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55)

모두가 자기 신념에 따라서만 전쟁을 하고자 한다면, 전쟁은 없어질 걸세.” 그는 말했다.

그렇게 되면 정말 좋겠죠.” 피예르는 말했다.

안드레이 공작은 피식 웃었다.

정말 좋겠지만, 그런 일은 결코 없거든……”

그럼, 당신은 뭐 때문에 전쟁에 나가시는 겁니까?” 피예르는 물었다.

뭐 때문이냐고? 나도 모르겠어. 그래야 하는 거니까. 또한 내가 전쟁에 나가는 것은……” 그는 말을 멈췄다가 이었다. “지금 여기서 보내고 있는 나의 삶이, 내 삶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야!”


(186)

그러나 이 기쁨은 오래가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빠는 모두가 이유도 목적도 모르는 채 말려들고 있는 전쟁에 참가하기 위해 우리를 버리고 간다고 하니까요. 사건과 사교의 중심인 그곳뿐만 아니라 흔히 도시인들이 전원의 노동과 자연의 고요가 있는 곳이라고 상상하는 이곳에서도 전쟁의 반향이 울리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무거운 마음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행군이니 진격이니 하시면서 나로서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씀만 하고 계십니다. 그제는 평소처럼 마을의 거리를 거닐고 있었는데, 갑자기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광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곳에서 소집되어 군대에 보내지는 신병들이었습니다…… 나는 출발하는 사람들의 어머니, 아내, 아이들이 비탄에 잠긴 모습을 보았고, 떠나는 사람과 보내는 사람이 오열하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인류는 우리에게 사랑과 모욕에 대한 용서를 가르쳐주신 구세주의 율법을 잊고 서로를 죽이는 기술 속에 자기들의 주요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80-281)

산 자와 죽은 자를 갈라놓은 것 같은 이 선을 한 발짝 넘어서면 미지와 고통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거기에는 무엇이 있을까? 누가 있을까? 이 들과 나무와 태양에 빛나는 지붕 저쪽에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알고 싶다. 이 선을 넘는 두렵다. 그러나 넘어보고 싶다. 그리고 머지않아 이 선을 넘어 거기에, 이 선 저쪽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은 죽음 저쪽에 무엇이 있는지 결국 알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지금 힘이 넘치고 건강하고 쾌활하고 흥분해 있고, 나와 똑같이 건강하고 활기차고 흥분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적과 마주보고 있는 사람들은 똑같지는 않아도 다들 이렇게 느끼고 있었고, 이 느낌은 이 순간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에 특별한 광채와 즐겁고 날카로운 인상을 주고 있었다.


(383-384)

이 사람들은 누구지? 무엇 때문에 왔지? 이 사람들한테 무엇이 필요한 걸까? 그리고 언제쯤 이런 것들이 모두 끝나는 걸까?’ 눈앞에서 변하고 있는 그림자들을 바라보면서 로스토프는 생각했다. 팔의 통증은 점점 심해졌다. 견딜 수 없을 만큼 졸음이 엄습했고, 눈 속에서 빨간 동그라미들이 튀었고, 이 목소리들, 이 얼굴들이 주는 인상과 통증이 고독감과 하나로 녹아들었다. 이 사람들, 부상하거나 부상하지 않은 이 병사들이 그의 힘줄들을 으스러뜨리고, 짓누르고, 비틀고, 부러진 팔과 어깨의 살을 지지고 있었다. 그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457)

아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길을 거쳐 요람에서 나와 어른이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온 세계 공통의 오래된 모든 경험도 백작부인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성장의 각 시기에 있었던 아들의 변화는, 그것과 똑 같은 길을 밟고 성장한 무수히 많은 사람이 마치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 그녀에게는 언제나 신기한 것이었다. 스무 해 전 그녀의 심장 아래 어딘가에서 숨쉬던 조그마한 존재가 응애응애 울기도 하고 젖을 빨기도 하고 옹알거리기도 한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던 것처럼, 이번에도 이 존재가, 편지로 미루어보건대 강건하고 용감한 사나이가 되어 세상의 아들들과 사람들의 귀감이 되었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509)

안개가 자욱한 밤, 달빛이 안개 속으로 신비롭게 비치고 있었다. ‘그렇다, 내일이다, 내일!’ 그는 생각했다. ‘내일, 어쩌면 나의 모든 것이 끝날지도 모른다. 이런 추억도 모두 사라지고 더 이상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 아마도 아니 확실히 내일이다, 내 역량을 남김없이 발휘할 순간이 마침내 처음으로 찾아온 것이다.’


(510)

그러나 내가 이러한 것을 원하고, 명예를 원하고, 남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원하고, 남들에게 사랑받는 것을 원하는 것. 내가 오직 그것만을 원하고, 오직 그것만을 위해 살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죄는 아니다. 그렇다. 그것만을 위해서인 것이다! 나는 절대 누구에게도 이런 말을 하지 않겠지만, 그러나 아아! 명예와 사람들의 사랑 외에 내가 사랑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죽음도, 부상도, 가족을 잃는 것도 나는 전혀 두렵지 않다. 많은 사람-아버지, 누이, 아내는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다-이 아무리 소중하고 사랑스럽더라도 명예의 한순간을 위해, 사람들에게 승리를 자랑하는 한순간을 위해, 내가 알지 못하고 앞으로도 알 일이 없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나는 아버지와 누이와 아내를 지금 당장이라도 버릴 수 있다. 이런 생각이 아무리 무섭고 부자연스러운 것이라 해도 나는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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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11-27 15: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이것 안 읽었는데... 어떤가요? 속도가 잘 나가나요?

bookholic 2021-11-27 20:33   좋아요 2 | URL
제가 고전을 읽기에 적합한 뇌를 탑재하지 않았지만,
이 책은 나름 잘 읽히고 있어요... 3권 마치고 4권 한 권 남았어요.
문학동네의 이 시리즈가 글씨도 좀 큼직하고,
번역도 괜찮게 되어있는 것도 한몫 한 것 같아요~~
즐거운 주말 되시고요~~^^

레삭매냐 2021-11-29 09: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십니다.
전 언제나 읽을 수 있을까요.

bookholic 2021-11-29 09:49   좋아요 0 | URL
레삭매냐 님도 언젠가는 꼭 읽으실 겁니다~~^^
즐거운 한 주 되시고요~~
 
잘 자요, 라흐마니노프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 2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정민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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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전에 아빠가 나카야마 시치리의 <안녕 드뷔시>란 책을 읽고 이야기해 줄 때, 이야기한 것처럼 <잘 자요 라흐마니노프>란 책은 아빠가 인터넷 서점에서 라흐마니노프 관련된 책을 찾다가 알게 된 책이란다. 장르는 무려 추리 소설.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로 부르는 클래식 음악을 주제로 한 추리 소설의 두 번째 이야기가 바로 <잘 자요 라흐마니노프>란다.

라흐마니노프에 대해서 아빠는 잘 모르고, 너희들도 좋아하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2>만 알아. 그래서 라흐마니노프에 관한 책을 검색해 봤는데, 아빠 입맛에 맞는 책은 찾지 못했고, 이 소설책만 알게 되었구나. 이 소설에 보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2>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나와 있었단다. 좀 긴 글이긴 한데 너희들에게 알려주고 싶구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2>을 들으면서 한번 두들겨볼게

====================

(142-143)

라흐마니노프는 1893년 볼쇼이 극장에서 상연된 오페라 <알레코>를 통해 신진 작곡가로 화려하게 데뷔한다. 그러나 4년 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된 <교향곡 제1>은 비평가들에게 지독한 혹평을 받았다. 거침없는 독설과 신랄한 비판, 작곡가의 성격까지 언급해 가며 헐뜯기를 서슴지 않는 비판은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젊은 라흐마니노프를 노이로제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우울증과 정신쇠약, 심지어 그 무렵에 연인 안나 로디젠스카야와의 관계가 끝난 것도 한몫 해 라흐마니노프는 창작 의욕을 잃었다. 표정에서는 웃음기가 싹 가셨고 곡상은 음표 하나 떠오르지 않았다. 가극단의 지휘자도 사임하고 말았다.

그를 걱정한 가족이 아는 사람을 통해 톨스토이에게 조언을 받을 수 있도록 힘썼다. 톨스토이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대작가인 데다 라흐마니노프도 그를 존경하고 있었기 때문에 라흐마니노프를 절망의 늪에서 구해 내는 데는 그가 적임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 문호화의 첫 만남은 최악의 결과로 끝난다. 라흐마니노프가 톨스토이 앞에서 새 가곡 <운명>을 선보였지만, 다 듣고 난 후 이 작가가 라흐마니노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런 음악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라흐마니노프는 더 침울해졌다. 식욕이 감퇴하고 육체적으로도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 정신과 의사 니콜라이 달을 만난다. 당시 유럽은 프로이크의 주요 저서가 출판되던 시기로 심리요법이 유행하고 있었는데 달 의사도 최면요법을 통한 노이로제 치료 전문 의원을 러시아에 개업한 것이다. 라흐마니노프는 달 의사를 찾아가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다행히 최면요법이 효과를 보여 차차 안정감과 자신감을 되찾는다. 이리하여 1901년 완성한 곡이 <피아노 협주곡 제2>이다.

이 곡이 대중에게 가닿고 극찬받는 것은 선율의 아름다움과 장대함은 물론 곡 전체에 러시아의 세기말적 분위기가 감돌고 있기 때문이리라. 불안과 절망이 가라앉아 있는 제1악장에서 혁명의 흥분과 환희가 폭발하는 제3악장까지. 마치 그 후에 발발하는 러시아혁명을 예언하는 듯한 구성이다.

====================


1.

, 그럼 소설의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

주인공 미사키 요스케는 <안녕 드뷔시>에서도 나왔던 그 천재 피아니스트이면서 예리한 추리력을 가지고 있던 그 사람이란다. 대학교에서 음대 강사로 일하고 있었어. 그가 일하고 있는 학교의 주요 학생들을 이야기해줄게. 기도 아키라는 평범하고 가난한 음대생으로 전공은 바이올린이란다. 남들이 악기 연주 연습을 할 때 그는 학비를 벌기 위해서 돈가스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 그런데도 학비가 밀린 상태라서 잘못하면 다음 학기는 다니지 못할 수도 있단다. 기도 아키라의 친구 쓰게 하쓰네. 하쓰네는 첼로를 전공하였고, 실력이 뛰어났단다.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하쓰네. 할아버지 쓰게 아키라는 유명한 피아니스트이면서, 같은 대학의 학장이었어. 우연히도 기도 아키라와 이름이 같네

학교에서는 이번에 오케스트라 공연을 하게 되었고, 연주자들은 오디션을 뽑는다고 했어. 곡명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2>이야. 피아노 협주곡이다 보니 메인은 피아노인데 피아노는 앞서 이야기한 학장 쓰게 아키라가 맡기로 했어. 워낙 유명한 피아니스트라서 그가 학생들과 피아노 협주곡을 한다는 소문이 나자 외부에서도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단다. 기도 아키라도 이 오디션에 관심이 있었단다. 그런 큰 무대에 서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오디션에 합격하면 학비가 면제된다고 했어. 학비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악기 연습이 부족한 아키라에게는 정말 좋은 기회였단다. 아키라는 정말 열심히 연습을 했단다.


2.

하지만, 학교에는 바이올린을 엄청 잘 연주하는 이루마라는 학생이 있었어. 바이올린 부분에서 일등을 하면 오케스트라를 이끌어가는 콘서트 마스터도 겸할 수 있는데, 이루마가 따 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오디션 당일 이루마가 최상의 연주를 했지만, 콘서트 마스터에 뽑히지는 못했어. 아무도 눈치를 못 챘지만 심사위원장으로 참석한 쓰게 아키라 학장은 그가 부상을 숨기고 연주했다는 것을 알았어. 이루마가 무리하지 않게 하려고 콘서트 마스터는 우리의 주인공 기도 아키라라가 되었단다.

기도 아키라는 이루마와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루마는 콘서트 마스터에 떨어진 이상 오케스트라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했어. 콘서트 마스터에 관심이 있어서 오디션에 참가한 거라고 했거든. 그리고 이루마는 남들이 모두 존경하는 쓰게 학장을 싫어한다고 했어. 그러면서 그의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어. 쓰게 학장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은 쓰게 학장처럼 천재 같은 소질을 갖지 못했지만, 아버지의 성화에 열심히 피아노를 배웠대. 쓰게 아키라는 실력이 자신보다 늘지 않는 자신의 아들을 혹사시키면서 피아노를 연습시켰단다. 그렇게 젊은 시절까지 피아노만 죽어라고 연습하던 아들은 결국 손가락이 부상이 와서 다시는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되었단다. 그때 쓰게 학장은 아들과 절연을 했고, 아들은 집을 떠나서 지금까지 무엇을 하는지 몰라. 그 쓰게 학장의 아들이 바로 기도의 친구 하쓰네의 아버지였던 거야. 너무 무자비한 사람이구나. 명예만 하는 정 떨어지는 사람.

….

이제 연습이 시작되어야 하는데, 이 시점에 사고가 터졌단다. 학교의 악기 보관소에서 2억엔이 넘는 스트라디바리우스 첼로가 사라졌단다. 마지막으로 빌린 사람은 하쓰네였고. 마지막으로 보관소를 지키고 있던 경비원은 아무도 보지 못했다고 했어. 그리고 보관소는 밤새 열쇠로 꽉 잠겨 있었다고 했어. 도대체 어떻게 사라진 걸까.

첼로가 사라져도 연습을 해야겠지. 지휘자는 에조에 부교수가 맡기로 했는데, 강압적이고 학생들에게 폭언을 하고 그랬어. , 요즘도 이런 선생님이 있으려나? 싶을 정도로 폭압적이었단다. 그리고 사라진 첼로의 범인이 누구일까 하는 생각에 오케스트라 단원의 결속력도 떨어졌어. 사실 기도 아키라도 콘서트 마스터를 처음 하는 것이라, 잘 이끌어가지 못했단다. 날짜는 다가오는데 오케스트라는 점점 산으로 가는 기분이었단다.


3.

대학교에서 계속 이슈와 사건들이 일어났단다. 먼저 자매결연을 맺은 미국의 대학교로부터 다량의 마약을 유입한 것이 밝혀졌단다. 하지만 익명이라서 누가 그랬는지 몰랐단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지휘를 맡았던 에조에 부교수가 무책임하게 지휘를 그만 하겠다고 했어. 후임도 정해주지 않고, 학교 행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그렇게 관둬도 되나? 일본에서는 이런 일이 있어도 되나 보네. 이젠 콘서트 마스터인 아키라가 지휘자까지 섭외를 해야 하나? 그렇다고 콘서트 단원들이 단합이 잘 되냐? 그들도 자신들의 이력에 도움이 되어 계속 연습을 하고 있지, 이미 마음은 떠났고, 불협화음은 계속되었어.

그 와중에 미사키 요스케 선생님이 지휘를 하기로 했대. 피아노뿐만 아니라 지휘도 할 줄 안다고? 너무 사기 캐릭터인 듯싶구나. 그런데 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단다. 이번에는 쓰게 학장이 살인 협박 메일을 받은 것이었어. 이 일로 연주회를 할 수 없다면서 쓰게 학장은 그만 두었어. , 다행히 지휘자를 다시 구했는데, 이번에는 이번 연주회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인 피아니스트가 없어지다니. 쓰게 학장이 피아노를 연주한다고 많은 관심을 갖던 연주회였는데 말이야. 이 소설의 최고의 빌런이구나.

요스케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 것 같았어. 따로 생각해 둔 사람이 있었나 봐. 요스케는 이번 연주회의 피아니스트를 학생에서 뽑자고 했어. 정말 순수한 아마추어 연주회지만 멋지게 해내려는 것이었어. 요스케는 피아니스트로 학생 중에 최고 실력자인 시모시와 미스즈로 하기로 했어. 그 이야기를 들은 아키라는 놀랬어. 시모시와 미스즈는 피아노는 최고이지만, 인성이 좋지 않아서 다른 악기들과 연주할 때 조화가 되지 않아 협주곡은 거의 안 했거든. 사기 캐릭터인 요스케에게 불가능이 뭐가 있겠니, 잘 설득해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잘 연주를 해 내겠지. 그것 뿐이겠니불가사의한 사건들의 내막도 다 밝혀내는 것도 요스케가 되겠지. 너무 완벽한 사람으로 나오니 좀 식상해지기도 하네. 너무 뻔한 스토리 라인에 실망이었단다. 간간이 나오는 음악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만이 위안. 그럼 어떤 내막이 있었냐고? 아참, 그 내막을 알기 전에 한가지를 알려주어야겠구나. 첼리스트 하쓰네의 손이 마비가 와서 병원에 가봤는데, 다발경화증이라는 치명적인 병명으로 확인이 되었단다. 다발경화증이라고 하면 천재 첼리스트 재클린 뒤 프레가 걸렸던 그 무서운 병이란다. 연주자에게는 치명적인 것이란다. 그리고 이 병은 유전으로 생기는 경우가 많아. 힌트가 되겠니? 맞아, 하쓰네의 할아버지이지 학장인 쓰게 아키라도 다발경화증이 있었어. 쓰게 아키라는 명예를 중요시 하는 사람으로 자신이 다발경화증이라는 것을 숨기려고 했단다. 미국에서 몰래 마약을 들여온 것도 그였어. 그 마약은 다발경화증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했거든.. 그런데 마약 밀수가 들통이 나서 더 이상 마약을 먹지 못하자, 다발경화증이 악화되어 연주를 할 수 없는 상태였어. 그런데도 숨기고 싶어하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알았던, 하쓰네가 할아버지에게 연주를 그만두게 할 핑계거리를 만들어 준거야. 바로, 살인협박 메일을 보내는 거였지. 첼로를 숨긴 것도 하쓰네의 짓인데, 그것도 연주회를 방해하기 위한 것이었단다.

사건의 내막은 이랬던 것이고, 연주회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성공적으로 잘 끝냈단다. 소설은 이렇게 끝이 났단다. 이해가 좀 안 되는 것은, 하쓰네의 할아버지였단다. 다발경화증을 그렇게까지 숨겨야 했었나 싶어. 그걸 밝히고도 명예를 충분히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명예를 꼭 음악적 재능으로만 지켜야 하는가? 훌륭한 지도자로써 또는 인간됨으로 충분히 명예를 지킬 수 있을 텐데 말이야. 하기야 아들과 절연까지 하는 인성을 보면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인 것 같구나.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 3권은 제목에 쇼팽이 들어가 있는데,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지 나중에 읽게 되면 또 이야기해주마.


PS:

책의 첫 문장: 시가 2억 엔인 첼로가 완전한 밀실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책의 끝 문장: 그리고 이 늙은 피아니스트는 잠든 것처럼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피가 끓고 가슴이 뛴다는 표현이 있는데,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연주하고 있으면 정말 혈액 온도가 올라간 듯한 착각이 들었다. 양팔의 근육이 필요 이상으로 긴장하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소리를 내면 낼수록 이 악기가 생물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목소리를 충실히 실체화해 주는 연주자를 내내 찾아다녔다고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거짓이라 생각되면 개방현으로 모든 현을 켜 보면 된다. 단 하나의 음인데도 다양한 뉘앙스와 색채로 변화해 갔다. 이것이 생물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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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1-27 12: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뻔한 스토리 이지만 음악, 음악가에 관해 저자의 해박한 지식에 놀라움을 ^ㅎ^

bookholic 2021-11-27 20:30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그건 인정....
but, scott 님보다는 적은 것 같아요..^^
 
도스토옙스키 컬렉션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 기념판) - 전11권 - 가난한 사람들 + 죄와 벌 + 백치 + 악령 +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석영중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1월
평점 :
품절


저도 잘 받았습니다. 다행히 박스 파손도 없이 잘 도착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무지 크고, 무거우면서도 멋집니다.
먼지낄까 비닐도 아직 안 벗기고 있어요..^^
이 전집은 내년 독서계획에 추가해야겠어요.
이런 책을 기획한 열린책들과 알라딘에 감사합니다.
도끼 선생님 생신도 축하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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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1-26 12: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볼때마다 탐이나네요 ㅜㅜ 축하드립니다~!!

bookholic 2021-11-27 03:15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새파랑 님의 고급진 도끼 선생님의 컬렉션 옆에 이 컬렉션이 놓여 있다면,
색상의 조화도 멋질 것 같아요~~~^^
책과 함께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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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그렇다면 누가 님비(NIMBY)인가? 전기를 많이 쓰면서도 우리 지역에 발전소가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쪽이 님비인가, 아니면 우리 지역에서 쓰는 전기도 아닌데 발전소와 송전선을 우리 지역에 건설하겠다고 밀어붙이니 거기에 반대하는 것이 님비인가? 사실은 서울과 그 인근 지역이야말로 극단의 님비이다. 외부에 전기를 의존하면서도 스스로 전기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는 곳이다. 게다가 발생하는 생활쓰레기도 자체 처리를 못하고 외부로 반출해서 버리는 도시가 서울이다.


(10)

그런데 이런 방식은 놔두고, 농지를 훼손해가면서 태양광발전을 늘리겠다는 것은 전환이 아니라 공멸로 가는 길이다. 이것은 전력시스템 측면에서 보더라도 매우 위험하다.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장거리 초고압송전에 의존하는 전력시스템은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경우 수도권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초고압송전선 몇 군데에서 동시에 사고가 나면 전력시스템이 붕괴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한전은 그 위험을 감추기 위해 송전선을 덕지덕지 건설하고 있지만 그렇게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해답은 지역분산형으로 전환하고, 자기 지역의 전력 자급률을 높이는 것이다.


(13)

외국의 지방자치제도를 보면, 군수와 군청이 아예 없는 나라도 많다. 그러니 면의 주민들이 반대하는 사업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사실 대한민국도 516 군사쿠데타 이전까지는 그랬다. 516 이전의 기초지방자치는 시, , 면 자치였다. 면장, 읍장도 직선으로 뽑고 면의원, 읍의원도 뽑았다. ()은 지방자치단체가 아니었다. 그런데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세력이 쿠데타에 성공하자마자 지방자치를 중단시키면서,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면,읍을 군()으로 강제 통합했던 것이다.

그런데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이런 박정희의 잔재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1991년 지방자치를 부활시키면서도 면,읍 자치를 부활시키지 않고 군 단위로 지방자치를 부활시킨 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이상한 지방자치를 하고 있다.


(25)

결국 이러한 문제의식들은 생명협동운동으로서 직거래운동과 유기농운동을 결합해 도농상생의 공동체를 일구기 위한 한살림운동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따라서 여기서 직거래운동은 유통마진을 줄여 생산자, 소비자 서로에게 이익을 주는 것에 머물지 않고, 상호 신뢰를 통해 생산과 소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꿔내는 새로운 경제운동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유기농운동 역시 농약과 화학비료 사용을 줄여 건강한 농산물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 순환과 생태계 복원, 생명존중 실천이라는 의미를 폭넓게 담고 있다. 따라서 친환경 유기농업의 등장 이유를 우루과이라운드 등 농산물 수입개방 상황에서 국내산 농산물의 경쟁력 강화 차원으로 설명하는 것은 이런 운동적 관점을 놓친 매우 협소한 시각이다.


(47)

고도로 화폐화된 자본주의사회는 세계화와 도시화로 필연적으로 귀결되어, 수많은 사회문제와 환경문제를 낳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지역화는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역화폐에 담겨 있는 본래적 의미를 잘 살린다면, 화폐(국가화폐와 은행화폐) 의존적인 삶을 벗어나 지역화된 사회로 이행하는 데 지역화폐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다. 홍동면의 지역화폐운동은 궁극적으로 화폐(지역화폐도 포함)가 부족해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한 공동체로 가는 이해 도구로 지역화폐만큼이나 유용한 것도 없다.


(56-57)

샤인머스켓은 낯선 과일이다. 칠레와 FTA 협상이 타결된 이후 눈에 띄게 늘어서 수입한 청포도라고 짐작했는데, 우리 땅에서 재배하는 일본 품종인 걸 얼마 전에 알았다. 기껏 육종했건만 한국에 주도권을 빼앗겨 아쉬움이 크다는데, 약삭빠른 일본 자본도 가끔 실수하나 보다. 먹어보니 씨가 없고 아주 달다. 유기농 포도를 재배하는 이는 포도 영양분의 85%가 씨에 있다는데, 샤인머스캣은 왜 씨가 없을까? 그렇게 육종한 걸까? 아니라고 한다. 꽃이 필 때와 열매가 생길 즈음, 식물 성장호르몬인 지베렐린을 두 차례 처리한 결과이다.

지베렐린은 사람과 가축에 해가 없다지만, 복합오염 시대에 우리가 그 위험을 아직 모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고 보니 요즘 거봉도 씨가 없다. 같은 방식으로 처리했을 텐데, 먹기 편해지려고 씨를 꼭 없애야 했나? 바나나도 씨가 없는데, 지베렐린과는 관계없다. 우연히 씨 없는 열매를 찾아냈고, 알뿌리로 번식이 가능한 그 다년생 풀을 집중적으로 재배해 오늘의 바나나 품종이 세계 과일시장을 점유하게 되었다. 씨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깨진 자동차 유리 파편처럼 생긴 씨앗이 촘촘히 박힌 바나나를 발견하면 새 품종을 찾을 기회이므로 팔지 않으니 시장에 나오지 않을 뿐이다.


(61)

신혼부부 앞에서 주치의는 태어날 당신 아들은 운동을 좋아할 텐데 야구에 적성이 맞고, 투수보다 유격수를 추천할지 모른다고 리 실버는 전망했다. 젊어서 담배를 하루 한 갑 이상 피우면 60세 이전에 폐암에 걸릴 확률이 80%가 넘으니 금연을 권하거나 수정란 유전자를 폐암을 피할 유전자로 바꾸라고 권유할 것으로 예견하면서, 그런 현상을 피할 수 없을 거라 확신했다. 자식에게 좋은 유전자를 주입하는 걸 누가 통제할 수 있겠는가? 좋은 유전자로 세대마다 바꾼 부유층은 그렇지 못한 일반 계층과 어울리지 않을 텐고 그렇게 10세대 이상 지나면 서로 다른 종으로 구별되고 서로 관심이 없어질 거라고 실버는 예상했다. 침팬지에게 인간이 애정을 느끼지 않듯.


(80)

라운드업은 광범위한 효능을 지닌 제초제일 뿐만 아니라 광범위하게 생명체들을 죽이는 독극물이다. 꽃가루를 매개하는 유익한 곤충이나 토양 생물을 말살한다. 라운드업레디 작물들로 인해 북반구에서 왕나비의 90%가 사라졌고, 과학자들이 곤충 대멸종이라고 부르는 현실 속에 우리가 놓여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GMO 대두를 이용하여 가짜 고기를 생산하는 일을 환경적으로 책임 있는 선택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96)

지난 2~3세기 동안 이른바 문명세계가 산업문명을 통해서 이룩했다고 하는 높은 생활수준은 실은 인간사회가 자신의 보금자리를 끊임없이 찢고 할퀴는 난폭한 짓을 되풀이함으로써 얻어진 부산물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서구 자본주의의 산물인 산업경제와 그것에 의존해온 근대적 문명은, 그것이 재생 불가능한 화석연료와 지하자원을 대량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는 것인 한,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종말의 파국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한계를 그 출발점에서부터 내포하고 있다.”


(113)

오늘날 과학기술의 힘이 막강하고, 부분적이나마 과학기술 수준이 찬탄스러운 것이라 해도, 과학은 여전히 우리의 삶의 바탕과 이 세상과 우주의 근원적인 진리를 해명하는 데에는 너무나 미약하고 부적절한 수단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하물며, 기계론적 우주관과 선형적 진보사관에 의지하여 전개되어온 지난 수세기의 근대과학기술의 성과는 이제 인류의 파멸까지도 배제하지 않는 지구생태계의 대재난을 초래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해온 것이 아닌가? 삶의 태반을 망가뜨리면서 그것을 진보와 발전이라고 믿어온 것은 실로 우매의 극치라 할 만하고, 완전한 미치광이짓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과학과 기술에 대한 인간의 본질적 관계, 그리고 근대과학의 근본가정에 깔려 있는 폭력성에 대한 뿌리로부터의 철저한 반성 없이, 계속하여 더 많은 과학과 더 정교한 기술만을 구한다면 파멸은 불가피할 것이다.


(120)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생명을 부정하는 모든 사회적 목표와 권력체계를 폐기해야 하고, 경쟁의 논리에 세뇌된 우리 자신의 내면을 해방시켜야 한다. 일찍이 미국의 문명비평가 루이스 멈퍼드가 갈파한 바와 같이, 우리와 우리 아이들의 장래는 결국 한 가지 조건에 달려 있다. 그것은 모든 수준에서 또 온갖 종류의 공동체에서 권력의 강화가 아니라 상부상조와 애정 어린 연대와 생명의식의 강화를 통해서 이 행성이 생명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재천명하는 방향으로 살려는 의식적인 노력이지금 당장 이루어져야 한다는 조건이다.


(131)

<녹색평론> 독자들 중에는 평론이라는 이름에 위화감을 느끼는 이들이 더러 있다. 그러나 평론이라고 굳이 고집해온 까닭이 없지 않다. 그것이 이 잡지 창간의 주요 목적이 저항에 있었기 때문이다. ‘평론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대상을 상대화하면서 철저히 의심하고, 질문하는 행위, 따라서 근원적인 의미의 저항을 뜻한다. 처음부터 <녹색평론>이 의도한 것은 무엇보다도 오늘날 한국사회와 세계 전체가 직면한 위기에 맞서서, 이 위기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올바르게 질문하는 것이었다. 올바른 질문을 통해서만 올바른 방책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사회에는 실로 다양한 의견-현실에 대한 분석과 진단, 해법들이 개진되고 있다. 우리가 묻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분석, 진단, 해법들이 과연 안심하고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전통적인 좌우의 이념과 논리를 가지고는 오늘날 세계가 직면한 위기의 본질을 정당하게 설명할 수도, 극복할 수도 없다는 판단 밑에서 작업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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