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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원 석사까지 지내면서 참 고마운 분들을 많이 만났다. 빼놓을 수 없는 두 분이 바로 이 두 책과 관련된 분들인데, 나의 대학 생활 및 대학원 생활에 큰 힘이 되어 주셨다. 


 Bell in Campo & The Sociable Companions은 대학생 시절 알게 된 교수님이 빌려주신 책인데, 여성들이 전쟁에 주도하여 참여한다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실제 역사에 상상을 더한 팩션(faction)이 이때부터 시도되었다니, 그 상상의 폭이 넓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에 이어지는 The Sociable Companions은 일종의 결혼극 또는 희극이었다. 빌린 책이라 메모나 필기를 할 수는 없었으나 곳곳에 인상적인 구절들이 있어서 읽는 내내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권석우 교수님의 『선악과와 처녀 잉태: 유대-기독교 문명』은 교수님의 연구 결과를 집대성하는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인데, '집대성'이라는 말이 걸맞게 방대한 지식과 인용 문헌이 사용되었다. 처음에는 꼬리 먹는 뱀을 의미하는 우로보로스의 상징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접하게 되었는데, 유대-기독교 문명뿐만 아니라 고대 문명이나 동양 문명까지 아우르는 사유의 폭넓음에 감탄했다. 연구자가 어떤 주제에 대해 심도 있게 탐구하면 이러한 성과를 낼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 지식을 전파하는 데에만 치중하지 않고 일반 독자가 읽을 수 있게 최대한 쉽게 풀어쓰신 노력이 보였다. 뱀, 처녀, 선악과 등 우리의 통념 속에 고정되어 있던 상징들을 해체한 뒤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기존에 그 개념에 접근하던 방식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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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찮은 기회로 『청소년을 위한 고전산문 다독다독』을 읽었다. 이 책의 구성은 총 4부로 되어 있고, 우리나라의 고전 산문 중 잘 쓰인 것을 선별하여 수록했다. 그리고 각 장의 끝마다 엮은이의 해설이 첨부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저자에 대한 상세한 소개도 부록으로 추가된다. 이러한 구성은 예상 독자인 청소년들이 옛글에 좀 더 접근하기 쉽도록 이루어져 있어서, 누구라도 편하게 읽을 수 있다. 각 장의 분량도 3~4장 가까이 되어, 틈틈이 읽기 수월하다. 확실히 고전 산문에 대해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친절한 안내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한계도 바로 거기에 있다. 우리나라의 옛글에 입문하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이 쉽게 풀어쓴 고전들의 파편은 독자를 끌어당길 힘을 잃게 된다. 해설의 분량이 더 많은 경우에는, 역자가 하고 싶은 말을 고전 산문을 이용해 전달하는 듯한 인상도 받는다. 차라리 원문의 분량을 늘리고 해설을 최소화하는 구성이 어땠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청소년들은 충분히 선조들의 글을 음미하고 즐길 수 있다. 다만 엮은이가 해설을 통해 칭찬만 하지 않고 적절한 비판이나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기 때문에, 원문을 이용한 토론 활동에는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사람이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어디에서 태어나 자랐는가‘라는 환경도 중요하다. 외지고 적막한 곳에서 나고 자라 자연이나 인물, 이웃, 여행 등의 경험이 부족하여 높고 웅장하고 그윽하고 특별하고 괴상하고 호탕한 일들을 직접 겪어보지 못한다면, 마음이 세련되거나 넉넉해지지 못한다. -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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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텍쥐페리의 인간된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글들이다. 답장을 확인할 수 없기에 그의 편지들이 독백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그 안에서 보이는 애절함과 부족함이 작가를 이해하는 데에 한결 도움을 준다. 한편, 알베르 카뮈와 마찬가지로 생텍쥐페리의 글에는 생동감이 있다. 마음을 움직이는 무엇인가가 녹아 있다. 비평을 하기보다는 감상하려는 목적으로, 여기에 그가 쓴 글의 일부를 남긴다.

"글을 쓰기 전에 우선 살아야한다"라고 앙트완느는 대답했다. 다른 그의 말에 대해서도 상당한 반향이 일기 시작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야!" - P22

리네트, 항공 비행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당신 알고 있소? 이 곳에서 비행이란 그리 쉬운 것이 아니오. 내가 비행을 좋아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오. 여기서의 비행은 부르제 공항에서 하던 것과 같은 스포츠가 아니고,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며, 일종의 전쟁이오. - P73

밤새도록 나는 불안한 상태였소. 그리고 나는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에 애착을 느끼고 있소. 누가 자고 있는가. 내 침대에 누워 내가 밤새우고 있을 때면 환자를 지키는 간호원보다 나는 더 불안하다오. 여러날 밤을 새울 때 나는 나의 보물들을 잘 지키지 못하지요. - P97

리네트, 아가씨들은 그를 잘 보살펴 주지 않았어요. 그 아가씨들은 행실이 바르지 못하여 아름다운 모든 추억을 간직하지 못하게 했어요. 그렇지만 바로 그곳으로 그는 아가씨를 찾으러 갔다오. 이렇게 한다는 것은 각자 충실한 노력이지요. 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바친 사람에게는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기 때문이지요. - P98

그렇지만 연극이란, 그것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연극은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가 아니라, 사람의 의식 속에서만 자주 상연되기 때문이다. 행복한 도시인 페르피냥에서도 병원 창문 위에서 어떤 암종 환자가 자기 고통을 피하기 위해 마치 냉혹한 소리개처럼 공연히 몸을 뒤척이고 있다. 그 도시의 평화는 그 때문에 바뀐다.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고 보편적인 중요성도 띄지 않는 고통도 아니고 정열도 아닌 것이 바로 인류의 기적이다. - P119

밤을 새운 암환자가 바로 인간의 두려움의 중심 인물이다. 어쩌면 광부 한 사람이 수천의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과 비길 만하다. 나는 인간이 문제가 될 때 이 무서운 숫자를 사용할 줄 모른다. 누군가가 내게 이렇게 말한다면, "단지 인구 문제에서 볼 때 수십 명의 희생자는 무슨 뜻이 있습니까? 타버린 몇 채의 신전은 계속 생활하고 있는 한 도시의 입장에서 보면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르셀로나에서는 어디에 공포가 있습니까?" 나는 이런 관점을 거부한다. 아무도 인간의 제국을 측량하지 못한다.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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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영미문학연구회 소속의 학술지, 『안과밖』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 학술지의 제목이 알베르 카뮈의 초기 산문집인 『안과 겉』에서 유래되었는지 무척 궁금해졌다. 수록된 글들을 찬찬히 읽어보면 알 수 있겠지. 같은 책을 읽는 것 이상으로, 같은 작가를 동경한다는 것은 큰 기쁨이다. 알베르 카뮈와 생텍쥐페리는 동경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 그들의 문장을 읽고 나면, 글에 생명력이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단순한 글자들의 나열을 넘어서서, 감동을 받고 시간이 지나면서 의미가 달라진다. 아마 그 이유는, 다른 작가들도 그러하겠지만, 두 사람은 자신의 삶 자체를 꾹꾹 눌러담았기 때문이리라. 아이러니하게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공통점도 그렇고.


 여기에는 그가 최초로 발표한, 그래서 스스로도 애증을 느끼는 『안과 겉』을 읽으며 마음에 감돌았던 문장들에 대해 쓰려고 한다. 때로 카뮈의 작품은 비평의 대상이 아닌 감상의 대상이 된다. 이미 『이방인』과 『페스트』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가에게 처음에 쓴 글에 대해 아쉬운 점을 토로하는 일은 상당히 비효율적이다. 


  그렇다, 이런 것은 모두 진실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태양과 함께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운 그 무엇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 극단의 의식의 극한점에서 모든 것이 하나로 융합되면서 나의 생은 송두리째 버리든가 받아들인가 해야 할 하나의 덩어리처럼 생각되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어떤 위대함이 필요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p.81)

 

 카뮈에게 빛은 죽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때부터 『이방인』의 서사는 예견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역자의 해설대로 태양 때문에 사람을 죽인 것은 매우 타당한 해석이다. 작가에게는 이분법의 경계가 아주 중요했다. 빛과 어둠, 생과 죽음, 조리와 부조리 등이 그렇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다행히도 그는 자신의 생을 송두리째 받아들였다.


  삶에 대한 나의 모든 사랑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것은 내 손에서 빠져 나가버리려고 하는 것에 대한 말없는 열정, 불길 밑에 감추어진 쓰디쓴 맛이다. 매일 나는, 짧은 한순간 동안 이 세상살이의 시간 속에 아로새겨진 채 마치 나 자신에게서 앗겨가듯이, 그 승원을 떠나곤 했던 것이다. (…) 내 입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은총의 행위들이 아니라 태양에 짓눌린 풍경 앞에서가 아니고는 탄생할 수 없는 그 '나다(허무)'였던 것이다. 삶에 대한 절망 없이는 삶에 대한 사랑도 없다. (p.90~91)

 

 아, 내가 알베르 카뮈와 생텍쥐페리를 사랑한 이유. 그것은 삶에 대한 지독한 사랑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름다운 삶을 향한 지독한 투쟁의 의지 때문이었다. 알베르 카뮈의 반항과 생텍쥐페리의 용기는 서로 맞닿아 있다. 반항과 용기는 특정한 행동양식이 아니라 살아가는 태도에 가깝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고, 절망 속에서도 기꺼이 희망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쉽지 않다. 그렇기에 반항하는 인간과 어린 왕자는 시지프처럼 무시받을 수밖에 없거나, 외계에서 오지 않으면 안 된다. 절망을 맛보아야 사랑할 수 있다는 역설을 언제쯤 완전히 이해하게 될까?


  중요한 것은 인간적이 되고 단순해지는 일이라고 나는 말할 수 있고 또 잠시 후에는 실제로 그렇게 말할 것이다.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진실해지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것, 즉 인간적인 것도 단순함도 거기에 다 포함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곧 세계일 때보다도 더 진실해지는 때가 과연 언제이겠는가? 나는 갈망하기도 전에 만족되었다. 영원이 눈앞에 있는데, 나는 그것을 바랐던 것이다. 이제 내가 바라는 것은, 행복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명철한 의식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p.100~101) 

 

 표제작인 「안과 겉」에 인용된 구절이다. "중요한 것은 진실해지는 것이다"라는 그의 단언이 와 닿는다. 그는 애둘러 말하는 것을 싫어한다. 골키퍼로서, 그는 공을 막거나 못 막거나의 기로에 놓여 있다. 솔직해지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다. 알베르 카뮈를 수식하는 표현은 참으로 많고 그를 대표하는 여러 단어들이 있지만, '행복'을 빼놓고서 그에 대해 논할 수 없다. 알베르 카뮈는 언제나 행복을 찾았다. 지금의 부조리에 맞서는 것, 그 투쟁과 반항이 고난의 여정처럼 보여도 결국엔 행복에 이르고 말 것임을 그는 확신했다. 삶이라는 연극 속에서 모든 무대 장치와 소품, 고된 연기들은 해피엔딩을 향해 달려간다. 그렇기에 "갈망하기도 전에 만족"되는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이 책의 구성은 본문과 해설이 절반씩을 차지한다. 생각보다 짧은 분량에 놀랄 수 있지만, 읽다 보면 길이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촌철살인이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다만, 글은 사람을 살린다. 더 나은 삶의 양식을 제안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인가? 그것을 아는 사람은 타인을 존중하는 법을 조금씩 익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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