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쪽)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제대로 순환해야 건강하다.

순환이 원할치 못하면 병에 걸리고, 멈추면 죽는다.

38억 년 동안 살아온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개체의 삶은 짧아도 개체들이 모인 종의 수명은 길듯,

종들이 어우러진 생태계의 수명은 더욱 긴데,

순환되는 생태계는 38억 년 동안 지구를 건강하게 이끌고 있다.

영국의 제임스 러브록은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라고 주장한다.

진화와 멸종을 반복하면서 표면의 수많은 생명체들이 숨 쉬고 먹고 배설한 이래,

지구는 자신의 체온을 유지하면서 대기를 구성하는 원소의 균형을 변함없이 유지해 왔다며

그는 지구를 '대지의 여신', 즉 '가이아'라고 찬미했다.



(41쪽)

어떤 곤충을 해충이라 배척한다면 익충이라 반기는 곤충도 있을 테지.

그런 곤충들에게 사람은 어떻게 인식될까?

광대무변의 탐욕을 가진 생물은 아닐까?

지구촌에서 가장 늦게 동참해 생태계를 제멋대로 교란한 인간은 편견도 참 많다.

가치중립을 외치는 점잖은 곤충도감도 바퀴를 해충이라고

몰아붙이는데 뒤지지 않지만,

생태계에 잡초가 없듯이 해충도 있을 수 없다.

다 나름대로 질서를 가진 존재의 이유와 가치가 있다.

파리와 모기, 그리고 바퀴가 사람에게 질병을 옮긴다지만

사실 사람에게 질병을 옮기고 싶을 리 없다.



(60쪽)

겨울철새는 단순히 운이 나빴던 걸까?

앞서 내려앉은 철새들이 평화롭게 내려갔을 뿐인데.

내려와 보기 웬 구더기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

허기진 철새에게 구더기는 반가운 영양식임에 틀림없으니 허겁지겁 먹었을테고,

이윽고 구더기는 보툴리눔 균을 겨울철새에 전파시킬 수밖에 없었을 터.

정신은 멀쩡한데 슬그머니 온몸은 마비되더니 날 수가 없다.

공포에 질려 물에 떠 있을 수밖에 다른 방법도 없는데

창공에서 그 모습을 본 철새들이 연이어 내려온다.

그리고 구더기를 허겁지겁 훑어 먹는다.

구더기들은 유수지에 맥없이 떠 있는 철새의 옆구리를 뚫고 꾸물꾸물 연실 빠져나온다.



(88쪽)

개중에 미꾸리도 있었을 테지만 

우리는 암갈색에 거무튀튀한 무늬가 지저분하게 배열된 녀석들을 통틀어 미꾸라지라 했다.

미꾸리는 분류학적으로 미꾸라지와 매우 가까울 뿐 아니라

사는 곳도 같아 전문가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구별하기 어렵다.

입주변 5쌍의 수염이 미꾸라지보다 짧고 비늘도 작고

몸도 날씬한 편이라지만 그 정도로는 구분하기 어렵다.

성능 좋은 돋보기로 옆줄의 비늘을 세어 150개가 넘으면 미꾸리,

모자라면 미꾸라지라고 전문가는 판정할 것이다.

미꾸라지와 미꾸리는 창자 호흡을 한다.

그래서 항문으로 공기방울을 내놓기도 하는데,

그것을 보고 '밑이 구리다'했고, 그래서 미꾸리가 되었다는 설이 지배적인데,

미꾸리가 미꾸라지보다 창자 호흡에 많이 의존하는 모양이다.



(152쪽)

대부분의 민물고기가 그렇듯, 강물이 따뜻해지는 5월마다 짝짓기에 들어가는 누치는

겨울이 유난히 길었던 2010년이 더욱 불안했을 터.

지구온난화 탓으로 번식 시기가 앞당겨지는데 얼음이 늦게 녹지 않았나.

봄이 짧아지리란 걸 직감해 모래와 자갈 바닥을 선점하려 애썼을 텐데, 아뿔싸!

어느 날 다가온 삽차 떼가 모래를 마구 퍼올리며 흙탕을 일으키는 게 아닌가.

수온이 찬 계절이라면 호흡량이 작아 견딜 만했는데,

따뜻해지면서 숨이 막혀왔을 것이다.

겨울밤에도 쉬지 않는 삽차들이 시멘트 가루가 따뜻해진 하천으로

독극물처럼 스며들자 그만 목숨을 내놓아야 했을지 모른다.



(181쪽)

한겨울 동해의 북쪽, 검푸른 바다에서 올라오던 '명태'는 

함경도 명천군의 태가 성을 가진 어부가 잡았다 하여

이름이 그렇게 붙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데,

명태는 상태에 따라 이름도 다양하다.

꽁꽁 얼렸다 얇게 떠 전으로 부쳐먹는

'동태'와 소비자 손에 넘어갈 때까지 얼리지 않아

살이 부들부들한 '생태', 

햇빛이 강한 영하의 덕장에서 40일간 얼다 녹기를 반복하여 부드러운 황색으로 말린 황태와 

고성 해안에 다짜고짜 두 달 동안 바싹 말려 단단해진 '북어'만이 아니다.

어린 녀석을 비쩍 말린 '노가리'와 

노가리보다 조금 큰 '코다리'도 무시하면 안 된다.

주머니가 얇은 주당의 안주로 그만이 아닌다.

그토록 우리 삶에 밀착된 명태, 

민속학자 주강현은 조기와 함께 제사상에 올라간다는 걸 상기한다.

인간에게 절 받는 지체 높은 생선이라는 것이다. 

요즘 명태는 '금태'다.

금처럼 귀하다는 뜻일 게다.



(227쪽)

법적으로 허가된 외래동물이라도 입양하려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단순히 호기심이나 자랑하고 싶은 마음으로 들여놓았다가 귀찮아 방치하거나 버리는 태도는

생명에 대한 폭력이고 외래동물의 개성을 무시하는 결례다.

유리상자 안에 꼼짝 못하고 던져주는 먹이만 받아먹는 외래 개구리,

몸 돌리기 비좁은 응접 테이블에 갇힌 악어,

에어컨 켜 놓은 거실 한 구석에 웅크린 채

투명한 상자를 두드리는 사람을 외면하는 카멜레온, 이구아나와 목도리도마뱀은

죽지 못해 살아갈 따름이다.

처지를 바꿔 그들의 복지를 생각해 보라.



(272쪽)

인간이 그은 국경에 관심이 없는 봉순이는 하필 봉하마을에 내렸다. 우연일까?

유기농업으로 자리를 잡은 지역답게 주변 화포천은 

주민들의 정화작업으로 깨끗해졌고,

생태계가 살아나면서 황새의 먹이가 될 생물이 충분히 늘어났다는 걸

감지한 능력 덕분이겠지.

사람이 던져주는 먹이만 먹던 미호에게 봉순이와 같은 능력이 있을까?

있어도 발휘되기 일렀을지 모르는데,

봉순이와 잠시 떨어진 사이 쓰러진 미호는 자칫 못 일어날 뻔했다.

엉뚱한 지역의 하천에서 농약에 오염된 먹이를 먹었다는 게 아닌다.

하지만 미호도 덩치가 큰 만큼 잘 이겨냈고,

그 사건은 소중한 경험이 되었겠지.



(330쪽)

바다 중에서 생태적 가치가 가장 높은 곳은 대륙붕이고,

대륙붕 중에서 단연 갯벌이다.

세계의 해양학자들은 면적으로는 5번째지만

생태적 가치로 볼 때는 최고라고 우리나라 갯벌의 가치를 평가했단다.

그도 그럴 게, 조수간만의 차가 큰 만큼 조간대가 드넓지 않은가.

서해안 갯벌은 해안에서 수 킬로미터로 펼쳐졌다.

그 넓은 조간대에 날아드는 도요새와 물떼새,

오리와 기러기 종류의 종 다양성은 철새를 연구하는 조류학자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우리 갯벌은 반드시 보전해 주기를 국제사회가 권고하는

'람사 국제 보호 습지'에 해당하는 '세계 3대 철새 이동통로'이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

행복이란 돈이 많고 적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의 크기,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삶의 철학과 가치'에 따라 달라지므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기본적인 자립은 의지의 문제로 귀결된다.

실제 많고 적음, 크고 작음도 대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고 작음, 많고 적음과 같이 두 종류만이 존재하고,

그 두 가지를 서로 배타적인 것으로 생각하면서

그것을 실제 잣대로 삼아 휘둘려 산다.

--------------------------------

한국의 교육 철학은 미국의 경쟁 문화와 일본의 식민지 교육의 열기를 혼합한 것이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좋은 직업을 얻을 수 있고,

좋은 직업은 좋은 보수를 받고 사회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누릴 수 있다는

등식이 오랫동안 성공적으로 유지돼 왔다.

또한 오랫동안 문명은 비문명적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며,

가난은 벗어야 할 것으로 선전하면서, 

가난을 벗어나려면 '도시에서 받는 문명 교육'이 필요하다고 계몽해 왔따.

그리고 이러한 문명과 교육은 한 궤를 달리면서 

자본주의 사상과 문화를 전 세계적 단일 경제시장으로 형성하는 데 주력했다.

--------------------------------

자족이란 우리 삶을 관통하는 것이다.

젊었을 때는 사회와 국가에 바라는 것이 많았다.

국가가 우리의 행복을 위해 움직여 줄 것이라는 환상이 있었기네,

바라는 것만큼 현존 사회가 국가를 개조하기 위한 투쟁을 했다.

그러나 국가권력은 우리 개인의 행복을 위해 싸워온 적이 없었음을 알게 되었다.

결국 나 자신을 보호하는 것은 내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이며

흙이나 자연 속에서 지내는 것이 나의 본연의 행복을

찾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다.

흙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부끄럽지 않고

수치스럽지 않은 자연스러운 것임을 알았다.

--------------------------------

무엇은 귀하고 무엇은 천하다고 여기면 마음이 불편하다.

무엇이든 귀하다고 여기든지, 아니면 무엇이든 다 천하다고 여기게 되면

마음이 편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귀천의 분별로 마음을 태울 일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시비는 이기고 지는 결말을 노린다.

이기면 옳은 것이고 지면 그른 것이라는 비참한 결론을 내리려고 한다.

그래서 시비는 사람을 강박하게 하고 잔인하게 한다.

그래서 사람의 시비로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말고,

그저 자신이 입맛대로 살아가되

다른 이의 입맛을 배타하지 않으면 될 일이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30쪽

내가 자꾸 깨친다 깨친다 하는 것은 사람이 그런 깨칠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

그렇지 않다면 만날 노력해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오. 땅 밑에 금이 많이 있는 줄 알면,

거기에 금이 꼭 있을 것 같아서 땅을 파면 금이 나오지만,

암만 파도 금이 없을 것 같으면 헛일이지 않겠습니까?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중생에게 부처님과 같은 그런 능력이 없다면

아무리 깨치는 공부를 해도 헛일입니다.

문제는 그 광맥이 사람 사람 마다에 다 있나 없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인간에게 그런 무진장한 대광맥, 

금광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무진장의 대광맥이 

사람 사람 가슴속에 다 있다는 것을 발견하셨습니다.

이것을 개발하고 이것을 소개한 것이 불교의 근본 생명선입니다.



46쪽

무엇보다도 정신적으로 모든 생각을 쉬어 버리는 것, 이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모든 구하는 생각, 이것이 마음에 들어 있으면 아무리 섭생을 잘해도 소용이 없거든요.

그런 구하는 생각을 어느 정도 떨쳐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쉬고 사는 이것이 건강에 좀 도움이 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79쪽

그러면 왜 우리는 '중생'이라고 하고, '사바세계'라고 하는가?

내가 비유로써 말하는데, 아무리 한낮에 해가 떠서 광명이 우주에 충만해 있더라도

눈먼 사람은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설사 눈감은 사람이 광명을 보지 못한다 해도 광명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언제든지 해는 떠서 온 우주를 비추고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중생이 본래 부처이고 현실 이대로가 절대이지만

우리가 눈을 감고 있어서 본시 부처인 중생을 바로 보지 못하고,

본시 절대인 이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눈을 바로 뜨면, 광명을 따로 찾을 것 없고 극락을 따로 찾을 것도,

부처를 따로 찾을 것도 없습니다.

그리하면 이리 가도 부처, 저리 가도 부처, 여기도 극락세계, 저기도 극락세계,

이렇게 되면 모든 것이 자동적으로 해결되지 않느냐 말입니다.



85쪽

흔히 '용서를 하자. 용서를 하자'고 하는데, 불교의 근본사상에 용서란 없습니다.

용서란 내가 잘하고 남이 잘못됐다는 것인데,

모든 것의 책임은 나한테 있는 것이며, 

남을 용서한다는 것은 남의 인격을 근본적으로 모독하는 것이 됩니다.

설사 어떤 사람이 칼로 나를 찌른다 할지라도 

찌르게 한 것의 근본 책임은 나한테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내가 '참회'를 해야지 저 사람을 '용서'하다니요.

그래서 우리 불교사전에서 '용서'라는 말을 빼야 한다고 늘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97쪽

어떤 언론이든지 사회의 공기라는 것, 

불편부당(不偏不黨)해야 한다는 근본정신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어떤 기관이나 단체의 이용물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 곤란한 환경에 처하더라도 춘추필봉(春秋筆鋒) 

말 그대로 시퍼런 필봉을 세워 나가야만 사회에 공헌을 하고

사회에 대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지, 

만약 언론이 근본정신을 버린다면 사회와 인류에 해를 주지 않겠어요?

지금도 잘하고 있겠지만,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공명정대한 필봉으로

춘추필봉을 발휘하면 사회를 잘 선도하는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살릴 수 있겠지요.




102쪽

어떤 단체의 지도자라고 하면 근본 전제가 사리사욕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의 지도자라면 오직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지요.

정치하는 사람이 사리사욕을 위해서 산다고 하면 그것은 자살이 되고 맙니다.

어떤 단체의 지도자라면 그 단체를 위해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죠.

그렇게 하려면 사리사욕에서 완전히 떠나야 합니다.

사리사욕을 채우려 하면 그 단체는 무너지고 맙니다.

그것을 버려야만 국가도 살고 민족도 살고 단체도 살고 자기 자신도 사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고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정치를 결국엔 국가와 민족에 큰 손해를 줄 뿐만 아니라

자기도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지도자의 자격이란 참으로 사리사욕을 완전히 버린 

무아(無我)사상에서 전체를 위해 사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

이 세상의 모든 작품은 그 작품들을 있게 한 모국어의 자식들이다.

그러므로 글을 쓴다는 것은 모국어에 대한 은혜 갚기이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글을 쓴다면 서양 굴종적 의식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극복 없이 제아무리 글을 써봐야 독사는 없고,

결국 자기 파멸의 길만 재촉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18페이지)

=======================================================

과학이나 의학같이 확실히 앞서 있는 것은 모르지만,

예술 특히 음악과 미술과는 달리 민족적 특성을 강하게 띠게 되는 문학에서만큼은

자기 주체성, 자기 존재감을 확실히 갖추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23페이지)

=======================================================

그때 일본 평론가가 한 평이 있습니다.

' 이 소설(태백산맥)은 단순히 한국전쟁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다.

한국민족을 이해할 수 있는 총체적 백과사전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세계 강대국들이 약소국들을 어떻게 억압하고 착취하고 괴롭혔는가까지 보여주고 있다.'

저는 이 평을 소개한 다음.

'유럽의 지난 200년 역사는 무엇인가.

전 세계를 향한 식민지 착취의 역사 아닌가.

당신들이 누리고 있는 오늘의 부가 약소국들에 대한 착취로 이루어졌음을 환기시키고 싶은 것이다.'(25페이지)

=======================================================

그리고 소설은 인생에 대한 총체적 탐구이니 이야기를 전개하다 보면

불가피하게 교육적이거나 계몽적인 대목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건 소설은 유익해야 한다는 사회적 기능에 충실한 것이니

넓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될 것입니다.(103페이지)

=======================================================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 

과거를 망각한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고 일갈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거가 우리처럼 슬프고 비참할수록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야만

또 그런 비극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여러 가지 본능 중에 하나가 망각입니다.

정신의학에서 인간에게 망각이 없었다면 인간의 99퍼센트는 미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 망각을 어떤 문제의 해결이라고 착각합니다.

꼭 기억해야 할 역사를 그 망각의 착각에 빠지게 방치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단재 선생의 경고가 또다디 현실로 닥쳐오겠지요.

그런 참극을 막기 위해서 역사 공부는 필수적인 것이고,

소설 또한 역사 공부의 딱딱함과 건조함을 피해

다른 방법으로 역사의 상처와 고통을 일깨우고,

추체험케 하는 것이고,

그것이 소설가의 여러 임무 중에 또 한 가지라 생각합니다. (140페이지)

=======================================================

인간의 발견.

그래서 인간의 존엄과 인간의 가치를 서로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삶의 덕목일 것입니다.(199페이지)

=======================================================

어차피 고달프지 않은 인생은 없고, 힘겹지 않은 삶은 없어요.

그런 인생살이 속에서 희망을 만드는 건 우리들 자신이에요.

그리고 절망을 이기는 건 희망입니다.

희망은 우리의 삶을 추동하는 힘입니다.

새해 새 희망을 꿈꾸며 모두 힘내며 굳세게 나갑시다.

우리는 우리들의 삶의 주인입니다.(202페이지)

=======================================================

두 당이 오만불손한 완력으로 탄핵안을 통과시켰으니 꼭 확인해야 할 사실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돠연 탄핵을 당할 만큼 나쁜 짓을 했는가?

아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자마자 어리석을 만큼 순수하게 권력 민주주의 실천에 나섰다.

그것이, 대통령 권력의 3대축이라고 하는 국정원, 검찰, 경찰을 

그전처럼 틀어쥐지 않고 독립성을 보장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말로만 반복되어 온 3권 분립을 현실화하려고 노력했다.

그 일을 한마디로 대통령의 권력을 스스로 축소하는 이변이었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부자가 될수록 돈을 탐하듯 인간의 역사 속에서 모든 권력자들은 권력을 잡는 그 순간에

권력을 더 키우고자 욕심냈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 탐욕에 치여 비극적 종말을 맞이했다.

역대 대통령들 중에서 자신의 권력을 줄여

민주국가의 틀을 바르게 세우고자 한 사람이 있었던가.

노무현 대통령이 유일하다.(215페이지)

=======================================================

문학은 그런 척박함에 뿌리내리며 피어나는 꽃입니다.

그래서 그 꽃은 영원을 향하여 시들지 않습니다.

문학을 하며 호화롭게 살기를 바라지 말고,

굶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문학의 생명은 영원합니다.

그 확신 위에서 좋은 작품은 탄생하며, 굶주리며 쓴 좋은 작품은 영생을 얻습니다.

문학은 어차피 어느 시대에나 절대다수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소수가 선택하되, 그 소수가 인간사회를 이끌어갔습니다.

'작가란 인류의 스승이고, 그 시대의 산소다'

인류적 동의로 주어진 명예입니다.

그 길을 선택하는 것만 오로지 당신의 실존입니다.(292페이지)

=======================================================

그럼 어떻게 해야 인문학적 소양을 갖출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은 너무 간단명료합니다.

문학, 역사, 종교를 포함한 철학 서적들을 꾸준하게 읽는 것입니다.(358페이지)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7쪽)

올해는 유엔이 정한 콩의 해인 것을 아세요?

콩이 기본적으로 먹거리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고,

영양학적으로 우수하며, 또 콩의 재배는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하여

땅을 기름지게 한다는 측면에서 중요하므로 그러한 가치를 인정해서 콩의 해로 지정했다고 해요.

그런데 콩의 원산지가 한반도와 만주잖아요?

그러나 지금 우리의 자급률은 10% 정도에 불과해요.

미국은 불과 19세기부터 콩을 재배하기 시작했는데, 

지금 한국이 미국산 콩을 대량으로 수입하고 있습니다.(2014년 기준, 전체 126만 톤 대두 수입량에서 48%가 미국산).

게다가 최근에는 이집트콩, 렌탈콩 등 외국산 콩의 수입량이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어요.

요즘 텔레비전의 소위 '먹방', '쿡방'과도 연결돼서 '슈퍼곡물'이라는 외국의 곡물이 대량으로 들어오고 있어요.

우리 토종 곡물도 영양상 전혀 뒤지지 않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으레 먹방 다음에 이어지는 홈쇼핑 프로그램에 그 외국산 곡물들이 등장하지요.

장삿속이라는 것이 참 집요하지요.



(65쪽) <농(農)을 살리는 세계로> '자유협동주의의 이념' 中에서...

이익균점권을 주장할 때 전진한 선생의 논리는 아주 명쾌했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노동을 상품으로 간주하여 자본에 예속시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매우 고루한 사상이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참신하고 용기 있는 발언이에요.

'노동력=상품'이라는 관념은 19세기적 발상이라는 거예요.

시대를 그렇게 앞서 나갔던 분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어떤 진보적 지식인이 이렇게 과감한 논리를 펼칠 수 있겠습니까?

심지어 맑스를 공부한 사람들도 늘 노동력 상품화 현상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평생의 화두로 안고 살잖아요.

자본주의체제하에서의 노동은 상품이다,

라는 명제 자체를 근본적으로 비판하지는 않고 말입니다.

그러나 전진한 선생은 그것을 고루한 사상이라고 단정하고, 

자본가가 돈을 출자했다면 노동자는 자기의 '노력'을 출자한 또하나의 '자본가'라고 선언합니다.

노동자도 출자자라는 거죠. 

출자자와 출자자는 기본적으로 대등한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서 생기는 이익을 고르게 나누는 것, 즉 균점(均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정당한 권리다, 이런 논리죠.

'노동자=임금노예'라는 진부한 공식이 이 명쾌한 논리로 단번에 척결돼버린 거죠.



(114쪽)

그(장일순)의 결혼 주례 이야기도 남다르다.


오늘날 세상은 온통 경쟁으로 가득 차 있네. 

너나없이 남보다 한발 앞서서 남을 밟고 이겨야 해가 산다는 이상한 생각을 가진 채 살고 있어.

그렇지만 삶이란 건 일등부터 골찌까지 다 저마다 할 일을 하며 함께 도우며 사는 거라.

이 이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

사람만이 아니고 자연과 더불어 이 지구상에 있는 생명체 모두가 

서로 존귀하게 여기며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 이 말이야.

그게 참다운 공생의 삶인 거지.

오늘 새로 결혼하는 두 사람도 이웃과 더불어, 자연과 더불어,

천지신명과 더불어 그 모든 것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세상에 보여준다면 그보다 아름다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133쪽)

장일순의 글을 인용하면서....


무엇을 이루려 하지 마라.

앉은 자리 선 자리를 봐라.

이루려 하면은 헛되니라.

자연은 이루려 하는 자와 함께하지 않느니라.

나는 한적한 들에 핀 꽃 밤이슬 머금었네.

나를 돌보는 사람 없지마는 나 웃으며 피어났네.

누구를 위해 피어나서 누구를 위해 지는 것일까.

가을바람이 불면 져야 해도 나는 웃는 야생화.





(159쪽)

이제 다시는 묻지 않으리

 - 시천주 2014년 4월 16일


                            홍일선


길섶 풀 한 포기

외진 곳 몽돌 하나이

응달 습생들 벌레 한 마리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공경의 말씀 이 땅에 누대로 계셔서

은빛 갈대들이 기꺼이

마을숲이 되어주었던 강마을

앉은뱅이꽃으로 만든 집 울타리

아기들 옹아리도 뉘엿뉘엿 지는 노을도

그 마을 저녁 연기 만나 지극했으리라

그러하온데 갈대숲 너머

단양쑥부쟁이들이 스러지던 봄날



연둣빛 신생의 아픔이 그믐달처럼

그 집을 찾아주신 것

이기지 못하고 늘 지는 것들 쓰라린 것들

그것들 슬픈 눈빛들이야말로

온 생명 보듬어 안아야 할 대덕이시라고

어머니시라고 그리운 님이시라고

한 농부에게 조용히 일러주신 것

그 농부 그믐달이 이윽한 마당에서

그리하여 흙님 숲님 강님 햇빛님 곡식님께

삼가 무릎 꿇어 삼배 올린 것

하늘 아래 생명 가진 것들에게는

하늘님이 계시다고 그 농부 믿게 되었을 것이다


산천 오랜 기다림들이

꽃망울 터뜨리는 봄날

2014년 4월 16일 봄날

그 집에선 어미 닭들

줄탁동시 산고가 있더니

병아리들이 세 마리 다섯 마리

아홉 마리 열네 마리

목숨의 꽃들을 꼬옥 보듬어 안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거룩한 봄날을 뵈옵고 있었던 것이다


아하 그러하온데 진도 어디라 했던가

어여쁜 꽃들로 가득 찬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청천벽력의 소리가 들려왔던 것

울음이 그리고 간절한 기도가 들려왔던 것

그 집 갓 태어난 병아리들도 들었을 것이다

앉은뱅이꽃 울타리 홍씨도 들었을 것이다

못자리 물을 대던 이장도 들었을 것이다

아욱 씨를 파종하던 새마을 지도자도 들었을 것이다

비닐하우스를 손보던 김씨도 들었을 것이다

배꽃이 영 글렀다고 한숨짓던 배씨도

밀린 사료값 때문에 밭 한 두락 내놓은 황씨도

4대강 공사가 끝난 뒤부터 양수장 물이 말렀다고

투덜대던 강씨도 들었을 것이다

우리 동네 사람들 모두 들었을 것이다

살려달라는 소리 들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보고 싶다는 소리도 들었을 것이다

대저 에프티에이가 무엇이기에 난리를 치는 거냐고

묻고 또 묻던 구노인회장도 들었을 것이다

대처 나가 사는 아들 내외 온 김에

땅콩이며 강낭콩 옥수수까지 심어 한시름 놓았다는

홀로 사는 충주댁 할머니도 들었을 것이다

부녀회장님 당나귀 다정이도 들었을 것이다

언평 벙어리 내외도 들었을 것이다



오호라

거룩한 봄 날

꽃 피는 봄 날

소용없는 그리움이었을까

처음부터 부질없는 비나리였을까

이 나라 귀태鬼胎들의 시간 어디였을까

가여운 가여운 팽목항에

붉은 동백꽃들이 하나씩 하나씩 질 때

마침내 우리나라 꽃이 다 질 때

밭에서 일하는 게 큰 죄를 짓는 서 같아

일찌감치 집에 들어와 귀 세우는 시간

앉은뱅이 꽃집 어미 닭의 일곱 시간은 

지극한 생명의 시간이었는데

꽃이 지기 시작한 오전 아홉 시부터

꽃이 가뭇없이 진 오후 다섯 시 그때까지

거룩한 생명의 시간이었으리


이제 다시는 박근혜 그에게 묻지 않으리

오늘부터 쓰러진 것들에게 물으리

아픈 강물에게 물으리

시든 풀들에게 물으리

깨진 몽돌들에게 물으리

쓰라린 생명들에게

공경의 말씀으로 물으리

누구는 봄날이 간다고 설워하기도 하지만

이 땅 또 찾아주신 붉은 진달래꽃이 고마워서

시천주로 고요히 호명하노니

봄날 어린 꽃들이여

우리나라 꽃들이시여



(177쪽) <토마스 페인, 한 혁명가의 삶과 사상> 中에서

개인재산은 사회의 영향으로 생겨났다.

사회의 도움 없이 한 개인이 개인재산을 획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그가 땅을 처음 만들어낸 자가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개인을 사회로부터 분리시켜 그에게 하나의 섬이나 대륙을 소유하도록 해보라.

그는 개인재산을 결코 획득하지 못한다.

그는 부자가 될 수 없다.

그처럼 수단과 목적은 분리할 수 없다.

수단이 없으면 목적도 없고 목적이 없으면 수단도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한 인간이 스스로의 손으로 생산할 수 있는 것 이상의

모든 개인재산의 축적은 그가 사회 속에서 삶을 영위함으로써

그에게 주어진 것이다. 

정의와 감사와 문명의 원칙에 의거해 볼 때, 그가 축적한 재산의 일부는

그 모든 것이 거기서 유래하는 사회로 다시 되돌릴 필요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