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의 장자수업 1 - 밀쳐진 삶을 위한 찬가 강신주의 장자수업 1
강신주 지음 / EBS BOOKS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몇 달 전 신간 코너에서 알게 된 책 <강신주의 장자수업 1>을 읽었단다. 아빠가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아빠는 강신주 님을 좋아한단다. 아빠는 틀에 박혀 스스로 자유를 제한하면서 지내는데, (그게 더 편한데) 강신주 님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고 생각하거든.. 아빠랑 생각이 많이 다르시지만, 아빠가 본받고 배우고 싶은 그런 분이지그래서 강신주 님의 책이 출간되면 관심 있게 눈 여겨 보는 편이란다. 그런데 이번에 쓰신 책이 장자라니…. 강신주 님이 장자에 대한 책은 그 전에도 쓰신 것으로 알지만, 다시 한번 장자에서 대해서 이야기하신 모양이구나.

장자는 아빠가 동양 철학자들 중에 가장 호감이 가는 인물이란다. 동아시아에 가장 영향을 준 사람은 아무래도 공자이겠지만, 장자는 공자가 영향을 준 동아시아에 살고 이들의 일반적인 관념을 깨는 사람이거든. 장자를 읽다 보면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아빠도 장자처럼 생각하고 장자처럼 행동하고 싶게 만든단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곤란을 좀 겪을 수도 있지만 말이야. 그래서 생각만 장자처럼 하는 것으로…^^ 그렇다고 아빠가 장자를 잘 이해하는 것은 아니야. 장자에 대한 책들을 여럿 읽어보긴 했지만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다고 생각해. 심오한 철학을 아빠가 어떻게 이해하겠니. 아무튼 아빠가 좋아하는 강신주 님이 아빠가 좋아하는 장자에 대해서 책을 쓰셨다니, 당연히 읽어야겠지.

이 책은 EBS를 통해 강신주 님이 방송도 하신다고 하더구나. 어찌 보면 그 방송의 교재라고 할 수도 있겠구나. 우리는 TV가 없으니, 본 방송을 보긴 어렵지만, 유튜브에도 조금씩 소개가 되고 있더구나.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강신주 님이 살이 많이 빠져서 걱정했는데, 방송하시는 모습을 보니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이구나. <강신주의 장자수업>은 모두 두 권으로 되어 있는데, 오늘은 1권을 먼저 이야기해줄게.

이런 책을 읽는 것은 뿌듯하면서 무엇인가 가슴 속에 조금씩 채워지는 느낌이 드는데, 그 채워진 느낌을 다시 다른 이에게 이야기해주는 것은 참 어렵더구나. 너희들에게 이 책을 제대로 이야기해주기 쉽지 않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는 거야. 너희들이 좀더 크면 직접 한번 읽어보라고 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물론 바쁘시고 장자에 관심이 없으면 안 읽어도 상관 없고 말이야. 서두가 길어졌구나. 아빠가 이 책에 대해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했으니, 짧게 몇 가지만 이야기할게. 장자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면 관련된 책도 많고, 유튜브에 동영상도 많으니 보면 될 것 같구나.


1.

장자(壯者)는 장 선생님 정도의 뜻이라고 생각하면 되고, 장자의 본명은 장주라고 하는구나. 춘추전국시대 여러 나라 중에 송나라에서 태어났는데, 송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힘이 약해서 무시당하고 깔보던 나라였다는구나. 그런 그의 국적이 사상을 만드는데 영향을 주었을까? 잘 모르겠다. <장자>는 장자뿐만 아니라 장자를 따르던 이들이 약 300년간 만들어낸 이야기들을 모은 책이라고 하는구나. 그러니까 장자가 직접 쓰거나 이야기한 내용도 있지만, 그런 장자를 따르고 공부한 이들이 쓴 내용도 있는 거야. 인터넷 좀 찾아보니 <장자>는 총 33 6 4606자로 되어 있다는 구나.  

<장자>는 짤막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야기마다 우리에게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철학적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구나. 아빠가 이해한 바로는 장자 사상의 핵심은 쓸모 없음이란다. 장자가 살았던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는 전쟁이 끊이지 않던 시대였단다. 어떤 사람이 능력도 좋다면, 그러니까 쓸모가 많다면 많은 인재들을 끌어들이려고 하는 나라는 그 사람을 등용하게 된단다. 그렇게 쓸모 있는 사람은 나라를 위해서 일하거나 때론 전쟁에 투입되지. 그렇다 보면 금방 죽을 수도 있어. 하지만 별로 능력도 없이 쓸모가 없다면 국가는 신경도 쓰지 않을 테고, 조용하게 한 평생을 평화롭게 살아갈 수가 있는 거란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쓸모 있는 인재가 과연 좋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단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야. 어렸을 때부터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단다. 나라에 도움이 되는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있단다. ? 장자가 살던 시대나 오늘날이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은이는 이야기한단다. 물론 쓸모가 있으면 더 많은 돈을 벌어서 경제적으로 풍요로울 수 있어. 그게 자본주의 시스템이니까 말이야. 하지만 그런 쓸모 있는 인간은 자신보다 국가가 원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지은이는 주장했어. 그러면서 국가가 원하는 인간이 되지 말고, 국가가 원하는 일을 하지 말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라고 했단다. 나아가 자신이 원하지 않은 일을 남에게도 하지 말라고 했단다.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이야기하는 부모님들이 찔릴 말이로구나.

쓸모 없음에 관한 이야기는 책 전반에 걸쳐 나온단다. 6장 거목 이야기도 쓸모 없음을 이해하는데 재미있는 우화가 나온단다. 잘 자란 나무는 재목이라고 해서 금방 누군가 베어간단다. 그런데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나무는 아무도 베어가질 않아서 엄청 클 때까지 자랄 수 있단다. , 쓸모 있는 것이 좋은가? 쓸모 없는 것이 좋은가? 장자와 강신주 님께서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대충은 이해가 가지만, 그런 나무 같은 사람이 있다면 오늘날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생존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렇게 장자가 쓸모 없음을 이야기하자 혜시라는 사람은 반박을 했단다. 쓸모 없는 커다란 박은 부서져서 버려진다고 말이야. 그러자 장자는 이에 반박을 한단다. 커다란 박은 박으로는 쓸모가 없지만, 배로 쓸모다 있다고 말이야. 사람들의 능력도 마찬가지란다. 어느 일에 있어서 내가 쓸모가 없을지라도 다른 일에서는 쓸모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말이야. 보통 쓸모가 없어지면 버리는데, 사람도 마찬가지란다. 그런데 쓸모가 없어져도 그를 소중히 아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진정 그를 사랑하는 사람일 거야.

=====================

(35)

우리는 성적이 좋은 아이여서, 품이 덜 드는 아이여서 우리 아이를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쓸모가 있는 아이, 동년배보다 쓸모가 더 큰 아이라는 것이 사랑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입시에 실패할 때, 취업에 실패할 때, 혹은 정리해고라도 당했을 때 여러분의 아이가 여러분을 떠나거나 자살하는 비극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요. 그냥 무용으로 아이를 사랑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쓸모가 없어지더라도 여러분의 소중한 아이는 죽지 않고 여러분을 찾아올 테니까요. 아무런 쓸모가 없어도 존재하는 것만으로 사랑받는다는 확신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지요. 아버지도 어머니도 남편도 아내도 무용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바람도 물도 그리고 새도 물고기도 무용으로 좋아해야 합니다. 생각해보면, 언젠가 병들도 나이 들어 쓸모는커녕 주변에 짐이 되는 때가 반드시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럴 때 주변에 여러분을 쓸모로 평가하지 않는 이가 한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해하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는 건, 바로 이것이 무용을 강조했던 장자의 진정한 속내였을 것입니다.

=====================


2.

<장자>에 나오는 대표적인 우화라고 하면 빈 배 이야기를 들 수 있을 것 같아. 빈 배 이야기는 아빠가 예전에 읽은, 오쇼 라즈니쉬가 장자에 대해 쓴 책 <삶의 길 흰구름의 길>이라는 책에서 처음 알게 된 이야기인데 관념을 딱 깨어주는 이야기였단다. 그리고 모든 것이 마음 먹기에 달려 있고,

우리가 빈 배처럼 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단다.

그 이야기는 이렇단다. 배를 타고 큰 강을 건너는데 어디선가 떠 내려온 빈 배가 내 배에 부딪히게 되면, 화를 내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거야. 하지만 어떤 사람이 타고 있는 배가 내 배에 부딪힌다면 어쩌겠니. 당장 노발대발 큰 소리를 칠 거라는 거지두 배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나 자신을 빈 배처럼 만든다면 아무도 나에게 맞서지 않고, 나로 하여금 상처를 입지 않게 되겠지. , 쉽지는 않지만 상당히 일리 있는 이야기구나.

장자의 첫 번째 이야기는 이라고 하는 아주 큰 새에 관한 대붕 이야기란다. 붕은 원래 엄청나게 큰 물고기 이었어. 그런데, 엄청나게 큰 새 으로 변했어. 얼마나 크냐면 날개가 몇 천 리라고 했어. 그렇게 크다 보니 땅에서는 날개 짓을 못해서 날지를 못했어. 커다란 태풍이 와야만 그 바람을 이용해서 날 수 있었단다. 마침내 큰 태풍이 와서 붕은 날아올랐단다. 그렇게 하늘을 날면서 붕은 자유롭다고 생각했어. 오랜 기다림과 어려운 조건을 이겨낸 자유라고 할까. 바람이 없으면 날지 못하는 자유. 제한된 자유.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그런 제한적 자유를 가지고 있어. 그런데 그 제한적 조건이 어려워서 그 자유를 누리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란다. 마치 메추리처럼메추리는 날고 싶을 때 날고, 앉고 싶을 때 앉는단다. 현재 자리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만 얻겠다는 거야. 그러면서 자유롭다고 하지. 태풍이 오면 그것을 이용하려고 하지 않고 피한단다. 대붕처럼 제한적이고 어려운 조건을 이겨내는 자만이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단다. 그리고 대붕은 바람이 있어야 자유를 얻을 수 있어. 이것은 두 존재 또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의미하기도 해. 장자는 자신과 타자의 관계를 고민했던 철학자이고, 우화에도 그런 내용이 많이 나와 있단다.

또 다른 에피소드 중에 바람 이야기가 있어. 구멍이 있는데 바람이 있다면 구멍이 소리를 나지 않는다는 거야. 피리 등 악기들 중에 구멍에 바람을 불어 소리를 내는 악기들이 있는데 바람이 없다면 그 악기들은 아무런 소리를 못 낸다는 거야. 그렇게 관계에 엮여 살고 있단다.

=====================

(155)

차라리 우리는 바람과 같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해 우리의 마음은 바람과 같으며, 나아가 바람과 같은 것이어야만 합니다. 구멍이 되어 바람을 맞아 소리를 낼 수도 있고, 바람이 되어 누군가의 구멍에 들어가 그 구멍에 어울리는 소리를 낼 수도 있으니까요. 바로 이것이 장자가 바람의 철학자인 이유입니다.

=====================

그런 다른 사람과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책들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잘 듣는 것을 장자는 강조했단다.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듣고, 더 나아가 기로 들으라고 했어. 아빠가 성격이 급해서 차분히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지 못하는 편인데 그래도 노력은 하려고 한다. 아빠도 잘 들어주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

=====================

(324-325)

음악을 듣는 경험을 떠올려보세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을 들을 때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습니다. 혹은 음악을 제대로 듣기 위해 거실의 불을 끄거나 빛을 약하게 조절합니다. 음악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할 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런 행동은 군주를 보지 않으려 고개를 숙이는 복종의 행위와는 다릅니다. 눈을 감고 상대방의 말에 집중하는 행동은 상대방을 지배하거나 상대방에 복종하겠다는 의지와 무관합니다. 음악이나 상대방의 말을 들을 때 우리는 고개를 숙이지 않고 눈을 감게 됩니다. 고개를 숙이지 않음이 상대방에게 복종하지 않으려는 의지라면, 눈을 감는 것은 상대방을 지배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입니다. 군주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바닥을 응시하는 신하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르지요. 타자의 말이나 혹은 타자를 듣는다는 것은 지해에의 의지나 복종에의 의지를 넘어서 있습니다. 그건 소통에의 의지니까요. 장자는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듣고,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로 들어라!”고 말합니다. ‘’, ‘마음’, 혹은 보다 수천 배 중요한 것은 듣겠다는 그의 의지입니다. ‘듣겠다는 소통에의 의지가 귀로 듣는 것보다 마음으로 듣는 것이 좋고, 마음으로 듣는 것보다 기로 듣는 것이 좋다는 판단을 가능하게 하니까요.

=====================

마지막으로 지리소 이야기를 하나 해줄게. 이 이야기도 참 인상 깊었거든. 장자의 핵심 철학인 쓸모 없음에 대한 주제도 포함되어 있고 말이야. 지리소라는 사람이 있었어. 지리소라는 외형은 꼽추로 제대로 설 수도 없는 몸으로 다른 사람이 보면 정말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하지만 지리소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단다. 지리소는 그 자신의 몸을 탓하지 않았어. 빨래와 바느질에 소질이 있어서 돈벌이에도 문제가 없었어. 자신이 다 가졌다고 생각했어. 장애를 가졌다 보니 나라에서 돈도 좀 주고 그랬대. 그런데 돈을 주지 않아도 상관없었어. 이미 자신은 먹고 사는데 문제 없고 사는데도 문제 없으니까 말이야. 전쟁이 나서 사람들이 끌려가도 지리소는 꼽추라는 장애 때문에 피할 수 있었어. 진정 모든 것을 다 자신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주어진 여건이 열악하지만 그것을 이용하고 그것에 만족하는 지리소를 보면서 아빠 자신을 반추해 보게 되더구나. 아빠 자신을 볼 때 갖고 있는 것보다 뭔가 부족한 것을 먼저 보고 그것에 대해 불평하는 모습 말이야. 지리소에게서 참 배울 점이 많구나.

….

그 밖에 아빠의 머리를 때리는 많은 이야기가 있었단다.

,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2권의 이야기도 조만간 해줄게.


PS,

책의 첫 문장: <장자>는 인류가 자랑하는 고전입니다.

책의 끝 문장: 차라투스트라가 이렇게 말했다면, 열자는 이렇게 산 것입니다.


행성 충돌이나 극심한 기후 변화가 일어나거나 압도적인 포획자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인간은 자신의 못을 스스로 조르는 자기 파괴적 동물입니다.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아직도 진행되는 전쟁을 보세요. ‘우리는 같은 종이야’라는 의식은 전혀 없습니다. 늑대나 토끼가 보았다면 당혹스러울 일이고, 인간을 전염병균처럼 여기며 멀리 떠나려 할 겁니다. "인간들은 서로 거침없이 착취하려 하고 심지어 서로를 살육하니, 우리에 대해서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렇지만 늑대와 토끼마저도 동족의 피를 묻힌 인간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겁니다. 불행하게도 자신들이 도망할 곳마저도 인간에 의해 이미 잠식되어버렸으니까요. - P18

사랑이 힘든 것은, 양쪽 다가 주인이고 양쪽 모두가 자유로운 존재여서 그렇습니다. 자유와 자유가 만나는 팽팽한 긴장감이지요.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건 상대방이 가장 자연스럽게 어떤 강요도 없이 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결국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라는 이야기도 성립되는 셈이죠. - P46

윤편은 말했다. "저는 그것을 저 자신의 일에 근거해서 본 겁니다. 바퀴를 깎을 때 끌질이 느리면 끌은 나무에서 미끄러져 제대로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빠르면 끌은 나무에 박혀 빠지지 않습니다. 끌질이 너무 느려서도 안 되고 너무 빨라서도 안 된다는 것을 저는 손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대응할 수 있을 뿐, 입이 있어도 말로 옮길 수 없습니다. 끌질하는 동안 몇몇 방법이 있겠지만, 저는 제 아들에게 전달할 수 없고 제 아들도 또한 제게서 배울 수 없습니다. 이것이 나이 일흔이 되도록 제가 바퀴를 깎고 있는 이유입니다. 옛사람은 자신이 전할 수 없는 것과 함께 이미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공께서는 지금 옛사람들의 찌꺼기를 읽고 있는 게 아닙니까!" - P77

우리 삶에는 한계가 있지만, 앎에는 한계가 없다. 한계가 있는 것으로 한계가 없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위험할 뿐이다. 그런데도 계속 앎을 추구하려는 자는 더더욱 위태로워질 뿐이다. 선을 행해도 명성에 가까워서는 안 되고 악을 행하더라도 형벌에 가까워서는 안 된다. 독맥적인 것 따르기를 기준으로 삼아라! 그러면 몸을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고, 삶을 온전하게 할 수 있고, 어버이를 기를 수 있고, 주어진 수명을 다 채울 수 있을 것이다. - <양생주> - P187

기원전 4000년경 인간은 말을 마지막으로 가축화한 이후로 더 이상 다른 동물을 가축으로 길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동료 인간을 가축화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겁니다. 인간 가축은 동물 가축과는 달리 말이 통하고 더 섬세한 작업에 투입할 수도 있으니까요. 거대 건축물로 상징되는 국가체제는 인간 가축화 과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죠. 20세기 전번에 민주주의를 자임했던 국가에서 언론이나 정치가들이 유행처럼 사용했던 비유가 하나 있습니다. ‘당근과 채찍’입니다. 다른 국가들이 혹은 자국민들을 길들여 지배하려 할 때 반드시 병행해야만 하는 두 가지 방법을 비유한 거죠. 단순한 비유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당근과 채찍은 가축화 메커니즘의 핵심에 있습니다. 당근과 채찍이 동료 인간에게 적용된 것이 바로 상과 벌 혹은 사랑의 방법과 폭력의 방법이니까요. - P219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시우행 2024-01-31 04: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가축화, 고대 문명의 창작품이 지금도 이어지는 듯해요. 우매한 백성들을 선동질하는 사이비 정치인들 때문에 팬덤까지 형성되니 말입니다. 슬프요.ㅠㅠ

bookholic 2024-01-31 16:55   좋아요 0 | URL
그들의 가축이 되지 않겠습니다 !!!!
 
녹색평론 2023년 겨울호 - 통권 184호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녹색평론 2023년 겨울호 통권 184호를 읽었단다. 2023년은 언제 갔는지 모르게 지나가버렸구나. 여러 가지 의미가 있던 한 해였는데, 1년 여간 휴식기를 가졌던 녹색평론이 다시 돌아온 것도 아빠에게는 의미가 있는 일이었단다. 환경에 다시 생각하게 하고, 사회의 모순들을 생각하게 하는 그런 글들이 많이 실려 있어서 아빠에게 여러 경각심을 심어주는 든든한 책이었는데, 1년 동안 없어서 아쉬웠거든. 이번 겨울호의 부제는 파국과 전환, 기로에 선 한국사회더구나.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지 아직 2년도 안되어 희망이 사라져 보이는데,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나라를 얼마나 더 엉망으로 만드실지 걱정이구나.

이 책에서는 현정부의 정책을 보면, 환경과 기후에 관련된 정책은 찾아볼 수 없다고 하는구나. 몇 달 전인가 일회용 용품과 플라스틱에 대한 규제를 다시 푼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어. 그래서 플라스틱 대용으로 친환경 빨대를 만든 업체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는 소식도나라의 정책이 이리 왔다갔다 하고, 그것도 과거로 회귀하는 정책을 쓰고 있으니, 국민들은 어떤 장단에 맞춰야 하는 걸까. 그리고 현정부의 정책 중에 농민의 목소리가 포함되어 있는 정책도 없다는구나. 농민의 남는 쌀을 구매해주는 것은 정부의 역할로, 그들이 또 힘을 얻어 다음 해도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동력을 얻는 것이란다. 앞으로 더 농업이 중요한 산업이 되는 것은 기정 사실인데 말이야. 그런데 그것을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하며 거부권을 행사했다는구나. 그러면서 대기업 미분양 아파트를 세금으로 구매할 계획이라고 하네. 이 이야기를 회사 사람한테 했더니, 건설사로부터는 돈을 받고 농민들에게 돈을 받지 않아서 그럴 거라는 신빙성 있는 말씀을 하시더라.

====================

(216)

그러나 윤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양곡법 개정안은 농업 생산성을 높이고 농가소득을 높이려는 농정목표에도 반하고, 농업인과 농촌 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며 시장의 쌀 소비량과 관계없이 남는 쌀을 정부가 막대한 혈세를 들여 모두 사들여야 한다는, 남는 쌀 강제 매수법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에서는 대기업 미분양 아파트 구매하는 데는 혈세를 10~20조 원 들이면서 농민 쌀에 대해서는 왜 이렇게 혹독하냐?”고 항의했다. 실제로, 전국 곳곳의 미분양 아파트는 6만 가구에 육박하고, 이것을 정부가 사들이면 47조 원대에 이르는 주택도시기금(주택채권, 청약저축, 세금전입 등으로 구성)이 거론된다.

====================


1.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란다. 민주국가이면서 공화국가라는 의미란다. 그런데 민주와 공화는 상반된 개념이라고 하는구나. 민주는 시민의 평등을 중시하는 반면, 공화는 시민의 불평등을 전제로 한다고 하더구나. 이런 모순된 정치 체제이기 때문에, 후진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구나. 그보다 아빠가 생각하기에 우리 나라의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많은 정치인들이 자기 또는 자기네(정당) 밥그릇 챙기는데 열정을 쏟고 있다는 것이란다.

====================

(51)

우리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한다. 민주와 공화의 개념을 합쳐놓은 것이다. 그런데 민주(民主, demokraita)와 공화(共和, res publica)는 기원과 담기는 내용이 서로 같지 않다. 기원에서, 전자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민주정치, 후자는 로마의 공화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내용에서는, 전자가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다소간 시민들 간의 불평등을 전제로 한 귀족공화정에서 유래한다.

====================

우리나라는 대의제를 따르고 있는데, 이 대의제의 기원은 그리고 아테네의 민주정이란다. 아테네의 민주정을 따르려면 정확하게 따르면 좋겠는데, 장점을 과감하게 생략해 버렸단다. 아테네에서는 어떤 법안을 정할 때 시민들로 이루어진 민화에서 최종 결정을 한다고 하는구나. 법안이라는 것이 시민들을 위한 법이니 시민들이 최종 결정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민주정치에서 권력이란 무엇인가? 권력은 타자를 지배하는 배타적 특권이라기보다, 공동체를 위한 봉사를 동반하는 것이라는 말에 깊은 공감이 가더구나. 현정부에서는 진정한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없어 보이는구나. 말 한마디에 아랫사람들이 벌벌 기는 그런 권력만이 보여.

====================

(59)

아리스토텔레스도 공동체의 선을 중시하였으나, 그 선은 국가의 획일적 제도가 아니라 개인의 덕성에 의해 실천되는 것이었다. 그는 개인의 타고난 능력뿐 아니라 사회적 지위, 경제적 소유 등에서 불평등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불평등은 어디까지나 기능적인 적으로서, 사회적으로 부여되는 역할, 책무의 수행과 긴밀하게 연관된다. 불평등이 바로 정치권력의 지배, 피지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권력은 국가의 목적 실현을 위한 공동체적 기여에 비례해서 배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권력은 타자를 지배하는 배타적 특권이라기보다, 공동체를 위한 봉사를 동반하는 것이다.

====================

이번호에는 민주화 시민 운동을 60년 가까이 하신 정성헌 선생의 대담이 실려 있단다. 아빠는 모르는 분인데, 오랜 민주화 운동을 하신 분답게 진보적인 생각을 갖고 계시면서 먹거리, 정치, 기후위기 등 다방면에 대한 의견을 주셨어. 이런 분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정부 인사는 없겠지만 말이야. 그리고 정성헌 선생의 말씀 중에 학원과 공부에 치여 운동부족인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너희들도 생각나더구나. 아빠와 엄마의 책임이 크고 반성을 해야겠구나.

====================

(173-174)

맞아, 애들이 안 움직이잖아요. 어제 TV를 보니까 서울시내 애들 중 놀 데가 없는 애들이 80%가 넘어요. 먹고 뛰어노는 게 기본인데 하루에 필요한 활동량을 계산한 게 있어요. 13세까지는 일일 활둉량이 2만보 이상이래요. 그래야 건강한 몸이 된답니다. 19세까지는 1 8,000보고, 어른들은 7,000보 이상이면 괜찮대요. 그런데 기분 좋게 걸을 데가 마땅치 않아요. 난 조금만 살펴보면 생명사회를 만들 수 있는 생활운동은 아주 쉽다고 봐요. 문제는 지나친 디지털화예요. 이런 연구결과가 있어요. 아이가 태어나서 5살이 될 때까지 4만 회 이상 질문을 해야 뇌가 정상적으로 발육이 된다. 그런데 온갖 디지털 기기가 아이들의 호기심을 차단하고 있어요. 애들이 자극적으로 빠른 것에만 반응을 해서 즉자적인 인간이 되어버린다고.

====================

그 밖에 생각보다 오래 이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 전쟁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이야기, 한반도 지정학적 위기를 이야기하면서 대책 없는 현정부의 반중 드라이브 이야기, 탄소 중립을 위한 방안 제시, 학생 인권과 갑질 학부보, 아동학대법으로 인해 선생님들의 인권은 보호 받지 못하고 그로 인해 선생님들의 자살 사건이 이어지고 있는 이야기, 친환경 에너지를 위한 그린 뉴딜 정책이 유행인데, 제대로 된 그린 뉴딜 정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 등이 실려 있단다.

이번 호에 실린 책 리뷰 중에 <순이 삼촌>으로 유명한 현기영 작가님의 신간 <제주도우다>라는 책이 소개되었단다. 아빠가 현기영 님의 책은 많이 읽지 않았지만, 이번 신간은 한번 읽어보고 싶구나. 장바구니에 담아 놓았단다.

====================

(239)

어느 인터뷰에서 현기영은 이렇게 말한다. “역사는 제주 4.3 3만의 피해 통계로 쓰지만, 문학은 3만의 개개 사건으로 보는 거다라고, 얼마나 엄청난 선언인가. 3만의 죽음이 아니라, 하나의 죽음이 제주 곳곳에서 3만 번 벌어진 것이라니. 그는 이 같은 자신의 신념을 작품 속에 그대로 투영하여 등장인물들이 각기 다 개별적으로 자기역할을 수행하도록 세심하게 배려한다. 이창동 감독이 추천사에, “수많은 개인들의 삶과 목소리와 내면을 담아내는 섬세하고 인간적인 시선이라고 표현하면서, “읽는 내내 숨이 뜨거워지면서 거장의 숨결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고 적었는데, 이는 결코 과찬이 아니다. 현기영은 최선을 다해 작품 속 인물들에게 독자성을 부여한다. 하나의 세계가 스러진 게 아니라, 3만 개의 세계가 그때 이 세상에서 사라졌으므로.

====================


2.

녹색평론에는 매 호마다 시 몇 편을 소개해준단다. 시 읽기를 어려워하는 아빠는 활자만 읽고 넘기는데, 이번호에 실린 시 중에 한 편은 좋았단다. 김해자 시인의 <30년 후, 소년 소녀에게>라는 시인데,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에 대한 비판을 시로 지었는데, 머리 속에 잘 들어오더구나. 좀 긴데, 이 시 한 편만 읽으면 너희들도 후쿠시마 오염수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전체를 발췌해 보았단다.

====================

김해자


30년후, 소년 소녀에게


1.

2023 8 24

인류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선택했다

엘니뇨, 미래의 소년들이여,

너희 선조들은 핵물질을 10배 희석한 오염수를

바다에 흘려 넣기 시작했다

30만 년 동안 당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라니냐, 아 냉철한 미래의 소녀들이여,

1 2,500톤을 방류하면 지하수가 125톤 들어온단다

지하수를 100배 희석하면 1 2,500,

하루에 2 5,000톤 오염수를 바다에 투척하기 시작했다

30년간 2 7,000톤이라니,


너희가 살아갈 바다를 천천히 죽여가기로 결심했다 어른들끼리,

훔쳤다 너희들이 먹고살 미래의 시간을

권력은 결정했다 집단자살의 길을

엘니뇨, , 이럴 수가


2.

2011 3 11일 후쿠시마 원자로가 연쇄적으로 폭발한 이후

원전 저장탱크에는 137만 톤의 오염수가 쌓여가고 있었다

그냥 가지고 있으면 될 일이었다 1,000개가 차면

1,000개의 탱크를 만들면 될 이었다


돈 때문이었다

지하에 묻으면 3조억

대기에 방류하면 3,000

바다에 방류하면 300억이 들기에

그들은 저희들까리 결정했다 가장 돈이 적게 드는 길을

엘니뇨, , 이럴 수가


썩지 않는 죽음,

핵연료와 철근과 콘크리트 찌꺼기가 녹아 있는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기로,

가장 싼 것은 가장 위험한 길이었다 돈과 권력을 융합한 그들은

현재의 우리에게도 미래의 너희들에게도 선택권을 주지 않았다


안전하다고 말하는 저들의 말이 진실인가

아니다, 진실은 어느 누구도 정확히 모른다는 데 있다

과학과 지식과 통계수치를 아무리 들먹여도,

이것은 인간이 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몰론 몰라도 선택할 수 있다, 당첨이 안되어도 복권을 살 수 있듯이

그러나 이 길의 결과는 모두에게 무조건 나쁜 것이기에

절대로 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3.

바다에 핵오염수를 방류함으로써 누가 이익을 보는가

도쿄전력이다 일본이다 몇 사람뿐이다

누가 손해를 보는지, 오 라니냐, 너는 알겠지

지구상 모든 생명체와 바다와 하늘과 바람이란 걸

아니지, 이익의 반대말은 손해가 아니라

바로 죽음이라는 걸


여기에 있는 우리의 죽음이 아니라

10 30 60 100년 후에 올

너희들의 목숨이란 걸

미래의 너희 부모가 지금 우리의 자식들인 것처럼

바다와 땅과 공기는 모두 연결되어 있기에

땅과 바다와 사람은 한몸으로 이어져 있기에


, 엘니뇨, 따뜻한 바닷물 같은 소년이여,

너희는 바다에서 헤엄치고 모래집을 지을 수 있을까,

내가 만나지 못할 30년 후 소녀들이여,

미안하다.

우리는 아직 이 죽음의 길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를 철회하라

지금이라도 멈춰라 죽음의 방류를

====================


PS,

책의 첫 문장: 역사는 아이러니의 연속이라고 한다.

책의 끝 문장: 그 과정은 행위만 아니라 마음이 함께해야 할 것이다.



기본적인 인권과 자치권을 회복하려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평화적, 법적 노력에 대해서 이스라엘은 수십 년간 냉소와 경멸로 일관하고 있고 국제사회는 무관심하거나 방관하는 상황에서,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사람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들은 선거를 통해서 권력을 잡은 가자지구의 합법적 통치세력이었다. 저항하는 ‘테러리스트’들을 한 명도 남김없이 토벌하겠다는 이스라엘의 식민정책 속에서 ‘하마스’ 전사들이 끊임없이 양성되고 있다. - P4

정부는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는다. 정부가 만드는 정책이 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시민들이 폭넓게 개입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개입을 허용하는 틀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중요한 예를 들어보자. 앞에서 이야기한 바 있는 농업, 농촌, 식품산업 기본계획은 농정에 있어서 유일한 종합적 중기적 계획이다. 그런데 이 계획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철저히 농림축산식품부의 집안일이었다. 국책연구기관이 연구용역의 형태로 기본적 틀을 만들었고 최종 단계에서 이른바 전문가들의 의견을 형식적으로 청취하기는 했지만 결국은 농림축산식품부의 자체 판단으로 만들어졌다. 계획의 수립 주체가 정부인 것은 법이 정하고 있는 바이지만, 문제는 그 과정이다. 5년간 농정의 기본적 틀을 만드는 일에 농민, 농촌 주민, 소비자, 환경에 관심을 가진 시민들은 의견을 표명할 기회조차 제대로 갖지 못하였다. - P18

민주정치의 핵심은 민중주권이며, 그것은 민중에 의한 정책 결정권과 결정 절차로서의 다수결을 원칙으로 한다. 현재 한국에서 민중주권을 현실화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담론이 있다. 그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민중을 우매한 존재로 보고 민중이 직접 결정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며, 그래서 남달리 현명하고 도덕적인 사람을 뽑아 권력을 대신 행사하게 해야 한다는 대의제 담론이다. 둘째, 민중은 날 것 그대로서가 아니라 심사숙고하거나 교육과 훈련을 받아서만 올바른 결정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관점도 민중을 완결적인 존재로 보지 않고, 지도자 혹은 어떤 다른 기제에 의해서 교도되어야 한다고 보는 점에서 대의제와 같은 맥락에 있다. - P60

예술은 인간을 넘어서 모든 생명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합니다. 문학이 사람을 갑자기 변화시킬 수야 없겠지요. 그래도 문학은 끊임없이 인간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문학도 없고, 예술이 없다면 인간은 더욱 무서운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짐승과 다를 바가 없어질 것입니다. 저는 그런 맥락에서 이 시대 교육과 문화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오늘날 세계 어디에서나 문학을 비롯해서 교육과 문화가 타락하면서 인간이 대단히 왜소해졌어요. 뭔가 대중문화가 인간을 작게 만들고 있기 때문에 더 좋은 문학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P111

그린뉴딜은 최근 수십 년래에 등장했던 어떤 제안보다도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그것은 실업문제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 전 국민에게 의료보험과 주거를 보장하고 학자금 대출을 탕감해주면서 전례없는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제안에는 장애물이 있다. 어떤 형태가 됐든 에너지를 생산하는 일은 자연과 인간 삶의 파괴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세계인의 삶의 질을 고양하면서 동시에 화석연료를 비롯한 에너지원의 사용을 줄이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진보적인 그린뉴딜이라면 에너지 삭감, 즉 에너지 보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에너지 사용 총량을 줄이는 것은 인류가 존속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 P136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24-01-28 13: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샀는데 다 읽지 못했어요. 이렇게 정리하시다니 훌륭합니다!!
좋은 글이 많아 사게 되더라고요.^^

bookholic 2024-01-28 21:51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많은 분들이 <녹색평론>을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페크 님의 글도 <녹색평론>에서 만나 보면 좋겠습니다^^
 
소녀 동지여 적을 쏴라
아이사카 토마 지음, 이소담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작년에 출간한 <소녀 동지여 적을 쏴라>라는 책은 책표지로 인해 눈에 확 띄었단다.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소녀가 소총으로 겨누고 있는 그림은 호기심을 갖게 충분하였단다. 그리고 책 제목도 <소녀 동지여 적을 쏴라>로 강렬했어. 역시 책 제목과 책 디자인은 무척 중요하구나. 책 소개를 읽어보니, 일본 서점대상을 수상하고, 애거서 크리스트상을 최초로 심사위원 전원이 만점을 준 작품이라고 하는구나. 이런 홍보 문구에 속으면 안 되는데, 아빠는 이런 홍보 문구에 잘 넘어간단다.

일본 소설이니까 일본을 배경으로 한 소설인 줄 알았는데, 소련과 독일이 2차 세계 대전 때 벌인, 일명 독소전쟁을 배경으로 했다는구나. 그 유명한 스탈린그라드 전투도 배경이 되었고 말이야.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아빠가 읽고 싶은 책 리스트에 있는 <피의 기록,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전투가 아니겠니. 그렇다 보니 이 소설이 더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쑥 올라갔단다.

지은이 아이사카 토마는 일본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고 하는구나. 퇴근 후 집에서 책을 썼는데, <소녀 동지여 적을 쏴라>가 그의 데뷔작이고, 그 책이 온갖 상을 휩쓸고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라고 하는구나. 이 정도면 글쓰기에 남다른 재능을 타고났을 것 같은데, 그 동안 평범한 직장 생활을 했다니얼마나 손이 근질근질했을까.  지은이 아이사카 토마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읽고 여성의 시각으로 바라본 전쟁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 먹었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라는 책은 아빠도 읽어보겠다고 몇 년 전에 샀다가 아직 읽지 않고 있는 책인데, 한번 읽어봐야겠구나. 책을 찾는데 좀 애를 먹겠지만 말이야.


1.

그러면 <소지 동지여 적을 쏴라>라는 책의 내용을 이야기해볼게. 1940년 모스크바 인근 시골 마을에 세라피마는 엄마랑 둘이 살고 있었단다. 세라피마의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책에 나왔던 것 같은데 확실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1차 세계 대전 때 얻은 병 때문인 것으로 아빠가 기억한단다. 세라피마는 엄마와 함께 사냥으로 생계를 이어갔어. 엄마와 둘이 살지만 마을 사람들과 모두 친하게 잘 지내서 외로움 같은 것은 느끼지 못했단다. 그렇게 평화롭던 시골 마을에도 전쟁의 기운이 돌았단다.

1942년 어느 날 독일군들이 쳐들어와 마을 사람들을 모두 죽였단다. 세라피마만 간신히 살아났어. 독일군들이 세라피마에서 몸쓸 짓을 하려고 했는데, 때마침 소련군들이 와서 독일군을 몰아냈단다. 세라피마는 그 마을의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어. 마을에 온 러시아군들은 세라피마의 엄마를 포함한 마을 사람들의 시신을 모두 불태우고 마을도 모두 불태웠단다. 독일군들이 마을을 이용하지 못하게 말이야. 어렸을 때부터 추억이 담긴 마을은 그렇게 불타 없어졌고, 엄마의 시신도 불태워져 사라지고 말았단다. 세라피마는 독일군도 미웠지만, 그렇게 마을과 엄마의 시신을 불태운 소련군도 미워했어. 특히 그걸 지시한 이리나에게는 적개심을 갖고 이리나에게도 복수를 하겠다고 다짐했단다. 하지만 지금 혼자 지낼 수 없어서 이리나를 따라 갈 수밖에 없었단다.

이리나는 세라피마를 데리고 여자 저격병 군사학교에 데리고 갔어. 그곳은 여자들만 저격병 훈련을 받는 그런 곳이었단다. 그곳에 있는 이들은 다들 독일군에게 식구들이나 친구들을 잃고 혼자가 된 이들이었어. 훈련은 쉽지 않았단다. 실제 전쟁에 참가해서 저격병으로 임무를 해야 하니 훈련도 실전처럼 했단다. 중간에 탈락자도 생기고 그랬어. 저격병 군사학교를 졸업할 때는 5명만 남았단다. 시골 귀족 출신이지만 그 출신을 무엇보다 싫어하고 부끄러워하는 샤를로타를 비롯해서 아야, 야나, 올가, 그리고 세라피마 이렇게 다섯 명이었어.

그런데 그 중에 올가는 사실 이리나의 라이벌인 하투나가 보낸 내부 첩자였단다. 같은 러시아 군이긴 한데 그곳에서도 경쟁이 있다 보니, 하투나가 이리나의 사정을 살펴보려고 보냈던 사람이었어. 그러나 이리나도 진작에 올가가 하투나의 사람이란 것을 눈치챘는데, 그걸 오히려 역이용 하는 등 모른 척 했었단다. 올가를 제외한 세라피마, 샤를로타, 아야, 야나, 이렇게 네 명이 진정한 이리나의 제자였단다. 저격병 군사학교를 졸업한 그들은 한창 전쟁 중인 스탈린그라드에 배치되었단다. 이리나가 네 명을 이끌고 스탈린그라드로 향했단다. 이제부터 실전이다.


2.

세라피마의 시골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몰살당했다고 했잖아. 그런데 그 전에 군대에 입대한 세라피마의 친구 미하일은 그 참변을 피할 수 있었어. 미하일은 참변 소식을 듣고 오열했단다. 마을 사람들이 몰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세마피마도 죽은 줄 알았어. 그래서 더욱 슬픔에 가슴 아팠지. 세라피마와 미하일은 동갑내기 친구였지만,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던 사이였거든. 미하일은 독일에 대한 복수심이 더 끓어올랐고, 군생활도 열심히 해서 상사로 진급하였단다.

한편 이리나가 이끈 저격부대는 첫 작전에 투입하게 되었어. 스탈린그라드를 역포위하는 천왕성 작전이었단다. 소녀 저격부대에서 가장 사격술이 뛰어난 이는 아야였는데, 뛰어난 실력답게 첫 작전에서 적군을 12명이나 사살이라는 공을 세웠단다. 하지만, 자신의 실력을 너무 과신한 나머지 실수를 했단다. 저격병은 한 자리를 지키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룰이 있는데, 이 룰을 지키지 않고 한 자리에서 적에게 총을 쏘다가 위치가 노출되어 그만 죽고 말았단다. 그렇게 힘든 저격 훈련 학교를 졸업한 가장 유능한 저격병이었는데, 첫 작전에서 허망하게 죽고 만 거야. 다른 소녀들은 슬펐지만 슬퍼할 겨를이 없었단다. 계속 전투는 이어졌어. 세라피마를 비롯한 나머지 저격병들의 활약과 때마침 아군의 전차부대가 공격하여 천왕성 적전은 성공하였단다. 이 때 타냐라는 소녀 의무병이 저격부대와 합류했단다.

두 번째 작전은 12대대를 지원해주는 것이었단다. 대대라고 하면 엄청 큰 군대 단위인데, 전투 중에 죽거나 흩어져서 지금은 4명만 남아 있었어. 막심 대장이 그들을 이끌었어. 그들은 적군의 감시망 때문에 이동을 할 수 없고, 현재 머무르고 있는 진지를 지켜야 했어. 그런데 그들이 머무르고 있는 진지는 사실은 막심 대장이 집이었단다. 그곳에서 독일군의 진격을 막아내고 있었던 거야. 적군에도 저격병들이 배치되어 있었단다. 이번 전투는 저격병들 사이의 전투라고 할 수 있었고, 상대방이 허점을 보일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했어.

독일군이 야비한 작전을 펼쳤단다. 전쟁과 관련 없는 마을 아이들을 공격하여 아군의 정체를 드러내게 하려고 했던 거야. 보그단이라는 군인이 부상 당한 아이들을 대피시키려고 했다가 그만 적의 저격병이 쏜 총에 맞아 죽고 말았어. 섣불리 움직이면 안 되었단다. 세라피마는 은폐된 곳에서 적의 저격병이 나타나기를 끈기 있게 기다렸단다. 그리고 적의 저격병이 가늠자에 들어오자 죽였단다. 그리고 다른 적군들도 유인하여 몇 명을 더 죽였어. 자신도 모르게 적군을 죽이면서 희열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어. 그 희열 때문에 저격병은 한 곳에 머무르면 안 된다는 룰을 잊고 있었어. 다행히 이리나가 와서 세라피마를 데리고 가서 목숨을 살릴 수 있었단다. 세라피마는 적을 사살하는 것에 희열을 느끼고 있던 자신을 혐오하기도 했단다. 전쟁은 이렇게 사람들을 모두 미치게 하는구나.

적군인 독일군은 우연히 소련군의 여성 파르티잔 두 명을 체포했단다. 그 둘을 이용하려고 했어. 두 파르티잔을 소련군이 보이는 곳에서 처형을 하려고 했단다. 그 장면을 본 12대대 소속 유리안이 깜짝 놀랐어. 그 두 파르티잔들은 바로 자신의 대학 동기였거든…. 참지 못하고 유리안이 독일군을 향해 총을 쐈어유리안의 위치가 노출되었단다. 이걸 독일군이 노린 것이었어. 유리안은 독일군의 함정에 빠져 그만 죽고 말았단다.

소련군의 숫자가 확연히 줄어들었다고 판단한 독일군은 중대 병력을 이끌고 진격하였단다. 막심대장은 지원 요청을 했지만 철수 명령을 받았어. 하지만 막심대장은 자신의 집을 버릴 수 없었어. 자신은 그곳에 남아서 독일군과 최후의 일전을 벌이겠다고 했단다. 결국 막심대장만 두고 나머지는 철수를 했단다.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그 이후에도 공방전을 펼치다가 1943 1 31일 독일군 사령관 파울루스의 단독 항복으로 끝이 났단다. 소련이 독일로부터 스탈린그라드를 지켜냈어.


3.

시간이 흘러 1945 3.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단다. 세라피마는 군인이다 보니 남자군인들과 더 많은 생활을 했어. 그런데 아군의 어떤 보병이 전쟁 중에 독일 여자를 능욕한 것을 자랑하듯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어. 전쟁 중에 힘없는 여자를 능욕한 것을 자랑하는 이야기를 세라피마는 참을 수 없었어. 그것은 여성 전체에 대한 모욕이었어. 뿐만 아니라 같은 편인 저격병 여자들한테도 숨어서 총이나 쏜다면서 무시하고 성희롱도 했어. 이에 격분한 세라피마는 그 남자보병과 다툼까지 했단다. 그곳에서 세라피마는 우연히 미하일을 만났어. 미하일은 포병 소위가 되어 있었어. 고향에서 헤어진 이후 처음 만났는데, 감회가 새롭기도 했지만, 고향 생각에 슬픔에 잠기기도 했어. 죽은 줄 알았던 세라피마를 만난 미하일도 무척 기뻐했단다. 세라피마는 아까 보병이 했던 이야기를 미하일에게 물어보자, 미하일은 소련군이 독일여자를 능욕했던 일들이 사실이라고 했어. 세라피마은 인간으로써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어.

...

세라피마 등 저격대는 쾨니히스베르크 전투에 참가했단다. 그 전투에서 야나는 부상당한 독일 아기를 구하려다가 총상을 입고 중상을 입었어. 다행히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단다. 세라피마는 독자 행동을 하다가 독일군에 잡혀 포로가 되었어. 고문을 당하는 등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기지를 발휘하여 탈출해 성공했어. 그러나 여전히 적지라서 어려운 상황이었단다. 그런데 어디선가 올가가 나타났어.

올가 기억나지? 저격병 학교에서 이리나의 라이벌 하투나의 접차였던 사람. 그러니까 지금까지 반대편으로 나쁜 역할이었는데, 그 올가가 나타나서 세라피마를 구출해주었단다. 올가도 착한 사람이었지만, 군대라는 지휘체계에서 반대편에 있었을 뿐이야.

그런데 그만 올가는 적군의 총격으로 죽고 말았어. 총알은 누구도 피해가지 않았어. 이리나가 와서 도와주어 세라피마는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었단다. 탈출하면서 그들은 말로만 듣던 소련군의 치욕스러운 장면을 목격하게 돼. 소련의 붉은 군대가 독일 민간 여자를 능욕하는 장면을 보았어.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짓을 한 자가 미하일이었어. 세라피마는 미하일에 심한 배신감을 느꼈어. 갈등을 느끼기도 했지만, 세라피마는 미하일을 저격했단다. 전쟁 성범죄에 대한 직결처분.

….

전쟁이 끝나자 여자 저격병들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어. 국가는 그들에 대한 대우를 하지 않았단다. 그렇다고 그들이 전쟁 중에 했던 것이 가치가 있었는가. 전쟁이 끝나고 소련은 스탈린 독재정치로 백성들을 공포로 몰아넣었어. 이런 것을 위해 전쟁을 했던 것인가. 그리고 스탈린이 죽고 나서 스탈린 지우기에 나선 소련은 스탈린그라드의 이름도 볼고그라드로 바꿨단다.

====================

(527)

스탈린 체제가 공포정치였다면, 그것을 떠받들며 싸운 우리는 대체 뭐였지?

어쨌거나 스탈린은 극악무도한 자였던 만큼 그의 업적을 모조리 부정해야 하기에, 보존했던 시신을 매장하고 동상을 부수고 각종 서적을 다시 썼다. 당연히 스탈린그라드도 이름을 바꿔야 했는데, 그렇다고 옛 이름인 차리친은 차르, 즉 황제를 연상시키므로 사회주의국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 때문에 볼가강에 가깝다는 이유로 볼고그라드라는 무미건조하고 중립적인 이름을 대충 가져가 붙인 것이다.

====================

….

여자 저격대원들은 전쟁이 끝나고 사람들에게 잊혀져서 평범하게 살았단다. 세라피마와 이리나는 세라피마의 고향에 돌아와서 같이 지냈어. 그들은 세라피마의 고향을 재건하면서 살고 있었단다. 야나와 샤를로타는 전쟁 때부터 소원이었던 빵공장에서 일했단다. 간호병으로 합류했던 타냐는 간호사로 지냈어.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이 소설의 지은이 아이사카 토마가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하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의 책제목처럼 전쟁은 여자들은 무시당하고 힘없는 존재였어. 소련과 독일은 전쟁 중에 수많은 여성 피해자들에 대해서 서로 암묵했단다. 아무도 전쟁성범죄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어.

====================

(532)

소련에서도 독일에서도 전시 성범죄 피해자들은 입을 다물었다. 이는 여성들이 입은 엄청난 정신적 고통과 성범죄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밝히는 것을 혐오하는 각 사회의 요구가 합쳐진 결과였다.

마치 교환 조건이 성립된 것과 같았다. 소련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저지른 독일 국방군과 독일인에게 폭력을 저지른 소련군은 사이좋게 입을 다물고 서로를 탓하지 않았다.

기본 좋은 영웅적 이야기. 아름다운 조국의 이야기.

참혹하고 비극적인 이야기. 무자비한 독재의 이야기.

그것은 독일에서도 소련에서도, 남자들의 이야기였다. 이야기 속의 병사는 반드시 남자의 모습이었다.

====================

이런 일이 예전의 전쟁만 있는 것은 아니야. 현재 전쟁중인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도 포로에 대한 성폭행이 있었다는 기사를 보았단다. 전쟁 자체가 사라져야 할 것인데, 여전히 전쟁이 계속 일어나고, 그 속에서 비인간적인 만행이 계속 일어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구나. 지금은 온 지구인들이 기후위기에 맞서 싸워도 모자랄 판에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으니, 이보다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겠니.

지나친 홍보 문구에 재미없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재미있게 술술 잘 읽혔단다. 독소 전쟁에 대해 조금 이해할 수 있었고, 전쟁의 참혹함과 그 속에서 힘없는 여자들의 희생 또한 알게 되었단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조만간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을 읽어봐야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장작 패는 소리가 봄의 도래를 알리는 새벽종처럼 작은 마을에 울려 퍼졌다.

책의 끝 문장: 그곳에는 반드시 사람이 있다.


질문의 의도는 전혀 알 수 없었으나 유르겐은 자기 인생을 돌이켜 봤다.
십대 중반까지, 독일의 축구 국가대표가 되어 외국에 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에 출전하여 배를 타고 여러 나라에 가서 축구를 하고 환성을 듣고 싶었다. 외국 선수와 친구가 되고 싶었다. 코치들에게 제2의 제프 헤르베르거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그러니 병역이 없었다면, 또 올림픽과 월드컵이 중지되지 않았다면 정말로 그렇게 됐을지도 모른다.
"네 동료가 쏜 여성은 두 아이의 엄마였어. 그 후에도 엄마로 있고 싶어했지. 잃어버린 아이들을 키워서, 언젠가 손주를 만나고 싶어 했어."
- P455

"나는 멈출 수 없었어.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용서해 줘. 나는 지금 죽을 수 없어.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오면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 전쟁만 아니었다면 나는 그런 끔찍한 짓은 하지 않았을 거야. 전부 전쟁이 나쁜 거야. 그러니까 부탁이야. 제잘 용서해 줘." - P479

소련이라는 이름의 국가는 삐걱거리며 나아가는 쇄빙선과도 같았다.
크고 작은 얼음을 부수며 나아가던 선체가 각종 사회적 모순으로 타격을 받아 언젠가 가라앉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모두가 한마음으로 느끼고 있었다. 배가 가라앉으면 보트에 나눠 타서 혹한의 바다로 노를 저을 수밖에 없다. 항해 도중에 선장이 바뀌는 것처럼 권력자가 바뀌고 가치관이 달라진다.
- P53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흐마니노프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가 시리즈 17
리베카 미첼 지음, 이석호 옮김 / 포노(PHONO)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몇 년 전에 아빠가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임현정 님의 연주를 찾아보다가 임현정 님이 연주하는 라흐마느노프의 피아노 협주곡들을 들었단다. 아빠 귀가 막귀이긴 하지만, 임현정 님의 파워풀한 연주는 딱 아빠 취향이더구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워낙 유명하니까, 선율이 익숙했고 다른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들도 나쁘지 않았단다. 그러면서 라흐마니노프에 대해서 궁금증이 생겼단다. 아빠가 음악가의 삶과 음악에 담긴 이야기가 담긴 책을 좋아하는 편이잖니. 그래서 궁금증이 생긴 라흐마니노프에 관한 책도 검색해 보았단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출간된 책 중에 제대로 된 라흐마니노프에 관한 책이 없었어. 책이 무수히 출간되고 있지만, 아직 원하는 책을 읽지 못하는 경우도 있구나. 우리나라 출판업계 더 열심히 일해야겠구나. 아무튼아빠가 원서를 읽을 수도 없고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지.

그런데 얼마 전에 신간 코너에서 라흐마니노프 전기가 출간된 것을 보았단다. 낯익은 얼굴이 책 표지 전체를 차지하고 있었어. 드디어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된 라흐마니노프 전기가 출간되었구나. 책 표지 색상이 심각한 표정의 라흐마니노프와 잘 어울리더구나. 너희들도 좋아하는 라흐마니노프,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아빠가 짧게 이야기해줄게.


1.

라흐마니노프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러시아 출신으로 1873 4 1일에 태어났다고 하는구나.  태어난 시기가 참 절묘하구나. 아빠가 러시아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하지만, 마지막 황제, 계속된 혁명, 소비에트의 탄생 등 러시아 국내에도 굵직한 사건이 많았던 시기이고, 세계 1차 대전, 2차 대전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 많던 시기였어. 좀더 평화로운 시기에 태어나서 음악 활동을 했다면 어땠을까? 그런 시대에 태어나서 그의 음악에 그 시대의 색이 덧칠해져서 더 훌륭한 작품들이 나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단다. 평화로운 시기에 음악 활동을 했다면 다른 색의 음악을 했을 수도

라흐마니노프는 쇠락 위기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단다. 특히 어머니가 장군의 외동딸로 재력이 있으셨지만, 어린 시절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단다. 육 남매 중에 네 번째로 태어났는데, 부모님이 사이가 안 좋아지면서 별거를 하셨고, 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사셨대. 어렸을 때 누나 두 명이 일찍 병으로 죽어 라흐마니노프는 충격을 받았어. 이런 저런 이유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되었어. 그래도 음악의 재능이 있어서 즈베레프라는 음악가의 제자가 되어 음악을 하게 되었고, 어렸을 때부터 스승을 통해 차이코프스키 등 당시 러시아의 유명한 음악가들도 만나게 되었단다. 하지만, 16살에 즈베레프와 의견 충돌로 결별하게 되었단다.

불안정한 어린 시절을 보내던 라흐마니노프는 고모의 집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안정을 찾았단다. 고모의 자녀들, 그러니까 라흐마니노프의 고종 사촌들이 4명이 있었는데, 모두 라흐마니노프에게 잘 해주었단다. 그 중에 나타샤와는 나중에 결혼도 하였단다. 안정을 되찾고 음악원에 들어가 음악도 제대로 배우게 되었는데, 이때 그는 뛰어난 피아노 연주로 인해 유명해지기 시작했어. 작곡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는데, 1895 1번 교향곡을 작곡했어. 2년 뒤인 1897 1번 교향곡이 처음으로 연주되었는데, 안타깝게도 혹평이 이어졌다고 하는구나. 당시 지휘를 맡았던 글라루노프가 망쳤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이 작품의 실패로 라흐마느니프는 심한 우울증에 빠지고 좌절했다고 하는구나.

첫 번째 작품인데 너무 실망하긴 이른 거 아닌가, 힘 내야지주변에서 이런 말들을 해줬겠지? 그렇게 격려해 준 사람 중에 톨스토이도 있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달 박사의 최면치료로 많이 좋아졌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사촌인 나타샤도 적극적으로 라흐마니노프를 도와주었대. 마음의 안정을 되찾은 라흐마니노프는 다시 작곡 활동을 했는데 이 시기에 만든 곳이 그 유명한 <피아노 협주곡 2>이라고 하는구나. 처음 2악장과 3악장만 먼저 만들어 연주했는데 큰 성공을 거두었고, 1년 뒤에 1악장을 추가하여 완성했다고 했어. 이 곡을 통해 라흐마니노프는 한 단계 올라선 음악가가 되었단다.

======================

(119-120)

레오니트 사바네예프는 러시아 망명 언론에 게재한 리뷰에서 라흐마니노프가 <피아노 협주곡 2>을 통해 강력한 사운드, 숙달된 리듬, 인간의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손 등 그야말로 리스트처럼 모든 것을 갖춘, 그리고 거기에 더해 러시아의 영혼까지 가미된모든 성장을 마친 특출된 피아니스트로 우뚝 섰다고 칭찬했다. 과연 이 작품으로 올린 개가 덕분에 라흐마니노프는 직업 음악가로서의 경력에서 새로운 단계로 올라섰다. 그와 동시대를 산 누군가는 이렇게 술회했다. “모스크바는 라흐마니노프를 흠모했다. … 모스크바의 대중은 라흐마니노프라면 껌뻑 죽었다. 그는 그들의 우상이었다. 그의 연주가 모든 이의 영혼을 파고들어 다른 어떤 음악가도 건드리지 못하는 심금을 울린 게 분명했다.

======================


2.

1902년 나타샤와 결혼했단다. 사촌 간 결혼했다는 것이 오늘날 시각에서는 이해할 수 없고 그 당시에는 일반적인가 싶었는데, 당시 러시아에서도 사촌 간 결혼은 할 수 없었대. 어렵게 결혼까지 골인했다고 하는구나. 1903년에는 첫 딸 이리나가 태어났고, 1904 3월에는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의 지휘자를 맡게 되었단다. 개인적으로는 행복한 날들이 계속되었지만, 러시아는 혼돈과 불안의 시기였단다. 사회는 빠르게 현대화하고 있는데, 여전히 제정군주가 통치하던 모순된 사회

1905년 노동자들의 불만이 퍼져 시위를 벌였고, 정부는 총으로 대응하면서 피의 일요일 사건 등이 일어나는 등 혼란의 시기가 이어졌단다. 이런 혼란은 라흐마니노프에게도 영향을 주었어. 3년간 독일 드레스덴에서 지내다가 러시아로 돌아왔단다. 그리고 1909년에는 처음 미국 순회 공연을 갔는데, 큰 성공을 거두면서 이제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가 되었단다. 이 시절 또 하나의 대표곡 <피아노 협주곡 3>을 작곡했단다.

======================

(176-177)

<피아노 협주곡 3>은 러시아정교회의 성가를 떠오르게 하는 음계 위주의 구불구불한 도입 선율부터 해서 낭만적이고 러시아적인 정취를 한껏 품고 있다. 이 뚜렷한 러시아성은 빈틈없는 주제들의 통일성 및 피아니스트로서 라흐마니노프의 기량을 뽐내기에 안성맞춤인 눈부신 기교와 더불어 이미 작곡가의 <피아노 협주곡 2>과 친숙하던 미국 관객을 겨냥한 노림수였던 듯 보인다. 미국의 평론가들은 이 곡의 음악적 특징을 전작보다 윗길에 놓았지만, 정작 관객들에게는 그만한 인기를 끌지 못했다. 곡을 헌정받은 러시아의 동포 피아니스트 요제프 호프만은 이 곡을 단 한 번도 연주하지 않았다. 아닌 게 아니라, 독주자가 소화해야 하는 두터운 화음 텍스처와 널찍한 음역은 호프만의 조그마한 손보다는 라흐마니노프의 전설적인 뼘 너비에 적격인 게 사실이다. 호프만은 또한 이 곡에 구조미가 부족하다면서 협주곡보다는 환상곡에 가깝다고 조롱하듯 깎아내리기도 했다. 과연 제3악장은 협주곡치고는 제법 덩치가 큰데, 다만 리처드 타루스킨은 이례적 구성 덕순에 이 곡만의 멋진 개성이 가능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피아노 협주곡 3>이 피아니스트들이 스탠더드 레퍼토리로 편입된 건 1928년에 있었던 블라디미르 호로비치의 연주 덕분이다. 호로비츠의 연주를 듣고 압도당한 라흐마니노프는 작품을 통째로 삼킨 연주!”라고 상찬했다.

======================

그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유럽 이곳 저곳에서도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면서 그 공연들도 중단되고 말았단다.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면서 라흐마니노프도 징병 대상자였기 때문에 언제 끌려갈지 모르는 마음에 늘 불안해 했다고 하는구나. 결국 징병되지는 않았지만 말이야.

1차 세계 대전과 절친의 갑작스런 죽음은 그를 죽음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대.

1917 2월에는 러시아에서는 군주제가 막을 내렸단다. 라흐마니노프도 구세대 유물이었던 군주제가 끝난 것을 환영했단다. 하지만 사회는 여전히 혼란스러웠고, 혁명 세력의 주동자들인 농노들은 지주를 압박했는데, 라흐마니노프의 장인도 지주였고, 그들의 집도 저택이라서 농노의 공격 대상이었단다. 그들도 언제 공격 당할지 모르는 상황이라서, 사회가 안정될 때까지 외국에 가 있는 것을 고려했어. 1917 9 5일 러시아에서 마지막 연주를 했단다. 곧바로 1917 10월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고, 라흐마니노프는 식구들과 함께 사랑하는 조국을 뒤로 하고 미국으로 망명했단다.

이 전에 미국에서 순회 공연에서 큰 인기를 끌어서 미국에 정착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어. 여러 기업이나 단체에서 지원을 받아 음악 활동을 하였단다. 그렇게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정착하는 것은 쉽지 않았겠지만, 정신적으로도 정착하고 안정을 찾는 것도 쉬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구나. 더욱이 라흐마니노프는 조국 러시아를 무척 사랑했는데


3.

미국에서의 생활은 음악에 대한 열정, 그 자체였단다. 미국은 이미 녹음 기술도 발명이 되어서 유명한 음악가의 음반 산업도 활발했어. 라흐마니노프도 피아노 녹음 작업을 많이 했다고 하는구나. 미국 생활은 비교적 풍요로웠지만 러시아와 유럽에 대한 갈망은 여전했나 봐. 1930년에는 스위스 루체른 근교에 빌라를 새로 지었는데, 빌라의 이름은 자신의 이름인 세르게이와 아내 나타샤의 이름을 합쳐 세나르라고 지었단다. 이곳에서 교향곡 3번을 작곡하는 등 많은 작곡 활동도 했대. 1930년대면 그의 나이도 이제 육십 대에 들어섰어. 몸 여기저기서 경고음이 들리기 시작했지. 피아노 연주자로서는 치명적인 관절염도 있어서 의사가 콘서트 일정을 줄이라고 권고했지만, 라흐마니노프는 나이가 들수록 더욱 음악과 연주에 열정이었단다. 무대에서 죽는 것이 그의 꿈이었어.

======================

(306-307)

의사까지 나서서 콘서트 일정을 줄이라고 하였지만 오히려 라흐마니노프는 역정을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연주회는 내 유일한 기쁨입니다. 내게서 연주회를 앗아가면 나는 시들고 말 겁니다. 통증이 있어도 연주할 때는 사라집니다. 종종 얼굴과 머리 왼쪽의 신경통이 스물네 시간 동안 나를 괴롭힐 때도 있지만, 연주회 전에는 마술처럼 없어집니다. 세인트루이스에서는 요통 때문에 아주 고생했습니다. 무대 위의 피아노 앞에 앉은 상태에서 막이 올랐고, 연주를 할 때는 조금도 통증이 없었지요. 하지만 연주가 끝나니 일어설 수가 없는 겁니다. 결국 막을 내린 다음에야 간신히 몸을 움직일 수 있었어요. 아뇨, 연주를 줄일 수는 없습니다. 일을 멈추면 시들어버리고 말 테니까요. 안 됩니다 무대 위에서 죽기를 바랄 수밖에요.”

======================

스위스 루체른의 생활은 히틀러에 의한 유럽 정세가 심상치 않게 되면서 마무리 되었단다. 1939 8월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어. 그가 미국으로 떠난 지 일주일 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단다. 이때 함께 오지 못한 둘째 딸 타타냐와 루체른의 빌라 세나르는 더 이상 볼 수 없었다고 하는구나. 1942년에는 베벌리힐즈 에 주택을 장만하고 죽기 전까지 이곳에 머물렀어. 1942년 데뷔 50주년이 되던 해라서 여기저기서 축하를 받았는데, 특이한 것은 그가 도망 온 러시아에서도 축하 선물을 보내주었다고 하는구나. 1943년 피부암으로 건강이 악화되었고, 2 5일 생애 마지막 연주회를 열었고, 3 28일 눈을 감고 말았다고 하는구나. 죽기 직전까지 음악에 대한 열정을 불살랐구나.

라흐마니노프는 작곡가로 피아니스트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평생 마음 한 곳이 허전하지 않았을까 싶구나. 사랑하는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타국에서 삶을 마감했으니 말이야. 그래서인지 그의 사진에는 웃는 사진을 찾아볼 수가 없구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사람인 것 같구나.

======================

(11)

음악학자 앨프리드 스완은 1944년 자신의 친구에 관한 견해를 이렇게 정리했다. “깊은 사랑이 넘치는 가정을 꾸렸음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서 거둔 커다란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의 관객이 보여준 깊은 헌신에도 불구하고 라흐마니노프는 자기 안에 갇혀 살았다. 그는 고독한 정신의 소유자였으며, 조국 러시아를 영원히 그리워했다.”

======================

….


PS,

책의 첫 문장: 세르게이 바실리예비치 라흐마니노프는 어떤 인물이었는가?

책의 끝 문장: 그리고 상상 속 그의 손끝에 있는 건반은 제정 러시아 시절에 각별히 선호한 독일제 베히슈타인이 아니라, 1934년 라흐마니노프가 그 어느 때보다 완벽한악기를 가능케 한다고 칭찬했던 민첩한 액션으로 무장한 스타인웨이의 감응력 좋은 현대식 피아노였을 것만 같다.


숨을 거두기 얼마 전 라흐마니노프는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낯설어진 세계를 떠도는 유령이 된 것만 같다. 낡은 작곡 방식을 펼칠 수도 없고, 새로운 작곡 방식을 습득할 수도 없다. 오늘날의 음악 양식을 느껴보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였지만 이는 내 능력 밖의 일임을 알고 있다. 나비부인은 남편을 위해 순순히 개종하였지만, 나는 내가 믿어오던 음악의 신들을 냉큼 버리고 새로운 신들 앞에 무릎 꿇을 수 없다. 내가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낸 러시아에 닥친 재앙과도 같은 운명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음악이, 그리고 모든 음악에 대한 나의 반응이 정신적으로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고 늘 느껴왔고 지금도 그렇게 느끼고 있다. 그것은 아름다움을 창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명을 향한 끊임없는 순종이었다."
- P12

평생 현대 기술에 매혹되어 산 사람답게 라흐마니노프는 첫 공개 연주회 장소도 그에 어울리는 곳으로 골랐다. 바로 1892년 9월 26일에 열린 모스크바 전기박람회 현장이다. 이날 연주회에서 그는 안톤 루빈시테인의 <피아노 협주곡 4번> 제 1악장, 쇼팽과 리스트의 피아노곡을 연주했다. 아울러 전 세계 청중에게 작곡가 라흐마니노프의 이름을 알릴 최신곡도 초연했다. 다름 아닌 <전주고 c샤프단조>였다. 라흐마니노프는 이 곡을 그해 가을에 작곡한 네 편의 피아노곡과 묶어서 출판업자 구트하일에게 건넸고, 구트하일은 다섯 편의 피아노곡을 <환상적 소품집, 작품 3>으로 출판했다." 출판 악보에는 라흐마니노프의 작곡 스승 안톤 아렌스키에게 바친다는 헌사가 새겨져 있었다. - P74

라흐마니노프의 인기 비결은 아름다운 선율과 풍성한 화음을 그만의 방법으로 배합한 음악에 있었다. 그의 음악을 들은 사람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대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저마다 경험한 바를 긍정받는 감정의 분출을 경험했다. 집시들이 부르는 노래, 오페레타, 그리고 문화 엘리트층이 멸시하는 ‘대중적’인 여흥과 마찬가지로 라흐마니노프가 쓴 음악을 듣는 즉시 감정이 움직인다.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음악은 그저 ‘비관적이고 우울하고 어두운’ 것만이 아니었다. 그의 이른 음악은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처지로서 누구나 느끼는 감정에 호소했다. M. L. 첼리시페바의 회고대로 라흐마니노프의 연주는 "모든 이의 영혼 속으로 파고들었고 다른 그 어떤 음악가도 건드릴 수 없는 심금을 건드려 소리나게 했다." - P197

<피아노 협주곡 4번>의 뿌리는 러시아이지만, 마틴은 이 곡이 "주로 뉴욕에서 쓰였고 서유럽에서 완성되었으며 게다가 섬세하고 명석한 작곡가의 작품이니 그가 수년간 주로 생활한 나라의 경치와 소리에 영향받은 게 당연하다"면서 "낭만파의 희뿌연 실안개는 영영 사라졌다"고 강조했다. 1924년의 라흐마니노프는 재즈와 안면을 튼 상태였고, 심지어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 초연도 참관한 다음이었다. 양식적인 면에서 볼 때 <피아노 협주곡 4번>은 한층 간결해진 주제를 사용하는 등 라흐마니노프가 군더더기를 덜어낸 작곡 스타일로 여전히 진화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 P274

라흐마니노프는 현대 기술을 사랑했고, 색소폰 같은 현대 악기들을 탐구했다. 또한 여러 망명지를 겪은 것처럼 제정러시아 말기의 시국도 경험하였다. 다시 말해, 사상과 혁신이 난무하는 격변의 소용돌이를 피하지 않고 살아내야 할 여건으로 여기고 받아들였다. 같은 이유로 라흐마니노프는 읽어버린 나라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기꺼이 짊어졌다. 그의 음악과 정신은 1914년 부활절의 크렘린궁전을 담은 로베르트 슈테를의 그림, 즉 라흐마니노프의 기억 속에 살아있는 ‘옛 러시아’의 이상화된 박제이자 그의 벽에 걸린 뮤즈를 동경했다. 라흐마니노프 개인에게 보이는 이러한 모순은 현대성의 본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P33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퍼핏 쇼 워싱턴 포
M. W. 크레이븐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인터넷 서점에서 우연히 알게 된 스릴러 소설 <퍼핏 쇼>를 읽었단다. 지은이는 M.W. 크레이븐이라는 영국 사람인데, 주인공 워싱턴 포를 내세운 <워싱턴 포> 시리즈가 유명한가 보구나. 아빠는 물론 지은이 이름도 <워싱턴 포> 시리즈도 모두 처음 들어봤단다. 아빠가 읽은 <퍼핏 쇼> <워싱턴 포>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으로 2018년에 출간되었다고 하는구나. 영국 범죄문학상인 골드 대거상을 받았다고 하는데, 읽기 전 이런 것에 현혹되면 괜히 기대감만 상승하고 나중에 실망할 수 있으니,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단다.

2018년에 출간된 책인데 우리나라에는 작년에 소개되었으니, 요즘처럼 초스피드 시대에 좀 늦게 소개된 것 같구나. 책을 읽다 보면 범인이 누구인지 대략 예측이 되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빠른 전개와 잘 짜여진 짜임새로 인해 재미있게 읽었단다. <워싱턴 포> 시리즈가 또 번역 출간되면 눈여겨봐도 될 듯 싶구나.

….


1.

이멀레이션이라는 말이 있다는데 아빠도 처음 들어왔어. 종교 제물로 바치려고 죽이는 일을 뜻하고, 특히 불로 죽이는 일이라고 하는구나.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연쇄살인범의 별명이 이멀레이션 맨이란다. 이멀레이션의 뜻을 이야기해주었으니 이멀레이션 맨이 사람을 어떤 식으로 잔인하게 죽이는지 예상이 되겠지.

영국에 신석기 또는 청동기 고대 유물인 환상열석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멀레이션 맨은 이 환상열석에서 살인을 저질렀고, 지금까지 3명이 불타 죽었는데, 모두 60대 남자들이었단다. 3 건의 유사한 살인 사건이 벌어지자 중범죄 분석섹션의 경찰들도 바빠지기 시작했단다. 중범죄 분석섹션의 스테파니 플린 경위가 이 사건을 맡았어. 플린 경위와 함께 일하는, 틸리 블래드쇼라는 데이터 분석관이 중요한 단서를 잡았단다.

틸리 블래드쇼는 천재 기질을 보이는 사람으로 데이터 분석에는 유능하지만, 사교적으로는 상당히 부족한 사람으로 마치 사회부적응자로 보였어. 어렸을 때부터 거의 집에서만 지냈다고 하더구나. 자기 스스로도 온실 속 화초라고 이야기했어. 틸리가 시신에 숨겨져 있는 정보를 하나 찾았는데, 거기에는 얼마 전부터 정직 중인 경찰 워싱턴 포의 이름이 있었고, 숫자 5가 있었어. 워싱턴 포는 중범죄분석섹션 경위로 있었는데 사고를 치고 지금은 정직 중으로 농장에서 지내고 있었단다.

스테파니 플린은 워싱턴 포를 찾아갔고, 연쇄 살인 사건에 자신이 연루되어 있다는 것, 어쩌면 자신이 다섯 번째 희생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무엇보다 범인을 잡고 싶다는 생각에 다시 경사로 복직하였단다. 그리고 스테파니와 틸리와 함께 이멀레이션 맨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했단다. 얼마 후 네 번째 희생자가 발생했단다. 워싱턴 포가 머무르고 있던 농장 근처였어. 그럼 다음은 워싱턴 포인가? 워싱턴, 스테파니, 틸리는 함께 현장에 출동하였단다. 현장에는 이 사건이 담당 경찰 리드가 나와 있었는데, 리드는 워싱턴의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는 친구였단다. 리드와 워싱턴은 범인을 찾기 위한 도움으로 주었어.

어느날 워싱턴의 집에 전달된 의문의 엽서에 워싱턴의 이름이 적혀 있었단다. 그리고 퍼컨테이션 포인트도 같이 적혀 있었어. 퍼컨테이션 포인트를 물음표를 거울에 비춘 모양 ("") 이란다. 퍼컨테이션 포인트는 아이러니 부호라고도 하고, 문장의 수사의문문에 쓰이기도 하고, 비꼼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문장에 또 다른 의미가 숨겨져 있을 때도 사용한다고 하더구나. ,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구나. 워싱턴 일행들은 퍼컨테이션 포인트 ("")를 보고선 한 가지를 떠올렸단다. 세 번째 시신에서 발견된 숫자 5는 숫자가 아니고 퍼컨테이션 포인트 ("")였다는 거야. 그렇다면 범인은 왜 워싱턴에서 퍼컨테이션 포인트 ("")와 워싱턴의 이름이 적힌 엽서를 보냈을까?

엽서를 보낸 것은 범인이 맞을까?


2.

지금까지 벌인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은 지능이 높아 보였단다. 그리고 그냥 죽인 것이 아니고, 복수 등의 목적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고, 피해자들 간의 공통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 워싱턴과 틸리는 이것에 초점을 두고 수사를 했고, 이 사건은 오래 전 존재했던 세븐 파인스라고 하는 보육원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그들 희생자들은 모두 비밀스러운 모임에 초대를 받았던 사람들이고, 그 명단도 찾아냈는데, 피해자들 중에 없는 카마이클이라는 사람은 이미 오래 전에 죽었단다. 그리고 그 비밀스러운 초대에는 당시 보육원 사회복지사였던 힐러리 스위프트가 연관되어 있었어.

20여년 전의 일이라서 힐러리 스위프트는 할머니가 되어 있었단다. 워싱턴과 리드가 힐러리 스위프트를 찾아갔고, 힐러리가 준 차를 먹고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단다. 정신을 잃으면서도 워싱턴은 스테파니한테 전화를 했어. 워싱턴이 정신을 차려 보니 힐러리는 이미 사라져 있었단다. 그렇다면 힐러리가 이멀레이션 맨? 아니 이멀레이션 우먼? 그런데 지금까지 범행을 보면 힐러리 같은 할머니가 혼자 할 수 있는 범행이 아닌데그렇다면 공범이 있는 것인가?

20여 년 전 보육원에서 있었던 비밀 모임은 무엇이었을까?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26년 전이었어. 몇몇 부유층 인사들한테 은밀한 초대장이 보내졌고, 그 모임은 커다란 크루즈 안이었고, 그들은 그곳에서 보육원의 어린 아이들을 상대로 몹쓸 짓을 했단다. 당시 그 일을 꾸민 사람이 힐러리 스위프트와 카마이클이란 사람이었단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들에게 죽음까지 당했지만, 이 일에 연루된 어른들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벌을 받지 않았단다. 아마 뒷돈으로 조치를 했겠지. 이 일은 워싱턴 포는 이번에 조사하면서 처음 알게 된 것이란다. 그런데 왜 범인은 워싱턴 포의 이름을 시신에 남기고, 워싱턴 포에서 엽서를 보냈을까? 워싱턴 포의 지인이 범인이란 말인가?

그렇단다. 이런 스릴러 소설이나 추리 소설을 읽다 보면 읽는 이도 범인이 누구일까? 추리하면서 읽게 되는데, 범인은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 범인이 아닐 것 같은 사람 중에 있단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범인은 26년 전 십대일 가능성이 높으니, 범인이 갑툭튀가 아니라면 대충 예상을 할 수 있게 된단다. 그리고 그 예상했던 사람이 범인이 맞았단다.  보육원 출신으로 그 크루즈에 들어갔던 소년들 중에 한 명. 그런데 범인이 밝혀진 이후에도 아직도 소설의 분량이 꽤 남아 있었단다.

범인은 밝혀졌지만 아직 잡지는 못했어. 범인은 아직 복수를 해야 할 사람이 남아 있었어. 힐러리 스위프트그리고 그 사건을 이 세상에 알리는 것. 그 이후 범인은 자신의 목적을 다 이루고 자신 스스로도 죽은 친구들에게 가는 것을 선택했단다. 아니, 그렇게 보이게 했는데 범인은 실제로는 죽지 않은 것 같았어. 주인공 워싱턴이 그렇게 추리를 했지. 범인이 연쇄 살인을 한 것은 잘못한 것이 맞는데, 법으로 응징할 수 없었던 것을 스스로 응징한 것이기에 그에게 동정심이 가는 것은 인지상정인가 보구나. 그리고 워싱턴이 생각한 것처럼 그 범인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어.

앞서 범인이 26년 전 사건에 대한 모든 증거들을 세상에 알리려고 했었잖아. 그 사건의 모든 증거가 담긴 usb 메모리가 워싱턴의 손에 들어오게 된단다. 그것이 사회의 많은 풍파를 일으킬 것이 예상되었지만, 워싱턴의 정의는 그것을 신문사에 보내기로 했단다.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어.

….

스포방지를 위해서 범인의 정체는 너희들한테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다시 편지를 읽어보니 다른 내용들은 스포를 엄청 많이 했구나. 이 책의 표지을 본 Jiny가 이 책 재미있을 것 같다고 했는데, 내용이 무섭고 좀 자극적이니, 좀 커서 봤음 좋겠다.

그럼 <워싱턴 시리즈>의 다음 편을 기대하면서,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그 환상열석은 수천 년을 품은 평온한 장소다.

책의 끝 문장: 포는 전송을 누르고, 뒤로 기대고는 다가올 미래를 기다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