉬는 점령이 가져올 부정적인 영향을 언급하며 영국의 철수를 주장하였다. 반면, 미국의 대리공사 폴크는 영국이 조선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변명하며 영국의 입장을 대변하였다.

 

 무엇보다 화가 나는 것은 영국의 조선 경시 정책이었다. 그들은 우리를 중국의 속방으로 여기고 조선 대신 중국과 교섭하였다. 이러한 정책으로 인해 "조선 당국은 당사자이면서 국외자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런 부당한 대우를 볼 때마다(훗날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우리나라가 힘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다. 영국은 거문도에 임대료를 지불하고 저탄소 설치를 주장하며 자신들의 점령을 합리화시켰다.

 

 그러나 한계가 왔다. 영국에서는 거문도 무용론이 일기 시작했고, 거문도를 점령하는 데 유지되는 비용에 비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영국은 중국으로부터 거문도에서 철수하면 다른 나라들도 이 섬을 점거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놓고 1887년 2월 27일, 영국 국기를 내렸다. 그리고 영국과 러시아를 오가며 두 나라의 입장을 중재한 것은 청나라의 리훙장이었다.

 

 거문도 사건 중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홍장(리훙장).

 

 4. 조선의 대응

 

 그렇다고 조선은 손 놓고 지켜본 것만은 아니다. 리훙장의 외교만큼이나 김윤식의 노력이 빛났다. 김윤식은 러시아 참사관 쉬페이에르의 협박에 아랑곳하지 않고 차분한 논리로 대응하였다. 결국 쉬페이에르는 아무 수확도 하지 못하고 물러났으며, "쉬페이에르의 조선 방문은 러시아의 치욕으로 끝을 맺었다"고 역사에 기록되었다. 또한, 김윤식은 베이징의 오코너 공사와 서울의 칼스 총영사 대리에게 항의 각서를 보냈다.

 

 요즘 국내에서 듣는 바에 따르면 귀국이 거문도에 뜻을 두고 있다고 한다. 이 섬은 우리나라의 지방으로 타국이 점유할 수 없다. 만국공법에도 원래 이런 이치는 없어 놀랍고 의심스러워 무어라 말하기 곤란하다. (…) 귀국이 만일 우의를 중하게 여겨 깨달아 지난 계획을 고쳐 이 섬을 빨리 떠난다면 이 어찌 우리나라만이 행운이겠는가? 만국이 모두 찬양할 일이다. (김용구, 『거문도와 블라디보스토크』p.130~131, 김윤식이 칼스에게 전달한 문서)

 그가 열강에 발송한 회한(5월 20일)은 독일의 점령 반대를 불러일으켰고, 1885년 7월 7일 열강의 중재를 요청하는 회한과 1886년 7월 4일 영국에 보낸 항의 각서 등은 그가 거문도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음을 짐작하게 한다. 김윤식이 아니었다면, 이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깨어 있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우리나라가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닐까 싶다. 비록 청의 중재와 영국의 내부 의견이 절대적이었지만, 김윤식의 노력은 분명 기억되어야 한다.

 

 온건개화파 운양 김윤식. 그의 험난한 삶 자체가

한국통사의 과정이다.

 

 5. 사건, 그 이후

 

 거문도 사건은 조선을 둘러싼 열강의 대립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영국이 거문도를 불법적으로 점령한 2년간의 외교 전쟁은 조선이 세계적 위치에서 얼마나 초라한 위치를 가지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 사건은 조선에 "파행적 세계화(쉽게 말해 열강의 공격에 쉽게 노출된 상태를 말한다)"를 가져왔다. 조선의 세계화 과정은 너무 빨라 유길준과 부들러의 중립화론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거문도 사건을 일으킨 직접적 원인인 영국과 간접적 원인인 러시아의 세력은 급격히 약화되었다. 반면, 사건을 중재한 청의 간섭은 더욱 심화되었고, 이중외교를 통해 이득만 취한 일본의 세력 역시 상대적으로 강화되었다. 두 세력의 거센 충돌은 거문도 사건이 종결된지 채 10년도 되지 않아 전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당시 러시아는 양국의 전쟁에 참여할 기회를 잃어, 야욕을 드러낸 일본을 막을 수 없었다. 강력한 적수였던 청과 러시아의 몰락, 그리고 거문도 사건에서도 암시되었던 영국과 미국의 이기주의적 묵인은 결국 한반도를 일본에 빼앗기게 한 중대한 원인이 되었다. 글쓴이의 말대로, 이미 25년 전부터 1910년의 비극은 시작되었다. 가히 한국통사의 본격적인 출발점이자 중심에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거문도 사건이 종결된지 약 130년이 지났지만, 한반도의 국제적 위상은 그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 하다. 여전히 외교 전쟁은 진행 중이다.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짓밟아야 하는 이 국제 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은 어디에 있나? 지금은 우리를 대신해 문제를 해결해 줄 리훙장도, 온 몸 바쳐 우리나라의 주권을 지켜내었던 김윤식도 없다. 누가 현재진행형에 놓인 이 고통의 역사의 맥을 끊을 수 있을까? 이것은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

 

 아픔의 역사를 기억하라. 그리고 하나로 뭉쳐라. 힘을 모으지 않는 한, 거문도 사건은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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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 (무선 제작) -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개정증보판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 / 2005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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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 역사의 기준을 재확립한 이 역작의 시작은 한 뉴기니인의 질문에서 비롯되었다.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들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지고 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들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이에 대한 대답은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말문이 막힐 것이고, 어떤 사람은 당연한 것처럼 "백인은 우월한 인종이고, 흑인은 열등한 인종이니까"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다른 길을 걸었다. 그의 요지는 이것이다: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환경에 있었다. 얄리의 질문은 다시 말해 인류의 역사가 왜 지금처럼 불공정한가, 언제부터 이러한 불공정이 시작되었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이제 그 단순한 질문은 한 마디로 정리하기 불가능한 대답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보충 설명이 필요한 결론을 내린다. 그것은 바로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다"라는 주장이다.

 

 다이아몬드는 이 결론을 도출해내기 위해 기록조차 남겨지지 않은 과거로 되돌아간다. 민족의 뿌리와 그 분파들이 지구 곳곳에 흩어져 누군가는 원주민이 되고, 누군가는 떠돌이가 되었다. 인류의 시작은 동일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의 순리가 작용했다. 최초로 차이를 낳은 것은 살벌한 총, 균, 쇠가 아니라 수확할 수 있는 농작물과 기를 수 있는 가축의 여부였다. 우리는 전자를 통해 인류 문명의 기원이 모두 강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으며, 초승달 지대가 왜 비옥한 땅의 상징이었는지 알 수 있다.

 

 초승달 지대(출처: 네이버).

 

 여기서 주목할 점은, 작물화와 가축화의 과정에서 중요한 인류사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모두 다르다"라는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이다. 이것을 그대로 적용하면, "기를 수 있는 식물과 동물은 모두 엇비슷하지만 키울 수 없는 이유는 제각기 다르다." 즉, 한 가지 조건이라도 만족하지 않으면, 이 식물 또는 동물은 인류의 문명에 이바지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이 원칙에 힘입어, 세계는 기를 수 있는 작물과 가축의 여부에 따라 편차가 발생했다. 이것이 첫 번째 불평등이었다.

 

 얼마 안 가 평화는 끝났다. 위의 환경적 차이로 동일한 시간에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서로 부딪치기 시작했다. 앞선 문명, 즉 총, 균, 쇠를 보유한 자들(주로 유라시아인들)이 원주민(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들을 정복했고, 불평등은 심화되었다. 물론 여기에도 예외는 존재한다. 저자가 애착을 가지고 있는 뉴기니와, 우리나라와 "고대에 쌓았던 유대를 성공적으로 재발견"해야 하는 일본이 바로 그 사례이다. 여기에 저자는 특정한 개인을 개입한다. 알렉산더 대왕, 카이사르, 나폴레옹, 히틀러, 이들이 없었다면 세계사의 흐름은 오늘날과는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저자도 그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그들의 존재가 환경적 차이와 무관하다고 일축한다. 이렇게 해서 다시 한 번 저자의 결론이 언급된다.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인종의 차이도, 영웅의 존재도 아닌, 단순한 환경적 차이이다. 

 

 저자의 논지를 그림으로 정리한 것

 

 따라서 우리는 현대의 모습에 대해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너의 환경을 탓하느니, 환경적 차이를 넘어서는 '특정한 개인'이 되라. 이것이 『총, 균, 쇠』를 통해 내가 얻은 교훈이다. 다이아몬드의 주장도 일맥상통한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오늘날 세계에 나타나는 오늘날 세계에 나타나는 다양한 불공평을 민족이나 문화의 우열로 가리지 말라고 주장하고 있다. 동시에, 역사의 책임을 환경 탓으로 돌리지 말라고 설파하고 있다. 오늘날 세계가 불공평한 것은 환경적 차이에 불과할 뿐, 환경의 책임은 아니다. 역사를 바꾸는 주체는 여전히 사람이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그 밑에 흐르는 세계사의 보편적 원리는 변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볼까? 총, 균, 쇠다. 총이라는 이름의 폭력은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하여 통치자의 도구로 쓰인다. 균은 예기치 못한 시점에 창궐하여 면역력 없는 약자들과 원주민들을 살상한다. 그리고 쇠라는 이름의 문명은 불평등 그 자체이다. 물론 저자는 모든 문명을 해체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대신 누구에게나 가능성은 있고, 문명의 우열은 있을지언정 민족과 문화의 우열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다이아몬드가 에필로그에서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이다. 역사학도 과학이다. 실제로 『총, 균, 쇠』를 들여다 보면, 생명과학이나 지구과학을 알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이 존재한다. 그 부분을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않으면 역사의 발전이나 퇴보의 원인을 알 수 없다. 역사와 과학은 연결되어 있으며, 나아가 역사학도 과학의 일원이다, 라는 것이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주장이다. 나도 그 의견에 동감한다. 그리고 내가 그의 말에 동감하는 한, 나는 결코 역사학자가 될 수 없다. 단지 역사에 흥미를 가진 학도일 뿐이다. 과학, 정치, 경제를 이해하지 못하면 역사도 이해할 수 없다. 선사 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땅'에 대한 이야기는, 인류가 얼마나 부동산에 영향을 많이 받는지 보여주는 실례인 것이다.


 바야흐로 21세기, 시대는 변했다. 어디까지나 이 책도 개정이 되었을언정 20세기, 구세계의 흔적이다. 농업혁명은 끝났고, 어느새 정보 혁명까지 왔다. 세상은 땅의 주인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힘을 가진 자가 다스리는 곳이 되었다. 가축의 양이 아니라 기술의 질이 훌륭한 사람이 돈과 명예를 얻는다. 그러나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신세계에 전달해 줄 몇 가지 메시지를 이 책 안에 담았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가치가 흐려지지 않을 역사적 원리들 말이다. 왜 『총, 균, 쇠』에 '일본인의 뿌리'에 관련된 논문이 실렸는가? 마치 저자는 2014년까지 지속된 한일 관계의 악화를 예상하고 있는 듯 하다. 그 논란은 아이러니하게도 역사적 논쟁이다. 그리고 그가 한일 양국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두 나라는 형제라는 것이다. 화해하지 못한 형제, 그것이 우리다. 언제쯤 우리는 타인과 악수할 수 있을까?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 풍조는, 역사적으로 보나 과학적으로 보나, 분명 고쳐져야 할 요소일 것이다. 고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은 고사하고, 문화나 민족조차 지킬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총, 균, 쇠』는 제목만큼이나 살벌하고 냉혹한 미래를 예견하고 있는 무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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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스
제임스 조이스 지음, 김종건 옮김 / 생각의나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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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조이스는 표현의 영역을 뛰어넘은 작가이다. 따라서 나는 그에게 어떠한 표현을 담아 찬사를 담을 수 없다. 다만 『율리시스』는 주어진 시간으로 그 사람의 삶을 보여주는 위대한 작품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의 소설들은 모두 하나로 모아지는데, 그것의 중심에 바로 이 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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