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사무소 김앤장 - 신자유주의를 성공 사업으로 만든 변호사 집단의 이야기 우리시대의 논리 10
임종인.장화식 지음 / 후마니타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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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현실 

이 책을 읽느라 힘들었다. 급기야는 이 책을 읽다가 중간에 다른 책을 읽고야 말았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다시 이 책을 손에 들고 끝까지 읽어 내었다. 이 책이 재미없었기 때문에 읽기 싫었던 것이 아니다. 단지 우리의 현실이 너무나 우울해서 읽어내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최근에 읽었던 책들이 모두 한국 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드러내고 있어 더욱 슬펐다. 김용철의 <삼성을 생각한다>, <배신>, <검찰공화국, 대한민국>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것들은 빙산의 일각일 뿐일 것이다. 하지만 빙산의 일각만으로도 읽는 내내 짙은 한숨이 새어 나오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김앤장에 대한 이미지는 그저 우리나라에서 로펌 중의 로펌으로 굵직한 사건들을 주로 다루어 내는 곳이라는 정도였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회적 약자보다는 엄청난 수임료를 감당해 낼 수 있는 재벌들과 관련된 경제적인 사건 등을 변호해 주는 정도일 뿐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엄청나게 심각한 것이었다. 그저 우리의 삶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지 않아 모르고 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만의 세계에서 오고가는 수임료, 자문료, 보너스, 월급과 연봉 등은 우리가 생각해 내기 힘든 천문학적인 숫자였다. 정말로 이런 세계가 있는 걸까? 자문이나 문서 작성 한 번으로도 몇 천 만원이 오고가다니. 어쨌든 이런 것들은 그들의 사업 수완 중 하나이니 뭐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IMF 이후 어려워진 기업 간의 인수 합병, 공기업의 민영화 등이 많이 이루어졌다. 이때 법률적 해석에 따라 외국계 기업이 우리나라 은행이나 기업을 인수 합병할 수 있는 방법이 달라져야 했다. 그것은 건전한 투자가 아니라 엄청난 수익률을 기대하는 적대적인 투기를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법률적인 장치였다. 김앤장은 그러한 법률적인 장치를 무력화하고 어쩔 때는 법을 바꿔서라도 외국계 기업이 우리나라 은행 등을 인수할 수 있는 길을 열도록 만들었다. 은행을 인수한 외국계 기업은 몇 년 간 안정적인 투자를 하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직원들을 잘라 구조조정을 해서 높은 수익률을 남기고 다른 곳에 팔아버렸다. 이런 것들이 기업의 이익을 위한 거라는 이유만으로 그냥 넘어갈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소버린은 2005년 7월 18일 SK 주식 14.8%를 매각해 막대한 차익을 거뒀다. 소버린이 SK 주식을 최초로 매집하기 시작한 것이 2003년 3월이니 불과 2년 4개월 만에 경영권 분쟁이라는 선진 금융 기법(?)을 활용해 소위 대박을 터트린 셈이다. 소버린은 불과 1,768억 원을 투자해 주식매각 차익 9,300억 원과 환차익까지 포함해 약 1조 원의 수익을 올렸다.(199쪽) 

2005년 6월 진로소주가 3조 4,288억 원에 하이트맥주로 재매각 됐다. 진로 채권의 70%를 가지고 있던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외국인 투자자들은 말 그대로 대박이 났다. 액면가 1조 4,600억 원의 채권을 불과 2,740억 원에 샀던 골드만삭스는 1조 원이 넘는 시세 차익을 얻게 되어 400%에 가까운 수익을 올렸다.(192쪽) 

이 외에도 김앤장이 관여한 것은 한미은행과 칼라일펀드, 외환은행과 론스타펀드, 삼성에버랜드 편법증여 사건, 하나로텔레콤 인수 등이 있다. 이러한 사건들에서 김앤장은 자문, 법률적 해석 등의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관련 부처에 있는 고위공직자를 억대 연봉으로 끌고 와 인맥, 학연, 지연 등을 활용해 법적인 장애물을 손쉽게 넘어갔다는 점이다. 이것은 고스란히 해당 기업의 직원들, 국민들에게 피해가 오게 된다. 많은 노동자들은 문자로 해고 통보를 받고 해고무효 소송을 걸어봤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김앤장의 전체 수입이 얼마인지, 회사 사무실이 모두 몇 개가 있고 어디에 있는지, 사무실 모습이 어떤지, 누가 변호사로 있는지, 고문이 누가 얼마나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태다. 국회의원이 관련 부처에 자료를 요청해도 받을 수 없고 김앤장을 폭로한 신문사나 방송사에 명예훼손으로 몇 억대의 소송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협박을 당한다. 앞으로 그 세력이 더 커질 것이란 사실이 두려워진다.

법을 가진 자들의 힘은 국가의 뿌리를 뒤흔들 정도로 엄청나다. 그들이 국가와 국민들을 위해 그 힘을 사용하지 않고 경제적인 목적만을 가지고 행동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뻔할 것이다. 그러한 불법적인 방법이 많은 돈을 벌 수 있고 높은 수익률을 보장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지, 라는 사고방식으로 우리도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무전유죄 유전무죄'가 고착화 되어 가는 우리 사회가 슬프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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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본성
제프리 잉햄 지음, 홍기빈 옮김 / 삼천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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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의 확장된 관계적 의미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화폐'의 의미는 '교환의 매개 수단이며, 가치의 저장 수단이며, 일방적 지불(지급 결제) 수단이며, 가치 척도(계산 단위)'이다.(9쪽)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제프리 잉햄은 이것이 잘못된 고정관념의 하나일 뿐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비판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1부에서는 화폐에 대한 개념과 이론을, 2부에서는 화폐에 대한 역사와 그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제프리 잉햄은 오늘날까지 버티고 있는 정통 경제 이론인 화폐수량설, 상품화폐론 등을 분석적으로 비판한다. 그리고 화폐의 추상적 가치에 대한 접근을 조금이나마 시도하고 있는 독일 역사학파의 국정화폐론, 케인스, 포스트케인스주의 이론, 현대의 신증표화폐론에 대한 설명을 곁들이고 있다.  

제프리 잉햄은 화폐에 대해 사회학과 연계되지 못하고 경제학에서만 분석을 시도하는 점을 비판하고 있다. 지금까지 경제학의 측면에서만 화폐를 다뤄 왔기 때문에 화폐의 의미가 교환의 매개, 가치 저장, 결제, 계산 단위 등으로서만 분석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2부에서 화폐의 역사적 기원과 형태, 자본주의적 신용화폐의 발전을 다루면서 20세기 후반에 발생한 통화 무질서의 사례를 들면서 새로운 화폐 공간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정보통신 기술이 발전하면서 생긴 것과 유럽의 단일 통화이다. 

'시장과 상품 교환이 화폐를 만든 것이 아니라 화폐가 시장 및 상품 교환을 만들어 낸 것이라는 정반대의 발상 전환'(429쪽)을 이루고 있다고 이 책의 옮긴이인 홍기빈은 밝히고 있다. 홍기빈은 이 책의 중요한 의의를 '화폐의 본성은 사회적 관계요, 화폐의 현실적 작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화폐의 생산과 분배를 둘러싼 여러 사회 세력들의 갈등과 협력이라는 지극히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과정을 중심적으로 보아야 한다'(435쪽)는 점을 들고 있다.  

옮긴이가 이 책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정성들여 번역을 하고 있는 점은 이 책을 이해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중요한 부분이나 핵심적인 단어마다 옮긴이는 강조를 하기 위해 굵은 글씨를 해 놓았고 어려운 경제 용어에 대해서는 친절한 배경 지식과 번역자의 개인적인 의견을 첨부해 놓기도 했다. 책의 마지막에 있는 '옮긴이의 말'도 번역한 사람의 단순한 감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책에 대한 학문적인 접근으로 분석을 시도하고 있어서 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러한 옮긴이의 관심과 정성은 '상품, 화폐, 자본 세 범주 각각에 대한 대안적인 이해의 방식을 담고 있는 저작들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성공적인 것들이라고 생각되는 책들을 3부작으로 번역해 보겠다는 시도'로 나타난다. 그 첫 번째는 '상품이라는 범주를 마르크스와는 다른 틀에서 설명하고 그것이 지구적 자본주의의 전체와 역사의 역동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거시적으로 설명한 책'인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 우리 시대의 정치적 경제적 기원>이다. 두 번째는 '화폐에 대한 대안적인 이해를 담은 책'인 제프리 잉햄의 <돈의 본성>이다. 세 번째는 '자본에 대한 획기적인 대안적 이론을 담은 책'인 닛잔과 비클러의 <권력으로서의 자본: 질서와 창서에 대한 연구>이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세 권의 책을 읽고 홍기빈의 바람처럼 상품, 화폐, 자본의 세 범주에 대한 대안적인 이해 방식에 조금이나마 접근해 보고 싶다.

옮긴이의 친절한 번역으로 이 책을 재미나게 읽었다. 나 또한 화폐에 대한 정통 경제학자들이 분석한 고정관념 그 이상을 생각해 내지 못 했기 때문에 제프리 잉햄의 새로운 접근 방식은 지적인 재미를 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옮긴이도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의 한계가 조금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 책의 저자인 제프리 잉햄도 논의를 종결하자고 또는 다음 기회로 미루자고 제안했다. 그것은 화폐의 본성을 정통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중립적이고 실질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로서 형성되는 추상적인 것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설명해 내며 딱 들어맞는 예를 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관념적인 이론으로 제시하고는 있지만 그것이 하나의 이론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실례의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이론적인 논의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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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P는 틀렸다 - '국민총행복'을 높이는 새로운 지수를 찾아서
조지프 스티글리츠 외 지음, 박형준 옮김 / 동녘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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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행복 지수를 찾기 위한 여정

이 책은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GDP는 상승하는데, 사람들의 생활은 왜 더 어려워지는 걸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세계적인 석학들을 포함한 연구 모임을 만든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GDP'를 선진국과 후진국을 나누는 기준으로 우리의 '행복'을 수치로 나타낼 수 있는 절대적인 계량 지수로 여겨 왔다. 하지만 정말로 GDP가 우리의 삶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는지는 많은 의문이 생긴다. 사르코지의 말처럼 GDP 수치는 올라갔다고 하는데, 우리의 생활 자체는 더욱 살기 어려워지고 팍팍해지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이런 상황에서 사르코지는 '우리가 경제 성과의 측정 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우리의 행동은 바뀌지 않는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새로운 경제 지수를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났다. 그것은 '국민총행복'을 높이는 새로운 지수를 찾으려는 운동으로 조지프 스티글리츠, 아마르티아 센, 장 폴 피투시 등 많은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토론을 거쳐 새로운 논문을 작성하게 된 것이 이 책인 것이다. 

프랑스는 이 연구 보고서의 결론을 국제 모임에서 주요 의제로 제기했고 국제기구들은 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그들의 통계 시스템을 개선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위원회의 최종 보고서는 2009년 9월 14일에 사르코지 대통령이 주제한 토론회에서 공개적으로 발표되었다. 그리고 2009년 10월 27~30일에 한국의 부산에서 개최된 <제3차 OECD 세계포럼>에서 개선된 사회발전 측정 지표가 단순히 사회적 진보를 도식화시키는 것을 넘어 새로운 비전을 세우고 삶을 향상시키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기도 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는 단 한 문장이 적혀 있다. '평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불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회피하는 방법의 하나다'가 바로 그것이다. 사르코지의 서문에서 이 평균에 대한 오류를 설명해 놓고 있다. 

우리의 측정체계는 평균값을 기본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만약 우리가 계속해서 평균값을 기본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만약 우리가 계속해서 평균값을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현실과 동떨어진 데이터를 바탕으로 우리의 믿음이 형성되고,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것이다. 평균적인 개인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증대되는 불평등은 평균값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점점 더 넓혀놓고 있다. 평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불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회피하는 방법의 하나다. (15쪽)

평균에 대한 오류는 카이저 펑의 <넘버스, 숫자가 당신을 지배한다>는 책에도 나오는 내용이다. 우리는 그 동안 '평균'이라는 고정관념에 갇혀 많은 것을 잘못 인식해 왔는지도 모른다. GDP도 그런 것 중의 하나다. GDP가 높다고 해서 우리가 더 행복한 것도 불행한 것도 아니다. 단지 국가 간의 비교를 위한 수치 중에 하나일 뿐인 것이다. GDP가 높은 것이 우리의 행복을 나타내 준다면 그 많은 자살자들이 나타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보다 정확하게 우리의 삶을 나타내 줄 수 있는 통계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삶의 질을 측정할 수 있는 새로운 지표를 마련해서 불완전 하고 많은 돈이 들더라도 꾸준히 시행착오를 겪으며 통계 자료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삶의 질을 규정하는 객관적 요소들에는 '건강, 교육, 개인 활동들, 정치적 의견과 통치체제, 사회적 연계, 환경적 조건들, 개인적 불안정, 경제적 불안정' 등이 있다. 그리고 앞으로 더욱 중요해 지는 통계 방법 중 하나는 '지속가능한 개발과 환경'을 위한 내용이다. 그것은 생태발자국이나 이산화탄소 배출량 등이 있다. 

GDP라는 지수 대신 무엇을 통계 방법으로 대체해야 할지는 앞으로 꾸준하게 연구해야 할 문제이다. 이 책은 GDP가 우리에게 절대적인 삶의 방향을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니라는 깨달음을 주고 그것이 가장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작은 행보가 우리의 삶의 질을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는 통계 수치가 나오게 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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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창의력 국가 대표다! - 세계 학생 창의력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11살 천재들 이야기
서지원 지음, 한지선 그림, 박상민 기타 / 토토북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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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가 재미있어 하네요. 퀴즈 풀면서 창의력에 대해 생각해 보는 좋은 시간 만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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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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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와 해학이 뛰노는 인생의 축소판 

생각해 보면 중국 문학을 접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그에 비해 일본 문학은 미스터리나 추리물을 많이 읽으며 모으기도 했다. 중국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삼국지나 논어, 맹자류는 빼고 말이다. 가까운 지역에 있는 나라인데도 중국의 현대 문학을 읽어보지 못한 것은 번역의 문제보다는 심리적 거리감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위화의 책을 읽어보면서 중국 문학도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 한국, 일본, 중국의 삼국에서 유명 작가의 단편소설을 모아 동시에 발간한 <젊은 오래된 도시, 성>이란 책에 대한 기대감도 더욱 높아졌다.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는 우리나라의 채만식의 풍자와 해학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대화체와 설명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닮아 있었다. 그래서 심각하거나 슬픈 상황에서도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웃음 속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허삼관은 남자다운 것을 보여주기 위한 흥미로, 결혼을 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피를 뽑아 판다. 그 이후로 집에 무슨 일이 있거나 아들들을 위해 목숨이 위험할 정도로 피를 팔게 된다. 첫 아들인 일락이가 간염에 걸렸을 때는 상하이로 가면서 며칠 만에 몇 번이나 피를 뽑느라 쇼크로 쓰러지기도 한다.  

허삼관은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자이다. 아내가 결혼하기 전에 다른 남자를 만나 일락이를 낳은 것을 9년이 지나 알게 되자 허옥란을 구박하고 일락이를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고 내쳐 버린다. 일락이는 자신을 키워준 허삼관을 따르려고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자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인 하소용을 찾아가지만 거기에서도 확실하지 않다면서 내쳐지고 만다. 극심한 가뭄에서 제대로 먹지 못하자 일락이는 울고야 마는데, 허삼관이 찾아와 자신을 업고 국수를 먹으러 간다. 나중에 하소용이 죽을 위기에 놓였을 때 일락이가 아버지라고 불러야 했는데 부르지 않으려고 했다. 그때 허삼관은 '사람은 양심이 있어야 한다'며 일락이를 설득하고 사람들에게 일락이는 자신의 친아들이라며 뭐라고 하는 사람을 혼내주겠다고 공언한다.  

이렇게 허삼관은 이기적이면서도 남의 자식인 일락이를 끝까지 보듬으며 키워내며 가슴 뜨거운 부정을 보여준다. 일락이가 간염에 걸렸을 때는 병원을 찾아가면서도 몇 번이나 피를 뽑는다. 그리고 아내인 허옥란이 문화대혁명 때 기생이라는 대자보가 붙어 머리가 밀리고 팻말을 들고 거리에서 서 있어야 하는 벌을 받았어도 밥을 가져다주며 따스한 마음을 전한다. 집안에서 아내를 비판해야 할 때도 일락이와 이락이가 허옥란을 비난하자 허삼관은 자신도 임분방과 바람을 피웠다며 아내를 감싸 안는다. 

이러한 허삼관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가부장적인 모습과 많이 닮아 보인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의 주인공인 김첨지를 생각나게 만든다. 김첨지는 아픈 아내를 두고 밖으로 나오는데, 평소와 다르게 돈을 많이 벌면서도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아내를 위해 산 설렁탕을 들고 집으로 오지만 아무리 소리쳐도 아내는 일어나지 못한다. 옆에서 자지러지게 우는 아기와 일어나라고 외치는 김첨지의 목소리만이 공허한 방안을 씁쓸하게 메울 뿐이다. 비극적으로 슬픈 모습의 <운수 좋은 날>에 비해서 슬픈 상황에서도 유머를 잊지 않는 위화의 소설은 아마도 시대적인 차이에서 비롯한 환경의 무게감 때문일 것이다. 

위화의 다른 소설도 읽어보고 싶었다. 특히, 장이머우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어 1994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인생>이란 책을 말이다. <허삼관 매혈기>는 펄 벅의 <대지>와 비교해 보아도 꽤 흥미로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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