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북한의 초반 성공에는 또 다른 결정적 요인이 있었다. 옛 소련과 중국의 지원이다. 냉전 시기 내내, 북학은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양국을 영리하게 이간질해 이익을 취할 수 있었다. ‘사랑의 삼각관계에서 교묘히 이득을 추구함으로써 고래들 사이의 새우 신세인 자신의 약점을 전략적 자산으로 활용했다. 나중에 후대 정권이 중국과 미국의 우려를 활용해 이익을 취한 능력에서도 반복된 이 전략 덕분에 북한은 중소 양국으로부터 지속적인 구호를 얻어 낼 수 있었고, 이는 국민의 식량배급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북한 정부는 주민들이 이 모든 것을 김일성의 후덕함에서 나온 것으로 믿게 만들 수 있었다.

(48)

북한으로 수입되는 메르세데스, BMW, 렉서스 차량도 김씨 집안만을 위한 게 아니다. 정부 관리 상당수가 이런 차량을 소유하고 있다. 이들은 보통 유리창에 짙은 색을 넣은 검정색 차량을 선호한다. 고위 공무원의 차는 ‘727’로 시작하는 번호판을 달기 때문에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그 밖에 평양의 많은 부자 사업가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북한사람까지 도 고급 외제 차량을 갖고 있다. 자수성가해서 갑부가 된 이들이야말로 중국에서 들어와 비싼 가격에 팔리는 렉서스를 몰 만한 경제적 여유가 있다. 한 취재원은 김씨 집안이나 다른 엘리트 집안에 연결돼 있지 않은데도 실 자산이 1000만 달러가 넘는 사업가도 있다고 전했다. 새로 생겨난 민관 합작 사업 유치 게임에서 수완을 발휘해 부를 모은 신흥 자본가 엘리트 중 한 명일 것이다.

(72)

최근 평양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시내에서 태블릿 발견하기놀이를 즐긴다. 북한 엘리트들 사이에서 중국에서 구입한 태블릿은 재미있는 장난감이자 신분의 상징이다. 이른바 평해튼의 젊은 거주자들이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자신의 모바일 기기를 가지고 노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됐다. 북한 정부도 개발에 착수해 독자 모델인 안드로이드 태블릿 삼지연을 생산했다. 하지만 삼지연은 진정한 북한산은 아니다. 운영체제는 안드로이드이고 내부 회로는 중국 회사 예콘에서 가져왔다. 가격은 200달러인데, 평양 무역박람회에서 한 대를 구입한 소식통은 앵그리 버드 PDF 파일 리더, 미리 내려받은 전자책 약간이 갖춰진 상태였다고 설명한다. 기능은 국제적으로 알려진 대부분의 태블릿과 비슷한데, 한 가지만 예외다. 삼지연에서는 와이파이 기능이 없다. 와이파이는 북한 내부에서 전혀 쓸모가 없는 사양이기 때문이다.

(86)

이런 흐름과 함께 가는 것은 김정은 정부가 여가와 스포츠 활동에 새로운 관심을 보인다는 점이다. 강경한 선군 이미지로 유명했던 김정일이 사망한 이후 국가의 선전은 번영과 심지어 즐거움에 기초한 이미지를 선전하는 쪽으로 얼마간 옮겨 갔다. 이런 경향은 김정은이 총애하는 사업을 보면 알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미식 스키리조트이지만 그 밖에 테마파크와 3D 영화, 돌고래 쇼를 하는 시월드같은 물놀이공원도 있다. 이런 경향은 의심의 여지 없이 김정은 자신의 보다 젊고 친근한 개인 성향에 부합한다.

(103)

사실 지금 현재 누가 북한을 책임지고있는지는 말하기가 어렵다. 확실히 김정은 막강하다. 김씨 일가의 다른 개인도 힘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북한에서 절대적이지 않다. 그들 외에도 김정은의 부친 김정일이 구축한 막후의 권력 구조가 존재한다. 그런 구조 위에 김정은 자신도 제한된 권위를 물려받은 것이다. 이 권력 구조의 명칭은 조직지도부(OGD). 장성택의 처형을 김정은의 단독 결정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그 일로 인해 조직지도부가 얻을 게 훨씬 더 많았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동시에 조직지도부는 일반 조직이 아니라는 사실도 중요하다. 수장도 없는 조직인 데다, 여기에 혼란을 더하는 점은 조직원 중 일부는 진짜 조직지도부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125)

장성택이 제거되자 수천 명의 사람이 자기가 진심으로 좋아했던 지도자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협소해진 미래 전망에도 적응해야 할 처지가 됐다. 장성택이 처형된 충격적인 방식 또한 그의 라인에 속한 고위 인사 일부에게는 생생한 두려움을 주입했을 것이다. 이것은 라인의 불안정과 내부 다툼은 물론 이탈의 가능성도 증가시킨다. 장성택을 제거한 세력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장성택의 숙청이 시작됐을 때 김정은은 실제로 북쪽 지방 양강도 삼지연군에 있었다. 삼지연은 백두산에 인접해 있기 때문에 북한 신화에서 중요한 곳이다. 북한은 김정일이 백두산에서 태어났다고 선전하고, 김씨 가문은 백두혈통을 잇는 것으로 소개된다. 삼지연은 비상시에 김씨 가문 일원과 고위 엘리트 들이 집결할 수 있는 요새 지역 중 한 곳이기도 하다. 중국 국경이 바로 옆에서 있기 때문에 정말 더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면 지도자와 가족은 걸어서 북한을 탈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숙청이 벌어지던 동안 삼지연에서 김정은과 함께 있었던 인물 중에는 황병서 당시 조직지도부 부부장과 가까운 조직지도부 일원인 김원홍 국가안전보위상이 있었다.

(179)

국가안전보위부가 일단 당신을 소환하면 인생은 영원히 바뀌고 만다. 그 시점에 이르면 당신은 사실상 어떤 반국가 활동을 한 정치범으로 확정이 된 것이다. 기적적으로, 힘 있는 사람이 개입된다거나 하는 일이 생기지 않는 한 당신은 약식 공개 재판에서 죄를 자백하게 되고, 정치범수용소로 보내진다. 그 후로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남아 있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가족도 따라갈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것이다. 결정은 국가안전보위부가 내린다. 적정한 혹은 투명한 법적 절차라는 것은 없다.

(195)

김정은의 아니 리설주는 일종의 유행 선도자다 리설주의 스타일은 평양의 신흥 부유층 여성의 전형이면서 지나치게 현란하지는 않은 수준이다. 흥미롭게도 리설주는 가끔씩 공식 행사에서 김일성 배지를 달아야 할 자리에 브로치를 단다. 또한 바리 정장을 입고, 심지어 하이힐도 신는다. 하이힐은 북한에서 최근까지도 문란하다는 이미지를 주었지만 이제는 여성성을 나타낸다. 리설주는 최고 지도자의 부인인 데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꽤 인기가 있기 때문에 의상에 관한 한 젊은 여성들에게 새로운 모델이 되고 있다. 모란봉악단 역시 비슷하다. 김정은이 직접 창단한 것으로 알려진 악단의 단원이 짧은 치마를 입는다는 건 주민들도 옷차림에서 덜 보수적이어도 된다는, 사실상의 청신호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201)

북한 사람이 한국 사람을 멋있어 하고 따라 하고자 하는 모습은 상식적으로 반정부 행위로 여겨진다. 하지만 북한 사람도 한국 사람이 키도 크고 잘생겼으며, 자기네보다 훨씬 더 나은 수준의 생활을 한다는 사실을 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논평가들은 북한이 개방을 하게 되면 북한 사람이 한국의 우월한 삶의 질에 대해 알아 버리게될 것이기 때문에 북한 정부로서는 경제개혁을 결코 추구할 수 없다고 말하는데, 북한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바로 북한 주민의 정권 전복 의지로 연결되는 건 아니다. 여전히 대부분의 북한 사람은 정권 전복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모든 사람이 더 나은 질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정부가 경제개혁과 개방을 추구하기를 바란다.

(252)

동시에 북한이 처해 있는 보다 광범위한 지정학적 환경이 놀랄 만큼 잘 균형 잡혀 있다. ‘미치광이평양이 한국이나 심지어 미국에 핵공격을 벌일 수도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지도부는 그런 자살 공격을 고려할 아무런 동기가 없다. 북한 지도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비이성적인 것은 아니다. 더구나 미국과 한국 역시 북한에 대한 공격을 자제할 분명한 동기가 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과 중국의 현상유지 지지다. 중국 정부는 최근 북한 정부를 불만스럽게 여길 수 있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제재가 북한을 한계점까지 몰아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동안 수년간 계속된 제재에도 평양에 사치품이 넘쳐나고 나아가 경제성장을 구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253)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단기 혹은 중기적으로 볼 때 북한에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큰 시나리오는 현 정권 지배하에서의 점진적은 국가 개방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지금은 이윤을 추구하는, 그러면서도 여전히 봉건적이고 전통적인 사회주의 낙원북한은 오래전부터 바깥세계를 놀라게 할 힘이 있었다. 앞으로 10~20년 후 북한이 어떤 모습일지 진정으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때까지 우리는 당혹감과 희망이 뒤섞인 심정으로 계속 지켜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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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너는 학교 다닐 필요가 없다. 본디 학교의 목적은 미래가 없는 아이들이 보호령을 위해 일할 나이가 될 때까지 맡아서 놀리는 것뿐이지 않니. 너 정도 지위의 아이들은 가정교사를 두면 되는데, 왜 그런 기본적인 특권을 마다하는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구나. 네 어미도 그걸 가지고 끝없이 잔소리를 해대는데. 어쨌든 간에 네가 안 온다고 신경 쓸 사람은 없다.”

(93)

괴물은 또 이 말들이 딱 들어맞아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뜻을 설명해 주기를 바랐어. 그래서 입을 열었더니 시가 나왔어.

둥글고 노랗고, 노랗고 둥글다.” 괴물이 말했고, 그러자 해가 생겨나서 머리 위에 떴지.

파랗고 희고 검고 잿빛이고 동틀 때는 색이 터져 나온다.”

괴물이 말했어. 이렇게 해서 하늘이 생겼어.

삐걱거리는 나무, 부드러운 이끼, 속삭이고 살랑이는 녹색, 녹색, 녹색.” 괴물이 노래했어. 그게 숲이 되었지.

우리가 볼 수 있고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습지가 노래로 불러 만들어냈어. 그래서 습지는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는 습지를 사랑하지.

마녀가 습지에? 말이 되니.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처음 들어본다.

(144)

시인이 말하기를 조급함은 작은 존재의 것이다. 벼룩, 올챙이, 초파리 같은. 우리 루나는 초파리보다 훨씬 뛰어나잖아.”

(296)

누구나 단 한 가지만은 아닌 거야. 나는 글럭이야. 나는 네 친구야. 나는 루나의 가족이야. 나는 시인이야. 나는 창조자야. 나는 습지야. 하지만 너한테 나는 그냥 글럭이지. 너의 글럭. 그리고 나는 너를 아주 사랑하고.”

(323)

도서관도. 지식은 강력한 힘이지만, 지식을 가두고 감춘다면 끔찍한 힘이 되어 버려. 오늘, 지식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 되는 거야.” 에신은 윈과 팔짱을 꼈고 두 사람은 탑을 돌아다니며 잠긴 문을 모두 열었다.

(382)

엄마에게 마법이 있었다. 루나는 느낄 수 있었다. 루나의 마법과는 다른 종류였다. 루나의 마법은 뼈와 조직과 세포 하나하나에 스며 있었다. 엄마의 마법은 오랜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바구니 안에 남아 있는 온갖 잡동사니 같았다. 달그락거리는 부스러기와 조각들. 그래도 루나는 엄마의 마법을 느꼈다. 엄마의 갈망과 사랑도. 피부를 통해 느껴졌다. 그게 루나의 몸 안에서 솟구치는 힘을 더 대범하게 해 주었고 넘치는 마법의 길을 이끌어 주었다. 루나는 엄마의 손을 더 꼬옥 쥐었다.

(383-384)

. 지식이라는 게 머리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란다. 네 몸, 네 심장, 네 생각에서도 나오지. 가끔은 기억에 저 나름의 생각이 있을 때도 있어. 우리가 만든 공기방울이 꽃을 안전하게 지켜줬지. 생각나? 공기방울을 만들어. 공기방울 안에 또 방울을 만들고, 마법의 공기방울. 얼음의 공기방울. 유리와 철과 별빛의 공기방울. 습지의 공기방울. 중요한 건 재료가 아니라 의도란다. 상상력을 동원해서 하나씩 그려봐. 집 둘레에, 텃밭 둘레에, 나무 둘레에, 농장 둘레에. 마을 전체에 두르고, 자유도시의 마을들도 둘러. 공기방울과 공기방울과 공기방울들. 둘러싸. 지켜. 우리 셋이서 같이 네 마법을 쓸 거야. 눈을 감으면 어떻게 하는 건지 보여 줄게.”

(395-396)

심장은 별빛과

시간으로 만들어진다.

바늘 같은 그리움은 어둠 속에 사라진다.

끊기지 않는 화음이 무한과 무한을 잇는다.

내 심장이 네 심장에 소원을 빌고 소원이 이루어진다.

그러는 동안 세상은 돌아간다.

그러는 동안 우주는 팽창한다.

그러는 동안 사랑의 신비가 드러나고

다시 또다시, 너의 신비 속에서.

나는 떠난다.

나는 돌아온다.

글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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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홍타이지의 불만은 이어졌다. 홍타이지가 특히 맹렬히 비난한 것은 공유덕, 경중명과 관련된 사안이었다. 그들이 귀순해 올 때 조선이 명을 도와 그들을 요격하려고 시도했던 것은 전쟁의 단초를 여는 행위였다고 규정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조선 신료들을 비난하고 조롱한 점이다. 그는 인조의 신료들을 가리켜 책은 읽었지만 백성과 나라를 위해 경륜을 발휘할 줄은 모르면서 한갓 허언(虛言)만 일삼는 소인배들이라고 매도했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그들 서생(書生)들이 10년간 이어져온 화의를 폐기하고 전쟁의 단서를 열었다고 비난했다.

(60)

정온은 청과 결전을 벌이자고 강조하면서 인조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다. 진정으로 오랑캐와 싸워 나라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반정공신들이 거느리고 있던 정예병들을 원수에게 배속시키라고 요구했다. 정온은 온 나라의 정예병과 무사가 전부 반정공신들 휘하에 배속되어, 평소에는 그들의 농장을 관리하다가 유사시에는 호위를 핑계로 전장으로 가는 것을 피하고 편안함을 취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정묘호란 당시에도 멀쩡한 정예병들이 적과의 싸움은 기피한 채 강화도에 머물면서 내란이 있을까 걱정스럽다는 말만 되뇌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사헌부 관원들도 비슷한 주장을 폈다. 정예병이란 정예병은 모두 반정공신 휘하 군관들에게 소속되어 사병처럼 부려지고 있는 현실을 뜯어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179)

대국 명조차 자신에게 벌벌 떨고, 막강한 차하르 몽골까지도 항복했는데 소국 조선은 끝까지 자신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그것은 홍타이지의 자존심을 몹시 상하게 하는 것이었다. 조선의 뻣뻣한 태도는 공유덕을 비롯한 한족 출신 귀순자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명의 번국인 조선도 끝까지 고개 숙이기를 거부하여 명에 대한 의리를 배반하지 않았는데, 명의 신료들이 먼저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었다는 비아냥이 나올 수 있었다. 그럴 경우, 한족 출신 귀순자들이 동요할 가능성이 있었다. ‘남조에 본보기를 보이려 한다는 대목에서도 그러나듯이 홍타이지는 인조를 불러내 자신 앞에 무릎을 꿇려야 할 절박함을 갖고 있었다.

(181)

인조는 반정이라는 비정상적인 정변을 통해 추대된 임금이었다. 인조를 옹립했던 시하들은 분명 광해군보다는 훨씬 나은 임금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그를 선택했다. 하지만 인조가 산성에서 나가 홍타이지에게 무릎을 꿇을 경우, 그를 추대한 신하들은 인조의 처참한 몰골 앞에서 어떤 생각을 할까? 쫓겨난 광해군에게 문제가 많았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는 그래도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어야 하는 지경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명분을 목숨보다 중하게 여기는 신하들이 나를 과연 임금으로 계속 떠받들어 줄 것인가?’ 인조로서는 생각하기조차 끔찍한 시나리오였다. 인조가 홍타이지에게 출성만은 면하게 해달라고 간청했던 데에는 이 같은 절박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281)

인조는 반정을 통해 추대된 임금이라 훈신들의 입김에 밀려 왕권이 위축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애초부터 안고 있었다. 실제로 1629 7, 인조는 조정 신하들에게 압제를 받고 있다며 자조했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병자호란 이후 확 달라졌다. 왕좌를 유지하기 위해 친청파로 변신했다. 하지만 변신이후에도 청이 입조론과 왕위교체론을 흘리며 압박해오자 권력을 지키기 위해 폭주 기관차처럼 내달렸다. 소현세자의 급사, 왕세자의 교체, 원손 지위의 박탈, 강빈의 사사 등이 그 과정에서 일어났다. 그것은 인조와 소현세자를 이간시켜 충성 경쟁을 부추겼던 청의 획책이 빚어낸 비극이었다. 나아가 병자호란이, 역설적이지만, 인조가 추대된 임금이라는 정치적 굴레를 벗어던질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364)

1633년 명의 반장 공유덕과 경중명 등이 전함과 수군을 이끌고 후금으로 귀순했던 이후 인조 정권이 보였던 태도 또한 유사했다. 당시 명과 조선이 공유덕 등의 귀순을 저지하지 못함으로써 후금은 분명 수군과 전함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인조 정권은 이 사실이 갖는 중대한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후금이 수군과 전함을 운용할 수 있게 된 이상, 유사시 조선이 피난처로 생각하고 있던 강화도는 더 이상 안전한 곳이 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이후 조정에서 어떤 대책이 제시되었다는 기록은 없다. 인조와 신료들은 여전히 강화도로 들어갈 궁리만 했고,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 방어를 책임졌던 김경징은 청군이 날아서 건너오기 전에는 절대로 안전하다며 대책을 마련하라는 주장을 일축했다. 전쟁 이전 청이 너희는 보나마나 유사시에 강화도로 들어가려 할 것이라고 비아냥거렸음에도 말이다. 급기야 1637 1 22, 청군은 전함을 동원하여 상륙작전을 감행하여 강화도를 함락시켰고, 강화도가 무너지면서 남한산성도 무너지고 말았다.

인정 정권은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정략적이고 주관적으로 해석하거나 아예 사실 자체를 망각했다가 커다란 비극을 불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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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무엇보다 반정을 통해 정권이 바뀐 이후의 불안정한 민심을 채 수습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괄의 난을 겪은 것이 자충수였다. 실제로 대동청, 재성청 등에 보관된 문서는 이괄의 난을 계기로 대부분 사라져버렸다. 거기에 정권이 바뀌고, 새로 등장한 정권이 또 다시 바뀔 뻔하는 격변을 겪으면서 민심이 크게 동요했고, 그 와중에 권력을 지키는 것이 다급해진 인조 정권은 개혁을 밀어붙일 수 있는 동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거기에 명나라 사신들의 어마어마한 은 징색, 가도 모문룡 진영의 항상적인 양곡 수탈까지 더해지면서 토적을 위한 군사력 증강계획은 근본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157)

요컨대 정묘호란은, 홍타이지의 권력 강화 필요성 등 후금의 내부사정과 조선, , 후금 사이의 얽히고설킨 관계에서 비롯된 복합적인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조선에서는 정묘로한을 강홍립이 후금을 사주하여 일으킨 전쟁으로 단순하게 규정하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송시열이 <삼학사전>에서 정묘호란을 강홍립이 오랑캐를 인도하여 국경을 침범한 사건이라고 했던 것을 비롯하여 서인계(西人系) 인물들은 대부분 강홍립이 오랑캐를 부추겨 도발한 전쟁으로 정의했다. 정묘호란을 아예 강노의 침입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강노란 물론 강홍립을 가리킨다.

(208)

이렇게 표방과 실천이 서로 괴리하는 모습을 보였던 인조의 행태에 대해 1630 3, 가평군수 유백증은 직격탄을 날린다.

, 오늘날 할 말이 많은데 나라의 흥망은 전적으로 군덕(君德)의 득실에 달려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지나치게 자신하여 남을 따르게 점이 부족하고, 의심이 많으면서 이기기를 좋아하는 단점이 있으며, 인자함은 충분하나 위엄과 과단성이 부족하고, 근심하고 애쓰는 것은 간절하나 실덕(實德)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안으로는 주석(柱石)처럼 의지할 만한 신하가 없고, 밖으로는 외적을 막는데 간성(干城)처럼 맡길 만한 인물이 없습니다. 인심이 원망하고 등을 돌려 역변이 잇따라 일어나고 공안(貢案)이 고쳐지지 않아 부역이 불균등하기만 합니다. 호령을 내리는 것도 조변석개(朝變夕改)라 은혜와 믿음은 백성에게 미치지 못하고, 이익만 따르고 공도(公道)가 무너져 벼슬길이 혼탁해져 뇌물 꾸러미가 조정에 횡행하고 있습니다. 나라가 위급한 것이 마치 끊어지려는 실끔과 같은데, 신은 광해(光海)가 아직 죽기 전에 종사가 먼저 망해 천고의 웃음거리가 될까 두렵기만 합니다.”

(259)

정묘호란 이후 조건은 이렇게 모병과 후금군 사이에서 난감한 처지로 내몰리고 있었다. 모문룡은 조선이 오랑캐후금과 화약을 맺은 것을 힐난했고, 후금은 그들대로 조선이 맹약을 어리고 자신들을 배신했다고 비난했다. 조선 조정은 양자 사이에 끼여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다. 모문룡에게 후금과 화약을 맺은 것은 부득이한 기미책(羈縻策)임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면서 후금 사신들의 통행을 방해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효과가 없었다. 모병들은 이후에도 계속 사단을 일으켰고, 후금군도 그에 맞서 병력을 풀어 요격하는 상황이 빚어졌다. 모병들은 후금군에게 피해를 입을 경우 조선 관민들에게 분풀이를 했다. 요컨대 정묘호란 이후 조선은 샌드위치가 되었고 청천강 이북 지역은 화약고가 되었다.

(370)

1634 11, 강학년은 인조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인조가 자신을 장령으로 임명하자 서울로 올라오는 대신 상소를 올렸다. 그는 상소에서 인조의 실정을 조목조목 거론했다. 광해군의 아들을 죽인 것, 숙부 인성군을 죽인 것, 생부 정원군을 부묘하려는 것 등을 통렬하게 비난했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은 중국의 고사를 인용하여 인조반정 이후의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다음의 내용이다.

“<서경>정치는 어지러워지기 전에 제어하고 나라는 위태로워지기 전에 보전하라고 했는데 전하의 국사는 이미 위태롭고 어지러운 지경에 들어섰습니다. 여러 차례 대란을 겪었음에도 조금도 허물을 반성하지 않고 고식책만을 써서 패망의 지경에 이르게 되었으니…… 옛날 난정 때문에 나라를 전복시킨 자들과 똑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인데, 신은 그 종말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당초 전하께서 반정한 거사는 변화에 적절히 대응한 세상의 드문 조처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백이(伯夷)가 있었다면 반드시 포악한 자가 포악한 자를 갈아치웠다고 비난했을 것이고, 엄연년이 있었다면 반드시 곽광(霍光)을 탄핵하는 조처가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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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

음악은 항상 현재여야만 한다. 박물관에 진열돼 있는 전시품이 아니라, ‘현재를 함께 살아가는예술이 아니면 의미가 없어. 아름다운 화석을 캐냈다고 거기에 만족해서는 그냥 표본에 그쳐버리기 때문이지.

뺨을 어루만지는 바람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방금 전 다카시마 아카시라는 사람의 연주는 재미있었다. 수면의 잔물결, 시원스레 지나가는 바람, 칠흑 같은 우주까지 보였다. 저 사람 역시 자기만의 음악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308)

하지만 굉장히 어려울 거야. 진정한 의미로 음악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지? 음악을 가둬두는 건 홀이나 교회가 아니다. 사람들의 의식이야. 경치가 아름다운 바깥으로 데리고 나갔다고 해서 진정소리를 데리고 나갔다고 할 수 있을까? 해방했다고 할 수 있을까?

(433)

은하계 변두리 어딘가에 지구하고 비슷한 조건의 별이 있고, 비슷한 공기에 음파도 비슷하게 전달된다면 역시 음악이 발달하지 않을까? 그러면 비슷한 악기가 발달한 테고, 피아노 같은 무언가를 은하 어디선가 열심히 연주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 글쎄.”

마사루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가능성은 있겠다. 그러면 그 별에도 모차르트나 베토벤이 있을지 몰라.”

(468)

프란츠 리스트 작곡, 피아노 소나타 나단조.

1852년부터 1853년 사이에 작곡, 초연은 1857.

리스트는 이미 피아니스트에서 은퇴했기 때문에 그의 제자 한스 폰 뵐로가 연주했다.

걸작으로 칭송받는 이 곡은 소나타 형식으로는 상당히 이색적이다. 소나타라는 이름을 붙인 탓에 발표 당시 이 곡이 소나타인지 아닌지를 둘러싸고 심각한 논쟁이 벌어졌다. 너무나 참신한 구조 때문에 매섭게 비난받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일반적인 소나타 형식에서는 주제부와 전개부가 악장별로 연주되는데, 이 곡은 악장이 나뉘어 있지 않고 전체가 하나로 이어진 1악장 형식이라는 점을 가장 큰 특징으로 들 수 있다.

30분 가까운 대작으로 어려운 곡이 많기로 유명한 리스트의 곡 중에서도 다양한 기량이 요구되는 최고 난이도의 곡이다.

(538)

가자마 진이 허공을 힐끔 올려다보았다.

세상에 나 혼자 남아도 들판에 피아노가 굴러다니면 끝없이 연주하고 싶을 정도로 좋아해.’

세상에 나 혼자.

이런 곳이야?’

아야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끝없이 펼쳐진 황야.

바람이 분다. 어딘가 멀리서 새소리가 들린다.

드높은 곳에서 빛이 쏟아진다.

휑하고 척박하지만, 어쩐지 마음이 충만해지는 장소.

맞아, 이런 곳이야.’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도?’

.’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도 음악가라고 할 수 있을까?’

모르겠어. 하지만 음악은 본능인걸. 새는 세상에 한 마리만 남아도 노래하잖아. 똑 같은 것 아닐까?’

(641)

라흐마니노프의 악보를 처음 보았을 때는 이런 걸 어떻게 치란 말이야,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그야말로 악보 밖으로 흘러넘치는 것 아닌가 싶을 만큼 수많은 음표들. 양손 화음이 끝도 없이 잔뜩 늘어서 있는 새까만 악보.

동경하던 낭만적인 2번을 몰래 연습해보았을 때는 해서는 안 될 장난을 치는 기분이었지. 물론 그때는 결국 흉내도 내지 못했다. 띄엄띄엄 연주하는 게 고작이라, 한 곡을 끝까지 연주할 체력도 기력도 없었던 것이다.

(654)

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에 아주 조금, 지상의 중력이라는 멍에에서 벗어나기 위한 무언가를 덧붙인다면.

음악을 한다는 것이 그에 가장 합당한 답 아닐까? 눈에 보이지도 않고, 나타나는 순간에 곧 사라지는 음악. 그 행위에 정열을 쏟고, 인생을 바치고, 마음을 강하게 빼앗기기 때문에 다른 생물과 구별되는, 인간에게 덧붙은 작은 마법 같은 옵션 기능이 아닐까?

, 어느 정도 진실을 담아낸 답인 것 같아.

(674)

아아, 알 것 같아. 옛날에는 자연 속에서 음악을 듣고 기록해왔는데, 지금은 아무도 자연 속에서 음악을 듣지 않고 자기 귓속에 가두어두지. 다들 그게 음악이라고 생각해.

맞아. 그러니까 갇혀 있던 음악을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자고 얘기했어. 어떻게 해야 할지는 선생님도, 나도 몰랐어. 선생님은 이제 안 계시지만 나는 계속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어.

(693)

뮤직. 그 어원은 신들의 기술이라고 한다. 뮤즈의 결실.

소년은 뮤직이다.

그가 곧,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곧 음악이다.

음악이 달려간다.

이 축복받은 세상 속에서 한 사람의 음악이, 하나의 음악이, 고요한 아침을 가르며 바람처럼 멀어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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