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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교 형성사
옥성득 지음 / 새물결플러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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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해석과 설교에서의 가장 기본적인 뼈대는 이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본문이 기록된 당시의 정황(context) 가운데 본문(text)은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으며, 그 메시지를 현재의 정황(context)에서 우리는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가? 


본문이 기록된 당대의 정황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고대 근동과 이스라엘의 역사와 문화, 정치, 문학 등을 연구한다. 우리 삶의 터전을 이해하고 현재의 정황에서 우리 삶에 적실하게 본문의 메시지를 적용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삶의 맥락을 분석한다. 


현재 삶의 정황을 분석할 때에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자신이 속한 나라의 초기 기독교 역사일 것이다. 그 역사를 이해해야 이스라엘의 종교에서 그 나라의 종교로 어떠한 토착화의 과정을 거쳤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공상태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며, 현재에도 우리의 의식과 세계관 한가운데 여전히 우리나라 고유의 정신과 정서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초기 기독교 역사를 이해함에 있어 아주 귀한 책이 출간되었다. 새물결플러스에서 나온 『한국 기독교 형성사』는 부제에서 드러나듯 1876년부터 1910년까지 한국의 종교와 개신교의 만남 가운데 어떠한 다양한 사건들이 발생했는지를 말해준다.


머리말에서 저자가 밝히듯 이 책의 1장에서 3장은 삼위일체의 한국적 이해를 다룬다. 1장은 하나님이라는 용어가 어떻게 정착해갔는지, 2장은 한국인이 이해한 십자가의 이미지를 통해 발전해 나간 메시아상과 천년왕국상을 조사한다. 3장은 한국 개신교에서 샤머니즘과의 관계를 분석하고 그것의 갈등과 협상을 토론한다.


4장에서 7장은 더욱 세부적인 사건들을 다룬다. 4장은 제사 문제, 5장은 한국 교회의 예배당의 특징과 발전 과정, 6장은 한문 문서와 한글 번역, 7장은 평양의 부흥 사건을 해석한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미국과 중국, 그리고 한국의 종교와 문화 가운데에서 발생한 독특한 한국 기독교의 발생과 형성 과정을 서술한다.  


이 책의 특징은 역사적 사건들의 객관적 서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다채로운 정황과 입체적인 해석을 곁들이고 있다는 데 있다. 즉 한 사건의 원인과 그 과정, 그에 따른 영향력 등을 상세하게 기술하며, 그 사건을 신학적이고 교회론적이며 정치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또 다른 특징은 풍부한 원자료들을 배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존에 접하지 못했던 초기 한국 기독교의 풍부한 자료들을 직접 대할 수 있다. 이는 독자들이 함께 공동 해석 작업에 동참하여 당대의 분위기와 맥락 등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초기 한국 기독교에 대한 오해와 무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책은 특히 초기 한국 기독교의 형성 과정에서 선교사들의 세계관과 신학의 형성과 변화의 과정을 알 수 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그릇된 정보들로 인해 그동안 잘못 이해하고 있었거나 대충 알았던 사실들에 대해 정확하게 교정할 수 있다.


우리는 풍성한 자료와 상세한 설명, 다양한 해석 등을 통해 초기 한국 기독교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더불어 이야기 곳곳에서 느껴지는 감동은 덤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얼마나 큰 수고와 노력을 했는지를 알 수 있고, 앞으로 많은 목회자와 신학생, 성도들이 그 배려 가운데 큰 도움을 받을 것 같다. 

한국에는 종교가 없다"는 말은 한국인에게 종교라는 인식이나 개념 자체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오래된 종교들이 쇠퇴해서 사람들을 사로잡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선교사들의 눈에는 종교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는 뜻이다. 그러나 선교사들은 이 점을 의도적으로 강조했는데 이는 한국은 무종교 상황이므로 기독교 선교가 정당하다는 주장을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 P60

이 논쟁은 한문 용어 대 한글 용어의 대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서울의 교회연합 정신을 가진 보다 포용적인 집단과 평양에 중심을 둔 개신교의 정체성을 강조하려는 ‘극단적 개신교‘ 집단 간의 갈등이었다 - P136

스코트 부인은 한국 개신교의 놀라운 성장의 원인을 한국인의 내면에 자리 잡은 유일신론으로 보았다. 한국인이 그런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갖고 있다면 결코 일본의 물질주의나 다신교인 신도(神道)에 만족할 수 없었다. 한국인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한국의 역사와 언어와 영성에 밀착되기를 원했다. 기독교의 하나님 신앙은 일본의 군국주의와 물질주의에 맞선 한국의 민족주의와 영성주의에 연결되었다 - P177

1903-08년 부흥운동이 개신교회를 휩쓸 때, 교회의 십자가와 십자기는 다양한 의미- 구속의 장소, 난민의 피난처,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요새, 선교사의 치외법권으로 보호 받는 정치적인 힘, 메시아 도래를 예견한 전통 예언의 성취, 서구 과학과 기술, 한국의 민족주의-를 지녔으며, 이들은 상호 보완적으로 공존했다 - P274

서양 의학이 콜레라균을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은 한국인 회심자들의 마음에 안정을 주었는데, 이는 더 이상 신령에게 벌을 받거나 질병 앞에 무기력하다고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신령에 대한 두려움은 사탄 마귀에 대한 두려움으로 대체되었고, 세균은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이길 수 있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 P295

북미 선교사는 한국인과 한국 사회에 영향을 미쳤지만 동시에 한국의 종교문화적 환경, 특히 샤머니즘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선교사들이 일종의 세계관적 회심을 경험했다고 하겠다. 귀신들림 현상에 관한 선교사들의 증언은 종교 개념과 사고방식 사이의 상호작용을 집약적으로 보여주었다 - P334

유교의 제사가 족벌•계급•성을 차별하는 기제로 작동했다면, 기독교의 예배는 한 하나님 앞에서 평등함을 드러내는 계급 철폐의 상징이었다. - P382

한국교회는 유교의 오륜과 수신의 법도를 기독교 윤리로 수용하고 실천했다. 교회 지도자들은 죽은 조상의 영혼 대신 살아 있는 부모에게 효도할 것을 강조했다. 죽은 조상에게 드리는 죽은 제사 대신 살아 계신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산 제사‘로 불렀다. 한국교회는 부모 생전에 효도할 것을 강조함으로써 유교도들의 박해와 반대를 다소 경감시키고 한국인의 도덕성에 호소할 수 있었다. 그들은 제사를 십계명의 제1, 제2계명 측면에서만 검토한 것이 아니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5계명의 측면에서 바라보았다. 그것은 성경에 근거한 효도의 의무였다 - P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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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유대교와 예수 운동 - 제2성전기 유대교와 역사적 예수의 상관관계
프레더릭 J. 머피 지음, 유선명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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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시대의 예수와 이후에 발전된 기독교를 이해함에 있어 초기 유대교는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 할 맥락과 정황이다. 그동안 우리는 유대교를 기독교적 편견 가운데 보아왔는지도 모른다. 예수가 유대인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복음서를 대했을 수도 있다. 저자인 프레더릭 J. 머피(Frederick J. Murphy, 1949-2011)는 객관적 방식으로 제2성전기 유대교에 접근하려고 노력한다. 그러한 그의 세밀한 노력은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예수가 매 순간 언약 가운데 토라에 순종하는 유대인으로 자신을 이해했음을 강조한다. 그는 유대교를 그 자체의 가치와 기준으로 보아야 함을 역설한다. 제2성전기를 세세하게 이해할 수 있는 문헌과 자료가 많지는 않지만 제한된 자료를 최대한 활용하여 당시의 역사적 정황을 면밀하게 소개하여 주고 있다. 더불어 제2성전기뿐만 아니라 유대교를 형성한 이스라엘 역사를 모두 다루고 있다.


제1장 '제2성전기 이전의 이스라엘'과 제2장 '회복'은 구약 정경을 일차 자료로 활용하고 있기에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매우 익숙한 내용이다. 구약 전체를 하나의 이야기로 한번 정리해볼 수 있다. 구약을 역사학자의 시각으로 훑어볼 수 있다는 유익이 있다. 더불어 고대 유대 사회의 개념과 특징들이 곳곳에 소개되고 있어 소소한 재미가 있다.


제3장 '헬레니즘, 유대교, 마카비 가문'과 제4장 '묵시 사상'은 「마카베오 1」, 「마카베오 2」, 「집회서」,  다니엘,「에녹 1서」등이 일차 자료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외경의 내용을 당시의 정황과 역사적 흐름에 따라 함께 살펴볼 수 있는 귀한 기회다. 성경은 하나의 큰 이야기(meta-narrative)다. 제2성전기의 역사는 성경을 전체로 이해할 때 필수적인 요소다. 우리는 제3장과 4장을 통해 구약과 신약의 중간기라고 말하는 제2성전기의 역사를 대하게 된다. 그리하여 예수 운동과 기독교의 형성의 기초적 문맥을 이해하게 된다.


제5장 '쿰란과 사해사본'을 내용만으로도 이 책은 매우 훌륭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처음 사해사본(Dead Sea Scrolls)이 발견되었을 때, 미디어와 개인 저술가들은 미공개된 문서에 충격적 내용이 있으며 이것은 기독교의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보도하곤 했다. 하지만 건실한 학자들은 이런 추측들을 일축하고, 사해사본을 통해 제2성전기에 대한 더욱 풍성한 일차 자료들이 있음을 밝혀냈다. 


다수의 사본이 극소수의 학자들에게만 공개되었고, 두루마리의 손상으로 인해 출판이 늦어졌으며, 초기 사본들을 배당받은 학자들이 자신의 제자들에게만 그 작업을 인계함으로 인해 이 사본의 접근은 사실상 매우 어려웠다. 이후에 대중에게 사해사본이 공개되면서 더욱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졌고 이를 통해 제2성전기 중간기부터 말기에 대한 이해와 초기 유대교와 기독교 연구를 위한 값진 자료가 되었다. 머피는 이 장을 통해 쿰란 공동체와 이 곳에서 발견된 두루마리 자료들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일차 자료들을 최대한 그대로 사용하면서 쿰란 공동체의 특징을 정리하고 분석한다.  


제6장 '서기관, 바리새인, 사두개인, 산헤드린'은 복음서와 요세푸스의 저작 등을 통해 제2성전기 말에 이스라엘의 유력한 세 집단을 비교하여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예수운동과 초기 기독교, 복음서를 더욱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제7장 '로마인의 등장'과 제8장 '로마의 통치'는 복음서 이외의 일차 자료들을 통해 복음서의 배경이 되는 로마 통치하의 이스라엘의 배경을 연구한다. 로마의 급변하는 정치의 흐름은 어떻게 이스라엘의 역사에 영향을 미쳤을까? 유대인들은 이러한 역사적 흐름 앞에 어떠한 대응과 반응을 보였을까? 하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제9장 '유대인 예수'는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한 간략한 개관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E. P. 샌더스(E. P. Sanders)의 『예수와 유대교』(Jesus and Judaism)와 그 책을 다듬고 증보한 앨리슨(Dale C. Allison, Jr.)의 Jesus of Nazareth: Millenarian Prophet의 결과를 참조하고 있다. 다소 아쉬운 점은 머피의 이 책이 2002년에 출간된 책이라 이후의 역사적 연구에 대한 자료들은 다른 저서나 논문을 찾아보아야 한다(예를 들어, 2010년에 출간된 앨리슨의 Constructing Jesus : Memory, Imagination and History, 제임스 던 James D.G. Dunn이나 래리 허타도 Larry W. Hurtado의 저서 등)


예수는 제2성전기 말기에 갈릴리와 유대를 오간 실존 인물이며 유대인이었음을 전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저자는 지속적으로 예수가 유대인이었으며 유대 사회의 맥락 가운데서 그를 이해함이 유의미하다고 강조한다. 이 장을 통해 역사적 연구의 흐름을 한번 짚어볼 수 있고 다양한 연구의 쟁점을 간명하게 볼 수 있다.


제10장 '이스라엘의 반란'은 로마가 예루살렘과 성전을 파괴한 기원후 70년 전후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당시의 로마 정치와 사회적 변화는 유대인들에게 긴장과 갈등을 촉발했다. 성전의 파괴 이후 토라의 중요성이라는 유대교의 근본적인 성격은 이 사건을 통해 기록된 토라와 해석이라는 새로운 유대교로의 변화를 가져왔다. 


제11장 '그리스도에 대한 신약적 이해의 유대교 근원'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사도행전, 히브리서, 요한계시록을 중심으로 하여 이 책들이 가지는 유대교적 성격과 배경들을 고찰한다. 저자는 결국 예수와 그의 추종자들 모두 유대인이었다는 사실과 우리가 역사적 예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1세기 갈릴리와 유대의 맥락에서 예수와 그 운동을 살펴보아야 함을 재차 강조한다.


이 책은 비교적 두꺼운 책이기에 자신이 필요한 부분을 발췌독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이 책을 더 깊게 음미하기 위해서는 전체를 순서대로 읽는 방법(from cover to cover)이 좋다. 왜냐하면 후반부에 등장하는 단어나 문장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전반부의 한 챕터를 읽어야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가령 제9장의 '유대인 예수'에서 "예수가 생존한 당시의 갈릴리의 지배자는 헤롯 안티파스였고, 유대는 로마가 직접 관할하는 구역이었다(596)"라는 문장이 있다. 짧은 문장이지만 이 문장의 사회문화적, 정치적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3장 '헬레니즘, 유대교, 마카비 가문'과 제8장 '로마의 통치'를 읽어야 한다. 


"예수가 활발히 사역한 곳은 갈릴리였으므로, 그가 접촉한 "서기관들"은 갈릴리 촌락의 서기관들 혹은 헤롯의 관료들이었을 것이다(597)"와 같은 문장의 문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6장 '서기관, 바리새인, 사두개인, 산헤드린'의 내용이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제10장 '이스라엘의 반란'은 제8장 '로마의 통치'를 꼼꼼하게 읽어야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과 순서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전체를 통으로 읽는다면 책의 내용이 훨씬 더 입체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더불어 매우 쉬운 문체로 쓰여 있고, 번역도 매끄러우며, 편집도 훌륭하여 방대한 양이지만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제2성전기 전후의 다양한 원자료를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는 원자료를 독자들이 직접 대할 수 있게 하는 저자의 배려다. 우리는 저자의 해석에 의지하지 않고 기존의 텍스트에 그대로 접근함으로 저자와 함께 해석의 과정에 동참할 수 있다. 


한 가지 아쉬움은 각 챕터 마지막의 참고문헌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에 인용된 방대한 자료들 중에 우리말로 번역된 책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학계에서 통용되는 여러 자료들이 국내에 아직 소개되지 못한 점은 아쉽다. 하지만 이 책의 원서 출간(2002년) 이후에 다양한 저자들의 더욱 발전된 논의와 연구들이 국내에 번역되어 출간되고 있다. 이 책이 신구약 성경을 더욱 풍성하고 다채롭게, 무엇보다 성경 자체가 의도하는 의미대로 이해하는 계기가 되는 마중물 역할을 하기를 원한다.


무엇이 되었든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은 항상 비교의 작업이다. 우리가 자신과 타자 간의 비교를 멈출 때, 모든 것이 자명해 보이는 폐쇄된 시스템 안에서 움직일 때, 우리와 다른 사고 및 생활방식에 자신을 개방하지 않거나 최소한 그것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하지 않을 때, 우리는 곧바로 무지의 심연으로 떨어질 것이다. 아울러 비교의 대상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 자체를 바꾸기를 꺼릴 때 우리는 건전하고 통찰력 있는 비교작업을 수행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기독교와 유대교 혹은 다른 종교간의 비교가 열매를 맺으려면 비교하는 사항들을 모두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 - P17

제2이사야가 기대한 것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넘어서는 보편적 구원이었는데, 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것을 본 이방 나라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야말로 참된 하나님, 유일하신 하나님,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임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이런 관념은 제2이사야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주제인 유일실론과 맞닿아 있다. 제2이사야의 유일신론은 명쾌하고 강력하다. 그것은 제2성전기와 그 이후의 신학을 지배하는 명제 즉 세상에는 단 한 분 하나님, 창조주이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그분만이 계신다는 사상을 강조한다 - P65

족장들이 만난 하나님은 "엘 샤다이"(El Shaddai)나 "엘 엘룐"(El Elyon)과 같은 다양한 이름으로 알려졌다(예. 창 14:20; 17:1; 35:11). 이것은 그들이 각 족장의 시대마다 부족의 신을 섬기다가 족장들의 시대가 다 흘러간 후에야 그 신들이 한 하나님 야웨의 현현이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뜻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족장들의 이야기는 본래 독립된 전승들이었다가 후대에 유일하신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한 가문의 세대들을 연결하는 내러티브로 합쳐진 것으로 이해된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의 자기 이해 및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오랜 시간에 걸쳐 진보했다 - P72

귀환민들과 더불어 그들에게 합류한 무리가 구별되었다는 것은 공동체의 경계선을 강조했다. 그런 경계선은 누가 유월절을 경축할 자격이 있는지를 따지는 방식의 제의적 순수성으로 표현되었다. 공동체를 적절히 규정하는 것은 생존 여부를 결정하는 일이었다. 자신들의 고유한 경계선을 분명히 갖지 못한 집단은 주변의 더 큰 문화세력 안으로 흡수되어 자기 정체성을 상실하곤 했다. 하나님은 순수한 예배를 요구하셨고 그것을 더럽히는 자를 처벌하셨다 - P134

기원전 175년에 셀레우코스의 왕좌에 오른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가 그리스 문화를 유대에 강제하고 유대인의 종교를 금하는 치명적 실책을 저지른다. 유대인들은 이미 수백 년간 외세의 지배를 견뎌냈지만, 이것만큼은 너무 지나친 일이었다. 토라를 불법화하는 것은 한 민족으로서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짓밟고 그들이 하나님과 맺은 관계를 박탈하는 행위였다. 유대인들은 훗날 마카비로 불리게 되는 한 제사장 가문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킨다. 이후 수십 년간 계속된 전쟁에서 유대인들은 먼저 종교적 자유를 얻은 다음 정치적 독립을 이루고 마침내 국가를 되찾게 된다. 그러나 그 이후에 들이닥친 정복자는 너무나 강했다. 기원전 63년에 로마가 예루살렘을 정복함으로써 유대인의 독립은 종국을 맞게 된다 - P183

쿰란 공동체는 분파 즉 동시대의 종교적 문화를 공유하면서도 종교 권력을 확보한 기득권 세력에 맞서는 집단이었다. 쿰란의 사람들은 사해 변방을 찾아 은둔하면서 주의 재림을 대망했다. 그들은 그 땅의 죄를 씻는 대속의 제물을 드리고 종파의 창시자인 의의 교사와 공동체의 운영자들인 사독 계보 제사장들의 성경 해석에 따라 토라에 온전히 순종함으로써 주의 길을 예비했다. 쿰란의 제사장적 성격은 사독 계보의 제사장들이 주도한 계층구조는 물론 속죄와 정결을 강조한 그들의 신학과 제의 제도에 뚜렷이 드러난다. 쿰란 종파의 묵시적 세계관은 임박한 마지막 전투에 대한 기대, 자신들의 종과 창시자에게 비의적 계시가 주어졌다는 믿음, 그리고 명확히 구별된 선과 악의 투쟁이 지상의 영역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초자연적 세계에 관한 상세한 믿음 등으로 표현된다. 사해사본의 발전과 해석은 일각의 예언처럼 기독교에 타격을 주지 않았다. - P378

사실 복음서가 그리는 예수가 당시 유대인들이 가진 메시아의 "임무 내역"과 너무나 동떨어진 존재였다는 점에서 당대의 유대인들이 그를 메시아로 믿지 않은 것은 그리 놀랍지 않다. 게다가 초기 교회가 점점 비유대화되고 토라의 영향력에서 멀어지면서 유대인들의 회심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졌다.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토라를 거역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 P381

예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 그는 유대인이었다. 그는 혈통으로뿐만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유대인이었으며 자기 민족의 성스러운 전통에 깊이 경도된 사람이었다. 예수가 동시대의 다른 유대인들과 빚었던 갈등은 "예수 대 유대교"의 구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갈등은 제2성전기 유대교 내에서 한 유대인이 동시대인들과 때로 의견이 일치하고 때로 불일치하는 상호작용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런 갈등이 예수를 동시대 유대인들과 구분하는 차이점이라기보다 오히려 그를 유대인답게 하는 양자 간의 유사성이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제2성전기 유대교는 그 신조와 행습에서 매우 다양한 형태를 지녔다 - P575

이사야서가 유대인과 그리스도인 양자에게 거룩한 성경이기에 중요한 논점이 한 가지 더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성경 해석이 올바르다면 유대교의 해석은 오류여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한다. 다시 말해 유대인들이 이사야 7장의 예수에 대한 예언을 못 알아본다면 그것은 그들의 잘못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행동반경을 제한하는 이런 태도는 기독교 신학에 맞지 않는다. 하나님은 같은 본문을 통해 다양한 신앙 공동체에 각기 다른 메시지를 전하실 수 있다. - P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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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의 헌법
한인섭 지음 / 푸른역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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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을 하면서 크게 법의 영향력 안에 있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기에

그동안 법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최근 실제적인 법의 효력을 접하게 되고 공부하게 되면서

법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게 되었다. 


무엇보다 급변하는 대한민국의 상황에서

제대로 헌법의 가치를 알지 못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은 2019년,  즉 헌법이 100살을 맞이하게되면서

대한민국 헌법의 탄생과 그 발전의 점진적 과정을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특히 1919년의 3·1운동이 얼마나 혁명적이며 변혁적이었던 운동이었는지,

그 운동으로 인한 영향력이 향후 헌법 조항에 어떻게 녹아들어갔는지를 강조하고 있다. 


대한민국 이전에 한반도에 있던 나라는 임금이 주인인 왕국, 제국이었습니다. 1919년에 처음으로, 임금이 아닌 국민이 한반도 땅의 주인, 주권자로 선포되었습니다. 한 나라의 역사에서 국민이 주인 되는 나라의 탄생만큼 큰 사건은 달리 없습니다(6).


이 책에서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수확이 바로 3·1운동의 의미와 영향력,

헌법에서 가지는  3·1운동의 가치다. 


이 운동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 저자는 이렇게 밝히고 있다. 

1919년 3월부터 5월까지의 독립운동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남녀노소와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만세운동의 방법으로 전개되었습니다. 만세운동은 목숨을 거는 일이었습니다. 총칼을 들이대는 일제의 위협이 지속되었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우리 국민은 유혈 희생을 무릅쓰고 비폭력시위로 민족의 의사를 장쾌하게 표현함으로써 새 나라의 주인 자격을 당당히 얻게 됩니다. 상하이에 모인 애국지사들은 그 모든 사람들을 주인으로 세우는 바로 그런 나라를 만들겠다고 결의했습니다. 그래서 수립된 것이 대한민국이고, 그래서 민주공화국인 것입니다(7).


국민들이 주인 되어지는 사건이 아주 자연스럽게 전개되었고, 

이후에 그 누구도 국민이 주인이라는 것에 반대할 수가 없었던 핵심적 사건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오랜시간 헌법이 변화과정 가운데서도 

3·1운동의 정신과 임시정부의 법통이 계승된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은 모두가 공유했던 것이다. 


제헌 국회의원들은 이 1919년의 3·1사건을 헌법 전문에 포함시키는 데는 이의가 없었습니다. 이 사건이 다른 독립운동 사건에 비견될 수 없는 무게를 갖고 있다는 점에 생각이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 이후 우리는 민주공화국의 국민임을 자각했고, 그러한 국민적 자각이 대한민국을 (전제왕조국가가 아니라) 민주공화국으로 건립하는 토대가 되었음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입니다(57).


따라서 우리는 우리 선조들이 이루어낸 피와 땀과 눈물의 역사를 함께 읽어내고, 지켜가야 할 의무가 있다. 

"임시정부의 법통"이라는 구절에는 그러한 법통이 끊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던 애국선열들의 피눈물, 그러한 지혜를 간직한 지식인과 후손들의 한평생 삶이 녹아 있습니다. 말 그대로 마지막 광복군과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이루어낸 쾌거이지요. 이 구절은 단순한 미사여구가 아닙니다. 헌법 전문에 명기하기까지의 피와 눈물과 지성의 역사, 시대의 맥박을 함께 읽어내야 합니다(95).


저자는 헌법의 정신과 변천사를 이야기하면서,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으니, 정신을 차리고 주인답게 분투함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The Republic of Korea shall be a democratic republic"입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가 아니라 "되어야 한다"입니다. 그럼 누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니 주인인 국민이 해야지요. 주권재민이라지만, 저절로 재민이 아닙니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어야 한다'shall reside in the people"입니다. 주인 행세도 제대로 못 하고 비리비리해서는 안 됩니다. 주인 노릇 제대로 하기 위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는 겁니다. 주인인데 주인 노릇 못하는 자는 백성이고, 신민이고, 노예입니다(190-91).


이 책을 통해 대한민국 헌법의 탄생 과정과 변천사를 돌아보며, 

그 안에 담겨 있는 정신과 가치들을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헌법의 조문들은 그저 대충 만들어진 단어가 아니라,

한 단어와 문구 안에 피와 땀의 역사가 담겨있다.


이 책은 법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더라도 쉽게 법을 이해하고,

특히 헌법 가운데 녹아있는 정신과 가치를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한번은 읽어봐야할 책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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