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진출 막힐라’…중앙, 연일 MBC 때리기
‘불신임안’ 등 김형오 의장에 노골적 배신감 토로
지난 보름간 문화방송 보도 비판만 29건 쏟아내
 
 
한겨레 이문영 기자
 








 

» 전북언론노조협의회와 시민단체 회원들이 5일 오후 전북 전주 경원동 한나라당 전북도당 당사 앞에서 현 정권의 언론장악 음모를 규탄하고 ‘엠비 악법’ 철회를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전주/뉴시스
 
중앙은 <조선>과 <동아>보다 훨씬 강경한 언어로 직권상정에 부정적인 김형오 국회의장을 몰아붙이고 있다. 중앙은 3일치 신문에서 ‘피 한 방울 안 묻히려는 김형오 의장…우리가 잘못 뽑은 듯’ ‘한나라 김 의장 불신임안 거론’ ‘직권 상정이니 뭐니 말만…이회창도 김형오 의장 비판’ 등의 기사로 김 의장을 정면 겨냥했다. 5일치 사설(‘민주당 국회 본회의장 농성 풀어야’)도 “(모든 질서회복 조치를 취할 것이란) 자신의 약속을 지키려면 말 그대로 모든 조치를 강구했어야 했으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정말 기가 막힌다”며 김 의장에게 배신감을 토로했다.

문화방송 보도와 노조 파업을 비판하는 것도 도가 지나치다. 지난달 19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정명’ 발언 이후 시작된 조·중·동의 문화방송 집중 비판에서도 중앙은 선두를 달린다. 지난달 20일부터 5일치 신문까지 문화방송을 비판한 조선·동아 기사는 각각 16건과 20건인데 비해, 중앙일보 기사는 29건에 이른다. 문화방송이 ‘뉴스데스크’와 ‘뉴스 후’ 등을 통해 중앙을 향해 포문을 연 지난달 31일 이후론 매일 3~5꼭지씩의 비판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김승수 전북대 교수는 “중앙일보의 국회의장 비판은 오랫동안 욕심을 부려온 지상파 방송 진출과 관련돼 있는 것 같다. 방송 진출이 가능하려면 김 의장을 압박해서라도 방송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중앙일보는 재벌과 거대신문의 지상파방송 진출을 가능케 한 한나라당 방송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가장 의욕적으로 방송사업에 뛰어들 신문사로 예상돼 왔다. 과거 <동양방송>(TBC)을 되찾겠다는 의지가 강한 삼성과 분산 출자해 지상파에 진입하거나, 보도·종합편성 채널을 만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중앙의 지상파방송 진출 의지는 홍석현 회장의 올 신년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홍 회장은 “2009년은 우리 제이앰넷(JMnet·중앙미디어네트워크)의 앞날에 분수령이 될 의미있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신문·방송·인터넷 등 미디어 영역간의 장벽과 국가 간의 장벽이 사라지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며 ‘멀티미디어와 글로벌 마인드’를 주문했다.

이미 중앙일보는 케이블을 중심으로 방송사업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자회사인 ‘중앙방송’을 설립해 ‘큐(Q) 채널’ ‘제이(J)골프’ ‘카툰네트워크 채널’ 등을 운영해왔고, 2006년 7월 미국 거대 미디어그룹 타임 워너와 합작법인 ‘카툰네트워크 코리아’를 만들었다. 2007년 2월엔 자회사 일간스포츠가 드라마 전문제작사 ‘에이스토리’의 지분 16.6%를 인수해 1대 주주로 등극했다. 남은 것은 지상파방송이나 보도·종합편성 채널로의 사업 확장이다.

강상현 연세대 교수는 “중앙은 자신의 이해관계 뿐 아니라 어떤 재벌보다 지상파 진출에 큰 열망을 가진 삼성의 이해관계까지 대변하다 보니 유독 눈에 띄는 보도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중앙일보가 엠비시 보도를 ‘자사이기주의’라고 비판하는 것은 자신에게 고스란히 되돌아오는 부메랑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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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영화를 보면 보통 재떨이를 던지지 않습니까 ?그게 보통 뽀대가 나고 상대가 얻어맞으면 충격이 크도록 하려고 연출하는 거 아닐까요 ?그런데 그 매형이란 사람, 딸이  자살했잖아요 . 예, 그랬다고 들었습니다.근데 왜 자살했대요 ? 글쎄요 . 환경이나 생태를 걱정해서 죽은 건 아닐까요 ?생태나 환경,  그런 것 같고도 자살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 그러면 혜준씨는 뭐 들은 얘기 있습니까 ? 뭐, 돈이 없어서 뭘 못할 게 있다고 죽겠어요 ? 제가 아는 사람들은 전부 십억이나 이십 억만 있으면  생의 모든 부분을 완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 돈만 있으면 정말  그 모든 게 가능해진다고 생각하십니까 ? 돈이 많다고  불로불사는 할 수 없겠지요 .  ‘강철의 연금술사’ 라는 일본 만화가 있는데요,  거기서 줄곧 화두를 제시하는데 그게 불로불사입니다 .거기선 돈보다도 불로불사를 원하기에 호문쿨루스라는 괴물이 등장합니다 .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 아, 지루하군요 . 영원히 죽지 않는다니...저는 언젠가는 죽는 다는 게 위안인데...어쨌든 돈이 있는  사람들은 오래 살고 싶고 돈으로 많은 걸 해결할 수 있죠.  여배우들을  보면 보통 평범한 여자들보다 한 십년이나 이십 년은 젊어 보이잖아요 . 그래도 삼십년이나 사십년 씩  젊어 보이진  않잖아요 . 삼사십년 씩 젊어 보이면  기이할 것 같은데요 .

정말 그러네요 . 기이한 젊음이라 ......혜준씨도   언젠간 파파 할머니가 되겠네요 . 그래요 . 강풀의 ‘그대를 사랑합니다 ’ 에 나오는 순이 할머니처럼요 ...아, 그런 건 싫은데......싫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삶이란 게 원래 그런 거잖아요 . 노쇠나 질병이나 죽음을 피해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렇게 살다 빨리 죽어서 뱀으로나 태어났으면 좋겠어요 . 왜요 ? 저는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은데요 .  생명으로 태어나지 않으려면 아주 높은 도를 닦아야 한대요 . 그럴 자신이 없으니 그냥  뱀으로 태어나 어두운 데로 꿈틀거리고 다니다가 생각도 없이 죽었으면 좋겠어요 . 뱀이 생각도 없이 살다가 생각도 없이 죽는다는 건 사람 편할 대로 생각하는 겁니다. 생각 없이 죽는 게 뭐가 좋은데요 ?공포나 고뇌가 없잖아요 . 그럼 좋은 방법이 있어요 . 미국산 쇠고기를 날마다 먹는 겁니다 .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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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박근령-박지만, 육영재단 분쟁 2라운드

2009 01/06   위클리경향 807호

수조 원 개발이익 노린 재산싸움 점입가경
공익법인 취지 무색… 수십 억대 적자 운영




육영재단을 둘러싼 박정희 자녀들의 재산 싸움이 점입가경이다. 경영 부실화 명분으로 박근혜 전 이사장을 몰아냈던 박근령·박지만 남매가 2라운드를 펼치는 중. 박지만 측근 인사들의 맹공에 박근령 전 이사장이 수성하는 모양새다. <권호욱 기자>

2007년 12월 초 어느 날 밤, 서울 광진구 능동 육영재단 어린이회관 주변에 검은 양복 차림의 괴청년이 여기저기 포진했다. 법령에 어긋난 운영을 시정하라는 교육청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는 사유로 이사장 승인이 취소되자 이에 불복해 소송을 냈던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 하지만 항소심에서도 패소하자 박 전 이사장과 측근은 대법원 확정 판결이 있을 때까지 이사장직이 유효하다면서 이사장실에 머물며 재단 운영에 개입, 사무국 직원들과 운영권을 두고 마찰을 빚어왔으며 이 과정에서 각종 신고와 고발이 난무했다. 이날도 양측은 사설경호원들을 동원해 용접기로 출입문을 막느니, 소화전으로 이를 끄느니 하며 이사장실 확보 싸움을 전개했다.

양측의 대치가 거듭되고 관할 광진경찰서가 양측의 충돌을 막기 위해 수십 차례 출동한 끝에 그달 11일, 결국 박근령 전 이사장은 어린이회관 이사장실을 떠나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지난해 5월 박근령 육영재단 이사장에 대한 이사장 승인 취소 처분은 정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육영재단 사태는 진정되는 모양새를 띠었다.

‘3억5천만원’ 차용증으로 박지만 역공
그러나 박 전 이사장은 지난해 11월 1일부터 재단 사무실에 다시 출근하고 있다. 이사장이 아닌 사무국장 직함으로 업무를 보고 있는 상태. 이유는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의 측근 인사들이 속속 육영재단 경영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으로, 재단 운영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육영재단을 둘러싼 박정희 전 대통령 자녀들의 분쟁이 ‘2라운드’에 돌입한 것이다.

서울동부지법은 11월 13일 육영재단 임시이사 9명을 선임했다. 이번 9명의 임시이사를 보면 전원이 박지만씨가 추천한 인물로, 누나인 박 전 이사장이 추천한 9명과 재단 사무국에서 추천한 9명 중 한 명도 선임되지 못했다. 임시이사장은 DJ정부 시절 교육부 차관을 지내고 이후 한경대 총장을 역임한 이원우 안양대 석좌교수가 맡았다.

하지만 12월 23일 어린이회관 3층에서 열린 첫 임시이사회에서 박 회장 측 인사를 사무국장에 앉히려고 하자 노조 측이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최재영 육영재단 노조위원장은 “1년을 끌던 분쟁이 겨우 수습 국면에 왔는데 또다시 분쟁의 한 당사자가 사무국장으로 부임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박근령 전 이사장과 재단 측도 반발하고 있다. 1990년대 육영재단을 둘러싼 ‘박근혜-박근령의 난’ 이후 또다시 ‘박근령-박지만’의 대립이 부각되면서 경영 정상화는 물 건너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한때 소송을 벌였던 재단 사무국 직원들은 지금은 박 전 이사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분위기. 어차피 박정희 전 대통령 일가 중 하나가 재단을 맡을 것이라면 박근령 전 이사장이 적임자라는 판단에서다.

박지만씨가 법원에 임시이사진을 추천할 수 있는 자격은 재단 채권인이기 때문. 1990년대 초반 이사직을 수행한 것 외에 그동안 육영재단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던 박지만씨가 재단 측에 빌려준 3억4200만 원에 대한 차용증을 앞세워 임시이사회를 추천해 만들고 재단을 통째로 먹으려 한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차용증에 따르면 2008년 2월 29일 4200만 원과 4월 24일 3억 원을 어린이회관 관장 이름으로 빌린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차용증 어디에도 빌려준 사람은 기명돼 있지 않다. 당시 재단을 장악했던 사무국장과 관장이 개인적으로 써준 차용증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육영재단을 둘러싼 세 남매의 분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69년 4월 고 육영수 여사가 어린이복지사업을 벌일 목적으로 세운 이후 1982년 큰딸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이사장을 맡았지만 방만한 경영 등을 이유로 측근 인사의 사퇴를 요구하는 재단 안팎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쫓기듯 물러났다. 당시 문제의 측근으로 지목된 최모씨는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에서 박 전 대표의 ‘아킬레스건’으로 재등장하기도 했다.

세 남매 간의 물고 물리는 재산 싸움
문제는 재단을 둘러싼 분쟁의 핵심에 ‘재산’이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회관의 면적은 약 13만2000㎡(4만 평). 인근에 있는 건국대 야구장을 주상복합으로 개발하면서 남긴 5000억 원보다 큰 개발 차익이 나올 것이라는 게 주변 부동산업계의 판단이다. 3.3㎡당 최저 2500만 원을 잡아도 1조 원의 수익이 남는다는 게 노조 측 설명. 하지만 이는 상당히 보수적인 계산이고 3.3㎡당 8000만 원으로 계산해 3조 원이 넘는다는 게 부동산업자들의 분석이다.


2008년 12월 육영재단 이사장 자리를 놓고 박근령 전 이사장과 사무국 직원들이 충돌하고 있는 와중에 고 육영수 여사의 영정이 바닥에 뒹굴고 있다. <조득진 기자>

재단 측 한 인사는 “임시이사회가 꾸려진 이후 벌써 서편 운동장 1만3200㎡에 대해 실측이 들어갔다”면서 “이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의결기관이 필요한데 이번에 꾸린 임시이사회가 바로 그것”이라고 주장했다. 세종대와 건국대 사이, 게다가 지하철역까지 끼고 있는 이곳은 길 건너편 낙후한 로데오거리를 대체할 수 있어 크게 주목받고 있다.

현재 누나 박근령씨와 동생 박지만씨 양측이 서로 제기한 소송만 폭행, 출입금지가처분신청, 통장 가압류 등 20여 건에 달한다. 근령씨 측은 최근 임시이사등기금지가처분 신청, 이사장승인취소처분에 대한취소청구, 위헌제청신청서 등을 법원에 낸 상태다. 이에 대해 동생 지만씨 측은 “말려들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EG 측 한 관계자는 “법적으로 결정난 일을 가족 간 분쟁으로 비쳐지게 하려는 목적”이라며 “육영재단 정관은 사무국장을 이사장이 선임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박 전 이사장의 사무국장직은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설립 취지 맞는 경영 정상화 필요
육영재단에 대한, 구체적으로 누나 근령씨에 대한 동생 지만씨의 공격은 여러 수로 읽힌다. 그중 근령씨가 최근 신동욱 백석문화대 교수와 결혼하는 과정에서 틀어졌다는 분석이다. 측근에 따르면 큰 누나인 박근혜 전 대표가 정치권에서 승승장구할 때 둘째 박근령과 막내 박지만 사이는 돈독했다고 한다. 무대에 오르지 못하고 막 뒤에 있는 두 사람으로서는 동병상련의 정이 있었던 것. 하지만 이번 결혼건을 두고 반대한 누나에 대해 반감이 커졌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결국 근혜씨와 지만씨는 근령씨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표의 입장에서는 10여 년 전만 해도 박지만 회장이 자신의 이미지에 해를 끼쳤다면 최근엔 박근령 전 이사장이 발목을 잡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육영재단 직원은 성동교육청이 지만씨가 추천한 인사들에게 편파적 자세를 보여 이번 법원의 임시이사 선임에 영향을 미쳤다고 의심하고 있다. 육영재단 관계자와 노조 측은 “공무원은 공정한 업무를 수행할 의무가 있는데 성동교육청은 그렇지 않았다”면서 “9년째 감사를 하고 있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만들어놓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박용권 성동교육청 평생교육과 과장은 “그동안 인허가 과정 등 민원 발생시 교육청이 조사하고 이에 대해 이행을 지도했지만 재단 측이 이에 반발해 이후 취소와 소송이 이어진 것”이라며 “이사 선임의 권한은 법원이나 이해 관계자의 문제지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성동교육청에 확인한 결과, 지만씨는 법원에 의해 임시이사가 확정되고 나서 교육청을 찾은 일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교육청 측은 ‘사전 교감설’에 대해선 강력 부인했다. 이원우 신임 이사장 또한 “이사장하던 분이 사무국장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면서 “나는 박지만 회장과 어떤 관계도 없다”고 밝혔다.

사실 지금까지 육영재단을 둘러싼 박정희 전 대통령 자녀들의 분쟁에 대해 여론은 호기심어린 눈길과 남매들에 대한 질타를 보냈을 뿐, 육영재단이 어떤 자금을 기반으로 세워졌는지, 이후 남매들이 이사장 자리를 넘겨주고 받으며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그들이 육영재단을 소유하는 것이 맞는 일인지 정색을 하고 들여다본 적은 없다. 어느 정권도 박정희를 추모하는 세력의 반발을 사고 싶지 않았고,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때문에 명실공히 이 재산을 국고로 환수해 원래 목적에 맞게 써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세 남매의 분쟁으로 육영재단은 매년 70억 원의 적자를 보고 있다. 분쟁이 일어난 2001년부터 시설에 대한 투자와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답보 상태에 빠져 있다. 어린이회관 과학관에 한참 구식인 286컴퓨터를 전시해놓고 있을 정도고, 일부 임대사업을 제외하곤 회관을 찾는 사람도 거의 없다.

박정희가 남긴 슬픈 유산 ‘육영재단’. 70~80년대 어려운 시기, 국민의 세금으로 지은 이곳이 이젠 그 자녀들의 재산 싸움터로 변질됐다. ‘밝게 뛰놀자’는 현판이 걸린 어린이회관은, 그러나 그 어느 공간보다 을씨년스럽다.



육영재단 관련 일지

1969. 4. 재단법인 육영재단 설립
1970. 7. 어린이회관 준공개관(남산)
1974. 10. 새 어린이회관 부지 3만1238평 사용 허가(서울시)
1974. 10. 새 어린이회관 기공식 거행(현대건설)
1975. 10. 새 어린이회관 준공, 개관 (현 위치)
1976. 12. 서울시로부터 어린이회관 부지 매입(3만1238평)
1982. 10. 박근혜 이사장 취임
1990. 12. 박근령 이사장 취임(박지만 이사 1990~1994)
1994. 6. 서울동부교육청, 육영재단 편법 운영 조사 착수
2001. 12. 성동교육청, 박근령 이사장 취임 취소
2002. 5. 박근령 이사장, 취임 취소 관련 소송 패소
2004. 7.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 박근령 이사장 복귀
2004. 12. 성동교육청, 박근령 이사장 취임 재취소
2007. 1. 성동교육청, 육영재단 이사진 7명 취임 취소
2007. 6. 서울고법, 박근령 이사장 해임 정당 판결
2008. 5. 대법원, 박근령 이사장 해임 정당 판결
2008. 11. 박근령 전 이사장 사무국장으로 출근 시작
2008. 11. 서울동부지법, 박지만 추천 임시이사 9명 선임

<조득진 기자>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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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버지 노릇을 해주고 싶습니다 .  아버지...그런 건  필요없어요 .  제 딸도 이제는 아기가 아닌 걸요 . 이제 좀 있으면  스무 살이 되는데 새삼스레 아버지가 뭐 필요하겠어요 . 제가 단성 생식을 했다고 여기는 걸요 . 그러면 왜요 ? 제가 비뚤어져서 그런지 모르지만 새아버지는 늘 의붓딸을  성추행하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어요 . 비뚤어져서는 아니고  세상에 그런 사람도 많다고 보도가  되고는 하니까 그럴 거예요 .  그럼 나중에 따님이 출가할 때까지 기다려보죠 , 뭐 . 그때쯤이면 우리 두 사람이 변할 걸요 .   그럴지도 모릅니다 . 하지만 반드시 그런 건 아닙니다 . 호르몬 작용은 좀 멈추더라도 친구처럼 지내는 그런 사이가 되기는 힘들겠습니까 ? 그런가요 ? 저는 혜준씨랑 성관계를 하지 않더라도 함께 살면 친구처럼 의지하고 좋을 것 같습니다 . 저는 누구를  의지하는 거 싫어요 . 그래도 사람은 어떤 방식이건 공동체를 통해서 서로 의지하고 위로하고 위안받으며 교류하는 거 아닐까요 ?실망하고 싶지 않아서요 . 실망하지 않는 관계가 어디 있겠습니까 ? 제가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는 정말 완벽한 여자처럼 보였습니다 .   많은 부분이 그랬고요 . 하지만 그렇게 예쁘고 교육도 잘 받고 깔끔한 여자가 이상하게도 목욕탕에서 남이 쓰던 수건을 집어 와서 차 닦는 수건으로 쓴다든가 화장실에 생리대를  잘 처리하지 않고 그냥 버린다든가 하는 게 이상해서 모래시계에서 모래가 흘러내리듯 그렇게 실망하기 시작했습니다 . 목욕탕 수건은 흔히 가져와요 . 당신은  남의 것 슬쩍 가져오는 적 없어요 ?그런 적은 없습니다 . 그러나 수퍼에서 산 물건 계산이 잘못되면 적게 된 경우는 다시 돌려주러 가지는 않습니다 . 그런 건가요 ? 그래요 . 사람에겐 그런 부분이 있어요 . 그 정도를 가지고 양심이나 양심불량으로 몰고 갈 필요는 없어요 . 인간은 어쩌면 어떤 부분에선 무지 쪼잔해지는 부분이 있나봅니다 .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예전에 들은 말인데 어떤 신문사 사장이 재벌사 회장인 자기 매형이 시킨 비자금전달 심부름에서 몇 억을 떼어 먹었대요 . 정말요 ? 그래요 . 신문에 났어요 . 그 사람이 돈이 없어서 그랬겠습니까 ? 졸렬하니까 그랬겠죠 . 근데 그  매형은 뭐라고 했다나요 ? 전자수첩 같은 거 던지지 않았을까요 ?그렇죠 . 전자회사도 운영하고 있으니 전자수첩은 얼마든지 공짜로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 .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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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달은  좋았던 것 같아요 . 아니 , 늘 불안한 상태였지만 ...오래되어서 잊었어요 . 그리고 몇 달은 조금씩 서로가 낡아간다는 걸 느꼈어요 . 그리고 별로 준비되지 않은 생태에서  임신을 하고  그 사실을 통보하자 암말도 안했어요 .  마침 그는 돌아갈 데가 생겼거든요 . 그에게 빈틈이 있었을 때 , 그때 같이 살았거든요 . 슬펐습니까  ? 아니요 .   같이 살았지만  그렇게 열정적인 상태는 아니었어요 . 상처로 만나서  상처를  치유해주는 단계였는데 당시엔 사랑했다고 생각해요 . 그런 상태에서 그가 간다고 해서 헤어졌어요 . 임신을 했는데... 그는 당연히 제가  낙태를 할 거라고 생각했겠죠 . 아가를 낳고 전화를  했어요 . 그랬더니 전화하지 말라더군요 . 전처랑 다시  합쳤으니까 불편하다고요 . 전처가... 있었습니까 ? 별거상태였거든요 . 제가 아는 여자에요 . 아니, 사실은 그 전처가 제 친구예요 . 그래서 아기를 낳았단 사실을 말하진 못 했어요 . 하지만 아기 생일이 돌아오면 꼭 한 번씩 전화를 했어요 . 전화번호가 바뀌지 않았나요 ? 바꾸어도 소용없어요 . 그 전처 전호번호를 알거든요 . 전처는 두 사람 일을 압니까 ? 아기를 낳았다는 건  알겠죠 . 제가 미혼모라는 건 대개 아니까요 . 다만  그 아기가 자기 남편 아이인 건 모를 것 같아요 .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거든요 .
여자가 사막에서 눈물을 흘리고, 사막에 오기 위해 오랫동안 저축을 했다는 말을 듣고, 그 여자가 미혼모란 고백을 들으면서 ,준성은 조금씩 마음이 움직였다 . 젊지도 않고 빼어난 아름다움을 가진 것도 아니며 재혼 상태로 합당한 처지도 아니었지만 .  


한 번은 진지하게 물었다 .  


우리 함께  살래요 ?  

아니요 .  


단호했다 .
생각 좀 해보고  답변하시죠 .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똑같아요 . 딸이  없으면 모르지만 딸 때문에 ......상관없습니다 . 제 딸은 제 어미에게 가버리고 한 번도 오지 않았습니다 .  

(이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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