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톈 미학강의
이중텐 지음, 곽수경 옮김 / 김영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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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고백하자. 내가 어느 순간부터 '~합니다', '~였습니다' 등의 구어체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모두 이중톈 때문이다. 나는 이 사람의 책들을 읽으면서 내가 글보다 '말'에 능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고 리뷰를 쓰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던 이유도 말이 아니라 글을 쓰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문체를 바꿔 보았다. 그러고 나자 나는 글을 쓴다는 중압감에서 벗어나 가벼운 스토리텔러가 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중톈은 나에게 중요한 깨달음을 안겨준 위대한 스승이었다.
그러나 내가 얻은 것은 작법에 대한 것만이 아니었다. 미학강의. 이중톈 저작의 최고봉이라 부를 수 있는 이 책을 접한 뒤로 난 미학을 향해 한발짝 더 나아갈 수 있었다.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가 앨리스를 이상한 나라로 인도한 '백토끼' 같았다면 미학강의는 파랑새. 그 어떤 미학서도 따라올 수 없는 절대적 황홀함의 임팩트가 바로 그 이 한 권의 책에 있었다.

이중톈은 중국 CCTV의 백가강단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삼국지를 강의한 후로 슈퍼 스타가 된 교수님이시다. 그래서 그런지 강의란 이름으로 많은 책을 출간하는데 이 강의들은 모두 구어체로 씌여져 있다. 미학강의도 마찬가지다. 

사실 미학강의를 최고로 치는데는 미학에 대한 통찰, 그 깊이에 대한 탄성에 있기도 하지만, 이같은 구어체 설명을 통해 어떤 어려운 개념이라도 마법처럼 풀려버리고 마는 설명의 묘를 경험 할 수 있다는데 더 큰 이유가 있다.

어디어디 유명한 출신의 선생이라던가 학자라던가 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 조차 무슨 말인지 모를 정도의 현학적인 글과 강의를 해대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학문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기 때문에 그저 자기가 보고 들은 어려운 강의와 책들을 되풀이 하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중톈은 다르다. 이토록 쉽고 깊이 있는 미학 입문서를 나는 여지껏 읽어 본 적이 없다.

*이 책은 '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서 출발하여 칸트와 헤겔의 근대미학을 반환점으로 돈 뒤 마지막으로 예술과 미학의 상관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최초의 질문에 묵직한 답을 제시한다.

마지막 장인 '미학과 미학사의 흐름'은 일종의 부록같은 성격의 챕터로 동서양 철학사의 대략적인 설명이 담겨있다. 그러나 다뤄야할 내용이 워낙 많아 간략한 설명에 그치고 만다. 미학사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읽기 어려운 부분이다.  

특히 동양 미학사(중국 고전 미학사) 부분은 사상 자체의 심오함에 생소함기까지 한 내용이라 나의 경우 대부분을 건너 뛰어야 했다. 하지만 많은 분량이 아니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앞 장의 내용들을 섭렵하는 것 만으로도 우리는 상당한 미학적 진보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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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안드로이드에게도 문제는 있다. 특히 일관된 User Experience 제공의 문제. 이건 정말 큰 일이다. 안드로이드는 Open Platform인 탓에 각 Vendor가 얼마든지 Cutomization이 가능하다. 이건 제조사 별로 UI가 천차만별이라는 이야기.  

물론 Google이 정해놓은 몇가지 SPEC은 있는 듯 보이지만 확실히 안드로이드폰을 볼 때 마다 어딘지 모르게 조잡함이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게 단순히 Look & Feel과 사용성 문제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북미 T-Mobile에 출시된 Behold 2 User들이 삼성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벌이고 있다는 기사는 이 문제의 핵심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자사의 UX identity를 강조한다며 삼성이나 LG가 만들어 놓은 Customized UI는 출시 당시의 OS 버전이 아니면 돌아가지 않는다. Behold, Optimus Q 어쩌면 갤럭시S까지 OS 버전 Upgrade는 불가할 수도 있다는 얘기. 이게 말이나 되는 것인가? OS 버전이 달라질 때 마다 UI를 새로 개발해야 한다면 대체 왜 Platform이 필요하단 말인가? 이건 안드로이드의 플랫폼으로서의 위상과 App Store 성장의 발목을 잡는 결정적 오점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잠깐, 안드로이드와 Apple 얘기에 열을 올리느라 모르고 있었겠지만 정말 불쌍한 친구 하나가 여기 와 있다. 몰랐겠지만 이 이야기를 시작할 때부터-어쩌면 그 전부터 우리와 같이 있었다. 그건 바로 Windows Mobile(WM)이다.

아이폰이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Google이 안드로이드와 Chrome 운영체제를 발표하면서 우리의 마소(MS)는 거의 왕따가 됐다. MS가 아무리 못된 놈이라지만 이 정도까지 당하는 걸 보면 측은한 마음까지 든다.  

특히 Windows Mobile 7을 발표했을 때 MS의 굴욕은 절정에 달했다. 7은 이전 버전의 WM이 보여줬던 느린 속도와 극악의 UX를 개선하기 위해 절치부심. iPhone을 뼈속까지 벤치마킹한 마이크로소프트 35년 베끼기 기술의 결정체였다.  

그들은 경쟁사의 OS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유일한 장점이었던 Multitasking 까지 포기했다. iPhone의 Performance가 Multitasking처럼 까다롭고 중요한 몇몇 기능을 배제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건가? 그런데 몇일 뒤 발표된 iOS4에는 보란 듯이 Multitasking 기능이 추가 됐다.  

이건 단순히 몇몇 기능이 추가되고 빠지는 문제가 아니다. MS는 무엇보다 기술 혁신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SW Geek들의 세계에서 완전히 패배한 것이다. 이로써 WM은 기술 선도는 커녕 그나마 유지해오던 주류 Platform으로서의 위상마저 무너져 버리게 되었다. 

하지만 WM7에게도 희망은 있다. 특히 *PC-Console-Mobile Game 개발 환경을 통합하는 XNA. 현재 스마트폰 OS의 성공 여부가 App Store에 달려 있고 그 App Store를 거의 Game이 주도하는 것을 볼 때 XNA는 분명 WM7의 성공에 Key Solution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간의 역사를 돌아봤을 때 몇 개의 제품이 시장을 독점하는 현상은 결국 소비자의 권익을 해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천하의 평화를 위해 제갈량도 삼분지계를 내세웠지 않았던가? 아무쪼록 Apple, Google, MS 나아가 더 많은 플랫폼이 이 전쟁에 뛰어들어 좀 더 다이나믹하고 흥미로운 전개가 됐으면 한다.  

그래야만 소비자의 선택은 다양해지고 제품의 퀄리티는 향상되며 종국에는 진짜 '물건'들만이 살아 남아 이 세계를 진정 풍요롭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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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hone4가 발표됐다. 한국엔 7월에 발매한단다. iPad 3G와 iPhone4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iPhone4가 먼저 인 것 같다.

지금 업계는 완전히 스마트폰 열풍이다. 전형적 공기업의 대명사였던 KT는 아이폰을 타고 훨훨 날아다니더니 지금은 거의 애플과 자신들을 동일시 하는 경향까지 보이고 있다. 눈꼴 신 광경이 아닐 수 없다.  

특히 KT 사장 이석채님은 iPhone을 자기가 기획한 Device인 양 칭찬 일색이다. 마치 오래전부터 자신은 이런 일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한국의 Vendor를(특히 삼성)들에게 진지한 얼굴로 충고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그래도 고마워요 KT, 당신들의 절박함이 없었다면 우리나라에 iPhone은 없었을거야.

한편 삼성은 iPhone4 발표와 동일한 날짜에 안드로이드 플랫폼 기반의 갤럭시S를 출시했다. 선주문이 100만대를 넘었다는 등 말이 많지만 언론 플레이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야 그렇다 쳐도 업계의 개발자들까지 '갤럭시S가 더 좋은거 아냐?'라고 묻는 걸 보면 마케팅을 잘하는 것 만큼은 정말 이 기업을 인정해 줘야 하지 않나 싶다.  

하지만 그래봤자다. 아직도 반응 속도 정도를 Unique Selling Point로 활용하는 그들의 전략을 볼 때 '우리 이정도 따라왔어요 앞으로도 열심히 해볼게요' 정도로 이해하면 충분할뿐 Paradigm을 뒤바꾸는 메가 쇼킹 Device로서의 임팩트는 부족해 보인다.

가끔 보면 이제 안드로이드가 대세라는 말도 나오곤 하는데 확실히 안드로이드 플랫폼의 시장 점유율은 급성장을 보이는건 맞다. 하지만 그건 삼성이나 LG, 모토로라, 소니에릭슨 같은 주요 휴대폰 Vendor에게 안드로이드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Apple은 App Store를 Launching 하면서 통신사가 주도하던 기존의 시장에 심각한 균열을 야기했다. 그동안 초특급 '갑'을 유지해오며 불멸의 왕으로 군림하던 통신사들의 위기가 얼마나 컸던가? 그들은 전 세계적으로 전무후무한 연대를 벌이며 Anti Apple 전략을 가동했고 안드로이드는 이런 분위기의 1등 수혜자였다. 그러니 안드로이드의 시장 점유율 폭발은 당연할 수 밖에.

물론 시장 점유율이라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위대했던 베타맥스가 VHS에 밀린 예를 굳이 거론할 필요도 없이 말이다. 특히 Market Share 확보는 App 시장의 규모를 형성하고 수 많은 개발자들을 참여하게 만들며 당연히 High Quality App 개발로 이어지게 된다. 현재 안드로이드의 최대 약점이 App Market인 것을 고려할 때 이는 얼마나 긍정적인 현상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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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 미술에 대한 오래된 편견과 신화 뒤집기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 지음, 박이소 옮김 / 현실문화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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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 혹은 알고 있는 것을 정말 자신의 생각이라고 믿을 수 있는가? 이를테면 당신 마음 속에 깃들어 있는 MB에 대한 분노가 순수하게 당신의 마음 속에서부터 발현된 감정이냔 말이다. 그저 옆에서 나쁜 놈이라고 떠드니까 덩달아 나쁜 놈이라는 생각이 드는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장담할 수 있겠지 그는 누가 봐도 나쁜 사람이니까.

질문이 어리석었다. 그럼 이건 어떤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이것은 미술인가? 백이면 백 미술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럼 그렇게 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잠시 동안의 침묵. 르네상스라는 단어라도 떠 올린다면 다행이다.  

그러고 나선 더듬더듬 '천재로 불린 화가의 작품이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사실 나도 어릴 때는 모나리자가 예쁜걸 몰랐는데 사람들이 최고의 미소라고 하니까 어쩐지 나도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내가 그 유명한 비평가들보다 잘났다는 보장도 없잖아...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 옛날에 어떻게 저런 정교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걸까 하는 감탄이 들기는 해'라고 말할 수 있다면 훌륭하다. 이제 편히 쉬자.

그런데 당신이 '모나리자'를 미술로 판단하는 근거는 결코 미학적 관점에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장인 정신,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은 어느 화가의 천재적 '기술'에 대한 경의에 가깝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슈퍼 컴퓨터가 묘사 대상을 초정밀 스캔하여 Photoshop으로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초고해상도 프린터로 출력한다면 그것을 미술로 부를 수 있겠는가?  

만약 당신이 슈퍼 컴퓨터의 작품을 미술로 부르지 않겠다면 동시에 '모나리자'도 미술로 취급해선 안된다. 당신이 제시한 모나리자의 예술성도 단순히 묘사 기술의 우수성에 있었기 때문이다. 골치 아픈 문제인가? 좋다. 백번 양보해서 모나리자를 미술이라고 하자.

그렇다고 하더라도 미술에 대한 당신의 감상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당신이 '알고 있는' 모나리자에 대한 감상은 당신이 '모나리자'라는 미술 작품을 직접보고 그것과의 교감을 통해 이뤄낸 감성적 체험이 아니다.  

설령 당신이 루브르 박물관에 가봤다 하더라도 그 작품은 진품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만약 당신이 가짜 작품을 보고 이런 체험을 얻었다면 과연 진품과 짭퉁, 예술과 비예술을 가르는 기준이 존재할 수 있을까?  

예술에 대한 가치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감상에 따라 정해지고 루브르의 가짜 모나리자를 본 당신의 감상을 진짜라고 인정한다면 내 책상 앞에 붙여둔 컬러프린트판 '모나리자'와 진품 '모나리자'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올레! 우리도 지금 당장 부자가 될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은 모두 누군가의 주문에 의해 그림을 그렸고 그 결과물은 주문자의 집이나 성당에 걸리는 인테리어 장식품에 지나지 않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벽화는 장인의 공예'품'에 지나지 않았지만 미술관과 미술 비평 그리고 경매장으로 요약되는 근대 문화의 발명품들이 그것을 미술로 만든 것이다. 그럼 다시 한번 질문해 보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그것은 미술인가?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모나리자는,

미술이 아니었다.

지금까지가 이 책이 주장하는 주요 내용이다. 책의 저자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는 위와 같은 이유로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작품, 이집트의 피라미드, 승리의 여신 니케 조각상,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인도의 시바상 이 모든 것들이 미술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은 Matrix를 파괴하는 Neo와 같은 책이다. 오랜 시간동안 켜켜이 쌓인 미술에 개념, 그 고착된 체제를 뚫고 보여주는 싱싱한 관점은 미술과 미학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 새 지평을 열어 준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내는 문화, 그리고 그것을 통해 결정되는 사물의 가치에 대한 통찰은 이 책을 한 권의 미술서를 뛰어넘어 위대한 철학서로서까지 나아가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위대한 점은 이 책이 누구나 술술 읽을 수 있는 쉬운 문장으로 씌여졌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책들이 이렇게 쉽게 씌여졌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더 훌륭해 질 수 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저자와 그리고 번역가는 정말 기막힌 작업을 해냈다. 판타스틱한 경험이나 볼거리를 제공했을 때 현대 사회의 속어는 그것을 '예술이다'라고 표현하던가? 그럼 다음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아래와 같다. 이 책은 예술인가?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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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죽음은 결국 야당의 승리로 귀결됐다. 이 말은 가난한 사람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당이 힘을 얻었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어쨌든 이 땅에 신자유주의를 이식한 것은 김대중, 노무현의 정권이었고 지금의 민주당은 이 두 사람의 후광으로 버티고 있는 정당이니까.  

한나라당이 노골적으로 부자와 힘 있는 자를 위한 정치를 펼쳤다면 민주당은 저항과 진보의 이미지로 보수 성향을 감춘 사기 정치를 펼쳤달까? 그러니 아무리 현 정권이 심판을 받아도 그 주역이 민주당이라면 대다수의 서민들을 위한 정치는 아직도 요원한 셈이다.

이번만큼 공약이 부재하고 선전만이 판을 친 선거도 없었을 것이다. 서울시 교육감으로 출마한 어느 여자 후보는 현수막의 선전 구호가 '전교조는 안됩니다' 달랑 하나였다. 사람들은 아직도 진보, 노동이라고 하면 '북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떠올리는 모양이다. 강남의 빨갱이 공포증으로부터 표를 얻을 수작이었겠지만 선거 결과를 보니 그럴듯한 경쟁도 못 펼친 듯 하다.  

아무래도 사람들은 경제에서의 불평등보다 교육에서의 불평등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하지만 정말 사교육이 무너지고 공교육이 정상화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명문대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선호가 여전하고 공교육 정상화라는 것이 결국 명문대 진학에 대한 욕망에 근거한 것이라면 진보든 보수든, 전교조든 아니든 우리 교육에는 희망이 없다. 

한편 절대군주 오세훈에게 대항하는 한명숙조차 사람특별시라는 노골적인 노무현표 슬로건만으로 무장했다. 여기에는 진보와 보수 좌, 우익 이데올로기의 대립도 없어 보인다. 사실상 이명박, 노무현 대결의 연장선인 셈이다. 그러니 공약이 존재할리 없다. 한명숙은 현 정권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이용하려 했지만 결과는 안타까웠다.  

경기도와 서울에서의 패배는 부자들과 엘리트, 기득권자들의 벽이 여전히 높고 강하다는 것을 알려줬다. 동시에 현재의 야당이 양극화와 갈등을 고조시키는 엉망 진창 보수 정당조차 대체할 수 없는, 사실상 대안 정당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만들었다.

전국 곳곳에서 민주당이 승리한 이유도 진보 혹은 복지사회 건설에 대한 꿈 보다는 단순히 '이명박이 싫어서'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국민이 어떤 오해를 했든 야당은 성공했다. 만약 이것이 단순한 권력 투쟁이 불과한 것이었다면 권력은 언제나 승리하고 국민은 언제나 패배하는 지긋지긋한 역사가 반복될 것이다.  

그러니 아무쪼록 야당은 이번 선거에서 얻은 행운을 이 사회의 약자와 빈자를 위해 좀 더 소중히 사용해주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스스로가 민주주의의 파수꾼으로서 좀 더 성실히 그들을 견제하고 감시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모두가 행복한 나라라는 것은 정치가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드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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