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곰의 주식투자 불패공식 - 60개 매도종목 평균 수익률 62%
불곰.박선목 지음 / 부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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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을 도박으로 접근하면 도박이지, 주식으로 접근하면 주식이고, 물을 주전자에 따르면 주전자 모양이 되고, 호리병에 따르면 호리병 모양이 되지. 결국 자신의 선택에 달린 문제야. 내가 보기에 주식시장은 도박판이 아니라 노다지판이야. 프로는 결코 도박하지 않는다. 미국 프로 포커 선수들조차 포커를 도박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때 중요한 건 바로 도박을 하지 않겠다는 태도야. 그런 태도 덕분에 확률, 상대방의 성향과 마음 등 여러 가지가 보이는 거야. 그러니까 프로 포커 선수로서 돈을 벌 수 있지" - '프롤로그' 중에서

 

 

무턱대고 남을 따라하면 망하기 십상이다  

 

타율이 3할 3푼 3리인 야구 선구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는 세 버네 한 번꼴로 안타를 친다는 얘기다. 아무 생각 없이 배트를 계속 휘두른다고 가능한 일일까? 운동선수라면 요행이 아니라 연습을 믿을 것이다. '아까 안타를 쳤으니까 이번에는 안타를 못 치겠네'라고 생각한다면 3할 타자가 결코 될 수 없을 것이다. 타격 연습을 꾸준히 하고, 상대 투수의 투구를 분석해야 안타를 치는 것이다.

 

이 책은 불곰주식연구소 대표 '불곰'의 주식투자 노하우를 담고 있다. 즉 6년간 60개 종목으로 평균 수익률 62%라는 놀라운 성과를 낸 전문가가 직접 들려주는 투자 요령인데, 불곰의 실제 경험에 따라 투자 단계를 단순화하여 핵심적인 방법을 알려 준다. 과거 공시와 뉴스를 살펴보면서 기업의 과거 가치인 히스토리를 파악하고, 재무제표를 통해 현재 가치를 가늠하면서 우량주 여부를 판단하며, 기업의 주요 아이템을 조사하여 미래 가치인 성장성을 예측한다. 이렇게 하여 가치 있는 기업을 선별했다면, 이 기업이 주식시장에서 저평가되어 있는 상태인지를 파악하여 가능한 한 최저가 시점에 매수하고, 그 주식이 제 가치를 회복할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리라고 가르친다. 결국 이는 진정한 가치투자인 셈이다.

 

책의 필자 박선목은 불곰의 제자이자 시인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초, 중,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하여 고려대학교 국제학부를 졸업했다. 평소 시 쓰기를 좋아해서 2011년 계간 <예술가>를 통해 등단하여 활동 중이다. 그는 어느 날 불곰을 소개받은 술자리에서 대뜸 주식투자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고, 불곰은 그 대신 강의 내용을 책으로 쓰라고 제안했다. 잘못된 투자 습관이 없는 초보자의 시선이 오히려 쉽고 제대로 된 주식 책을 쓰기에는 제격이라는 말과 함께. 그리하여 불곰의 주식투자 이론과 케이스 스터디 강의를 이렇게 글로 기록하게 되었다. 

 

 

 

 

책은 모두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불곰의 가치투자 이론)은 '주식투자, 망하고 ㅅ;ㅍ으면 이렇게 해라', '전업투자는 패가망신의 지름길', '주식시장의 사술, 기술적 분석', '악마의 상품, ELS', '주식투자 잘하려면 본업에 충실하라', '세상에서 가장 쉬운 재무제표 강의' 등 20가지 투자상식을 새롭게 해석한다. 이어서 2부(불곰의 가치투자, 케이스 스터디)에서는 불곰의 5단계 투자기업 탐색 전략을 소개하면서 15개 종목을 통해 실전에 임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무턱대고 따라가면 무조건 망하는 10가지 이유

 

경제신문 읽지 마라. 늦은 정보, 죽은 정보가 많다.

그래프 분석하지 마라. 어제의 주가가 내일의 주가를 말해주지 않는다.

증권사의 목표주가 믿지 마라. 매매 회전율을 높이려는 미끼일 뿐이다.

시황분석 믿지 마라. 과거만 이야기할 뿐 미래를 알려주지 못한다.

전업투자하지 마라. 기다리지 못하므로 심리전에서 필패할 수밖에 없다.

단타매매하지 마라. 투자가 아니라 도박이다.

미인주, 주도주 쫓아가지 마라. 이미 고평가되어 있다.

펀드 사지 마라. 대부분 시장 수익률만도 못하다.

ELS 사지 마라. 벌 때는 조금 벌고, 잃을 때는 크게 잃는다.

주식투자대회 참가하지 마라. 도박성 투자에 빠져들게 만든다.

 

 

어설픈 가치투자의 실패가 단타매매를 부른다

 

처음에는 다들 정석 투자를 믿고 가치투자를 공부한다. 기업의 가치와 주가를 제대로 평가해서 투자하려는 자세를 취한다. 이처럼 가치투자를 공부하는 것은 분명히 좋은 일이지만, 문제는 공부를 해도 대부분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운도 따라야 한다. 더구나 가치투자를 제대로 공부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적다. 공부했더도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 많지 않다. 마음은 급한데 주가가 상승하지 않음에 따라 자구 다른 방법을 시도한다. 대부분 자신만의 '어설픈 가치투자'를 '정석 가치투자'로 여기게 된다.

 

불곰의 가치투자 레슨(주식투자에서 망하는 6단계)

 

1단계~ 지인 소개로, 공부도 없이 소규모 투자

2단계~ 약간의 실패후 가치투자를 공부

3단계~ 잘못된 이해를 바탕으로 투자했다가 실패, 가치투자를 불신하고 포기

4단계~ 차트와 소문을 이용한 단타매매-1~2% 수익 창출, 신용매수-계좌 깡통 우려

5단계~ 선물 옵션 시작(이는 도박이다)

6단계~ 주식 불신론자가 됨

 

 

증권사의 장삿속을 이해하라

 

증권사는 결코 자선사업체가 아니다. 그들은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한다. 즉 가장 큰 수입원이 바로 '매매수수료'다. 더구나 그들은 고객의 원금을 안전하게 지켜줄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증권사의 정보 내지는 추천에 기댄다. 요즘은 투자자들고 많이 약아져서 소위 '청개구리 투자법'이라고 증권사의 추천과 반대로 하는 투자자들도 있다.

 

이들은 '고위험투자형' 고객을 집중적으로 노린다. 그래야만 '표준투자권유준칙'에 따라 고객에게 파생상품, 신용거래, ELW 같은 것을 마음껏 추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링 좋아 추천이지 투자자입장에선 미수든 신용이든 빌린 돈으로 투자하는 순간, 이미 투자 심리게임에서 한 수 밀리고 시작하는 셈이다. 결국 좋은 일은 증권사에만 생긴다. 단타 매매가 발생하므로 수수료가 팍팍 늘어난다.

 

 

전업투자는 패가망신의 지름길

 

주식시장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개장한다. 이 시간 동안 모니터에 집중하면 된다는 믿는 사람들이 단타매매 방식을 택하는 전업투자자들이다. 그리고 전업투자로 큰 돈을 벌었다고 과장광고를 하는 수많은 투자권유자들이 이런 길로 유혹한다. 이 길로 접어드는 순간, 출퇴근이 자유로운 신의 직장처럼 여겨지고 또한 스스로 사장이라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처음엔 작은 금액으로 시작하다가 갈수록 투자금을 키워 결국엔 집까지 담보로 맡기고 전업투자에 나선다.

 

하지만 모니터에는 주식의 가치가 나오지 않는다. 이들은 대부분 실패하는 전략을 사용한다. 수익률이 1~5%만 되어도 팔고, 손실이 3~5%만 되어도 손절매를 과감히 한다. 매달 주식해서 번 돈으로 생활비를 충당해야 하는 사람이 어떻게 느긋하게 세월을 기다리는 강태공이 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초단탐매매를 하는 사람을 '스캘퍼'라고 하는데, 투자의 기본 상식도 망각한 사람들이다. "주가는 상승과 하락을 반복한다"

 

 

기술적 분석은 주식시장의 사술詐術이다

 

주가 그래프를 이용한 기술적 분석은 회사를 분석하는 행위가 아니다. 한마디로 그래프만 연구하는 기술일 뿐이다. 그래프는 지난 과거의 발자취인데, 현재와 미래에도 이런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간다는 것이데, 이는 결코 과학적인 방법이 아니다. 수많은 불특정 다수인들의 사고 팔고의 흔적이 그래프로 나타나는 것인데, 어떻게 동일한 패턴의 발자취를 그린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말이다. 그래서 이는 우매한 투자자들을 속이는 사술인 것이다. 

 

이동평균산, 골든 크로스, 데드 크로스 이런 용어들이 기술적 분석의 핵심이다. 가치투자를 지향해야 하는 우리들은 기업의 가치를 분석해야 하는 것이지, 이처럼 그래프의 패턴을 분석하는 일에 시간을 낭비해선 안 된다. 이를 신봉하는 광신도들에게 기술적 분석은 넘겨주자. 또한 캔들의 모양에 의거 해머형, 망치형, 역망치형 등을 따지는 캔들 차트 분석도 마찬가지다. 모두 '쓰레기'다.

 

과거의 주가가 내일의 주가를 말해주지 않는다

그 시산에 회사를 분석해라. 중요한 것은 가격이 아닌 가치이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도 기술적 분석을 사용하지 않는다

기술적 분석은 단타쟁이들을 위한 도구이다. 증권회사는 수수료를 위해 추천한다.

 

 

물고기 잡는 법을 배워라

 

"물고기를 잡아 주면 하루치 양식을 주는 것이요,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 주면 평생의 양식을 주는 것이다" - 탈무드

 

주식투자로 인해 패가망신한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이는 대부분 과도한 탐욕과 기본을 지키지 않아서이다. 가치투자의 정석대로 투자한다면 요즘 같은 초저금리시대에 이만한 재테크 수단은 없다. 가치보다 싸게 매수해서 시세차익도 얻고 연말에 배당금이라는 수입도 생기는 것이니 이를 도박으로 결코 인식하지 말자. 가치투자법, 이는 자식에게도 교육시켜야 할 돈버는 비법이다. 초심으로 돌아가려는 투자자들에게 필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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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재판소 - 30년 경력 판사, 일본 사법계에 칼을 겨누다!
세기 히로시 지음, 박현석 옮김 / 사과나무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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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심리가 진행된 단계에서 재판관은 당신에게 피고와의 ‘화해’를 강하게 권할 것이다. 화해에 응하지 않으면 불리한 판결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둥, 재판에서 이겨도 상대방으로부터 금전을 받기 어려우니 승소 판결을 받아도 의미 없다는 둥의 설명과 설득을 상대방도 없는 밀실에서 장황하게 듣게 될 것이다. 또한 재판관이 상대방에게 어떤 설명을 하고 있는지, 상대방이 재판관에게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어쩌면 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을 헐뜯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러한 것들을 당신은 알 길이 없다. 당신은 불안해진다. 그리고 '나는 재판소에 시비를 가려달라고 온 건데 왜 이렇게 '화해'하라는 설득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들어야만 하는 걸까? 마치 판결을 요구하는 것이 나쁜 일인 양 말하다니, 전혀 뜻밖이야…'라는 작은 의문이 당신의 마음속에서 솟아오른다. - '머리말' 중에서

 

 

일본 사법부의 실상을 폭로하다

 

2014년 일본에서 출간되자마자 사법계를 발칵 뒤집어놓고, 국민들을 열광케 했던 이 책의 저자 세기 히로시는 도쿄대학 법학부에 재학중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최고재판소 조사관, 사무총국(한국의 법원행정처) 등을 거친 엘리트 판사 출신이다. 스스로 좌파도 우익도 아니며, 자유주의자일 뿐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는 그는 2012년 메이지대학 교수가 되기 전까지 33년 동안 자신이 몸담았던 재판소를 떠나 지금껏 드러나지 않았던 일본 사법부의 치부를 이 책을 통해 낱낱이 밝히고 있다.

 

1950년에 나고야에서 출생한 그는 대학교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1979년부터 법관으로 도쿄지방재판소와 최고재판소에서 근무하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연구와 병행하면서 책을 집필하고 학회에 보고서를 발표해왔으며, 2012년부터는 메이지대학 법과대학원 전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절망의 재판소>, <일본의 재판> 외 여러 권이 있으며, 세키네 마키히코라는 필명으로 <대화로서의 독서> 등을 출간했다. 자연과학, 인문사회과학, 문학, 음악, 영화 등에 대해 넓고 깊은 지식을 갖추고 있는 그는 이 책에서 '리버럴아츠'를 배우는 법

 

저자가 밝히는 충격적인 사실 하나는 대다수의 재판관에게 있어서 일반 시민인 소송 당사자는 소송 기록이나 소송을 위한 메모의 한쪽 구석에 적힌 하나의 '기호'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당사자의 기쁨이나 슬픔은 물론, 그들에게 있어서는 절실한 문제인 '운명'조차도 재판관들에게는 어찌되든 상관없는 일이다. 오직 재판관의 관심은 '사건처리'에만 집중되어 있다. 어쨌든 빨리, 요령껏 사건을 처리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재판관이 거듭 화해를 강요하는 이유도 오직 사건을 '처리'해 버리고 싶기 때문이다. 화해를 강요하는 또 다른 이유는 판결문을 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어려운 판단을 회피하려는 경우는 그나마 낫고, 판결문을 쓰는 것 자체가 귀찮고 소송기록을 꼼꼼히 읽기 싫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판결문의 기본조차 쓰지 못하는 재판관이 부지기수라고 개탄한다.

 

 

 

 

 

 

 

 

 

 

 

 

 

지난 8월 8일 해임이 확정된 진경준 검사장의 불투명한 재산축적 과정이 한동안 직장인들의 화제거리였다. 넥슨 회장으로부터 주식 등 9억여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그는 검찰 역사상 최초로 비리에 연루되어 불명예 해임된 케이스다. 가족의 해외여행 경비, 법인 차량 제공 등을 넥슨측으로부터 부당하게 받았으며, 한진그룹에 대한 내사종결의 대가로 처남 명의의 청소용역회사에 한진그룹 측에서 134억 원의 일감을 주도록 종용했음이 밝혀졌다. 그동안 약자들을 대상으로 엄청난 갑질을 행사했으므로 아마도 비리는 이보다 훨씬 많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책의 저자는 매우 흥미로운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최고재판소 판사의 성격 유형별 분석이그것이다. 네 가지 유형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A유형~ 인간미가 풍부하고 단점까지도 포함한 개성 넘치는 인물

B유형~ 이반 일리치 타입(톨스토이의 단편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C유형~ 속물, 순전한 출세주의자

D유형~ 분류 불가능, 혹은 괴물

 

그런데, 저자의 판단에 의하면, A유형은 5%이하, B유형은 45%, C유형은 40%, D유형은 10% 정도라는 것이다. 즉 제대로 된 판사는 극히 소수이고, 퇴폐 내지는 타락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이반 일리치는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 드랑하는 주인공으로 제정 러시아 시대의 관료재판관이다. 그는 성공을 했고 두뇌도 명석하지만, 자신만의 가치관이나 인생관이 없는 사람이다. 대체로 공무원들이 이런 범주에 속하는 편이다.

 

D유형은 너무나도 특이해서 앞의 유형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그 사람의 집무실은 언제나 쥐 죽은 듯 조용해서 찍소리조차 들리지 않으며, 사무총국의 과장 시절에는 부임 당시에는 건강했던 재판소 서기관이 얼마 지나지 않아 늘 미열에 시달리는 환자처럼 돼서 초췌한 몸으로 지방 재판소로 달아나버렸다는 일화를 몇 개씩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저자도 그 사람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감정이라는 것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고 한다. 또 병으로 떠난 재판관을 야멸차게 얘기해서 반발심을 불러일으키거나 아랫사람을 짓누르는 듯한 태도와 말투로 명령하던 사람이 최고재판소 판사가 되자 돌연 민주파로 전향한 인물, 사법행정을 통해 재판관을 철저하게 지배하는 인물 등이 이런 타입이다.

상층부에 대한 추종 경향이 너무도 극단적인 어느 대도시 지방재판소의 소장을 예로 들어보겠다. 그는 재판관이나 직원 앞에서 "고등재판소의 의견은 잘 들었나? 우선 상급청의 의견을 들어보게", "그건 정말 사무총국의 생각과 같은 것인가? 혹시 다르지 않은가?"라는 등의 말을 매일같이 했기에, 직원들은 '충견 하치코 같은 사람'이라고 수군거렸다. 물론 개가 세상을 떠난 주인을 그리워하는 것은 미덕이지만, 재판관으로서 독립을 지켜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걸핏하면 사무총국이나 고등재판소 사무국(사무총국의 국장이나 고등재판소 사무국장은 오사카 지방재판소 소장보다 상당한 후배다)의 의견에 조건반사적으로 신경을 쓴다는 것은 결코 미덕이라 할 수 없다. 오히려 충견 하치코의 명예에 커다란 흠집을 내는 것이다.

 

일본의 재판소는 선(線)에 의해 둘러싸인, 영역이 매우 좁고 한정되어 있는 사회이자 그 선을 넘을 경우, 혹은 그 선을 밟은 경우 그에 대한 대가로써 따돌림, 징벌, 보복이 굉장히 혹독한 사회이다.

 
소송을 좋아하는 국민은 특히 일본인 중에는 다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비교적 많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소송이라는 수단을 쓰지는 않는다. 따라서 뒤집어 말하면, 보통의 일본인이 소송을 일으켜야겠다고 결심한 경우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재판소에서 시비를 가려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싸우겠다고 생각한 경우가 비교적 많을 것이다. 그런데 소송을 일으키고 나면 머리말에서 언급한 것처럼 어느 정도 심리가 진행된 단계에서 재판관으로부터 억지로, 그리고 끈질기게 화해하라는 설득을 받는 경우가 아주 많다.

성적性的, 권력, 도덕 등의 괴롭힘과 추행이 많다. 저자가 알고 있는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본다. 재판장이 상사로서의 권력을 이용하여 자신이 소속된 부서의 젊은 여사무관과 성적 관계를 가진 사례, 도쿄 지방재판소의 소장대행이 연회 자리에서 여성 판사보를 끌어안은 사례, 두 소장이 미리 말을 맞춰 여성 판사보에게 예전에 사귀던 남성 판사보와 다시 교제하라고 설득한 사례 등이 떠오른다.

 

그리고 성희롱에 관해서는 1976년에 사법연수소 사무국장과 교관이 제30기 여성 수습생에 대해 "여성은 법률가, 재판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등의 차별적 발언과 성희롱 행위를 고발당해 국회에서도 문제가 되었으며, 사법연수소장으로부터 엄중한 주의 처분을 받은 예가 있다(이 사무국장은 후에 사무총장을 거쳐 결국에는 도쿄 고등재판소 장관이 되고, 조금 더 지나면 최고재판소로 들어갈 예정인 사람이었다).

 

 

일본의 사법은 오염 지대

 

"바닥을 보렴, 더러워졌어. 비질을 해야 돼"

이는 비틀즈의 멤버 조지 해리슨의 '내 기타가 우는 동안'에 나오는 노랫말이다. 일본의 사법은 피라미드형 계층적 캐리어시스템에 포획된 노예이자 중독된 재판관들에 의해서 완전히 오염되어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일본의 재판관 조직은 엘리트의 폐쇄적인 관료집단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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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알고리즘 - 머신러닝은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꾸는가
페드로 도밍고스 지음, 강형진 옮김, 최승진 감수 / 비즈니스북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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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가장 큰 목표는 당신이 머신러닝의 비밀에 들어서게 하는 것이다. 차량의 엔진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는 기술자와 정비공만 알면 된다. 반면 운전대를 돌리면 차량의 진행 방향이 바뀌고 브레이크를 밟으면 차량이 멈춘다는 것은 모든 운전자가 알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머신러닝을 사용하는 방법은커녕 머신러닝에서 운전대나 브레이크에 해당하는 게 무엇인지조차 모른다. 이 책은 당신에게 머신러닝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려면 알아야 하는 개략적인 지식, 개념 모형을 소개한다. - '들어가는 말' 중에서

 

 

머신러닝을 아시나요?

 

세계를 강타한 알파고 쇼크제4차 산업혁명의 이슈로 인해 인공지능과 머신러닝(기계학습)에 대한 관심의 규모는 날로 폭발하고 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아마존 등 거대 기업들은 서로 경쟁하듯 머신러닝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으며 최고의 머신러닝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인하우스팀을 꾸리고 연구·개발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등 분야 선점에 사활을 걸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에 발맞춰 머신러닝은 무엇이며 왜 모든 글로벌 기업들이 그토록 여기에 기대를 하고 있는지, 떠오르는 이 기술을 향후 어떻게 그리고 어떤 분야에 도입하고 활용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최고의 머신러닝 입문서로 평가받는 이 책은 데이터 과학 분야의 최고 영예인 SIGKDD 혁신상을 2년 연속 수상한 세계 최고의 머신러닝 분야 전문가 페드로 도밍고스가 집필했는데, 인공지능과 머신러닝의 탄생부터 어떻게 기계들이 스스로 학습할 수 있게 되었는지를 밝히고 나아가 이 기술이 우리의 미래를 얼마나 경이롭게 바꿔놓을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캘리포니아대학 어바인캠퍼스(UC Irvine)에서 정보 및 컴퓨터과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던 그는 시애틀 워싱턴대학의 컴퓨터과학 및 공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머신러닝 분야의 선구적인 전문가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가운데 풀브라이트 펠로우십, 슬론 펠로우십, 미국국립과학재단의 CAREER상, IBM 교수상 등을 수상하며 명성을 쌓아왔다.

 
그의 주요 연구 분야는 머신러닝과 데이터 마이닝으로 컴퓨터가 인

 

 

나아가 그는 단순히 머신러닝이 무엇인지 그 정체를 밝히는 데에 그치지 않고 인류를 다음 단계의 진화로 이끌어낼 만큼 파급력 있는 '새로운 머신러닝'의 탄생을 제시한다. 스팸메일의 분류, 아마존과 넷플릭스의 추천 콘텐츠, 투표자와 고객의 성향 분석 등 이미 사용되고 있는 다양한 머신러닝 기술에는 사실 그 쓰임과 분야에 따라 각기 다른 알고리즘이 사용되고 있다. 같은 추천시스템을 구축했지만 아마존과 넷플릭스의 머신러닝 알고리즘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반면에 그는 모든 분야와 지식을 아우르는, 범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마스터 알고리즘'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대담한 주장을 한다. 그리고 마침내 마스터 알고리즘이 탄생되었을 때 데이터에서 세상의 모든 지식을 이끌어내는 유례없는 과학적 진보가 일어날 것이라 예견한다. 이렇듯 그는 마스터 알고리즘을 탄생시키는 과정에 우리들을 초대함으로써 새로운 머신러닝의 세계로 안내한다.

 

 

 머신러닝의 혁명이 시작되다

 

모든 알고리즘은 입력과 출력이 잇다. 데이터를 컴퓨터에 넣으면 알고리즘이 처리하여 결과를 출력한다. 회사의 회계팀에서 발생한 전표를 입력하면 바로 회계 과목으로 집게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머신러닝은 이 과정을 바꾸었다. 데이터와 원하는 결과를 넣으면 데이터를 결과로 바꿔 주는 알고리즘을 내놓는다. 머신러닝은 다른 알고리즘을 만들어 내는 알고리즘인 것이다. 머신러닝을 통해 컴퓨터가 스스로 프로그램을 작성하므로 사람은 작성할 필요가 없다.

 

구글이 야후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을까? 둘은 모두 광고를 보여주고 돈을 벌어들이는 웹사이트다. 하지만 구글의 머신러닝 알고리즘이 야후보다 훨씬 낫다. 웹사이트 광고는 광고주의 매출액에 영향을 미친다. 클릭 수가 예상에 못 미치면 결국 비용의 낭비이고, 매출의 감소로 이어진다.  

 

머신러닝이 한 회사의 상품을 확실히 좋아하도록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회사가 직접 머신러닝을 수행하는 것이다. 최선의 알고리즘과 최대의 데이터를 보유한 기업이 승리한다. 이로써 새로운 종류의 순환 고리가 생긴다. 가장 많은 고객을 보유한 회사가 가장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가장 좋은 모형을 학습하고 가장 많은 신규 고객을 얻으며, 이러한 선순환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경쟁사로서는 악순환이다). 구글에서 빙으로 옮기는 것은 윈도우에서 맥으로 옮기는 것보다 쉽겠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옮기지 않는 까닭은 분명하다. 

 

이렇게 적은 수의 머신러닝이 이렇게 많은 일을 한다면 '하나의 머신러닝 알고리즘이 모든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이 논리적으로 이어진다. 표현을 달리하면 '하나의 알고리즘이 데이터에서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배울 수 있을까?'가 된다. 성인의 두뇌에 담긴 모든 것과 진화로 창조된 모든 것, 과학 지식의 총합을 전부배워야 하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 어려운 주문이다.

 

이 책의 중심 가설이 여기에 있다. 세상의 모든 지식, 즉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지식은 단 하나의 보편적 학습 알고리즘으로 데이터에서 얻어낼 수 있다. 저자는 이 머신러닝을 마스터 알고리즘(master algorithm)이라 부른다. 만약 이런 알고리즘이 가능하다면, 이 알고리즘을 발명하는 일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의 성취가 될 것이다. 

신경망의 첫 번째 성공은 주식 시장을 예측하는 일이었다. 신경망은 방해되는 부분이 많이 섞여 있는 데이터에서 작은 비선형 특성들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에 선형 모형보다 더 좋은 성능을 보였으며 금융계에서 유행했다. 전형적인 투자 기금은 많은 주식 종목에 대해 개별적으로 신경망을 학습시켜 가장 유망한 주식 종목을 고르게 하고 인간 분석가가 그들 중에서 어느 종목에 투자할지를 정하게 한다. 하지만 일부 투자 기금은 모든 과정을 머신러닝에 맡겨 주식 종목을 사고 팔게 한다. 이런 기금이 정확히 얼마나 성과를 냈는지는 철저하게 비밀로 유지되지만, 헤지펀드가 머신러닝 전문가들을 계속 놀라운 속도로 휩쓸어가는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또 다른 사례는 자동차 운전 학습이다. 운전자가 없는 차가 처음으로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이 개최한, 2004년과 2005년의 자율차량경연대회였다. 하지만 이보다 10년전 카네기멜론대학의 연구자들이 이미 다층 퍼샙트론을 훈련하여 동영상으로 도로를 감지하고 적절하게 운전대를 돌리게 함으로써 자동차를 운전하는 데 성공했다. 

 

무인주행 구글카

 

한쪽만 보면 머신러닝은 데이터 수집인간의 기여 부분에 가려 암 박멸 연구 과제의 작은 부분에 불과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쪽에서 보면 머신러닝은 전체 사업의 핵심이다. 머신러닝이 없으면 암에 대한 생물학 지식은 수천의 데이터베이스와 수백만 과학 저술, 작은 부분만 아는 의사들에게 흩어지고 우리에게는 암에 대한 파편화된 생물학 지식만 있을 것이다. 이런 지식을 일관성 있게 하나로 모으는 것은 아무리 똑똑하더라도 사람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직 머신러닝만 할 수 있다. 모든 암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공통의 유형을 찾으려면 머신러닝이 필요하다. 조직 하나만 해도 수심억 가지 정보를 내놓기 때문에 새로운 환자에게 개별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파악하려면 머신러닝이 필요하다. 암 박멸 알고리즘을 만들려는 노력은 이미 진행 중이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람과 기계의 조합이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결국 인간을 위한 직업은 없어질 것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컴퓨터와 로봇이 모든 일을 인간보다 잘하는 날이 온다 하더라도(가까운 장래는 아니다) 적어도 우리 중 일부는 일자리를 보전할 것이다. 가벼운 대화까지 하며 완벽하게 인간을 흉내 내는 로봇 바텐더가 생길 테지만 고객들은 사람인 바텐더를 더 선호할 것이다.

 

저자가 의미하는 것은 인간이 되는 경험을 하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모든 것에 해당되는 인간성이다. 우리는 인간성이 점차 사라진다고 걱정하지만 다른 직업들이 자동화되면 잿더미에서 다시 일어날 것이다. 더 많은 일이 기계로 저렴하게 수행될수록 인간미 넘치는 사람이 기여하는 부분은 더 가치 있을 것이다. 

 

 아직 마스터 알고리즘은 없다

 

머신러닝의 비밀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여행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그저 어떤 모습일까 슬쩍 살펴본 정도다. 우리에겐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이미 있는 것을 단순히 변형하는 것은 아이디어가 아니다. 어느날 누군가 마스터 알고리즘을 발명한다면 이는 인류 공동의 재산이 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공학도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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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아이
샤를로테 링크 지음, 강명순 옮김 / 밝은세상 / 2016년 7월
평점 :
절판


영국 북부 요크셔의 스카보로 시 인근 자그마한 바닷가 마을인 스테인턴데일의 목가적인 경관을 배경으로 인간의 이기심과 증오심,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에 대한 무지와 질시, 무관심이 얼마나 끔찍한 비극을 야기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 소설은 작가 샤를로테 링크의 특징과 장점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명품스릴러라 할 수 있다.

 

 

끔찍한 비극과 놀라운 반전

 

인간에 대한 예리한 관찰력을 토대로 내면세계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감정변화와 움직임들에 대한 정확한 포착과 탁월한 심리묘사를 트레이드마크로 하는 샤를로테 링크의 장기는 <다른 아이>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이 소설은 마지막장을 덮을 때까지 범인의 정체를 둘러싼 팽팽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으며 막판 허를 찌르는 반전으로 범죄소설의 묘미를 한껏 느낄 수 있게 한다.

 

샤를로테 링크는 작가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10대 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1985년<크롬웰의 꿈, 또는 아름다운 헬레나>를 발표하며 작가로 데뷔했다. 그녀의 소설은 현재까지 독일 내에서만 2,400만 부가 넘게 판매되었고, 전 세계 30여 개국에서 번역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독일에서는 국민작가로 불릴 만큼 높은 인기와 명성을 누리고 있으며, 다수의 소설이 드라마로 제작되어 최고의 시청률을

 

 

런던에서 의사로 일하는 레슬리는 어린 시절 친구 그웬 베켓의 약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영국 북부의 자그마한 항구도시 스카보로를 찾는다. 고향에는 일찍 세상을 뜬 어머니를 대신해 그녀를 키워준 외할머니 피오나 반즈가 살고 있다. 요크셔 주 스카보로 외곽 스테인턴데일의 해안가 베켓농장에서 그웬 베켓의 약혼식이 열린다. 뜻밖에도 함께 참석했던 피오나 할머니와 신랑 데이브 탠너 사이에서 설전이 펼쳐지면서 약혼식 행사는 파국을 맞이한다.

밤늦게 혼자 집으로 돌아가던 피오나는 다음 날 둔기에 피살된 끔찍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점차 인물들 간에 얽혀 있는 관계들이 드러나고 자연스레 그날 약혼식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용의선상에 오른다. 그웬의 아버지 채드는 피오나와 평생 친구관계로, 어린 시절에 어두운 비밀을 공유한 사이이다. 경찰은 그웬 베켓의 약혼식에 참석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알리바이와 범행동기를 찾는데 수사의 초점을 맞춘다.

 
한편, 경찰은 몇 달 전 발생한 에밀리 밀즈 살인사건에 주목한다. 현재 답보상태에 빠져 있는 에밀리 밀즈 살인사건과의 유사성 때문이다. 에이미 밀즈 살인사건은 젊은 여대생 에이미가 베이비시터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한밤중에 귀가하던 중 인적이 끊긴 공원에서 둔기에 맞아 피살된 시신으로 발견된 사건이다.


비록 두 사건의 피해자들인 두 사람의 나이는 확연히 차이가 나지만 범행 수법, 범행 시각, 범행 장소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두 사건의 유사성을 부정하기 어렵다. 과연 이 두 사건은 동일범의 소행일까, 아니면 모방범죄일까? 동일범의 소행이라면 두 피해자 사이에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경찰은 명백해 보이는 두 사건의 유사성에 주목하고 두 피해자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는 데 수사력을 집중한다.

 

피오나의 주변 인물들은 하나같이 범인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게다가 피해자인 피오나 역시 평생 어두운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피오나가 일종의 참회록처럼 이메일을 통해 채드에게 보낸 과거사에서 비로소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다른 아이'의 정체가 밝혀진다.

 

피오나의 참회록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와 종전 직후의 혼란스런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전쟁이 장기화되고 런던까지 공습에 노출되자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아이들을 시골로 피난 보낸 조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그 참회록을 통해 어쩌면 피오나의 죽음이 당시 그녀가 저지른 악행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대두되면서 사건은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친구 그웬 베켓이 결혼하다

 

"결혼한다고?"

 
전형적인 시골 처녀, 외딴 농장에서 은둔자처럼 살아가고 있는 여자, 시간이 멈춰 선 듯 언제나 변함없이 촌스러운 여자, 누군가 기적처럼 나타나 청혼하러 오기 전에는 평생 혼자 살 수밖에 없을 듯했던 전형적인 19세기 스타일 여자 그웬 베켓이 결혼한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야말로 쇼킹한 소식이라 미처 감정을 조절하기가 어려웠다.
레슬리는 이미 그동안 그웬이 평소 탐독하는 연애소설에서처럼 멋진 왕지님 같은 남자가 나타나 꿈같은 사랑이 실현되기를 꿈꿔 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 결혼식은 12월 초쯤에 할 생각이야"
"축하해! 도대체 너에게 행운을 안겨준 남자가 누구야?"

 

레슬리는 2년의 별거 끝에 최근 이혼 절차를 마무리하고 마침내 돌싱이 된 신세였다. 새 인생을 출발하고자 새 집을 구한 뒤 살던 집을 세놓으려고 세입자들의 방문을 받고 있었다. 그때 어린 시절의 친구인 그웬의 전화를 받고 반가웠다. 일년 전에 한 번 만났고, 작년 크리스마스 때 잠깐 통화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는 의사로 병원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웬의 남편감 데이브 텐너는 올해 마흔세 살로 그웬을 무척 사랑해주는 남자란다. 그러면서 토요일에 약혼식이 있다고 참석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이에 레슬리는 이혼문제로 인한 심란한 기분을 전환할 겸 요크셔에 한 번 다녀오는 것도 괜찮다 싶었다. 더구나 현재 그녀는 휴가 중이라 주말을 고향에서 보낸다면 피오나 할머니도 매우 기뻐할 것이란 생각까지 들어 기꺼이 약혼식 참석을 약속했다. 

 

 

그웬의 아버지 채드 베켓과 피오나 할머니는 오랜 연인 사이

 

 

 

피오나 반즈, 싸움닭 기질이 농후하고 베켓 부녀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나서는 사람이었다. 베켓농장 사람들에게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계속 채드 베켓 옆에 앉아 질긴 고기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주고 있었다. 콜린은 매년 여름 베켓농장에서 여름휴가를 보냈기 때문에 피오나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았다. 피오나는 수시로 베켓농장에 들러 채드와 함께 마당에서 햇볕을 쬐기도 하고, 초원으로 함께 산책을 나가기도 했다. 두 사람이 자주 벌이는 입씨름은 마치 수십 년 동안 함께 산 부부처럼 서로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된 일종의 의사소통 방식이었다. 피오나와 채드는 오랜 친구 사이였다. 그들의 우정이 언제 시작되었고, 또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지 아무도 몰랐다. 

 

 

엠마 베켓의 농장으로 가다

 

1940년 여름, 당시 피오나는 열한 살이엇고, 엄마와 함께 런던 이스트앤드에 있는 작은 다락방에서 살았다. 그해 여름은 지독하게 더웠고, 특히 다락방은 찜통 안이나 다름없었다. 독일의 나치정권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2주 만에 프랑스를 점령햇다. 영국정부는 결사항전을 외치며 국민들의 투쟁의지를 고취했지만 날이 갈수록 나치에 패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었다. 

 

9월 초가 되면서 런던은 수시로 독일군의 공습을 받았다. 밤마다 섬광이 번쩍거렸고 사이렌소리가 울려 퍼졋다. 사람들은 방공호로 모여들었고, 곳곳의 건물들이 큰 굉음을 내며 무녀져 내렸다. 런던에는 이미 소개령疏開令이 발령돼 있었다. 그래서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시골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11월 4일 아침 9시 정각에 패딩턴 역에서 요크셔로 떠나는 열차가 출반하기로 되어 있었다. 시골의 에디트 고모집으로 갈 예정이다. 전 가족이 폭격으로 죽고 졸지에 고아가 된 브라이언 소머빌이 매달리는 통에 함께 데려가기로 했다. 독일군의 공습으로 선로에 커다란 나무 두 그루가 쓰러져 있는 바람에 계획보다 훨씬 늦은 시간에 요크셔에 도착했다. 인솔해온 간호사가 명단에 적힌 이름을 차례대고 부르기 시작했다. 호명된 아이들은 앞으로 나갔고, 대기하고 있던 위탁가정으로 넘겨졌다. 아이를 배정받지 못한 사람들이 호명되지 않은 아이들 쪽으로 왔다. 위탁가정은 정부로부터 돈을 받기 때문이다.

 

어떤 여자가 피오나 앞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상체를 기울였다. 엄마보다 약간 나이가 많아 보였고, 세련되고 다정한 얼굴이었다. 그 여자는 옷깃에 붙은 식별표를 보고 "아, 피오나 스웨일즈구나. 1929년 7월 29일 생이면 열한 살이겠네?"라고 말했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긴장했던지 목소리가 밖으로 새나오지 않았다.

 

"나는 엠마 베켓이라고 해.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농장에 살고 있어. 라디오에서 아이들을 시골로 내려 보낸다는 뉴스를 들었지. 나도 돕고 싶은 마음에 나왔단다. 나랑 같이 우리 집에 가지 않을래?"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친절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어 다행이었다. 그때까지 농장이라는 곳에 가본 적이 없었다. 엠마 베켓이 브라이언을 쳐다보며 "이 아이는 네 남동생이니?"
라고 묻자 계속 양말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브라이언이 도움을 청하듯 급히 팔을 붙잡았다.

 

"내 동생이 아니라 옆집에 살던 아이에요. 그제 밤에 이 아이가 살던 아파트가 독일군의 폭격을 당했어요. 그때 이 아이의 부모와 형제들이 다 죽었다고 들었어요"

 
엠마 베켓은 강한 충격을 받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혀를 끌끌 찼다. 명단에 없는 아이들은 다시 런던으로 되돌아가 고아원으로 넘길 계획이었다. 이에 엠마 베켓은 간호사에게 브라이언의 상황을 설명하고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으므로 브라이언도 농장으로 함께 데려갈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피오나에게 브라이언의 존재는 떼어내야만 하는 혹이다

 

피오나는 브라이언과 남매로 오해 받는 게 죽기보다 싫었고, 마음속으로 그를 늘 '꼬맹이 바보'라고 불렀다. 물론 엠마 아줌마가 있는 자리에서는 절대로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호칭이었다. 몹시 매정한 아이라고 비난할 사람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불쌍한 아이를 수시로 따돌렸으니 그런 말을 들어도 할 말은 없었다. 다만 1940년과 1941년 사이에 내가 처해 있던 상황을 고려한다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당시 나는 놀기 좋아하는 아이였고, 연애소설을 즐기며 열다섯 살짜리 소년을 향해 혼란스러운 사랑을 키워가던 사춘기소녀였다. 갑자기 런던을 떠나 요크셔의 농장에서 살게 된 소녀, 아빠는 죽고 엄마와는 생이별한 소녀, 독일군의 공습 때 내가 살던 아파트가 무너진 모습을 본 소녀. 지금 생각해도 어린 소녀 혼자 감당하기에는 벅찬 일들이었다.

 
당시에는 너무 어려 그녀가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했고, 브라이언의 억척스런 집착에 부담을 느꼈다. 말을 제대로 못하는데다 가족을 모두 잃은 브라이언을 보듬어줄 수 있을 만큼의 포용력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브라이언은 떼어내야만 하는 혹이었다. 브라이언과 남매로 오인받는 것에 대해 과격하고 거칠게 반응했던 이유였다. 당시의 나이를 고려하자면 지나치게 비정상적인 반응은 아니었다.

 

 

 

피오나 할머니의 죽음, 그리고 살인범의 추적

 

약혼식 참석자들 중에서 레슬리가 아는 사람은 친구 그웬과 채드 베켓 씨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처음 본 제니퍼는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고, 콜린은 약간 고지식한 은행원처럼 보였지만 내면엔 다른 욕망을 품고 있는 듯 여겨졌다. 어떤 사람이나 밖으로 드러나는 면모가 전부는 아니니까.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을 잠재적 살인자로 볼 수는 없지 않은가?

레슬리는 문득 알몬드 경감이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절망과 고독에 시달리는 여자, 직업적으로는 성공했지만 가정적으로는 실패한 여자, 남자들과 인생에 실망한 여자, 약물 중독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엄마 때문에 힘겨운 유년기를 보낸 여자, 엄마 역할을 대신해주었던 할머니를 잃은 여자 등등.


누구나 눈이 확 뒤집힐 만큼 분노할 경우 나이 든 할머니쯤 쉽게 때려죽일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느낌으로 기억하는 엄마는 마음이 따뜻하고 유쾌한 분이었다. 언제나 나를 품에 안아주었고, 밤에는 꼭 껴안고 잠이 들었다. 할머니의 말에 따르자면 엄마는 자주 남자를 갈아치웠다. 지금도 엄마가 집으로 데려왔던 남자들 중 서너 명을 희미하게나마 기억하고 있었다. 엄마가 섹스를 하기 위해 침대로 오지 못하게 했던 것도 기억났다. 거실 구석에서 훌쩍이며 울다가 혼자 잠들어야 했던, 엄마와 관련해 나를 가장 슬프게 만드는 기억이었다.

 

 

데이브는 어떤 사람인가?

 

"저는 아직 당신에 대해 잘 모르지만 단순한 아이디어와 실천은 전혀 별개의 문제일 수도 있으니까요. 지금껏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으면서 거창한 계획부터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솔직히 미심쩍은 생각이 들긴 해요. 당신은 성공을 거두지 못한 이유가 열악한 환경 때문이었다고 생각하죠? 정말 성공을 거둔 사람 중에 당신처럼 말하는 사람을 본 적 있어요? 그들 역시 대부분 빈손으로 시작해 성공을 이루었어요"

 

"당신은 굉장히 직설적인 사람이군요. 당신은 혹시 그웬에게 어떤 선택권이 있을지 생각해본 적 있어요? 그웬은 현재 아버지 몫으로 나오는 연금을 받아 근근이 살아가고 있어요. 오래지 않아 아버지가 별세할 경우 그웬은 하루아침에 수입이 사라지게 됩니다. 일 년에 두어 번 농장을 찾는 브랭클리 부부한테서 받는 돈만 가지고는 살아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때가 되면 농장을 정리하고 다른 길을 찾아봐야죠", 데이브의 속셈을 알아차리게 하는 말이었다. 더구나 그는 레슬리에게 "어젯밤 그웬과 함께 있었지만 잠을 같이 자지는 않았어요"라는 말까지 했다. 하지만 레슬리는 데이브와 그웬의 문제에 개입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에이미 밀즈 사건과 유사성을 찾아 나서다

 

"며칠 전, 스탠이 직접 망원경으로 에이미 밀즈를 관찰했다고 말했어요. 망원경으로 보면 가드너 부인의 집이 얼마나 잘 보이는지 저에게 직접 보여주기까지 했어요. 가드너 부인이 딸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을 때인데 정말이지 명확하게 보이더군요"

 
"스탠이 당신에게 에이미 밀즈를 은밀히 관찰했다는 말을 왜 했을까요?"

채드 베켓, 그웬의 아버지는 늘 그랬듯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었다. 좀처럼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데이브 탠너와 딸의 약혼에 대해 그가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 역시 절대로 속마음을 표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설령 딸과 둘이서만 있는 자리이고, 주변에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도 달라질 건 없었다. 그는 딸이 원하는 일을 가로막은 적이 없었다. 설령 결혼을 말리는 게 딸에게 도움이 된다고 해도 나서지 않을 사람이었다.

 

"저도 그 이유를 모르겠어요. 스탠은 지난 몇 달 동안 에이미 밀즈를 관찰했다며 자랑삼아 털어놓았죠. 본인 입으로 '내가 살해당한 그 여자에 대해 잘 알아' 라고 말하더니 망원경을 여기로 가져왔어요. 내심 저는 기절할 만큼 놀랐는데 스탠은 성능 좋은 망원경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느라 여념이 없었어요. 심지어 에이미 밀즈의 속옷 색깔까지 안다고 자랑했죠. 결국 욕실까지 들여다봤다는 뜻이잖아요" 


 

제니퍼는 갈수록 기분이 오싹해져 자꾸만 현관문을 돌아보았다. 에나는 서랍장에서 서랍을 빼냈다. 사진들이 가득했다. 다양한 사이즈의 사진들이었다.  하나같이 젊은 여자들을 찍은 사진으로 대부분 망원렌즈로 포착한 게 특징이었다. 여자가 해변을 거니는 모습, 수퍼마켓에서 나오는 모습,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먹는 모습, 아파트에서 아이를 봐주는 모습, 창밖을 내다보는 모습 등이었다. 사진의 주인공은 바로 에이미 밀즈였다. 스탠은 건축현장에 출근하지 않는 주말이나 휴가, 퇴근 후에 계속 사진을 찍은 것이었다.

 

 

 

그웬의 약혼식날, 레슬리의 할머니 피오나와 신랑 데이브 간에 논쟁이 벌어지고 다음날 피오나 할머니는 시체로 발견된다. 그리고 이 작은 마을에서 발생한 에이미 밀즈 살인사건. 과연 두 사건은 동일범의 소행일까, 아니면 모방범죄일까? 신부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만 모인 약혼식이라 잠재적인 살인범은 이 무리에 속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경찰의 수사는 진행된다. 누가 살인범일까? 섬세한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이 소설의 반전을 감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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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사
앙드레 모루아 지음, 신용석 옮김 / 김영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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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가 당연시하는 자유와 평등, 민족주의, 자유주의, 공화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 등의 가치관들이 모두 프랑스 혁명을 통해 유럽과 전 세계에 그 씨앗을 뿌렸던 것이다. 이렇듯 절대 권력의 왕정국가에서 자유와 평등의 국민국가로 발돋움하며 세계사의 흐름을 주도해온 프랑스. 유럽대륙 한복판에 자리한 채 수많은 주변국들의 부침을 받으면서도 최강대국의 지위를 놓치지 않은 프랑스의 저력은 과연 무엇이며, 그 힘은 어디에서 왔는가? 이러한 프랑스의 실체를 한 권으로 정리한 책이 바로 앙드레 모루아<프랑스사>다. 

 

 

프랑스 역사저술의 완결판

 

1793년 1월 16일, "국민이여, 짐은 죄 없이 죽는다"라는 외침과 함께 루이 16세의 목이 단두대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프랑스 혁명이 발발한 지 4년 만에 벌어진 이 참극을 지켜본 사람들은 사형에 찬동했다는 죄책감이 드는 동시에 전력을 다해 혁명을 유지, 발전시키지 않으면 자신들도 곧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이 사건은 19세기 유럽 정치 혁명의 시발점이 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책의 저자 앙드레 모루아는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평론가이자 전기작가이며, 역사가이다. 그의 본명은 에밀 헤르조그, 1885년 프랑스 엘뵈프에서 태어나 루앙에서 공부하여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현대 프랑스의 가장 독창적이고 뛰어난 철학자로 손꼽히는 알랭의 제자가 되었다.

 

그가 역사서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1937년 <영국사>를 출간하면서부터다. 이후 1943년 <미국사>를 펴내며 역사가로서 입지를 다진 그는, 프랑스의 역사를 다룬 책도 집필해달라는 간곡한 요청을 받기 시작한다. 그러나 프랑스인으로서 자국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서술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고사를

 

 

 

 

 

 

 

 

 

프랑스의 기원

 

기원전 10세기경 알프스 산중에는 리구리아인, 피레네 산중에는 바스크인의 선조로 추정되는 이베리아인이 살고 있었다. 지중해를 건넌 페니키아인의 선원들도 와 있었다. 당시 셈족 상인들이 진주, 토기, 화려한 색깔의 직물 및 노예를 교역했다. 그 뒤를 이어 그리스 항해자들이 해안지대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동방 문명, 종교사상, 신비주의, 화폐, 올리브 재배법, 비교적 완전한 언어 등을 들여왔다.

 

기원전 6세기경 이오니아의 포카이아에서 건너온 항해자들이 건설한 마살리아는 그리스상인들이 브리튼(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에서 구입한 주석을 게르마니아 지방의 육로와 하천을 통해 들여와 수출하는 무역항이었다. 그리고 마르세유를 중심으로 그리스인이 건설한 식민 도시 니카에아(니스), 이가테 튜케(아그데), 앙티폴리스(앙티브) 등이 남프랑스 해안지대에 산재했다. 프로방스 지방의 풍물은 그리스인의 풍습으로 바뀌었고 이 지방에 올리브나무뿐 아니라 삼나무, 무화과, 포도, 석률 등이 들어왔다.

 

메로빙거 왕조의 역사는 갈로-로마의 주교 그레고아르를 통해, 훨씬 근대에 와서는 역사가 오귀스탱 티에리(1795~1856년)가 저술한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자유주의자인 티에리는 자신을 갈로-로마인의 훗손으로 맏고 싶어 하는 프랑스의 일반 민중을 프랑크족 후손인 이기적인 계급과 대립시키고 있지만 이는 전적으로 인위적인 것이다. 다고베르트 1세왕(629~639년)의 치세는 메로빙거 문명의 절정기로 이탈리아, 스페인, 게르마니아까지 관여했으나 이후로 왕조는 멸망의 길을 걸었다.

 

"메로빙거 궁전은 창녀굴이고 프레데공드는 굉장한 요녀다"

 

프레데공드 왕비와 브룬힐데 왕비 사이의 투쟁은 30여년 동안 이어졌다. 힐페리히 왕의 마음을 사로잡은 미모의 시녀 프레데공드는 모략 끝에 왕비가 되어 경쟁자들을 교살하고 그 소생들까지 박해한 역사상 매우 간악한 여자 중 한 사람이었다. 스페인 서고트 왕국 출신으로 벼락출세한 프레데공드와 동서지간인 브룬힐데는 프레데공드보다 16년을 더 살았으나 결국 아들인 클로타르 2세(584~629년)을 통해 사후 승리를 거둔 셈이다. 늙은 브룬힐데는 신하의 배반으로 클로타르 2세에 붙잡혀 달리는 말에 매달려 죽는 참혹한 처형을 받았다.

 

메로빙거 궁전의 생활은 터키의 할렘과 노예시장을 방불케 했다. 할렘에 득실거리던 수많은 여인은 왕비가 되려고 온갖 음모를 꾸몄다. 국왕이 사망하면 왕자들이 왕국을 분할 상속하는 관습으로 인해 왕위를 계승할 때마다 형제간에 불화가 발생했다. 아들들은 아버지에게, 형제들은 다른 형제에게 음모를 꾸몄고 패자는 처형내지는 수도원에 들어가 일생을 마쳤다. 왕들은 모두 처자를 살해했고 누구나 얼마 되지 않은 금전에 매매되었다. 다고베르트 왕처럼 명망 있는 군주도 수많은 첲첩으로 인해 심신을 소모한 나머지 서른네 살에 사망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가 존속되기는 어렵다.

 

중세기 프랑스 문명의 형성 

중세기는 고대 문명과 르네상스라는 찬란한 두 시대 사이에 끼어 있었으나 그렇다고 참담한 암흑시대는 아니었다. 오히려 중세기 문명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고 인간에게 도덕적, 사회적 평등을 부여하는 한편 서유럽의 위대한 예술작품을 낳았다. 물론 아테네, 로마, 비잔틴, 알렉산드리아가 과거에 성취한 문명은 12세기의 파리에 비견할 수 없을 만한 수준이었으나 고대 문명이 계속 발전하려면 새로운 접목이 필요했다.

 

프랑스 중세기 문명의 독창성은 지중해적 요소와 야만족의 요소를 융합해 새롭게 빚어낸 데 있었다. 프랑스 문명은 주변 문명이다. 인류의 새로운 개화 현상은 여러 가지 영향을 널리 받아들일 수 있는 이런 지역에서 성장하는 법이다. 프랑스는 지중해 해안에서, 그리스 로마 비잔틴 세계와 대서양 해안에서, 스칸디나비아의 바이킹과 피레네 산맥 지방에서, 이슬람교도와 라인 강 유역에서 야만족과 접촉했다. 이런 혼합을 통해 프랑스는 유럽 중앙의 영구적인 한 지방으로 머물 운명을 모면했다. 프랑스의 르네상스는 일찍이 10세기에 태동해 12세기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는데 그 사상과 예술은 전 유럽에 널리 전파될 기세였다. 

 

 문예부흥과 졸교개혁에 따른 프랑스의 변화

 

문예부흥은 하나의 정신혁명이라 할 수 있다. 이 정신혁명이 스스로 고대 철학과 스콜라 철학 간의 사상적 타협점을 찾고 있다고 믿는 동안 사실은 그 속에 국가주의, 프랑스 혁명, 근대 과학, 심지어 세계대전의 싹까지 잉태되고 있었다. 18세기 사람들은 국왕이 옥좌에 있고, 영주가 성관에 있으며 사제가 성당에 있는 것을 보고 본질적으로 변화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문예부흥에 따르는 지적혁명은 종교개혁과 아무런 공통점이 없었다. 문예부흥의 기본적인 본질은 계시된 진리라는 관념과의 절연이었다. 사실은 신교도 계시를 전혀 부인하지 않았고 단지 계시의 한계를 성서의 권위로 제한하려 했을 뿐이다. 20세기에 인문주의혁명은 가톨릭과 같은 정도로 신교도를 위협했다. 이 관점에서 신구교 간 종교전쟁은 형제간의 전쟁이라 할 수 있다.

 

문예부흥과 종교개혁은 실제로는 대립하는 운동이었다. 나중에 프랑스의 신교도는 기타 소수파와 마찬가지로 자유주의적이었고 문예부흥의 조류와 사실상 합류했다. 물론 16세기에는 위그노파의 어느 누구도 신교도의 이러하 변모를 예상하지 못했다. 칼뱅은 브리소네 주교보다 자유주의적이지 않았다.

 

프랑스 혁명

 

에베르와 당통이 죽자 로베스피에르가 프랑스의 주인이 되었다. 지나치게 힘을 얻은 그는 자기 앞에서 머리를 숙이지 않는 사람을 모두 적으로 간주했다. 그는 계속해서 혁명재판소에 보다 많은 사람의 목을 요구했다. 주교, 수도사, 무신론자, 왕당파, 공화주의자, 베르됭의 처녀들(1792년, 베르됭에 진주한 프로이센군을 환대한 처녀들), 징세 청부인 등이 단두대에서 이슬로 사라졌다.

 

로베스피에르는 전능했으나 전도가 막연했고 감각조차 상실한 상태였다. 목월 22일(1792년 6월 10일)에 발표된 법령이 개회 중에도 의원의 불가침권을 박탈해 생명을 위협하자 가장 겁이 많은 의원들도 이제 국가를 위해 행사하지 않던 용기를 발휘했다. 교활한 책사 푸셰는 공회, 특히 마레당을 움직였고 공안위원회에서는 카르노와 그의 동지들이 생쥐스트의 협박을 받고 로베스피에르의 적으로 전향했다. 처형은 더욱 극심해졌고 홀로 남게 된 과부와 고아들은 로베스피에르를 저주했다.

 

로베스피에르의 독재에 종지부를 찍는 사태가 발생했다. 유력한 의원 장 랑베르 탈리앵이 혁명재판소에 출정하려하자 자신에 대한 적개심이 치열함을 알고 있던 로베스피에르는 선수를 쳤다. 즉 1794년 7월 26일 로베스피에르는 국민공회에서 연설을 통해 보안위원회와 공안위원회의 숙청을 요구했다. 다음날 생쥐스트는 국민공회에서 교묘한 연설로 전제정치와 탄압, 국민의 대표인 위원의 권한 침해 등을 금지하는 조치를 강구할 것을 제의했다. 공회는 곧 무기한 개회를 선언했다.

 

"폭군은 물러가라!"

 

의장의 명령에 따라 헌병들이 로베스피에르 형제와 생쥐스트를 체포했다. 로베스피에르가 체포되었음을 알게 된 파리 코뮌은 교도소에 명령해 로베스피에르의 수감을 거부하고 시청으로 연행하게 했다. 다음 날 로베스피에르는 그의 일당과 함께 수많은 군중 앞에서 단두대에 올랐다. 군중은 환호와 갈채를 보냈다. "폭군들아 죽어라, 공화국 만세!"

 

체제 동요 이후의 프랑스

 

1815~1870년 프랑스의 가장 현저한 특징은 정치체제가 불안정하고 다양했다는 점이다. 프랑스는 사실상 인구적, 산업적, 군사적 우월성의 대부분을 상실했다. 권력이란 피통치자 대다수의 지지 없이는 권세를 발휘할 수 없는 법이다. 지지가 없어지는 순간 무정부 상태나 민심 동요가 일어나고 심하면 내란이 발생한다. 대혁명은 국왕에게서 존엄성을 박탈했고 그 후부터 프랑스에서는 정통성의 존재가 모호해졌다.

 

일부에서는 정통성이 부르봉 가문의 속성이라 믿었고 1870년에도 앙리 5세를 왕위에 추대하려고 완강히 고집하는 왕정주의자가 적지 않았다. 반면 국민의 기억에 남아 있는 샤를 10세의 그림자는 왕가의 존엄성을 흐려놓았다. 파리의 민중은 부르봉 가문의 국왕을 두 번이나 타도한 것을 자랑으로 여겼고 공화주의자들은 이 가문이 반동과 복수를 벼르는 당파의 수령이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분가는 상속권뿐 아니라 국민의 지지마저 잃어 아무런 정통성이 없었다. 제정은 망명 중인 나폴레옹 3세가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 않고 "오직 나만 시국을 수습할 수 있다"라고 말했으나 왕위 계승권과 자코뱅주의를 동시에 충족시키려는 보나파르트주의는 모순을 내포해 다시 집권할 가능성이 없었다. 대다수 귀족계급과 시민계금은 공화정체제를 공포정치와 무질서로 인식했다. 아무튼 어떤 정치체제든 프랑스 국민을 분열시킬 수밖에 없었다.

 

제5 공화국의 출범

 

10월 5일 헌법이 공포되었고 제5공화국이 출범했다. 드 골 장군을 지지하는 정당이 절대다수를 차지했다. 새 헌법은 대통령 선출을 광범위한 선거인단에 위임했다. 이제 국가원수 선출을 의회가 아니라 프랑스의 각 지방을 대표하는 선거인이 담당한 것이다. 코티 대통령은 이미 사의를 표명했으므로 가망성 있는 유일한 후계자는 국민 절대다수의 신임을 받던 드 골 장군뿐이었다.

 

드 골 대통령의 ㅈ지방 순행은 그의 인기를 그대로 반영했다. 프랑스 국민은 그들이 되찾은 자신감이 외국의 태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감지했다. 곧 자본이 프랑스로 쏟아져 들어왔고 과거의 음울하던 정세는 일변했다. 그동안 프랑스 통화는 외국의 불신을 받았으나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외화보유고가 20억 달러에 달했고 새로운 차관을 요청하는 대신 과거의 차관을 상환할 정도가 되었다.

 

경제적 지위가 강화됨에 따라 프랑스는 자주적인 외교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정부는 유럽을 통합하는 구상을 지지했고 경제공동체와 프랑스가 보다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을 강조하는 대서양공동체 등의 결성에도 찬성했다. 정부가 당면한 중요한 기본 문제는 다음과 같았다.

 

알제리~ 알제리의 미래를 자유투표로 선택하는 자결 방식을 제의

프랑스 연합~ 계속 정치적 유대를 맺는 그룹, 독립해서 프랑스와 유대를 유지하는 그룹

핵무장~ 국가방위를 동맹국가의 선의에만 의존해선 안 된다

세계정세~ 독일과 원만한 관계, 이탈리아와 친선관계를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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