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 리더십 - 합의에 이르는 힘
케이티 마튼 지음, 윤철희 옮김 / 모비딕북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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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세계에서 합의가 잘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대부분의 정치인이 신념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이다. 신념, 한 인간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원천. 신념이 없는 사람이 어떤 큰 일을 해내리라 상상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그러나 신념만 가진 사람이 큰 일을 해냈을 땐 예외 없이 인류사에 재앙이 닥쳤던 것도 사실이다. 히틀러, 마오쩌둥, 스탈린, 조지프 매카시,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메르켈 정치의 가장 큰 특징은 합의와 소통이다. 이는 반드시 연정을 해야 하는 독일 정치의 특성상 불가피한 전략일 수도 있지만, 단순히 그렇게 해석하기엔 앙겔라 메르켈이 무려 16년이나 독일 총리로 재임했다는 사실을 충분이 설명할 수 없다.


아마도 정치인이라기보다는 과학자에 가까웠던 그의 정체성이 가장 큰 힘이 아니었다 싶다. 신념과 과학적 사실의 가장 큰 차이는 유연성이다. 기존의 믿음과 완전히 다른 사실이 목격됐을 때 신념은 기존의 믿음을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후퇴한다. 부정의 방패와 음해의 칼을 들고 새로운 사실을 무찌르며 뒷걸음질 치는 것이다. 반면 과학적 사실은 어디까지나 잠재적 사실의 위치를 고수한다. 과학은 새로운 사실을 잘근잘근 씹어 기존의 체계를 수정하거나 수용 가능한 임계치가 넘어가면 완전히 파괴하고 새로 만든다. 메르켈은 경쟁자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높은 지지율로 압살 해서 미움을 받지 않았다. 그는 경쟁자의 정책이 유용하다고 판단하는 족족 자신의 정책으로 끌어안아 미움을 받았다. 기존의 정치 문법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하지 못할 일이었다.


합의와 소통이 메르켈의 16년을 지켜온 정치 도구였다면 겸손과 실용주의는 통치의 뿌리이자 기둥이었다.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였고 명실공히 유럽을 이끄는 리더였다. 프랑스의 대통령은 엠마뉘엘 마크롱이고 이탈리아의 총리는 마리오 드라기이고 영국의 총리는 보리스 존슨이지만(브렉시트 했지만) 유럽의 총리는 메르켈이었다. 하지만 메르켈은 그런 사실에 우쭐해하는 정치인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과 독일이 유럽의 왕으로 추앙받는 것이 협치에 얼마나 치명적인지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하이라이트를 적절히 피함으로써 파트너들이 들러리나 패배자처럼 보이는 것을 막았다. 주인공이 되는 게 뭐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하나의 유럽이라는 대의를 지켜냈는데. 특히 과거사에 관한 한 그는 조건 없이 무릎을 꿇어 피해국의 존경을 받았다. 뻔뻔함을 넘어 추악한 섬나라를 이웃으로 둔 입장에서는 참으로 부러운 일이다.(심지어 그는 그 추악한 국가에 반성을 촉구하기까지 했다!)


물론 이 모든 성공에 독일 정치의 특수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지도자로 꼽히는 살인마를 자기들 손으로 직접 뽑아 열렬히 지지했다는 사실. 독일 국민에게 씻을 수 없는 수치를 안겨준 이 역사는 결론적으로 현대 독일에 실보다 득이 더 많았다. 독일인은 말이 번드러진 정치인을 본능적으로 경계했다. 화려한 언변은 오히려 과거의 악몽을 되새기는 트라우마가 됐으니까. 이 같은 문화는 빈말을 못하고, 웅장한 연설로 국민의 마음을 가득 채우는 카리스마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메르켈에게 엄청난 이득을 안겨다 주었다. 예컨대 부동산 대책을 묻는 국민을 향해 '그것은 무척 어렵고 복잡한 문제이며 오랜 시간에 걸쳐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지도자가 과연 독일 외의 다른 나라에서 당선될 수 있을까? 1년 안에 반값 아파트를 만들겠다는 경쟁자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한편 메르켈이 펼친 강력한 재정 긴축 정책의 그림자도 같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긴축 재정으로 쌓인 독일의 부는 결론적으로 난민 구제와 팬데믹 사태 해결을 위해 요긴하게 사용됐지만, 평상시였다면 이로 인해 교육, 의료 같은 보편 복지에 구멍이 생겼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 재정이 흑자를 냈다는 건 국민에게 그만큼 불필요한 세금을 거뒀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메르켈은 국민의 고통으로 성과를 챙긴 나쁜 정치인일까? 게다가 그는 금융 위기를 맞은 이웃 국가에 구제 금융을 제공하면서 긴축 재정을 강요하기까지 했다. IMF가 한국에 강요해 수많은 실업자와 노숙자를 양산한 것처럼 말이다.


독일의 막대한 무역흑자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다. 무역흑자란 결국 자기 물건을 팔기만 하고 다른 나라의 물건은 사지 않았다는 의미다. 미국이 아무리 양아치 같아도 그들의 무역적자가 사실상 세계 경제를 돌게 하는 심장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하나의 유럽이란 결국 독일만 살찌고 나머지는 배를 곯는 허울 좋은 구실이라는 얘기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모든 나라가 독일처럼 벌기만 하고 쓰지 않는다면 유럽의 경제가 어떻게 될까? 서로 관련 있는 단어를 짝지으라는 질문에 소비와 적자는 아마 탕아나 베짱이 흥청망청과 짝을 이룰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정말 못된 의도를 가진 세뇌의 결과물이다.


사실 <메르켈 리더십>은 이처럼 메르켈의 성공을 다각도로 분석하기엔 한계가 많은 책이다. 애초에 메르켈의 그림자는 거의 다루지 않는다.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냐 보다는 '어떤' 문제를 해결했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도 문제다. 실제 그의 성공에서 배움을 얻으려면 좀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해 보인다. 퇴임식을 한지 이제 고작 1주일도 지나지 않았으니 앞으로 더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길 기대한다. 이 책은 그때를 위한 가이드북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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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오의 한국현재사 - 역사학자가 마주한 오늘이라는 순간
주진오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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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역사는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해왔다. 은은한 망각의 향은 순식간에 역사를 채워 냄새나는 과거를 깨끗이 세탁한다. 앞선 세대가 기록한 역사적 범죄가 늘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사람들에 의해, 똑같이 행해지는 이유다. 이 바보 같은 연극에 놀아나지 않으려면 눈을 번쩍 뜨고 늘 과거를 주시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는 특히 더 중요하다. 역사를 지우려는 세력과 기록하려는 이들 사이에 팽팽한 줄다리기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고개를 과거로 돌리는 것도 힘든데, 돌아봐야 깨끗하게 지워진 백지뿐이라면 무엇을 보고 반성할 수 있을까? 범죄자들은 우리를 어두운 극장 속에 가둬 휘황찬란하게 미화된 역사를 방영한다. 우리의 눈이 스크린에 고정되어 있는 동안 진실은 불타고 있다. 이건 아니야!라고 소리를 치는 관객에게 옆에 앉은 관객이 정숙을 지키라며 점잖은 훈계를 한다. 여기서 진짜 무서운 점은 극장의 정숙이 범죄자의 강제가 아닌 관객들의 자발적 참여로 지켜진다는 점이다. 역사는 조용한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가 아니라 광장의 토론 주제가 돼야 한다. 틈날 때마다 읽고 토론하고 기록하지 않으면 역사는 매끈하게 편집된 이야기가 되어 우리를 망각의 IMAX로 이끌 것이다.


<주진오의 한국현재사>는 역사학자 주진오가 대한민국의 근현대, 더불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역사 문제를 논평한 칼럼 모음집이다. 대개 이런 책들은 핵심을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 구성이 어려운데, <주진오의 한국현재사> 역시 이런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한다. 하지만 다음 몇 가지 부분에선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배울 수 있었다.


첫째, 역사적 인물에 대한 지나친 우상화가 갖는 문제점이다. 우리는 굵직한 역사를 기록한 인물들을, 특히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을 어떤 초월적 존재로 그려내려 하는데, 이런 점들이 오히려 역사를 움직이는 건 우리와는 다른 '특출한 인간'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길러줄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는 한두 영웅의 슈퍼파워로 기록되는 것 같지만 실제는 다양한 얼굴의 보통 사람들이 써나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둘째, 역사적 인물을 평가할 때 삶 전체를 볼 것인가, 아니면 결과를 따질 것인가 하는 문제다. 서재필과 윤치호는 오늘날 독립운동가와 친일파로 그 평가가 극단적으로 나뉘는 인물이지만 조국을 배신한 건 두 사람 다 마찬가지였다. 단지 한 명은 미국을, 한 명은 일본을 택한 것뿐이다. 서재필은 생의 대부분을 미국인으로 살았고 한국인으로 불리는 걸 거부했다. 윤치호는 완전한 친일파였지만 독립운동가 안창호를 그 누구보다 아끼고 후원했던 사람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공과가 함께한다는 생각은 얼핏 공평한 것처럼 들리지만 친일파의 면죄부로 활용되기에 딱 좋은 논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깊이 생각해 볼만한 주제다.


셋째, 무능한 남성 지배층이 망가뜨린 역사의 대가를 치르는 건 대부분 여성이라는 점이다. 병자호란은 조선의 남성 지배층이 얼마나 무능력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인데, 결국 청나라에 공녀로 끌려간 건 조선의 여자들이었다. 심지어 그들이 돌아왔을 때 사대부들은 '환향녀(화냥년의 어원)'라는 낙인을 찍어 그들의 존재를 부인하고 억압하기까지 했다. 위안부 문제도 똑같았다. 대한민국에서 조차 위안부의 존재를 인정한 게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위안부 문제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공론화됐을 때 다수의 여론은 '나라 망신을 시키지 말고 조용히 뒈지라'는 것이었다. 여자의 얼굴을 한 역사는 진정 어디에도 없다는 말인가?


<주진오의 한국현재사>가 완성도 높은 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몇몇 근현대사의 논쟁 거리를 깊이 생각해 볼 여지를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읽기가 쉬운 데다 관심 없는 부분은 건너뛰어도 무방한 책이니 부담 없이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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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회주의자 열전 - 새로운 세계를 꿈꾼 인간, 그들의 삶과 생각을 다시 찾아서
박노자 지음 / 나무연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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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을 얘기했지만 대한민국에서 사회주의를 언급하려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그 배경과 진실을 아무리 설명하려 해도 결국 무지로 점철된 매도와 마녀사냥의 먹잇감이 되는데, 나는 대체로 그 이유를 다음 두 가지로 보고 있다.


첫째, 우리와 국경을 마주한 가짜 사회주의 국가 때문이다. 삼대 세습을 완성한 이 나라는 사회주의의 'ㅅ'도 꺼낼 자격이 없는 무능력한 독재국가다. 이 나라에 사상이란 없다. 오로지 더러운 권력욕과 그걸 포장하려는 뻔뻔함이 있을 뿐이다. 지금은 그것마저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지만.


둘째, 대한민국의 비극적인 근대사 탓이다. 알다시피 우리는 일제 강점기의 부역자들을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했다. 미국으로부터 사회적 지위와 부를 보전받은 이들은 그대로 대한민국의 지배층이 됐고 과거를 지우기 위한 수단으로 '반공'에 운명을 건다. 그 세뇌가 얼마나 강했는지 전쟁의 참상과 북한군의 만행을 실제로 목격해, 이유를 막론하고 빨간 거라면 무조건 혐오하는 사람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오늘날에도 사회주의라면 치를 떨게 된 것이다.


이런 나라에서 조선의 사회주의자를 연구하는 건 말 그대로 쓸데가 없는 일이다. 먹고 살 일이 모두 해결되어 아무도 하지 않는 희소한 행위를 고급 취미로 발전시키려는 사람이거나(중세 귀족들이 종종 그랬다) 대단한 사명감이 있지 않은 이상, 도대체 누가 이런 일을 하겠는가?


우리가 현재 기억하는 사회주의자는 대개 '독립운동가'로 통칭된 몇몇 이름들 뿐이다. 그 유명한 약산 김원봉조차, 그가 다른 사람들과는 확실히 거리가 있는 급진적 사회주의자가 아니었음에도, 월북을 했다는 이유로 영화 <암살>이 발굴하기 전까지는 거의 무명의 인물이지 않았는가.


따라서 한때 러시아인이었던 블라디미르 티호노프가 조선의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책을 썼다는 건 놀라운 게 아니라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다. 티베트를 공부하고 싶었지만 극심한 경쟁률 탓에 조선 사학으로 방향을 틀 수밖에 없었던 남자. 그는 자유롭게 평양을 드나들 수 있었고, 우리가 접할 수 없는 사료들을 많이 보고 익혔다. 일명 박노자로 불리는 이 아웃사이더는 그 보물을 들고 2001년 한국으로 귀화한다.


단언컨대 <조선 사회주의자 열전>이 각 장을 할애한 인물들 중 당신이 들어본 이름은 단 하나를 넘기기 어려울 것이다. 박노자는 당연하게도 박헌영과 여운형 같은 인물들을 위해 이 책을 쓰지 않았다. 그는 우리가 거의 알지 못하는 인물을 망각의 바다에서 건져 올렸고 여기엔 당연히 가장 깊은 바닥에 묻혀있던 여성 사회주의자들도 포함된다.


이 책을 읽으며 역사를 지우는 게 얼마나 쉬운 일인지 실감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걸 되살리는 게 또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역사는 쓰거나 쓰지 않는 것, 혹은 읽거나 읽지 않은 것만으로 간단히 사라지거나 다시 살아날 수 있다.


그들이 사회주의를 택했다는 이유로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지우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그들이 선택한 건 모든 시민이 남녀노소 차별을 받지 않고 평등하게 사는 무계급 사회였다. 심지어 그들은 오늘날의 가짜 사회주의 국가 북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탄생하기도 전에 거의 전원이 숙청되기까지 했다.(이런 걸 보면 가짜들에겐 자신이 가짜임을 알아보는 자를 본능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조선의 사회주의자는 대다수의 독립운동가가 오로지 조국의 독립만을 어깨에 지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인간의 평등이라는 대의를 하나 더 메고 있었다.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짖던 영웅들 중 상당수는 여전히 유교적 질서가 뿌리를 내린 계급사회를 꿈꾸고 있었다. 독립된 조국이 다시 봉건주의 사회로 돌아가 대다수의 백성이 노예가 된다면 도대체 독립의 의미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이런 사람들과 협력을 거부하는 것만으로도 사회주의자는 조국의 독립에 반대하는 매국노로 낙인찍혔을 것이다.


조선의 사회주의자는 일제 강점기엔 일제에게, 해방 후에는 보수주의자에게(사회주의자를 암살하는 백색 테러를 자행했다. 독립의 아버지 김구조차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찾아간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독재자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결국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안타깝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길이 없는 이 기구한 삶을 보상할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이 책은 그 죽음에나마 경의를 바칠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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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짧은 역사 - 한 권으로 읽는 하버드 자연사 강의
앤드루 H. 놀 지음, 이한음 옮김 / 다산사이언스(다산북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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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생각하는 건 아무리 해도 질리지 않는다. 쪼개고 쪼개고 보면 인간이라는 복잡한 유기체도 다른 사물들과 동일한 입자의 조금 다른 배열에 불과한 존재라는 게 얼마나 기가 막힌 가! 결말만 두고 보면 이 세상이 전지적 창조자의 꼼꼼한 기획물처럼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절묘한 결과가 저절로 만들어졌을 리는 없지 않은가. 생명의 신비를 곱씹을수록 이 의심은 확신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지구의 역사는 이 세상이 수많은 시행착오의 결과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약 46억 년 전 우주를 떠돌던 작은 먼지들이 서로의 중력에 이끌려 알갱이를 이루고, 더 큰 중력을 갖게 된 알갱이가 다른 먼지들을 흡수하면서 별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태양이었고 이 야심만만한 신성 주위의 암석과 얼음들이 뭉쳐 달에서 화성만 한 크기의 천체 약 100개가 생겨났다.


이들은 같은 자리만 지키고 살기엔 아직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었고 우리가 수금지화목토천혜(명왕성은 얼마 전 우리의 곁을 떠났다)로 알고 있는 캡틴 플래닛, 파워레인저, 세일러문과 같은 팀을 이룰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면 무엇을 했을까? 막아 세울 교통경찰도 없는 진공의 고속도로에서 '충돌'말고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의 고향이 될 지구가 완성된 지 거의 수천만 년 뒤에 화성만 한 천체가 고민도 없이 지구에 돌진했다. 쾅! 엄청난 양의 바위와 가스가 우주 공간으로 터져 나왔다. 터져나간 파편들이 뭉쳐 조금 작은 별을 하나 만들었는데 이는 지구의 궤도에 잡혀 훗날 '달'이라 불리게 된다.


충돌과 폭발의 시대는 짧지 않았다. 심지어 대양이 생긴 이후에도 지구는 그 대양을 모조리 증발시킬 정도의 강력한 운석 충돌을 셀 수 없이 경험했다. 하지만 이 시기는 창조를 위한 파괴의 시기이기도 했다. 현재 우리 고향별의 암석, 물, 공기의 대부분을 공급한 게 바로 이 운석들이기 때문이다. 43억 년~42억 년 전 무렵부터 지구에서는 더 이상 자신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대규모 충돌이 일어나지 않았다. 중력이 촉발한 대충돌의 시대가 다시금 중력의 힘 앞에서 질서로 수렴한 것이다.


지구는 이 평화의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지각과 맨틀은 열심히 서로를 주고받으며 오늘날의 판구조를 만들었다. 여전히 창조론의 끈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희소식을 알려주자면, 판구조는 행성 형성의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땅들이 스스로 움직이는 게 창조랑 무슨 상관이냐고? 놀랍게도 '그 결과 지구는 일반적인 행성 차원을 넘어 대양과 대기, 산맥, 화산을 갖춘 생명을 지탱할 수 있는 행성이 되었'기(p.79) 때문이다.


<지구의 짧은 역사>는 아주 작은 사건으로 촉발된 상호작용이 수십억 년에 걸쳐 축적된 결과가 바로 우리의 세계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 시간을 되짚어 나가는 과정은 매우 흥미로우며 여러 가지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우주여행을 떠나 1억 년 전 지구의 모습과 거의 비슷한 행성을 보게 된다면 1억 년 뒤 이 별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할 수 있을까? 그냥 현재 우리의 지구와 같은 모습이라고 상상하면 될까? 인간이라는 유기체가 나타나 서로를 죽이는 대학살을 벌이고 환경을 파괴하고 기타 등등 이하 생략. 그러나 보통은 수십억 단위로 세어지는 우주의 역사 속에서는 아주 사소한 차이가 대단히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생명의 역사는 태초의 바다 위로 번개가 쳤을 때 시작됐다. 번개가 만들어낸 아미노산은 서로 결합해 단백질을 만들어냈고 그 순간 세상은 완전히 변해버렸다. 그러나 그때 그 아미노산들이 수십억 년 뒤 지구에 인간이라는 존재를 만들기 위한 의도로 결합을 시작한 것은 아닐 것이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많은 것들이 명확한 계획과 의지를 따라 이뤄지는 것 같지만 시작은 아주 우연한 계기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촉발된 행동은 이후 세상과 끊임없이 상호작용 하며 점점 커져나간다. 그러니까 중요한 건 뭐가됐든 '하는 것'이고,


'멈추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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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전트 러너
존 르 카레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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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르 카레는 1931년 영국 도싯주 풀에서 태어났다. 이게 얼마나 옛날인지 알고 싶다면 1931년이 일제가 만주사변을 일으켜 중국 식민지화에 박차를 가한 해라는 걸 떠올리면 된다. 존 르 카레는 대학교에서 독문학을 전공했고 옥스퍼드 장학생이 되어 언어학 공부를 추가했다. 1956년부터 2년간 그 유명한 이튼 스쿨에서 아이들에게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가르쳤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서 정보부를 떠난 짐 프리도가 어느 시골 학교의 교사로 숨어 지내던 장면이 여기서 비롯된 것인지 모른다.


1959년 영국 외무부로 일터를 옮긴 그는 MI6에서 첩보 활동을 시작한다. 1961년 요원 신분으로 첫 장편소설 <죽은 자에게 걸려온 전화>를 발표한다. 우리의 스파이, 조지 스마일리가 탄생한 책이다.


존 르 카레가 은행 직원에게 요청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본인의 계좌 잔고가 일정액을 넘으면 꼭 자신에게 전화를 해줄 것을 부탁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가 출간된 후 어디메쯤 그 운명의 전화가 걸려온다. 이후 첩보원 데이비드 무어 콘웰은 영원히 존 르 카레가 되어 작가의 인생을 살아간다.


<에이전트 러너>는 2020년에 생애를 마감한 존 르 카레가 2019년 마지막으로 써낸 소설이다. 죽기 직전까지 집필 활동을 이어나갔다는 것도 놀라운데 동서냉전으로 시작한 그의 세계가 브렉시트까지 이어져왔다는 걸 생각하면 경이로움마저 든다. 존 르 카레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전설이다.


<에이전트 러너>는 브렉시트 시대의 혼란한 영국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적국은 러시아. 브렉시트와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 등 전 세계를 극우화시켜 혼란에 빠뜨리는 데 러시아가 깊숙이 개입했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특히 가짜 뉴스를 이용해서). 콜드워에서 처참하게 패배한 이후 잃어버린 영향력을 되찾기 위해 노골적이고 조직화된 범죄를 선택한 것은 정말 러시아답다. 그들의 악행을 보고 있으면 지옥의 왕이라 불러도 시원찮을 미국이 어린애처럼 보일 정도다.


존 르 카레는 이 소설에서 러시아에 대한 적대감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그렇다고 모국인 영국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그간 이 첩보 마에스트로의 소설을 읽어온 사람이라면 국적을 막론하고 이 세계에 몸담고 있는 이 모두를 어떻게 그려왔는지 알 것이다. 대의도 윤리도 없는. 양아치가 도둑놈을 쫓고, 도둑놈이 강도를 쫓는, 비열하고 지저분한 세계. 특히 영국은 그런 점에서 비판의 여지가 다분하다. 두 번의 전쟁으로 지옥의 왕좌를 미국에서 내주기 전까지 온갖 이간질로 세계사에 분탕을 쳐온 이는 다름 아닌 영국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이빨 빠진 호랑이는 과거의 영광이 너무 눈부셨던 나머지 본인이 아직도 슈퍼 히어로라 생각하는 주제넘은 착각, 아니 치매를 앓고 있다. 미국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든든한 맏형인 척 하지만 사실은 엉덩이나 핥는 푼수 주제에 말이다.


위대한 대영제국은 유럽의 연대 없이도 홀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존 르 카레는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이렇게 묻는다. 그리고 자신은 더 이상 모국을 향한 혐오를 참지 못하고 아일랜드 국적을 취득한다.


<에이전트 러너>는 소설의 전반부 대부분을 은퇴를 앞둔 첩보원의 가정사와 배드민턴 얘기로 장식하는데도 독자를 문장 안으로 잡아끈다. 500kg짜리 청새치를 잡아 올려 머리를 내려치기 전까지 천천히 나무 방망이를 깎는 노인의 정수가 유감없이 발휘된다. 그러나 작품 세계 전체를 두고 봤을 때 <에이전트 러너>의 스케일은 소품에 가까울 정도다. 조지 스마일리의 17단계 첩보 여정을 단편으로 요약한 기분이랄까? 하지만 그 경쾌함이 책장을 넘기는 손을 가볍게 한다. 골수팬들이야 반대할 수도 있지만, 솔직히 존 르 카레의 작품으로 베스트 앨범을 낸다면 나는 이 작품을 1번 트랙으로 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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