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영미문학연구회 소속의 학술지, 『안과밖』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 학술지의 제목이 알베르 카뮈의 초기 산문집인 『안과 겉』에서 유래되었는지 무척 궁금해졌다. 수록된 글들을 찬찬히 읽어보면 알 수 있겠지. 같은 책을 읽는 것 이상으로, 같은 작가를 동경한다는 것은 큰 기쁨이다. 알베르 카뮈와 생텍쥐페리는 동경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 그들의 문장을 읽고 나면, 글에 생명력이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단순한 글자들의 나열을 넘어서서, 감동을 받고 시간이 지나면서 의미가 달라진다. 아마 그 이유는, 다른 작가들도 그러하겠지만, 두 사람은 자신의 삶 자체를 꾹꾹 눌러담았기 때문이리라. 아이러니하게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공통점도 그렇고.
여기에는 그가 최초로 발표한, 그래서 스스로도 애증을 느끼는 『안과 겉』을 읽으며 마음에 감돌았던 문장들에 대해 쓰려고 한다. 때로 카뮈의 작품은 비평의 대상이 아닌 감상의 대상이 된다. 이미 『이방인』과 『페스트』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가에게 처음에 쓴 글에 대해 아쉬운 점을 토로하는 일은 상당히 비효율적이다.
그렇다, 이런 것은 모두 진실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태양과 함께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운 그 무엇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 극단의 의식의 극한점에서 모든 것이 하나로 융합되면서 나의 생은 송두리째 버리든가 받아들인가 해야 할 하나의 덩어리처럼 생각되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어떤 위대함이 필요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p.81)
카뮈에게 빛은 죽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때부터 『이방인』의 서사는 예견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역자의 해설대로 태양 때문에 사람을 죽인 것은 매우 타당한 해석이다. 작가에게는 이분법의 경계가 아주 중요했다. 빛과 어둠, 생과 죽음, 조리와 부조리 등이 그렇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다행히도 그는 자신의 생을 송두리째 받아들였다.
삶에 대한 나의 모든 사랑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것은 내 손에서 빠져 나가버리려고 하는 것에 대한 말없는 열정, 불길 밑에 감추어진 쓰디쓴 맛이다. 매일 나는, 짧은 한순간 동안 이 세상살이의 시간 속에 아로새겨진 채 마치 나 자신에게서 앗겨가듯이, 그 승원을 떠나곤 했던 것이다. (…) 내 입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은총의 행위들이 아니라 태양에 짓눌린 풍경 앞에서가 아니고는 탄생할 수 없는 그 '나다(허무)'였던 것이다. 삶에 대한 절망 없이는 삶에 대한 사랑도 없다. (p.90~91)
아, 내가 알베르 카뮈와 생텍쥐페리를 사랑한 이유. 그것은 삶에 대한 지독한 사랑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름다운 삶을 향한 지독한 투쟁의 의지 때문이었다. 알베르 카뮈의 반항과 생텍쥐페리의 용기는 서로 맞닿아 있다. 반항과 용기는 특정한 행동양식이 아니라 살아가는 태도에 가깝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고, 절망 속에서도 기꺼이 희망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쉽지 않다. 그렇기에 반항하는 인간과 어린 왕자는 시지프처럼 무시받을 수밖에 없거나, 외계에서 오지 않으면 안 된다. 절망을 맛보아야 사랑할 수 있다는 역설을 언제쯤 완전히 이해하게 될까?
중요한 것은 인간적이 되고 단순해지는 일이라고 나는 말할 수 있고 또 잠시 후에는 실제로 그렇게 말할 것이다.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진실해지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것, 즉 인간적인 것도 단순함도 거기에 다 포함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곧 세계일 때보다도 더 진실해지는 때가 과연 언제이겠는가? 나는 갈망하기도 전에 만족되었다. 영원이 눈앞에 있는데, 나는 그것을 바랐던 것이다. 이제 내가 바라는 것은, 행복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명철한 의식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p.100~101)
표제작인 「안과 겉」에 인용된 구절이다. "중요한 것은 진실해지는 것이다"라는 그의 단언이 와 닿는다. 그는 애둘러 말하는 것을 싫어한다. 골키퍼로서, 그는 공을 막거나 못 막거나의 기로에 놓여 있다. 솔직해지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다. 알베르 카뮈를 수식하는 표현은 참으로 많고 그를 대표하는 여러 단어들이 있지만, '행복'을 빼놓고서 그에 대해 논할 수 없다. 알베르 카뮈는 언제나 행복을 찾았다. 지금의 부조리에 맞서는 것, 그 투쟁과 반항이 고난의 여정처럼 보여도 결국엔 행복에 이르고 말 것임을 그는 확신했다. 삶이라는 연극 속에서 모든 무대 장치와 소품, 고된 연기들은 해피엔딩을 향해 달려간다. 그렇기에 "갈망하기도 전에 만족"되는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이 책의 구성은 본문과 해설이 절반씩을 차지한다. 생각보다 짧은 분량에 놀랄 수 있지만, 읽다 보면 길이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촌철살인이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다만, 글은 사람을 살린다. 더 나은 삶의 양식을 제안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인가? 그것을 아는 사람은 타인을 존중하는 법을 조금씩 익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