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심
고은채 지음 / 답(도서출판)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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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심>_사랑의 이상과 현실에서 방황



먼저 작가의 이력이 눈에 들어 왔다. 현재 21살, 책 한 권을 내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 책은 고등학생일 때 써서 출판사로 보낸 것이라고 하니, 한 권 분량의 책을 고등학생으로 썼다는 점이 대단해 보였다.


이 책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상의 <날개>를 여자의 입장에서 다시 새롭게 적은 글이다. 익숙하게 잘 알고 있는 글을 다시 적을 때는 장단점이 있다. 익숙해서 편하기도 하지만, 예상이 가능하기 때문에 재미가 반감될 위험도 있다. 이 책은 과연 내가 예상 가능할 수준을 뛰어 넘었는지 궁금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은휘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에서도 여학교를 다닐 정도로 엘리트이고 자유 연애를 꿈꾸는 부잣집 아가씨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었을 때 양장을 입고 카페에 나가 커피를 시켜 먹는 낭만적인 시간을 보낸다. 그때 만난 첫사랑이 바로 재우였다. 재우는 고아로 자라나 외국인 선교사에 의해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영국인이 사장으로 있는 신문사에 기자로 일하며 바이런의 영어 시집을 읽는 멋진 남자였다.

그렇게 사랑에 빠진 은휘는 자신을 맘에 두고 있던 부잣집 남자인 박동빈을 마다하고 재우와 살림을 차린다. 그렇게 작은 행복 속에서 즐거운 신혼 생활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재우와 다른 기자들이 일본 경찰에 끌려가 일주일 고문을 당하다 나온다. 행복했던 은휘의 신혼 생활이 처참하게 깨지게 되었다.

재우는 고문의 상처로 앓아 누워 정신을 못 차리고, 은휘가 도움을 청할 대상인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유일한 혈육인 오빠는 모든 재산을 가지고 도망쳐 소식이 끊긴 상태였다. 은휘는 돈을 벌기 위해 일을 시작하지만 자신을 써 줄 곳을 마땅히 찾을 수 없었다. 힘들게 겨우 찾은 레스토랑에서 박동빈을 다시 만나게 된다. 박동빈은 돈을 미끼로 그런 은휘를 자기 맘대로 휘두르려고 한다.

은휘는 재우를 사랑해서 모든 걸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선택해서 결혼했지만, 결혼 생활은 현실이었다. 결국 은휘는 재우를 원망하면서 박동빈의 뜻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자유를 원하고 자유 연애를 꿈꾸던 신여성 은휘의 '사랑'은 시들시들 말라 죽어 가게 된다. 바로 사랑에 대한 이상과 현실의 모습인 것이다.

이 책의 장점은 은휘의 심리와 감정을 1930년대의 옛 문투로 살려 내려고 애쓰고 있다는 점이다. 단어들의 사용이 일반적이지 않아 낯설고 걸리기도 했지만, 그것이 이 책에서는 글의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치고 있기도 했다.

그런데... 은휘가 신여성인데 반해, 자기 주장이 더 강하고 분명하게 드러내서 상황을 전환시킬 수 있는 주인공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 당시 시대상이 여자가 혼자 살아갈 수 없고, 돈이 없어 박동빈에게 휘둘릴 수 없는 상황이기는 했지만,,, 은휘가 조금 더 자기주도적이고 당당했으면 했다. 재우와의 결혼을 선택할 때는 그렇게 결단력 있던 은휘가, 그 이후에는 휘둘리기만 하고 당하기만 했다. 감정적으로 당하고 좌절하고 사랑에 매달리는 은휘가 전혀 새롭지 않았다. 요즘 일어나고 있는 미투 운동과 비교해 봐도 수동적이고 대가를 바라게 되는 그 상황들이 답답했다.

연애는 이상이지만, 결혼은 현실이다. 사랑은 언제나 존재하기는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형태가 변한다. 그게 사랑인지 아닌지, 사람의 '생존'에 대한 문제에서는 그 힘이 약해지고 만다. 자신의 삶에 여유가 있어야 사랑도 한다. 언젠가 이 땅에서 '사랑'이 없어질까? 그것도 멀지 않은 미래일 것 같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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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말
최민호 지음 / 황금가지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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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말>_어쨌든 구별 짓기


최근에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전보다 더 읽는 시간을 많이 낼 수 없어 아쉽다. 하루 종일 무엇을 하길래 이렇게 하루가 빨리 흘러가 버리는 지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시간을 조금씩이라도 낼 수 있다니 다행이긴 하다. 평창 올림픽 개막식을 다시 보고 있는데, 정말 잘 꾸민 것 같다. 동양적, 특히, 한국의 '미'를 여실하게 보여 준 화려한 개막식이었다. 특히나, 요새 추워서 연습하는 데 엄청 힘들었을 것 같다. 그 모든 분들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제6회 ZA 문학 공모전 대상 수상작이다. 전에 제1회에 상을 받은 작품들을 읽은 적이 있다. 좀비 영화는 몇 번 봤지만 소설로 읽은 적은 없어서 새롭게 다가왔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읽어 보고 싶었는데.. 그 기회가 와서 기대하며 읽었다. 게다가 이번 문학상은 공모전에서 처음으로 장편이 당선되었다고 하니 더욱 재미있을 것 같았다.


이 책 속의 세계 속에 등장하는 인간은 딱 둘로 나뉘게 된다. 바로 좀비 바이러스 '보유자'와 '면역자'이다. 이게 계급을 나누는 기준이 된다. 보유자는 좀비로 변하지 않기 위해서는 '구인제약'에서 만든 약을 시간마다 먹어야 한다. 그런데 가격이 너무 비싸서 그 약 하나를 사기 위해서는 정말 열심히 일해야만 한다. 그런데도 보유자는 면역자에 비해서 차별을 받는다. 그리고 면역자들은 흔히 말하는 특권 계급이다. 전 인구의 20%만 존재할 뿐이다. 그 중에서도 돈이 있고 약을 만드는 구인제약 관리자라면 대단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 그들은 동떨어진 섬에 모여 산다. 그곳에는 모두 확인을 받은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면역자들이 사는 북쪽은 국가에서 지원이 많이 돼서 환경이 다르다. 보유자가 사는 남쪽은 갇혀진 구획에서 모여 산다. 그들은 손목에 밴드를 차고 있다. 체내의 좀비 바이러스의 수치를 자동으로 측정해 위험을 알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북쪽과 남쪽 사이에는 거대한 장벽이 있다. 남쪽에 좀비가 많아질 때마다 한번씩 그 장벽을 폐쇄한다. 좀비들이 자연히 줄어 들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런 세상 속에서 보유자인 수진은 어린 딸인 미나를 데리고 힘들게 살아간다. 어느 날 회사에서 잘리고 약을 잘 먹지 못한 미나가 좀비 바이러스 수치가 높아져 죽게 된다. 그리고 미나를 간접적으로 죽게 만든 구인제약 계열사를 운영하는 사장인 석호에게 사과하라고 항의한다.


또 다른 주인공인 세영은 좀비 연구소의 연구원이다. 세영은 궁극적으로 좀비를 치료할 약을 만들고 싶지만 상부에서는 쓸데 없는 일을 한다고 싫어한다. 좀비를 치료하면 약을 팔 수 없고, 돈을 못 벌어,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려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세영에게는 기자인 미영이라는 동생이 있는데, 어느 날 불법 좀비 게임장에서 나타나 상우의 총을 맞아 죽는다. 세영은 미영이 왜 죽었는지 밝히기 위해 자신이 속해 있는 비밀 조직을 이용한다.


그런 과정들 속에서 세영은 수진과 만나게 되어 함께 손을 잡고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저항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노력은 성공할까? 그럼 좀비들이 세계에서 사라질까? 인간만의 세계로 깨끗해질까?


어쨌든... 인간은 무엇이든 '구별 짓기'를 좋아한다. 어디서나 갑과 을이 존재하는 것이다. 내게도 좀비 바이러스가 있고 그것이 발현되기 위해 반드시 약을 먹어야 한다면 어떻게 할까? 그 약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 가지 의문은 수진이 왜 그렇게 석호를 향해 분노를 쏟아 냈느냐는 것이다. 석호는 이중적인 인물이기는 했지만 처음에는 수진에게 도움을 주려고 했다. 실업 급여를 받을 수 있고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추천서도 써주고 나중에 왔을 때는 돈을 건네기도 했다. 그것을 삐딱한 마음으로 모두 마다한 것은 수진 자신이었다. 당장 돈이 없는데 자존심이 무슨 소용일까? 게다가 딸의 목숨이 달린 일이데 말이다. 석호는 태도가 짜증날 수도 있겠지만 직접적으로 말로 한 적은 없었다. 수진은 그런데도 석호에게 모든 감정을 쏟아내 복수하려고 한다. 수진의 그런 감정과 행동들이 짜증 나게 느껴지기도 했다. 결말을 위한 큰 포석이기는 했지만말이다.


전체적으로 재미있게 읽기는 했다. 인물들의 행동과 감정이 이해 안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말이다. 뭔가 추리적인 부분도 아쉽게 느껴졌다. 좀비들의 세계라도 인간은 여전히 '너와 나'를 나눈다. 그래야 내가 존재하니까 말이다. 좀비가 되는 것보다 그게 가장 중요한 문제다. 내게 중요한 문제는 무엇일까? 제목인 '창백한 말'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절대 사과하지 않는 기득권들의 '미안'하다는 사과가 아닐지... 책 속의 말처럼 우리는 누군가에게 운전을 당하고 마는 트럭일 뿐이다.



*해당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 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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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 다음, 작가의 발견 7인의 작가전
정명섭 지음 / 답(도서출판)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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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_무너져 내린 부활



오랜만에 서평단을 신청해서 읽은 책이다. 책 표지에 있는 '진실은 무너진 건물 안에 있다!'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세화병원이 무너지기 직전 등장 인물들에게 한 통의 메일이 온다. 오늘 세화병원이 오후 4시에 붕괴될 것이니 그 직후에 바로 모이라고 말이다. 여기서 누군가가 '일부러' 병원 건물을 무너뜨린 것은 아닐까 추측할 수 있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병원을 붕괴 시킨 것일까 궁금해졌다.


처음에 책에 대한 흥미를 갖고 페이지를 넘겼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비추는 표지도 흥미로웠다. 처음에는 몇 명의 등장 인물들이 자신의 상황에서 세화병원 병원장의 메일을 받거나 병원의 붕괴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붕괴 현장 앞에서 그 인물들은 다시 만난다. 구조대원으로 위장한 그들은 병원장의 안내로 병원에 들어간다. 병원 안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책의 대부분의 내용은 이 인물들이 병원의 비밀 공간이 지하로 들어가는 상황이 나오고 있다. 어둠 속에서 뭔가 이상한 것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러면서 병원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있던 환자의 가족들은 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궁금해 한다. 병원장은 단지 가보면 알 수 있을 거라며, 지하에 있는 환자를 구하러 가자고 한다. 그러다 함께 들어간 환자의 가족들의 사연들이 조금씩 드러난다.


병원의 무엇을 믿고 목숨이 위험한 가족을 맡길 수 있었을까? 누군가는 마지막 희망을 가지거나, 혹은 포기하는 심정으로 병원장에게 사랑하는 가족을 맡겼다. 그런데 병원장은 이해할 수 없는 실험을 실시했다고 한다. 죽음 직전에 놓인 환자들을 상대로 '엑토컬쳐' 실험이 시행되었다. 병원장 개인의 어떤 특정한 질환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엑토컬쳐 실험은 부작용이 심했다. 인간의 이성을 잃어버릴 수 있는 위험이 많았다.


책에서는 엑토컬쳐 실험에 대한 설명이 나오고 있긴 하지만, 구체적으로 상상이 되지 않아서 아쉬웠다. 어떤 형광색 물질로 인해 인간이 좀비처럼 이성을 잃고 본능을 따르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뒤에서는 그게 어떤 초인적인 능력의 발휘, 즉 초능력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실험 내용이 구체적으로 이해되지 않아 글의 내용이 쉽게 다가오지 않는 부분이 아쉬웠다.


우리가 흔히 접한 좀비와는 비슷하지만 형광 피를 흘리는 괴물을 어떤 형태로 상상해야 할까? 그 괴물을 물리치는 과정은 잔인하지만 담담하게 표현되고 있었다. 병원장은 결국 자신의 질환을 위해 엑토컬쳐 실험을 실시 했지만 결국 자신도 희생자일 수밖에 없었다. 병원 붕괴에 대한 모든 것을 통제하는 사람에 대한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인물들의 심리와 과거 보다는 병원 지하에서 괴물들을 물리치는 상황이 많이 그려지고 있었다. 인물들에 대해서는 단편적으로만 나와서 아쉽게 느껴졌다. 왜 인물들이 그래야 했는지 절실함이 미비했던 것이다. 결국 더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엑토컬쳐 실험을 통해 만들어진 괴물을 겨우 물리치려고 했다. 그리고 남은 것은 무엇일까?


연변이로 인해 초능력을 가진 무리들이 인간들의 세계를 차지하려고 하는 내용의 영화가 많이 생각났다. 엑토컬쳐 실험체들은 그 병원을 나가고 싶을 뿐이었다. 할 수 없이 가둬진 자들의 고통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읽은 서평 책이었기 때문에 많이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제부터 재밌는 책을 더 많이 읽고 서평해 보고 싶다. 날씨가 추운만큼 따뜻한 국물이 그리워지는 오후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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꾿빠이, 이상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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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지만 이상이 드높았던 존재, 이상

 

 

어느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면서 특별한 존재이고 싶고 또, 후세에 이름을 남길 것을 꿈꾼다. 현재 우리에게 친숙하게 이름을 불리 우는 이상(李箱)은 젊은 나이에 요절한데 비해 우리들 마음속에 푸릇하게 살아있다. 김연수의 『꾿빠이, 이상』을 읽고 더욱 절실하게 생각하는 것은 김해경이 자신의 모든 삶을 불사르면서 영원히 존재할 '이상'을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이 책은 작가 이상을 말하면서 삶의 문제를 논하고 있다.

이 책은 세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중 하나인 「데드마스크」는 이상이 숨을 거두었을 때 제작되었다는 이상의 유품이 누구에 의해 제작되었으며, 어떻게 유실되었는가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이 주요내용이다. 이상의 임종 당시 있었던 인물들이 '데드마스크'에 관한 이야기가 서로 엇갈리고 있다. 여기서 작가는 이상의 '데드마스크'가 공개된 이후 그 유품을 믿느냐, 그렇지 않으면 가짜로 간주하느냐 하는 세상의 반응에 관심을 갖는다. 정작 여기서 '데드마스크'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진짜이든, 가짜이든 그것을 믿느냐, 안 믿느냐로 모아지는 것이다. 진실과 허위가 난무하는 세계에서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 세상은 진짜보다는 가짜가 진짜를 대신하고 있다. 진실과 거짓을 나누고 구분하는 것조차 모호하다.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모르겠다면 남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다.

그 두 번째 이야기인 「잃어버린 꽃」은 이상에게 큰 충격을 받은 서혁민에 관한 것이다. 서혁민은 이상을 너무나 따른 나머지 그의 삶을 되짚어 가고 심지어는 자신의 작품세계까지 이상을 따르려 한다. 그러한 그의 삶이 진정한 '서혁민' 자신의 삶일 것인가, 아니면 이상을 모방한 '서혁민'의 삶일 것인가. 문득 생각하게 했다. 김해경은 천재적인 작가 '이상'을 창조했다. 마지막에 그는 자신이 김해경이냐, 아니면 이상이냐 하는 의문에 빠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김해경'으로서 죽느냐, '이상'으로 죽느냐 하는 기로에 섰다. 그가 선택한 것은 결국 김해경인 자신을 죽였다. 그래서 '이상'은 작가로서 영원히 우리에게 남게 되었다. 참으로 무서운 결단이다.

세 번째 이야기는 「새」다. 이상의 오감도 시 제16호 실화를 바탕으로 진위여부에 대한 논쟁이다. 화자인 피터 주의 출생과 관련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의미를 다루고 있다. 이 글에서는 무엇보다도 김해경이 죽음으로써 '이상'이 비상하게 되었다는 것이 뇌리 속에 깊게 뿌리 박힌다. 한 단계 승화하는 인물은 정작 이상이 아니라 김해경이다. 김해경이나 이상이나, 김해경이 이상을 창조한 것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둘은 둘이 아닌 하나이기에 이상이 비상을 하게 된다면 김해경이 죽었을 지라도 함께 날아오른 것이다.

이 책을 준비하기 위해서 작자가 쏟은 열정과 노력이 보였다. 글 하나 하나, 관련된 문서마다 꼼꼼히 준비하며 이상의 삶을 구체적으로 살려내기 위해 많은 심혈을 기울인 듯하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과연 진짜와 가짜 사이에 '믿음'의 문제 하나만을 놓을 수 있을까. 그것이 자신의 삶 전체가 걸린 일이라면 그리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불멸의 작품 속에 녹아든 작가와 그를 추종하는 자와의 관계. 작가를 추종해서 자신의 삶을 그와 똑같이 꾸려 나간다면 대체 '그'는 어디에 있는가. 이상과 똑같이 모방한 오감도의 시를 써 내놓았다 할지라도 어느 누구도 보아주지 않는다면 그것이 진정한 자신의 삶이라 할 수 있을까. 이 세상은 한 분야의 천재는 둘 이상을 바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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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관 - 하 - 왕을 기록하는 여인
박준수 지음, 홍성덕 사진 / 청년정신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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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기록하려는 자들의 사명

 

 

제목에 '왕을 기록하는 여인'이라고 한 점이 조금은 아쉽다. 역사 로맨스였다면 정말 역사 로맨스 쪽으로 완전히 가버리든지, 역사서로서의 문학이라면 정말 '사관'의 사명과 투쟁을 더 중심으로 그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건 로맨스이면서도 역사서였는데,,, 오히려 로맨스가 역사서의 순수한 측면을 잃어버리게 만든 건 아닌가 싶었다. 아니면 남장 여인을 조금 더 미스터리하게, 그래서 궁궐에서 일어나는 일에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행동하게 했어야 했다.

 

책 자체는 '왕을 기록하는 여인'인데, 남장 여인이 정작 왕을 기록하는 것은 딱 한 번 뿐이었기 때문이다. 아예 세조와 공신들이 자신들의 과오를 지우고 새로운 역사를 적으려는 것을 사관들이 나서서 반대하고 투쟁하는 모습을 중점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더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랬다면 이 책에 나오는 사관의 역할, 사명, 역사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더 절실하게 다가올 듯 했다.

 

마지막에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기 위해 애썼던 무리들에게 "왜곡된 역사도 역사다."라며 그러한 왜곡된 역사도 나중에는 그에 대한 합당한 평가를 받게 될 것이라는 세주의 말이 다가왔다. 지금 그렇게 역사 교과서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의 무모한 행동도 나중에 그 나름의 평가를 받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결국 역사는 이긴 자들의 것이 된다. 하지만 패배한 자들의 역사 또한 이긴 자들의 역사 밑에서 숨쉬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역사에 관심을 갖고 제대로 된 역사를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어느 게 올바른 역사인지 보일 것이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딱 정해진 것이다. 역사를 국정 교과서로 만들겠다는 사람들은 어쨌든 자신들의 주장을 밀어 붙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할 일은 어떤 역사가 적히더라도 그 역사를 바르게 볼 수 있는 '나의 가치관'을 올바르게 정립하는 일일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세주와 은후와는 깊은 인연이 있는 사이였다. 그들은 결국 어려움을 극복하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 당시 권력자들에 의한 역사 기록은 어떻게 되었을까? 결국 대부분은 권력자들의 입맛대로 씌여졌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세조가 조카인 단종을 죽이고 자리를 찬탈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역사를 그렇게 지우고 싶었던 세조도 모든 역사를 깨끗이 삭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유한성으로 인한 한계일 것이다. 아무런 힘도 없는 우리에게는 더 잘된 일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제대로 된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투쟁하는 사관들의 사명감을 엿볼 수 있고, 자신들의 과오를 남기지 않으려는 권력자들의 습성을 오늘날의 모습과 비교하기에 좋았다.

 

 

* 네이버 책콩 서평단으로서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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