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한국 무협 만화의 계보는 열혈강호의 독보적 행진과 용비불패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열혈강호는 설명이 필요없는 만화다. 1994년 부터 지금까지 무려 50권이 넘는 단행본을 발행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 만화가 아직도 연재 중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꾸준한 인기를 누린 만화는 근 십년, 아니 한국 만화계를 통털어 봐도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다.  

 

<돈은 참 많이 벌었을 만화 열혈강호>  

열혈강호의 성공 요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특히 므흣한 여자 캐릭터들이 제공하는 은밀한 성적 판타지는 당시 소년에서 청소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있는 남아들에게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것은 열혈강호가 지금에 와서 그렇게 특별한 작품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기도 한다. 열혈강호가 재미 없어진 이유는 작품의 수준이 떨어졌다기 보다는 그것을 보는 내가 너무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은 강한자가 살아 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남는 자가 강한 것이라 했다. 오늘날 열혈강호가 온갖 비난을 받더라도 세월이라는 무심한 고수에 대항해 오랫동안 버텨온 생명력 만큼은 인정해 줘야 할 것이다.

문정후의 '용비불패'는 웰메이드란 무엇인지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작품이다. 이 만화는 그림, 스토리, 캐릭터 어디 하나 빠지는게 없다. 특히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 위해 사용하는 적절한 유머는 이 작품을 좋은 작품에서 위대한 작품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결정적 요소가 된다.  

 

<용비는 결코 지지 않는다>

용비불패는 열혈강호가 이미 자리를 잡은 1998년에 혜성같이 등장해 23권의 단행본을 남기고 유유히 사라졌다. 앞으로 10년 안에 용비불패와 견줄만한 만화를 만날 수 있을지 나는 모르겠다. 자신들의 영상 미학을 능가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자신들 밖에 없다는 '매트릭스' 시리즈의 워쇼스키 남매의 말처럼 용비불패를 능가할 만화는 다시금 문정후의 손에서 만들어지지 않을까? 그러니 제발 괴협전이나 용비불패 외전좀 연재해 달라고!

한국 무협 만화의 전통은 용비불패 이후로 사실상 끊겼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특히 개방과 소림사가 등장하고 강호를 유유히 방랑하는 주인공이 나오는 정통 무협은 이제 정말 황성, 사마달류의 만화가 아닌 이상 찾아 보기 힘든 소재가 되버렸다.  

대신 판타지와 SF와 결합된 '칼 싸움'이 무협 만화를 대체하기 시작했고 그 정점은 윤인환, 양경일의 '신 암행어사'가 아니었나 싶다. 물론 양경일은 오래전 소마신화전기라는 잊지 못할 만화를 통해 이미 판타지 칼 싸움을 보여준 바 있다. 그 밖에도 '천추'라던가 '단구'라는 강신술사 칼잡이들이 나오는 만화가 있었다. 이 만화들은 역사와 판타지가 적절히 혼합되 꽤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지만 아무래도 '무협'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실 '무협'이란 칼, 강호, 문파 삼요소로 이뤄져 있는 황당무개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뿌리에는 힘과 권력에의 의지를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남성들의 판타지가 깔려 있다. 그러다 보니 비록 배경은 달라도 무협의 '구조'를 따르는 이야기는 강호와 칼 없이도 충분히 만들어질 수 있다.  

강호라는 무대가 도시의 뒷골목으로 대체되면 조직폭력배 만화가 등장하고 이것이 학교로 바뀌면 학원 폭력물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두 무대에서 절대무적의 독보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하나 있다. 이 사람을 만화가라고 봐야 하는지에 대해선 아직도 이견이 있지만 적어도 한국 만화계에서 이 만큼 성공한 사람도 드물다. 혹자는 그의 이름을 프로 또는 화백으로 알고 있지만 그는 엄연히 이름 석자를 가진 유명 만화가다. 나는 그의 이름을 '김성모'로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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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보학이란 연구자의 끈질긴 탐구 정신과 방대한 자료 조사를 양분으로 자라나는 괴물이다. 따라서 자료 조사의 방편으로 구글 검색 엔진만 사용하는 내가 계보학이란 이름으로 글을 쓸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니 오늘의 계보학은 전적으로 나의 기억에서 재구성된 것이다. 이는 어떠한 증거도 증명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한국 무협 만화라고 하면 일단 두 부류가 떠오른다. 그 중 하나는 하승남(꼴통 시리즈), 황성(작품이 너무 많다), 사마달(이 사람도 많다)로 대변되는 성인 무협 만화가들이다. 요즘에도 만화방이 성행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 만화방은 시험 후 즐길 수 있는 주요 컨텐츠 중 하나였다. 그 때 만화방에 가면 한 쪽에 이런 성인 무협물이 가득했는데 권수로 보면 그 외 모든 만화들을 합쳐야만 비교가 될 정도였고 경제력을 갖춘 아저씨들이 많이 본 탓에 수익면에서도 단연 으뜸이었다.   

젊은 세대라면(나를 포함하여) 이 사람들을 전혀 모를 수도 있으나 이 작가들의 인기는 30-40대 사이에서 압도적이다. 메가패스존 무료 만화방이나 30-40대 커뮤니티를 가보라 이 작가들에 대한 그들의 광신이 어느 정도 인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 역시 이런 만화에는 별 관심이 없다. 내가 즐겨보고 열광한 만화는 역시 아이큐 점프, 챔프, 영챔프 등으로 대변되는 청소년 만화 잡지의 대표작들이었다.

가깝게는 소주완, 지상월의 '협객 붉은매'가 생각난다. 물론 이 만화의 호불호는 극명하게 갈린다. 불과 몇 초에 불과한 고수들의 동작을 0.1초 혹은 0.01초 단위로 끊어 컷을 구성하는 것이 이 만화의 특징이었는데 쓸데 없이 지면을 낭비한다는 의견과 극적 효과가 두드러진다는 의견이 맹렬히 충돌하곤 했다.  

사실 1부만 따지고 보면 이야기와 작화의 완성도는 당시 어떤 무협 만화도 따를 수 없는 존재감이 있었다. 그러나, 동백꽃단의 간부 12명을 해치워야 형을 구할 수 있는 주인공 정천이 서열 11위에 불과한 대대붕과의 싸움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아 부은게 문제였다.  

이 한명의 적을 죽이기 위해 붉은매 1부는 거의 30권 정도를 할애했고 그 후 스토리 진행에 한계를 느낀 작가가 오랜 휴재에 들어감으로써 만화는 일단락 되었다. 몇년 뒤 붉은매 2부로 돌아왔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다음은 비주류로 분류할 수 있는 권가야의 '해와 달'이다. 점프인지 챔프인지 어쨌든 '해와 달'이 처음 등장했을 때 소년인 나는 정말 충격이었다. 이렇게 난해하고 지저분한 만화가 소년 잡지에 나올 수 있는 걸까? 줄거리 또한 범상치 않았다. 최강의 내공을 보유했다는 어머니와 최강의 검술을 창시했다는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정신병자같은 아들이 딱 칼 한 자루를 허리에 차고 거대 문파들에 대항하는 이야기.

주인공 백일홍은 강력한 무공을 지녔으나 마음 속에 혼돈과 불안 그리고 알 수 없는 슬픔을 간직한 채 방황하는 고독한 남자였다. 무협 세계의 인물이란 정파 혹은 사파의 편에 서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마련인데 백일홍은 그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았다. 철저히 고립된 개인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일홍의 답은 죽음(부재)이었다. 거대 문파를 향해 겨누고 있던 일홍의 칼 끝은 실상 그 자신을 향해 있었던 셈이다.  

존재와 관계에 대해 이렇듯 모던한 주제의식을 드러낸 만화는 그 후 십 수년이 지난 오늘날에 와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해와 달'은 만화가 아니라 철학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권가야는 주인공 백일홍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자 했던게 아닐까? 만화 안의 주인공도 그리고 그 만화를 그리는 작가 자신도 철저히 주류 밖의 세계로 내몰았던 권가야. 어쨌든 당시로선 흔히 볼 수 없는 그림체와 이야기,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과묵한 주인공이 인상적인 이 만화는 고작 5권으로 마무리 되고 만다. 듣자하니 인기가 최하위를 달려 근근이 연재를 했다는 소문. 그래도 차기작 '남자 이야기'로 그럭저럭 이름을 얻게 됐으니 권가야로선 참 다행이었다.

이야기는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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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규 2011-08-22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한국무협만화의 계보란 제목을 붙이려면 해방후 부터 거론해야 마땅한거지..처음을 툭자르고나서 최근 것만 나열한다면
이게 무어란말인가? 차라리 제목을 90~2000년대 만화 계보로 하던지.. 무협만화는 김찬씨를 빼고는 논하지 말라..

한깨짱 2011-08-22 19:43   좋아요 0 | URL
네 제가 연륜이 모자라다 보니 최근 것을 위주로 할 수 밖에 없었네요. 한국무협만화의 계보란 제목으로 한 수 가르쳐 주시면 보고 잘 배우겠습니다.
 
베리타스 Veritas 10 - 완결
윤준식 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이 만화가 처음 나왔을 때 나는 두 가지를 생각했다. 첫째는 '간만에 볼만한 무협 만화가 나왔구나'라는 것이었고 둘째는 Oh! Great(오구레 이토)씨의 일본만화 '천상천하의 카피 버전이네'라는 것이었다.  

확실히 이 만화는 '천상천하'에 빚진 것이 많아 보인다. 우선 둘다 학원물이라는 점. 게다가 갈등의 주체가 {(학생회vs비학생회) vs (어른들로 구성된 외부세계)}라는 점 등 세세히 따지고 들면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하지만 '베리타스'가 이 작가의 데뷔작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만화는 꽤 훌륭했다. 특히 그림이 좋았고 '천상천하'처럼 웬지 재는 듯한 무거운 분위기가 없어서 참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이게 겨우 열 권에서 끝이란다. 아무래도 10권이 늦는다 싶어서 조마조마했는데 역시나였다. 한 달에 2페이지라도 계속 연재해 주면 안될까? 나가노 마모루의 파이브 스타 스토리도 5년에 한권 씩 나오는데. 원래 대작이란 독자의 간절한 기다림을 도도히 외면하며 유유히 살아가는거 아닌가.

아직 10권을 보지는 못했지만 안 봐도 뻔하다. 9권의 내용으로 볼 때 한 권으로는 도저히 이야기를 마무리 지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10권이 한 1,000페이지 쯤 되면 어느 정도 수습은 가능하겠지만
보아하니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설마 '협객 붉은매'처럼 2부를 염두에 둔건 아닐테지. (다행히 300 쪽이 넘는 분량이기는 하다)

이 만화의 강점은 한국 전통 문화를 재구성하는 독특한 해석이었다. 예를 들면 남사당 패의 꼭두쇠, 곰뱅이쇠 등이 가진 버나, 살판 등의 기술이 사실은 무술에서 시작한 것으로 백성들이 무기를
소지하거나 무술을 익히는 것을 금했던 지배층의 억압을 피해 교묘히 '놀이'로 탈바꿈 했다는 식이다. 그래서 접신을 시도하여 액땜을 막거나 길흉화복을 점치는 살풀이는 '강신술사'로 남사당 패의 후예는 각자의 기예에 맞는 전통 무예로 되살아 난다.

물론 주류 무공은 이런 전통 무예 보다는 여주인공 '베라'를 중심으로 한 '리 유니온'계 무공이다.  

   

<베라>

'리 유니온'이란 인공 '기(氣)'를 합성하는데 성공한 거대 기업의 무술 연구소다. 이 연구소가 설립한 학교에는 세계 각지에서 뽑혀온 무술 인재들이 다니고 있는데 여기서 무술 인재란 무술을 익힐 재능을 갖춘 자와 이미 전통 무예를 전수 받은 전승자까지 포함된다.  

'일인전승 비인부전'의 금기를 수 천년 동안 지켜왔지만 인공 기라는 달콤한 유혹에 빠진 전통 무예 전승자들은 무공의 비전을 리 유니온에 공개한다. 그리고 이렇게 수집된 전통 무예는 리 유니온의 손에서 혼합되고 보완되어 '리 유니온계'라는 다양한 무공을 탄생시킨다. 물론 이 무공은 리 유니온 학교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배울 수 있다.

얼핏 봐도 전통 무예 전승자와 리 유니온계 학생들 사이의 갈등이 예상되지 않는가? 예상대로 이 만화의 축은 전통과 현대의 대결이자 지식의 독점과 공개의 대립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만화의 특성상 이런 쟁점이 진지하게 다뤄지지는 않는다.  

이야기 속에서 읽어 낼 수 있는 것이야 다양하겠지만 역시 손에 땀을 쥐고 가슴을 뛰게 만드는 건 주인공 마강룡과 아이들이 '베라'의 학생회와 격돌하는 장면이다. 특히 '신암행어사', '아일랜드'의 양경일, '니나 잘해'의 조운학의 문하생을 포함하여 도합 7년을 수련했다는 김동훈의 작화는 여기서 빛을 발한다.  

 

<마강룡> 

삼국지, 수호지를 읽으며 등장인물을 줄줄이 외우고 장비가 무슨 무기를 썼는지 노지심이 어떤 무공을 사용했는지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베리타스'는 현대판 삼국지이자 수호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개성있는 캐릭터를 즐기는 사람에게 다양한 인물과 기술의 등장은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베리타스와 삼국지와 수호지는 그런 면에서 쌍둥이다.

만약 작가에게 건강과 시간 그리고 여유가 좀 더 주어졌더라면 '베리타스'는 한국 무협 만화의 고전이 됐을 수도 있다. 겨우 10권으로 마무리된 이 만화에 깊은 애착과 아쉬움이 남는 이유가 이것이다.  

나는 이제 무슨 만화를 기다리며 살아야 하는걸까. 이제 우리 나라의 무협 만화라면 이미 백만년 전에 성장을 멈춰버린 열혈강호 말고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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벡 Beck 34 - 완결
사쿠이시 해럴드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만화의 이해의 저자 스콧 맥클라우드는 만화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각을 오로지 시각을 통해서만 전달하는 매체라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만화가는 들을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냄새 맡을 수 있고 맛볼 수 있는 것들을 그림으로만 보여줘야 하는 어려움에 부딪히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대단한 작품이라고 칭송하는 것들은 언제나 이런 난제를 멋지게 극복해낸 것들이 아니던가. 예를 들면 미스터 초밥왕 같은 만화 말이다. 비록 지겨울정도로 되풀이되는 구성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쇼타가 만든 초밥을 입에 넣는 심사위원의 모습에서 황홀한 맛의 비밀이 느껴지는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미각은 원래 시각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보기 좋은 것이 먹기도 좋다는 말을 괜히 하는게 아니다. '맛'을 그리는 만화가 비교적 다양하게 존재하는 것도 증거로 들 수 있다.  

그렇다면 청각은 어떨까?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라는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할 방법이 있나? 없다고 생각한다면 여기 굉장한 만화 한권을 소개해 보겠다. 보는 것만으로도 음악이 들리는 만화 해롤드 사쿠이시의 '벡(Beck)'이다.

Beck의 주인공 다나카 유키오는 삶의 목표가 없는 무기력한 중학생이다. 사실 중학생이라면 누구나 그렇지 않은가. 자신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인정해주는 환경은 없고 그렇다고 과감히 세계 밖으로 뛰쳐나갈 수 있는 능력도 용기도 없는 나이. 하지만 우연히 류스케라는 남자를 만나 락 밴드 'Beck'을 결성하면서 유키오의 인생은 평범한 삶의 궤도를 벗어나기 시작한다.

'Beck'을 만나기 전까지 유키오는 그저 노래 부르길 좋아하는 소년에 불과했다. 기타를 치기 시작한 것도 단순히 좋아하는 여자에게 잘보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모든 위대함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사소한 이유. 바로 그렇게 시작한 일에 서서히 몰두하게 되면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 어렴풋한 윤곽이 만져진다.  

하지만 아직까진 자신이 얼마나 음악을 사랑하는지 얼마나 큰 재능이 있는지 정확히 깨닫지는 못한다. 그것을 완전하게 만드는 것은 밴드(Band)와의 교감이며 동료의 신뢰다. 서로가 서로의 능력을 믿게 되는 순간 개인의 능력은 날개를 펴고 밴드는 알에서 깨어난다. '이들과 함께하지 않으면 음악을 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시점이 바로 이 때다. 그렇기 때문에 전세계 투어를 시작하는 고물 승합차 안에서도 Beck의 멤버들은 웃을 수 있다. 어떠한 고난과 역경도 이들에게는 장애물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뻔한 얘기라고? 뻔한 얘기 맞다. 그러나 묵직한 삶의 진리는 언제나 뻔한 얘기 속에 담겨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때도 됐지 않은가.  

나는 정대만의 3점슛 장면에서도 그랬지만 다나카 유키오가 노래를 부르는 2 페이지 풀샷 씬에선 언제나 눈물을 흘렸다. 자신을 믿어 주는 동료와 자신을 사랑해주는 관객 앞에서 자신의 가진 모든 능력을 투신하는 작디 작은 고교생(이 때는 고교생으로 진학했다.)의 모습에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면 과연 무엇을 위해 울어야 한단 말인가.

평범한 사람의 노력과 성장에 대한 이야기에는 그저 유치하다고 단정해 버릴 수만은 없는 가슴 찡한 매력이 담겨져 있다. 삶의 의미도 목표도 없던 무기력한 중학생 유키오가 세계인의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르는 순간 어쩌면 나에게도 반짝반짝 빛나는 재능이 숨어 있지는 않을까하는 기대감과 함께 현실에 안주하려는 자신을 채찍질하는 뭔가가 느껴진다.  

만약 이것을 느낀다면 당신의 삶에는 아직 희망이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영혼은 더 이상 자라지 못할 것이다.

사족.
쓰다보니 줄거리 요약에 적당히 무거운 주제를 껴맞춘 인스탄트 리뷰가 되어 버렸네. 사실 그림, 작법에 대한 얘기를 더 했어야 하는데 글을 다시 쓰기엔 너무 먼길을 와버렸다.  

모든 문화 컨텐츠가 그렇겠지만 역시 이 만화도 직접 봐야만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나는 유키오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언제나 눈물을 흘렸다고 했는데 이 말은 진짜다. 정말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해롤드 사쿠이시가 그린 힘있는 유키오의 모습에서 나는 언제나 혼신을 다한 그의 노래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살아오면서 적지 않은 만화를 봐왔지만 정말로 노래가 들리는 책은 이 만화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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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판토 해전에서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을 고르라면 나는 주저없이 '울루지 알리'를 꼽겠다. 해전을 장식한 수 많은 인물 중에 하필 해적이라니. 하지만 현실적인 조건으로 보면 도저히 좋아할 수 없는 인물에 시나브로 빠져들고 마는 경우는 살아가면서 수 없이 경험해본 사실 아닌가. 적어도 울루지 알리에겐 기독교 연합함대의 귀하신 귀족들도 투르크의 오만한 군주도 따를 수 없는 확실한 존재감이 있었다. 흔해빠진 귀족들 사이에서 묻혀 버리기엔 그는 너무나도 독특한 배경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우선 그는 알리 파샤, 시로코와 함께 투르크 함대 최고위 지휘관 중 하나였다. 높은 지위에 뭐 그리 특별한게 있냐고? 이 말을 듣는다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울루지 알리는, 기독교 노예 출신 이었다.
울루지 알리 아니 조반니 디오지니는 1520년, 남부 이탈리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를 따라 어부가 된 그는 1536년 알제리 해적 지아페르 라이스에게 붙잡혀 갤리선의 노예가 되는 불운을 겪는다. 당시 베네치아를 제외한 모든 국가에선 갤리선의 노잡이로 적국의 노예를 이용했다.  

노잡이라는 것이 좁고 습한 갑판 밑에서 감독관이 휘두르는 채찍을 견뎌내는 혹독한 직업이다 보니 노예말고는 이런 일을 감당해 낼 수 있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16세에 불과한 우리의 조반니도 얼마나 힘든 일을 겪었을까? 하지만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탈출해 세상을 뒤집어 버리고 싶은 마음은 오히려 이 끔찍한 생활을 견뎌내는 뜨거운 불빛이 됐을 것이다.

그래서 조반니 디오지니에게 코르세어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소년은 결코 그 끈을 놓치지 않았다. 마침내 이슬람으로 개종한 그는 해적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울루지 알리'로 다시 태어났다.

해양국의 전통이 없는 투르크는 주로 해적들이 해군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각자의 근거지에서 해적질로 먹고 살다가도 제국의 부름이 있을 때면 해군으로 출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해적이면서 동시에 총독, 장관 등의 직책을 겸비하는 경우가 많았다. 레판토 해전의 우익 지휘관 시로코도 이집트 총독으로 소개되고 있으나 사실은 유명한 해적이었다.  

울루지 알리도 트리폴리 지역의 해적 투르굿 라이스 휘하에 있었기에 1560년에 투르크 함대의 척후로 복무했다. 5년 뒤 몰타섬 공방전에 참전한 그는 투르크 제독의 눈에 띄었고 때마침 몰락한 투르굿 라이스를 대신해 트리폴리의 장관이 되었다. 그 뒤로는 오직 성공일로였다.

1571년 역사적인 레판토 해전에 울루지 알리가 참전했을 때 고귀한 투르크 제독 알리 파샤의 눈에 울루지 알리란 그저 더러운 이교도 출신의 천한 해적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투르크 함대가 괴멸한 그 해전에서 유일하게 살아 남아 기독교 연합함대의 동진을 막은 것은 고귀한 알리 파샤도 총독 시로코도 아닌 울루지 알리였다.  

폐허가 된 전장을 유유히 빠져나가는 울루지 알리를 봤을 때 기독교 연합함대의 병사들은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울루지 알리가 살아있는한 베네치아 해군은 잠들 수 없다'는 트라우마는 이 때부터 생긴 일인지도 모른다.

그 후 울루지 알리는 투르크의 해군을 성공적으로 재건하면서 최고 사령관에 임명되었다. 16세, 기독교 포로로 잡혀와 노잡이가 되야했던 소년이 비로소 지중해의 왕이 되는 순간이었다.  

울루지 알리는 최고 사령관이 된 뒤로도 해적질을 멈추지 않았던 모양이다. 공식적인 집무가 없을 때는 여지없이 배를 타고 나가 기독교 선박을 노략했다는 기록이 있으니까. 그는 분명 해적질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그의 끊임없는 노략질은 자신이 해적임을 자각하려는 평생의 몸부림 이었으리라.  

적의 입장에서 보면 악몽에 가까울 그는 무려 일흔 다섯살이 되어서야 세상을 떠났다. 그것도 여자의 '배' 위에서. 참으로, 해적다운 마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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