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ea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말인데. 이 사람들의 대부분이 Idea가 번개처럼 번쩍 하고 태어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 같다.  

물론 가끔 그럴 때가 있긴 하다. 오줌을 싸거나 택시를 타거나 밥을 먹거나 직장 상사한테 혼나고 있거나 어쨌거나 저쨌거나 이리저리 등등등 할 때 번쩍하고 머리를 스치는 것들. 

이런걸 영감 혹은 직관이라고 부르는 모양인데 사실 이것은 탈근대가, 근대의 합리성과 이성주의를 비판하면서 창의성과 직관을 천재의 영역에 포섭. 스스로를 근대와 차별화하려는 음모인 것 같다.  

어쨌든 - 아... 어쨌든 이라는 단어에 감사하자 - 내 말은 아이디어, 창의력, 감성 등등이 오늘날에 이르러 지나치게 '신화화'된 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디어를 획득하는 것을 선천적, 생득적 문제로 치부해 포기해 버리거나, 우연과 영감만의 산물로 간주해 땅바닥에 떨어진 동전을 줍기 위해 길거리로 나가는거다. 하지만 과연 몇 명이나 동전을 주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Idea 발상에 대해 좀 더 비판적으로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 Idea는 생각해 내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내는 것인데 그렇다면 그 재료는 무엇이고 레시피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난 그 재료가 땅바닥에 떨어진 동전들이 아니라 아주 작은 것들, 아주 평범한 것들, 우리 주변에 당연히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 그리고 관찰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난 번 글에도 썼듯 거기서 차이를 찾아 내는 것. 그것이 창의력의 진짜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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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를 보니 iPad가 사고 싶어졌다. 난 Kindle이 더 마음에 들었었는데 막상 저걸로 영화랑 게임을 할 생각 하니 가슴이 두근두근.  

사실 책 컨텐츠는 하나도 안 살거 같은데 저걸로 책을 사면 내 서재를 꾸밀 수가 없잖아.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고 서재에 책을 꼽을 때의 그 쾌감 아, 난 역시 서재 변태인듯. 책 값을 한 10%만 올리고 현물과 함께 Book Contents를 함께 준다면 한번 생각해 보지.  

미쿡에는 오늘 출시 했을 텐데, 과연 또 어떻게 시장을 바꿔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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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라는 회사를 가지고 난리다. 그들이 좋은 디자인을 할 때는 눈을 내리 깔고 마이너 취급을 하더니 돈을 잘 번다니까 여기저기서 아우성이다. 이제 애플은 시멘트 회사 사장에서부터 국가 정당의 우두머리까지 알게 됐는데 이로써 밑에 사람들은 큰 곤욕을 치르게 되었다.

애플을 알고 난 뒤의 우두머리들은 2가지 부류로 나뉜다.  

첫째는 본인을 스티브 잡스와 동일시 하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고집 부리기를 미덕으로 여기며 사무실에는 독불장군의 신상을 모셔놓고 매일 아침 기도를 올린다. 상품 품평회나 연설을 할 기회가 오면 집요하게 밑에 사람들을 비판하고 행여나 토를 달거나 반항하는 사람들이 보이면 겉으로는 듣는 척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공명첩을 꺼내 그 행동을 각인해 둔다.  

이제 조직에는 침묵이 강림해 무거운 엉덩이를 붙이고 자리를 잡는데 우두머리는 이 침묵을 본인의 말이 맞다는 증거로 착각하게된다. 하지만 가끔 그 침묵에 자기도 답답해 '도대체 생각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왜 아무 말도 없나!'라며 역정을 내니 이로써 직원들은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햄릿이 된다.

둘째는 애플을 철저히 부인하는 부류다. 

이 사람들은 교만 부리기를 미덕으로 여기며 사무실에는 바벨의 신상을 모셔놓고 매일 아침 기도를 올린다. 애플과 비교하는 언론을 접하게 되면 분노로 온 몸을 활활 불태우고 행여나 애플을 칭찬하거나 추켜세우는 사람들을 만나면 겉으로는 태연한척 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공명첩을 꺼내 그 행동을 각인해 둔다.  

이제 조직에는 강렬한 적의가 강림해 또아리를 틀고 가지를 뻗치는데 직원들의 세뇌가 씨앗이 되어 올바른 사람들의 마음에까지 뿌리내리기 시작한다. 세뇌가 완료되고 시간이 흘러 분노가 뇌를 태워버리면 '과수원' 얘기만 듣고도 게거품을 물고 발광하니 이로써 직원들은 소돔과 고모라를 지키는 좀비가 된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결국 죽어나는 건 밑에 사람들 뿐이다. 우두머리들은 눈가리개를 하고 귀를 틀어 막은 채 쇠채찍을 손에 들고 말 위에 올라타 허공에의 질주를 준비한다. 한바탕 질주를 끝내고 난 뒤
'아무래도 소용 없는 일을 한 것 같군'하는 깨달음을 얻는 것은 밑에 사람들 뿐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경마장은 영원히 존재하고 경주는 결코 끝나지 않을텐데.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묻지 맙시다. 이것은 애플을 본 한국 사회의 비극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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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TV에서 산에 사는 아이에 대해 본 적이 있다. 아이의 집은 시골 마을에서도 꽤 떨어진 산 기슭에 있었다. 아이는 고무신을 신었고 하얀 천에 직접 황토물을 들인 옷을 아래 위로 걸치고 다녔다. 주로 하는 일은 겨울산에 뿌리 내린 풀들을 맛보는 것이었고 나무 줄기를 따라 흐르는 수액의 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아이는 학원을 다니지 않았는데 학업 성적이 우수했고 상장이 수십장이었다. 특히 표현력이 대단하다고 했다. 평소 즐겨 보지 않는 TV를 끝까지 본 데는 아이답지 않은 기행이 눈길을 끈 탓이기도 하지만 바로 이 대목, '특히 표현력이 대단하다'라고 한데서 눈길이 멈춰 버렸기 때문이다.

아이의 표현력이 대단한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았다. 바로 자연이 뿜어내는 색, 향기, 맛, 소리들이 표현의 보고였다. 녹색을 12색 색연필 중에 하나로 알고 있는 나와 탱자 나뭇잎의 녹색, 겨우 살이의 녹색, 쑥풀의 녹색을 경험한 아이가 표현해내는 감수성은 질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었다.

줄줄이 복사한듯 서 있는 가로수들도 곰곰히 살펴보면 저마다 개성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써내려간 '가로수'라는 단어에는 그 속에 숨어 있는 생생한 실재가 드러나지 않는다.  

나의 언어는 개념이라는 상자에 담긴 기성품일 뿐이었다. 개념의 역할은 차이를 죽이는 것이고 '차이'의 부재는 곧 표현의 부재였다.  

똑같아 보이는 사물 속에서 '다름'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나는  플라타너스가 뿜어내는 향기, 바싹 마른 껍질의 감촉, 떨어진 잎이 바스락 거리는 소리와 무성한 가지가 발하는 푸른 잎빛을 앞으로도 결코 전달 할 수 없을 것이다.

몇 자 되지 않는 글을 쓰는데 이리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유도 알게 되었다. 나는 이미 죽어 있는 단어에 오랜 시간 볼터치를 하고 아이라인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죽어 있는 사람에게 아무리 화장을 한들 살아 있을 적의 생생함이 돌아오겠는가. 


가야할 길이, 더욱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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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답답하다. 마음이 확신으로 가득찼다가도 어느새 축축한 우울의 강바닥에 납작 엎드려버린다.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초조. *'삶은 브라이언 존스의 쳄발로 소리 같은 느낌으로 살아'가야 하는건데 어느새 늑대에게 쫓기는 토끼가 되었다.

자꾸 옆, 뒤, 앞, 위 사방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그럴수록 간격은 더 벌어지는것만 같다. '얼마나 빨리 도착하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얼마나 밝게 활활 타오를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라고 다짐한 일도 헛일이다.

나는 아무래도 즐기지 못하고 있는게 아닐까.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지만 과연 무엇을 위한 일인가? 내 삶이 즐겁지 않다면 이 모든게 왜 필요한 걸까. 수고 롭고 짐진 자들이 찾는 곳이 수고로운 짐이 된 것 처럼 나를 위해 한다는 노력들이 내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나는 다 타버리기 위해 불 붙는 양초고 죽기위해 걷는 Mr. 좀머다.

노자는 '배움을 단절하면 근심이 사라진다'고 했다.
스쳐 지나간 이 말이 가슴의 싸한 울림이 된다. 분명 배움을 포기하라는 의미로 한 말이 아니겠지만, 오늘만큼은 의심없이 따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진다. 

*굵은 글씨 출처: Sixty Nine (무라카미 류, 작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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