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초기 유대교와 예수 운동 - 제2성전기 유대교와 역사적 예수의 상관관계
프레더릭 J. 머피 지음, 유선명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20년 3월
평점 :
신약시대의 예수와 이후에 발전된 기독교를 이해함에 있어 초기 유대교는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 할 맥락과 정황이다. 그동안 우리는 유대교를 기독교적 편견 가운데 보아왔는지도 모른다. 예수가 유대인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복음서를 대했을 수도 있다. 저자인 프레더릭 J. 머피(Frederick J. Murphy, 1949-2011)는 객관적 방식으로 제2성전기 유대교에 접근하려고 노력한다. 그러한 그의 세밀한 노력은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예수가 매 순간 언약 가운데 토라에 순종하는 유대인으로 자신을 이해했음을 강조한다. 그는 유대교를 그 자체의 가치와 기준으로 보아야 함을 역설한다. 제2성전기를 세세하게 이해할 수 있는 문헌과 자료가 많지는 않지만 제한된 자료를 최대한 활용하여 당시의 역사적 정황을 면밀하게 소개하여 주고 있다. 더불어 제2성전기뿐만 아니라 유대교를 형성한 이스라엘 역사를 모두 다루고 있다.
제1장 '제2성전기 이전의 이스라엘'과 제2장 '회복'은 구약 정경을 일차 자료로 활용하고 있기에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매우 익숙한 내용이다. 구약 전체를 하나의 이야기로 한번 정리해볼 수 있다. 구약을 역사학자의 시각으로 훑어볼 수 있다는 유익이 있다. 더불어 고대 유대 사회의 개념과 특징들이 곳곳에 소개되고 있어 소소한 재미가 있다.
제3장 '헬레니즘, 유대교, 마카비 가문'과 제4장 '묵시 사상'은 「마카베오 1」, 「마카베오 2」, 「집회서」, 다니엘,「에녹 1서」등이 일차 자료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외경의 내용을 당시의 정황과 역사적 흐름에 따라 함께 살펴볼 수 있는 귀한 기회다. 성경은 하나의 큰 이야기(meta-narrative)다. 제2성전기의 역사는 성경을 전체로 이해할 때 필수적인 요소다. 우리는 제3장과 4장을 통해 구약과 신약의 중간기라고 말하는 제2성전기의 역사를 대하게 된다. 그리하여 예수 운동과 기독교의 형성의 기초적 문맥을 이해하게 된다.
제5장 '쿰란과 사해사본'을 내용만으로도 이 책은 매우 훌륭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처음 사해사본(Dead Sea Scrolls)이 발견되었을 때, 미디어와 개인 저술가들은 미공개된 문서에 충격적 내용이 있으며 이것은 기독교의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보도하곤 했다. 하지만 건실한 학자들은 이런 추측들을 일축하고, 사해사본을 통해 제2성전기에 대한 더욱 풍성한 일차 자료들이 있음을 밝혀냈다.
다수의 사본이 극소수의 학자들에게만 공개되었고, 두루마리의 손상으로 인해 출판이 늦어졌으며, 초기 사본들을 배당받은 학자들이 자신의 제자들에게만 그 작업을 인계함으로 인해 이 사본의 접근은 사실상 매우 어려웠다. 이후에 대중에게 사해사본이 공개되면서 더욱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졌고 이를 통해 제2성전기 중간기부터 말기에 대한 이해와 초기 유대교와 기독교 연구를 위한 값진 자료가 되었다. 머피는 이 장을 통해 쿰란 공동체와 이 곳에서 발견된 두루마리 자료들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일차 자료들을 최대한 그대로 사용하면서 쿰란 공동체의 특징을 정리하고 분석한다.
제6장 '서기관, 바리새인, 사두개인, 산헤드린'은 복음서와 요세푸스의 저작 등을 통해 제2성전기 말에 이스라엘의 유력한 세 집단을 비교하여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예수운동과 초기 기독교, 복음서를 더욱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제7장 '로마인의 등장'과 제8장 '로마의 통치'는 복음서 이외의 일차 자료들을 통해 복음서의 배경이 되는 로마 통치하의 이스라엘의 배경을 연구한다. 로마의 급변하는 정치의 흐름은 어떻게 이스라엘의 역사에 영향을 미쳤을까? 유대인들은 이러한 역사적 흐름 앞에 어떠한 대응과 반응을 보였을까? 하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제9장 '유대인 예수'는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한 간략한 개관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E. P. 샌더스(E. P. Sanders)의 『예수와 유대교』(Jesus and Judaism)와 그 책을 다듬고 증보한 앨리슨(Dale C. Allison, Jr.)의 Jesus of Nazareth: Millenarian Prophet의 결과를 참조하고 있다. 다소 아쉬운 점은 머피의 이 책이 2002년에 출간된 책이라 이후의 역사적 연구에 대한 자료들은 다른 저서나 논문을 찾아보아야 한다(예를 들어, 2010년에 출간된 앨리슨의 Constructing Jesus : Memory, Imagination and History, 제임스 던 James D.G. Dunn이나 래리 허타도 Larry W. Hurtado의 저서 등)
예수는 제2성전기 말기에 갈릴리와 유대를 오간 실존 인물이며 유대인이었음을 전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저자는 지속적으로 예수가 유대인이었으며 유대 사회의 맥락 가운데서 그를 이해함이 유의미하다고 강조한다. 이 장을 통해 역사적 연구의 흐름을 한번 짚어볼 수 있고 다양한 연구의 쟁점을 간명하게 볼 수 있다.
제10장 '이스라엘의 반란'은 로마가 예루살렘과 성전을 파괴한 기원후 70년 전후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당시의 로마 정치와 사회적 변화는 유대인들에게 긴장과 갈등을 촉발했다. 성전의 파괴 이후 토라의 중요성이라는 유대교의 근본적인 성격은 이 사건을 통해 기록된 토라와 해석이라는 새로운 유대교로의 변화를 가져왔다.
제11장 '그리스도에 대한 신약적 이해의 유대교 근원'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사도행전, 히브리서, 요한계시록을 중심으로 하여 이 책들이 가지는 유대교적 성격과 배경들을 고찰한다. 저자는 결국 예수와 그의 추종자들 모두 유대인이었다는 사실과 우리가 역사적 예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1세기 갈릴리와 유대의 맥락에서 예수와 그 운동을 살펴보아야 함을 재차 강조한다.
이 책은 비교적 두꺼운 책이기에 자신이 필요한 부분을 발췌독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이 책을 더 깊게 음미하기 위해서는 전체를 순서대로 읽는 방법(from cover to cover)이 좋다. 왜냐하면 후반부에 등장하는 단어나 문장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전반부의 한 챕터를 읽어야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가령 제9장의 '유대인 예수'에서 "예수가 생존한 당시의 갈릴리의 지배자는 헤롯 안티파스였고, 유대는 로마가 직접 관할하는 구역이었다(596)"라는 문장이 있다. 짧은 문장이지만 이 문장의 사회문화적, 정치적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3장 '헬레니즘, 유대교, 마카비 가문'과 제8장 '로마의 통치'를 읽어야 한다.
"예수가 활발히 사역한 곳은 갈릴리였으므로, 그가 접촉한 "서기관들"은 갈릴리 촌락의 서기관들 혹은 헤롯의 관료들이었을 것이다(597)"와 같은 문장의 문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6장 '서기관, 바리새인, 사두개인, 산헤드린'의 내용이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제10장 '이스라엘의 반란'은 제8장 '로마의 통치'를 꼼꼼하게 읽어야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과 순서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전체를 통으로 읽는다면 책의 내용이 훨씬 더 입체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더불어 매우 쉬운 문체로 쓰여 있고, 번역도 매끄러우며, 편집도 훌륭하여 방대한 양이지만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제2성전기 전후의 다양한 원자료를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는 원자료를 독자들이 직접 대할 수 있게 하는 저자의 배려다. 우리는 저자의 해석에 의지하지 않고 기존의 텍스트에 그대로 접근함으로 저자와 함께 해석의 과정에 동참할 수 있다.
한 가지 아쉬움은 각 챕터 마지막의 참고문헌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에 인용된 방대한 자료들 중에 우리말로 번역된 책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학계에서 통용되는 여러 자료들이 국내에 아직 소개되지 못한 점은 아쉽다. 하지만 이 책의 원서 출간(2002년) 이후에 다양한 저자들의 더욱 발전된 논의와 연구들이 국내에 번역되어 출간되고 있다. 이 책이 신구약 성경을 더욱 풍성하고 다채롭게, 무엇보다 성경 자체가 의도하는 의미대로 이해하는 계기가 되는 마중물 역할을 하기를 원한다.
무엇이 되었든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은 항상 비교의 작업이다. 우리가 자신과 타자 간의 비교를 멈출 때, 모든 것이 자명해 보이는 폐쇄된 시스템 안에서 움직일 때, 우리와 다른 사고 및 생활방식에 자신을 개방하지 않거나 최소한 그것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하지 않을 때, 우리는 곧바로 무지의 심연으로 떨어질 것이다. 아울러 비교의 대상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 자체를 바꾸기를 꺼릴 때 우리는 건전하고 통찰력 있는 비교작업을 수행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기독교와 유대교 혹은 다른 종교간의 비교가 열매를 맺으려면 비교하는 사항들을 모두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 - P17
제2이사야가 기대한 것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넘어서는 보편적 구원이었는데, 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것을 본 이방 나라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야말로 참된 하나님, 유일하신 하나님,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임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이런 관념은 제2이사야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주제인 유일실론과 맞닿아 있다. 제2이사야의 유일신론은 명쾌하고 강력하다. 그것은 제2성전기와 그 이후의 신학을 지배하는 명제 즉 세상에는 단 한 분 하나님, 창조주이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그분만이 계신다는 사상을 강조한다 - P65
족장들이 만난 하나님은 "엘 샤다이"(El Shaddai)나 "엘 엘룐"(El Elyon)과 같은 다양한 이름으로 알려졌다(예. 창 14:20; 17:1; 35:11). 이것은 그들이 각 족장의 시대마다 부족의 신을 섬기다가 족장들의 시대가 다 흘러간 후에야 그 신들이 한 하나님 야웨의 현현이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뜻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족장들의 이야기는 본래 독립된 전승들이었다가 후대에 유일하신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한 가문의 세대들을 연결하는 내러티브로 합쳐진 것으로 이해된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의 자기 이해 및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오랜 시간에 걸쳐 진보했다 - P72
귀환민들과 더불어 그들에게 합류한 무리가 구별되었다는 것은 공동체의 경계선을 강조했다. 그런 경계선은 누가 유월절을 경축할 자격이 있는지를 따지는 방식의 제의적 순수성으로 표현되었다. 공동체를 적절히 규정하는 것은 생존 여부를 결정하는 일이었다. 자신들의 고유한 경계선을 분명히 갖지 못한 집단은 주변의 더 큰 문화세력 안으로 흡수되어 자기 정체성을 상실하곤 했다. 하나님은 순수한 예배를 요구하셨고 그것을 더럽히는 자를 처벌하셨다 - P134
기원전 175년에 셀레우코스의 왕좌에 오른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가 그리스 문화를 유대에 강제하고 유대인의 종교를 금하는 치명적 실책을 저지른다. 유대인들은 이미 수백 년간 외세의 지배를 견뎌냈지만, 이것만큼은 너무 지나친 일이었다. 토라를 불법화하는 것은 한 민족으로서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짓밟고 그들이 하나님과 맺은 관계를 박탈하는 행위였다. 유대인들은 훗날 마카비로 불리게 되는 한 제사장 가문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킨다. 이후 수십 년간 계속된 전쟁에서 유대인들은 먼저 종교적 자유를 얻은 다음 정치적 독립을 이루고 마침내 국가를 되찾게 된다. 그러나 그 이후에 들이닥친 정복자는 너무나 강했다. 기원전 63년에 로마가 예루살렘을 정복함으로써 유대인의 독립은 종국을 맞게 된다 - P183
쿰란 공동체는 분파 즉 동시대의 종교적 문화를 공유하면서도 종교 권력을 확보한 기득권 세력에 맞서는 집단이었다. 쿰란의 사람들은 사해 변방을 찾아 은둔하면서 주의 재림을 대망했다. 그들은 그 땅의 죄를 씻는 대속의 제물을 드리고 종파의 창시자인 의의 교사와 공동체의 운영자들인 사독 계보 제사장들의 성경 해석에 따라 토라에 온전히 순종함으로써 주의 길을 예비했다. 쿰란의 제사장적 성격은 사독 계보의 제사장들이 주도한 계층구조는 물론 속죄와 정결을 강조한 그들의 신학과 제의 제도에 뚜렷이 드러난다. 쿰란 종파의 묵시적 세계관은 임박한 마지막 전투에 대한 기대, 자신들의 종과 창시자에게 비의적 계시가 주어졌다는 믿음, 그리고 명확히 구별된 선과 악의 투쟁이 지상의 영역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초자연적 세계에 관한 상세한 믿음 등으로 표현된다. 사해사본의 발전과 해석은 일각의 예언처럼 기독교에 타격을 주지 않았다. - P378
사실 복음서가 그리는 예수가 당시 유대인들이 가진 메시아의 "임무 내역"과 너무나 동떨어진 존재였다는 점에서 당대의 유대인들이 그를 메시아로 믿지 않은 것은 그리 놀랍지 않다. 게다가 초기 교회가 점점 비유대화되고 토라의 영향력에서 멀어지면서 유대인들의 회심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졌다.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토라를 거역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 P381
예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 그는 유대인이었다. 그는 혈통으로뿐만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유대인이었으며 자기 민족의 성스러운 전통에 깊이 경도된 사람이었다. 예수가 동시대의 다른 유대인들과 빚었던 갈등은 "예수 대 유대교"의 구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갈등은 제2성전기 유대교 내에서 한 유대인이 동시대인들과 때로 의견이 일치하고 때로 불일치하는 상호작용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런 갈등이 예수를 동시대 유대인들과 구분하는 차이점이라기보다 오히려 그를 유대인답게 하는 양자 간의 유사성이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제2성전기 유대교는 그 신조와 행습에서 매우 다양한 형태를 지녔다 - P575
이사야서가 유대인과 그리스도인 양자에게 거룩한 성경이기에 중요한 논점이 한 가지 더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성경 해석이 올바르다면 유대교의 해석은 오류여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한다. 다시 말해 유대인들이 이사야 7장의 예수에 대한 예언을 못 알아본다면 그것은 그들의 잘못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행동반경을 제한하는 이런 태도는 기독교 신학에 맞지 않는다. 하나님은 같은 본문을 통해 다양한 신앙 공동체에 각기 다른 메시지를 전하실 수 있다. - P7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