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희망이 있다면
김경희 지음 / 호이테북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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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자인 김경희 원장이 쓴 이 책은 이 시대 여성들에게 나아갈 길을 안내하는 지침서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아내, 엄마, 며느리, 그리고 딸로서 그녀가 풀어나간 진솔한 이야기들은 마치 들풀과 같은 향기를 느끼게 한다. 또한 여성들의 직업을 위한 도전이나 사회적 준비에는 앞서가는 선배의 자발적 지원과 배려가 각별히 요구되는데, 김경희 원장의 이 자전적 에세이는 자상하게 삶의 기술을 전해주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책장을 열어보면 유명 방송인으로 이미 국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김경희 원장이 당당하고 행복한 삶 속으로 당신을 초대하는 힘찬 함성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 '추천사(엄길청)' 중에서

 

 

어느 여성의 삶, 사랑, 그리고 성공 스토리

 

 

 

 

 

 

저자 김경희1987년 미스코리아 광주, 전남 '진' 출신으로 2011년 자랑스런 명강사 대상, 2014년 신창조인 대상, 2014년 대한민국 명강사 33인에 선정된 인물이다. 현재 교육기업 <희망교육개발원>와 <희망교육연수원>의 원장, 그리고 <소나무포럼>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KBS1 <아침마당> 등 다수의 방송에 출연해 시청자에게 큰 즐거움을 주고 있으며, 행복한 가정 만들기, 현대 여성의 성공과 사랑, 매력 소통법, 사랑을 부르는 대화법 등의 주제로 지자체와 기업체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20년차 강사이다. 이 책도 자신의 실제 경험을 통해 많은 여성들에게 변화와 발전, 희망을 주려는 마음에서 집필했다.

 

 

 

 

 

이 책은 그녀가 아내, 엄마, 며느리, 딸로서 지금까지 살아온 여성적 삶을 가감없이 솔직하게 열어 보인다. 누구나 겪을 법한 애환, 에피소드로 공감을 불러온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성찰의 거울과 곁에 있는 친구의 등을 토닥이며 말하는 것처럼 용기와 희망을 선사한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급격히 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결혼, 출산,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을 겪고 나면 사회에 다시 진출하기란 결코 녹록치 않다. 그럼에도 미스코리아에서 전업주부로, 전업주부에서 명강사, 교육 사업가로 당당하게 성공 스토리를 써내려간 그녀의 자서전은 마치 시원한 동치미 국물처럼 답답한 여심을 확 뚫어주면서 나아가 희망의 메세지로 다가온다. 

 

 

 

 

여성들의 결혼은 새로운 출발점이다

 

저자는 스물네 살에 은행 출근 통보를 무시하고 덜컥 결혼을 했다. 미스코리아 때문에 이루어진 특채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없었다. 의상학을 전공한 대학 시절도 그녀는 왕따였기에 은행에서 근무한다는 것이 솔직히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영어학원에서 만난 한 만성과 대학 졸업식 날 약혼을 하고 한 달 후 겁도 없이 결혼식을 올렸다. 

 

그녀의 시댁은 3대가 모여 사는 집안이었다. 장손며느리가 된 그녀는 공부 중인 남편의 뒷바라지에 약간 치매기가 있는 시할아버지, 시부모 등을 모시고 시댁에서 함께 살았다. 남편의 공부가 길어지자 그녀는 돈벌이에 나섰다. 친구 소개로 직장인들 건강 검진 전문병원의 검진 출장 알바를 시작했다. 하루 종일 일하고 2만원을 받았다. 다음으로 예식장의 드레스실에서 일하는 도우미로 일했다.

 

대학교수가 되려고 7년을 공부하다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남편이 공무원이 되었지만 워낙 박봉이라 그녀는 새로 아이들 학습지 선생을 시작했다. 열심히 일한 탓에 그녀의 지국이 1등을 했지만 돈벌이는 별로였다. 이렇게 직업에 대한 갈등에 빠졌을 무렵, 대학 시절 지도교수로부터 대학원이 새로 생겼다면서 1회 졸업생은 강의도 할 수 있도록 배려하겠다는 말에 친정에서 돈을 빌려 등록했다. 하지만 졸업 무렵, 대학 사정이 어려워 시간 강사료가 1시간에 1만 5천원이라면서 차라리 친절 강사를 해보라고 권했다. 이에 그녀는 서울의 한 호텔 부설기관에서 운영하는 서비스 아카데미에 등록, 친절 강사의 길로 입문했다. 숯불 갈비집을 대상으로 첫 강의를 시작한 이래 16년 동안 이를 이어가고 있다.

 

 

신데렐라는 행복했을까?

 

 

왕자님에게로 시집간 신데렐라가 정말로 행복했을까? 동화는 신데렐라가 왕자님과 결혼해서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다는 내용으로 끝을 맺는다. 신데렐라의 결혼생활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어쩌면 신데렐라의 결혼생활은 눈물의 연속이었을지도 모른다. 왕실의 교육을 받은 왕자 남편과 얼마나 제대로 소통할 수 있었을까? 평범한 시부모님도 어려운데, 임금님과 왕비님을 시부모로 모셔야 하는 신데렐라의 심정은 어땠을까? 오히려 왕자를 만난 게 인생의 함정은 아니었을까?

 

초기 전업주부 시절,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참 힘든 시간이었다. 보람차게 할 만한 일을 찾지 못해 마음이 힘들었던 것이다. 처음엔 아침 드라마를 보고 잠시 누웠다가 11시 정도에 일어나 다른 집에 놀러 갔다. 오전에 한 집, 오후에 한 집에 들러서 놀다 보면 학교에서 아이들이 돌아오고 저녁을 지을 시간이 되었다. 5시쯤부터 청소기를 돌리고, 저녁 준비를 하고 있으면 남편과 아이들이 돌아왔다.

 
그러면 그녀는 가족들의 식사와 간식을 챙기고 잠자리에 들었다. 잠이 오지 않는 날이 많았다. 낮잠을 많이 잔 날이면 심하게 뒤척이다가 혼자 거실에 나와 이 생각 저 생각에 빠지곤 했다. 

가장 힘들고 무서웠던 것은 하루하루가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는 것이었다. 그 시간을 통해 그녀는 자신이 어떤 체질인지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몸을 많이 움직여야 순환이 잘되는 체질이다. 식사 후에 바로 설거지를 하거나 집안일을 하며 움직이면 소화도 잘되고 기분도 좋아진다. 그런 날은 눈빛도 청명하고 혈색도 좋다. 반대로 게으름을  피우고 누워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소화도 잘 안 되고 기력도 떨어졌다.

 

그래서 그녀는 하루 일과표를 짰다. 기상은 새벽 5시, 이후 1시간 동안 독서한 후 6시부터 1시간은 인근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하며 땀을 흘렸다. 아침을 준비하고 식사를 마치면 가족들과 함께 8시 30분에 집을 나섰다. 10시부터 영어 학원 수업을 듣고 12시 30분에 귀가해서 점심을 먹고 그날 공부를 복습했다. 이렇게 2년을 배웠지만 소득은 별 없었다. 영어와 인연이 없음을 깨달았다. 지금도 여전히 그녀는 자신의 시간을 최대한 활용한다.

 

 

미스코리아에서 웨딩 드레스 도우미로

 

'한때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왕관을 쓰고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던 내가 지금은 웨딩 도우미 일을 하고 있는 것을 친정어머니가 본다면 얼마나 슬퍼하실까?'

 
그럴 때면 갑자기 자신의 처지가 서러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친정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리면 더욱 눈물이 솟구쳤다. 하도 많이 눈물을 흘려서 눈 밑이 따끔거릴 지경이었다. 신부들 뒤치다꺼리도 힘들었지만, 그런 자신의 모습이 기가 막혀 자꾸만 눈물이 났다.

 
하지만 인생이란 내리막길이 있으면 반드시 오르막길도 있는 법이다. '이렇게 주저앉을 김경희가 아니지. 나는 내 인생의 더 찬란한 순간을 반드시 맞이하겠노라' 며 어금니를 꽉 깨물고 마음을 다잡았다. 이처럼 때로는 오기가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지렛대가 되기도 한다.

 

 

세상에 나를 외치다

 

전업주부 10년 만에 간신히 사업을 시작했다. 그녀에게는 전진만이 있을 뿐 후퇴란 없었다. 더불어 고객들에게 절대 "No!"라고 말하지 않았다. 이것이 그녀의 마케팅 철칙이었다. 고객이 상담을 요청하면 20분 안에 고객 앞으로 달려갔다. 너무 빨리 나타나서 놀라 이렇게 말하는 분들도 있었다.

 
"원장님은 헬기를 타고 다니십니까?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오셨어요?"

 
무엇보다도 고객들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몇 마디 이야기만 나눠 보면 그녀가 어리숙하다는 것을 알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석같이 믿어 주는 고객들을 위해 그들이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 생각을 실천으로 옮겼다.
이러한 그녀의 뜨거운 열정과 성실함 때문에 그녀의 회사를 믿고 맡기는 충성고객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충성고객들은 주위 분들에게 그녀의 회사를 적극적으로 소개해 주었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많이 놀랐다. 마케팅을 할 때는 맹렬한 마케팅 전사가 되었고, 교육장에서는 여성미를 어필하는 매력적인 강사가 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남편이 '남의 편'인 줄 아는 남자들

 

 

 

부부들의 유형을 보면 A형과 H형으로 나눌 수 있다. A형 부부의 경우는 함께 살면서 자꾸 서로에게 의지하려는 유형이다. 아내는 남편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려고 한다. 내 안에 자신은 없고 온통 남편으로만 가득 찬 아내들이 이 유형에 해당한다. 이들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도 남편이 알아서 해 주기를 바라며 끝까지 기다린다. 이 유형의 부부들은 사랑을 받기 위해 아이들처럼 떼를 쓰며 산다.

 

반대로 H형 부부는 서로 간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이들 부부는 서로를 존중하며 독립적으로 살아가려고 애쓴다. 그녀는 아직까지 완전한 H형은 못 된다. 혼합형 정도나 될까. 무심한 남편이지만, 달리 생각하면 남편에게 고맙다. 틈만 나면 남편의 처마 밑에 기어들어 가려는 나약한 그녀를 홀로 서게 한 사람이 남편이기 때문이다. 사사건건 그녀를 챙기고 받아 주는 남편이었다면, 그녀는 지금도 홀로 서지 못했을 것이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 않던가. 

 

 

황금보다 지금이 더 좋다

 

바다처럼 큰 행복 속에 빠져 살면서도 마음의 그릇이 작으면 그만큼 행복도 작아진다. 마음의 그릇이 큰 사람은 작은 행복도 크게 만든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 마음의 그릇이 작았던 것이다. 내 안에는 열등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늘 주변 사람들과 불필요한 경쟁을 하려고 했다. 어디를 가나 남보다 조금이라도 잘나야 마음이 편했다. 이 모든 게 내가 욕심이 많기 때문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나처럼 욕심이 많은 사람을 못 봤다. 정작 그 욕심 때문에 스스로를 힘들게 하면서도 쉽게 내려놓지를 못한다.

 


세상에는 중요한 금이 세 개 있다. 황금, 소금, 지금이 그것이다. 젊을 때는 그중에서 '황금'이 가장 좋은 줄 알았는데, 인생의 절반을 살아 보니 가장 소중한 것은 '지금'이었다. 그나마 인생의 절반이 남아 있는 지금이라도 그 귀한 깨달음을 얻었으니 다행이다.

 

 

여자의 슬픈 갱년기

 

스물네 살에 부푼 꿈을 안고 시집을 와서 아이 둘을 낳고 키우던 25년의 결혼생활 동안 발을 동동거리며 살아왔다, 장남 역할을 해야 했던 남편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야속함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간 살면서 누구에게 가장 섭섭했느냐고 그녀에게 물어본다면 물론 남편이다. 갱년기 아내들의 분노의 원흉은 대개 남편이다. 남편을 사랑하고 믿었던 만큼 원한도 클 수밖에 없다.


아내가 유달리 갱년기를 심하게 앓으면 남편은 '저 사람이 그동안 참고 사느라 죽을 만큼 힘들었구나. 맺힌 게 많았구나.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럴까?'라며 아내를 잘 헤아려 줘야 한다. 아내는 갱년기 환자다. 지금 많이 아픈 것이다. 아내가 마구잡이로 쏟아 내는 말에 예민해지면 안 된다. 아내의 과격한 말과 표현에 꼬투리를 잡지 말고 그냥 묵묵히 받아 주어야 한다.

 
아내는 시집와서 지금껏 줄곧 남편이나 시댁 식구 혹은 여타 힘들고 억울한 상황에서 인고의 세월을 버텨 왔다. 이제 남편 차례다. 남편이 아내를 위해 인고해야 하는 시간은 아내가 버텨 온 시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남편들이여, 갱년기 아내를 잘 보살펴 주기를 바란다. 아내의 막힌 마음이 풀리면서 전쟁 같았던 갱년기가 막을 내릴 것이다.

 

 

괜찮아, 그만 하면 살아

 

"경희야, 나는 네가 하는 말 중에 그 말이 제일 좋더라"

 

요즘 들어 친구들이 그녀에게 하는 말이다. 남편과 못 사는 명백한 이유가 있을지라도 "살지 마, 어?게 그런 남자랑 살아"라는 말보다 "괜찮아, 그만 하면 살아"라는 그녀의 말에 친구들은 오히려 위로가 많이 되었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다시 한 번 마음을 다 잡을 수 있었다고 말이다. 

 

요즈음 사람들은 "정말 못 살겠어, 너무 힘들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것 같다. 설사 그렇다할지라도 희망이 담긴 말을 많이 하면서 살아야 한다. 더 행복해지고 싶다면 말이다. 말이 씨가 된다고 한다. 세상의 엄마들은 숨이 턱턱 막히고 손이 떨덜 떨리는 순간에도 "괜찮해야, 괜찮해, 모두 잘 될 거야"라고 주문을 걸며 고비들은 넘은 분들이다.

 

 

자, 이제 주문을 걸자.

 "괜찮해야, 괜찮해, 모두 다 잘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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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공부 - 완벽하지 않은 스무 살을 위한
후지하라 가즈히로 지음, 임해성 옮김 / 21세기북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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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개인의 의견이나 확신 없이 정해진 답만을 외우고 찾아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통해 클릭 몇 번, 검색 몇 번만으로 원하는 정보를 쉽고 빠르게 찾을 수 있지만, 그 지식은 온전히 우리의 것이 아니다. 이 수업을 마치면 스스로의 손과 생각으로 정답이 없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여러분 나름의 답을 발견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연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수업을 시작하며' 중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여러분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떤 세상을 만들어갈 것인가?

 

많은 지식을 쌓고도 늘 부족함을 느끼는 20대를 위해 일본의 교육혁신가인 저자가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초 역량 5가지를 다양한 상황에 대입해 설명한다. 그리고 이를 습관으로 익힐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책의 제목에서 언급하는 '진짜 공부'는 정답이 있는 공부법이 아니다. 일과 성공, 삶과 행복이라는 정답이 없는 문제에 대해 자신만의 답을 찾아내는 인생 수업인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는 '생각한다'는 것의 정체를 추구하는 특별한 수업이기도 하다. 생각한다는 것은 결코 해답을 암기하는 게 아니다. 또한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답을 찾아내는 작업도 아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스스로 자신만의 답을 찾아내고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들은 더욱 단단해지고 성숙해지는 것이다.

 

책의 저자 후지하라 가즈히로는 세상에 넘쳐나는 정답주의, 전례주의, 안일주의를 부수고 정체된 교육에 활력을 불어넣으려고 노력하는 교육혁신자이자 저술가다. 자신이 직접 고안한 '세상 수업'을 통해 사회에서 필요한 '진짜 공부'를 가르치면서 일본 전역에 교육 개혁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도쿄 첫 민간인 출신 교장으로 부임해 폐교 위기의 와다중학교를 5년 동안 일본 최고의 학교로 바꿔놓았다.


 

도쿄대학교를 졸업한 뒤 리쿠르트에서 도쿄 영업총괄 부장, 신규 사업 부장, 펠로우(fellow, 매년 계약을 갱신하는 VIP급 특별 사원) 등을 역임하며 25년 동안 승승장구하다가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교육

 

 

 

 

 

 

 

이제 물건은 더 이상 욕구 충족의 대상이 되지 못할 것이다. 기술이 더욱 발달해서 텔레비전이 1센티미터로 얇아진다고 해도, 일반 자동차가 시속 400킬로미터를 달리게 된다 해도 그것은 우리가 찾는 '행복'과는 상관없게 될 것이다. 더 이상 물건으로는 채울 수 없게 된 행복을 우리는 '마음의 풍요로움'에서 찾게 될 것이다. 이 새로운 시대의 양상을 저자는 '성숙사회'라고 부른다. 물건의 풍요를 추구하는 것이 성장사회라면, 그에 비해 마음의 풍요를 추구하는 것이 성숙사회다.

 

성장사회에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1초라도 빨리 '정답'에 도달하기 위한 '정보처리능력'이었다. 이는 마치 퍼즐의 조각을 맞추는 것처럼 처음부터 정답이 주어져 잇는 셈이다. 그러나 성숙사회에는 이런 정답이 없다. 여기선 레고 블록을 조립하는 것과 같은 능력이 요구된다. 이를 '정보편집능력'이라고 부른다. 손과 다리, 그리고 머리를 써서 자신만의 답을 '편집'해가는 능력인 것이다.

 

세상에 정답이 없다는 것은 그 정답을 가르쳐주는 선생이 없다는 말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국어나 수학, 영어 등 특정 과목을 가르쳐주는 선생은 언제나 존재한다. 부모가 세상의 상식을 알려주거나 회사 상사가 비즈니스 매너를 가르쳐줄 수도 있다. 하지만 지식 레벨의 정답을 넘어선 삶의 방식이나 일 하는 방식의 정답을 가르쳐주는 선생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들은 선생이 없는 수업 속에서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1교시(손발을 써서 생각하라~시뮬레이션)

 

블록을 관찰하고 손에 들고 이리저리 비교해보자. 머릿속으로 움직이면서 조합을 생각해보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우리들은 설계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만들어진 설계도는 바로 '가설'이다. 이는 매우 중요하다. 정답이 없는 성숙사회에서는 우리가 도출하는 모든 것이 어디까지나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

 

뉴턴의 사과도 마찬가지다. 그는 '사과가 떨어졌다'는 사실을 기초로 수십 단계의 생각을 거듭하고 많은 패턴을 검토한 결과로써 만유인력이라는 가설에 도달한 것이다. 물론 여기엔 '정답'이 없다. 자유로운 발상으로 수많은 생각을 굴리고 굴려서 점점 더 크게 만들어나간 끝에 자신만의 가설을 도출했다. 관찰에서 가설 성립까지의 작업을 '시뮬레이션'이라고 한다. 

 

 

2교시(모두의 힘을 빌려라~커뮤니케이션)

 

이제부터 자신이 세운 가설이 어느 정도 타당한 것인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고 경우에 따라선 수정을 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가설을 보다 더 단단하게 다듬는 것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처럼, 여러 사람의 생각이 모이면 지혜가 나온다.

 

혼자서 작업을 하는 경우 유연한 사고에 제약이 있을 수 있다. 독단적인 생각에 빠지거나 시야가 좁아질 수 있고, 같은 패턴의 이야기가 반복되는 등 설정에 모순이 생길 수도 있다. 브레인스토밍이라는 자유로운 토론 방식이 있다. 여기엔 정답을 추구하지 않거나 타인의 의견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중요한 룰이 있다. 따라서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아이디어를 뒤섞고 토론을 통해 문제점을 도출하는 것이다.

 

타이어에 부가가치를 붙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군가 컬러를 입힌 타이어를 제안했다고 가정해보자. 현재의 타이어는 모두 검정색이다. 색을 입힌다면 거리의 풍경도 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왜 현재는 검은 색 타이어 일색일지를 검토해야 한다. 여기엔 과학의 비밀이 숨어 있다. 즉 '카본블랙'이라는 흑색의 미세한 탄소 가루가 섞여 있다. 이는 고무의 강도를 높여주므로 우리들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셈이다.

 

패션에 주목하는 것도 참신한 발상이므로 이런 유연한 발상이 필요하다. 아이디어를 낼 때의 포인트는 상식을 의심하는 것이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보통의 상식 앞에 멈춰 서서 일부러 의심의 잣대를 들이대어보자. 좋은 아이디어란 그런 '능숙한 의심'에서 나오는 것이다. 

 

 

3교시(자신의 답을 의심하라~로지컬싱킹)

 

대개 어른들이 그렇다. 변화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과거의 상식에 매달려서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못 본 척한다. 그런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신을 향해서 의심하는 눈을 가지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자신에게 질문 공세를 펼치자. 특히 중요한 것은 본질적인 '원래'를 파고드는 것이다. 

 

 

4교시(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라~롤플레잉)

 

세상에는 자기 맘대로 안 되는 게 너무 많다. 이는 우리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만나는 '현실'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롤플레이의 힘이다. 실연을 하고 혼자 침대에 누워 울고 있다고 가정하자. 이때 '그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자신'이 없다면 인생은 너무나도 괴로운 것이 된다. 그러면 괴로움과 슬픔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괴로울 때, 힘들 때, 이제 끝났다고 도망치고 싶을 때 마음속 어딘가에서 '하지만 괜찮아', '이 정도 힘들 때는 그냥 웃는 수밖에 없지', '그냥 잊자. 내일이 되면 기분이 나아질 거야'라고 생각하고 위로해주는 자신이 있느냐, 또는 시원하게 화내고 툭툭 털어버릴 자신이 있느냐 하는 것도 역시 롤플레이의 능력이다. 

 

 

5교시(답을 모두와 공유하라~프레젠테이션)

 

프레젠테이션이나 스피치가 약한 사람일수록 매뉴얼에 의지하기 마련이다. 결국 모범답안에 의존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빌린 인사말로 그 자리를 메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의 마음도 움직이지 못하고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할까? 프레젠테이션에 없어서는 안 될 마지막 요소는 바로 '스토리'다. 아무리 세세하게 시뮬레이션을 하고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나고 논리 정연한 로지컬씽킹을 가지고 좋은 이미지를 전달하는 연기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매력적인 스토리가 없으면 사람들은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어른이 되면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많은 문제들의 해답을 스스로 찾아야만 한다. 하지만 정해진 답은 없다. 취업이든, 창업이든, 연인에게 고백하기 위한 로맨틱한 장소를 찾을 때든 간에 이 모든 일이 '정답'이 없는 문제들의 연속인 셈이다. 여태껏 모범답안을 배우고 외웠지만, 이젠 자신의 생각으로 정답을 만들어가야 한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야말로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가장 단단한 무기이자, 남과 다른 차이를 만드는 축이다. 인생의 주체가 되어 마음껏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실행하면서, 스스로 정답을 만들어보자. 남의 정답만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나만의 정답을 만들어갈 것인가, 선택은 우리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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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베이션 - 2,000달러짜리 작은 차가 이루어낸 거대한 기적
케빈 프레이버그 외 지음, 신현승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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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베이션은 한 소형차가 어떻게 전 세계에 크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는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또한 성장하는 거대 시장을 위해 안전하고 저렴한 전전후 운송 수단 개발에 나섯으며, 걸림돌이 되는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했던 엔지니어와 설계사와 사업가호 구성된 놀라운 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 '프롤로그' 중에서

 

 

타타 모터스가 이루어낸 거대한 기적

 

책의 저자 케빈과 재키 프레이버그 부부는 전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리더들의 독특한 관행들에 대해 강연하고 글을 쓴다. 그들은 기업 문화, 리더십과 서비스에 관한 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강연자의 대열에 속해 있으며, 샌디에이고 컨설팅 그룹과 freibergs.com을 창설했다. 리더들이 변화의 세계를 준비하도록 돕는 그들의 인상적인 활동은 <월 스트리트 저널>, <인디아 이코노믹 타임스>, <USA 투데이>, <비즈니스 위크>등을 통해 보도되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너츠! 사우스웨스트 효과를 기억하라>를 저술했으며, <것츠(GUTS)!>와 <붐(BOOM)!>을 공동 저술했다. 

 

80여 개국에 약 100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으며, 한 해 총수익이 710억 달러에 달하는 대기업의 총수가 이제 막 빈곤층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위해 세상에서 가장 싼 자동차를 개발하기로 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전 세계 전문가들이 불가능한 일이라 못 박고, 홍수와 정치적인 저항으로 공장 부지를 두 번이나 이전하고, 원자재 값이 40퍼센트나 폭등한 상황에서도 그 차의 제작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모두가 '미친 짓'이라고 매도한 그 일을 타타 그룹의 회장인 라탄 타타는 해냈다. 어느 비 오는 날 저녁, 스쿠터에 매달리듯 올라탄 한 일가족이 미끄러운 빗길 위에서 사고를 당하는 모습을 목격한 그는, 그들이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자동차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되었고, 그때부터 나노 개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차의 가격은 10만 루피(2,000달러)로 확정되었다. 강철 바디와 4개의 좌석, 4개의 문을 가진 '진짜 자동차'가 고작 스쿠터 한 대 가격으로 출시된 것이다.


타타 그룹이 이루지 못할 허튼짓에 돈을 쓴다고 폄하한 전 세계 전문가들을 흥분시키고, 인도의 시민들은 물론 개발도상국들의 서민층에게까지 열광적으로 사랑받게 된 이 차 타타 나노는, 오직 '회장님의 바보짓'과 그것이 옳은 일이라고 굳게 믿은 직원들의 포기하지 않는 의지로 만들어졌다. 그것은 실패해도 도전하길 장려하는 타타 그룹의 기업 문화와 '불가능에 도전하지 않으면 혁신이 아니다'라는 신념, 그리고 젊은 직원들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열린 소통을 통해 이루어졌다. <나노베이션>은 한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가지고 국민을 위해 이루어낸 위대한 도전의 과정이며, 산업에 한 획을 그은 혁신적인 아이디어에 대한 이야기이다.

 

인도에서 140년 동안 자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세계적인 규모의 다른 기업들이 성장 제일주의를 모토로 각종 비리와 정경유착을 저지른 반면, 이들은 대규모 자선 단체와 병원을 운영하며 인도 국민들의 삶을 바꿔놓기 위해 애썼다. 타타 그룹의 설립자인 잠셋지 타타는 간디의 후원자였으며 국가의 산업 발전에 기여했고, 현 회장인 라탄 타타는 그룹의 규모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면서도 하위 계층의 삶을 위한 사업들을 추진하려고 애썼다. 그 결과물들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이 바로 '타타 나노'였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됐는데, 1부 나노 스토리에서는 타타 나노를 개발하게 된 계기가 흥미롭게 묘사되었고, 2부 나노베이션의 정의에서는 '나노베이션'이 타타 그룹 내에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3부 나노베이션을 위한 8가지 법칙에서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일을 하는 데 필요한 필수적인 행동들을 8가지 법칙으로 명확하게 정의했고, 4부 나노베이션 효과에서는 타타 나노의 출시가 인도 사회에 얼마나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는지, 다른 개발도상국들에서는 어떤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지를 고찰했다.

 

전문가들 대부분이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을 만큼 타타 나노의 개발 과정은 험난했다. 나노 개발팀에 극한의 혁신 정신을 심어주어야 했으며, 거래처들을 설득시켜야 했고, 지금까지 시행되어서 성공한 방법과 그렇지 못한 방법의 차이를 가려내야 했다. 사람들은 결코 '플라스틱 장난감'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절대로 골프 카를 만들어서도, 플라스틱 바디를 가진 자동차를 제작해서도 안 됐다.

 

하지만 나노 개발팀은 그 모든 불가능을 헤쳐나갔고, 마침내 타타 나노를 세상에 선보이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단지 '세상에서 가장 싼 자동차'의 개발 과정을 다룬 책이 아니다. 이는 고정관념을 파괴하고 새로운 시장 개척에 성공한 기업의 이야기이며, 기업이 옳은 가치관과 굳은 신념을 가지고 일을 추진해냈을 때 그것이 전 세계에 어떤 파급 효과를 가져오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증명 과정이다.

 

 

 

 

 

 

 

스쿠터를 탄 가족의 교통사고

 

우중충한 날씨였던 바로 그날, 라탄은 도로 사정이 위험한지 뻔히 알면서도 승용차에 오른다. 하지만 그는 앞으로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전혀 모르고 있다. 도로가 미끄러우니 조심 운전을 하라는 그의 말에 운전사는 사람들이 다니는 인도에서 멀어지며 고개를 끄덕인다. 잠시 후 라탄의 승용차가 교차로로 접근했을 때 스쿠터를 탄 가족이 그들을 지나친다.

 

그는 스쿠터를 가리키며 운전사에게 " 저사람들을 조심해요"라고 소리친다. 이렇게 비 오는 날에는 스쿠터가 잘 넘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운전사는 반응하고, 스쿠터 뒤를 따라 교차로에 진입하면서 "조심하고 속도를 낮춰요"라고 또 한번 주의를 준다. 바로 그 순간, 사고가 발생한다. 스쿠터가 한쪽 방향으로 쓰러지면서 가족들은 사방으로 나뒹굴었다.

"만약 우리가 더 빨리 달렸다면 그들과 부딪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저기 흩어진 가족이 차 밑에 깔릴 수도 있었지요. 참으로 불행한 상황이 닥칠 수도 있었습니다. 나는 또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녁 시간에다 차량 속도가 더 빨랐다면, 운전도 미숙하고 차량의 운행 방식도 더 위험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때 라탄에게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경종의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는 "~하면 어떻게 될까(What if)?"라는 식의 질문을 던져야 했다. "이런 사람들에게 저렴하고 안전한 이동 수단을 제공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라탄 타타는 어려서부터 타인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생각하면서 성장했기 때문에 이런 사고법은 이미 익숙했다.

 

 

'산업계의 간디'처럼 리더십을 발휘

 

마하트마 간디는 인도인들이 스스로 훌륭한 국가의 가치 있는 국민임을 자각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잠셋지 타타와 J. R. D. 타타는 인도인들이 스스로 부를 창출하는 능력을 가진 훌륭한 '산업' 국가이자, 리더십 능력을 가진 지적인 국가의 일원임을 자각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라탄 타타는 인도인들이 스스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혁신 국가의 일원임을 자각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타타 그룹의 경우,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은 일단 사업이 궤도에 올라 수익성이 확보된 이후 비로소 실행에 옮기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처음부터 모든 프로젝트의 일부였다. CSR팀은 새로운 제조 공장에 착공하기 이전에 이미 현장에서 주변 공동체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방안을 강구한다. 타타 그룹은 실제로 각각의 공장 주변에서 선정된 100개 이상의 마을에 거주하는 10만 명 이상의 주민들에게서 개발 요구를 받아들이고 있다. 

 

타타 모터스의 CSR 활동

 

보건~ '나브 자그라트 마나브 사마즈' 설립, 나병 환자를 치료

환경~ 대규모 나무 심기 운동

교육~ 밤찬드라 고등학교, 장학금 제공

고용 능력~ 훈련을 통해 재정적 독립을 지원

 

 

 

 

나노베이션을 위한 8가지 법칙

 

나노베이션에 열중하라

혁명을 이끌어라

혁신의 문화를 만들어라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을 의심하라

고객의 상상력 그 너머를 바라보라

트렌드의 교차로로 가라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라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하라, 더 빨리 실패하라, 더 강하게 반등하라

 

나노베이션은 당신 동료들의 아이디어와 능력뿐만 아니라, 당신 자신의 아이디어에 대한 믿음의 도약을 필요로 한다. 리더십은 사람들의 감정을 관리하는 것이다. 라탄 타타는 크게 생각하면서 우아한 것을 수용하려는 굳은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과거에 경험해보지 못한 일을 해내는 나노 개발팀의 역량에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라탄은 나노 개발팀에 끊임없이 자신의 믿음을 전달하면서 팀원들 각자가 본인의 능력에 대한 시각을 넓힐 수 있도록 그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모든 이들이 누가 자신을 신뢰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이런 특정한 시기에는 자신의 방향 감각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따라서 혁신을 밀고 나가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타인이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용기는 배가되기 마련이다.

혁신가들이 확신과 자신감을 상실하는 바람에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사장된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는가? 아무도 위험을 감수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 나노 개발팀은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좌절과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발견했다. 라탄 타타 회장부터 프로젝트 리더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들이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타타 모터스는 약자를 배려한다

 

 

 

이 책은 이 사진을 갖고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운송 수단으로써 스쿠터를 사용하는 가족들의 이야기이자 인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타타 모터스의 나노는 기존의 저가 자동차 가격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출시됐다. 그렇다고 허접한 엉터리 제품이 결코 아니다. 쓸만한 진짜 자동차인 것이다.

 

빗 속 길을 위험천만하게 다니는 스쿠터를 보고 라탄 타타는 스쿠터 가격으로 감당할 수 있는 자동차 개발을 꿈꾸게 된다. 그 꿈은 현실이 되었다. 기업의 이윤 추구보다 고귀한 명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섬기는 리더십의 본보기를 보여주었고 마침내 나노 개발에 성공했다. 이것이 바로 '나노베이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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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나라인가 - 갈 곳 잃은 민심, 표류 중인 국가에 던지는 통렬한 메시지
김형오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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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난 2년간 발생한 주요 정치 현안 및 사회적 사건들에 대한 김형오 전 국회의장의 소견과 대책을 모은 칼럼집이다. 그는 우리 사회의 병리와 적폐를 아프게 지적하고 날카롭게 해부한다. 이 나라의 주인은 진정 누구인가를 준엄하게 물으며 참된 리더십의 핵심을 파고든다. 집단 이기주의의 덫에 빠진 줄도 모른 채 변화와 개혁을 부르짖는 이들에게 마치 각성제를 처방하는 듯하다.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인 우리들 자신이다

 

2016년 4월을 시점으로 3년 연속 전국 규모의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4월에 있을 국회의원 총선거(2016), 대통령 선거(2017), 전국 동시 지방선거(2018년), 그리고 보궐선거들이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가볍게 내던지는 정치인들의 무분별한 선심성 공약과 당선만이 지상과제인 선거 과열로 국론이 분열되고 정국이 요동칠 것이다. 한국의 미래가 걸린 중요한 시기에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책의 저자 김형오는 1947년 생으로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나와 기자, 공무원, 정치인을 거쳐 오래 유보해 두었던 제3의 길을 걷기 위해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다. 글을 쓰는 작가로, 역사에 대한 탐구자로 본격적인 방향 전환을 했다. 2012년에 발표한 <술탄과 황제>는 작가가 4년 남짓한 산고 끝에 완성한 집념과 열정의 산물이다.

 

그는 전쟁의 무대였던 터키 이스탄불을 다섯 번 다녀왔고, 특히 지난 4월 중순부터 6월 초순까지 47일간 현지에 머물면서 막바지 취재 및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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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증언록 1~2 세트 - 전2권 - JP가 말하는 대한민국 현대사
김종필 지음, 중앙일보 김종필증언록팀 엮음 / 와이즈베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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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증언에는 나의 국가관, 역사관, 사생관이 다 녹아 있다. 박정희 대통령을 지도자로 모시고 일으킨 5?16혁명은 새 역사의 분화噴火였다. 조국근대화의 비전이 결코 헛되지 않은 오늘, 온 국민의 피와 땀이 모여 세계 속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하면 된다'는 지도자의 결기와 4천만 국민의 세찬 각오가 어우러졌던 그 어제가 이런 오늘을 만든 것이다. 어제 없는 오늘은 없다. 뿌리 없는 열매는 결코 없다. 역사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꺾이거나 휘어져도 정의를 향해 연면히 나아간다는 사실은 변함없는 진실이다. 불의가 잠시 승昇하는 듯해도 종국의 승리는 정의의 편에 있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나의 증언록이 이와 같은 역사의 진리를 증명하는 하나의 시금석이 되기를 소망한다. - '저자 서문'중에서

 

 

5.16혁명과 현대사의 물결을 증언하다

 

역사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꺾이거나 휘어져도 정의를 향해 연면히 나아간다는 사실은 변함없는 진실이다. 불의가 잠시 승昇하는 듯해도 종국의 승리는 정의의 편에 있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운정 김종필은 "나의 증언록이 이와 같은 역사의 진리를 증명하는 하나의 시금석이 되기를 소망한다"고 책에서 밝힌다.

 

5천 년 가난을 벗어나 '남에게 신세지지 않는 나라 한번 만들어보자'고 궐기한 군사혁명은 마침내 '무항산 무항심'의 명언이 지향하는 바 민주복지 국가 건설로 이어졌다. 오늘의 우리가 누리는 민주와 복지는 경제 건설이라는 '항산恒産'이 있었기에 민주주의라는 '항심恒心'을 일구어낸 것이다.

 

역사는 역사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여기에다 해석을 입히는 것은 호사가나 역사가의 몫이다. 운정雲庭은 그저 굽이치는 현대사의 물결 속에서 자신이 직접 보고 느낀 '사실'만을 증언하고 싶었고, 그래서 이 책에다 '증언록'이란 이름을 부여했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자서전' 내지는 '고백론'이란 타이틀을 붙이지만 굳이 이렇게 명명한데는 있었던 사실만을 얘기하겠다는 그의 의지가 바탕에 깔려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2014년 10월부터 시작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는 1년 동안 매주말 서울 청구동 운정의 집에서 진행되었다. 2015년 3월 3일부터 연재된 중앙일보의 '소이부답笑而不答' 기사는 12월까지 114회로 이어지면서 많은 독자들로부터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 연재물을 가감없이 그대로 묶어서 책으로 출간했다.

 

 

 

 

 

 

처음 본 박정희

 

 

돌이켜보면 특별할 것도, 강렬한 점도 없는 짧은 만남이었다. 하지만 아흔에 이르러 회상해 보니 그 장면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나, 우리 둘이 처음 만난 장면 말이다. 육사를 8기로 졸업한 1949년 6월, 나는 육군본부 정보국에서 장교로서 첫발을 디뎠다. 동기생 일곱이 정보국 전투정보과에 배치됐다. 발령식 때 정보국장이던 백선엽白善燁 대령이 우리에게 말했다.


 

"너희가 신고 드릴 분이 한 분 더 있다. 작전실로 가서 인사 드려라" 바로 옆 '작전정보실'이란 팻말이 붙은 작은 방으로 가서 인사를 건넸다. "이번에 전투정보과에 배속된 신임 소위들입니다. 신고를 받으십시오." 작전정보실장이란 타이틀을 가진 사내는 검은색 양복을 입고 있었다. 검은 옷 탓이었을까. 참 키가 조그맣고 얼굴이 새카만 첫인상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계면쩍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나 박정희요. 근데 난 그런 신고 받을 사람이 못 돼. 거기들 앉게" 악수를 나누고 잠시 의자에 앉았다. 박 실장은 "내가 사고를 당해서 군복을 벗었다"고 간단히 본인을 소개했다. 이어 "육사를 우수하게 졸업한 장교들이라고 들었다. 환영한다"며 짧은 대화를 나눴다. 군복을 벗고 정보국의 문관으로 일하던 그분과의 첫 만남이었다.

 

 

미국, 박정희를 의심하다

 

'황태성 사건' 하면 1961년 KBS TV방송국 개국이 떠오른다. 1961년 여름, 나는 오재경吳在璟 공보부 장관을 만나 TV 방송국 설립 계획을 논의했다. 서로 뜻이 통했고 오 장관도 그런 구상을 갖고 있었다. 정부 예비비에서 1억 환을 마련해 TV 방송국을 연내에 짓기로 했다. 개국 예정일을 두 달 남짓 남겨놓은 10월 남산 기슭에 TV 방송국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그 즈음 내가 일본 도쿄에 가서 마주친 장면이 있다. 건물 위에서 내려다보니 집집마다 TV 안테나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그 모습이 사뭇 부러웠고 또 속상했다. 우리나라도 집에 TV가 한 대씩 있는, 그런 나라로 만들어야겠다고 내심 다짐했다. 방송 스튜디오 건물은 착공됐지만 방송용 기자재를 사올 돈이 부족했다.


나는 오재경 장관을 불렀다. 중앙정보부는 그동안 간첩들로부터 압수한 공작금 20여만 달러를 갖고 있었다(1961년 20만 달러는 2억 6,000만 환). 거기엔 황태성이 가져온 돈도 포함됐다. 내가 "이 돈으로 방송 기자재를 사면 크리스마스이브에 개국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오 장관은 "해보겠다"고 했다. 나는 박 의장에게 보고도 하지 않고 그 돈을 오 장관에게 넘겨줬다. 그 돈으로 카메라를 포함해 필요한 기자재를 미국에 주문했다. 결과적으로 김일성이 KBS TV 개국에 큰 역할을 한 셈이다.

 

 

 

 

 

 

 

한국 경제 발전의 주역, 정주영과 이병철


내가 총리로 재임하던 1971년 어느 날이었다. 삼성 이병철 회장이 총리실로 찾아와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장소를 찾아봤더니 경기도 용인 쪽이 제일 좋은데, 거기에 섞여 있는 국유지를 사지 못해 골치가 아픕니다"고 하소연했다. 무슨 일인가 물었더니 유럽의 티볼리나 미국의 디즈니랜드 같은 테마파크를 세우려고 계획한다는 것이었다. 그것 참 좋은 생각이다 싶었다. 그가 "산림청이 땅을 나한테 좀 팔도록 해주시오"라고 부탁하기에 내가 산림청장을 만났더니 땅을 절대 팔 수 없다고 난색을 표했다.

 

산림녹화가 국정의 주요 목표였던 시절이다. 하도 강경하게 반대하기에 머리를 짜냈다. 나는 이 회장에게 "정부 땅의 두 배쯤 되는 땅을 사서 주고 용인 땅과 교환하는 게 어떻겠습니까"라고 제안했다. 그는 바로 "그거 좋습니다"며 반겼다. 산림청은 대토代土를 받고 삼성에 땅을 내줬다. 그 자리에 지금은 '에버랜드'로 이름이 바뀐 용인 자연농원이 들어섰다. 테마파크의 원조가 이렇게 탄생됐다.

 

 

육영수 여사의 서거

 

이튿날 아침, 청와대에서 호출이 와서 가니까 박 대통령이 "차지철이를 시키기로 했어"라며 말을 바꿨다. 뜻밖이었다. 내가 본 차지철은 그런 책임 있는 일을 맡길 인물이 못 됐다. 나는 "그래요? 차지철을요?"라고만 대꾸하고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도대체 누가 차지철을 추천했나. 내 머릿속엔 그 생각 뿐이었다. 세상에 알려지기로는 박 대통령의 사위인 한병기 전 대사가 차지철을 후임으로 추천했다고 한다.

 

그런데 진짜 추천인은 따로 있었다. 바로 돌아가신 육영수 여사였다. 생전에 육 여사는 "차지철 의원 같은 고지식한 사람을 데리고 일해 보시라"고 대통령에게 권유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고 효자로 알려졌고, 술, 담배를 하지 않는 차지철을 착실하고 믿음직한 사람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아마도 육 여사는 차지철을 박 대통령 곁에 두면 대통령 주변의 스캔들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나와 얘기를 나눈 그날 밤 육 여사가 없는 방에서 혼자 주무시다 밤새 생각이 달라졌다. 차 실장 임명은 육 여사가 남긴 유작遺作인 셈이다.

 

 

권력의 빈틈과 혼돈의 시절

 

1979년 11월 3일 박정희 대통령의 국장이 치러지고 유신 시대는 사실상 끝났다. 18년 구질서는 헝클어졌으며 새 질서는 형성되지 않았다. 누가 새로운 시대를 만들고 끌어갈지 예측할 수 없었다. 절대권력이 사라진 거대한 공백 속에서 미래는 짙은 안개에 휩싸였다. 헌법에 따라 대통령 권한대행은 최규하 총리가 맡았고, 비상계엄이 실시돼 계엄사령관직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수행하고 있었다. 집권당인 민주공화당 총재 자리는 비어 있었다. 군과 정부, 정치를 관통하는 중심은 없었다. 그때 나는 몸을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당시 5선 국회의원이었지만 공화당에서 별 역할이 없는 총재 상임고문에 불과했다. 주요 당직자 중에서 나를 믿고 따라와 줄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렇다고 박 대통령과 혁명을 같이한 혈맹으로서 새로 닥칠 시대에서 도망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뒤를 이을 새 대통령을 선출하는 문제가 나라의 현안이었다. 당내 상당수 의견은 내가 후보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유신 대통령을 할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었다. 그때 정치의 배후에서 실권을 행사하고 있던 군부도 나를 경계했다. 나는 박 대통령이 돌아가신 것으로 유신은 막을 내렸다고 판단했다. 새 시대에서 페어플레이를 하고 싶었다. 처삼촌인 박 대통령의 비참한 죽음을 보고 그 자리에 대한 의욕이 도무지 생기지 않았다. 

 

 

1997년 대선, 최후의 3김 격돌

 

1997년 10월 27일 밤 8시 30분. 김대중 총재가 한광옥 부총재를 데리고 청구동 우리 집을 비밀리에 찾아왔다. 나는 마당으로 마중 나가 그를 기다렸다. 김 총재는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다짜고짜 나를 포옹했다. 감정이 상당히 북받치는 모습이었다. DJ가 이런 방식으로 친밀함을 표시하기는 그날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는 거실 소파에 앉아 인사를 한 뒤 갑자기 바닥에 내려앉았다. 그러더니 "김 총재님,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간절히 부탁합니다"라고 했다.

 

나는 DJ를 소파에 앉도록 권하며 "그러잖아도 도와 드리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총재님(DJ)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수모와 박해를 당한 사람 아닙니까. 내가 그 원寃과 한恨을 다 풀어 드리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나는 1973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박 대통령이 시키지도 않은 '김대중 납치사건'을 저지른 일을 떠올렸다. 그 일은 이후락이 대통령의 신임을 다시 얻기 위해 낸 '자기가 죽을 꾀'였다. 내가 김대중에게 직접 고통을 준 것은 아니었지만 그 시점에서 나 외에 박 대통령을 대신해 그의 가슴에 맺힌 원寃을 풀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겪은 전쟁과 사랑

 

중공군을 생포한 뒤 한 달쯤 지났을까. 세밑 금성천의 칼바람에 살이 에이는 듯했다. 연대장인 허영순 대령으로부터 사무실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전화를 건네주는데 육본 작전교육국 차장인 박정희 대령이었다. 박 대령은 출장차 인근 7사단장에게 왔다가 나를 찾은 것이다. 대령은 놀라운 사실을 전해주었다.

 

"여기 오는 길에 춘천 시장통에서 우연히 애를 업고 있는 옥이를 만났어. 자네가 중공군과 싸우고 있는데 죽을 거라는 소문이 나서 '같이 죽으러 왔다'면서 남편을 찾아왔다고 해. 빨리 가봐"


'옥'이는 아내 박영옥이었다. 연대장 허 대령은 고맙게도 자기 지프에 쌀 한가마니를 실어주고 아내를 만나고 오라고 했다. 춘천 거리는 폭격으로 집과 건물이 다 무너진 쑥대밭이었다. 급히 가서 보니 아내는 소양강 옆에 가마니로 바람막이를 하고서 애를 데리고 있었다. 아내는 "대구에서 서울까지 군수용 화물 열차를 타고 왔어요. 서울서 춘천까지는 GMC 군용 트럭에 태워 달라고 했고요. 당신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해서 무작정 올라왔어예"라며 엉엉 울었다.

 

돌 지난 딸 예리는 추운 줄도 모르고 이리저리 기어 다녔다. 연락병에게 부대에서 모포 대여섯 장을 가져오게 했다. 부대를 출퇴근하면서 일주일을 함께 지낸 뒤 아내를 대구로 내려 보냈다. 그때 40만~50만 군인 중에서 남편이 죽을지 모른다고 얼굴이 시커멓게 돼 가지고 그 고생을 하며 최전방까지 찾아온 여자가 또 있을까. 아내 박영옥은 그런 여자였다.

 

 

 

 

 

JP는 역사다

 

김종필의 삶은 현대사다. 한국 현대사는 격동과 파란이다. 그는 그 시대를 증언했다. 그가 연출한 시대다. 그가 몸담았던 시절이다. 성취와 고뇌, 좌절과 영광의 이야기다. 그는 군사혁명으로 세상에 등장해 5.16 혁명 공약을 만들었는데, '반공을 국시국시의 제1의義로 삼는다'에 숨은 사연을 밝혔다. 박정희 대통령이 소령 시절 좌익으로 몰려 구속, 예편당한 불행한 때가 있었으므로 주한미군은 그런 박정희를 의심했기 때문에 이를 잠재울 목적으로 일부러 그렇게 했다는 거다.

 

혁명은 야망의 분출이다. 1961년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겨우 100달러 수준이었으니 구습舊習을 타파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던 그런 혁명은 애국심의 발로였다. 미국 CIA가 박정희를 견제할 목적으로 김형욱을 활용해 <김형욱 회고록>을 출간, 온갖 비난으로 박정희를 헐뜯었지만, 조작된 내용이 너무 많다고 그는 증언한다.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는 법정에서마치 자신이 민주화 투사인 양 행세햇지만, 그는 차지철과의 충성 경쟁에서 패한 후 발작을 일으켜 총을 쏜 살인범일 뿐이라고 증언했다. 그는 영원한 이인자였다. 권력은 냉혹하다. 이는 나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제거되지 않은 이인자였으니 그만큼 박정희도 순수한 인물이었던 것 같다. 두 번의 국무총리, 9선 국회의원, 집권당의 당대표 등 노욕의 정치인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그는 당당하게 "내 무덤을 파헤치라고 하고 싶어"라고 했다. 한국 정치사에 앞으로 이런 인물이 다시 나올 수 있을까 싶다. 격동기의 한국정치사가 궁금하다면 이 책의 일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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